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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단 환영”… 마무리작업 부산/박정무 사표내던 날 정가표정

    ◎당내의견 조정 결과 보고 처리 청와대/「의원직 포기」여부는 답변안해 박정무/사퇴소식 듣고 다소 밝은 표정 YS 민자당의 내분은 13일 박철언정무1장관이 장관직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고위당직자들이 사태수습을 위해 잇따라 접촉을 가짐으로써 수습으로 가는 큰 고비를 넘어섰다. 김종필최고위원은 이날 아침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만나 의견을 조정했으며 이날 하오 박장관의 사의표명 이후에는 각 계파들이 사태추이를 관망하며 대책을 논의하는등 당의 내분진정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4인회동」후 처리 ○…청와대는 13일 하오4시쯤 박철언정무1장관의 사표처리문제에 대한 노태우대통령의 입장을 이수정대변인을 통해 발표. 이대변인은 노대통령이 「사표」를 언제 처리할 것인가는 질문에 『당내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조정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또 총리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것』이라고 공식입장을 표명. 이대변인은 강영훈총리가 언제 청와대에 올라올 것인가는 물음에 『오늘 오후에는 대통령의 다른 일정(리센륭 싱가포르상공장관 접견등)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 이대변인의 이같은 입장표명과 관련,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내 의견조정추이」를 보겠다는 것은 박장관의 사표제출에 대한 김영삼최고위원의 반응을 듣겠다는 것과 함께 당지도체제문제를 포함한 당운영 전반에 관한 일종의 합의를 본 후에 처리하겠다는 의미로 본다고 분석. 박장관의 사표제출로 정무1장관 퇴진의사를 밝힌 이상 YS(김영삼최고위원)가 이를 수용하는 선에서 사태수습에 응하고 이왕 제기된 당운영에 대해서도 무언가 입장을 정리해 주어야 한다는 것. 다른 관계자는 「당내 의견조정」과 총리의 의견을 듣는등 2중적 단계를 설정한 것은 노대통령의 사표처리가 「노대통령,두 김최고위원,박태준대행」등 청와대 4인회동 후에 이뤄질 것임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해 박장관의 사표처리시기가 청와대회동및 그 결과와 연계되어 있음을 시사. ○심야까지 구수회의 ○…노재봉비서실장과 최창윤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하오 삼청동 안가에서 민정계 중진위원들과 함께 박장관사표제출에 따른 후속대응책을 논의. 노실장은 박장관의 사표제출사실 공표이전인 이날 하오 1시부터 안가에 가 구수회의를 했고 최수석은 하오3시쯤 청와대를 떠나 이들과 합류. 이날 회의는 하오 늦게까지 계속되었는데 박장관의 「희생타」를 디딤돌로 하여 민자당에 대한 노대통령의 확고한 지도체제기반 확보방안이 중점 논의되었을 것이라는 관측들. 한편 박장관의 사표가 수리될 경우 그 후임엔 김윤환의원의 기용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박장관과 동일 티켓으로 인식되고 있는 박준병사무총장은 유임이 유력. ○…박철언장관은 13일 상오 사표를 제출하기 이틀 전인 지난 11일 삼청동 안가에서 청와대참모들과 사태수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결심을 처음 피력했다고. 한 측근은 13일 저녁 박장관의 사표제출경위에 대해 『지난 11일 박장관은 노재봉비서실장 최창윤정무수석 정구영민정수석 등과 당내분수습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자신이 정무장관직을 물러나는 것만이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라며 사퇴의사를 강력히 표명했었다』고 전하고 『그러나 노실장등 참석자들은 사퇴만이 능사가 아니고 우선 김영삼최고위원을 직접 만나 해명,사과를 하면 원만하게 풀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사퇴결심 유보를 강력히 권고했다』고 설명. 이에 박장관은 사퇴공식표명을 일단 유보한채 김최고위원을 만나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상도동 측근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노력을 했으나 김최고위원측의 완강한 거부에 무위로 끝나자 12일밤 『동기야 어쨌든 정치인이라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고 진퇴도 시기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사퇴결심을 굳히고 13일 상오 각료임명제청권자인 총리에게 사표를 내는 것이 올바른 절차라고 생각해 실행에 옮겼다고. 이 측근은 박장관의 향후 입지에 대해 『평의원으로서 임무와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번의 사퇴가 길게 보면 박장관의 정치적 위상을 크게 높이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 ○오랫동안 생각했다 ○…박철언정무제1장관은 13일 하오3시 자신의 접견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전격적으로 사표제출사실을 발표. 박장관은 이날 하오2시50분쯤 정권비서관을 통해 중앙청기자실에 전화를 걸어 『차나 한잔 하자』며 만나기를 요청한 뒤 30여명의 출입기자들이 장관접견실에 속속 모이자 곧바로 집무실에서 나와 기자회견을 시작. 박장관은 사퇴의 변을 밝히기 전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는데 몇마디 주고받는 도중에 비교적 밝은 표정을 지어 눈길. 박장관은 특히 『김영삼최고위원을 상도동자택으로 직접 방문,사죄를 표명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힘없는 어조로 『당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러한 노력을 왜 피하겠느냐』고 밝히고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자신은 김최고위원을 직접 독대,사과하려 했으나 민주계측의 선장관및 의원직 사퇴입장에 막혀 성사되지 않았음을 암시. 기자들의 질문이 더이상 나오지 않자 박장관은 이내 굳은 표정을 지으며 『사실은 오늘 아침에 강총리에게 내 진심을 말하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히고 사퇴의 배경및 심경등을 피력. 박장관이 사퇴사실을 발표한 뒤 『많은 질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으로 끝내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기자들은 장관전용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며 파상적인 질문공세를 전개. 박장관은 복도에서 기자들이 『언제 결심했느냐』고 묻자 『오래 생각했다』고 짤막하게 답변하고 『사의는 구두로만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서면으로 제출했다』고만 언급. 박장관은 또 『장관직사퇴는 동시에 전국구의원직 사퇴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일체의 코멘트없이 묵묵부답하기도. ○이정도서 매듭돼야 ○…이날 하오 박장관의 사표제출 소식을 전해 들은 민자당의 민정계 의원들은 충격을 받은듯 침통한 표정이었으며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박준병사무총장등 수뇌부는 당중진들과 접촉을 갖고 향후대책을 숙의하는등 분주한 모습. 이날 하오 서울 L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대행은 측근으로부터 박장관의 사표제출 소식을 전해 듣고 경위등을 묻지도 않은채 『알았다』며 전화를 끊은 것으로 보아 이미 박장관의 퇴진방침이 서있었음을 시사. 박대행은 이어 측근을 통해 『한마디로 마음이 무겁다』면서 『우리당의 앞날을 위해 모든 사람의단합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꼭 이런 식의 해결방법밖에 없었는지 아쉽다』고 피력. 박총장은 상오11시30분쯤 김윤환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박장관 사퇴사실을 통보한 데 이어 하오2시쯤 이한동ㆍ이춘구의원에게도 이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후유증수습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 박총장은 또 과로로 입원중인 이종찬의원에게도 박장관의 사퇴배경을 설명하고 사후대책을 협의. 박준규의원은 이날 하오 박장관의 사퇴소식을 전해 듣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이정도 선에서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고 피력한 뒤 민주계가 이를 계기로 당권장악이나 당내우위를 확보하려는 저의를 나타낼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결의를 표명. ○…민주계는 박장관의 장관직 사의표명을 일단 자신들의 「승리」로 받아들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이를 계기로 내분파동을 마무리 짓자는 의견과 의원직 사퇴까지 관철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혼재하는 모습. 특히 김최고위원이 박장관의 사의표명 소식을 전해 들은 뒤 함께 있었던 한 측근은 『상당히 책임있는 얘기』라며 자신의 말이 바로 김최고위원의 뜻임을 강력히 시사한 뒤 『박장관이 의원직 사퇴도 해야 한다는 것이 YS의 생각』이라고 설명. 이 측근은 『구국적 차원에서의 3당통합을 훼손시킨 박장관 발언파동은 장관직 사퇴로는 안되며 국회도 정치에 대해 책임지는 곳인만큼 의원직도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박장관이 장관직이나 당무위원직을 내놓는 차원이 아닌 정치일선후퇴가 이뤄져야 함을 강조. 김최고위원은 이날 하오 서울 플라자호텔부속 이발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 박장관의 사의표명소식을 전해 들었으며 다소 밝은 표정으로 이발소를 나오면서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코멘트하고 싶지 않다』고만 답변. 김최고위원은 평소 친교가 있던 연예인들과의 저녁식사 장소인 대원각까지 따라간 기자들이 후속조치논의를 위해 김종필최고위원과 만날 생각이냐는 질문에 『오늘은 만나지 않겠다』면서 주말 청와대회동 전망에 대해서는 『이번주 내에 청와대에 갈 생각이 없다』고 답변. 김최고위원은 박장관이 사과하러 올 경우 만나겠느냐는 질문에 『그런 문제는 더 얘기하지말자. 더이상 할 말이 없다』고만 하고 함구했는데 주변에서는 『이날 낮 김최고위원이 부인 손명순씨와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으러 갑자기 자택을 나선 이유는 박장관이 두번이나 상도동방문의사를 밝혀 이를 피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귀띔. ○오늘 YS­JP회동 ○…서울시내 삼청동 대원각식당에서 문화예술인 40여명과 저녁을 함께 한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밤10시10분쯤 상도동자택으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오늘은 김종필최고위원과 만나지 않겠다』『내일 청와대는 안간다』고 말하고 곧바로 2층 침실에서 황병태ㆍ서청원의원등과 만나 대책을 숙의. 김최고위원을 만나고 나온 김우석비서실장은 청구동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종필최고위원측의 김동근비서실장에게 전화로 14일 아침 9시에 김종필최고위원이 상도동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두 사람이 회동키로 약속한 뒤 『현재 그쪽(민정계)에서 내놓은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김최고위원의 뜻』이라며 박장관의 의원직사퇴가 최종 상도동의 뜻임을 전달. 이에 따라 김종필최고위원측은 청구동자택서 기다리던 보도진에게 이같은 회동 연기사실을 알린 뒤 『따라서 14일로 예정됐던 김종필최고위원의 강릉 지구당개편대회 참석은 불가피하게 취소됐다』고 설명.
  • KBS노­사,팽팽한 “힘겨루기”

    ◎현재의 상황/본관철야농성…“제작거부”움직임 확산/직제ㆍ위상재편우려…일반직원동조늘어 서기원사장 취임문제로 시작된 KBS사태는 12일 하오부터 TV의 「9시뉴스」를 비롯,TV와 라디오의 일부 생방송프로그램이 중단 또는 대체방송되고 13일에는 많은 노조원들이 제작거부에 참여함으로써 사실상 「전면파업」국면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더욱이 노조원들 이외의 각 부서 실무책임자인 부장단 3백50여명이 이날 성명을 내고 사태를 악화시킨 공권력 개입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서사장의 퇴임을 요구하고 나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 이번 사태가 극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될 경우 우리나라 최대의 공영방송인 KBS가 전면 마비되는 방송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을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KBS사태가 급작스럽게 악화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서사장 출근저지 농성을 벌이던 노조원들이 경찰에 의해 해산,연행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더 깊은 배경은 『정부가 KBS의 직제와 역할 및 위상을 재편하려고 한다』는 노조측의 인식과 이같은 인식에많은 직원들이 동조하는데서 비롯됐다. 특히 지난 2월에 있은 프로듀서 비리수사에 이어 법정수당 변태지급문제로 지난달 8일 서영훈전사장이 사퇴,해임되자 노조측은 『서사장을 퇴진시킨 것은 KBS를 음해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어 방송위원회에서 추천한 이사들이 새 사장 선출을 위한 이사회를 열자 노조측은 서사장 등 특정인사 몇명을 구체적으로 거론,이들이 사장에 선출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결국 이중의 한사람인 서사장이 임명되자 취임저지 농성에 들어갔다. 회사측은 노조측의 이같은 주장과 행동에 대해 『서사장은 한국방송공사법에 따라 방송위원회가 추천한 이사들이 사장을 뽑고 대통령에게 제청,사장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적법절차에 따른 것이며 통치권자의 법집행에 반발하여 불법행위를 한 노조원들이 공권력에 의해 제지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회사측은 또 노조측이 사장 임명 문제를 시비하는 것은 노사문제에서 벗어난 불법 노조활동이며 이를 빌미로 국민에 대한 봉사임무를 띤 공영방송종사자들이 파업ㆍ제작거부행위를 벌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원 5백여명은 12일의 경찰력 투입이후 본관 2층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각 국ㆍ실별로 연좌침묵 농성에 들어가 제작거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으며 전국 25개 지역방송국 직원들도 점차 가세하는 추세여서 최악의 경우 방송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다. 특히 현재까지는 파업을 유보한채 정상근무를 하고있는 KBS기술본부의 TV기술국과 라디오기술국의 송출기술부직원 3백50여명과 기술본부 방송관리실 산하 전국 송신소ㆍ중계소 직원 1천 1백여명 등이 「파업」에 가담하게 될 경우 KBS는 방송망전체가 마비될 위험까지 안고 있다. 또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현재 주간편성을 골간으로 하고 있는 TV방송은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이 1주일분 정도여서 방영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회사측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비노조원과 간부사원들을 동원,프로그램 제작과 외화 필름 재방영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3개 TV채널과 5개 라디오 채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그러나 노조측의 주장이나 회사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사태가 장기화되면 결과적으로 시청자들만 피해를 입게된다는 것이 많은 시민들의 지적이며 어떤 명분으로도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노조ㆍ회사ㆍ정부가 함께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될 것임에 틀림없다. ◎사측의 입장/“통치권자의 정당한 법집행에 대한 도전/시청자만 피해…방송은 반드시 계속돼야” 정부는 「실질적 파업」으로 치달은 KBS사태를 통치권자의 정당한 법집행에 대한 도전행위로 보고 있으며 그같은 행위는 정부의 권위를 확립하는 차원에서도 합법적으로 해소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KBS사장 임명은 한국방송공사법에 따른 것으로 방송위원회에 의해 추천된 이사들이 사장을 뽑고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여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법적절차에 해당하는 것이며 노조의 서기원사장 퇴진요구는 당연한 정부의 인사권 권한행사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KBS에 공권력을 투입시킨 것은 정부의 권한행사가 차질을 빚게됨에 따라 취해진 불가피한 수습이었으며 노조가 주장하는 방송장악음모의 일환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KBS의 경우 과거 MBC의 김모사장이 노조측에 의해 취임하지 못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파악하고 있다. 즉 MBC는 주식회사로 정관에 따라 사장이 임명되므로 이번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노사문제로 간주돼 공권력개입 등 정부의 직접적 영향력 행사는 자제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같은 점에서 KBS 서사장에 대한 임명은 법적 하자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노조의 퇴진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고 못박고 있다. 나아가 서사장의 취임과 정상집무를 방해하는 노조의 행동은 공무 및 업무집행방해로 이해하고 있다. 정부는 KBS사태가 장기화돼 정상방송이 계속 차질을 빚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이미지가 흐려지면 여론의 부담을 감내하고서라도 공권력 재투입에 이은 정상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의지는 『근무질서를 확립하고 공정한 인사와 경영합리화를 이루는데 역점을 두겠다』는 서사장의 취임사를 통해 간접 반영되고 있다. 정부는 특히 정부투자기관인 KBS에서 인사권이 노조의 집단행동으로 「침해」 당할 때에는 다른 공기업에도 그 역효과가 일파만파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춘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의 권위 회복을 확실하게 담보해 두지 않을 경우 입지가 약화될 것으로 판단,이번 기회에 노조의 행동반경을 명백히 설정해 두는 한편 노조의 「불법」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대응,사회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언론기관에 초유의 공권력을 투입시킨 것 자체가 이같은 정부의 뜻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부는 수당변태지출로 야기된 KBS사태는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진정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상황이 반전,제작거부사태로까지 연결되자 적지않게 당황하고 있다. 사태가 어디까지 연결될 것인지는 현재로선 속단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방송정상화까지는 상당시일이 소요될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서사장의 진퇴여부가 문제의 핵심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어 정부의 고민은 증폭된 상황이라 하겠다. 정부의 법집행절차와 노조의 방송민주화요구가 맞붙어 극한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KBS의 사태는 분명 이시대의 독특한 시대상황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공영방송인 KBS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분은 결국은 시청자들인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을 고려해 조속히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 민자내분 진화에 극적 돌파구/박정무 사표로 수습길 진입

    ◎청와대의 확전방지 “사석작전”/민주계,“성과” 자평…파상공세 예상/민정계,희생카드 활용,당주도 모색 박철언정무1장관이 13일 정무장관직에 대한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민자당내분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는 것을 전제로,민정­민주계분쟁은 그 표적이었던 박장관 거취문제가 민주계 요구대로 해결됨으로써 극적인 수습의 계기를 맞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민정­민주계가 분쟁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어느 일방의 「항복」으로 마무리지은 점은 양계파간의 감정악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장기적으로는 결산이 아닌 새로운 분쟁의 시작을 가져다 줄 가능성도 있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은 김영삼최고위원의 완강한 태도와 여론의 부정적동향을 감안한 청와대측의 「사석작전」으로 이해되고 있다. 지난 10일 박장관이 김최고위원을 정면비난했을 때의 의도와는 달리 내분수습의 도의적 책임이 노대통령에게 귀결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내분의 불길이 노대통령에게 미치기 전에 「사퇴카드」로 이를 차단한것으로 해석된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은 이번 분쟁의 또다른 대상인 당운영문제에 대한 청와대와 민정계의 입장이 보다 단호해질 것임을 예견케 하고 있다. 박장관측이 지난 10일 김최고위원을 정면 비난하고 나섰던 것은 자신에 대한 퇴진압력도 고려했겠지만 보다 중요한 배경은 김최고위원측이 합당 당시의 약속을 깨고 당정 분리론과 함께 당권장악의사를 피력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당초 박장관은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이 있은 직후 『내가 조용히 있고 당운영문제에 대해 민주계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해 주면 문제가 풀리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8일밤 상도동 자택을 방문한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에게 김최고위원은 당정분리론을 펴면서 노대통령이 당무에서 손을 떼도록 요구했고 이같은 요구가 박장관의 10일 발언을 촉발시킨 것으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민정계가 박장관의 생존을 전제로 제시했던 당운영문제에 대한 양보의사는 박장관의 사표제출과 함께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여겨진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을 「사석작전」으로 보는 것도 박장관을 내주는 대신 노대통령의 강력한 당장악을 고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때문이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은 청와대의 사표수리에 대한 유보적인 자세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계의 「분쟁종식」화답이 있어야만 수리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이날 박장관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 『당에서의 조정이 있어야만…』대통령이 처리할 것이라고 말해 민주계의 분쟁종식선언이 수리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아직 민주계는 박장관의 사표제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민주계가 박장관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박장관도 문제지만 이기회에 당운영에 대한 김최고위원의 위상을 확고히 하자는 데 더 큰 뜻이 있은 것으로 여겨져온 터다. 때문에 박장관의 사표제출이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민주계의 분쟁종식선언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번 분쟁의 내막이야 어떻든 김최고위원과 박장관의 감정싸움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졌고 그 결과로 박장관이 여론의 부담을 졌던 게 사실이고 보면민주계가 박장관의 사표제출에도 내분의 연장을 요구한다면 여론의 향배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민주계는 일단은 박장관의 「사표제출」에서 더이상 확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선으로 후퇴하면서 동시에 당운영문제에 대한 꼬리표를 달아 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계가 박장관의 정무장관직 사퇴에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직 사퇴라는 초강경카드를 고집한다거나 당운영에 대한 「새로운 보장」을 요구할 경우 박장관의 사표는 반려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상태로 내분이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최고위원 스스로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상처를 입었음을 감안할 때 이번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모전으로 성격을 규정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청와대측은 민자당내분이 대화와 타협으로 어느 일방의 희생없이 종식되기를 희망해 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박장관에 대한 「읍참마속」형 내분수습은 결과적으로 민정­민주계에 상당한 감정의 앙금을 남기는 것이 불가피하다. 특히 민정계가 막후협상을 통해 대통령의 「통치권 손상」을 들며 사실상 전당대회 당직개편때의 경질을 의미하는 「대통령에게 일임처리」를 호소했음에도 김최고위원이 끝내 거부함으로써 청와대와 김최고위원간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정계는 앞으로 당운영에 있어서 의석비율에 따른 권한행사를 보다 강력하게 요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밀어 붙이기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평하는 민주계 역시 당권과 관련해 파상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여 민자당은 계속 정면대립의 불씨를 안은채 불안한 동거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장관의 사표제출이 새로운 분쟁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 민자수뇌 내분수습 연쇄절충

    ◎김종필위원,어제 김영삼위원과 회동/오늘은 박대행과/「박정무 처리문제」이견 못좁혀/본인 해명­사과ㆍ당무배제 중재안 나와 민자당의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은 12일낮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 별장빌라 2603호실에서 비밀리에 회동,박철언정무1장관의 발언파동으로 확산된 민자당 내분수습문제 및 당운영문제에 관해 폭넓게 논의했다. 이날 낮 12시35분부터 4시간30분 동안 계속된 회동에서 두 김최고위원은 민자당이 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돼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으나 구체적인 내분수습방법에서는 다소간의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발언파동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박철언정무1장관의 처리문제에 대해 두 최고위원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필최고위원은 회동을 끝낸 뒤 박장관 퇴진문제와 관련 두 최고위원간의 의견일치가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좋은 당을 만들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제대로 일할 당을 만드는데는 조금의 의견차이도 없었으나 현실적인 방법에 대해서는약간의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말해 이 문제와 관련된 의견조정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노태우대통령과의 면담시기에 대해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를 통해 합리적 해결노력을 계속한 뒤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을 것』이라며 박태준최고위원대행,박장관 등과 우선 대화를 가질 방침임을 밝힌 뒤 『가급적 모든 것을 빨리 수습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회동을 마치고 『김종필최고위원과 충분히 얘기했다』라고만 말하고 회동내용에 대해 일체 언급을 회피했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얘기는 김종필최고위원이 할 것』이라며 김종필최고위원이 회동결과를 일부 설명키로 합의했음을 암시하고 『당분간 내가 우리당의 간부나 당원과 밥 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사태수습에 나선 민정계측과 접촉을 거부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은 박장관의 퇴진만이 사태수습의 지름길이라고 말한 데 대해 김종필최고위원은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임면권자인 노대통령의 소관사항이라는원칙론을 강조하고 박장관의 해명,사과 및 당무배제의 중재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김최고위원의 이날 회동에서는 사태수습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데다 김종필최고위원이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을 비롯한 다각적인 절충활동을 펼 생각을 밝힘에 따라 주말쯤으로 예상되던 노대통령과 두 김최고위원간의 청와대 회동이 다음주로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13일중으로 박대행과 만나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결과를 설명하고 민정계측이 사태수습을 위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제시할 예정이다. 박대행은 김종필최고위원과의 회동이 이루어지면 이를 토대로 수습안을 마련,노대통령에게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김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10시 호텔신라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보도진을 의식한듯 이를 취소,정오 워커힐 빌라에서 전격적으로 회동했다. 박장관의 문책과 관련,당3역 및 민정ㆍ민주계 중진의원간에 막후절충이 이뤄지고 있으나 민정계는 대통령에게 일임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민주계는 장관ㆍ의원직 등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을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계의 김동영원내총무는 김윤환의원등 민정계 중진인사들과의 이날 상오 접촉에서 박장관이 의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고 박장관문제는 대통령권한에 속하는 일이지만 당수습을 위해 박장관이 스스로 어떤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계 소장의원들도 이날 아침 가든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박장관이 정무장관직과 당무위원직에서 물러날 것과 의원총회소집을 요구키로 했다. 이에 대해 민정계는 『장관직 사퇴여부는 인사권자에게 속한 문제일 뿐아니라 퇴직한다고 사태가 수습되는 것은 아니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노대통령은 11일 밤 민자당의 박준병사무총장과 이종찬ㆍ김윤환ㆍ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당내분의 조기수습을 위해 중진들이 적극 나서 주도록 당부했다. 만찬을 겸해 긴급 소집된 이날 모임에서 노대통령은 3당 통합이후 민정계 중진들이 당의 일에 소극적인 점을 지적하면서 『여러분이 앞장서 사태수습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 김영삼­김종필위원 4시간30분 대좌 안팎

    ◎내분진화엔 일치…방법엔 이견/냉각기간 갖게 당인면담 자제 YS/김종필위원,박장관 퇴진요구 동참엔 난색/각파 주장조정 뒤 청와대 갈듯 JP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이 12일 당내분 진정의 중재역을 자청하고 나선 김종필최고위원과 4시간30분여에 걸친 마라톤회동을 가졌으나 구체적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한 듯한 인상이다. 이날 회동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은 박철언정무1장관 사퇴 및 당지도체제문제 등에 있어 김종필최고위원이 자신의 입장에 동조해 주도록 끈질기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종필최고위원은 박장관 사퇴요구동참등에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영삼최고위원은 우선 대외적으로나마 내분진정의 모습을 보이자는 김종필최고위원의 간곡한 호소를 받아들여 당인면담을 자제하는등 냉각기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또 김종필최고위원은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 다른 인사들과 연쇄접촉을 갖고 중재노력을 계속할 예정이어서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이날 마라톤회동을 끝낸 두 최고위원은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으나 『특별하게 할 얘기가 없다』며 말문을 꺼내 이날 장시간 요담에도 불구,주요사안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차가 노출되었음을 시사했다. 김영삼최고위원과 김종필최고위원은 『기자 여러분들이 왔으니 사진이나 찍자』며 포즈를 취한 뒤 김영삼최고위원은 『내가 먼저 갈테니 김종필최고위원에게 얘기를 들어보라』며 먼저 자리를 떴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언제 청와대로 들어갈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분간 당간부들이나 당원들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 언급을 회피,공식적인 회동등이 다소 늦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김종필최고위원은 『기자들을 따돌리려 했던 것은 앞으로 하는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그랬던 것』이라며 『앉아서 할만한 얘기는 없고 몇마디만 하겠다』면서 거듭 중요현안에 대한 합의내용 등이 없었음을 암시했다. 김최고위원은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기탄없이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듣고 싶은 얘기 다 들었다』고 지적하고 『좋은 당을 만들어 제대로 일해 나가는 당을 만들자는 데는 인식이 일치했으나 현실적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만 설명했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오늘 몇사람 만났고 또 계속 대화를 통해 고민하고 있는 일들을 해결토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런 일들을 한 연후에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우리 레벨에서 해야 할 일을 먼저 한 뒤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도리』라고 거듭 강조하고 『박태준대행과도 금명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최고위원은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어떻게 얘기됐냐』고 묻자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고 방법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었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두 김최고위원간에 박장관문제를 놓고 상당한 견해차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최고위원은 김영삼최고위원이 당분간 아무도 안만난다고 말한 부분과 관련,『자꾸 만나고 같은 계파끼리 모이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의도적으로 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김최고위원은 이어 당내분의 진정시기와 관련,『가급적 빨리 수습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이날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을 통해 표출된 계파간의 이견등을 자신이 중간에서 적극 나서 조정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최고위원은 회동장소를 떠나면서 『내가 한 얘기대로만 써달라』고 주문하고 『어제 아침 기자들을 만났을 때 「어떤 정권이든 김영삼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 없고 국민들을 잠시 혹일 수는 있지만 속일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일부 달리 표현됐더라』고 말해 민정계에 대한 불만이 삭여지지 않았음을 거듭 나타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이날 하오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을 마친 뒤 박태준대행과 시내 롯데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됐으나 박대행측으로부터 『언론기관이 이미 저녁회동 사실을 알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 박대행과의 회동일시를 추후 결정키로 한 뒤 측근인 김용환정책위의장등과 향후 대책을 숙의. 김최고위원은 이날 밤 청구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날 김영삼최고위원과의 회동 성과에 대해 『매우 어려웠다』며 양자간 견해차가 컸음을 거듭 지적하고 『주말까지 당내분이 진정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저어 당내분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눈치. 김최고위원은 이어 『김영삼최고위원과는 함께 걱정해야 할 처지』라고 전제,『서로 조금씩 참고 온당하게 수습됐으면 좋겠다』며 YS의 반발 양보를 기대. 김최고위원은 이날 회동 결과에 대해서는 발표를 자신이 맡은 이유에 대해 『김영삼최고위원은 될 수 있는 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인 것 같더라』고 말하고 『자신의 계보사람도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더냐』고 부연. 한편 김영삼최고위원은 김종필최고위원과 헤어진 뒤 신라호텔에 들러 이발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하오 7시쯤 호텔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과 만나 『어떤 정권도 잠시 나와 국민을 속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해 통합 과정에서 무엇인가 민정계에게 「속았다」고 느끼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김최고위원은 이어 시내 모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밤 11시40분쯤 귀가했다. ◎민자 내분수습 각파동향/타계파와 막후접촉…내부결속 병행 민정계/의총소집 결의등 반격수위 높여 민주계 박철언정무1장관의 발언으로 증폭된 민자당의 내부갈등은 12일 민주계 소장파의원들이 박장관의 공직사퇴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나옴에 따라 갈수록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이 사태수습을 위해 전격 회동한데다 민정계 중진의원들이 적극 진화작업에 나섬으로써 극적으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윤환ㆍ이종찬ㆍ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은 이날 상오부터 각자의 「연줄」을 동원,민주ㆍ공화계의 중진의원들과 만나 당내분규의 조기수습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각 지역별로 영향력이 있는 민정계 의원들과도 만나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고 민정계 내부결속을 강조하는등 분주한 움직임. 김의원은 이날 상오 김동영총무와 접촉,『당헌과 당규에 규정된대로 최고위원의 역할과 권한만 정상화된다면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정무장관의 「월권」행위는 자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특히 박장관의 거취문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일임해 달라』고 촉구. 그러나 김총무는 박장관의 김영삼최고위원에 대한 「하극상식」발언을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박장관을 「공작정치」의 배후인물로 지목,장관직과 의원직 등 모든 공직에서의 퇴진을 요구함에 따라 의견조정에 실패. 이날 김총무는 3당합당이후 김최고위원에게 들어 오던 정치자금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져 김최고위원이 주장하는 공작정치가 결국 정치자금과 연관된 것임을 시사. 김위원은 이밖에 의원회관에서 민주계의 서청원ㆍ김동주의원과 접촉한 데 이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민주계의 박용만ㆍ신상우의원과 공화계의 김용채의원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사태수습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고 민정계의 김종호ㆍ권해옥ㆍ서정화의원 등에게도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며 당내결속을 당부. 이춘구ㆍ이한동ㆍ심명보의원 등은 전화접촉 등을 통해 민주계 설득에 나섰으며 종친회관계로 이날 상오 경주에 내려갔던 이종찬의원도 하오에 상경해 설득작업에 합류. ○…민자당내 민주계는 12일 중진및 소장파의원들이 잇단 모임을 갖고 박철언정무1장관의 사퇴를 관철시키기 위한 대책논의에 부심. 김영삼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상도동자택에서 김동영원내총무를 비롯,김우석비서실장,박종률ㆍ김덕용ㆍ박용만ㆍ황병태의원 등 측근들과 잇따라 만나 박장관 퇴진문제를 포함한 당내분 수습방안을 숙의. 김총무는 김최고위원과의 면담이 끝난 뒤 『모든 문제를 일으킨 박장관이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하는 것만이 수습의 길』이라고 박장관의 의원직사퇴까지 요구,민주계의 대박장관 공세의 수위가 한층 높아진 느낌. 김총무는 『각료직의 사퇴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속하지만 정국과 당을 수습하려면 박장관 스스로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며 박장관의 자진사퇴를 촉구. 서청원의원을 비롯한 민주계 소장파의원 10명도 이날 상오 서울 가든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박장관의 공직사퇴와 이번 사태를 논의키 위한 의총소집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 서의원을 비롯,강삼재ㆍ박태권ㆍ정정훈ㆍ김동주ㆍ신하철ㆍ김운항ㆍ최이호ㆍ이인제ㆍ조만후의원 등은 이날 발표문에서 박장관의 최근 일련의 언동은 해당행위차원을 넘어 국론분열은 물론,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반국가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박장관의 사퇴를 강력 요구. ○…청와대측은 두 김최고위원의 회동결과에 촉각을 세우면서 박장관의 공직사퇴등 민주계의 요구에 일단 부정적 시각. 노재봉비서실장은 12일 박장관의 거취문제와 관련,『대통령중심제를 하고 있는 나라치고 당이나 국회에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하는 대통령측근이 없을 수 없다』며 『박장관이 물러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말해 당내타협을 통해 조용히 수습되기를 기대. 최창윤정무수석도 『당내부에서 활발한 수습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두고 보자』면서 『정치적 경륜을 가진 최고위원들이 사태를 원만히 풀어 나갈 것』이라고 말해 박장관의 퇴진등 「극단조치」없이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라는 눈치.
  • 위아래도 없는 당의 기강 바로 잡겠다/김영삼위원 회견내용

    ◎청와대회동엔 김종필씨도 참석 바람직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은 11일 상오 부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철언정무1장관의 비난 발언과 관련,당풍쇄신과 공작정치의 단절을 거듭 다짐했다. ­박철언정무1장관이 통합과 정의 진실을 밝히면 김최고위원의 정치생명이 어렵게 될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노태우대통령과의 면담서 박장관의 퇴진을 요구할 것인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민자당의 당풍은 반드시 쇄신 하겠다』 ­공작정치가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내용을 공개해 달라. 『부끄러운 얘기다. 말한대로만 들어주면 좋겠다. 과거의 공작정치가 되살아난 것 만큼은 분명하다. 반드시 뿌리를 뽑겠으며 용납하지 않겠다』 ­김최고위원에게 공작정치가 행해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언제 당무에 복귀할 것인가. 『모든것을 좀 생각해 보겠다』 ­청와대 면담이 주내에 가능한가. 『원래 노태우대통령 비서실장이 와서 빨리 만나 수습했으며 좋겠다며 그저께쯤(9일)만나자는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생각하자고 했는데 날짜를 좀 생각해 봐야겠다』 ­만나면 노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게 되나. 『노실장은 그런 뉘앙스였다. 「두분이 해주시오」했는데 나는 왈가왈부 안했다. 김종필최고위원과 대통령 세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청와대측에서 김최고위원이 요구하는 당풍쇄신의 사전보장,즉 박장관 퇴진보장이 없기 때문인가. 『그만하자』 ­공작정치의 내용에 대해 국민이 궁금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공작얘기는 않는 것이 좋다. 뿌리는 뽑을 것이다. 절대 그냥 두지 않고 당의 기강을 확립하겠다. 우리당은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어른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하며 앞에 갈 사람이 있고 뒤에 갈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당이라면 제일 중요한 것이 순서가 있어야 한다』 ­청와대측서 박장관 발언이 대통령의 뜻과 관련이 없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 통보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최고위원이 청와대에 갈 때는 그간의 박장관의 행적을 기록한 문서를 지참할 예정이라는데.『나는 일체 전화를 안 받겠다고 했고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총무ㆍ대변인 등을 통해 전화내용을 보고 받았다』 ­5월3일의 전당대회에서 김최고위원이 당무를 전담하는 문제는 결론이 났나. 『전당대회는 대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 청와대ㆍ민자각계파 내분수습 움직임

    ◎“위험수위”판단…돌파구 모색에 부산/「선 박장관 퇴진­후 청와대면담」방침고수 민주계/「개인차원 얘기」강조…4자회동 성사 기대 청와대/「반민주계 범민정 연합론」대두속 진화작업 민정계/예상밖 파장에 당혹…후유증 최소하 전력 박정무 박철언정무1장관의 「폭탄발언」으로 증폭된 민자당내 민정ㆍ민주계간 내분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당 주요인사들의 수습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청와대측은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박태준최고위원대행의 4자회동을 주내에 성사시켜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지을 것을 희망하고 있고 김종필최고위원을 비롯한 각 계파 중진들도 수습을 위한 막후절충을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계측은 박장관의 퇴진없이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향후 당권경쟁과 맞물려 있어 내분양상이 쉽사리 진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청와대측은 박철언정무1장관의 발언 파문이 조기에 수습되어 민자당이 정상가동 되기를 강력히 희망. ○노대통령 “수습”당부 이와관련,노대통령은 11일 저녁 박준병사무총장과 이종찬ㆍ김윤환ㆍ이춘구ㆍ이한동의원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 하며 당내분 수습에 이들이 적극 나서 주도록 당부. 이날 청와대 회동은 노대통령과 중진들과의 만찬에 이어 중진 5인만이 따로 모임을 갖는 형식으로 2시간가량 진행됐는데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3당 통합후 일부 민정계 중진들이 당일을 모른채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힐난조로 언급했다는 것. 노대통령은 그러나 내분수습의 구체적 방안은 적시하지 않은채 절충과 설득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만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장관을 그만 두게 할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는 전문. 청와대측은 박장관의 발언에 『김영삼최고위원측이 대통령이나 정무장관을 적으로 몰고 간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 대목을 놓고 박장관이 사전에 노대통령과 어떤 형태로든 교감을 가진끝에 「포문」을 연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에 매우 신경이 쓰이는 눈치. 노재봉비서실장은 이에대해 『박장관의 발언은어느 누구와도 협의 하지 않은 개인차원의 얘기』임을 강조하고 김최고위원에게는 박준병사무총장을 통해 이같은 뜻을 전달. 노대통령이 박장관의 발언에 진노했다거나 박장관을 엄히 문책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는 후문은 없으며 아무런 의사표시 없이 묵묵히 전말만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박장관의 거취문제에 대해 이번주 내로 있을 노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과의 회동결과에 따라 다소 유동성은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알아서 할일』이라면서도 「퇴진」보다는 「역할축소」및 「근신령」수준일 것이라고 관측. 주내 청와대 회동과 관련,최창윤정무수석은 『최고위원들이 사안의수습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회담은 그들의 의견을 듣고 당에서 요구하는 시기에 맞춰 이뤄질 것』이라며 『회담시기가 이번 주말을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내 회동성사를 희망. 최수석은 또 『이왕 청와대에서 최고위원들이 모인다면 박태준최고위원권한대행도 참석하는 것이 모양도 좋지 않겠느냐』고 피력. ▷민정계◁ ○…민자당의 내분이 박철언장관의 발언으로 급속히 확산되자 민정계중진들은 박장관과 민주계를 겨냥한 직접적인 언급을 삼간 채 당내결속과 화합을 거듭 강조하며 진화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 박태준최고위원대행은 이날 경북 영양ㆍ봉화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치사를 통해 최근의 당내갈등 표출이 3당통합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상호자제를 촉구했으며 박준병총장도 『당내에서 정책이나 이념문제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면 그래도 모양이 나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청와대 회동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을 기대. 이종찬ㆍ김윤환ㆍ이춘구ㆍ이한동의원등 민정계 중진의원들은 이날 노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갈등해소를 위한 중재에 나서도록 지시받고 나름대로 대민주계 접촉을 시도할 움직임. 이중에서도 구민정총무시절 야권인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김윤환의원이 가장 적극적이며 김의원은 12일중 민주계의 김동영총무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민주계 인사와의 연쇄접촉을 가질 예정. 지방에 머물다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급거 귀경한 이종찬의원도 당내분 수습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고 이춘구ㆍ이한동의원도 민주계와의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 한때 박장관의 「독주」를 막기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도 했던 이들 중진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내분에서 민주계가 승리할 경우 당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때문에 「반민주계 범민정연합」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대두 ▷민주계◁ ○…민자당내 민주계는 청와대와 민정계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박장관 발언이 노태우대통령의 뜻이 아니다』는 요지의 해명을 접하고는 「선 박장관 퇴진 후 청와대 면담」쪽으로 전략의 방향을 잡아가는 인상. ○연합전선 구축을 모색 민주계측은 특히 그동안 중립적 위치를 지키던 김종필최고위원이 박장관 발언을 계기로 반박라인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김영삼최고위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청와대 3자회동 선호입장을 피력하는등 김종필최고위원과의 연합전선 구축을 모색. 김영삼최고위원은 청와대와 민정계 중진들로 부터 오는 「위무」전화를 일체 받지 않은 채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며 자신이 직접 강경대응 하겠다고 비분강개 했으나 측근들이 『직접 나서면 모양이 우습다』고 만류. 이에따라 김최고위원은 당기강 확립ㆍ개혁요구ㆍ공작정치근절 등 「일반론」만을 개진하고 측근들이 집중적으로 박장관에 대한 공세를 퍼붓는다는 전략. 황병태의원은 『김최고위원으로서는 이번 사태가 건곤일척의 싸움』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뒤 『노대통령과 박장관간의 인간적 관계를 알고 있으나 이번은 노대통령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라며 박장관의 퇴진없이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강조. 황의원은 이어 『김종필최고위원측과 접촉을 통해 김최고위원이 우리를 지원한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라고 피력. 민주계의 한 중진의원은 또 『표면에 박장관이 있으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라고 노대통령에게까지 화살을 돌리며 『모든 정보를 박장관이 독점하고 노대통령의 주변을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형국인데 이 같은 정보의 통로와 권력의 행사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 이 중진의원은 『아직도 청와대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같다』고 청와대측의 각성을 촉구. 박장관의 발언해명과 인책을 요구했던 민주계 11명의원중 서청원의원은 13일로 예정된 자신의 서울 동작갑지구당 개편대회를 『이같은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개최할 수 없다』며 무기연기토록 지구당에 지시하는 등 민주계일부에서 정상적 당무할동을 조직적으로 보이콧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 ▷박장관◁ ○…박철언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예상 이상으로 증폭돼 일파만파의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ㆍ민정계중진 등을 비롯,각계에 발언의 진의를 해명하면서 사태수습에 도움을 요청하는등 후유증 극소화에 노력. ○측근들,심야 대책회의 박장관은 11일 상오 기자들에게 『새 정치체제의 확립을 위해 스스로 인내하고 자제할 것을 다짐한다』고 전제한 뒤 『김영삼최고위원을 정치 대선배로 잘 받들어 모시겠다는 나의 기본자세를 잘 인식 시켜 달라』고 당부.그는 『어제 저녁부터 부산에 있는 김동영총무와 통화를 하려 했으나 연결이 되지않아 황병태의원과 통화,발언의 진위와 보도배경 등을 설명했다』면서 『황의원은 「보도된 내용을 보고 매우 걱정했으며 당혹스러웠다. 박장관의 뜻을 김최고위원에게 전하겠다」고 답변했다』고 소개. 박장관은 또 『10일 하오 신문을 보고 곧바로 박태준최고위원대행,박준병총장,청와대 등에 발언의 참뜻과 경위 등을 설명하고 오해와 파문이 없도록 요청했다』고 전하고 『당권다툼이나 권력싸움을 하는 것 같아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고 부연. 이에앞서 박장관은 10일 밤 강재섭ㆍ나창주의원 등 핵심측근들과 서울 양재동 자택에서 심야대책회의를 갖고 민주계측의 공세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뒤 우선 사태수습에 주력키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 참석자가 전언. 이 참석자는 민주계측을 성토하는 발언도 많았지만 서로 자제하는 것이 대국적 견지에서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면서 『그러나 민주계 의원들이 공식ㆍ비공식 모임에서 박장관에게 공격을 가할 경우 박장관의 참모인 우리가 맞대응 하기로 했다』고 설명.
  • 다시 바빠진 「야권통합」 행보/평민ㆍ민주의 움직임을 보면…

    ◎보선승리 여세ㆍ거여견제심리 상호 작용/김대중총재의 「결단」이 결정적 변수될듯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진 듯했던 야권통합 논의가 4ㆍ3보선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평민당과 가칭 민주당의 야권통합 책임자인 최영근부총재와 박찬종의원이 9일에 이어 10일에도 만나 양당통합을 전제로 한 방법과 시기 등에 대한 절충을 모색,겉모습으로는 논의자체가 분위기 조성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협상단계로까지 진전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평민당의 김대중총재도 10일 김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야권통합을 위해 이달말 전당대회에서 당체제를 단일지도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바꾸고 필요하다면 당명까지도 바꿀 용의가 있다고 밝혀 범야권결집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냈다. 이와함께 이민우 유치송 이만섭씨 등 구야당의 총재등 재야의 원로정치인들도 평민당과 가칭 민주당의 핵심인사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야권단일화를 위한 중재역할을 맡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야권통합논의가 또다시 활발해진 것은 지난 보궐선거결과를 놓고볼때 거대여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확산되고 있으며 강력한 단일 야당의 출현을 바라는 분위기가 성숙돼 가고 있다는 공감대 형성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특히 가칭 민주당이 보궐선거를 통해 비호남권에서의 야세를 대표한다는 주장을 보편화시킴에 따라 통합의 당위성을 한층 고양시킨 점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중인 통합논의는 「유일야당」인 평민당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칭 민주당과의 통합여부로 집약될 수 있다. 보궐선거 이후 야권내에서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평민당 역시 가칭 민주당과의 통합여부가 야권단일화의 대세임을 인정하고 있다. 재야정당 추진세력인 「민연추」는 이념적 이질성 등의 이유로 「단합」의 대상일 뿐 통합의 대상은 될 수 없다는 것이 평민당의 입장이다. 현 단계에서 평민당과 가칭 민주당이 가까운 시일내에 통합할 가능성은 반반정도로 점쳐지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때 평민의 최부총재와 민주의 박의원이 이틀간의 연쇄회담에서 예상치를 웃도는 심도있는 대화가 오갔고 본질문제에서도 적지 않은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진 점으로 미루어 논의자체가 상당부분 무르익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특히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김대중총재의 2선퇴진 문제와 관련,최부총재는 김총재를 차기 대통령후보로 나서게 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당고문으로 물러나고 당체제를 집단운영체제로 할 수도 있다는 획기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찬종의원은 회담이 끝난 뒤 『그동안 김대중총재의 퇴진을 주장한 것은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이지 김총재가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 이를 둘러싼 양당의 입장이 어느정도 절충단계로 까지 진전됐음을 시사했다. 특히 평민당내에서도 보궐선거이후 민주당과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대두되고 있고 민주당내에서도 「선창당 후통합」이라는 방침을 유보하고 평민당과의 통합을 우선적으로 달성해야 된다는 「적극통합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비해 양당통합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설사최ㆍ박회동에서 구체적인 통합방안이 논의됐다고 하더라도 평민당은 집단지도체제를 전제로 한 「흡수통합론」의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질 않았고 민주당내에서도 「김대중총재의 2선퇴진」주장이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박찬종의원의 주장은 전체적인 의견수렴 과정를 거치지 않았고 실제로 이기택창당준비위원장과는 상당부분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김대중총재가 이날 밝힌 집단지도체제로의 전환방침도 민주당측의 「2선퇴진」주장에 쐐기를 박는 「선제공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실상 평민당내의 상당수 핵심간부들은 전당대회에서 당헌을 집단지도체제로 바꾸려는 것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 보다는 재야 원로정치인의 영입을 고려한 발상이라는 데 대해 대체로 시인하고 있다. 따라서 전당대회때까지 집단지도체제에 부합할 만한 인물이 영입되지 않으면 개정된 당헌ㆍ당규의 적용시기를 미룰 수 있도록 별도의 부칙을 마련할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기택창당준비위원장도 『집단지도체제로의 전환이나 당명변경이 통합의 충족조건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를 통해 검토하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이다. 결국 평민ㆍ민주당의 조기통합 가능성은 김대중총재가 어떠한 방식으로 결단을 내릴 것인지가 결정적인 변수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김명서기자〉
  • “화해로 가는 길” 민자 계파움직임

    ◎김영삼씨,겉으론 계속 강경자세/민정계선 불쾌한 감정 애써 자제/박정무,“지금은 당권 염두에 없다” 김영삼최고위원의 지난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이후 표출됐던 민자당 내분양상은 8일 저녁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의 상도동 김최고위원 자택방문을 고비로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김최고위원은 9일의 당직자회의에도 불참했으나 11일 부산기자회견후 노태우대통령과 만나 수습방안을 논의키로 하는등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각 계보인사들도 내심의 불만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자제,단합을 위한 분위기조성에 노력하는 인상이다. ○…김최고위원의 공식회의 불참등에 대해 민자당내의 타계파,특히 민정계는 내심 상당히 불쾌하다는 눈치이나 공개적으로는 김최고위원을 자극할 소지가 있는 발언은 자제. 김종필최고위원도 이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말하고 싶지않다』며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9일 당직자회의에서는 『요즘 여러 얘기들이 많이 오가며 봄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고 있다』면서 『그러나 봄바람에 너무 놀라지 말고 각자 할 일을 착실히 할때 당이 발전할 것』이라고 은유적으로 김영삼최고위원 문제로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 박태준최고위원대행은 『8일에도 전화를 통해 김최고위원에게 당직자회의 참석을 권유했더니 부산 개편대회 참석후 나오겠다고 하더라』고 전하고 『정치대선배로서 통합이란 큰 결단을 내린 분이 그런 일 갖고 오래 그러겠느냐』고 조기수습에 대한 희망을 표시. 박대행은 특히 민주계에서 박철언정무1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되겠느냐』면서 박장관의 위상변화 가능성에 회의적 반응. 박대행은 민주계측이 정책입안 과정에서의 소외를 거론하고 있는 것을 의식한 듯 『이번 경제정책 수정과정에서 김최고위원이 소련에 가 있는 바람에 다소 협의가 안된 점이 있다』면서 『앞으로 당정협조 뿐 아니라 충분한 당내협의를 통해 정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강조. ○…지난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에 불참한 이래 줄곧 상도동 자택에 머무르면서 당운영 등에 대한 불만을 「무언의 시위」로 나타내고 있는 김영삼최고위원은 9일 당직자회의불참이유에 대해 전날 노실장과의 면담후 발표했던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 하면서 당초 예정된 부산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구상등에 대해 밝히겠다고 발표. 9일 상오 상도동에는 김동영총무,최형우,박용만,박관용,조만후,김우석,신영국,최정식의원과 김수한당무위원 등이 나와 김최고위원과 뜻을 함께 할 것을 결의하면서 민자당의 당운영방식을 집중 성토. 특히 3당 합당 과정에서 한때 김최고위원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했던 박용만,최형우의원 등은 『이번 기회에 당의 기강이 바로 잡혀야 한다』면서 『특정인사의 독주가 시정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박장관을 겨냥. 김총무,최형우,박용만,박관용,황명수,황병태,정재문의원과 강인섭당무위원 등 민주계 중진 8인은 이에 앞서 8일 밤 김총무 주선으로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김최고위원의 방소가 한소의 수교일정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도 특정인사가 그 성과를 의도적으로 희석화 시키고 있다고 분석하고 특정인의 독주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박관용의원이 전언. 한편 김최고위원이 9일의 당직자회의에도 불참하고 『청와대측이 당초 노실장을 통해 노­김회동을 9일중 가질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일단 뒤로 미뤘다』는 말을 상도동측이 흘리는등 외형적으로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10일 김최고위원의 부산서지구당 개편대회를 겨냥한 현지분위기 조성용이라는 관측이 대두. ○…민주계측으로부터 집중표적이 되고 있는 박철언정무1장관은 9일 『역사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참고 기다리겠다』며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독주」「교만」 등으로 자신이 매도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 박장관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모여 한데 생활하다보면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최근의 당내분규의 의미를 애써 축소. 박장관은 특히 민주계측에서 불만의 주요사례로 지목하고 있는 방소기간중 김최고위원과의 불화설에 대해 『정부의 대표로서 김최고위원과 동행한 이상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할 의무가 있다』면서 자신의 사실전달 노력이 김최고위원과의 공다툼으로 외부에 비친 데 대해 유감을 표시. 박장관은 『3당통합은 이 시대 최대의 과제로 지목되고 있는 민족 통합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하고 『현재 민족통합문제를 풀 수 있는 절호의 시점에서 당권은 염두에도 없다』며 당권경쟁설을 일축.
  • 「단일체제」 카드로 불협화 일단락/민자내분 조기수습 국면의 배경

    ◎민정계,“「중대결심」선언하면 자해” 설득/민주계요구 수용… 회동은 모양갖추기/민주게,당내소외 벗고 야당기질 발휘 잦을듯 김영삼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로 내분양상을 보였던 민자당내의 계파간 갈등은 민정계의 신속한 수습안제시에 따라 「단발성」으로 마무리될 조짐이다. 8일 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이 상도동 김최고위원의 자택을 방문,김최고위원과 단독면담을 가진끝에 노태우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동을 갖기로 한 것은 민정계의 민주계에 대한 설득작업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정ㆍ민주 양계파의 수뇌부급인사들은 7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당직자 회의 불참이후 다양한 막후접촉을 갖고 전당대회후 당의 지도체제를 형식상으로는 집단지도체제이나 대표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줌으로써 사실상의 단일지도체제로 정비키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사태해결의 결정적 고비가 지나간뒤 이뤄진 노실장의 상도동방문 및 11일 하오,또는 12일 있을 예정인 노ㆍ김청와대회동은문제매듭의 마지막 수순이며 내분표면화로 야기됐던 당내외의 파문을 다분히 의식한 의전절차라고 할 수 있다. 조기수습이 가능케 된 가장 큰 원인은 당지도체제문제등과 관련한 민주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발성으로 끝날 전망 ○…민정계가 조기 수습에 나선 것은 우선 김최고위원이 10일 부산으로 출발하며 11일에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11일까지 김최고위원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그로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중요한 결심」의 일단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럴 경우 민자당내분은 보다 심각하고 해결이 어려워지는 국면에 접어들어 갈 가능성이 컸다. 이와함께 통상적으로 사회불안이 1년중 가장 고조되는 봄 정국을 앞두고 당외에서 가해질 각종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우선은 당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거시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또 민자당내분이 최근 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이반을 가속화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계파를 초월해 당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준다는 것도 당헌의 관계조항을 「대표최고위원은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바꾸는 것일 뿐 이로인해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의 세가 삭감되거나 민주계가 당운영을 주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음직하다. 김최고위원이 당운영권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개혁에 대해서는 공화계가 민정계를 능가하는 생리적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당무회의 위원구성비율에서 민정계가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는 점때문에 그의 「전횡」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민정계는 당헌개정소위의 절충과정에서 총재인 노대통령이 대표최고위원에게 중요당무에 관한 협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등 그외의 제도적 견제장치 마련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장관 위세 꺾일 듯 ○…김최고위원의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이라는 강수처방으로 그동안 당운영에서 소외되고 김최고위원의 방소활동에서 보여진 박철언정무1장관의 「일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민주계는 상황이 급전되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결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7일 김최고위원의 대리역인 고위측근과 민정계최고위층과의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직후 면담을 통해 「상황호전」의 청색신호를 감지한 민주계는 8일부터는 김최고위원의 당무집행거부가 갖는 의미를 축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계측은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후 민정계와 청와대측의 핵심간부들로 구성된 대책회의에서 일부의 「강력한 대응」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한 당사자인 박장관등의 중재로 자신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청와대측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계측은 이번 파동으로 인해 통합후 자신들의 위상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계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동시에 김최고위원의 「정치력」을 당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계소식통에 의하면 김최고위원이 말했던 「중요한 결심」의 구체적 내용은 노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되는 모종의 행동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소식통은 『사태가 악화됐을 경우 노대통령은 야당총재로서의 김영삼씨보다 현재의 김최고위원을 대하기가 더욱 거북스럽게 됐을 확률이 높았다』고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도 이같은 「제2탄」을 터뜨릴 경우 민자당전체가 입게되는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고 자신들도 아무런 득이 없는 일종의 자해행위밖에 안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기수습을 내심 강력히 희망해 왔다. 민주계가 민정계에서 제시한 수습안이 단지 환부의 거죽만을 덮어주는,즉 선언적 의미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선뜻 받아들인 것은 파국에 대한 두려움을 민정계 못지않게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민주계는 이번 파동을 통해 앞으로 자신들이 당내에서의 입지를 넓혀나가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보고 야당기질을 적극 발휘해 가며 각종현안문제 해결에 대처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계가 막후접촉등을 통해 제시했던 불만의 내용은 ▲민자당의 개혁의지 부족 ▲박철언장관의 독주 ▲당운영에서의 민주계 소외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같은 다양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민주계가 지도체제에서의 「양보」로 만족하는 것은 개혁의지 부족이나 당운영에서의 소외 등은 지도체제문제 해소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무장관에 대한 견제도 비록 2선으로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세를 꺾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불만에 대한 한가지 양보만으로 수습의 길이 보이는 보다 큰 배경은 불만표출이 여러가지 표면적인 것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래입지에 대한 불안이 주요인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민정계도 안도의 한숨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사태에 대해 원인제공자인 박철언정무장관과 김최고위원 모두를 비난했던 민정계는 최고위층의 조속한 단안으로 사태가 수습국면을 맞은 것에 대해 안도하는 표정이다. 민정계는 김최고위원의 「무례」가 겨냥하고 있는 장단기목표의 괴리로 인해 처방전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해 왔다. 특히 김최고위원의 반발이 지극히 공개적인 형식을 취함으로써 노태우대통령의 처방전 마련에 대한 운신폭이 지극히 좁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김최고위원의 불참사태를 놓고 민정계는 두가지의 대책을 비교ㆍ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타깃이 된 박정무장관을 2선으로 돌리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막후절충을 통해 인사조치없이 김최고위원측을 무마한다는 쪽이었다. 박정무장관의 독주는 민정계를 사분오열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민정계 평의원들의 인식은 박정무장관을 차제에 2선으로 후퇴시키면서 김최고위원의 「야당성행위」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공법의 사용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편이다. 그러나 박정무장관의 2선퇴진은 ▲김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에 노대통령이 굴복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통치권손상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과 ▲박장관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존과 신임이 워낙 두터운 점 등이 고려돼 막후절충을 통해 지도체제문제를 양보하는 방안이 수습책으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막후접촉을통한 수습에도 불구하고 박정무장관의 활동영역은 그 이전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민정계의원들이 이번 사태로 민정계의 결속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과 결속을 위한 전단계조치로 박정무장관의 2선후퇴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청와대회의 불참의 여진이 없어지는 전당대회 전후를 맞취 2선후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박정무장관은 지금까지 ▲당무에 있어서의 노대통령대리인 ▲북방정책에 관한 정부책임자 ▲정부정책입안ㆍ집행에 있어서의 노대통령 핵심측근이라는 3∼4가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사태로 박정무장관은 노대통령대리인으로서 당무에 간여했던 역할을 일단 자제하거나 노대통령으로부터 자제를 요구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방소에서 돌아와 노대통령에게 박정무장관과의 불편을 호소한 이후 박장관은 이미 민정계조직강화특위위원에서 물러났고 또한 본인 스스로도 7일 밤 사석에서『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정계는 결과적이지만 김최고위원이 이번 청와대 불참을 통해 자신의 정치스타일의 일면을 내보여 민정계에 대비할 시간을 준 것이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민정계의 단결을 결과적으로 촉구한 셈이며 단결의 장애물이었던 박장관의 위세를 꺾어준 것도 민정계에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은 민자당내 각계파들이 내부결속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당무가 대권경쟁의 연장선상에서 협상되고 처리될 가능성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은 창당전당대회도 하기전 계파간 밀월관계를 끝내고 공개ㆍ비공개경쟁시대로 돌입하게 된 셈이다. 민정계는 보선패배로 내각제개헌 가능성이 적어진 데 이어 이번 사태로 계파간 경쟁이 공개화됨으로써 당장 「차기준비」에 착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김영만ㆍ김교준기자〉
  • 당주도권 겨냥,의도적인 불만표시/김영삼위원 청와대회의 불참 안팎

    ◎불편한 관계의 박정무 제압 모색/자파동요 방지,입지강화의 선수 김영삼최고위원의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으로 민자당내 민정-민주계 갈등이 표면화됐다. 청와대회의가 갖는 의전성격상 김최고위원의 고의적인 불참은 노태우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불만표시로 해석되고 있다. 청와대측이 6일 저녁 다양한 채널을 통해 김최고위원의 불참의사를 돌이켜보려고 했음에도 김최고위원이 이를 묵살한 점을 고려할때 이날 불참은 불참이후의 파장과 대책까지를 준비한 계산된 행동으로 보여진다. 김최고위원의 상도동캠프는 불참의 이유에 대해 이미 6일의 당직자회의에서 보선패배에 대한 대책협의가 있었고 청와대회의라고 해서 다 참석해야 하는 법은 없지 않느냐는 말로 핵심을 건너뛰고 있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회의 불참의 배경이 그동안 당운영에서 누적돼온 민주계의 불만의 표시이자 당권장악을 위한 분위기조성용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최고위원의 청와대의 불참은 단기적으로는 방소기간중과 당운영과정에서 계속해 자신을 견제해온 박철언정무1장관의 「거세」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인 목적은 민자당의 당권장악에 있고 박장관 거세요구도 당권장악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말하자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박장관과의 불편해소를 명분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목표는 당지도체제 개편을 통한 김최고위원의 당장악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민주계가 7일 김동영총무를 통해 『조직책인선등을 뒤로 미루고 지도체제에 대한 문제부터 풀어갈 것』이라면서 오는 12일의 당무회의에서 이를 공식거론하겠다고 밝힌 점은 이번 사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 민정계에 대한 공세외에도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은 진천ㆍ대구보선 패배를 통해 거의 한계선상에 달한 민주계의원들의 위기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양지역 보선에서 드러난 가칭 민주당의 대약진에 민주계의원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고려,김최고위원이 선수로 민주계의원들에 대한 지도력손상 방지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김최고위원은 합당이후 노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대 민자당 절대우위가 계속되는한 자신의 미래입지가 극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박철언정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민정계의 대 민주계 우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민주계의원들의 불만인 「14대총선에서의 고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왔다. 이같은 위기의식 위에서 김최고위원은 일종의 「동반자살」을 배수진으로 치고 노대통령에게 자신에 대한 확실한 입지보장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최고위원이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보장이 행정부와 당간의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정부를 노대통령이 맡고 자신이 당을 맡아야 한다는 것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노대통령을 포함한 민정계가 김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김최고위원에 대한 무마책을 최소한 김최고위원의 부산지구당 개편대회날인 10일 이전에 발표하지 않겠느냐 하는 관측이 유력한 상태다. 노대통령과 김최고위원간의 공개된 불화가 이날까지도 적정선에서 해소되지 않을 경우 지구당 개편대회 연설이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보다 악화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최고위원측은 청와대회의 불참과 함께 즉시 개편대회 다음날인 11일 아침 부산에서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음을 공표,간접적으로 이날안에 납득할 만한 수습책을 노대통령이 제시할 것을 요구해 왔다. 민정계의 고민은 김최고위원의 행동을 방치할 수도 없는 데다 그렇다고 김최고위원의 불만을 풀어줄 묘책발견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민정계가 김최고위원의 불만표시를 방치할 경우 김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등의 극단적 자해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통합의 정치적 이득이 이경우 일시에 없어지는 만큼 민정계로서는 방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박장관을 2선으로 돌리는 것 역시 김최고위원의 궁극목표가 당권장악에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민정계의 약세만 노출하는 형국이 돼 선뜻 내주기 어려운 카드다. 결국 김최고위원의 불만표출과 이에대한 민정계의 대응은 여론이 요구하는 선에서 접점을 찾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로가 속마음을 노출하지 않고 「명분」만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내분이자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김영만기자〉 ◎「토요일의 반기」 대책찾기 부심/청와대 구체적 언급없이 당내분파주의 지적/민주계 측근들과 밀담… “뭔가 행동이 나올것”/민정계 보선책임 떠넘긴 타계보에 강한 불만 민자당 김영삼최고위원의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으로 그동안 내연해 오던 김최고위원과 박철언정무1장관간의 갈등,민정계와 민주계의 불협화음이 표면화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토요일 반기」를 둘러싼 이상기류가 확산되는 가운데 청와대와 민자당내 민정계와 민주계는 나름대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7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노태우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민자당 당직자회의는 김최고위원의 불참에 관한 청와대 참모들의 노대통령에 대한 사전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대한 거론은 없이 대구 서갑 및 진천ㆍ음성보궐선거의 「패배」에 따른 사후수습책과 조직책선정,임시국회대책 등에 대해서만 논의. 상오 8시부터 조찬을 겸해 약 1시간가량 계속된 이날 회의에서 노대통령은 김최고위원의 불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김최고위원은 연세에 비해 건강이 매우 좋은 것 같다』고 말하고 『소련에서도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않으면서도 매일 조깅을 했다고 하니 건강이 탁월하다』고 말해 김최고위원이 이날 아침 당직자회의에는 참석치 않으면서 조깅을 했다는 사실을 꼬집은 느낌. 노대통령은 또 이번 보선에서의 패배와 관련,『누가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의 부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책임의 일단을 자신에게 돌리면서도 김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주계측이 이번 보선의 책임을 전적으로 민정계에 돌리고 있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 한편 이날 회의말미에 노대통령은 김종필최고위원에게 『할 얘기가 있으면 해보라』고 권유했으나 김최고위원은 『별다른 얘기가 없다』고 사양했으며 김영삼최고위원의 불참에도 불구,회의분위기는 여느 회의와 마찬가지로 진지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전언. ○…김영삼최고위원이 7일의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을 통보한 것은 6일 하오 2시쯤. 김최고위원은 불참의 구체적인 배경설명없이 『내일 그시간(상오10시)에 약속이 있어 참석 못하겠다』고만 측근을 통해 청와대에 통보. 청와대측은 김최고위원의 낌새가 이상하다 싶어 곧바로 회의시간을 상오 10시에서 8시 조찬으로 변경,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이 김최고위원의 비서실장인 김우석의원에게 재차 참석을 요청. 김의원으로부터 이를 전해들은 김최고위원은 『한번 안간다고 했으면 그뿐이지 무슨 말이 많느냐』며 짜증. 이에 청와대측은 김최고위원의 완고한 불참의사가 단순한 불참이 아님을 알고 대책마련에 동분서주. 청와대는 김최고위원이 6일 저녁 만찬을 겸해 방소단 해단식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박준병사무총장과 김최고위원의 「직계」인 김동영원내총무를 보내 회의참석을 간곡히 요청했으나 김최고위원은 『나를 떠메고 간다면 모르되 내발로 걸어서는 갈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해 2차설득에도 실패. ○…7일 청와대회의에 불참한 김영삼최고위원은 상도동자택에서 오전시간을 보내며 김동영총무,황명수 박용만 김동규 박관용 서청원의원 등과 만나 당운영과 관련한 향후 대응책을 논의. 김최고위원은 특히 이날 청와대 당직자회의 참석후 상도동자택을 찾은 김총무와 2시간10분간에 걸쳐 독대하며 청와대의 분위기에 대한 보고를 받고 민주계의 입지강화방안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청와대회의 참석거부이유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할 얘기는 어제 다했고 오늘은 말을 듣기만 했다』며 일체의 답변을 거부 이날 김최고위원을 만나기전 박철언정무1장관이 퇴진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박용만행정위원장은 면담을 마치고 나와 『생각한 그대로』라면서 『앞으로 뭔가 행동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여 계파간 갈등의 파장이 확대될 것임을 예고. ○…이날 청와대 당직자회의가 끝난뒤 박철언정무1장관ㆍ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등과 별도의 대책회의를 약 1시간가량 갖고 당사로 돌아온 박준병사무총장은 김동주사무1부총장ㆍ조부영사무2부총장과 강재섭기조실장 등을 총장실로 불러 『나는 다음주부터 당무에서 손을 뗄테니 부총장들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지시,보궐선거 과정에서 함께 참여하고도 민정계 쪽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타계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 ○…청와대는 노재봉비서실장과 최창윤정무수석비서관을 중심으로 김최고위원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기 위한 방책을 궁리하고 있으나 당장 묘방이 없어 곤혹. 김최고위원이 표면상으로는 보선패배를 계기로 당의 자세를 문제삼아 회의에 불참했으나 실은 최근 방소를 전후로 한 박철언정무1장관의 행태와 여권내부 역학관계에 있어 박장관의 「무소불위」에 대한 제동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뾰족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 청와대주변에선 YS가 오는 10일 자신의 부산서구 지구당개편대회에서 한번 더 「정치적 태클」을 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안달하고 있는데 결국 노대통령과 YS의 독대로 문제의 판가름이 나지 않겠느냐고 추측. 그러나 최정무수석은 『노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이 별도로 만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대통령께서 대단한 포용력과 함께 융화력을 갖고있으므로 잘 풀어나갈 것』이라고 부언.〈이경형ㆍ김교준기자〉
  • 경제 난국ㆍ민생 대처「실무 내각」/「3ㆍ17」개각의 성격과 전망

    ◎민자당의 「통합성 제고」의지도 깔려/여ㆍ정ㆍ청와대 3자 역할 분담… 새 모델 제시 계기 될듯 「3ㆍ17개각」은 그 모양새로 봐서 ▲경제운용기조의 부분적 수정 ▲민생치안확립 ▲통합민자당의 통합성 제고등을 목표로 하고 있거나 예고하고 있다. 이와함께 전체적으로 스타일을 중시하던 6공화국의 인사성향에서 벗어나 실무형의 「일꾼」위주로 새진용을 짰음이 인선내용에서 읽혀지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은 3당통합후 첫개각인 이날 개각에서 15개 정부 부처장과 청와대핵심참모들을 교체했다. 그러나 조각에 준하는 개편폭의 광역성에도 불구,그 성격은 일반개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강영훈총리의 유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개편의 동인이 새로운 통치이념의 개발과 이에 필요한 통치장치의 구축에 있지않고 정치권의 환경변화 또는 문제가 있는 행정분야를 보완하는 수동형인사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듯 실다. 때문에 새 입각자면면에서 어떤 동질성이나 일관된 기용배경을 찾기는 어렵다. 이승윤부총리의 기용은 구경제팀이 경제개혁을 통한 분배문제해결, 이를 통한 안정달성을 추구했지만 한마리의 토끼를 잡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에 경제정책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최소한 성장을 분배나 안정의 동렬에 놓을 수 있는 인물을 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부총리는 70년대 성장과 수출을 주도한 남덕우 전총리의 「서강경제학교」멤버이다. 청와대경제수석에 임명된 김종인보사장관도 같은 학파출신이다. 때문에 신경제팀이 「성장과 안정」의 동시추구라는 구호아래 내면적으로는 성장드라이브를 다시 추진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부총리가 재무부장관 재임때 신임 정영의재무장관은 차관보로 손발을 맞춰본적이 있어 어느때보다 일사불란한 팀웍을 유지하면서 이들 3인이 공동으로 「과욕」으로 지적해온 토지공개념 확대및 금융실명제 추진부터 수정,「서행」방향으로 보완해 갈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경제팀인사에는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조속히 극복하는데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한 것은 새경제팀의 인선이 속도가 떨어진 성장을 염두에 둔인사임을 해석케 하는 대목이다. 새 경제팀이 개혁을 포기하는 듯한 정책을 펴지는 않겠지만 현경제를 위기로 보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감안,성장속도를 높이기 위해 즉각적인 고단위처방을 내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이번 개각은 또 연쇄방화사건,조직폭력배횡횡,룸살롱살인사건으로 상징되는 민생치안위기의 극복을 개각의 우선과제로 설정했음이 치안관계장관의 경질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때 유임설이 나돌던 허형구 전법무,김태호 전내무장관 대신 이종남법무,안경모내무로 교체한 것은 신임장관들의 경력 등을 감안할때 공권력을 확립,사회기강을 바로 잡자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는 3당통합에 따른 원내안정의석 확보로 정치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국민을 위한 일관되고 강력한 통치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초의 예상과 달리 민자당의 원중 민정계가 2명,민주계가 2명,공화계에서 1명이 입각함으로써 의석비를 훨씬 넘어 구야당측에 각료자리가 할애된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민자당내의 통합성을 높이는데 이번 개각의 또다른 목적이 있었음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홍성철 전대통령비서실장이 통일원장관으로 자리를 바꾸고 노재봉정치특보가 비서실장으로,이홍구통일원장관이 정치특보로 각각 기용된 것을 두고 다양한 시각에서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개편으로 청와대비서진은 노실장,김경제수석,이특보,최창윤정무수석,김종휘외교안보 보좌관,김학준사회담당 보좌역 등으로 「박사군」을 이루게 됐다. 특히 노실장과 이특보는 국내정치학계의 쌍벽을 이루는 인물들이다. 홍전실장의 퇴진과 이들의 기용을 결부시키면 청와대참모진의 역할이 여소야대정국에서 필요했던 「정치기교」제공대신 「선진정치의 모델과 방법」제공으로 바뀔것임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같은 점은 행정부처장에 실무형이 주로 배치된것과 관련지을때 정치는 당이,행정부는 정책,이에 필요한 이론과 이념은 청와대가 제공하는 새로운 3자역할분담이 이루어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지금껏 당과 정부,청와대가 정치ㆍ행정,「작전」수립과 행동에 대한 역할분담의 구분이 없었던점을 고려할때 이같은 청와대개편은 한국정치의 새로운 모델이 선뵈는 계기가 될수도 있음직하다. 홍통일원장관의 기용을 두고 통일원의 부총리급격상을 위한 전제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와함께 홍장관이 화려한 경력과 정치적 비중을 바탕으로 통일정책의 책임자역할을 하되 박철언정부장관이 맡아온 대북막후채널이 이정치특보에게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것 같다. 여권,특히 구여권의 권력구조에서 이번인사는 박철언정무장관의 위상을 한단계 더 높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박정무장관은 노실장,서동권안기부장과 함께 인선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나아가 새로 임명된 장관 중에는 박장관의 직접천거를 받은 인물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 민자당내의 분석이다. 3당통합을 연출하고 당직인선에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박정무장관은 이미 민자당내 민정계의 유일한 실세로 자리를 굳힌바 있다. 여기에 내각과 청와대개편에의 깊숙한 관여를 통해 내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두보를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박장관은 3당통합,개각을 계기로 당정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취임준비위출신의 현홍주법제처장이 주유엔대사로 내정된 것도 이같은 박장관의 또 다른 부상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이 아닌가 여겨진다. 「3ㆍ17개각」에서는 김창식교통부장관,이연택총무처장관의 입각으로 최영철노동장관과 함께 호남출신 장관이 3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호남지역에 대한 배려와는 달리 강원도에서는 한승수전상공장관의 퇴진으로 「무장관도」가 돼 다음 국회직개편에서 우선적으로 배려될 것으로 보인다.
  • KBS,「변칙수당」 뒷수습 진통/이사회서 논란끝에 「해임제청」결정

    ◎노조측,“퇴진은 자율권 포기” 큰 반발 KBS의 수당변칙지출사건은 2일 밤 이사회가 사장ㆍ감사ㆍ부사장의 사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로써 부사장은 자동면직되고 사장과 감사는 각각 임면권자인 대통령과 공보처장관에게 해임을 제청하게 된다. 이번의 사표처리건은 지난달 28일 제210회 정기이사회와 이날 소집된 임시이사회에서 이사들간에 각각 5시간씩의 토의과정을 거쳤던 사실만 보아도 그 진통이 심각했었음을 읽을 수 있다. 또한 표결결과가 서영훈사장의 경우 찬성 7표 반대 5표였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몸살이 중병에 가까웠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이번의 진통은 지난달 26일 KBS가 지난해말에 직원들에게 지출한 인건비가 변칙지출이라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결과로 발표되면서 비롯됐다. 감사원의 발표는 KBS가 법정수당지급에서 절차상 공문서를 위조하는등 잘못을 저질렀고 노동쟁의기금조성 과정에서도 노동조합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발표가 있은 후 서영훈사장을 비롯한 KBS경연진 10명은 사표를 제출했고 지난달 28일에 열린 정기이사회는 사표제출건을 정식안건으로 상정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장시간에 걸쳐 토의를 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2일 임시회의를 열어 다시 논의하기로 한 뒤 산회했었다. 이같은 사태의 진전이 있자 KBS노조는 『감사원의 감사와 그에 따른 일련의 조치는 KBS를 음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경영진의 사퇴불가론을 폈다. 그러나 서사장은 두 차례의 이사회에 출석,물의를 빚은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면서 계속 사표를 수리해 주도록 요청했고 자신이 임면하는 본부장 등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사표를 반려시켰다. 여하튼 이번 사태는 이것으로 표면상 일단 마무리 되었으나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노조측에서는 『이사회의 이같은 결정은 자율권 포기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계속 투쟁할 태세를 갖추고 있어 앞으로 큰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공기업인 KBS가 노사협의를 통했어도 시간외 근무수당을 일괄산정해 지급한 것과 시간외 근무를 하지 않은 직원에게도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수당을지급한 부분만은 어쨌든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KBS 전사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기일전해서 보다 좋은 방송,국민의 방송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한 서사장의 말은 대다수 시청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 “합당심판 총선ㆍ지자제 선거 동시에” 김대중 평민총재 국회 연설

    ◎내각제 개헌등 민의 확인 촉구/불응땐 서명운동등 투쟁 전개/치안ㆍ물가ㆍ전세 가을까지 해결토록 평민당의 김대중총재는 27일 상오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을 통해 『총선거를 통한 새로운 민의의 심판만이 3당통합을 국민이 지지하는지,내각책임제 개헌을 국민이 바라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선거비용과 노력을 절감하기 위해서 총선거를 다가오는 지방의회선거와 동시에 실시하자』고 제안했다.〈관련기사3면〉 김총재는 『3당통합은 우리 역사상 가장 반민주적인 정치쿠데타이자 철저한 국민배신행위』라고 비난하고 『우리 당이 이미 결의한 대로 의원직 사퇴후 총선제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여론투쟁ㆍ의회투쟁ㆍ1천만 서명운동ㆍ지자제선거투쟁 등 4단계 통합반대투쟁을 벌이겠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총재는 또 『만일 민자당정권이 수와 힘을 가지고 3당통합을 기정사실화하는 데만 급급한다면 멀지않아 국민의 무서운 저항을 면치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노정권이 다가오는 가을까지 민생치안ㆍ물가앙등ㆍ전세금앙등 등 3대 민생과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3당통합에 대한 책임추궁과 관계없이 노정권의 퇴진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총재는 이어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TV와 라디오의 상호 자유시청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리만이라도 일방적으로 개방하자』고 거듭 제안하고 『앞으로 모든 남북회담은 판문점 대신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총재는 ▲국가보안법 폐지후 민주제도수호법으로의 대체입법 ▲해외정보 수집업무에만 국한토록 안기부법 개정 ▲경찰중립화입법 ▲광주시민 명예회복 및 배상입법 등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지방의회의원선거와 내년 봄 자치단체장선거는 지난해 입법화됐거나 정당추천제등 여야가 이미 합의한 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국군조직법 개정문제에 언급,『국군참모총장제의 창설은 문민통제를 마비시키고 군국주의화의 길을 열게 된다』며 이의 철회를 촉구했다. 김총재는 여성지위향상과 관련,지방의회선거에서 여성을 위한 비례대표제 도입과 정부기구로서 여성부 신설 또는 대통령 직속의 여성지위향상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김총재는 이밖에 ▲전교조ㆍ전노협의 합법화 ▲수감된 민주인사와 장기수의 전면석방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의 안정관리와 공공요금인상요인의 재정흡수 ▲고교평준화를 폐지하는 대신 대학군제로의 전환 ▲한은법 개정 ▲인상된 전세값 차액에 대해 정부의 10년 연부상환에 무이자조건 융자 ▲금융실명제ㆍ토지공개념을 예정대로 실시할 것등을 주장했다.
  • 정책대결보다 달라진 위상 정립 공방

    ◎민자ㆍ평민당 대표연설 비교 분석/합당의 당위성ㆍ정국운영 복안에 큰 시각차/경제현안ㆍ통일문제 원칙론엔 의견 접근/법률개폐ㆍ지자제법안 절충 난항 겪을 듯 민자당 김영삼최고위원과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임시국회 대표연설은 정계개편에 대한 당위성과 부당성을 상반된 입장에서 부각시키려한 공방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새로운 것이 없었다. 양 김씨 모두 정계개편이후 민자ㆍ평민당이 쉴새없이 주고받은 언쟁의 조각들을 종합해 발표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정치권의 혼돈상황을 나름대로의 논리로 정리함으로써 앞으로 정국의 향방을 어느 정도 점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사실상 양 김씨의 대표연설은 얼마전까지 야당의 양대 지도자였던 두 사람이 이제는 여와 야로 나뉘어 맞대결을 벌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쇼」라는 호기심 차원을 넘어 우리 정치의 현실과 미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줄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로 해석하려는 시각도 적지않았다. 이번 임시국회의 최고 하이라이트를 양 대표 연설로 꼽은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였다. 양쪽 진영도 이같은 일반의 관심과 기대를 의식해 연설문 준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도 사실이다. 김영삼최고위원의 경우 민정ㆍ민주ㆍ공화계를 포괄한 연설문작성기초소위까지 별도로 구성했고 김대중총재도 6인소위외에 각계 인사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공식대결에 대비했다. 그러나 준비가 철저했던 것 만큼이나 양 김씨의 정계개편에 대한 시각이나 정국운영에 대한 복안은 현격한 차이를 나타냈다. 양 김씨는 과거와 같은 협조ㆍ동반관계가 앞으로 상당기간은 회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 대표연설에서 충분히 짐작케 했다. 가장 관심이 컸던 정계개편에 관한 공방에 있어 김최고위원은 개괄적인 측면에서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강변했고 김총재는 구체적으로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최고위원은 『세계의 물결은 개혁및 개방과 화해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당구조는 이러한 조류에 부응하지 못하고 경제ㆍ사회적 불안을 가중시켰다』는 배경설명과 함께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을 청산하고 통일을 향한 역사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온건중도세력의 대결집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통합논의를 전향적으로 개진했다. 김최고위원은 자신의 결단을 『역사적 과업이며 한국정치의 질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일대혁신』이라고 규정하며 『민자당 창당의 평가는 92년 총선,길게는 후일의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김총재는 합당 자체가 「정치쿠데타」이며 「국민배신행위」라고 몰아붙이고 본질에 있어서도 ▲보수와 반동수구세력의 합작 ▲정경유착을 통한 기득권의 수호공작 ▲특정지역과 특정계층에 대한 철저한 고립화음모라고 비난했다. 김총재는 한발 더 나아가 『의원직을 총사퇴해 오는 6월 지자제선거때 총선을 함께 실시해 심판을 받자』고 요구했다. 김최고위원은 3당통합을 정치발전측면에서 기정사실화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정국운영을 강조한 반면 김총재는 통합 자체가 반민주ㆍ반국민적이라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원인무효」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특히 대야관계에 있어 『야당에 몸 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묵살하지 않을 것이며 야당의 진취적인 대안제시에 남다르게 귀를 기울이겠다』고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총재는 『3당통합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에대한 거부운동을 끈질기게 밀고나가겠다고 강조하고 『만일 민자당정권이 수와 힘을 가지고 이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는 데만 급급한다면 국민의 무서운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고 사회는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 김씨의 정계개편에 대한 이같은 입장과 시각차이는 민생치안ㆍ경제문제 등에 대한 처방과 대응에 있어서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양 김씨는 지금의 사회ㆍ경제가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이 여당의 지도자라는 입장에서 원칙론적인 대응방식을 제시한 것과는 상반되게 김총재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여권의 실정에 있다고 강조하며 이를 정치상황과 연계시키려 했다. 김최고위원은 민생치안및 노사문제는 공권력의 엄정한 행사로 대처하겠으며 경제문제도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존 여권의 방침을 그대로 수용했다. 김총재는 이에비해 민생치안의 악화원인을 불공정 분배에 대한 저항과 힘의 정치에 의한 영향등에 있다고 해석했고 노사문제는 정부의 엄정한 중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루게 될 쟁점법안의 처리방향에 대해서도 김최고위원과 김총재의 시각차이는 뚜렷했다. 김최고위원은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은 전향적으로 개정하겠다고 했으나 김총재는 「악법 개폐」라는 차원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지자제선거법ㆍ광주관련법 등에 대해서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매듭짓겠다는 방침은 두사람 모두 분명히 했으나 행간마다 엿보이는 여야라는 대립적 개념에서 재조명해볼 때 적잖은 파란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두사람은 남북문제ㆍ통일문제에는 다소 시각차가 있으나 모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김최고위원은 통일ㆍ북방외교문제에 역점을 두어 『오는 3월 소련방문을 통해 북방외교의 영역을 넓혀 통일외교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모종의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임을 구체적으로 시사했다. 김총재도 북한 TV와 라디오의 일방적인 개방을 제안하는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종전입장의 수준에 그쳤다. 총체적으로 김최고위원과 김총재의 이번 국회연설은 쌍방이 정계개편이후의 첫번째 대결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의식,자기방어와 상대의 공격에 치우쳤으며 정책제시도 백화점식 나열에 그쳤다는 평가이다. 김최고위원의 경우 3당통합의 주요명분이었던 개혁의지와 장래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극히 의례적인 여당 지도자로서의 연설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총재는 거대여당에 대응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유일야당」으로 평민당의 면모를 일신할 수 있는 야권 단일화방안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데다 정책제시등에 있어서도 야성만을 부각시키려 한 나머지 무책임한 부분도 더러 있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김명서기자〉 ◎김대중 평민총재 연설 요지/“합당은 특정지역ㆍ계층의 고립화 작전/남북한방송 상호 자유청취 허용해야” 3당통합은 우리 역사상 가장 반민주적 정치쿠데타이다. 또 철저한 국민배신 행위이고 역사에 대한 배반이다.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 민주자유당최고위원은 4당체제가 망국의 체제이기 때문에 구국의 차원에서 통합을 단행했다고 했으나 그들이 과거에 한 말과 너무나 다르다. 양당제도와 여대야소가 상식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자유당 이래 전두환정권 때까지 우리나라는 주로 양당제이고 여대의 정치였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13대 국회는 4당구조와 여소야대였으나 사법부와 입법부 독립,청문회 개최,법안처리 등에 있어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3당통합이 그토록 위대한 구국의 결단이고 명예혁명이었다면 왜 떳떳이 국민앞에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나. 3당통합은 보수와 반동수구세력의 합작이다. 정경유착을 통한 기득권의 수호공작이다. 특정지역과 특정계층에 대한 철저한 고립화작전이고 평민당에 대한 제2의 파괴음모이다. 만일 민자당정권이 수와 힘을 갖고 3당통합을 기정사실화하기를 고집한다면 멀잖아 국민의 무서운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총선거를 통한 민의의 심판만이 3당통합을 국민이 지지하는지,내각책임제 개헌을 국민이 바라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선거비용과 노력을 절감하기 위해 다가오는 지방의회선거와 총선거를 같이 실시하자. 만일 민자당정권이 우리의 이러한 제안을 수용치 않을 때는 1천만인 서명운동등 평화적이고 국민적인 투쟁을 계속 전개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겠다. 이번 임시국회는 6공의 방향ㆍ운명을 가늠하는 국회로 청산ㆍ개혁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고 민주제도수호법으로 대체돼야 한다. 안기부는 국내수사에서 손을 떼고 해외정보에만 전념해야 한다. 5공시대보다 더 많이 수감된 모든 민주인사와 장기수를 전면석방해야 한다. 경찰중립화 없이는 경찰 사기의 앙양이나 민생치안의 회복을 결코 바랄 수 없기 때문에 경찰중립화법은 이번 회기에 반드시 입법화돼야 한다. 민자당은 내년 봄의 자치단체장선거를 회피하고 지방의회의원선거에서 정당추천제도 하지 않으려 하나 이는 여야 합의사항이다. 법대로 해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국방참모총장제를 창설하는 국군조직법개정은 문민통제를 마비시키고 군국주의화의 길을 열게 되므로 철회해야 한다. 광주시민의 명예회복ㆍ기념사업ㆍ적절한 배상이 이뤄져야 하며 삼청교육대ㆍ의문사희생자ㆍ해직언론인에 대한 배상도 해결돼야 한다. 지금 이 나라의 치안은 단군이래 최대로 악화됐다. 살인강도ㆍ인신매매ㆍ마약ㆍ정체불명의 방화 등 무법천지다. 국민생활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적은 물가앙등이고 물가앙등의 주범은 토지투기다. 또 하나의 폭발적 문제는 집 전세금의 앙등이다. 전세값 앙등의 근본원인은 정부가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건설을 등한히 한 데 있다. 노정권이 다가오는 가을까지 이같은 3대 민생과제를 해결치 못하면 그 때는 우리가 노정권의 퇴진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일성의 생사에 관계없이 북한은 멀지않아 크게 변할 것이다. 서독이 동독을 매료하듯이 대한민국이 북한을 이끄는 우월성이 없이 북한의 동독화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TV와 라디오의 상호 자유청취를 북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만이라도 일방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남북간의 회담은 예비회담이건 본회담이건 판문점을 쓰지 말고 서울과 평양에서 해야 한다. 결렬위기에 있는 아시안게임의 단일팀 참가를 성공시켜야 한다. 북한도 남한의 공산화를 명기한 것으로 알려진 당규약을 바꾸는등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노정권이 올림픽과 북방외교에 있어서 성과를 올린 것은 인정하고 환영한다. 그러나 3당통합으로 민주개화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 당의 통합반대투쟁은 여론투쟁ㆍ의회투쟁ㆍ천만인서명운동,그리고 다가오는 지자제 선거투쟁 등 4단계에 걸쳐 진행시키겠다.
  •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신축지/“천하명당” 4백년전 표석 발견

    ◎공사중 우연히 드러나 「풍수설」 화제로/화강암 암벽에 「천하제일 복지」 음각/글씨크기 가로ㆍ세로 50cm… 해서체로/정도전도 “명당” 지목… 낙관자리 「연릉 오거」 규명이 열쇠 청와대 구내 대통령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뒷산 암벽에 천하 명당자리라는 표석이 최근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표석은 수직으로 된 화강암 암벽을 깍아 가로 2m50cmㆍ세로 1m20cm의 암벽면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50cm,획의 굵기는 9cm인데 해서체로 씌어있다. 낙관자리에는 가로 세로 12cm 크기로 「연능 오거」라고 새겨져 있어 이 표석의 글을 쓴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획 굵기는 9cm 정도 청와대측은 지난 20일 우리나라 금석학의 태두인 청명 임창순옹을 초빙,1차 감정한 결과,글을 새긴 연대는 지금부터 3백∼4백년전인 조선조 중기쯤으로 추정되며 글씨체로 미뤄 중국 청대의 서체 영향을 받은 것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연능오거」의 인적사항이 규명되면 더 정확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나조선조때 서예대가로 오거라는 인물이 없는것 같고 연능이 아호인지 아니면 연능에 사는 오거인지도 불확실하다. 오거가 명필이 아니라면 조선초기나 중기의 풍수지리에 밝은 역학가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는 터에 「천하제일복지」라는 선인들이 새긴 표석이 기초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은 무언가 길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석이 발견된 암벽은 현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백50m 떨어진 가파른 지역인데 암벽 전면이 나무로 가려져 있는데다 이 쪽에는 길이 없어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작년 5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서 총독관저로 사용해온 현 청와대 건물 대신에 대통령 집무실(현 본관의 서북쪽 1백50m)과 함께 관저를 이곳에 새로 착공하면서 최근 공사를 위한 배수로를 치다가 이를 발견한 것이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북악의 언저리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이태조가 서울로 천도할때부터 궁터로 점지되었던 곳이다. 한양천도 당시 무학대사는 지금의 인왕산 자락에 동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한 반면 정도전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남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주장,이태조가 정도전의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지금처럼 북악산의 정남쪽에 경복궁을 창건하게 된 것이다. 한양천도 당시 풍수지리에 따른 주산(터를 등지고 있는 산) 결정과 도읍의 좌향 논의는 차천로의 오산설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학이 한양의 세를 보며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북악)과 남산으로 좌우의 청룡ㆍ백호를 삼으라고 하니 정도전이 자고로 제왕은 남면하여 다스리는 것이지 동향을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궁궐은 임(서북서)좌병(남쪽)향하여 백악현무,인왕백호,낙산청용으로 해야 한다』 청와대 주변 터는 한양천도 이전인 이미 고려 숙종때 지기가 쇠해가는 송도의 왕업을 연장하기 위한 이궁터로 선택됐다. 지금부터 9백28년전인 숙종9년(1062)에 이궁을 지었으나 1백50년이 채 못된 고종19년(1210)에는 강화천도와 더불어 폐기되었다. 조선조에 들어 이 자리가 경복궁 후원으로 단장된 것은 세종8년(1426)이었으며 서현정ㆍ취로정ㆍ관전ㆍ충순당ㆍ융문당ㆍ융무당ㆍ경농제ㆍ연무장ㆍ과거장 등을 설치했다. 그후 국운의 흥망에 따라 성쇠를 함께해 임진왜란 이듬해(1593) 경복궁의 소실로 황폐화되었으며 고종8년(1868)에 경복궁이 재건되자 이곳 또한 과거ㆍ열무ㆍ근농의 행사 등이 치러지는 후원으로 옛 영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의 본격적인 조선왕실 유린으로 이곳도 훼손돼 융문당ㆍ융무당 할것 없이 차례로 철거되었다. 조선조때 건물도 남아있는 것은 약간 자리를 옮겨 일부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별채와 같은 20평 남짓한 침유각과 2평 가량의 오운정이 옛날의 향취를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일제 식민통치의 제7대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남차랑)가 착공,중일전쟁으로 한차례 공사를 중단하는 곡절을 겪으며 착공 2년반만인 1939년 9월 준공을 했다. 당시 미나미는 남산의 왜성대,용산의 사택,현 적십자병원 자리의 임시사택 등을 옮겨가며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사택 신축 부지를 물색하던 중 경복궁의 후원으로 경복궁이 눈아래 보이는 이곳을 택했다. ○청대 서체 영향 받아 일제는 조선 주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그 전면에 총독부 청사(현 국립박물관ㆍ구 중앙청)를 지은데 이어 그 후면에 총독관저를 지어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에 있어 용맥을 끊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항설에 의하면 일제는 경성부 청사(현 서울시청)­총독부 청사­총독관저로 이어지는 남향축이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북악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왕궁을 건설한 풍수의 맥을 압살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에서 보면 경성부 청사건물이 「대」자형,총독부 청사가 「일」자형이고 총독관저 건물 구조가 「본」자형으로 돼있어 동대문쪽에서 서대문쪽을 바라보면서 이를 읽어보면 「대일본」으로 읽혀진다는 항담도 있다. 그러나 풍수에 밝은 술가들 사이에는 당시 일제의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징발되었던 조선인 풍수지관이 본래 「임좌병향」의 북악의 용맥과는 약간 비켜나 있는 현 위치를 잡아주어 그 건물에 기거하게 되는 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구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이번에 발견된 표석이 북악의 혈(풍수에 있어 음양이 합해지고 산수의 정기가 응결된 곳)에 해당되는 곳이라면 그럴법도 하다. 청와대 당국이 현재의 이 본관건물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진시키고 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짓기로한 결정적인 동기도 이 건물이 지난 반민족적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독립한지 45년이 되고 전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민통치의 채찍을 휘두르던 일제 총독의 사택을 집무실겸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자존을 국정의 제1 지표로 내건 6공화국 정부의 이념에는 물론 민족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 집무실의 건물은 영빈관쪽 출입문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본관 건물 서쪽 뒤편 구릉에 신축되고 있으며 한옥지붕 양식의 2층으로 총건평은 현재 본관 건물(1층 집무실ㆍ2층 대통령 살림집)의 9백평 보다 약간 적은 8백평 규모이다. 완공시기는 내년 상반기쯤으로 잡고 있어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1년반을 이곳에서 집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저는 명당표석이 발견된 곳으로 부터 남쪽 아래로 50여m 떨어진 곳에 동향인 본채와 남향인 별채로 나뉘어 지어지고 있는데 역시 한옥 양식의 단층으로 건축되며 총건평은 8백평 가량 된다. 관저는 빠르면 금년 9월께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무실과 관저가 모두 한국전통의 청기와 지붕형태로 건축되기 때문에 이미 사용하고 있는 영빈관 건물,그리고 오는 7월쯤 완공되는 보도관(프레스 센터)건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현 청와대 경내는 우리 고유의 전통건축미로 조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앞으로 집무실과 관저가 완공되면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윤보선ㆍ박정희ㆍ최규하ㆍ전두환 전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관한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길조로 받아들여” 대통령 관저의 신축장소가 명당표석이 발견된 지점과 일치된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 주변지반은 대부분이 암반이어서 공사하기에 쉽게 좀 넒은 터를 찾아보니 이곳이 눈에 띄었을 뿐』이라며 『전적으로 우연이었다』고 설명했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긴 표석의 역사적인 고증은 앞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와 검토가 더 있어야 밝혀지겠지만 현 본관건물 2층에서 기거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새 관저 신축을 계기로 대통령의 임기가 평화롭게 끝나고 물러나서도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전직대통령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 자민ㆍ사회당의 공동과제 “안정과 개혁”(일본 「보혁 새정국」:하)

    ◎파벌싸움 지양,변혁대응 외교 펴야 자민/「도이 인기」의존 탈피,「비전」제시 긴요 사회 「자민 안정다수,사회 대약진」으로 판가름난 일본 총선결과는 유권자의 절묘한 밸런스 감각의 표출이다. 자ㆍ사 이극체제의 선택은 일본 국민들이 여야정치에 그만큼 더 무거운 과제를 부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속에 자민당을 주축으로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소비세ㆍ리쿠루트사건으로 상징되는 금권부패의 일당정치를 사회당중심으로 선명히 비판토록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2ㆍ18총선은 「여야역전」이 실현됐던 지난해 7월의 참의원선거이래 「추격바람」을 타고 있던 일본야당에게는 정권교체의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반년동안 「야당연합정권」수립을 위한 사회ㆍ공명ㆍ민사ㆍ사민련등 야당간의 협의는 전혀 진척을 보지 못했으며,새로운 정책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일본국민들은 「야당연합정권」에는 국정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함과 동시에 자민당의 교만방자함도 더 이상 허용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법은자민ㆍ사회 양당의 성숙한 협의에 의해 오늘의 번영된 일본을 지키며 정치개혁을 실현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볼때 2월말경 새로 발족하게되는 제2차 가이후(해부)내각과 집권자민당의 정국운영은 결코 쉬울 수가 없다. 중ㆍ참양원의 조화를 꾀하기 위해서도 사실상의 연립,정책연합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참의원에서 여야가 역전되어 있다는 현실은,이번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안정다수의석을 획득한 사실에 의해 치유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13명 전원당선의 결과를 빚은 이번 선거로 『국민의 심판은 끝났다』고 리크루트관련의원이 강변한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소비세에 대해서도 이번 선거결과가 정부ㆍ자민당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양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총선후 30일 이내 소집하게 되어 있는 특별국회에서는 90년도 예산안 및 자민당의 소비세 개선법안등 심의를 둘러싸고 여야당간의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이후 정권의 안정도이다. 이번 선거에서의 낙승으로가이후 총리의 계속집권은 보장되었지만 당내 기반이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이후 총리 자신은 이번 제2차 가이후정권의 조각과 당인사에 거당체제로 인선하겠다는 의향을 표명했으나 그것이 말 그대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번 총선에서 중의원세력을 해산당시보다 1석을 더 확보,62석으로 다케시타(죽하)파 69석에 이어 당내 제2파벌로 부상한 미야자와(궁택)파에서 당3역에 거점확보를 기도,다케시타,아베(안배),나카소네(중증근)의 주류3파와 마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의 법안심의 난항,인사잡음은 기반이 약한 가이후 내각을 조기퇴진시킬 수 있는 구실이 된다. 「포스트 가이후」에는 아베 신타로(안배진태랑)전 간사장을 필두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 대장상,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등 3자가 노리고 있다. 이들은 리크루트사건에 관련,한때 실기했었으나 「리크루트 풍화」와 함께 활발히 재기의 포석을 하고 있다.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보여지기는 하나 「일용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간사장과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대장상간의 헤게모니 쟁탈전도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내정에 산적한 문제이외에 가이후 내각으로서는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될 외교적 과제가 쌓여 있다. 지난해에는 주로 유럽을 무대로 전개됐던 동서관계의 변화가 앞으로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 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일본은 종전의 대미의존형 외교에서 탈피,경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 적극 참여,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노력은 우선 중국ㆍ북한ㆍ캄보디아 등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는 많다. 우선 91년에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의 일본방문에 대비,일소관계 개선의 전기를 모색해야 한다. 대미관계에 있어서는 동서긴장완화 추세와 미국의 재정적자현상에 비추어 대일방위비 분담요구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이는 미일 무역마찰과 더불어 양국간의 새로운 마찰요인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실현,이의 전제가 되는 한국인3세 법적지위보장문제등 해결해야 될 과제가 많다. 문제는 야당쪽에도 있다. 해산당시 83석에 불과하던 사회당의석이 1백36석으로 급증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회당의 정권담당 능력이 신장됐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결과는 단지 소비세폐지를 원하는 반자민표가 반사적으로 사회당에 흡수됐다고 분석되고 있다. 의석수가 26석에서 14석으로 격감된 민사당의 나가스에(영말)위원장은 『자민ㆍ사회의 대결무드속에 중도는 매몰되어 버렸다』고 탄식했다. 선거에서 의석의 행방을 좌우하는 것은 「지지정당이 없는」 부동층이다. 이번 선거에서는,혁신적인 부동층은 사회당에,보수층은 변혁이 두려워 자민당에 표를 던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사회당의 이번 선거에서의 상대적 승인의 하나는 도이(토정)위원장의 개인적 인기였다. 사회당이 앞으로도 계속 이 인기에만 의존하고 현실적 정책제시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도리어 「자민일당우위체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자민정책에 강력 대항할 수 있는 야당결속의 책임도 사회당에 더 한층 무겁게 지워졌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 「성장우선」ㆍ「개혁고집」 마찰/조부총리 「사임설 파문」의 저변

    ◎경제정책 변화조짐에 “실의”/공개념등 후퇴땐 물러날듯/「독대」땐 실명제등 강화 건의… 청와대 향배가 변수 신당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당ㆍ정간의 경제정책기조를 둘러싼 논쟁이 급기야 정부 경제팀총수인 조순부총리의 「사임설 파문」으로까지 증폭되고 있다. 당사자인 조부총리는 8일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사임설을 공식 부인하고 이날 아침 총리공관의 장관회의에 이어 낮에는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의 인구ㆍ주택 총조사 본부현판식에까지 참석하는 등 일상업무를 예정대로 진행시켜 외견상으로는 자신의 「사임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조부총리의 심중 깊숙한 곳까지 알만한 그의 측근들은 이같은 겉모습과는 상반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조부총리는 고도성장과정에서 왜곡된 경제의 개혁(경제민주화)를 이룩해 보겠다는 열망을 갖고 입각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자신의 소신을 펼수 있는 「정치여건」이 마련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물러나겠다는 입장』이란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의 진퇴를 결정짓는 관건은 색깔면에서 「보수대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고 구조면에서는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 바뀐 현재의 「정치여건」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그의 「사임설 파문」은 상황에 따라 현실로 재현될 가능성이 항상 내재돼 있는 상태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같은 배경때문에 이번 「사임설 파문」은 그 자신이 공식으로 부인했음에도 여전히 『멀지 않아 물러나게 될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조부총리는 8일 기획원 조사통계국의 「인구ㆍ주택총조사본부」 현판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사표제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현재 사임의사가 없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그만 얘기하자』고 말해 사임의사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에 앞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종합토지세 관계장관회의에서 조부총리를 만났던 한 참석자는 그의 사임설에 대해 『전날(7일)총리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부총리가 완곡한 표현으로 사임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사표제출의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일단 사의는 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사의표명이 사실이라면 3ㆍ4월 개각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이것이 청와대쪽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아는 그가 왜 민감한 시기에 사의표명을 하고 나선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묻는 질문에 대해 조부총리의 한 측근은 『그가 입각을 결심한 가장 큰 동기는 6공화국의 개혁의지를 믿었기 때문』이라면서 『개혁의지가 변색되면 사임하겠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조부총리는 지난 1일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신당(여대정국)의 출범에 따른 정치안정화를 바탕으로 경제개혁을 더욱 가속화 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입각이후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가급적 발언을 삼가온 조부총리의 평소 언행에 비추어 볼때 이같은 발언은 극히 이례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3공식 「성장드라이브정책」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신당측 경제팀을 상대로 앞으로 전개될 정책논쟁에 있어 정면으로 맞부딪쳐 나갈 것임을 선언한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나올 수 있다. 그가 최근들어 갑자기 신당쪽에 대해 거의 무모할 정도의 자신감을 과시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두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청와대측이 공식적으로는 정부와 신당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내심 조부총리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신당출범에 따른 정책기조의 전환이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부총리가 「명예로운 퇴진」의 명분을 찾기위한 운석을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조부총리는 그간 몇차례의 기자간담회에서 신당쪽의 「성장위주정책전환」 주장을 「사견」으로 격하시키면서 『신당의 정강정책도 결국은 개혁에 역점을 두게 될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지난 1일의 청와대 「독대」에서는 조부총리의 개혁의지에 대해 노대통령도 상당부분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들은 전자의 분석을 뒷바침 해주고 있다. 그러나 어느쪽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것 같다. 조부총리와교분이 두터운 학계인사들은 『그의 입각은 현상유지 보다는 현상변화성향이 강하게 마련인 야대정국 상황이 그의 개혁의지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3당통합으로 여대정국으로의 복원은 개혁론자로서의 그의 입지를 극도로 약화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조부총리의 사임의사 간접표명을 비롯한 일련의 언행들은 신당쪽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장드라이브정책」으로의 전환및 이에 따른 토지공개념ㆍ금융실명제등 경제개혁정책의 상대적인 퇴조 움직임에 강력한 쐐기를 박기위한 몸부림인 것만은 분명하다. 신당은 만성적인 정치불안구조인 여소야대정국은 안정구조인 여대야소 정국으로 역전시키는 정치적 개가를 올린것이 수출ㆍ투자의 촉진등 경제 활성화로 연결돼 정치적 지지기반을 넓히는데 기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같은 구도를 갖고 있는 신당의 경제팀에게는 「안정」과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않는 조부총리의 존재가 장애물로 인식됐을 수도있다. 당ㆍ정간에 가열되고 있는 「정책논쟁」에 대해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경제라는 이름의 마차」를 앞뒤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두마리의 말』에 비유했다. 반대로 달리는 두마리의 말이 어떤 조정과정을 거쳐 어느 지점에서 힘의 균형점을 찾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평민당 대응과 김 총재의 계산(“대통합” 신당정국:9)

    ◎「민주­반민주」로 황색바람 재현 모색/범민주세력 결집,지자제 선거 돌풍 노려/일부인사 영입으론 「지역당」 탈피 미지수 최근 며칠사이에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통합발표 직후 얼굴 가득 드리워졌던 우울한 그림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공개석상에서의 거대여당을 겨냥한 발언에서도 극단적인 비난은 삼가고 있다. 측근들도 김총재가 한결 여유와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김총재의 이같은 변화는 최악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던 정국상황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고 더욱 가속력까지 붙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들 가운데 3당통합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으며 이같은 여론은 상대적으로 평민당 입장에서는 유리하다는 다소 아전인수격 해석이 뒷받침이 되고 있다. 현재의 정국구도가 거대여당에서 의도하는 보ㆍ혁대결구도가 아닌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계산이다. 김총재는 이 점에서 민주당 잔류세력들이 김총재가 2선으로 물러나야만 평민당에 합류하겠다는 데 대해 별로 개의치 않고 있다. 재야세력들의 범민주세력규합을 위한 김총재 퇴진과 평민당해채 주장도 그냥 흘려 듣고만 있다. 자신의 무작정 후퇴가 자칫하면 수세에 몰린 야권을 더욱 지리멸렬의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다. 평민당 내부적으로도 김총재 퇴진문제에 대한 이같은 인식에 대해 일부 야권통합파를 포함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평민당이 민주당 잔류세력과 재야세력을 망라한 범민주세력을 규합해 명실상부한 유일 야당으로 면모를 갖춘다는 것은 적어도 지자제선거 이전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평민당은 이에따라 자체적인 체질강화를 당면과제로 삼고 있다. 명망있는 외부인사를 가능한 많이 끌어들여 가장 취약점이던 「지역당」의 이미지를 씻고 「국민정당」 「수권정당」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또 이들 인사들을 당요직에 중용해 기존 당료파에 대한 견제ㆍ비판세력으로 활용함으로써 김총재 자신에 대한 「1인독주」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불식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총재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당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개편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 것도 이 점에서 당 이미지쇄신과 김총재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 해소 등 다목적용 카드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평민당의 외부인사 영입작업은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입대상자들은 민주당 잔류파와 재야운동권을 제외한 재야원로ㆍ중진정치인들과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김총재를 지지했던 법조ㆍ학계ㆍ종교계인사들에 치중돼 있다. 평민당의 이같은 전열재정비가 다가오는 지자제선거를 겨냥한 사전포석임은 물론이다. 민주 대 반민주세력의 대결이라는 바람을 일으켜 거대여당에 일대타격을 가해 수권정당으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김대중총재가 오는 4일 마산에서 열리는 경남도지부 창당대회에서 시국강연을 하겠다고 공표한 것도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시험무대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평민당지도부는 이같은 중ㆍ단기전략이 확고한 만큼 조윤형부총재와 정대철ㆍ이상수ㆍ이해찬의원 등 야권통합파들이 민주당잔류세력과 잦은 접촉을 갖는 데 대해서도 애써 평가를 자제하고 있다. 다른 야권세력의 파워가 현재로서는 주목할 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합파들의 움직임도 평민당의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실상 통합파의원들은 조부총재를 제외하고는 민주당 잔류파들과 별도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잔류세력과 재야가 분명한 세력을 형성한 뒤 평민당과 합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야권통합방안이라는 것이 통합파의원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장래 정국상황에 대한 평민당지도부의 다소 낙관적인 입장에 대해 제동을 거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선 외부인사들을 대거 영입한다 할지라도 과연 지역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김대중총재가 그대로 버티고 있는 한 영입될 인사들도 친김대중계 인물에 국한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국민정당」으로의 변신을 위한 체질강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평민당 의원들이 호남과 서울출신인 데다 서울출신 의원들의 다수가 호남이 고향인 점을 감안하면 외부인사들이 평민당내에서 운신하는 데는 적지 않은 제약을 받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영입대상에 혁신재야세력을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분명히함에 따라 지금까지 평민당에 대한 지지의 입장에 서있던 재야운동권들로부터도 적지 않은 공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평민당이 사활의 분기점으로 여기고 있는 지자제선거에서의 승부전망도 결코 자신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거 총선 때처럼 호남지역과 서울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열세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지자제선거 결과가 김총재와 평민당의 기대를 훨씬 못미칠 경우 평민당은 또다시 야권통합의 회오리에 휘말려 표류하고 당내 야권통합파들의 목소리도 다시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김명서기자〉
  • 민주「해체이후」 김영삼씨의 정치적 장래(“대통합” 신당정국:7)

    ◎정국안정 YS 기여도가 판가름/“정계개편 이어 여개혁 주도” 자신감/“변절”로 보는 부정시각도 적지않아 민주당 김영삼총재의 3당합당 참여가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가. 민주투사로서의 30년 야당활동을 정리하고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가칭)에 민정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김종필 공화당총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음으로써 여당으로 변신한 김영삼총재의 정치적 장래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자유당이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고 표방한대로 정국및 사회안정,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되면 김총재의 변신은 그의 말처럼 구국적 결단이었음이 증명되고 김총재 자신은 제2의 정치 황금기를 맞게될 것이며 반대의 경우 그의 합당 결심은 제2야당의 궁지 모면에 급급한 나머지 자충수를 놓은 결과가 되어 정치 생명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을 주도하게 돼 있다고 측근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김총재는 민주자유당을 끌고 나가며 구법개폐,민주복지 정책의 구현 등을 통해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5공청산및 민주화 완결을 해냄으로써 집권세력의 도덕적 재탄생을 이룩하겠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김총재는 3당통합을 통한 민주자유당의 출범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현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불만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주도한 정계개편이 국민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다. 이같은 김총재의 구상은 일단 노대통령과 김종필총재의 적극 지원 아래 당분간 순조로운 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으로서는 3당통합이 5공의 승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마땅한 차기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차선책이 마련되는 만큼 김영삼총재를 어느 정도 부각시키는 것을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김종필총재는 민주당 세력이 제대로 입지 마련도 못하고 민정당 세력에 흡수돼 버릴 경우 공화당도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김영삼총재를 도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김영삼총재가 자신의 뜻을 펼쳐볼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정치의 지역화ㆍ정당의 사당화 현상을 타파하고 건전한 보혁구도를 정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는 점도 김총재의 이번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끔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김총재의 변신을 변절로 보고 그의 민주자유당 내에서의 위상 설정가능성 또한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은 긍정적으로 보는 눈들 못지않게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같은 부정적 시각은 전격 여야합당이라는 충격에서 깨어나면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같은 흐름은 크게 보아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김총재 스스로가 집권세력의 도덕적 재탄생을 주도할 만한 도덕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현시점이 민주화가 완결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군사독재 세력의 연장 선상에 있는 현 정권과 유신세력인 공화당 및 민주당의 합작은 야합이며 밀실에서 추진해 온 합당 절차는 민주주의적 과정을 밟지 않음으로써 출발부터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김총재가 보여준 부도덕의 단적인 예로 반대 토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날치기 통과로 40년 전통야당의 간판을 떼낸 30일의 전당대회를 들고 있다. 둘째는 김총재가 자신의 구상을 펴나가기 엔 민주자유당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자유당의 창당 작업이 마무리 된 후부터는 각파벌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고 김총재 역시 이 싸움에 휘말려 발전적 정국운영을 할 여력이 없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김총재가 자신이 구상하는 제반 민주개혁 조치들을 민주자유당의 당론으로 하려고 할때 노선의 유사성을 갖고 있는 민정ㆍ공화당 세력이 반대,김총재와 민주당세력이 소수 의견으로 몰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이와함께 30일 이기택총무겸 부총재와 김현규부총재가 신당 불참을 선언,김상현부총재 김정길ㆍ노무현의원 및 20∼30여명의 원외지구당위원장들과 함께 민주당 잔류 세력으로 남은 사실은 민주자유당 내에서의 파워게임을 앞에 둔 김총재에게 부산ㆍ경남 지역의 대표성을손상시키는 등 상당한 타격을 입힌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앞으로 더 많은 이탈자가 나올 조짐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셋째는 민주자유당의 내부 정리가 김총재 뜻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정국 흐름이 민주자유당의 바람대로 진행될지가 의문이라는 점이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라이벌관계에 있던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양당제하의 의회운영에서 야당인 평민당의 협조를 받을 가망은 거의 없게 됐으며 이는 법안의 강행통과,야당의 실력저지등 13대 국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태를 재등장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호남을 고립화 시킴으로써 지역 갈등의 골을 깊게할 것이라는 우려는 광주 등지의 격렬한 규탄시위 등에서 벌써부터 현실화하고 있는 느낌이며 정국을 민주 대 반민주 대결구도로 파악하고 있는 재야세력과 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은 신당이 내세우는 정국안정과 정치발전을 공염불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부정적 측면들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김총재는 노대통령이나 김종필총재에 비해 훨씬 심한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이는 김총재에 대한 퇴진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게 지배적 관측이다. 결국 김영삼총재가 던진 승부수의 성패는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얼마나 얻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으며 이는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국정운영 여하에 따라 그 향방이 결정되고 6월로 예정된 지자제선거를 통해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김교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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