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잠수함, 고개 들어도 된다”는 이유…60조짜리 탈락 후 李 나토 승부수 [권윤희의 월드뷰]
[월드뷰 3줄 요약]● 캐나다의 60조원 잠수함 사업(CPSP)은 한국 잠수함의 성능보다, 나토의 공동 연구·생산·군수 체계에 얼마나 깊이 연결될 수 있는지를 선택한 사업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방산 경쟁의 기준은 무기 성능에서 산업 기반·공급망·상호운용성으로 이동했고, 나토도 공동조달·공동생산 중심으로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한-나토 방산 파트너십 2.0’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K-방산을 나토 공급망과 공동 연구·생산·공동 운용 체계로 연결하려는 전략적 전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첫 나토 정상회의에서 꺼내 든 화두는 ‘무기 거래’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방산’이었다. 이 대통령은 7일 ‘나토 방산포럼’에서 ‘한-나토 방산 파트너십 2.0’을 제안하며 공동 연구·공동 생산·공동 운용을 축으로 한 협력 확대를 제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략 비축유 공동관리처럼 방산에서도 공급망과 전략 비축을 함께 관리하자는 구상이다.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한국 방산을 나토의 산업 기반과 공급망 안으로 연결하겠다는 전략 전환의 신호탄이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첫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세계 국방비의 55%를 차지하는 최대 방산 시장인 나토 동맹국들을 상대로 방산 협력을 본격 추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캐나다의 최대 60조원 규모 차세대 잠수함 프로젝트(CPSP)는 왜 이런 전략 전환이 필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앞서 캐나다 정부는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를 선정했고, 국내에서는 “나토 상호운용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 “기술보다 동맹에 밀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 사업은 단순한 성능 경쟁이 아니었다. 독일과 노르웨이가 공동 개발한 TKMS의 212CD는 연구개발과 조달, 군수지원을 함께 묶은 다국적 플랫폼이다. 캐나다 정부는 이를 “완전한 나토 상호운용성”을 갖춘 잠수함으로 소개했다. 캐나다가 선택한 것은 잠수함 한 척이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간 함께 연구하고 생산하며 운용할 방산 생태계였던 셈이다. 무기의 성능보다 어느 작전·군수 체계 안에서 함께 움직일 것인가를 결정한 사업이었다.
우크라전이 바꾼 방산 경쟁의 규칙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의 방산 전략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전쟁 초기에는 누가 더 많은 무기를 더 빨리 지원하느냐가 관심이었고, 미국의 하이마스(HIMARS)와 패트리엇, 각국의 전차·자주포, 155㎜ 포탄과 방공체계가 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핵심은 무기 자체보다 전력을 얼마나 지속 운용할 수 있는지로 옮겨갔다. 미국제 155㎜ 포탄과 구소련식 포탄, 서로 다른 부품과 정비 체계, 소프트웨어가 한 전장에서 뒤섞이면서 탄약·부품·정비 체계가 맞지 않는 군수 병목이 반복됐다. 이 경험은 지속 가능한 군수지원 능력이 현대전 전투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
포탄 생산량은 전투력을, 미사일 재고는 외교의 선택지를 좌우했다. 방산 생산능력은 전장의 소모를 따라가지 못했고, 탄약과 장약, 폭발물 원료를 둘러싼 산업과 공급망은 새로운 전략 자산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나토는 포탄 공동조달과 장기 공급 계약을 확대하며 생산 능력 자체를 동맹 차원의 과제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상호운용성은 ‘호환성’에서 ‘공동생산’으로이 변화의 중심에는 미국과 나토가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인도·태평양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자국 방산 생산기반만으로는 장기 안보 경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동맹국의 생산 능력을 적극 활용하고 유럽에 공동 생산과 방산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토도 STANAG(표준화 협정)를 기반으로 추진해 온 표준화를 공동조달과 공동생산 체계로 확장하는 흐름이다. 나토 지원·조달기구(NSPA)의 대규모 포탄·미사일 공동계약도 같은 맥락이다.
상호운용성 역시 통신과 지휘통제의 호환성을 넘어 공동 연구개발과 공동생산, 공급망, 유지·보수(MRO), 장기 군수지원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나토의 방산 생산 행동계획에서도 확인된다. 핵심은 동맹국 산업을 하나의 생산 네트워크로 묶겠다는 데 있다.
캐나다의 국방 산업 전략(D.I.S.)도 같은 방향이다. ‘Build–Partner–Buy’는 가능한 것은 자국에서 만들고(Build), 동맹국과 함께 개발·생산하며(Partner), 필요한 분야만 구매(Buy)한다는 접근이다. 향후 10년 동안 국방 계약의 상당 부분을 국내 산업에 배분하고, 방산 연구개발과 일자리, 수출을 동시에 확대하는 것도 목표로 한다.
K-방산의 다음 경쟁 과제는 ‘연결’이런 흐름은 한국 방산의 평가 기준도 바꾸고 있다. 앞으로는 나토 공급망과 공동 연구개발, 표준화, 현지 생산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가 K-방산의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완제품 수출을 넘어 나토·EU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설계 초기부터 규격과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드는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아야 한다.
정부는 ‘한-나토 방산 파트너십 2.0’을 통해 이런 방향, 즉 공동 연구·공동 생산·공동 운용 중심의 협력으로 전략 전환을 공식화했다. 이제 K-방산의 경쟁력은 수출 실적보다 나토 공급망 안에서 얼마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느냐에 달려 있다. 탄약과 부품, 공동 연구개발, 현지 생산과 MRO까지 산업 생태계 전반에 얼마나 깊숙이 참여하느냐가 다음 10년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