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립」의 방법론(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10·끝)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민족자존의 전통이념 생활화를”/고유철학의 실체 구명에 모두가 나설때/「옛것」의 긍정적 측면 되살려 실천해야
깨끗한 정부를 만들려는 새 정부의 개혁의지가 최근의 결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내각 구성에서 몇몇 공직자가 도덕성 시비에 걸려 자리를 떠나야만 했고 곧이어 고위 공직자의 재산 공개과정에서 이와 같은 의지가 또한번 드러났다.국민들은 이제 막 출범한 정부에 대해서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그러나 이런 판단은 좀 이른감이 있다.우리는 그동안 새로 수립된 정권들이 처음에는 참신하게 시작하다가도 1년이 못되어 원래의 상태로 회귀하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그래서 신악이 구악보다 더 심각하다는 세평들이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한다.
○개혁에도 근원은 필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어디있냐는 논리에 의하면 이번 개혁의지에 철퇴를 맞은 사람들은 재수 없게 걸린 사람들이다.그러나 이런 개혁의 결단이 통과의례처럼 한차례 겪는 진통으로만 여겨진다면 새 정부에도기대를 걸만한 것이 없다.지금 드러나고 있는 치부의 형태는 단연 권력형 부정 축재의 유형에 들어간다.이러한 권력 엘리트의 부정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빙산의 큰 덩치는 아직도 바다 깊숙이 잠겨 있다.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곪아 있다.한국정신의 원류를 찾고 그 올바른 실체를 규명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이미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린듯이 까마득한 지난해 대통령선거때의 사회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과거 우리 한국정신의 부정적 측면으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탈법과 편법주의,돈과 향응 대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금력과 금권주의,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인격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맹목적 이기주의와 상호불신주의,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찾아 자기 욕심을 채우는 연고주의나 계층과 지역간의 갈등 등이 난무했다.과시주의와 과대 망상주의에서 발로된 자기 분수를 넘어 소비하고 소유하는 문제,이것이 부동산 투기로 연결된다.그리고 도덕성의 부재,과정과 절차를 존중할 줄 모르는 준법 의식의 일탈행위 등이다.우리 사회의 교통상황만 보아도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외국인들이 말하기도 한다.과연 우리는 이런 사회도 등잔불만한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진단하고 이에따라 여러가지의 정부 대책과 처방들이 나오기도 했다.1960년대 3공화국은 국민의 내핍 생활,근면정신,빈곤퇴치,생산과 건설의식을 고취하는 재건국민운동을 벌였고 동시에 정정법을 발동하여 한차례 정치사회의 정화를 기도한바 있다.1970년대에 또한번 정치 불안과 사회불안을 극복한다는 차원에서 관기숙정(관기숙정)의 서정 쇄신 운동이 잠시 추진되기도 하였다.1980년대의 사회 정화운동역시 이러한 의도에서 진행된 처방이었다.
그러나 70년대의 관기 숙정과 서정쇄신 운동은 3선 개헌후에 밀어닥친 사회적 저항을 멈추기 위한 대책이었고 80년대의 사회정화 운동은 5공화국의 정통성 확립이라는 또 다른 방편으로 전개된 운동이었기에 잠시후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어떤 것도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처방으로서는 미흡하였다.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아마 이 모든 시도들 속에는 진정한 개혁의지가 결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의 불합리와 불의의 상태는 2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마찬가지이다.오히려 부정의 방법이 더욱 지능화되었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우리는 다시금 처음의 문제로 돌아온 것이다.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도 않는 우리 사회의 엄청난 난제들 앞에서 때때로 우리는 좌절해 버리거나 「우리는 안돼」 「이제 우리는 틀렸어」라고 자학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이럴때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행정부에다 기대를 걸어본다.
○단번에 해결할수 없어
그러나 정부는 언제나 불가능한 대책만 내놓는다.모든 일을 단번에 해결하겠다고 말하거나 모든 일을 뿌리째 뽑는다(발본색원)고 말하지만 그 뿌리는 너무나 깊어서 계속 존속된다.사회의 문제란 원래 단김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역사상 어떤 사회도 단번에 완성되었다는 기록은 없다.선진 민주주의 사회가 수세기의 역사적 과정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와서 오늘에 이르렀고 지금도 실험하듯 신중하게 걸어가고 있다.다시 말하면 선진사회는 수없이 많은 실험과정을 거치면서 성숙해온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정신의 부정적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들을 앞세워 그를 생활화하고 실천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사회의 문제들은 사회 지도층의 각성,그들의 솔선수범,정부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통치방식에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그렇다고 사회의 모든 문제가 구조적인 모순의 해결에서만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언제나 제도 전반의 개혁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크게 시작하지만 갑자기 그것도 이유없이 중단하고 만다.이제 우리 사회의 희망을 건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또 한번 정치 권력층의 약속을 믿어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기대해도 좋은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디서든,누구에게서든 우리 스스로가 당장무엇이든 시작해야 할 것인가.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민주주의 사회는 결코 엄청난 계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사회의 곳곳에서 이루어진 조그마한 실험들이 어우러져 완결된다.그래서 사회 전체는 작은 실험들의 전시장일 뿐이다.「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의 속담에서처럼 우리에게 엄청나게 큰 문제로 다가오듯 느껴지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들을 그 문제가 발생한 근원에서 차근차근 해결하려는 노력과 결단력이 우리에겐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욱 더 절실하게 요청된다.그래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내가 속한 가정 속에서 풀고 내가 속한 직장에서,또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나 지역의 모임을 통해서,내가 참여하고 있는 친목단체에서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가까운 곳에서 그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지금은 바로 이 작은 실험의 정신이 한국정신의 원류를 되찾으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이제 막 시작한거나 다름없는 우리 사회가 걸어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약력
▲1943년경남 진주출생
▲한국 신학대학 졸업
▲연세대 대학원 졸업
▲연세대 대학원 졸업
▲독일 보쿰대(철학박사)
▲현연세대 교수
▲저서:「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 「사회구조와 삶의 질서」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