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속에 부대끼는 국민들/김영만 경제부장(데스크 시각)
경남 진주에서 올라온 한 친구는 대뜸 『북한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물었다.자기 지역의 국회의원은 왜 한보청문회 위원직을 사퇴했는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만신창이 경제는 장관들 말대로 미국식 벤쳐기업만 외치고 있으면 길이 생길 것인지 궁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친구는 시골다방에 앉은 유권자들이 장관을 걱정하고,국회의원을 걱정하는 시대가 돼도 괜찮은 것인지 답을 바라지도 않는 질문을 계속해댔다.나라의 녹을 받는 사람들이 국민과 유권자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순리일텐데 시계가 거꾸로 돌아 납세자들이 공직자와 나라걱정까지 도맡아하는 형편이라고 시골다방의 화두를 전했다.
국민들이 대단한 혼돈속에서 부대끼고 있다.정치.경제.통일문제 모두에서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다.예측가능한 일도 없고 언제쯤 무슨일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국민으로부터 그일을 위임받은 공직자들이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고,궁금증을 풀어줘야 할텐데 이 사람들이 입을 닫고 있으니 국민이 죽을 지경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북한문제만큼 절실한 현안은 없다.전쟁을 치른 노인세대는 또 전쟁이 터지나해서 북한동정이 불안하다.동·서독의 통일을 지켜본 납세자들은 전쟁이야 나겠나 하면서도 북한붕괴가 자기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를 알아서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유권자가 국회의원 걱정
며칠 사이에만도 미국의 국회의원들이 북한을 다녀왔다.미 신문 USA 투데이의 북한 르뽀기사가 국내언론에 소개됐다.세계식량계획 관계자들이나,미국의원들은 북한이 대량 아사의 위기에 몰려있다고 진단했다.적절한 지원이 없으면 정권이 붕괴하거나 군사도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외국인이나 외국언론,연변에서 우리언론에 관측된 북한의 사정은 하나같이 급박하기 짝이없다.그런가하면 며칠전 방한했던 코언 미 국방장관은 『북한 지원은 신중해야 한다』고 이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니 국민들은 정신이 없다.북한이 정말 곧 무너질 상황인지,우리정부의 판단은 어떤지 알고 싶어한다.거기다 만일의 경우 (그것이 붕괴든 도발이든)우리 정부의 대비책은 어떤지 알고 싶다.예를들면 통일자금의 염출역량과 현황같은 것이다.그러나 우리정부의 당국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일관성없는 외국인들의 발언,그것도 미국 공직자들의 발언에 국민들이 불안하든 헷갈리든 오불관언이다.
○정신적 집단공황 상태
오늘처럼 정치에 대해 국민들이 예측력을 상실한 적도 없었다.80년 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나은게 없다.정권의 남은 임기 10개월을 총괄해 기획하고 집행하는 프로그래머는 있는 것인지,이회창 대표의 여권 대통령후보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 것인지 국민들이 모르기는 마찬가지다.한보사태로 거물급 정치인들의 연루설이 연일 신문지상을 도배하고,대검찰청 앞에서 포즈를 취하게하는 정국은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대통령이 차남문제로 말을 할 게제가 아니라면 다음 서열이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다음이라도 말을 해야할텐데 아무도 말을 않고 있다.국민들은 애가 타는데도 청와대대변인은 입을 닫았고,여당 대변인마저 한보 정태수씨를 닮으려 한다.
국민들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최대현안으로 삼아 국력을 결집시키겠다고 했다.앞에 뭣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데 정부가 앞으로만 가자한들 따를 이가 있을리 없다.
막상 경제대책만해도 그렇다.집행예산을 줄이고 국민들이 근검절약을 하면,또 경제난국타개의 묘책인양하는 벤처창업촉진책을 쓰면 최소한 내년 우리경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올해는 2×2=4이지만 내년에는 2×3=6이 되던지 2×1=2가 되던지 구구단이라도 내놔야한다.그래야만 국민이 납득을 하고 따라가든지 다른 대안을 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너무 오래 안개속에 방치돼 있다.올 대통령선거를 읽을수 있게하고,국민전체의 인생을 바꿀 북한문제는 얼마나 급박한 것인지,경제는 내년쯤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를 해야한다.정신적인 집단 공황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이룰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