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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라지는 親서민·중도행보

    빨라지는 親서민·중도행보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친(親) 서민행보’를 가속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는 8·15 광복절에 150만여명의 서민을 특별사면하겠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 사면에는 생계형 운전자뿐만 아니라 불가피한 생계형 범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민, 소상공인, 초범 음주운전자 등 다양한 계층의 서민들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방송에서 “농민, 어민, 서민, 자영업 하시는 분들, 특히 생계형 운전을 하다가 운전면허가 중지된 분들을 정부가 찾아서 (사면)해야 생계를 위해서 활동하는 데 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 전례없이 사면 대상 범죄와 범위가 커질 것임을 시사했다. 대학입시제도와 관련한 변화를 강조한 것도 물론 친 서민 대책의 하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경제위기, 광복절 사면, 사교육비 절감 등 현안과 관련한 질문에 조목조목 답하며 최근 보이고 있는 ‘친 서민’과 ‘중도·실용’ 행보를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가끔 여러 곳에 위로를 하려고 가면 형편이 괜찮은 분들은 비판을 많이 해도 서민층은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대통령님, 빨리 좀 경제를 살려서 우리 힘든 것 좀 편하게 해 달라.’고 한다.”면서 “그러면 저는 정말 미안하고, 감동도 받는다.”고 전했다. 또 이 대통령은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위기가 닥치면 제일 먼저 고통받는 게 서민”이라며 “제가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먼저 회복되고, 먼저 서민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라고 역설했다. 실제 정부는 생계형 운전자의 벌점 삭제 및 운전면허 정지·취소 등 행정처분 면제 등의 조치뿐 아니라 생계형 사면 대상 범죄를 추리는 실무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가벼운 농지법, 농약관리법, 비료 및 사료 관리법, 수산업법 및 산림법 위반 대상자들을 중심으로 생계형 농어민에 대한 구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대통령이 친 서민 행보를 강화하는 것은 중도를 끌어안아 지지층을 넓히려는 측면도 물론 없지 않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 지지층이었던 중산층, 수도권 30·40대를 공략해 집권 2년차의 국정추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또한 ‘부자정권’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없애고 ‘서민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이미지 심기의 홍보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때 중도층의 지지로 압승을 거둔 만큼 지지층을 복원해 당시의 중도실용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친 서민 행보를 통해 부족한 감성을 채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력이 강한 게 장점인 ‘MB다움’의 복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국민을 부엉이바위로 내몰지 말라”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드리는 긴급 호소문’을 냈다. ‘국민을 부엉이 바위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제목이다. 김 전 장관은 호소문에서 “부엉이 바위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짙은 외로움이 바로 국민의 마음”이라며 이 대통령이 유족과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지난해 촛불집회 상황을 거론하며 “또다시 공안정국을 조성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생긴다.”면서 “대통령님은 그때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님은 촛불이 꺼지는 순간 돌변했다. 약속을 저버리고 검찰·경찰 등을 동원해 국민의 입을 막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님 주위에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 이유 때문인지 대통령님께서는 다시 공권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대통령님께서 국민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공안통치의 유혹에 빠지면 무서운 재난이 우리를 덮칠 것이며, 나는 그것이 두렵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또 “미디어 관련법 등 다수의 힘으로 관철시키려는 이른바 MB법들이 국민의 합의로 처리되도록 결단해달라.”면서 “너무나 외로웠던 노 전 대통령의 마음, 너무나 서러운 국민의 마음을 받아줘야 하며 국민을 또다시 부엉이바위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弔辭 무슨 내용 담았나

    “화합과 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민주주의를 다시 꽃 피우게 해주십시오.” 29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영결식에서 공동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조사(弔辭)를 통해 고인의 서거를 애도했다. 한승수 총리는 “애석하고 비통하다.”고 운을 뗀 뒤, “대통령님의 일생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바친 삶이었다.”고 노 전 대통령의 삶을 요약했다. 한 총리는 이어 “재임 기간 동안 대통령 스스로 낮은 곳에 내려와 국민과 함께하는 서민대통령이 돼 권위주의를 청산했다.”고 회상했다. 한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이념·정쟁 논란이 증폭되는 것을 우려한 듯, “화합과 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며 각종 갈등에 대한 타개 의지를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하신 님을 지키지 못한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자책감을 토해냈다. 한 전 총리는 또 “님은 실패하지 않았다.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다.”면서 “분열로 반목하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끌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간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 달라.”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대통령 할아버지, 아빠가 행복했대요”

    추모의 열기는 덕수궁 돌담길에 나부낀 벽보와 봉하마을 등 분향소의 방명록에 고스란히 남았다. ‘인터넷 대통령’답게 애도의 물결은 온라인 세상을 노랗게 물들였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6살 예원이는 “착한 대통령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행복했대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 붙였다. “그대가 죽음으로 지키려 했던 것들을 기억하겠습니다(강한나·부산 해운대구)” “우리가 등 돌리고 있을 때 당신은 일어나셨습니다.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모른 척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뜨겁게 사랑합니다.” “당신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힘 없음은 원망했습니다. 힘없는 ‘바보 대통령’, 원망하고 사랑합니다.”라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지하지 못한 미안함도 곳곳에서 묻어났다. “민주주의가 완성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관심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우리가 당신이 못다 하신 꿈을 이루겠습니다. (당신의 영원한 지지자가)” 서울 대한문 정문 앞에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에 모여든 추모객은 덕수궁 돌담에 절절한 그리움을 붙였다. “노무현 당신은 아직도 우리의 희망입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가슴 속에 잊지 않을게요. 평생에 너무나도 과분하신 대통령님 만나서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봉하마을과 서울역 분향소에도 뜨거운 추모의 글이 방명록을 가득 채웠다. 초등학생 이현아양은 “나중에 뵈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켰는지 자세히 말씀 드릴게요. 우리 곁을 떠나신 게 아니라 새 길을 열어 주신 거로 생각해요.”라고 썼다. 한 추모객은 “벌써 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영원히 우리 심장 속에 살아 계실 겁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김연수씨는 “항상 국민을 생각해 오신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온라인 세상도 그의 떠남을 슬퍼하는 글로 넘실댔다. 노 전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도 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렇게 슬플까, 이보다 더 슬프다면 정말 참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산속에피는꽃)”라는 글이 올라왔다. “온 국민이 얼마나 대통령님을 사랑하는지 하늘나라에서는 아시겠지요(하면된다 할수있다)” “이제야 당신의 길들을 따라 걸어봅니다. 몰랐습니다. 당신의 깊은 사랑과 이 땅과 우리 국민의 대한 애정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뵈면 따뜻하게 감사했다고 수고하셨다고 안아 드리겠습니다.”(hannah515) 김해 박성국 서울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의식 거행내내 ‘삶과 죽음 한조각’ 독송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29일 오후 늦게 수원 연화장에 도착하자 추모객(경찰 추산 8000여명)들은 “노무현”을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추모객들은 700여m나 떨어진 임시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연화장 승화원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추모객들의 표정은 모두 숙연했고 떠들거나 불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연화장 입구에서 삼군 의장대와 군악대가 운구를 맡으며 엄숙함을 더했다. 분향실 앞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라는 문구가 표시됐다. 권양숙 여사와 건호·정연씨 남매, 건평씨 등 유족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뒤를 따랐다. 절도 있는 의장대의 발걸음과 달리 유족들은 한 걸음을 내딛기도 벅차 보였다. 권 여사는 딸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았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유족들이 야외분향소에서 제례를 마치고, 권 여사가 부축을 받으며 승화원으로 들어갈 때 추모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힘 내세요.”를 외쳤다. 8개 분향실 가운데 7번까지는 노사모 회원들과 종교인, 장의위원들이 자리했고, 8번 분향소에서는 권 여사 등 유족들이 고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화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되는 동안 승화원 밖에서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의 마지막 제례의식이 진행됐다. 한쪽에서는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노 전 대통령 유서의 한 구절이 독송(讀誦)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관계자 100여명은 화장이 시작되기 4시간 전부터 불교의 다비의식(화장의식)과 독송 준비를 했다. 제2교구 관계자는 “오늘 독송한 ‘무상게(無常偈)’는 자연과 삶은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의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독송이 서글프게 울려퍼지자 북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한 추모객들이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오열했다. 수원 남인우 오달란기자 niw7263@seoul.co.kr
  • 발인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서울로 출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치고 힘들었던 육신을 관 속에 누인 채 마지막 상경길에 올랐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될 국민장(國民葬)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오전 5시 김해 봉하마을에서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발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28분쯤 늦은 5시58분 서울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5시 정각에 군 의장대가 관에 태극기를 두르면서 발인식이 시작됐다.의장대는 관을 빈소였던 봉하마을 마을회관 밖으로 옮겨 앞마당에 미리 준비해둔 운구차에 실었다.특수제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관이었다.이어 5시10분쯤 마을회관 앞마당에 차려졌던 분향소에 영정을 두고 견전제가 이어졌다.2분 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맏상주 건호 씨가 엎드려 부친과의 긴 이별을 고했다.형 건평씨,부인 권양숙 여사,딸 정연 씨와 손주 등 유족들이 슬픔마저 마른 듯한 표정으로 지켜본 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지막 예를 다했다.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동영상에 등장했던 손녀가 모습을 비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견전제를 마치고 영정이 노제 형식을 빌어 사저로 향하자 발인식을 지켜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많은 조문객들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든 영정은 고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통해 산새들이 우짖는 새벽 공기를 뚫고 사저로 향했고 영정은 사저를 한 바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구차가 5시25분쯤 마을회관 앞을 떠나 사저 쪽으로 이동하자 조문객들이 날린 수백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차체 위에 내려 앉았다.종이비행기에는 노 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사저를 한 바퀴 돈 영정이 5시35분쯤 사저를 빠져나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5시50분쯤 운구차에 올라 국민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한달 전 쯤에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걸어 내려왔던 길을 영정이 대신 걸어 내려온 것이라 조문객들이 오열할 만했는데 조문객들은 흐느낌마저 유족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조문객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선도차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지체했다가 5시58분쯤 먼 상경길의 첫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1만명으로 추산되는 조문객들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인의 마지막 상경길을 따라 걸으며 배웅했다. ●오전 11시 경복궁 영결식 3000여명 참석 영결식은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노제를 지낸다.경찰은 낮 12시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경복궁 앞뜰~서울광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한다. 이어 만장 2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만장은 불상사를 우려한 정부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 형식인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이 때는 일부 차로만 통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된다.밤 9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 5시까지 분향소 운영 한편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추모인파는 절정을 이뤘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지금까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450만명을 돌파했다. 분향소는 새벽에만 잠시 한산했고 날이 밝자마자 추모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헌화에 참여했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봉하마을 분향소는 밤 12시까지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발인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서울로 출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치고 힘들었던 육신을 관 속에 누인 채 마지막 상경길에 올랐다.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될 국민장(國民葬)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오전 5시 김해 봉하마을에서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발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28분쯤 늦은 5시58분 서울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5시 정각에 군 의장대가 관에 태극기를 두르면서 발인식이 시작됐다.의장대는 관을 빈소였던 봉하마을 마을회관 밖으로 옮겨 앞마당에 미리 준비해둔 운구차에 실었다.특수제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관이었다.이어 5시10분쯤 마을회관 앞마당에 차려졌던 분향소에 영정을 두고 견전제가 이어졌다.2분 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맏상주 건호 씨가 엎드려 부친과의 긴 이별을 고했다.형 건평씨,부인 권양숙 여사,딸 정연 씨와 손주 등 유족들이 슬픔마저 마른 듯한 표정으로 지켜본 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지막 예를 다했다.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동영상에 등장했던 손녀가 모습을 비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견전제를 마치고 영정이 노제 형식을 빌어 사저로 향하자 발인식을 지켜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많은 조문객들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든 영정은 고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통해 산새들이 우짖는 새벽 공기를 뚫고 사저로 향했고 영정은 사저를 한 바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구차가 5시25분쯤 마을회관 앞을 떠나 사저 쪽으로 이동하자 조문객들이 날린 수백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차체 위에 내려 앉았다.종이비행기에는 노 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사저를 한 바퀴 돈 영정이 5시35분쯤 사저를 빠져나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5시50분쯤 운구차에 올라 국민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한달 전 쯤에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걸어 내려왔던 길을 영정이 대신 걸어 내려온 것이라 조문객들이 오열할 만했는데 조문객들은 흐느낌마저 유족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조문객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선도차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지체했다가 5시58분쯤 먼 상경길의 첫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1만명으로 추산되는 조문객들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인의 마지막 상경길을 따라 걸으며 배웅했다. ●11시 경복궁 영결식 3000여명 참석  영결식은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노제를 지낸다.경찰은 낮 12시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경복궁 앞뜰~서울광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한다. 이어 만장 2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만장은 불상사를 우려한 정부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 형식인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이 때는 일부 차로만 통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된다.밤 9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 오후 5시까지 분향소 운영 한편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추모인파는 절정을 이뤘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지금까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450만명을 돌파했다. 분향소는 새벽에만 잠시 한산했고 날이 밝자마자 추모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헌화에 참여했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봉하마을 분향소는 밤 12시까지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꽃잎처럼 흘러가시라”… 줄지 않는 흰국화 행렬

    [노 前대통령 국민장] “꽃잎처럼 흘러가시라”… 줄지 않는 흰국화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일째인 27일에도 김해 봉하마을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3㎞쯤 늘어선 ‘흰국화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끊임없는 조문객 행렬 29일이 영결식이어서 문상 기간이 내일 하루밖에 남지않아서 인지 오후 들어서부터 직장인과 중장년층의 조문이 부쩍 늘었다. 이날 25만여명 등 5일간 누적 조문객은 90만명을 돌파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모(57)씨는 “생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미워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니 그분의 명복이라도 빌려는 생각에 일을 끝내고 급히 달려왔다.”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빈다.”고 애도했다. 공동 장례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이날 “권양숙 여사가 빈소 자원봉사자와 분향소를 찾은 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권 여사가 ‘무더운 날씨에도 본업을 뒤로한 채 슬픔을 같이하고 도움을 주신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한다는 말을 대신 전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사 희생자 보듬었던 고인 이날 오전 제주시 4·3항쟁 유족 대표 20여명이 조문했다. 이중흥(63)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사저를 방문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방문 당시 사저 정원이 너무 허술해 나무 하나 심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하니 ‘제주 수종으로 심어달라.’고 하셔서 산딸기나무를 심었다.”고 소회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81) 할머니도 고인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며 “큰 별이 떨어져서 달려왔다.”면서 “명절마다 권 여사가 술·과일을 챙겨주셔서 꼭 방문하고 싶었다.”며 눈가를 훔쳤다.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에는 1700개의 만장이 내걸렸다.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 회원들이 인터넷 다음 ‘아고라’에 오른 노 전 대통령 추모글을 적은 만장은 빈소까지 2㎞ 구간에 설치됐다. 만장에는 ‘돌아와 주세요. 노 통장님.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울어도 울어도 보고 싶다.’라며 애도와 그리움을 나타내거나 ‘우리 갈 길 멀고 험해도 끝내 이기리라.’라는 민중가요 가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경남지방경찰청장 물병 세례 일부 조문객들이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과 경찰간부 40여명에게 물을 뿌리고 야유를 퍼부었다. 이 경남경찰청장 등 일행이 봉변을 당한 까닭은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게 늘어선 조문객들을 제치고 맨 앞으로 나아가 ‘새치기 조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청장이 조문하는 동안 먼저 차례를 기다리던 일부 조문객들은 경찰간부 일행에게 물을 뿌리고 울먹이면서 “경호(청와대 경호를 오해)도 못하고 자살경위 수사도 제대로 못한 주제에 무슨 얼굴로 왔느냐, 경찰이 왜 조문 순서를 지키지 않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화가 난 일부 조문객은 경찰 일행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간부 일행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흩어진 신발을 집어와 신은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김해 김정한 이재연기자 jhkim@seoul.co.kr ■ 식지 않는 추모열기 서울광장 추모제 끝내 불허 한낮에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뜨거운 추모 열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서울역사박물관 등 전국 93개 공식분향소를 비롯한 300여개 민간 분향소에는 고인의 서거 5일째인 27일에도 추모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 추모 행사를 위해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을 이날 결국 불허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중앙청사 접견실에서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이대영 경실련 사무총장 등 시민추모위원회 관계자 4명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추모위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개최하기로 하고 서울시에 허가를 신청했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광장 사용규정에 따라 비정치적 행사만 보장되면 개방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위는 이날 오후 8시30분 정동교회 앞 광장에서 20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약식 추모제를 열었다. ●유시민 “영결식 때 노란넥타이 맬 것”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이날 서울역 정부 분향소를 찾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분향소에서 지은 ‘넥타이를 고르며’라는 글을 통해 “꼭 검은 넥타이어야 할까,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과 같은 것을 맬 수 없다.”면서 “5월29일 서울광장 노제에서 노란 풍선 백만개가 하늘 높이 오르는 꿈을 꾼다….”며 영결식 당일 노란 넥타이를 매고 가겠다고 말했다. 관공서와 기업들이 회식 등 각종 여흥 행사를 국민장 이후로 미루는 등 전국이 ‘엄숙 모드’에 들어갔다. ●재계 줄지어 분향… 진도에선 씻김굿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이날도 정·재계 인사들의 분향 추모가 이어졌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는 오후 8시30분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앞서 오전 7시40분 이백순 신한은행장을 선두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이 분향했다. 삼성그룹 사장단은 회사 버스 편으로 도착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30여명이 단체 분향을 했다. 오후 1시쯤 분향소를 찾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모두의 비극”이라면서 “생전에 고인을 대전야구장에서 뵌 적이 있는데 매우 인간적인 분이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신동빈 부회장을 비롯한 롯데그룹 사장단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충북지역 시민추모위는 28일 오후 7시30분 청주시 상당공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민추모제를 개최한다. 또 전남 진도군은 진도 씻김굿 주최로 28일 오후 8시 진도읍 철마광장에서 인간문화재와 씻김굿 기능 보유자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씻김굿을 한다. 전국종합 김해 강원식 서울 김성수 김민희기자 kws@seoul.co.kr ■휴가내고… 지방서… 자원봉사 물결 서울에 사는 정모(45)씨는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뒤 곧바로 김해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씨는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휴가를 내고 27일까지 5일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는 “저에게는 유일한 대통령이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무작정 봉하마을로 내려와 국밥 끓이기, 설거지, 청소, 자원봉사 모집, 물나르기 등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다.”면서 “여기서(봉하마을)는 딱 정해진 일이 없어 그때 그때 필요한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모(여·33·여수)씨도 지난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자마자 여수에서 경남 양산 부산대학병원을 거쳐 5일째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씨는 “양산에서 집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봉하마을에 가면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찾아왔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에는 하루 400~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된다. 이들은 대부분 새마을단체나 녹색회 등 단체 소속이지만, 상당수는 스스로 일손을 자청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조문객 질서유지, 리본 및 조화 나눠주기, 국밥 끓이기, 쓰레기 줍기, 설거지, 간이화장실 청소 등 수십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와 이씨처럼 스스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하루 300명 이상에 이른다. 하루 몇 만명의 조문객을 맞아야 하는 봉하마을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조문객으로 왔다가 일손을 도와달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자원봉사자로 남은 사람들도 많다. 김모(55·부산·식당업)씨는 25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밤늦게까지 국밥에 들어갈 무를 종일 썰고 이튿날 귀가했다.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방명록 수놓은 조문객 글들 “당신의 빈자리 이렇게 클 줄…” “6년 전 당신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60년 당신을 기억하며, 가슴에 담고 살아가겠습니다.”(경기 부천시 배항섭)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은 고인을 잊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방명록에 옮기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저마다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마음을 햐얀 종이에 쏟아내고 있다. 초등학생 정지은양은 “대통령 할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국화 놓고 갈게요.”라고 썼고, 김명규씨는 “정작 가야 할 사람은 나이 많은 나인데, 아직 할 일이 많은 당신을 먼저 보내 가슴이 미어집니다.”며 애끊는 마음을 옮겼다. 이진희씨는 “말이 안 나옵니다. 그냥 멍하네요. 멍했다, 슬펐다, 다시 멍해집니다. 살면서 흔들릴 때마다 대통령님을 생각하겠습니다.”고 적었다. 송민호씨는 “주름진 이마와 희끗한 머리를 보면 ‘할아버지’, 막걸리 잔을 기울일 땐 ‘이웃집 아저씨’, 밀집모자를 쓰고 들녘에 나선 모습을 볼 때면 ‘삼촌’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빈 자리가 이렇게 클줄 몰랐습니다.”며 생전을 추억했다. 한권, 한권 맺어지는 방명록에는 권양숙 여사를 걱정하는 마음도 담았다. 연옥이라는 추모객은 “권 여사님, 기운 차리세요. 대통령님은 가셨지만, 여사님은 우리 곁에 남아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다. 김해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공시족’에게 공직이란?…달라진 의식들 “비정규직 차별 임금 차액 전액 지급하라” 유학생 입국 시즌… 신종플루 금주가 고비 서울대 주요학과 합격자 출신고 분석하니 올 지방직 9급 시험문제 분석해보니 경호관은 은폐 시도… 경찰은 부실 수사
  • [오늘의 눈]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장형우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사과와 용서 그리고 화해/장형우 사회부 기자

    사과 없는 용서 없고, 용서 없는 화해 없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1996년 투투 주교가 이끄는 ‘진실과 화합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년 6개월 동안의 활동으로 감춰졌던 수많은 인종차별 피해자들을 찾아냈고, 그 결과 350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진실과 화합위원회가 ‘반쪽의 성공’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 반인륜적 차별의 수난을 겪었던 흑인들은 새로운 미래를 위해 용서와 화해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백인은 없었다. 그래서 화합은 이루지 못한 채 진실만 밝혀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조문과 취재를 겸해 내려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기자들은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노사모뿐만 아니라 빈소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고 입을 모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권이 바뀐 지 1년만에 관례처럼 전 정권에 대한 강도높은 사정수사가 시작됐고, 언론사는 속보경쟁에 달려들었다. 검찰의 입에서 나온 말이면 다른 확인도 않은 채 그대로 기사를 써 내려갔다. 언론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부추겼고, 검찰은 못 이긴 척 혐의를 흘려줬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도덕성에도 상처를 주는 독한 말들을 내뿜어댔다. 힘을 잃은 세력을 마음껏 비난할 수 있다는 공식에 따랐다. 그래서 ‘정치적 타살’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언론은 마치 자신들은 아무 잘못 없는 객관적 관찰자인 양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화해와 통합을 해야 한다고 되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화해는 용서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사과 없는 용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화해와 통합의 첫걸음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언론이 누군가에게 화해와 통합을 당부하기에 앞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이유다. ‘노 전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저질 언론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장형우 사회부 기자 zangzak@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면목 없습니다… 대통령이 무슨 잘못 있기에”

    구속수감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보석과 구속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나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수 있게 됐다.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위현석)는 횡령 및 탈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뇌종양 치료 등을 이유로 청구한 보석을 26일 허가했다. 재판부는 “강 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해 병원 2곳에 사실감정을 의뢰한 결과 ‘악성 뇌종양이 발견됐고 시급히 조직검사와 항암치료가 필요하다.’는 답신이 왔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곧바로 보증금 1억원을 공탁하고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됐다. 강 회장은 오후 8시40분쯤 봉하마을에 부인과 함께 도착, 곧바로 조문하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강 회장은 “면목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 화요일에 내가 나오는 것을 그렇게 기다렸다는데….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럴 수가 있느냐.”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역시 이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민주당 이광재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노 전 대통령 장례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낸 구속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이 가족이 아닌 지인의 상을 치를 수 있도록 구속 피고인의 형 집행 정지를 허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의 석방 기간은 27일 낮 12시부터 영결식이 치러지는 29일 오후 5시까지이고, 이 기간 동안 자택과 노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가 이뤄지는 장소를 벗어나선 안 된다. 재판부는 구속 집행 정지 결정에 앞서 검찰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검찰은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이날 재판부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유지혜기자·김해 박성국기자 wisepen@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오바마 “그는 한·미관계 증진에 기여”

    │워싱턴 김균미·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이경원기자│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를 대표해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한국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애도성명에서 “노 전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 간의 강력하고 중요한 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빠졌다.”고 말했다.노 전 대통령 재임시 외교장관을 역임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빈소에 조전과 조화를 보내 애도했다. 반 총장은 “노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전직 국가원수를 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 여러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또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개혁 그리고 선진사회 건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신 노 전 대통령님을 기리며 멀리서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충격과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는 내용으로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게 애도 메시지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조문에서는 “한국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전한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한국을 공식방문했으며, 2004년에는 여왕의 초청으로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영국을 공식 방문했다. 앞서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영국 정부를 대신해 이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는 애도 메시지를 청와대에 보냈다.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23일 홋카이도에서 열린 ‘태평양·섬 서밋’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뒤 “몹시 놀랐다. 외무상 때 대화를 나눴던 분이다. 진심으로 애도의 뜻과 함께 명목을 빈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부고를 접하고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기원한다.”고 애도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몇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교섭 상대로서는 힘겨웠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강했다고 생각했다.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홍콩 행정수반인 도널드 창 행정장관은 주홍콩 총영사관을 통해 유족들에게 보낸 애도서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깊은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며 “고인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훈센 캄보디아 총리도 23일 현지를 방문중인 한국 기자들과 만나 “뭐라고 슬픔의 말을 표현할지 모르겠다.”며 “진심으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kmkim@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봉하에서 덕수궁까지… 전국 애도 물결

    [노 前대통령 서거] 봉하에서 덕수궁까지… 전국 애도 물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틀째인 24일에도 전국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 고인의 영면(永眠)을 기원하는 추모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에는 오전 8시쯤부터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단 시민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일부 시민들은 영정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보도에 주저앉기도 했다. 조문은 10여명 단위로 한꺼번에 진행됐는데도 기다리는 행렬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지하철2호선 시청역 지하대합실과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인근까지 3㎞ 넘게 꼬불꼬불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길에서 3시간 이상을 기다리기도 했다. 추모행사를 주관한 노사모 회원은 “경남 봉하마을 빈소 등 전국 분향소에서 오늘 하루 30만명이 분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분향소를 찾았던 시민 중 500여명이 오후 8시10분쯤 “시민광장인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자.”며 시청광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한때 시청에서 충정로로 향하는 편도 3차선 도로 가운데 2개 차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전날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설치된 이후 추모객 중 일부가 도로를 점거한 것은 처음이다. 경찰은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자마자 곧장 이들을 에워싸고 인도 쪽으로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양측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공무원 곽모(50)씨는 “훌륭한 대통령을 떠나보낸 게 한없이 부끄럽고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여대생 임모(22)씨는 “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의 아버지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경기 부천지역 노사모가 송내역 북광장에 마련한 분향소와 수원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수원역 앞에 설치한 분향소에도 수천명의 시민들이 조문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는 모교인 개성고(옛 부산상고) 총동창회가 서면 장학회관 6층에 마련한 분향소에도 조문이 이어졌다. 강태룡 총동창회장이 직접 추모객을 맞이한 가운데 동문인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이 이른 아침에 분향소를 찾았다. 시민·학생·시민단체 등 100여명은 전날 부산진구 서면 쥬디스태화 옆에서 시작한 촛불추모제를 이날 오후에도 계속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지였던 광주지역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옛 전남도청 본관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추모객들이 몰려들더니 오후 한때 조문 행렬이 100여m나 이어졌다.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과 민형배·이형석 전 비서관 등 이 지역 참여정부 인사들이 온종일 분향소를 지키며 애도했다. 전북 전주시내 오거리문화광장 분향소를 찾은 이모(40)씨는 “대통령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들과 딸까지 수사대상에 오르니 심적인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상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특집 코너가 마련된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이 글머리에 ‘▶◀근조’ 리본을 달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음 토론방인 ‘아고라’의 추모 서명에는 이날 자정 현재 16만여명의 네티즌이 헌화와 함께 ‘지못미(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네이버의 추모 게시판에는 38만여명의 네티즌들이 애도 글을 남겼다. 아이디 ‘조국’은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디 그곳에선 힘들어하지 마세요.”라고 적었다. 전국종합 서울 김승훈 오달란기자 jhkim@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국민장·가족장 유가족 뜻따라 결정

    정부는 24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방식을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23일 오후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노 전 대통령의 장례형태에 대해 논의했으나 유가족과 협의가 늦어져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황인평 행정안전부 의정관은 “국민장 등 장례방식에 대해 유가족이 결정을 내리지 못해 내일 다시 의견을 받기로 했다.”면서 “유가족의 의견이 오는 대로 바로 임시 국무회의를 개최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 총리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밤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정부 차원의 애도를 표하기 위해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전·현직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장례는 ‘국장 및 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행된다. 국장은 지금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한 차례만 있었고, 최규하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 장례도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전대통령이 유서를 통해 화장을 언급한 점 등을 고려해 구체적인 장례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유가족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유가족이 원할 경우 가족장으로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앞서 이날 오전에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한 총리는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에 충격과 슬픔을 금할 길 없다.”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에게도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장례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정중하게 추진하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장례를 준비하도록 했다. 정부는 애도의 뜻이 담긴 담화문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 강주리 이영준기자 jurik@seoul.co.kr
  • 백악관 대변인 “휴대전화를 심문해야겠다”

    ‘대통령님 말씀’을 전하는데 자꾸 휴대전화 벨이 울려 대변인이 즉각 전화기를 뺏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 시절 수감자 고문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한 것을 공식 브리핑에서 다뤘다.오바마 대통령의 변심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대변인과 기자들 사이에 날선 문답이 오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리핑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대변인이 기자 휴대전화를 압수해 심문해야 하겠다고 농담한 일이었다.  깁스 대변인이 “사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대통령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발표하던 중 ‘따라딴딴’ 벨 소리가 들렸다.깁스 대변인은 “진동으로 해 놓으세요.아까 말씀드렸잖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딱딱했던 분위기도 조금 누그러졌다.  곧바로 한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고 깁스 대변인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또다시 같은 벨 소리가 들렸다.  한숨을 푹 내쉰 깁스는 왼손을 들어 까딱거리며 “전화기를 달라.”고 기자에게 요구했다.좌중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깁스 대변인은 괜한 농을 건넨 게 아니었다.단상을 떠난 그는 흰머리 남자 기자로부터 전화기를 받아든 뒤 출입문을 열며 “이 휴대전화를 심문해야겠다.”고 농담했다.문을 두 차례나 열어 누군가에게 휴대전화를 던졌다.  기자들 사이에선 야유와 조롱이 담긴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한 기자는 “당신 전화를 던졌어.”라고 소리쳤다.  깁스 대변인은 이어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투로 “미합중국 백악관 대변인으로서 결단을 내렸습니다.그 소리가 브리핑을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해 상황은 정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순간 짜고친 것 마냥 다른 기자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 장내가 또 들썩였다.  대변인은 또 “당신도요? 자,전화기 주세요.”라며 행동을 취하려 했다.그러나 이번 상대는 만만찮았다.백악관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빌 플랜트 CBS 기자였다.맨 앞줄에 앉아있던 그는 통화 상대방에게 “대변인이 전화기를 뺏으려 한다.좋은 생각 같지 않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계속 통화했다.  민망했는지 깁스 대변인은 플랜트의 뒤통수를 향해 “그렇게 차려 입으니까 은행원 같네요.”라고 비아냥댔다.  손수제작 영상물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을 본 이들은 백악관과 기자들이 이렇게 진중한 주제를 브리핑하면서 휴대전화 때문에 낄낄거리고 큰소리로 웃고 떠들어서야 되겠느냐며 불쾌하다는 반응 등을 보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노무현 소환 이후] 盧측 “朴 원치않아” 朴측 “그런말 안해”

    어색한 1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신문을 거부한 직후인 지난달 30일 밤 11시20분쯤 두 사람은 1분간 만나 “자유로워지면 만납시다.”(노 전 대통령), “건강 잘 챙기십시오.”(박 회장)라는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헤어졌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소환의 ‘핵심’으로 고대했던 대질신문이 불발된 까닭은 무엇일까. 대질신문을 둘러싼 세 가지 의문점을 정리했다. ●박 회장은 진짜로 동의했나 대질신문이 무산된 이유를 박 회장은 원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1일 새벽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노 전 대통령측 김경수 비서관이 “박 회장이 ‘저도 대통령님과 대질신문을 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히며 항의했다. 그러자 곧바로 박 회장측 공창희 변호사가 “박 회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 대질신문 거부는 진실게임으로 번졌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대질 불발 후 박 회장측한테서 노 전 대통령과 대질신문을 원했다는 사실확인서를 받았다.”며 문서를 공개하며 논란을 잠재우려 애썼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11시쯤 우병우 중수1과장이 “박 회장이 오래 기다렸는데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요.”라고 질문하자 노 전 대통령 “그만합시다.”라고 짧게 내뱉었다. “대통령께서 박 회장에게 직접 말할 수 있겠는가요.”라고 우 과장이 다시 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 그럼 인사나 한 번 하죠.”라고 일어섰다. 8시간이나 옆 조사실에서 기다리던 박 회장은 그때까지, 노 전 대통령과 대질신문을 하는 줄 알고 1120호 조사실로 들어섰다.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에게 악수를 청한 뒤 마주서서 “고생이 많죠.”라고 운을 뗐다. “대질 내가 안 한다고 했어요. 내가 박 회장에게 이런저런 질문하기가 고통스러워서…”라고 말을 이었고, 박 회장은 “저도 고통스럽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모습을 양측 변호인단도 지켜 보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왜 거부했나 노 전 대통령이 대질신문을 거부하며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아니고 이미 시간도 늦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내는 ‘검찰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주도권 확보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600만달러를 둘러싼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엇갈린 진술을 검찰은 대질신문으로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페이스대로 조사를 끌고 가려는 노 전 대통령은 이를 허용할 수 없었고, 결국 대질신문 거부라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또 불리해 거부했다는 세간의 해석과 달리, 되려 ‘박 회장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는 관측도 있다. 변호사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이 정면승부 때 불리한 증언을 할 가능성은 낮지만, 박 회장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검찰 안팎에 전망해 왔다. 이날 소환 조사로 검찰에 ‘히든 카드’가 없다는 것을 파악한 노 전 대통령이, ‘20년 지기’ 박 회장을 이곳에서 무너뜨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검찰, 왜 무리수 뒀나 검찰의 대질신문 밀어붙이기에 대한 비판도 크다. 노 전 대통령에게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언론에 대질 계획을 먼저 발표했고, 박 회장을 오후 3시부터 대기시켜 놓는 등 잇달아 이례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홍 수사기획관은 “대질 계획 발표는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 차원이고, 호송차 운행에 따라 박 회장을 일찍 부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민희 장형우기자 haru@seoul.co.kr
  • [盧 전대통령 소환] 檢 “조사 협조를” 盧 “서로의 입장 존중을”

    30일 오후 1시33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본관 703호 중앙수사부장실. 우전녹차의 여유로운 향과 달리 날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주 앉은 이인규 중수부장은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 대통령님을 소환조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그럼요.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가득한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겠죠.”라고 답했다. 듣기에 따라 검찰을 비꼬는 말로도 들릴 법했다. 이 중수부장과 그 옆에 앉은 홍만표 수사기획관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반면 노 전 대통령 옆에 앉은 문재인· 전해철 변호사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어쨌든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에 면목이 없군요.”라고 말했다. 11층 특별조사실로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오자 이 중수부장은 “이 수사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고, 조사시간도 많지 않으니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잘 협조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과정에서 검찰의 프레임과 제가 말하는 사실이 다를지라도 서로의 입장을 존중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검찰의 시나리오와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이 다르다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내 놓으라는 말이다. 만약 증거가 없다면 “상식적으로 몰랐을 리 없다.”고 우기지 말라는 것이다.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지자 노 전 대통령은 “자 이제 가야 할 것 같네요. 차 잘 마셨습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을 배웅한 뒤, 바로 임채진 총장에게 ‘티 타임’에서 오간 이야기를 보고했다. 수사에 적극 대응하겠다던 홈페이지의 글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홍 수사기획관과 이 중수부장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조사실 상황을 지켜보며 조사 진행이 막힐 때마다 시시각각 총장에게 보고하고, 노 전 대통령을 조사하고 있는 우병우 중수1과장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이날 대검 수사라인은 숨가쁜 모습이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22일 오후 5시53분 자신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글을 통해 “이제 문을 닫는 것이 좋겠다.”며 “오늘 아침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를 정리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이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서면 질의서를 전달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자신은 “이미 민주주의,진보,정의,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며 “여러분은 저를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또 “’아내가 한 일이다,나는 몰랐다.’ 이 말은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느냐?”고 되묻고 “국민들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어서 (중략) 저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그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털어놓았다.  피의자로서의 최소한 권리도 누리고 싶었다고 밝힌 노 전 대통령은 사람사는 세상을 통해 이런저런 변명도 하고 검찰이나 언론의 추정에 대해 항변도 했다고 밝힌 뒤 가장 가까웠던 친구 정상문 전 총무 비서관이 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이기 때문에 이제 이 마당에 이상 더 사건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이라며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이 올려진 지 정확히 8분 뒤인 6시1분 첫 댓글을 시작으로 7시 현재 조회수 1만건,댓글 300개가 달리는 등 접속이 폭주하고 있다.  ‘노생금‘이라는 네티즌은 “안됩니다.절대.저희는 어떻게 하라구요?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무현 (전)대통령님.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라고 글을 남기는 등 대부분 홈페이지를 폐쇄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주조를 이뤘다.간혹 ‘노빠’ 등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하며 노 전대통령을 공격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이 주축이 돼 만든 인터넷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의 폐쇄 여부에 대해 궁금해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 전문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처음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설마’했습니다.  설마 하던 기대가 무너진 다음에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용서 바랍니다.’ 이렇게 사과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적당한 계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형님이 하는 일을 일일이 감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변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500만불, 100만불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 말은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국민들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정치를 떠난 몸이지만, 제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 지금까지 저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생각한 것은 피의자로서의 권리였습니다. 도덕적 파산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피의자의 권리는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질러 가는 검찰과 언론의 추측과 단정에 반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마당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면목도 없습니다. 그는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저는 그 인연보다 그의 자세와 역량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를 더욱 초라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욱 노엽게만 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이 마당에 이상 더 사건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에게도 동의를 구합니다. 이 마당에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저를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 아니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방향전환을 모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상 더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사정이 되었습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를 정리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관리자는 이 사이트는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협의를 하자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제 ‘사람 세상’은 문을 닫는 것이 좋겠습니다.
  • [김형준의 정치비평] 노무현의 눈물 Ⅱ

    [김형준의 정치비평] 노무현의 눈물 Ⅱ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 비서관이 ‘검은 뭉칫돈’ 계좌를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수’ 의혹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 3억원뿐만 아니라 기업인들로부터 수수한 10억여원대 규모의 비자금을 차명 계좌로 운용한 혐의로 영장이 재청구됐다. 이에 따라 권양숙 여사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한테서 3억원을 빌렸다는 진술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아무리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해도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의혹은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번 사건이 죽은 권력에 대한 정치보복인지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그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국민에게 약속한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모두 6편의 TV광고를 제작해 방영했다. 지금 다시 봐도 가슴이 뭉클하고 진한 감동을 주는 수작들이었다. 당시 최고의 화제를 모았던 ‘노무현의 눈물’편에서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 네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대한민국.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두 번 생각하면 노무현이 보입니다.”라는 영상을 내보냈다. 유권자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어진 ‘상록수’편에서는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제가 검은 돈이 없어 선거를 못할 때 돼지 저금통을 보내 주신 분도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국민에게만 빚진 대통령, 노무현. 국민 여러분만을 위해 일하겠습니다.”라며 부패 척결을 약속했다. 특히, 대선 하루 전날 방영된 ‘편지’편에서는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세요.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하셨다면 우리 아이들이 커서 살아가야 할 세상을 그려보세요. 행복한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멘트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검은 돈을 수수한 것으로 판결이 나면, 이는 국가에 더 나아가 진보 세력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노무현의 비리 한 건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더러운 대한민국’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부끄러운 대한민국’으로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국가브랜드란 한 국가에 대한 호감도·신뢰도 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2008년에 발표된 ‘안홀트(Anholt) 국가브랜드 지수’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 가치는 세계 13위 경제 규모에 비해 크게 취약한 실정으로 33위를 차지하면서 GDP 대비 30% 미만으로 저평가되었다. 국가브랜드는 정부, 국민, 이민, 투자, 관광, 수출, 문화 등의 요인에 의해 평가받지만 전직 대통령이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다면 국가브랜드는 급격하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공들여 쌓아올린 ‘민주주의 성공국가’라는 이미지도 크게 훼손될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기존의 진보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나쁘게 변할지도 모른다. 지난 2007년 5월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실시한 국민 이념조사 결과 진보는 개혁(23.0%), 진취(16.8%), 발전(15.7%) 등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선점한 반면, 보수는 정체(20.1%), 수구(10.4%), 뒤처짐(5.3%)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높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진보는 무능하고 부패하며, 심지어 교활하기까지 하다는 나쁜 이미지로 변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애석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광고의 형식을 빌려 감히 진언하고자 한다. “국민이 심판자입니다. 노무현의 참회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두 번 생각하면 정직이 보입니다. 진실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정직이 국민에 대한 최상의 예우입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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