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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대 유괴사건 효주양 가족/상속세 2백15억원 신고

    ◎부친 정연태씨 별세… 4백86억 대물림/고 이병철회장 1백76억보다 많아 지난 70년대 두번이나 유괴됨으로써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효주양」의 아버지 정연태씨의 유족들이 9일 2백15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하겠다고 세무서에 자진 신고했다. 지난 해 12월18일 58살로 세상을 떠난 정씨의 유족(부인과 효주씨 등 3남1녀)들은 9일 부산지방 국세청 서부산 세무서에 상속재산 4백86억원에 대한 상속세 2백15억원을 자진 신고했다.고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유족들이 지난 88년 납부한 1백76억3천만원보다 훨씬 많은 상속세액이다. 유족들이 신고한 상속재산은 부산 서구 남부민동의 냉동창고(99억6천만원) 등 부동산 1백41억원과 은행 예금 및 주식 등 현금성 재산 3백45억원이다.정씨가 대표이던 문창수산(주) 소유의 선망어선 12척은 법인 재산이어서 상속 대상에서 제외됐다. 부산지방 국세청은 상속세가 거액이어서 3년에 걸쳐 나눠내는 연부연납 제도를 이용하도록 권했으나 유족들이 전액을 오는 15일까지 일시불로 납부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서의 관계자는 『정씨의 재산이 주로 은행 예금이나 주식 등 현금성이어서 상속세액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상속인의 하나인 효주씨(26)는 지난 78년 9월(당시 국교 2년) 하교 길에 중구 대창동 1가에서 유괴됐다가 33일만에 구출되는 등 2차례나 유괴됐으며 당시 대통령이 담화를 내는 등 전 국민이 그의 구출에 애를 태웠었다.
  • 북 「38선 퇴각」 전후(6·25내막 모스크바 새증언:11)

    ◎김일성,전황 불리해지자 “소군 파병” 급전/“연합군 북진 저지할 공군력 지원 절실” 호소/소 국방,“서울이남 모든 병력 신속 철수” 명령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밀리는 가운데 슈티코프 대사는 9월 30일 모스크바 본부에 대사관인원의 철수요청을 하기에 이른다.(N182sh.그로미코가 스탈린에게 제출한 보고서)『미군기의 공습으로 북조선내 거의 모든 공장이 파괴됐음.이런 상황하에서 업무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 군사고문단과 대사관 직원 거의 전부를 본국귀환토록 허락해주기 바람』 이에 대해 그로미코외상은 『평양에 불안감을 배가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철수는 불가하다』고 답했다고 보고서에 적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지도부는 마침내 소련의 직접개입 없이는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는 내용의 스탈린앞으로 보내는 서한을 준비했다.이 서한은 9월 29일자로 김일성·박헌영 공동명의로 작성돼 이튿 날인 9월 30일 슈티코프 대사에게 전달됐으며 슈티코프대사는 이를 같은 날 곧바로 스탈린에게 전문으로 보고했다.(19 50년 9월 30일 스탈린앞으로 보내는 슈티코프의 전문.전문번호 N60 03 08sh) ○박헌영과 공동명의 『스탈린 동지께. 조선노동당을 대신해 우리는 조선해방자이시고 전세계 노동자의 최고지도자이신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당신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는 조선인민들에게 끊임없는 동정과 원조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서한을 통해 우리는 조선민족이 미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는 해방전쟁의 전선상황에 대해 보고드리고자 합니다.인천(제물포)지역에 상륙작전이 있기 전까지는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인민군들은 진격하는 적부대를 맞아 용감하게 싸우고 있습니다.그러나 상황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적의 공군은 약 1천대에 달하는 각종 비행기를 갖추고서 공중을 완전장악해 우리의 저항을 용납치 않습니다.전선에서는 적의 기갑부대들이 전투기 수백대의 엄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작전을 펴 우리 병사와 장비에 막대한 손실을 가하고 있습니다.동시에 적의 폭격기들은 철도,도로,전화·전신망,수송수단등 모든 시설을 자유자재로 파괴하고 있습니다.이로 인해 아군은 정상적인 보급이 안되고 제때 작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이런 어려움은 모든 전선에서 공통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적이 서울을 완전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이 때문에 남조선 남부전선에서 싸우던 인민군은 북쪽에 있는 적에게 봉쇄당했습니다.남쪽전선에 있는 병력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탄약,무기,식량을 공급받지 못합니다.어떤 부대들은 부대간 통신도 안되고 적에게 포위됐습니다. ○보급로 끊겨 전선 마비 적들은 서울을 점령한 뒤 북으로 진격을 계속할 것이 분명합니다.따라서 우리는 이런 불리한 상황이 계속돼 미군침략자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으로 믿습니다.병력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적절한 공군력이 필요합니다.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훈련된 병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이 우리에게 계획을 실행에 옮길 여유를 주지 않고 신속한 작전으로 북조선으로 진격해온다면 그 때는 우리 힘으로 적을 막을수 없습니다.따라서 경애하는 요시프 비사리오노비치,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지원을 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다시말해 적이 38도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소련의 직접 무력원조가 정말 필요합니다. 만약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중국을 비롯한 여타 인민민주국가의 군대내에 국제의용군 부대창설을 지원해 주십시요.그리하여 우리의 투쟁에 무력지원을 해주도록 하십시요.위의 요청에 대해 당신의 지시를 기다립니다. 존경을 표하며.조선노동당중앙위. 김일성·박헌영』 이 서한이 보여주듯이 김일성은 애당초 소련군 파병을 요청했다.이 요청을 받은 스탈린이 여러 구실을 달아 소련군파병을 거부하고 대신 중공군을 보내라고 모택동을 설득한 것이다. ○“6개사단 창설 지시” 한편 소련당국은 9월 27∼30일자로 마트베트 장군이 연이어 보낸 전문에 대한 답신을 9월 30일 평양으로 보냈다.마트베트 장군의 전문은 김일성이 인민군총사령관과 국방상직은 겸직하고 남조선 사람들로 6개사단을 새로 만들고 싶으니 필요한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의 보고서였다.소련당국은 이 답신에서 김일성의 군직접통제를 위한 겸직과 남조선에서 데려온 사람들로 6개사단을 새로 만드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소련공산당정치국 결정.전문번호 NP78­118).아울러 6개 사단창설에 필요한 무기,탄약,기타장비는 10월 5∼20일 사이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이 전문은 중국 운전병을 파견해주도록 소련이 중국에 말해달라고 한 부탁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그런 부탁을 중국동지들에게 직접 하는 것은 무방하되 소련을 핑계로 되지는 못하게 하라』고 못박았다. 한편 이 시기에 소련은 전황이 크게 불리해짐에 따라 한반도 전략에 있어 몇가지 시나리오를 동시에 검토하기 시작했다.이 시나리오는 크게 5가지로 나누어진다.ⓛ북조선에 전술적인 충고와 지원을 계속하는 것 ②북조선의 소련대표부 철수 ③북조선공산정권과 북조선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는 방안 ⑤철수후 반격을 위해 북조선군을 훈련시키는 방법 ⑥중국이 전쟁에 개입토록 압력을 가하는 것.결국 마지막 ⑦의 방안이 채택되기는 했지만 당시 모스크바와 평양간 오간 전문들은 나머지 네가지 방안 모두 심각하게 논의됐음을 보여준다. 문서들을 근거로 이 방안들을 하나하나 재구성해본다. ⑧전술적 충고. 9월 28일 서울수복과 함께 소련은 서울 이남에 남아있던 인민군을 북으로 철수시키는 문제가 첫째 과제로 떠올랐다.이 전술적 충고에서 소련당정치국은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가능한한 신속하게 병력을 북으로 철수시킬 것을 군사고문단에 지시했다.50년 10월 2일 불가닌 국방장관은 평양의 마트베트 소련군사고문단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포위된 병력을 철수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거듭 귀하에게 강조했음.남쪽에 포위된 인민군을 북쪽으로 철수시키는 일을 최우선 임무로 간주할 것.남쪽에 남아있는 병력들,특히 지휘관들에게 그룹이든 개별적으로든 어떤 수를 쓰더라도 북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할 것.전선이 따로 없음.그들은 자기 영토에서 싸우는 것임.인민들도 그들을 지원하고 있음.중화기들도 미련없이 버리고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신속히 북으로 철수할 것.야음을 이용하고 적이 아직 점령치 않은 지역을 이용해 철수할 것.어떻게든 포위망을 벗어나 가장 귀중한 자산인 병력만은 빼내올 것.이 임무수행을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할 것』 ○소 개입사실 탄로 우려 그러나 슈티코프 대사는 10월 5일 상황이 긴박하니 대사관직원 및 그 가족,군사고문단등 소련에서 파견된 인원 모두를 본국으로 철수시키자는 긴급전문을 본부에 타전했다.이에 대해 당정치국은 같은 날 답신전문을 채택 이튿 날 이를 슈티코프 대사에게 보냈다.소련대표부를 철수시키라는 내용이었다.(당정치국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문.N14 05sh) 『①소련 대표부 파견 인원과 고문단들을 귀국시키는 결정은 10월 5일자로 보낸 전문 N18 909에 의해 이미 지시한대로임.②재소한인들의 가족을 귀국시키는 문제는 상황에 따라 대사가 결정할 것.③공군기술자 가족과 군사고문단 가족은 조선영토에서 반드시 철수시킬것.④필요한 경우 재소한인을 포함,모든 소련시민은 소련과 중국영토로 철수시킨다는 대사의 제안에 동의함』소련군의 개입사실이 탄로날것을 두려워한 결정이었다. ◎새로 밝혀진 사실/소,국군38선 넘기전 「평양공관 철수」 거론/중국군 개입등 다섯가지 시나리오 검토 먼저 50년 9월30일 슈티코프가 모스크바 본부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인원의 철수를 요청하고 있는 사실은 이번 자료에서 처음 밝혀진 것이다.10월1일에 국군이 38선을 넘었음을 생각할 때 매우 빠른 것임을 알 수 있다.이는 미군의 공습 때문이었다.그러나 평양의 불안감을 이유로 그로미코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진 것이다. 전황이 크게 불리해지면서 소련이 다섯가지의 한반도전략 시나리오를 검토했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이번에 밝혀진 많은 사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의 하나일 것이다.즉 여기에서 소련은 북한에 대한 지원의 계속,소련대표부의 철수,북한정권의 한반도에서의 철수,반격을 위한 북한군 훈련,중국의 개입압력 등의 다섯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음이 최초로 밝혀진 것이다.이는 앞으로 전체 내용이 공개된다면 한국전쟁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점을 규명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이번 자료에서 우선은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정보를 얻은 셈이다. 9월28일 유엔군의 서울수복과 함께 북한군이 위기에 처하자 소련 국방상 불가닌이 직접 명령을 내려 가능한한 빨리 전원이 북한으로 돌아 오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점도 처음 밝혀졌다.가장 귀중한 자산인 병력을 데려오기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할 것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10월1일 국군이 38선을 넘자 소련은 자국 소련대사관 인원과 군사고문단들을 철수시킬 것을 지시하고 있음도 처음으로 밝혀졌다.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전쟁에는 소련 공산당이 최고위 수준에서 직접 개입하고 결정을 내려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회의 연재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이 「미소간의 전쟁」으로 넘어가면서 김일성과 박헌영을 비롯한 북한지도부는 소련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것 이상 군사적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박명림
  • 김일성·스탈린 모스크바 비밀회담(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5)

    ◎스탈린,김에 「3단계 남침계획」 수립지시/스탈린/“「엘리트 공격사단」·추가부대 창설을”/김일성/“모택동 동지도 조선해방 지원약속”/모택동,“김­스탈린 남침합의” 듣고 「조선인 사단 파견」 결정 □3단계 작전계획 ①38선 가까이에 병력집결 ②북에서 먼저 평화안 제의 ③평화안 거부땐 기습공격 김일성이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다룰 의제로 제의한 항목은 다음과 같다(1950년3월23일·슈티코프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 「1.남북조선 통일방안 및 방법(의도는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임) 2.경제문제. ⓐ)북조선 경제개발.개발계획의 방향·기간.2·3·5년? 남조선 개발문제는? ⓑ)북조선 철도의 전기화. ⓒ)소련으로부터 산업장비·자동차 추가수입문제. ⓓ)북조선 농업개발문제. ⓔ)소련전문가 파견. 3.중조관계. ⓐ)모택동과의 회담. ⓑ)중국과의 조약체결문제. ⓒ)중국거주 조선인,조선거주 중국인문제. 4.아시아 공산당·노동당간 협조문제.」 ○소서 특별기 제공 이 전문을 보낸 이튿날 슈티코프대사는 재차 김일성과 만나 스탈린이 김과 박헌영 두 사람을 만나는 데 동의했다고 통보했다.김일성은 출발일을 3월30일로 잡겠다고 말했고 이에 슈티코프는 특별기를 이용해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물론 이 특별기는 소련이 제공해야 하는 것이었다.슈티코프대사는 3월24일자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이 특별기는 3월29일 평양에 도착해야 함.비행기가 못올 경우 원산에서 군함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간 뒤 그곳에서 특별객차를 단 기차를 이용,모스크바로 가야 함」 이렇게 해서 김은 소련이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거의 한달을 그곳에 머물렀다.이 기간중 김일성은 세차례 스탈린과 회담했다.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시간·장소별로 별도기록한 문서는 발견되지 않는다.아마도 보안유지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아예 대화속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하지만 이들의 회담내용은 당시 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이 내용을 종합한 상세한 보고서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귀한 자료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전재하기로 한다(1950년3월30∼4월25일.김일성의 소련방문건.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작성). 「스탈린동지는 김일성에게 국제환경과 국내상황이 모두 조선통일에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강조했다.국제적 여건으로는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대해 승리를 거둔 덕분에 조선에서의 행동개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중국은 이제 국내문제로 인한 시름을 덜었기 때문에 관심과 에너지를 조선지원에 쏟을 수 있게 됐다.중국은 이제 필요하다면 자기군대를 무리없이 조선에다 투입할 수 있다.중국의 승리는 심리적으로도 중요하다.이는 아시아 해방의 기운을 증명했고 대신 아시아 반동세력과 그들의 주인인 미국·서방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미국은 중국에서 물러나 이제 더이상 군사적으로 새 중국당국에 도전치 못한다. 이제 중국은 소련과 동맹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세력에 대한 도전을 더 망설일 것이다.미국에서 오는 정보에 의하면 미국내에도 타국에 개입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소련이 원자탄을 보유하고 유럽에서의 위상이 강화됨으로써 이런 불개입분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이 해방의 찬반을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첫째 미국이 개입할지 여부를 검토하고,둘째 중국지도부가 이를 승인하는 경우에 한해 해방작전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투수단 기계화 김일성은 미국이 개입치 않을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그것은 북조선 뒤에 소련·중국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고 미국 스스로 대규모전쟁을 벌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내용. 김일성=모택동동지는 항상 조선전체를 해방하는 우리의 희망을 지지했습니다.모택동동지는 중국혁명만 완성되면 우리를 돕고,필요할 경우 병력도 지원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조선통일을 이루겠습니다.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탈린=완벽한 전쟁준비가 필수입니다.무엇보다 군사력의 준비태세를 잘 갖추어야 합니다.엘리트 공격사단을 창설하고 추가 부대창설을 서두르시오.사단의 무기보유를 늘리고 이동·전투수단을 기계화해야 합니다.이와 관련된 귀하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상세한 공격계획이 수립돼야 합니다.기본적으로 공격은 3단계로 작성하시오.(1)38도선 가까이 특정지역으로 병력집결.(2)북조선당국이 평화통일에 관해 계속 새로운 제의를 내놓을 것.상대는 분명 이를 거부할 것임.(3)상대가 평화제의를 거부한 뒤 기습공격을 가할 것. 옹진반도를 점령하겠다는 귀하의 계획에 동의합니다.공격을 개시한 측의 의도를 위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북측의 선제공격과 남측의 대응공격이 있은 뒤 전선을 확대할 기회가 생길 것이오.전쟁은 기습적이고 신속해야 합니다.남조선과 미국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강력한 저항과 국제적 지원이 동원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소련이 전쟁에 직접개입하는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소련은 다른 지역,특히 서방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다시 한번 모택동과의논할 것을 강조했다.모택동이 아시아문제에 정통하다는 점을 덧붙였다.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보낼지 모르기 때문에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일성은 전쟁승리에 대한 강한 자심감을 내 보이며 스탈린을 안심시키려 했다.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 보고서의 계속. 「김일성은 스탈린동지에게 왜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인지 상세한 분석을 해 보였다.공격은 신속히 수행돼 3일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또한 남조선내 빨치산운동이 강화돼 대규모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미국은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고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전체 조선국민은 열렬히 새 정부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강조했음.박헌영은 남조선내 빨치산활동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음.그는 20만 당원이 그곳에서 대규모폭동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음」 이 회담에서 김일성과 스탈린 두 사람은 1950년 여름까지 북조선군이 완전한 동원태세를 갖추고 북조선군 총참모부가 소련고문단의 지원을 받아 구체적인 남침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모스크바회담을 계기로 남침계획수립의 주도권은 어느덧 김일성으로부터 스탈린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남침승인과 함께 스탈린은 즉석에서 구체적인 3단계 작전방향까지 김에게 제시했던 것이다.한편으로 스탈린은 모택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한국전쟁을 아시아공산화운동의 일환으로 만들고자 했음이 이 문서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일은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모택동과 스탈린 두 사람중 누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두 사람은 때론 경쟁적으로,때론 상대측에 일을 떠넘기는 식으로 김일성을 지원했다.우선 중국은 1940년대말부터 김일성의 권력강화와 군사력강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국민당과의 내전중에도 모택동은 김일성의 남조선 해방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필요하다면 병력지원까지 할 것을 수차례 약속한 바 있다.다만 중국내전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던 것이다.그리고 모택동과 스탈린 두 사람은 남침문제를 주제로 회담도 가졌다.그래서 스탈린과 김일성 두 사람이 모스크바회담에서 모택동을 제외한 채 무력남침에 합의했다는 보고를 받고 모택동은 매우 섭섭한 반응을 보였다.물론 모택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지원의사를 재삼 다짐했다. ○방소결과 중 통보 김일성은 49년3월 모스크바를 다녀온 뒤,5월초 인민군 정치보위국장이며 당중앙위원인 김일을 중국으로 보냈다.김일성은 5월14일 슈티코프대사를 만나 김일의 방중결과를 통보했다(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보고전문.5월15일). 「김일을 중국으로 보냈다.방문목적은 중국공산당중앙위와 교류를 맺고 중국군내 조선인사단(만주출신 조선인으로 구성)에 관해 협의하기 위해서다」 하고 김일성은 설명했다.김일은 4월30일 고강(고강)을 만나 중국공산당 중앙위로 안내됐다.그러나 김일의 진짜방문목적은 조선군 사단을 북한으로 전출시켜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모택동은 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일을 통해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친서를 전달했다.친서에는 조선군 전출문제 외에도 남침문제가 언급돼 있었다.이에 대해 모택동은 『군사행동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으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답했다.시기적으로 스탈린보다 모택동이 먼저,더 적극적으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지지한 것이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일본 해군 아시아 최강”/함선 백65척 등 첨단전력

    ◎서방전문가/“중,규모 크지만 고철 불과” 【요코스카 AFP 연합】 일본의 해군력이 중국을 뛰어넘는 아시아 최고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서방 군사전문가들이 17일 밝혔다. 지난 16일 도쿄에서 남쪽으로 50㎞ 가량 떨어진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열린 자위대창설 40주년 기념 관함식에 참여했던 한 서방전문가는 중국 해군이 일본보다 규모가 훨씬 크긴 하지만 소수의 함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본해군은 총중량 33만t인 1백65척의 함선과 3백30대의 군용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 항공모함이나 순양함은 없지만 최신예 구춤함 60척과 잠수함 15척도 갖고 있다. 이밖에 최근 7천4백t급 이지스급 구축함 한 척을 진수시키는데 성공하는 등 최첨단 함선들을 속속 배치시키고 있다.
  • 지하철 부실시공 82건 적발/40개공구중 37곳 누수 등 하자

    ◎건설부/현장책임자·감독관 의법조치 요청 한진건설·선경건설·삼환건설·건영 등 대형 건설업체들이 맡은 지하철 터널공사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물론 시공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건설부는 지난 달 12일부터 25일까지 전국 6개 노선의 지하철 건설현장 79개 공구 중 40개 공구의 시공 상태를 검검,92%인 37개 공구에서 82건의 부실시공을 적발했다.그 내용은 ▲시공 잘못 25건 ▲품질관리 미흡 28건 ▲안전관리 미흡 19건 ▲감리 불성실 10건 등이다. 특히 주요 부실 시공으로 지적된 지하터널 벽체의 누수 현장은 ▲대창기업의 서울지하철 7호선 15공구 ▲선경건설의 7호선 16공구 ▲국제종합건설의 8호선 2공구 ▲경향건설의 8호선5공구 ▲건영의 8호선 10공구 ▲금강종합건설의 일산선 2공구 ▲삼환기업의 일산선 5공구 ▲한진건설의 일산선 7공구 등 16개소이다.금강종합개발의 경우는 4군데에서 누수현장이 적발됐다. 건설부는 29일 발주기관에 시정조치를 요청하는 한편 관련 시공업체 및 현장 대리인·감리자·감독관에 대해서는 책임소재를 가려 의법조치하도록 했다.
  • 지역민방 청문회 결산/업체간 우열순위 가렸다

    ◎재무구조·결격사유 여부 검증/선정과정의 공정·투명성 확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4개 지역의 민영방송 신청 지배주주들에 대한 청문회가 18일로 끝났다.청문회는 실사주 및 대표자의 됨됨이와 방송에 대한 의지등 이미 제출된 서류로 계량하기 어려운 사항등을 알아보자는 것이 그 취지.재무구조와 탈세 여부,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건전성,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등은 서류를 통해 이미 웬만큼 검증됐다.청문회는 또 공개석상에서의 질문을 통해 선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지녔다. 청문시간은 부산 대구 대전의 업체에는 2시간씩,9개 업체가 신청해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광주지역의 업체에는 1시간30분씩 돌아갔다.공보처는 청문위원의 명단이 미리 공개됨으로써 빚을 부작용을 우려해 철저하게 보안을 지켰다.오린환장관이 혼자 청문위원을 선정하고 청문회 당일에야 비로소 명단을 밝혔다.청문위원장인 이경재차관에게도 비밀로 했다.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의혹의 소지를 미리 차단하자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청문위원들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실사주들에게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불공정거래행위를 저지른 일이 있다거나 하는 점들을 그대로 적시했다.어떤 업체에게는 과거의 선거에서 그들이 발행한 수표가 나돌게 된 경위를 묻기도 했다.또 일부 대표자에게는 그들이 밝히기를 꺼리는 경력을 들추면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통해 결격사유를 조목조목 열거함으로써 여론을 통한 여과에 충실하려는 자세를 보였다.그 결과 업체간의 우열이 어느 정도 가려진 느낌이다. 자유건설 신극동제분 한창등 3개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부산에서는 섬유업에서 최근 통신기기 제작으로 업종을 다원화한 한창이 돋보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답변을 가장 깔끔하게 잘했다는 것이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자유건설은 재정능력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가 내려졌다.현금동원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극동제분도 준비를 잘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6개 업체가 신청한 대전에서는 실사주가 비교적 젊은 삼정종합건설과 대아건설이 무난하게 「면접」을 통과했다는 것이 중론.오랫동안 교육사업에 투자해온 삼정종합건설은 방송참여동기를 교육과 연결시켜 설명을 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대아건설은 한준수전연기군수사건때 한씨가 제출했던 부정선거의 증거자료 가운데 그들이 발행한 수표가 포함됐던 것에 대한 질문에 진땀을 흘리기는 했지만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는 느낌을 주었다.이밖에 우성사료 경성주택 국제특수금속 종근당도 별다른 무리없이 청문회를 잘 마쳤다. 대구에서는 우방이 그동안 영남대를 운영해오면서 쌓은 지역사회의 신망을 잘 설명했다는 평.같은 건설업체로서 탄탄한 재력을 갖추고 이 사업을 가장 먼저 준비한 청구도 세련된 답변태도로 까다로운 질문을 잘 받아 넘겨 호평을 받았다.동아백화점을 운영하는 화성산업과 동국방직 서한도 설명을 잘했다. 광주에서는 대창석유 라인건설 남양건설 대주건설 동화석유 등이 준비에 충실했다는 느낌을 주었다.국가이익과 지역정서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잘피력한 것 같다.
  • 조선족 5천명 열띤 환영/삼원평원 기공식 이모저모

    ◎「버려진땅」 개발에 중국인들도 고무 ○…5일 아침 발파식을 신호로 대역사에 들어간 삼강평원개발사업 현장은 고구려·발해의 혼이 서린 광활한 만주벌판의 일부분. 흑용강성 내륙 깊숙이 위치한 부금시에서 다시 자동차로 1시간이상 걸리는 삼강평원의 두흥농장 입구에는 한·중 양국국기와 함께 「삼강평원 두흥농장 한·중합자환영」이라는 대형현수막이 걸려 기공식 참석자들을 환영. ○…삼강평원을 관할하는 흑용강성 부금시에 거주하는 약 5천명가량의 조선족동포들은 이날 기공식에 참석할 한국대표단의 차량대열이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변에 나와 박수를 치며 환영. 이들은『과거부터 이 지방에선 우리민족의 영농법이 우수하기로 소문나 있다』면서 『이제 한국인이 일군 농장에서 우리손으로 거둔 곡식이 조국으로 공급된다니 조국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기뻐했다. 이에앞서 대륙개발측은 삼강평원개발공사가 끝나면 현지 고용인중 절반인 5백명을 조선족동포들 중에서 고용키로 이미 중국측과 협약을 맺었다. ○…중국인들은 지금까지 소외된땅으로 버려두었던 이곳이 비로소 한국인의 손으로 나마 개발된다는 사실에 매우 흡족해하는 표정. 이덕향 부금시장은 『부금시는 삼강의 복부에 위치해 면적이 광대할 뿐아니라 항구등 강안시설이 발달돼 농산물운송에 큰 이점이 있다』며 『개발사업이 성공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중국언론들은 중국의 「북대황」(황무지)으로 불리는 삼강평원을 「북대창」(곡창지대)으로 만들겠다는 장덕진 대륙연구소 회장을 높이 평가. 흑룡강일보는 지난 4일자에 장회장의 기사를 1면 머리와 세번째 기사로 사진 2장과 함께 보도하고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부금시 명예시장에 임명된 사실도 전했다.
  • 실리콘액 주사 등 불법 성형수술 성행/부작용에 30대주부 중태

    ◎돌팔이의사·약사 등 8명 구속/수억대 부당이득… 3명은 입건 부작용이 심해 사용할 수 없도록 돼있는 실리콘액을 사용,성형수술을 하거나 미용약을 임의로 제조 판매한 의사와 약사·미용사등 13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특히 이들로부터 시술을 받은 주부 가운데는 부작용으로 생명이 위독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밝혀져 무분별한 성형수술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8일 서울 종로성형외과의원 원장 이세용씨(34)를 비롯,중구 충무로1가 박규진성형외과 원장 박규남씨(38)등 의사 4명과 서울 종로구 종로 6가 대창약국 약사 조명자씨(49·여)등 모두 8명을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위반등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종로3가 인성의원 원장 조용만씨(36)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하고 무면허 의사 이동식씨(61)와 엄순복씨(35·여·서울 노원구 월계동)등 2명을 수배했다. 종로성형외과 원장 이씨는 일반의사로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이 없는데도 성형외과를 차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엄씨등 무면허 실리콘성형시술업자로부터 성형수술을 받고 피부 부작용을 일으킨 최모씨(33·여)등 환자 10여명을 넘겨받아 불법 의료행위를 한 혐의다. 더욱이 이씨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첫 시술때 투여된 실리콘등에 대한 정확한 검사도 하지않고 자신이 개발한 약을 2백만∼4백만원씩 받고 투약하는 바람에 이들이 또다시 피부괴사와 회복불가능한 근막염등에 걸리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씨는 환자 최씨에게 면역기능을 억제시키는 트리암시롱을 대량으로 투여하는 바람에 현재 최씨는 유방과 무릎 주위가 썩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엄씨는 미장원 주인등의 소개를 받고 찾아온 김모씨(39·여)등의 얼굴과 유방·다리·손등에 실리콘액을 투여해 성형시켜주고 3백50만∼4백만원씩을 받은 혐의이다. 이날 구속된 무면허 의사 조수형씨(61)는 입건된 아들 용만씨의 병원에서 자신이 직접 50만원을 받고 박모씨(35·여)의 코를 높여주는등 지금까지 2백50여명을 수술하고 진료비로 1억2천7백여만원을 챙긴 혐의다. 박규진성형외과 원장 박규남씨(38)는 의사 면허증을월 1백50만원에 빌려 지난 4월 한미의원이라는 또 다른 병원을 차린뒤 고용원 박순옥씨(39·여·구속)가 모집해온 11명에게 얼굴 피부등의 교정수술을 해주고 9백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약사 조씨는 92년 5월 의약품 톨로이드와 크레오신티분말·증류수등을 섞어 기미·검버섯·여드름 치료제를 만든뒤 1병에 2만원씩을 받고 팔아 모두 5천6백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 “황금알 낳는 거위”/치열한 쟁탈양상/지역민방 접수마감 안팎

    ◎21개사 마감일에 몰려 “눈치작전 극심”/부산엔 자유건설·한창 격돌 “관심집중” 31일 마감된 부산 대구 광주 대전등 4개 직할시의 지역민방 신청업체는 23개.전체적인 평균경쟁률은 5.8대 1이다. 지난 4월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교부된 신청서류가 1백장이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는 다소 낮다.그러나 컨소시엄구성의 어려움과 신청이전 우열이 드러나리라던 전망과 달리 평균경쟁률이 6대1에 육박한 것은 지역민방을 향한 치열한 쟁탈양상을 시사한다.서울방송의 예에서 보았듯 민영TV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서류를 접수시킨 업체는 새한방송(광주)과 대전방송(대전)등 2개.새한방송은 남양건설,대전방송은 삼정종합건설을 각각 지배주주로 하는 컨소시엄이다.하지만 제일 먼저라고 해봐야 30일 다른 업체보다 하루 앞서 서류를 제출했을 뿐이다.나머지 업체들은 마감시한인 31일 한꺼번에 서류를 접수시켰다.이같은 눈치작전은 다른 업체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사전탐색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민방신청에서 나타난 특징은 건설업체가 유난히 많다는 것.23업체 가운데 건설업체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12개나 된다.이밖에 제조업체 6개,도소매업 3개,통신및 음향기기 제조업체 2개가 민방에 관심을 나타냈다. 지역별로 보면 우선 부산에서는 자유건설 한창 신극동제분등 3개 업체가 전체주식의 30%를 점유하는 지배주주로 신청서를 냈다.신극동제분과 함께 4백억원을 제시한 자유건설은 자유흥업 자유개발등과 함께 자유그룹의 자회사로 동아대의 재단이기도 하다.정주영자유그룹회장은 대한건설업협회장을 맡고 있다.한창은 전화기등 통신기기와 방송장비를 만드는 업체로 4백80억원을 최초 납입자본금으로 내겠다고 밝혔다.대구에서는 우방 동국방직 청구 서한 화성산업(동아백화점)등 5개 업체가 신청했다.신문사업(영남일보)에 이어 방송에도 참여하리라던 갑을방적은 신청하지 않았다.대구에서는 건설업의 라이벌인 우방과 청구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 볼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예상대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곳은 광주.광주에서는 남양건설외에 대주건설 청전 대창석유 동화석유 라인건설 화성건설 에디슨전자 대한중석등 9개 업체가 신청서를 제출했다.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업체는 대한중석.대한중석은 얼마전 무명의 거평그룹으로 넘어갔다.대전에서는 대아건설 삼정종합건설 종근당 국제특수금속 우성사료 경성주택등 6개 업체가 신청했다.대아건설이 탄탄한 컨소시엄구성을 했고 당초 민방을 따기 위해 강력히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던 영진건설 대전피혁은 내부 사정으로 지배주주 신청에서 물러났다.
  • 4개직할시 민방 6대1경쟁/어제 신청마감/광주 9대1로 최고

    공보처가 31일 마감한 부산 대구 광주 대전등 4개 직할시의 지역민영TV방송 신청 접수결과 25개 남짓의 업체가 서류를 제출,전체적으로 약 6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지역별로는 광주가 9대1로 경쟁률이 가장 높았고 부산은 3배1에 그쳤다.대구는 5대1,대전은 6대1이었다. 공보처는 오는 10일부터 7월31일까지 서류심사,현장실사,공개청문회등의 심사과정을 거쳐 오는 8월 초순 최종 지역민방 운영주체를 선정,발표하고 8월 중순 방송국 허가를 내줄 계획이다. 지역민방 신청서를 제출한 업체는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대표자 성명과 지배주주 법인명) ▲부산=부산TV방송(장한성·자유건설) 부산방송(김성조·신극동제분) ▲대구=대구방송(서병주·동국방직) 대구방송(배학철·청구) 대구제일방송(차석준·서한) 대구텔레비전방송(박중길·화성산업) 대구텔레비전(손영호·우방) ▲광주=새한방송(마상렬·남양건설) 광주방송(이병춘·대주건설) 호남방송(곽노환·청전) 광주방송(장두원·대창석유) 광주TV(서규석·동화석유) 나남방송(홍종선·라인걸설) 광주광일방송(배영수·화성건설) 광주동양방송(조찬길·에디슨전자) 광주제일방송(김학명·대한중석) ▲대전=대전방송(박성범·삼정종합건설) 중부방송(전영효·대아건설) 대전방송(한국명·종근당) 충청방송(정연구·국제특수금속) 대전방송(임성기·우성사료) 대전중앙방송(유여복·경성주택)
  • 크림자치공 독립헌법 가결/92년 삭제된 독자외교·군대창설 살려

    ◎우크라,흑해함대 투입 진압 경고 【심페로폴(우크라이나) AFP AP 연합】 우크라이나의 크림 자치공화국이 20일 사실상 독립을 의미하는 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크림 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흑해함대 사령부는 이번 사태에 개입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앞서 크림자치공 의회는 우크라이나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실상 독립을 의미하는 헌법안을 놓고 표결을 실시,찬성 69,반대 2,기권 2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크림 시민권 발급 ▲독자적 외교정책 수행 ▲군대 창설 등을 담은 이 헌법은 지난 92년 채택됐으나 의회의 압력으로 독립에 관련된 주요 조항을 삭제당했었다. 인구 2백70만의 크림자치공은 주민중 약 70%가 러시아인으로 당초 러시아의 영토였으나 지난 54년 당시 소련 지도부가 우크라이나와의 화합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양도했었다. 그러나 크림 자치공 유리 메쉬코프 대통령의 대변인인 비아체슬라프 레베데프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키에프(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대한 복종을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크림 자치공의 독립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사용도 불사할 자세이다. 크라프추크 대통령은 표결 하루전인 19일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 헌법을 준수하도록 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자치공 관리들이 『군사 쿠데타』로 규정하고 있는 경찰병력 접수명령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인테르팍스 통신도 우크라이나 외무부가 크림 경찰권을 중앙정부하에 둔다는 명령이 내려졌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 “지역민방 잡아라”/업체들 물밑 경합/4개지역 30여기업 눈독

    ◎우방·청구 참여채비/대구/영진그룹 등 3파전/대전/자유그룹·화승 각축/부산/최대 10개사 나설듯/광주 지역민영방송 참여를 원하는 업체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공보처가 신청서를 교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8일.4일밖에 지나지 않은 21일 벌써 1백장 이상이 나갔다.또 2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보처의 지역민방설명회에는 3백명이상이 몰려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지역민방이 우선적으로 신설될 곳은 부산 대구 광주 대전등 4개 직할시.정부는 5월 한달동안 신청을 받아 8월초 전체주식의 30%를 소유하는 지배주주와 10%미만의 중소주주등 운영주체를 선정할 예정.또 내년 4월 시험전파를 발사하고 상반기엔 본격 방송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지역민방 참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업체는 대략 30개.지역별로 보면 광주가 약 10개로 가장 많고 부산(약 9개) 대구(약 8개) 대전(약 4개)의 순이다. 부산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업체는 자유그룹 한창 화승그룹 동성화학 국제상사 흥아타이어 한일합섬 한국주철관 대선주조등.대부분 증권시장에서 민방관련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업체들이다.아직도 권력의 의중이 낙점의 관건이라는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듯 부산출신인 김영삼대통령과의 관계를 들먹이며 공공연히 세를 과시하고 있다. 자유그룹은 중앙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유건설 자유흥업 자유개발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업체.동아대의 재단이사이기도 하다.대한건설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주영그룹회장이 김영삼대통령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이 때문에 항간에서는 자유그룹이 지배주주가 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구지역에는 우방주택 청구주택 대구백화점 화성산업(동아백화점) 건영 갑을방적 금강화섬등이 민방에 참여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가운데 우방주택과 청구주택은 수도권 신도시 건설에 참여하면서 사세가 급신장하고 있다.또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도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대구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중 하나인 갑을방적도 신문사업(영남일보)에 이어 방송에도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광주지역에는 남양건설 라인건설 대창석유 동화석유 가든백화점등이 이미 참여의사를 밝혔다.또 최근 대한중석을 인수해 주목을 끈 거평그룹과 나산실업 신원통상 대신증권 일우공영등이 참여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대구 광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규모가 작은 대전지역은 영진그룹 우성사료 동성의 3파전의 형태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아건설·대전피혁이 얼마전부터 부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영진그룹은 영진건설 영진유통 금강산업 엑스포컨트리클럽 영진중기 영진개발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고 우성사료도 상당한 자금동원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밖에 이번 지역민방 대상지역에서 제외되기는 했지만 공보처가 96년 도청소재지를 포함한 7∼9개 도시,96년 이후 10개 안팎의 도시에 지역민방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이들 지역을 노리는 업체도 많다.전북지역의 경우 쌍방울과 미원이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켈도마땅한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첫 여성시장 광명의 전재희씨/“남편보다 앞서 미안”

    ◎행시도 여성 1호… 20년만에 영광/“여성시장이 뉴스 안되는 사회돼야” 『광명시 주민들로부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정직하고 진지한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첫 여성시장 탄생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광명시장에 발탁된 전재희노동부직업훈련국장(45·이사관). 16일 상오 9시30분쯤 노동부주관으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여성계인사 초청간담회」를 마친뒤 임명소식을 전해듣고 『전국장 축하해요.잘해보세요』라는 주위의 축하인사를 받는 전시장의 얼굴은 한동안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행정고시 여성1호(73년 13회)로,사무관으로 츨발한지 19년만에 이사관(2급)으로 고속승진을 한 여성관료로 화제가 됐던 그녀는 이번에 또 첫 여성시장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49년 경북 영천군 대창면 오길동 농사꾼집안에서 2남1녀의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변호사가 돼라」는 부모님과 동네사람들의 말을 「귀가 아프게」 듣고 자랐다. 그녀는 5살때 대구로 이사,중·고교를 다녔고 학교옆 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을 몰래 방청하면서 변호사의 꿈을 키웠다.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 2학년때.당시 대구지방노동사무소에서 한달간 일용잡급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시정을 건의했는데도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계기가 됐다. 행시에 합격한뒤 문화공보부에서 1년간 수습사무관을 거친 그녀에게 보사부와 노동청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가 왔다.그녀는 「여성에게 알맞는 자리」라는 보사부의 권유를 뿌리치고 과감히 노동부를 선택했다. 부녀소년과장·임금복지과장·훈련기획과장등 주요과장을 거친 그녀는 부이사관(3급)승진후 92년 여성도 능력에 맞는 자리에 배치돼야 한다는 최병렬장관의 방침에 따라 남성관료만이 차지했던 요직에 발탁되는등 남자이상의 추진력과 폭넓은 행정경험을 인정받았다. 주변에선 김영삼대통령의 여성중용방침과 전시장의 능력이 맞아떨어져 이번에 시장에 뽑힌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나이는 한살 적으나 국가고시(기술직)는 한해 선배인 남편 김형율씨(44·조달청 가격2과장)는 그녀보다 2계급아래. 『서기관승진은 남편이 나보다 한해 빨랐다』면서 남편 체면을 앞세우는 그녀는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냐고』고 웃음지었다. 상공회의소에서 다음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곧장 과천 노동부청사로 들어오는 승용차에서 기자에게 『여성이 시장되는 것이 더이상 뉴스가 아닌 사회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그녀는 대입을 앞둔 1남1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경북 영천출신 ▲영남대 행정학과졸(72년) ▲행시 13회(73년) ▲노동부 부녀소년과장·재해보상과장·부녀지도관·노동보험국장·직업훈련국장(74∼94년) ▲미네소타주립대 수학(91년)
  • 방송매체 무한경쟁시대로/지역민영TV 신설 허용의 뜻

    ◎과열경쟁 우려,직할시→도 단계적 확충/언론사·재벌 참여 배제… 심사과정 투명화/독립법인형식 불구 SBS 네크워크화 시각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견되는 지역민영TV방송국의 대상지역과 업자선정절차가 확정됨으로써 방송매체의 무한경쟁시대가 활짝 열렸다.「6공」시절 SBS가 새로 허가되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파문을 돌이켜 보면 비록 지방에 설립되는 민방이라해도 그 관심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보처의 9일 발표내용은 현실과 당위성을 모두 고려한 절충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새정부들어 지역민방의 설립을 추진한다는 방침이 결정되자 지역별로 민방을 유치하려는 치열한 로비가 전개됐다.민방을 노리는 업자는 물론 정치권과 지역유지들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공보처는 이에 따라 ▲직할시에만 민방을 두는 안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7∼9개를 허가하는 안 ▲포항 강릉 울산등을 포함해 10개 이상의 지역민방을 만드는 안등을 놓고 고심을 해왔다.그러다가 결국 단계적으로 지역민방을 허가하는 방안을 채택한 것이다. 민방신설 지역을 한꺼번에 확대할 때 전국적으로 벌어질 과열경쟁 양상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으로 분석된다.그렇다고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높아가는 지역민방 시청욕구를 특정지역에서만 해소해 줄수도 없다는 당위성을 고려,단계적으로 설치지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공보처가 부산 대구 광주 대전등 4개 직할시에 민방을 우선 설치하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대목은 인천을 포함할지 여부였다.인천은 경제규모에 있어서는 대구 못지 않은 도시이다.그러나 서울지역 민방인 SBS의 시청권이라는 점이 이번에 민방설립지역에서 제외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공보처는 또 내년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민방업자 선정이 자칫 정치바람에 휘말릴수 있다고 보고 처음 연말로 잡았던 선정시기를 8월초로 앞당겼다. 공보처의 구상이 차질 없이 진행되려면 4개 직할시에 대한 민방업자 선정절차가 투명해야 한다.새정부들어 공보처는 「5·6공」 때와는 달리 CA­TV등의 방송업자를 비교적 잡음 없이 선정해왔다. 공보처는 이번 지역민방 허가에서도 3단계 심사과정을 거쳐국민들이 한 점 의혹도 갖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1단계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거쳐 2단계에서는 공개청문과정을 갖기로 했다.특히 주주구성및 임원의 적격성,재정능력및 자본의 건전성,방송국 경영 기본계획의 적정성등을 중심으로 세부사항을 나누어 1천점 만점의 객관적 점수를 부여하도록 함으로써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될 소지를 차단했다.지역민방은 SBS와는 독립법인으로 허가되나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을 공급받을 것으로 보여 사실상 SBS의 전국네트워크화로 이어질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지역민방에는 기존 언론사나 재벌의 참여는 배제된다.하지만 지역에서 탄탄한 재력을 가진 기업들이 민방을 해보려고 일찍부터 움직이고 있어 경쟁이 만만치 않을 공산이 크다.부산은 자유그룹 한창,대구는 청구주택 우방주택 대구백화점 동아백화점 갑을방적,광주는 일우공영 남양건설 대신증권 라인건설 대창석유 동화석유 나산실업 거평 가든백화점 신원에벤에셀,대전은 대아건설 영진건설 유성사료 동성등이 민방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 공보처장관 일문일답/4개직할시 민방 내년 4월 시험방송/인천은 SBS 가시청권에 들어 제외 오인환공보처장관은 9일 지역민방신설계획을 발표하면서 『방송시설 준비등을 감안할 때 내년 4월쯤이면 시험방송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오장관과의 일문일답 요지. ­지역민방의 실질적인 방송개시 시기는. ▲오는 8월초 4개 직할시의 방송운영주체가 선정되면 시설 등을 갖추는데 8개월동안의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따라서 내년 4월이후 시험방송이 가능할 것이며 곧이어 정식방송이 개시될 것으로 본다. ­대기업이나 기존 언론사의 참여가능성은. ▲방송관계법에 제한규정이 있다.즉 방송법인 주식의 독점적 소유가 제한되며 대기업의 방송법인 주식소유도 금지되고 방송법인의 겸영 또한 금지된다. ­결과적으로 지역민방의 총수는 20여개가 되는가. ▲오는 2천년대까지 전국에 걸쳐 90%이상의 가시청방송망이 구성되도록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며 대략 15∼20년의 기간을 두고 발전하는 형태를 갖출 것이다. ­직할시 가운데 인천이 빠진 이유는. ▲인천이 지니고 있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이다.KBS MBC SBS등 기존 방송의 가시청권 지역으로 독립적인 지역민방을 두는 것은 기존 방송사의 주파수와 상충되는 문제점이 있다.또 인천지역에서는 충분하게 독립할 수 없다는 판단도 감안했다. ­오는 96년 추가로 7∼9개 지역민방을 선정하는 것과 관련한 세부내용은. ▲현재 방송환경이 매우 빨리 변하고 있다.해당지역의 재정자립도,광고시장의 잠재력등 복합적 요인에 비추어 볼때 1∼2개 정도는 가변적일 수 있다.따라서 96년에 선정될 지역민방은 7개가 될 수도,9개가 될 수도 있다.다만 도청소재지는 우선적으로 선정하게 될 것이다. ­기존 방송사와의 프로그램 제휴문제는. ▲지역민방은 프로그램의 15%이상을 자체제작해야 한다.이를 늘리는 문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므로 기존 방송사와 제휴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따라서 지역민방은 지방방송국이 없는 SBS와 대부분 제휴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민방과 방송사간 프로그램 제휴가 가능하다면 내년에발족될 CA­TV 가운데 연합TV뉴스의 프로그램도 제휴를 통해 방송할 수 있는가. ▲법률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지역민방간의 프로그램 제휴나 공동제작도 가능하다.
  • 미,“NAFTA 중남미 확대”

    ◎클린턴 계획/칠레 내년말 가입… 15년내 완결 【뉴욕 연합】 클린턴 미행정부는 내년말까지 칠레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회원국으로 추가가입시키고 향후 10∼15년내에 NAFTA를 확대해 북미와 중남미전체를 포함하는 자유무역시장을 창설하는 계획을 마련중이라고 뉴욕타임스가 4일 정부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클린턴대통령은 금년 봄에 개최될 것으로 잠정 예정된 34개국 미주지역 지도자회의에서 자유무역지대창설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관리들이 말했다. 미정책입안자들은 미주지역을 망라하는 인구 7억5천만명의 무관세단일시장의출범은 NAFTA에 가입하려는 남미국가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수출시장으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어 미국도 무관세혜택을 누리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육본인사참모부장 경질/군아파트 뇌물사건/임종섭소장 수뢰 확인

    ◎후임에 곽동도소장 육군7사단 군인아파트신축공사와 관련한 뇌물수수사건을 재수사해온 육군은 8일 업자로부터 찬조금명목으로 4천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전7사단장 임종섭육군본부인사참모부장(소장·육사22기)을 이날짜로 보직해임하고 후임에 곽동도육본동원참모부장(소장·육사21기)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육군은 이날 최종수사결과 임소장이 7사단장 재임시절인 지난 91년 12월16일부터 지난 4월19일까지 강원도 춘천소재 대덕건설등 8개 건설업체로부터 부대창설기념일등 각종 부대행사때 장병위문금 형식으로 매회 1백만∼2백만원씩 40여차례에 걸쳐 모두 4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육군은 임소장의 17개 예금계좌와 1백만원이상의 수표추적등을 통해 수수금품의 사용처를 파악한 결과 임소장이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김부자 모습담은 미술작품 대량제작(북한 이모저모)

    ◎펄프폐액으로 식물성장촉진제 개발 ○만수대창작사서 주도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91.12)이후부터 김일성·김정일 우상문예물 창작에 박차를 가해온 북한은 최근 김일성·김정일의 모습을 담은 미술작품들을 대량 제작,우상선전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 중앙방송이 지난30일 보도한 바에 의하면 이들 미술작품들은 모두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되고 있는 김일성의 경우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의 내용을 소재로한 작품들과 6·25동란중 전쟁을 독려하는 김일성의 모습을 담은 작품,그리고 최근 김정일 송시(92.2)를 쓰는 모습을 그린 작품 등 김일성의 유년시절부터 현재 모습까지 모두 망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경우는 지난7월 휴전40주 행사시 김정일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나 김의 우상가요를 소재로한 작품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북한미술계는 이들 작품을 모두 『국민적 가치를 가지는 기념비적 걸작』으로 선전하면서 이를 통해 사회주의 위업완성을 위한 주민들의 투쟁을 독려하고 있다. ○제지공장 부설물 이용 ○…주민들의 생필품난 해소를 위해 각종 폐기물의 재활용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은 최근 제지공장의 펄프폐액을 이용,단백질사료·식물성장촉진제 등을 생산하는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부기관지 민주조선에 의하면 길주펄프공장내 「폐설물이용연구실」에서는 최근 펄프폐액을 이용하여 단백질의 생합성과정에 필요한 「리보핵산」을 추출하는데 성공,50t능력의 단백질사료 생산공정을 신설했으며 이어 10t능력의 비타민D·U생산공정을 추가로 건설,「뇌대사부활제」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연구실은 펄프폐액에서 농작물의 생육을 촉진시키는 성장촉진제를 얻어내는데도 성공,20t능력의 생산공정을 가동하면서 이의 대량생산을 위한 설비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이들 부산물을 이용한 화학제품 및 미생물 단백질사료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평양 대중목욕탕 태부족 ○…평양시내에 주민들이 이용할수 있는 대중목욕탕이 크게 부족하여 많은 주민들이 각종 피부염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주목되고있다. 최근 월남한 귀순자의 증언에 의하면 평양시의 경우 많은 초고층아파트들이 건립됐음에도 불구,대중목욕탕은 지난 80년대 각 구역마다 1개소씩을 건립한 후 그 수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평양시민들 대부분이 월 1회 목욕하기가 힘들며 특히 최근들어서는 유류난과 전력난 심화로 수돗물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그나마 구역마다 설치된 목욕탕들이 가동을 중단,목욕하기가 더욱 힘들어 졌다는 것이다. 현재 평양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목욕탕은 창광원과 문수원등 몇개소에 불과하며 이들 대중목욕탕의 경우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50∼60여명에 불과하여 주민 1명이 목욕을 마치고 나와야만 1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달맞이꽃 약재 활용 ○…북한은 최근 야생식물인 달맞이꽃을 인위적으로 재배,그 씨앗에서 나오는 기름을 약재 및 식료품제조에 널리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에 의하면 달맞이꽃 씨앗에는 인체에 필수적인 리노레닌산·올레인산 등 여러가지 활성성분이 들어있어 북한에서는 이 기름을 인체의 혈전을 막고 혈중지방을 낮추며 류머티스관절염을 예방하는 약재로 쓰는 한편 뿌리는 가축사료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육본 인사참모부장 임종섭소장 곧 해임/수뢰사실 확인

    육군 7사단 군인아파트 신축공사관련 뇌물수수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육군은 1일 당시 사단장인 임종섭 육본인사참모부장(소장·육사22기)이 부대운영비 명목으로 금품을 받아 사용한 사실을 밝혀내고 조만간 임인사참모부장을 보직해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인사참모부장은 그동안의 소환수사에서 군인아파트 신축공사와 관련,뇌물을 받은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으나 군수사당국은 부대창설일 등에 부대운영비 명목으로 4천여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 북경 교외에 「한국촌」 생긴다/하북성 대창에 내년 착공

    ◎북경 중심서 38㎞… 17만평 규모로/제조·상업·관광·오락업체 등 유치 【북경=최두삼특파원】 북경교외 한적한 농촌에 「한국촌」이 생겨난다. 중국 하북성 대창현당국은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말부터 개발을 시작한 대창경제기술개발구내 17만평부지에 「한국촌」을 건설,한국의 각종 제조업체와 상업·기술·관광·오락업체들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촌 건설부지는 북경∼하얼빈간 국도와 북경∼진황도간 철로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경중심가에서는 38㎞ 떨어져 있다. 회주자치구역인 이곳 대창현당국은 내년 6월까지 전기·도로·통신·상하수등 모든 기반시설을 갖추고 나서 곧바로 건물시공에 들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이곳 당국자들은 한국촌이 북경과 천진·당산등 대도시의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중국내 내수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이 진출하기에 알맞으며 다른 개방도시들의 경제기술개발구와 마찬가지로 각종 세금감면혜택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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