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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틈타 지지 기반 더 다진 日 극우 정치인들

    코로나 틈타 지지 기반 더 다진 日 극우 정치인들

    자민당보다 우익단체 소속… 물의 잦아코로나19 사태는 여느 나라처럼 일본에서도 주요 정치인의 명암을 극명하게 갈랐다. 아베 신조 총리처럼 무능력·무책임 비난 속에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평판과 인지도 측면에서 수직으로 도약한 인물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시무라 히로후미(왼쪽·45) 오사카부 지사와 고이케 유리코(오른쪽·68) 도쿄도 지사다. 두 사람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일본 미디어들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잘한 정치인’ 1위와 2위 자리를 굳게 지켜 왔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중앙 사령탑이 없는 일본은 현장 실무대응을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사들이 전담하는 체제다. 이를테면 ‘긴급사태’ 선언 주체는 아베 총리였지만, 실제 주민들의 외출·이동 자제나 상점 휴업 요청 등은 모두 해당 지역 지사들이 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지사들은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 내 감염 상황이나 대응 방향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 과정에서 요시무라 지사와 고이케 지사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적극적인 대응으로 인지도를 확 높였다. 특히 아베 총리가 ‘아베노마스크’(가구당 천마스크 2장씩 배포) 등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두 사람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됐다. 그 결과 요시무라 지사는 지난 3월 말 30만명 정도이던 트위터 팔로어가 이달 초 100만명을 넘어섰다. 고이케 지사가 매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리는 코로나19 관련 영상도 이례적으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극우 성향의 정치적 이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오사카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변호사 출신의 요시무라 지사는 일본유신회의 부대표를 겸하고 있다. 일본유신회는 집권 자민당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지향하는 정당이다. 그의 성향은 오사카 시장 때인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설치된 데 반발, 도시 자매결연을 단칼에 파기한 데서 잘 드러난다. 지난 1일에는 트위터에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용인했다는 이유로 우익세력이 펼치고 있는 ‘아이치현 지사 탄핵운동’에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 회원인 고이케 지사는 방송 앵커 출신으로 2016년 현직에 당선됐다. 일제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의 부정은 물론이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도 참배하는 인물이다. ‘혐한 망언 제조기’로 불린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조차 거부하지 못했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대한 추도문 전달을 2017년부터 중단했다. 두 사람은 각자 중요한 정치적 관문을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 이상의 방송 출연과 광고 제작 등 코로나19 상황을 정략적으로 활용했다는 지적도 많다. 요시무라 지사는 오는 11월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주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를 ‘오사카도’로 통합해 도쿄도와 같은 메가시티로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투표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정치 이력에 든든한 날개를 달게 된다. 곧 임기가 끝나는 고이케 지사는 오는 10일쯤 재선 출마를 선언할 계획이다. 다음달 5일 치러질 선거에서의 승리는 확정적이지만, 압도적인 지지율을 원하고 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두 사람이 과연 총리의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설왕설래도 나오고 있다.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의원내각제의 속성상 당장 현실적으로는 무리다. 그러나 여론 흐름의 변화와 이에 기반한 정계 개편이 교묘하게 맞물릴 경우 상황은 예측불가로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서울광장] 홍콩! 어느새 먹구름은 가득하고…/이지운 논설위원

    [서울광장] 홍콩! 어느새 먹구름은 가득하고…/이지운 논설위원

    2008년 5월 쓰촨(四川) 대지진의 현장을 떠나며 ‘다난흥방’(多亂興邦)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 ‘많은 어려움을 겪은 뒤 나라를 일으킬 자극을 받게 된다’고. 실로 당시 중국은 그러했다. 칼럼은 ‘국가의 재발견’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생명을 구하러 달려온 모습을, 모든 구성원이, 처음으로 확인한 현장이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요인으로는 ‘공개성’을 꼽았다. ‘다난’(多亂)의 역사 가운데, 고통의 현장이 온 국민에게 그렇게 열렸던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그 효과는 더없이 극적이었다. 이 장면은 중국 현대사의 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번 열린 ‘개방의 문’이 다시 닫히지 않았듯, ‘공개’도 역행은 쉽지 않으리라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새로운 국가의 모습이 어떻게 진화·발전할 것인지 내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2020년 중국 양회(兩會)의 1성(聲)은 홍콩이었다. 그리고 홍콩 말고는 없었다. 양회에 이렇게 뉴스가 빈약했던 적이 있었을까. 비전과 계획이 쏟아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해설과 전망이 뒤쫓기 바쁜 행사다. 세계가 궁금해하는 경제성장 예상치나 코로나19 이후 대책 같은 것은 내놓지도 않았다. 우악스럽기까지 한 미국의 압박에 대한 결기도 없었다. 아마 ‘홍콩’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양회가 홍콩으로 묻힌 게 아니다. 홍콩으로 덮어버렸다. 중국 지도부는 홍콩 문제를 베이징에 가져다 놓고 ‘내 손’으로 다루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반환받을 때부터 홍콩 정부를 유모 삼아 맡겼던 일이었다. 영국과의 약속도 있었거니와 세계는 홍콩이라는 렌즈를 통해 베이징과 중국 전체를 보려 했고, 베이징도 이 렌즈를 그렇게 활용했다. 게다가 홍콩에 이식된 ‘민주, 인권, 자유’라는 가치들은 너무 친서방적인 것들이어서 바로 현관 안으로 들이기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가치들은 베이징을 너무 신경 쓰이게 했다. 때로는 손톱 밑에 깊이 박힌 굵은 가시처럼 통증도 컸다. 그래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근원적 가치’라는 너무 심각한 지점에 박힌 것이어서다. 손대기엔 위험했다. 베이징이 그 가시들을 뽑아냈다. 어떤 출혈과 후유증에도 이제는 주먹을 꽉 쥐어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 같다. 먼저 홍콩 주민들을 떠올렸을까? 본토 중국인들이 1차 대상이었을 것이다. 베이징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해 ‘국가’를 새롭게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요즘 유행 중인 ‘국가의 귀환’(the return of the State)인 셈인데, 전형적인 ‘중식’(中式)이다. 주먹은 점점 또렷하게 보일 것이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해할 것이다. 미국과 세계는 좀더 심각하게 봐야 할지 모른다. “금융 중심지의 지위는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둥 협박 따위는 이제 호들갑 떠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화웨이 문제 정도는 이제 숱한 전장 가운데 하나쯤 될 수도 있다. 이전 같으면 난리가 났을 ‘위안화 기습 절하’ 같은 건 변변한 뉴스감도 되지 못한다. 한판 대결이 시작되면, 적어도 한동안은 ‘난타전’이다. 여기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지 못할 때 미국은 ‘아시아로의 귀환’은커녕 뱃머리를 댈 항구를 구하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 패자(覇者)가 신흥세력의 도발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응징하지 못할 때는 패권이 위험해질 수 있다. 눈치 보던 주변국들이 패권을 패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새로운 정글이 펼쳐지는 법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고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동안 미국이 짐짓 눈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학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대결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유는 두 나라 지도자들의 처지 때문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크게 험악해졌지만, 국내 문제에는 견줄 게 못 된다. 중국인에게 2008년과 2020년의 국가는 너무도 달랐다. 산골 벽지에 파묻힌 ‘소수’를 구하러 사지로 달려온 국가를 봤던 기억과 감동이 뚜렷한데, 2020년의 중국은 ‘재발견’ 이전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2022년 시진핑의 3기 준비까지 이대로 갈 수는 없다. 미국의 지도자도 보통 다급한 게 아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는 개인에게 사활의 문제이다. 그러니 피차 벼랑 끝 심정일 테고, 여기서 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바닥만 한가 했던 먹구름은 어느새 머리 위를 덮었고, 뉴스에는 윤미향이 한가득이다. jj@seoul.co.kr2020
  • ‘아베보다 우익’ 고이케, 선거 맞수가 안 보인다

    ‘아베보다 우익’ 고이케, 선거 맞수가 안 보인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주가를 한껏 띄운 고이케 유리코(68) 도쿄도지사가 오는 7월 치러질 지사 선거 출마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재선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궁극적 목표인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를 향한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고이케 지사는 5800억엔(약 6조 650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대응 추가경정예산안이 도의회를 통과하는 대로 재선 입후보를 선언할 예정이다. 다음달 10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 지사는 코로나19 국면에 지지율을 크게 까먹은 아베 신조 총리와 달리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봤다. 초기에는 바이러스 확산 와중에 도쿄올림픽의 정상 개최에만 집착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지난 3월 24일 올림픽 1년 연기가 확정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지휘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 도지사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여당과 도쿄도가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대지만, 고이케 지사에 맞설 만한 후보가 없기 때문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대적 상대가 없기는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방송 앵커 등을 거쳐 1992년 일본신당 소속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고이케 지사는 여러 번의 당적 변경을 거쳐 자민당에 입당, 2007년 첫 여성 방위상, 2010년 첫 여성 자민당3역(총무회장) 등을 거쳐 2016년 첫 여성 도쿄도지사가 됐다. 그를 방위상으로 발탁한 게 아베 총리지만 현재는 사이가 껄끄럽다. 도쿄도지사가 되는 과정에서 자민당 탈당과 경쟁 정당 결성 등으로 당시 아베 총리와 대립했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아베보다도 더 우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대 도쿄도지사들이 빼놓지 않고 해 왔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대한 추도문 전달을 지사 취임 이듬해부터 중단한 것이 잘 말해 준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특파원 칼럼] “국민은 비판한다. 그러나 곧 잊어버린다”/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국민은 비판한다. 그러나 곧 잊어버린다”/김태균 도쿄 특파원

    집권세력이 국민을 무시하고 오만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의 경우는 자유민주당(자민당) 이외의 대안 부재에서 오는 한계가 크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이른바 ‘55년 체제’가 구축된 이후 65년 동안 자민당이 여당 지위에서 내려와 있었던 것은 6년이 채 안 된다. 불행히도 잠깐씩 집권했던 정당들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모두 실패했다. 2009년 9월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출발부터 무리한 공약 남발과 무능한 국정운영으로 삐걱거렸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터지자 그들의 난맥상은 극에 달했고 국민들은 이듬해 12월 선거에서 ‘역시 자민당’을 선택했다. 이때 정권을 탈환해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사람이 아베 신조 총리다. 그의 거침없는 우경화 행보에는 진보를 자처했던 민주당 정권의 실패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요즘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베 정권에 “이러다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이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민당 39%, 공명당 4% 등 연립여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43%에 달한다. 반면 민주당을 모태로 하는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의 지지율은 각각 5%와 1%에 불과하다. 이렇게 심각한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아베 총리가 밀어붙이다 무산된 검찰청법 개악 시도는 이런 위기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검사 정년을 63세에서 65세로 늘리면서 검찰 요직 인사에 총리가 직접 관여할 수 있게 독소조항을 넣은 게 요체이지만, 내막을 보면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 검사장을 차기 검찰총수에 앉히려는 검은 속셈이 파행의 시작과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로카와는 ‘정권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에서 나타나듯 검사의 직분보다는 정권에 대한 충성을 최우선으로 해온 사람이다. 법무성 핵심요직인 관방장과 사무차관을 아베 집권 내내 7년 반에 걸쳐 유지했다. 그의 최대 공적은 아베 총리가 2018년 봄 사퇴 위기에 몰렸던 ‘모리토모 학원 공문서 조작’ 사건에 종지부를 찍고 면죄부를 준 일이었다. 아베 총리 부부가 모리토모라는 극우성향 사학재단을 부당 지원한 의혹이 들통나자 정부는 진실 은폐를 위해 재무성 공문서를 대량으로 변조했다. 사학재단 부당 지원 자체보다 정권에 더 큰 타격이 될 판이었다. 이때 법무성 사무차관이던 구로카와는 재무성 국장 등 범법 행위자 38명을 전원 불기소 처분하는 데 앞장섰다. 앞으로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의 여지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에게 충성하면 결국은 보상을 받는다”는 교훈을 공무원 사회에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아베 총리는 구로카와를 올여름 검찰총장에 반드시 앉혀야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 구로카와가 올 2월 63세 정년을 맞자 아베 총리는 법률을 무시하고 그의 정년을 6개월 연장했고, 탈법의 흔적을 흐리기 위해 검찰청법 개정을 서둘렀다. 역대급 검찰농단 시도를 최종 단계에서 좌절시킨 것은 국민의 분노였다. 인터넷에서 국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전직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직 출신들까지 나서자 아베 총리는 지난 18일 이번 정기국회 입법을 포기했다. 이번 일은 국민들이 힘을 합해 목소리를 내면 오만한 정권의 폭주를 저지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일본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운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성난 함성이 검찰청법 개정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극도로 제한된 유전자 검사와 기약 없는 경제위기 민생지원 등 코로나19 국면에 누적돼 온 국민 분노가 동력이 됐다. 이번에 보여 준 작은 성공이 “국민은 비판한다. 그러나 곧 잊어버린다”는 정권의 오만한 인식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windsea@seoul.co.kr
  • [박철현의 이방사회] 좀 적당히 해라

    [박철현의 이방사회] 좀 적당히 해라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일본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 8일 발령된 긴급사태선언이 39개 부현에서는 해제됐지만 도쿄, 홋카이도 등 8개 지역은 여전히 외출자숙, 휴업, 휴교 등의 비상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한편 오사카는 독자적인 긴급사태 해제를 결정했다. 경제적으로 견딜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온다. 가장 먼저 위태로워지는 계층은 역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긴급사태 이후의 정부통계 실업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노무라 소켄 등은 올해 평균실업률은 6%, 잠정실업률은 11%를 기록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 실업 태풍의 초기 피해자들이 바로 외노자다. 정사원과 달리 확실한 고용 보장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및 계약직들은 경영자의 간단한 한마디로 해고된다. 해고수당은 물론 실업급여를 못 받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직접 만나 본 서비스업 위주의 경영자들은 공통적으로 사업 규모를 줄였다고 한다. 대량해고가 포함된다. 네팔, 인도, 베트남, 몽골, 타이 등에서 온 외노자가 우선 잘린다. 얼어붙은 구인시장 때문에 해고자들은 다른 곳에 취직할 수 없다. 한두 달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 귀국할 수밖에 없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에서, 실업 상태로 버티는 것보다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젊은 이방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20~30년 전에 도일해 일가를 이룬 한국인 중에서도 사업체를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꽤 있다. 완전귀국은 아니더라도 자산의 절반 정도는 정리해 본국에 기반을 마련해 놓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뉴커머로 와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했고 누가 봐도 일본에서 생을 마칠 것 같던 그들이 이러는 이유는, 물론 코로나19 정국을 맞이해 사업이 힘들어진 것도 있지만 일본의 장기적 미래에 대한 근심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 바이러스와 공존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의 대처가 엉망임을 확인했다. 미래에 다시 올지 모르는 2차, 3차 감염 웨이브, 혹은 전혀 다른 형태의 재난, 이를테면 언젠가는 찾아올 난카이대지진을 과연 일본이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다. 2011년엔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귀국하는 사람들이 치사해 보였지만 요즘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아베 정권은 거의 모든 면에서 엉망이다. 너무 엉망이라 어디서부터 거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정국이 전후 최대의 재앙이라며 전례 없는 긴급사태선언까지 발령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나온 ‘검찰청법 개정’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검찰청법 개정에 항의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단 트위터리안이 5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2월 아베 정권은, 아베 신조의 대표적 스캔들인 모리토모 학원의 범죄행위 관련자 불기소 처분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구로가와 히로무 도쿄고검장을 검찰청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정년연장시켰다. 당시 아베 내각은 검찰청법상 명백한 위법인 정년연장을 통과시키려고 상위 법률인 국가공무원법의 정년연장 조항을 적용해 그의 6개월 연장을 각의결정했다.그런데 이후 국회 공방에서 검찰관 정년연장은 국가공무원법이 허용하는 정년연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판례를 통해 증명됐다. 그러자 아베 총리는 국가공무원법상의 ‘해석’을 변경하겠다며 정년연장을 끝끝내 관철시켰고, 지금 이 시기에 정년연장을 아예 명문화하려고 검찰청법 개정에 나선 것이다. 이 급박한 시기에 왜 이런 일에 목숨을 거는 걸까. 바로 올해 7월로 임기가 끝나는 이나다 노부오 검사총장 자리에 구로가와를 앉혀서, 가까운 미래에 사직할 아베 총리의 퇴임 후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봐도 뻔한 장난을 치고 있는 사람과 그 일당이 국가를 이끌고 있다. 검찰청법 개정은 트위터에서의 항의와 유명인들의 반대선언이 이어지면서 다음 국회로 연기됐다.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정권 지지율은 여전히 40%를 유지하고 있고 이 법안 역시 다음 국회에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대안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본국 귀국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주일한국기업연합회, 일본에 코로나 방호복 3천벌 기부

    주일한국기업연합회, 일본에 코로나 방호복 3천벌 기부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기업 또는 한국계 기업 일본법인 등 약 300개 기업으로 구성된 주일한국기업연합회가 일본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방호복 3000여벌을 기부했다. 1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연합회는 이달 초 도쿄보험의협회에 방호복 1000벌을 기부했으며, 다음주에는 도쿄도에 방호복 2300벌을 기부할 예정이다. 보험의협회는 기부받은 방호복을 유전자 증폭(PCR) 검사 현장 등에서 활용하게 할 계획이다. 보험의협회 측은 “지역의 목숨과 건강을 지키는 것에 호의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반응했다. 연합회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에도 피해 지역에 의연금을 전달한 바 있다. 주일한국기업연합회에는 대한항공 일본지역본부, 아시아나항공 일본지역본부, CJ재팬, 농심저팬,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 포스코재팬 등이 가입돼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일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 이동련 할머니 별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가 별세했다.향년 90세. 7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간암 투병 중이던 이 할머니가 전날 오후 11시 10분쯤 세상을 떠났다. 이 할머니는 전남 나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 교장의 권유로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동원됐다. 그해 12월 7일 아이치현 일대를 강타한 대지진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이듬해 해방을 맞아 10월 귀국했다. 이 할머니는 이후 일본에서 진행된 소송에 참여했지만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다고 시민모임 측은 전했다.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평소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한국에서 소송이 시작된 뒤에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잘못을 알리는 공개적인 자리에 마스크를 벗고 참가하는 등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할머니가 참여한 미쓰비시 상대 국내 소송은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고 2018년 11월 확정됐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광주 구호전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7시 30분,장지는 전남 나주 선영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日 ‘코로나 이혼’ ‘코로나 결혼’ 신조어 생겨

    日 ‘코로나 이혼’ ‘코로나 결혼’ 신조어 생겨

    “혼자서는 더 불안” 결혼상담소 문의 급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출근, 등교, 외출을 하지 않은 채 가족끼리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정불화와 폭력이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코로나 이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와 반대로 혼자 있기보다는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짝 찾기에 나서는 남녀도 급증했다. 1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코로나 이혼’이라는 단어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남편의 재택근무로 수입이 줄었다. 말다툼만 하고 산다”, “가벼운 술자리는 괜찮다는 남편. 위기의식 부족에 실망” 등 가족 구성원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제 이혼이 급증했다기보다는 파국적인 선택까지 생각해 볼 정도로 집안에 갈등이 고조됐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재빠른 상술도 등장했다. ‘카소’라는 이름의 호텔·민박운영업체는 가족 간 사이가 나빠져 집 밖에서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일시 피난소’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하루 3000~2만엔(약 3만 4000~22만 6000원)을 받고 임시 거처를 제공한다. 이달 3일 영업 개시 10여일 만에 80건 이상 문의가 들어왔다. 이 회사 대표(28) 본인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에만 있다가 동거 여성과 싸우고 헤어진 게 사업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코로나 이혼과 반대로 ‘코로나 결혼’ 희망자도 늘고 있다. 도쿄의 대형 결혼상담소 오넷에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혼자서는 불안하다는 생각을 더욱 절실히 하게 됐다”, “언젠가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며 배우자감을 찾는 문의가 급증했다. 결혼상담소 메리미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전보다 상담 건수가 20%가량 늘었다. 우에쿠사 미유키 대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도 상담이 급증한 바 있다”며 “사회적 위기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자기 인생을 좀더 진지하게 마주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3월 일본 방문한 외국인 93% 급감…6개월 연속 전년 대비 줄어

    3월 일본 방문한 외국인 93% 급감…6개월 연속 전년 대비 줄어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 속에서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의 지난달 외국인 방문이 90%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15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에 온 외국인 여행객은 19만 3700명으로 작년 3월(276만 136명)보다 93.0%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여러 나라가 해외여행 제한 및 외출 금지 등의 조치를 한 것과 일본이 검역 강화·비자(사증) 무효 등의 조치를 한 것이 외래 여행객 급감의 주요 원인이라고 일본정부관광국은 풀이했다. 그러나 최근 6개월간 추세를 보면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6개월 연속 전년 동월보다 감소하는 추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은 1년 전보다 97.1% 감소한 1만 6700명이었다. 올해 1분기 한국에서 일본을 찾은 여행객은 47만 7400명으로, 작년 1분기보다 77.1%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 외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본 방문 여행객이 급감했다. 지난달 중국(홍콩·대만 등 제외)에서 일본을 찾은 여행객은 98.5% 감소한 1만 400명이었고, 미국에서 일본을 방문한 여행객은 87% 줄어든 2만 3000명이었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다음 달인 2011년 4월에 외래 관광객이 전년 동월보다 62% 감소했는데, 지난달 감소율은 이보다 훨씬 커 사상 최대라고 NHK는 전했다. 또 한 달 동안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 수가 20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1989년 2월에 이어 약 31년 만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1분기 일본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은 작년 1분기보다 51.1% 감소한 393만 9800명으로 추산됐다. 외국인 여행객이 급감한 가운데 서일본 최대 관문인 오사카 소재 간사이공항은 15일 국제선 출발 및 도착이 ‘제로’(0)가 됐다고 NHK는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코로나 이권 챙기는 아베 측근들… 일본, 더 안 좋아질 것”

    “코로나 이권 챙기는 아베 측근들… 일본, 더 안 좋아질 것”

    “나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도, 반정부 운동가도 아닌 그저 학자일 뿐입니다.” 일본계 귀화 한국인으로 자타공인 최고 독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63) 세종대 정치학 교수(세종대 독도연구소장)는 한 저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토종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을 사랑하는 모습, 일제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에 어느 한국인보다도 더 공분하는 그의 모습은 ‘반일투사’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는 사실 자정 가까이 연구실에 묻혀 있을 때가 더 많은 연구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그동안 보여 준 ‘한국 사랑’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다시 한번 한국에 귀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신문 본사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그의 한국 예찬과 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다. ●후쿠시마 원전·동일본대지진… 日보다 한국이 안전 “불안감을 갖지 않고 정부가 말하는 지침을 잘 따르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한일 양국의 상반된 대응을 지켜본 호사카 교수는 한국에 대해 느낀 점을 이렇게 밝혔다. 2003년 귀화한 그는 일본에서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동일본대지진 등이 그 사례였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가 귀화했을 때만 해도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더 많이 보였다. 일본이 더 좋은 나라가 아니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이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게 됐다. 한국인들 역시 이제 일본보다 자신들이 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호사카 교수는 광범위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한 한국과 그러지 않았던 일본을 비교하며 “일본은 누가 감염됐는지 모르는 상황이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사재기 열풍까지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긴급사태까지 선포된 현 일본의 상황이 극우파인 아베 신조 정권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감염 확산 규모를 축소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때를 놓치고 말았다는 의미다. 더불어 한국이 진단 키트를 개발하도록 민간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반면 일본은 후생노동성의 관리 아래 있는 업체에만 개발하도록 하며 대응이 더욱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술대국이라는 일본이 진단 키트를 개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느냐”면서 “후생성 내 아베의 낙하산 인사와 그들의 이권 때문”이라고 했다.그는 일본의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보건 당국이 감염자의 동선 파악도 어려운 것이 현재 일본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은 평상시에는 ‘예의 바름’으로 평가받지만, 지금과 같은 감염병 사태에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일본인들이 감염돼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호사카 교수는 “중간에 들른 곳에 폐를 끼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다녀왔다고 밝히지 않는 것”이라며 “영안실로 들어온 사망자가 코로나19 때문에 사망했는지도 알 수 없는 장례식장 같은 곳은 무척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감정적 대응 넘어 독도 연구 체계화에 기여 호사카 교수는 이제 역사학도들뿐만 아니라 거리를 지나가다 만난 시민들도 알아볼 만큼 유명 인사가 됐다. 특히 학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단연 1998년부터 시작한 독도 연구다. “‘일본 출신 학자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라며 한국 학자들이 저에게 자극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호사카 교수는 과거 감정적 대응이 앞섰던 독도 연구를 체계화하고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연구 자세였다. 그는 “사안에 대해 상세하게 접근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특성이고, 그들의 독도 연구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일본의 그러한 연구·주장에 대해 치밀하고 철저하게 반박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독도 연구 문화가 새롭게 바뀌는 데도 기여했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그는 최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 문부과학성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승인에 대해 “이제 일본은 독도영유권 주장을 전체 교과서에 다 싣게 되는 셈인데, 실제 일본의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봐야 한다”면서 “도쿄의 모교에 물어보면 독도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교사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독도·친일파 문제… 책 쓰는 재미 빠져 1년에 한 번 출간 치열하고 성실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그의 저서들이다. 2002년 첫 출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낸 책은 단행본 기준으로 17권 정도다. 그가 귀화한 시점인 2003년을 전후로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책을 낸 셈이다. “책을 쓰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논문 작성과는 또 다른 재미죠.” 계속해서 책을 낸 비결·원동력을 묻자 호사카 교수는 ‘글쓰기의 즐거움’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린 시절 집보다 밖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시절 야구선수 장훈과 같은 재일교포 운동선수들이 우상이었다는 호사카 교수의 말은 그의 외향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그런 자신이 PC 앞에서 하루 종일 자료와 씨름해야 하는 학자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일관계사에서 숨겨졌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낸 그의 연구 성과는 학계뿐만 아니라 출판사들의 관심도 끌게 됐다. 그가 낸 책들은 ‘상품성’을 간파한 출판사가 먼저 출간을 제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의 책들은 역사 분야 서적 가운데 상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며 한일 관계와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대중에게 제공했다. 호사카 교수는 “논문이 하나의 사실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라면 책은 결론부터 시작해 독자를 설득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면서 “처음에는 출판사 의뢰로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책을 쓰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5개월 동안 ‘반일 종족주의’ 허구성 조목조목 지적 이 같은 오랜 노력의 한편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본군 위안부·징용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은 ‘반일 종족주의’ 같은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학문적인 관심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반일 종족주의’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 책을 사봤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정권이 일제 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일본을 강하게 밀어붙였으니까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그는 학문과 연구를 통한 철저한 검증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사카 교수는 길지 않은 인터뷰 시간상 강제징용 문제를 예로 들어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을 반박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월급도 똑같이 받았고, 탄광 노동과 같은 힘든 일은 일본인들도 똑같이 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호사카 교수는 “월급은 액면상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았다고 하지만, 실제 조선인들은 그 돈을 다 받지 못했다”면서 “말로만 고향에 월급을 보내 준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인들의 통장 관리자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가로채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이 같은 그의 반박을 담은 신간 ‘신친일파’가 지난 4일 출간됐다. ‘반일 종족주의’ 내용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책을 완성하는 데 5개월이 걸렸다. 호사카 교수의 이름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우파들의 공격 수위도 높아졌다. 세종대 연구실은 일본인들의 항의·협박 전화를 받는 게 하나의 일상 업무가 됐을 정도다. 테러가 우려돼 호사카 교수는 가족에 대한 신상은 절대 밝히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의 연구실로 전화하는 한국인들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대부분 한국말로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비난 전화다. 그의 연구실로 전화해 폭언을 쏟았던 ‘21세기의 친일파’들은 ‘반일 종족주의’와 같은 책이 나올 것이란 징후였을 수도 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따르는 이들에게 ‘신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는 신간의 책 제목이 되기도 했다. 그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극우 세력의 지원을 받고 ‘확성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대로 ‘신친일파’에 맞선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제 책을 많이 사랑해 주셔서 그동안 서적들은 정치사회 분야에서 10위 안에 오르곤 했습니다. 이제 전체 서적 가운데 10위 안에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도쿄대의 공학도 출신으로, 1988년 한국으로 건너와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논문은 ‘일본의 한국 침략 배경 연구’, 박사 논문은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 정책 분석’이었다. 2003년 한국인으로 귀화하며 본격적으로 한일 관계 및 독도문제 전문가로 인지도를 얻게 됐다. 시낭송 모임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의 든든한 벗인 아내는 그가 책을 낼 때 교정을 봐주는 역할을 도맡기도 한다. 두 아들은 모두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고 한다.
  • 묵념·흑백 신문… 中 코로나 희생자 추모 물결

    묵념·흑백 신문… 中 코로나 희생자 추모 물결

    리원량 등 의료진 14명 ‘열사’ 칭호 추서중국이 코로나19로 숨진 희생자를 추도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애도식을 열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조기가 걸렸고 피해가 가장 컸던 후베이성 우한에서도 묵념 행사가 열렸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지난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오전 10시부터 정부 주요 회의장인 중난하이 화이런탕 앞에서 3분간 묵념 행사를 가졌다. 같은 시간에 차량과 기차, 지하철, 선박도 경적을 울려 애도를 표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동참했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에서도 같은 행사가 진행됐다. 다만 코로나19 재확산을 우려해 별도의 행사는 열지 않았다. 중국에서 전국 단위 추모식을 거행한 것은 2008년 5월 쓰촨성 원촨 대지진(약 7만명 사망)과 2010년 4월 칭하이성 위수 지진(3000명 사망), 2010년 8월 간쑤성 저우취 산사태(1500명 사망)에 이어 네 번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5일 오후 3시 기준 중국의 코로나19 확진환자는 8만 2647명, 사망자는 3333명이다. 이 가운데 후베이성에서만 3100명 넘게 숨졌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처음 알리고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숨진 리원량(1986~2020) 등 의료진 14명에게 ‘열사’ 칭호를 추서했다. 중국에서 열사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 등급의 명예 칭호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5일 이례적으로 흑백판을 발행해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신문은 전날 시 주석 등이 3분간 묵념한 것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조기를 게양한 사진을 1면 톱기사로 게재했다. 이 신문은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역사에 전례 없이 힘든 경험”이라면서 희생된 우한 시민과 의료진에게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중국 주요 매체들도 자사 홈페이지를 흑백으로 바꿔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묵념·조기·흑백신문...中, 코로나19 희생자 추모 물결

    묵념·조기·흑백신문...中, 코로나19 희생자 추모 물결

    중국이 코로나19로 숨진 희생자를 추도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애도식을 열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조기가 걸렸고 피해가 가장 컸던 후베이성 우한에서도 묵념 행사가 열렸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지난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오전 10시부터 정부 주요 회의장인 중난하이 화이런탕 앞에서 3분간 묵념 행사를 가졌다. 같은 시간에 차량과 기차, 지하철, 선박도 경적을 울려 애도를 표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동참했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에서도 같은 행사가 진행됐다. 다만 코로나19 재확산을 우려해 별도의 행사는 열지 않았다. 중국에서 전국 단위 추모식을 거행한 것은 2008년 5월 쓰촨성 원촨 대지진(약 7만명 사망)과 2010년 4월 칭하이성 위수 지진(3000명 사망), 2010년 8월 간쑤성 저우취 산사태(1500명 사망)에 이어 네 번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5일 오후 3시 기준 중국의 코로나19 확진환자는 8만 2647명, 사망자는 3333명이다. 이 가운데 후베이성에서만 3100명 넘게 숨졌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처음 알리고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숨진 리원량(1986~2020) 등 의료진 14명에게 ‘열사’ 칭호를 추서했다. 중국에서 열사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 등급의 명예 칭호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5일 이례적으로 흑백판을 발행해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신문은 전날 시 주석 등이 3분간 묵념한 것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조기를 게양한 사진을 1면 톱기사로 게재했다. 이 신문은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역사에 전례 없이 힘든 경험”이라면서 희생된 우한 시민과 의료진에게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중국 주요 매체들도 자사 홈페이지를 흑백으로 바꿔 사망자들의 넋을 기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올림픽 성화 수난사/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올림픽 성화 수난사/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우두머리 신인 제우스에게 바치는 종교행사에서 비롯됐다. 도시국가 간 전쟁이 끊이지 않던 기원전 776년 엘리스의 왕 이피테스가 당시 가장 강력했던 스파르타에 제사 형태의 ‘휴전 회합’을 제안했다. 오랜 전쟁과 전염병으로 도시국가 전체의 공멸을 우려했던 페르시아의 리쿠르고스왕은 이를 받아들였고 마침내 가장 큰 성지인 올림피아에서 첫 제전이 열렸다. 제사 뒤에는 여흥이 이어졌다. 운동회다. 종목은 191.27m를 달리는 ‘스타디온’ 한 가지밖에 없었지만 종류가 많을 필요도 없었고 승패도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제사의 목적은 싸우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도시국가 모두의 참여가 필요했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근대올림픽의 정신은 사실 여기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성화는 제사를 치르는 동안 신전에 피워 놓았던 ‘성스러운 불꽃’(Sacred Fire)이었다. 그러나 1928년 8번째 근대올림픽 장소인 암스테르담 올림픽 경기장의 ‘마라톤 타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성화’(Olympic Flame)가 돼 타오르기 시작했다. 봉송은 뜻밖에도 나치 독일 치하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시작이다.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와 대회조직위원장 카를 딤이 기획해 고대의 성화 릴레이를 재현해 냈다. 올림피아 헤라신전을 출발한 성화는 유럽 7개국 3187㎞를 3331명 주자에게 들려 열이틀을 쉬지 않고 달린 뒤 베를린에 도착했다. 거대한 나치 문장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루스트가르텐광장, 수만의 군대 한가운데서 성화를 맞이한 아돌프 히틀러의 의도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아리아인의 우월성, 나치 정권의 정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치 체제의 홍보물로 전락된 성화의 팔자는 이후로도 기구했다. 개최국의 입맛에 따라 탐욕과 체제 유지의 상징으로 변질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대회 릴레이가 유료화되면서 성화는 ‘돈이 스며들었다’는 호된 비판에 맞닥뜨렸다. 2008년 베이징대회를 앞두고는 전 세계 13만 7000㎞ 해외 순회에 나섰지만 가는 곳마다 티베트 무력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물세례를 받기도 했다. 신에게 바칠 만큼 ‘거룩한 불꽃’이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된 건 어쩌면 이피테스의 계략이 빚어낸 태생적 결과가 아니었을까. 개막 122일을 앞두고 시계가 멈춰 버린 2020 도쿄올림픽의 성화는 숱한 ‘수난사’에서도 목록 맨 위로 이름을 올릴 게 틀림없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집중 피해를 입은 지역의 재건을 내세우며 도쿄대회 성화를 ‘부흥의 불’로 명명했다. 그러나 첫 주자부터 릴레이를 외면한 가운데 성화는 봉송 대신 치른 전시 행사에서 불과 7만여명만 직관한 ‘민망한 불’로 전락했다. 올림픽 개최국이 성화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침체된 자국의 경기 상황과 함께 자신의 지지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의도 역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다만 왜곡되고 통제된 정보와 수치로 방사능 피폭 우려를 묵살한 모습이 베를린 광장에서 평화로 포장한 나치즘을 피 토하듯 연설한 히틀러의 그것과 묘하게 오버랩될 뿐이다. 올림피아제의 성화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바친 불이었다. 그는 제우스가 감춰 둔 불을 몰래 훔친 뒤 인간에게 내줘 문명의 길을 걷게 한 신이다. 이름을 풀어쓰면 ‘먼저 생각하는 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에게 바쳐진 불꽃이 올림픽 성화가 되고, 그 성화가 온갖 수난을 당할 것을 과연 미리 내다봤을까. 지난 26일 모습을 감춘 도쿄올림픽 성화는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긴 잠’에 빠져들었다. cbk91065@seoul.co.kr
  • ‘비밀의 봉인’, 도쿄올림픽 성화는 어디로 갔을까

    ‘비밀의 봉인’, 도쿄올림픽 성화는 어디로 갔을까

    미야기현 도착 이후 엿새 만에 짧은 행로 마치고 내년 대회 때까지 ‘긴 잠’에 돌입후쿠시마·이와테·미야기 등 2011년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서 7만 5400명 관람개막 122일을 앞두고 화석처럼 멈춘 도쿄올림픽, 그런데 성화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 20일 일본에 도착한 올림픽 성화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마지막 전시를 끝내고 긴 잠’에 들어갔다. 일본 도착 엿새 만이다. 이른바 ‘부흥의 불’로 명명된 도쿄올림픽 성화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지난 24일 합의대로 그리스에서 재채화를 하지 않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내년 대회까지 일본 내에 머무르게 된다. 성화는 이와키시의 아쿠아마린 파크 전시장에서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약 3600명의 방문자에게 마지막 모습을 드러냈다. 관람객이 성화를 감상하고 사진 촬영을 하는 데는 단 15초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예정된 시각에 행사를 마친 성화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스포츠 전문 닛칸스포츠는 “성화는 전시대에서 작은 랜턴으로 옮겨진 뒤 도쿄 인근 지바현의 번호판을 단 렌터카에 실려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현지 관계자는 “보안상 행선지는 밝힐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러나 스포츠 전문 스포츠호치는 “성화는 당초 출발점인 후쿠시마의 J-빌리지에 보관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성화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 당시 집중 피해를 겪은 미야기, 이와에, 후쿠시마 등 3개현을 각 이틀씩 돌아 모두 7만 5400명이 관람했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성화까지 모습을 감춘 가운데 2021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은 올해 일정대로 7~8월에 열릴 공산이 크다는 일본 언론의 전망이 나와 주목된다. 바흐 IOC 위원장이 “2021년 여름에 한정하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한 뒤 하루 만이다. 스포츠호치는 26일 “가장 유력한 안은 여름에 개최하는 것”이라며 “모리 요시로 조직위원장도 ‘여름 개최를 목표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대회 스케줄과 성화 봉송, 수송 등 올해의 ‘포맷’을 변경없이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시기가 겹치는 세계수영·육상대회도 일정 조정을 약속해 ‘장벽’은 더 얇아졌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요미우리신문도 이날 돈 코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정위원장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바탕으로 “IOC가 내년 7~8월을 축으로 각 종목 국제연맹(IF)과 연기된 도쿄올림픽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각국 보이콧에 무릎 꿇은 아베… IOC, 내년 개최해도 손해 없어

    각국 보이콧에 무릎 꿇은 아베… IOC, 내년 개최해도 손해 없어

    선수안전 외면 비판받던 강행입장서 후퇴 ‘올림픽 취소’ 최악 시나리오는 벗어난 셈 IOC 중계료 문제로 가을 올림픽은 부담 태극전사 훈련일정 수정 등 타격 불가피오는 7월 도쿄올림픽 정상 개최를 위해 매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오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가 불과 일주일 사이에 올림픽을 내년으로 연기하기로 합의한 것은 코로나19가 전 세계 곳곳에서 대유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는 따가운 국제 여론에 부딪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3일 기존 입장에서 한 발 후퇴해 연기 가능성을 언급한 뒤에도 올림픽 보이콧 선언이 이어지자 하루 만인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의 전화 회담에서 올림픽을 약 1년 정도 연기하자고 전격 제안하고 의견 일치를 봤다. 전화 회담 뒤 IOC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공동 성명을 내고 “현재의 (코로나 확산) 상황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늦어도 2021년 여름까지 여는 것으로 도쿄올림픽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면서 “선수들을 비롯한 모든 올림픽 관계자들의 건강과 국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다”고 발표했다. 당초 코로나19로 인해 도쿄올림픽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내년 연기론이 유력하게 쏟아져 나왔다. 또 각 나라 선수들과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연기와 관련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 달라고 IOC와 도쿄올림픽 조직위,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내년 연기는 아베 정권으로서도 도쿄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는 차선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도호쿠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을 호소하며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올림픽이 취소되는 것을 가장 우려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6일 주요 7개국(G7) 회담에서 각국 정상으로부터 ‘완전한 형태’의 올림픽 개최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낸 것도 연기를 위한 포석이었다는 게 일본 현지의 평가다. 늦어도 내년 여름까지 개최 합의에는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내년 9월까지인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임기 내에 올림픽을 성공 개최한 뒤 이후를 내다보겠다는 의중이 담겼다는 것이다. 1년 연기에 대략 7조 3000억원이 넘는 경제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측이 먼저 연기를 제안한 만큼, IOC로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내년 연기의 또 다른 난관은 내년 7월 16일~8월 1일 일본 후카오카에서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8월 7∼16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잇따라 열리는 점이었는데 이미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올림픽 연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대회 일정 조정에 착수했다고 밝히며 IOC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더불어 IOC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미국 내 중계권을 가진 방송사 NBC도 올림픽이 연기되면 이를 수용하겠다고 거들고 나섰다. 비용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내 연기 방안(가을 개최)도 일본 정부 내에서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연내 코로나19 종식 여부가 불투명하고 또 가을 올림픽은 NBC 등이 가장 꺼리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가을은 미프로풋볼(NFL), 미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NHL)의 새 시즌이 개막하고 메이저리그(MLB)의 포스트 시즌이 열리는 시기다. 올림픽 지연 개최가 확정되면서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려온 태극전사들은 난감해졌다. 훈련 일정과 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지면서 선수와 지도자 모두 목표를 1년 후로 미뤄야 해 컨디션 조절과 대비책 마련에서 대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체육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日교과서 82% ‘독도영유권’ 주장…강치 잡는 사진도 넣어 왜곡

    日교과서 82% ‘독도영유권’ 주장…강치 잡는 사진도 넣어 왜곡

     일본 정부의 왜곡된 영토 및 역사 교육 주입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24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역사, 공민, 지리 등 중학교 사회 교과서들은 2012년 아베 신조 총리의 두 번째 집권 이후 강조돼 온 수정주의 역사관을 한층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내년부터 새롭게 쓰일 전체 17종 사회 교과서의 82%인 14종에 ‘한국에 의한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명칭) 불법 점거’ 기술이 수록됐다.  일선 학교 채택률이 가장 높은 도쿄서적의 역사 교과서는 “한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발효되기 직전 공해상에 일방적으로 경계선을 긋고,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를 자국 쪽에 포함시켜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에도시대(1603∼1867) 초기에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조업했다는 주장 등도 상세히 다뤄졌다. 독도에서 강치(바다사자)를 사냥하는 사진도 많은 교과서들이 채택했다. 일본은 자국 어민들이 예부터 독도에서 강치 사냥을 했던 점을 영유권의 근거로 주장해 왔다.  독도 영유권뿐 아니라 과거 식민지배 및 침략의 역사에 대한 부정과 왜곡도 곳곳에서 이뤄졌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에 의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조선인과 사회주의자 등이 살해됐다고만 기술된 교과서도 있었다.  니혼분쿄출판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 책임과 관련해 “1965년 일한 청구권협정에서 국가와 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일본은 한국에 경제원조를 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가 개인 청구권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다루지 않았다. 야마카와출판사의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다루긴 했으나 ‘전쟁터에 설치된 위안시설에는 조선·중국·필리핀 등지의 여성이 모집됐다’ 정도로만 기술하는 등 전쟁 중 벌어진 성폭력의 실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일본의 교과서 검정은 민간 출판사들이 제작한 교재가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기에 적절한지를 정부가 심사하는 제도로 일본의 패전 직후인 1947년부터 계속됐다. 검정을 통과한 도서만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검정은 정부가 교육 내용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검정을 통과한 초등학교 4∼6학년 사회 교과서에도 9종 모두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이 담겼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검정 결과에 대해 “직전인 2015년 교과서 검정 때보다 크게 개악됐다”며 “독도 영유권 주장은 물론 역사를 왜곡하며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식민지 강제수탈과 일본군 위안부 만행 등은 축소·은폐됐다”고 평가했다. 나카지마 데쓰히코 나고야대 교수(교육행정학)는 마이니치신문에 “교과서는 정부의 선전수단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무려 19종 사회과 교과서에서… 역사왜곡 되풀이하는 日

    무려 19종 사회과 교과서에서… 역사왜곡 되풀이하는 日

    내년부터 일본 중학생들은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에 의해 불법으로 점거돼 있다는 왜곡된 교육을 한층 더 심화된 형태로 받게 된다. 이런 내용의 사회 교과서들이 24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이날 교과용 도서 검정 조사심의회 총회를 열어 내년 4월 신학기부터 중학교에서 사용될 교과서들의 심사 결과를 공개했다. 총 10개 과목, 106종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이 가운데 역사(7종), 공민(6종), 지리(4종), 지도책(2종) 등 사회 과목 총 19종의 교과서에서 ‘한국이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명칭)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대폭 강화됐다. 대부분 교과서가 지도와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 일본 고유 영토라는 주장을 강변하고 나섰으며 서술의 분량도 크게 늘렸다. 한 교과서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영역에 독도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서술했다.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 총리의 제2차 집권 이후인 2014년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남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등이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것을 강조하라고 교과서 집필 지침인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개정했고, 이에 맞춰 교과서를 제작할 것을 민간 출판사들에 요구해 왔다. 영토 외에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 등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왜곡도 곳곳에서 이뤄졌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에 의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은 교과서가 이번에 검정을 통과했다. 교과서 검정은 민간이 제작한 교재가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하기 적절한지를 정부가 심사하는 제도로 일본의 패전 직후인 1947년부터 이어졌다. 검정을 통과한 도서만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검정은 문부과학성이 학교 교육 내용을 좌우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나카지마 데쓰히코 나고야대 교수(교육행정학)는 마이니치신문에 “교과서는 정부의 선전 수단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시마네현이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매년 2월 22일)마다 일본에서 항의 시위를 여는 등 독도 관련 활동을 해 온 시민단체들은 우리 정부에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최재익 독도수호전국연대 의장은 “정부가 한두 줄 성명을 발표하고 끝내는 방식으로는 일본 정부의 역사 날조를 도저히 막을 수 없다”면서 “지금 역사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일본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며 자라고 먼 훗날 역사 왜곡이 굳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도지킴이로 활동 중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일본 젊은이들이 앞으로 한국 젊은이들과 더 큰 마찰을 빚을 우려가 크다”며 “외교적인 방법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민간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본이 교과서를 왜곡하면 우리는 일본이 어떤 식으로 잘못된 교육을 하는지를 역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서울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美 지진 30초 전, 이상 감지한 반려견…동물적 육감 (영상)

    美 지진 30초 전, 이상 감지한 반려견…동물적 육감 (영상)

    지난 18일(미 동부시간, ET)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인근에서 규모 5.7의 강진이 발생했다. 1992년 규모 5.9 지진 이후 가장 강력했다. 지진의 위력을 사람보다 먼저 감지한 건 동물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 외곽 머리시에 사는 트레버 모건은 19일 영국 뉴스플레어 측에 자신의 반려견이 가족 중 제일 먼저 지진을 알아차렸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 9분. 거실 소파에 누워있던 모건의 반려견 '베어'가 갑자기 고개를 바짝 세우더니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30초 후, 카메라가 흔들리고 방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지진이었다. 개 주인은 “지진 당일 방에서 불을 꺼 놓고 음악을 듣는데, 대형 트럭이 시동을 걸었을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라고 설명했다. 몇 초 후 시작된 진동은 문간에서 버팀목을 잡고서야 불을 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집 안에 설치한 카메라에는 그날의 강력했던 진동과 함께, 지진 직전 위험을 미리 감지한 반려견이 불안에 떠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개는 어떻게 사람보다 먼저 지진을 감지한 걸까. 예부터 동물의 이상행동은 지진 전조로 여겨졌다. 안 보이던 심해어가 출현하고, 두꺼비가 떼로 이동하는 것이 관찰된 이후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다. 2008년 5월 10일 중국 쓰촨성 대지진 이틀 전에도 두꺼비 떼의 대이동이 목격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전에는 안절부절못하고 주인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개와 고양이가 많았다.2014년 과학저널 ‘동물’에 실린 야마우치 히로유키 일본 아자부 수의대 동물학자의 논문에 따르면, 고베 지진 전 24시간 동안 개는 크게 짖기, 공포에 떨기, 주인 물기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고양이는 몸을 숨기거나 새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기행을 이어갔으며, 병적으로 야옹거리기도 했다. 이런 이상행동의 80%는 지진 하루 전 관찰됐다. 전문가들은 개와 고양이 등 동물이 사람보다 청각과 후각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기 전 미세한 균열과 진동, 중력의 변화 등을 감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소희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박사팀은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동물 이상행동이 대형 재난 발생과 어떠한 연관이 있다는 것은 다수 과학자의 공통된 견해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가설의 실증 검증이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록 과학적 검증은 어렵지만 개나 고양이가 지진 등 자연재해를 먼저 사람보다 먼저 감지하는 동물적 육감이 뛰어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재외국민 전세기 수송 논란… “세금 안 내는데 왜?” “헌법상 국가의 의무”

    재외국민 전세기 수송 논란… “세금 안 내는데 왜?” “헌법상 국가의 의무”

    코로나19 확산에 정부가 전세기를 띄워 위험에 처한 재외국민을 수송하는 사례가 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세금도 내지 않는 재외국민을 위해 예산을 쓰는 것이 맞느냐’며 반대하지만 재외국민을 포함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헌법상 의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22일까지 정부는 중국 우한에 세 차례, 이란에 한 차례 전세기를 띄웠다. 일본 크루즈선에 탑승한 한국인 승객을 위해 대통령 전용기가 투입됐다. 정부는 이탈리아에도 전세기 2대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세기 운용을 위해 ‘재외국민 긴급지원비’로 배정된 예산 10억원은 이미 소진됐다. 우한과 이란 전세기는 성인 기준 각각 30만원과 100만원 수준의 요금을 부담했으나 전체 비용을 분담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정부의 재정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생활 터전을 옮기고 세금도 내지 않는 재외국민을 위해 예산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탈리아 전세기 추진 소식에 “이민 간 외국인에게 왜 세금을 줘야 하느냐”는 글도 올라왔다. 그러나 외교부는 재외국민도 국민이며 국민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헌법상 의무라고 설명한다. 실제 정부는 2011·2014년 리비아 내전, 2015년 네팔 대지진, 2017년 발리 화산 폭발 당시 전세기를 동원했다. 지난해 재정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에도 “해외 위난 상황 발생 시 재외국민을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을 투입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각국에서 고립된 국민들이 늘면서 정부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외교부는 교민들이 자체적으로 교통수단을 찾는 방안을 추진한 뒤 마지막 수단으로 전세기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코로나는 무슨…올림픽 성화 보자’…일본 시민 수만명 운집

    ‘코로나는 무슨…올림픽 성화 보자’…일본 시민 수만명 운집

    21일 성화 전시된 센다이역 앞에 5만 명 이상 몰려마스크 쓰고 5시간 넘도록 기다리다 기념 사진 찍어도쿄올림픽 조직위 “인파 너무 몰리면 취소” 경고도미야기-이와테-후쿠시마 전시 뒤 26일 봉송 시작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그리스에서 날아온 도쿄올림픽 성화를 보기 위해 일본 시민 수만명이 운집했다고 AFP통신이 22일 보도했다.AFP통신에 따르면 전날에만 5만명 이상이 줄을 서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역 앞에 전시된 도쿄올림픽 성화를 구경했다. 일본 시민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500m가 넘을 정도로 길게 줄을 서 몇시간씩 대기하다가 성화대에서 불타는 성화를 사진으로 담았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 우려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몰려들자 “인파가 너무 몰리면 전시회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성화는 지난 12일 그리스 고대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되어 그리스 내 성화 봉송을 시작했으나 영화 ‘300’에 출연했던 배우 제라드 버틀러 등 유명 인사가 봉송 주자로 나서며 인파가 몰리자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하루 만에 봉송이 중단됐다. 이후 근대 올림픽이 열렸던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 보괸된 성화는 지난 19일 도쿄올림픽 조직위에 넘겨졌고, 비행기로 공수되어 이튿날 일본 미야기현 마쓰시마 항공자위대 기지에 도착했다. 성화 도착 행사도 코로나19로 대폭 축소됐다. 올림픽 성화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 당시 피해가 컸던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현에 전시되어 지역 주민들의 단합을 꾀하다가 오는 26일 후쿠시마현 축구센터인 J빌리지에서부터 도쿄올림픽이 개막하는 7월 24일까지 일본 내 성화 봉송을 시작한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성화 봉송 릴레이를 무관중 상태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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