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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선…/달라지는 대한인식(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7)

    ◎한국인 폄하·우월감 아직도 곳곳에/경제발전·교류 확대 따라 인식 개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최근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수천년 이웃나라를 침략,온갖 박해를 가하고도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악담을 해대던 일본사회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겪은 차별과 악감정의 피해 사례는 헤아릴 수 없다.재일동포 1세들은 비교적 민족의식을 꿋꿋이 지켜왔으나 2세들은 상당수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싶을 뿐이었다. 북송교포로서 올해초 월남한 오수용씨의 누나 오모씨(63).그녀는 집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아이들이 일본인으로 생활하고 있다.(기자들의 방문으로 내가 한국인임이 밝혀져)아이들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 책임이다』라고 말하면서 취재를 거부했는데 주위의 일본인이 혹시 알게 될까봐 주의를 기울이는 표정이었다.동행한 민단지부 관계자는 『그녀가 국적을 바꾸지 않고 민단비를 꼬박꼬박 내는 것으로 보아 한국이 좋든 싫든 내 조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것만은 분명하다』면서 『그녀의 태도는 일본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신대지진때 민단과 조총련은 동포 사망자를 집계하는데 애를 먹었다.상당수가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살면서 「이지메」를 각오하고 본명을 쓰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오기를 필요로 한다.바꿔 말하면 그들이 쓰는 일본식 이름에는 눈물어린 사연과 애환,콤플렉스,사랑과 미움 그 모든 감정이 응어리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국교정상화 뒤 일본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신거주자」들도 일본사회의 거부 반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이들이 부딪힌 첫 시련은 집을 임대할 때부터 찾아온다.교묘한 말로 따돌림을 당하지만 진짜 거부 이유는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아파트를 재임대한다」,「친구들을 불러들여 밤늦게까지 떠든다」,「방이 불결하다」,「마늘 냄새가 난다」는 따위의 말을 듣기 일쑤였다.(거품경제가 꺼진 뒤 집 빌리기가 쉬어져 최근엔 집을못빌리는 예는 거의 사라졌다) 롯데관광(주) 도쿄지사장 황종걸씨는 최근 일본검찰로부터 엽서를 받고 쓴 웃음을 지었다.엽서의 내용은 황지사장이 고소한 한 일본인을 기소했다는 내용.그는 얼마전 일본인이 운전하는 택시로부터 충돌당했다.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상대가 한국인임을 알자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느닷없이 「마늘냄새 나는 조센징」 운운하면서 길 한복판에 서서 모욕을 가하더라는 것이다.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결국 일본인 운전사를 고소하고 말았다.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생각만을 모아 놓은 「추한 한국인」 1·2편은 30만부가 넘는 빅 히트를 치고 있다.일본인에게는 한국을 폄하하는 것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물론 우리에게도 일본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 있지만 추한 한국인이 가해의 역사를 미화하고 저자를 숨기는 등 비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얼음장처럼 냉랭하고 하늘만큼 우월감이 도도했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좋게 바꾸었다는 것이다.일본의 발전도 이바지했다.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너그러워질 여유를 갖게 됐다.세계각국의 문물을 가감없이 즐기려는 경향이 자리잡게 됐고 한국도 한자리를 차지할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에 대한 우월감과 경멸감,증오심을 굳게 갖고 있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한국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의 마음에 한국이라는 그림이 새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업무상 40대 이하의 샐러리맨을 많이 만나는 대우증권 도쿄지점의 박기홍 차장은 『이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잘 모른다.이들을 만나면 한일간에 감정이 없는 듯 느껴진다.또 한국을 잘 아는 일부 사람들은 「한국이 올림픽 뒤 질서를 지키려고 하고 서비스도 개선됐더라」는 말도 한다』고 전한다. 한일간에 사람들의 왕래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94년 1백60만 명 돌파,올해 목표 2백만명)도 한국에 대해 상대적 편견을 불식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회사원 가와나베씨는 지난 5월 한국을 한번 여행다녀온 뒤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있다.부인과 함께 한글책도 사서 보기 시작했다.한국을 더 알고 싶어 가을에 한국을 또 다녀올 생각이다.대한항공 김인진 일본본부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지방도시에 잇달아 취항하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취항 후 바로 한글 안내판이 붙고 안내서가 나온다.지방에서도 한국 관광붐이 분다.인지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덧붙인다. 지난달 사이타마현 히키군 요시미마치는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이 전시 군수공장용 굴을 뚫었던 곳에서 「도깨비대회」를 열려다가 계획을 바꿨다.현내 고등학생들이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장소에서 열다니 무신경한 처사」라고 반발,중단을 요구했던 것이다.이번 일을 놓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일일까.지나치지 않다고 믿고 싶다.일본인들의 얼음처럼 차가운 한국에 대한 인식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미풍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 일본에선…/민단과 조총련(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5)

    ◎“흔들리는 조총련”… 이탈자 해마다 급증/사회주의 붕괴·김정일 체제 불안감 큰 몫/이탈 「제3세력」 포용하는 민단노력 절실/남북화해 물결따라 두 단체 교류 조짐도 재일동포 2세 전월선(36·여)씨는 일본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오페라 가수다.그녀는 지난해 비제의 「카르멘」으로 한국무대에도 데뷰했다.그러나 전씨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둘로 갈라진 재일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아픔이 짙게 깔려 있다. 청중들의 열광적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남·북으로 국적이 갈린 가족과 만나야 한다.그녀의 가족은 일본사회의 민족차별과 함께 또 하나의 비극인 민족분단의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다.전씨의 국적은 처음에는 조선(북한)이었다.그러나 지난 93년 한국으로 바꾸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한국 국적이다.그러나 어머니와 동생들의 국적은 조선이다.한 가정에서 조차 국적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녀의 가족과 같이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누어져 있다.민단자료에 따르면 현재 68여만명의 재일동포중 민단계는 49만여명,조총련계는 18만여명으로 나타나 있다.그러나 조총련계가 24만여명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일동포사회는 당초 1945년10월 「조선인연맹」이라는 하나의 단체로 출발했다.그러나 1946년 「조선건국촉진 청년동맹」과 「신조선건설동맹」을 비롯 20여개의 산하단체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독점됐던 조선인연맹을 탈퇴,새로운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둘로 나뉘었다.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재일동포 사회도 이처럼 둘로 갈라놓았으며 오늘도 그러한 대립과 갈등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민단은 초창기 재일동포에 대한 세금투쟁,외국인등록령 반대투쟁 등을 시작으로 재일동포의 권익옹호와 민생안정를 위한 여러가지 민족차별 철폐 투쟁을 해왔다.83년에는 지문날인제도 철폐를 위해 1백80여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64년 도쿄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한국선수단을 지원했다. 민단은 75년7월 조총련계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위한 성묘단 사업을 추진,많은 호응을 받았다.성묘단 사업을 계기로 조총련중 민단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당초 조총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인구 비율이 역전됐다. 그러나 민단은 고질적 파벌싸움과 재일동포에 대한 권위주의적 태도 등으로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재일동포는 민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싫어한다』고 잘라말했다.그는 『민단은 단비만 받고 재일동포를 위해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지나치게 권위주위적』이라고 혹평했다.민단 관계자들도 민단에 대한 무관심과 비난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신용상 단장은 『봉사하는 민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동포사회의 또하나의 세력인 조총련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며 이탈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조총련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선학교 교장과 조총련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박로호 모국방문추진도쿄위원회 부위원장(70)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의 모순을 깨달은 후 조총련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고 말한다.그후 조총련을 탈퇴한 박부위원장은 『조총련의 중요한 지지 기반인 지식인들의 갈등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경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조총련계 상공인들도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날로 악화되는데 실망,크게 흔들리고 있다.지난해에는 조선상공연합회 부회장을 비롯 조총련계 상공인 1백40여명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다. 조총련은 한덕수의장이 88세의 고령에다 병을 앓고 있어 허종만 책임부의장 체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도 외화공급원인 조총련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인식이 김일성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조총련은 사실 당초 민단보다 지식인이 많았고 잘 조직됐었으며 지금도 경조사와 경제 문제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하는 등 강한 조직관리를 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과 북한의 모순과 어려운 실상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조총련을 떠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5천∼6천여명이 탈퇴했으며 지난해 이탈자는 6천2백여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총련을 떠난다고 해서 그들이 민단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이 민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제3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의 재일동포 사회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움직임과 교류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하지만 본격적인 화해는 아직은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세계적 이념의 대결 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 내의 이념적 대립은 한반도 뿐아니라 이국땅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인터뷰/민단 중앙본부 신용상 단장/재일동포 권익보호·생활안정에 최선/“참정권 획득,민족차별 철폐 앞장/권위주의 탈피 봉사단체로 일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의 신용상단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단은 앞으로도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금의 최대 현안은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획득』이라고 말했다. 세금은 같이 내면서도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참정권문제 등 민족차별철폐와 함께 재일동포들의 인식도 이제는 일본 영주로 정착되고 있으며 민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지난해 4월 당초 이름에서 임시로 머문다는 의미의 「거류」라는 말을 빼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민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우려됩니다.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단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나 민단에 신세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신(판신) 대지진때의 위로금 분배를 민단에서 맡아 했듯이 재일동포를 위해서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민단은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중요한 압력단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민단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봉사하는 단체의 역할을 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벌의 알력과 후계자문제,계속 늘어나는 귀화현상 등 많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결코 비관하지는 않습니다.한국정부도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거나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박양/377시간 생존 국내 새기록

    ◎양창선씨보다 8시간 45분 더 버텨 기약도 없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장장 15일하고도 17시간20분을 버텨낸 박승현(19)양의 생존시간은 국내 최고기록을 28년만에 경신한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 최고기록은 지난 67년 8월22일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매몰사고 때 양창선(당시 37세)씨가 세운 15일 8시간35분.박양은 이 기록을 8시간 45분이나 뛰어 넘었다. 지난 11일 극적으로 구조된 유지환(18)양이 기록한 2백85시간30분보다는 무려 91시간 50분이나 더 길다. 특히 양씨는 매몰 당시 도시락 1개를 가지고 있었고 갱바닥에 고인 물을 마셨다.또 바깥과 전화통화로 공포를 이겨냈다는 점에서 완전 단절상태에 있던 박양의 기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지금까지 외국 사례를 보면 매몰사고 등으로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생존한 시간은 아직 20일을 넘지 못하고 있다.기네스북에 따르면 매몰·붕괴 등 극한상황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기록은 지난 79년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튕겨나가 외딴 곳에 방치되어 있다가 구조된 호주의 아드레아스 마하베츠(당시18세)군이 세운 18일. 미국의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 폭파사건 때는 14일만에 구조된 생존자가 있었고,일본 고베대지진 때는 64시간이 최고 기록이다.
  • 벚꽃과 일본 장례풍습/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나라꽃은 곧잘 그 나라 「국민성」과도 비교되곤 한다.일본의 경우 화사하게 피었다가 함박눈처럼 한꺼번에 져 내리는 벚꽃의 모습이 일본인들의 행동과 닮았다고 말하는 논자도 있다.그 말에 수긍하느냐 여부는 각자 나름이지만 여하튼 일본인들은 피고(살고) 지는(죽는)데 독특한 점이 있는 듯하다. 자민당총재인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 부인 다케코여사가 13일 숨을 거두었다는 부음을 접하면서도 「역시 일본인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다케코여사는 수년전부터 지병으로 앓아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초까지 부군인 고노외상과 동행해 외국을 다녀오는 등 꼿꼿하게 내조해 왔다. 올해 53세인 그녀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은 지난 5월.6월들어서 재입원한 뒤에는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됐다.그동안 고노외상은 선진7개국 회담에 참석하랴,오는 23일 참의원선거에 대비하랴,자민당총재와 외상의 업무로 영일이 없으면서도 출근전과 퇴근시 병원을 들러왔다고 한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가 점점 불을 뿜게 되면서 고노총재는 13일 다케코여사의 비보를유세현장인 다카마쓰시에서 들을 수 밖에 없었다.예정을 앞당겨 비행기편으로 귀경하면서도 주위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동안 고노외상이 부인의 지병으로 쓰라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자민당의 모리간사장등 불과 몇명 뿐이었다고 한다.무라야마 총리도 7월 들어서야 고노집안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다케코여사는 지난 6일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참의원 지원유세에 오르는 부군에게 「힘내세요」라고 오히려 격려했다.상주가 된 고노총재는 14일 상중에도 불구하고 후쿠오카와 구마모토 유세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지난 1월 한신대지진때를 비롯해 각종 사고시 일본인들은 가족이 죽어도 울고불고 쓰러지기 보다는 손수건으로 눈물 한 두방울 찍어내고는 곧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를때 유족들이 밤샘을 하지않고 집으로 돌아가 쉬는가하면 커다란 무덤을 만들지 않는 장례풍습등을 보면서 「꽃이 지는 모습」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 미·일의 구난조직·활동

    ◎미국/연방 재난청서 구조 총괄지휘/소방소·의료진 등 유기적 협조 『연방청사 정문쪽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에 순간적으로 가방을 머리에 얹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한 5분동안을 꼼짝할 수 없었다.땅이 흔들려 지진인줄 알았다.얼마후 나는 얼떨결에 연기가 솟아오르는 건물 뒤편으로 달려갔다.구급차가 한대 막 도착했고 흰옷을 입은 닥터에게 응급구조법을 안다고 말하자 그는 나를 4인구조대에 편성시켰다. 우리는 이동침대를 하나 들고 피비린내와 신음소리가 뒤엉킨 잔해속으로 정신없이 뛰어들어갔다.9시10분 이었다』 이는 지난 4월19일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발사건때 비스타사의 직원으로 초기에 구조대에 가담했던 브렌트 블룸씨(23)의 증언이다.폭발시간이 상오9시2분인 것으로 미루어 사고후 8분만에 구조에 투입된 셈이다. 블룸씨의 증언은 재난관리의 총체적 책임을 맡고 있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자생적 구조작업이 조직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폭발 즉시한 블록 떨어진 세인트 앤터니 병원의 당직의사가 출동했고 그의 지시로 우선 구조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곧이어 FEMA소속의 구조대가 도착,체계적인 구조작업을 시작함에 따라 자생적 구조대의 역할은 자연스레 끝났다.연방정부 직할기관인 FEMA는 주단위 그리고 시나 카운티(군) 단위로 조직돼 있으며 소방서·응급의료진·경찰서·항공 및 앰뷸런스구조대·자원봉사대등 5개기관이 혼합편성돼 있어 재난발생시 모든 구난활동의 총지휘를 맡는다. 사건 발생직후 클린턴 대통령이 제임스 위트 FEMA청장을 현지에 급파한 것도 일사불란한 구조및 수습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층 건물의 사고인 만큼 고가사다리차와 크레인등 중장비가 동원됐으며 특히 콘크리트더미속의 신음소리를 청취해내기 위한 청음기와 콘크리트밑에 깔린 시체를 찾아내기 위한 특수온도계등 첨단장비가 사용되기도 했다.이밖에 간단한 손전등에서 전기톱·방독 마스크·장갑등 온갖 구난장비가 갖춰진 비상구난 전용차량이 달려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각 기관 역할분담… 체계적 대응/최첨단장비 갖추고 신속 대처 사고는 어느 나라나 나게 마련이다.일본도 예외는 아니다.지진과 태풍이 언제 어디를 강타할지 모르는 「자연재해의 나라」다.일본인들은 이 점을 늘 의식하고 살아간다.그래서 안전대책 마련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도쿄등 대도시의 경우 거리 곳곳에 지진 화재등 사고발생의 경우 긴급대피 장소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주로 각급 학교등 공공장소를 긴급피난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기업체들도 위기 대응에 민첩한 태세를 갖추고 있다.지난 1월17일 한신(판신)대지진 당시 기업들은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전체 종업원의 40%가 고베(신호)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쓰비시전기는 대규모 재해에 대비한 매뉴얼을 전국 각 공장에 준비해 놓고 종업원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지진당시 종업원들은 이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다.도쿄 본사에 피해상황등 종합적인 정보가 불과 두어 시간만에 입수됐다.대책본부가 선 것은 지진발생 3시간만인 상오 8시30분쯤이었다.상오 10시30분에는 여진발생에 대비,귀택조치가 내려갔다.일본은 재난발생시에 대비한 훈련이 잘 돼 있다. 일본은 재난이 발생하면 우선 경찰과 소방서가 합동본부를 설치,역할을 나누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도록 평소 체제를 갖추고 있다.경찰과 소방서는 또 기본장비를 늘 갖추고 있다.헬멧·장갑·통신장비등을 갖추지 않은 구조활동대를 보기 어려웠다.
  • “대지진 난줄 알았다”/지하2층 창고서 구사일생 김승희씨

    ◎처음 「쿵·쿵」 소리가 굉음으로… 정신 잃어/라이터불 켜 여직원 6명 이끌고 탈출 『희미하게 들리던 「쿵쿵」 소리가 점차 커져 굉음으로 변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손님이 부탁한 신사복 1벌을 창고에서 막 꺼내려는 참이었지요』 삼풍백화점 붕괴당시 지하2층 창고에 있다가 사고를 당한 김승희(29)씨는 사고 순간 일본처럼 대지진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근무지인 3층매장으로 출근한 것은 이날 상오11시쯤.동료직원이 『4·5층 매장 직원들이 철수를 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김씨는 엄청난 사고의 전주곡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오 6시 정각.그는 손님이 부탁한 옷을 가지러 지하2층 매장으로 내려갔다.퇴근이 이제 2시간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대단히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듯한 「쿵」「쿵」소리가 희미하게 시작됐습니다.30여초동안 계속되더군요』 마침내 바로 위까지 소리가 커지더니 천장이 일순간 「덜컹」했다.순간 김씨는 정신을 잃었다.1분여나 지났을까.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속이었다.시멘트 먼지냄새가 자육했다.눈도 매웠다.귀가 멍하고 눈이 아파왔지만 손가락이 움직여지는 걸 보니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제서야 김씨는 건물이 무너져 내린 사실을 실감했다. 「상오에 4·5층 매장을 철수시킨 것도,오늘 하루종일 에어콘을 가동하지 않은 것도 이것 때문이었구나」하는 생각이 스쳐지났다.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내린 김씨는 일단 앞을 보아야 나갈 수가 있을 것 같았다.라이터를 켜려는 순간 혹시 가스가 안에 차있을까 겁이 났다.그러나 막다른 골목이었다.갇혀서 죽느니 폭발이 일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헤쳐나가야겠다고 각오했다. 라이터를 켰지만 자신의 발도 보이지 않을 만큼 먼지가 꽉 차있었다.한걸음을 옮길때마다 숨이 가쁘고 진땀이 흘렀다.옆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여직원 5∼6명이 서로 얼싸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이들을 이끌고 건물 구조에 대한 직감으로 손으로 더듬어 헤쳐나가기를 얼마나 지났을까,지상 1층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찾아냈다.다리가 부러진동료여직원을 어깨로 부축하고서 한참을 걸었다.길을 잡았지만 곳곳에 널린 콘크리트 더미를 헤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거의 탈진한 순간 멀리서 작은 빛이 보였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지구촌 금수요 급증/선물용 인기… 일지진 여파 앞다퉈 구입

    ◎1분기 개도국 21%­선진국 26% 늘어 올해들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막론하고 전세계의 금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세계금협회가 1일 밝혔다. 금수요 증가의 요인으로는 동남아시아의 선물용 금 소비 증가,일본의 고베대지진,그리고 유럽과 미국의 치과용 금 수요가 늘어난 것 등이라고 세계금협회의 분기별 보고서가 지적했다. 「금수요 추세」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올해 1·4분기의 금 최종 소비 시장의 수요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1·4분기 동안 개발도상국 시장의 금 유통량은 4백50t으로 지난해 보다 21% 늘어났다. 이 보고서는 동남아시아와 한국을 합친 금 수요가 지난해보다 23% 증가한 1백23t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 인상,태국의 공무원 봉급 상승 등으로 동남아시아지역 주민의 가처분소득 증대와 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지의 선물용 금 소비 증가로 이 지역의 금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대만·홍콩을 포함한 범 중국권의 금수요는 지난해보다 14% 증가한 1백17.5t을 기록했다. 선진국들의 1·4분기 금 수요는 2백19t으로 지난해보다 26% 늘어났디.특히 일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나 증가한 77.1t의 금을 소비해 폭발적인 수요증가세를 보였다. 일본에서 금 수요가 급증한 것은 고베 지진으로 가치가 확실한 금에 대한 투자수요가 몰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또한 2개의 대규모 금융기관이 도산한 것도 예금자산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금으로 투자선을 돌리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 러·일의 자존심 경쟁/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정부는 지난달 31일 러시아로부터 날아온 한마디에 영 기분이 구겨져 있다.옐친대통령이 『러시아는 스스로 잘할 수 있다.일본은 섬들(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북방 4도서)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면서 일본으로부터의 지원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내비춘 것이다. 이 말이 전해지자 일본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관방장관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를 돕겠다는 것은 이웃나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한 신문은 『지난 1월 대지진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사할린지진을 남의 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본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또 다른 신문은 옐친 대통령이 부주의한 발언과 술취한 행동을 되풀이해온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재차 옐친 대통령의 발언을 러시아국민의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옹호하고 나섰고 무라야마총리는 『발언이 사실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라고 강한 불쾌감을 표명,2일까지 가시돋친말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1월17일 발생한 한겨울 지진으로 사망자 수천,피난민 수십만을 헤아리고 있을 때인 1월19일까지 세계 14개국이 제의한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방위청장관 등은 『자위대원 7천여명을 포함한 2만9천명의 구조대가 활동하고 있다』 『일본은 태풍·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아 구조활동에 대해 자위대가 갖고 있는 기자재와 노하우의 수준은 상당한 수준』이라면서 자력구조를 강조했다.후생성은 외국의사들이 일본의사면허가 없으므로 법규정상 일본안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없다고 고집,일본언론으로부터도 비판받기까지 했다. 결국 일본정부가 대외관계와 국민감정·수송업무·물자부족 등을 고려해 지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만 이번 발언공방을 보면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정치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 수 있음을 보게 된다.옐친대통령의 발언이 스마트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지원거절의 배경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일본 정치지도자들에게 한신대지진 발생초기지원을 제의했던 외국이 느끼던 당혹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입에 쓴 약」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 러시아 최악의 강진… 사할린 참사현장 이모저모

    ◎한밤 “대재앙” 도시전체가 생지옥/짙은 안개·날씨 차가워 구조 애로/주민들 깊은 잠… 대피못해 피해커/아파트 모두 붕괴… 주요 석유·가스관은 무시 ○세차례 지진 발생 ○…진도 7.5의 강진이 일어난 사할린섬 네프테고르스크지역에서는 초기 지진이후 두 차례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주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그동안 큰 사고가 없었던 이 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은 지진이 나자 놀란 마음으로 집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며 울부짖었다. 네프테고르스크 인근 오하시의 행정책임자인 나일 야루린씨는 AP통신과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이 지역에서 42년간 살아왔으나 이같은 강진은 처음』이라면서 『사람들이 한때 일제히 거리로 나와 어수선했으나 큰 혼란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지역의 기온은 0도로 매우 쌀쌀해 집을 잃은 주민들을 더욱 어럽게 하고 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짙은 안개가 구조대원들의 구조활동을 방해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경찰도 처음 당하는 큰 지진에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경찰도 우왕좌왕 ○…마을 전체가 폐허로 변한 네프테고르스크는 아파트들이 대부분 조립식으로 지어진 것들이어서 특히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지진발생 시간이 현지시간으로 새벽 1시5분으로 주민들이 모두 깊이 잠든 때여서 주민들이 대피할 수 없었던 것도 엄청난 피해를 부른 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육해군 긴급 투입 ○…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자 러시아 육·해군들과 국경경비대들이 구조작전에 긴급 투입됐으며 특별항공기는 난민들을 사할린의 한 유스캠프와 오하시내 병원으로 대피시키느라 분주.이 유스캠프는 지난해 10월 쿠릴열도 지진사고 때도 난민촌으로 이용됐던 곳.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은 사할린섬의 대지진으로 러시아 관가에서는 인명피해외에 또다른 걱정을 하였으나 불행중 다행으로 사할린에서 러시아 주요지역으로 가는 석유·가스 파이프라인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옐친 「애도」 표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극동지역 행정부를 통해 사할린 지진 희생자들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표시.옐친은 메시지에서 『네프테고르스크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매우 참담했다』고 말했다. ○…사건대책본부를 이끌고 있는 올레그 쇼스코베츠 제1부총리는 이날 지진에 대해 브리핑하는 가운데 지진발생 지역의 자연조건이나 사망추정 피해자 수로 볼 때 이번 지진은 러시아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번 지진은 대재앙』이라며 『우리는 아직도 그 운명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고베지진­일본사회·언론의 대응세미나」/김정탁 성대교수 주제발표

    ◎“지진지역 안정·질서회복 주력”/책임소재추궁보다 신속한 재해복구 강조/「충격적 장면」방영하는 한국언론과 대조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교수는 한국언론연구원이 24일 개최한 「고베지진­일본사회및 언론의 대응」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일본언론의 지진보도는 재난에 대한 집단적 대처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분석했다.김교수는 「현대 일본언론의 성격및 한신대지진 보도의 특징」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은 집단적 대처는 일본사회라는 시스템의 안정이 최우선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다음은 그 요지. 뉴스는 세상을 보는 창이다.뉴스의 창이라는 틀(프레임)을 통해서 일반인들은 국내에서 발생한 일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상황도 인식한다.재난이 발생했을때 우리는 언론보도의 프레임을 통해 재난의 현상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안다. 일본의 한신(판신)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고베(신호)시 전체는 화염에 뒤덮였으며 잠옷차림등으로 집을 뛰쳐나온 시민들은 밤새 추위에 떨면서 이틀동안 물과 음식물을 구할 수 없는 참담한상황이었다.그러나 NHK방송의 주된 보도내용은 부서진 고속도로,타오르는 화염,무너진 건물등의 모습이었다.이런 보도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도 계속돼 유족들이 통곡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은 반면 줄을 서서 식사를 배급받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이재민의 모습만이 주로 화면을 장식했다. 일본언론의 이같은 태도는 희생자의 인내는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필요하고 발빠른 복구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따라서 일본언론의 보도자세는 시종 냉정하고 차분했다. 지진으로 5천명이상이 사망했지만 일본언론에서 죽음의 이미지와 같은 극단적 부정적인 이미지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지진을 자연재해로서만 보도하고 그 이상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즉 한신대지진 보도는 한신대지진을 「반영」했다기 보다 「재구성」했다고 말할 수있다.바로 이같은 특성이 일본언론이 현실관리에 있어서 적극적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본언론의 이러한 특징적인 보도태도는 일본이 자연재해가 빈발하는비상상황에 처해있다는 현실에서 연유한다.따라서 일본에서는 자연재해에 대한 국가의 위기관리가 상시적인 것이고 국민 각자의 경우 자연재해발생시 그에 대한 대처행동이 내재화돼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언론인들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많은 뉴스가치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재난에 대해 개인차원의 보도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우리나라의 보도에서 유가족의 울음과 비통함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또 우리나라 언론보도는 사건초기부터 물리적 재난을 사회적 위기로 급속히 확산시키는 측면이 있으며 사건에 대해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관련인사의 책임소재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짙다.따라서 재난으로 발생된 위기는 사고책임자의 처벌로 해소될 수 있다. 일본의 지진보도는 우리와 달리 사회통합적 기능이 매우 크며 재난에 대한 집단적 대처를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진다.한신대지진 보도의 경우 책임소재 공방이나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을 따지는 보도가 매우 적었던 반면 재난을 수습하면서 안정이나 질서를 찾고자하는 기사가 많았다. 한신대지진의 경우 현청의 방재대책은 지진이 이 지역까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 매우 소홀했다.그러나 대지진이 이런 태도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일본언론도 이같은 입장에서 현청의 소홀한 방재대책을 비판하기보다는 다음의 재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보도했다.
  • 일본/고베 대지진때 약탈 한건없어(세계화 외국에선)

    ◎“질서지켜야 안정” 의식 철저/지도층 솔선… 특권의식 없어 일본은 질서가 잘 잡혀 있는 사회인가.최근 옴진리교 사건 등을 보면서 일본이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지는 사회라는데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은 최근까지 「질서있는 사회」라는 인상을 안팎에 깊이 심어주었다.교통흐름과 붐비는 지하철안에서의 예의에서 시작해 학력·실력·연공서열등에 따른 체계적인 승진질서,심지어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질서있는 관계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교통·주차질서는 한국인의 눈에는 경이로울 정도다.제일제당의 도쿄주재원인 김남수씨는 『주행방향이 다르지만 한국에서 운전할 때보다 피곤한 느낌이 3분의1도 안된다』고 말한다.급차선 변경,경적 소리,차선 변경 양보안하기 등 운전을 짜증스럽게 하는 일들을 거의 볼 수가 없다. 질서중시의 문화는 외국인들에게,특히 서구인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못할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어 주었다.일본인들의 질서의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찬양과 비판이 교차한다.여하튼 질서의식은 다양함·창조성 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지 모르지만 일본의 발전에는 송곳과 같은 강력한 무기가 돼주었다. 그들은 위기가 닥치면 더욱 질서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지난 1월17일 발생한 고베대지진은 1천년에 한번 일어날 정도의 대규모 지진이었다.5천5백명이 넘는 주민이 사망하고 시내 곳곳은 부서진 건물과 도로,화재로 아수라장이 됐다.그러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진 때같은 약탈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매스컴도 손발을 맞췄다.지진지역도 사람사는 곳이라 좀도둑 정도는 있었지만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질서있는 모습만 비춰졌다.해외에서 질서있는 일본인이라는 보도가 잇달았다.이를 인용한 일본내 보도가 나오고 이는 다시 시민들의 질서의식을 강화시켰다.지진으로 일본사회는 10조엔의 피해를 입었지만 시민의식의 확인,대외이미지 개선이라는 무형의 엄청난 자산을 수확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일본에서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6·25전쟁 당시 수도 서울을 사수한다고 하고서는 정부가 먼저 피란간다든가,쿠데타후 병영으로 돌아간다고 약속하고는 돌아서서 18년동안 독재정치를 하는 위약은 생각하기 어렵다.명치유신의 지도자들은 상당수가 하급무사 출신들로 근검이 몸에 밴 생활을 했고 현대의 대기업 경영자들도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오늘을 일궈내고 있다.국민들은 법과 질서를 지키고 정부의 지시를 잘 따르면 구조를 받거나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또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노력도 보통을 넘는다.예를 들면 일본정부는 이면도로를 잘 정비,차량들이 대책없이 꽉 막혀 있도록 방치하고 있지 않으며,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해 도로가 불법주·정차장화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이와 함께 합리적인 장례식,식사비용과 술값 등의 나눠내기,선물의 간소화 등등 개인에게 무거운 부담이 따르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관행들이 정착돼 있다.정치와 관련된 부문을 빼고는 「눈먼 뭉칫돈」이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는다.
  • 일 폭발물 소포테러/도쿄도지사 노렸다/건전지 이용한 기폭장치 설치

    ◎「니혼 TV 폭바」관련 병행수사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경찰은 17일 도쿄도지사 비서실 우편물 폭발사건은 아오시마 유키오(청도행남) 도쿄도지사를 직접 노린 테러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우편물의 발신인이 다나카 코조(전중황삼·67) 도의회 자민당 간사장 이름으로 돼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범인이 다나카 간사장의 이름을 사용한데는 특별한 범행동기가 있는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중점 수사중이다. ◎잇단 테러사건 왜 터지나/일 열도/경제성장 그늘서 병리 만연/전문지식·집단교육으로 윤리관 부재 초래/“사회 폐쇄성 탈출”… 광신집단 추종자 증가 일본은 요즘 사건 사고로 편할 날이 없다. 한때 안정된 사회로 평가받던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맞는 올해들어 상상을 뛰어넘는 각종 사건 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한신대지진 당시 시민들이 질서를 지키고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어 아픔을 함께 나눈 것도 일본의 모습이지만 옴진리교 사건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곳에 갑자기 해충군이 번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느낌」(도쿄신문)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런가 하면 옴진리교단의 소행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한 청산가스사건,도지사를 상대로 한 폭탄테러도 잇따라 터지고 있다. 옴진리교단은 보통의 사이비종교와는 달리 국가를 흉내낸 체제를 갖추고 과학으로 무장을 시도했다.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테러도 아주 쉽게 결행했다.신자들중에는 이공계를 중심으로 고학력의 젊은이들이나 이미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엘리트들이 다수 포섭돼 있었다. 이에대해 우선 전후의 경제우선주의 및 성적을 중시하는 교육이 인간관계를 경시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또 다른 의견은 일본 사회의 폐색감과 불투명성으로부터 초능력에 의지해 탈출하려한 것은 아닌가라고 지적한다.또 컴퓨터게임의 세대가 공상세계와 현실을 착각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아사하라 교주의 「공중부유」 등 상식밖의 초능력과 공상을 믿게 된 사회적 원인으로 전문지식 위주의 편협한 교육,실증적인 과학교육의 부재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이들은 일반대학 교육이 전문교육 위주로 흐르다 보니 젊은세대들의 시야가 좁아졌다면서 윤리관 확립,비판적 안목의 강화등 전인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후 50년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앞서 가는 구미만 보고 달려온 결과 이제는 구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지만 무엇을 보고 어떻게 달려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목표를 제시하기 보다는 권력다툼에만 몰입해 있다.사회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윤택화·보수화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걸맞는 인간관계,가정과 사회의 룰이 확립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특히 지식인 사이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방치될 경우 자칫 나치시대나 전전의 일본사회에 있었던 것과 같은 광신적인 맹신에 빠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교토대의 아사다 교수는 산케이신문 기고에서 『70년대 학생운동,80년대 만화등 서브컬처에 몰입하던 젊은이들이 이제 기묘한 종교에 모여들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옴진리교의 조직은 구소련의 스탈린주의를 생각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또 도호쿠대의 아사미교수는 일본 사회는 옴진리교와 같은 광신집단을 다룰 태세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광신집단이 출현할 수 있다면서 제2의 아사하라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남아공 「선시티」(아프리카 기행:11)

    ◎밤이없는 「25시의 도시」… 세계 관광명소로/서구문명 태동기에 화려한 왕궁건설/화산으로 잿더미… 「잃어버린 도시」로 전락/91년 다시 개발… “옛영화 되찾기” 열정 불태워 선시티(Sun City)는 보푸타츠와나의 한 가운데 문명의 손길이 빗겨간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선시티에는 이렇다할 경계선도 없고 밤의 적막도 없는 25시의 도시라 할 수 있다.매일 낮과 밤,고대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듯 아프리카의 정열을 분출하고 있는 도시중의 도시다.아주 옛날,한 두개의 돛을 단 배 이상의 해상교통 수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서구 문명이 아직 태동기에 있을 때,아프리카 북부로부터 화려한 건축기술을 자랑하는 한 부족이 이곳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화산의 분출구 주변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이 지역을 「태양의 계곡(Valley of the Sun)」이라 이름붙이고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땅은 비옥한데다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한복판 답지않게 물도 풍부했다.더군다나 운좋게 금광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여 여기서 캐낸 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그리고 그들을 이끌었던 용맹과 자비를 겸비한 훌륭한 왕이 거처할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도 지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어느 날 갑자기 다시 시작된 화산활동은 이들이 쌓아올렸던 찬란한 왕궁과 문명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주민들도 엄청난 파괴력 앞에서 뿔뿔이 흩어져 먼 곳으로 도망을 쳐야했다.잡초만이 무성한 옛 영화의 도시의 폐허모습으로 그렇게 버려졌었다. ○금캐내 부를 축적 1991년 문명인들에 의해 다시 햇빛을 보게 돈 「태양의 계곡」은 「선시티의 잃어버린 도시(Lost City at Sum City)」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발되어 오늘 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잃어버린 도시의 옛왕궁 터 옆에 자리잡은 「잃어버린 도시의 궁전(The Palace of the Lost City)」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는 그 엄청난 규모와 호화로움에 한동안 할 말을 잊어버렸다.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 이런 도시가 들어서 있다니,호화의 극치를 이룬 이호텔은 오늘 날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귀빈으로 접대하고 있다.이 호텔의 건물은 복원된 옛 왕궁과 함께 찬란했던 왕국의 영화를 되살려 주는 왕관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3백38개의 호화로운 객실과 대형 실외수영장,세계 각국의 일류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다섯개의 식당,골프 코스,초대형 무도장이 갖추어져 있다. 팰리스호텔의 내부는 복원된 옛 왕궁의 모습으로 북아프리카의 문화적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그러한 문화유산을 그대로 본떠 지어서인지 수많은 아프리카의 맹수들과 짙푸른 식물들로 장식되었다.야자수 잎이 정교하게 조각된 벽장식의 라운지가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머리부분을 하나하나 손으로 조각한 의자등받이 장식이 인상적인 식당도 자리잡았다.25m 높이의 망루에는 코끼리 상아와 야자수 잎을 야자줄기로 엮어 덮은 듯한 모양의 지붕이 있다.그리고 그 지붕 바로 아래에는 횃불을 태울 수 있는 등잔모양의 커다란 그릇이 보였다.밤이면 이 등잔에 켜진 횃불이 새벽까지 밝혀준다.아마도 옛날의 그 끔찍한 대지진이 있기 전에 이곳 왕궁에서도 이런 높은 망루에서 왕실의 경비병이 멀리서 오는 국빈의 도착을 알리거나 사냥감의 움직임을 관찰했을 듯하다. ○펠리스호텔… 큰 자랑 이 호텔에서 가장 인상깊은 예술품은 아마도 중앙 홀의 천장화일 것이다.25m 높이의 둥근 천장에 그려진 이 벽화는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직경이 16m에 달하고 중앙에는 천장이 있으며,모두 여섯부분으로 그림이 나뉘어져 있다.치타,얼룩말,원숭이,영양 등이 아프리카 밀림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이것을 완성하는 데 자그마치 5천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천장 바로 아래 바닥에 깔린 30만개나 되는 대리석 조각 모자이크가 무척 아름다웠다.팰리스호텔 주변 숲의 넓이는 약 7만5천평으로 대략 22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구역마다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열대림을 이루었다.특히 만포기 이상의 야생란이 자라 그 운치는 더욱 대단했다. 옛 왕궁터 안에는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생긴 파도의 계곡에 파도풀장이 있다.지진이있기전에 이 도시의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다.그러나 지진이 일어난 후로는 매90초마다 건헐온천이 솟아나와서 마치 바닷가에서 깨끗한 모래사장과 함께 해변의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효과를 낸다.이 간헐온천의 파도를 이용해 이곳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파도의 계곡을 지나면 시간의 다리(Bridge of Time)가 있다.이 다리는 옛 왕궁터와 대무도장을 연결해 주는데,다리 난간에는 표범과 코끼리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지각운동이 있을 때마다 다리 아래로부터 뜨겁고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다리가 흔들리기도 한다. ○간혈온천 솟아올라 파도의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원숭이 분수광장(Monkey Spring Plaza)은 옛 도시에서 심각한 가뭄이 들었을 때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무열매를 따서 사람들이 가뭄을 견디도록 도와주었다는 원숭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네 마리의 원숭이는 각각 동서남북을 정면으로 향하고 앉아 있으며,그들이 앞으로 내뻗은 팔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목마른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듯 하다.지각운동 때문에 땅이 흔들릴 때면 원숭이들의 머리에 얹힌 커다란 그릇에서 물이 흘러 넘친다고 한다.
  • 일,헬기 여단 창설 재해발생때 지원

    【도쿄 연합】 일본 방위청은 현재 13개인 육상자위대 사단을 일부 폐지하고 대량 헬기를 갖춘 「공중기갑여단」 등 복수의 여단을 신설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8일 보도했다. 이는 육상자위대의 정원 감축에 대응하고 테러와 무장난민 유입 등 냉전 후 예상되는 각종 위험에의 대처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공중기갑여단」은 자위대의 본래업무인 국가방위에 더해 대지진 등 재해가 발생했을 때 증원부대로서 활용할 방침이다.
  • 김철용 해항청장에 듣는 물류중심화 전략(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가덕도·광양·부산항대체 항만기지로/미·유럽 등 지역별 물량 항구별로 특화/부산·광양 부두확장공사 97년 마무리/국내선박회사 자율경쟁 유도… 세제·금융규제 완화로 한반도의 「동북아 국제 물류중심화 전략」이 지난달 25일 발표됐다.세계화 작업의 일환으로 부산항과 광양항을 활용,한국을 동북아 화물유통의 중심 기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이다. 그러나 발표단계에서 대부분 정책이 그렇듯이 물류중심화 전략 역시 구체적 방안들은 상당 부분 생략돼있는 상태다. 서울신문 김영만 경제부장이 김철용 해운항만청장을 만나 이 문제를 집중 인터뷰했다. ­한반도를 동북아의 물류 중심기지로 키우겠다는 전략은 지정학적 요건이나 환태평양 경제 여건상 좋은 기획으로 생각됩니다.문제는 돈입니다.한해 5천억∼6천억원의 예산으로는 하나의 항만도 건설하기 벅찬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합니까. ○반년 앞당겨 착공 『현재의 예산만으로 항만시설을 늘릴경우,2000년에는 컨테이너 선적이 물동량보다 40% 이상 부족하게 됩니다.이번 계획은 민자유치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물류중심화전략의 핵인 가덕도 신항만의 경우 연말까지 기본계획과 실시설계를 마련한 뒤 내년 초 사업시행 계획을 결정하고 4월까지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입니다.기본계획수립 용역은 삼성건설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맡겨졌습니다.당초 일정보다 6개월 앞당겨지는 셈이죠.공사는 사업자만 선정되면 바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아직 광양만 2차확장은 참여의향서를 낸 기업이 없는 상태긴 합니다』 ­가덕도나 광양항만 건설한다고 한반도가 동북아의 물류 중심기지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일본의 고베나 중국의 상해,대만의 카오슝,싱가포르 등과도 경쟁해야 합니다.이를테면 소프트웨어에 관한 질문이 됩니다만. 『맞습니다.특히 일본의 고베나 요코하마와의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불행한 일입니다만 관서 대지진으로 고베항이 제기능을 못해 부산항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해운은 물동량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죠.일단 물동량만 확보되면 중심항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게다가 아시아∼북미 항로중 중국∼부산∼일본 쓰가루 해협을 지나는 항로는 고베를 거치는 항로보다 90해리가 짧아 부산항의 경쟁력이 상당히 높지요.일본 규슈지방과 서해안 니이가타·하가타 지방의 화물도 부산을 환적항으로 삼아 북미로 수출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부산 배후기지로 중국과 대만의 항만은 아시아∼북미 항로에서 멀리 벗어나 있고,규모나 시설도 충분치 않아 중심 기지로서는 부산항에 크게 떨어집니다.싱가포르는 동북아 기지로서 이미 탈락한 상태라고 봐도 좋습니다』 ­한반도가 중심기지로 될 경우,부산항과 가덕도 및 광양항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상정하고 있습니까.서해안의 아산항이나 군장항과의 연계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항은 지금도 체선 사태가 잦고 중심항만의 척도인 환적물량의 비중도 지난해 14.7%에 불과합니다.싱가포르 70%,카오슝항 40%에 비하면 훨씬 뒤처져 있는 셈이지요. 따라서 가덕도와 광양항은 부산항을 대체하는 제2의 기지로 활용할 계획입니다.가덕도는 일본·러시아·북미를 맡고 광양항은 동남아시아와 유럽쪽의 물량으로 특화할 계획입니다.중국과 러시아의 교역 증대에 대비해 인천과 아산·군장·목포 신외항·새만금 등의 항만과 울산·포항·동해항을 부산항과 동서로 연계할 계획입니다』 ­급증하는 국제 환적 화물에 대비,현재 추진하고 있는 항만확충 계획을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 주시죠. 『오는 97년 부산항의 4단계 부두확장공사가 완공됩니다.기중기와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이 도입되기 때문에 1대의 기중기가 처리할 수 있는 컨테이너 용량이 현행 시간당 25대에서 40대까지 60% 정도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광양항은 5만t급 선박 4선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이 건설돼 오는 97년에는 연간 96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한 개)와 2001년에 1백44만 TEU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가덕도는 총 54선의 선박을 댈 수 있는 국제적 규모로 건설될 예정입니다.그러나 컨테이너 수요가 워낙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에 이것도 부족합니다』 ○선박보유 세계8위 ­우리나라가 해운 강국으로 부상했다고 합니다.그러나 일부에서는속빈 강정으로 실속이 없다는 지적도 많습니다.해운업의 속을 어떻게 보면 됩니까. 『국내 해운사의 선박 보유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계 9위에 올라있습니다.작년 상반기 중 당기 순이익이 5백60억원을 넘기도 했습니다.88년 이후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요.지난해 해운수입이 5조6천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무역의 약 30%를 차지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2% 남짓에 불과합니다.부채비율도 1천%를 넘어요.제조업체로 치면 도산 직전의 업체가 많습니다.따라서 국내 선사의 자율경쟁을 유도하고 각종 세제·금융 부문의 제약을 풀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해운업계가 안고 있는 현안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한마디로 규제가 너무 많습니다.내돈을 다 들여야만 선박을 확보할 수 있어요.그래서는 경쟁력이 생기기 어렵습니다.선박건조용 해외차관 도입도 풀어주면 되는데 연간 10억달러로 제한돼 있습니다.신청을 받아보면 20억달러가 넘어요.또 외국에서 배를 사오는 경우에도 우리는 2.5%의 관세를 붙입니다.노르웨이는 없고,일본은 0.3%에 그치고 있습니다.해외차입도 외환규제에 걸립니다.재경원과 계속 협의를 해야겠지만 이젠 이런 것들을 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도권 전문대 신설 ­선장이나 항해사 같은 고급 해운인력의 이직이 늘고 있습니다.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확보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해양 기사는 지난 88년 3만5천명에서 94년 2만3천명으로 줄어 연평균 6.5%의 감소율을 보이고 있습니다.열악한 근무 조건 때문에 해양대학 등을 졸업한 뒤 4년간 의무복무 연한만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우선은 수도권에 해양기사를 배출하는 전문대학을 신설하고 승선자의 병역 특례 및 복지제도도 확충,고급 인력을 우대할 방침입니다』 ­해운업이 단순한 여객 및 화물 운송 이외의 관광산업 등 제2의 기능도 강조되고 있습니다만. 『울릉도,재주도,홍도 등에 쾌속선과 카훼리선이 취항하고 있습니다.앞으로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나 서해∼남해∼동래를 잇는 관광 항로를 개발하겠습니다.또 이달부터 세모에서 인천에서 제주를 잇는 항로에 여객선을 투입합니다.제주의 싱싱한 횟감들이 바로 바로 서울로 올라오게 돼요.또 포항과 울릉도 항로에 호주에서 건조한 쾌속선이 투입돼 여행시간이 4시간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여객선 사고방지를 위해 취한 조치들이 있으면 이번 기회에 소개하시죠. 『여객선 사고의 원인은 승객이나 화물을 지나치게 많이 실었거나 정비·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현재 25개소인 기항지의 경찰 임검소를 53개소 늘리고 48명인 운항 관리자를 73명으로 늘려 안전 운항에 힘쓰도록 하겠습니다.운항 관리자가 없는 기항지 2백42개소에는 현지주민 3백44명을 명예 운항 관리자로 위촉하하고 낡은 여객선도 새 것으로 바꾸겠습니다.여객선과의 통신이 가능하도록 부산·인천 등 7개 지역 이외에 포항과 제주에도 중단파 무선전화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반짝 아이디어로 만성체선 해소/인천갑문관리소 입출항 효율관리 주효/하역진척 따라 통제… 대기시간 크게 줄여 인천항의 만성적인 체선상태는 이미잘 알려진 고질이다.인천항에서 충청도 앞바다까지 배가 늘어서 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그런 체선상태가 지난 3월부터 갑자기 사라졌다.부두를 증설한 것이 아니다.입출항하는 선박이 줄어든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존 생각의 파격,아주 사소한 관념의 파괴가 수천억,수조원의 사회간접자본 투자효과를 얻어 낸 것이다. 인천지방 해운항만청의 오세훈(45·공업서기관) 갑문관리소장이 「인천항 체선율 제로의 시대」를 열었다. 오소장은 지난 3월부터 수십년간 관행화돼 온 입출항 관리방식을 전격적으로 바꾸었다.입출항 일지에 따르던 입출항을 갑문 통제소가 선박의 하역작업 상황을 파악,하역상황에 따라 선박의 입·출항을 관리하는 탄력적인 갑문운용방식으로 바꾼 것이다.그 결과 하루 평균 30척의 선박이 입·출항을 위해 쓸데없이 대기,30% 가까이 되던 체선율을 무려 2∼3% 수준으로 낮췄다. 이제까지 인천지방 해운항만청은 선박 입·출항의 갑문운영을 갑문 통제소와 각 선사들의 선박대리점,도선사의 관계자들이 모여 선박운항회의를 열어 각각의의견을 수렴,결정한 선박 입·출항 배정시간에 따라 입·출항을 실시해왔다.갑문관리소는 일지에 따라 기계적으로 갑문을 여닫기만 했다. 입·출항 스케줄대로 움직이다보니 하역작업을 미리 끝내고도 배정시간이 되지 않으면 갑문 안에서 대기해야했다.갑문 안에는 빈배가 서있는 대신 입항해야할 다른 선박들은 입항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갑문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이런 결과로 선박이 충청도 앞바다까지 늘어서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특히 지난 1월부터는 6부두의 완공으로 선거(선거·내항)내 동시 접안능력이 40척으로 늘어났으나 체선율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때 오소장에게는 번뜩 하나의 생각이 스쳐갔다.그것은 갑문통제소와 멀리 떨어져 선박의 입·출항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선박대리점,도선사 관계자들이 모여 결정하던 경직된 선박의 입·출항스케줄이 체선율을 높인다는 것이었다.이들이 배정하던 입·출항스케줄을 선박의 하역상황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갑문 통제소로 이관한다는,지금까지의 고정 관념을 가볍게깨뜨린 것이었다. 이같은 인천항 갑문의 탄력적인 운용은 선박의 입항 뒤 하역작업이 배정시간보다 단축될 경우 배정된 시간과는 관계없이 바로 출항할 수 있게 돼 선거 내 선박의 대기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얻었다.여기에다 그동안 30%에 가까운 체선율을 2∼3%로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안에서 기다리는 시간,밖에서 기다리는 시간 모두가 줄어 든 것이다.관계자들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연간 1백50억원의 물류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천항에는 5만t급과 1만ⓣ급 2개의 갑문이 운영되고 있다.5만t급 갑문의 경우 간조나 만조시 선박의 입출항에 소요되는 시간이 60∼90분,1만t급 갑문의 선박 입출항 소요시간은 50∼80분이다.그러나 탄력적인 운용으로 대기시간을 적어도 30분 이상 앞당겨 인천항 입·출항 선박은 하루 평균 28척에서 31척 이상으로 증가했다.
  • 일본/「규제완화」 관민 발맞춰 추진(세계화 외국에선)

    ◎관습 등 대외교섭 활용… 내실있는 개방 지난 1월17일 한신(판신)대지진으로 대도시가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빠져들자 전세계로부터 의료진과 구호품 등을 보내겠다는 제의가 속속 답지했다.그러나 일본쪽 반응은 뜻밖에 심드렁했다.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의료진과 관련,일본정부는 「일본에서 의료행위를 하려면 일본 의사면허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해석을 내렸다.로스앤젤레스지진에서 경험을 상당히 쌓은 미국의사도 예외는 아니었다.세계 각국으로부터 「역시 일본은……」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자 결국 받아들여지게 됐지만 이들은 주로 의료기구를 소독하거나 일본의사를 보조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일본은 한국산 김에 대해 연간 2백50만속의 수입쿼터를 배정해놓고 있으나 김수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한국으로부터 수출되는 김은 모두 일본의 김생산업자로 이뤄진 김협동조합에 넘겨야 하고 조합은 이 김을 전년도 수입실적이 있는 수입상에게만 팔도록 행정규제가 이뤄져 있다.따라서 한·일국교정상화후 쿼터를 처음 배정받은 해에는 전년도 수입실적이 있는 수입상이 없기 때문에 수출이 이뤄지지 않았고 다음해에는 똑같은 사정이 되풀이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시범수입을 제외하고는 수출실적이 전무한 형편이다. 일본은 선진국치고는 세계적인 규제의 나라다.건설업·유통분야 등에는 공정거래에도 문제가 많다.미국 등으로부터 늘 규제를 완화하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외국정부를 포함,1백50여 단체로부터 2천5백항목의 규제완화요망을 접수해놓고 있는 실정이다.일본인도 스스로 규제가 심하다고 말한다. 법령·행정내부규칙·행정지도를 통한 규제와 계열(게레쓰)화등에 의한 관습적이고 자율적인 규제는 일본문화의 한 측면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일본은 「이익을 주거나」 「손해를 입히는」 규제행위와 연결된 관료의 부패가 거의 없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관료체제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고 전후 일본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관차였다.일본 대형증권업체에 규제완화에 대한의견을 구하니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관민일체로 해야 한다고 응답해왔다.관료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은 썩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일본정부가 각종 규제를 섣불리 벗어던지지 않는다는 점과 관습을 통한 규제 등을 대외교섭에서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3월 11개 분야 1천64항목의 규제완화추진5개년계획(엔고현상으로 추진기간을 3년으로 단축)을 발표했다.물론 해외로부터는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일본정부는 60년대초부터 대외개방정책을 펴면서도 각종 규제를 자신의 페이스대로 하나씩 천천히 벗으면서 국제화를 해나가고 있다.섣부른 국제화보다는 적절한 페이스를 지켜가면서 국제화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비슷하게 생산자위주의 성장경로를 거치면서 여러가지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일본의 전략이 모범적 사례가 될지 아니면 잘못된 사례가 될지 연구할 만한 점이 많은 듯하다.
  • 핵실험·인권문제관련 우려 표명할듯/무라야마 일총리 첫 방중 안팎

    ◎중선 엔차관 상환액 경감 등 요구 예상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2일 총리취임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일본측은 『5일동안의 짧은 일정에 진시황의 병마용이 있는 서안과 상해도 둘러보는등 가벼운 기분의 방문』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대지진부흥대책,엔고현상,지하철독가스 살포사건,옴진리교 수사,무당파 돌풍이 일어난 통일지방선거 결과,사회당 내부의 갈등등­무라야마총리의 머리를 무겁게 만드는 일본 국내의 현안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중국방문이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는 것을 원치 않고 있는 것이다.중국도 장기적으로는 주변지역의 안정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의 우호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일본측의 분석반 희망반의 기대다. 무라야마총리는 일본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중·일전쟁의 발발지점인 노구교를 방문,『전쟁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미래지향의 중·일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뜻을 피력할 예정이다.무라야마총리는 이때 「부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 방침이다.연립여당인 자민당이 「부전」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는 것이다.또 중국 국방비의 투명성 및 핵실험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전하고 중국의 인권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국가에 있어서도 우려가 확산되고 있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측이 무라야마총리의 발언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수용할지는 미지수다.우선 항일전쟁 승리 50주년을 맞고 있는 중국측은 일본이 겉으로는 사과·반성하고 뒤로는 전쟁을 미화함으로써 중국 국민감정을 악화시키는 만큼 양국관계의 장기안정을 위해서는 국회결의와 관련된 확실한 입장표명을 듣고자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 일본이 오는 11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회의(APEC)에 대만 이등휘총통을 초청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할 태세다.중국은 대만의 독립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이 대만을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키워왔다. 또 엔고 때문에 상환부담이 크게 늘어난 엔차관 상환액의 경감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중국은 지난 79년부터 93년말까지 1조4천억엔의 차관을 끌어왔으며 이 돈의 전체상환액을 다른 외화로 환산하면 빌릴 당시보다 1.9배.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물론 일본은 상환액경감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방침이다. 고노 요헤이 외상은 유럽을,다마자와 도쿠이치로 방위청장관은 미국을 방문하는 등 정치권 지도자들이 황금연휴를 맞아 일제히 외국을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무라야마총리는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구상을 갖고 올 것인지­일본국민은 크게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고베지진1백일/“세계적부흥모델 만든다”/본사 강석진특파원 현지르포

    ◎“전화위복 삼겠다”… 「10년 계획」착착 실천/영업재개 교민들 “열심히 산다 써주오” 대지진으로 황폐화했던 일본 효고현에 지진 1백일이 지난 요즘 부흥의 깃발이 높이 펄럭이고 있다. 고베시의 거리에는 부서진 건물들을 철거하는 건설중장비의 굉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거리를 걷다보면 건물철거 작업에서 발생한 먼지로 목이 잠기고 눈이 쉬 피로해진다.가라오케의 깨진 입간판에도 불이 들어오고 신고베역 앞 광장에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남자어린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잉어 깃발이 바람을 받으며 힘차게 휘날린다. 지진과 화재로 삶의 터전을 한꺼번에 잃었던 재일동포들도 재기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피해가 컸던 나가타구에서 가설주택을 빌려 다시 불고기 식당 영업을 재개한 김아주머니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교민들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써 주이소』라고 당부하면서 『어서 돈 벌어서 한국에 놀러 가야지』하고 밝게 웃어 보인다.고베시에서 만난 동포들은 『우리가 돈 갖고 일본에 왔느냐』고 반문하면서 『지금은 당시보다 훨씬 여건이 좋다』고 자신감을 내보인다. ○여전히 인내심 발휘 산노미야지역은 통행이 어려운 인도를 피해 차도로 내려간 사람과 차량으로 뒤범벅돼 혼잡을 빚고 있지만 누구도 성내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차량들은 걷는 사람 뒤를 천천히 뒤쫓아갈 뿐이다.여전히 인내심이 발휘되고 있고 질서는 잘 지켜지고 있다. 효고현 전체의 희생자는 지금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5천5백여명을 넘어섰다.행방불명자도 아직 2명이 남아있고,부상자는 3만7천명을 기록하고 있다.4만8천여명의 주민들이 여전히 피난생활을 계속하고 있다.총피해액은 10조엔에 달한다. 그래도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그들은 단순한 복구작업을 거부한다.오히려 지진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부흥을 이루겠다는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각종 계획도 복구계획이 아니라 모두 「부흥」계획이다.효고현 「진재부흥부」의 사이토 가즈미치씨는 복구에 얼마나 걸릴 것이냐는 질문에 먼저 한자로 「복구」가 아니라 「복흥」이라고 다시 써 보인다. 부흥10개년계획은 21세기를 맞아 세계에 대해 열린,문화가 풍부한 지역으로 비약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그들은 부흥이 완료되면 세계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원봉사 손길 뜸해 하지만 부흥에 이르는 그들의 길은 아직 험난하다. 우선 피난민들을 위한 가설주택 마련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자영업자인 나카다니씨(60)는 집이 전파돼 친척집에 기거하고 있다.그는 『시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스러워한다.지진 발생후 일본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답지한 구호물자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기력을 회복했지만 개학을 맞아 자원봉사자들도 대다수 돌아가고 구호의 손길도 가늘어지고 있다.이제 모든 것이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몫이 되고 있다. 또 피해시설의 철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효고현에서 나오는 건물 등 파괴시설의 철거 쓰레기는 모두 1천8백50만t규모로 추산된다.쓰레기를 실은 트럭의 행렬이 3∼4㎞나 늘어서기도 한다.피해건물 철거에만 2년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세민들의 경우 전망이 막연하기만 하다.또 집은 시가 철거해 준다고 해도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재건축 비용은 커다란 부담이다.가옥이 전파된 나카야마씨는 『일본의 건물은 담보로 잡혀 융자받은 경우가 많은데 담보물인 건물이 부서져 담보가치가 없어진 경우 은행이 새 건물 지으라고 융자를 주겠느냐』면서 고개를 흔든다.도로와 공원을 넓히려는 당국의 재개발계획과 주민들의 이해도 충돌하고 있다. ○영세민들엔 부담 커 재일동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한국으로부터의 의연금 등은 가구당 5만엔 수준이고 50억엔의 대출금도 담보물이 튼튼한 경우일수록 이용에 유리하다.효고현 민단 사무국장 김준태씨는 『정작 1백만엔에서 5백만엔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가난한 동포는 대출받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고 문제점을 지적한다.부흥이 전체적으로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으로 내려오면 부딪히는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닌 것이다. 한신대지진 1백일.어둠속에 한줄기 빛이 비쳐오고 있지만 한편으로 빛과 그림자가 점점 선명히 대비돼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 고베 지진충격 이후/한영성 원자력연 상임고문(굄돌)

    지난 17일로 대지진 발생 3개월째를 맞는 고베현장.상점들이 문을 열었고 길을 메운 차량등 외관상으로는 많이 복구된 것 같았다. 그러나 5천5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백조원이 넘는 재산피해,아직도 5만5천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곳 주민들의 몸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잦은 여진 등으로 심한 마음고생까지 겪고 있다. 신의 집(신호)이라 이름한 도시,그중에서도 신이 노닐던거리(신락정)가 피해의 극을 보였다.어디 그뿐인가.잘사는 사람의 잘 지은집,새집보다는 못사는 사람의 덜 잘 지은집,낡은 집이 훨씬 더 많이 넘어지고 부서졌다.따라서 가진자보다 덜가진자가 몇배 더 가혹한 천형을 선고받은 셈이다.「부익생 빈익사,신은 죽었는가」 어느 문인의 목멘 절규가 복구굴착기 소리에 섞여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고베의 재해현장을 둘러보면서 실내의 냉장고가 넘어지고 텔레비전이 나뒹구는데 그대로 서 있는 건물,여러층 중에서 유독 한층만 찌부러진 현상,의외로 고층아파트나 대형건물이 멀쩡해 보이는 것등이 선뜻 이해가 안갔다.이어 지진이라는 엄청난 천재를 보고서야 비활성지진대에 살고 있는 천혜를 떠올렸다. 한편으로 이번 지진에서 일본 국민이 보여준 무서운 침착성과 질서의식은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그들의 높은 저축률과 강한 단결심 또한 수없이 겪어온 천재와 무관하지 않은 몸에 밴 생존의 길이자 생활양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일본고옥 뜰의 꽃과 나무는 언제 재앙이 있었느냐는 듯 미풍따라 싱그럽다. 「일본혼이여 힘내라」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의 글귀가 고베를 떠나 귀국길에 든뒤에도 잔영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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