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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고 학생 7명 제주국제대 명예입학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가운데 7명이 제주국제대에 명예입학한다. 제주국제대는 올해 신설해 첫 입학생을 받는 실용예술학부 대중음악전공 과정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박수현·오경미·이재욱·홍순영·강승묵·김시연·안주현 등 단원고 학생 7명이 명예입학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들 학생은 단원고 학교밴드 ‘ADHD’를 결성하는 등 함께 음악 활동을 했으며 평소 대중음악 계열로 진학하기를 꿈꿔 왔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세월호 희생 단원고 학생 7명 제주국제대 명예입학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가운데 7명이 제주국제대에 명예입학한다. 제주국제대는 올해 신설해 첫 입학생을 받는 실용예술학부 대중음악전공 과정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박수현·오경미·이재욱·홍순영·강승묵·김시연·안주현 등 단원고 학생 7명이 명예입학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들 학생은 단원고 학교밴드 ‘ADHD’를 결성하는 등 함께 음악 활동을 했으며 평소 대중음악 계열로 진학하기를 꿈꿔 왔다. 이 가운데 박수현군은 지난해 10회에 걸쳐 열린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공연의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이 공연은 박군이 작성한 버킷리스트 가운데 ‘ADHD 공연 20회 하기’를 모티브로 유명 인디밴드 등이 모여 박군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기획했다. 유가족들은 학생들의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애석해하던 중 이 공연을 추진한 인디밴드들과 인연이 있는 제주국제대 실용예술학부의 대중음악전공 신설 소식을 전해 들었고, 학생들이 끝내 찾아오지 못한 제주에서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학에 협력을 요청했다. 제주국제대는 희생 학생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학부모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등 사회 통합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명예입학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명예입학증은 다음달 2일 입학식장에서 학부모 등에게 수여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손열음 “질풍노도 20대 지나… 진정성 느껴지는 음악 할게요”

    손열음 “질풍노도 20대 지나… 진정성 느껴지는 음악 할게요”

    1차 세계대전 시대상 반영한 곡 엄선 전쟁이 미치는 영향 생각해봤으면…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 편견 깨고 싶어 “20대 때는 진짜 자신감이 없었어요. 슬럼프도 사실 매 순간 와요. 연주가 조금만 별로여도 확 위축되니 저도 해결책을 찾고 싶어요.” ‘강철 멘털’인 줄 알았던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이런 고백을 한다. 당당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해 나가는 그의 속내가 그렇다니 의외다. “그래서 저는 서른이 되면 더 행복할 것 같아요. 질풍노도로 가득했던 20대를 지나 30대에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걸 구분하고 스스로를 독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음악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더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오는 5월이면 서른살이 되는 손열음이 그 바람대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음악회로 꾸민다.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서울, 대전, 대구, 창원 등 전국 10곳의 무대를 찾아가는 ‘모던 타임즈’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부터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조지 거슈윈의 ‘스와니’, 라벨의 ‘라 발스’ 등 1914년 세계 1차대전을 기점으로 전후 바뀐 시대상을 부감할 수 있는 곡들을 가려 뽑았다. 17일 서울 이태원 스트라디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일부 곡을 들려준 손열음은 “1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에 대한 동경으로 짜게 된 레퍼토리”라고 했다. “당시는 정말 세상이 확 열리며 우리가 요즘 얘기하는 ‘강제 세계화’가 됐어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지났는데 인류 역사를 바꿀 정도로 모든 패러다임을 바꿔 놨어요. 이때의 음악이 (세계에) 어떤 역할을 했고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란 생각에서 고른 곡들이에요. 전쟁이 한 개인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 그 사회가 개인에게 또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여러분도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동양인으로서 서양음악을 하면서 느낀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깃들어 있다. “유럽에선 아직도 저를 보고 ‘동양인이 왜 우리 음악을 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서양음악은 1880년대 선교사들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1910년대 한양에서 브람스, 베토벤을 듣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세대는 서양음악을 내 음악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동양인은 서양 고전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그는 ‘글 쓰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연주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동력은 ‘성취감’이다. “쓰는 데 너무 오래 걸려 미치겠어요(웃음). 고행이지만 성취감이 크고 클래식을 전파하려는 사명감도 없다가 생겨났어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는 가사가 없고 기악곡이 많아 추상적이라는 거잖아요. 글은 반대편의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쓰고 있습니다.” 클래식의 대중화에 사명감이 생긴 만큼 최근 조성진 등 후배들의 잇단 콩쿠르 우승 소식도 반갑다. “조성진군 같은 사람들에게 감사하죠. 어떤 계기든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3만~8만원. 1577-5266.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컨트리 요정 스위프트 ‘그래미 3관왕’

    컨트리 요정 스위프트 ‘그래미 3관왕’

    레이디 가가, 보위 추모 공연 갈채받아 미국 컨트리뮤직의 요정 테일러 스위프트가 세계 대중음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꼽히는 그래미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을 두 차례 수상한 첫 여성 뮤지션이 됐다. 스위프트는 15일 밤(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58회 그래미어워즈에서 지난해 발표한 앨범 ‘1989’와 노래 ‘블랭크 스페이스’로 ‘올해의 앨범’과 ‘베스트 팝 보컬’, ‘베스트 뮤직비디오’ 등 3개의 상을 받았다. 컨트리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스위프트는 2010년 그래미에서도 올해의 앨범을 비롯해 4관왕에 오른 바 있다. 이번 시상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나온 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최고의 노래를 창작한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노래’ 영예는 지난해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이 발표해 세계를 휩쓴 사랑 노래인 ‘싱킹 아웃 라우드’에 돌아갔다. 가수,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 노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올해의 레코드’는 ‘업타운 펑크’를 부른 영국 출신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마크 론슨이 차지했다. 베스트 신인 아티스트 상은 지난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올 어바웃 댓 베이스’로 8주 연속 1위를 달렸던 미국의 팝 가수 메간 트레이너가 거머쥐었다. 최다 11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려 화제를 모았던 랩 아티스트 켄드릭 라마는 베스트 랩 앨범 등 5관왕이 됐다. 한편 시상식에서는 레이디 가가가 최근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를 위한 추모 공연을 펼치며 고인을 오마주하는 메이크업과 의상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스티비 원더와 아카펠라그룹 펜타토닉스는 밴드 어스윈드앤드파이어의 리더 모리스 화이트를, 록밴드 이글스는 팀의 기타리스트였던 글렌 프레이를 기리는 무대를 가졌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나 뒤로 자빠지겠네!” 마돈나, 공연 중 의상 안 뜯겨져 난감

    “나 뒤로 자빠지겠네!” 마돈나, 공연 중 의상 안 뜯겨져 난감

    팝스타 마돈나가 공연 도중 의상 때문에 당혹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10일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마돈나는 최근 태국 방콕 임팩트 아레나 공연 도중 베일과 때아닌 힘겨루기를 했다. 이는 마돈나가 자신의 히트곡 ‘매터리얼 걸’을 부를 때 일어났다. 그녀는 큰 베일을 머리 위에 쓴 채 노래를 불렀고, 백댄서들은 사전 약속대로 마돈나의 머리에 덮여 있는 베일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베일은 더 팽팽하게 펴질 뿐 벗겨지지 않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당시 마돈나의 굴욕적인 모습은 현장에 있는 관중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포착됐고,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영상에는 마돈나가 벗겨지지 않은 베일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쓴 채 버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베일과 줄다리기를 하던 그녀가 가까스로 베일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이어진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마돈나가 지난해 대중음악 시상식 ‘제35회 브릿 어워드’ 이후 1년 만에 다시 무대 의상으로 돌발 사고를 선보였다고 전했다. 1년 전 그녀는 자신의 히트곡 ‘리빙 포 러브’ 무대를 꾸미던 중 걸치고 있던 망토가 풀리지 않아 무대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한편, 마돈나는 지난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글로벌 레벨 하트 투어’ 공연 도중 대만 국기를 어깨에 걸쳐 중국인들로부터 비난을 샀다. 사진 영상=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제2의 쯔위사태?’ 마돈나, 대만국기 펼쳤다가 中서 후폭풍 ☞ 제니퍼 로페즈 백댄서, 무대 위서 노출 사고
  •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김국환의‘타타타’ 원제목은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김국환의‘타타타’ 원제목은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국민가수 김국환의 국민가요 ‘타타타’의 노랫말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양인자씨가 지었다. 24년전 1992년 전국 레코드가게를 지날 때면‘아하하…!’로 호탕하게 마무리짓는 웃음소리는 자조와 낙관의 인생을 표현하듯 우리네 뇌속에 다가왔던 그 시절 그 노래다. ‘타타타’는 1992년 초 최고 64.9%, 평균 59.5% 시청률의 당대 최고 인기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김수현 작가가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 발굴한 노래는 ‘난 알아요’의 서태지와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신승훈과 함께 김국환을 그해 최고의 가수로 올려놓았다. 또 생뚱맞게도 김국환이란 가수는 ‘은하철도 999’하면 생각나는 만화영화 주제가도 여러곡 불러 어린이들에게도 친근감이 많다. 세월유수라 했던가. 그사이 강산도 두번 넘게 변해 김국환이 이젠 고희를 눈앞에 뒀다. ‘타타타’와 ‘은하철도999’로 기억되는 국민가수 김국환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만나 45년 그의 노래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무명시절이 꽤 길었다는데?-고교시절 콩쿠르대회에 여러번 나가 상품도 많이 탔다. 어느날 대천극장 무대쇼에 올라가 당시 유행곡인 진송남의 ‘바보처럼 울었다’를 불러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며 대천일대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상경하여 서울 태평로 아카데미 음악감상실에서 4명이 겨루는 노래부르기 대회에서 대천촌놈인 내가 1등을 했다. 그러고나니 서울사람들도 노래솜씨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MBC DJ 이종환씨를 알게 됐고 이 인연으로 당시 최고악단인 김희갑악단으로 스카우트됐다. 김희갑씨는 다른 이와 달리 학벌보다는 노래실력을 최고로 여겼다. 한때 펄시스터스, 조영남, 김세레나 등이 출연하는 부산해운대관광호텔서 MC를 보며 일하기도 했다. 이곳에 조영남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나에게 “국환아 너 가수하지 마라. 가수의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아냐”라며 극구 가수하는 걸 말린 적도 있다.  ⇒ 최고의 히트곡 ‘타타타’의 원곡제목이 ‘바람이 부는 날은’이었다?- 김희갑악단이라는 최고악단과 궁합이 잘맞아 일하는중에 어느날 주위에서 김악단에서 나오라고 꼬득였다. 근데 악단을 나온 후 일이 뜻대로 잘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김희갑악단과 인연이 돼서 공전의 히트곡 ‘타타타’를 부르게 된다. 애초 받은 곡명은 ‘타타타’가 아닌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위일청이란 가수가 처음 이 노래를 어느 단막극에서 “바람이 부는날은” 제목으로 불렀고, 그다음에 조용필이 불렀다. 이후 나한테 기회가 왔는데 이때 ‘타타타’로 노래제목이 바뀌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어쩜 내가 살아온 인생하고 곡 빼닮았았는지 한번 듣고는 마음에 확 끌렸다. 처음엔 음향장비도 없어 숟가락을 갖고 노래연습을 했다. 2년동안 노래연습만 했는데 녹음하는데 또 2년이 더 걸렸다. 신곡취입하는 데만 모두 4년넘게 걸렸다. 근데 이즈음 저의 아버지가 한 말씀이 “김희갑이 걔는 왜 이렇게 노래취입이 늦냐?”라고 하셨는데 우연찮게도 그러고나서 얼마 안지나 음반이 나오기 전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 ‘타타타’ 노래가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곡으로 나온 경위는.- 김수현 작가가 어느날 차를 타고 라디오를 듣다가 가수이름은 잘모르겠는데 “옷한벌은 건졌잖소~”라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기사에게 이 노래음반 좀 사오라고 했다. 근데 기사가 엉뚱하게도 잘못알고는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곡을 사왔다. 그래서 다시 보내 ‘타타타’를 사왔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사랑이 뭐길래’ 연출가한테 드라마에 넣어달라고 하니까 대중가요라 편파적이고 오해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 근데 김수현 작가가 끈질기게 넣어달라고 요청한 끝에 결국 드라마 삽입곡이 됐다.  ⇒ 김국환은 매니저가 없는 가수라고 하던데.- 근데 내가 처음부터 매니저를 두지 않았던 게 아니다. 이 무렵 불교방송 행사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불교방송이라 방송담당자에게 출연료를 안받겠다고 사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출연료를 매니저가 몰래 꿀꺽했다. 매니저를 한달 만에 아웃시키고 그 이후로 매니저를 두지 않았다. 노태우정부 때 주로 난 정부행사를 많이 했다. 어찌보면 난 대중음악계에서 사생아다. 드라마곡으로 한방에 갑자기 떴다고 연예계 한쪽에서는 이를 시기질투했다. 매니저가 없어 업소행사 출연하는 데 다소 불리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나이트클럽 업소에서도 ‘타타타’ 출연 요청이 거의 없었다. 업소가 춤추고 노는 곳인데 “네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나를 알겠느냐”라고 불러대면 가사가 영 안어울린다는 이유였다. 또다른 히트곡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역시 일부 야간업소 측에서 별로 안좋아했던 곳이 있다.  ⇒ 특히 만화영화 주제가를 많이 불렀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인 당시 마상원 MBC악단장이라는 분이 있었다. MBC일요큰잔치 전속악단장으로 서울 전농동에 살 때 마 단장이 추천해서 만화영화주제가를 불렀다. 우연잖게 ‘은하철도999’를 부르게 됐는데 성인가수인 내가 왜 이런 어린이들의 만화영화 주제가를 불렀는지 후회스러워 마 단장에게 내이름 석자를 지워달라고 한 적도 있다. 얼마전 MBC의 ’능력자들‘이란 예능프로에 나갔는데, 알고보니 내가 그때 부른 만화영화 주제가들이 미래소년코난, 축구왕슛돌이 등 무려 30곡이 넘었다. 종종 나이트에서도 은하철도999, 천년여왕 등 만화주제가를 부른다.  ⇒ 기억에 남는 팬들과의 사연이나 추억이 있다면?- 팬들과의 추억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가장 생각나는 게 있다. 국기원 원장을 역임한 이승완씨가 나를 무척 좋아했다. 미국 뉴욕공연갔을 때다. 이승완 형님의 1년후배로 뉴욕에 거주하는 박동근씨라는 분을 같이 만났다. 뉴욕서 태권도 1인자일 정도로 유명한데 이분이 한번은 나를 보더니 ”내가 90년도 미국에서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옷한벌은 건졌잖소~”라고 흘러나오는 김국환의 ‘타타타’노래를 듣고 다시 용기를 얻어 열심히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얘기했다. 또 한분은 캐나다에 사는 교민으로 ‘타타타’CD를 갖고 와서 사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과 사별후 딸과 함께 사는데 ‘타타타’ 앨범속에 있는 ‘보랏빛욕망’이란 노래를 듣고 유언을 했는데, “내가 죽으면 김국환노래 CD를 묘지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단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가수로서 뿌듯하고 가수되기를 참 잘했다는 묘미같은 걸 느낀다.  ⇒ ‘타타타’ 이후 25년이 지난 요즘 근황은?- 요즘은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가 많이 사라지고 별로 없다. 야간업소 문화가 없고 출연료도 비싼 편이라 노래하기가 쉽지 않다. 야간업소 말고 가요무대 등 방송출연과 지방행사, 산사음악회를 주로 다니고 있다. 최근 ‘달래강’이란 노래 신곡 음반을 냈다. “말이나 한번 해보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그토록 꼭꼭 숨기면 하늘인 들 알 수 있겠니/ 날마다 그리워 흘린 눈물이/ 강이 돼도 말 못한 미련한 사람아/ 바람도 물새도 서러워 울고 간다/ 달래강 애달픈 사랑” 제13집 타이틀곡으로 ‘달래강’ 노래는 경쾌한 트로트풍이다. 미련할 만큼 말못하고 가슴에 담아둔 사랑이야기를 애잔하게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달래강은 충주지역 강이름이다. 물이 달다고 하여 단냇물, 달물, 달강, 달래강이라 한다.  ⇒ 고희를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바람이 있는지.- 가수돼서 최정상에도 올라가봤다. 이제 고희가 다돼가는 나이에 그동안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씩이나마 갚아가며 살아야겠다. 가수가 바람이 뭐 특별한 게 있겠나. 앞으로 꾸준히 신곡발표해서 팬여러분들에게 내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또 지난해 못한 디너쇼도 올해는 꼭 한번 하고 싶다. 낙천적이라 아직은 건강하고 뒷동산에 올라다니는 걸 좋아한다. 산에 다니면서 노래 발성 연습하고 운동도 하고 일석2조다. 요즘 경기불황으로 ‘3포세대’이니 386세대의 무더기 은퇴로 우울한 시절인데 우리 모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이미 반은 성공한 인생 아닐는지. 25년전 우리네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던 불후의 명곡 ‘타타타’ 노래를 다시한번 불러보며 우리네 인생 별거아니라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 가수 김국환은충남 대천에서 1948년 목수집안의 4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불렀다. 1969년 21살 때 김희갑악단에서 들어가며 본격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7년 ‘꽃순이를 아시나요’ 노래가 수만장의 앨범이 판매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나긴 무명생활 끝에 1992년 ‘타타타’로 일약 톱스타가수에 올랐다. ‘타타타’ 노래로 1992년 한국방송 대상, 서울가요대상 수상 등 한국가요상을 휩쓸었다. 그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과 함께 김국환은 그해 최고의 가수왕으로 우뚝섰다. 1997년 문화부장관상, 2008년 장한한국인대상 수상했고, 1982년 만화영화주제가 은하철도999, 미래소년코난, 축구왕슛돌이 등 30여곡을 잇따라 불렀다. 1998년 바람같은사람, ‘접시를 깨트리자’ 등 여러 히트곡이 있으며 최근에는 ‘내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신곡 ‘달래강’ 등을 출시했다.  ■ 이력1969년 김희갑악단 입단, 1977년 김국환-최미나 옴니버스앨범 ‘꽃순이를 아시나요’ , 1978년 ‘바람꽃’, 1982년 만화영화주제가 ‘은하철도999’, 1991년 ‘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1995년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옛사랑’, 1998년 ‘바람같은 사람’, 2002년 ‘숙향아’, 2004년 ‘사랑의 기도’, ‘유리부인’,  2005년 ‘주사위’ ‘어머니’,  2008년 ‘인생은 직진이야’, 2012년 ‘웃어버려’, ‘내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2015년 11월 ‘달래강’  ■ 수상내역1992년 제3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타타타’ 노랫말 대상, KBS가요대상, 1993년 MBC 10대가수상, 대한민국영상음반 대상, 1997년 문화체육부장관표창(선행연예인), 2003년 대통령상, KBS 가요대상, 2005년 제7회 한국예술실연자대상 공로상, 2008년 제7회 장한 한국인상 대상, 2008.1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홍보대사, 2011.07 제14회 보령머드축제 홍보대사  mslee@seoul.co.kr
  • 백석예술대 실용음악 보컬전공 입시경쟁률 216대1

    백석예술대 실용음악 보컬전공 입시경쟁률 216대1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실용음악전공 2016학년도 정시 1차 보컬전공 입학전형에서 1295명 지원자가 응시해 216대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 밖에 건반(171대1), 기타(141대1), 작∙편곡 및 컴퓨터음악(136대1), 뮤직테크놀로지(114대1), 싱어송라이터(103대1) 등 총 7개 전공에서 100대1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백석예술대 실용음악전공 소속 재학생들은 매 학기 정기음악회를 실시해 수업 중 습득한 다양한 음악적 재능을 일반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현대음악산업은 일반인들의 접근성 향상에 힘입어 과거에 비해 확고한 대중적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전문음악인들에게 진취적인 예술관뿐만 아니라 탁월한 실무능력까지 요구하고 있다. 백석예술대 음악학부 실용음악전공은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실용음악인을 양성하기 위해 대중음악의 학문적인 체계를 구축했다. 더불어 현장과 동일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간접적으로 공연상황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첨단장비와 시스템을 구비하여 활용하고 있으며, 이론과 실기 그리고 실무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실용음악 제반업계로 진출할 수 있는 미래의 예술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백석예술대 실용음악전공은 보컬트랙, 기악트랙, 작곡트랙으로 나뉘어 있으며 세부전공으로 보컬, 건반,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관악기, 작∙편곡, 싱어송라이터, 뮤직테크놀로지 등을 두어 전문 음악인으로서 요구되는 기술과 능력을 교육받고 있다. 이러한 노력결과 2014년에는 실용음악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명문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버클리음악대학과 교류 협력을 체결했다. 그리고 2014유재하가요제에서 본교 이신영 학생(당시 2학년)이 자신의 창작곡 ‘그 때 그 마음으로’ 가 대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백석예술대 실용음악 소속 교원들은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은 물론 음악전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 또한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전공의 수준 높은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있는 음악적 커리어를 형성하기 위해 끊이없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BBC, 쯔위사태 조명…“소속 가수에게 철권 휘두르는 기획사”

    BBC, 쯔위사태 조명…“소속 가수에게 철권 휘두르는 기획사”

    영국 BBC가 최근 발생한 이른바 ‘쯔위 사태’를 비롯, 일본 및 한국에서 종종 발생하는 ‘연예인 사과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 및 일본 연예계의 고질적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26일(현지시간) BBC는 “아시아 대중음악 산업의 어두운 면모”(The dark side of Asia’s pop music industry)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과 한국 아이돌 기획사들이 소속 가수에게 ‘철권’(iron fist)을 휘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먼저 소속 스타들의 연애는 물론 결혼까지 엄격하게 통제하는 일본 아이돌 기획사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14년 일본 인기 여자 그룹 AKB48의 멤버 미나미 미네기시는 남자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사실이 공개됐다는 이유만으로 머리를 삭발한 채 ‘사과 동영상’을 찍어야만 했다고 BBC는 전했다. 한편 한국 스타들의 경우, 일본에 비해서는 자유롭게 연애와 결혼을 할 수 있지만 기획사가 소속 스타들의 일상에 깊숙이 관여한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이들은 보도했다. K팝 산업 전문가인 마크 러셀은 “한국 연예인 기획사들은 소속 탤런트들의 이미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이는 부분적으로 90년대에 대형 연예인 스캔들이 몇 차례 발생한 것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의 연예인 기획사에 직접 가보면, 어린 연습생들이 아주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또한 건물 벽면에는 회사가 정한 행동지침이 곳곳에 적혀있다”며 스타들에게 지나친 규율이 강요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BBC는 최근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가수 ‘쯔위’가 유튜브에 게시한 사과 동영상 역시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JYP는 쯔위에게 사과 동영상 촬영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러셀은 해당 문제가 쯔위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었던 만큼, 회사 내부적으로 강도 높은 회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며 이 과정은 분명 쯔위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의견을 내비쳤다. 쯔위 사태에 이어 최근에는 일본에서 오랜 기간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이그룹 스맙(SMAP)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개 사과를 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들은 앞서 소속사와의 갈등 끝에 소속사를 탈퇴하고 그룹을 해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무산됐고, 이에 대해 일본 국민들뿐만 아니라 소속사 자니스의 대표 조니 키타가와에게도 사죄의 뜻을 밝혀야만 했다. BBC는 일본과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수들의 스타덤은 아직 동경의 대상이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팬들에게도 아이돌 업계의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분명히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사진=ⓒ유튜브/JYP 엔터테인먼트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직장인밴드 콘테스트 ‘주경야락’ 최종 우승 영예는 ‘스몰타운’

    직장인밴드 콘테스트 ‘주경야락’ 최종 우승 영예는 ‘스몰타운’

    2015년 최고의 직장인밴드를 가리는 직장인밴드 콘테스트 ‘주경야락’의 최종 우승팀이 선발됐다. 문화융성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스땅스가 주관한 직장인밴드 발굴콘테스트 ‘주경야락’의 최종 결선이 올해 마지막 ‘문화가 있는 날’인 12월 30일, 홍대 예스24 무브홀에서 열렸다. 경연 결과 스몰타운이 최종 우승의 영예를 안으며 상금 500만원을 거머쥐었으며, 상금 300만원의 주인공인 2위는 서울상경음악단이 차지했다. 상금 200만원의 주인공인 3위는 랜드오브피스가, TOP5에 올랐던 서초동최과장과 서틀톤은 각각 1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최종 결선 무대의 심사는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SBS 라디오 남중권 PD, 기타리스트 박주원, 로엔엔터테인먼트 김태영 프로듀서(겸 작곡가), CJ E&M 공연사업부분 마케팅팀 양혜영 팀장이 맡아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점수를 매겼고, 컴필레이션 앨범의 총 음악감독이기도 했던 가수 이한철이 MC로 무대에 올라 매끄러운 진행을 뽐냈다. tvN 드라마 ‘미생’의 OST에 참여했던 가수 이승열의 축하공연으로 공연장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총 70여 개 팀이 지원, 지난 4개월 동안 예선과 본선을 거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결선에 오른 5팀(랜드오브피스, 서울상경음악단, 서초동최과장, 서틀톤, 스몰타운)은 그동안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음원 녹음과 앨범 제작, 뮤직비디오 및 프로필사진 촬영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왔다. 주경야락 TOP5의 열정이 담긴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모던 록에서부터 얼터너티브 록, 블루스펑크, 어쿠스틱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색다르고 개성있는 매력을 자랑한다. 특히 델리스파이스의 베이시스트 윤준호, 불독맨션의 기타리스트 서창석, SAZA 최우준, 재주소년 박경환, 이스턴사이드킥의 보컬 오주환 등 뮤지스땅스가 연계한 실력파 뮤지션들이 TOP5의 멘토로 참여해 편곡 및 사운드메이킹을 지원함으로써 앨범의 수준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이 눈에 띈다. 주경야락 TOP5의 음악은 멜론, 벅스 등의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 할 수 있다. 한편, 문화가 있는 날은 내년에도 계속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이 날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로, 전국의 영화관, 극장, 미술관, 박물관은 물론 문화재와 스포츠 관람 및 기타 문화공간 사용 시에도 할인 및 무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는 해, 오는 해… 함께라서 좋은 선율

    2015년을 아름다운 선율로 마무리하는 송년음악회와 제야음악회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은평구는 30일 오후 7시 30분에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은평청소년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송년음악회를 연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로 지정된 ‘문화가 있는 날’이기도 한 이날, 은평구는 지역에 기반을 둔 예술단체를 초청해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은평청소년오케스트라는 2003년 화합과 나눔을 실천하고자 창단한 단체로, 청소년 단원들에게는 연주할 무대를 주고 지역사회에는 음악으로 봉사하는 활동을 해 왔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으로 시작되는 음악회는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히사이시 조), 25현 가야금 협연(편곡 박위철·연주 정재희), ‘못 잊어’(김소월 시·하대웅 곡) 등 클래식, 영화음악, 전통음악, 가곡 등을 총망라해 선사한다. 무료. (02)351-6528. 강동구는 31일 오후 10시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2015 GAC 제야 음악회’를 개최한다. 2012년부터 이어 온 강동의 제야음악회는 클래식과 뮤지컬, 대중음악을 모두 즐기는 시간이다. 김영준이 지휘하는 트리니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소프라노 유성녀, 팝페라 테너 박완, 가수 양파와 남성 듀오 옴므(2AM 창민·에이트 이현) 등이 출연해 제야의 밤을 장식한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센터 야외마당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맞이 이벤트도 진행한다.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 3만~5만원. (02)440-0500. 광진구는 31일 오후 10시 30분부터 광진문화예술회관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이은하 송년 야(夜) 콘서트’를 연다. 광진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 공연에서는 1970~80년대를 풍미한 ‘슈퍼 디바’ 이은하가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날 무대에는 성악가 권순동, 플루트 연주자 최소녀도 함께한다. 무료. (02)2049-4700.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음악과 함께 맞는 새해

    중구는 오는 31일 오후 10시 20분부터 충무아트홀에서 ‘2015 제야음악회’를 연다고 28일 밝혔다. 음악회는 아트홀 1층 로비에 마련된 특별무대에서 개최된다. 뮤지컬 전용 극장답게 충무아트홀 제야음악회는 대중음악, 성악, 클래식,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으로 구성됐다. 올해 ‘투란도트’, ‘공동경비구역JSA’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 이건명이 사회를 맡는다. 이어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 신영숙, ‘지킬앤하이드’에서 관객을 사로잡고 오페라 ‘리타’의 연출도 맡은 양준모,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역을 맡은 김준현이 갈라콘서트를 펼친다. 충무아트홀 자체 제작 오페라 ‘리타’에서 주인공을 맡은 소프라노 장유리, 피아니스트 이범재도 출연한다. 마지막으로 타악퍼포먼스 그룹이 야외 특설무대에서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2016년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에 맞춰 풍선 날리기 행사를 연다. 구 관계자는 “충무아트홀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제야음악회를 알차게 준비했다”며 “내년에도 지역 모든 주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항상 펼쳐지는 ‘중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김광석 어느덧 20주기, 여전한 그리움

    김광석 어느덧 20주기, 여전한 그리움

    ‘가객’(歌客) 김광석 20주기가 다가온다. 김광석 팬들과 대중음악계 선후배 동료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다시 모인다. 김광석 추모사업회(회장 김민기)는 내년 1월 6일 다섯 번째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를 개최한다. 내년 재단 설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다. 2012년 ‘김광석 따라 부르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대회는 김광석의 노래를 참가자들이 저마다 개성대로 부르며 그를 추모하는 시간이다. 그간 모두 230개 팀이 예선에 참가, 47개 팀이 본선에 오르는 등 작지만 의미 있는 무대가 꾸려져 왔다. 아마추어 뮤지션이 참가하는 대회였으나 지난해부터는 프로 뮤지션에게도 문을 열며 ‘김광석 노래 부르기’가 됐다. 이번 대회는 가창 없이 연주만으로도 참가가 가능해 보다 신선한 재해석 무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심을 거친 10여개 팀이 김광석의 20주기인 새달 6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리는 본선 무대를 장식한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김광석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1000회 공연을 기록했던 곳이다. 해마다 기일 즈음 팬들이 찾아와 그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오는 28일 오후 6시까지 학전 웹하드에 김광석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한 동영상이나 음원을 신청서와 함께 올리면 예선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김광석상’ 수상자는 부상으로 마틴 기타와 내년 2월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 추모사업회는 내년 중 재단을 설립해 새로운 문화 사업을 꾸릴 예정이다. 2008년 이후 매년 진행하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등을 통해 적립해 온 설립 기금이 3억 4700만원가량 쌓였다. 추모사업회 관계자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꾼이 되길 바랐던 김광석의 꿈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며 “단순하게 그를 추모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대중음악을 비롯한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톡! 톡! talk 공무원] 김대희 119생활안전과 팀장·이창섭 대구소방본부장

    [톡! 톡! talk 공무원] 김대희 119생활안전과 팀장·이창섭 대구소방본부장

    “격무라지만 참 행복합니다. 소방관,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면서도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데서 뿌듯하죠. 어쨌든 우리 밴드엔 저 말고도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는 분이 계십니다.” ●재즈밴드 ‘밸런스’ 해마다 자선 공연 김대희(31·소방경) 국민안전처 119생활안전과 팀장은 2일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얼짱 가수’로 불리는 김씨는 소방직 공무원 9명으로 이뤄진 재즈밴드 ‘밸런스’에서 리드싱어로 활약하고 있다. 트럼본 연주도 겸한다. 경영학과를 나와 2009년 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첫발을 뗀 뒤 곧장 밴드에 뛰어들었다. 그는 “2013년 10월 세종시 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를 잊을 수 없다”고 되뇌었다. 군인·경찰과 함께 이른바 ‘제복을 입은 사람들’(MIU·Men In Uniform) 합동공연을 2시간 남짓 치렀다. 무료 입장이었다. 그런데 퇴장로에 마련한 기부함에 자그마치 1280만원이나 쌓였다. 돈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에 내놓았다. 랩, 키보드, 기타 등 밴드 구성원들은 서울 성북구, 경기 구리시, 전북 익산시, 경북 칠곡군 등 전국에 흩어져 근무한다. 따라서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고선 모여서 연습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도 2008년을 시작으로 소방의 날(11월 9일) 초청행사, 자선 바자회, 연말 이웃돕기 무대 등 해마다 굵직굵직한 공연을 4~5차례 해내 부러움을 산다. 재능 나눔을 실천하는 우수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공무원 음악대전과 공중파 방송사 경연대회에 나가 수상하는 영예도 더러 안았다. 회원들은 “갈고닦은 재주를 활용해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게 대한민국 공무원의 도리로 여겨진다”며 “우리에게 음악이란 우리의 즐거움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행복을 안길 수 있는, 아주 값진 것이기에 결코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밸런스’ 리더인 이창섭(55·소방준감) 대구소방본부장은 작사·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국민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노래를 짓는다”며 “다행히 주변에서 쉽게 익히는 듯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소방과 관련해 발표한 것만 다섯 곡이다. 심폐소생술(CPR)을 일깨우는 ‘CPR송’은 유튜브에서 이미 ‘인기 짱’이다. 노랫말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심폐소생술을 배울 수 있도록 심폐소생술 시행 때 속도에 맞춰 리듬을 짰다. 최근엔 119시민봉사단 단가도 지어 음반까지 무사히 취입했다. 그는 “세 번째 직장인데 퇴직한 뒤엔 대중음악가로의 변신도 꾀할 생각”이라며 활짝 웃었다. ●“국민 안전 지키고 생명의 소중함 알릴래요” 이 본부장은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뒤 1990년 역시 간부후보생으로 소방위에 임용됐다. 2000년엔 방화·방폭(폭발을 막음)이라는 특이한 주제로 논문을 써 박사학위도 받았다. 고교 시절부터 드럼을 쳤는데 군복무를 마친 직후 몇 년째 클럽에서 연주했다. 첫 직업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외국계 합작회사 엔지니어라는, 사회에서 보기엔 썩 괜찮은 일자리를 만났다. 그는 “비록 좋아서 벌인 일이긴 하지만 소위 ‘딴따라’로는 세상을 버티기 버겁다는 생각을 했고, 기업체에선 왜인지 희생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면서 “무엇이든 여유를 갖고 사회를 위해 할 일을 찾다가 소방관을 낙점했다”며 또 웃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집시 시네마’ 들고 돌아온 박주원… 기타 선율 위 강렬해진 영화 음악

    ‘집시 시네마’ 들고 돌아온 박주원… 기타 선율 위 강렬해진 영화 음악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2010년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과 함께 ‘007 제임스 본드 테마’를 연주한 디지털 싱글을 꺼내 놓고 이듬해 국내 영화 ‘러브 픽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참여했을 때 영화음악 재해석 앨범은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을까. 박주원이 새 앨범 ‘집시 시네마’를 들고 돌아왔다. 축구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았던 ‘캡틴’ 이후 2년 만이다. ‘닥터 지바고’와 ‘러브스토리’, ‘남과 여’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 음악들이 집시 기타 선율 위에서 화려하고 강렬하게 스텝을 밟는다. 대중음악계 맏형 최백호, 여성 싱어송라이터 프롬,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바이올린 연주자 강이채, 재즈 비브라폰 연주자 이희경, 색소폰 연주자 장효석 등이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최백호의 목소리가 얹힌 ‘스피크 소프틀리 러브’가 가장 흥미로운 트랙이다. 영화 ‘대부’의 주제가로 앤디 윌리엄스가 부른 원곡은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집시 리듬에 페이소스가 넘치는 목소리가 버무려지며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최백호 최초의 팝 커버곡이다. 박주원·최백호의 만남은 박주원 2집 수록곡 ‘방랑자’ 이후 4년 만이다. 덩리쥔이 불러 은은함과 뭉클함을 주던 ‘첨밀밀’의 주제가 ‘월량대표아적심’은 역동적인 룸바 리듬에 실려 춤을 춘다. 신예 퍼커션 연주자 정솔의 빨마스(손뼉으로 만든 리듬)에 실린 ‘남과 여’는 드라마틱하게 변모했다. 다른 곡과 달리 오로지 기타 한 대로만 담백하게 연주되는 ‘러브레터’ 테마는 요즘 계절에 제대로 어울리는 트랙이다. JNH뮤직.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익숙한 듯 새롭다, 사월의 콧바람

    익숙한 듯 새롭다, 사월의 콧바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름답게 들리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듣는 분들이 이 뮤지션은 굉장히 솔직하구나 하는 걸 느꼈으면 좋겠구요.” 여성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최근 홍대신에서 주목받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10월 ‘김사월X김해원’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미니 앨범(EP) ‘비밀’이 포크를 현대적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극찬을 받으며 올해 초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으로 선정됐다. 올해의 신인도 김사월X김해원의 몫이었다. 이 남녀 듀오의 정규 앨범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김사월이 홀로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11곡을 꾹꾹 눌러 담은 ‘수잔’이다. 최근 앨범 발매 단독 공연을 앞두고 만난 김사월은 “오래전부터 써 놓은 곡들이라 그때의 감각과 감성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앨범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개인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곡들이라 함께 부르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솔로 앨범으로 엮었다”고 말했다. 김해원은 공동 프로듀싱을 통해 이번 앨범에 함께했다. 듀오 앨범을 위한 곡들은 차곡차곡 쌓고 있는 중이라고. 김사월의 앨범은 20대 여성 수잔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수잔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허무하다고 생각하는지, 또 어떤 것에 절망하고 화가 나는지 등을 들려주며 서서히 변화한다. 김사월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클래식·포크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김오키(색소폰), 장수현(바이올린), 지박(첼로), 노선택(베이스), 이기현(플루트) 등 국내 인디신의 정상급 연주자들이 세션으로 참여해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모든 트랙을 골고루 좋아해 주는 것 같다며 미소 짓는 김사월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어렸을 때 만들었다는 3번 트랙 ‘콧바람’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깊은 겨울에 만들었던 곡이라 요즘 들으면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김사월에게 음악과 미술은 유년 시절의 취미였다고. 라디오를 즐겨 듣고 앨범을 모으다 보니 기타도 사게 됐다. 취미가 취미를 넘어선다고, 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미술 전공을 택했는데 어느 순간 휴학하고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며 웃는다. 김사월X김해원을 꾸리면서 자신이 목소리를 표현하거나 실험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더 깊게 가고 싶다는 생각에 전업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다고 김사월은 설명했다. “저에게 전업 뮤지션이라는 게 다른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하루 종일 음악만 생각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급할 때는 카페 아르바이트도 뛰고 있답니다.” 노래에서는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려는 김사월이지만 매사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한다. ‘사월’도 본명으로 활동하기에 너무 부끄럽다고 생각해 직접 지은 예명. 대학 시절 몸 담았던 밴드에서 따왔다.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라 가사를 쓰고 부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 더욱 용기를 내겠다며 주먹을 꼭 쥐는 김사월이다. “몇 달 전 일본 포크 팀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큰 충격을 받았어요. 보컬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었죠. 내면에서 영혼을 꺼내는 게 자유롭고 너무 아름다웠죠. 저 또한 스스로를 꺼내 보이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들리나요, 시대의 아픔

    들리나요, 시대의 아픔

    노래, 세상을 바꾸다/유종순 지음/목선재/362쪽/1만 4800원 노래가 위로다/김철웅 지음/시사인북/351쪽/1만 5000원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에 실렸던 록밴드 장미여관의 노래 ‘로망’. 구슬프면서도 흥겨운 브라스가 인상적이었다. 비정규직 또는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이 노래는 그런데, 러시아에서 왔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칭송받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뒷걸음치는 말’이 원전이다. 비소츠키는 이 노래에서 사회주의 체제와 관료들이 러시아 인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제멋대로 달리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기득권층 비판과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직시했던 비소츠키였기에 정부의 금지 조치로 생전 단 한 권의 시집도, 음반도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2008년 러시아 국민이 뽑은 ‘러시아의 인물’ 중 스탈린, 표트르 대제, 레닌에 이어 4위에 올랐다. 그의 노래와 삶이 러시아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노래, 세상을 바꾸다’는 순응이 아니라 거부와 비판, 저항을 통해 예술로 승화한 서른다섯 곡의 노래들을 복원하고 있다. 문화평론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저자가 보기에 이른바 ‘저항음악’은 정형화된 음악적 장르가 아니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사회 변화와 관련된 모든 음악을 그렇게 부른다. 상업적 대중음악도 저항음악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로운 이상과 꿈을 노래하고 이를 억누르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게 바로 저항음악”이라고 말한다. 노래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통해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우리에게 동요로 익숙한 ‘라 쿠카라차’. 원래 동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노래다. 15세기 스페인 민요에 뿌리를 둔 라 쿠카라차는 여러 형태가 있는 데 우리가 즐겨 부르는 것은 1910~2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이 불렀던 버전이라고 한다. 압제자 카란사와 농민혁명군 지도자 판초비야, 사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노래가 6·25전쟁 뒤 미군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고, 박정희 정권 시절 동요로 번안돼 교과서에까지 실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로 건너와 뒤늦게 저항음악이 된 경우도 있다. 프렌치 록의 선구자 미셀 폴라네프의 샹송 ‘키 아 테 그랑마망’이 대표적이다. 개발에 밀려 소중하게 가꾸던 정원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상심해 세상을 떴다는 내용의 노래다. 환경 문제를 고발하고 있는 이 노래는 우리나라로 건너와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과 비극을 고발한 ‘오월가’로 바뀌었다. 언론인 출신인 ‘노래가 위로다’의 저자는 노래의 역할을 듣는 이의 입장에서 접근하며 해방 전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우리 대중음악을 훑는다. 좋은 뉴스는 찾기 어렵고, 대부분 나쁜 뉴스로 가득 찬 불안정한 지금, 그나마 우리를 손쉽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것이다. 물론, 문제 해결이 아니라 위로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해선 저자도 의문을 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로의 부재 시대에 그게 어디냐고 되묻는다. 저자는 정치적 노래가 불필요해진 시대라는 일부 인식엔 동의하지 않는다. 나아가 정치적 노래의 경우 메시지는 물론, 그것을 담는 그릇도 좋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저항음악으로 꼽힌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양희은이 민주화 투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거나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항의 성가로 불린 까닭에 대해 저자는 억압적 정치 상황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암시하는 메시지도 좋았고, 멜로디와 화성적 울림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종결부에 사용된 화성은 찬송가에 흔히 나오는 것으로 노래에 영웅적 비극성을 부여했다고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노래, 세상을 바꾸다’에 등장하는 저항음악 모두 음악적으로도 빼어나다. 두 책 모두 노래를 찾아 들으며 읽으면 새로운 경험이 될 듯.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사람을 위로 하고 세상을 바꾸는 노래

    사람을 위로 하고 세상을 바꾸는 노래

     노래, 세상을 바꾸다  유종순 지음/목선재/ 362쪽/ 1만 4800원   노래가 위로다  김철웅 지음/시사인북/ 351쪽/ 1만 5000원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에 실렸던 록밴드 장미여관의 노래 ‘로망’. 구슬프면서도 흥겨운 브라스가 인상적이었다. 비정규직 또는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이 노래는 그런데, 러시아에서 왔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칭송받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뒷걸음치는 말’이 원전이다. 비소츠키는 이 노래에서 사회주의 체제와 관료들이 러시아 인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제멋대로 달리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기득권층 비판과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직시했던 비소츠키였기에 정부의 금지 조치로 생전 단 한 권의 시집도, 음반도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2008년 러시아 국민이 뽑은 ‘러시아의 인물’ 중 스탈린, 표트르 대제, 레닌에 이어 4위에 올랐다. 그의 노래와 삶이 러시아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노래, 세상을 바꾸다’는 순응이 아니라 거부와 비판, 저항을 통해 예술로 승화한 서른다섯 곡의 노래들을 복원하고 있다. 문화평론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저자가 보기에 이른바 ‘저항음악’은 정형화된 음악적 장르가 아니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사회 변화와 관련된 모든 음악을 그렇게 부른다. 상업적 대중음악도 저항음악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로운 이상과 꿈을 노래하고 이를 억누르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게 바로 저항음악”이라고 말한다.  노래를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통해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우리에게 동요로 익숙한 ‘라 쿠카라차’. 원래 동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노래다. 15세기 스페인 민요에 뿌리를 둔 라 쿠카라차는 여러 형태가 있는 데 우리가 즐겨 부르는 것은 1910~2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이 불렀던 버전이라고 한다. 압제자 카란사와 농민혁명군 지도자 판초비야, 사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노래가 6·25전쟁 뒤 미군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고, 박정희 정권 시절 동요로 번안돼 교과서에까지 실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로 건너와 뒤늦게 저항음악이 된 경우도 있다. 프렌치 록의 선구자 미셀 폴라네프의 샹송 ‘키 아 테 그랑마망’이 대표적이다. 개발에 밀려 소중하게 가꾸던 정원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상심해 세상을 떴다는 내용의 노래다. 환경 문제를 고발하고 있는 이 노래는 우리나라로 건너와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과 비극을 고발한 ‘오월가’로 바뀌었다.  언론인 출신인 ‘노래가 위로다’의 저자는 노래의 역할을 듣는 이의 입장에서 접근하며 해방 전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우리 대중음악을 훑는다. 좋은 뉴스는 찾기 어렵고, 대부분 나쁜 뉴스로 가득 찬 불안정한 지금, 그나마 우리를 손쉽게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위로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해선 저자도 의문을 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로의 부재 시대에 그게 어디냐고 되묻는다.  저자는 정치적 노래가 불필요해진 시대라는 일부 인식엔 동의하지 않는다. 나아가 정치적 노래의 경우 메시지는 물론, 그것을 담는 그릇도 좋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저항음악으로 꼽힌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양희은이 민주화 투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거나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항의 성가로 불린 까닭에 대해 저자는 억압적 정치 상황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암시하는 메시지도 좋았고, 멜로디와 화성적 울림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종결부에 사용된 화성은 찬송가에 흔히 나오는 것으로 노래에 영웅적 비극성을 부여했다고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노래, 세상을 바꾸다’에서 등장하는 저항음악 모두 음악적으로도 빼어나다. 두 책 모두 노래를 찾아 들으며 읽으면 새로운 경험이 될 듯.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오빠, 오래 기다렸지?

    오빠, 오래 기다렸지?

    가요계 ‘큰 형님’들이 잇따라 컴백하며 제2의 복고 열풍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god, 플라이투더스카이 등 오랜만에 재결합한 90년대 아이돌이 복고 열풍을 주도한 데 이어 올해는 1990년대 가요계를 이끌었던 가요계 ‘큰 형님’들이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이는 ‘발라드 황제’ 신승훈이다. 지난달 29일 9년 만에 정규 앨범 11집을 발표했다. 지난 5년간 모던록, 브리티시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실험을 해 온 그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신승훈표 발라드’를 들고 나왔다. 11집 파트1 ‘아이엠’(I am...)의 타이틀곡 ‘이게 나예요’는 90년대 신승훈의 애잔한 발라드를 좋아했던 팬들의 감성과 공감대를 자극한다. 그는 오는 10일 래퍼 빈지노와 함께 파트2인 ‘앤드 아이엠’(&I am)을 발매해 젊은 음악 팬 공략에 나서는 투트랙 전략을 쓴다. ‘알앤비(R&B) 대디’라 불리는 김조한도 11일 정규 6집 앨범을 내고 컴백한다. 8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원스 인 어 라이프 타임’. 연인, 가족, 친구와의 사랑을 모티브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감동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았다. 인기 R&B 그룹 솔리드의 보컬 출신으로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매력인 그는 4일 정오 자신이 작곡한 ‘내가 먼저 찾아갈게’를 선공개하고 오랜만에 팬들을 만난다. 한동안 가요계를 떠났던 90년대 가수들의 컴백도 줄을 잇고 있다. 성대 신경 마비 진단을 받고 2004년 ‘미스터 김’을 끝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던 가수 김태욱은 11년 만에 싱글 앨범으로 돌아왔다. 타이틀곡은 ‘김태욱의 마음에는 그대가 살고 있나 봐’로 록그룹 출신다운 거친 창법이 두드러진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슬픈 언약식’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던 가수 김정민도 연기자로서의 외도를 접고 5년 만에 컴백을 준비 중이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는 가수 임재범도 이달 중순 기념 앨범 ‘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이트’를 발표한다. 올해도 90년대 가수들의 컴백이 계속되는 것은 TV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 가요에 대한 조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데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확실한 소비층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가수 데뷔 20주년을 맞은 임창정의 신곡 ‘또 다시 사랑’이 각종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새로운 젊은 팬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도 가요 관계자들을 고무시켰다. 올해 초 MBC ‘무한도전-토토가’로 복고 열풍의 정점을 찍은 데 이어 곧 방송될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신해철, 김창완 등 1980년대 음악이 집중적으로 다뤄지며 복고 열풍에 다시 불을 지필 것으로 예상된다. 가요 홍보대행사 앤트웍스의 김일겸 대표는 “기존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아이돌 위주인 것과 달리 KBS ‘불후의 명곡’, MBC ‘복면가왕’, JTBC ‘히든싱어’ 등 음악 예능이 많아지면서 90년대 가수들도 홍보의 장이 넓어지고 컴백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중장년층에도 스마트폰 문화가 정착돼 음원 소비가 늘고 콘서트 관객이 증가하는 등 확실한 시장이 확보된 것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의 관계자는 “30~40대뿐만 아니라 10~20대도 TV 프로그램을 통해 복고 음원을 접하면서 세대 차이 없이 자연스러운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요계에서는 이 같은 복고 열풍이 가요계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복고 음악은 삶에 지친 중장년층에 그 시절의 향수는 물론 따뜻한 위로의 정서를 준다”면서 “아이돌 음악으로 편향된 국내 가요계에서 팬들의 선택 폭을 넓히고 젊은 층에는 전혀 새로운 정서의 음악으로 다가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음악성? 그게 뭔데!

    음악성? 그게 뭔데!

    음악 본능/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488쪽/1만 8000원 한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노래 잘하는 사람과 잘 못하는 사람이 출연해 인기 가수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가수들은 누가 음치인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음악을 틀어 놓고 그럴듯하게 입만 뻐끔거리는 음치에게 깜빡 속는 경우가 속출한다. 음치들의 실제 노래를 들었을 때 가수들 얼굴에서 드러나는 당혹감이란.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질문 하나. 음치들은 음악적 재능(음악성)이 없는 것일까? 독일 주간지 ‘더 차이트’의 과학 담당 편집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다”고 말할 것이다. 저자에게 음악성이란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만으로 판가름할 수 없는 문제다. 음악성은 단일한 속성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작곡이나 연주를 전혀 하지 못했던 영국의 전설적인 디제이 존 필은 웬만한 음악가보다 더 크게 팝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고 한다. 젊고 유망한 밴드들을 일찌감치 알아보았고 혁신적인 사운드와 스타일에 대한 감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는 영국 음악학자 존 슬로보다의 말을 빌려 ‘음악성은 음악을 의미 있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음악이라는 문화 현상을 물리학, 해부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의학, 교육학 관점에서 두루 살피며 음악성은 예외적인 극소수만 지닌 천부적 재능이라는, 음악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또 음악 교육은 어린 시절에 시작해야 한다거나 절대다수의 인간은 음악을 듣기만 해야 할 운명이라는 편견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에 20세기 대중음악사도 곁들여져 우리에게 익숙한 뮤지션이나, 음반, 노래에 대한 에피소드도 만날 수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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