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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2)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여섯 자 이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하루의 품삯은 열두 냥 금/우리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너 좋고 나 좋으면 에헤이 엥헤야 에헤이 엥헤야’-‘열두 냥짜리 인생’(김희창 채보, 개사. 블루벨즈 노래.1963년) 당시 60년대 서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부문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던 블루벨즈의 대표곡 중 하나 ‘열두 냥짜리 인생’. 이 드라마가 영화로도 만들어져 국민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그 당시는 속칭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나 역시 중학교 입시를 거친 세대라 집안 형편에 따라 한 교실 안에서도 ‘진학반’ ‘비진학반’으로 나눠 공부했던 서글픈 기억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 이러한 노래에 쉽게 공감하는지 모른다. 그렇듯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으로 막이 올라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우리의 1960년대는 아직 ‘보릿고개’였다. 느닷없이 적극 장려된 해외 이민으로 ‘브라질 이민선’을 타는 사람도 늘어나고 전 국민의 환호 속에 월남 전선으로 떠나던 맹호·청룡·백마부대 용사, 그 젊은이들. 당시 유년시절을 보내던 이들은 ‘파월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위문편지 숙제 속에 묻혀 있기도 했고,‘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며 아침저녁으로 스피커를 통해 학교 운동장마다, 동네마다 가득 울려 퍼지던 이 노래와 더불어 당시 구호,‘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다’가 어느새 ‘100만달러 수출 탑을 쌓아올린’ 건설한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때 들었던 새마을노래, 그 주인공 또한 블루벨즈였다. 우리나라 가요 최초의 쿼텟, 블루벨즈는 멤버들 개인이 군 입대 등으로 결원이 생기면 쇼무대 등을 위해 임시 멤버로 강수향, 곽규호씨 등으로 대체해 활동했지만 이들 대체멤버가 음반 취입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68년, 창단 멤버 현양씨가 정식으로 탈퇴하자 KBS전속가수 7기생인 장세용씨가 가세, 후기 블루벨즈를 이뤄 활동한다. 아울러 ‘블루벨즈’는 또한 스코틀랜드 지방에 서식하는 ‘젊음을 상징하는 꽃’ 이름이기도 하다. 이 꽃말처럼 이들의 노래는 당시 다른 노래들에 비해 비교적 젊다. 소월 시에 김광수씨가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를 비롯,‘부두(장세용 작사, 곡)’ 등이 그렇듯. 아울러 당시에는 유행가 일부를 ‘소리의 공해’라 치부하기도 했고 때문에 건전가요 보급 역시 일종의 국가적 시책이기도 했는데, 특히 ‘싱어롱 Y’의 선구자 전석환씨에 의해 주도되었던 ‘건전가요 부르기 운동’의 최전방에 섰던 첨병 또한 블루벨즈로 ‘정든 그 노래’,‘그리운 고향’,‘냉면’ 등을 이때 발표한다. 블루벨즈, 이들의 노래엔 늘 생동감이 느껴진다. 네 명의 목소리가 합쳐져 같은 화음을 구사하고 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약간씩 미묘한 차이도 감지되는 것이다. 완벽하고 정확한 멜로디로서가 아니라 절묘하게 이탈된 곡선이 이들 화음에 들어 있어 노래가 살아 있다고도 느껴진다. 특히 ‘잔치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로 시작되는 ‘즐거운 잔칫날(손석우 작사, 곡)’과 ‘고생도 달가와(최요안 작사, 손석우 작곡)’에서의 웃음소리를 표현한 부분 등에서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화음의 이탈이, 그 흐름을 이어가는 묘한 곡선에서 이들 넷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감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멜로디 속에 함께하는 또 하나의 다른 흐름,‘부두’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노래를 휘감는 멋진 휘파람소리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1987년에 재결성, 기념 음반 ‘블루벨즈/내 인생 후회는 없지만’을 발표하는데, 이때는 오리지널 멤버인 박일호·서양훈·김천악·현양씨가 함께했다. 이들 멤버 모두 52세 때였다. 현재 리더 박일호씨는 한국연예협회 이사장을 거쳐 한국대중문화원장으로 활동 중이고, 서양훈씨는 미국 LA복음방송국의 본부장으로 재임 중이다. 장세용씨는 적십자 봉사활동을 그리고 대체 멤버 곽규호씨는 송파실버악단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고, 김천악·현양·강수향씨는 타계했다. 1960∼70년대, 궁핍한 시대에 희망을 안겨준 ‘푸른빛의 종소리’ 블루벨즈, 이들의 멋진 하모니를 통해 노래는 지쳐있는 삶, 혹은 인생의 응원가이며, 그로부터 몇 십년이 지난 지금쯤엔 옛 노래가 바로 마음의 고향일 수 있음을 실감한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EBS스페이스 개관3돌 기념 ‘언플러그드 콘서트’

    EBS스페이스 개관3돌 기념 ‘언플러그드 콘서트’

    그곳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 2004년 4월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700여 회에 달하는 라이브 공연을 펼쳐온 EBS스페이스가 개관 3주년을 맞았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주류와 비주류 뮤지션을 구분하지 않은 채 고급 음악의 대중화와 대중 음악의 고급화를 이루어낼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간 펼쳐진 공연 내용을 보면 크로스오버·퓨전(30%), 재즈(30%), 기획 공연(20%), 포크·록·팝·국악(20%) 등으로 편성돼 지상파 방송에서 소외됐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발라드와 댄스 일색인 대중음악 공연에서 벗어나, 시청자들의 다양한 음악적 욕구를 만족시킨 것이다. 김준성(44) 담당PD는 “대중성보다 음악성을 중시하다보니 상업적 논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앞으로도 이해타산이 강요되는 대중 콘서트와 달리 관객들의 가슴에 직접적으로 가 닿는 소형화된 공연에 주안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꽃보다 아름다운 노래’,‘포크 페스티벌’,‘라틴음악 페스티벌’ 등 장기 기획 시리즈물은 스페이스가 거둔 최고의 수확. 국내외 대중음악의 흐름과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까지 이어진 ‘2007 그들을 주목한다’ 시리즈는 록밴드 몽구스와 더 문 등 대중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신인들을 발굴,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이용자제작 콘텐츠(UCC)를 활용한 신인 공개 오디션 ‘헬로 루키’를 통해 역량있는 신인들을 계속해서 발굴할 예정이다. 스페이스가 3주년 기념공연으로 ‘전기 플러그를 뽑은’ 언플러그드(Unplugged) 콘서트를 마련했다. 기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증폭된 소리를 배제해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사운드로 공연장을 가득 채우겠다는 의도다. 김 PD는 “예를들어 크라잉 넛의 노래들을 보면 ‘말달리자’류의 두드려 부수는 음악들 사이사이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갖춘 곡들이 있다.”며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여러 색깔을 가진 뮤지션들의 음악이 서정성 짙은 어쿠스틱 사운드로 재탄생되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록 밴드 자우림의 공연에 이어 신해철(4월3일)과 모던록 밴드 크라잉넛(4월2일), 팝 음악계의 신성 아요(Ayo·4월9일), 박선주(4월10,11일), 조규찬(4월16,17일), 그리고 이번 언플러그드 공연을 위해 특별히 구성된 팀 ‘프로젝트 3·3·4’(4월17∼19일) 등이 차례로 ‘Unplugged 공감’의 무대를 채운다. EBS스페이스홀은 어느 자리에서나 뮤지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151개의 객석이 무대를 감싸안은 반원 형태로 꾸며졌다. 개성 넘치는 아티스트들이 기존의 일렉트릭 사운드로 들려주던 곡들을 재해석해 또다른 색깔의 음악을 선보이는 매력 넘치는 ‘공간’이 될 듯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24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산수유꽃 화사하게 핀 구례와 봄바람 상쾌한 곡성 기차마을을 안내한다. 봄꽃 축제로 한창인 남도, 그 중에서도 샛노란 산수유꽃이 아름다운 구례는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만큼 그 열매도 압도적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싱그러운 산수유에 마음은 저절로 자연을 닮아간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하모니카 하나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전제덕. 최근 하모니카의 파격적 변신을 시도한 2집 앨범을 발표한 전제덕은 이번 공연에서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넘나들며 펑크, 소울, 셔플 등 다양한 음악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귀가 아니라 몸이 먼저 느끼는 특별한 시간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5분) 남편의 거짓말 때문에 우울증까지 얻었다는 아내.7년째 계속되는 거짓말로 그동안 받은 각서만 한 박스. 도저히 신뢰할 수 없어 아직 혼인신고도 못하고 있다는 아내. 거짓말과 사실을 구분할 수 없는 사람, 거짓말의 유혹에 빠진 사람 등 거짓말에 중독된 사람들을 통해 거짓말의 진실을 알아본다.   ●TV속의 TV(MBC 낮 12시10분) 우리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 ‘느낌표-위대한 유산 74434’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본다. 요즘 호통개그·못된 개그라는 말들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방송마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못난 모습을 들추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해 본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은지를 데리고 백화점에 간 지연은 그곳에서 하영과 쇼핑을 온 준호와 마주친다. 하영은 지연이 데리고 있는 아이가 혹시 준호의 아이가 아닌지 의심하지만 준호는 자신과 상관없는 애라며 화를 낸다. 태섭의 엄마는 태섭에게 맞선을 주선하지만 이미 지연을 마음에 두고 있는 태섭은 정중하게 거절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오전 10시) 고대 마야문명의 중심지, 중미의 과테말라는 인구 1000만명, 남한 크기의 작은 나라이지만 태평양과 대서양, 열대 정글을 보유한 중미 제일의 인디오 국가다. 과테말라의 옛 수도이자 약 500년 된 안티과는 스페인어로 ‘오래된’이라는 뜻이다. 중남미의 허브여행 과테말라 안티과로 떠나본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국내 최초 남성사중창단 블루벨즈(1)

    목소리 속의 또 다른 목소리.‘열두 냥짜리 인생’,‘즐거운 잔칫날’,‘엄마야 누나야’,‘정든 그 노래’ 등으로 밝고 깊은 화음을 들려주던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Blue Bells). 이들이 곧 우리나라 최초(最初)이자 최장(最長)의 쿼텟(Quartet)이다. 편한 호흡처럼 느껴지면서도 그 호흡을 태우는 듯한 ‘깊은 울림’을 듣고 있노라면 1960년대 궁핍했던 시절, 대중가요가 지닌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당시 우리 가요계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오디오의 급성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SP(축음기) 음반 시대에서 본격적인 LP 레코드 시대로 전환하는 새로운 장도 이 즈음에 열린다. 즉 하이파이 음색에서 스테레오 입체 음향의 개발과 함께 방송에서 띄우는 전파 역시 AM에서 FM이라는 보다 좋은 음질로 전환하듯 가요 역시 단시율(單施律)적인 소리에서 화성으로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블루벨즈의 등장은 이러한 소리의 변화를 담고 있는 1960년대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가요계 최초로 쿼텟, 즉 남성4중창단 블루벨즈가 첫 선을 보인 것은 영화 ‘심야의 블루스’를 통해서였다. 노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작곡가 손석우씨가 음악을 맡은 이 영화 ‘심야의 블루스’에서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가 극중 인물로 설정돼 등장한다.1960년도의 일이다. 이 스크린을 통해 설정된 ‘블루벨즈’ 멤버는 손시향, 박일호, 현양 그리고 김성배씨. 말하자면 솔로가수로 이미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이들이 전혀 낯선 쿼텟으로 분장해 등장한 것이다. 가수 손시향씨는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등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미남·미성의 가수였고 박일호(본명 박응호)씨는 1958년 ‘메아리 사랑’으로 데뷔, 역시 ‘비 내리는 일요일’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아울러 서울대 음대 출신 현양(본명 정운화)씨 역시 당시 솔로로 극장무대 등에 나서며 작곡가 손석우씨를 본격적으로 사사하고 있는 중이었고 드러머 출신 김성배씨 또한 ‘서울의 에드란제’ 라는 곡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인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행된 야간촬영에서 가수 현인의 노래‘꿈속의 사랑’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마지막 촬영을 끝낸 바로 그날 아침, 손시향씨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삼천만의 가슴에 현대인의 우수(憂愁)를 울려주는 종’이란 뜻으로 이름 지어진 블루벨즈. 이렇게 첫 선을 보인 이들 쿼텟이 실제로 결성되어 대중들 앞에 등장하는 건 이 영화 촬영 직후 KBS 라디오 연속극 ‘시계 없는 대합실’의 주제가를 부르면서.1960년 10월, 남성4중창단의 결성을 오랫동안 꿈꿔왔던 작곡가 손석우씨의 제의에 의해서였다. 이들 멤버는 각각 멜로디 박일호씨, 당시 KBS 전속가수 2기생이었던 서양훈(바리톤)씨, 그리고 현양(베이스)씨와 김천악(하이테너·본명 김영완)씨. 이 둘은 대구 계성고 동창으로 블루벨즈 팀에 합류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멤버는 모두 1935년생 동갑내기들이다. LP시대의 서막, 즉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방송 활동과 음반 취입을 시작한 남성 4중창단 블루벨즈의 인기는 계속해서 스왈로 남성4중창단, 멜로톤, 쟈니브라더스, 봉봉 등을 잇달아 탄생시키며 우리 가요계에도 비로소 남성보컬 전성시대가 개막된다. 블루벨즈의 첫 히트곡은 ‘열두 냥짜리 인생’. 당시 노동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불리어지고 있던 이 노래는 처음 극작가 김희창씨가 채보, 개사해 본인의 드라마 주제가로 사용했다.1960년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이 노래 ‘열두 냥짜리 인생’은 블루벨즈에 의해 무반주로 취입했다. 이를테면 아카펠라의 원조인 셈이다. 블루벨즈는 특히 1960년대 서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와 CM송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당시 전 국민이 귀를 모았던 라디오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즐거운 잔칫날’,‘고생도 달가와’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특히 정전이 자주 되던 1960∼70년대, 이들의 노래는 우리네 삶의 그늘을 밝게 해주는 빛이었다. 수신기 하나만으로도 노래와 드라마를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오락매체, 라디오가 국민들에게 큰 위안과 함께 영향력이 매우 컸던 시절, 블루벨즈는 이름 그대로 스스로는 ‘우수(憂愁)의 종(鍾)’이었으되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푸른빛의 종소리’였던 것이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신명난 봄… ‘퓨전국악’ 춘추전국시대

    신명난 봄… ‘퓨전국악’ 춘추전국시대

    퓨전국악에도 봄은 오는가? 퓨전국악 음반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명, 여울, 그림, 한충은, 정민아, 김애라 등 수준급 연주기량을 갖춘 뮤지션과 그룹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퓨전국악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음반으로는 숙명여대 가야금연주단의 앨범이 꼽힌다. 서울음반 김홍기 홍보팀장은 “작년 숙명여대 가야금연주단 앨범 판매량은 1만여장으로 성시경 등 몇몇 톱 클래스 가수 음반과 함께 상위권을 형성하며 음반제작사에 톡톡히 효자노릇을 했다.”며 “디지털 음원 판매량에서도 웬만한 가요를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퓨전국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국악 뮤지션들이 국악방송 등 전문음악방송은 물론, 광고나 지상파 방송 등에 출연하는 횟수 또한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경기도 성남문화센터 등 문화공간에서는 국악을 포용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예전에도 국악과 대중음악의 연결을 시도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70년대 록기타리스트 신중현씨는 전통적인 오음음계를 사용해 히트곡 ‘미인’을 탄생시켰고, 이후에도 김수철 등 후배가수들이 바통을 이어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인’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이 사실. 국악방송 최효민 PD는 퓨전국악 음반의 증가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국악이 작곡자의 곡을 단순하게 연주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연주자 중심의 음악으로 변화하면서, 연주자 개개인의 스타성과 색채감에 젊은 음악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 둘째는 국악과를 통해 쏟아져 나온 많은 전통음악 전공자들이 순수 국악외에도 다양한 음악분야의 개척을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퓨전국악그룹 ‘그림’의 멤버 김주리(30·해금)씨도 “많은 국악전공자들이 공부하는 음악과 일상에서 접하는 음악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악을 대중들이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려 하다 보니 퓨전국악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활성화되는 것 같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셋째는 음반기획사들의 지향점이 국내는 물론, 국악을 통한 한류의 세계화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퓨전국악 음반발매가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현상에 대해 최 PD는 “국악계 내부에서 전통악기가 사용됐을 뿐 장단과 선율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의견과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대중에게 다가서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정답이라 할 만한 방향성을 제시하긴 어렵지만, 국악음반이 많이 나오는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장의 여인’권혜경의 삶과 사랑(2)

    가수 권혜경(본명 권오명·權五明).1931년 삼척에서 출생해 의정부로 이사해 지냈던 유년시절, 대문을 세 번이나 열어야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유하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당시 조흥은행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녀는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가수모집에 응시, 전속가수 3기생으로 발탁된다.‘사랑이 메아리칠 때’의 가수 안다성씨가 그녀의 방송국 입사 동기다. KBS 전속가수가 된 지 얼마 후 발표하는 ‘산장의 여인’에 이어 그는 당대 최고 작곡가들인 손목인, 이재호, 손석우, 박춘석씨 등과 손잡고 라디오 드라마 ‘호반에서 그들은’의 주제가인 ‘호반의 벤치’ 그리고 1959년에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 등을 취입한다. 예명 ‘권혜경’은 본인 스스로 지었다. 특히 ‘벼슬 경(卿)’자를 이름에 선택했을 만큼 엘리트 의식 또한 강했다. 실제로 그녀는 그때까지 가요의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창법과는 다른 클래식한 창법으로 등장했다. 권혜경씨는 ‘산장의 여인’을 시작으로 인기 가수 대열에 들어선 지 2년 뒤 1959년, 그녀 나이 스물여덟에 심장판막증 판명을 받으면서 기구한 운명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 강행한 음반 취입과 공연 등으로 ‘허리가 18인치까지 줄어들었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투병 속에 연예 활동을 하던 전성기의 권혜경은 또다시 후두암까지 선고받는 등 무려 네 가지나 되는 불치의 병마에 시달린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곡 ‘물새 우는 해변’은 작곡가 박춘석씨가 투병 중인 그녀를 배려해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원곡의 멜로디 일부를 개작까지 해 건네준 곡이다. 당시 치료차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지불해야 했던 치료비가 자그마치 2억 5000만원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이러한 삶에 대한 집착의 대가로 그녀는 당시 매스컴의 보도대로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듯했지만 또다시 병이 재발하는 등 몇 년간의 가수 활동 내내 사투를 반복했다. 노래 ‘산장의 여인’의 끝부분, 한 구절처럼 그녀는 홀로 ‘재생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로 종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본래는 수녀가 되고 싶어 했지만 절에서 목숨을 건진 후 불자가 된다. 가톨릭에서 불교로 개종하면서 청담(淸潭) 스님으로부터 하루 5000배씩 절을 하라는 명을 받고 또 다른 힘든 고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대명화(大明華)’라는 법명을 받기도 했다. 한때 ‘산장의 여인’을 만들어 부르게 한 작사가 반야월 선생에게 ‘하필이면 슬픈 노래를 내게 주어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인생을 살게 했느냐.’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전해지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러한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스스로 남은 인생 모두를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위로하며 자신보다 못한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근 50여년 간 전국 교도소를 돌며 사형수, 무기수,10대 범죄자 등 재소자들을 격려해오고 있어 수인들 사이에서 지금도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다. 교도소 위문공연, 강연만도 400여차례. 이러한 공로로 권혜경은 제34회 세계인권의 날에 인권옹호유공 표창을 비롯해 현재까지 표창만도 500여회 수상했다. 한때 그녀의 빨간 통굽 하이힐은 이제 고무신으로, 그리고 무스와 스프레이로 치장했던 화려한 헤어스타일은 어느덧 백발로 변했지만 아직도 가발을 네 개나 갖고 있는 ‘멋쟁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밤은 깊어갔고 이윽고 그녀의 노래가 ‘동심초’로부터 시작되었다.‘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이 노래를 들으며 여전히 혼자인 그녀의 삶과 사랑이 오버랩되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장의 여인’권혜경의 삶과 사랑(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장의 여인’권혜경의 삶과 사랑(1)

    가수 권혜경. 그녀의 이름 앞에는 늘 ‘산장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흔히들 ‘노래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가수가 권혜경씨가 아닌가 싶다. 그 노랫말대로 운명이 바뀌어 지금껏 살아온,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늘 웃는 모습만을 보여 주던 가수 권혜경씨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 전 ‘산장의 여인’의 작사가 반야월 선생과의 술자리에서였다. 작사가 반야월 선생은 어느덧 91세. 그럼에도 하루가 멀다 않고 술자리를 갖는다. 나 역시 얼추 이틀에 한 번꼴은 그 자리에 합류한다. 어느새 5∼6년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노랫말을 쓴 작사가, 동시에 그가 지은 노랫말의 노래비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세워져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울고 넘는 박달재’,‘단장의 미아리 고개’,‘만리포 사랑’으로부터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소양강 처녀’,‘삼천포아가씨’까지 무려 아홉 개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 만큼 그는 가요계의 산 증인이자 역사다. 그만큼 일화 또한 많다. 술자리에서 반 선생이 불쑥 ‘산장의 여인’의 노래비 또한 세워져야 하는 것 아닐까, 주장하다가 화제는 자연스럽게 권혜경씨의 근황으로 옮겨져 갔다. 문득 그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전화번호를 입수했다. 사는 곳은 충북 청원군 남이면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는 곳의 위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바깥출입을 거의 안하고 산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고도 했고 또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는 일흔다섯의 나이 탓이라고도 했다. 마음에 걸렸지만 무작정 주소만 가지고 길을 나섰다. 집은 산마을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다.‘백발, 빨간 옷, 눈 주위의 짙은 검정 색조 화장, 때문에 더욱 작아 보이는 얼굴. 주름살 가득한 웃음.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에다가 맨발에 신겨진 검정 고무신….’ 이것이 내가 2년 전에 만난 권혜경씨의 첫 모습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예쁜 집’이다. 열 평 남짓한 정원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나무들이 가득했다. 그 정원 한가운데에 움푹 파여진 웅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스스로 혼자 팠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팠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고, 나중에 본인이 누울 곳이라고도 했다. 이 정도 크기면 혼자의 몸을 충분히 눕힐 수 있다고 했고, 언젠가 누군가 찾아와줄 사람들과 되도록이면 가깝게 있고 싶어 일부러 지면에서 얕게 팠다고도 했다. 그녀의 바람은 이 묘 앞에 ‘산장의 여인’ 노래비(碑)를 세우고 싶은 것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산장의 여인’의 바로 그 ‘산장’에 와 있는 셈이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세상에 버림 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권혜경 노래.1957년 발표) 그녀 나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데뷔곡이자 대표곡. 이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작사가 반야월이 마산 결핵요양소를 찾았다가 그 곳에서 보게 된 한 환자복의 여인을 모티브로 해서 즉석에서 노랫말을 지었다. 그리고 이 가사에 작곡가 이재호 선생이 곡을 붙였다. 얼마 전 사석에서 반야월 선생은 당시 의학으로는 쉽게 치료할 수 없었던 불치병, 즉 결핵을 노래로 치유하고 싶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거실은 널찍했고 벽에 걸린 각종 그림과 사진들, 표창장을 비롯해 상패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공간은 마치 개인 기념관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벽면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사진들과 현재 모습이 묘하게 대비되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섰다가 냉장고 앞에 붙어 있는 글귀에 시선이 멈췄다. ‘나 죽으면 연락해 주세요. 죽은 후 연락처-손성미 02)907-xxxx,019-xxx-0xxx.’ 자필 메모였다. 이 메모 속 ‘손성미’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서울 사는 ‘언니의 딸’이라고 했다. 죽음을 거둬 달라고 부탁할 이가 ‘언니의 딸’이라니. 이렇듯 권혜경씨는 이 ‘산장’에서 줄곧 홀로 지내고 있었다.1994년 5월부터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그곳엔 주민친화형 예술이 있다

    중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충무아트홀이 주민친화형 공연을 펼치며 문턱 낮추기에 한창이다.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정기공연을 기획하고, 티켓을 선착순으로 무료 배부해 주민들을 위한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공연이 오는 13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굿모닝콘서트’. 공연예술 소외계층이나 다름없는 주부들이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에 수준 높은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이번 공연에는 ‘서울클래시컬플레이어즈’가 렛잇비(Let It Be), 헤이 주드(Hey Jude) 등 ‘비틀스’의 음악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무료공연에 다과까지 준비해 주부들의 입맛에 맞췄다.6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www.cmah.or.kr)로 신청한 뒤 초대권을 받아 당일 공연 시작 1시간전부터 선착순으로 교환해 입장하면 된다.4월30일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 50주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올해 처음 선보인 ‘열린음악회’가 열려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김종환, 최진희, 해바라기 등 유명가수를 비롯해 충무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올슉업(All Shook Up)’ 쇼케이스, 비보이 공연 등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공연으로 꾸몄다.800석 규모의 대극장에는 중구 주민뿐만 아니라 근처 직장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앙코르를 외치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겨울방학에 처음 공연을 시작해 큰 인기를 모았던 청소년을 위한 ‘영페스타’는 올 여름방학에도 열린다. 힙합, 펑크록, 비보이 공연 등으로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건강한 대중문화를 즐기는 자리로 꾸민다. 2005년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선보인 ‘충무갤러리음악회’는 올해 기획전의 테마에 따라 유명 솔리스트를 초청해 색깔 있고 아늑한 자리로 만들 계획이다. 충무아트홀 관계자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바탕으로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정규공연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지역주민들의 문화예술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국악, 대중음악, 퍼포먼스 등 장르의 다양화와 차별화를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너바나’ 추종자가 통기타 멘 이유는…

    ‘너바나’ 추종자가 통기타 멘 이유는…

    ‘모던 록의 기수’ 이지형이 3월 6일 열리는 제 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남자 가수부문 등 5개부문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1집앨범인 ‘라디오 데이즈’는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모던 록 부문 등을 석권할 태세다. 도대체 이지형이 누군가. 지금은 록 음악계의 메인 스트림이 된 크라잉넛과 델리스파이스, 노브레인 등과 함께 홍대 앞 인디 밴드 1세대를 이끈 록 밴드 위퍼(Weeper)의 리드 보컬 이었다고 하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 같다.‘홍대의 원빈’이라 불릴 만큼 인디씬 최고의 얼짱이자 역량있는 싱어송라이터. 위퍼 해체 이후 무려 5년간의 방황을 끝나고 마침내 솔로로 부활한 그를 만났다. 얼터너티브 록 그룹 너바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복제인간처럼 따라하고, 커트 코베인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었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통기타를 들고 어쿠스틱 사운드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제 음악성향에 맞는 것이 통기타라는 사실을 어렵사리 깨달은 겁니다.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를 닮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잘 안되더군요. 마치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이 억지스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잦은 멤버교체에 시달리던 위퍼는 그가 군에 입대하면서 결국 해체되고 만다. 고등학교 2학년때 위퍼를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된 너바나와의 인연도 이때를 계기로 자연스레 끊어졌다.“솔로 데뷔를 준비하면서 세션으로 활동하는 등 힘겨운 시기를 보냈죠. 그때부터 제 본래의 목소리를 찾는 작업이 시작됐고요.” 위퍼를 잃은 상실감에 한동안 음악과 거리를 두었던 그였지만, 어쿠스틱 기타를 잡는 시간은 오히려 많아지고 있었다.“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음반기획사에 보낸 데모 테이프는 반송되기 일쑤였고, 만나자고 연락온 기획사는 보름 만에 문을 닫았죠. 초창기 위퍼 베이스 연주자였던 선배와 하와이에서 통기타치며 먹고 살 계획을 세우다 마지막으로 앨범 하나만 내자고 했던 것이 이번 앨범 ‘라디오 데이즈’예요.” 모든 수록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것은 물론, 편곡과 프로듀싱까지 도맡아 만들어낸 늦깎이 데뷔 앨범은 차세대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위퍼 시절의 공격적인 음악패턴에서 벗어나 모던 록과 포크,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자신만의 변종을 만들어 냈다. 예전의 위퍼를 좋아했던 팬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일지 모르겠다.“이제 더 이상 강렬한 색깔의 록 사운드는 만들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스스로가 놀랄 만큼 목소리도 변했고요. 하지만 겉모양은 변했어도 노래를 만드는 감성이나 음악적 성향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결코 작지 않은 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1집앨범 활동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봄이나 여름쯤 2집앨범이 나올 예정입니다.‘라디오 데이즈’가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면,2집앨범은 좀 더 구체적인 색깔의 옷을 입게 될 겁니다.” 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남성적인 매력이 한껏 돋보였던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가 35년 만에 재결합을 선언했다. 평균연령이 자그마치 68세. 이로써 우리나라 최장·최고령의 보컬 팀이 탄생한 것. 유독 박력 있고 시원스러운 가창력과 더불어 싱싱한 수목을 연상시키는 건강미가 매력 만점이던 이들 멤버는 각각 김현진(리드,71세), 양영일(테너,68세), 김준(본명 김산현, 바리톤,67세), 진성만(베이스,67세). 여전히 ‘빨간 머플러’가 썩 잘 어울릴 듯한 외모, 전성기 때 못지 않은 박력에 깊이까지 갖춘 이들의 정겨운 화음은 세월을 뛰어넘어 특히 중장년층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1961년, 당시 최고의 음악성을 갖춘 정예들로 구성된 예그린합창단 1기생으로 출발, 기량을 뽐내던 중 뜻이 맞는 이들 네 명이 모여 4중창단을 결성했다. 이어 문화방송 톱싱거대회 월별 예선을 통과, 연말 본선 결선을 앞두고 예그린이 해체된다. 아울러 이들은 당시 문화방송 톱싱거 경연대회, 동아방송 연말 중창단경연대회 등을 잇달아 휩쓸며 무서운 신예로 급부상했다. 특히 춤과 연기 실력으로 완전무장한 예그린 출신답게 TV쇼를 화려하게 바꾼 동시에 영화주제가 ‘빨간 마후라’를 비롯해 ‘방앗간 집 둘째딸’,‘아나 농부야’,‘수평선’ 등을 잇달아 발표, 정상에 오른다. 아울러 당시 꿈의 무대였던 워커힐에 전속되며 통행금지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마치 한 몸인 양 ‘사인오각(四人五脚)’을 이뤄 바쁘게 활동,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최정상에서 이들은 해체를 선언한다. 각자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솔리스트로 전향을 꿈꾸던 이들은 결국 1968년 6월8일 동양TV ‘쇼쇼쇼’를 통해 ‘자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갖는다. 하지만 이들의 재능을 아쉬워하던 당시 장태화 서울신문사 사장 등 후견인들에 의해 다시 재결성, 그룹명을 ‘메아리진(전국에 메아리친다는 순수 우리 말)’으로 바꾸고 1970년 1월11일 mbc-TV ‘메아리진쇼’를 통해 컴백, 매주 30분씩 브라운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들은 당시 중창단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각각 부업전선에 나선 후 이어 1972년, 서울 을지로 4가에 ‘메아리진’이라는 음악 살롱을 차려 경제적 타개책을 적극 모색하지만 1년이 채 못돼 하나둘씩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오는 3월12일 공식적으로 KBS 가요무대를 통해 재결합을 선언, 컴백무대를 갖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섰던 무대는 1973년 1월, 당시 TBC ‘쇼쇼쇼(PD 황정태)‘ 400회 특집프로그램. 오랜 만에 똑같은 의상으로 통일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비록 그동안 제각각의 길을 걸어왔지만 늘 음악과 함께 해왔기에 이 번 재결성은 매우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라고. 실제로 멤버 중 바리톤 파트의 김준씨는 그룹 해체 후 솔로가수로 전향, 현재까지 매년 음반을 발표해오며 국내 유일의 남성재즈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멜로디 파트의 김현진씨는 그간 보험일을 거쳐 현재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본인이 이끄는 ‘울바우 남성합창단’과 더불어 매년 정기공연을 해왔다. ‘빈대떡 신사’의 작곡자인 양원배씨의 차남으로 경희대 음대 출신이기도 한 테너 양영일씨는 지난 23년간 음악교사로 재직해 왔다. 현재는 부산 코스모스악기사 상무로 재직 중이다. 그런가하면 동아방송 성우 1기생이기도 한 베이스 진성만씨는 영화배우 김지미씨의 여동생 김지애씨와 결혼, 지미필름 대표를 거쳐 현재는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니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이들은 이미 지난 가을부터 매주 한 차례씩 모여 호흡을 고르고 화음을 맞춰 왔다. 이전까지는 멜로디 위주의 유니송(Unison)을 주로 발표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모니 위주의 4성, 즉 네가지 화음을 조화시켜 남성4중창단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펼칠 예정. 클래식과 교회음악에서 출발한 이들이 들려줄 주요 레퍼토리는 역시 올드팬들에게 친숙한 ‘올드송’들이다. 자신들의 히트곡은 물론 민요에서 올드 팝까지 폭넓게 펼칠 예정으로 편곡은 작곡가 김기웅(71)씨가 맡았다. .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24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산세 수려한 청정무공해 자연의 땅, 서해바다가 맞닿아 있는 풍요희 고장 충남 홍성으로 맛 여행을 떠난다. 바닷가 겨울풍경을 마주하는 곳, 남당항에서 부드럽고 담백한 조개의 명품, 새조개를 회·구이·샤브샤브 등 다양하게 맛본다. 광천읍의 재래시장에서 찾은 홍성의 명물, 새우젓도 맛본다.   ●스페이스 공감(EBS 오후 10시) ‘2007 그들을 주목한다’의 첫번째 주인공은 미싱 아일랜드. 재즈적인 감성과 대중적인 감각을 갖춘 미싱 아일랜드의 무대를 만나본다. 두번째 주인공은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레게’를 정석대로 해석하여 대중음악계의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2인조 프로젝트팀 ‘쿤타&뉴올리언스’의 무대를 감상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5분) 최근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의 잇따른 자살은 마냥 화려하고 풍족해 보이는 연예인의 삶에도 커다란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여성연예인에게 가해졌던 비틀린 시선을 바로잡고 더 이상 유니와 정다빈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 볼 때이다.   ●하얀거탑(MBC 오후 9시40분) 법정에 선 장준혁의 계속되는 거짓증언에 도영은 순간 벌떡 일어나 장준혁을 외치지만 준혁은 미동도 하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한다. 준혁을 불러들인 오남기 교수는 미국 메디컬센터에서 송도에 동북아 허브병원을 건립하려고 한다면서, 세계외과학회장이 준혁을 그곳으로 스카우트하려 한다는 말을 전한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준호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는 지연은 병원으로 달려가고, 준호 곁에 누워 있는 하영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범인을 조사하러 병원에 왔던 태섭은 지연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지연은 외출하려다가 잊은 물건 때문에 다시 병실로 돌아가다, 준호가 어디론가 가는 것을 목격하는데….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오전 10시)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밴쿠버는 서부 캐나다의 최대 도시. 토론토, 몬트리올에 이어 캐나다를 대표하는 세번째 도시다. 아름다운 항구, 문화 중심지, 관광의 메카로 유명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州)의 간판도시 밴쿠버. 캐나다에서 가장 살기 좋은 기후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한 밴쿠버로 떠나본다.
  • 버블시스터즈 가볍게 뜬다

    버블시스터즈 가볍게 뜬다

    ‘뛰어난 가창력과 음악적 감수성을 지닌 여성 보컬그룹’ 버블시스터즈에 대한 표현은 이미 진부하다. 이들이 2003년 ‘예쁜 것들은 다 죽었어!’란 겁나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데뷔했을 당시, 여가수들이 지나치게 외모에만 매달린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던 가요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외모가 처지기 때문에)전혀 귀추가 주목되지 않는 그룹”이라는 일부 음악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그들의 1집 음반은 ‘명반’의 반열에 올랐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당연한 명제다. 한 대중음악평론가는 “발라드와 차별성이 없는 가짜 알앤비&솔이 판치는” 게 음악계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가 오는 3월6일 열리는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솔 싱글부문에 버블시스터즈의 ‘맘 아픈 척하지마’를 후보곡으로 올린 것도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이처럼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상큼발랄한 아가씨 셋(서승희, 김민진, 최아롬)과 새색시 한명(강현정)으로 구성된 버블시스터즈가 1년여 만에 음악팬 곁으로 돌아왔다. 사랑에 대한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3집 앨범 ‘드라마틱 에피소드’는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에 대한 보답이다. 멤버들은 새앨범을 위해 몸무게도 줄였다. 김민진은 30㎏, 최아롬과 서승희는 각각 15㎏,12㎏을 감량했다. 이처럼 앨범에서도 무게를 확 덜어낸 것이 특징이다. 리더 서승희는 “2집때 힙합에서 발라드까지 여러 장르를 시도하다 보니 무려 17곡이나 한 앨범에 담았다.”며 “이번 앨범에는 2집에서 시도했던 장르들 가운데 발라드에 주목해 정리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타이틀곡인 ‘바보처럼’은 솔(soul) 느낌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발라드. 하지만 이들이 진짜 부르고 싶은 노래는 3번 트랙 ‘아무도 모르게’다.“우리의 음색이 가장 잘 녹아있기(강현정)” 때문이란다. 4번 트랙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웃었습니다’는 서승희가 19세때 오빠 친구와 엮어낸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전 자신의 일기장에 써놓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가사가 애절하다. 당시 그녀가 느꼈던 ‘잔인한 그리움도 선물로 남는 사랑’을 과연 몇명의 남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강현정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담은 보사노바 풍의 ‘이츠 유’와 블루스 향기 가득한 ‘깊고 푸른 밤’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무게를 덜어낸 것이 주효한 걸까. 타이틀곡 ‘바보처럼’은 각종 온라인 음악차트에서 가볍게 상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하반기에는 각 멤버의 솔로 음반도 출시할 예정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강태규의 연예 in]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의 독주 언제까지?

    연말이면 10대 가수상에 환호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그해 가수상을 알아 맞히는 재미도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난 수년간 식상할 만큼 난립했던 방송사와 관련단체 주관의 연말 가요 시상식이 주최집단의 이해관계와 권력의 장이라는 논란 속에 지난해 결국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왜 그래미상과 같은 권위와 전통의 시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자괴감마저 든다. 이러한 과도기 속에서 오는 3월6일 시상식을 개최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은 벌써 4회를 맞이하면서 음악업계에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한국대중음악상은 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기자, 음악전문 라디오 PD, 학계, 시민단체 등 30여명의 선정위원회가 직접 주최, 주관해 독립성과 공정성에 있어 일찍이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투명한 시상식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여진다. 필자는 지난 2004년 제 1회 한국대중음악상이 열리기 전, 준비과정에서부터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4회를 맞는 이 음악상이 일반대중은 차치하고라도 음악팬들과 업계 관계자들에게조차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적 진정성과 공정성이라는 큰 무기를 기저에 깔아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애초에 편견없는 ‘음악중심’이라는 시상 목표가 주류와 비주류 음악의 간극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서 온전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음악팬들의 민심 반영보다는 선정위원회라는 ‘그들만의 연대’를 통한 수상자 선발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음악중심’이라는 의제에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그 다양한 시각을 선정위원회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전문가들이 더 포진해 심도있는 논의가 더욱 절실한 것은 이번 수상자 후보 선정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표절 시비로 얼룩진 가수와 후보자 명단에 반드시 있어야 할 가수들이 빠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시상식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음악팬들의 외면을 부추기는 일이다. 수상자만큼이나 후보자 선정 발표의 세심함은 시상식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이 ‘두번째달’ ‘마이앤트메리’ ‘바비 킴’ ‘클래지콰이’등 많은 음악 인재들을 배출해온 성과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가 ‘패거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준엄한 꾸짖음을 귀담아 듣는다면, 한국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대중가요시상식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요원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www.writerkang.com)
  • [부고] ‘케 세라 세라’ 작곡·작사가 레이 에번스 타계

    195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가수 도리스 데이의 히트곡인 ‘케 세라, 세라(Que Sera,Sera)’를 공동 작곡·작사한 대중음악가 레이 에번스가 92세로 작고했다. BBC,AP통신 등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에번스가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의료센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스페인어인 ‘케 세라, 세라’의 뜻은 ‘될 대로 돼라, 혹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에번스는 음악 단짝인 제이 리빙스턴과 공동으로 작사·작곡 등 음악 활동을 했다. 그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의 주제가인 ‘케 세라, 세라’로 아카데미상 영화음악 부문을 수상했었다. 그는 리빙스턴과 함께 모두 7차례에 걸쳐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됐고 1948년,1950년,1956년 등 3차례 이 상을 받았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두 유명인의 감춰진 삶 비추다

    실존 인물들을 다룬 이야기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존재라면 호기심은 더욱 증폭된다. 특히 베일에 싸인 그들의 진짜 삶을 보여주는 영화는 거부하기 힘들다. 1주일의 격차를 두고 스크린에 걸리는 ‘더 퀸’과 ‘드림걸즈’는 그런 점에서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더 퀸’은 철옹성 같은 영국 왕실 내부에 깊숙이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에 대한 늑장 대처로 영국민들의 불만이 촉발되고 급기야 왕실 폐지론까지 거론됐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영화는 다이애나비 사후 1주일간 예기치 못한 여론에 직면한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겪었을 법한 심리적 갈등과 왕실의 동요에 초점을 맞췄다. 갓 취임한 블레어 총리와 여왕이 마찰을 겪다가 서로 친구가 되는 과정이 그럴싸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여기에 다이애나비의 생전 모습이 담긴 자료 화면이 심심찮게 등장해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다. 각본을 쓴 피터 모건은 앞서 블레어 총리를 다룬 TV드라마에서 갈고 닦은 실력과 인맥을 동원해 영국 왕실을 완벽하게 재구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여왕 역의 헬렌 미렌이다. 왕년에 지적인 섹시미를 뽐냈던 이 노련한 여배우는 실제 여왕으로 착각할 정도로 여왕의 표정, 자세, 말투를 똑같이 재현해내고 있다. 변신에 능한 여배우에게 후한 점수를 줘왔던 아카데미에서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15일 개봉,12세 관람가. 시작부터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이 번뜩이는 콘서트 무대를 재현해내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뮤지컬 영화 ‘드림걸즈’.60∼70년대를 풍미했던 다이애나 로스와 전설적인 여성보컬 그룹 ‘슈프림즈’를 모델로 삼았다.‘드림걸즈’는 원래 1981년 초연돼 4년간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로,‘시카고’의 각본을 썼던 빌 콘돈에 의해 스크린에서 다시 부활했다. ‘재능만으로 누구나 다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이는 만국에 통용되는 쇼비즈니스 업계의 진리. 영화는 톱스타를 꿈꾸는 디트로이트 출신 소녀들 디나(비욘세 놀즈), 에피(제니퍼 허드슨), 로렐(애니카 노리 로즈)이 ‘업계의 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고 그로 인해 갈등과 깨달음의 과정을 짚어간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중음악계 현실과도 일맥상통해 공감을 자아낸다. 영화만큼 화려한 캐스팅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에피를 연기한 신인 제니퍼 허드슨이다. 빼어난 가창력과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팀에서 강제로 퇴출당한 뒤 애절하게 부르는 ‘아임 텔링 유 아임 낫 고잉(And I’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듣고 있으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또한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동료 가수 지미 얼리로 등장한 에디 머피의 연기와 노래는 그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준다.22일 개봉,12세 관람가.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박성서의 7080가요 X파일]佛 샹송가수, 한국가요 부르다

    [박성서의 7080가요 X파일]佛 샹송가수, 한국가요 부르다

    ‘시인의 혼(L´ame Des Poetes)’의 세계적인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1960년대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에서의 잦은 공연과 함께 아시아에서 샹송 붐을 주도했던 지로는 당시 에디트, 줄리에트 그레코와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가수 중 한 명이다. 상냥하고 붙임성 있는 외모와 함께 그의 깊고 낮은 목소리에는 한껏 정감이 묻어난다. 부드러운 창법과 발음으로 매우 친근감을 안겨주는 그의 노래는 이전까지 어둡고 우울한 샹송 이미지를 또 다르게 바꾼 인물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방문해 최초로 내한공연을 펼쳤던 샹송가수이기도 하다. 아울러 우리 노래를 직접 우리말로 취입한 최초의 가수이기도 한 지로가 당시 발표한 앨범은 ‘노오란 샤쓰’와 ‘안개’. 그가 ‘노란 샤쓰’를 처음 부른 것은 1963년, 당시 시민회관에서 가졌던 내한공연 무대에서였다. “마치 우리말을 알기라도 하듯 섬세하면서도 역동감이 넘치는 표현력, 그래서 ‘노래는 표현’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지로만의 가창력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뜨거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공연에 참관했던 ‘노란 샤쓰’의 작곡가 손석우(87)씨의 회고다. 지로는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른 뒤 자청해 손석우씨가 자주 제작하고 있던 뷔너스레코드사를 통해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을 레코딩한다. 특히 노래 취입 당시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에 집중하던 그녀의 모습 또한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전해진다. 단순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힐빌리(Hillbilly, 현재 Country & Western) 리듬의 이 곡은 1961년, 가수 한명숙씨가 발표한 불멸의 레퍼토리. 처음 발표될 당시엔 일부 관계자들로부터 그저 단순히 동요에 털이 좀 난 것일 뿐이라는 별로 곱지 않은 악평도 한편으론 감수해야 했지만 바로 그 ‘파격’으로 말미암아 1960년대 우리나라 가요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부터 우리 가요는 다양한 리듬의 팝스타일로 폭넓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이베트 지로, 그리고 일본의 하마무라 미치코를 비롯해 자국의 가수들 목소리에 제각각 실려 일본, 타이완을 비롯한 동남아를 강타한다. 속칭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지로는 이로부터 6년이 지난 1968년 6월, 다시 내한해 펼친 공연과 함께 작곡가 이봉조악단의 반주에 맞춰 ‘안개’ 그리고 그녀의 히트곡인 ‘Papa Aime Maman(아빠는 엄마를 좋아해)’를 ‘엄마 좋아 아빠 좋아’라는 제목으로 바꿔 우리말로 취입한다. 이 노래 ‘Papa Aime Maman’은 이후 1970년대 들어 포크부부듀엣 바블껌이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라는 제목으로 또다시 번안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었다. 비록 우리말 발음이 서툴긴 해도 지로 특유의 부드러운 악센트와 감정 표현이 압권인, 이때 취입한 여섯 곡은 음반 ‘YVETTE GIRAUD와 안개(신세기)’에 담겨 발표된다.1968년 8월의 일이다. 이후 지로는 이 ‘안개’를 자신의 주요 레퍼토리로 삼고자 했다. 때문에 일본에서 발표한 ‘이베트 지로 대표 샹송집(일본방송서비스사 발매)’을 발표할 때 이 노래의 원제를 ‘Brouillard(안개)’, 그리고 일본어 제목으로는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이라 표기해 직접 일본말로 취입해 수록하기도 했다. 1916년 파리에서 태어난 지로는 1952년 L’ame Des Poetes(시인의 혼)로 프랑스 디스크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국경을 초월, 언어 장벽을 뛰어넘은 외교대사로 수많은 외국공연을 통해 프랑스 문화와 샹송을 보급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시인들이 사라진 오랜 뒤에도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거리에 흐를 것’이라고 지로는 그녀의 노래 ‘시인의 혼’에서 읊조렸다. 그녀가 한국을 찾은 것도 어느덧 근 40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그들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베트 지로 또한 세월 속에 묻혀버렸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서툰 우리말 노래들은 여전히 한국인들 가슴에 이따금씩 흘러, 젖어들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삼천만의 연인’이었던 ‘꾀꼬리가수’ 박재란씨는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당시 옴니버스 음반들의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데뷔 때부터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음반 재킷을 장식했던 가수가 바로 박재란씨로 필자가 확인한 것만도 무려 100여종. 아울러 스크린에도 진출,1959년 박종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석우씨가 주제가를 맡은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에서는 미남, 미성의 가수 손시향씨와 함께 특별 출연해 주제가와 함께 연기를 선보였고 이어 1961년, 영화 ‘천생연분(박성호 감독)’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1962년 발표된 히트곡 ‘님’은 가사 중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단어를 타이틀로 이듬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아울러 이 노래 ‘님’은 2001년, 작사가 차경철씨 출생지인 울산의 대운산 입구에 노래비까지 건립됐다. 방송과 영화, 취입과 공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절, 전국을 누비던 ‘박재란 쇼’는 언제나 몰려드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폐가 나빠져 약으로 버티면서도 하루에 무려 30곡이나 되는 노래 연습과 취입을 해야 했어요. 젊었을 때니까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대중들의 환호가 가장 큰 힘이었지요.” 무대에서 생긴 병은 다음 무대에서 치유되었을 정도로 그에게서 노래는 어려움을 이겨낸 치료제이자 면역력을 키워준 힘이었다.‘대중들 앞에서의 삶’이 전부였던 그에게도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이 펼쳐진다.1959년, 영화주제가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연습하기 위해 작곡가 김광수씨 집에 갔다가 운명처럼 남편 박운양씨를 만난 것. 동갑내기이자 당시 성균관대생이었던 박운양씨는 작곡가 겸 연주인 김광수씨가 출연하는 ‘무학성 카바레’의 단골로 서로 의형제를 맺은 사이.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1989년 ‘한번만 더’로 사랑받았던 가수 박성신씨다. 아울러 남편이 영화제작에 손을 댔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함께 쇼 단체를 만들어 전국 공연에 나서기도 했지만 세상일을 모르고 살았던 이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결국 100평 남짓하던 서울 후암동 2층집에서 용산 단층집으로, 또 갈현동 전셋집으로 전락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결국 이혼을 택한 뒤 1973년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LA에 도착한 그는 나이트클럽 ‘타이거’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재기에 안간힘을 썼다. 동시에 한국을 오가며 음반을 발표하며 방송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무렵 미국 시민권을 가진 연예인들이 이따금씩 귀국해 활동하는 것에 대해 ‘국고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투서사건이 발생, 국내 활동이 일체 중단되자 그 역시도 점차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더구나 1979년, 아파트 화재로 모든 걸 잃는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의 생활은 재기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그 집념이 병이 되어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오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악성 위궤양으로 발전,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유년시절 숱한 잔병치레를 통해 강한 면역력을 키운 동시에 어려웠던 시대를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가수 박재란. 이제 그는 스스로 ‘긍정적으로 대할수록 긍정적으로 되는’,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섰던 그, 스스로의 ‘피그말리온 효과’는 지금에 와서 새삼 그를 지탱해주는 에너지이다. 현재는 선교활동을 통해 ‘노래하는 전도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가요 리메이크 붐 올해도 쭈욱~

    지난해 각종 온라인 음악 사이트의 인기차트에서 1위를 석권했던 가수 이루의 ‘까만 안경’. 이 노래가 ‘기차와 소나무’란 곡으로 많이 알려진 이규석의 ‘울음’이란 노래를 리메이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난 2004년 시작된 리메이크 붐이 지금까지도 대중음악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요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의 인기곡을 리메이크한 노래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동방신기가 부른 ‘풍선’.1980년대 후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새벽기차’ 등을 히트시킨 ‘다섯손가락’의 2집 수록곡이다. 동방신기는 ‘풍선’을 타이틀곡으로 내건 3집 앨범 “‘오’-정. 반. 합”을 34만장 가까이 팔아 지난해 최고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재도 각종 온·오프라인 가요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배우 김아중의 ‘마리아’도 미국의 펑크록 그룹 블론디의 1999년 앨범 수록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김아중은 블론디의 노래를 자신만의 것으로 잘 소화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리메이크곡들로만 앨범을 발매한 가수들도 적지 않다. 혼성 3인조 모던 록 밴드 러브 홀릭은 지난해 리메이크 앨범 ‘리와인드(Re-Wind)’를 발매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1980년대 이지연이 불러 많은 인기를 끌었던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비롯,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 박기영의 ‘정원’ 등의 노래들을 러브홀릭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앨범이다.‘리메이크 전문가수’ 서영은도 일기예보의 ‘좋아 좋아’ 등이 수록된 리메이크 앨범 시리즈 ‘로맨틱2’를 발표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SBS 수목드라마 ‘연인’의 OST를 부른 신인가수 치열도 임재범의 ‘고해’를 다시 불러 온라인 음악 사이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또 ‘비행기’의 거북이는 마로니에의 원곡에 랩과 댄스풍의 멜로디를 가미한 ‘칵테일 사랑’, 록그룹 레이지본은 고(故) 김광석의 발라드곡을 경쾌한 펑크록으로 재해석한 ‘서른 즈음에´ 등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처럼 리메이크 곡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25일 “낯선 가수와 노래들에 대한 음악 수용자들의 호기심이 증발한 상황에서 잘 알려지고 작품성 높은 곡을 리메이크할 경우, 신곡을 발표하는 것보다 위험부담이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창작곡 활성화 등을 통해 가요계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재란씨는 가창력, 좋은 노래, 외모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만능가수’이자 여러 리듬에 따라 다양한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실력파 가수.‘항상 웃음을 띤 얼굴’로 기억되는 가수 박재란은 건강한 보이스 컬러에 경쾌한 노래들로 특히 어려웠던 시절, 삶에 지친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마치 남쪽에서 불어 오는 남풍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남겨져 있는 가수 박재란. 그 역시도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수시로 잔병치레를 할 정도로 몸이 허약해 전염병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앓았고 특히 일곱 살 나던 해에 걸린 ‘뇌염’으로 인해 가망이 없다며 장례 치를 준비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의사를 불렀을 때 다행히도 살아났다. 아울러 초등학교 시절,6·25전쟁 중이던 그의 나이 열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마저 여읜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밝은 모습으로 나섰다.‘럭키 모닝’,‘푸른 날개’,‘해피 세레나데’ 등 초기 히트곡을 시작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방방곡곡 전파하며 사회 분위기를 밝게 리드해 나갔다. “저는 트로트풍의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았어요. 대신 대부분 노래들이 폴카나 트위스트, 부기우기, 룸바, 탱고, 삼바, 차차차 등 신나는 멜로디였죠. 때문에 무대에 서면 관객들이 매우 즐거워했어요. 물론 한꺼번에 여러 멜로디를 동시에 불러야 하는 어려움도 따랐지만 정말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었죠.” 그의 회고처럼 최초 히트곡 ‘럭키모닝’을 시작으로 ‘푸른 날개’, 민요풍의 ‘맹꽁이 타령’, 그리고 ‘님’,‘둘이서 트위스트를’,‘산 너머 남촌에는’,‘소쩍새 우는 마을’,‘아나 농부야’,‘밀짚모자 목장아가씨’,‘행복의 샘터’,‘진주조개 잡이’,‘강화도령’ 등 SP시대에서 출발해 LP시대를 수놓았던 그의 히트곡들은 얼추 손꼽아 봐도 템포가 사뭇 제각각이다. 이처럼 다양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소화했던 가수는 우리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바이브레이션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깨끗한 창법으로 장르에 따라 발성을 달리하는 뛰어난 가창력은 작곡가 입장에서 보면 탐이 날 수밖에 없다. 가수 박재란은 불과 열여섯 살 때, 처음 무대에 발을 디딘다. 본명은 이영숙.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던 부친 이수천씨와 성가대원이었던 모친 유순남씨 사이의 1남5녀 중 4녀로 서울에서 출생했다. 네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이 전근함에 따라 가족 모두 천안으로 이사했다. 천안 제일국민학교(지금의 천안초등학교), 천안여중을 거치는 동안 그는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당시 인기 있던 유행가를 전파시킨 메신저 역할은 늘 그의 몫이었다. 특히 백난아씨가 부른 ‘망향초 사랑’을 즐겨 불렀다고 기억한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무대 활동을 적극 권유한 인물이 당시 인천경찰악대장 박태준씨. 그의 추천을 통해 육군본부 산하 군예대(KAS) 3기생으로 발탁되면서 대구에서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수양아버지까지 되어 주는 박태준씨로부터 받은 예명이 박재란. 일선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문공연이 주 임무였던 군예대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말 그대로 ‘일인다역’. 노래는 물론 무용, 악극 등 쇼에 관한 한 모든 걸 소화해야 했던 어린 재란은 대구에서 2년, 서울에서 2년간의 군예대 생활을 거치는 동안 무대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군예대 시절, 대구에서 첫 취입해 발표한 노래는 나화랑 작곡의 ‘뜰아래 귀뚜라미’와 김학송 작곡의 ‘코스모스 사랑’. 그러나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 악극단으로 자리를 옮겨 첫 히트곡 ‘럭키모닝’이 발표될 때까지 무명인 채로 ‘희망악극단’과 ‘무궁화악극단’ 그리고 ‘반도악극단’ 등을 옮겨가며 무대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는 사이 그의 가창력과 미모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지면서 뭇 남성들의 ‘흠모의 대상’이 된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가요차트 가수 위에 연기자?

    가요차트 가수 위에 연기자?

    올해 가요 인기차트는 연기자가 접수한다? 2007년 새해 초부터 연기자들의 노래가 가요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상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속에서 가수를 연기한 ‘연기자’ 김아중이 각종 온·오프라인 가요차트에서 1위를 석권하며 무섭게 질주하고, 다른 연기자들 또한 너도나도 정상 언저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 김아중이 영화 속에서 부른 ‘마리아’는 최근 벅스, 뮤즈,Mnet.com 등에서 집계한 온라인 인기가요 순위에서 한달째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기라성 같은 기존 가수들을 머쓱하게 하는 장면. 특히 음악전문사이트 벅스의 경우, 주간차트는 물론 앨범 차트 4주 연속 1위, 뮤직비디오 2주 연속 1위,MP3 다운로드 3주 연속 1위 등 각 부문 1위를 석권하며 이변을 이어가고 있다. 벅스의 한 관계자는 “가수 아닌 연기자가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전례가 없어 가요차트 역사상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싸이월드에서는 지난달 가장 많이 판매된 음악으로 선정됐다. 이 덕분에 ‘제6회 디지털 뮤직 어워드’에서 ‘이달의 노래(송 오브 더 먼스)’를 수상하기도 했다. 한때 가수로 데뷔하려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비록 음반취입 직전, 음반사가 문을 닫아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이런 아픈 기억이 있기에 ‘마리아’의 히트는 그에게 더욱 뜻 깊은 성공이라는 평가다. ‘마리아’는 미국의 펑크 록 밴드 ‘블론디’의 1999년 곡을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담당한 그룹 ‘러브홀릭’의 이재학이 다시 편곡한 것. 김아중에 이어 ‘국민동생’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문근영도 가요차트에 합세했다. 그가 선보인 노래는 ‘앤디자인(&Design)’이라는 신나는 댄스곡. 공개되자마자 순식간에 인기몰이를 하며 벅스차트 6위에 가뿐히 랭크됐다. 가수 조덕배의 노래 ‘나의 옛날 이야기’를 표절했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앨범발매 10일 만에 일일차트 1위는 물론, 인기앨범 차트 2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지현우와 이준기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MBC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뒤 ‘연기자’로 더 많은 인기를 누려왔던 ‘더 너츠’의 멤버 지현우는 2집 ‘위스퍼스 오브 러브(Whispers of Love)’의 타이틀곡 ‘잔소리’를 벅스차트 2위에 올리면서 ‘지현우 효과’를 확실히 보여줬다. 또 이효리와 입을 맞춰 랩을 선보인 이준기는 ‘애니스타(Anystar)’를 5위에 등극시키기도 했다. 일부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거대자본의 마케팅이 생산해낸 기능성, 화제성 음악들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음악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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