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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으로 흔들린 심상정...이번 주말 당내충돌?

    조국으로 흔들린 심상정...이번 주말 당내충돌?

    조국 법무부 장관 찬반을 두고 내홍이 있었던 정의당이 이번에는 경선제도를 두고 당내 충돌을 예고했다.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중앙당이 ‘총선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안건으로 내세웠지만 상당수 당원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 당 규모를 우선 키워 대중화시키고 싶은 심상정 대표와 진성당원제를 유지하고 싶은 당원이 격돌할 전망이다. 당원들이 심 대표에게 던지는 사실상의 중간평가라는 평가도 나온다.정의당은 오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5기 제1차 전국위원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국위원회가 주목받는 건 심 대표가 밀고 있는 ‘총선 개방형 경선제 도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지금까지 당원들이 직접 후보를 정하는 폐쇄형 경선방식을 채택해왔다. 새로운 경선 방식 도입에 대해 당원들의 이견이 갈리지만, 상당수의 당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일부 전국위원들은 해당 안건이 올라오면 반려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번 전국위에 참석할 예정인 한 정의당 관계자는 “개방형 경선제도 안건 때 논쟁이 아주 세게 붙을텐데 표결이 진행된다면 부결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안건을 올리지 못하고 다음번 전국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처럼 안건설명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이 안건 반려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당원들이 개방형 경선제에 반감이 큰 것은 오랜 기간 활동한 당내 정치 활동가들의 정계 진출을 차단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중적 진보정당 가치를 추구하는 당내 계파인 진보너머 등이 이에 찬성하고 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관계자는 “활동가들이 오랜 기간 활동한 끝에 당내에서 성장해 비례후보로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개방형 경선제를 통해 외부인사가 들어오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논란을 뚫고 개방형 경선제, 즉 오픈프라이머리를 채택하게 되면 정의당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지도부의 희망대로 인지도 높은 외부 인사가 비례 후보로 뛰어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당의 인지도와 대중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민주노동당 때부터 진성당원제를 유지하며 당관계자들이 정계로 진출했던 방식이 막히게 된다. 진보정당만의 선명성도 옅어질 수 있다. 정의당 지도부에서는 “개방형 경선방식을 도입하더라도 활동가들이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다”며 내부 반발을 잠재우려는 분위기다. 다만, 심 대표가 강하게 밀고 있는 개방형 비례전략이 좌초되면 리더십에도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조국 정국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전략까지 당원의 반발에 막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당대회의 개최 전까지의 최고의결기구로 당의 중요 사안에 관한 일상적 협의와 의결을 하는 역할을 한다. 정책과 당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실상의 최고 의결기구인 셈이다. 이번 전국위원회에는 심상정 대표와 윤소하 원내대표, 김종대·여영국·이정미·추혜선 의원 등이 참석한다. 시도별 전국위원과 중앙당 당연직·추천직 전국위원 74명도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이정수의 원픽] 늦여름 적신 청량함… 아이돌 밴드 아이즈

    [이정수의 원픽] 늦여름 적신 청량함… 아이돌 밴드 아이즈

    해마다 수백 명의 아이돌이 데뷔하지만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아이돌은 극히 소수에 그친다. 케이팝이 전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돌 음악을 평가절하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아이돌 음악 중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숨은 보석’을 찾아 4주마다 소개한다.가요팬들에게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갔다. 살인적인 무더위로 악명 높았던 지난해에 비하면 견딜 만한 여름이었지만, 시원한 여름 노래로 더위를 잊곤 하던 가요팬들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계절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봄부터 본격적으로 치솟은 음원 차트 내 발라드 점유율은 여름이 되자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차트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오마이걸, 위키미키, 레드벨벳 등 걸그룹 서머송이 늦여름을 장식했지만 예년 대비 여름을 겨냥한 노래가 유독 부족한 한철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뜻밖의 여름 노래 하나가 시원한 기운을 머금고 슬며시 등장했다. 걸그룹 아닌 보이그룹의, 댄스곡이 아닌 정통 록에 가까운 밴드 사운드. 바로 아이돌 밴드 아이즈(IZ)의 ‘너와의 추억은 항상 여름같아’다. 가장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마지막 여름에 비유한 가사가 청량한 기타 리프를 타고 전해진다. 시원하게 뻗는 보컬과 힘찬 드럼 비트가 마지막 남은 열기를 씻어 내는 듯하다. 보컬 지후, 드럼 우수, 기타 현준, 베이스 준영으로 이뤄진 4인조 밴드 아이즈는 2017년 8월 데뷔했다. 당시 평균 나이는 18세. 이들이 처음 선보인 ‘다해’는 작곡가 김도훈의 록발라드였고, 방시혁이 참여한 다음 앨범 타이틀곡 ‘엔젤’은 록 위에 전자음악과 랩이 뒤섞여 있었다. 밴드를 표방하지만 대중성을 최대한 잡으려는 고민이 혼재된 결과물이었다. 아이즈는 그 뒤 신인치고는 긴 1년간의 공백기를 거쳤다. 그 사이 멤버 모두 20대가 됐다. 지난 5월 발표한 싱글 타이틀곡 ‘에덴’에서 이들은 강렬한 기타 사운드를 앞세워 ‘아이돌’보다는 ‘밴드’로 무게를 옮긴 듯한 모습을 보여 줬고, 연작인 ‘너와의 추억은…’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주류 가요 시장에서 한동안 주춤했던 록이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다. 잔나비가 많은 사람의 ‘최고 애정’ 밴드로 떠올랐고, 엔플라잉이 깜짝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데이식스는 케이팝 대표 밴드로 자리잡고 있다. 아이즈는 그에 비하면 아직은 출발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아이돌 밴드다. 전문 프로듀서 의존도가 더 큰 단계다. 하지만 출발이 아이돌이었다고 한계가 정해져 있을 리는 없다. 이들의 가능성은 이제 막 빛을 내기 시작했을 뿐이다. tintin@seoul.co.kr
  • 더 몬스터, ‘유전’·‘미드소마’ 제작사 A24의 새로운 공포

    더 몬스터, ‘유전’·‘미드소마’ 제작사 A24의 새로운 공포

    영화 ‘더 몬스터’가 오는 9월 17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킬링디어’, ‘유전’, ‘미드소마’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영화들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할리우드 명 제작·배급사 A24의 새로운 공포 ‘더 몬스터’(감독 브라이언 버티노)가 메인 예고편을 최초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메인 예고편은 폭우가 쏟아지는 밤, 숲속 도로를 지나는 모녀 ‘캐시’와 ‘리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어 갑작스러운 사고로 도로 한복판에 고립되고 만 둘의 모습과 함께 엄마 ‘캐시’가 딸 ‘리지’에게 소리 내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모습은 앞으로 이들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또한, 숲속에서 폭우를 맞고 있는 딸 ‘리지’ 뒤로 서서히 드러나는 ‘그것’의 기괴한 모습은 등골을 서늘하게 하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올린다. 여기에 ‘원초적인 공포의 놀랄 만큼 훌륭한 전개!’(Variety), ‘손가락 틈 사이로도 쉽게 볼 수 없는 영화!’(New York Daily News), ‘고립된 공간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담아냈다!’(Hollywood Reporter) 등 ‘더 몬스터’에 쏟아진 해외 유명 매체들의 뜨거운 호평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메인 예고편을 공개하며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영화 ‘더 몬스터’. 숲속 한가운데에 자동차 사고로 고립된 모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만나며 벌어지는 충격적 사건을 그린 이번 작품은 오는 9월 17일 개봉 예정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아베, 강경우파 친위체제로 ‘전쟁가능 개헌’ 탄력… 한일관계 험난

    아베, 강경우파 친위체제로 ‘전쟁가능 개헌’ 탄력… 한일관계 험난

    개헌 숙원 위해 최측근 친위대 전면포진 反韓 인사 기용… 과거사 부정 열 올릴 듯 가와이 법무상, 징용 판결 망언 되풀이 다카이치 총무상 ‘무라야마 담화’ 부정도 고이즈미 前총리 38세 아들 환경상 임명 아소 부총리·스가 관방장관 등은 유임임기가 2년 남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겸 자민당 총재)가 강력한 힘을 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내각·당직 인사에서 최측근 친위대들을 전면에 포진시켰다. 헌법 개정이라는 숙원 달성을 위해 분위기를 다잡고 이를 실행할 인사들을 권부 핵심에 심었다. 그렇다 보니 극우 색채를 갖지 않은 인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한일 경제전쟁 와중에 반한 인사들의 전진배치도 우려되는 대목이다.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21일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했다. 원래 2연임까지밖에 못하게 돼 있는 것을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등이 나서 당헌을 고치는 무리수를 두며 밀어붙였다. 그렇다 보니 3연임 성공 직후인 지난해 10월 2일 내각 개편 때에는 자신의 성에 차는 인선을 하지 못했다. 총재 3연임을 하는 데 도움을 준 각 계파에 대해 논공행상 차원의 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11일 이뤄진 당정 인사는 아베 총리가 지난 1년간 별러온 자신만의 ‘친위체제 구축’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헌법을 고쳐 자위대를 명기함으로써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현행 평화헌법을 백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국주의 침략의 과거사를 부정하고 동시에 국제정치에서 영향력 등의 확대에 열을 올리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아베 총리에게 한일 관계는 언제든 희생시킬 수 있는 부차적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당정 개편은 철저하게 이런 목적에 특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극우성향 또는 과격한 언설로 물의를 빚었던 인물들이 대거 발탁된 것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문부과학상에 임명된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대행이다. 아베 총리에 대해 앞뒤 안 가리는 충성을 바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문부과학성 정무관 등을 지내면서 위안부 만행이나 난징대학살 등 과거사 부정과 일본의 우경화에 앞장서 왔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의 위패가 놓여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물론이고 위안부 만행에 사죄한 1993년 ‘고노 담화’도 부정했다. 법무상에 등용된 아베 총리의 측근 가와이 가쓰유키 자민당 총재외교특보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한국 전체에 ‘일본에 대해서는 무엇을 해도 다 용인된다’는 분위기가 판을 치고 있다”고 말하는 등 망언을 되풀이해 왔다. 총무상에 재기용된 다카이치 사나에(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했던 인물이다. 먼저 총무상 시절에는 정권에 비판적인 민영방송에 대해 사업허가 취소까지 들먹이며 위협하기도 했다. 영토담당상 등을 맡게 된 에토 세이이치 총리보좌관은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2013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미국이 실망했다는 메시지를 내자 “실망한 쪽은 오히려 우리”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등을 유임시킨 것은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개헌에 힘을 쏟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한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의 환경상 기용이 눈에 띈다.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는 전후 각료 가운데 남자로서는 최연소(38세) 기록을 세웠다. 대중성이 강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개헌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그는 종전일인 지난달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익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뮤지컬, 가을 물들이다

    뮤지컬, 가을 물들이다

    폭염도 지나가고 가을 공연 성수기를 맞은 뮤지컬 시장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명작들로 관객맞이에 나서고 있다. 공연 때마다 객석을 가득 채우는 스테디셀러 공연을 비롯해 흥행 빅카드로 무장한 기대작과 7년 만에 오리지널팀으로 한국 관객을 찾는 뮤지컬의 정점 ‘오페라의 유령’까지 놓치지 아까운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올 상반기 최고 화제작 ‘지킬앤하이드’는 이번 추석 연휴가 마지막 관람 기회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개막한 이후 창원,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인천 등 전국 11개 도시를 돌며 매진 행렬을 이어 갔다. 공연 기간 평균 객석점유율 98%, 전국투어 통산 33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한 시즌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썼다. 1886년 초판된 영국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사건’을 각색한 이 작품에는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민우혁, 전동석, 윤공주 등 국내 정상급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합류해 매 무대를 달궜다. 오는 15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진행되는 서울 앙코르 공연에는 민우혁과 전동석이 지킬·하이드 역을, 윤공주와 아이비, 해나가 루시 역을 맡았다. 추석 연휴 중 일부 공연은 20~30% 할인 가격으로 좌석을 제공한다.서울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객을 맞고 있는 ‘헤드윅’은 개막을 앞두고 터진 ‘주연 배우 교체’라는 악재를 딛고 흥행 가도에 올랐다. 2005년 국내 초연 이래 중·소극장 공연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운 ‘헤드윅’은 올해 공연을 앞두고 트랜스젠더 가수 헤드윅 역에 가수 강타를 캐스팅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갑작스런 사생활 논란으로 강타가 하차하고 2017년 원어 공연에서 헤드윅을 연기한 마이클 리가 긴급 투입됐다. 그럼에도 ‘헤드윅’은 냉전 시대 독일과 미국을 배경으로 성소수자(성전환)의 성장기를 다룬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장점과, 초연 배우 ‘오드윅’ 오만석을 비롯한 정문성, 윤소호, 전동석, 이규형, 마이클 리의 연기가 더해지며 공연마다 새로운 팬덤을 만들어 내고 있다.‘지킬앤하이드’가 상반기 최고 흥행작이었다면 하반기에는 ‘스위니토드’가 그 자리를 이미 예약했다. ‘지킬앤하이드’ 흥행을 이끈 국내 뮤지컬 흥행카드 ‘빅3’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가 비운의 이발사 ‘스위니토드’를 연기한다. 스위니토드에게 연정을 품은 ‘러빗 부인’ 역에는 옥주현과 김지현, 린아가 호흡을 맞춘다. 캐스팅 소식만으로 뮤지컬 최고의 기대작으로 오른 이 작품은 지난달 7일 1차 티켓오픈 2분 만에 전 좌석 매진을 기록했다. 다음달 2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해 2020년 1월 27일까지 서울 공연을 이어 간다.올해 뮤지컬계의 대미는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장식한다. 1986년 영국 런던 초연 이후 지금까지 37개국 172개 도시에서 1억 4500만 관객을 홀린 불멸의 명작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팀이 12월 부산을 찾는다.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은 2012년 25주년 기념공연 이후 7년 만이다. 12월 부산 드림씨어터 공연을 시작으로 내년 3월 서울 블루스퀘어, 7월 대구 계명아트센터 순으로 국내 뮤지컬 관객들을 만난다. 구체적인 캐스팅과 공연 일자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팬들이 12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인터뷰]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 “케이팝뿐 아니라 케이록도 알리고 싶어요”

    [인터뷰]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 “케이팝뿐 아니라 케이록도 알리고 싶어요”

    ‘진흙 묻은 장화를 신고/쌀쌀한 바람은 머리칼에 스치는데/나는 길고 긴 기찻길에 몸을 실어/당신을 기차에 태워 데려갈래요/황량하고 황량한 동부의 어딘가로’(‘와일드 이스트 블루스’ 중)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이 지난 2월 러시아 하바롭스크 공연에 맞춰 발표한 곡의 영어 가사 일부다.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하염없이 달리는 횡단열차가 떠오르는 노랫말이 기타 반주와 어우러진다. 중후하면서도 거친 느낌이 묻어 있는 이성수의 보컬이 쓸쓸한 분위기를 더한다. 해리빅버튼은 1980년 말부터 굵직한 록밴드 등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이성수를 주축으로 2011년 결성됐다. 이듬해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 밴드 2’(KBS2)에 출연해 대중성을 갖춘 음악과 빼어난 연주로 대중에게도 알려졌다. 이성수를 제외한 멤버 교체가 잦지만 ‘원맨밴드’로 불리는 것은 거부한다. 최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수는 “밴드 포맷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4인조나 5인조와 달리 꼭 필요한 악기들의 구성이 3인조다. 어떤 악기는 뒤에 있는 느낌 없이 각각의 소리를 명확하게 들려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리빅버튼은 새 멤버 유연식(드럼), 김인영(베이스)과 함께 오는 7일 또 한번 하바롭스크에서 공연한다. 앞서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지방뿐 아니라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서 공연하며 러시아에서 인기몰이 중이다.러시아에서의 인기는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몇 해 전 한 러시아 밴드가 이성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가 아는 한에서 정보를 주고 공연을 잡아 줬다. 그것을 인연으로 2017년 3월 하바롭스크 FNR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이어 8일간 러시아 투어로 확장했고, 이후 모두 여섯 차례 투어, 40회가량의 공연을 진행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무대로 뛰어들어요. 공연에서 열망을 솔직하게 표현하죠. 한번은 무대 위에서 튜닝을 하는데 관객 한 분이 올라와 포옹을 했어요. 그러자 수십명이 올라와서 난리가 났어요.” 이 장면을 두고 현지 매체에서는 “영화 ‘향수’를 보는 듯했다”고 표현했다. 인기 비결을 묻자 “러시아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가사라고 한다. 해리빅버튼의 시적인 가사가 갖고 있는 위트와 심플함, 긍정적인 에너지가 정서적으로 잘 맞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주로 가사를 영어로 쓰는 데는 “해외 팬들이 바로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이유로 댔다. 해리빅버튼은 러시아 밴드 ‘더 스타 킬러스’와 함께 부른 빅토르 최의 노래 ‘쿠쿠쉬카’ 뮤직비디오도 곧 공개한다. 국내 팬들이 기다리는 새 앨범은 연내 발매를 목표로 작업 중이다. 그는 “케이팝이나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한국에 다른 좋은 콘텐츠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눈을 빛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이번엔 ‘K인디’… PSY·BTS처럼 세계를 홀렸다

    이번엔 ‘K인디’… PSY·BTS처럼 세계를 홀렸다

    독특한 음악적 색깔로 세계 각국서 활동 오프라인 활동 외에 유튜브로 소통 확대 “한류 다양성 위해 정부·기업 지원 늘려야”케이팝이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인디음악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각자 뚜렷한 개성으로 무장한 인디밴드들이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세계를 누비며 한국 음악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전파한다. ●대중성과 인디 독창성 융합한 ‘아도이’ 4인조 혼성 신스팝 밴드 아도이는 국내에서 가장 핫한 인디밴드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17년 결성한 아도이는 ‘커머셜 인디’를 지향한다.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음악을 하면서도 동시에 인디가 지닌 독창성은 잃지 않겠다는 의미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부문 2년 연속 후보에 오르는 등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7월 2000여석의 예스24라이브홀에서 단독 공연을 열고 슈퍼루키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시아 곳곳에서도 인기를 끈다. 지난해 태국에서 ‘아도이 라이브 인 방콕’을 연 데 이어 싱가포르, 대만에서도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올해는 필리핀·베트남·대만에서 공연을 펼쳤고, 지난 5월 일본 최대 음악 채널인 스페이스샤워에서 2019년 가장 주목받을 신인 아티스트에 선정됐다. ●세계 3대 음악마켓 섭렵한 ‘로큰롤라디오’ ‘네오 사이키델릭 디스코’라는 장르를 개척한 로큰롤라디오는 세계 곳곳의 음악 페스티벌을 누비고 있다. 2011년부터 활동한 이들은 2014년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세계 3대 음악 마켓인 미국 SXSW와 프랑스 미뎀 무대에 섰다. 러시아 V-ROX, 독일 리퍼반 페스티벌, 중국 스트로베리 페스티벌 등에 진출해 현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CJ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아지트라이브’에 올라온 ‘테이크 미 홈’ 라이브 영상은 100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남미를 비롯한 전 세계 팬들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팝 거장 엘턴 존도 엄지 척 ‘세이수미 ’ 2012년 부산 광안리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 세이수미는 영미팝 거장 엘턴 존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엘턴 존은 개인 팟캐스트에서 세이수미의 음악을 소개하며 “끝내준다. 아주 마음에 든다”고 치켜세웠다. 1960년대 서프록과 1990년대 인디팝을 섞은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 밴드는 미국 SXSW, 영국 글래스고, 네덜란드 파라디소 등 음악 팬들에게 최고로 꼽히는 무대에 섰고, 올해도 전 세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하드록으로 러시아서 인기 ‘해리빅버튼’ 3인조 포스트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은 러시아에서 특히 사랑받는다. 2011년 데뷔한 이래 강렬한 기타 리프와 그루브한 리듬, 중저음의 깊은 보컬을 통해 하드록을 구현하는 독보적인 밴드로 평가받았다. 러시아 웹진 ‘FNR 페스트’는 “그들의 퍼포먼스는 한마디로 허리케인”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전통 국악 가락을 가미한 퓨전 밴드 고래야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는 역할을 한다. 대금, 소금, 퉁소, 퍼커션, 기타 등 악기가 전통과 트렌드를 조화시키는 이들의 음악은 국내외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2010년 데뷔 이후 전 세계 30여개국에서 공연했다. 2016년에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서머스테이지에 올랐고,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 샤르자월드뮤직페스티벌에 초청돼 중동에도 한국 음악을 전파했다. ●전통 악기와 국악 접목한 퓨전밴드 ‘고래야’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튠업을 통해 아도이 등 인디뮤지션들의 활동을 후원하는 CJ문화재단의 이상준 사무국장은 “그들만의 음악적 색깔을 품은 인디밴드들이 케이팝의 한 분야를 구축하면서 해외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인디뮤지션들의 활동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한류 다양성 확보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인터뷰]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 “케이팝 아닌 한국 음악도 알리고 싶어요”

    [인터뷰]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 “케이팝 아닌 한국 음악도 알리고 싶어요”

    ‘진흙 묻은 장화를 신고/쌀쌀한 바람은 머리칼에 스치는데/나는 길고 긴 기찻길에 몸을 실어/당신을 기차에 태워 데려갈래요/황량하고 황량한 동부의 어딘가로’(‘와일드 이스트 블루스’ 중) 하드록밴드 해리빅버튼이 지난 2월 러시아 하바롭스크 공연에 맞춰 발표한 곡의 영어 가사 일부다.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하염없이 달리는 횡단열차가 떠오르는 노랫말이 기타 반주와 어우러진다. 중후하면서도 거친 느낌이 묻어 있는 이성수의 보컬이 쓸쓸한 분위기를 더한다. 해리빅버튼은 1980년 말부터 굵직한 록밴드 등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이성수를 주축으로 2011년 결성됐다. 이듬해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 밴드 2’(KBS2)에 출연해 대중성을 갖춘 음악과 빼어난 연주로 대중에게도 알려졌다. 이성수를 제외한 멤버 교체가 잦지만 ‘원맨밴드’로 불리는 것은 거부한다. 최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수는 “밴드 포맷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4인조나 5인조와 달리 꼭 필요한 악기들의 구성이 3인조다. 어떤 악기는 뒤에 있는 느낌 없이 각각의 소리를 명확하게 들려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리빅버튼은 새 멤버 유연식(드럼), 김인영(베이스)과 함께 오는 7일 또 한번 하바롭스크에서 공연한다. 앞서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지방뿐 아니라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서 공연하며 러시아에서 인기몰이 중이다.러시아에서의 인기는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몇 해 전 한 러시아 밴드가 이성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가 아는 한에서 정보를 주고 공연을 잡아 줬다. 그것을 인연으로 2017년 3월 하바롭스크 FNR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이어 8일간 러시아 투어로 확장했고, 이후 모두 여섯 차례 투어, 40회가량의 공연을 진행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무대로 뛰어들어요. 공연에서 열망을 솔직하게 표현하죠. 한번은 무대 위에서 튜닝을 하는데 관객 한 분이 올라와 포옹을 했어요. 그러자 수십명이 올라와서 난리가 났어요.” 이 장면을 두고 현지 매체에서는 “영화 ‘향수’를 보는 듯했다”고 표현했다. 인기 비결을 묻자 “러시아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가사라고 한다. 해리빅버튼의 시적인 가사가 갖고 있는 위트와 심플함, 긍정적인 에너지가 정서적으로 잘 맞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주로 가사를 영어로 쓰는 데는 “해외 팬들이 바로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이유로 댔다. 해리빅버튼은 러시아 밴드 ‘더 스타 킬러스’와 함께 부른 빅토르 최의 노래 ‘푸시카’ 뮤직비디오도 곧 공개한다. 국내 팬들이 기다리는 새 앨범은 연내 발매를 목표로 작업 중이다. 그는 “케이팝이나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한국에 다른 좋은 콘텐츠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눈을 빛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전쟁의 상처 안고 살아가는 60년대 ‘인간 군상’을 엿보다

    전쟁의 상처 안고 살아가는 60년대 ‘인간 군상’을 엿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8회 서울의 영화3(이만희 감독의 귀로)’ 편이 지난 24일 중구 정동과 서소문동 그리고 서울역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의 마지막 다섯 번째 순서였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 5시 집결지인 시청역 2번 출구에서 출발했다. 먼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정동 전망대에 올라 영화의 주요 무대 중 한 곳인 정동과 덕수궁 일대를 조망했다. 이어 정동제일교회~배재학당역사박물관~고려삼계탕~시위병영 터~호암아트홀을 차례로 둘러봤다. 가톨릭 성지로 거듭난 서소문역사공원은 칠패시장과 만초천, 처형장의 옛 흔적을 품은 곳이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서울역의 황혼을 지켜본 뒤 서울역 광장에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무형유산인 영화 귀로와 유형유산인 고려삼계탕, 서울역 고가도로, 서울역 광장 등 모두 4곳이었다. 해설을 맡은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영화의 주요 현장에서 영화보다 더 재미난 영화 이야기를 들려줬다. 참석자들은 흥미진진한 60년대 미스터리 멜로드라마에 숨을 죽였다.한국영화사의 거장 이만희(1931~1975) 감독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쟁이었다. ‘인간 이만희’의 삶은 온통 전쟁이 지배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에 참전, 통신병으로 5년간 복무한 그는 “내가 가진 기억은 군대와 영화밖에 없다”,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으면 직업군인으로 살았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연출작 51편 중 11편이 전쟁영화였으며 멜로물에도 전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켰다. 소설가 김승옥은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나자 “당신은 포탄 속을 묵묵히 전진하는 병사들 편이었고, 좌절을 알면서도 인간의 길을 가는 연인들 편이었고 그리고 폭력이 미워 강한 힘을 길러야 했던 젊은이의 편이었다”는 압축적인 헌사를 묘비명으로 바쳤다. 전쟁영화 감독 역이 가장 앞에 놓인 것처럼 그의 영화에 담긴 휴머니즘, 시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해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는 모두 전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흔히 대표작으로 ‘마의 계단’(1964), ‘만추’(1966), ‘귀로’(1967), ‘휴일’(1968) 등을 꼽지만 그의 진정한 대표작은 1963년 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다. 이 전쟁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그는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됐다. 이만희 감독은 한국영화의 전성기인 1960년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시킨 인물이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가 개발한 기존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재해석했고, 대사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과 분위기로 영화를 느끼게 했다. 전쟁영화도, 멜로드라마도, 액션스릴러도, 시대극도 자신의 스타일로 창조한 스타일리스트였다.이만희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1960년대 한국영화를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대중 지향의 장르영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미학과 예술성을 개척했다. 영화 ‘귀로’는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눕게 된 남편(김진규 분)을 돌보던 아내 지연(문정숙 분)의 망설임과 선택에 관한 영화다. ‘가부장제 현실과 자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실존적 고투를 벌이는 여성 캐릭터’라고 평가할 만하다. 영화는 우연히 알게 된 젊은 남자와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심리와 도시의 풍경이 맞물린 감각적인 멜로드라마다. 이상과 현실, 권태와 욕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한 여인의 몸부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육교, 가로등, 거리의 시계, 서울역 광장을 통해 여주인공의 결핍과 욕망을 대사 없이 상징적으로 화면에 담았다. 영화에는 남편이 있는 이층 방으로 연결되는 계단, 연인과 함께 밤을 보내는 여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리고 언덕 위에 있는 성당까지 이어진 돌계단 등 세 종류의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들은 욕망과 죽음 혹은 구원과 파멸을 은유한다. 또한 이 계단들은 삶과 죽음, 허상과 실상을 구획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허상의 삶 너머에는 아득한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 계단 숏들의 미세한 변주는 지연의 심리 변화와 이 부부의 관계 변화를 암시한다. 그리고 이 계단 전후에 반복되는 사건들이 배치된다. 반복과 차이의 구조는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기차역에서 신문사로 가는 길에 나오는 건널목에서는 기차가 지나가고, 육교를 걸을 때 대형 시계가 보인다. 또 핸드백은 이별을 예감하게 한다.1960년대 후반 서울의 모습이 영화를 통해 인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고가와 육교 그리고 지하도는 1960년대 후반 서울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 건조물들이다. 이 시기 도로와 교량 건설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서울은 차량을 위한 도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아현고가도로는 준공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도심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은 외곽으로 쫓겨났다.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타고 싶지만 막상 타고 보면 답답하다”고 여주인공은 말한다. ‘귀로’에서 여주인공은 남편의 심부름으로 ‘잔설’이라는 제목의 신문 연재소설 원고를 신문사에 전달하기 위해 경인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역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이동하기 위해 스쳐 가는 곳이다. 남편의 소설 원고를 신문사에 전달하기 위한 주기적인 외출이 그녀를 숨 쉬게 한다. 그녀는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기차를 타고 신문사로 간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외출은 그녀에게 ‘짧은 여행’이다. 기차는 한 장소와 다른 장소를 연결한다. 인천과 서울을 왕복하는 지연의 동선은 세 번에 걸쳐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기본적으로 그녀의 동선은 기차~서울역~육교~신문사로 이어지고 돌아오는 길은 그 역순이다. 이 동선에 남산 야외음악당과 서울역 근처의 성당을 산책하는 것이 가끔 낄 뿐이다. 그녀는 서울의 거리를 걷는 여성 산책자다. 그녀의 집은 정주의 공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속에 사로잡힌 폐쇄의 공간일 뿐이다. 서울 나들이는 실존의 이유를 찾는 여정이다. 그녀는 존재는 도시의 군중 속에 있다. 서울 도심의 유일한 철도건널목인 서소문건널목은 하루 평균 560회가량 열차가 지나다니는 전국 통행량 1위 건널목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전통적인 처형장이었지만 천주교 역사에서는 순교성지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수많은 순교자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한국 교회의 단일 순교지로는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곳이다.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를 배출한 국내 최대이자 세계적인 성지다.남대문과 서대문 사이 서소문은 도성과 마포, 용산을 잇는 관문이자 조선시대 1번 국도인 의주를 잇는 중요한 문이었다. 서소문과 그 서쪽 약현 사이 저지대를 가르며 안산과 인왕산에서 발원한 만초천이 한강으로 흘렀는데 그 유역을 따라 시가지가 발달했다. 군자창, 만리창 등 관영창고가 위치했고, 칠패시장과 소의문 밖 시장이 서로 이어졌다. 종로시전, 이현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을 형성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우리나라 왕성 5부 안의 애오개는 서강으로 가는 길이고, 약고개는 용산으로 가는 길로서 곡물이 폭주하고 수레가 부딪치고 사람이 어깨를 부딪는 곳”이라며 번잡한 시가지로 묘사했다. ‘귀로’의 여주인공이 서울역에서 세종로 신문사로 가는 길에 건넜던 그 서소문건널목에는 아직도 사람과 열차가 분주하게 지나다닌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차 망우리 ■일시 및 집결장소: 8월 31일(토) 오전10시, 망우역 1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미래유산 톡톡] 서울역·거리… 한국영화 대중성 기여한 ‘귀로’

    [미래유산 톡톡] 서울역·거리… 한국영화 대중성 기여한 ‘귀로’

    1967년 개봉한 이만희 감독의 ‘귀로’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표상을 내면화한 작품으로 1950~1960년대 신문매체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 주는 멜로영화다. 한국영화의 전성기에 특히 인기가 높았던 멜로드라마는 신문소설을 원천으로 한국영화의 대중성에 기여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한국전쟁 때 성불구자가 된 남자 주인공 동우(김진규 분)가 자신과 아내인 지연(문정숙 분)의 사생활을 신문소설로 연재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지연과 돌아가야만 하는 지연의 갈등 구조로, 서울역이 장소의 중심에 있다. 신문 연재소설을 신문사에 전달하기 위해 경인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지연은 고가, 육교, 지하도를 거치며 신문사로 향한다. 똑같은 코스를 역으로 밟아 다시 서울역까지 도착한 지연의 동선에는 정확한 시간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지연은 서울 나들이에서 실존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 지연은 소설가 남편과 익명의 대중으로부터 이중 감시를 받는 대상이다. 지연은 자신을 테두리 안에 가두려는 동우와 그 틀을 깨고 나오기를 원하는 대중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또 한편 ‘이상이 없는 세상에 이상을 심어 준다’는 평가에 휘둘리는 자신을 자조적으로 바라본다. 영화 ‘귀로’는 이러한 내러티브에 “독자의 흥미와 모든 관심은 그 여인의 행동에 쏠려 있는 겁니다”, “여인의 자세에 벌써 변화가 왔어야 하는 거죠” 등 신문사 부장의 말을 빌려 오히려 당대의 고전적인 시각보다 인간다움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탈(脫)고전적인 관점을 언급한다. 지연은 자신에게 첫눈에 반한 신문기자 강욱(김정철 분)과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정원 한편에서 자신과 동일시하며 키우던 개가 동우의 총에 맞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지연은 여느 때와 같이 동우가 있는 2층 계단을 오른다. ‘귀로’ 속의 계단은 삶과 죽음, 구원과 파멸, 욕망과 죽음으로 대변된다. 지연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는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피동적 인물을 스스로 없앤다는 상징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태평소 비트X라틴풍 리듬 ‘날라리’… ‘선미팝’은 달랐다

    태평소 비트X라틴풍 리듬 ‘날라리’… ‘선미팝’은 달랐다

    “결국은 제 이야기 같아요. 나비가 번데기를 벗고 날아오르듯 성장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거죠.” 가수 선미(27·본명 이선미)가 새 싱글 ‘날라리’(LALALAY)를 내고 아티스트로서 또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미는 27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예스24라이브홀에서 새 싱글 발매 쇼케이스를 열고 신곡 ‘날라리’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진과 나눴다. 그동안 여러 자작곡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선보였던 선미는 이번에도 작곡에 참여하는 동시에 작사를 전담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았다. “발랄하고 발칙한, 밝은 분위기의 곡”이라고 소개한 선미는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하다”며 웃었다.그의 첫 월드 투어 ‘워닝’ 중 멕시코 공연을 하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곡 작업이 시작됐다. “멕시코에서 팬들이 흥에 넘쳐 공연과 하나 되는 것에 감동했어요. 호텔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우리나라도 흥의 민족이라 생각하자 ‘날라리‘라는 단어가 스쳤어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태평소란 뜻도 있었고, 공동작곡가에게 ‘다음 곡은 태평소 비트야’라고 말했죠.” 댄스홀과 라틴풍 리듬의 이국적인 사운드가 긴장감을 주면서 전개되는 가운데 시원한 가사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국악기인 태평소 가락이 펼쳐지면서 이국적인 분위기 위에 한국 고유의 색이 입혀지는 것이 독특하다. 태평소 연주자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인디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다. ‘날라리’는 시각적으로는 나비로 형상화된다. 뮤직비디오에는 다양한 표정을 짓는 선미 주위로 화려한 빛깔의 나비가 날아다닌다. 후렴구에서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빙빙 돌리는 안무도 인상적이다. “태평소를 떠올리니 상모를 돌리는 풍물놀이가 생각났어요. 거기에서 나비가 연상돼 가사를 썼어요. ‘과거에 얽맨 껍데기를 벗고 내 향기를 남길 테니 나를 따라와 달라’는 의미예요.”선미는 원더걸스 해체 후 솔로 가수로서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쌓아왔다. 팬들의 그만의 색이 짙이 음악을 일컬어 ‘선미 팝’으로 부르기도 한다. 변화와 유지 사이에 고민을 없을까. 선미는 “항상 말씀드리는 건 대중성과 아티스트 본인의 색 중간점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하고 싶으면 회사에 있는 팀들에게 곡을 써 가져가서 물어본다. 그러면 변화해야 하는 단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날라리’가 변화의 순간이었다”고 답했다. 선미는 지난 6개월간 전 세계 18개국을 도는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케이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가운데 처음으로 일군 성과다. 선미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 중 처음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영광”이라며 “사실 처음엔 무서웠다. 팬미팅 규모가 아니라 1시간 30분짜리 공연이었다. 부담감이 막중했는데 막상해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색깔, 눈 색깔, 언어가 다른 이들이 한국말로 노래를 불러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더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선미는 쇼케이스를 마치며 “앞으로 더 성장하는 선미가 되겠다”는 굳은 약속을 했다. “앞으로도 제 색깔을 담은 음악을 계속할 것”이라는 아티스트로서의 포부와 함께.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톨스토이도 한강도 ‘장르문학’으로 읽다

    톨스토이도 한강도 ‘장르문학’으로 읽다

    스릴러,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추리, 과학소설(SF) 등을 통칭하는 장르소설 인기가 상한가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2015년부터 최근 5년간 1~7월 소설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장르소설 판매량은 약 25만 7000권으로 예스24 집계 사상 최다 판매량이다. ‘장르문학 산책’(소명출판)은 일찍이 장르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조성면 문학평론가의 짧은 평론 111편을 모은 책이다. SF와 판타지, 무협, 연애, 공포,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문학 전반을 망라한다. 한국 근대문학 100년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주요 작품을 아우르며 삼국지와 북한의 문학, 톨스토이와 햄릿, 한강, 김영하 등의 작품도 장르문학의 맥락에서 읽어낸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소설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 비결에 대해 논한 점도 흥미롭다. 그는 게이고의 소설에 대해 “인간의 얼굴을 한 추리소설”이라며 “쉽고, 잘 읽힌다. 기괴하고 엽기적인 스토리에 복잡한 트릭으로 독자들을 들볶지 않는다. 편안하고 감동적이다”(283쪽)고 했다. 조 평론가는 모바일게임·영화·웹툰 등 다양한 현대의 서사체 속에서 여전히 문학이 대중의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은 고전 순문학과 함께 대중성과 공감 주술력을 지닌 장르문학 덕택이라고 말한다. 이어 “장르문학을 배제하는 정전(正典)의 배타성과 엘리트주의는 지양, 극복되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르문학 진영도 정전의 한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위대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47쪽)고 강조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불황 시대’ 접어든 1970년대… 한줄기 빛 비춰준 ‘영상시대’

    ‘불황 시대’ 접어든 1970년대… 한줄기 빛 비춰준 ‘영상시대’

    197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는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제작사들은 외화 수입 쿼터를 받기 위해 저예산 제작으로 작품 수를 늘리는 데 치중했고, 그 자리는 호스티스영화와 국적 불명의 무협액션영화가 채워 갔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자 관객들도 멀어졌다.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외국영화 상영편수를 한참 앞섰지만 관람객도, 상영일수도 외화 쪽이 2배 이상 많았다. 영화에 대한 당국의 규제도 강화됐다. 영화, 음반, 공연 등을 심의하던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의 기록을 보면 영화 시나리오 사전 심의 결과 1974년 41% 수준이던 수정·반려 비율이 1975년에는 80%에 이를 정도였다. 1970년대 한국영화가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 낸 것은 1960년대의 대표적인 감독들과 ‘영상시대’ 동인들 덕분이었다.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정진우가 각각 ‘장마’(1979), ‘야행’(1977), ‘삼포 가는 길’(1975), ‘심봤다’(1979) 등을 내놓으며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이와 함께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홍파, 이원세 등 영상시대 동인들의 작품이 또 다른 축을 버텨 냈다. 바로 그 중심에 하길종과 그의 세 번째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이 있었다.●뉴웨이브의 기수 하길종 1941년 4월 부산에서 태어난 하길종은 1959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했고, 이듬해 데모대의 최전선에서 4·19 혁명을 겪었다. 문학 활동을 했지만 후배 김승옥 등에 비해 주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졸업 후 프랑스 항공사에 입사, 미국 유학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1965년 UCLA 영화과 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영화학으로 MA(이론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저항운동과 청년 문화가 주도하는 변혁의 시기였고, 특히 그가 미국에 도착한 1960년대 중반은 미국영화의 뉴웨이브, 즉 ‘뉴 아메리칸 시네마’가 태동한 때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아서 펜, 1967), ‘졸업’(마이크 니컬스, 1967), ‘이지 라이더’(데니스 호퍼, 1969) 같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이 정치적으로 또 영화미학적으로 영화감독 하길종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음은 분명해 보인다.이러한 문화적 자산에도 불구하고 1970년 한국에 돌아온 하길종의 감독 데뷔는 순탄하지 않았다. 김지하와 야심 차게 개발한 시나리오 ‘태인전쟁’은 제작에 들어가지 못했고, 이효석 원작을 동생 하명중이 각색한 ‘화분’ 촬영도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 1972년 ‘화분’을 데뷔작으로 완성했지만, 파악하기 힘든 이야기와 ‘푸른 집’으로 표현된 정치적 알레고리는 대중적인 호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시나리오들 역시 대중성 부족과 검열 문제로 좌초되면서 하길종은 영화계를 떠날 결심까지 하게 된다. 최대한 현실과 타협해 만든 두 번째 작품 ‘수절’(1974)이 어렵게 공개됐지만, 역시 좋은 흥행 성적을 얻지 못했다. 검열로 20분 이상 삭제된 데다 난해한 미학적 실험도 여전했기 때문이다. 충무로 영화계에서 하길종의 존재감은 세 번째 연출작 ‘바보들의 행진’으로 입증됐다. 1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과 평단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미국 유학파 출신 감독을 기대 반 시기 반으로 지켜보던 영화계 동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하길종 본인은 상업적 성공에 양가적인 기분이었던 것 같다. 당시 기사들에 의하면 그 역시 언론의 관심과 흥행 성공에 매우 흡족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성사에서 연 시사가 끝난 후 김수용 감독이 드디어 대중적 방향감각을 찾았다고 칭찬하자 하길종이 크게 화를 냈다는 일화 역시 존재한다. 이 영화는 그에게 어떤 작품이었을까. 물론 영화의 성공은 하길종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지만, 당대 청년들의 감수성을 읽어 내는 데 탁월했던 최고의 인기 작가 최인호의 원작에 기댄 점도 그의 심정을 복잡하게 했을 것이다. 또 당국의 검열로 인해 117분의 영화가 최종 99분 분량의 작품으로 공개됐지만, 청년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혹은 스스로 행간을 메우며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금도 한국영화 10선으로 선정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고 하길종의 대표작임에 분명하지만, 정작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분’을 대표작으로 뽑았던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영화가 성공한 그해 하길종은 ‘영상시대’ 동인이 됐고, 서울예전 영화과 교수로도 부임하게 된다. 이후 그는 ‘여자를 찾습니다’(1976)와 개봉조차 하지 못한 ‘한네의 승천’(1977)으로 주춤했다가, ‘속 별들의 고향’(1978, 32만)과 ‘병태와 영자’(1979, 18만)로 다시 흥행력을 입증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세 작품 모두 최인호의 원작과 시나리오라는 점은 서구의 ‘뉴시네마’라는 이상과 통속적 대중문화라는 현실 사이에 놓인 하길종의 복잡한 고민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는 1979년 2월 38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검열의 상처를 안고 태어난 한국의 ‘뉴시네마’ ‘바보들의 행진’은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를 복기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병영을 방불케 하는 규율사회의 무거운 공기와 청년들의 건강한 저항 정신이 부딪치는 파열음을 영화 그 자체에 오롯이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검열 과정을 살펴보자. 1974년 11월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에 처음 접수된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1975년 1월 말까지 진행된 사전 심의에서 시나리오 곳곳에 개작과 삭제 통보를 받았고, 하길종은 그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두 달간 촬영을 진행했다. 물론 군데군데 삭제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일단 신 전체를 촬영했을 것이고 머릿속에만 있는 장면도 더 찍었을 것이다. 완성된 영화는 4월 초 본편 심의에 들어갔는데, 다시 15군데의 삭제와 단축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4월 3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49일 동안 1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검열에 시달린 감독으로서는 예상조차 하지 못한 히트였던 것이다. 더구나 당국은 이 작품에 우수영화라는 타이틀까지 부여해 1970년대 대중문화 장의 아이러니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영화는 대학생들의 밝은 에너지가 발산하는 경쾌한 분위기와 시대의 공기에서 포착되는 암울한 정서를 오가며 매우 ‘파편적’으로 진행된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 사항을 반영해 만든 영화가 다시 20분 이상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하길종은 검열로 잘려 나간 영화를 어떻게든 살려 내기 위해 신을 흩트리고 다시 배치하는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대항 술마시기 대회 장면 이후 후반부는 영화의 리듬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결국 불균질한 텍스트로 남게 된다. 아마도 하길종은 검열의 흔적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는 개봉 때의 99분 버전보다 2분 29초가량 더 살아 있는 102분 버전(블루레이 출시본)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네거티브(원본)필름 자체에서 삭제된 15분 정도의 분량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바보들의 행진’이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비롯한 서구 뉴웨이브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당대 청년 문화를 직접적인 소재로 선택한 영화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다큐적 질감을 택하고, 투박하지만 인상적인 숏 배열을 선보인다. 특히 과감하게 줌을 쓰는 장면들이 그렇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에서 기성곡을 영화음악으로 활용하며 뮤직비디오 시퀀스를 만든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 ‘고래사냥’, ‘날이 갈수록’을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해 영화의 이미지와 합일하는 인상적인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날이 갈수록’은 영화가 엔딩을 준비하면서 흘러나온다. 무기한 휴강이 결정된 캠퍼스에서 “들립니까”라는 처절한 외침이 들리고 병태(윤문섭)는 구역질을 하는 듯 괴로워 보인다. 그리고 예쁜 고래를 잡겠다고 버릇처럼 얘기하던 영철(하재영)은 자전거를 타고 동해로 떠난다. ‘고래사냥’이 힘차게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영철은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영화의 마지막 신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뽑힌다. 입대를 선택한 병태는 머리를 깎고 입영열차에 타고 있고, 영자(이영옥)가 플랫폼으로 뛰어와 그를 찾아낸다.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 병태에게 영자가 키스하려 하고, 낭만적이게도 헌병이 그녀를 들어 키스를 도와준다. 심의 대본의 “입술을 맞추는 영자, 말리는 헌병”이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의 폭력과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온몸으로 새긴 영화는 이렇게 당대의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버스킹 콘서트 공연자 공개 모집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버스킹 콘서트 공연자 공개 모집

    산림청 산하기관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주말 버스킹 콘스트 공연자 및 단체를 모집한다고 7일 밝혔다.기간은 8월부터 상시이며, 분야는 악기연주, 국악, 노래, 춤 등 제한이 없다. 선정은 공연계획서와 활동 실적 등을 바탕으로 대중성·적합성·작품성 등을 기준으로 심사로 이뤄지며, 수목원은 공연에 필요한 무대·음향시설, 소정의 공연료를 지급할 예정이다. 공연자 모집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홈페이지(www.bdna.or.kr)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수목원은 방문객과 지역민에게 문화 향유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달부터 10월까지 수목원 내에서 주말 버스킹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관계자는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많은 공연자 및 단체의 신청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봉화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車·車·車] 호날두와 함께 달려요… 지프, 공격적 마케팅

    [車·車·車] 호날두와 함께 달려요… 지프, 공격적 마케팅

    원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지프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1월 수입 SUV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지난 6월에는 전체 수입차 브랜드 순위에서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뉴 체로키 디젤’, ‘올 뉴 컴패스 디젤’, ‘올 뉴 랭글러’ 등 라인업을 넓히고 대중성을 확보한 결과다. 지프는 하반기에도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 세계적인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소속된 이탈리아 축구 명문 ‘유벤투스’와 스폰서십을 맺었다.
  • 기생충, 올해 네 번째 1000만

    기생충, 올해 네 번째 1000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개봉 5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로는 19번째, 외화를 포함하면 26번째 1000만 영화다.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는 ‘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에 이은 네 번째다. 봉 감독 영화 중에는 ‘괴물’(2006)에 이어 두 번째다.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기생충’은 지난 21일 누적 관객 1000만 249명을 기록했다. 지난주 평일 관람객이 1만명을 밑돌았지만 20~21일 주말 이틀 동안 2만 3435명을 동원해 가까스로 1000만명의 벽을 넘었다. 봉 감독은 “관객의 넘치는 큰 사랑을 개봉 이후 매일같이 받아 왔다고 생각한다.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연배우 송강호도 “우리 관객들의 한국영화에 대한 자긍심과 깊은 애정의 결과여서 영광스럽다”고 배급사인 CJ ENM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영화는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봉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로 풀면서,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봉 직전 한국영화 최초로 프랑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정지욱 영화 평론가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갖춘 영화로, 칸 영화제 수상은 봉 감독 개인의 성취인 동시에 한국영화 전체의 성장을 상징하는 쾌거”라며 “외국 필름마켓에서 한국영화의 파워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정 평론가는 “초반 이슈몰이에 과하게 몰두하면서 스크린 독과점제의 폐해도 극명하게 보여 줬다”고 꼬집었다. 영화는 개봉 초반 전체 스크린 수를 30% 넘게 장악했지만 ‘알라딘’의 인기에 추격당하고 이번 달 2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개봉 이후 ‘뒷심’이 달리는 모양새를 보였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개봉 직전인 지난달 29일과 30일에는 일 관객수 80만명, 76만명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지난 2일엔 18만명으로 급격히 관객이 줄었고 이후에는 하락세가 눈에 띌 정도였다. 정 평론가는 “배급사가 초반 스크린 수를 줄이고 장기 상영을 꾀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배급사인 CJ ENM은 이번 영화로 7번째, 특히 올해에만 ‘극한직업´에 이어 두 번째 1000만 영화를 배출했다. 황금종려상 수상에 힘입어 22일 기준 판권을 산 나라가 203개국에 이른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5일 개봉 이래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 됐으며, 베트남에서는 상영 첫 주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는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흥행 1위를 달성하는 등 개봉한 나라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곧 미얀마와 태국, 필리핀에 이어 올해 안에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등 모두 20개 나라에서 순차적으로 개봉한다. 윤인호 CJ ENM 팀장은 “203개 국가 판권 판매는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의 기록”이라며 “외국 개봉 이후 성적도 좋아 일정 관객을 넘어서면 수익 분배도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태원 클라쓰’ 박서준-김다미-유재명, 연기 천재들의 만남 “설렘과 부담”

    ‘이태원 클라쓰’ 박서준-김다미-유재명, 연기 천재들의 만남 “설렘과 부담”

    ‘이태원 클라쓰’가 박서준, 김다미, 유재명의 클래스 다른 퍼펙트 라인업을 완성했다. ‘초콜릿’ 후속으로 방송되는 JTBC 새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연출 김성윤, 극본 조광진, 제작 쇼박스·지음, 원작 다음웹툰 ‘이태원 클라쓰’)가 박서준, 김다미, 유재명의 파격적인 만남을 성사시키며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동명의 다음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태원 클라쓰’는 불합리한 세상 속, 고집과 객기로 뭉친 청춘들의 ‘힙’한 반란을 그린 작품. 세계를 압축해 놓은 듯한 이태원의 작은 거리에서 각자의 가치관으로 자유를 쫓는 그들의 창업 신화가 펼쳐진다. 인기 웹툰 ‘이태원 클라쓰’(글/그림 조광진)는 2017년 연재를 시작해 누적 조회 수가 2억 2천에 빛나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 다음웹툰 역대 미리보기 결제 매출 1위, 평점 9.9를 기록하며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누렸던 화제작으로 드라마 제작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가상 캐스팅’이 연이어 화제가 되는 등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태원 클라쓰’가 특히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원작을 탄생시킨 조광진 작가가 직접 드라마 집필을 맡았기 때문. 원작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이야기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어줄 원작자의 의기투합은 드라마 팬뿐만 아니라 웹툰 마니아들의 기대 심리를 더욱 증폭시킨다. 여기에 탄탄한 연기 내공을 가진 배우들까지 합류해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뜨겁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박새로이’ 역은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박서준이 연기한다. 박새로이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직진 청년.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를 안고 입성한 이태원 거리에서 새로운 꿈의 도전을 시작하는 인물이며, 요식업계의 대기업 ‘장가’를 향한 거침없는 반격으로 통쾌한 사이다를 선사한다. 박서준은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쌈 마이웨이’, 영화 ‘청년경찰’ 등 드라마와 스크린을 오가며 출연하는 작품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놀라운 흥행력을 과시해왔다. 패기 넘치는 청춘의 얼굴부터 여심을 녹이는 ‘로코킹’에 이르기까지 한계 없는 변신을 이어온 그가 또 한 번 ‘인생캐’ 경신에 나선다. 이미 작품에 대한 뛰어난 안목으로 흥행불패의 신화를 써온 박서준의 선택이 믿음을 더한다. 박서준은 “박새로이는 소신을 지키면서 매 순간 노력하는 우직한 인물이다. 원작을 보신 많은 분들의 인생 캐릭터로 꼽히기 때문에 부담도 크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라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이태원 클라쓰’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도전과 성장은 시청자 여러분들께도 많은 공감과 응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좋은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라고 남다른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신이 내린 두뇌를 장착한 ‘고지능’ 소시오패스 조이서 역은 유니크한 매력의 김다미가 맡는다. SNS 스타이자 파워블로거로 유명한 조이서는 천사 같은 얼굴에 반전의 성격을 가진 인물. 악연처럼 시작된 인연으로 박새로이와 함께 이태원 접수에 나선다. 김다미는 지난해 영화 ‘마녀’에서 신선한 마스크와 독보적 연기력을 과시하며 각종 영화 시상식을 휩쓴 최고의 기대주다. ‘김다미가 선택할 차기작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던 상황. 자신만의 색이 확실한 배우 김다미는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생애 첫 드라마 주연에 나서며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김다미는 “오랜만에 하게 되는 작품인 만큼, 설렘과 부담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함께할 배우들, 감독님, 작가님이 훌륭한 분들이어서 좋은 작업이 될 것 같다. ‘조이서’로서의 김다미도 많이 기대해 달라”고 설렘 가득한 소감을 전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유재명은 요식업계 대기업 ‘장가’의 회장인 장대희를 연기한다. 장대희는 배고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요리를 업으로 삼게 된 자수성가형 재벌이자, ‘자비리스’ 권위주의자다. 아들의 사고로 얽힌 눈엣가시 같은 존재 박새로이를 다시 마주하며 철옹성 같던 그의 인생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비밀의 숲’, ‘라이프’, ‘자백’ 등에서 선 굵은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안겨준 유재명. 그런 그가 ‘이태원 클라쓰’에서 자비 따윈 없는 회장 장대희로 변신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얼굴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특히 그가 박서준과 보여줄 한 치의 양보 없는 맞대결은 ‘이태원 클라쓰’를 기대하게 만드는 최고의 관전 포인트로 손꼽힌다. 이에 유재명은 “‘이태원 클라쓰’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고, 재밌는 작품이 될 것 같아 촬영이 기대된다. 감독님, 작가님과 더불어 선후배 배우들과 함께 멋진 작품으로 완성시켜 시청자분들을 찾아뵙고 싶다”라고 전해 기대감을 높였다. ‘이태원 클라쓰’ 제작진은 “박서준, 김다미, 유재명의 조합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개성 강한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으로 덧입힐 배우들의 시너지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태원 클라쓰’는 ‘구르미 그린 달빛’, ‘연애의 발견’ 등을 통해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성윤 감독과 웹툰 ‘이태원 클라쓰’로 통쾌한 재미와 깊은 공감을 선사한 조광진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 여기에 ‘택시운전사’, ‘암살’, ‘터널’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영화를 선보여온 쇼박스가 첫 제작하는 드라마인만큼 기대를 더한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초콜릿’ 후속으로 첫 방송 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대중성·예술성 꽃피운 문예영화… 그리고 그 시대 풍미한 이만희

    대중성·예술성 꽃피운 문예영화… 그리고 그 시대 풍미한 이만희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960년대, 대중성과 작가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뛰어난 감독들이 등장해 한국영화 미학을 개척해 갔다. 1960년대 초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은 각각 ‘하녀’(1960), ‘오발탄’(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라는 대표작을 선보였고, 이후 각자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상업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며 1960년대 내내 활약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김수용, 이성구 그리고 이만희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역시 대중과의 호흡뿐만 아니라 미학적 완성도 역시 포기하지 않으며 한국영화의 품위를 높이는 데 성공한다. 1960년대 한국영화가 예술성을 꽃피울 수 있었던 중요한 원천은 바로 문학이었다. 원작 소설이나 희곡을 영화화한 ‘문예영화’ 제작이 제도적으로 안착하며 작가주의 감독들의 작업 기반이 됐다.●감독들, 상업적 흥행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돼 1960년대 초중반 영화산업의 외양이 급격히 넓어지면서 한국영화는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선다. 문제는 이야기였다. 영화 제작편수는 100편을 넘어 150편 가까이 계속 늘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기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 영화잡지에 실린 일본영화 시나리오 중 누가 먼저 흥행될 만한 이야기를 찾아 번안할지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흡족한 시나리오를 만날 수 없었던 감독들은 이미 예술성을 인정받은 원작 소설을 각색하는 방식을 택한다.1960년대 초반 ‘오발탄’(이범선 원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주요섭 원작)를 비롯해 김수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 1963), ‘혈맥’(김영수 희곡 원작, 1963) 등 문학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문예영화’라는 말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됐지만, 바로 이때부터 한국영화계의 특별한 경향으로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문예영화는 곧 제작자들의 관심 ‘장르’가 됐다. 당시 정부는 제작업과 수입업을 일원화시켜 한국영화 제작자만 외국영화를 수입할 수 있도록 제한했고, 수입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보부로부터 외화 쿼터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제작사 입장에서 수입 쿼터는 말 그대로 돈이었다. 개봉되는 외화가 한정됐기 때문에 한국영화 수익보다 더 확실한 자금원이 돼 준 것이다. 이처럼 제작사들이 외화 쿼터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우수영화보상제도였고, 바로 문예영화는 반공영화, 계몽영화와 함께 ‘우수영화’의 항목에 포함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외화를 흥행시키기 위해 예술적으로 우수한 한국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인위적인 제도가 존재했던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산업과 당국의 이해가 맞아 정착한 문예영화 덕분에 영화의 예술적 표현에 관심 있는 감독들이 상업적 흥행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됐던 점이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이성구, 정진우 등의 감독들은 문예영화라는 장르를 활용해 특유의 영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창작의 자유도 누렸으며 국제영화제 진출 역시 노릴 수 있었다.특히 ‘갯마을’(오영수 원작, 1965), ‘유정’(이광수 원작, 1966) 등 문예영화의 대가였던 김수용 감독은 1967년 10편의 연출작을 선보이는 가운데 ‘만선’(천승세 희곡), ‘산불’(차범석 희곡), ‘안개’(김승옥 원작), ‘까치소리’(김동리 원작) 같은 걸작들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연출 감각과 왕성한 창작력을 말해 주는 대목이지만, 그 기반이 된 것은 문예영화라는 장르 혹은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한편 지금은 필름이 사라진 이만희의 걸작 ‘만추’(1966)가 우수영화로 선정되고 외화 수입 쿼터를 받자 문예영화의 범주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영화는 소설을 각색한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의 오리지널 각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한 쪽은 우수영화 심사에서 아깝게 떨어진 제작사였는데, 바로 이만희의 ‘물레방아’(나도향 원작, 1966)를 제작한 세기상사였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원작으로부터 최소한의 모티브만 가져온 새로운 창작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1969년 우수영화에서 문예영화 제외되며 쇠퇴 이를 계기로 문예영화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애초의 의미에서 ‘예술성 있는 우수한 영화’로 정의가 확대됐다. 결국 1969년 우수영화 선정부터 문예영화가 제외되면서 충무로식 예술영화라 할 문예영화 현상은 급격히 쇠퇴한다. 1960년대 미학적 야심이 있는 감독들이 때로는 통속 멜로드라마, 코미디, 액션스릴러 등 흥행 장르를 벗어나 예술영화의 문법을 고민하고 한국영화의 미학을 찾는 데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문예영화의 순기능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문예영화를 기반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시킨 감독 중 이만희는 꼭 언급해야 할 존재일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개발한 기존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재해석했고, 대사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과 분위기로 관객이 영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멜로드라마도, 액션스릴러도 심지어 시대극도 그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태어났다. 무엇보다 그는 서구의 모더니즘 영화(고전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에 반하는) 화법까지 가장 독창적으로 수용한 감독이었다. 1931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난 이만희는 제도권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광무극장, 동화극장 등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렇게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보낸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암호병으로 근무하다 중사로 만기 제대했고, 1955년경 유치진이 운영하는 연기학원에 다니며 극단 생활을 시작한다. 1956년 안종화 감독의 연출부로 처음 영화에 입문했고, 조감독 생활을 하다 이화룡의 화성영화사가 제작한 ‘주마등’(1961)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화룡은 명동파 건달이었지만 1960년 이후 뛰어난 영화제작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주마등’은 당시 화성영화사가 제작하고 강대진이 연출한 ‘박서방’(1960), ‘마부’(1961) 같은 ‘서민영화’ 경향의 작품이었다. 이만희는 1962년 액션스릴러 ‘다이알 112를 돌려라’로 충무로의 이목을 끈 후 1963년 전쟁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흥행 성공으로 일약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됐다. 이어 미스터리스릴러 ‘마의 계단’(1964), 액션누아르 ‘검은 머리’(1964) 등 이만희 특유의 장르영화들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주목받았다. 1965년 연출한 ‘7인의 여포로’가 반공법 위반에 휘말리며 수감 생활을 했지만, 이듬해 ‘시장’, ‘물레방아’, ‘군번 없는 용사’, ‘만추’ 등 4편을 1966년 한국영화 ‘베스트 10’(부산영화평론가협회 선정)에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특히 서구의 모더니즘 영화언어를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만추’ 그리고 ‘귀로’(1967)는 당시 그의 예술성이 만개했음을 증명했다. 1968년에는 다시 당국의 검열로 고초를 겪었다. 영화 ‘휴일’이 문제가 됐다. 1968년 3월쯤 촬영에 들어가 문화공보부의 개작 지시까지 반영해 작품을 완성했지만, 결국 영화는 개봉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당국의 요구에 지친 제작자와 감독이 개봉을 포기했던 것이다. 1970년대 한국영화의 침체기는 이만희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1974년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국책전쟁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연출했으나 의견 차이로 편집권을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고, 1975년 4월 ‘삼포 가는 길’ 후반 작업 중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중 지향의 장르영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미학과 예술성을 개척한 특별한 감독이라는 점에서 이만희는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젊은 팬들도 “김기영에 이은 스타는 이만희” ‘휴일’이 처음 대중에게 상영된 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 37년이나 지난 2005년이다. 개봉도 못 한 영화라 주목받지 못한 채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돼 있던 필름을 처음 공개한 것이다. 영화의 반향은 대단했다. 이만희 특유의 예술성이 정점이 달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들은 기꺼이 그해 개봉작들과 함께 ‘휴일’을 베스트 10에 올렸고, 젊은 영화 팬들 역시 김기영에 이은 또 한 명의 주목할 감독으로 이만희를 인식하게 됐다. 또한 ‘휴일’은 ‘만추’의 필름이 사라져 아쉬운 지금, 영화의 만듦새와 분위기를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큰 작품이다. 많은 평론가가 언급하고 있듯이 ‘휴일’은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이다. 말하자면 스토리의 전달보다는 인물이 처한 공간의 풍경과 영화적 분위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인물들의 대사는 극히 희박하다. 카메라는 클로즈업 쇼트 사이즈로 인물과 밀착해 주인공 허욱(신성일)과 지연(전지연)의 미세한 표정과 감정을 포착하다가도, 익스트림 롱 쇼트로 물러난 황폐한 공간 속에 그저 둘을 던져 놓기도 한다. 가난한 연인은 그들의 내면 풍경이라 할 초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남산 공원을 그저 말없이 걸을 뿐이다. 회화적인 구도의 흑백 화면은 무척 슬프지만 또한 아름답다. 특히 이 영화는 고 신성일의 외모와 연기가 가장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무척 간단하다. 허욱과 지연은 일요일마다 만나는 연인이다. 무일푼인 허욱은 사기를 쳐서 택시를 타고 담배를 살 정도이고 지연 역시 커피값이 없어 다방 앞에서만 그를 기다린다. 어렵게 말을 뗀 지연은 중절 수술을 받겠다고 말하고, 허욱은 지연을 공원 벤치에 남겨 두고 수술비를 구하러 친구들을 찾는다. 같은 처지의 룸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릴 수 없던 그는 결국 부자 친구의 집에서 돈을 훔쳐 나온다. 둘은 산부인과로 향하고 결국 그녀는 수술을 받는다. 그 사이 허욱은 카페에서 만난 여인과 술집을 전전하다 공사장에서 정사를 나누려 한다. 교회 종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는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지연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허욱은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절규한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전차를 타고 종점에 내려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읊조린다. 바로 문제의 엔딩 장면이다. 당시 검열관들은 허욱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대에 가는 설정으로 고치기를 원했고, 이만희는 이 정도 대사로 타협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는 영상자료원에 보존된 영화 ‘휴일’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심의 전 버전), 심의용 대본 그리고 당시 개봉되지 못했던 필름이라는 세 가지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어, 각 버전 간의 차이와 당국의 검열이 미친 영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심의 대본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해 보자. 허욱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보통 연인들처럼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했던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질주하다, 이제 전차 철로가 끊긴 자리에 서 있다. “서울, 남산, 전차, 술집 주인아저씨, 하숙집 아주머니, 일요일 그리고 모든 것. 나는 다 사랑하고 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어. 이제 일요일을 기다릴 필요도 없어. 커피값이 없어도 돼. 안녕, 안녕”이라는 시나리오상의 내레이션이 영화 속 허욱의 목소리로 흐르지만, 최종 영화에서는 자살을 의미하는 “안녕, 안녕” 대신 “이제 곧 날이 밝겠지… 머리부터 깎아야지, 머리부터 깎아야지”라는 대사로 바뀌어 있다. 암울한 청춘들을 위한 위로와 공감의 묘사가 남자는 군대를 가야 인간이 된다는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계몽으로 대체된 것이다.1968년 212편, 1969년 229편이라는 제작편수는 1960년대 후반을 한국영화 중흥기의 정점으로 인식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 내면은 이미 1970년대의 쇠퇴기를 예비하고 있었다. 한국영화의 흥행 실적과 질적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중이었고 그 배경에는 당국의 신경과민적인 영화정책과 검열이 자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텔레비전의 공세 역시 거세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한여름 밤의 클래식 선물…두 별이 뜬다

    한여름 밤의 클래식 선물…두 별이 뜬다

    ●국제 콩쿠르서 우승한 첫 한국인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국제 콩쿠르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한국별’들이 여름밤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한국 클래식 음악 위상을 높인 예술가와 함께하는 ‘클래식 히어로’ 시리즈를 기획,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0),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4)과 무대를 꾸민다. 선우예권과 임지영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첫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선우예권, 프로코피예프 연주 첫 공연은 오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우예권이 장식한다. 세계 3대 콩쿠르(쇼팽·차이콥스키·퀸 엘리자베스)에 버금가는 반 클라이번 2017년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 1위, 방돔 프라이즈 1위 등 한국인 피아니스트 최다 국제 콩쿠르 우승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눈부신 기교와 특유의 서정성을 보여 줄 예정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정치용의 지휘로 스크랴빈 교향곡 3번 ‘신성한 시’를 연주한다. 스크랴빈이 정신적·재정적 후원자를 잃고 부인에게서도 멀어져 신비주의에만 심취했던 시기 작곡한 작품이다. “낭만주의에서 신비주의의 어법으로 변화하는 그의 과도기적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오케스트라 측의 설명이다. ●시벨리우스와 함께하는 임지영 다음달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임지영의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와 함께한다. 14세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임지영은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 오르며 클래식 팬들과 교감해 왔으며,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클래식계가 주목하는 음악가로 성장했다. 오케스트라와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음을 맞춘다. 스산하면서도 서정성이 공존하는 북유럽 음악을 임지영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풀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차이콥스키 교향곡으로 대미 장식 오케스트라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으로 이번 ‘클래식 히어로’ 시리즈 마지막을 장식한다. 차이콥스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혼란의 시기에 모든 감정과 경험이 녹아들어 간 자전적 교향곡이다. 오케스트라 측은 “대중성과 희소성의 가치를 균형 있게 전하기 위해 스크랴빈 교향곡 3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선택했다”면서 “두 작곡가의 복잡한 심경과 철학이 반영된 음악을 우리의 연주를 통해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창작음악 발전에 힘쓰고 있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번 시리즈에서도 한국 작곡계 두 거목 이건용의 발레 음악 ‘바리’와 이영조의 ‘아리랑 축제’로 각 공연의 서막을 연다. 두 곡 모두 한국적 정서를 잘 담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하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50여년 전 걸작들이 쏟아졌다

    하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50여년 전 걸작들이 쏟아졌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중흥기로 명명된다.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화하지 않은 시기, 영화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매체였고 한국의 할리우드라 불린 서울의 충무로3가 일대는 제작자와 지방흥행업자, 감독과 각 분야의 스태프 그리고 스타와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르네상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1960년대는 무려 150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만들어졌다. 1962년 113편이었던 제작편수는 1965년 189편을 기록했고 1968년부터는 한 해에 무려 2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다. 이러한 양적 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다양하게 시도된 장르였다. 멜로드라마, 코미디, 스릴러액션 등 대중적 장르영화부터 한국식 작가주의 영화라고 할 문예영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이 만들어져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국가 주도의 영화기업화 정책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연재는 1960년대 전반기의 한국영화계를 살펴본 후 1960년대 초부터 두각을 나타낸 한국영화사의 거장 신상옥, 유현목 그리고 김기영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기로 한다. ●4·19와 5·16 사이 제작된 ‘오발탄’ 등 시대 반영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그리고 1년 7개월간의 군정에 이은 1963년 12월 제3공화국의 출범까지, 영화계 역시 한국 근대사의 정치적 격변기와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4·19와 5·16 사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화계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1960년 8월 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만들어져 영화검열 업무가 민간으로 이관된 것이 결정적이다. 위원장 이청기, 부위원장 이진섭, 전문위원 허백년, 최일수 등의 이름에서 당대 문화계 지식인들이 대거 참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설립된 민간 자율 심의기구는 5·16 군사쿠데타와 함께 해체되고 만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주목할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오발탄’(유현목), ‘마부’(강대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삼등과장’(이봉래), ‘현해탄은 알고 있다’(김기영) 등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1961년의 관객들과 만났다. 이 영화들은 기존의 한국영화를 넘어서는 현실 비판적 주제와 대담한 표현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편 전통과 근대적 가치가 경합하는 양상을 포착하며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 특히 ‘오발탄’은 5·16 이후 상영 중지 등 정치적 고초를 톡톡히 겪었다. 당시 심의 서류에 따르면 영화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 즉 “예술적인 견지에서는 우수하나 5·16 이전의 사회악과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 문제가 됐다. ●급격한 근대화에 기반한 성장… 내면은 부실 군사정권은 강력한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추진했고 영화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61년 9월 군소 영화제작사 72개사를 16개사로 통합한 데 이어 1962년 1월 20일 최초의 영화법이 제정·공포됐다. 1963년 3월 영화법 1차 개정은 영화산업의 기업화를 정부가 주도하는 제도적 근거가 됐다. 목표는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 구축이었지만 실질적인 체질 개선이 힘들다 보니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정책이 대신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사 등록 요건의 강화이다. ‘35밀리 이상 촬영기, 조명기, 건평 200평 이상의 견고한 시설로 된 스튜디오, 녹음기, 전속의 영화감독·배우 및 기술자’를 구비해야 영화업자로 등록할 수 있었고 연간 15편 이상의 제작 실적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등록을 취소당할 수 있었다. 이에 1963년 6월 21일 한국의 영화사는 순식간에 극동, 한양, 한국영화, 신필름의 4개사로 정리되고 만다. 국책에 의한 영화기업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등록된 영화사들은 등록 유지를 위해 형식적으로만 조건을 채우기 일쑤였고 개인 프로덕션의 자율적인 창작 활동은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사실 영화법에 의해 등록된 영화사가 서류상 올린 감독, 배우, 기술진은 대부분 허위였고 연간 15편 이상의 극영화 제작 실적은 등록제작사의 자체 제작보다는 군소 프로덕션의 ‘대명제작’으로 채우는 것이 현실이었다. 즉 등록이 힘든 영화사가 등록된 제작사와 계약해 그 회사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당시 한국영화계의 가장 일반적인 제작 방식이었다. 급기야 영화인협회가 중심이 된 영화법폐기촉진위원회가 1964년 3월 영화법 폐기를 건의하며 나섰고 결국 1966년 8월 영화법 2차 개정 때 가장 현실성이 없었던 녹음시설 및 감독, 배우, 기술자 전속제에 관한 규정만 삭제된다. 이처럼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국가 주도의 근대화에 기반하고 있었다. 한국영화계 역시 급격히 확대된 외양에 비해 그 내면은 부실한 상황을 연출하며 이른바 한국식 근대화의 특징적 모습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흑백 시네마스코프(와이드스크린)나 후시녹음 등 기술적인 부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서구영화의 일반적인 기준인 컬러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1960년대 후반에야 정착할 수 있었고 영화 속 인물들의 목소리는 실제 촬영 현장의 배우가 아닌 녹음실 성우들의 후시녹음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이는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맞게, 영화계가 가장 합리적인 제작 방식을 모색한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이제 1960년대 초에 두각을 나타낸 한국영화사의 특별한 감독 세 명을 살펴볼 차례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업성과 예술성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 대중적 작가주의를 실천하며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도하게 된다. 바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의 신상옥, ‘오발탄’(1961)의 유현목 그리고 ‘하녀’(1960)를 연출한 김기영이다. 이들은 한국영화사의 걸작들로 평가받는 작품들을 내놓으며 1960년대 르네상스의 폭과 깊이를 두루 만족시키고 있었다.●영화산업의 ‘최전선’에 섰던 감독 신상옥 신상옥(1926~2006)은 영화사 신필름의 대표이자 감독으로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던 그는 나운규와 찰리 채플린을 영화적 스승으로 꼽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그가 직접 가르침을 받은 감독은 최인규다. 해방 직후 ‘자유만세’(1946)를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죄없는 죄인’(1947) 등 최인규의 이후 작품에 참가해 영화를 배운다. 감독 데뷔는 6·25전쟁 시기 피란 도시 대구에서 완성한 ‘악야’(1952)였다. 피란지 작가의 암울한 일상을 그린 ‘악야’는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과 장르 영화의 화법을 결합해 전후 사회의 공기를 포착한 그의 1950년대 대표작 ‘지옥화’(1958)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홍성기의 ‘춘향전’과 경쟁한 ‘성춘향’(1961)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신상옥의 ‘신필름’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의 중심으로 당당히 진입했다. 사실 주식회사 신필름은 당시 정권이 제시한 영화기업화 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영화사였다. 덕분에 감독 신상옥도 영화제작자로서의 기반을 다짐과 동시에 영화작가로서 이름을 찾는 데 열중할 수 있었다. 1975년 ‘장미와 들개’ 검열 사건으로 정권과 사이가 멀어졌고 신필름 역시 영화사 등록이 취소됐다. 1978년 그의 페르소나이자 부인이었던 최은희가 북한으로 납치됐고 이어 신상옥도 납북됐는데, 그들의 동지적 관계는 1983년 이후 북한 신필름 촬영소에서도 계속됐다. 둘은 ‘소금’(1985) 등 7편의 작품을 함께하다 198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참석을 기회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할리우드에서 신(Sheen) 프로덕션을 설립해 ‘닌자 키드’ 시리즈를 흥행시키기도 했던 신상옥은 ‘겨울이야기’(2004)를 유작으로 남겼다.●충무로 시스템 속 ‘작가주의’ 감독 유현목 유현목(1925~2009)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예술영화의 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던 감독이다. 특히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1963), ‘카인의 후예’(황순원 원작·1968) 등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의 문예영화는 이 시기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 2학년 때 영화예술연구회를 조직해 ‘해풍’(1948·45분)을 연출했고 ‘최후의 유혹’(1953·정창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이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 조감독을 거치는 등 현장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교차로’(1956)로 데뷔했다. 평생의 동반자인 서양화가 박근자와 결혼한 때는 1958년이다. 1950년대 후반 유현목은 ‘그대와 영원히’(1958) 등 그만의 미장센이 뚜렷한 멜로드라마를 선보였고 13개월에 걸쳐 제작한 ‘오발탄’을 공개하며 독보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등극한다. 6·25전쟁 이후 한국의 빈곤한 현실과 정신적 불안을 영상화한 한국영화사의 걸작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까지 ‘순교자’(1965), ‘막차로 온 손님들’(1967), ‘분례기’(1971), ‘장마’(1979), ‘사람의 아들’(1980) 등의 문예영화를 통해 예술영화 감독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다. 뿐만 아니라 ‘아낌없이 주련다’(1962) 등의 흥행용 멜로드라마, ‘공처가삼대’(1967) 같은 세련된 코미디, ‘수학여행’(1969) 같은 아동드라마로 장르 불문하고 뛰어난 연출력을 입증했다. 또한 그는 충무로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극장 개봉을 위한 실험영화 ‘춘몽’(1965)을 연출해 음화제조 혐의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1970년 ‘한국소형영화동호회’, 1978년 독일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동서영화연구회’를 이끌며 실험영화 제작과 영화 연구를 병행하던 그는 1976년부터 1990년까지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감독 김기영 김기영(1919~1998)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본인이 설립한 영화사에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그만의 미학과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았고 이 영화들은 대중 관객과의 소통에도 성공했다. 평양고보 시절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전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1940년 졸업 후 일본 교토로 건너가 독학으로 연극과 영화를 공부하는 ‘문화방랑객’으로 살았다. 해방 후 경성대 의학부에 진학해 이후 서울대 최초의 통합 연극반을 이끌었고, 이때 동창이자 연극반원이었던 김유봉과 결혼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란지 부산의 미공보원(USIS)에 소속돼 ‘리버티 뉴스’를 만들었고 1955년 ‘주검의 상자’를 연출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두 번째 작품 ‘양산도’(1955)로 김기영 영화 세계의 원형을 제시한 후 ‘초설’(1958)과 ‘십대의 반항’(1959)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드러냈다. 김기영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알린 것은 1960년에 발표한 ‘하녀’에서다. 스릴러 장르로 대중성을 취하는 동시에 당시 한국영화의 절대적 가치라 할 리얼리즘 양식을 과감히 거부한 작품이다. 김기영 영화의 진수인 ‘하녀’ 속 인물 구도는 ‘화녀’(1971)와 ‘화녀’(1982)로 변주됐고 또 다른 결인 ‘충녀’(1972)는 ‘육식동물’(1984)로 변형되면서 당대 사회의 불안한 공기를 담아냈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심연까지 파헤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관, 영화 속 공간으로 계급 구조를 묘사하는 뛰어난 연출력 등 봉준호 같은 후배 감독들이 그를 칭송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을 계기로 젊은 관객들에 의해 재발견된 김기영은 1998년 ‘하녀’ 시리즈의 90년대식 변주인 ‘악녀’의 연출을 앞두고 평생의 지지자 김유봉과 함께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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