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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스/이혼해도 왕위계승 가능/성공회 성직자단

    ◎“재혼 않는다면 문제없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세자비와 이혼하더라도 무난히 영국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영국의 헌법 전문가들과 성공회 관계자들이 찰스 왕세자가 이혼후 왕위를 잇도록 하자고 합의를 본데 따른 것이다.찰스 왕세자가 왕위를 잇는데 있어서의 마지막 장애 요소는 지난 21일 그가 재혼하지 않겠다고 언명함으로써 사라졌다. 영국 성공회 성직자단도 지금까지 찰스의 재혼은 그가 성공회의 장을 겸하는 왕위를 계승하는데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해온 것으로 보아 재혼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면 왕위 계승에 이의를 달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번 이혼 권고 결정에 앞서 캔터베리 대주교 및 존 메이저 총리와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여왕은 성공회의 장으로서 이혼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국가의 우두머리로서는 찰스가 왕위를 잇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셈이다.
  • 한국 가톨릭신자 333만8천명/천주교중앙협 94년말기준 통계발표

    ◎전체 인구의 7.51%… 성직자는 2,327명 우리나라의 가톨릭 신자는 94년 말 현재 3백33만8천9백18명으로 전체인구 4천4백45만3천명의 7.5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전세계 인구중 가톨릭 신자 비율인 18%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교계에서는 앞으로 5년동안 신자수를 인구의 10%로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선교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주교 신부등 성직자수는 93년에비해 1백27명이 늘어난 2천3백27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가 최근 발표한 「94 한국천주교 통계」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수는 94년 한햇동안 12만8천9백41명이 늘어나 전년도 대비 4.67%가 증가했다. 천주교신자는 남자가 1백34만3천8백27명으로 40.2%이며 여자신자가 1백98만5천4명으로 59.8%를 차지했다.교구별로는 서울대교구가 1백12만9천3백76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수원교구 34만8천4백3명,부산교구 31만4천1백92명,대구대교구 30만6천1백59명,인천교구 28만1천32명,광주대교구 23만6백11명의 순이다.이같은 수치는 서울대교구의 복음화율이9.3%로 가장 높고 대구 7.6%,광주 6.6%,수원7.6%,인천 8.5%,대전 5%,원주 5.6%,부산 5.9%,청주 7.7%,마산 3.8%,안동 4.1%,춘천 4.8%,전주 6.8%,제주 7.4% 등으로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주교의 성직자수는 추기경 1명,대주교 2명,주교 18명,신부 2천3백6명 등이며 한국인은 2천1백13명 외국인은 2백14명이다. 신부 한사람당 평균신자수는 1천1백48명이며 신학생수는 93년에 1천5백82명 (92년 대비 6.25%증가),94년에 1천6백76명 (93년 대비 5.94% 증가)으로 나타났다. 사제들이 사목활동을 담당하는 본당은 9백75개,사제가 없이 신도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공소가 1천3백76개로 집계됐다. 또 수도회 회원수는 남자가 37개단체에 8백98명,여자가 79개단체에 6천8백44명이다. 지난 84년 1백84만8천4백76명이던 천주교신자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 92년 3백6만6천7백33명으로 3백만이 넘어섰고 93년도에 4.67%,94년에 4.02%가 증가했다.
  • 가평 꽃동네 요양원·종합병원 준공

    가톨릭 종합사회복지 시설인 「가평 꽃동네」(회장 오웅진 신부)가 오는 5일 경기도에서 심신장애요양원과 종합병원 준공식을 갖는다. 이번 준공을 본 「노체 리안드리 자애병원」의 명칭은 「노체」는 이지역 마을 이름이며 「리안드리」는 진로그룹 창업과 발전에 공이 많은 프랑스인의 이름을 딴것으로 건축비 44억원 전액을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이 부담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가톨릭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와 주한교황대사 조반니 불라이티스 대주교 전국자문위원 주교사제단이 공동으로 미사를 집전한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1

    ◎분단대결 구도속 민주주의 꽃피우다/동족상잔의 전쟁 발발… 전국토 초토화­1950년/5·16 쿠데타… 본격 개발독재시대 돌입­1961년/유신 선포… 장기집권의 「정치암흑기」로­1972년 95년 8월15일.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되찾은지 쉰번째 맞는 광복절이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민족상잔의 비극과 국토의 허리가 꺾이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분단을 원죄 삼아 정치·사회등 각부문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으며 최근들어서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붕괴·폭발등 인재가 속출,광복 반세기사에 깊은 골이 패이게 했다.그러나 한민족은 이같은 역사의 도전을 끈질김과 슬기를 갖고 성공적으로 극복,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피워냈다.광복 및 분단 반세기동안 빚어진 영욕의 역사를 연도별로 간단히 정리해본다. ▷1945년◁ 8월15일 한민족은 36년간의 일제강점에서 벗어났다.그러나 얼마뒤 9월2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양군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발표돼 분단의 씨앗이 심어졌다.김일성은 9월19일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들어왔다.이 가운데 10월25일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을 중심으로 2백여 정당대표가 회합해 조선독립 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켰다.김구등 임정요인들은 11월23일 개인자격으로 뒤늦게 환국했다.연합국은 12월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 신탁통치를 결정,12월31일 반탁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1946년◁ 조선공산당은 1월2일 입장을 급선회,신탁통치 지지에 나섰다.5월23일에는 군정장관의 허락없이 38선을 무단 월경하는 것이 금지돼 분단이 사실화됐다.이에 따라 이승만은 6월3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했으며 소련은 7월2일 서울영사관을 철수했다.대구에서 쌀배급요구를 내세운 10·1폭동이 일어나 3천7백명이 체포돼고 16명이 숨졌다. ▷1948년◁ 2월26일 유엔은 남한단독 총선거 실시를 결의했다.김구등 한독당 대표들은 이에 반발해 4월19일 38선을 넘어 김일성과 남북연석회의를 갖고 통일방안을 논의했다.또한 제주도에서 4월3일 남한단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그러나 결국 5월10일 유엔 한국위원회의 감시 아래 남한단독 첫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총선 이후 첫 소집된 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했으며 원내 선거로 초대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했다. ▷1949년◁ 5월20일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이 일어나 국회의원들이 체포됐다.미국은 같은날 미군철수를 발표했으며 6월29일 철수를 완료했다.이에 앞서 6월26일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피살,국민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1950년◁ 미 애치슨 국무장관은 1월12일 미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다고 말했다.반면 1월26일에는 외침시 미군의 개입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이 체결됐다.마침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53년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여간 전국토가 전화에 휘말려 폐허화됐다.3일만인 6월28일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됐으며 같은날 새벽 3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미국은 6월27일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 안보리에 연합군 결성을 제안,7월7일 안보리에서 유엔군 최고사령부 설치를 채택됐다.부산까지 계속 밀리던유엔군은 9월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을 감행,9월26일 서울을 수복한데 이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에 들어갔다. ▷1951년◁ 중국군은 1월1일 6개군단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정부는 다시 1월4일 부산으로 후퇴했다.이 가운데 공비토벌을 이유로 거창양민 6백63명을 국군이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1953년◁ 이승만은 미측의 조기 휴전 추진에 반발해 6월18일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을 석방하는등 미측에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7월27일 유엔과 북한·중국이 당사자로 서명한 가운데 휴전협정이 조인됐다.북한에서는 8월7일 박헌영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1960년◁ 전년의 사라호 태풍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을 간신히 수습하고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4대 대통령에 이승만대통령이 당선됐다.그러나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져 거센 항의시위가 빚어졌다.4월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렬군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4월19일 서울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대대적인 도심시위를 벌여 4·19혁명의 불길이 당겨졌다.4월26일 이승만대통령은 마침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이에 따라 4월28일 과도내각이 구성됐으며 이승만은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소장의 주도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전두환대위가 이끄는 육사생도들은 18일 쿠테타지지 시위를 벌였다.박정희는 20일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결성하고 의장에 취임했다.이어 용공분자와 깡패 6천2백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7월27일 미측은 한국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62년◁ 한일양국은 3월12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했다.또 3월19일 최고회의는 63년 민정이양을 발표했으며 정치활동정화법을 공포했다.이에 따라 윤보선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하자 박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또 6월10일에는 10환을 1원으로 평가절하하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10월15일에는 한미행정 협정실무자회담이 학생들의 반대속에 18개월만에 재개됐으며 11월12일 김종필은 일본 오오히라와의 비밀메모를 작성했다. ▷1963년◁ 1월18일 민주공화당이 발기선언을 가졌으며 박정희는 민정불참을 발표했다.25일 김종필은 순회대사 자격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길에 올랐다.11월26일 실시된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은 압승을 거두고 이어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4년◁ 4월1일 국회에서 김종필과 오히라간의 비밀메모가 공개되면서 학생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는 6월3일 각급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1965년◁ 국회는 1월26일 베트남에 대한 국군공병단의 파견동의안을 통과시켰다.또 2월20일에는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됐다.군은 한일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날로 거세지자 4월19일 위수령을 발동했으며 정부는 6월22일 한일협정을 정식조인했다. ▷1966년◁ 6월18일 장창선이 세계아마레슬링 플라이급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1주일 뒤인 6월25일에는 김기수가 국내 처음으로 주니어미들급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1967년◁ 3월22일 북한 중앙통신부사장 이수근이 위장 귀순했다.5월3일 제6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돼 박정희후보가 당선됐다.7월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관련자1백94명 가운데 1백4명을 구속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31명이 청와대기습을 위해 서울에 잡입했다.1월23일에는 푸에블로호가 납북됐다.4월 파라과이와의 이민협정에 체결됨으로써 남미 이민의 막이 올랐다. ▷1969년◁ 2월5일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실시됐다.3월22일에는 3·1고가도로가 개통됐다.3월28일 김수환대주교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추기경에 선임됐다.10월17일 3선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1970년◁ 3월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로에서 정인숙이 피살,배후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4월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사망했다.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해 노동운동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 동방정교회 총대주교/김 대통령,청와대 환담

    김영삼대통령은 10일 상오 청와대에서 동방정교회(그리스정교)의 바르톨로메우스 총대주교 일행의 예방을 받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3억명으로 추산되는 전세계 정교회 신자의 정신적 지도자인 바르톨로메우스총대주교는 지난 91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및 세계 총대주교에 취임한 이래 세계교회협의회(WCC)등의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은퇴사제 휴식처/국내 첫 사제마을 선다

    ◎성나자로마을에 4∼5채 건립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올해 안에 카톨릭의 은퇴사제들을 위한 사제마을이 건립된다. 한양대 유희준교수가 설계하는 사제마을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87 성 나자로 마을의 「아론의 집」부근에 세워지며 연말까지 건평 20평 규모의 건물 4∼5채가 준공된다. 성 나자로 마을원장 이경재신부는 『고령으로 은퇴한 사제들이 은퇴한 뒤에도 경제적 걱정없이 신자들과 영적 교류를 가질 수 있는 만남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사제마을을 건립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신부는 사제마을이 들어설 성 나자로 마을 몰압산일대는 10만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서울·인천·수원·춘천·원주·청주·대전교구와 가까워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수가 있어 은퇴 사제들의 공동체를 위해 적합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성 나자로 마을은 19 50년 6월 2일 미국인 조지 캐럴 주교가 나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세운 마을로 노기남 대주교가 은퇴후에 이곳에서 생활했으며 올해 45주년을 맞는다. 사제마을의 건축비는 순수하게 교인들의 성금으로만 짓게 되며 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월 회비는 2천원씩 하기로 했다.연락처 0343­52­5655. 후원회장은 소설가 박완서씨가 맡았다.
  • 김 대통령 마틴 루터 킹상 수상

    ◎킹여사/“인권·민주주의 신장 기여”… 26일 방한 수여 【애틀랜타 AP 연합】 김영삼 대통령이 금년도 마틴 루터 킹 비폭력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미국의 킹 센터가 30일 발표했다. 미국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의 미망인 코레타 스코트 킹여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김대통령의 생애와 활동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데 있어 타협할줄 모르는 자세로 비폭력 원칙에 충실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김대통령은 지난 54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뒤 줄곧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오면서 여러 차례 투옥,가택연금,정치규제 등을 당해왔다. 킹 센터는 이어 김대통령이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이끌었으며 언론자유와 사회개방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이 상 수상자로는 제1회 미국흑인 민권운동가 앤드루 영을 비롯해 지미 카터 미대통령(79년),남아공의 투투 대주교(86),코라손 아키노 필리핀대통령(87년),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91년) 등이며 김대통령은 이번에 18번째 수상자가 됐다. 킹여사는 오는 1월 26일 서울을 방문,김대통령에게 상을 직접 수여할 예정이다.
  • 대마초 택시기사 구속

    【부산=김정한기자】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15일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흡입,환각상태에서 택시를 운전한 대주교통 소속 택시기사 이두호씨(44)를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경남 사천군 완사마을 도로변에서 야생대마초 잎을 구해 말린뒤 은박지등에 싸 갖고 다니다 지난 9월 15일 집에서 대마초를 흡입하고 택시를 운전하는등 지금까지 7차례에 걸쳐 피로와 졸음을 쫓기위해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우고 택시를 운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나치 약탈 미술품 주인 찾아줍니다”

    ◎독 반환 21점 불오르세미술관 전시/모네 등 대가 작품… 관객 줄이어 요즘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는 나치 독일이 약탈해 간 미술품의 주인을 찾는 이색적인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미술관 벽에 걸린 작품들은 르누아르가 1905년 아들 클로드가 연필을 잡고 뭔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비롯,모네·마네·세잔·들라크루아·쇠라·피사로·쿠르베 등 프랑스 최고작가들의 미술품 21점으로 오는 12월18일까지 전시된다. 전시회가 열리자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으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 없다는 것이 미술관측의 말이다. 그러나 방문객들이 그림들을 찬찬히 뜯어보거나 사진찍는 모습은 쉽게 눈에 뜨인다. 이번에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2차대전중 독일군 장교가 약탈한 28점 가운데 주인이 확인되지 않은 것들로 그는 본국으로 이 작품들을 반출한뒤 한 사병에게 맡겨 보관토록 했다. 전리품에 대한 권리주장을 하기 위해 나타난 적이 없었던 장교는 전쟁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사병은 작품들을 30년 가까이 숨기고 있다가 대주교에게 그 사실을 고백했다.그뒤 작품들이 옛동독 국립화랑으로 옮겨지자 프랑스와 동독은 72년부터 89년까지 여러차례 미술품의 반환에 대해 협상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프랑스로의 반환이 결정된 것은 독일이 통일된 뒤 헬무트 콜 총리의 결심에 의해서였다. 콜총리는 지난 5월 작품들 가운데 하나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직접 건네준뒤 두달만에 나머지 전부를 파리로 보냈다. 그러자 프랑스 외무부는 미술품 되찾기위원회가 작성한 도난미술품목록을 이용해 콜 총리가 반환한 미술품의 주인들을 찾으려는 작업을 벌였고 그러한 작업의 하나로 이번 전시회를 개최했다. 도난미술품 목록은 옛서독으로부터 지난 45부터 56년사이에 6만1천점의 작품들을 되돌려받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6만점이상을 건졌으면 꽤 많은 것같지만 이것은 나치독일이 약탈해 간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사가 린 H 니콜라스는 그녀의 저서 「유럽의 겁탈」에서 독일은 7만1천6백19가구에 달하는 프랑스 가정을약탈해 1백만점이상을 독일로 실어날랐다고 밝혔다.다행히도 약탈 미술품 2만1천점은 나치독일 고위층인 헤르만 괴링의 양식있는 배려로 죄드 폼 미술관에 온전하게 보관됐다. 외무부 관리들은 이번에 돌려받은 28개 작품중 7점의 주인들을 확인했다. 그중 하나는 코로의 연필스케치인데 전직 대사를 지낸 라파엘 레그(81)에게로 되돌아 갔다.또 다섯 작품은 화가 동생의 상속인들에게 귀속됐고 나머지 한 작품은 어떤 가정집으로 갔다. 1933년 4백프랑(20만원)을 주고 산 코로의 그림은 오늘날 1만4천프랑(6백40만원)의 귀중품이 됐다.그러나 레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코로의 작품이 걸려있던 옛날집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내방의 이 그림을 함께 보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인 1930년대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이 돌려받은 미술품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 「이산가족 재회」 촉구 1천7백만명 서명

    ◎1백29국서 참가… 서명 세계신/서명지 쌓으면 33층건물 높이 일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위원장 조영식)가 고령의 이산가족 1세대들의 재회를 위해 지난해 6월부터 대대적으로 벌여온 「남북이산가족 재회촉구 범세계서명운동」이 최다국가 최다서명의 세계신기록을 수립,조만간 기네스북에 기록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서명운동추진 중앙본부는 9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가두성명 및 서신발송,직접 면담등의 방법으로 지난 8월15일까지 실시한 서명운동에 1백29개국 1천7백3만5천3백5명의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가 91년 쌀개방반대서명운동에서 수립한 기네스북 최고기록(1천3백7만8천9백35명)보다 4백만명가량 많은 것이다. 서명은 한장에 30명단위로 했으며 전체서명지는 3t 무게이며 높이로 쌓으면 33층 건물높이인 1백여m가 된다. 서명자 가운데는 국내 각계 인사들과 시민들은 물론 유엔의 임원들과 국가지도자,노벨상수상자등 5만5천여명의 외국인들까지 참여했다.이번 서명운동의 첫번째 서명인은 김영삼대통령으로 중앙본부가 본격적인 서명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단계에 있던 지난해 2월 대통령당선자의 자격으로 서명을 했었다. 이후 김대중아·태평화재단이사장,김수환추기경,한경직목사등 정치·사회·종교계의 원로인사들이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또 해외지부등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등 노벨상수상자 33명과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슐레이만 데미랠 터키대통령등 국가지도자 10여명,유엔 관계자 10여명도 서명했다. 이날 세계 신기록수립을 공표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서명을 한 조위원장은 『남북이산가족 재회를 성사시키려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으나 거의 실효성이 없어 전 세계에 마지막으로 호소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당초 목표보다 참가자들이 훨씬 많아 매우 기쁘다』면서 『이 서명으로만 끝나지 않고 광복 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꼭 이산가족들이 서신왕래라도 할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국민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지하철파업 징계 원만한 해결 촉구/각계원로 26명

    김성수성공회대주교등 각계 원로 26명은 2일 지하철파업뒤의 징계문제와 관련,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원종서울시장을 방문해 대화와 양보를 통한 노사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
  •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사설)

    카톨릭의 김수환추기경 개신교의 강원용목사 불교의 송월주스님 성공회의 김성수대주교등 종교계원로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이던 지하철파업근로자들을 찾아가 파업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현업에 복귀하도록 호소한것은 뜻깊은 일이다. 그동안도 무리한 학생시위와 근로자의 파업등으로 우리사회가 혼란에 직면했을때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만류호소」와 「중재」가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입을 다물고 있었고 때로는 불법행위를 부추기는 듯한 경우마저 없지 않았다.그런 의미에서 종교계원로들이 종파를 초월해서 근로자들의 불법파업을 준열하게 나무라고 정부에 대해서도 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도록 당부한것은 종교가 이 사회에서 맡아야할 긍정적 기능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좋은 본보기라 할수 있다.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시대와 시각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수 있다.그러나 종교도 사회의 한 구성요소인 이상 사회를 건전하게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책무이자 사명이다.모든종교의 경전에는 신앙의 본질과 함께 사회적기능이 명시되어 있다.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 그리고 「등」의 역할을 맡는것은 신앙의 본질과 일치되며 사회를 바르게 이끌수있는 이정표가 된다. 우리는 이번 파업사태를 계기로 종교의 사회적기능을 다시 한번 고찰해볼 필요성이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종교계 원로들의 이번 호소가 올바른 방향 제시라면 기독교교회협의회(NCC)의 공권력투입규탄과 불법행위비호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사랑을 신앙의 본질로 삼고있는 기독교가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웃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이번 파업사태의 주동자들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웃이 아니라 사회의 공익을 저버린 사람들이다.마땅히 법에 의해 제재를 받아야 할 범법자들이다.성직자라면 이들의 불법행위를 나무라고 직장에 돌아가도록 설득하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NCC는 기독교회관에서 농성하던 파업근로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부득이 공권력이 투입된 사실을 잘 알면서도 명분없이 정부만 비난하고 불법파업근로자들을 비호했다.NCC는오는 14일 서울에서 「전국목회자 비상 시국대회」를 열어 공권력투입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내무장관의 사퇴까지 촉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당한 공권력은 규탄하면서 법과 질서를 파괴한 자들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성당·교회·사찰등 「신앙의 성소」가 걸핏하면 「불법의 성소」로 탈바꿈돼 버리는 이 개탄스런 사태를 언제까지 방치하란 말인가.종교의 참다운 사회적기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 대주교 등 63명/르완다반군 학살

    【키갈리 로이터 AP 연합】 지난 6일 르완다수도 키갈리에서 자행된 반군측의 학살만행으로 성직자 22명과 민간인 63명이 희생됐으며 이 가운데는 키갈리 가톨릭 대주교도 포함돼 있다고 르완다 현지 유엔군및 구호관계자들이 9일 전했다. 키갈리의 유엔군 대변인은 이와관련,가톨릭성직자 9명과 민간인 63명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키갈리의 정부군 장악지역에서 학살됐다는 믿을만한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르완다반군인 르완다애국전선(RPF)은 키갈리 남부에 피신해 있던 대주교를 비롯한 성직자 13명을 학살했다고 시인했었다. 유엔군 대변인은 한 구호기관의 말을 인용,이번 학살극은 지난 6일 키갈리 남서부 니야미람보지역의 교회단지내에서 자행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바티칸교황청은 이번 학살사건에 대해 즉각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 YS­옐친/북핵논쟁뒤 서로 “고집 대단”/북방여로 뒷얘기

    ◎무산직전 러 대주교 면담/수도원 직접 찾아가 성사/북핵정보 보안 고심… 한·미 별도채널 운영 김영삼대통령은 북한핵문제가 제재쪽으로 치닫는 긴장국면에서 계속된 6박7일동안의 러시아및 우즈베키스탄 순방에서 특유의 외교스타일을 선보이며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김대통령은 지난 1일 모스크바 도착 직후 옐친러시아대통령과 대통령별장(다차)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예정과는 달리 북한핵문제등 현안을 곧바로 제기,옐친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기도.러시아측은 부인들도 동반한 이날 자리를 의례적인 정상간의 만찬으로 기획했고 실제 회담도 예정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대통령은 「파격」을 시도한 것. 그러나 옐친대통령은 곧바로 김대통령의 직선적인 성격과 진지함을 이해,북한에 대한 제재문제를 놓고 열띤 논쟁이 시작됐다는 후문. 김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다차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옐친대통령의 고집이 대단하더라』고 고개를 저었는데 러시아측은 오히려 김대통령의 의지와 고집에 더 놀랐을 것이라고 수행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김대통령을 이례적이고 파격적으로 예우,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고. 특히 카리모프대통령은 김대통령의 사마르칸트 방문과 김병화농장시찰을 비롯,2박3일 동안의 주요 일정에는 모두 동행. 김대통령이 김병화농장을 방문했을 때 카리모프대통령은 유수한 국제대회를 육성하기 위해 개최한 「카리모프대통령배 국제테니스대회」의 결승전및 시상식 참석일정까지 취소했다는 것. ○…김병화농장에서 열린 교민리셉션은 50평남짓 넓이의 행사장에 3백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4∼5개의 소형에어컨이 가동됐으나 실내온도가 40도를 훨씬 넘어 김대통령 내외는 물론 모든 참석자들이 땀을 비오듯 흘리는등 곤욕. 대부분 참석자들이 흐르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막상 헤드테이블에 자리한 김대통령내외는 부동자세에 가까운 모습으로 30여분동안 서있는 인내심을 발휘. ○…김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외교팀은 모스크바의 통신망에 문제가 있는데다 워싱턴,뉴욕,빈등 북한핵과 관련된 주요지역으로부터 정보를 접수해 지시를 내리는 것도 보안에 문제가 있어 적잖게 고심했다고. 청와대측은 주로 서울을 통해 종합적인 정보를 접수하는 한편 정종욱외교안보수석과 레이크 백악관안보보좌관 사이에 대화통로를 개설,이 라인을 통해 북한핵문제에 대한 대책을 조율했다고. 한·러시아 2차정상회담이 열렸던 지난 2일 밤에도 정·레이크 라인이 가동돼 3일의 클린턴·옐친,김대통령·클린턴 사이의 전화접촉이 성사됐다는 후문. ○…지난 3일에 있은 김대통령과 러시아정교 알렉세이 대주교와의 대면은 알렉세이대주교측이 김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 방문을 거부,한때 무산될 뻔 했다고. 이에 따라 청와대측은 면담계획을 취소했다가 러시아 국민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을 고려,김대통령이 다닐로프수도원으로 그를 방문하는 것으로 면담방식을 조정.
  • 푸슈킨시 낭송에 모스크바대생 환호(김 대통령 방북여로)

    ◎“한·러 개혁 동반… 21세기 아태 이끌자”/“해국풍습 간직 감명” 위민지원 다짐 김영삼대통령은 모스크바 출발을 하루 앞둔 3일(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뒤 모스크바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러시아 각계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모스크바 교민리셉션◁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하오 모스크바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일정으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현지 교민들을 위한 리셉션에 참석. 약1백80명의 교민들이 참석한 리셉션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행사장을 돌며 참석인사들과 인사를 나눈뒤 헤드테이블에 앉아 동석자들과 잠시 환담. 이어 정흥식연방하원의원(43)이 교민들을 대표해 김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을 환영한다고 인사.정의원은 러시아이름이 「정 유리 미하일로비치」로 사할린 출신이며 현재 지역구는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지난 89년과 90년 소련방문 때는 외교관계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고 교민들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다고 소개하고 『오늘 민주국가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의 국빈으로 이곳에 오게되어 참으로 감회가 깊다』고 소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또 『교포사회가 여러가지 역경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넘는 동안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라고 교포사회에 대한 지원을 다짐. ▷공식환송식◁ ○…김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4시30분 크렘린궁을 방문,옐친대통령내외의 공식환송을 받고 모스크바에서의 공식일정을 마무리. 김대통령내외는 승용차편으로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크렘린궁에 도착해 현관에서 쉐브첸코 러시아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환송식이 열린 게오르기예프스키홀에 입장. 홀 중앙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옐친대통령내외는 김대통령내외가 들어오자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으며 양국정상들은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 이어 양국국가가 연주됐고 김대통령내외는 쉐브첸코의전장의 소개로 러시아측환영인사들과,옐친대령내외는 신두병의전장의 소개로 우리측 수행원들과 작별인사.15분동안의 공식환송식이 끝나자 양국정상내외는 홀 입구에서 악수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교환. ○…김대통령은 이날 공식환송식 참석직후 다닐로프수도원을 방문,러시아정교의 알렉세이대주교와 20여분동안 환담. 김대통령은 이어 수행원 숙소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옛소련의 대표적 반체제인사인 사하로프박사의 미망인 일레나 보네르여사를 접견. ▷한·러경제인오찬◁ ○…김대통령은 이날 낮 러시아의회와 정부및 경제계지도자와 양국 기업인등 80여명을 메트로폴호텔로 초치,오찬을 나누며 미래지향적 경제협력관계를 강조. 김대통령은 이날 「한·러 경제협력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라는 제목의 오찬사에서 『양국이 정치·사회뿐 아니라 경제분야에서 추구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은 냉전종식과 UR타결이후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국제질서속에서 공동번영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역설. 김대통령은 『양국은 90년 수교이후 교역과 투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경제협력형태도 과학기술협력,자원협력,건설협력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면서 『그러나우리는 결코 이 정도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되며 한차원 높은 협력을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 김대통령은 두나라 경협에 대해 『바로 눈앞에 있는 조그만 이익보다는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다 큰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면서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인내를 갖고 당면과제를 하나 하나 풀어갈때 비로소 경제협력이 결실을 볼수 있다』고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를 강조. ▷모스크바대 학위수여식◁ ○…모스크바대학에서 이날 낮 명예정치학박사학위를 수여받은 김대통령은 학위수여를 기념하는 「새로운 문명을 향하여 자신과 용기를」이란 제목의 연설을 통해 『양국 청년들이 우정과 협력을 통해 유러시아협력의 아름다운 가교를 건설해달라』고 소망. 사도브치총장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오른 김대통령은 『한국국민들은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감명받고 있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통해 러시아 국민과 예술적 영감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러시아 문화 칭송으로 연설을 시작. 김대통령은 『본인이 어려울때마다 러시아의 위대한 국민시인 푸시킨의 시를 낭송했다』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라.성내지 마라.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라는 싯구를 인용하면서 이날 연설을 마쳐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연설을 마친 김대통령은 대학측이 마련한 리셉션장에서 대학관계자들과 잠시 환담. 사도브니치총장은 『김대통령의 방문은 모스크바대학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환영의사를 표현. ▷모스크바시장접견◁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유리 루시코프 모스크바시장을 접견.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문동안 모스크바 시민들이 보여준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시. 김대통령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지만 세번째 방문인 이번에는 특히 모스크바 거리 곳곳에 넘쳐있는 생동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신한국은 앞으로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인사. 루시코프시장은 『모스크바에 대한 김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에 감사한다』면서 『김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두나라의 우의와 신뢰를 깊게 하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답례. 루시코프시장은 모스크바시는 물론 연방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옐친계 실력자로 매년 모스크바강에서 펼쳐지는 겨울수영에도 빠짐없이 참가한다고. 김대통령은 이어 노벨물리학 수상자로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일반물리연구소장인 알렉산드르 프로코예프박사를 접견하고 양국의 과학기술발전과 협력문제에 관해 환담. 알렉산드르 프로코예프박사는 올해 78세로 60년대말 레이저 분야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과의 과학기술협력문제에 적극적인 세계물리학계의 거물. ◎한국어학습 둘러보며 격려 ▷손여사 한국학교방문◁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상오 모스크바시내에 있는 한국학교를 방문,모스크바 주재원 자녀들의 유치원 및 국민학교수업을 살펴보고 학생들을 격려. 손여사는 김석규주러시아대사 부인과 함께 한국학교에 도착,이문직교장 등 교사들의 환영인사를 받고 방명록에 「밝고 맑고 아름답게」라고 서명한 뒤 요리실습과 글짓기학습을 받고 있는 1,3,4학년 수업을 참관. 한편 손여사는 이날 낮 숙소인 영빈관에서 우리 대사관 직원부인들과 점심을 함께 한데 이어 하오에는 옐친대통령의 부인 라이나여사의 안내로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단지에 있는 탁아소를 방문.
  • 광주 윤공희대주교 5·18 진상규명 촉구

    【광주=최치봉기자】 천주교 광주대교구 윤공희대주교는 18일 광주민중항쟁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했다. 윤대주교는 5·18광주민중항쟁 14주기를 맞아 이날 하오7시30분부터 광주시 동구 남동 남동천주교회에서 신도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모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이같은 촉구했다.
  • 천주교성직자 납세확정/주교회의,시기는 교구별로 결정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장 이문희대주교)는 11일 폐막된 춘계정기총회에서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방침을 공식 확정했다. 주교회의는 그러나 납세대상 소득범위와 납부절차 등 세부방안에 대한 통일안을 마련하지 않고 각 교구의 자율에 맡기고 납세시기도 교구별로 준비되는대로 실시하도록 했다. 주교회의의 이같은 성직자 소득세납부결정에 따라 교구소속 1천4백여명의 신부들이 근로소득세를 내게 됐다. 백남익 주교회의사무총장은 『성직자의 소득액이 교구별로 편차가 있어 납세대상 항목을 정하는 문제를 놓고 교구장들간에 이견이 제기돼 각 교구가 자율적으로 납세세부방안을 정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 “성직자 납세문제 확정된것 아니다”/주교회의 해명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장 이문희대주교)는 9일 성직자들의 소득세 납부문제는 아직 연구검토중에 있을 뿐 전혀 결정된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명했다. 주교회의는 이날 주교회의 사무총장 백남익신부 이름으로 각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계속 연구검토하고 있는 성직자 소득세 납부문제와 관련,일부 언론에서 마치 결정이 이루어진 듯한 표현으로 보도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 성직자 소득세 내기로/천주교주교회의 결정/대상 등 내일 최종발표

    천주교 주교회의(의장 이문희대주교)는 8일 성직자도 소득세를 내기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7일 개회된 춘계주교회의는 이날 이같은 방침을 정하고 납세대상 소득의 범위와 납부절차 등 납세세부방안을 오는 10일 최종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천주교의 이같은 결정은 사실상 면세혜택을 포기하는 것으로 개신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는 지난해 10월 추계주교회의에서 성직자의 소득세납부원칙을 합의한데 이어 지난달 총대리회의를 거쳐 이번 주교회의에 주요 안건으로 상정했었다. 현행 소득세법상 근로의 제공으로 인해 받는 급여는 모두 근로소득세를 내도록 돼 있으나 종교계에서는 종교활동으로 인한 소득은 근로의 제공으로 받는 대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 천주교 성직자 납세 검토/주교회의 새 의장에 이문희대주교

    천주교 주교단은 14일 성직자들의 근로소득세(갑근세)납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교단은 지난 11일부터 열린 주교회의 93년 정기총회를 마친 이날 『전국총대리회의가 건의한「갑근세 납부」건을 주교회의에서 논의한 결과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들에게 현재 지급되는 성무활동비및 수고비를 월정급여 형태로 통일,이에 따른 세금을 내는 방안을 연구키로 했다』고 공개했다. 한편 이번 주교회의에서는 3년 임기가 끝난 김남수의장(주교·수원교구장)후임으로 이문희대주교(대구교구장·사진)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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