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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고르비,크렘린대좌 2시간15분(모스크바 여로)

    ◎“모스크바여 영원하라” 노어인사에 박수/푸시킨 시구 인용… “지금은 기적의 순간이다”/“한국젊은이 고속전철 타고 시베리아 올 날 멀잖았다” ▷정상회담◁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모스크바정상회담은 14일 상오 11시1분(한국시간 하오 5시1분)부터 2시간15분 동안 크렘린궁내의 소련연방최고회의 건물 4층 대통령회의실인 올드 레드룸에서 진행. ○화기 넘친 분위기 노 대통령이 먼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밤새 편히 지내셨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대통령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습니다』라고 대답.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잠시 포즈. 노 대통령은 본격회담에 앞서 고르바초프의 얼굴사진이 큼지막하게 표지에 실린 「페레스트로이카」 한국어판 책 1권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선물.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의 만남이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상기시킨 뒤『나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봄을 열고 씨앗을 뿌려 양국민 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소련최고인민회의 준비와 관련한 자신의 연설문 마무리 문제와 소련 국내문제를 둘러싼 여러 첨예한 대립과 논쟁상황 등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6·29민주화선언과정에서의 어려웠던 과정을 설명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로.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냉전체제 와해 등 최근의 변화와 페만사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 노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전적인 지지와 동감을 표시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과거에는 강대국이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라파에 평화가 왔듯이 아시아에도 평화가 와야 하며 모든 문제를 군사력을 사용,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물론 아시아는 유럽과 여러 조건이 다르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평화의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평화」를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평화정착이 아태지역 평화의 관건임을 거듭 확인. 한편 김종인 경제수석은 정상회담에 앞서 카운터 파트인 마슬류코프 제1부수상과 30분 동안 별도 협의를 가졌다. ○올 노벨상 수상 축하 ▷공식만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부터(한국시간 15일 새벽 1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고르바초프 대통령 주최의 공식만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올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고 『이는 각하께서 용기와 신념,탁월한 지도력으로 온 인류의 한결같은 소망을 실현하고 있는 데 대한 세계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소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그리고 한소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고 제의하고 「발쇼예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소련에서의 첫 밤을 보낸 노 대통령은 1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14일 하오 4시) 크렘린궁 외곽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내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 ○무명용사묘에 헌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과 소콜로프 주한 소련 대사의 안내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스미르노프 모스크바 주둔군 사령관의 영접을 받은 뒤 3군 의장대를 사열. 노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군악대는 차이코프스키의 진혼곡을 연주했는데 선두의 헌화병은 소련군의 독특한 걸음걸이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 이어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붉은 색 리본이 달린 화환을 무명용사묘에 헌화하고 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중절모를 벗어 묵념. 이날 헌화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과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 등 수행원들이 참여.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4일 하오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의 안내로 크렘린궁내 박물관을 둘러본 뒤 30여 분 간 환담. 김 여사는 박물관에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이사 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13일 공식환영행사에서 이미 한차례 만난 탓인지 친근감있게 가벼운 포옹을 교환. 두 대통령 부인은 박물관장과 함께 러시아 황실의상과 칼 등 무기들이 진열된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궁전내 파인애플룸에서 자녀·의상·부군에 대한 내조 등을 화제로 환담 후 기념촬영.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3일 저녁 9시(현지시간)의 TV뉴스를 통해 소련국민들에게 처음 소개돼 관심이 집중. 이날 TV에 소개된 노 대통령 방소 관련화면은 공항도착 장면과 크렘린궁내의 공식환영행사 등으로 약 4분간에 걸쳐 방송. ○「크라시바야」 연발 소련 체신부에 근무하는 실라 니콜라에바씨(여·40)는 TV를 보면서 「크라시바야」 「오친 크라시바야」(대단히 아름답다)를 연발. 그녀는 한복의 맵시와 김 여사가 가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잘 조화돼 환상적이라고 감탄. 소련국민들의 미에 대한 정서는 유럽보다 동양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소련인들의 이런 정서 때문에 김 여사가 보여주는 특유한 분위기는 그 동안 소련을 방문했던 어느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보다 더 강렬하게 소련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임양 구속」,대북정책 역행 아닌가/법질서 무시한 행동은 처벌 마땅 ▷모스크바대 연설◁ ○…노 대통령은 이어 하오 3시30분부터 모스크바대학을 방문,교수·학생들을 상대로 「냉전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2시간 동안 연설.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많은 개혁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고 경의를 표하고 투르게네프·곤자로프·체호프·칸딘스키 등의 문호와 벨린스키·게르첸·웨르나드스키·켈디쉬 등 이 대학 출신 사상가와 학자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 노 대통령은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자로프는 러시아인으로는 첫 한국견문록을 남겼다』고 「인연」을 강조하고 『그는 길에 깊이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을 보고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 쓸 만큼 학식이 있었다고 썼다』고 설명.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시인 푸시킨이 노래한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베니예/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러시아말로 푸시킨의 시구절을 인용. 노 대통령은 『나는 서울을 출발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속전철을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스톨홀름으로,파리로,이스탄블로 여행을 떠나는 내일이 올 것을 확신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내고 「마스끄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발쇼에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인사. 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3명의 학생으로부터 임수경양 처벌과 국가보안법 폐지,한소 경협과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발전 문제,청소년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즉석 답변. 노 대통령은 첫번째 질문 학생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평양축전에 참석한 여학생을 엄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물은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학생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끔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다』면서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몰래 다녀온 데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변. 노 대통령은 이어 『만약 북한에서 남한을 몰래 다녀갔다면 10배 20배의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고 학생들은 이에 박수로써 호응.
  • 3차 남북총리회담 합의도출 왜 못했나

    ◎동상이몽 남은 신뢰구축 북은 정치선전/북기자 기습취재로 저의 드러내/4차일정 합의·「기본틀 필요」 공감이 수확 남북한의 총리가 세번째 대좌한 제3차 총리회담은 회담 자체를 지속키로 했다는데서 일단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남북 쌍방은 12,13일 이틀동안 두차례에 걸친 회의를 가졌으나 이번에도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제4차회담을 내년 2월25일부터 28일까지 평양에서 개최한다는데만 합의했다. 이에 따라 총리회담의 수확은 당국간 회담의 원년인 90년을 넘어 새해에나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이번 회담에서 쌍방은 남북간 기본원칙 설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그 기본원칙이 무엇이냐는 문제에서 팽팽한 대립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된다. 즉 우리측은 그동안의 대결과 불신관계를 청산하는 새로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기본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기본입장임에 비해 북측은 정치·군사적인 대결상태 해소문제 해결이 우선과제이므로 불가침선언이 우선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쌍방의 시각차를 보다 분명히 했다. 북측은 이날 그들의 북남불가침과 화해협력선언안에 대한 우리측의 삭제 및 첨가요구와 남북관계개선 기본합의서안 가운데 필요부분이 있다면 포함시키겠다는 수정안을 제시해 왔으나 이 역시 불가침선언 채택을 유도하려는 미끼라는 것이 일치된 관측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당국은 북측의 선전적 이용이 명확한 불가침선언안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측은 총리회담에 거는 7천만 민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쌍방입장의 공통분모만 간추린 ▲이산가족문제 해결 ▲총리 및 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상호 비방·중상금지 등 5개항을 합의하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이 이를 거부했다. 북측은 애당초 이번 회담에서 합의문 도출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단지 불가침선언을 최대한 부각시켜 논쟁의 초점을 만들고 이로 인한 남한 사회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이번 회담에 임한 가장 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은 지난 12일 북측 기자들의 기습 취재활동에서 그대로 증명되고 있다. 북측 기자들의 소동은 회담분위기를 저해하려는 「재뿌리기」 작전에서 비롯된 계획된 행동으로 여겨진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측은 기본틀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북측에 각인시켰다는 측면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북측도 불가침선언 주장으로 인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쌍방이 상대방의 제안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합의서안의 제목때문이라고 각각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회담이 어느정도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측 안병수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측의 기본합의서안이 지난 72년 동서독간 체결된 기본조약을 본뜬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즉 동서독식 흡수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합의서 내용은 별 문제될 것이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측의 쌀과 북측의 석탄을 구상무역형태로 교환하자는 우리제의를 북측이 거부한 것은 중국의 경제 및 식량원조와 대일 수교교섭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또 그들의 체면상 공개적으로 받을 수 없는 점때문에 회담기간중 남북간 「비밀」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측이 내년 3월에 팀스피리트훈련이 시작됨에도 2월 하순 4차회담 개최를 제의,합의한 것은 대일 수교협상 진전을 위한 「남북대화카드용」이라는 측면과 함께 중 소의 대화 계속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측은 회담이 임박한 시점에서 팀스피리트를 구실로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측 안병수 대변인은 이와 관련,『팀스피리트훈련 실시는 회담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아직은 회담을 하자는 입장』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혀 훈련실시로 회담이 연기되지는 않을 것임을 사사했다. 4차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더라도 쌍방간 합의도출은 또 실패할 수도 있다. 남북이 실무대표접촉 개최문제를 합의를 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4차회담 이전까지 접촉과정을 통해 쌍방이 기본입장을 양보,합의를 도출할 가능성도 있다. 선전적 차원에서 볼때 서울보다는 평양에서 합의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듯 하다. 따라서 쌍방은 4차회담에서 합의서 작성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 북한 연 총리,오늘 서울에/내일·모레 이틀간 3차 총리회담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할 연형묵 정무원 총리를 비롯한 북한측 대표 7명과 수행원 33명,기자단 50명 등 대표단 일행 90명이 11일 상오 10시 판문점을 통과,서울에 도착한다. 지난 9월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을 방문하는 북측 대표단은 회담장 및 숙소인 호텔신라에 도착,휴식을 취한 뒤 하오 우리측 수석대표인 강영훈 총리가 워커힐호텔에서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남북 쌍방은 12·13일 두 차례에 걸쳐 공개 및 비공개회의를 갖고 「남북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문제」라는 포괄적인 의제를 놓고 세 번째 대좌를 하게 된다. 쌍방은 특히 이번 회담에서 1·2차 회담에서 우리측이 제시한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와 북측의 「불가침선언」 채택문제를 집중 협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쌍방은 3차회담에 앞서 세 차례에 걸쳐 3차회담에서 채택할 합의문 조정을 위한 쌍방 실무대표 접촉을 갖고 이 문제를 협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3차 총리회담 11일 일정 ▲상오 10시 판문점 통과 ▲낮 12시30분 호텔신라 도착 ▲하오 4시 공연관람(예술의 전당) ▲하오 7시 강영훈 총리 주최 만찬(워커힐호텔 컨벤션센터) ○평양출발,개성서 1박 【내외】 북한 총리 연형묵을 단장으로 한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 일행이 11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10일 상오 열차편으로 평양을 출발했다고 평양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연형묵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일행 90명은 열차편으로 개성에 도착,1박한 후 11일 상오 판문점을 거쳐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
  • 페만사태,전기를 맞는가(사설)

    문명이 가장 발달됐다고 하는 인류사회의 오늘에도 세계 도처에서 각종 분쟁은 끊임이 없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분쟁의 역사 그 자체이다. 오늘날 페르시아만사태가 그것이다. 전쟁의 그림자와 평화의 비둘기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유엔 안보리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후 페르시아만사태는 확실히 뭔가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6일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억류된 모든 외국 인질들을 석방하겠다고 했다. 물론 전쟁을 일으켜서 한 나라를 병탄했고 수많은 외국 인질들을 가두면서 전세계의 평화적 해결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장본인의 발표이니 그 신빙성 여부에 앞서 귀추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후세인이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로서는 그 동안 비축해온 카드로서 미국과 유엔이 주장해온 페르시아만사태 선결요건의 하나를 제거하는 효과를 거두는 외에 미국과 대좌를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평화제스처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인가를 살피겠다는 뜻이다. 그 후에 다음 행동을 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라크측은 유엔 안보리의 무력사용 결의안을 포함해서 모두 11차례의 결의를 거부하면서도 협상을 통해 전쟁위기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라크가 제안한 협상안은 쿠웨이트 무력합병의 발단으로 삼은 국경문제에서 서방측이 양보하면 쿠웨이트로부터의 전면철군은 물론 전복·축출된 왕가의 복귀도 허용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 초기에 보였던 배짱과 주장에 비추어보면 어느 정도 「협상의지」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유엔 안보리 결의로 무력대응에 관한 공인을 얻은 직후 이라크에 평화협상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무조건 철군이라는 요구조건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후세인이 협상의지를 보이며 인질석방을 단행하겠다는 시점에서 미국이 계속 이라크의 무조건 철군을 밀고 나갈지 또는 그의 협상조건을 수락할지는 의문이다. 한편 서방관련국들은 이라크에 약간의 양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협상에 의한 평화회복을 원하는 것 같다. 인류역사의 주류를 이룬 전쟁에 대한 혐오와 평화공존의 의지라 할 것이다. 페르시아만사태에 관한 한 아직도 전쟁불가피론자들은 있다. 국가간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월등한 무력으로 상대를 합병했고 유엔의 결의까지 무시하는 후세인을 상대로 협상할 때는 지났다는 주장이다. 미국내에서도 친이스라엘계의 「강경응징」 압력과 평화적 해결 요구가 교차하고 있다. 일부 여론은 조건부 협상을 수락할 바에는 왜 그 많은 군대를 보냈느냐는 반문도 제기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새 군축질서를 맞고 있다. 그같은 시대적 추세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인류보편의 평화의지에 입각한다면 페르시아만사태는 역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세계의 유전지대가 전쟁으로 황폐화되기보다는 안정과 번영을 찾아 인류와 세계경제에 기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세계는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더 나아가 국제적 조화와 통합상태의 「적극적 평화」에로 나가야 할 것이다.
  • 정상대좌가 닦을 시베리아에의 길(한·소 새 지평:3)

    ◎「투자안전판」 마련,경협여건 정지/이중과세방지협정등 공식체결 기대/「결제불안」 씻어 합작사업 추진 뒷받침 노태우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소는 경제분야에서 한소 양국간의 협력여건을 크게 개선시켜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9월말 한소 수교 이후 양측은 경협 확대에 큰 관심을 보여왔으나 투자보장협정 등 경협관련협정이 공식체결되지 않음에 따라 이 문제가 한소간 경협 확대의 장애요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와 이어 내년초에 한국에서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이는 제2차 한소경제회담 개최 등을 계기로 경협관련협정의 체결이 목전에 다가왔다. 현재 우리가 소련측과 체결을 추진중인 경제관련협정은 투자보장협정과 2중과세방지협정을 비롯,무역·항공·과학기술·어업협정 등 6개이다. 이들은 모두 정부간 협정으로 이 가운데 2중과세방지협정과 무역·항공·과학기술협정은 가서명 또는 잠정합의된 상태이며 투자보장협정과 어업협정은 실무협의 단계에 있다. 이들 6개 협정 가운데 우리 기업의 대소 투자진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투자보장협정 등 2∼3개의 협정은 노 대통령의 이번 방소 기간중에 공식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소간의 경제협력은 크게 보아 ▲교역 ▲투자 및 자원개발 ▲과학기술협력 등 3개 분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교역분야에서 소련은 3억의 인구를 보유,우리나라 상품의 수출시장으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미국·일본·EC 국가 등 서방 선진국의 시장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소련시장은 「뉴 프론티어」로서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소련의 대외 지불능력이 악화돼 있기 때문에 소련의 수입대금결제 지연에 대비,신용장거래와 구상무역방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무신용장거래는 신용도가 확실한 경우로 제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소련이 직면하고 있는 소비재 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1차 방소경제회담에서 우리측에 요청해온 40개 품목 가운데 우리의 공급능력이 충분한 생필품과 TV 등 가전제품 등을중심으로 수출부진 타개차원에서 소련시장을 적극 개발해나갈 계획이다. 투자 및 자원개발은 한소경협의 확대와 관련해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다. 현재까지 국내기업의 대소 투자실적은 이미 조업중인 것이 (주)진도와 모스크바 모피가공공장 1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삼성·롯데·럭키금성·대우·삼환기업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현재 추진중인 프로젝트는 20여 건에 이르고 있어 내년부터는 합작투자와 자원의 공동개발 분야에서의 양국간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내업체 가운데 대소 투자진출에 가장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곳은 현대이다. 현대그룹은 주로 한소 합작투자에 의한 시베리아지역 자원 공동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연해주 스베틀라야지역 산림개발사업이 착수단계에 있고 연해주의 파르티잔스크와 시베리아의 옐긴스크 등 2곳의 석탄개발사업,사할린과 야쿠츠크의 가스개발사업 등을 추진중이다. 이밖에 삼성과 롯데가 호텔·백화점 분야의 합작진출을 협의하고 있고 럭키금성·대우는 가전제품 공장설립을,삼환기업은 사할린 원목개발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소련의 국내 정치불안 경제제도 미비 등에 따르는 투자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규모 투자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대규모 투자는 서방기업과의 공동진출을 권장하고 있다. 또 외환부족으로 과실송금이 어려운 점을 감안,내수산업 투자 때에는 완제품으로 구상받거나 자원개발투자와 연계,자원으로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소간의 과학기술협력사업도 장래가 유망한 분야로 꼽히고 있다. 소련은 우수한 기초기술과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산업화하지 못하고 있다. 서방 선진국들의 기술보호주의 강화로 선진·고급기술 획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소련은 좋은 협력상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6월 소련측이 제시한 8백여 종의 신기술과 14개 기초과학연구프로젝트에 대해 산하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세부 내용을 검토중이며 이 가운데 협력유망 분야에 대해서는 기술이전 또는 도입을 추진하고 기술별 특성에 따라공동연구나 합작투자의 구체적인 협력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업계에서는 「소련특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소련이 우리와의 장기적인 경제협력의 대상으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련은 아직도 국내정치와 경제분야에서 많은 불확실 요인을 안고 있는 「미완성의 시장」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소련에서는 연방과 각 공화국간의 위상,각종 법령,정부조직 등 우리와의 경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련제도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을 우리의 신뢰할 수 있는 경협파트너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재 소련에서 진행중인 페레스트로이카의 결과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며 우리 기업의 과당경쟁을 방지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정장치도 강구돼야 할 것이다.
  • 「모스크바 대좌」의 파급 효과(한·소 새 지평:2)

    ◎대중관계 정상화의 촉매 기대/「서방편향」 탈피,전방위외교 구축/아주 친북 국가와도 협력길 넓혀 한소 수교에 이은 노태우 대통령의 12월 중순 방소는 그 동안 우리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왔던 방북외교의 3거봉 중 「북극 곰」 봉우리를 정복하면서 동시에 본격적인 정지작업에 들어가게 됐음을 뜻한다. 아울러 나머지 2개 봉우리인 북경봉과 평양봉의 정복도 이로 인해 시간문제일 것으로 관측된다. 그만큼 한소 수교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교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연내 노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양국 관계가 수교 이후에 급속도로 밀착되어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노 대통령 방소 등은 성숙기에 접어든 북방외교에 또다른 날개를 달아준 것이며 바로 그 점은 남북 관계개선 및 한중 관계정상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견인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개선 전기 그리고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아시아지역의 미수교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탄자니아 등 친북한 노선을 걷고 있는 아프리카 전선국가들과도 차근차근 관계정상화를 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인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한소간의 우호적 분위기가 한중 관계개선에 엄청난 효과를 미치리란 점이다. 아직까지 북한을 의식,대한 관계개선에 있어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중국 당국으로서는 수교에 이은 한소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대한 관계개선 속도를 빠르게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한·중 수교 예상 또한 노 대통령의 방소로 인해 내년 4월께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의 방한이 거의 확실해지는 등 한소관계의 급진전은 한반도 및 동북아지역에서의 소련 영향력이 증대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대한 관계개선에 적극성을 띨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하튼 중국은 노 대통령 방소를 계기로 지난 10월말 한국과 합의한 무역대표부 교환설치 수준을 격상시키는 문제를 긍정 검토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실 무역대표부는 이곳에 파견되는 정부공무원이 외교상의 면책특권을 향유하는 등 준외교공관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양국간에 양해가 된 만큼 중국측의 이같은 대한 관계정상화 움직임이 뚜렷해지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양국간 무역대표부는 그 기능과 역할수행에 있어 한소간의 영사처개설보다는 한 단계 높은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개선의 행보가 속도를 더할 경우 빠르면 내년 상반기중에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이뤄질 가능성이 많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와 함께 적어도 92년도까지 노 대통령이 북경을 방문,등소평·강택민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과의 정상회담을 갖는 시나리오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같은 예상스케줄은 다분히 기대섞인 우리측의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도 있다. 왜냐 하면 북한에 대해 느끼는 중국측의 이념적 유대감이 예상보다 깊은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측면 말고도 외교적 측면에서 이번 노 대통령방소는 종전의 대서방 편향의 절름발이식 외교를 지양하고 명실상부한 전방위 입체외교를 정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읽혀진다. 특히 전방위 입체외교야말로 우리 정부의 국제적 지위고양에 한몫을 톡톡히 하는 것은 물론 유엔가입·북한사회개방 등 한반도 내부적인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번 방소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미수교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만 달성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왔고 또한 이를 북방외교의 성과로 치부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소 경제진출 및 양국간 경협의 본격착수를 의미하는 이번 방소는 아직까지 미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대동구권 경제협력을 촉진시키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미수교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이에 따른 경제적 실익도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효과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소는 북방외교의 내실다지기에 확실한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방외교 내실 다져 이에 따라 국제무대에서의 한국 발언권도 크게 강화될 것 같다. 이와 관련,내년 1월 가이후(해부준수) 일 총리,3월 부시 미 대통령,4월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등 한반도 주변 3강 지도자의 연쇄방한은 마치 서울이 세계정치의 중심인 양 그 성과 여부에 관계없이 국제정치적으로 상당한 비중이 두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 모스크바대좌 뭘 논의하나(한·소 새 지평:1)

    ◎수교 이후「협력의 틀」 확고히/한반도 평화구도 구체협의 노태우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소가 오는 13일부터 16일까지 3박4일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청와대를 비롯,외무부 등 정부관계부처는 「모스크바행」의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한소 양국은 4일 새벽 4시 노 대통령의 소련 방문을 공식적으로 동시발표했으나 구체적인 일정과 관련해서는 「12월 중순」으로만 밝혔을 뿐 더 이상의 일정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는 소련당국이 한국측의 기간 명시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전관례,경호상의 이유 등을 들어 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방소 일정 교섭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지난 가을 독일의 콜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콜 총리가 모스크바공항에 도착한 뒤 소련측 의전장이 기내영접을 하면서 최종 확정된 일정을 전달했다면서 『사전에 노 대통령의 소련체제 일정을 완벽하게 확정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노 대통령의방소격식과 관련,소련에는 의전관례상 ▲공식방문 ▲업무방문 비공식방문 ▲기착방문(TRAN SIT VISIT) 등 4가지가 있으며 이번 방문은 서방국가의 국빈방문(STATE VISIT)에 해당되는 공식방문으로서 국빈의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문기간 중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데 이어 소련의 각계 지도자와 국민들도 만날 것이라고 이 대변인이 밝히고 있는 점에 비추어 정상회담에 소련 각계 인사와의 회동이나 다른 일정도 있음을 비췄다. 이 대변인은 노­고르비회담에서는 ①한소 양국간의 우호·협력관계발전 ②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공고히 하는 문제 ③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관해 깊이있는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이번 방소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 등 3명의 장관이 수행한다고 밝혔다. 한소 정상회담의 의제와 수행장관의 업무성격을 대비해 보면 이번 방소는 양국의 수교를 바탕으로 협력의 틀을 확실히 마련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구축하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입장에선 소련과의 국교수립 등 북방외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토대구축에 있기 때문에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 긴장완화와 관련,소련측의 적극적인 역할을 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요청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 행사·남북한 평화통일 여건조성을 위한 국제적 보장확보가 그 대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의 인식은 북한이 고도정밀유도무기·항공기·전자통신분야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이에 관한 대북한 지원중단을 통해 북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통일 여건조성의 국제적 보장작업의 하나로는 유엔의 보편성 원칙에 따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소련이 대외적으로 확실히 지지할 경우 결국 한반도 평화정착 구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우리측은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일은 어느 나라의 내정의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 소련측에 대해 대북 내정간섭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소련이 명시적으로 대북 영향력행사를 밝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한소 양국은 동북아의 냉전적 대결구도를 평화구조로 바꾸는 데 공동노력을 한다는 포괄적인 입장천명으로 대응하거나 한반도에서의 전쟁반대라는 표현으로 우리측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 자문위원이 지난번에 노 대통령에게 고르비의 친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소련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한다』고 표명한 점에 비추어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를 직접 표명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문제는 한소 양측의 기본적인 인식차이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비중있게 논의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촉구 문제는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양국간에 인식을 같이할 가능성이 크다. 양국의 실질적인 협력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초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완벽하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소련측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등에 따른 준비부족으로 부분적인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 정식체결을 목표로 했던 6개 협정가운데 무역·과학기술·2중과세방지 협정은 이번 방소를 계기로 정식 서명이 될 것이지만 투자보장·항공·어업협정은 계속 실무적인 협의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한소 경협문제도 이달 초순까지는 소련정부 대표단이 서울로 와 제2차 한소 정부대표단회의가 열려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소련측의 국내사정 등으로 2차회의가 계속 지연됨으로써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경제협력의 기본방향과 가속화원칙만 재확인 할 것으로 보인다.
  • 개전명분 축적 위한 「대외제스처」/부시의 대 이라크 대화제의 안팎

    ◎“국내 반전여론 무마용 수순” 분석도/대좌 성사돼도 평화해결은 미지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돌연 대 이라크 협상을 제의한 것은 미국이 페르시아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전력투구 하고 있지 않다는 국내외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군의 무조건 철수만을 주장하고 외교협상을 거부해온 부시 대통령은 갑자기 협상의 길을 연 이번 제의에 대해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담긴 「명령」』이라고 설명했지만 맹방들의 협상종용과 국내의 반전분위기 확산 속에서 밟지 않으면 안될 수순이었다. 무엇보다도 부시는 유엔안보리가 지난달 29일 채택한 결의안에서 대 이라크 무력사용 개시 시점으로 설정한 내년 1월15일까지 앞으로 남은 6주간을 왜 외교협상의 기회로 이용하려 들지 않느냐는 미 의회와 맹방들의 불평을 무마시켜야 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주 상원군사위원회의 페르시아만사태 청문회에서 쏟아져 나온 개전신중론에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두명의 전직 합참의장은 『희생이 큰 전쟁 보다는 1년이 걸리더라도 경제제재를 통해 이라크의 철군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주장,미 여론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불·중·소의 외상들도 대 이라크 무력사용결의안 채택에 앞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가진 개별회담에서 미­이라크 고위협상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는 또 미국의 전쟁의지를 의심하고 있는 후세인에게 미국의 결의를 전달할 필요를 느껴 협상을 제의한 것이라고 백악관 관리들은 밝혔다. 부시는 지난달 30일 대 이라크 협상을 제의하면서 『베이커 장관의 바그다드 방문은 양보의 여행이 아니라 미국의 결의를 강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후세인을 겨냥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건 베트남전처럼 질질끄는 전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으로 페르시아만 사태가 일전이 불가피한 파국으로 가더라도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마지막 평화노력이 후세인에 의해 거부됐으므로 유엔이 담보해준 무력사용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논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부시 대통령의 제의는 또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다른 문제,즉 종전의 이라크­쿠웨이트분쟁 해소에 논의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신호를 후세인에게 보낸 것이다. 후세인은 지난 8월2일 쿠웨이트 침공이후 여러차례 협상을 제의했지만 미국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후세인은 이 제의에서 이스라엘 점령지와 팔레스타인의 장래를 비롯하여 중동문제를 광범위하게 망라하는 평화회담을 주장했다. 그러나 워싱턴과 그 맹방들은 그러한 협상으로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을 어물어물 인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일축했다. 따라서 부시의 이번 제스처는 반 이라크 동맹에 균열을 가져올 우려도 없지 않다. 부시의 이번 협상제의는 미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으로부터 즉각 환영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주가상승과 유가하락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 제의로 페르시아만 사태가 극적인 외교적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상당히 엇갈린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페르시아만 사태 당사국들은 우선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로부터 모종의 획기적인 양보를 시사받지 않았을 경우 베이커 국무장관을 이라크에 보내겠다는 제의까지 할리가 없다는 측면에서 이번 제의의 배경을 살펴보려고 하고 있으나 양국간 직접 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어떤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견해 역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아랍 관측통들은 지난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후 이제까지 나온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볼 때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군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고 미국주도 다국적군의 가공할만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후세인 대통령이 막바지 고비에서 부시 대통령의 대화제의에 편승해 체면을 세우면서 철군할 가능성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세인이 철군을 해도 그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쿠웨이트에서 발을 뺄 것이라면서 미국과의 직접 대화는 그같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철군이 후세인에게 마지막 길을 걷는 것으로 인식될 경우후세인은 파국적인 결과를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유엔주재 외교관들은 후세인이 안보리결의에 굴복해 무조건 철군을 단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쿠웨이트 일부에서 원칙적으로 철군할 태세를 갖추고 쿠웨이트와 아랍제국·미국,그리고 유엔을 자신과의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유엔개입 외교적 타협방안을 갖고 미국의 제의에 접근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 경우 워싱턴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후세인이 전면 철군을 수락하기 전에 그와 협상하는 것은 워싱턴이 밀어붙인 모든 안보리 결의안의 비타협원칙에 어긋난다. 그러나 미 의회와 국민들 사이에 고조되고 있는 반전감정 때문에 이라크의 부분 철군제의를 바로 일축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몰려있다.
  • 일,북한 여행 자유화/내년 4월

    ◎2차 수교예비회담,「전후배상」은 결렬/새달 중순 3차 대좌 【도쿄 연합】 일본과 북한은 17일 북경에서 국교정상화 제2차 예비회담을 열고 본회담의 시기·의제·장소·대표 수준을 중심으로 의견을 나누었으나 의제 등에 합의를 보지 못해 12월 중순쯤 북경에서 3차회담을 열어 일괄 타결키로 하고 회담을 끝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회담은 「전후 45년간의 보상」문제에 대해 북한측이 3당 공동선언에 입각,보상이행을 촉구하면서 이 문제를 의제로 상정할 것을 주장한 반면 일본측은 식민지 지배 36년간에 대해서만 청구권이라는 개념으로 보상에 임할 뜻을 강력히 내세워 결렬됐다. 일본측은 이에 앞서 북한을 여행대상국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여권조항을 내년 4월1일부터 삭제키로 하고 이를 12월1일에 고시하겠다는 방침을 북한측에 표명,북한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 남북총리 3차회담 합의문안 논의/북한,주기적 접촉 제의

    ◎책임연락관 대좌서 남북한은 13일 하오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 책임연락관 접촉을 갖고 북한이 16일 열자고 제의했던 고위급회담 예비회담 개최문제를 협의했다. 북한은 이날 접촉에서 오는 12월11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할 합의서 초안의 문안정리를 위해 회담 전에 3∼5일 간격으로 쌍방간의 고위급예비회담 또는 대표접촉을 주기적으로 갖자고 제의했다. 우리측은 이에 대해 강영훈 총리가 14일 일본에서 귀국한 뒤 북측 제의를 상세히 검토하고 대책을 강구키로 했다. 우리측은 대책이 마련되는 대로 쌍방 책임연락관간의 다음 접촉 날짜를 직통전화를 통해 연락할 방침이다. 남북대화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북측의 이번 제의는 3차 고위급회담에서 서로 합의하고 싶은 것을 논의하자는 것이므로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따라 북한이 3차회담에 적극적으로 응해나올 것이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 잇단 과격파 테러속「평성시대」개막/62년만의 일왕 즉위식 이모저모

    ◎「신헌법」 이후 첫 의식… 일 열도 흥분/일왕 오픈카 퍼레이드에 12만인파 환호/자위대기지 5곳 피습… 전철 운행도 중단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즉위식이 12일 하오 1시 왕궁내 세이덴(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서 일본왕족과 3부요인,세계 1백58개국 및 2개 국제기관의 사절 등 모두 2처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일왕은 이날 『일본국 헌법과 황실전범에 정해진 바에 따라 이미 황위를 계승했으며 이제 소쿠이노레 세이덴노기(즉위례 정전□의)를 거행,즉위를 국내외에 선포한다』며 즉위사실을 선언했다. 그는 즉위에 즈음한 「말씀」을 통해 『쇼와(소화)천황의 60여년에 걸친 재위기간중 어떠한 때라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한 마음 씀씀이를 깊이 새겨 항상 국민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하고 『일본국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직분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국민의 예지와 꾸준한 노력으로 일본이 더 한층 발전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축하의 인사와 함께 만세 3창을 선창했다. 이날 일왕의 즉위식은 1928년(소화 3년) 이래 62년만에 거행된 것이며 일왕의 지위가 「통치권의 총람자」에서 「상징천황」으로 바뀐 신헌법 하에서는 처음 거행된 것이다. 이날 즉위식은 규모면에서는 쇼와(소화) 일왕의 즉위식보다 성대했으나 도쿄(동경) 도심부 등 전국에서는 이날 새벽 JR역 및 지하철,자위대기지,신사 등을 겨냥한 28건의 동시 다발 과격게릴라 습격사건이 발생,3만7천여명의 병력을 풀어 경비중인 경찰당국을 당황케 했다. 이 게릴라 습격으로 도쿄의 순환동맥인 야마노테센(산수선)과 게힝도후쿠센(경빈동북선)은 2시간20분동안 운행을 중단,4만7천여 승객이 발이 묶이는 피해를 입었으며 나라시노(습지야) 육상자위대기지 등 5곳의 기지가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신사도 5곳이 방화됐다. 즉위식을 끝낸 일왕부처는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를 오픈카에 동승하고 퍼레이드를 벌여 일장기를 흔들며 「천황폐하 만세」를 연호하는 약 12만 인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일왕의 즉위식은 12일 하오 1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됐다. 정전 북쪽 회랑을 통해 「마쓰노마」에 들어선 일왕은 중앙에 안치된 「천황의 자리」인 「다카미구라」(고어좌)에 들어섰다. 시신들이 이 좌대의 포장을 젖히고,일왕은 즉위의 「말씀」을 했다. 이번 즉위의 「말씀」은 62년전 「쇼와」천황(소화천황)이 즉위했을 때 보다는 많이 민주화됐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우선 과거에는 『일본국 헌법을 지키고』라고 말했으나,이날은 『준수하고』라고 바뀌었으며,『천황의 책무를 다할 것』이라는 표현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직분을 다하겠다』로 수정됐다. 그러나 전통의식에 따라 거행된 이날의 즉위식은 비록 신헌법하에서의 첫 즉위식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등극」의 분위기를 씻지는 못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했다. 즉위식후 하오 3시30분부터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의 연도에 늘어서 「반자이」(만세)를 외치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도 일왕은 여전히 「일본의 천황」이라는 사실을 실감케했다. ○…일왕이 즉위를 선언한 정전내의 「옥좌」인 「다카미구라」(고어좌)는 8각의 3층 대좌인데 높이 6.5m,폭 5.4∼6m,무게 약 8t이다. 왕비가 앉는 「미조다이」(어장대)는 이보다 약간 작은 무게 약 7t 규모였다. 일왕은 이 대좌에서 즉위를 선언하는 「말씀」을 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만세 3창은 본래 이 대좌가 있는 전상에서 내려서서 중정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민주국가에서 신하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다카미구라」가 안치된 전상에서 선창했다. 만세 3창을 선도하는 말도 처음에는 단순히 「천황폐하 만세」라고 되어 있었으나 『만세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에 따라 『즉위를 축하하여 천황폐하 만세』로 바뀌었다. 이번 사용된 「다카미구라」는 대정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대정ㆍ소화 양 일왕이 사용했으며 교토(경도)에 보관중인 것을 옮겨와 수리하고 칠을 새로 입혔다. 이날 일왕이 서 있는 위치는 총리가 서있는 자리보다 1.3m 높았다. ○…일왕 즉위식에 관련된 비용은 총리부ㆍ궁내청ㆍ경찰청ㆍ외무성 등 관계 각 분야를 합쳐 모두 1백20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즉위식 자체인 「소쿠이노레」(즉위□례)의 예산은 총리부에 계상된 33억8천5백만엔인데 내역별로는 메인 이벤트인 「세이덴노 기」(정전□의)에 14억3천6백만엔,오픈카 퍼레이드에 1억2천만엔,12일부터 15일까지의 7차례에 걸친 만찬비용 4억3천3백만엔 등이다. ○…일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12일은 「국민의 휴일」로서 공립학교는 거의 휴교했으나 주로 기독교계통의 사립학교를 중심한 20여개교는 정상수업을 하거나 교사ㆍ학생이 자유참가하는 강연회 등을 개최했다. 특히 이가타(신석)의 경화학원고교 등은 평소대로 수업을 했다.
  • 청와대 「수습대좌」 함축과 전망

    ◎「창당정신」 바탕,대승적 차원서 “대타협”/명분과 실리 절충,「운영의 묘」 살릴 듯/정치력엔 흠집,세대교체론 고개들지도/「당권갈등」은 여전히 잠복성 불씨로 민자당의 내분은 6일 저녁 4시간에 걸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청와대회동으로 일단 수습됐다. 내각제 합의각서 유출파문으로 야기돼 분당의 위기로까지 몰고 갔던 집권여당 민자당의 내분은 이로써 잠재적인 내연의 불씨는 남아있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 일단락 된 셈이다. 이날 노 대통령과 김 대표는 ▲내각제의 사실상 포기 ▲대표위원중심 체제의 당운영 보장 ▲당기강 확립 ▲민주개혁입법의 조속처리 ▲김 대표의 7일부터 당무복귀 및 당정상화 등에 합의했다. 내각제문제는 『국민이 반대하는 개헌은 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써 13대 국회에서는 물론 14대 국회에서도 개헌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회동의 핵심은 대표중심체제의 당운영과 당기강 확립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위원중심 체제의 당운영은 『당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는 대표위원의 원활한 역할수행이 긴요하고 대표위원이 중심이 되어 책임지고 당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다짐으로 끝났다. 이는 「최고위원합의제」를 「최고위원과의 협의제」로 하거나 지도체제를 「총재­대표」로 단선화시키기 위해 당헌개정 등 제도적 장치를 새로 마련하는 의미는 아니다. 이보다는 총재와 대표간의 정치적 신뢰에 입각,청와대 단독회동의 기회확대,당무의 대표전결권 강화 등과 같이 「운영의 묘」를 살려 이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당기강 확립문제도 「기강 문란행위 불용 및 엄중문책」이라는 노 대통령의 구두약속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발표문은 이같은 노 대통령의 입장천명으로 그쳤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민주계가 반 김영삼세력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있는 월계수회의 활동규제와 함께 전 민정계 지구당 위원장들의 민주계의원 지역의 공조직 훼손활동에 대한 강력한 조치 등을 노 대통령이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의 「가출」 투쟁의 명분의 하나였던 민주개혁조치는 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ㆍ지자제법ㆍ경찰관계법을 조속히 입법키로 함으로써 일단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들 개혁입법 안이 어느 선에서 민주개혁 쪽으로 진전될 것인지 그리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요구수준에 맞춰 처리될지는 미지수이나 지자제 관계법에 대해서는 김 대표에게 대야 협상의 재량권을 상당히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나 김 대표가 이같이 수습 쪽으로 절충점을 찾은 것은 나름대로 정국운영이나 자신들의 향후 입지나 위상과 관련하여 명분이나 실리면에서 공통분모를 찾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만약 민주계의 탈당으로 당이 깨질 경우 이는 곧바로 정국혼란으로 연결되고 집권세력과 반대세력간의 대결을 증폭시켜 집권 후반기의 안정적인 국정집행의 불가는 물론 통치의 기반을 붕괴시킨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에 김 대표의 「대표중심체제의 당운영」을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표의 입장에서는 분당을 할 경우 노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향후 입지가 불확실하며 다시는 대권을 향한 꿈을 키우기가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이상 당무거부 등 버티기를 계속한다면 내각제 반대ㆍ당기강 확립 등의 명분이 설득력을 잃게 되고 모든 게 대권욕에서 비롯되었다는 여론의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점도 인식한 것으로 짐작된다. 노ㆍ김 회동에도 불구하고 민자당의 앞날은 많은 잠재적 변수들 때문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 첫째 이유는 내각제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의 차기대권 각축전이 더 심각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현재의 민자당 판도에서나 집권 후반기의 권력누수 측면에서 볼 때 노 대통령은 김 대표를 차기대권 후보로 지목,일목요연하게 교통정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민자당의 민정계내에 뚜렷한 「주자」가 아직은 없다고 하더라도 김 대표를 현단계에서 「책봉」할 경우 심각한 갈등과 반발이 예상될 수 있다. 또 우리의 정치풍토에 비추어 「차기주자」를 대통령 임기가 2년도 더 남은 이 시점에서 지목하고 당권을 이양할 경우 노 대통령의 통치력이 썰물처럼 빠지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내 대권경쟁이 서서히 가동되어 표면화될 경우 이번보다 더 심각한 내분이 재현될 것으로 보이며 김 대표에 대한 제도적인 당운영권 보장이 없는데 대한 민주계 소장 강경파들의 산발적인 반발도 예상돼 계파간의 마찰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그리고 김 대표의 당내 정치력의 발휘여하에 따라 그 강도를 의외로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당 내분은 청와대회동에 따른 수습의 일단락과는 관계없이 노 대통령과 김 대표 등 수뇌부의 정치력에 큰 흠집을 남겼고 국민들의 정치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1노3김」 구도의 정치판에 대한 실망은 앞으로의 「3김」 구도전개에 대한 혐오감을 증폭시켜 국민 저변으로부터 정계세대교체론,신세대 대망론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북한­일,3일 수교회담/일 외무성 발표/북경서 이틀동안 대좌

    【도쿄 AP 연합 특약】 일본과 북한은 11월3일과 4일 이틀 동안 북경에서 양국간 외교관계수립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회담을 갖는다고 일본 외무성이 30일 발표했다. 외무성은 그러나 이번 회담에 일본 관리들이 몇명이나 참가하는지 또 누가 이번 사절단을 이끄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 중산층이 목소리 높여야 한다/김대환 이화여대교수ㆍ사회학(서울시론)

    ◎갈등과 대립의 「안전판」 역할 맡을 때 「중산층의 반항」이라는 시쳇말이 곧잘 되뇌어진다. 이 말은 산업화ㆍ대중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중산층의 좌절과 불안 및 위기의식과 일맥상통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서둘러 결론부터 앞세운다면 산업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중산층은 확산되고 건실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안정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 왜냐하면 중산층은 문자그대로 자본가계층=지배층과 근로노동자계층=피지배층 등 이해가 상충되기 쉬운 대좌적인 두 세력사이에서 조정하고 중화하는 완충기능을 함으로써 산업평화를 통한 사회안정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종,다양한 문화,복잡다단한 이해관계로 얼킨 미국과 같은 거대한 대중사회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런대로 최소한의 질서는 유지되고 있다. 그것을 지탱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바로 중산층의 비대와 온존이 그 밑받침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중산층 또는 중간계급이라는 낱말 대신에 곧잘 테크너크랫이라는 표현으로도 불린다. 우리는 그 말을 기술관리계층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 미국인들은 산업경제 뿐아니라 심지어는 정치분야에까지도 과학과 기술과 조직관리 및 운영에 있어 능란한 테크너크랫들의 기능화와 합리화를 통해 그 능률화를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곧 기술가정법치주의 및 제도를 뜻하는 테크너크라시이다. 데모크라시와 함께 즐겨 쓰여지는 이 낱말은 미국공황이 있었던 1920년대말의 경제위기와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극복하는 사조와 시류에서 연유된 것이며 그 구체화는 바로 뉴딜정책에서 음양으로 투영케 되었다. 이 말은 어찌보면 잔꾀만 일삼고 권모술수로 시종하는 등 적지않게 허망하기까지 한 우리의 정치작태와 견주어 생각해 볼때 많은 것을 시사받게 한다. 그같은 테크너크라시의 담당계층과 중심세력은 다름아닌 중산층 그들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의 중산층도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건전하게 육성 발전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건전한 생활기풍과 참신한 생산의욕과도 직결되며 국가사회의 명운과도 긴밀히 연관된다 하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중산층에 관한 마르크스 및 반마르크스주의의 진부하기도 한 계급이론의 당위성 여부를 다룰 겨를은 없지만,우리의 경우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차원에서 중산층의 지위가 포약화되고 있고 그 존재의미가 적지않게 희석화되고 있음이 현실이고 그 정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의욕적이고 야심적인 산업화ㆍ근대화의 물결에 휩싸여 기업가와 더불어 중산층은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을 관리하고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을 증대시키는데 큰 몫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는 상응하지 못했었다. 그 뿐더러 3년전의 6ㆍ29 이후,자유화의 거센 바람속에서 일기 시작한 열 띠고 뭉쳐진 노동운동은 중산층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것 아니더라도 정체적인 사회적 성격이 강한데다 적지않게 보수적이고 체제순응적이기도 한 것이 중산층이다. 그들 중산층은 대학교육의 대중화에 따른 고학력인력의 증폭과 함께 그 성향과 행동을 더욱 묘한 것으로이끌어 가게했다. 어쨌든 중산층은 관료행정사회에서 조직과 기능의 핵심이 되고 있고,경제산업사회에서 경영보조적인 위치에 있긴 하지만 실은 그들이 갖는 지식과 과학과 기술은 가히 중추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기에 상당하는 사회적인 인정감도 정신적ㆍ물질적인 보상도 받지 못하는 속에 아침부터 밤까지 혹사만 당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그들은 자기분열을 하면서 부동한채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실의까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에의 반발로 그들의 의식세계는 때로는 급진화ㆍ과격화로 급선회하게 된다. 물론 그 반면 보수퇴영화의 성향도 적지않게 있다. 그 나머지 그들은 생산면에서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것보다는 소비면에서 쾌적ㆍ안이ㆍ향락을 추구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의미에 대한 강한 자의식이나 주체적인 자각보다는 다만 돈을 많이 벌고 자기지위를 높이는데만 급급한채 치열한 경쟁속에 파묻히게 된다. 그들은 외형적인 면에서 한편으론 자본가계급을 뒤쫓아가면서 허탈해야 하고,다른 한편으로는 뒤쫓기는 위치에서 근로노동계층과 구별되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들은 그들로 하여금 지극히 소시민적인 소비성향을 조장시키게 되며 그같은 심의의 표출은 생활방식 즉,주택 자동차 생활용구를 통해 스스로의 심리적보상을 얻으려들게 한다. 중산층은 이율배반과 자기모순속에 회의에 빠진다.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하면서 쌓아올린 과학과 지식과 기술과 인격의 축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산층은 직장의 상하관계나 위계질서속에서 스스로의 능력과 기량을 짓눌린채 살아가는 수도 있다. 그들은 자본가처럼 흥청망청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해서 근로노동자처럼 조직력이나 단체교섭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 및 산업경영의 경우를 보자. 간부나 중역진은 윗사람이나 기업오너의 동정만 살피면서 무사안일하게 자리유지에만 시종 한다. 마치 다수의 병졸이 죽는 속에 얻어진 공로는 오직 장성 한 사람만 차지한다는 「일태장공 만골고」라는 개탄의 시구처럼 우리사회는 돼가고 있다. 그같은 행정 및 기업풍토속에서 어찌 자발적인 창의성이나 행정능력기술개발 시장확대가 기대될 수 있을까. 각설하고 중산층은 체질적으로 유약하고 조직적으로 취약하다. 그렇다고해서 대중 산업사회의 구조와 기능이 그들의 그같은 허약점만 악용한다면 중산층은 분노끝에 자위를 위한 반항을 시도케 될 것이다. 반항의 양태는 여러가지로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되는 날 그것은 예상치 못한 그러면서 놀라운 사회불안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남북 유엔 가입문제/실무접촉 일정 논의/오늘 연락관 대좌

    정부는 26일 북한에 보낸 전화통지문을 통해 27일 상오 10시 판문점에서 쌍방 유엔가입문제협의 실무대표 접촉 일정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고위급회담 책임연락관 접촉을 갖자는 북한측 제의에 응한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정부는 그러나 이날 접촉에서 북한측이 단일의석 가입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실무대표접촉을 주장할 경우 더이상 실무대표접촉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방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 평양총리회담을 보고/정용석 단국대교수ㆍ국제정치

    ◎“남북 한 발짝 물러서야 실마리 풀린다”/북은 구속자 석방 등 내정간섭 중지/남은 「실체인정」에 매달리지 말아야/평양 변화의 징후 없어 지나치게 낙관해선 안돼 평양에서 10월16∼19일 사이 열린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은 냉랭한 분위기와 억지 웃음 속에 열렸다. 초가을 드높은 북녘하늘 아래 3박4일간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 특성은 다음 다섯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는 남북한 양측이 각기 자기측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되풀이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서울측은 지난 9월의 1차회담에 이어 이번 2차회담에서도 상대방 실체인정을 되풀이 강조하였으며 선교류ㆍ협력­후군사ㆍ정치 조정의 공식을 역설하였다. 이에 반해 평양측은 선군사ㆍ정치해결­후교류ㆍ협력 순서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평양측은 2차회담에서도 정치ㆍ군사문제 우선처리 원칙을 고수함은 물론이려니와 계속해서 내정간섭의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구속자 석방,팀스피리트 중지,유엔가입 반대 등이 그것이다. 저와 같은 남북한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을 지켜보면서 양측의 통일접근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새삼 통감했다. 발상의 대전환이 없이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북한의 통일노선은 명백하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를 폐쇄시킨 채 남한사회만을 개방시켜 「온사회의 주체사상화」 기반을 조성하자는 데 있다. 그같은 북한의 책략은 남북대화에 임하면서 남한의 보안법 철폐,팀스피리트 중지,미군철수,구속자 석방 등을 의제의 우선순위로 올려 놓자고 우기는 데서 알 수 있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는 폐쇄시킨 채 남한만을 혁명전략전술에 따라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한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국가와 사회안전을 불안케 하는 요구에 남한쪽은 응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남한은 북한의 사회적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1차에 이어 2차회담에서도 서울측은 통신 통상 통행의 3통 협정체결을 비롯,물자 및 인적 교류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남북한 사회를 동시에 개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요구대로 그들의 사회를 개방할 수 없다. 북한은 보통인간처럼 걸어다니는 김일성을 신으로 받들 정도로 우상화시켜 놓고 있다. 북한은 북경아시안게임에서도 남한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주민들을 왜곡시킬 정도로 폐쇄시켜 놓고 있다. 서울측이 저같은 북한체제를 개방하라는 것은 김일성 권력구조의 붕괴를 간접으로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펄쩍 뛸 것은 그쪽 논리로 보아 당연하다. 여기에 남북한고위급회담은 합리적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은 남한 내정에 간섭하는 요구를 중단해야 하고 남한은 북한체제 개방을 촉구하는 것을 유보하며 상호 쉬운 데서부터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60세 이상 이산가족의 고향방문 우선실시,남북정상회담,남북 총리 및 군사당국간의 직통전화 가설,상호비방 중지,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단계적 군비감축 등을 차분하게 실현시켜 가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측으로서는 북한체제의 개방과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의 경제지원 방법도 모색해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북한 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만이 통일의 기본요체라는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동서독의 통일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공산체제의 민주화와 개방화 없이 평화통일은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체제의 개방화와 민주화도 북한동포들의 자유로운 삶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이 선결요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에 의한 북한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 요구는 동족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요 의무이며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인도적인 조치다. 또 북한도 언젠가는 대부분의 공산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바와 같이 민주화되고 개방화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한국은 남북고위급회담의 최종목표는 북한사회의 개방과 민주화에 두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측이 교류ㆍ협력을 계속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옳다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형편이 당장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할 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서로 체제적 안정을 건드리지 않는 부분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로 2차회담에서 드러난 특색은 서로 상대편 주장을 정면으로공격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1차회담의 경우만 해도 강영훈 총리는 처음 남북 총리간의 회동인만큼 되도록 상대편을 불편하게 몰아붙이는 언행을 삼갔었다. 그러나 연형묵 북한 총리를 비롯한 북한측 대표단은 처음부터 보안법 철폐니 구속자 석방이니 하는 따위의 내정간섭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나섰다. 그런데 이번 2차회담에 임하는 강 총리의 자세는 달랐다. 그는 북한이 『남조선 혁명』 노선을 포기치 않는다면 남북고위급회담의 『원만한 진전』을 기대할 수 없고 『화해협력도 결코 이룩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밖에도 강 총리는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범법자 석방 운운하는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한다면 우리측도 귀측의 내부문제에 대해서 할말이 많다』고 맞섰다. 한편 북한의 연 총리도 남측 제안의 모순성을 장황하게 열거하고 나섰다. 특히 그는 『체육선수들과 음악가들이 판문점을 넘나들게 된 오늘날에 와서까지 방북인사들을 감옥에 가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2차회담에서는 남북한이 서로 상대편 제안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양측의 기본입장을 명백하게 노출시켰다. 서울측은 평양측의 「남조선 혁명」노선 포기를 직선적으로 요구하면서 상호 「실체인정」을 촉구하였다. 여기에 반해 연 총리는 『서구라파식의 통일과정이나 동서독식의 통일과정을 모방하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이어 그는 서울측의 실체인정 요구는 『분열을 지속시킬 뿐』이라고 비난했다. 세번째로 평양회담에 관해 특기할 사항은 북한의 국가주석 겸 노동당 총비서인 김일성과의 만남이다. 강 총리를 비롯한 한국측 대표단과 김이 10월18일 대좌,악수를 교환한 것이다. 강 총리는 김 주석에게 정상회담을 조속히 실현하자고 제안하였고 김 주석은 총리회담 진전의 성과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답변하는 데 그쳤다. 18일 저녁 TV를 통해 김일성과 강 총리 일행과의 대화장면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김일성 그 사람이 6ㆍ25를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데서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총리와 북한의 국가주석이 만나 통일문제를 얘기했다는 것은 진일보의 새로운 국면으로 보아 무방하다. 네번째로 빼놓을 수 없는 2차회담의 특성으로서는 남한쪽의 「현실인정」 「실체인정」 「체제인정」 등의 되풀이 요구이다. 남북고위급회담에서의 문제점은 북한이 남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고위급회담에 임하고 있으며 북한 총리가 남한 대통령과 면담했고 남한 총리 또한 북한 국가주석과 회담하였다. 이같은 공식회담 진행과 상대편에 대한 공식 명칭ㆍ호칭은 국제법상 「사실상의 인정」 행위이다. 그런데도 한국측은 회담도중 연거푸 「실체인정」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북한의 재가를 받아내려 애쓰는 인상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사실 실체인정을 받아야 할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한은 6ㆍ25 남침을 자행한 침략자요,남한은 국력에 있어서나 수교국수에 있어서나 북한에 훨씬 앞서 있는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북한측에 실체를 인정하라고 졸라댄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남북고위급회담의 본질적 문제점은 실체 불인정이 아니라 북한의 남한 내정간섭에 있다. 보안법 철폐로부터 미군철수 등에 이르는 요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실체인정을 북한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정불간섭을 강력히 촉구했어야 옳다. 다음 3차회담에 이점 유의하기 바란다. 다섯번째로 2차 고위급회담과 관련,지적되지 않을 수 없는 항목으로서는 회담성과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해석이다. 평양에서 17일 1차회담이 끝난 뒤 한국측 대표단은 북측의 자세가 전진적 변화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그같은 변화징후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이 회담결과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든다는 것은 국민적 기대감에 부응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회담결과에 대한 평가는 문자 그대로 실체평가로 그쳐야 한다. 실체 이상 장미빛으로 분석할 때 그것은 진실에 관한 왜곡이요,결과는 국민적 좌절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결국 정상회담으로 가야 한다/남북고위급 1ㆍ2차회담을 보고(사설)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듯 희망을 갖게 하면서도 역시 험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오늘의 남북한 문제 아닌가 여겨진다. 남북한은 당국간 고위급회담을 계속하고 접촉을 유지하도록 합의했다. 정상간 회담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울과 평양의 두 차례 고위급회담에서 양쪽은 어떤 합의문건 하나 채택하지 못했다. 분단 45년간 남북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장벽은 역시 두껍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통일에 이르고자 하는 대화와 교류의 길 또한 멀고 험하다. 남북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더욱더 남북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반도,남북한의 현실이다. ○북한이 변해야 하는 이유 남북고위급 제2차 평양 본회담 역시 그러했다. 7천만 한민족의 기대에 찬 시선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회담이었다. 그것은 이번 회담에서 당장 어떤 가시적 성과를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서울회담 이후 전개된 직접적인 남북한 관계 및 남북 양측과 주변국간 관계의 급변 전개가 어떤 형태로 투영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결과는 지금 세계에서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게 된 한반도의 남북한 문제 해결은 보다 오랜 시간에 걸친 진지한 노력과 변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서울회담 이후 근 40일간에 걸친 안팎의 변화요인에 비추어 우리는 이번 평양회담에서 남북한 관계개선과 화해 및 협력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북한측의 성의있고 변화된 자세가 보여지리라고 기대했었다. 북한측은 그러나 그들 「두 개의 조선」 거부논리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해명을 유보한 채 여전히 정치 군사문제 우선토의를 고집했다. 북한의 일관된 「하나의 조선」 논리에는 근본적으로 대남적화혁명논리가 잠재돼 있다. 그들의 양당국간 회담과 접촉에 현실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하나의 조선」을 고수하는 것은 대남전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율배반성과 자기모순적인 한반도정책을 배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주석 김일성의 긍정적인 언급 역시 정상회담의 필연성 및 효용성을 강조한 것이기보다 의례적인 것이 아닌가여겨져 앞으로의 진전을 주시하게 된다. ○대화의 계속,교류의 축적 그러나 어떻든 남북한의 대화는 진전되고 접촉과 교류는 축적돼야 한다.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도 역시 상이한 기본입장과 주장을 해소하지는 못했으나 서울회담에서의 포괄적인 내용을 각기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3차 서울회담의 결실전망을 밝게 해줬다. 다시 서울에서 만나고 평양으로 이어지는 고위급회담은 언젠가 가시적인 결실로 나타날 것이다. 남북한은 이제 한반도의 통일이 갖는 역사적 필연성과 민족적 당위성으로 하여 그 과정에서 더이상 떨어질 수 없고 조만간 합일돼야 한다는 대원칙을 함께 수용한 것이다. 북한측이 주장하듯 정치 군사문제의 선결,남북 불가침선언도 그러하고 이산가족 재회와 3통협정 체결 등 남한측의 주장도 모두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요건임은 분명하다. 특히 남측으로서도 정치 군사문제의 선결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우선 순위의 문제는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도알아야 한다. 쉬운 것부터 시작,점차적으로 어려운 것을 해결하여 본질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또한 바람직한 것이다. 당국간 접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과 민간차원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장하는 「다방면에서의 다각적인 접근」인 것이다. ○정상의 만남이 뜻하는 것 남북관계 해결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상호 이질적인 체제와 이념이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한 현실과 원칙이 인정되지 않는 한 대화와 접촉은 형식적인 명분에 그칠 뿐이다. 거기에는 인간이나 국제관계의 핵심요소인 상호 신뢰와 존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한 화해시대의 막을 여는 것이 정상간의 만남으로 비롯돼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정상간의 대좌와 격의없는 대화로써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또한 상호 통치권적 결단에 의한 문제의 원천적인 해결의 길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김일성을 만나 정상의 메시지를 전하고 평화통일 문제를 협의한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남북고위급회담의 성사 및 진행과정에서 빚어진 양쪽의 상이한 입장이나 주장에 대해서,또는 회담의제가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의 차이에 관해 구체적인 논평은 유보하고자 한다. 다만 남북의 화해라는 민족적 대의와 대도가 무엇인가를 자각하는 쌍방의 노력이 계속 요청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남북이 더이상 서로 외면하지 않고 당사자로서 문제해결에 임하는 가운데 통일의 그날까지 공존번영하는 한민족공동체임을 자각할 수 있는 토대가 제공됐다면 그것으로 고위급회담의 성과는 나타난 것이다. 남북은 계속 만나고 얘기해야 한다. 서울과 평양,평양과 서울에서 대화는 계속되고 교류는 축적돼야 하는 것이다.
  • 김일성,“남북정상회담 기대”/강 총리와 첫 대좌

    ◎“총리회담의 가시적 성과 희망”/노대통령 구두메시지 전달 강 총리/대북 경협제의에 반응 보여 김일성 【평양=권기진 특파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8일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강력한 기대를 표명했다. 김 주석은 이날 하오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서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강영훈 국무총리 등 남한측 대표단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총리회담에서 취급되는 문제는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문제이므로 양측 총리들이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빨리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밝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기대를 표시했다. 김 주석의 이같은 기대 표명과 관련,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북측은 그동안 고위급회담이 잘되면 최고위급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고 수차례에 걸쳐 밝혀왔다』면서 『강 총리의 정상회담 필요성 제기에 대한 의례적인 답변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 주석은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총리회담에서 가시적인 결과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노 대통령을 만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봉이 돼야지 아무런 결과가 없이는 인민들에게 실망을 주니,총리들이 잘 준비하여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열릴 수 있도록 많은 사업을 해줄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서 강 총리는 『노태우 대통령은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고 이에 대해 김 주석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가 되도록 통일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주석은 고위급회담에 대해 『우리가 제기한 지 10년 만에 개최돼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이번 평양회담에서 비록 문건의 채택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3차회담을 서울에서 열기로 했으니만큼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부터 김종휘 대표와 북의 연형묵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20분간 김 주석과 개별면담을 가졌다. 이날 개별면담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강 총리는 노 대통령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하고 조속한 정상회담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 주석은 지난번 서울회담 당시 노 대통령이 연 총리에게 전달한 경협제의 등에대해 어떤 형태의 의사표시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 그 내용이 주목된다. 이날 김 주석과의 면담에는 고위급회담 대표 7명과 수행원 3명이 참석했고 면담이 끝난 뒤 대표단은 집무실앞 현관에서 김 주석과 기념촬영을 가졌다. 한편 우리측 대표단은 3박4일간의 평양일정을 끝내고 19일 하오 1시30분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 예정이다.
  • “한ㆍ소 정상회담 조기 실현”/노대통령 친서에 고르비 답신

    ◎내년초에 대좌 이뤄질 듯/“한반도 문제 평화적 해결에 협력 강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지난 1일 한소 수교 이후 친서교환을 통해 양국 외교관계 수립이 한반도의 평화정착 및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양국 정상의 교환방문을 실현한다는 데 합의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지난 1일 한소 수교와 관련,친서를 보낸 데 대해 16일 답신 친서를 보내 한소 양국의 수교에 만족을 표하고 노 대통령이 제의한 양국 정상회담의 실현을 희망했다고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밝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친서에서 『우리 양국간의 전반적이고 생산적인 접촉을 유지해가는 가운데 한소정상회담이 실현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힘으로써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게 됐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한소정상회담에 관해 『양국 정상간의 일정 등을 감안,금년내는 이루어지기 힘들며 내년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그 시기를 전망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노 대통령의 친서를 접수하고 본인은 양국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즈음하여 각하께서 표명한 만족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고 말하고 『이번의 중대한 결정이 통상ㆍ경제ㆍ문화 및 과학분야에서의 광범위한 한소 관계발전의 토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친서는 또 『오늘의 국제정세하에서 소련과 한국은 아시아ㆍ태평양지역 여러 나라와 힘을 합하여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이고 정당한 해결은 물론,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 및 유익한 협력관계 강화를 지향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일 보낸 친서에서 한소 양국간의 수교결정이 양국간의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할 것이라고 말하고 양국의 편의에 따라 양국 정상간의 교환방문이 가능한 한 조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전달했었다. 지난 12일자로 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친서는 이날 주한 소련영사처를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됐다.
  • 정국풀기“교감”/막후대화 본격화/김 대표­김 총재 “악수”의 의미

    ◎“정치복원” 합의는 대화재개의 뜻/금명 총무접촉… 단식 주말 고비로 풀 듯/합당 이후 쌓인 불신해소의 전기 평민당사에서 11일 이루어진 「양김」 요담은 3당 합당 후 처음으로 상대방의 실체에 대해 상호인정을 한 것이란 점에 의의를 찾아야 할 듯싶다. 두사람의 발표에서 보듯 현안에 대한 특별한 합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3당 합당 후 정국경색의 기본원인으로 이해돼 온 상호불신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그 바탕위에서 여전히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지만,상대방을 정국운영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장ㆍ단기 정국정상화의 긍정적 변수로 취급될 수 있을 듯하다. 이날 회동에서 두사람은 정치복원을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현 정국의 최대현안인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식이 이번주말을 고비로 해결될 것임을 의미한다. 정치를 복원하기로 합의하고 여야간 대화가 재개된다고 할때 가장 극단적인 의사표시 방법인 단식의 중단은 당연히 전제되고 있다. 특별히 정치현안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의 정치복원과 대화재개 약속은 평민 김 총재 쪽에서 스스로 문제를 풀기 시작한 결과로 이해된다. 김 총재가 이처럼 자진해서 문제를 풀게 된 배경을 두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우선은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과의 요담과정에서 김 총재가 그동안 누적시켜 온 「오해」를 어느 정도 풀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총재가 3당 합당 후 강경일색으로만 대여전략을 구사했던 데는 거여를 상대로 선택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란 게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적 이유외에 김 대표에 대한 불신도 그 배경으로 작용해 왔다. 예를 들어 김 민자 대표의 지난 7월 국회에서의 법안단독처리 등을 자신을 정치적으로 압살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하는 것 등이 불신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런 류의 생각을 김 대표가 대화를 통해 오해임을 인식시켜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특히 김 대표는 평민당이 교체를 주장해온 원내총무를 포함,핵심 당직의 개편을 이날 김 총재에게 사전 통보함으로써 신뢰회복의 증표로 삼았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두번째로는김 총재 스스로가 단식을 끝낼 명분을 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 대표의 방문은 김 총재에게 단식을 끝낼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을 제공한 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총재나 평민당으로서는 비록 단식투쟁이 부분적으로는 상황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에게 주는 부정적 효과와 무용성으로 인해 고심해 온 것으로 관측돼 왔다. 특히 강경투쟁이 자칫 재야쪽에 발목이 잡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김 총재로서는 고려치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 회동결과에 대해 민자당이나 평민당의 설명은 기묘할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민자ㆍ평민 모두 정치복원과 대화재개에만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양당관계자 모두 3당 통합 후 첫번째 대좌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구체적 현안에 대해 합의를 할 게재도 형편도 아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양당관계자의 설명 일치와 첫 대좌에의 의미부여는 실제로 1시간여의 회동에서 구체적 현안에 대한 합의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만 이날 회동에서는 단식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데만 합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회동에서의 정치복원ㆍ대화재개 약속에도 불구하고 정국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단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민당측에서는 김동영 민자당 원내총무의 『대선 전 지자제 단체장선거 고려』 발언에 상당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고 이를 김 대표의 방문과 묶어 민자당측의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이해했을 법은 하다. 김영배 평민당 총무는 이날 양김 회동이 끝나고 난 뒤 『김 민자 총무가 대선전 단체장 선거를 하자는 얘기를 했다』면서 『내각제문제는 민주계에서 반대하고 있는만큼 뻔한 것 아니냐』고 말해 지자제에 대한 민자당의 입장변화를 기정 사실화했다. 여야 모두 김 평민 총재의 4개항 요구조건중에 지자제문제가 그 핵심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제,특히 단체장선거는 다음 대통령선거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민자당이 쉽사리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못된다. 김 대표나 김 총재 모두가 다음 대권선거와 연계시켜 대부분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고 있는점을 감안한다면 대선에서의 엄청난 변수가 되는 단체장 선거문제가 쉽게 타결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기 어렵다. 물로 민자당이 단체장 조기선거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국경색 장기화로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김 대표가 단체장 조기선거를 허용하는 데서 생기는 손해보다 정국경색 장기화로 입는 정치적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을 경우에 「결단」을 선도하는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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