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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한·중 군축對座

    한국과 중국은 7일 서울에서 양국간 첫 군축·비확산회의를 가졌다.이번 양국간의 군축대좌는 수교 이후 첫번째 만남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실질적 현안에 관해 협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양국은 회의에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생산의 억제방안을 비롯,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조기발효와 화학무기금지조약(CWC)의 효율적인 집행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또한 북한이 이들 조약에 가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우리정부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조용한 충고와 설득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당면 현안인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한반도에서의 미사일 확산방지가 지역안정에 필수적인 만큼 대량파괴무기의 추가개발을 원치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중국은 지난 4일 김영남(金永南)북한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 일행의 방중시 이같은 입장을 충분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의 이러한 입장천명은 한반도의 안정이 절대적이라는 국익우선에서 나온 정책카드로 보여진다. 더욱이 한·미·일 3국의 대북포괄협상 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서 나온 중국의 이같은 입장은 앞으로 한반도 정세변화에 적지않은 긍정적 변수가 될것으로 예상된다.한·중 첫 군축대좌에서 보여준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평화의지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억제와 방지효과를 기대할 수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평가된다.물론 중국이 한국과의 군축대좌의실용성을 인식한 것은 무엇보다 한국이 미·일의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구축에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무관치 않다.중국은 한국이 TMD에 불참한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을 미·일의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패권구도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TMD 불참을 전략적 성과로 인식,환영하고 있다.엄밀하게 보면 한국의 TMD 불참결정은 중국이 보는 넓은 의미의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한국정부는 TMD가 한국의 수도권 방위에 군사적으로 큰 의미가 없고 많은 비용이 들어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뿐이다.이유가 어떻든한국과 중국이 군축분야에서 무릎을 맞대고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현안들을 협의했다는 자체가 고무적일 뿐만아니라 향후 양국관계에도 건설적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어진다.그리고 한·중 양국의 군축대좌는 앞으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정부노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북한의 조속한 협력이 요청된다. 장청수 논설위원
  • 北京 차관급회담 합의 의미

    베이징이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을 위한 오작교가 될까.남북 당국자들이 21일 베이징에서 재회함으로써 생기는 기대다.차관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양측 대표단은 지난해 4월 베이징회담 이후 1년2개월여 만에 머리를 맞대게 됐다.‘이산가족문제와 상호 관심사로 되는 당면문제’가 의제다. 회담은 향후 본격적 남북간 관계개선으로 가는 이정표로 기대된다.새 정부들어 활성화된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이 제도화될 계기라는 점에서다. 물론 이는 회담의 일정한 결실을 전제로 한다.그런 점에서 최대 관심사는이산가족문제다. 이번 베이징 대좌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산가족문제 등 현안 절충에 들어간다.비료 지원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비공개 접촉에서 정리됐기 때문이다.남측이 6월부터 7월까지 비료 20만t을 주기로 합의한 것이다.바로 이 점이 지난해 베이징회담과는 다른 대목이다.우리측이 이산가족문제와 비료 지원의 직접적 연계고리를 풀었다는 뜻에서다.이른바 상호주의를 사실상 철회한 셈이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은 언제나 우리측의 최우선순위였다.이산 1세대들이 고령으로 속속 유명을 달리하고 있어 절박감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북측은 정치적 문제라며 뒷걸음질쳐 온 사안이다.심지어 이산가족실체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류도 있었다.85년 한 차례 고향방문단 교환이후 더욱 소극적 자세로 돌아섰다. 따라서 상호주의의 철회는 얼핏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지렛대 하나를 포기한것으로 비쳐진다.그러나 당국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북한의 선의만을 기대한 게 아니라 비공개 접촉에서 상당한 논의가 진전됐다는 투다.판문점 면회소 설치나 시범적 차원의 상봉 가능성까지 흘렸다.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도 “그 규모나 횟수가 문제이지 시작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그러면서 “몇달간 기다려 보라”고 덧붙였다. 다만 북한으로선 이산가족 상봉은 체제안보 차원에서 상당한 도박이다.이번차관급회담이 샅바싸움으로 흐를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구본영기자 kby7@
  • 北京 남북차관급회담 성사배경·전망/ 남북경제협력 전망

    이변이 없다면 이달 하순 남북 당국자가 공식 대좌한다.지난해 4월 베이징회담에서 등을 돌린 당국자들이 1년2개월만에 같은 곳에서 재회하는 셈이다. 다만 2일 계속된 비공개접촉의 막판 산고(産苦)가 마지막 변수다. 지금껏 당국간 대화가 단절된 사유는 여러가지다.본질적 요인은 북측의 고의적 기피자세였다.북측은 체제유지에 부담이 큰 남북대화보다는 미국과의거래를 ‘중심고리’로 삼아왔다.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그동안 일관된 포용정책을 펴왔다.상당한 달러를 반대급부로 지불한 금강산관광사업이 대표적이다. 특히 ‘포괄적 접근’방안도 햇볕론의 국제화에 다름 아니다.최근 방북한페리 조정관을 통해 한·미·일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를 전제로체제보장을 약속했다는 점에서다.때문에 북측이 대화에 응한다면 대북 포용정책이 긍정적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남쪽과 담을 쌓고서는 당면한 곤경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라는 뜻이다.물론 그러기까지 시차를전제로 해서다. 구체적 차원에선 비료가 끊어진 남북대화의 연결고리가 될 참이다.북측의최악의 식량난이 비료 수요를 촉발한 것이다. 북한의 올 식량부족분은 115만t정도로 추정된다.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총 90만t의 식량을 확보했다. 따라서 올해를 넘기는데는 문제가 없다.그러나 어차피 대폭적인 증산운동으로 내년을 대비해야 한다. 여기엔 남한으로부터의 비료획득이 관건이다.북측도 2일까지 진행된 베이징 막후 접촉에서 줄곧 SOS를 보내왔다는 후문이다.북한이 파종기는 넘겼지만생육기에도 비료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베이징 막후 접촉에서 우리측은 대국적 견지에서 큰 양보를 했다.이산가족 문제와 비료지원을 연계하는 상호주의를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지난해 베이징 회담이 상호주의 문제로 결렬된 사실을 감안한 것이다.대신‘선(先) 비료지원,후(後) 이산가족문제 논의’구도로 가닥이 잡혔다. 먼저 선의를 베풀고 북측의 화답을 기다리겠다는 취지다.다른 정치적 의제와 함께 이산가족문제를 차관급 회담의 논의 과제로 넘긴 것이다. 우리측은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과제로 보아왔다.반면 북측은 체제동요가능성 때문에 정치적 문제로 간주해 왔다.차관급회담에서 상당한 우여곡절이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본영기자 kby7@- 남북경제협력 전망 남북한 차관급 회담이 임박하면서 남북경제협력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새 정부는 지난해 4월 정부의 규제를 과감히 없애는 내용의 남북 경협 활성화조치를 발표했다.정경분리원칙도 적용,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되는 등 일부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남북한간 교역,위탁가공과 대북 투자는 부진했다.지난해 교역액은 우리나라로 반입된 북한 물품 9,200만달러,북한으로 반출된액수 5,100만달러 등 1억4,300만달러로 전년보다 43.2%가 줄었다. 위탁가공 무역도 10.2%가 감소했다.대북 직접투자는 금강산과 대우 남포공단을 제외하고는 중단됐다.신규 사업 승인은 작년말 이후 끊어진 상태이다. 이같이 남북 경협이 침체한 주이유는 북한에 있다.북한이 남북간 교역을 공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정부간 대화를 기피,교역이나 경제협력을 위한 채널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여기에다 남북경협창구역할을 해온 ‘대외경제협력 추진위원회’의 실질적인 기능정지,중공업우선주의로의 회귀,나진·선봉지역개발에 대한 의욕저하 등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도 경협부진의 이유로 지적된다.경제난 가중으로 북한의 반출능력이 떨어진 점도 남북교역 위축 요인이다. 또 국내 기업들도 북한에 대해 종전처럼 의욕을 내지 않고 있다.환란위기로 자금동원능력이 떨어진데다 국내 임금인하로 북한 투자 매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인천∼남포간 배로 물건을 실어나르는데 따른 물류비용도 만만치 않다.컨테이너를 꽉 채우기에는 물량이 적어 운송비용 부담이 크다.대북 교역은 현재관세환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역지원 금융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기업으로서는 북한과 교역을 하는데 더 많은 자금이 드는 셈이다.따라서 모처럼북한과의 대화채널이 재개될 경우 교역활성화를 위해 남북한 정부간에 교역을 정식 인정하는 절차가 우선 필요하다.여기에 국내 기업들에 대한 무역금융지원과 남북한간 물품의 육로 운송 등이 뒤따라야 경제협력이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일기자
  • 무르익는 南北당국간 회담

    남북 당국간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지난해 4월 차관급 비료회담 이후 등을 돌린 양측이 다시 마주앉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연기’는 여러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다.베이징 남북 비공개 접촉 사실도그 하나다.남북회담사무국 관계자가 베이징에 급파됐다. 베이징을 무대로한 남북간 막후 접촉은 항용 있는 일이다.하지만 때가 때인만큼 당국 회담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관계자도 1일 “적십자채널을 통한 대북 비료지원 사업 경과를 보면서북측도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민간차원의 모금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북측도 당국간 회담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남한 정부는 한적에 5만t의 비료를 기증한바 있다. 특히 북한이 남북 고위급정치회담의 개최시기로 설정한 하반기도 한달 앞으로 박두했다.더욱이 최근 방북한 페리 대북 정책조정관을 통해 한·미·일의 포괄적 접근 방안도 전달했다. 포괄적 접근은 어차피 남쪽 당국이 한 축이 될 것을 요구한다.북측의 대량살상무기 개발포기시 각종 대북 지원에 우리측이 중심적 역할을 할 수밖에없다는 뜻이다. 북측도 이를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이는 곧 남북 대좌 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으로 연결된다. 지난달 3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몽골 기자간담회 때 밝힌 ‘남북관계의 좋은 조짐’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같다.대통령은 “단언할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며칠을 기다려 봐달라”고 말했다.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으로부터 ‘페리 미션’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나온 기대다.벌써부터 임동원-김용순(金容淳·북한 아태평화위원장) 대좌 추진설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손을 내저었다.비료 등을 매개로 대화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으나 대화 레벨이나 의제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본영기자 kby7@
  • 2與 정치개혁협상 ‘흐림’

    두 여(與)가 정치개혁입법 협상에 착수한다.20일 자민련이 선거제도안을 확정하면서 1차 여건이 갖춰졌다.첫 대좌는 22일로 잡혔다.협상전망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각론(各論)에서 다른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근본적인 차이는 기본입장에서 엿보인다.국민회의 안은 ‘변화’가 많다.반면 자민련측은 ‘현행유지’에 가깝다.절충이 쉽지 않을 것임을 읽게 해준다.양측이 일치하는 부분은 선거구제 정도다.모두 현행 소선거구제를 선택했다.다만 국민회의측이 중대선거구제에 신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미지수다. 양측은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국민회의는 1인2투표제를 채택했다.반면 자민련은 1인1투표제가 당론이다.사실상 현행 전국구 방식이다.이 문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언급한 ‘16대 총선 연합공천’과 맞물려 있다. 국민회의 안은 연합공천에 문제가 없다.후보를 내지 않아도 정당득표율을따로 얻기 때문이다.그러나 자민련 안으로는 연합공천이 사실상 어렵다.후보를 내지 않는 지역에서는 득표율이 ‘0’이 된다.비례대표의원을 얻을 수없다는 얘기다. 반론도 있다.자민련 이양희(李良熙)대변인은 “양측이 제대로 주고받으면문제없다”고 말한다.1과 1을 더하든,2와 0을 더하든 결론은 2라는 논리다. 국민회의측은 당세가 더 크다.수용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비례대표제 배분비율도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된다.국민회의는 절반을 할당하고 있다.자민련은 4분의1에 불과하다.득표율에 대한 자신감 차이를 반영한다.비례대표제 상한선도 같은 맥락이다.국민회의는 3분의2로 그었다.제1당으로 부상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자민련은 절반으로 제한했다.제3당 할애비율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양측은 이달말을 협상시한으로 잡고 있다.하지만 서로의 의견 차이 못지 않게 내부반발도 관건이다.선거제도 문제는 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사안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할게 뻔하다.이를 무사히 넘게 되더라도 한나라당의 ‘벽’이 또 남아 있다.
  • 이후-청와대의 구상·정치권 반응

    金大中대통령은 17일 李會昌한나라당총재와의 여야 총재회담에서 국정 전반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이제껏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친 현안에 대해 거르지 않고 넘어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었다. 대치정국의 최대 현안이었던 총풍과 세풍,그리고 내각제에 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발표됐으나 ‘인간적인 관계와 문제도 토론했다’는 金대통령의 전언을 감안할 때 상당한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특히 李총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金대통령과 전화로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둠으로써 관계 복원을 통한 정국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두 사람이 이날 6개 항의 합의문에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큰 정치로 미래지향적 국정운영 실현에 노력하기로 합의한 부분은 눈여겨볼 대목이다.이는 야당의 위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야당의 장외투쟁의 빌미가 됐던 국회 529호실을 폐쇄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지난 1년여 동안 李총재가 대여(對與) 강경노선을 고수해온 것도 ‘정당한 예우’ 요구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다시 말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고,이른바 총풍과 세풍이 과거 대선때문제였다는 점에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합의한 점은 시사하는바가 매우 크다. 어쨌든 정치개혁 일정을 제외하고 생산적인 정책경쟁,남북문제 정책협의,실업문제,인위적 정계개편 지양 등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 이견은 없었다.金대통령 스스로도 “매우 생산적이고,협조적인 대화”로 평가했고,李총재 역시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金대통령의 정국운영 행보에 일단 속도가 붙을것으로 관측된다.여야관계 복원을 통한 정치안정 속에서 정치개혁이 본격 논의되는 국면에 들어선다면 집권 2차연도의 개혁과제가 가시권에 들어서기 때문이다.여기에 민생 현안에 대한 여야간 대화채널이 가동될 경우 정국운영은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한 차례의 총재회담이 과연 감정의 앙금까지 쌓인 여야간 신뢰회복의전기가 될 수 있느냐는 부분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더구나 정국주도권의 변수가 될 재·보선을눈앞에 두고 있어 정당의 이해를 떨치기가 쉽지는 않을것이라는 지적이다. 양승현- 총재회담 결과 정치권 반응 여야 총재회담 결과를 보는 청와대와 각 당의 평가는 ‘만족’이었다.지난해 11월10일 이후 모처럼 열린 탓이기도 하지만 여야 총재가 165분 동안 국정 전반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는 것같다. ▒청와대 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총재는 회담이 끝난 뒤 양측 대변인을 불러 회담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한 뒤 6개 항의 합의문을 전달.합의문에는 두 사람의 서명이 없어 눈길을 끌었는데 “그만큼 두 분이 신뢰 속에 회담을 마친 것”이라고 朴智元청와대대변인이 설명. 金대통령은 李총재와 함께 간략한 회담소감을 밝힌 뒤 “인간적인 관계까지 논의,신뢰를 깊이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운을 떼며 朴대변인에게 25분간 회담내용을 구술.朴대변인은 ‘인간적인 관계가 구속된 李총재의 동생 會晟씨를 얘기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말씀은 없었다”며 “두 분 사이의 신뢰관계를 다졌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짤막하게답변. 이에 앞서 金대통령과 李총재는 오전 8시 정각 대좌,5분여 환담 후 배석자들을 물리친 뒤 조찬을 겸한 단독회담을 시작.회담 후 표정과 달리 회담 시작 부분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기도. ▒국민회의 鄭均桓총장은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남북문제,경제회생 및 실업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고 초당적으로 대처하기로 한 것은 국민의여망에 부응한 잘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당 차원의 차질 없는 후속 조치마련을 다짐했다.鄭東泳대변인은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던 정치 분야개혁을 위해 정치개혁 입법을 조속히 처리하기로 한 것도 성과”라며 “경제와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여야를 떠나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는 큰 정치의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 李完九대변인은“경색된 여야 관계를 풀고 6개 항에 걸친 합의를도출한 것은 커다란 성과”라며“합의사항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돼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치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安澤秀대변인은 “대체적으로진지하고 허심탄회한 회담이었다”며 “야당 존중,인위적 정계개편 중지,고문·도청 등 인권문제,특히 국회 529호실 폐지에 대해 언급한 金대통령의 성의 있는 자세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安대변인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여야 상생(相生)정치의 단초가 마련되기를 바란다”며 “국민을 위한 신뢰받는 정치가 복원되기를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양승현
  • 남북‘간접대화’한창

    당국간 회담을 염두에 둔 남북간 간접대화가 한창이다.공식 대좌에 앞서 보도매체를 통한 ‘공개 대화’다. 金大中대통령은 미국 LA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멀지 않은 장래에 북한과 본격적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는 북한도 남북대화 ‘수요’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음을 뜻한다. 이에 대한 직접적 화답은 아니었지만 북한 평양방송도 13일 대화 의지를 다시 내비쳤다.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해서는 대화와 접촉은“언제,어디서,어떤 형식으로 진행해도 좋다”고까지 적극적 어휘를 사용했다. 다만 세가지 전제조건 이행요구를 되풀이했다.지난 3일 북측이 하반기 고위급 정치회담을 제의하면서 내걸었던 국가보안법 철폐,한총련 등의 자유활동보장,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등의 주장이었다. 양측은 이미 한차례 ‘고공(高空)대화’를 주고받았다.통일부대변인이 4일‘조건 없는 당국간 대화 조속 재개’를 수정 제의하자 북측 조평통은 8일전제조건 고수로 되받았다. 문제는 대화시기를 늦추려는 북한의 자세다.한 당국자는“당국자회담은 상반기 북·미협상이 어느 정도 진전되느냐에 따라 영향받을 것”이라고 밝혔다.금창리 지하시설을 빌미로 미국과 ‘큰 거래’를 먼저 튼 뒤 대화에 나서겠다는 게 북한의 속셈이라는 얘기였다.전제조건 이행요구도 ‘필리버스터’(시간끌기용 의사진행 방해)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측이 던지는 ‘유인구’(誘引球)에 따라 북측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비료 등 영농지원문제를 고리로 비공식 특사교환 제의가내부적으로 검토되는 분위기다.具本永 kby7@
  • 오늘 사무총장회담 전망

    국민회의 鄭均桓 사무총장과 한나라당 辛卿植 사무총장이 11일 오랜만에 공식 대좌를 한다.대화정국으로의 물꼬가 트이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상당부분 조율이 이뤄졌음을 감지할 수 있는 여야지도부의 발언도 잇따랐다.金正吉 청와대 정무수석은 10일 “정국정상화가 金大中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라고 여권의 방침을 전했다.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도 이날 “정치가 좋은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기대감을 피력했다.회담결과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없다.하지만 양당 사무총장은 ‘대화정국 조성을 위한 국회정상화와 총재회담을 위해 서로 노력한다’는 원칙적인 선에서 일괄 타결을 시도할 것으로전해졌다.여권은 야당의 주장에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야당은 적당한선에서 이를 수용,실리를 챙기는 모양새가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물밑 접촉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한 큰 그림은 그렸다는 관측도 있다.비공개 접촉을 고집하던 한나라당이 공개접촉으로 방향을 튼 데서도 이를 감지할수 있다. 그러나 여야 사무총장이 만난다고 해서 경색정국이 곧바로해소되는 않을것 같다.산적한 쟁점마저 일거에 해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따라서 당분간 자존심 싸움을 계속하며 시각차를 좁혀 나갈 것으로 보인다.한나라당측은부인하고 있지만 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처리 및 李會晟씨의 선처 여부도커다란 걸림돌이다. 한나라당 李富榮 총무는 “총재회담을 전제로 徐相穆의원이나 李會晟씨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얘기다”면서 “정면 대응하고,정당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표결처리를 한번 해보자는 결기를 엿볼 수 있다. 국민회의가 자존심을 건드린 측면도 있다.국민회의 鄭均桓 사무총장은 지난 9일 “徐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와 朴相千 법무부장관·李鍾贊 국정원장 해임건의안 등을 일괄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샅바싸움은 ‘DJ비자금 폭로 조작’을 놓고도 이어졌다.여야의 자존심을 건 설전은 ‘설전 민심잡기’와 맞물려 총재회담 직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姜東亨 yunbin@
  • 『北 정치회담 제의』남북대화 성사될까

    남북관계가 본격적 해빙의 계기를 맞을 것인가.북한의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 제의에 대해 정부가 4일 종전보다 일단 전향적으로 대응하면서 이에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날 북한측의 제의에 담긴 긍정적 요소를 짐짓 높이 평가했다.이를바탕으로 조건없는 당국간 회담을 수정제의하기도 했다. 이는 막 지펴진 대화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려는 우리측의 의지를 반영한다.다시 말해 “북한의 부정적인 면을 축소해 나가면서 긍정적인 면을 확대해 나가겠다”(朴智元청와대대변인)는 기본입장인 셈이다. 물론 당국자들도 내심 북측 제의에 긍정·부정적인 측면이 혼재돼 있다는것을 인정하고 있다.이를테면 회담성사에 세 가지의 전제조건을 단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다.합동군사훈련 중지 등 한·미공조 파기와 한총련 등의 자유활동 보장 및 국가보안법 철폐 등은 우리측이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한 긍정적 변화 기류도 읽혀졌다.대화제의 편지의 수신대상에‘대한민국 金大中대통령’을 명기하면서 그동안 기피해왔던 우리측 당국을대화상대로 인정한 대목이 그것이다. 특히 우리측의 최우선 과제이나 북측의 금기사항이었던 이산가족문제까지의제로 포함시킨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우리측의 일관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화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본입장이 ‘조건없는 당국대화의 조속한 재개’라는 정부의 수정제의로 나타났다.공은 이제 다시 북측으로 넘어간 셈이다. 그러나 북측이 당장 우리의 기대에 부응해올지는 미지수다.당국도 다자협의체의 일원으로 포함된 고위급 정치회담의 일정을 북측 스스로 하반기 이후로 못박았다.이는 상반기중에는 금창리 핵의혹시설을 고리로 미국과의 모종의빅딜에 주력하겠다는 의사표시일 수도 있다. 북측의 절박한 식량사정 등을 감안하면 다른 추론도 가능하다.지난해 4월베이징 비료회담 같은 당국 대좌가 전격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비공개 접촉으로 상대방의 ‘대화의지’를 타진하는 과정에서 그러한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올 남북대화 재개 낙관 정부측 복안 뭘까

    “언론이 너무 앞서가는 것 같다” 7일 한 고위당국자는 남북간 막후접촉설 등 최근 일련의 보도에 우려를 표시했다.그러면서 “현재 진행중인 비공개접촉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올해 남북대화 재개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론을 폈다.그 근거로 남북 당국자회담에 대한 북한측 수요가 커졌다는 점을 들었다. 이를 테면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농업생산력 향상을 길게 거론한 사실이 그 방증이라는 얘기였다.북측이 독자적으로 실현불가능한 ‘먹는 문제’해결을 강조한 사실은 우리측에 도와달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우리측으로선 북측이 각종 농자재지원을 갈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북한의 비료 부족사태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외교안보연구원측도 파종기인 봄철을 앞두고 북측이 지난해 베이징회담과 같은 회담을 제기할 가능성을 점쳤다. 정부측은 이처럼 느긋한 자세다.따라서 뭔가 다른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북한이 여건상 대화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황적 설명 이외에 실제로 북한의 의사를 이미 타진했다는 가설이다. 북한문제 관련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지난 연말 중국 옌지(延吉)에서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북측이 한국측 참가자에게 다음번 회의에 장·차관급 고위인사가 참석할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의례적인 언급일 것”이라며 일단 발을뺐다.다만 ‘선(先) 민간접촉 후(後) 당국대화’라는 기본입장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달 중순 鄭夢準대한축구협회회장의 방북시 동행하는 韓昇洲전외무장관 등 전직 고위관리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모아진다.당국자회담에 대한 비공식적인 의사타진이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인 셈이다. 현재로선 이 시나리오의 진위를 확인키 어렵다.다만 베이징회담류의 대좌가 이뤄지면 우리측은 이른바 ‘상호주의’를 좀더 탄력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예컨대 대북 비료·식량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성사를 맞바꾸는 대원칙은불변이지만 그 ‘시차’는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고위당국자는 “시차를 몇개월 두느냐는 국민여론에 따를 것”이라고 귀띔했다.이어 “남북 정상회담은 당국간 회담의 결정판으로 이뤄질 것”이라며과거처럼 정상회담 한 건만을 성사시키기 위한 밀사접촉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具本永 kby7@
  • 韓·美 정상회담­이모저모

    ◎DJ 색소폰 연주 권유에 클린턴 “마우스피스 안가져와…”/영어로 가벼운 인사말 나눠/예정시간 무려 50분 넘긴 대좌/高 인권차관보 기념촬영 사양 金大中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1일 오전·오후 청와대에서 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데 이어 저녁에는 청와대 만찬에 참석,우의를 다졌다.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실무적 성격이 강한 ‘공식방문(Official visit)’으로 국빈방문이 아니어서 부인 힐러리 여사는 동행하지 않았다 . ▷청와대 도착◁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40분 숙소인 하얏트호텔을 출발,10여분만에 청와대에 도착해 현관에서 金대통령으로부터 영접을 받았다.양국 정상은 영어로 가볍게 인사말을 나눴다.클린턴 대통령은 金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한 뒤 2층 회담장으로 이동하다가 사진기자들의 요청으로 본관 1층 계단 앞에서 다시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클린턴 대통령은 방명록에 영어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인 한·미 양국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썼다.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하는 동안 金대통령이 방명록 상단에 미리 쓰여있던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미합중국 대통령 방한 1998.11.21’이라는 한글 문구를 읽어주자 클린턴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회담◁ 두 나라 정상은 오전 11시5분부터 12시27분까지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다.단독회담은 예정된 30분을 넘겨 1시간20여분 동안 계속돼 무려 50분을 넘겼다.단독회담이 길어진 이유는 양국 정상들이 북한 지하핵시설 건설 의혹과 북한 간첩선 남파,통상현안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한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비공개 회담에 앞서 金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오지 못한다고 해 몹시 실망했다가 다시 온다는 연락을 받고 믿음을 확인했다”고 인사했다.이에 클린턴 대통령은 “매우 고맙다”고 화답했다.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金대통령이 인사를 건넬 때마다 몸을 반 이상 金대통령 쪽으로 기울이는 등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회담 후 두 정상은 승강기 앞에서 헤어져 金대통령은 백악실에서 비빔밥을,클린턴 대통령은 국빈대기실에서 양식 뷔페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오후 공동 기자회견 준비를 했다. 회담장에서 눈길을 끈 인물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 행정부 최고위직까지 오른 해럴드 고(한국명 高홍주) 국무부 인권담당차관보.고씨는 확대정상회담에만 배석하는 관계로 단독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회담장 옆 집현실과 부속방에서 미국측 관계자들과 환담하는 모습이었다.고씨는 한국측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기념촬영을 요청했으나 한사코 거부했다. ▷공식만찬◁ 金대통령이 영빈관에서 베푼 공식만찬은 클린턴 대통령의 도착이 늦어져 예정보다 20분 늦게 시작됐다. 金대통령은 만찬도중 클린턴 대통령이 팔레스타인과 북아일랜드 등 세계 각 지역의 평화회복에 기여한 사실을 평가한 뒤 “중동 평화협상시 어떤 분이 설득하기 어려웠냐”고 묻자 클린턴 대통령은 “네타냐후가 설득하기 훨씬 어려웠다”고 답변했다. 金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이 세계 평화에 공헌한 업적은 길이 빛날 것이라고 평가한 뒤 “임기후에는 무엇을 할 계획인가”고 질문했다.이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은 “도서관을 설립해서 공직에 뜻이 있는 젊은이들의 공직 진출을 돕고 싶고,세계 분쟁 해결,지구 온난화 등의 분야에서 활발히 기여할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金대통령은 공연 관람 도중 “색소폰을 잘 하신다는 데 한번 해보시죠”라고 권유하자 클린턴 대통령은 “좋아하지만 오늘은 마우스피스를 가져오지 않아 연주할 수 없다”고 사양하기도 했다.
  • “경색정국 타개” 여야 모두 환영/총재회담 청와대·여야 반응

    ◎청와대­“생산적 정치로 가는 이정표 세워”/국민회의­“IMF 극복·개혁작업 순조로울것”/한나라당­“건전한 여야관계 확립의 새 전기” 지루한 막전막후의 협상끝에 10일 청와대에서 대좌한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2시간20분에 걸쳐 단독회담에 임했다. ▷오찬회담◁ ○…두사람은 회담을 마치고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과 安商守 한나라당 대변인을 불러 회담내용을 전한 뒤 양당 총무간 합의된 발표문에 서명, 상호 교환했다. 두 사람은 대화 내용을 자세히 적은 노트(金대통령)와 메모지(李총재)를 보며 번갈아 회담내용을 구술했고 “두분 모두 상대방의 설명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朴대변인이 전했다. 朴대변인은 회담 결과에 대해 “여야대치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좋은 분위기로 평가한다”며 만족감을 피력했다. ○…12시30분쯤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날씨와 단풍을 화제로 가볍게 대화를 시작하며 분위기를 잡아갔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표정이 굳어 있어 다소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전언이다. 이에 앞서 金重權 청와대비서실장은 李총재 일행과 환담을 나누며 “李총재 주변에 법조인들이 많아 합리적이지만 까다로운 측면도 있다”며 어렵사리 성사된 회담 소감을 우회적으로 표현. 한편 이날 오찬엔 중국음식이 나왔고 과일을 포함해 모두 6가지 메뉴였다고 朴대변인이 전언. ▷국민회의◁ ○…이번 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키는 큰 역할을 한 鄭均桓 사무총장은 “총재회담으로 대결과 투쟁의 정치가 화해와 협력의 정치로 가는데 큰 물꼬를 텄다”면서 “앞으로 IMF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여야간 협조체제는 물론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鄭東泳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는 생산적 정치의 대도로 가는 한 이정표가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여야는 이제 내년도 예산안을 심도있게 다루고 경제회생을 위한 개혁입법을 진지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여야 총재회담으로 “건전한 여야 관계 확립의 전기가마련됐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청와대 회담을 마친 李총재는 오후 3시37분쯤 여의도 당사에 도착,기자간담회를 갖고 소감을 전했다. 李총재는 “정국 정상화를 위해 매우 유익한 회담이었다”며 긍정 평가했다. 李총재는 “金대통령이 야당을 협력자로 인정하고 여야관계를 정상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李총재는 특히 “金대통령이 경제실상과 전망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며 “金대통령이 경제상황과 야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이어 “金대통령이 ‘여당이 李총재를 과도하게 비난하고 공격한데 대해 주의를 주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安商守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金대통령이 인위적 정계개편과 보복적 사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판문점 사건과 불법 감청·고문 등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제도개선을 약속한 것은 정국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그러나 몇몇 당직자들은 “청와대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어서야”라며 협상과정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 政局 일단 관망… 대화시기 조율/金 대통령 정국해법 구상

    ◎세풍­총풍 처리 “큰 변화 없다”/영수회담 국회정상화 이후로 金大中 대통령이 12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를 포함,여야 지도자를 청와대로 초청,방일 성과를 설명하는 것은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외교와 내치를 분리하려는 金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의 일단일 뿐이다.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도 “당장 특별히 달라질 게 없다”고 강조했다.즉,국세청 불법모금사건이나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등에 관한 처리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처음 일본 오사카에서 “현재로선 초청대상에 정당 대표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밝힌 데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국회등원을 결정하는 등 상황변화가 뒤따름으로써 정당지도자도 초청대상에 포함됐다.더구나 金대통령은 이번 방일 성과를 다방면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朴대변인은 “국회가 정상화되면 국민회의에서 영수회담에 대한 입장정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아직은 한나라당에 대한 ‘선(先)사과 요구’가 유효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나라당측이 오찬행사 초청에 응하면서 金대통령과 李會昌 총재의 단독 영수회담을 요청했으나 일단 부정적 입장을 취했음을 시사했다.12일 오찬회동 후에도 단독대좌 일정은 잡아놓지 않았다.이 관계자는 “복수의 인사들이 만나는 오찬행사 이외에 金대통령이 따로 李총재와 영수회담을 갖는 방안이나 일정은 아직 검토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金대통령은 당분간 대국민 직접 설명방식으로 방일 성과를 알릴 공산이 크다.일단 관련부처의 후속조치 마련을 점검하면서 국회상황을 관망할 것으로 관측된다.또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과 중국 방문,클린턴 미 대통령 방한 등이 겹쳐 있어 당장 국내정치로 시선을 돌리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여야 영수회담은 정국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으로,향후 정국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때문에 정국상황이 어떻게 되든,정치권의 최대 현안은 영수회담일 수 밖에 없고,金대통령도 적절한 타이밍을 계속 잴 것으로 보인다.
  • 親日의 군상:7­1/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저항 포기… 親日로 명맥 이은 세도가 집안/고관대작 다수 배출… 화려한 가문 자랑/중시조 雄烈 ‘한일병합’후 男爵 받아/尹 전 대통령 숙부·사촌중 변절자 많아 우리 근·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세도가 집안의 하나로 尹致暎 전 공화당의장서리(96년 작고) 가문을 들 수 있다.尹潽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집권당 의장서리,장관,서울대 총장 등 장·차관급 이상만 13명에 학자·의사가 60여명이나 나왔다. 尹씨 가문은 한말 尹雄烈에 의해 중흥된 후 자손도 번성하여 400여명에 이른다.尹雄烈의 아버지 取東은 늘그막에 웅달산에서 기도를 하고 첫 아들을 얻었대서 이름을 雄烈이라 지었다.15년 뒤 태어난 동생은 ‘영웅(英雄)’이라는 말에 맞추기 위해 英烈이라 지었다. 雄烈은 致昊·致旺·致昌 3형제를,동생 英烈은 致旿·致昭·치성·致昞·致明·致暎 등 6형제를 두었다. 열(烈),치(致)에 이어 다음 항렬은 선(善),구(求),영(榮) 순이다.선(善)자 항렬의 유명인사는 致昊의 아들 永善·璋善,致旿의 아들 日善·明善·昇善,致昭의 아들 潽善·源善,致明의 아들裕善 등이다.구(求)자 항렬에서는 日善의 아들 錫求·鐸求,潽善의 아들 商求·同求 등이 있다.번성한 자손과 함께 이 집안에서 배출한 유명인사들의 면면을 한번 훑어보자. 중시조격인 雄烈은 1856년 무과에 급제,한말 군부대신을 지냈다.동생 英烈은 연안부사·삼남토포사·육군참장(參將,현 준장에 해당)을 지냈다.雄烈의 장남 致昊는 학부(學部)·외부협판(協辦,현 차관)을,2남 致旺은 초대 육군의무감(육군소장 예편)·대한의학협회장을,3남 致昌은 초대 주영공사와 주터키대사를 지냈다. 英烈의 아들 중 장남 致旿와 차남 致昭는 대한제국 시절 각각 학무국장과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3남 致성은 일본육사(11기)졸업 후 군부 군무국 교육과장을,4남 致昞은 육군 보병 정위(正尉,현 대위에 해당)로 예편하였다.막내 致暎은 해방 후 초대 내무장관과 서울시장, 3공에서 공화당 의장서리를 지냈다. ○부귀영화에 장수까지 致旿의 장남 日善은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致昭의 장남 潽善은 서울시장·대통령을,3남 源善은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致明의 아들裕善은 도쿄제대 의학부를 졸업,보사부 의정국장·국립의료원장을 지냈다.3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永善과 재미 원로 피아니스트 琦善은 모두 致昊의 아들들이다. 또 日善의 차남 鐸求는 원자력병원장을 역임한 후 동생 鍾求와 함께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보통 집안에서는 한명 나오기도 힘든 큰 벼슬아치가 이 집안에서는 3대에 걸쳐 속출하였다.그리고 장수(長壽)집안으로도 유명하다.중시조(中始祖)격인 雄烈(72세),英烈(86세)형제와 致昊(81세),致旺(88세)이 70,80세를 넘겼고 永善(92세),日善(91세),潽善(93세) 등은 망백(望百·91세) 이상 장수했다.부귀영화에 장수까지 겸했으니 한 가문으로서야 더 바랄 것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집안의 역사가 이렇게 화려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도 적지않다. ‘친일’은 이 집안 중흥의 1등공신 雄烈(1840∼1911)로부터 시작된다.1856년(철종 7년) 무과에 급제,1861년 충청 감영의 중군(中軍)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선 그는 1880년 별군관으로 朴永孝·金玉均 등과 함께 수신사 金弘集을 따라 일본을 다녀온 후 이듬해 일본식 신식군대인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이 되었다. 1882년 별기군과의 차별대우를 참다못한 구식군대가 반란(소위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그는 시위대에 쫓겨 원산을 거쳐 나가사키(長崎)로 줄행랑을 쳤다.도중에 원산에서 주민들에게 발각됐으나 한 일본인 승려의 도움으로 피신했다고 한다.도쿄 체류중 그는 ‘조야신문(朝野新聞)’(1882년 9월2일)과의 인터뷰에서 구식군대의 반란은 조선 내 수구파들이 세력을 잡기 위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갑신정변 무렵 귀국한 그는 개화당 정권에서 형조판서를 지내다가 정변이 실패하자 1886년 능주(綾州)로 귀양갔다.그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파가 다시 집권하자 경무사·군부대신을 지내다가 1896년 소위 ‘춘생문(春生門)사건’에 가담했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일제말기에 지조 꺾어 대한제국 성립 후 다시 벼슬길에 나서 궁내부 특진관·군부대신을 지낸 그는 1910년 한일병합 후 일제로부터 은사금 2만5,000원과 남작(男爵)작위를 받았다.그의 작위는 장남 致昊가 습작(襲爵)하였다.致昊는 1913년 ‘105인사건’의 확정판결로 실작(失爵)되었으나 이는 ‘충순(忠順)치 않은 행위’(‘조선귀족령’ 제7조),즉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박탈당한 다른 사람(남작을 거절하고 순국한 金奭鎭 등)들과는 구분된다. 雄烈·英烈 두 형제 중 친일 경력자는 동생인 英烈의 집안에 많다.英烈의 장남 致旿는 한말 중추원 참서관(9품)·학부(學部,현 교육부)학무국장을 역임했는데 한일병합 후 중추원 부찬의·찬의(1910∼15년)를 지냈다.차남 致昭 역시 한말 중추원 의관을 거쳐 일제하에서 중추원 참의(1924∼27년,주임관 대우)를 지냈다.특히 致昭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14일 당시 쌀 120가마 값에 해당하는 2,000원을 국방헌금으로 내고 같은해 9월9일 결성된 ‘애국경기도호(號)’ 군용기 헌납기성회의 집행위원을 지냈다. 3남 致성은 일본육사를 마치고 구한말 정부에서 육군기병 부령(副領,현중령에 해당)으로 예편한 후 한일병합 후에는 실업계로 진출,분원자기 취체역(중역)·경성조선인상업회의소 특별위원을 역임했다.막내 致暎은 미국 유학시절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歐美)위원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그러나 그 역시 일제 말기에 가서는 지조를 꺾은 것으로 보인다. 친일 잡지에 그의 이름으로 된 글이 실려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임전대책협의회 채권가두유격대에 참가(1941년 9월7일)했다.또 그해 12월20일에는 친일 잡지사 동양지광사(東洋之光社) 주최 ‘미영(美英)타도 대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그는 회고록 ‘윤치영의 20세기’에서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 실린 자신 명의의 글은 이름을 도용당한 것이라며 “일제 전시하여서 명예훼손 소송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그의 건국포장 서훈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밖에 致旿의 아들 중에도 친일 경력자가 더러 있다.교토제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 지낸 장남 日善은 일제가 주최한 ‘미영타도 대강연회’에 연사로 참가한 적이 있다.또 도쿄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차남 明善은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정부에서 총무청 통계과장·국무성 사무관·간도성(間島省) 차장을 지냈다.4남 昇善은 관동군사령부에서 대위로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독립운동가 가문과 사돈 맺은 아이러니/尹致昌 결혼 당시 심한 반발로 한때 감금되기도 자손이 많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안은 친일 가문은 물론 독립운동가 가문과도 더러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雄烈의 3남 致昌은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孫貞道 목사의 장녀 孫眞實과 결혼했다.초대 해군참모총장·국방장관을 지낸 孫元一 제독, 재미 원로의사 孫元泰(84세) 박사,YMCA 회장을 지낸 여성계의 원로 孫仁實(81) 등은 모두 眞實의 동생들이다.독립운동가 진영은 이들의 결혼을 거세게 반대하며 한때 致昌을 감금하기도 했었다. 致昊의 차남 光善(6·25때 납북)은 독립협회의 창건자이자 ‘황성신문(皇城新聞)’의 사장을 지낸 南宮檍의 딸 南宮慈卿과 결혼,4남3녀를 두었다.致昊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집안 딸 중에는 독립운동가 당사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다.致旺의 장녀 善姬는 2차대전 때 OSS 대원으로 활동한 張錫潤(95) 전 내무장관과 결혼하였다.이밖에 致昭의 차남 浣善의 부인 李順貞은 한말 탁지부 대신 李容稙의 딸이자 ‘을사조약’후 자결,순국한 충정공 趙秉世 선생의 외손녀다.
  • 北 미사일·핵 대응 공조 모색/洪 외통부장관 20일 유엔 방문

    ◎취임후 처음 韓·美·日 외무회담 열어/러·埃·이스라엘과 대좌도 주목거리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이 유엔을 방문,취임 후 처음으로 다자(多者)외교무대에 나선다.洪장관은 오는 20일부터 27일까지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다. 洪장관은 우선 21일 한·미·일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북한의 지하 핵시설건설 의혹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3국 공조방안을 모색한다.또 일본(21일),중국(22일)을 비롯한 16∼17개국 외무장관과의 양자회담도 매일 두세차례씩 예정돼 있다.이바노프 신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도 주목거리다.17일 한·러 정부가 정보외교관 추방사건의 앙금을 씻고 관계정상화를 선언한 만큼 양국 정상회담 추진 등 건설적 의견 교환이 예상된다. 최근 군사사절단이 입북(入北)한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와의 외무장관 회담(23일)에 이어 북한 미사일의 중동 수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스라엘과의 회담(25일)도 잡혀 있어 북한 미사일의 중동 수출과 관련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洪장관은 귀국 전날인 25일상오 11시(뉴욕 현지시각) 유엔총회에서 우리의 대북(對北) 포용정책과 북한 미사일개발에 대한 입장 등에 관해 20분간 기조연설을 한다.북한은 자신들의 미사일발사 능력에 우려를 표명하는 한·미·일의 기조연설에 일일이 답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洪장관은 22일 뉴욕타임스 본사를 방문,웅거 논설위원 등과 대담한 뒤 다음날에는 CNN과 생방송으로 7분간 인터뷰할 예정이다.아울러‘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유치한 국제기구인‘국제백신연구소(IVI)’의 본부협정에도 서명한다.
  • 親日의 군상:2/국립묘지에 묻힌 日帝경력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성지’에 일제고관·황군장교까지/‘과거’ 검증 안된채 안장… 끝없는 논란/백강 선생 “나는 국립묘지 싫다” 유언 “내가 죽거든 국립묘지에 묻지말고 생사를 같이한 임정요인들이 누워있는 효창원 묘역에 묻어달라.” 지난 93년 1월 타계한 마지막 임정요인 백강 趙擎韓 선생의 유언이다. 백강 선생은 왜 남들이 다 묻히기를 원하는 국립묘지 안장을 굳이 거부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한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국립묘지에 누워있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립묘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모신 민족의 성지다. 그러나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사 중에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력한 인사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이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논란이 있어왔다. 국립묘지 내에서 친일단체나 일제 통치기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묻혀 있는 묘역은 국가유공자묘역,애국지사묘역,장군묘역 등 세 곳.국가유공자묘역에는 제1묘역의 白樂濬·陳懿鍾·白斗鎭·嚴敏永·黃鍾律·李殷相·李瑄根 등 7명,제2묘역의 趙鎭滿 등 모두 8명이 묻혀 있다. 문교장관과 참의원 의장을 지낸 白樂濬은 1942년 4월 창간된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陳懿鍾은 경성제대를 나와 일본고등문관 행정과에 합격,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도청에서 농무과장을 지냈다. 白斗鎭 전 국무총리는 도쿄제대 상대 출신으로 조선은행에 근무했다. 3공때 장관을 지낸 嚴敏永과 黃鍾律은 모두 일본 규슈(九州)제대 출신으로 嚴씨는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에 합격하여 군수를,黃씨는 만주 고등문관 행정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 재정국에서 관리를 지냈다. ‘민족시인’으로 일컬어지는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신문 ‘만선(滿鮮)일보’에 몸담은 경력이 있으며 문교장관,초대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李瑄根은 만주국의 국회격인 협화회(協和會) 간부를 지낸 기록이 있다. 3·4대 대법원장을 지낸 趙鎭滿은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에 합격,해주지법 판사와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이들이 해방후 국가에 공로가 있다고 하지만 일제 당시의 행적을 무시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데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애국지사묘역은 일제하 항일투쟁 공로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수여(추서포함)받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모신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친일의 ‘흠’이 있는 인물은 근처에도 가서는 안되는 ‘성역(聖域)’이다. 그런데 이곳에도 친일단체 등에서 활동한 기록이 있는 사람들이 묻혀 있다. 金鴻亮(77년 독립장),崔昌植(83년 독립장),李鍾郁(77년 독립장),尹益善(62년 독립장),李甲成(62년 대통령장) 등이 그들이다. 친일파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 林鍾國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金鴻亮은 황해도 도의원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지냈고,崔昌植은 그의 아내 金元慶(63년 대통령표창)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친일 교민단체인 계림회에 소속돼 친일활동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승려로서 3·1운동에 가담했던 李鍾郁은 국민총력연맹 위원으로 불교계 친일에 가담한 일이 있으며 尹益善은 경성부(현 서울시) 원서정(苑西町) 총대(總代·지금의 동장에 해당)와 경성부 북부정회 총대회 간사를 지냈다.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해방 후 초대 광복회장을 지낸 李甲成은 상하이에서 이와모토(岩本正一)라는 창씨명으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임정 서무국장 林義鐸,유관순 열사의 오빠 柳愚錫씨 등의 증언)이 그의 생전에도 끊이지 않았었다. 장군묘역에는 1,2,3묘역 모두에 구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누워 있다. 제2묘역의 육군중장 李應俊,제3묘역의 육군중장 李鍾贊과 육군대장 출신으로 국무총리·국회의장을 지낸 丁一權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군 ‘창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李應俊은 일본육사 26기 출신으로 해방당시 일본군 대좌(대령)였다.한국군 재임시 군의 정치개입을 반대,‘참장군’으로 불리는 李鍾贊 역시 일본 육사출신(49기)으로 일본군 공병소좌(소령)로 남방전선에서 해방을 맞았다.3공 당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丁一權은 만주 봉천군관학교 5기 출신으로 朴正熙 전 대통령(신경군관학교 2기 출신·국가원수묘역 안장)과 같이 만주군에서 장교를 지냈다.지난 2월 대전국립묘지(장군묘역)로 이장한金昌龍(사후 중장 추서) 전 특무부대장은 만주 관동군 헌병대에서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장군묘역에 있는 사람들은 건국후 창군과 6·25및 그 이후의 공로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일제 당시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입대하여 ‘황군(皇軍)’의 장교를 지낸 인물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애국지사 묘역에 묻힌 선열들/일제 항거 애국열사 등 1,341위 모셔/임정묘역엔 박단식·양기탁 선생도 국립묘지내에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모신 곳은 애국지사묘역(대전분소 포함)과 임정묘역 두 곳이다.이곳에는 한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의분을 참지 못해 자결한 순국선열을 비롯해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애국열사들이 안장돼 있다. 98년 8월 현재 현재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총 1,341위(대전분소 1,136위 포함),임정묘역에는 최근에 유해를 봉환한 양기탁(梁起鐸) 선생 등 16위의 애국선열이 안장돼 있다.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 애국지사들을 활동분야별로 보면,申乭石·李仁榮 등 의병장,李鍾一·洪秉箕 등 3·1운동 관련자,의거 당시 64세의 나이로 사이토(齋藤)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姜宇奎 의사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金相玉 열사등 의열투쟁가,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 순국한 朱基徹 목사,외국인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하고 제암리학살사건의 진상을 전세계에 공개한 스코필드(한국명 石虎弼) 박사,여류독립운동가 南慈賢 여사,‘독립신문’을 창간한 徐載弼 박사 등 항일 독립운동계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총망라돼 있다. 93년에 조성된 임정요인묘역은 임정관계자중 국무위원급 이상의 요인들을 별도로 모신 묘역. 이곳에는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낸 朴殷植 선생을 비롯해 국무령을 지낸 李相龍·洪震·梁起鐸 선생과 임시정부 의정원(국회에 해당) 의장을 지낸 金仁全 선생·孫貞道 목사,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盧伯麟 선생,국무총리 대리겸 외무총장을 지낸 申圭植 선생,국무원 통위부 총장 金東三 선생,그리고 임정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지낸 趙擎韓(94년 3월 애국지사묘역에서 이장함) 등이 안장돼있다. 임정의 주석을 지낸 백범 金九 선생과 尹奉吉·李奉昌 의사 등은 효창원묘역에,임정 내무총장을 지낸 申翼熙 선생 등은 수유리 묘소에 안장돼 있다. 현재 동작동 국립묘지가 만원이어서 최근에 작고한 애국지사는 대전 분소에 안장되고 있다. 柳寬順 열사와 같이 후손이 없는 무후(無後)선열들은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를 봉안해 놓고 있다. ◎‘친일의 군상’ 자문위원 12명 위촉/객관·공정성 검증… 반론권 보장합니다 서울신문사는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기획한 ‘친일의 군상’시리즈를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12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자문위원은 역사학자·변호사·종교가·언론인 등 관계분야의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됐습니다. 모든 글은 자문위원들의 검증과 명예훼손 등 법적인 검토를 거쳐 게재됩니다. 자문위원은 인물 선정에도 참여하며 정기적으로 만나 시리즈의 내용을 종합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할 것입니다. 서울신문사는 특히 보도된 내용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합니다. 자문위원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金祐銓 전 광복회 부회장 ▲姜萬吉 고려대 교수(한국사) ▲韓相範 동국대 교수(법학) ▲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한국기독 교총연합회 공동회장) ▲李泰鎭 서울대 교수(한국사) ▲姜昌一 배재대 교수(한일관계사) ▲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박은경 광운대 강사(정치학) ▲林大植 외국어대 강사(한국사) ▲金三雄 서울신문 주필(친일문제연구 가) ▲崔光一 서울신문 제작이사
  • 고미술 精髓 한자리에/다보성 신자료 소품展 31일까지

    ◎상당수 미공개 명품 말모양 띠고리 ‘국보급’/청자관음보살 입상 화관 서양식 ‘이채’/백제 환두패도 눈길 니금산수도·금강산도도 우리나라 고미술품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다보성 고미술품 신자료 소품전’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다보성 고미술전시관(581­5600)에서 열린다. 31일까지. 이 전시회에서는 희귀한 말모양 띠고리를 비롯해,토기 목기 금속 도자기 회화 민예품 등 500점이 전시된다. 이 중 상당수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소품들이다. 전시작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길이 6㎝의 청동기시대 말모양 띠고리. 동물모양 장신구의 일종인 이 띠고리는 허리에 두르는 띠 한쪽에 고리를 만들어 부착시킨 것이다. 이같은 문양과 형태는 발견된 예가 드물어 국보급으로 손색이 없다는 게 전시회를 갖는 다보성측 주장이다. ‘청자 관음보살 입상’도 보기 드문 명품이다. 12세기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관음상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양손에 향통을 들고 있다. 안면 각 부분의 표현이 명확하고 화관의 묘사도 중세 서양의 왕관인 크라운 모양을 보이는 등 이제까지 발견된 관음상과는 형태에서 차이를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사오도 볼만한 작품. 이 여래입상은 소발한 머리에 큼직한 육계,그리고 둥글고 탄력있는 눈과 코,작은 입 등을 볼 때 근엄한 표정이 나타나는 통일신라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불상은 팔각연화대좌 위에 자연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자세로 서있다. 갑옷 칼 등 백제시대의 철제장식 일괄품도 출품된다. 이중 환두태도(環頭太刀)는 고구려 고분 삼실총 벽화에 보이는 무사가 지닌 칼과 유사하다. 손잡이 부분과 칼집이 다소 부식했을 뿐 원형은 잘 보존돼 있다. 이밖에 15세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분청사기 흑상감모란문 장군’도 시선을 끄는 작품. 장군이란 물이나 술,간장 등을 담는 그릇. 이번에 출품된 높이 23㎝, 길이 21㎝의 장군은 분청에 흑상감을 했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분청사기에 흑상감을 한 작품은 지금까지 발견된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조선시대 도제(陶製)인형,조선 초기의 유명화가 이징의 ‘니금산수도’(泥金山水圖),겸재 정선의 ‘금강산도’ 등 걸작과 함께 고려시대 ‘청자국화문화병’ ‘청자상감국화문잔탁’,조선시대 ‘백자청화매죽문항아리’ ‘백자청화죽문주전자’ 등 청자와 백자 명품도 선을 보인다.
  • 잠수정 시신 北 송환/어제 판문점 통해

    북한 잠수정에서 발견된 시신 9구가 3일 하오 1시30분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송환됐다. 시신은 북한군측 유영철 대좌 등 5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간단한 시신 확인절차를 거친 뒤 인계됐다. 북한측은 시신을 건네받기 전 ‘잠수정 승조원 등 9명이 집단 자살했다’고 명시한 시신 인계인수서에 서명했다.
  • “잠수정 南北 공동조사하자”/장성급회담서 제의

    ◎해명·재발방지 약속 요구 유엔사령부는 30일 하오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사·북한군 장성급 회담에서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이 명백하게 정전협정을 위반한 도발행위라고 지적하고 북한측에 남북공동조사를 제의했다. 또 북한측의 책임있는 해명과 관련자 처벌 등 가시적인 조치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유엔사는 시신송환문제와 관련,인도적인 차원에서 조기처리한다는 데 원칙적인 합의를 보고 향후 대령급 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북측은 시신송환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유엔사는 회담에서 북측이 ‘잠수정 표류’라고 주장하자 우리측의 조사결과와 침투 도발 사실을 입증하는 사진 등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잠수정 사건을 ‘조난에 의한 우발적 사고’라고 거듭 주장했다. 비공개로 3시간 남짓 진행된 이날 회의에는 유엔사측에서 마이클 헤이든 미군 소장과 한국군의 琴기연 공군준장 등 4명이,북한군측에서는 이찬복 중장,조동현 소장,박임수 대좌 등 3명이 참석했다. 한편 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상오 열린국무회의에서 북한이 잠수정 승조원 사망 책임을 우리측에게 떠넘기려는 것과 관련,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 남북공동조사를 제의,검증되도록 함으로써 억지임을 입증토록 하라고 千容宅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 잠수정 사건도 논의/유엔사·北 장성 대좌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의 첫 장성급 대화가 23일 상오 10시 판문점 정전위 회담장에서 1시간20분동안 열렸다. 회담은 특별한 의제 없이 양측 대표단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22일 하오 발생한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우리측은 북한측에 “잠수정이 우리 영해에 들어온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측도 “조사해 보겠다”며 논쟁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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