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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신진 개혁세력’시민단체 주역들 급부상

    金大中대통령이 ‘젊은 신진 개혁세력’에 대한 영입 구상을 밝히면서 시민단체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정부측에 재벌개혁을 촉구하는가 하면 소액주주운동등을 통해 기업의 경영 투명성 제고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특히 파행국회시국회의원 세비반납운동을 벌이고 국정감사에서 의정감시의 안테나를 세우는등 외곽에서 정치권의 개혁에도 앞장서 왔다. 시민단체들은 金대통령의 구상과 관련,두가지 반응이다.시민운동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시민운동의 순수성 훼손을 우려하는 지적도 만만찮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개혁성 때문에 여권은 ‘수혈 대안세력’으로 매력을 갖고 있다.특히 시민단체들을 이끌고 있는 ‘젊은 지도자’에게 관심이 많다.여권에서는 벌써 ‘젊은 지도자 집단’에 대한 광범위한 스크린작업에 나서고 있다. 자천타천 ‘영입’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각 시민단체의 리더들에는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사무처장 朴元淳변호사,孫赫載협동사무처장,曺喜嚥 성공회대교수와 경실련의 柳鍾星사무총장,李弼商고대교수가 있다.또 환경연합의 崔冽사무총장,녹색운동연합의 張元 대전대교수 등이 있다. 정치개혁시민연대의 孫鳳淑공동대표와 한국시민단체협의회의 徐京錫사무총장,한국 YMCA 李南周사무총장이 거론된다.여성단체연합의 李景淑,池銀姬,申蕙秀 공동대표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金在玉사무총장,흥사단의 朴聖圭사무총장,한국유권자운동연합의 金秉準집행위원장 등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崔光淑 bori@
  • [국민의 정부 국난극복 1년] (3) 對北정책 입체화 전략

    金大中대통령 취임 2년째인 올해 대북 포용정책은 지난해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康仁德통일부장관이 23일 밝힌 99년 업무계획에서 그 밑그림의 일부가 드러났다.金대통령의 한반도 문제 해법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다. 기본방향의 하나가 대북 포용정책의 일관성 유지다.지난해 정경분리에 의한 남북경협 사업의 활성화,특히 금강산관광사업 성공으로 인한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있다. 더 주목되는 것은 국제적 차원에서 ‘포괄적 대북 접근’을 추진한다는 기본방향이다.금창리 지하시설로 다시 촉발된 북한핵의혹 문제와 북한과 미·일 관계개선 등 모든 현안을 일괄타결지으려는 구상이다. 林東源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를 위해 최근 지구를 반바퀴 돌았다.지난달 26일부터 이달 중순까지 미국·일본·중국 등 주변 4강 중 세 나라를 순방했다.탈냉전 차원에서 대북 포용정책의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대북 포용정책의 확대는 북한체제의 조기붕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인식을대전제로 한다.지난 정부는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로간주했다.북한에 대해 연착륙을 유도하는 온건 대응과 함께 흡수통일에도 대비하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했다. 통일부의 올해 업무추진계획은 북한체제의 조기붕괴 가능성이 엷어졌다는현실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연다는 당면 목표와 더불어 중장기 ‘공존정책’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대북 농업개발지원 및 지원창구 다원화 방침,중소기업 유상대출 검토 등 대북 투자 활성화 기반조성 방침 등이 그런 차원에서 마련됐다.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려는 것도 그 일환이다.남북한 공동발전 및 경제격차 해소에 중점을 둔 장기 프로젝트인 까닭이다. 한반도문제의 본질은 남북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점이다.이른바 ‘상황의 이중성’이다.따라서 대북 포용정책의 성공을 위해선 주변 4강과의 공조체제 유지가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는 지적이다.具本永 kby7@*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국민의 정부 출범 1년.많은 것이 변했다.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국민은 “과거에 비해 뭐가 달라졌느냐”고 반문한다.큰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의 ‘속도’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국민의 정부 출범후 가장 큰 변화는 시민단체와 여성의입김이 세졌다는 것이다.시민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민주화의 척도로 평가되며 세계적 추세에도 맞다. 시민단체 활동과 관련,정치개혁시민연대는 지난해 상시 국회출입증을 처음으로 발급받아 법안과 예산안 심의,청문회 등 의정활동을 감시했다.지난해 8월에는 파행국회가 장기화하자 경실련과 YMCA 등이 나서 의원세비 반납받기운동을 벌여 결국 국회를 정상화시키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의 ‘소액주주운동’은 주요 기업 및 은행의 주총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의정부법조비리 사건은 시민단체 고발로 시작,사법개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부터 대통령 직속 여성특위,각 부처 여성담당관 설치 등 여성의 지위향상에 관심이 많았다.성희롱방지법과 여성차별금지법도 국회에서 입법됐다.공무원 여성채용 할당제,선출직 선거에 있어 여성 30% 할당제등 각종 제도적 장치들이 검토되고 있다. 실제 재경부·산자부·금감위 등에 외신대변인을 중심으로 고위직 여성관리들이 등장했다.여성 장관도 3명이나 발탁됐다.국회에서는 국민회의 秋美愛,한나라당 李美卿의원 등 맹렬 여성의원들의 활동이 돋보였다. 지난해는 또한 ‘건전한 시위문화’와 ‘새로운 토론문화’가 정착된 해이기도 했다.‘최루탄과 쇠파이프’로 인식되던 ‘폭력시위’가 거의 자취를감췄다.여권 관계자들은 ‘건전한 시위문화 정착’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97년 172회였던 쇠파이프·화염병 시위가 3회로 줄고,최루탄 사용량은 13만발에서 3,400발로 감소했다. 최루탄 제조 비용만 해도 연 12억5,000만원을 절약한 것으로 집계됐다.새로운 토론문화는 각종 정책입안 공청회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그린벨트 관련공청회에서의 불상사,국민연금 관련 여론수렴 미흡 사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토론문화는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도 같은맥락이다. 규제개혁도 빼놓을수 없다.지난 정권 5년 동안 3,000여건에 그쳤던 규제개혁은 새 정부 출범 1년동안 국회 통과 건수만으로 4,465건이나 됐다.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일황의 방한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사건’이다. ‘총풍사건’을 ‘인권신장’과 연관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사건이 여야간정쟁으로 번지면서 ‘판문점 총격요청’이라는 본질이 야당측의 일방적 주장인 ‘고문조작 의혹’과 섞여버렸다.인권에 관한한 조그마한 의혹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탓이다.어떤 이는 ‘검찰 항명 파동’을 보고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고 말한다.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는 상상할수 없었던 일이다姜東亨 崔光淑 yunbin@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4회)

    ■2·8독립선언 주역 徐 椿 지난 97년 8월 독립유공자 후손 한 사람이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독립유공자 적용배제 취소청구소송’을 서울고법에 냈다.그는 보훈처가 자신의 선친의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96년 10월 보훈처는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사 가운데 친일경력자가 일부 포함돼 있다는 재야 역사학계의 지적을 토대로 재심사를 벌여 5명에 대해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한 바 있다.해당자 5명은 徐椿·金羲善·朴淵瑞·張膺震·鄭廣朝 등이다. 소송을 낸 사람은 서춘의 아들 서인창씨(69·서울거주).서씨는 소장에서 “아버지는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혐의로 금고 9개월의 형을 받은 공적으로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은 애국지사임이 명백하다”며 “기자출신인 아버지가 일제때 쓴 기사 5,000여건 중 16건의 기사를 문제삼아 (독립)유공자에서 배제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서씨는 승소하였다.서울고법은 “‘예우배제’에 앞서 유족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은 절차상 하자가 인정된다”며 서씨의 손을 들어주었다.이에 대해 보훈처는 작년 12월 대법원에 상고,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특별1부에 계류중이다. 보훈처와 유족간에 독립유공자 예우문제를 놓고 소송으로 비화한 徐椿(창씨명 大川滋種·1894∼1944)은 어떤 사람인가?그의 아들이 소장에서 언급한 대로 그는 일제하 언론인 출신으로 ‘2·8독립선언’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초기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독립유공자로서 공적을 인정할만 하다.특히‘2·8독립선언’에 참가한 사실이나 초창기 일제의 통치정책,특히 경제정책을 비판한 사실 등은 인정된다.그러나 그가 일제말기에 친일논조의 기사를쓴 사실도 부인할수 없다. 서춘은 1894년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태어났다.‘매일신보’(1944.4.6)에 난 그의 부음기사에 따르면,그는 정주 오산학교를 거쳐 동경(東京)고등사범 박물학과에 적을 두었다가 중도에 자퇴하고 동양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다시 경도(京都)제대 경제학부에 입학,대정 15년(1926년)에 졸업한 것으로나와있다.‘2·8독립선언’의 동지이자 나중에 같이 친일대열에 섰던 춘원李光洙는 “그는 재사(才士)이기보다는 근면한 사람이었다”고 평한 바 있다. 일본 유학시절 그는 조선유학생학우회에 가입,활동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민족의식이 강한 청년이었다.1917년 연말 망년회 모임에서 그는 李琮根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자고 역설하였다.이듬해 연말 그는 도쿄기독청년회 주최로 도쿄YMCA 강당에서 열린 웅변대회에서 연사로 나서 미국대통령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 원칙아래 독립운동을 벌이자고 역설하였다. 그는 崔八鏞 등과 함께 1919년 2월 8일을 기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로 결의하고 국내 민족지도자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1월 중순 宋繼白을 서울에파견했다.2월 8일 도쿄YMCA 강당에서는 예정대로 독립선언식이 열렸고 그는현장에서 체포돼 그 해 6월 26일 제2심에서 출판법 위반혐의로 9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동경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독립유공자공훈록’ 제2권) 한편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 동양대학과 경도제대 경제학부를 졸업(1926년)한 후 귀국하여 10월 동아일보에 입사하였다.이듬해 2월 그는입사 4개월만에 경제부장에 임명되었는데 이후 그는 일제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경제평론가로 자리를 굳혔다. 초창기 그는 일제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주로 썼다.당시 그는 동아일보는 물론 각종 잡지에도 활발히 경제평론을 기고하였으며 각종 사회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 초빙되어 경제와 교양·상식에 관한 계몽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국내 민족진영 인사들의 변절행진이 시작되자 그 역시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그는 “현대전에서교전국간의 경제전이라는 것은 환언하면 협력전이다.협력! 이것은 정신의 힘이다.정부가 국민정신 총동원주간을 설치했으므로 한사람 한사람이 총후(銃後,후방)용사다.국민총력이 있고서야 총후가 공고하다”(‘四海公論’1938년 6월호)며 일제의 침략전쟁을 공공연히 찬양하였다. 이 무렵 그는 내선일체론자들로 구성된 ‘방송선전협의회’의 강사로 일하면서 친일파로서 모습을 드러냈다.1938년 그는 일제가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내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실천하고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을 후원하기 위해 군관민 각 방면 유력자들로 조직된 ‘목요회(木曜會)’의 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1940년대 들어서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등 주요 친일단체에서 간부로도 활동하였다. 그는 또 지원병제도가 실시되자 “반도청년 제군,제군에게는 이제 절호의기회가 온 것이다.내선일체,이것이 제군이 취할 절호의 기회다….1.대군(大君,일황)을 위해 태어나고,2.대군을 위해 일하고,3.대군을 위해 죽는다는 정신을 갖지 않는 자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우리 일본의 대화혼(大和魂)에서 말한다면 대군을 위해 죽는 일은 신자(臣子)된 자의 본분임과 동시에 죽는 그 사람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다”(‘총동원’1939년 10월호)며 지원병 출진을 권유하였다. 19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다시 ‘성은(聖恩)에 감읍(感泣)하며’라는 글에서 “소화 18년(1943년) 5월 13일!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멸사봉공의 열의에 불타는 반도 1,500만 민중은 이날 또다시 광대무변한 성은에 감읍하여 마지 않을 감격과 광영에 우뢰같은 환성을 폭발시켰다”(‘春秋’,1943년 6월호)며 일제의 침략전쟁을 선전하였다.학도병 권유 역시 빠지지 않았다.그는 학도병 지원 권유 조직인 경성익찬회 산하 종로익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였고 또 학도출진격려대회에서 연사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그는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 때마다 조선청년을 사지(死地)로 내모는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그의 변절은 ‘약육강식’을 합리화한 제국주의 논리를 수용한데서 비롯됐다.그는 일본유학 당시에도 “…노국(露國,러시아)이 침략하자 일본은 자위상 드디어 조선을 병합하기에 이르렀다.요컨대 약자가 강자에게 병탄되는 것을 면할 수 없는 것은 생물상의 원칙이다.…”며 이같은 의식세계를 드러낸바 있다.그런 그는 일본이 청일·러일전쟁에 이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서승리하자 조선독립에 대한 희망을 접고만 셈이다.그는 오히려 일제권력과 타협,일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겉으로는 ‘실력양성론’을 표방하였지만 이는 사실상 일제의 강압통치를 인정한 것이다.그는 식민지하 나약한 지식인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에 입사한지 10개월만인 27년 8월 그는 평안도 출신들이 대세를 이루던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취체역(중역)겸 주필에 임명되었다.1940년 동아.조선이 폐간되자 그는 다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주필로 자리를옮겨 친일언론지의 논설책임자가 되었다.1944년 4월 5일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이 자리에 있었다.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기록한 ‘공적조서’에는 ‘변절여부’를 확인하는항목이 있다.서춘의 경우 이 항목에 저촉되는 사람이다.따라서 1963년 그에게 추서된 대통령 표창은 심사과정에 하자가 있다고 하겠다.‘친일’문제는유족의 주장대로 친일기사의 건 수로만 따질 문제는 아니다.그런 식이라면춘원 이광수도 포상해야 한다.춘원은 ‘2·8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알려진인물이다. 이 소송사건은 엄격히 말해 그가 친일을 했느냐,안했느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예우박탈’을 둘러싼 행정절차 문제에 관한 것이다.따라서 서씨의 유족이 최종심에서 승소를 한다고 해도 서씨의 친일문제를 둘러싼 논란은여전히 남는 셈이다. ‘2·8독립선언’ 80주년이 되는 오늘 도쿄 현지에서는 원로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갖는다.‘2·8선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그의 ‘친일행적’이 문제가 돼 소송이 진행중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 그는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鄭雲鉉 jwh59@
  • 親日의 군상:7­1/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저항 포기… 親日로 명맥 이은 세도가 집안/고관대작 다수 배출… 화려한 가문 자랑/중시조 雄烈 ‘한일병합’후 男爵 받아/尹 전 대통령 숙부·사촌중 변절자 많아 우리 근·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세도가 집안의 하나로 尹致暎 전 공화당의장서리(96년 작고) 가문을 들 수 있다.尹潽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집권당 의장서리,장관,서울대 총장 등 장·차관급 이상만 13명에 학자·의사가 60여명이나 나왔다. 尹씨 가문은 한말 尹雄烈에 의해 중흥된 후 자손도 번성하여 400여명에 이른다.尹雄烈의 아버지 取東은 늘그막에 웅달산에서 기도를 하고 첫 아들을 얻었대서 이름을 雄烈이라 지었다.15년 뒤 태어난 동생은 ‘영웅(英雄)’이라는 말에 맞추기 위해 英烈이라 지었다. 雄烈은 致昊·致旺·致昌 3형제를,동생 英烈은 致旿·致昭·치성·致昞·致明·致暎 등 6형제를 두었다. 열(烈),치(致)에 이어 다음 항렬은 선(善),구(求),영(榮) 순이다.선(善)자 항렬의 유명인사는 致昊의 아들 永善·璋善,致旿의 아들 日善·明善·昇善,致昭의 아들 潽善·源善,致明의 아들裕善 등이다.구(求)자 항렬에서는 日善의 아들 錫求·鐸求,潽善의 아들 商求·同求 등이 있다.번성한 자손과 함께 이 집안에서 배출한 유명인사들의 면면을 한번 훑어보자. 중시조격인 雄烈은 1856년 무과에 급제,한말 군부대신을 지냈다.동생 英烈은 연안부사·삼남토포사·육군참장(參將,현 준장에 해당)을 지냈다.雄烈의 장남 致昊는 학부(學部)·외부협판(協辦,현 차관)을,2남 致旺은 초대 육군의무감(육군소장 예편)·대한의학협회장을,3남 致昌은 초대 주영공사와 주터키대사를 지냈다. 英烈의 아들 중 장남 致旿와 차남 致昭는 대한제국 시절 각각 학무국장과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3남 致성은 일본육사(11기)졸업 후 군부 군무국 교육과장을,4남 致昞은 육군 보병 정위(正尉,현 대위에 해당)로 예편하였다.막내 致暎은 해방 후 초대 내무장관과 서울시장, 3공에서 공화당 의장서리를 지냈다. ○부귀영화에 장수까지 致旿의 장남 日善은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致昭의 장남 潽善은 서울시장·대통령을,3남 源善은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致明의 아들裕善은 도쿄제대 의학부를 졸업,보사부 의정국장·국립의료원장을 지냈다.3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永善과 재미 원로 피아니스트 琦善은 모두 致昊의 아들들이다. 또 日善의 차남 鐸求는 원자력병원장을 역임한 후 동생 鍾求와 함께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보통 집안에서는 한명 나오기도 힘든 큰 벼슬아치가 이 집안에서는 3대에 걸쳐 속출하였다.그리고 장수(長壽)집안으로도 유명하다.중시조(中始祖)격인 雄烈(72세),英烈(86세)형제와 致昊(81세),致旺(88세)이 70,80세를 넘겼고 永善(92세),日善(91세),潽善(93세) 등은 망백(望百·91세) 이상 장수했다.부귀영화에 장수까지 겸했으니 한 가문으로서야 더 바랄 것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집안의 역사가 이렇게 화려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도 적지않다. ‘친일’은 이 집안 중흥의 1등공신 雄烈(1840∼1911)로부터 시작된다.1856년(철종 7년) 무과에 급제,1861년 충청 감영의 중군(中軍)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선 그는 1880년 별군관으로 朴永孝·金玉均 등과 함께 수신사 金弘集을 따라 일본을 다녀온 후 이듬해 일본식 신식군대인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이 되었다. 1882년 별기군과의 차별대우를 참다못한 구식군대가 반란(소위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그는 시위대에 쫓겨 원산을 거쳐 나가사키(長崎)로 줄행랑을 쳤다.도중에 원산에서 주민들에게 발각됐으나 한 일본인 승려의 도움으로 피신했다고 한다.도쿄 체류중 그는 ‘조야신문(朝野新聞)’(1882년 9월2일)과의 인터뷰에서 구식군대의 반란은 조선 내 수구파들이 세력을 잡기 위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갑신정변 무렵 귀국한 그는 개화당 정권에서 형조판서를 지내다가 정변이 실패하자 1886년 능주(綾州)로 귀양갔다.그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파가 다시 집권하자 경무사·군부대신을 지내다가 1896년 소위 ‘춘생문(春生門)사건’에 가담했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일제말기에 지조 꺾어 대한제국 성립 후 다시 벼슬길에 나서 궁내부 특진관·군부대신을 지낸 그는 1910년 한일병합 후 일제로부터 은사금 2만5,000원과 남작(男爵)작위를 받았다.그의 작위는 장남 致昊가 습작(襲爵)하였다.致昊는 1913년 ‘105인사건’의 확정판결로 실작(失爵)되었으나 이는 ‘충순(忠順)치 않은 행위’(‘조선귀족령’ 제7조),즉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박탈당한 다른 사람(남작을 거절하고 순국한 金奭鎭 등)들과는 구분된다. 雄烈·英烈 두 형제 중 친일 경력자는 동생인 英烈의 집안에 많다.英烈의 장남 致旿는 한말 중추원 참서관(9품)·학부(學部,현 교육부)학무국장을 역임했는데 한일병합 후 중추원 부찬의·찬의(1910∼15년)를 지냈다.차남 致昭 역시 한말 중추원 의관을 거쳐 일제하에서 중추원 참의(1924∼27년,주임관 대우)를 지냈다.특히 致昭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14일 당시 쌀 120가마 값에 해당하는 2,000원을 국방헌금으로 내고 같은해 9월9일 결성된 ‘애국경기도호(號)’ 군용기 헌납기성회의 집행위원을 지냈다. 3남 致성은 일본육사를 마치고 구한말 정부에서 육군기병 부령(副領,현중령에 해당)으로 예편한 후 한일병합 후에는 실업계로 진출,분원자기 취체역(중역)·경성조선인상업회의소 특별위원을 역임했다.막내 致暎은 미국 유학시절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歐美)위원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그러나 그 역시 일제 말기에 가서는 지조를 꺾은 것으로 보인다. 친일 잡지에 그의 이름으로 된 글이 실려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임전대책협의회 채권가두유격대에 참가(1941년 9월7일)했다.또 그해 12월20일에는 친일 잡지사 동양지광사(東洋之光社) 주최 ‘미영(美英)타도 대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그는 회고록 ‘윤치영의 20세기’에서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 실린 자신 명의의 글은 이름을 도용당한 것이라며 “일제 전시하여서 명예훼손 소송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그의 건국포장 서훈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밖에 致旿의 아들 중에도 친일 경력자가 더러 있다.교토제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 지낸 장남 日善은 일제가 주최한 ‘미영타도 대강연회’에 연사로 참가한 적이 있다.또 도쿄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차남 明善은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정부에서 총무청 통계과장·국무성 사무관·간도성(間島省) 차장을 지냈다.4남 昇善은 관동군사령부에서 대위로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독립운동가 가문과 사돈 맺은 아이러니/尹致昌 결혼 당시 심한 반발로 한때 감금되기도 자손이 많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안은 친일 가문은 물론 독립운동가 가문과도 더러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雄烈의 3남 致昌은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孫貞道 목사의 장녀 孫眞實과 결혼했다.초대 해군참모총장·국방장관을 지낸 孫元一 제독, 재미 원로의사 孫元泰(84세) 박사,YMCA 회장을 지낸 여성계의 원로 孫仁實(81) 등은 모두 眞實의 동생들이다.독립운동가 진영은 이들의 결혼을 거세게 반대하며 한때 致昌을 감금하기도 했었다. 致昊의 차남 光善(6·25때 납북)은 독립협회의 창건자이자 ‘황성신문(皇城新聞)’의 사장을 지낸 南宮檍의 딸 南宮慈卿과 결혼,4남3녀를 두었다.致昊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집안 딸 중에는 독립운동가 당사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다.致旺의 장녀 善姬는 2차대전 때 OSS 대원으로 활동한 張錫潤(95) 전 내무장관과 결혼하였다.이밖에 致昭의 차남 浣善의 부인 李順貞은 한말 탁지부 대신 李容稙의 딸이자 ‘을사조약’후 자결,순국한 충정공 趙秉世 선생의 외손녀다.
  • 유흥업소 심야영업 허용해야 하나(쟁점)

    8월1일부터 유흥업소 심야영업이 전면 허용된다.규제개혁위원회의 결정이 발표되고 난뒤 심야영업 규제철폐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자율속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과소비 조장과 청소년문제·범죄의 심화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업소 자율로/鄭宇永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부회장/규제가 불법·변태영업 양산 청소년 탈선 오히려 부추겨/공무원­업주 뒷거래도 없애 국민 역량믿고 과거 틀 깨야 ‘영업시간 규제’라는 과거의 구태가 해소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된다.규제가 시작되면서 범죄와 청소년 문제가 감소되는게 아니라 더욱 번져갔던 것을 볼 때 그 이유는 쉽게 찾아진다. 물론 시민·청소년 단체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모든 음식점이 24시간 영업을 하면 범죄와 청소년 탈선을 부추기고,과소비까지 조장할것이 아니냐는 주장일 게 분명하다.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매우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영업시간 규제 이후 범죄와 과소비 풍조가 과연 사라졌는가.불법 심야영업을 일삼는 무허가 변태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고 이제는 오히려 과소비를 더욱 부추기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심야 불법·변태업소의 수가 정식허가업소보다 무려 10배에 달하는 10만여개에 이르고 있을 정도다.그렇다고 청소년 탈선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심야영업을 일삼는 불법·변태업소들은 대부분 속칭 ‘삐끼’를 동원해 호객행위를 하고 접대부의 알선을 받고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라는 게 문제다. 영업시간 규제는 이처럼 수많은 불법·변태업소를 만들어냈고 흔들리는 청소년들에게 음성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주면서 오히려 탈선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사회단체들은 영업시간 자율화로 혹시 이같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그러한 우려는 한낱 기우에 불과한 것이다.전국 제2의 유흥규모인 부산시의 경우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부산시는 지난 96년 8월1일,새벽 2시까지로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하면서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혔다.그러나 6개월동안 한시적으로 실시한 결과 범죄와 과소비·청소년 문제 등이 오히려 감소했다.서울 이태원을 비롯해 강원 제주 대전 인천 등 많은 지방자치단체도 비슷한 상황이다. 영업시간 자율화는 오히려 지역간 불평등 해소 뿐만 아니라 단속 공무원들과 불법 업소간의 연계고리를 끊어 행정력 낭비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24시간 영업은 실직난 해소에도 상당한 도움을 가져올 것으로도 기대된다.영업시간 자율화 조치는 국민의 역량과 자질을 믿고 과거 규제의 틀을 과감히 깨뜨린 올바른 선택이다. ◎계속 규제를/辛鍾元 YMCA 시민사회개발부장/공무원 단속 의지·노력 없고 심야영업 관광활성화 의문/차분한 음주문화 조성위해 밤샘 영업 엄격히 제한해야 지난 8년여간 계속되어온 이 논란을 ‘불필요한 규제’ 철폐의 차원에서 매듭지은 결정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만 할 몇 가지가 있다.‘불가피’하게 규제를 풀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로 든 내용들에 대해서는 많은 토론과 사회적 공론 과정이 있어야 했다. 우선 불법적인 심야영업에 대해 단속의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과 관련,제대로 단속할 의지도 단속노력도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다.관계기관이 불법 영업상황을 몰라서 단속 못한 것보다 알고도 안한 것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관련 공무원들의 비리문제는 심야영업시간 제한 여부와는 다른 문제이다.시간제한이 없어진후 새벽에 변태영업을 한 업소를 적발하고도 이를 봐주는공무원 비리가 없겠는가? 법을 지키는 업소가 손해를 본다거나 불법 청소년고용문제가 많다는 점 등은 국가의 공적 기능이나 법치국가의 기강을 포기할 때 내세울 수 있는 논거이다. 문제는 심야영업의 제한을 ‘불필요한 규제’로 보는 정부의 시각이다.유흥업소의 영업시간을 제한해서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는가? 경찰력이나 공공행정력의 소모가 있는가? 오히려 위반해도 잘 단속이 안될 뿐 아니라 적발되어도 벌금 몇 푼이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위반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범죄의 문제는 심야영업시간과는 별개의 것이다.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 속에서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다.전국적으로 도시 전체가 휴흥·향락지대화돼 아무 곳에서나 밤새 술을 팔고 마실 수 있는 나라가 있나? 그래서 관광이 활성화되고 생산활동이 촉진되었나? 정감어린 친교와 문화가 있는 음주,여유와 나눔이 있는 여흥이면 족한 사회여야 하지 않나? 유흥지나 주택가의 구분도 없이 사생결단 식의 폭탄주가 지배하는 밤의 문화는 이제 종식되어야 할 때이다.유흥업소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 12시까지 영업해서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는 항변도 있다.이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향락화하여 유흥업의 공급과잉이 빚어낸 거품 때문이었다고 보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경제위기나 청소년·범죄 문제 등에 대한 대응책으로서가 아니라,문화와 시민의 생활을 생각하는 차분한 사회,사색이 있는 사회이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심야영업은 엄격히 제한되고 이를 사회적으로 준수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 2·8독립선언 등 독립운동 시발점/재일한국YMCA 창립 90돌

    재일한국YMCA(이사장 천무봉)가 25일로 창립 90주년을 맞았다.이날 하오 4시 도꾜시내 천대전구 원낙정(천대전구 원낙정) 재일한국YMCA 9층 강당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이경문 문화체육부차관과 김태지 주일대사·신용상 재일민단중앙본부단장·안현진 한국YMCA전국연맹이사장·이남주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가미산절 일본YMCA동맹이사장·표용은 서울YMCA이사장 등 초청인사와 재일교포 2백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특히 지난 1일 신임총무로 선임된 임광진 총무의 취임식이 함께 마련돼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됐다. 1부 창립기념식에서는 국민의례와 애국가제창·묵념·한국YMCA목적문낭독에 이어 천이사장이 기념사를 했으며 이문체부차관을 비롯한 초청인사가 축사를 했다.천이사장은 기념사에서 『본회가 걸어온 90년의 역사는 미래를 개척하면서 민족사의 중심에 서고자한 땀과 고뇌의 역사였다』고 회고하고 『독립운동의 기초를 이루는 2·8독립선언을 비롯한 다양한 구국운동으로 독립의 열망을 국내외에 널리 호소하고,민족의식의 고취와 역량을 키우기 위한 각종 활동으로 해방이후 한·일국교가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재일한국인의 구심점 역할과 대사관 역할을 수행했다고 자부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자리에서 천이사장과 김광수·백창호 전 이사장등 3명이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김수규 전 총무가 대한민국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어 2부에서는 임총무의 취임식이 열렸으며 특별순서로 재일한국YMCA의 90년을 돌아보는 슬라이드가 상영되고 도쿄사물놀이팀이 신나는 사물놀이를 펼쳐 참석자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임총무는 취임사를 통해 『21세기를 맞아 아시아의 관문인 도꾜에서 아시아청소년센터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일본내에서 재일동포의 권익뿐만 아니라 일본인과 더불어 사는 여건이 성숙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재일한국YMCA는 1906년 도꾜에서 창립된 뒤 재일유학생의 결집을 주도해 각종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됐으며 조만식·백남훈·신익희·이광수 선생등 쟁쟁한 민족지도자가 이 단체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70만 재일한국인을 대상으로 민속교육·문화활동·체육사업 등을 폭넓게 전개,민족문화전당으로서 산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또한 도꾜에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활동을 활발히 펴고 있다.〈도쿄=이순녀 기자〉
  • 민주당 공천자 219명 명단

    ▷서울◁ ◇종로=노무현(50·전의원) ◇중=미정 ◇용산=강창성(68·현의원) ◇성동갑=임종인(39·변호사) ◇성동을=설영주(43·정당인) ◇광진갑=강수림(48·현의원) ◇광진을=박석무(53·현의원) ◇동대문갑=장광근(42·현의원) ◇동대문을=김성식(38·당부대변인) ◇중랑갑=신형식(36·전개혁신당부대변인) ◇중랑을=조명원(47·변호사) ◇성북갑=이철(49·현의원) ◇성북을=황호산(37·전경실련서울시정연구위원) ◇강북갑=전대렬(54·4월혁명연구소연구원) ◇강북을=이기탁(42·한국정치전략연구소장) ◇도봉갑=안평수(46·당정책실장) ◇도봉을=유인태(49·현의원) ◇노원갑=유영래(49·기조실부실장) ◇노원을=이문옥(56·전감사원감사관) ◇은평갑=장두환(47·전개혁신당기조실장) ◇은평을=이장희(61·현의원) ◇서대문갑=박경산(37·전의회정치연구회이사) ◇서대문을=김태원(46·변호사) ◇마포갑=김용(48·한국원자력연구소 정책실장) ◇마포을=장신규(38·전경실련기획실장) ◇양천갑=서경석(47·전경실련사무총장) ◇양천을=이두엽(40·전KBS프로듀서)◇강서갑=박계동(43·현의원) ◇강서을=고진화(33·전민주개혁정치모임청년위원장) ◇구로갑=정병원(59·새한토건대표) ◇구로을=이승철(32·국민고충처리위 전문위원) ◇금천=이원영(41·변호사) ◇영등포갑=한경남(50·전전노련의장) ◇영등포을=김인동(60·전서울시기획관리실장) ◇동작갑=장기표(49·전민중당정책위원장) ◇동작을=김왕석(43·중앙대교수) ◇관악갑=김기정(42·바우테크대표) ◇관악을=이상호(44·전교조쟁의국장) ◇서초갑=곽일훈(54·정치개혁시민연합 지도위원) ◇서초을=안동수(54·변호사) ◇강남갑=홍성우(57·변호사) ◇강남을=이재경(31·전젊은연대 기획위원장) ◇송파갑=양문희(55·현의원) ◇송파을=김종완(64·현의원) ◇송파병=박인제(44·변호사)◇강동갑=이부영(54·전의원) ◇강동을=장기욱(52·현의원) ▷부산◁ ◇중·동=김정길(51·전의원) ◇서=최기복(49·통일산하회 부산지부장) ◇영도=김형기(34·조직국부장) ◇부산진갑=서종범(40·사랑의전화 대표) ◇부산진을=황백현(49·부산경실련상임위원) ◇동래갑=노재철(35·국민연합부산본부 상임위원) ◇동래을=정인조(52·대한약사회 약학위원장) ◇남갑=미정 ◇남을=허종복(55·부산JC회장) ◇북·강서갑=우주호(44·부산경실련사무총장) ◇북·강서을=안병해(39·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해운대·기장갑=이기택(58·현의원) ◇해운대·기장을=김기우(49·부산대교수) ◇사하갑=조경태(28·부산전문대 강사) ◇사하을=김도강(38·국회의원 보좌관) ◇금정갑=이황규(55·부산대교수) ◇금정을=김재규(48·부산민족민주운동연합 공동의장) ◇연제=미정 ◇수영=손태인(49·전총재특보) ◇사상갑=조용호(40·국제화전략연구원장) ◇사상을=정윤재(32·정당인) ▷대구◁ ◇중=이강철(48·정당인) ◇동갑=임대윤(39·전대표비서실차장) ◇동을=유중근(53·육원건설대표) ◇서갑=우동철(63·민족통일촉진회장) ◇서을=미정 ◇남=김진태(41·대구·경북 80년민주화동지회장) ◇북갑=이윤기(41·대구경실련정책실장) ◇북을=정병철(51·전경북일보편집부국장) ◇수성갑=권오선(37·정당인) ◇수성을=정상태(50·황금관광호텔대표) ◇달서갑=서정대(43·전국택시노조 대구시지부장) ◇달서을=미정 ◇달성=미정 ▷인천◁ ◇중·동·옹진=이신웅(55·인천도시문제연구소 이사장) ◇남갑=유종섭(45·정당인) ◇남을=안영근(37·전개혁신당조직국장) ◇연수=서상섭(46·나라정책연구회 부회장) ◇남동갑=김종용(38·21세기사회발전연구회 정책실장) ◇남동을=박호영(56·우성성업회장) ◇부평갑=정정훈(62·전의원) ◇부평을=정화영(47·한겨레문고대표) ◇계양·강화갑=김말용(68·현의원) ◇계양·강화을=정해남(53·전의원) ◇서=손기선(43·변호사) ▷광주◁ ◇동=김범태(42·진보정치연합 지도위원) ◇서=최운용(52·5·18민중항쟁동지회운영위원) ◇남=미정 ◇북갑=박대원(47·낙안건설대표) ◇북을=미정 ◇광산=미정 ▷대전◁ ◇동갑=김덕경(40·전대표비서실차장) ◇동을=강구철(42·대구민주시민회장) ◇중=김홍철(43·시민운동가) ◇서갑=윤석대(30·전대협부의장) ◇서을=이희원(50·정당인) ◇유성=이병영(49·전원자력연구소 원전프로젝트팀장) ◇대덕=김원웅(52·현의원) ▷경기◁ ◇수원장안=유용근(55·전의원) ◇수원권선=김정태(56·남북민간교류협회 사무총장) ◇수원팔달=김대권(38·수원경실련 전문위원) ◇성남수정=김준기(58·신구전문대교수) ◇성남중원=김일주(53·고려대교육대학원교수) ◇성남분당=성유보(52·전한겨레신문 편집국장) ◇의정부=미정 ◇안양만안=김준용(38·전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안양동안갑=최병권(39·전중앙일보기자) ◇안양동안을=송운학(43·전경실련기획실장) ◇부천원미갑=하장보(53·정당인) ◇부천원미을=조영상(35·변호사) ◇부천소사=이홍종(41·이철정책연구소장) ◇부천오정=원혜영(45·현의원) ◇광명갑=최정택(55·정당인) ◇광명을=김승남(30·전 남총련의장) ◇평택갑=박정수(48·도서출판 민족과 미래 대표) ◇평택을=장기천(57·정당인) ◇동두천·양주=김형광(61·전의원) ◇안산갑=문영희(52·전한겨레신문논설위원) ◇안산을=장경우(53·전의원) ◇고양갑=이근진(53·전신한국당정책위원) ◇고양을=홍기훈(42·현의원) ◇과천·의왕=김부겸(38·당부대변인) ◇구리=조정무(55·기호일보논설위원) ◇남양주=민병주(58·교사) ◇오산·화성=우호태(37·도의원) ◇시흥=제정구(52·현의원) ◇군포=여익구(49·전 민불련의장) ◇하남·광주=곽인식(57·전민추협운영위원) ◇여주=이규택(54·현의원) ◇파주=박영석(48·파주민보회장) ◇연천·포천=김유근(52·정당인) ◇가평·양평=조정용(55·산업교통신문사대표) ◇이천=황규선(59·동국대교수) ◇용인=나진우(50·용인JC회장) ◇안성=이무역(54·농촌생활경제연구소장) ◇김포=윤문수(33·농어민후계자) ▷강원◁ ◇춘천갑=최윤(39·춘천경실련사무국장) ◇춘천을=유남선(49·정당인) ◇원주갑=박정원(41·상지대교수) ◇원주을=안재윤(32·원주살리기운동본부장) ◇강릉갑=함영회(50·정당인) ◇강릉을=최욱철(44·현의원) ◇동해=미정 ◇태백·정선=최승영(32·민주개혁정치모임이사) ◇속초·고성·인제·양양=조영두(44·세린산업대표) ◇삼척=장을병(63·당공동대표) ◇홍천·횡성=신현택(55·대한제분조합이사) ◇영월·평창=엄화렬(59·전감사원감사과장) ◇철원·화천·양구=김철배(58·정당인) ▷충북◁ ◇청주상당=신창민(55·중앙대교수) ◇청주흥덕=정기호(54·현의원) ◇충주=정기영(37·한국정치연구회연구위원) ◇제천·단양=김대부(34·외국어학원대표) ◇청원=신언관(39·전농사무국장) ◇보은·영동·옥천=최극(63·정당인) ◇진천·음성=구자웅(47·충주MBC아나운서) ◇괴산=김연태(58·공인회계사) ▷충남◁ ◇천안갑=우부길(54·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연구위원) ◇천안을=박동인(57·한서통신이사) ◇공주=윤완중(50·건국대총동창회장) ◇보령=미정 ◇아산=이진구(56·국제사면위원회한국위원) ◇서산·태안=문석호(36·변호사) ◇금산·논산=강희재(45·전수자원공사노조위원장) ◇연기=김준회(53·대학강사) ◇부여=김택수(52·한일고대사연구회이사장) ◇서천=나소렬(37·공군사관학교교수) ◇청양·홍성=홍문표(49·88올림픽조직위전문위원) ◇예산=김성식(57·민추협상임위원) ◇당진=정석래(45·당진군JC회장) ▷전북◁ ◇전주완산=미정 ◇전주덕진=임광순(58·정당인) ◇군산갑=양재길(47·당정책위원) ◇군산을=고홍길(52·당교육연수원부위원장) ◇익산갑=손인범(39·전북환경운동연합운영위원) ◇익산을=박경철(40·시민연합대표) ◇정읍=김원기(58·현의원) ◇남원=최회원(46·국회정책연구위원) ◇김제=미정 ◇완주=허위남(53·알파약업사대표) ◇진안·무주·장수=최팔용(58·풍인건설회장) ◇임실·순창=미정◇고창=미정 ◇부안=김일범(57·부안신문회장) ▷전남◁ ◇목포·신안갑=미정 ◇목포·신안을=미정 ◇여수=미정 ◇순천갑=미정 ◇순천을=미정 ◇나주=미정 ◇여천=미정 ◇광양=미정 ◇담양·장성=기로을(60·전남매일논설위원) ◇곡성·구례=미정 ◇고흥=미정 ◇보성·화순=정인환(49·당대외협력위부위원장) ◇장흥·영암=미정 ◇강진·완도=미정 ◇해남·진도=임종필(43·당농수산국장) ◇무안=미정 ◇함평·영광=김기수(54·정당인) ▷경북◁ ◇포항북=방무성(54·미주한국민주회의의장) ◇포항남·울릉=김병구(49·포항지방자치연구소장) ◇경주갑=한점수(55·경북대교수) ◇경주을=윤석보(52·눌산건설대표) ◇김천=박련옥(58·전KBS대구방송국아나운서) ◇안동갑=권오을(39·도의원) ◇안동을=신종철(44·사회문제연구소이사장) ◇구미갑=윤상규(35·오리온전기노조위원장) ◇구미을=윤정석(58·전농의장) ◇영주=박찬극(54·동양석재대표) ◇영천=이준우(57·한민족통일국민운동협의회공동의장) ◇상주=미정 ◇문경·예천=안희대(43·전민청련집행국장) ◇경산·청도=김경윤(56·부산조산관리이사) ◇고령·성주=김창문(59·고령군체육회부회장) ◇군위·칠곡=권천문(53·국회사무관) ◇의성=이왕식(44·21세기경제사회연구원이사) ◇청송·영덕=박명규(44·대구경북민통련상임위원) ◇영양·봉화·울진=김종복(43·전불교사회문화협의회사무총장) ▷경남◁ ◇창원갑=이상익(42·YMCA마창사무총장) ◇창원을=이주영(44·변호사) ◇울산중=송철호(46·변호사) ◇울산남갑=한만우(48·변호사) ◇울산남을=이규정(54·전의원) ◇울산동=미정 ◇울산울주=권기술(57·전민추협 민주통신부주간) ◇마산합포=박정규(42·전국연합마창위원장) ◇마산회원=박재혁(35·정당인) ◇진주갑=미정 ◇진주을=강갑중(47·전경상대총학생회장) ◇진해=최혁(55·유니세프한국위원회진해회장) ◇통영·고성=송성욱(41·변호사) ◇사천=유홍재(41·삼천신보사장) ◇김해=이광희(38·김해환경보존회장) ◇밀양=미정 ◇거제=지만호(50·매일건강신문회장) ◇의령·함안=이정환(34·함안군농민회장) ◇창녕=박상곤(54·남발개발이사) ◇양산=박수근(62·한국노총위원장) ◇남해·하동=최종림(53·우성정밀대표) ◇산청·함양=도상수(63·산청석재대표) ◇거창·합천=백신종(43·극일운동시민연합공동의장) ▷제주◁ ◇제주=신두완(65·정당인) ◇북제주=강희찬(58·현의원) ◇서귀포·남제주=미정
  • 민주당 1백2개 지구당 조직책

    ▷서울◁ ▲용산=강창성(68·최고위원) ▲성동갑=임종인(39·변호사) ▲광진을=박석무(53·현역의원) ▲중랑을=조명원(47·변호사) ▲강북갑=전대열(54·사월혁명연구소연구원) ▲강북을=이기탁(42·한국정치전략연구소장) ▲노원갑=유영래(49·기조실부실장) ▲노원을=이문옥(57·전감사원감사관) ▲은평을=이장희(61·현역의원) ▲서대문을=김태원(46·변호사) ▲마포갑=김용(48·한국원자력연구소정책실장) ▲양천갑=서경석(47·전경실련사무총장) ▲양천을=이두엽(40·전KBS프로듀서) ▲구로갑=정병원(59·새한토건대표) ▲금천=이원영(41·변호사) ▲영등포을=김인동(60·전서울시기획관리실장) ▲동작갑=장기표(49·전민중당정책위원장) ▲동작을=김왕석(43·중앙대교수) ▲관악갑=김기정(42·바우테크대표) ▲서초을=안동수(54·변호사) ▲강남갑=홍성우(57·변호사) ▲송파갑=양문희(55·현역의원) ▲송파병=박인제(44·변호사) ▲강동갑=이부영(54·전의원) ▷부산◁ ▲중=김정길(51·전의원) ▲서=최기복(49·통일산하회부산지부장) ▲부산진을=황백현(49·전부산경실련상임위원) ▲동래갑=노재철(35·국민연합부산본부상임위원) ▲동래을=정인조(52·대한약사회약학위원장) ▲남=허종복(55·부산JC회장) ▲해운대=이기택(58·민주당상임고문) ▲금정갑=이황규(55·부산대교수) ▲금정을=김재규(48·부산민족민주운동연합공동의장) ▲수영=손태인(49·전총재특보) ▷대구◁ ▲동갑=임대윤(39·대표비서실차장) ▲서을=서중현(44·경북대강사) ▲북갑=이윤기(41·대구경실련정책실장) ▲북을=정병철(51·전경북일보 논설위원) ▲수성갑=권오선(37·전계명대학생회장) ▲달서갑=이상섭(44·동우대교수) ▷대전◁ ▲동을=강구철(42·대구민주시민회장) ▲서을=이희원(50·3선개헌반대전국학생투쟁위원장) ▲유성=이병영(49·전한국원자력연구소원전프로젝트그룹장) ▷경기◁ ▲수원장안=유용근(55·전의원) ▲수원 권선=김정태(56·남북민간교류협회사무총장) ▲성남분당=성유보(52·전한겨레신문편집국장) ▲안양만안=김준용(38·전전노협사무차장) ▲평택을=장기천(57·전우석대총학생회장)▲동두천·양주=김형광(61·전의원) ▲안산갑=문영희(52·전한겨레신문논설위원) ▲안산을=장경우(53·전의원) ▲고양갑=이교성(56·전의원) ▲고양을=홍기훈(42·현역의원) ▲과천·의왕=김부겸(38·민주당부대변인) ▲오산·화성=우호태(37·경기도의원) ▲군포=여익구(49·전민불련의장) ▲용인=나진우(50·용인JC회장) ▷강원◁ ▲삼척=장을병(63·민주당대표) ▷충북◁ ▲청원=신언근(39·전전농사무국장) ▲보은·영동·옥천=최극(63·지구당위원장) ▲괴산=김연태(58·공인회계사) ▷충남◁ ▲천안을=박동인(57·한서통신이사) ▲공주=윤완중(50·건국대총동창회장) ▲아산=이진구(56·국제사면위원회한국위원) ▲서산·태안=문석호(36·변호사) ▲연기=김준회(53·대학강사) ▲부여=김택수(52·지구당위원장) ▲서천=나소열(37·공사정치학교수) ▲청양·홍성=홍문표(49·올림픽조직위전문위원) ▲예산=김성식(57·민추협상임위원) ▲당진=정석래(45·당진JC회장) ▷전북◁ ▲정읍=김원기(58·공동대표) ▷경남◁ ▲창원갑=이상익(42·YMCA마산·창원사무총장) ▲창원을=이주영(44·변호사) ▲울산중=송철호(46·변호사) ▲울산남=한만우(48·변호사) ▲울산 울주=권기술(57·전민추협부주간) ▲마산합포=박정규(42·전국연합마창위원장) ▲마산회원=박재혁(35·전경남대학생회장) ▲진주을=강갑중(47·전경상대학생회장) ▲진해=최혁(55·유니세프한국위원회진해회장) ▲통영·고성=송성욱(41·변호사) ▲사천=유홍재(47·삼천신보사장) ▲김해=이광희(38·김해환경보존회장) ▲밀양=김종원(56·전해군대강사) ▲의령·함안=이정환(34·함안군농민회장) ▲창녕=박상곤(54·남발개발이사) ▲양산=박수근(62·한국노총위원장) ▷경북◁ ▲포항북=방무성(54·미주한국민주회의의장) ▲김천=공부동(57·경북도청산림과장) ▲안동갑=권오을(39·경북도의원) ▲안동을=신종철(44·사회문제연구소이사장) ▲구미갑=윤상규(35·오리온전기노조위원장) ▲영주=박찬극(54·동양석재대표) ▲경산·청도=김경윤(56·부산조선관리이사) ▲고령·성주=김창문(59·고령군체육회부회장) ▲의성=이왕식(44·21세기경사련상임이사) ▲청송·영덕=박명규(44·민통련상임위원) ▷제주◁ ▲북제주=강희찬(58·현역의원)
  • 이병령박사 영입… 민주 “활기”(정가 초점)

    지난해 정기국회 이후 무기력증을 보여온 민주당이 외부인사 영입에 돌파구를 열면서 가까스로 활력을 되찾고 있다. 민주당은 18일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북한 경수로 지원사업팀장을 지낸 「원자력통」이병령박사를 영입했다.북한경수로지원사업과 관련,원자력연구소 주도의 사업을 주장하다 지난해 7월 전격 해임되면서 일반에 알려진 이박사는 대덕연구단지를 낀 대전 유성에서 출마시킬 예정이다. 이회창전총리,한완상전부총리등 「거물급」의 영입실패로 그동안 침체의 늪에 빠졌던 민주당은 이박사의 입당으로 후속 영입작업이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한다.당장 이문옥전감사관(서울 또는 수도권 희망)과 이황규부산대교수(부산 금정)가 곧 민주당에 입당할 것으로 알려졌다.또 슬롯머신사건 담당검사였던 홍준표변호사(대구 수성 또는 서울 강남을)와 부산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이주영변호사(경남 창원)도 입당의사를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각계의 명망가들도 거명된다.강문규YMCA사무총장(전국구)과 최열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서울 강동을),이미경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전국구)의 영입은 확정단계라는 주장이다. 이밖에 김왕석중앙대교수와 연출가 임진택씨등을 비롯해 10여명이 이달 안에 입당할 것으로 전해진다.
  • 김태길 서울대명예교수 서울YMCA 강연

    ◎“우리사회 더이상 망가질 수 없다”/「민주의 탈」 쓴 독재정치가 정경유착 초래/그러나 역사 정립에 한·보복 개입 없어야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는 18일 서울 YMCA주최로 열린 「우리사회 더 이상 망가질 수 없다」라는 주제의 특별시민논단에서 오늘의 현실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주제강연을 했다.다음은 강연내용 요약.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문제는 있게 마련이고 문제가 매우 심각할 경우에 「위기」라고 부른다.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때 전화위복의 결과를 얻는다.현재 우리의 현실은 위기 상황에 가깝다.이 위기는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온 것이며 이러한 실태를 초래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따라서 오늘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책임도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알고 힘을 합하면 능히 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직업 정치인들은 나라전체를 위하여 협동하기를 거부하고,오로지 당리당략의 시각에서만 현실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잡고자함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며 증오의 한을 풀거나 보복의 감정을 달래고자 하는 동기가 개입해서는 안된다.화합을 대전제로 삼는 까닭에 우리의 작업은 단순한 보복보다 더욱 어렵고 복잡하다. 우리의 현실은 큰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에 비유되나 병원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병원의 경우는 환자 따로,의사 따로이나 현실에서는 우리 모두가 의사로서 메스를 들어야한다.내가 내살을 도려내야 하는 까닭에 각별한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우리는 어떤 한가지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병을 앓고 있다.「정경유착」이라는 병을 앓고 있으며 「도덕불감증」도 앓고 있다.「이기주의」와 「공동체망각증」을 앓고 있으며 「사치와 낭비병」도 앓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권력탐욕」이라는 병도 앓고 있다.「정경유착」이라는 고질병의 근원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정치의 가면극이다. 「민주주의」를 가장했던 까닭에 투표로써 대표를 선출해야했고 많은 표를 얻기 위하여 막대한 정치자금이 요구되었다.독재정권을 장악한 사람들로서 막대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정경유착」에 있었다.93년에 문민정부가 수립된 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크나큰 진전이었으나 과거에 뿌려진 나쁜 씨앗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문제로서 남아있다.따라서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는 군사정권의 잔재청산이 불가피하다.그리고 우리들을 심란하게 만드는 작금의 상황은 저 잔재를 청산하기에 호기가 될 수도 있다.민주주의 국가 건설로 가는 길은 기나긴 시행착오의 과정이다.민주국가 건설을 위하여 요구되는 두가지 조건은 수준높은 시민의식의 형성과 민주주의에 적합한 제도의 수립이다.48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첫번째 헌법은 대체로 민주주의 원칙을 따른 것이었으나 그 원칙을 실천에 옮기기에 적합한 시민의식의 형성은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까닭에 헌법으로서의 제 구실을 못했고 역대 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헌법을 마구 고치는 횡포를 자행하였다.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른 법의 제정만으로는 제도가 확립되지 않으며 모두가 그 법을 준수할 때 비로서 민주주의적 제도가 확립된다.민주주의의 기본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깔려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타인과의 관계속의 「나」를 바르게 알고 사랑하는 인성교육이 시급하다.올바른 자애는 타애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 교내 불량서클 일제조사/금명 관계장관회의

    ◎학원폭력 근절 강력 대책 강구/「지역담당 검사제」 6대 도시 확대/시민단체 연계 선도캠페인 전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원주변의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정부가 학부모 및 시민단체 등과 연계,범정부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27일 김영삼 대통령의 학원폭력 근절대책 마련 지시에 따라 금명간 이홍구 국무총리 주재로 내무·교육·문화체육·보건복지·공보처장관과 검찰 및 경찰 고위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갖고 지금까지 교육부 등 관련부처에서 시행해온 학원폭력 근절방안을 중간 점검하고 보다 강화된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 장관들로 학원폭력근절대책협의회를 구성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중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28일 총리실에서 관련부처 실국장회의를 소집,협의회의 성격 및 기능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주무부처인 교육부의 김동성 교육정책실장은 이날 『학교폭력문제는 학원내부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고 전사회적,범정부적 차원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면서 『일련의 정부회의에서는 보다 강화된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와 별도로 오는 30일 전국 시도교육감회의와 생활지도장학관회의를 긴급 소집,그동안 설문조사 등을 통해 파악된 각급 학교의 피해정도와 불량서클 실태 등을 종합 검토한 뒤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교육부는 또 검찰과의 유기적인 협조아래 최근 서울지검에서 실시하고 있는 「지역담당 검사제」를 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 등 6대도시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지역담당 검사제란 검사 1명이 4∼5개 학교를 한데 묶어 담당하는 것으로 관할경찰서 형사계·소년계,지역선도위원,어머니회 등과 연계해 청소년 범죄 예방과 선도활동을 총괄 지휘토록 하는 제도이다. 아울러 지난달 전국생활지도장학관회의에서 시달된 「학원폭력 종합지도대책」 지침에 따라 15개 시도교육청별로 폭력추방대책본부를 구성,운영하고 있고 지방경찰청 관계자와 지역인사,YMCA 등 민간단체,교육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지역선도협의회도 가동되고 있다.또한 각급 학교별로 학원폭력추방위원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전교사가 참여한 가운데 1교사 1선도요망학생의 결연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회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가정통신문과 입간판 설치,포스터 활용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하는 한편 사회 각 분야 특히 언론의 협조도 요청할 계획이다.
  • 「5·18 기소」화염병 시위/교통통제로 시민 불편/서울 7개대서

    서울시립대·서강대·경희대 등 서울시내 7개 대학 학생 2천여명은 21일 하오 각 대학에서 5·18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가진 뒤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서울 신촌 일대와 동대문구 휘경동 및 전농동,관악구 봉천동,서대문구 남가좌동 등 대학가 주변의 교통이 통제돼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시립대생 3백여명은 이날 집회를 가진 뒤 하오 4시쯤부터 교문밖으로 나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에 화염병 1백50여개를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광주·대전서도 시위 【광주·대전=최치봉·이천열 기자】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 소속 대학생과 시민 등 1천5백여명은 21일 하오 6시부터 2시간여동안 광주시 동구 금남로 1가 광주YMCA 앞길에서 「5·18학살자 처벌을 위한 광주시민 결의대회」를 갖고 정부와 국회는 5·18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를 마친 남총련 소속 대학생들은 금남로와 북구 유동 네거리를 거쳐 광주역까지가두행진을 벌인 뒤 민자당 광주시지부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또 대전지역 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4백여명도 이날 하오 5시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에서 「5·18 학살자 처벌을 위한 민족결의대회」를 갖고 대전 도심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 CATV 뉴미디어시대 초석 놓다(93문화계 결산:방송)

    ◎위성방송 디지털확정·방송구조개편 본격화/종교방송 지방국 선정… 지역민방 내년에/저질·선정적 프로 대응 시청자운동 활발 93년 방송계는 우리 방송사에 굵은 획을 그을만큼 획기적인 환경변화를 이룬 한해였다.우선 지난 81년이후 도입여부를 놓고 논란을 거듭해오던 종합유선방송(CATV)의 도입이 확정돼 20개 프로그램 공급업체가 선정되었으며 CATV방송국 및 전송망사업자도 연내 결정될 예정이어서 바야흐로 본격 뉴미디어시대에 돌입하는 전기를 맞이했다. 또한 그동안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전송방식을 둘러싸고 팽팽한 대립을 보여온 위성방송이 디지털방식으로 최종 결정됨으로써 95년 발사될 무궁화위성을 이용한 위성방송은 디지털방식으로 전송하게 되었다.그러나 공보처측은 방송준비 미비를 들어 상당기간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본격적인 위성방송이 개시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같은 방송환경의 변화는 방송구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작업이 이뤄지게하는 지렛대역할을 했다.문민정부 출범초부터 조심스레 거론된 방송구조개편은 방송위원회 산하 「공영방송발전연구위원회」(공발연)와 방송개발원의 「2000년 방송정책연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공발연은 공영방송의 대개혁을 전제로 ▲KBS의 광고방송 폐지,경영위원회 신설,2­TV의 문화채널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위상강화 ▲교육방송의 독립공사화 ▲방송위원회의 헌법기구화등의 개편안을 제시했다.그러나 이 시안에 대해서 각방송사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 방송구조개편을 둘러싼 논의는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기도 하다. 지역민방신설문제 역시 또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의 선거공약사항인 지역민방 신설을 위해 부산,대구,광주,대전등 4개지역에서 사업자선정을 내년말까지 마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그러나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의 개국이 예정된 상황에서 지역민방까지 가세할 경우 「방송사 과잉」이 우려되며,자칫 지역정보나 문화를 창달하는 매체로 기능하기 보다는 중앙사의 네트워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만만찮아 귀추가 주목된다.이밖에 주한미군방송(AFKN)의 VHF채널2 환수문제는 정부가 「AFKN채널의 상업채널 불가원칙」을 분명히 함에 따라 수면아래로 잠복한 상태이다.또한 기존 종교방송의 지방망확충은 종교계 일각의 반발은 있었지만 불교방송이 부산·광주에,기독교방송은 춘천에,평화방송은 대구에 각각 지방국을 신설하는 선에서 지난 5월 일단락됐다. 한편 올해는 방송사간의 무한시청률경쟁으로 인한 방송의 저질·선정성 시비가 어느해보다 거셌고 이에 따른 시청자단체의 총체적인 감시활동도 두드러졌다.단적인 예로 서울YMCA등 40여개 시민단체들은 지난 7월7일 전국적으로 저질프로그램을 추방하기 위한 「TV끄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시청자시민운동본부가 주축이 된 이 운동은 적극적인 시청자상을 확립하고 시청자운동을 보다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와함께 방송위원회는 「추·동계 편성개편기준」이란 지침을 각 방송사에 시달,시청자권익을 위해 단순한 선언적 의미이상의 실천적 의지를 구체화했다.이를 계기로 방송3사는교양물을 확대하고 옴부즈맨프로를 신설하는등 자정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방송품위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한편 올해 방송계는 14대 대통령취임,엑스포개최등에 따른 특별방송도 풍성했다.그러나 엑스포방송의 경우,일일 방송시간을 연장하고 특별취재팀을 파견하는등 열의를 보였지만 경험과 준비부족으로 기대만큼의 내실있는 방송이 이뤄지지않아 아쉬움을 남긴 한해이기도 했다.
  • 재미학자 방선주씨,OSS의 「NAPKO 계획」 공개

    ◎“미,일제말 한국인 특공대 조직 추진”/지하 저항운동 목적… 45년 하반기 투입 계획/징용포로로 구성… 일 항복으로 중단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하반기.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특수훈련을 받은 한국인 특공대가 서울과 평남 진남포등지로 잠입,현지조직을 만들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처럼 지하저항운동을 벌인다」 이같은 상황은 소설속의 한 장면이 아니라 당시에 실제로 추진된 작전계획의 내용이었다.「NAPCO 계획」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작전은 다만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중단됐을 뿐이다. 그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있던「NAPCO 계획」의 실상이 재미 한국인 학자인 방선주씨(아메라시안 데이터 리서치 소장)에 의해 밝혀졌다.방소장은 이에 관한 연구결과를 오는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독립기념관부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방소장이 미국립문서보관소의 OSS(전략첩보국·CIA의 전신으로 1943∼45년 존속)관련자료를 입수,분석한「NAPCO 계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등 재미독립운동가들은 중국및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구성된 게릴라부대를 조직,일제에 대한 적후방 교란작전을 벌일 것을 미정부에 요청한다.미정부는 그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이승만을 통한 특공대원모집을 거부하고 OSS에게「NAPCO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OSS는「1개조 5명이내의 공작조 10개를 구성,우선 한국내에 침투시켜 첩보·지하조직결성등의 활동을 벌여 2천3백만 한국인의 지지를 얻은 다음 이 공작조를 나중에는 일본으로 보내 사보타지·무장저항운동으로 이어나간다」는 세부계획을 확정했다.공작조는 잠수함을 타고 잠입하기로 했으며 상륙지점으로는 서울·진남포·서산·목포등지를 선정했다. 공작원은 한국에 연고가 있는 유학생과 사이판·괌등지에서 포로가 된 징용자 가운데 선발하기로 했다.이에따라 44년11월에는 OSS요원인 한국인(이태모로 추정)이 포로로 위장,수용소에 들어가 직접 요원을 뽑았다. 45년3월에는 문서상에 A∼H로 표시된 8명의 요원이 미국 남캘리포니아의 산타카타리나섬등지에서 유격전투·파괴·낙하·교신·선전등의 각종 훈련을 받고 있었다.방소장은 이들이 유일한(당시 50세·유한양행창업자) 이초(49·시카고YMCA 체육과 출신) 변일서(44·OSS요원) 차진주(39·미네소타주립대 ROTC 출신) 이근성(35·이왕가 혈통) 김강(43·금속화학기술자) 변준호(43·사회과학연구회 회원)임을 밝혀냈다.그러나 나머지 요원 1명의 신원과「NAPCO」의 의미등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방소장은『일본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NAPCO 계획」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고『그러나 일의 성사여부와 상관없이 요원들의 불굴의 애국심과 용기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학가에 불법비디오방 성업/칸막이 치고 음란물 등 버젓이 상영

    ◎“하루손님 50명이상” 급속 확산/고교생들도 출입… 탈선 부추겨 노래방처럼 칸막이를 쳐놓고 비디오를 틀어주는 불법 「비디오방」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잇따라 생겨나 충격을 주고 있다. 「비디오방」은 부산 대전 전주 이리등 주로 지방도시 대학가주변에 지난해 7월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최근들어 Y대,H대등 서울시내 대학주변 상가에까지 등장,노래방처럼 무섭게 번질 기세다. 비디오가게를 노래방처럼 1∼5평크기의 칸막이로 꾸며 TV와 비디오플레이어,헤드폰등을 갖춰 놓고 영업을 하는 「비디오방」은 손님들이 대부분 대학생들이나 고교생등 10대들도 종종 찾아와 폭력물이나 음란성 성인비디오까지 보고 있다. 대전시 유성구 충남대 부근에는 3개의 비디오방이 각기 30여개의 칸막이방을 설치,「대여및 관람」이라는 간판까지 버젓이 걸고 영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외관상 일반 비디오가게와 차이가 없으나 손님이 테이프를 골라 『보고 간다』는 말을 하면 어두침침한 칸막이방으로 안내,테이프를 틀어준다. 16일 G비디오방에는 상오11쯤인데도 이미 10여개의 방에 한두명씩의 손님들이 헤드폰을 쓴채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낮12시30분쯤되자 가방을 든 젊은이들이 『야.오늘은 야한 것을 보자』며 몰려 오기도 했다. 비디오방은 한사람에 대여비로 2천원,두명일 경우 3천5백원을 받으며 사람수에 따라 요금을 추가,심지어 5∼8명정도가 들어갈 방까지 두고있다. 대전H대 김모군(21)은 『술을 마신뒤나 수업이 끝난뒤 친구들과 자주 온다』며 『집에서 가족들과 보기힘든 성인물들을 주로 본다』고 말했다. J비디오방 주인은 『최근 주택가 곳곳에 비디오대여점이 들어서 테이프 대여만으로는 수지를 맞추기 어려웠으나 비디오방으로 바꾸면서 테이프 회전율이 높아지고 하루에 50여명이상의 손님들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했다. 비디오방은 일본,홍콩등지에서도 「무비TV」,「가라오케TV」등의 이름으로 한창 유행하고 있으며 포르노영화 전용상영장처럼 인식되고 있다.한편 행정당국은 이같은 업소의 국내상륙 실태를 파악조차 하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으로 비디오방은 시설기준등 허가 규정이 전혀없다』며『대여점이 가정용비디오테이프를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곳에서 상영하는 것은 저작권법등에 어긋나는 명백한 불법』이라고만 밝혔다.서울YMCA 건전한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모임 이승정간사는 『불건전한 비디오문화에 물들지 않게 문화적인 차원을 높여주는 운동이 필요하다』며 『건전한 비디오 영상 자료실을 곳곳에 만들어 지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 “동경「2·8독립선언」의 산실 지키자”/건물보전 모금운동 서울서도

    ◎YMCA서 앞장… “경매위기” 호소/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적극 호응/벌써 1억8천만원 모여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의 산실이며 70만 재일동포의 정신적 지주인 일본 도쿄(동경)에 있는 한국 YMCA회관을 지키기 위한 모금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77년 신축공사를 시작,80년에 준공된 도쿄 한국 YMCA사회관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공사비 가운데 60억원을 갚지 못해 일본인에게 경매처분당할 위기에 놓임에 따라 서울 YMCA가 지난달 15일부터 올 연말까지 「재일본 한국 YMCA 부채해결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으며 각계각층에서 이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금운동은 특히 지난 3·1절에 이어 상해임시정부수립 72주년에 즈음하여 더욱 열기를 띠고 있다. 이 모금운동에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노점상 및 양로원 할아버지는 물론 고사리 손의 어린 학생들로부터 경제·사회·종교단체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빈부격차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참여,흐뭇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낸 1만원이 민족유산 시켜준다」는 표어 아래 모두 30만명으로부터 30억원을 목표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 YMCA에는 모금운동을 편 지 20일 남짓된 13일까지 전국 각지의 3천5백12명으로부터 1억7천9백49만5천원이 답지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호진화실」을 경영하는 동양화가 전도경 화백(51)은 12일 하오 자신이 그린 그림 40점을 빚을 갚는 데 써 달라고 내놓았다. 전 화백은 『한국 YMCA가 경매처분 될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기독교신자로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면서 『초대전에 전시 될 작품이었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해 내놓았다』고 말했다. 서울 YMCA측은 이들 작품으로 13일부터 26일사이 2층 강당에서 동양화초대전을 열어 남는 판매대금을 후원금으로 쓰기로 했다. 이 밖에도 80대 노인이 지난달 20일 지팡이를 짚고 찾아 와서는 『민족지도자를 배출한 재일본 YMCA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쌈지돈을 선뜻 내어놓았고 익명을 요구하는 40대 여자 노점상도 남편 몫까지 하룻동안 번 2만원을 냈다. 도쿄 한국YMCA 부채해결을 위한 모금운동은 콘서트와 바자 등의 형식으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인기가수 김윤정양은 13일 하오 6시와 14일 하오 3시,6시 등 3차례에 걸쳐 서울 YMCA 2층 대강당에서 「재일본 한국 YMCA 부채지원 기금마련을 위한 콘서트」를 갖고 공연수익금을 서울 YMCA측에 기부한다. 또 오는 23일부터 28일까지는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7층 현대백화점에서 인기가수와 코미디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역시 기금마련을 위한 바자가 열린다.
  • 외언내언

    도쿄 한국 YMCA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의 산실. 72년전 유학생들의 얼이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적인 건물이 경매처분의 위기에 놓여있어 안타깝다. ◆도쿄시내 한복판인 치요다구(천대전구)에 자리한 도쿄 Y는 지하 2층,지상 10층의 현대식건물. 지금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사랑방 구실을 맡고 있다. 한글 교육은 물론 가야금·부채춤등 우리의 전통문화 강습회가 연중 계속되고 있고 수영 강습회는 교포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품목. 지난해말 남북 기독교계 기도한 곳도 바로 여기. 문앞에 세우져 있는 「조선독립선언기념비」라고 쓴 비석이 이 건물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 이곳이 불과 일본돈 11억5천만엔(한화60억여원)때문에 경매의 위기에 있는것. 지난 76년 새회관을 짓기 위해 외환은행 도쿄 지점에서 빌린 10억엔 가운데 그동안 갚고 남은 원금 5억7천만엔의 부채때문. 매년 3·1절만 되면 딱한 사정이 제기되고 있으나 언제나 말뿐에 그칠뿐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모두의 이해 부족. 일본내의 한국독립기념관으로 성역화 해야한다는 취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는 퇴색되고 있고 자칫 일본인들 손에 넘어갈 위기가 그것. 무관심이 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 책임을 따진다면 우선 정부쪽에 있다. 80년의 지원약속이 이뤄지지 못했고 지난해의 뒤늦은 부채지원 항목예산이 국회심의 과정에서 삭제 된데서 볼 수 있다. 15년 동안이나 질질 끌어오고 있는 것이나 이자가 원금액과 맞먹는 것이 부끄럽다. ◆서둘러 해결해야할 일이 바로 이것. 벽돌 하나에 국민적인 독립정신을 새긴다면 모금운동이 바람직하고 뜻있는 단체의 도움도 어려운게 아니다. 정부의 지원도 늦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왜 이렇게 미뤄져 왔느냐하는 모두의 반성이 있어야 된다는 것. 독립정신은 말로만 새겨지는 것이 아니다.
  • “주체사상에 회의” 민단전향 러시(흔들리는 조총련:상)

    ◎북 「경비」조달·충성강요로 이탈 가속화/재일동포 68만중 한때 45만가입,위세떨쳐 최근한국의 위상변화 따라 20만으로 “위축” 소련·동구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개혁·개방물결은 마침내 재일조총련 사회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금껏 북한체제를 아무런 비판없이 옹호해온 조총련계 동포들중 일부 인사들이 「김일성독재타도」를 내세워 궐기대회까지 준비하고 있어서 조총련 조직은 물론 북한체제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크게 주목되고 있다. 변혁기운이 감도는 조총련의 어제와 오늘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재일 한인 사회에는 38선과도 같은 무형의 분계선이 있다. 민단과 조총련이라는 두 조직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갈라진 「45년 분단사」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패전으로 귀결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조국의 해방과 본국으로의 귀국을 갈망하고 있던 재일한국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었다. 이때까지 일본에 살고 있던 2백30여만명의 한국인 대부분은 해방조국에 돌아 갔으나 60여만명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본에 계속 남게 되었다. 이러한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냉철하게 사태를 주시하던 일단의 재일 한인들은 1945년 8월20일 도쿄에서 「재유조선인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그 중심인물은 이해삼·권혁주·권일 등이었다. 이후 22일에는 시부야(삽곡)에서 구니모토 다케요시(방본무의·한국명은 미상)를 중심으로 「재일조선동포귀국 지도위원회」가,이타바시(판교)에서는 최학림을 중심으로 「재일조선인대책위원회」,또간다「신전)의 YMCA에서는 「재일본조선인 거류연맹」등이 각각 결성됐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해방된 조국이 미소의 분할점령으로 인하여 남북이 분단된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자 대동단결을 부르짖고 좌우사상과 신앙등 일체를 초월하여 하나의 대표적 민족단체로 뭉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결실이 1945년 10월15일 도쿄에서 일본각지의 준비위원회 대표 5천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결성된 「재일조선인연맹」(조연)이었다. 조연의 당초 결성목적은 정치적 색채가전혀 없는 재일 한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일한인들을 위한 대표적인 조직이었던 조련은 이후 급격하게 좌경화되고 만다. 조련의 집행부가 이처럼 일본공산당소속 한인들의 장악하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이 조직은 일본공산당 외인부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며 「한신(판신)교육사건」 「메이데이 투쟁」등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처럼 민단과 일경·점령군을 상대로 충돌을 빚어 오던 조련은 1949년 9월8일 일본정부로부터 전격적인 해산통고를 받는다. 조련간판은 내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재산을 몰수당한데 이어 조련계 학교마저 폐쇄되었다. 조련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이에따라 조련중앙은 해산통고를 받은 즉시 또다시 「조선인민해방연맹사무소」라는 간판을 급조해 붙였다. 한편 조련의 고문이던 김천해는 해산취소를 제소했으나 행정소송의 방도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달리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게 되자 이들은 지하로 잠복했다. 조련의 지하간부들은 국제공산주의 노선을 따를수 있는 새로운 조선인단체협의회를 만들려던 중 한국동란이 일어나자 비상체제로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을 결성하였다. 한편으로는 조련계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조국방위위원회」(조방위)를 조직,미일안보조약반대·한일회담분쇄운동등을 전개했다. 이러한 시기에 일본공산당은 53년7월 구조련의 주도권을 민전이 장악하도록 사주했다. 이에따라 민전노선을 고수하려는 ............와 북한지지파로 나누어 지게되었다. 그뒤 민전과 조방위를 해산,「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조직이결성되었으며 이것이 반민족적인 폭력조직체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약 67만8천명의 재일동포가 있다. 이들 가운데 41만명이 민단계이며 조총련계는 20여만명으로 집계된다. 나머지 6만8천여명은 그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조총련계 한인 숫자는 한때 45만명에 이른 때도 있었으나 최근들어 급격히 감소,지금은 민단계와 조총련계가 역전현상을 보인다. 그것은 한국의 경제적 발전,국제적 지위의 상승에 따라 전향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생필품및 국가운영 경상비의 조달을 위해 조총련계 사업가들에게 무리한 자금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긴 했으나 일본에서의 민단계와 조청련계 사이의 벽은 아직 높다. 이것은 남북이 통일되어야만 완전히 없어질 마음의 경계선인 것이다. 〈도쿄〓강수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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