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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장스님 화계사 회주 추대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17일 국내 해외포교의 중심지인 서울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 회주(會主·법회를 주관하는 스님)로 추대됐다. 화계사(주지 성광 스님)는 이날 대적광전에서 회주 추대법회를 봉행, 숭산 스님이 열반한 뒤 새롭게 화계사를 이끌어갈 회주로 법장 스님을 뽑았다.
  • [산 오르記]홍천 팔봉산

    [산 오르記]홍천 팔봉산

    팔봉산 제 1봉은 들머리부터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쉬운길’과 ‘험한길’이라고 적힌 안내판 앞에서 선뜻 ‘험한길’을 택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각자 능력과 체력에 따라서 길을 고르도록 한다.대체로 걸어서 오르는 ‘쉬운길’에 비해 ‘험한길’은 바위 사이로 매어놓은 로프를 잡고 오르는 곳도 나온다. 제2봉 오르는 길 역시 가파르고 험하다.로프와 쇠난간을 잡고 암릉을 지나면 바위 봉우리 꼭대기에 작은 사당이 하나 보인다.삼부인당(三婦人堂)이다.400여년 전 조선 선조 때부터 어유포리에 살던 이씨,김씨,홍씨 등 세 며느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마을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당굿을 올린다. 팔봉산 최고봉인 제3봉은 수직 철계단을 오른 후 암릉에서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이 바위를 돌아서 오르면 표지석이 있는 정상이다.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의 연륜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북서쪽으로 줄지어 선 다섯 봉우리는 마치 설악산 용아장성릉의 축소판 같다.철계단을 내려가면 3봉과 4봉 사이의 안부다. 제4봉은 팔봉산 등산로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곳이다.특히 철계단을 올라선 4봉 마지막 부분은 비스듬하게 수직으로 뻗은 굴이라서 침니등반 기술을 써먹기에 좋다.그러나 몸이 뚱뚱한 사람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잘 살펴보면 돌아서 오르는 길도 있으니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된다. 이 굴은 ‘산파바위’라고도 하는데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겪는 것만큼이나 통과하기 어렵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밑에서 받쳐주고 밀어주면 그만큼 빠져나가기가 쉽다.어려움 끝에 정상에 서면 기쁨도 그만큼 크다.팔봉산을 에돌아 흐르는 푸른 강물이 백사장과 어우러져 발 아래 한 폭 그림으로 펼쳐진다. 가장 어려운 4봉을 올랐으면 5,6,7봉은 문제없다.암릉길이 이어지며 가파르거나 위험한 구간에는 로프와 철계단이 있다.7봉에서 내려서는 길이 가장 길며 우뚝 솟은 8봉이 잘 보인다.팔봉산 등산로는 봉우리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다시 안부에 내려선 후 다시 봉우리로 오르는 길의 연속이다. 오르기 위해서 내려가는 몸짓을 되풀이하다 보면 우리네 인생길과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마음을 비우고 겸손해야만 산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7봉과 8봉 안부에서 하산길을 잡는 게 보통이지만 암벽 등반 경험과 장비가 있으면 8봉에 도전해 본다.그러나 체력이 약하거나 노약자,부녀자는 등반을 삼가달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제8봉은 로프에 의지해서 수직 암벽을 오르기 때문이다. 8봉 꼭대기에 서면 널찍한 암반이 펼쳐져 있으며 산들바람이 시원한 그늘 드리운 노송과 더불어 반긴다. 8봉에서 하산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급경사 구간인데다 미끄럽기 때문이다.그러나 로프가 설치돼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마지막 철계단에 이어 수직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강변이다.암벽 밑으로 길이 나있는데 좁은 철판을 딛고 로프에 의지해서 강물 위를 건너는 곳도 있다.발판이 없어서 쇠줄을 디딘 채 로프를 잡고 건너기도 한다. 8봉까지는 총 4㎞에 3시간이 걸린다.경우에 따라서는 30년 같은 3시간 산행이 끝나면 팔봉산 여덟 봉우리가 오랜 벗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볼거리·먹을거리 홍천읍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무궁화동산을 들러본다.남궁억 선생의 동상이 있으며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이 된 유래를 알 수 있다.희망리 읍사무소 앞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 79호)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원래는 홍천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동면 덕치리 공작산 수타사 역시 홍천에서는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대적광전,소조사천왕상,영산회상도 등이 강원도 유형문화재다. 홍천강을 따라서 모곡유원지 밤벌유원지 등은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홍천강에는 견지낚시 명소도 즐비하다.팔봉산과 홍천강 일대에서는 잡고기매운탕 잘 하는 집이 여럿 있다.모래무지,꺽지,빠가사리 등 잡고기와 버섯,깻잎 등 야채를 넣고 펄펄 끓인 다음 수제비를 곁들인 매운탕을 뚝배기에 담아서 먹는 맛이란 정말 그만이다.4인분 3만원.홍천강 잡고기 매운탕은 팔봉산 산행과 더불어 오래도록 홍천강의 추억으로 남길 만한 별미로 꼽힌다. 윤정이네식당(033-434-3315),팔봉산시골집민박식당(434-0267),팔봉산민박호남식당(434-0678). ●가는 길 구리시 교문동 사거리에서 가평,강촌,광판삼거리와 남동진 거쳐 팔봉산까지 2시간 걸린다.홍천읍 거쳐 부사원검문소에서 좌회전,구만리 지나 팔봉산으로 가는 길은 40분 걸린다. 버스로는 상봉터미널(02-435-2129)에서 홍천을 거쳐 반곡리 팔봉산 입구까지 2시간50분 걸린다. 서울에서는 하루 40회,홍천(033-432-7893)에서는 하루 네 번 있다.팔봉산국민관광지 입장료 어른 1500원,어린이 500원.주차료 소형 3000원,중형 4000원. 산악문학인 안재홍
  • 보물지정 홍천 물걸리 절터 / 불상자리 주인은 鐵佛

    보물로 지정된 홍천 물걸리 절터의 불대좌(佛臺座)와 광명을 내뿜는 모습을 상징하는 광배(光背)의 주인은 철불(鐵佛)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또 금당은 석조와 철조 불상이 삼존불로 나란히 봉안된 희귀한 형태의 대적광전(大寂光殿)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국립춘천박물관(관장 최응천)은 지난 5월23일부터 강원도 기념물인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절터를 발굴조사하고 있다.조사단은 이 과정에서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구조물인 보물 544호 삼층석탑 북쪽에서 정면 3칸,측면 3칸의 금당터를 확인했다. ●희귀한 형태의 대적광전 추정 그런데 네모난 전돌이 정연하게 깔려있는 건물 내부 세 곳에서 무거운 불상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박아넣은 적심을 발견한 것.조사단은 물걸리 절터 보호각에 있는 통일신라 후기∼고려 초기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불상과 불대좌가 있던 자리로 보았다. 이 가운데 보물 제542호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은 금당의 주존,보물 제541호 석조여래좌상은 비로자나불의 왼쪽 협시불로 추정했다. 보물 제543호로 지정된 주인 잃은 불대좌와 광배 역시 조각수법이나 크기로 볼 때 주존의 오른쪽 협시불의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우협시불이 있던 자리 주변에서는 철불조각들도 나왔다.1967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곳을 조사했을 때도 적지 않은 철불 파편을 수습했다고 한다.상황을 종합해 볼 때 우협시불은 철불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절의 금당은 석조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좌협시는 석조 석가모니불,우협시는 철조 아마타불 혹은 노사나불을 모신 유례가 없는 대적광전이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처럼 삼신불(三身佛)을 모신 법당은 대적광전 말고도 대광명전,비로전,화엄전 등으로 이름짓기도 했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주존인 비로자나불의 것으로 보이는 대좌 하대의 괴임석도 찾아냈다.비로자나불이 완벽한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수확이다. ●조사단 “절터 성격규명 노력 지속” 이곳에서는 지난 1967년 대승사라는 절을 새로 지으면서 금동불 한 점이 발견되는 등 모두 4점의 수준급 금동불이 출토되어 현재 춘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조사단은 물걸리 절터가 역사기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수준 높은 유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절터가 있는 동창(東倉)마을에 이름처럼 조선시대 조창(租倉)이 위치하는 등 지리적으로 동해안의 산물이 강원내륙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자리잡았던 만큼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16일 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에 참여한 김동현 문화재위원과 문명대 동국대교수,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지도위원들은 절터에 포함된 사유지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들인 뒤 전역을 연차적으로 발굴하여 절터의 성격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서동철기자 dcsuh@
  • 조계종 혜암 종정 49재

    지난해 12월31일 입적한 조계종 혜암(慧菴) 종정의 49재가 17일 열렸다. 경남 합천 해인사(주지 세민스님)는 이날 경내 구광루 앞 광장에서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법전(法田)스님과 수좌대표 진제(眞際)스님,주지 세민(世敏)스님 등 교계 원로와신도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혜암 종정의 49재를 가졌다.49재는 오전 9시쯤 대적광전에서 대령과 관욕을 마친뒤 혜암 종전의 영단에서 삼귀의,추모법요,행장소개,추도입정,추도사,추모사,헌화 순으로 봉행됐다.법전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공부하다 죽어라고 한 큰 스님의 법문은 나태한 수행자에겐 추상같은 불호령이고 길 잃은 중생에겐자비로운 손길이었다.”고 회고했다. 합천 이정규기자 jeong@
  • 불교 미술로 풀어내는 고려사

    태조 왕건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EBS의 ‘최완수의 우리미술 바로보기’(매주 수요일 오후8시30분)에서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미술사를 통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기에 걸친 우리 역사를 되짚고 있는 이 프로가 23일부터 왕건이 등장하는 신라 후기부터 후삼국시대,고려시대의 미술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연구실장(58)은 최근,신라 교종불교의 마지막 걸작인 석굴암과 불국사 시리즈를 마치고 신라후기 새로운 사회와 이념에의 시대요구에 부응해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선종불교 이야기를 시작한다. 복잡하고 방대한 논리의 숲에서 벗어나 마음 하나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선종의 이념은 전환의 기로에 선 신라사회의 혁신계층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중국으로부터 남종선을 배워와 전국각지에 구산선문을 세운 선사들과 그들을후원했던 호족들에 의해 새로운 선종 불교문화가 꽃피게 된다.바로 그 중심에 선 인물이 태조 왕건이다. 새 이야기는 선종시대를 주도했던 문화·시대적 상황,주옥같은 미술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태조 왕건의 등장전후시기의 사회상황을 세밀하게 조망한다.KBS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을 보면서 가졌던 초기 고려사에 대한 의문들도 풀 수 있을 것이다. 우선 23일에는 선종의 9개 종파 가운데 하나인 구산선문의주불로 선종시대의 개막을 알린 비로자나불의 출현과 전개과정을 소개하는 ‘선종과 비로자나불’이 방송된다.우리나라선종의 총본산인 전남 장흥 보림사의 대적광전 안에 모셔진높이 252㎝의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이 시기에 조성된 대표적인 불상이다.화엄경에서 말하는 비로자나불의 의미,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상의 특징,팔뚝에 새겨진 명문,선종사찰주불의 상징들을 풀어낸다. ‘최완수의 우리미술 바로보기’의 시청률은 EBS의 평균 시청률엔 못미치지만 열혈 시청자들이 많다.최완수씨는 “교과서식의 역사 교육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접근방식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같다”고 흐뭇해했다.27일까지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추사와 그 학파전’ 전시회의 관람객도 2배 이상 늘었다.항상 단아한 모습으로진행하는 최씨의 한복차림에 반해 빼놓지 않는다는 시청자들도 적지않다. 윤창수기자 geo@
  • 100일 수행 “”話頭를 잡았느냐””

    7일 새벽3시 경남 합천 해인사.법고와 타종 소리가 잠든 삼라만상을 깨우며 새벽 예불을 알릴 때 선방과 인근암자엔 일제히 심상찮은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100일동안의 고난한 수행을 마무리하는 동안거(冬安居)해제일.전국 사찰에서 모인 비구 40명과 해인사 강원 수좌 70명,약수암 금선암 삼선암의 비구니 70여명,그리고 원당암의재가불자 70명 등 모두 250명이 마지막 화두를 잡고자 가부좌를 틀고 안간힘이다.이제 몇시간 후면 각자 사찰과 집으로돌아가야 할터. 그동안 하루 10시간이상 화두를 잡으려고정진한 고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동안거는 음력 10월15일부터 1월15일까지 겨울철 100일동안산문 밖을 일절 나서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기간.올해는전국 82개 선원에서 1,666명의 수좌가 동참했다.오전3시에일어나 공양과,경내를 걸어다니는 포행을 뺀 시간을 꼬박 좌선에 매달린다.해제 한달전 1주일간은 매일 18시간이상 부처님의 큰 뜻과 중생구제의 길을 찾기 위해 참선하는 용맹정진에 들어간다.수행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탈락하는 수좌도 적지않다. 아침공양 뒤인 오전10시 대웅전인 대적광전에서 동안거 해제법회가 시작됐다.큰스님께 설법을 청하는 청법게(請法偈)가울려퍼지고 법석에 오른 해인총림 방장 법전(法傳)스님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법어를 낸다.“큰 지혜는 바보같아 헤아릴 이 없나니/거두고 놓는 일에 구애될 것 없도다/고개돌려곁의 사람에게 물어보노니/그대의 남은 생명은 버린 뒤에도살아나는가.”법어에 이어 “해제를 했다고 화두를 놓고 다니는 놈은 때려죽여도 죄가 안된다는 옛말이 있다”고 큰스님 한말씀 곁들인다.다시 태어나도 화두만은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공부에임해야 하며 해제 후에도 세상에 나다니며 잘못 이야기하는일이 없도록 참구하면서 다니라는 말씀으로 법회는 끝난다. 이제 다시 만행을 떠날 시간.큰스님의 당부를 뒤로한 채 수행자들은 삼삼오오 바랑을 맨다.그동안 참선을 하면서 잠시나마 맺은 인연을 뒤로 접고 산문을 떠나는 수행자들의 고행은 계속 될 것이다. 합천 글 김성호기자 kimus@. *해인총림 방장 법전스님. “제 분수는 망각한 채 남의 흉만 보는 것은 도둑질이나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자기반성에 철저해야 합니다.”동안거 해제법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법전스님은 “비단절의 주지나 소임자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일반 대중 모두제 역할을 잘 지켜야 사회질서가 올바로 선다”고 일침을 놓았다. 스님은 덕담을 청한 기자들에게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 채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중국 당말송초 양기스님을 예로 들면서“양기스님은 절의 주지 소임을 볼 때 호롱불 2개를 준비해항상 개인 일과 절 일을 엄격히 구분해 썼다”면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법전스님은 “요즘 물질적으로 풍요하기 때문에 도(道)가잘 성취되지 않는다”며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도는 춥고배고플 때 나온다)’을 강조했다. 법전스님은 지난 96년 해인총림 방장을 맡아 조계종 단일 선원으론 가장 큰 해인총림의 명실상부한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해왔다. 김성호기자
  • 하늘과 땅이 잇닿은 오직 한 곳 ‘천혜의 곡창’

    이 들녘은 지금 따스하다. 누렇게 익은 벼들로 가득한 김제의 만경평야.때마침 불어온 산들바람과 흥겨운 춤사위를 나누느라 이랑마다 여유와 만족감이 충일하다. 노령산맥이 서해로 뻗어오다 그 기운을 모악산에 모두 토해내고 지리멸렬,한숨을 내쉰 형국으로 평야가 들어섰다.땅과 하늘이 잇닿은,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전북 김제시 광활면과 진봉면 일대. 들판에 서면 도리깨질을 하는 어머니와 수확을 앞둔 논에서 피를 뽑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배어나오는 바다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오래전부터 천혜의 곡창.“태풍 ‘프라피룬’인가 뭔가 ‘사오마이’인가 뭔가도 이상하게 싹싹 비켜간당게.물도 좋고 땅도 좋아,다른 곳은 흉년들면 여긴 더 대풍이지라”농심은자랑스럽기만 하다. 이곳의 어느 논두렁을 들어가도 가슴이 다 훤해지는 지평을 만날 수있다.또한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시원스레 달리다보면 도시인들은 해방감에 흠뻑 젖어든다. 그리고 일몰.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벼들의 머리위로 참연히 얼굴을 담그는 일몰을 접하는 일은 여느 곳에서 쉬 만나기 어려운 엑스터시를 안겨준다. 김제에서 유명한 벽골제에 이르는 길.그 길엔 코스모스가 연도에 나와있고 가을이 마중나와 있다.무려 13세기라는 거대한 세월을 버텨낸 벽골제.그 둘레가 44㎞에 이르렀다는 이 제방은 호남(湖南)이니 호서(湖西)니 하는 명칭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이곳의 물을 빼고 흙을 메워 논으로 둔갑시켜 놓는 바람에 벽골제는 박제화돼 있다. 제를 쌓는 데 동원된 일꾼들의 짚신을 털게 했다는 신털미산과 성주의 딸 단야공주가 일꾼들을 불러모아 가야금을 뜯으며 노고를 위무했다는 명금산 등이 남아있지만 일제는 많은 것을 이 천혜의 곡창에서앗아갔다.소설가 조정래씨가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으로 이 곳을 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김제시 위로는 만경강이,아래로는 동진강이 에워싸듯 흐른다.만경강위쪽이 군산.만경들녘에서 군산까지의 도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포장됐다.다 효과적인 수탈을 위해서였다.그런 아픔과 한을 되새기는 여정이 이곳 지평선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김제시는 조씨와 함께 금산사와 심포 등 현존하는 관광자원을 돌아보는 ‘아리랑 투어‘ 상품개발을 추진하고 있다.소설에 등장하는 감골댁 일가,사금 채취장,징게맹갱 등 거점과 송수익 정재규 손판석 등 50∼60명의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투어로 진행된다. 또한 드라마 제작을 중점지원하겠다는 입장을 MBC측에 전달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조씨는 현재 집필중인 ‘한강’을 마무리하는 2002년 이후 첫 작품으로 벽골제를 배경으로 한 소설 ‘단야’를 집필하겠다는 뜻을 밝힌것으로 알려졌다. “김제에는 사실 지평선이 두 개지라” 도인기 김제시청 문화공보담당관은 자랑했다.그대로였다.심포항에 물이 빠지니 또하나의 지평선이 얼굴을 드러낸다.평일인데도 사람들은 바지락이며 생합들로 가득한 자루를 어깨에 지고 갯벌을 훠이훠이 저어나온다. 심포 바로 곁의 망해사.소박한 절 크기에 비해 만경강,서해,군산땅,김제들녘을 한눈에 내려다보는,지평선과 수평선을 한꺼번에 맛보는조망감이 활달하다. 그리고 모악산 줄기에 자리한채 풍요로운 만경들녘을 굽어보는 금산사.국보 62호인 미륵전을 비롯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등 3개의 대형불상이 봉안된 대적광전과 점판암을 쌓은 육각다층석탑 등보물급 문화재들이 즐비하다.조계사의 큰 집 답게 호남 지역 전체를아우를만한,속리산 법주사에 비견될만한 위엄을 갖추었다. 이제 열차를 타고 남행할 때 서쪽 창변으로 내다보던 석양의 아름다움을 더깊이 이해할 것 같다. 글·사진 김제 임병선기자 bsnim@. *김제 ‘지평선축제' 내일 팡파르. 성공적인 지방축제로 자리매김한 김제 지평선축제가 올해는 29일부터 사흘동안 열린다.올해 하이라이트는 ‘떡가래 길게 뽑기’로 기네스 공인기록에 도전한다.시민과 관광객 380명이 참여,통일 염원을 담아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380m 길이의 떡가래를 뽑는다.지금까지 비공인 기록은 지난해 12월 이화여대에서 세운 305m. 광활면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이 26m의 관람대도 주목할만하다.우마차를 타고 황금벌판을 누빌 수도 있고 40가족이 1박2일간 자매결연 농가에 머무는농사체험,허수아비와 옹기만들기를 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입석 줄다리기와 벽골제 축조를 배경으로 한 쌍용놀이 등 민속놀이와 심포항에서 즐기는 조개캐기,청하면 만경대교에서 벌어지는 망둥어낚시대회 등이 펼쳐진다.축제위원회(063-540-3108)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김제 나들목을 빠져나와 714번 지방도로를이용한다.강남고속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김제행 버스가 운행되며 열차도 수시로 다닌다.29번 국도가 벽골제∼죽산∼심포항으로 연결된다.김제시와 벽골제,심포항을 돌아오는 셔틀버스가 행사기간동안6대 운행된다. ■먹거리 김제의 3대 자랑거리는 벽골제와 미질 뛰어나기로 이름난지평선쌀,싱싱한 생합(백합). 생합은 간이 나쁘거나 악성빈혈이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있다고 전해지며 쫄깃한 맛이 9월과 10월 절정에 이른다. 조금은 인파로 북적이는 심포항보다 거전(巨田)마을쪽이 한가롭고 좋다.시원한 맛이 일품인 꼬막국수와 꼬막무침도 푸짐하다.새만금횟집(063)543-6668낙조를 기다리며 거전마을 갯벌에 정박한 배에 올라 망둥어 낚싯대를기울이는 맛도 황홀하다.
  • [외언내언] 훼손된 檀君像

    지난 94년 공보처는 해외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어글리 코리안의행태를 공개한 바 있다. 그중 하나가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불상(佛像)의 목을 잘라 구속된 한국인 목사를 포함한 관광객들의 행동이었다. 이런 광신적 행위로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훼손되는 경우도 많다.강진 무위사 극락전 수월관음도 중앙 아랫부분에 60×70㎝ 크기의 십자가가 새겨진 바있는데 사찰측은 이를 다른 종교인의 훼불(毁佛)행위로 주장한다. 또 지난 86년 전북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보물 476호)이 화재로 전소된 것도 이교도의방화에 의한 것이라 한다. 고종 29년에 세워져 사적 252호로 지정된 서울 약현성당을 지난해 불태웠던 방화범 또한 다른 종교인이었다.자신과 다른 종교적 신념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이다.불교 사찰에 대한 의문의 방화사건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심지어는 불교TV 방송국에 불을 지르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적도 있다. 지난 4일 밤 경기도 여주군의 3개 초·중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단군(檀君)좌상의 목이 잘려나간 사건도 경찰은 광신도(狂信徒)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라 한다.경찰 추정이 사실로 밝혀지든 아니든 우리 사회 일부 종교인들의 반사회적인 행태는 위험수위에 다다른 듯싶다.‘종교백화점’이란 말이나올 정도로 한국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종교간 갈등이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에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종교를 무조건 배척한다면 사회혼란이 빚어진다.각 종교지도자들은 광신도들의 반사회적 행위를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신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우리 종교인들은 3·1운동 당시 이미 종교간 대화와 협력의 자세를 모범적으로 보인 바 있지 않은가. 초·중교에 세워진 단군좌상을 종교적으로 보는 시각도 이해하기 힘들다.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지듯 단군상이 세워진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 없는 것이 일반적인 국민정서다.물론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사건이 발생한 여주 지역 초·중교가 그런 의도를 지니지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알 수있는 일이다.설혹 신앙의 대상이라 할지라도 단군상의 목을 자른 것은 너무도 야만적인 행동이다.등교길의 학생들이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이 사건의 범인들은 씨랜드 참사를 불러온 어른들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임영숙 논설위
  • 오부치총리 訪韓 이모저모

    오부치총리는 20일과 21일 고려대 강연과 해인사 방문을 통해 역대 일본총리 방한과의 차별화를 시도,주목을 끌었다.일본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민족사학’과 ‘호국사찰’에 대한 그의 과감한 접근은 아키히토(明仁)일황의 방한에 앞서 ‘정지작업’ 차원이 아닌가 풀이된다. 오부치총리는 21일 오후 2박3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에서 간단한환송행사후 도쿄로 떠났다. ▒해인사 방문 오부치총리는 21일 오전 10시30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도착,일주문을 거쳐 경내 대적광전을 참배한 뒤 팔만대장경판고를 돌아봤다.오부치총리는 청화당(淸和堂)에서 ‘구명불견암(求明不見暗)’이란 기념휘호를써 해인사에 전달했다.송월스님은 답례로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적어 건넸다.오부치총리는 오후 1시 해인사를 떠났다. ▒고려대 강연 이에 앞서 20일 오후 열린 오부치총리의 고려대 강연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큰 불상사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부치총리는 강연 20분 전인 오후 2시10분 경호당국의 삼엄한 보호 아래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고려대 정문을 통과했다.고대생 150여명이 ‘과거사 청산’과 ‘어업협정 즉각 파기’를 주장하며 교문 진입 저지와 대강당 시위를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정문 앞에서 1시간 가량 연좌시위를 벌였다.오부치총리는 “안녕하십니까.소개받은 오부치입니다”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해 600여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오부치총리는 고려대와 연대,와세다와 게이오대 등 네 학교간의 교류시합을 제안하기도 했다.오부치총리는 강연후 金炳琯이사장과 金貞培총장으로부터 고려청자 1점과 여초 김응현선생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대형서품을 선물받았다.
  • 「월인석보 권25」 등 12건 보물로 지정

    문화체육부는 11일 「월인석보 권 제25」등 12건을 보물로 지정하고 「나주 신촌리고분 출토 금동관(국립중앙박물관소장)」과 「초조본 아비달마 대비파사론(성보문화재단소장)」을 국보 지정대상으로 결정했다.국보지정 대상으로 선정된 문화재는 국보지정심의 분과위원회에서 국보로 최종 결정되며 여기에서 제외되면 자동적으로 보물로 지정된다. 이날 지정된 보물은 다음과 같다. ▲월인석보 권 제25(보물 제745­9호,전남 장흥군 보림사 소장) ▲백범일지(보물 제1245호,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김신씨 소장) ▲광덕사소장 조선시대 사경(보물 제1246호,천안시 광덕사 소장) ▲광덕사소장 면역사패 교지(보물 제1247호,천안시 광덕사 소장) ▲대불정 여래밀인 수증요의 제보살만행 스능엄경(보물 제1248호,서울 강남구 대치동 성보문화재단 소장) ▲간이 벽온방(보물 제1249호,인천시 가천박물관 소장) ▲세의득효방(보물 제1250호,인천시 가천박물관 소장) ▲금강반야바라밀경 권1(보물 제1251호,전남 장흥군 보림사 소장) ▲상교정본 자비도량참법(보물 제1252호,전남 장흥군 보림사 소장) ▲해인사 대적광전 홍치 4년명 동종(보물 제1253호,경남 합천군 해인사 소장) ▲보림사 목조 4천왕상(보물 제1254호,전남 장흥군 보림사 소장) ▲완주 송광사 소조 4천왕상(보물 제1255호,전북 완주군 송광사 소장)
  • 고려말 의복 11점 완전형태 첫 공개/해인사서

    ◎지공화상 계첩 12장도 고려 말의 사회상과 불교의식을 보여주는 상류사회의 옷가지 11점이 완전한 형태로 처음으로 공개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성보문화재연구원 원장 범하 스님이 5일 경남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복장에서 발견한 것으로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쯤에 만든 옷가지 11점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발견한 의복들은 불상을 조성할때 불상안에 봉안하는 복장유물의 하나로 이름과 신분을 나타내는 붓글씨 묵서명이 들어있다.묵서명은 어른옷에는 『승봉랑 봉선고 부사 이승밀 의』라고 적었고 어린이 옷 요선철릭에는 『연십오 송부개 장명지원』이라고 쓴 것으로 미루어 15세된 송부개 어린이의 무병 장수를 빌기위한 유물로 해석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 복장에는 옷가지 말고도 고려시대 개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도출신의 승려 지공화상(1300∼1363)이 육필로 쓴 계첩 12장과 비단주머니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 해인사(음식문화 이렇게 바꾼다)

    ◎발우공양… 식사후 물따라 마셔 쓰레기 없애/식사인원 미리 철저히 파악… 음식량 조절에 신경/자장 등 기름기 많은 음식은 뷔페식 자율 배식도 절에서는 절대로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식사를 마친 스님들의 바리때(나무로 만든 그릇)에는 쌀 한 톨,콩나물 대가리 하나 없다.아침에 먹다 남은 음식은 점심에,점심에 먹다 남은 음식은 저녁에 국이나 찌개로 만들어 먹는다.철저한 「재활용」이다.어쩌다 불공을 드리러 온 신도들이 음식물쓰레기를 남기기도 하지만 이것도 며칠을 모아야 잔반통 하나를 채울까 말까 할 정도다.경남 합천 해인사의 사례를 소개한다. 지난달 31일 낮 해인사 본사 오른쪽 대적광전 옆에 있는 수행도량인 정수당의 반지하 식당.한 구석에서 스님 몇 명이 사시공양(점심식사)을 하고 있다.스님 대부분이 외출을 한 터라 스님 모두가 큰 방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는 발우공양을 하지 않고 회사의 구내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식판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다.식당 한 쪽 배식대에는 밥과 국,그리고 반찬을 가득 담은 큰 그릇들이 놓여 있다.이른바 뷔페식이다. 스님들은 각자 먹을 만큼 식판에 담아 먹는다.식사시간에 절에 남아 있는 스님들이 얼마 되지 않거나 식사 후 기름기 때문에 그릇이 잘 닦아지지 않는 짜장 또는 카레를 만들어 먹을때는 발우공양을 하지 않고 이처럼 자율배식을 한다고 한다.『이제는 절도 현대식이 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에서는 10명 남짓한 행자스님들이 밥을 푸고 또 보살간에서 만들어 날라온 두부 등 반찬을 먹기 좋게 썰고 있다.보살간은 보살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해인사에는 70세가 지난 쌍둥이 보살을 비롯해 10여명의 보살이 있다.보살들은 주방 출입을 하지 않고 보살간에서 반찬만 만든다. 공양간이라 불리는 주방에서는 밥만 짓고 국과 찌개는 갱두간에서 만들어 가져 온다.일종의 분업이다. 하지만 식사인원을 정확하게 예상해 음식을 만들어 식사 뒤 남는 음식은 그렇게 많지 않다.주방 입구에 있는 잔반통은 음식물쓰레기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하다.주방에서 일하는 이름을 밝히기를 극구 꺼리는 한 행자스님은 『절에서 무슨음식물쓰레기가 나온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찾아 왔느냐』면서 취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인사의 스님은 모두 160여명.모두 비구다.여기에 객승과 처사(절에서 일하는 직원),불공을 드리러 온 신도를 합쳐 식사를 하는 인원은 한 끼당 220여명선.하루에 한 가마를 조금 웃도는 쌀이 든다.일반인 같으면 200명이 넘는 인원이 먹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지만 스님들은 식사량이 적기 때문에 한 가마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절의 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주현 스님의 설명이다.밥에 콩이나 팥 등 잡곡을 섞으면 쌀의 양이 더 줄어든다.신도들이 찾아올 때는 공양을 더 준비하지만 몇 명이 찾아오는지 미리 원주 스님을 통해 공양간·보살간·갱두간에 각각 통보되기 때문에 음식이 거의 남지 않는다. 신도들이 먹다 남긴 음식은 남에게 내놓을수 없기 때문에 잔반통으로 들어간다.그래서 신도들이 불공을 드리러 올때 음식량 조절에 더욱 신경을 쓴다.하지만 신도들이 남기는 음식물쓰레기도 채소를 다듬다가 나오는 것을 합쳐 4∼5일이 지나야 잔반통 하나가 찰 만큼 매우 적다.음식물쓰레기는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밭의 거름으로 쓴다. 사실 절의 식사문화를 보면 음식물쓰레기가 생길 여지가 전혀 없다.최근 들어 자율배식이 때때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절의 전통적인 식사법은 발우공양이다.발우공양을 할 때는 밥·국·반찬·물을 각각 담는 4개의 바리때를 쓴다.먼저 물을 밥그릇에 담았다가 밥그릇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 국그릇으로 옮긴다.국그릇의 물은 다시 그보다 크기가 작은 반찬그릇으로 옮겨지고 반찬그릇의 물은 마지막으로 바리때 가운데 가장 작은 물그릇으로 옮겨진다.그러면 행자 스님들이 밥·국·반찬·물을 나누어 준다.식사를 할 때는 밥풀 하나 남기지 않는다.다 먹고 난 뒤 밥풀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물을 따라 다시 먹는다.식사를 끝낸 뒤에는 식사 전과 반대의 순서로 물을 옮겨 손으로 바리때를 씻는다.그런 다음 물을 퇴수통에 비우고 바리때를 바루보로 닦아 선반에 올려놓으면 공양이 비로소 끝난다. 퇴수통의 물은 늘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아귀(배는산처럼 크지만 입은 바늘구멍만 해 음식을 먹을수 없는 귀신)을 위한 것이다. 불가에서 음식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개울물에 떠내려간 콩나물 대가리 하나를 찾아 계곡을 헤맸다는 한 고승의 일화다.옛날 한 젊은 스님이 깊은 산 속의 암자에 큰 스님이 기거한다는 말을 듣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데 콩나물 대가리 하나가 떠내려왔다.이를 본 젊은 스님이 『이렇게 음식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무슨 큰 스님인가』라고 실망해 있는데 큰 스님이 내려와 『내 콩나물 대가리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그러자 젊은 스님은 잠시 전의 의심을 뉘우치고 큰 스님에게 무릎을 꿇어 가르침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해인사 원주 주현 스님/“음식의 근본 깨달으면 버릴수 없어…” 『음식을 생명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쌀 한 톨도 버리지 못할 겁니다』 해인사 원주(절의 살림을 총괄하는 스님) 주현 스님은 『한 끼의 음식은 수많은 생명이 죽어서 비로소 내게 온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주현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밭에 농약을 치고 김을 매면 숱한 벌레가 죽는다.그런 수많은 생명의 희생이 있어야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으므로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현 스님은 또 『쌀 미자의 글자 모양대로 음식이 상에 올라오기까지에는 88번이나 손이 간다』며 『이러한 수고와 희생을 생각하면 과연 내가 밥을 먹을 자격이 있나 없나를 따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은 백지 한 장에서 구름과 비와 나무를 본다』면서 『구름은 비를 만들고 비는 종이의 재료가 되는 나무를 자라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를 음식에 빗대면 음식의 재료가 되는 쌀과 채소 등이 만들어지기 까지에는 물과 햇빛을 비롯해 수많은 요소의 결합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수많은 요소의 결합과 무려 88번이나 되는 수고를 거쳐 비로소 음식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음식을 남겨 쓰레기통으로 보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주현 스님은 『책으로 만들면 6천791권에 달하는 팔만대장경을 바로 외우고 또 거꾸로 외워도 근본을 모르면 소용이 없다』면서 음식의 근본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면 음식물쓰레기가 남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찰에 잇단 방화추정 불/서울 화계사… 지난달 22일부터 3번째

    14일 낮 12시 쯤 서울 강북구 수유1동 487 화계사(주지 이덕인)안 대적광전에서 불이 나 상판 일부를 태우고 30분만에 꺼졌다. 경찰은 경내에 방문객이 드문 평일인데다 불이 나기 전 대적광전 안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는 스님들의 진술에 따라 방화로 인한 불로 보고 수사 중이다. 지난 달 22일과 이 달 1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났으며 지난 달 20일 밤에는 이 절로부터 2㎞가량 떨어진 삼성암(주지 박세민) 종각에서도 불이 나 내부 20여평을 태웠다.〈박용현 기자〉
  • 성철스님 열반 2주기 추모제

    【합천=강원식 기자】 성철스님 열반 2주기 추모제가 12일 경남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등 1천여 신도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제는 반야심경 봉독과 성철 스님의 행장 소개에 이어 송원장과 해인사 주지 지관스님의 추모사순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송원장은 추모사에서 『나라가 어렵고 국민의 마음이 불안할 때 큰 스님의 말씀과 위엄이 더욱 그립다』며 『모든 사부대중의 의식개혁으로 새로운 한국불교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 신도들,“뒷산서 방광 보였다”/성철 큰스님 다비 해인사 표정

    ◎누더기옷·노트 등 20점 공개 ○…이날 다비장에서 철야를 하고 내려온 스님과 보살들은 10일밤 큰스님이 거처하던 백련암 뒤편의 불면대 능선에서 둥글게 하얀 빛이 피어오르는 방광현상을 보았다며 큰스님이 다시 오시는 상서로운 서기라고 한마디씩. 특히 원택스님등 상좌스님들은 『큰 스님께서는 색신을 가리고 현미와 콩·솔잎등 담박한 식생활과 8년여의 장좌불와로 수행해 왔으므로 사리도 남다를것』이라고 귀띔. ○…해인사측은 11일 성철 큰스님이 입적한 퇴설당(퇴설당)과 스님의 생전 유품 20여점을 공개. 유품가운데는 스님의 수계첩과 안거증등 최초로 공개되는 것과 육필로 쓰인 노트등이 있어 많은 관심을 모았다. 퇴설당 큰방의 한쪽 벽에 걸린 스님이 평생을 입었다는 누더기는 전체가 천조각으로 기워져 마치 조각보같았다.또 30년을 갖고 있었다는 지팡이(석장)·20년 쓴 삿갓·검정고무신·덧버선·양말 등이 진열됐다. 또다른 한편에는 스님이 50여년전 범어사 차상명주지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은 수계첩과 승려증·안거증과 1950년 통영군에서 발부받은 도민증 등 스님이 갖고 있던 각종 증명과 스님의 육필노트및 편지지·안경과 안경집등도 공개됐다. 유품중에는 휴지로 쓰기 위해 채곡채곡 쌓아놓은 일력뭉치가 있어 평소 스님의 검소한 생활을 말해주었다. ○…대적광전 동쪽에 위치한퇴설당은 대지 1백평 건평 25평의 작은 집으로 1901년 중건됐다. 이곳에는 염화실이라는 현판이 또하나 걸려 있었으며 왼편에는 스님이 평소에 산책다닐때 사용하던 출입문인 등기문이 7∼8계단 위에 덩그러히 놓여 있었다. 스님이 24세때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처음 해인사에 와서 걸터앉았던 툇마루가 그대로 있어 마치 큰스님이 금방이라도 기침을 하고 오를 것같은 분위기를 주기도 했다. 안내를 맡은 무관스님은 「퇴설당」이란 이름은 발자국이 없는 산중의 눈 쌓인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 번뇌망상이 없어진 상태라는 뜻이 있으며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 장엄한 다비불길… 큰법 남기고/성철스님 떠나시던날

    ◎해인사에 애도인파 15만/오늘 상오 사리 수습 【해인사=임시취재반】 『가고 오고 머무르심이 없는 그곳에 열반의 종소리가 울려옵니다』 한국 불교의 태고봉 성철큰스님의 가시는 길은 하늘마저 가을비를 촉촉히 뿌려 큰스님의 큰 법과 큰 덕을 아쉬워했다. 성철큰스님의 조계종 종단장이 거행된 10일 상오 경남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 일대에는 3천여 스님과 15만여명의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상오 11시 영결식에 이어 하오 2시20분 다비식으로 나뉘어 엄숙하게 진행됐다. ▷영결식◁ 이날 영결식은 「석가모니불」 독경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상오8시 퇴설당에서 큰스님의 법구를 식장으로 운구하면서 시작,상오11시 전국 1천2백여 조계종 본·말사에서 일제히 다섯번씩 종을 울림과 동시에 개식됐다. 삼귀의와 영결법요에 이어 해인사 율주 일타스님의 큰스님 행장소개 순으로 진행된 영결식은 영결사·추도사·조사·헌화 및 분향 등 2시간동안 계속됐다. 이날 조사는 박종하중앙종회의장과 김종필 민자당대표·이기택 민주당대표·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권익현 국회정각회 회장·조기현 전국신도회장 등이 맡아 고인의 덕을 기렸다. 이어서 불교연합합창단이 추모가 「성철 큰스님 열반하시니」를 합창하는 동안 헌화 및 분향이 이어졌으며 혜암해인총림부방장의 문중대표 인사를 끝으로 인로왕번을 앞세운 장의행렬이 다비식장으로 향했다. ▷다비식◁ 영결식장에서 3㎞ 떨어진 연화대에서 거행된 다비식은 하오2시30분 큰스님 법구가 다비대에 안치되자 장례위원장 의현스님과 법전스님등 문도스님 대표들이 거화 및 하화의식을 거쳐 불을 붙이며 시작됐다. 다비장에는 비가 오는데도 5만여 신도들이 주위 산등성에 빽빽이 들어앉아 큰스님의 마지막 열반모습을 지켜봤다. 다비식은 밤새 진행되어 11일 상오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수습된 사리는 49재 후 대적광전에 임시 안치했다가 부도를 만들어 영구보존케 된다. 이날 행사에는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박찬종 신정당대표 등 정계인사 50여명과 타종단 대표,페드리스 스리랑카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도 참석했다. □해인사=임시취재반 ▲문화부=나윤도기자 ▲전국부=남윤호기자 ▲사진부=유재림·황경근기자
  • 성철스님 오늘 영결식…해인사 표정/분향행렬 5만…다비장 준비 완료

    ◎상오 8시 운구… 전국사찰 5번 타종/조사 신청자 쇄도… 여야대표도 포함 성철 큰스님의 다비식을 하루 앞둔 9일 해인사에는 은은한 독경 속에 5만여명의 분향객 행렬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결식장과 다비장 준비가 완료됐다. ○…이날 하오 종단장준비위원회(위원장 일타스님)는 전체회의를 열고 10일 거행될 장의일정을 확정. 영결식은 상오8시.퇴설당에 안치된 큰 스님의 법구가 구광루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으로 이운되면서 시작된다.퇴설당 바깥문까지는 법전·원택등 20여명의 문도들이 이운하고 영결식단 뒤의 운구차량까지는 20여명의 전국 수좌들이 이운한다. ○…당초 대적광전 앞에 설치하려다 구광루 앞으로 옮긴 영결식단에는 「시적」(고요한 것을 보였다)글씨와 함께 좌우로 큰 스님의 열반송을 적어 참배객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배려. 영결식은 상오11시 조계종 전국 본·말사가 동시에 5번 타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영결사는 서의현총무원장,추도사는 송서암원로회의의장,문중대표인사는 혜암해인총림부방장이 각각 맡는다.조사는 원래 박종하중앙종회의장과 정부대표로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 등 2명이 하기로 돼 있었으나 신청자가 쇄도,김종필 민자당대표·이기택 민주당대표·권익현국회정각회회장·조기현전국신도회회장 등의 조사가 추가로 포함됐다. ○…이날 식장에서 불려질 조가 「성철 큰스님 열반하시니」는 스님 입적후 일타스님이 바로 작시한 것을 해인사 포교국장 시명스님이 영감을 떠올려 곡을 붙인 것으로 제자들의 애틋한 사사곡으로 유명. 또 큰스님의 꽃영정과 법구를 운구할 꽃영구차도 비구니 스님들이 정성스레 색색 국화를 꽂아 만든 것.꽃영구차는 꽃지붕에 만자,연꽃등이 둘레에 수놓여진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꽃을 꽂는데만도 5시간이상 걸렸다고. ○…다비장이 마련된 연화대는 7∼8명의 인부가 나흘동안의 작업으로 완공했다. 지름 5m정도의 원형으로 된 다비대는 모두 5평의 참나무를 쌓아 만들어졌으며 가운데는 철구조물을 놓아 관을 올려놓고 태우도록 돼있다.참나무 둘레에는 열의 확산을 막기위해 짚단으로 두르고 다비대 전체를 모두 8필의 흰 광목으로 뒤덮고광목 위에는 연꽃을 꽂아 마치 전체가 하나의 큰 연꽃처럼 보이도록 했다. ○…이날 조문객 중에는 민자당의 강경식의원과 조중훈한진그룹회장,전민중당대표 장기표씨와 사무총장 이재오씨가 포함돼 있었다. ○…한편 불교방송(BBS)은 상오 11시부터 하오 3시까지 이날 거행될 다비식과 영결식의 전과정을 생중계한다.또 KBS 1라디오에서는 다비식과 영결식의 모든 절차를 녹음해 그중 하이라이트만을 모아 11일 하오 3시30분부터 20분간 「라디오 전국연결」시간에 방송할 예정.
  • 내일 성철 큰스님 영결식·다비식… 어떻게 치러지나

    ◎법체 삭발·착관의식 거쳐 화장/조계종 각사찰 일제히 타종,영결식 시작/해인사서 2㎞ 떨어진 연화대서 다비식/분소후 유골 분쇄·산골의식거쳐 사리 스습 퇴옹 성철스님의 입적 엿새째를 맞아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과 다비식이 어떻게 치러질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지는 큰스님의 다비식은 지난 71년 청담스님의 다비식에 이어 20여년만에 치러지는 것으로 단순한 장례식의 차원을 떠나 1천6백년 한국불교의 전통의식을 되살린다는 측면에서 불교계 뿐아니라 민속학계 역사학계 등에서의 관심도 크다. 다비란 불교의 장례의식으로 범어 쟈피타(Jhapita)를 음역한 말로 분소 또는 연소 등으로 의역되며 본래부터 시체를 화장하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불교에서의 통상적인 다비식은 의식집인 석문의범에 규정된 대로 행해지고 있다.성철스님의 다비식은 10일 상오11시 대적광전 앞에서의 영결식에 이어 하오2시 2㎞ 떨어진 연화대에서 거행된다. 영결식 전에 가장 먼저 치르는 의식은 삭발의식.법체가 모셔진 퇴설당에서삭발에 이어서 세수와 선족을 하는 목욕의식,옷을 갈아입히고 관을 씌우는 착관의식이 진행된다.이같은 절차가 끝나면 죽은 이의 영혼을 정좌시키는 정좌의식으로 정좌편과 안좌게를 염불하며,영혼에게 음식을 베푸는 시식의식을 행한다.입관한 뒤에는 기관이라는 발인의식을 거쳐 관을 영결식장으로 옮긴다. 퇴설당 1백여m 아래 있는 대적광전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에는 높이 4m 길이 12m의 연단이 만들어졌다.영결식은 이날 상오 11시를 기해 전국의 조계종 각 사찰과 암자 1만여 곳에서 일제히 다섯번씩 타종하면서 시작돼,서의현 총무원장의 영결사,송서암 원로회의 의장의 추도사,혜암 해인총림 부방장의 문중대표 인사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영결식이 끝나면 해인사에서 2㎞ 떨어진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을 치르게 된다.다비장에 이르기에 앞서 노제를 지내며 다비장에 이르러서는 고통을 떠나서 열반에 들게 되어 영생을 얻음을 뜻하는 거화및 하화의식을 행한다.떡갈나무의 불이 시신에 옮겨 붙으면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봉송의식을 행하고,또 영혼이 새로운 몸을 받아 새로운 옷을 갈아입을 것을 바라는 창의의식을 치른다. 화장이 끝나고 나면 남은 유골을 수습하여 분쇄하고 흩어버리는 기골·습골·쇄골·산골의식을 행한다.이때 환귀본토진언을 외면서 영혼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발원한다.사리의 수습도 이때 이뤄진다. 다비식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리 수습이다.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인 사리는 황금색의 분말에서부터 진주와 같은 구슬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부처님의 사리를 진신사리라고 하고 불경은 법사리,고승의 사리는 승사리라고 부른다.진신사리와 법사리는 불탑 속에 봉안되는데 비해 승사리는 불탑과는 다른 형태인 부지에 봉안된다. 기록에 따르면 가장 많은 사리는 부처님 진신사리로 8곡4두에 달했다.이는 불법의 너른 전파를 위해 당시 인근 8개국에 분배,봉안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현장법사가 1백50입,의정이 3백립등을 들여와 널리 퍼져있다. 성철스님의 스승으로 그를 득도의 길로 인도했던 동산스님은 65년 입적후 2과의 사리가 나온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스승이었던 용성스님도 2­3과의 사리를 남겼으며 빛깔이 찬란하고 영롱했던 것으로 유명하다.성철스님도 훌륭한 사리를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 성철스님 입적 해인사 표정/“다비식에 만장 1천개” 준비 부산

    ◎전국서 조문객 1만… 숙박업소 붐벼/신도 1백20여명이 부를 조가 작곡 ○조전 잇따라 쇄도 ○…성철종정의 입적 3일째인 6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에도 아랑곳없이 전국 각지에서 승려·신도등 1만여명의 조문객이 몰려들었고 각계에서 보낸 조화·조전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성철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궁현당 앞마당에는 스님의 열반이후 3일동안 각계에서 보낸 1백여개의 대형조화가 진열됐으며 최규하전대통령·이만섭국회의장·이회창감사원장·한완상부총리등 1백여통의 조전이 쇄도. 특히 휴일인 7일에는 2만여명의 신도들이 몰려들 것으로 보여 성철대종사 원적이후 가장 많은 조문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 일부 신도들은 『성철스님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신라 원효대사이후 가장 큰 스님으로 꼽혀왔다』며 종정의 다비식에 과연 몇과의 사리가 나올 것인지에 대해 벌써부터 큰 관심을 보이기도. 법체가 모셔진 퇴설당에는 목탁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는 가운데 원택스님 등 측근 수좌스님들이비통한 표정으로 법구를 지켰고 방송사 등의 끈질긴 요청으로 성철스님과 관련된 일화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일부 스님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성철스님이 생전에 즐겨 다니던 해인사 본사에서 백련암에 이르는 1.5㎞의 오솔길을 거닐면서 성철스님의 생전모습을 그리기도. ○연화대 주변 청소 ○…해인사측은 성철스님의 종단장 준비를 위해 대적광전 앞에 높이 4m,길이 12m의 연단 마련에 열중했고 다비식이 이뤄질 연화대 주변에는 많은 스님들이 잡초를 제거하고 운구 행렬이 쉽게 오를수 있도록 길을 넓히고 있다. 또 범종각 뒤쪽 청화당에서는 글씨를 잘쓰는 스님들이 각계에서 요청해 온 만장을 쓰느라 분주.이날 하룻동안 2백여장의 만장을 이미 준비했고 종단장이 있을 10일까지 1천여장의 만장을 준비할 예정. ○…성철종정의 열반으로 해인사 주변 숙박업소와 음식점들도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관광호텔 등 이 일대 10여개 숙박업소의 방이 오는 10일까지 이미 예약된 상태 ○…종단장 장의위원회는 『높고도 높으심은 수미산이요/깊고도 깊으심은 향수해로다/가고 오고 머무심이 없는 그곳에/열반의 종소리가 울려옵니다/……』라는 내용으로된 일타스님의 시에 시명스님이 곡을 붙여 해인사법보합창단·부산불교연합합창단 등 1백20여명의 신도들이 영결식장에서 부를 예정.
  • 딸·상좌스님들 참여속 장엄한 입관식/성철스님 입적 해인사 표정

    ◎전국의 고승등 1만명 조문… 등산객도 참배/김대통령등 각계 조화 가득… 외국인도 발길 ○고승의 입적 실감 ○…조계종 성철스님이 열반한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는 5일 전국에서 몰려든 승려·신도 등 1만여명의 조문객들로 장사진.평소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들끓었던 해인사에는 이날 회색과 검은색차림의 신도들이 열반에 든 종정을 참배하기 위해 경내를 분주히 드나들었으며 무거운 적막이 경내를 내리눌러 고승의 입적을 실감. 통도사 방장 월하큰스님이 이날 하오 조문을 하는 등 전국의 고승대덕이 찾아왔으며 송광사 국제선원 소속 외국인 승려 10여명 등도 조문. ○제자가 조문객 맞아 ○…분향실이 마련된 궁현당에는 해인사 주지인 법전스님 등 문중제자 10여명이 조문객들을 맞았다. 궁현당에는 김영삼대통령·노태우 전대통령·김종필민자당대표·이기택민주당대표·허경만국회부의장·김재순 전국회의장·김명윤한국불교총연합회장 등 정·관계인사와 성철스님 생전에 친분을 가졌던 재계인사들이 보낸 50여개의 대형조화가가득히 진열됐으며 오자 주한인도대사와 패드리스 주한스리랑카대사등이 조전을 보내왔다. ○장의위 1백여명 ○…해인사에서는 이날 상오 원로원·종단·문중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전날의 산중회의에서 결정한 7일장을 추인.영결식은 오는 10일 하오 2시 대적광전 앞광장에서 갖고 다비식은 2㎞ 떨어진 가야산 연화대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갖기로 결정.또 장례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서옹종정·서암큰스님 등 20여명의 원로스님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서의현총무원장을 장의위원장,석주스님을 호상으로 하는 등의 1백여명으로 장의추진위원회를 구성. ○외부인 출입통제 ○…법체가 모셔진 퇴설당에는 성철스님의 상좌와 원로스님 20여명이 영전을 지키고 있으며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 성철스님의 입관식은 이날 밤 스님이 속세에서 낳은 딸 불필스님과 원택스님 등 상좌스님들만이 참여한 가운데 엄숙히 이뤄졌다. 입관식은 성철스님의 법체에 조계종 대종사복을 입히는 등 지난 60년대 통합종단 출범이후 처음으로 장엄한 의식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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