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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참된 감동은 세대를 넘는다/ 김종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열린세상] 참된 감동은 세대를 넘는다/ 김종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너무 큰 사랑은 꼭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 깨닫나 봐요.’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 가수가 아직 젊은 날에 생명을 다하며 남긴 편지의 한 토막이다. 그의 이름은 최여주, 상대방 남자는 한상훈. 그러나 이는 지난 3월 20일부터 4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작품 속 상황이다. 강현우라는 또 다른 남자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사랑과 이별을 테마로 1, 2부에 걸쳐 무려 31개의 노래를 소화한 무대였다. 주크박스라는 장르는 어느 특정한 뮤지션이나 특정한 시대를 담은 노래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주제에 중점을 두고 드라마타이즈한 뮤지컬을 말한다. 이 무대의 실제 주인공은 ‘옛사랑’이나 ‘이별이야기’ 등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고 2년 전에 4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작곡가 이영훈이다. 애절한 사랑이야기의 스토리라인에는 당연히 픽션이 부가될 수밖에 없었겠으나 주제를 따라 흐르는 음악은 맨얼굴 그대로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면 자기도 행복한 거 아닌가.’라는 대사가 말하듯이 일생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단 한번의 고백도 없이 내밀하고 슬픈 사랑을 가꾼 남자의 노래이다. 1980년대 정치적 폭압의 시대, 메마른 가슴에 감수성의 선율을 선사한 이영훈 작곡의 노래는 주로 가수 이문세가 불렀다. 그렇다면 그 노래에 익숙한 세대는 40대 이후 50대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연일 객석을 메운 관객의 다수는 40대 이전 30대가 훨씬 더 많았다. 이 작곡가의 노래가 새로운 세대에 연접되도록 리메이크된 게 많기도 했으나 이 추억의 노래들로 꾸며진 무대 상황은 참된 감동에 세대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했다. 이 뮤지컬이 진실하고 가슴 아픈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특성상 일정한 패턴의 노래에 무대가 묶여 있는 형국이므로 매우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있는 서사적 전개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제로 1부에서는 정치적 압제에 저항하는 운동권 삽화가 효율적으로 도입되었으나, 2부는 거기서 더 발전한 도약이 없었다. 다만 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이 역동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은 그간의 지루함을 날려버릴 만큼 좋았다. 또 하나 이 뮤지컬이 철저하게 이영훈 작곡가에게 바쳐졌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출연자들은 검은 예복 차림으로 무대 위의 노쇠한 작곡가에게 존경을 표했다. 경사진 플로어 장치 양 옆으로 등장한 두 대의 피아노와 간략한 무대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고, 도시적 미감의 변화하는 세트를 영상으로 커버한 연출은 효율적으로 주제의식을 부양했다. 그러나 한 무대 위에서 두 시점이 수시로 교차하다 보니 지나치게 방백 효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단처도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는 기실 감동이 증발해 버린 세태에 침식되어 있다. 드물게 아름다운 일을 만나도 사람들은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고 각박한 잣대를 거두지 않는다. ‘광화문 연가’와 같은 초연의 창작 뮤지컬이 예매사이트 1위를 달리는 것은, 그리고 노소가 함께 그 통속적인 연가에 크게 반응한 것은, 우리 가슴 속에 잠복해 있는 선량한 감동을 어떤 통로와 방식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시사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내용의 진실성, 그리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형식의 효율성이다. 이 작품 이후에 우리가 전설적 그룹 아바의 노래로 구성된 ‘맘마미아’와 같은 세계적 대작을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프랑스 근대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G 바슐라르는 ‘몽상의 시학’에서 새 세대가 옛 세대를 깨우고 옛 세대는 새 세대 속에 다시 살아난다고 적었다. 1980년대의 격렬하면서도 쓸쓸한 삶을 살았던 세대가 21세기의 젊은 세대 가운데서 과거의 자화상과 오늘의 공감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무대의 공로이다. 예술에 있어 시공간의 분계를 넘어 세월의 풍화를 이기며 고유한 가치를 갖는 작품을 고전이라 부른다. 이 작품을 계기로 이제 한국에서도 시(時)의 고금과 양(洋)의 동서를 넘어서는 창작 뮤지컬이 나왔으면 한다.
  • 홀대받던 벽지, 주연 등극

    홀대받던 벽지, 주연 등극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우면서 늘 들었던 얘기가 대상에만 집중하라는 거였어요. 시간 없으면 테이블 위의 중요한 것만 집중적으로 그리고 배경을 밀어버리라는 얘기였지요. 그런데 집과 가정을 소재로 다루다 보니 정작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존재하는 배경이 얼마나 소중한가, 다채로운가라는 느낌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이 나오게 됐지요.” 5월 22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는 변선영(44) 작가의 ‘가치의 부재, 공간에 놓이다’ 전시에 내걸린 작품들을 보면 화사한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봄날에 잘 어울린다 싶은데 들여다보면 특이하다. ●정물보다 달 력·액자 등 배경 초점 보통의 풍경이나 정물에서 벽지는 그냥 그렇게 저 뒤에 어렴풋이 비치고 마는 존재다. 전면에 나서는 것은 대개 사람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공간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 그러니까 정성껏 꾸민 화병이나 화분, 트로피 같은 것을 늘어놔둔 벽장 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이걸 거꾸로 했다. 남들이 정성들여 그리는 것들은 마치 스티커 한장 떼어낸 자리를 만들 듯 허옇게 내버려뒀다. 대신 남들은 대충 밀어버리는 벽지, 저 멀리 벽에 붙은 액자 속 그림, 탁상에 아무렇게나 놓인 달력, 그 달력 아래 깔린 레이스 달린 테이블 보 같은 것들을 세심하게 그려뒀다. ●정밀 문양 펜촉으로 찍어 가며 그려 이번에 선보이는 연작 시리즈 제목이 ‘가치의 정체성을 잃다’(Lost Identity of Value)인 이유다. 언제부터 그림으로 그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라고 정해졌는지 되물어 보는 작업이다. 때문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달력이나 그림이 대개 팝 아트 작품이거나 민예화들이다. 간혹 인상파 그림 같은 것도 보이지만, 이 역시 자신의 그림처럼 사람 그 자체를 제거시켰다. 대신 가장 공들인 부분은 정교한 문양의 벽지다. 벽지 문양이 워낙 미세하다 보니 펜촉에 물감을 묻혀 찍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일일이 찍어 그리는 탓에 캔버스를 세우지도 못하고 눕힌 상태에서 허리를 숙인 채 장시간 작업한다. 허리 통증은 기본이고 팔 길이의 한계 때문에 대작을 그리기 어렵다는 고충은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묘한 한국적 냄새가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작으로 가면 벽지가 있어야 할 장소는 오히려 하얗게 텅 비어 버리고 벽지 문양이 하늘하늘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벽지 문양의 모험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증을 낳는다. (02)720-10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여의도 봄꽃축제 8일부터

    영등포구는 오는 8~19일 여의도 국회 뒤편 여의서로 일대에서 ‘제7회 한강 여의도 봄꽃축제’를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12일간 여의서로에서 열리는 봄꽃축제에는 1440여 그루의 벚꽃나무와 함께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목련, 살구나무 등이 한강을 따라 봄꽃터널을 만들며 장관을 이룬다. 본격적인 축제는 13일 오후 국회 옆 한강둔치에서 불꽃쇼를 시작으로 거리 문화예술공연, 현대작가 초대전, 사진작품 전시회, 좋은 간판·꽃장식 전시회 등 풍성한 볼거리가 17일까지 선보인다. 페이스페인팅, 백일장, 시낭송회, 서울보트쇼, 봄꽃길 걷기대회 등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마련된다. 교통통제에 유념해야 한다. 8일 0시부터 19일 밤 12시까지 여의서로로의 차량 진입이 금지된다. 여의서로 1.7㎞ 구간과 마포대교 및 고수부지 도로에서 여의하류 IC시점부 1.5㎞의 교통이 통제된다. 대신 지하철 2·9호선 당산역과 5호선 여의나루역,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이용하면 축제 장소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당산·영등포구청·영등포·여의나루역과 국회의사당을 경유하는 버스가 운행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LA타임스 “라스트 갓파더 영구, 썰렁했다”

    LA타임스 “라스트 갓파더 영구, 썰렁했다”

    미국에서 ‘영구식 개그’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디 워’(2007)에 이어 미국에서 개봉한 심형래 감독의 기대작 ‘라스트 갓파더’(2010)가 국내 200만 관객동원의 신화 재현은 커녕, 현지 언론매체의 혹평을 받으며 고전하고 있다. ‘라스트 갓파더’는 1950년 대 뉴욕을 배경으로 미국 마피아 대부의 숨겨진 아들 영구(심형래 분)를 둘러싼 소동을 그린 영화다. 북미 58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 주, 10만 3000달러를 벌어들이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미국 언론매체 대부분은 ‘라스트 갓파더’에 대한 혹평을 쏟아냈다. LA타임스, 보스톤 글로브 등 일간신문들은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단조로웠으며 무엇보다 개그코드가 잘 통하지 않았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4일 LA타임스는 영화리뷰에서 “넘어지고, 방귀를 뀌는 심형래 감독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대부분 어색하고 썰렁했다.”고 혹평했다. 또 ‘라스트 갓파더’의 영구는 어른아이처럼 철없고 재기발랄한 캐릭터인데, 50대 심형래는 캐릭터에 비해 늙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조로웠던 면은 보스톤 글로브 등에 단점으로 꼽혔다. 신문들은 “심형래 감독은 영화를 굉장히 단순하게만 그렸다. 조직 간의 전쟁 장면을 그릴 때도 농담을 섞은 대사로 굉장히 단순하고 재미있게 넘겨버렸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앞선 2일 바질 앤 스파이스 브레이킹 뉴스는 제임스 R. 홀랜드의 리뷰에서 ‘라스트 갓파더’에 평점 5점 만점에 1.5점을 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홀랜드는 “이 영화의 유머코드는 서양에선 잘 통하지 않았다.”, “캐릭터들이 대부분 만화같은 이차원적 캐릭터”라고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4일 현재 미국의 영화전문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에 따르면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는 평점 10점 만점에 2.3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 한 영화팬은 “혹평에 비해서는 볼만한 작품이고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한국식 코미디 영화”라고 호평을 남겼지만 대체로 평가는 기대치를 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 http://twitter.com/newsluv ) 
  • 김종학 “설악의 밤하늘에 맹세했었지 좋은 그림 백장 남기고 죽자고”

    김종학 “설악의 밤하늘에 맹세했었지 좋은 그림 백장 남기고 죽자고”

    “꽃그림 그리면서, 그러니까 참…. 이발소 그림 그리냐는 소리도 듣고, 팔리는 그림만그리느냐, 타락했냐는 소리도 듣고. 참 많은 지청구를 들었죠. 허허. 그런데 이렇게 미술관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시회도 열어주고…. 감개무량하고, 인생 막판에 대단한 영광입니다.” 설악산에 은거하면서 화려한 설악의 자연을 담아내 ‘설악 화가’라 불리는 김종학(74) 회고전이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상업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생존작가의 회고전이라 국립미술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가장 눈에 띄는 건 뭐니뭐니해도 미술관이 들인 공력이다. 꽃그림으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그래서 대중에게 인기 있는 꽃그림보다 대작 풍경화 위주로 전시작을 골랐다. 그것도 개인 컬렉터, 갤러리 등 30여곳을 발품 팔며 돌아 대표작 70여점을 ‘모셨다’. 1970년대까지의 김 화백 초기 작품들도 함께 전시했다. ●1970년대 초기작 포함 70여점 전시 덕분에 김 화백이 초기 앵포르맬(Informel·비정형) 화법에서 설악산 풍경으로 어떻게 옮겨갔는지, 또 화풍은 바뀌었더라도 초기 화법이 어떻게 변형되고 유지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붓을 쓰기보다 튜브째 짜서 캔버스에 바로 바르는 화법이다. 김 화백 표현을 빌자면 “구멍별로 달리한 채색법”이다. 가령 녹색이 필요할 경우 녹색 물감 튜브에다 각기 다른 사이즈로 구멍을 뚫는다. 크게 낸 구멍으로 라인을 그리고 작게 낸 순서대로 채색한다. ●물감 튜브 구멍별 채색… 독특한 화법 물감을 뒤섞는 경우에도 팔레트를 쓰지 않는다. 캔버스 위에 바로 물감을 바른 뒤 자연스레 물감들끼리 뒤섞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물감을 더덕더덕 붙여둔 질감을 고스란히 살려두는 서양화 기법이다. 여기에다 유난히 클로즈업으로 그린 작품들이 많다. “흔히 동양적 풍경 하면 여백과 관조를 강조하는데 제 그림은 꽉 들어찬 그림들이에요. 꽃을 그렸지만, 추상적 구상을 쓴 거지요.” 김 화백은 처음엔 욕 좀 먹었다. 출발점이 서구적 실험 화법이었기에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는 ‘변절’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다. “정말 답답했어요. 무슨 주의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 정리하고 도망간 게 설악산이에요. 1979년이었지요.” 꽃그림을 그린 이유와도 상통한다. “처음 설악산에 들어간 게 늦가을이었는데 참 애잔하더군요. 그 다음 해 봄에 꽃들이 막 올라오는데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거예요. 그 전까지만 해도 꽃 같은 건 쳐다본 적도 없거든요. 한때 죽음까지 생각했었는데 꽃들을 그리면서 서서히 나아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남들이 뭐래도 이 그림들을 꼭 그리고야 말겠다 싶더군요.” 이런 심정이 묻어나는 편지 한통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1987년 자식들에게 쓴 편지다. “설악의 밤하늘을 보며 백장의 좋은 그림을 남기고 죽자고 맹세했지.” ●“무슨 주의·이념 떠나 설악산으로 도망” 다행인지 불행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소식도 있다. 1979년 이래 유지해오던 설악산 작업실에 최근 도둑이 들었단다. 약간이 아닌, 대단히 유명한 작가라 작품을 훔쳐가봤자 어디에 처분하기도 힘들 텐데 몇몇 작품들을 도둑맞았단다. 그래서 설악산 작업실을 완전히 정리하고 서울 부암동 작업실로 짐을 모두 옮길 예정이다. 서울로 이사 오면 조금 작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이번 전시작품들은 웬만하면 가로 3m다. “제가 대작 체질이에요. 뭘 그려도 크게 그려야 속이 시원하더군요. 허허허. 막상 그릴 때는 힘들기도 하고, 왜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들고 그랬어요. 이제 힘도 떨어지고 했으니 자그만 거 그리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전시된 걸 보니까 더 크게 그리지 못한 게 안타깝네요. 허허허.” 6월 26일까지. 3000원. (02)2188-622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먹빛 소나무 하얀 달빛 머금다

    먹빛 소나무 하얀 달빛 머금다

    “어느 미술관에서 이런 작품은 안 된다고 그러대요. 목탄이 묻어나 운반, 보관이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직접 문질러 보라고 그랬죠. 묻어나지가 않는 거예요. 그걸 확인하고서야 (작품을) 구입하더군요.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곳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뜨끔했다. 목탄 하나로만 그렸다기에 가루가 날리지 않을까 궁금했다. 게다가 작품에 바짝 붙어서 보면 목탄이 뭉텅이째 캔버스에 들러붙은 게 아니다. 목탄 가루 하나하나가 물고기 비늘처럼 삐죽삐죽 돋아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축하인사차 방문한 지인들이 작가를 지하 전시장에 붙들고 있을 동안, 잽싸게 1층 전시장으로 올라가 슬쩍 문질러 봤던 터였다. 그러고는 시치미 뚝 떼고 있는데 작가가 이런 말을 하니 양심상 ‘자수’할 수밖에. ●소나무 말고 소나무가 빨아들인 달빛 보세요 “하하. 안 그래도 만져 보시는 분들 많아요. 그냥 칠만 해서는 모두 뭉개져 버려요. 한겹 입히고 코팅하고, 다시 한겹 입히고 코팅하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제가 2년의 실험 끝에 얻어낸 비법이에요. 그래도 제발 눈으로만 봐 주세요.”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는 이재삼(51) 작가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영업기밀”이라며 말을 닫았다. “물론 언젠가 때가 되면 공개할 겁니다. 후학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니까요.” 그는 가로 세로 5m가 넘는 대작을 그리는 작가다. 그런데 그리는 대상이 중요한 건 아니란다. 전에 그린 대나무 시리즈가 대나무보다 그 속의 바람소리를 표현했듯, 이번에 내놓은 소나무 시리즈에서도 소나무 대신 소나무가 흠뻑 빨아들이고 있는 달빛을 봐 달라고 주문한다. ●9시 출근 5시 퇴근 ‘9 to 5’ 원칙 고수 작업 스타일도 재미있다. 경기 과천의 큰 농협 창고를 빌려 일하는데 ‘9 to 5’(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원칙을 고수한다. 고뇌하는 예술가는 날밤도 새우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던가. “밤에 쓴 연애편지를 낮에 보면 찢어 버리게 되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아예 공무원처럼 살아 보자고 한 거죠. 덕분에 오해도 받았어요. 과천에 오기 전에 3년 반 동안 장흥 예술인 마을에 있었는데, 5시면 퇴근해 버리니 별로 어울리질 못했죠. 나중에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요.” ‘달빛 작가’인데 정작 달빛하곤 무관한 셈이다. ●“지금의 동양화는 먹공예품 아닌가요” 이 작가는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다. 젊은 시절에는 최첨단 설치미술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 동양적 느낌의 작업을 하게 됐을까. “서른일곱쯤에 사춘기를 앓았어요. 한국 사람인데 왜 이런걸 하지, 싶더라고요. 그래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서양화에서도 목탄은 간단한 드로잉 재료예요. 그걸 본격적인 회화도구로 바꿔 보기로 결심한 겁니다.” ‘아슬아슬한’ 말도 나온다. “모든 예술에는 시대의 감성이 얹혀야죠. 지금 동양화? 먹공예품 아니던가요. 서양화요? 작품 자체보다 브리핑(설명)이 중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어요. 그러지 말고 동, 서양화 구분 없이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면서도 지금 시대의 감성을 얹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소나무는 친숙하면서도 묘하게 이질적이다. 주변에 벌레나 잡초가 있을 법도 한데 그림 속엔 달빛에 창백하게 빛나는 소나무뿐이다. 그것도 보는 이를 압도하는 크기로. 이 압도적인 크기를 찾기 위해 전국의 유명하다는 소나무는 다 찾아다녔단다. 안 그래도 큰데, 작가의 시점(視點)이 올려다보는 것인지라, 소나무는 한층 더 위압적이다. 달빛 풍경화나 소나무 정물화라기보다 옛 그림의 벽사(辟邪·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 같은 느낌도 든다.  전시 제목은 ‘달빛을 받다’.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달빛 녹취록’이었다. “말이 좀 어려운 것 같아 일부러 안 썼다.”는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달빛이 두꺼운 소나무 속살에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으니까.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02)725-10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이른 아침의 한 공원. 바람을 가르는 날아 차기와 현란한 공중회전, 중국 배우도 울고 갈 액션 남녀가 떴다. 와이어 액션의 고수, 예쁘고 야무진 박지선씨와 날렵하고 성실한 모상범씨. 액션에 살고, 액션에 죽는 결혼 4개월 차 스턴트 부부다. 인생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살고 있는 스턴트 부부의 특별한 신혼 이야기를 들어본다. ●1대 100(KBS2 밤 8시 50분) 1970년대 원조 꽃미녀 김창숙, 서양인 최초 가야금 연주자 조세린이 각각 1인에 도전한다. 연예인 퀴즈 군단, 공부의 신 ‘공신 키즈’, 대전의 브레인들 ‘대전 키즈’, 시어머니 전 상서 며느리모임, 원 플러스 원 커플 상륙 대작전, 자동차 동호회 ‘스피드의 신’, 항공사 라운지 미녀 군단, 그리고 58인의 예심 통과자들이 100인으로 도전한다. ●짝패(MBC 밤 9시 55분) 꼭두각시 놀음을 구경 나온 동녀와 금옥은 달이와 함께 구경 나온 천둥을 본다. 구경 중에 인파 속에서 나타난 강 포수는 천둥과 은밀하게 약속을 잡고, 서강 잔다리 근처에서 만난 천둥에게 녹각과 인삼의 밀매를 부탁한다. 천둥과 달이의 다정한 모습을 본 금옥은 급체를 하고, 귀동은 금옥의 병을 진단하다 금옥의 목 뒤 붉은 점을 발견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 30분) 엉덩이 살랑살랑, 아빠 앞에서 춤추는 애교 만점 서현, 수현 자매가 있다. 아빠를 보면 그저 좋아웃음만 나고,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현관 앞을 지키는 1분 대기조. 하루 24시간 아빠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아빠 사랑해요’를 외쳐댄다. 하지만 눈앞에 아빠가 사라지면 눈물 콧물 흘리며 대성통곡을 한다는데….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화산대에 퍼져 있는 섬나라 바누아투. 그중 타나 섬은 1774년 쿡 선장에 의해 발견된 화산섬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에 대한 두려움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타나 섬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을 자기 자신이라 여기며 사는 사람들. 불의 신을 섬기는 타나 섬 사람들의 순수한 삶으로 들어가 본다.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5분) 전북 김제시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는 일본·호주·서울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던 네 자매가 30년 만에 모여 다시 함께 살고 있다. 폐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멜로다큐 가족에서는 어머니를 지켜가는 네 자매를 통해 퇴색되어 가는 효의 의미와 진정한 가족애를 되새겨 본다.
  • 조선후기 회화 한자리…15일부터 인사동 동산방화랑

    조선후기 회화 한자리…15일부터 인사동 동산방화랑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가 1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온 ‘조선 후기 회화전-옛 그림에의 향수’전이 오는 1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다. ‘심혈’이 들어간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 이유는 1983년 조선 후기 회화전 이래 20여년 만에 열리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난리가 나면 도자기는 땅에 묻으면 되지만 그림은 불타거나 물에 젖어 찢겨버려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수량에서 한계가 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 있어요. ” 맥을 잇기 위해서는 젊은 연구자나 후속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이들조차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며 박 대표는 탄식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탄은 이정(1541~1622)에서부터 운미 민영익(1860~1914)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망라된 데다 최초 공개작도 두루 섞여 있어서다. 박 대표는 “창업주인 아버지(박주환)의 덕을 많이 봤다.”면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생각한 소장가 분들이 전시의 뜻을 믿고 작품들을 맡겨주셨다.”고 밝혔다. 우선 이정의 ‘니금세죽’(泥細竹)에 시선이 간다. 이정은 세종대왕의 현손(손자의 손자)이었으나 왕위 세습에서 제외돼 묵죽화를 주로 남겼던 화가다. 박 대표는 “먹이 아니라 이금(아교를 섞어 갠 금가루)이라서 농담(濃淡)이나 필치의 맛이 색다르다.”면서 “격식과 운치를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새 정자를 지은 백사 이항복에게 이금으로 써서 건네준 축시 ‘니금시고’(泥詩稿)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를 도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조선 후기 서화라 하면 겸재 정선부터 시작하는데 이번 전시는 탄은 작품까지 모셨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라면서 “왕족이라 그런지 굳세면서도 능숙한 필치에서 기품도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명작이라 요즘 중국 현대작가들하고 맞짱을 떠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조선의 3원 3재’라 불리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의 그림도 빼곡하다. 특히 김홍도의 게 그림은 일제 강점기 때 경매에서 한 차례 선보인 뒤 80여년 만에 다시 나왔다. 스스럼없는 필치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게의 모양새가 재밌다. (02)733-58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내년엔 아흔, 그래도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뛴다”

    “내년엔 아흔, 그래도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뛴다”

    “제사 지내려면 병풍이라도 있어야 했으니 동양화 쪽은 그래도 먹고살 만했는데 서양화는 참 어려웠어.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간 이중섭(1956년 작고)은 국제극장 뒤에서 점심으로 만날 호떡을 얻어먹었지. 그땐 호떡이 제법 커서 한끼로 때울 만했거든. 가격은 생각 안 나는데,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어. 그런데 그 호떡 하나 사먹을 돈조차 없어 늘 쩔쩔맸지. 그러니 주인장이 불쌍해서 돈 조금만 받고도 주고, 공짜로도 주고 그랬어. 미안하고 고마웠던 이중섭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그림이니, 그림 하나를 정성껏 그려서 줬어. 주인장도 그걸 받기는 했는데 참 난감한 거야. 나중에 보니 그걸 장독 뚜껑으로 쓰고 있더라고. 유화물감이니까 기름기가 있어서 물기를 잘 막아주거든.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이중섭이지만 제 눈으로 그걸 보고도 아무 말 못했지. 그땐 시절이 그랬어.” “아깝네요. 그거 하나 잘 갖고 있었으면 지금 몇억원은 할 텐데.” “예술가의 삶이란 게 그런 거 같애. 내가 프랑스에서 살던 곳이 페뢰야. 빛이 좋아 화가들이 좋아하는 곳이지. 고흐가 살던 오베르하고 가까운 곳이기도 해. 언젠가 오베르에 갔더니 그곳 주민들이 이런 얘기를 해. 고흐가 권총자살하는 데 잘못 쐈대. 즉사한 게 아니라 한 3~4일 앓다가 죽은 거지. 장례가 골치 아팠어. 이름 없는 가난뱅이 화가인 데다, 그런 방식으로 죽었으니 다들 꺼림칙한 거지. 겨우겨우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장례를 치렀는데 이번엔 삯으로 줄 돈이 없는 거야. 그래서 그림 하나씩 가져가라 그랬대. 그런데 아무도 안 가져갔다는 거야. 그때 아무거나 하나 골라 집었어 봐…. 어휴.”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백영수(89) 화백을 만났다. 이중섭·김환기·장욱진·유영국·이규상 화백 등과 더불어 1950년대 신사실파 화폭을 개척한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신사실파는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의 후기인상파적 화풍을 뛰어넘기 위해 이들이 결성한 단체다. 동인 중 유일한 생존 작가가 백 화백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1977년 프랑스로 떠났다가 올 1월 34년 만에 영구귀국했다. 따뜻한 느낌의 ‘모자(母子) 시리즈’로 국내는 물론, 유럽 화단에도 상당히 이름이 알려져 있다. 롯데호텔에서 백 화백을 만난 것은 영구귀국 뒤 첫 전시가 롯데호텔 1층 롯데갤러리 재개관전이어서다. 롯데호텔 전신은 1956년 세워진 반도호텔이다. 이곳 1층의 반도화랑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갤러리다. 롯데갤러리 재개관을 맞아 백 화백을 비롯, 김종화(93), 권옥연(84), 황용엽(80), 윤명로(75) 등 원로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을 모았다. 백 화백은 ‘모자 시리즈’와 더불어 ‘여백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런데 원로 작가들의 명성에 비해 호텔 로비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갤러리가 어째 좀 옹색해 보인다. 내걸린 작품 수도 그리 많지 않다. 백 화백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에이, 이것만 해도 엄청난 거지. 반도화랑은 더했어. 그 시절 화랑이란 게 일종의 기념품 가게였거든. 반도호텔 맞은편에 미국공보원이 있었고 옆에는 국립도서관이 있었지. 거기다 최고의 요지였던 명동이 곁에 있었고…. 그러다 보니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이 사람들이 반도화랑에서 작품들을 사갔어. 이때 박수근(1965년 작고)이 그린 그림이 조선 풍속화야. 외국인 눈에 맞춘 거지. 덕분에 미군 부대 초상화가에서도 벗어났고….” 반도화랑에서 일을 배운 박명자(67) 회장이 나가서 살림 차린 곳이 바로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 현대)이다. 박수근 화백도 반도화랑 전시를 통해 화단에 본격 데뷔했다. “그땐 반도호텔이 9층인가 해서 주변에서 제일 높았어. 그림 그린답시고 몰려다니면서 명동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9층 칵테일 바에서 분위기 내고 그랬지. 반도화랑을 열었던 이대원(2005년 작고)이 오며 가며 이런저런 일거리도 줬고….” 당시 서양화 위상은 볼품없었다는 게 백 화백의 회고다. 심지어 이념 장벽까지 있었다. 장욱진(1990년 작고) 화백은 땅과 황소를 벌겋게 그렸다고 기관원에게 끌려갔단다.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추궁당하던 시절, 이중삼중 생활고에 시달렸다. “나도 무지하게 일했어. 서울신문사 뒤에 코오롱 아케이드 있지? 그게 1969년에 지어졌는데 그 지하 아케이드 디자인을 내가 했어. 그것만 했겠어? 국립극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무대미술 작업도 내가 했지. 문예잡지나 시집 같은 책에다 삽화며 도안 그려넣는 일도 숱하게 했어. 그런데 그건 비교적 사정이 나은 거였어. 그나마 (작가) 이름값이 있으니 얻을 수 있는 일거리였거든. 이름 없는 작가들? 그냥 마냥 굶는 거지 뭐. 이중섭도 그렇게 굶어 죽은 거지.” 당시 작가들이 ‘괜찮은 일거리’로 꼽았던 것이 백화점 전시였다. 그런데 이것도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백화점 전시라는 게 지금처럼 멋지게 하지 않았어. 맨 꼭대기층에 전시해 두면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보고 상품을 사라고 해둔 거지. 일종의 미끼 상품이야.” 그렇게 자존심에 상처 받아가면서도 뭐가 좋아 그렇게 그림에 매달렸을까. “그냥.” 허무한 답이다. 말이 이어진다. “하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으면 그냥 좋아. 이번엔 내가 또 뭘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막 설레. 얼마 전에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갔는데 마네 그림이 너무 좋은 거야. 여러 번 본 건 데도 너무 좋더라구. 나도 저렇게 멋진 거 하나 그리고 싶다, 이 생각밖에 안 들어.” 젊었을 때도 그 생각만으로 버텨냈다고 한다. “내 젊었을 때만 해도 샤갈, 미로, 피카소, 달리가 살아 있을 때였어. 수입된 유럽잡지를 통해 그 그림을 보면 너무 부러운거야. 나도 저런 작가가 되고야 말테다, 그 희망 하나로 버틴 거지.” 실은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단다. “좋아하는 일인 데다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잖아. 마티스는 아흔 넘어 손에 힘이 떨어지니까 가위로 종이를 오려서 작품을 만들어냈어. 르누아르는 말년에 골다공증이 오니까 몸에다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렸어. 그걸 보면서 그림이란 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구나, 하는 계산도 했지.” 그렇게 지켜온 게 바로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자부심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1977년 프랑스로 건너간 것은 파리의 한 화랑이 백 화백의 진가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초대전으로 프랑스에 불러 들이더니 아예 주저앉혔다. 10년 넘는 활동기간 동안 큰 개인전만도 22차례, 이런저런 전시회까지 합치면 100회 넘게 전시를 열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뛰어난 화가’라는 명성이 쌓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1989년 교통사고를 당하더니 1994년 위암 선고까지 받았다. 한동안 붓을 놓을 수밖에. 몸을 추스린 뒤 더 이상 비행기를 타기 싫어 영구귀국을 결심했다. 원래 살던 경기 의정부 집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하지만 창작 의욕만큼은 왕성하다. 아직도 주머니에 종이와 연필을 넣고 다니면서 눈을 사로잡는 장면은 재빨리 스케치한다. “아직 더 그릴 수 있어. 언젠가 프랑스 한인회에서 경로잔치 같은 걸 해 주겠다길래 펄쩍 뛰었지. 아직도 하얀 캔버스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뛰는데 무슨….” 속으로는 고민도 있다. “미술가란 남이 안 하는 모양이나 색깔을 찾아내야 하니 스케치를 계속 모아두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중에 작품으로) 뽑아내야지. 그리는 시간 자체보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더 필요해.” 오는 10월쯤 신작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백영수 화백이 걸어온 길 ▲1922년 경기 수원 출생 ▲1945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졸업 ▲1945년 전남 목포고등여학교 미술교사 ▲1947년 서울 화신백화점 개인전 ▲1952년 해군 종군화가 미술전 ▲1953년 신사실파전(국립미술관)▲1973년 국립현대미술관 60년전 ▲1977년 프랑스행 ▲1978년 소시에테 나쇼날 보졀 그랑파레(파리) ▲1981년 프랑스 주재 한국작가전(파리), 프랑스현대작가전(도쿄도미술관) ▲1983년 살롱 도톤느 그랑파레(파리) ▲1985년 AAM전(파리) ▲1986년 프랑스 작가 초대전(일본, LA), 국제현대미술전(모나코) ▲2007년 신사실파 60주년(서울) ▲2011년 영구 귀국
  • 정조의 유산 둘러싼 미스터리

    조선 역사에 정조라는 임금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극과 역사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조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소설가 유광수(43)의 두 번째 장편 ‘왕의 군대’(휴먼앤북스)는 갑신정변이 벌어진 18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정조의 유산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린 역사 팩션(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이다. 정조는 후대를 위해 비밀리에 두 가지 유산을 남긴다. 나라와 왕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의 금괴와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군대다. 밖으로는 청나라와 일본 등 외세에 휘둘리는 위태로운 운명에 처하고 안으로는 쇄국파와 개화파가 대립하며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이 조선을 뒤흔든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는 민씨 일가와 이들을 등에 업고 백성의 피와 땀을 짜서 배를 불렸던 세력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고종의 신임을 받던 김옥균은 정조가 남겼다는 군대를 비밀리에 키우며 거사를 준비한다. 여기에 고관대작들을 연쇄살인하는 검은 복면의 흑표, 왕에 대한 충절과 약자에 대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조선 최고의 검술인 종사관 송치현 등 작가의 상상으로 창조한 인물들이 어우러진다. 이들이 저마다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며 충돌하고, 마침내 삼일천하로 끝나고만 갑신정변을 둘러싼 긴박한 드라마가 시작된다. 특히 3일간 숨 가쁘게 전개되었던 갑신정변을 미국드라마 ‘24시’처럼 시시각각으로 쪼개 현장감을 극대화한 구성은 마치 격변의 역사 현장에 직접 들어가 ‘왕의 군대’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갑신정변의 진실을 파헤치는 당사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국문학자이자 현재 연세대 조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2007년 ‘진시황 프로젝트’로 1억원 고료의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을 받았다. ‘옥루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19세기 조선사회에 대중소설의 시대가 열리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그때 느낀 이야기의 재미를 21세기 한국문학에서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싶어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그림에만 집중하는 젊은 두 작가 전시회

    그림에만 집중하는 젊은 두 작가 전시회

    젊은 작가 하면 아무래도 듣도 보도 못한 기법이나 아이디어를 선보일 것만 같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말 그대로 우직한 방식으로 그림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젊은 작가 두명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어 찾아가 봤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 모두 ‘초상’을 내세웠다. 영상, 설치 등 새로운 작업들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오히려 정통 회화가 다시 각광받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도 여전히 대세는 영상과 설치 쪽이다. 왜 두 젊은 작가는 그림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문성식 ‘풍경의 초상’전 종이위 켜켜이 묻어나는 풍경의 주름 ‘질감’ 200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최연소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문성식(31). 그의 작업 도구는 세밀붓이다. 붓두께가 새끼손가락 손톱의 절반만 한 붓이다. 이 붓으로 대작(114×298㎝) ‘밤의 질감’을 그렸다. 물감을 펴발랐느냐. 그것도 아니다. 점을 찍듯 일일이 찍어서 그렸다. 도를 닦듯 수개월간 몰두한 작품이다. 왜 이런 방식을 썼을까. “밤에 산을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나무나 바위나 잎사귀 같은 곳은 물론 공기의 틈새에까지 스며든 어둠을 다 표현해 보고 싶어서”라는 게 대답이다. ‘질감’ 그 자체를 나타내고 싶었다는 얘기다. 이런 노력은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가령 세로 길이 4m가 넘는 ‘숲의 내부’(75×428㎝)는 전경과 후경의 낙엽이나 나무가 똑같은 수준으로 그려져 있다. 숲을 가득 채운 비밀스러운 공기의 흐름이 주는 질감을 고스란히 되살리기 위해서다. 이는 캔버스 대신 종이를 택한 데서도 드러난다. “질감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한층씩 쌓아올리는 게 아니라, 종이에 번지는 물감이 서로 겹쳐지도록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고 문 작가는 설명한다. 흙 그 자체, 골목길의 깨진 시멘트 조각, 그리고 낡아버린 가옥의 지붕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회화성을 살리고 싶다고도 했다. 풍경이 품은 주름살을 포착해 냈으니 ‘풍경의 초상’이다. 드로잉 작품들에서 선보이는 세밀하고 정교한 선들도 이런 주름살에 대한 표현으로 보인다. 때문에 전시장을 나설 때면 되레 ‘우는 아이’라는 소품이 기억에 남는다. 평면적으로만 바라보던 세상에서 깊은 주름을 읽어냈을 때, 그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 그 울음이 작품마다 배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는 아이’가 혹시 자화상 아니냐는 질문에 작가는 “그렇다.”고 답했다. 4월 7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 (02)735-8440. ■김성윤 ‘오센틱’전 ‘웃긴’ 초기올림픽… 과거이면서 현재 ‘상상’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엄숙하다. 올림픽 우승 기념 같은 분위기라서 그렇다. 그런데 하고 있는 꼴들이 우습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양복 상의에 넥타이를 맸는데 바지가 쫄쫄이다. 역도 선수는 큰 역도 대신 대형 아령 같은 것을 한 손으로 들었다 놓는다. 복장은 아예 타잔이다. 사격선수인데 쏘는 대상은 살아있는 비둘기나 나무로 만든 사슴이다. 복잡미묘한 인물들의 표정도 재미를 더한다. 가장 튀는 작품은 ‘장애물 수영 경기, 수스무 노부히데’에 등장하는 일본 선수다. 성적이 원하는 목표에 못 미쳐서 그런 것인지, 어색함과 긴장감 때문에 굳어버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모델 노릇하는 게 힘들어서 짜증난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 모든 게 다 섞여 있는 것인지, 표정이 참으로 헷갈린다. 새달 대학원(국민대)에 진학하는 김성윤(26) 작가가 그려놓은 것들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초기 올림픽 시절 황당했던 종목들이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엄격하다.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존 싱어 사전트(1856~1925)가 초기 올림픽 선수들을 그렸다면 어땠을까라는 게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올림픽 자료사진을 보고 서울 이태원 등에서 비슷한 인물을 섭외한 뒤 사진을 찍어두고 그림을 그린다. 약간의 장난기도 느껴진다.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이템인 토끼 모자를 씌운 것이 그 예다. 그래놓고는 전시 제목을 ‘오센틱’(Authentic·진본)이라고 붙여뒀다.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인 셈인데 이는 사실적이면서도 허구적이고, 과거이면서도 현재이고자 하는 느낌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김 작가는 말한다. 이는 진본과 모사와 재현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 질문이기도 하다. 다음 달 27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16번지. (02)722-3503.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5000만원으로 빚어낸 ‘올해의 발견’…영화 ‘파수꾼’ 주목받는 이유

    5000만원으로 빚어낸 ‘올해의 발견’…영화 ‘파수꾼’ 주목받는 이유

    한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소 아들에게 무심했던 아버지(조성하)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혼란스러워한다. 뒤늦은 죄책감과 무기력함에 아들 기태(이제훈)가 죽은 이유를 좇기 시작한다. 단서는 아들의 책상 서랍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던 사진. 그 속에는 해맑게 웃는 동윤(서준영)과 희준(박정민)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가 겨우 알아낸 사실은 희준은 전학을 갔고 동윤은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았다는 것. 뭔가 이상하다. 숨진 기태는 학교의 ‘짱’이었다. 게다가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동윤은 기태가 죽고 나서 학교를 그만둔 채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스물아홉 신예의 첫 장편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잔향이 남는다. 윤성현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아이들’ 등 단편 3편이 전부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에 뽑혀 5000만원을 지원받아 만든 이 영화는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쯤 되면 수십, 수백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 못지않은 저력을 발휘한 셈이다. 배급사 측에서 ‘올해의 발견’ ‘가장 빛나는 데뷔작’ 등의 거창한 수식어를 달았지만,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새달 3일 개봉하는 ‘파수꾼’은 표면적으로는 기태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좇는 미스터리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죽고 못 살던 세 친구 기태와 동윤, 희준은 사소한 오해가 쌓이면서 상처를 주고, 또 받는다. “나도 너를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번도 없어” “잘 못 된 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으면 돼…” 같은 섬뜩한 말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다. 윤 감독은 표현에 서투른 아이들이 오해를 풀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희준의 시선에서 기태로, 다시 동윤의 시선으로 좇아간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 살아숨쉬는 대사,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흥미로운 편집 방식까지 독립영화는 완성도가 떨어질 것 같은 어설픈 ‘선입견’을 말끔하게 씻어낸다. ‘파수꾼’이란 제목에 대해 윤 감독은 “‘파수꾼’이라는 의미가 ‘지키는 자’, 또는 ‘진실을 추구하는 자’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런 의미를 반어적으로 쓰고 싶었다.”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처를 주지만 결국에는 서로에게 상처만을 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세 명의 젊은 배우 이제훈과 서준영, 박정민의 연기는 활어처럼 펄떡거린다. 나홍진 감독의 ‘황해’에서 김윤석과 하정우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드러낸 조성하는 신인 감독과 젊은 배우들의 영화에서 묵직하게 중심을 잡는다. 15세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최고은 사망 계기 ‘공대위’ 출범

    20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공연예술인 경력인정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서울연극협회, 무대예술전문인협회, 한국연극영화과교수협의회, 한국뮤지컬협회, 한국프로듀서협회 등 공연예술 관련 단체들이 참여한다. 영화계와의 연대작업에도 나설 방침이다. 공동위원장에 오른 박장렬(45) 서울연극협회장은 “기본적으로 예술인도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 4대보험 등 기본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괴짜 천재들 삶에서 풀어낸 수리논리학

    그냥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라고만 부르기엔 곤란하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에 필적하는 성과로 꼽히는 ‘수학 원리’를 서른한살에 쓴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며 명저 ‘서양철학사’를 펴낸 철학자이고, 평생에 걸쳐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고 1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을 반대한 반전 평화운동가이자 사회학자였다. 비컨힐학교를 직접 세워 새로운 교육 가치를 실천한 교육학자이기도 했다.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다. 네번의 결혼으로 호사가들이 늘 입방아에 올려놓곤 하는 여성 편력에다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 경력까지 더해지면 러셀의 세계는 무궁무진 그 자체가 된다. 한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활활 타올랐던 러셀의 치열한 삶과 오로지 참된 앎, 진리를 추구했던 지적 오디세이는 보통 이들의 접근을 쉬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된 ‘로지코믹스’(전대호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는 러셀에 대한 지적 결핍을 충족시킴은 물론 독서의 재미까지 함께 안겨 주고 있다. 제목 그대로 ‘로지코믹스’는 만화다. 러셀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 수리논리학의 주요 개념과 그 전개 과정이 담긴 고급 교양 만화다. 러셀과 동시대에 접속했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요한 폰 노이만(1903~1957), 게오르크 칸토어(1845~1918), 쿠르트 괴델(1906~1978) 등 수학과 철학, 논리학의 천재들이 사실적인 인물 묘사 속에 등장해 자신의 지적 성취에 대해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고 사라진다. 저자는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미국 캘리포니아대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 교수와 수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다. 7년에 걸쳐 만든 대작이다. 출간되자마자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됨은 물론 전 세계 23개국에서 번역되고 각종 출판 관련 상을 휩쓸었다. 이들은 ‘논리와 광기’라는 측면에서 러셀을 비롯한 천재들에게 다가섰다. 극단적인 이성에 기반한 지적 활동은 오히려 광기의 경계에 임박한 것 아니냐는 가설들을 증명해 간다.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만화에 담았고, 그 속에 1939년 9월 러셀이 뉴욕에서 대중 강연을 하는 장면을 담고 그 강연 속에 다시 러셀의 일생을 담았다. 만화의 제작 과정 자체가 집합론과 논리학을 한꺼번에 허문 ‘러셀의 역설’에 대한 헌정이다.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은 자신을 포함할까.’라는 질문에 “만일 포함한다면 포함하지 않는 것이고, 포함하지 않는다면 포함하는 것이다.”가 러셀의 역설이다. 알쏭달쏭하다. 1만 48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권정찬 개인전 25일까지 대구 봉산동 갤러리 소나무. 호랑이, 토끼, 학 같은 조선시대 전통 민화에서 소재를 따오면서도 서양화에서나 봄직한 여성 누드를 함께 넣어 유머러스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053)423-1186. ●서울스퀘어 미디어 캔버스 3월 31일까지 서울 남대문로 서울스퀘어 건물 벽면. 매주 화·목·토·일요일 오후 7~10시 서울역앞 옛 대우빌딩 건물 벽면에서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리미티 드 에디션 17일부터 3월 2일까지 서울 청담동 오페라갤러리. 에디션은 판화, 사진 등에서 여러개 제작되는 작품을 뜻한다.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 유명작가의 판화나 데미언 허스트, 줄리안 오피 등 현대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특히 1974년 제작된 달리의 타로 판화 시리즈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02)3446-0070.
  •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 정신적 스승 만나볼까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 정신적 스승 만나볼까

    심각한 주제를 밝고 가볍게 그려낸 미국의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그래피티 아트’(낙서 예술)의 뿌리는 아프리카에 있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통큰에서 열리는 ‘키스 해링의 멘토, 릴랑가’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조지 릴랑가(1934~2005)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화가. 1977~78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잇따라 전시회를 열면서 화제를 모았고, 키스 해링(1958~1990)이 이 전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강렬한 원색 바탕 위에 인물을 간결한 선으로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인물마다 재미난 율동과 익살스러운 포즈를 부여했다. 회화라기보다 만화의 캐리커처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해링의 작업을 예감케 한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포즈의 인물들을 화면 한가득 채워 넣으면서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일상용품이나 상징물을 배치해둔 것도 해링이 밑그림도 없이 길거리 벽면 같은 곳에 그려둔 대작을 떠올리게 한다. 해링이 도시 전체를 캔버스로 썼듯, 릴랑가 역시 합판이나 가죽 같은 일상 용품에 그림을 그려넣어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이야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 선택이었다. 인물들을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지옥이 떠오른다. 배는 불룩하고 입은 넓어 언제나 배고프지만 목구멍이 너무도 가늘어 늘상 먹는 게 성에 안 차 울부짖는 탐욕의 아귀들 말이다. 릴랑가가 그린 인물들을 보면 입은 튀어나오고 배도 부른 것이 비슷한 모양새다. 그런데 의미는 반대다. 아귀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면 릴랑가의 인물들은 여럿이 어울려 함께 춤추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들이다. 인간의 작은 욕망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메시지다. ‘둘이 아닌 하나’에서 인물들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모습을 그려넣은 것이나 ‘생명의 나무’, ‘즐거운 인생’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즐겁게 뭔가 먹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인물들은 아프리카 토속신앙에서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셰타니’로, 우리로 치자면 괴상하긴 하지만 밉지 않은 도깨비 같은 존재다. 2000~3000원. (02)730-243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120억원 이탈리아 대작 ‘미션’ 국내 뮤지컬 사상 첫 리콜

    [문화계 블로그] 120억원 이탈리아 대작 ‘미션’ 국내 뮤지컬 사상 첫 리콜

    120억원을 쏟아부었다는 이탈리아 뮤지컬 대작이 한국 관객을 만만히 보았다가 톡톡히 굴욕을 당했다.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토대로 한 뮤지컬 ‘미션’이 계속되는 혹평에 리콜 서비스(재관람권 제공)를 실시한 것. 국내에서 일부 유명 가수들이 콘서트를 자진 리콜한 적은 있지만 뮤지컬이 사실상 강제 리콜에 들어간 것은 초유의 일이다. 개막 첫 주(2월 2∼6일) ‘미션’을 본 관객은 오는 24일까지 평일 공연 가운데 원하는 날짜를 선택해 기획사인 상상뮤지컬컴퍼니 이메일 주소(sangsangco@naver.com)로 신청하면 된다. ●반주음악 사용… 혹평 쏟아지자 게시판 폐쇄 이 같은 사태는 공연 전부터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되면서(서울신문 2월 7일자 21면)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탈리아 제작진은 ‘넬라 판타지아’ 등 주옥같은 음악을 차별화 코드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오케스트라 생음악이 아닌, 반주음악(MR·Music Recorded)을 동원했다. 까다로워진 한국 관객 수준을 간과한 오판이었다. 모리코네의 명성에 기대 가려는 일종의 자만도 깔려 있었다. 영화 ‘미션’에서는 2분 정도밖에 등장하지 않는 ‘카를로타’를 뮤지컬에서 여주인공으로 격상시켰으면서도 함량 미달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도 화를 키웠다. 홍보 영상 또한 빈축을 샀다. 언뜻 봐서는 ‘미션’ 공연팀 연습 장면 같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뮤지컬 ‘레딕스-십계’팀 연습 광경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네티즌들과 관람객들은 격분했다. ●여주인공 교체… 합창단 긴급 투입 졸작이라는 혹평이 쏟아지자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는 지난 5일 관련 게시판을 돌연 폐쇄하는 자충수를 뒀다. ‘관람 후기를 올리지 못하도록 언로를 막았다.’는 비판이 쇄도한 것. 공연 첫 주 인터파크 예매 순위 1위였던 ‘미션’은 일주일 만에 5위로 뚝 떨어졌다. 결국 인터파크는 게시판을 다시 열었고, 제작사는 2004년 ‘페임’으로 이탈리아 뮤지컬 어워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스테파니아 프라테피에트로로 주인공을 전격 교체했다. 합창단도 긴급 투입해 음악을 보완했다. ‘미션 사태’를 계기로 외국처럼 프리뷰(사전 공연)나 트라이아웃(실험공연) 제도를 도입해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씨는 10일 “‘미션’처럼 한국 초연 작품은 정식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처럼 대구나 부산 등 지방을 돌며 작품에 대한 수정과 보완을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프리뷰·트라이아웃 활용 바람직 원씨는 “그동안은 ‘오페라의 유령’이나 ‘미스 사이공’ 등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대작을 들여와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국내 뮤지컬계가 프리뷰나 트라이아웃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창작 대작들도 프리뷰 제도를 도입할 만하다.”고 말했다. 프리뷰나 트라이아웃의 경우 제작사 입장에서는 관객 반응을 미리 살펴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 입장에서는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 기간 중에는 언론도 공연 비평을 자제하는 게 관행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아이유 게임 ‘앨리샤’ 본격 서비스

     연예계의 ‘대세’로 군림하고 있는 가수 아이유를 내세워 화제를 모은 대작 게임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가 10일 오전 11시, 사전 공개서비스를 시작했다. 엔트리브소프트가 6년간의 제작기간에 걸쳐 다듬어온 앨리샤는 액션 라이딩이라는 새로운 게임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오픈 파티’라는 이름으로 실시하는 사전 공개 서비스는 대자연을 그린 게임 내 맵들의 밸런스를 조정하고, 시스템 안정성을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일 오후 12시까지 진행된다. 특히 사전 공개 서비스 참여자들은 정식 서비스 개시 후에도 데이터 초기화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엔트리브소프트는 ‘앨리샤’의 오픈 파티를 기념해 게임 캐릭터를 생성한 모든 이용자에게 5천 캐롯(게임머니)을 제공하고, 추첨을 통해 선정된 이용자에게는 아이유의 사인CD와 문화상품권 등을 증정할 예정이다.  ‘훈련하기’를 완료하고, 스피드전과 마법전의 모든 게임 모드를 체험한 이용자 중 3명에게 추첨을 통해 애플 맥북에어를 제공하고, 5명에게 소니 알파 NEX-3를 증정한다.  엔트리브소프트 서관희 이사는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해온 만큼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뮤지컬 미션? 엔니오 미션!

    뮤지컬 미션? 엔니오 미션!

    ‘시네마 천국’, ‘황야의 무법자’, ‘넬라 판타지아’ 등을 작곡한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83)의 대표작 영화 ‘미션’이 뮤지컬이란 새 옷을 입는다. 지난 2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미션’은 1986년 롤랑 조페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션’을 뮤지컬로 옮긴 것이다. 18세기 남미 오지 마을에 찾아간 두 선교사가 과라니 원주민과 교감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종교와 사랑, 그리고 정의의 의미를 진지하게 모색한 작품이다. 모리코네의 생애 첫 뮤지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초연한 뒤 이탈리아·영국 등 유럽 무대 진출을 모색하는 야심작답게 120억원이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 가격도 최고 20만원이다. 이탈리아 제작사 팹맥스 컴퍼니와 국내 기획사 상상뮤지컬컴퍼니가 손잡았다. ●공연 연기 진통·반주음악 사용 논란 공연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애초 ‘미션’은 지난해 6월 25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개막을 불과 2주 앞두고 돌연 취소됐다. 표가 이미 팔린 상황이었지만 제작사 측은 “모리코네가 작품 완성도를 위해 2~3주 연기를 요청했다.”는 짤막한 공지만 앞세운 채 환불 조치에 들어갔다. 한국 관객들의 실망감이 컸음은 물론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프로듀서 파브리치오 첼레스티니는 “작품 완성도를 위해 공연 날짜를 연기하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면서 “솔직히 올여름에 공연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한 차례 연기 끝에 이뤄진 이번 공연도 완벽하게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이뤄진 게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미션’에는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뮤지컬 ‘미션’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거장 모리코네의 음악이 깔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션’은 녹음된 반주음악(MR·Music Recorded)을 쓴다. 요즘 웬만한 대작 뮤지컬이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를 곁들이는 것과 대조된다. 하물며 ‘모리코네 음악’이 핵심인 뮤지컬에서 MR를 쓰는 것에 일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실제 스피커를 통해 녹음된 음악을 웅장하게 내보내려 하다 보니 배우 목소리가 묻히는 단점도 엿보인다. 높이 8m에 이르는 대형폭포 등 화려한 볼거리도 ‘미션’의 매력이지만 부랴부랴 무대 장치를 서둘러 끝낸 느낌도 역력하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개막 공연에 맞춰 내한할 예정이었던 모리코네가 갑작스러운 감기 증세로 일정을 보류한 것도 아쉬움을 키우는 대목이다. ●영화와 비교하며 보는 재미는 쏠쏠 그렇더라도 뮤지컬 ‘미션’에는 영화 ‘미션’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에서는 존재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여성이 뮤지컬에서는 주인공(카를로타)으로 격상한 점이 이채롭다. 뮤지컬 대본을 맡은 이탈리아 작가 아야 피아스트리는 공연에 앞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1986년 영화 ‘미션’을 보았을 때 2분밖에 등장하지 않은 카를로타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면서 “여자가 없는 무대는 아름다운 무대가 아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모리코네의 6개 신곡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뮤지컬 ‘미션’만의 즐거움이다. 모리코네의 아들이자 뮤지컬 음악감독을 맡은 안드레아 모리코네는 “무대에서는 모든 구성요소가 동원되기 때문에 영화보다 감동이 클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는 26일까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안방극장 女人天下 여왕타이틀은 하나

    안방극장 女人天下 여왕타이틀은 하나

    아이돌 스타들의 어설픈 연기 연습은 끝났다. 이제 안방극장에는 관록 있는 여배우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진다. 약속이나 한 듯 방송3사는 여주인공을 앞세운 대작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여배우들의 격전장이 될 상반기 드라마 시장에서 ‘여왕’의 자리에는 누가 오를 것인가. 김희애·염정아 재계거물 카리스마 격돌 우선 김희애(44)와 염정아(39)의 카리스마 대결이 눈에 띈다. 요즘 방송가에서는 ‘선덕여왕’(MBC)과 ‘대물’(SBS)에서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인 ‘고현정 효과’로 인해 30~40대 여배우에 대한 기대심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 김희애와 염정아 모두 공교롭게도 극 중 재계 거물로 나와 경쟁 구도를 더 달군다. 김희애는 ‘아테나:전쟁의 여신’ 후속으로 오는 28일 첫 방송되는 SBS 월화 드라마 ‘마이더스’로 4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증권가를 배경으로 기업 간 인수, 합병을 다룬 드라마다. 김희애는 재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유인혜 역을 맡았다. ‘내 남자의 여자’, ‘완전한 사랑’, ‘눈꽃’ 등 주로 통속극에 출연했던 김희애는 이번 드라마에서 경영학 석사(MBA) 출신으로 미국 월스트리트를 거친 전문사업가로 나온다. 돈과 야망을 좇는 캐릭터다. 김희애의 연기 변신과 더불어 영화 ‘타짜’의 강신효 감독이 드라마 연출을 맡은 점도 화제다. 염정아는 새달 2일 첫 방송되는 MBC 수목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재벌 총수로 출연한다. 재벌가에서 그림자처럼 살다가 역경 끝에 결국 총수 자리에 오르는 김인숙 역할이다.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 ‘소년, 천국에 가다’ 등 영화에서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 염정아는 “드라마는 ‘워킹맘’ 이후 3년 만”이라면서 “그동안 충전된 에너지와 열정을 김인숙 캐릭터에 아낌 없이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작가 대결도 흥미진진하다. ‘마이더스’는 ‘올인’의 최완규 작가가, ‘로열패밀리’는 미실 캐릭터를 탄생시킨 ‘선덕여왕’의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종합병원2’의 권음미 작가가 각각 극본을 맡았다. ‘마이더스’의 김영섭 SBS 책임 프로듀서는 “과거 정·재계를 다룬 드라마의 주인공이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최근 전문직 여성들의 사회 진출 영역이 늘어나는 시류를 반영했다.”면서 “특히 30~40대 여배우들은 연기 신뢰도가 높고, 작품 해석력도 뛰어나 (드라마를) 믿고 맡길 만하다.”고 말했다. 김민정·한혜진 차세대 연기파 女優 탄생 예고 20~30대 젊은 여배우들도 가세했다. ‘프레지던트’ 후속으로 오는 23일 첫 방송되는 KBS 수목 드라마 ‘가시나무새’는 한혜진(29)과 김민정(29)의 연기 대결이 관심을 모으는 작품.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제중원’ 이후 1년 만에 안방극장에 모습을 비추는 한혜진이 운명에 맞서 싸우는 여주인공 서정은 역을 맡았다. 지금은 보육원 출신의 단역배우이지만 언젠가 스타가 돼 생모를 찾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바람에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여자다. 김민정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지만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난 뒤 세상을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는 팜므파탈 한유경 역을 맡았다. ‘장밋빛 인생’, ‘미워도 다시 한번’을 흥행시킨 김종창 PD가 연출을 맡았다. 김 PD는 “두 캐릭터의 선악 대비가 워낙 뚜렷한 데다 두 배우가 역할에 100% 몰입해 차세대 연기파 여배우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요원·남규리 상큼발랄 매력 대결 ‘싸인’ 후속으로 3월 방송 예정인 SBS 수목 드라마 ‘49일’은 이요원이 여주인공으로 나선다. ‘선덕여왕’ 이후 1년 4개월 만에 복귀하는 이요원은 최근 첫 촬영에 돌입했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한 여인의 영혼이 가족을 제외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의 눈물이 있으면 회생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송이경(이요원)이 혼수 상태에 빠진 예비신부 신지현(남규리)의 영혼에 빙의되면서 겪는 일화가 중심 축이다. 전작에서와 달리 이요원은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로 연기자 신고식을 치른 아이돌 가수 출신 남규리도 미니시리즈에 첫 도전해 눈길을 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끊임없이 연기력 논란을 일으키는 아이돌 스타들의 미흡한 연기에 지친 시청자들이 확실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을 갈구하고 있다.”면서 “모처럼 (안방극장에) 전진 배치된 여배우들의 활약이 충무로에도 자극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새 영화계는 ‘여배우 수난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자배우 중심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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