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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다수결 원칙 실종 틈타 법안 ‘바꿔 먹는’ 국회

    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기승을 부리는 법안 밀실 거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그제 여야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중점 법안을 연계 처리하는 ‘바꿔 먹기’를 시도한 정황이 노출되면서다. 새누리당이 숙원인 관광진흥법을 처리하려 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이 임대주택법과 교육공무직원 채용·처우법을 끼워 넣으려 하는 식이다. 개별 법안들의 취지나 상호 연관성을 따지지 않은 이런 거래는 대의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협상이 아니라 정치적 흥정일 뿐이다. 이런 법안 밀거래가 대낮에 버젓이 횡행하는 의회가 하늘 아래 또 있을까 싶다. 물론 국회는 여야 간 협상의 무대다. 다만, 개별 법안들을 독립적으로 놓고 문제점이 있다면 따지고 대안을 담아 절충하는 게 정도다. 어느 한 당이 정 아니라고 한다면 찬반 표결로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도 현안인 법안과 아무 관계 없는, 자기 당의 이해가 걸린 선심성 법안을 들고나와 이것을 들어주면 지금까지 반대하던 법안도 눈감아 준다고? 한마디로 협상이 아니라 ‘야바위 거래’다. 그제 새정치연합이 다른 법안과 연계 처리하려다 불발된 교육공무직원 채용·처우법의 내용을 살펴보자. 50여개 직종 15만 2000여 비정규직 교육공무원을 모두 정규직화해 방학 중 근무를 하지 않더라도 평균 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하는 게 골자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연간 조 단위에 이를 재원을 감당할 수 없어 보류된 이 법안을 바꿔 먹기용으로 다시 들고나왔다니 혀를 찰 일이 아닌가. 이런 법안 밀거래는 나라 살림이야 거덜나든 말든 이해집단의 표만 챙기겠다는, 포퓰리즘의 전형일 게다. 문제는 여야 공히 이런 입법권 오용의 심각성에 대해 둔감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그제 한·중 FTA 비준안을 처리하기 직전 “새누리당은 야당에 빚을 진 만큼 법안 심사를 할 때 꼭 갚아 주기 바란다”고 했다. 마치 국민이 아니라 여당을 봐주기 위해서 비준안 처리에 동의해 줬으니 이를 빌미로 대놓고 ‘법안 장사’를 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입법권을 사유재산처럼 쓰겠다는 게 문 대표의 진의가 아니길 바라지만, 여야 간 법안 ‘밀당’ 징후 자체가 다수결 원칙이 실종된 국회의 타락상을 가리킨다. 이러려면 뭐하러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정도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해묵은 경제활성화법에 태클을 거는 야당의 행태가 못마땅해서일까.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야당이 이미 쟁점이 거의 해소된 경제활성화법안마다 쟁점이 납덩이 같은 법안을 하나씩 연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야당 탓 이전에 여당도 자신의 무소신을 돌아볼 때다. 표결 처리를 원천 봉쇄한 국회선진화법을 핑계로 노동개혁 법안 처리를 미적대고 있지만, 기실은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지 말이다. 노동개혁 관련 5개법과 테러방지법 등 바꿔 먹기 대상이 아닌 법안들에 대해 여당도 열의를 보이지 않으니 하는 얘기다. 여야는 국민이 결국 피해자가 될 묻지마식 법안 바꿔 먹기의 폐해를 엄중히 인식하기 바란다.
  • [자치단체장 25시] 최영호 광주 남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최영호 광주 남구청장

    광주 남구는 1995년 서구에서 분리됐다. 인구는 22만여명으로, 분리 당시 25만 7000여명보다 크게 줄었다. 양림·월산·주월동 등 구도심 인구가 신흥 개발 지역으로 빠져나간 탓이다. 대촌동 등 농촌 지역은 대부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또는 절대농지로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신도시 개발을 통한 인구 유입 정책을 펴기가 곤란하다. 더욱이 지역 내 그린벨트는 전체 면적 대비 64%로, 시내 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다. 산업단지는 1.7%로 북구의 48%, 광산구의 50%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연간 걷히는 구세는 350여억원에 불과하다. 공무원 인건비 500여억원도 충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영호(51) 남구청장은 이같이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각종 미래 청사진을 주민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공감을 얻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야심 찬 도심 재생 또는 개발 계획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주민 자치 역량 강화’가 더욱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오후 2시 30분 봉선2동 주민자치센터 2층 회의실에서는 자치 역량 강화를 위한 행사가 열렸다. 지역 활동가 등 주민 50여명이 원탁에 둘러앉아 강의와 토론에 참여했다. 남구가 마련한 제1기 주민자치아카데미다. 주제는 ‘주민 결정 행정시스템’으로 다소 이색적이다. 이 시스템은 재선인 최 구청장이 민선 5기 후반기부터 구상해 본격적인 도입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이 스스로 현안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역량을 높이려는 것이다. 최 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지금의 행정은 주민 참여를 넘어 ‘주민 결정’ 시대로 가고 있다. 국가나 대도시가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기는 어렵지만 동 단위나 골목,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이런 아카데미를 그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진행될 강의 주제도 시민주권시대, 역발상 토론, 숙의형 민주적 의사 결정 방법 등으로 잡혀 있다. 그가 ‘행정권’의 상당 부분을 주민에게 되돌려주기로 마음먹은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년 숙원인 청사 이전에 착수하면서 주민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전 부지를 두고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등 말도 많았다. 현 청사 주변의 교통난도 문제로 떠올랐다. 최 구청장은 “주민 뜻에 따르겠다”며 28차례의 청사 이전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서울의 여론조사 기관도 활용했다. 이를 토대로 3년 만인 2013년 신청사 이전을 마무리했다. 옛 청사 활용 방안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하면서 주민 간 갈등을 최소화했다. 최근 봉선1동 주민센터 이전 과정에서도 구가 염두에 뒀던 후보지보다 주민이 선호한 지역을 선택했다. 최 구청장은 자신의 저서 ‘오카리나 부는 구청장’에서 “나는 행정 집행권자로서 가진 모든 권한을 주민에게 돌려주겠다. 그중에는 가장 중요한 재정권과 정책결정권까지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는 실제로 이를 위한 연차별 로드맵도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은 준비기로서 주민 결정 기본조례 제정, 주민자치아카데미·목민관학교 운영, 마을계획단 구성, 모바일 투표 시스템 구축 등을 시행 또는 마무리 중이다. 내년도는 ‘주민 결정 프로세스’ 운영에 중점을 둔다. 대상 사업 발굴, 원탁회의문화 활성화, 주민총회(남구 만민공동회) 등이 포함됐다. 2017년 이후부터는 완성 단계인 ‘주민 결정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일정이다. 최 구청장의 이 같은 ‘실험 행정’은 민원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이날 오후 3시쯤 노대동 ‘찾아가는 구청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사무실이 아닌 아파트단지 옆 호수공원 산책로에서 50여명의 주민 앞에 섰다. 공원녹지과장 등 해당 실·과장을 대동한 이동 민원실이나 다름없다. 행사 이름도 ‘하소연데이’로 정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도 주민들은 20여건의 민원을 쏟아내며 구청장의 입을 주시했다. 버스 노선 증설과 호수공원 관리, 인근 분적산 자락의 불법 경작 단속 등이다. 최 구청장은 해당 민원에 일일이 답변하느라 진땀을 쏟았다. 한 주민은 “호수공원에 설치된 인공 폭포 시설 개선과 상시 물 흐름 유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 구청장이 “유지비 등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어렵다”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자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민선 6기 들어 현재까지 모두 48차례의 ‘하소연데이’를 운영했다. 접수된 민원 373건 중 92%인 344건을 처리 또는 추진 중이다. 최 구청장은 “구청장실에 앉아서 민원을 듣다 보면 현장의 문제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1000곳 이상의 현장을 답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 사이에서 ‘구청장’과 악수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말을 들을 만큼 현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의 이 같은 적극적인 행보는 공신력 있는 외부 기관의 평가에서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 한 결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2015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공약 이행 분야 최우수상을 받는 등 6년 연속 최우수상 수상 기록을 달성했다. 전남대(무역학과) 운동권 출신인 그는 2000년대 초 시의원 등을 거쳐 정치에 입문한 뒤 강운태 전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지냈다. 민선 5기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재선했다. 소탈하고 서민적이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계속 끌고 가는 ‘의리파’라는 평을 듣는다. 보통 오전 8시 50분쯤 출근해 간부회의를 주재하거나 현안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찬, 만찬 모임 등을 통해 수시로 주민과 접촉하는 ‘현장 밀착형 단체장’으로 알려졌다. 글 사진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사설] 교과서 논쟁, 국회 울타리 안에서 해야

    현행 국사 교과서의 편향성 시비와 이에 따른 국정화 추진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가 갈수록 가파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새해 예산안 시정 연설을 하면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본회의장 의석의 노트북에 국정 교과서 반대 등의 문건을 붙인 채 귀를 닫았다. 야권의 강한 국정 교과서 반대 기류가 장외 집회로 이어지면서 모든 국정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할 조짐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인 만큼 여야는 싸우든, 절충하든 의정의 울타리 안에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역사 전쟁’은 여러모로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설득을 통한 절충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작동 원리가 고장난 채 감정적 세 과시로 치닫고 있는 게 문제다. 여야 공히 국정 교과서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인사들만 모아 장외 선전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다. 즉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의 좌편향이 심각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상대 측 주장들에는 철저히 귀를 막은 채 말이다. 급기야 야당 의원들이 역사 교과서 정부 태스크포스(TF)를 급습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를 두고도 ‘공무원 감금, 공무집행 방해’, ‘불법 국정화 현장 적발’이라는 등 피차 변죽만 울리면서 제대로 된 교과서에 담겨야 할 내용에 대한 본질적 토론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평행선 대치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까닭이 뭐겠나. 여야 공히 교과서 문제에서 후퇴할 경우 지지층 이반이 걱정되기 때문일 게다. 그러니 이미 호랑이 등에 타 버린 만큼 내년 총선까지 이대로 가보겠다고? 하지만 말 없는 다수 국민인들 바보일 리는 없다. 이들도 현행 교과서에 편향성이 없다고 보지도 않고 국정화가 이를 바로잡는, 유일한 대안이 아님은 다 안다. 여야가 아무리 기를 쓰고 찬반 투쟁을 벌이더라도 기존 지지층을 다지는 효과만 있을 뿐 부동층 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여야 모두 정히 입장을 바꾸기가 어렵다면 최종 심판자는 유권자인 국민임을 잊지 말고 원내에서 절제된 논쟁을 벌여야 한다. 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에서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 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개연성에 대해 “그런 교과서는 저부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은 대목은 그런 맥락에서 다행이다. 야당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부각하려고 ‘광우병 촛불집회’를 벌였지만 이후 선거에서 연패한 과거를 기억하기 바란다.
  • [씨줄날줄] 이탈리아 의회의 ‘다이어트’

    국회가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생긴 오래된 농담이 생각난다. 미녀와 임신부, 국회의원이 강에 빠졌을 때 의원을 맨 먼저 건진다는, 썰렁한 개그다. “강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라는 기막힌 반전이 웃어넘기기엔 더없이 씁쓸했다. 의회 정치가 고장난 건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의회 시스템의 비생산성이나 선량들의 부패에 관한 한 우리 국회보다 한술 더 떴다고 해야겠다. 내각책임제인 이탈리아에서 지난 70년간 내각이 무려 63차례 바뀌었다. 재임 때 온갖 엽기적 스캔들로 해외 토픽을 장식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그나마 장수했을 만큼 정정은 불안했다. 특히 상원이 이탈리아판 ‘불임(不姙) 정치’의 주요인이었다. 하원을 통과한 여하한 개혁 법안도 상원 의원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느라 ‘말짱 도루묵’이 되기 일쑤였던 탓이다. 그런 이탈리아 의회가 확 바뀔 참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한 마테오 렌치(40)총리가 의회 구조개혁에 착수하면서다. 그는 이를 위해 ‘헌법 개혁 장관직’에 신출내기 하원의원인 마리아 엘레나 보스키(34)를 임명했었다. 고질적 난제를 풀 해결사로 미모의 젊은 여성이 발탁됐을 때 이탈리아 조야에선 냉소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청소년들이 침대 머리맡에 꽂아두는 ‘핀업걸’ 사진인 양 보스키의 비키니 수영복 모습을 앞다퉈 게재했다. 그러나 보스키는 기대 이상으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 며칠 전 상원은 총 315석의 상원의원을 100석으로 줄이는 구조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보스키 장관이 상원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제 머리를 깎는 개혁을 설득해 낸 결과였다. 이탈리아 의회의 ‘다이어트’를 지켜보면서 우리 국회를 돌아보게 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의원정수와 맞물린 선거구획정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사실 의원 정수에 관한 한 정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헌법이 국회의원 정수를 굳이 ‘200명 이상’이라고 규정한 것은 200∼299명 사이로 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현재 우리 국회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인구수는 17만 1000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중간쯤 된다. 프랑스(11만명)와 독일(14만명)에 비해 많지만 일본(26만명)과 미국(69만명)에 비해선 적다. 물론 대의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의원 숫자를 다소 늘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국민이 자신들이 뽑은 ‘머슴’들이 제구실을 한다고 인정할 때만 가능할 게다. 국민의 눈에는 지금도 300명의 의원이 저잣거리의 술안주인 양 씹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다. 그런데도 농어촌 대표성을 살린다는 명분을 핑계로 의원 수를 슬그머니 늘리려 한다면? 정치권은 혹여 그런 꼼수가 먹혀들 것으로 착각하지 말고 이탈리아 의회의 자성 어린 결단을 돌아보는 게 옳을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사설] 여야 싸움질 4색 당파와 뭐가 다르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와 비노 간 끝없는 권력투쟁도 국민으로서는 한심한 지경인데 여당인 새누리당마저도 또다시 친박과 비박 사이의 알력을 재연하고 있다. 두 당 내부에서 친노, 비노, 친박, 비박으로 패를 나누어 국민은 안중에 없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공당(公黨)이라 부르기 무색할 정도다. 붕당(朋黨)을 지어 동인, 서인, 북인, 남인으로 나뉘고 이어 대북과 소북,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등으로 갈라서 사생결단하던 조선시대의 ‘4색 당파’와 다를 게 없다. 서로 상대방의 씨를 말려 가며 당파 싸움에 골몰했던 조선은 결국 붕당들의 싸움 탓에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해 도태된 것 아닌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집안싸움은 내용이나 시기 모두 온당치 않다. 정기국회, 특히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미래의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은 국민의 정치 염증만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새정치연합은 당 혁신은커녕 친노와 비노의 사생결단 싸움만 보여 주고 있다. 친노 측은 비노를 상대로 “싫으면 떠나라” 하고, 비노 측은 친노에게 “나를 밟고 가라” 한다. 왜 야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지 모르는가. 오죽하면 내부에서조차 “피비린내 나는 당쟁”을 경고하고 나섰을까. 건전하게 단합된 야당의 실종은 정치의 발전을 저해한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막 임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인데 ‘친박 독자 대선 후보론’을 꺼내 들어 친박과 비박 투쟁의 불을 댕겼다. 친박계이자 청와대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총대를 메고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바람을 불어넣으며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를 몰아치는 양상이다. 노동개혁 입법 등 태산 같은 할 일을 앞에 둔 여당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 표심이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 내부의 권력투쟁은 그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표를 줄 국민은 정작 무심한데 자기들끼리 김칫국만 마시는 꼴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치인을 코털에 비유하는 유머가 회자하고 있다. 뽑을 때 잘 뽑아야 하고, 잘못 뽑으면 후유증이 오래간다는 것이다.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우리 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남은 정기국회 회기 동안만이라도 내부 권력투쟁을 멈추고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 정치에 나서 주길 여야 정치권 모두에 촉구한다.
  • [사설] 또 민생 저버린 국회

    국회의 약속, 여야의 합의는 세간의 그것을 훨씬 초월하는 무게감을 갖는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정치 체제에서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이자 합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회, 여야는 어떤가. 그제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첫 번째 본회의가 열렸지만 바로 전날 여야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달랑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2014 회계연도 결산안만 처리했을 뿐이다. 합의사항 중 하나였던 민생법안 처리는 지켜지지 않았다. 앞서 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7일 회동을 갖고 다음날 본회의에서 처리할 안건에 합의했는데 여기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민생법안 중 법사위 통과가 가능한 법안도 포함됐었다. 민생법안 처리 불발 사유가 가관이다. 정작 법사위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국회는 벽돌 공장이 아니다”라며 법사위 소집을 거부했다니 그럼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는 뭐란 말인가. 현재 법사위에는 각 상임위를 통과한 120여개의 각종 법안이 계류돼 있는데 서민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위원장은 “국정감사 중에라도 날짜를 잡아 법안을 철저히 심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민생법안 처리는 국감 이후로 미뤄질 게 뻔하다. 국회가 도대체 민생을 걱정이나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입으로는 늘 민생을 외친다. 국민만 속는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국감에 임하면서 새누리당은 ‘민생 챙기기’ ‘경제 살리기’ 등을, 새정치연합은 ‘안정민생’, ‘경제회생’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민생을 챙기고, 민생을 안정시키겠다면서 민생법안은 뒷전으로 내팽개치는 국회의 이율배반적 행태에 국민은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되풀이되고 있는 식언과 파행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19대 국회의 성적표에 최악의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다. 사실 그제 본회의에서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결산안이 통과됐지만 두 안건 모두 법정 시한을 넘겨 늑장 처리된 것이다. 특히 결산안의 경우 19대 국회는 출범 첫해인 2012년부터 내리 4년 연속 법정 시한을 넘겨 처리했다. 정기국회 시작 이전에 처리하도록 규정한 국회법을 입법부 스스로 무시해 온 것이다. ‘위법국회’라는 오명을 듣는 이유다. 올해 열린 6차례의 임시회는 모두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정쟁으로 아까운 혈세만 낭비한 꼴이다. 이제 19대 국회는 사실상 90일 남짓 남았다. 국감 기간과 휴일 등을 빼면 사실상 마지막 정기국회는 50여일밖에 안 남았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여야 공히 내년 4월 치러질 20대 총선 체제로 돌입할 것이고, 공천이다 뭐다 해서 각종 민생 현안은 더욱더 뒷전으로 내동댕이쳐질 공산이 크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변함없이 민생을 외면하고,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국민은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전심전력을 다해 민생을 챙기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 민생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 “정치의 ‘보이는 손’이 양극화·파편화 문제 풀어야”

    “정치의 ‘보이는 손’이 양극화·파편화 문제 풀어야”

    25일부터 천년고도 경주에서 한국학 세계학술대회가 사흘 일정으로 열린다. 2007년부터 2년에 한차례씩 개최돼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번 학술대회에는 26개국의 한국학 전공학자 130명과 국내 교수 210명, 대학원생 93명 등 433명이 ?한국사회와 정치 ?북한과 남북관계 ?개발도상국 비교정치 ?시민사회와 정당 ?지구화와 지방화 ?여성정치 등 13개 분야별로 한국학 관련 학술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최진우 한국정치학회장(한양대 정외과 교수)을 만나 대회의 의미와 한국 정치의 발전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번 한국학 세계대회의 가장 큰 의미를 꼽는다면. -우선 규모 면에서 한국학 관련 학술대회로는 최대의 행사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대립의 양상을 국내 학자들 뿐 아니라 외국 학자들의 눈으로 들여다 보고 해소 방안을 학술적으로 모색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개최되는 만큼 외국 학자들이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보다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학 학술대회를 한국정치학회가 주관하는 게 이채롭다. -한국학의 연구 목적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 문학, 언어,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사회과학적 탐구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인문학 중심 한국학 연구의 지평을 넓혀 사회과학적 접근을 접목함으로써 한국학 연구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 점이 이번 학술대회의 또 다른 의미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가 양극화(polarization)와 파편화(fragmentation)다. 정치학자로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어느 사회나 갈등과 분열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우리나라는 계층 문제, 지역 갈등, 이념 대립이 중첩돼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북한이탈주민 등의 증가로 사회적 다양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잠재적으로 정체성의 갈등이 심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난, 중장년층의 조기 퇴직, 노년층의 빈곤화 등으로 중산층이 위축되면서 자칫 희망의 실종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다면 양극화와 파편화는 대립과 분열의 심화, 사회적 불안정성의 증가, 사회적 활력의 감소, 경제적 생산성의 저하, 대립의 격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양극화와 파편화의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개혁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극화, 파편화를 줄여나갈 해법을 제시한다면. -양극화와 파편화의 문제는 시장메커니즘의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치메커니즘의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 개입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정치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정당성은 무엇보다도 경쟁의 공정성과 결과의 공평성이 인정될 때 생성된다. 그리고 문제 해결이 사회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면 정치적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합의의 문화가 구축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려면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시민의 의식을 함양하는 민주주의 교육,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경우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도 정치교육이 송두리째 빠져 있거나 아니면 지극히 왜소화돼 있다. 대학교육에서도 정치외교학과나 국제관계학과를 제외하고는 정치 관련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다. 많은 선진국에서 중고등학교에서 자국의 정치제도와 과정에 대한 기본적 지식, 그리고 민주시민의식의 함양을 위한 수업을 하고 있고 대학과정에서도 정치학 개론이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치학회 차원에서 올해 상임위원회의 하나로 교육위원회를 설치했다. 정치 교육 활성화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모바일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전통적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위협을 받고 있다. 시대 흐름에 걸맞은 민주정치 체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기존의 계급적 균열구조의 기반 위에서 형성, 유지돼 온 양당체제가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사회적 다양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균열구조가 등장하고 있는 추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노동계급의 강력한 등장으로 정당체제가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것처럼 어쩌면 지금도 정당체제의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화하는 환경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 다양화돼 가는 유권자의 요구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양당체제보다는 다당제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다당제를 지향한다면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의 개편도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각책임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대폭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진경호 기자 jade@seoul.co.kr
  • “중.고교 과정부터 올바른 정치교육 이뤄져야”

    25일부터 천년고도 경주에서 한국학 세계학술대회가 사흘 일정으로 열린다. 2007년부터 2년에 한차례씩 개최돼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번 학술대회에는 26개국의 한국학 전공학자 130명과 국내 교수 210명, 대학원생 93명 등 433명이 ?한국사회와 정치 ?북한과 남북관계 ?개발도상국 비교정치 ?시민사회와 정당 ?지구화와 지방화 ?여성정치 등 13개 분야별로 한국학 관련 학술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최진우 한국정치학회장(한양대 정외과 교수)을 만나 대회의 의미와 한국 정치의 발전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번 한국학 세계대회의 가장 큰 의미를 꼽는다면. -우선 규모 면에서 한국학 관련 학술대회로는 최대의 행사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대립의 양상을 국내 학자들 뿐 아니라 외국 학자들의 눈으로 들여다 보고 해소 방안을 학술적으로 모색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개최되는 만큼 외국 학자들이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보다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학 학술대회를 한국정치학회가 주관하는 게 이채롭다. -한국학의 연구 목적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 문학, 언어,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사회과학적 탐구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인문학 중심 한국학 연구의 지평을 넓혀 사회과학적 접근을 접목함으로써 한국학 연구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 점이 이번 학술대회의 또 다른 의미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가 양극화(polarization)와 파편화(fragmentation)다. 정치학자로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 -어느 사회나 갈등과 분열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우리나라는 계층 문제, 지역 갈등, 이념 대립이 중첩돼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북한이탈주민 등의 증가로 사회적 다양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잠재적으로 정체성의 갈등이 심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난, 중장년층의 조기 퇴직, 노년층의 빈곤화 등으로 중산층이 위축되면서 자칫 희망의 실종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다면 양극화와 파편화는 대립과 분열의 심화, 사회적 불안정성의 증가, 사회적 활력의 감소, 경제적 생산성의 저하, 대립의 격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양극화와 파편화의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개혁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극화, 파편화를 줄여나갈 해법을 제시한다면. -양극화와 파편화의 문제는 시장메커니즘의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치메커니즘의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 개입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정치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정당성은 무엇보다도 경쟁의 공정성과 결과의 공평성이 인정될 때 생성된다. 그리고 문제 해결이 사회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면 정치적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합의의 문화가 구축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려면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시민의 의식을 함양하는 민주주의 교육,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경우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도 정치교육이 송두리째 빠져 있거나 아니면 지극히 왜소화돼 있다. 대학교육에서도 정치외교학과나 국제관계학과를 제외하고는 정치 관련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다. 많은 선진국에서 중고등학교에서 자국의 정치제도와 과정에 대한 기본적 지식, 그리고 민주시민의식의 함양을 위한 수업을 하고 있고 대학과정에서도 정치학 개론이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치학회 차원에서 올해 상임위원회의 하나로 교육위원회를 설치했다. 정치 교육 활성화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모바일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전통적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위협을 받고 있다. 시대 흐름에 걸맞은 민주정치 체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기존의 계급적 균열구조의 기반 위에서 형성, 유지돼 온 양당체제가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사회적 다양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균열구조가 등장하고 있는 추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노동계급의 강력한 등장으로 정당체제가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것처럼 어쩌면 지금도 정당체제의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화하는 환경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 다양화돼 가는 유권자의 요구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양당체제보다는 다당제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다당제를 지향한다면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의 개편도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각책임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대폭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진경호 기자 jade@seoul.co.kr
  • [열린세상] 선거제도 개편과 대한민국의 미래/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선거제도 개편과 대한민국의 미래/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선거구 획정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 정수 문제를 들고나오더니, 이제는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빅딜설이 난무하고 있다. 임시국회가 개회되고 대통령은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을 호소하고 나섰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지금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의석 확보에 유리한 선거 규칙을 만드는 데 멈춰 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의원 정수가 늘어나 국민을 대표할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정부 예산의 0.2%에 불과한 예산만 쓰고 있는 국회가 더 커지고 강해져야 대통령과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 된다. 소선거구제의 치명적 맹점인 사표를 줄여야 대표성을 높일 수 있고, 비례대표의 수를 확대해 대의민주주의의 비례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자를 선출해야 당 지도부의 전횡을 막아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특정 정치세력의 특정 지역 싹쓸이를 방지해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도 맞다. 그런데 현실은 이론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민생을 도외시한 정치권을 보아 온 국민에게 300명도 너무 많은 숫자다. 국회의원 숫자가 모자라서, 그리고 국회 운영의 예산이 모자라서 그동안 국회와 정치권이 일을 잘못한 것인가. 과도한 특권과 막말, 각종 낭비성 외유, 툭하면 의사 일정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가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국민이 국회무용론이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국회선진화법은 합의를 통해 국회를 운영하라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를 다수당의 발목을 잡는 데 악용하고 있는 현실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어 과도한 계파 갈등이나 지도부의 공천권 전횡을 막자는 오픈프라이머리는 제도 자체의 장단점은 있으나 공천권 오남용의 역사를 가진 우리 상황에서 시도해볼 만한 제도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정당의 책임 정치를 약화시키는 한계도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비례성을 높이고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정당이 비례대표 명부를 만드는 방법상의 문제와 당선자를 직접 국민이 선출하지는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 모든 논의 과정의 결정적 문제는 마땅히 그 중심에 있어야 할 ‘국민’이 실종되고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려는 정당과 정파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정당들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면 설득력 있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권의 진정성은 정말 국민의 입장에서 작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시급히 마련하고 이를 법제화해 실천에 옮겨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그 결과에 따라 국민에게 정정당당하게 심판받아야 한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각종 개혁에 동참해 양보와 희생을 진솔하게 요청하는 것은 첫 단계에 불과하다. 2년 반 전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구체적 결과를 만들어 국민의 삶을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하다면 여야 정치권이나 경제인을 막론하고 어떤 협조라도 받아 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다. 국민도 지연과 학연, 혈연 등 연고주의와 지역주의에 얽매여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정치권이 잘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못한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지를 철회해 정치권이 스스로 최선을 다해 국민의 지지를 받도록 노력하게 해야 한다. 선거제도는 개선돼야 하지만 제도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도의 장단점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모든 국민이 오늘날 우리 정치권을 이렇게 만든 공동 책임자들이다. 세계경제의 침체와 국내 산업의 경쟁력 약화, 무엇보다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 절벽이 예상되는 이 시점에 각자 서로 탓하면서 헛된 공론에만 빠져 어느 것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 [사설] 다수결 원리에 어긋난 ‘국회 후진화법’ 속히 고쳐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어제 몇 가지 정치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취임 1주년 회견에서 내년 총선 공천부터 여야 동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과 19대 국회 종료 전 ‘국회 선진화법’ 개정을 제안했다. 두 가지 모두 의미 있는 화두이지만, 현행 국회법은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할 과제라고 본다. 타협과 절충의 정치문화를 일구긴커녕 다수결 원리에 따른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하고 있는 법안을 존치할 이유는 없다. 김 대표는 “다수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그의 문제 제기와 별개로 국회 선진화법이 ‘여의도 정치’의 난맥상을 야기한 주요인임은 분명하다. 물론 다수의 의견이 항상 절대선일 수는 없고, 합리적 소수의 의견이 무조건 배제돼서도 안 된다. 국회 선진화법의 본래 취지도 이런 데 있었을 게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 그런 기대는 언감생심이었다.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이 동의해야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 한 조항을 야권이 악용하면서다. 날치기 방지가 명분이었지만, 과반 의석의 여당이 소수 야당에 발목이 잡혀 ‘식물국회’는 일상화됐다. 반면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끼워 파는 야당의 몽니는 당연시됐다. 이쯤 되면 총선·대선에서 승리해 다수당이나 집권당이 되는 게 무의미해 보인다. 헌법이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최종 심판은 차기 대선에서 국민이 내리게 된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국민에게 선택받은 정책이 여당이 다수인데도 입법부에서 번번이 발목이 잡힌다면 대의민주주의는 고장이 났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가 막힌 사유들로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법안을 열거하는 게 어느덧 국무회의의 주요 의제가 됐다”고 한탄한 배경이다.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취지는 퇴색하고 선거 민의를 저버리는 무책임을 조장하는 국회법이라면 ‘국회 선진화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외려 ‘국회 후진화법’이 정명(正名)일 것이다. 김 대표는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법을 개정하자고 했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빠를수록 좋다고 본다. 현행 국회법이 야기한 ‘합의의 덫’에 걸려 식물국회가 되는 것도 모자라 임기 절반을 남은 박근혜 정부가 민생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식물정부‘가 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입게 된다.
  • [시론] 국회법 개정 논란과 공익/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시론] 국회법 개정 논란과 공익/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지난달 29일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국회의장 중재로 여야가 합의한 수정안에 대해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의아스러운 것은 청와대와 여당 간에 이처럼 상호 의견 교류가 없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정치역학이 물밑에서 작동하는지 일반 국민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국정을 함께 이끌어 가야 할 두 중심축 간에 빚어지는 현재와 같은 소통 부재와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국정 운영 차질은 결국 대통령의 정치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수정안이 수용되면 앞으로 국정 운영에 큰 변화가 초래될 것처럼 우려하는 시각도 납득하기 어렵다. 개별 법률에 대한 시행령의 위법 여부를 야당 단독으로 결정해 행정부에 그 시정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행정부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닌 터에 ‘입법독재’ 운운은 지나친 기우로 들린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공익 실현을 위한 제도들의 총합이다. 여기서 ‘명목상’이라는 접두사를 넣은 이유는 국가가 반드시 공익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란 자본가를 돕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좌파 이론이나, 자익 추구를 위한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추진되는 국가 정책이 국익에 비합리성을 초래할 뿐이라는 우파 이론이 예다. 실제로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국가가 군주나 특정 종교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했던 경우가 허다했다. 정치행정의 근대화는 국가가 이처럼 특수이익을 넘어 공익을 도모하는 제도적 총체가 되도록 하기 위한 개혁 과정이었다. 그런데 공익이 무엇인가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고 따를 수 있는 개념 정의와 기준 설정이 쉽지 않다. 공익이란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을 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개인주의, 자유주의 시각과 단순히 개인이익의 합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일반이익’을 찾아 그것을 구현해야 한다고 보는 집단주의, 공동체주의의 시각이 대립한다. 개인이익의 합으로서의 공익이 구현되도록 하려면 그들의 이익이 상호 조정을 거치면서 상향적으로 결집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사회집단과 정당을 매개로 해 의회가 이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국가 기구로 진화했다. 마치 ‘진흙탕을 헤쳐 나아가는’ 것처럼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다원주의적인 의회 과정으로부터 일반이익의 구현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일반이익으로서의 공익 구현은 개인들의 단기적 이익과는 한 단계 거리를 둔 행정부가 구조적으로 더 적합하다. 국민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기구보다는 뒤에서 예산·조직 등을 배당하는 중앙관리기구들이 전체 이익 챙기기에 더 유리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일반이익을 정의하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추진하는 데 필요한 보편적 기준을 어떻게 확보한다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일반이익의 이름하에 그들 자신 혹은 조직의 이익을 끼워 넣는 문제도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서로 대칭적인 이 두 시각의 공익을 절충하기 위한 제도화가 이뤄졌다. 자유주의 국가로 시작한 미국이 행정국가로 진화한 것, 국가주의 전통의 독일과 프랑스가 대의민주주의를 강화해 온 것이 예다. 우리는 강력한 집단주의와 국가주의가 배태된 나라다. 특히 자유주의가 위축되고 국가주의가 성행했던 15년(1972~1987)을 거친 이후 자유주의 확대와 국가주의 이완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 논란은 이와 같은 큰 흐름의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미시적 불협화음의 하나로 이해된다. 결국 행정부와 입법부가 견제와 절충과 협력에 의해 개인이익과 일반이익의 조화를 꾀하는 운영의 묘가 관건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선례로 남을 수 있도록 정치인들의 노력을 당부한다.
  •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부정하라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부정하라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세계적 권위를 지닌 법철학자인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68) 이론의 출발은 적극적인 부정이다. 그 부정의 대상에는 일상의 삶, 학문의 삶, 정치의 삶, 혁명의 삶에서 당연시하는 것들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전통적으로 진행되는 국가와 시장의 대립과 같은 방식뿐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시장경제, 마르크스주의, 각종 법과 제도 등이 해당된다. 그는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정되지 않은 관점에서 고정된 것들을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개방성과 변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채 이미 형성된 구조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우연적으로 형성된 제도에 매달리는 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웅거는 이를 ‘구조 물신주의’, ‘제도 물신주의’로 일컬으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방대한 저서 목록 중 하나인 ‘주체의 각성’이 2012년 하반기에야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현실 정치와 사회이론 체계의 전면적 개혁을 소망하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이론가의 저서로서는 한참 뒤늦은 감이 있다. 이 책은 ‘웅거 개론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법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등 여러 학문에서 르네상스적 성취를 이룬 웅거의 이론 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덕이다. 하지만 웅거는 여전히 쉬 다가서기 어려운 영역에 있었다. 이제껏 이뤄 낸 학문과 현실의 성취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사유와 상상력, 거기에 웅거 특유의 난해한 문장, 낯선 개념의 학술 용어들이 덧씌워져 있던 탓이었다. 최근 김정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번역한 ‘정치-운명을 거스르는 이론’(사진 ·창비 펴냄)은 비교적 친절한 용어 해설과 각주 등을 달았다. ‘주체의 각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뿐 아니라 웅거가 이뤄 낸 사유의 전체적인 상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사회이론’, ‘허위적 필연성’, ‘조형력을 권력 속으로’ 등 웅거의 사회이론 3부작의 고갱이를 담고 있다. 물론 이 책 역시 중국의 신좌파 추이즈위안(崔之元) 칭화대 교수가 엮은 발췌본을 번역한 것이다. ‘정치’에 담긴 웅거의 적극적인 부정은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것만이 핵심적 사유는 아니다. 웅거는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또는 좌파들이 시장경제와 대의민주주의를 바꿔 내는 대신 이제껏 수용해 온 구조적 분화와 위계질서가 사회에 끼친 결과를 완화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을 내부로 포섭해 가는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대안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예컨대 사회기금 조성을 통한 사회적 상속 강화, 노동자의 시민으로서 자질 능력 강화를 통한 생산 기회의 분권화, 소규모 상품 생산의 긍정적 기능 발굴, 사적 소유권을 공적으로 분할된 소유권으로 재편하는 내용 등이다. 목표는 명확하다.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국가 모두에서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자 함이며 산업사회 이후 한 번도 다수를 점하지 못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진전을 만들기 위함이다. 또한 고착된 것처럼 보이는 각종 제도적 맥락을 변화에 더욱 개방적이게 만들어 구조와 일상, 혁명과 점진적 개혁, 사회운동과 제도화 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의미한다. 웅거는 1970~1980년대 하버드에서 ‘비판법학연구’(CLS)라는 새로운 진보적 법학운동을 주도해 핵심적으로 활동했다. 현실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기존의 자유주의 법학 연구와 다르게 비판법학연구는 법의 프레임이 경제·사회적 불평등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사회를 개혁하려면 법체계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브라질 출신으로 리우데자네이루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한 웅거는 1976년 29세 때 하버드 로스쿨 사상 최연소로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그렇다고 웅거가 단순히 책상물림 같은 학자인 건 결코 아니다. 방학 때면 브라질로 돌아가 아마존의 구석구석까지 찾아 브라질 시민을 만나는 등 1970년대 후반부터 브라질 군사정권에 맞서는 정당 활동을 벌였고, 룰라 정부에서 전략기획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미국식 사회과학을 복제하거나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학문 등 지적 식민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면서 “한국은 경제·정치·교육적 장치들의 구속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발전할 수 없다. 경제적 장치와 기회를 급진적으로 분산해 국가와 대기업 간의 호혜적 관계를 대체하고 혁신자들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정치의 왜소함에 대하여/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치의 왜소함에 대하여/진경호 논설위원

    시쳇말로 빵 터졌다. 야당 대표가 “국회의원이 400명은 돼야 한다”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장난삼아 한 소리”라고 주워 담았다. 장난? 갈피를 잡기 힘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화법이야 진작 익숙해진 터. 그를 힐난하는 데 새삼 열 올릴 생각은 없다. 문제는 정치다. 야당 대표의 ‘장난’조차 별 게 아닌 일일 만큼 ‘장난’이 정치의 일상이 됐다. 아니 정치 자체가 장난이 된 듯하다. 양태는 두 가지다. 툭하면 법원으로 달려가기, 걸핏하면 여론조사에 매달리기…. 국회법, 일명 국회선진화법이 대표적이다. ‘폭력국회’를 추방하자며 여야가 손잡고 만든 이 법은 지금 헌법재판소에 가 있다. ‘식물국회’를 청산해야겠는데 야당이 말을 안 들으니 헌재가 나서서 이 법이 위헌이니 고치라고 해 달라며 여당이 갖다 놨다. 희대의 코미디지만, 이 정도론 웃기지 않는다. ‘유병언법’(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이 있다. 유씨에 대한 유죄 판결문이 있어야 그의 차명은닉 재산을 추징할 수 있는데 돌연 그가 죽었고, 이로 인해 유죄를 물을 대상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법을 만들었다. “대상도 없는데 왜 만들지?”, “이거 위헌 아냐?” 하고 몇몇이 수군댔지만 세월호 앞 성난 민심 앞에서 죄다 끽소리 못했다. ‘김영란법’,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어떤가. 위헌 심판대에 설 걸 뻔히 알면서도 의원들은 나 몰라라 가결 버튼을 눌렀다. 걸핏하면 여론조사를 들먹이는 정치의 자기부정도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지방선거 무(無)공천을 고집하다 반발에 부닥치자 여론조사 카드를 뽑아들었고, ‘배수진’인 양 내세운 이 ‘퇴로’로 결국 탈출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준을 여론조사로 가리자고 했다가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새누리당 의원인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최근 세월호 인양 여부를 여론조사로 가릴 것처럼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만 맞았다. 무릇 정치란 ‘사람들 사이에 생각이 다르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활동’이라고 교과서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 한데 지금 정치만 보면 이건 거짓말이다. 정치는 다른 생각을 절충하지도, 다툼을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은 더 없어 보인다. 공무원연금 개혁처럼 골치 아픈 문제는 이름만 거창한 특위의 초·재선 의원들에게 던져 놓고 정책 엑스포니 하는 광 나는 행사에 나가 무슨무슨 성장론 운운하며 거창한 담론을 들먹이거나, 충분히 논의된 당론을 담아야 할 정당 대표 연설을 자신의 대립각을 부각시키는 도구로 쓰는 행태도 큰 틀에서 정치적 장난의 범주에 든다. 자기를 위한 정치는 될지언정 나라와 국민 다중을 위한 정치로 보기 힘들다. 난제(難題)일수록 법원이나 여론에 떠넘기고 자신들은 비전이란 이름의 장밋빛 다짐을 앞세워 해결 능력 부재의 실체를 숨기는 작금의 책임회피 정치는 대의민주주의 쇠락에 따른 불가피의 현상일지 모른다. 디지털미디어 발달로 더 많은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전달되면서 권력의 하방(下放)이 빨라지고, 이에 맞춰 아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치인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제 새누리당이 확정한 ‘국민공천제’도 작아지는 정치의 맥락 안에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든 말든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은 해 먹기 쉽지 않은 자리가 됐다. 그러나 정치인이 작아진다고 해서 정치가 작아져도 되는 건 아니다. 권력 분산에 따른 힘의 균형이 권력 주체들의 갈등을 더 첨예하게 만들수록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는 더 늘어만 가는 게 필연의 귀결이다. 정치 권력의 힘은 줄어들고 있으나, 갈등을 풀고 대립을 화해로 치환할 정치의 역할은 더 절실하고 중요해지는 역설적 상황, 이것이 지금 신(新)직접민주주의 시대의 문턱에 선 우리 정치가 맞이한 도전인 셈이다. 28세 여성 제노비스는 주민 38명이 제 집 문틈으로 내다보는 1964년 뉴욕의 밤 골목에서 한 괴한에게 50분 동안 난자당한 끝에 숨졌다. 책임질 사람이 많아질수록 책임지려 나서는 사람은 줄어드는 이 ‘제노비스 신드롬’에 우리 정치인들이 포박돼 있다. 설거지는 팽개치고 화장만 하는, 딱한 장난의 정치다. 비겁하다. jade@seoul.co.kr
  • 새 정치 바라는 국민 정부의 완벽한 배신

    새 정치 바라는 국민 정부의 완벽한 배신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이정전 지음/반비/398쪽/1만 8000원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은 수년 전 대중의 열광 속에 만들어졌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낯선 현상은 아니었다. 문국현, 박찬종, 정주영 등 잊혀질 만하면 기존 정당이 아닌 ‘제3의 후보’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정치권 바깥에서 이뤄낸 성취와 명예,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에 도전한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대중의 현실 정치 혐오 및 무관심에 기대 포퓰리즘에 가까운 정치 혁신을 주창했다. 물론 대단히 이례적인 성공사례도 있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숱한 어려움을 극복한 자수성가의 모델, 성공한 기업인, 대중적 인기, 서울시장으로서의 치적 등을 앞세워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그를 가리켜 ‘전과 14범’이라고 표현했듯 십수 차례에 이르는 부정과 비리, 실정법 위반조차 대중의 정치 혐오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믿음에 대한 정부의 처절한 배신이었다. 빈곤의 양극화, 공적 영역의 붕괴와 대기업 자본 이익의 극대화 경향이 그의 임기 중 이미 확인됐고, 막대한 국고의 탕진이 임기 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원로 경제학자의 통렬한 사자후가 책 곳곳에서 우렁우렁하다. 한국자원경제학회장, 한국공공선택학회장 등을 지낸 주류 경제학자면서 분배와 생태 문제에 천착해 온 이정전(72)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제학의 이론적, 실증적 틀을 빌려 최근 몇 년 사이 정치의 실패, 정부의 실패를 통렬히 비판했다. 현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는 핵심적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은 임기 전에 이미 파기됐다. 여기에 4·16 세월호 참사는 원로 학자의 실천적 개혁론 설파를 재촉했다. 국민의 의사를 완벽하게 수렴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로서 투표행위 등의 맹점을 짚어 보고, 정부와 정치권이 힘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원인을 관료의 행태와 지대추구 행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또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정부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환경세와 토지세를 강화하는 조세 개혁을 제안한다. 그렇다고 정치의 실질적인 주체이자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에게 무조건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장과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주체로서 시민사회의 역할을 요구한다. 정경유착의 고리 근절, 시장의 독과점 폐해 및 불공정행위 제어,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노동자의 권익보호 등을 위해 소비자운동,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이 모두 전면적으로 활성화돼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물론 시민의 참여는 필수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작은 합의라도 실천해야 3자회담 의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사이에 두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청와대에서 회동했다. 여야 간 이견이 두드러진 가운데 눈에 띄는 합의는 적은 3자회동이었다. 그나마 공무원연금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공감한 게 성과다. 여야의 시각차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항용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런 평행선 대치를 풀고 대국적으로 타협해야 한국정치는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게다. 여야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로 이번에 공감대를 이룬 현안만이라도 구체적 결실을 맺도록 후속 대화를 이어가기 바란다. 여야 수뇌부의 회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있었다. 특히 지난 대선서 맞붙었던 박 대통령과 문 대표가 2년여 만에 만나 상대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그랬다. 반대세력을 포용하는 아량을 보여주지 못해 불통 이미지가 덧씌워진 박 대통령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로 대선에 불복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온 문 대표를 위해서나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이번 회동이 한낱 보여주기식 ‘정치 쇼’로 끝나서는 안 될 말이다. 하루하루 힘겹게 생업을 이어가는 국민이 여야 수뇌부 중 누가 정치적 이문을 더 얻었는지를 따질 겨를이라도 있겠는가. 회동에서 문 대표는 “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 총체적 위기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려는데, 못하면 얼마나 한이 맺히겠느냐”며 경제살리기 정책에 발목을 잡는 야권에 은근히 서운함을 피력했다. 관점은 달랐지만,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지향점은 같았다. 여야가 말로만 민생을 걱정할 게 아니라 실천적 후속조치를 절충해 내야 할 이유다. 3자회담이든 영수회담이든 소통의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진정한 위민(爲民)정치다. 거창하지 않은, 작은 합의일지라도 싹을 틔워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번에 3자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처리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대를 확인했다. 하지만 각론에서 여야의 정치적 셈법이 전혀 다른 게 문제다. 더욱이 다음달에는 노동 현장에서의 이른바 춘투(春鬪)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등 인화성 높은 이슈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정략을 떠나 윈윈하겠다는, 여야의 대승적 결단이 없으면 뭐 하나 낙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권 획득이 목적인 정당 간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급적 여야 모두가 승자가 되는 ‘플러스섬’ 게임을 하는 게 국민을 위해서도 유익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권이 고용 확대 등의 시급성을 감안, 야당이 부작용을 우려하는 보건의료 부분을 일단 빼고라도 서비스산업기본법을 처리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다. 각종 개혁 입법과 경제 활성화 법안을 처리해야 할 4월 임시국회에서 그런 호양(互讓)의 자세는 이어져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다른 현안에서도 당략을 고집하기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란 뜻이다. 새정치연합 측도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여당이 공무원 표를 잃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낫다고 보는 정략을 고집할 요량이 아니라면 하루속히 당 안을 내놓고 절충에 나서기를 당부한다.
  • ‘절대적 진리’ 갑옷 벗은 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

    ‘절대적 진리’ 갑옷 벗은 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

    민주주의의 수수께끼/존 던 지음/강철웅·문지영 옮김/후마니타스/354쪽/1만 8000원 지구촌 대세의 통치 시스템이라는 민주주의를 더 좋은 쪽으로 바꾸기 위한 학문적 노력이나 현장의 몸부림은 꾸준하다. 하지만 정작 대안적 차원의 실체 규명을 위한 속살 해부는 그다지 많지 않다. 거개가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가치를 의심할 여지 없는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동지인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찬양이나 절대 지지의 개념이 아니었고 아테네 이후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어떤가. ‘민주주의의 수수께끼’는 많은 이들이 ‘이상적 통치 시스템’으로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민주주의를 비틀어 들여다봤다. 제목처럼 수수께끼 같은 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차근차근 털어내는 스토리텔링이 흥미롭다. 민주주의가 탁월한 지위를 얻게 된 까닭을 묻는다면 대개 두 부류의 답을 낸다. 첫째는 자명한 정치적 정의(正義)다. 민주주의가 명백히 최선이며 인간이 ‘지배받는다’는 외견상의 모욕을 어쨌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명료한 정당화의 유일한 근거 차원이다. 둘째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잘 보호되면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본래 민주주의는 지배구조를 분명하고 확고하게 특정하지 않는다는 속성을 들어 그런 이유를 다 거부한다. 그러면서 아테네, 그리고 프랑스대혁명 시대와 지금 사이에 민주주의의 의미가 급격히 변한 까닭은 정치적 기대의 엄청난 변천 탓이라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자본주의적 대의민주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건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기대 수준의 하락과 서구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필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데모크라시(민주주의)가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저 정치적으로 특정 세력을 이롭게 하기 위한 통치 시스템이었을 뿐이다. 아테네에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도입한 클레이스테네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덕적·지적 확신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그저 경쟁세력 견제에 필요한 지지 확보 차원의 편의적 방편으로 민주주의를 썼던 것으로 풀이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테네의 몰락 이후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입에 담기조차 꺼렸다는 점이다. 이 같은 금기의 민주주의는 역사가 투키디데스, 철학자 플라톤, 그리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됐다. 아테네에서 생애의 상당 부분을 보낸 세 사람은 지배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한 신봉자가 아니었다. 심지어 플라톤은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만난 유례없이 혹독한 비판자”로 책에 등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유럽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싫어했음은 당연해 보인다. 대의제 민주주의 모델의 창시자라는 매디슨이나 슘페터가 ‘정치인에 의한 지배’를 말했을 뿐 출발점에선 민주주의를 부정한 사실도 들춰진다. 민주주의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테네 몰락 후 2000년이 지난 17세기에 들어서였다. 홉스와 스피노자가 민주주의를 다시 꺼내 든 대표 사상가로 평가된다. 18세기 초입까지도 민주주의는 매우 저급한 수준의 단어였지만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의 거대한 정치적 파고가 민주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책 속 ‘민주주의 이야기’는 옹호나 폄훼, 그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는다. 대신 ‘당연한 인정’이 아닌 ‘이유 있는 규명’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결말은 역시 발전적 대안을 위한 노력이다. “민주주의는 좋은 어떤 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좋은 것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가장 끈덕지게 내세우는 제도이며 그런 주장에 일말의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제도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野 총리 인준 표결에 참여하는 게 정정당당하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를 놓고 여야가 오늘 또 한번 격돌한다. 오후 소집될 국회 본회의에서 반드시 표결 처리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주장과 오늘 임명동의안 표결에 합의한 바 없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주장이 맞부닥치면서 지난 12일에 이어 다시 한번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휴일인 어제에도 이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 실시와 그의 자진 사퇴를 거듭 촉구함으로써 오늘 임명동의 표결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그 결과가 어떠하든 오늘 이 후보자 임명동의 표결은 이뤄지는 것이 법치와 의회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본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그제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자리에서 “해법을 줄 수 있는 건 국민밖에 없다”며 거듭 여론조사로 이 후보자 인준 여부를 가릴 것을 주장했으나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헌법 절차를 무시하는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여론조사 만능주의라면 대체 왜 의회와 정당이 존재해야 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대신해 공직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따지고, 표결을 통해 임명동의 여부를 가리도록 헌법이 소명한 이상 이를 따르는 것이 국회의원의 책무일 것이다. 인준 표결을 앞두고 158석의 새누리당이 ‘이탈표’, 즉 임명동의 반대표를 차단하느라 부심하고 있고, 반대로 새정치연합 측은 표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질 것인지, 아니면 아예 표결에 불참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은 혀를 차게 만드는 얘기다. 총리 인사청문과 임명동의가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따지는 제도가 아니라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정략적 계산이 맞부닥치는 난전(廛)으로 전락했음을 보여 주는 증좌와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이 지명했으니 소속 의원 한 명도 예외 없이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는 여당의 인식이나, 내년 총선에서의 충청권 표심을 염두에 두고 표결 참여의 유불리를 따지는 야당의 행태 모두 국민과 나라보다 자신들의 이해득실부터 따지는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보여 준다. 총리 인준 앞에서 국정이 몇 날 며칠을 멈춰서도 좋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산적한 민생 현안 처리를 위해 국회는 즉각 정상 가동돼야 하며,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걸림돌로 둬선 안 된다. 야당은 당당하게 표결에 참여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민심을 전해야 하며, 여당 또한 소속 의원들의 뜻을 구속하는 그 어떤 구태도 삼가기 바란다.
  • 반쪽이냐, 반란이냐… 여·야 기로에 선 ‘이완구 인준안’

    반쪽이냐, 반란이냐… 여·야 기로에 선 ‘이완구 인준안’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를 하루 앞둔 15일 새누리당은 피할 수 없는 ‘외길’, 새정치민주연합은 표결 참석과 불참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은 여야 합의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에서 ‘본회의 강행 및 내부 단속’ 외에는 대안이 없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은 158명으로, 국회 재적의원 295명의 과반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야당이 16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의결정족수(148명)를 채우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 전원에게 본회의 출석을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보냈다. 구속된 송광호, 조현룡 의원 외에 표결 대상인 이 후보자 본인은 물론 국무위원을 겸하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사회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지난주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소속 의원 4명 등 156명 전원이 본회의에 참석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남은 최대 변수는 ‘반란표’다. 야당이 표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지고 여당의 반란표까지 더해질 경우 임명동의안 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정 파행이 장기화되는 것은 물론 당 지도부를 겨냥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등 여권 전체가 내분에 휩싸일 수 있다.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부대표단이 상임위별, 지역별로 소속 의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인준안 처리를 당부하는 등 반란표 방지에 주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 친이(친이명박)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의(大義)와 소리(小利)가 충돌할 때 군자는 대의를 택하고 소인은 소리를 택한다.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대의를 택해야 한다”는 글을 올려 귀추가 주목된다. 대의는 이 후보자 임명에 부정적인 여론, 소리는 여당의 임명동의안 강행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새정치연합은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 요구나 문재인 대표의 여론조사 제안, 본회의 재연기 등의 승부수가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본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5일 오후 원내대표단 회의와 최고위원회의를 잇달아 비공개로 열어 당 지도부 입장을 조율했으며 16일 의원총회를 통해 당론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이날 원내대표단 회의에서는 본회의에 우선 참석, 의사진행발언 등을 통해 이 후보자의 총리 자격을 강하게 문제 삼은 뒤 반대 표결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거론됐던 ‘본회의 참석 후 표결’, ‘반대토론 후 표결 불참’, ‘본회의 보이콧’ 등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적절히 절충한 셈이다.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따른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이 후보자의 부적격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야당 역시 이 후보자와 동향인 충청 출신 의원 등의 반란표 가능성이 상존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소수지만 아예 본회의에 불참하거나 반대토론만 한 뒤 퇴장해 표결에는 참여하지 말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야당이 대치 정국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반쪽 총리’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대여 강경 투쟁을 이어 갈 수 있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아직 보이콧을 하자는 강경한 의견들도 있어 본회의를 앞두고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최종 입장이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공세의 고삐도 늦추지 않았다. 진성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2002년 타워팰리스 구입 당시 재산 신고 누락 의혹에 대해 정정 신고를 했다고 해명한 것과 관련해 “국회 사무처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정정 사항 없었음’이라는 답변이 왔다”며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은혜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국민은 거짓말쟁이 총리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김형준 정치비평] ‘3대 난치병’ 치유 없이 정치 정상화 없다

    [김형준 정치비평] ‘3대 난치병’ 치유 없이 정치 정상화 없다

    혼란과 불안이 지배하는 난정(政)의 시대다.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절망과 혐오를 안겨 주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오만과 독선, 착각과 오류, 거짓과 무능으로 국민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다. 한국 정치가 왜 진화하지 못하고 이렇게 퇴보하는 것일까. 한국 정치의 치유하기 힘든 ‘3대 난치병’ 때문이다. 첫째, 정치 양극화의 병이다. 여야, 진보와 보수 모두 ‘너 죽고 나 살자’는 극단의 정치를 해 왔다.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배타적 감정을 갖고 막말을 하면서 배제의 정치에 빠졌다. 정청래 의원의 ‘히틀러, 야스쿠니 발언’도 이런 풍토에서 나온 것이다. 친노·비노, 친박·비박의 계파주의, ‘가해자 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도 크게 보면 이런 양극화 정치의 부산물이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는 정치 저질화의 근원이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정치인들이 마음속에 삼팔선을 긋고 상대방에게 비수를 꽂는 행위를 한다면 어떻게 국민 통합과 화해의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회색이 아름다워야 정치 양극화는 사라질 것이다. 둘째, 힘에만 의존하는 병이다. 권력이란 물리적 강제력을 토대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권력이 판을 치면 조직 구성원들의 공통 목표보다는 리더의 목표만이 우선시된다. 권력은 리더십이 발휘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다시 말해 권력이 없어도 리더십은 발휘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권력을 휘두르는 데는 익숙했지만 설득이 요체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는 미숙했다. 설득보다 힘에만 의존하면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불통과 독선만 남게 된다. 국회 130석을 갖고 있는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도 줄곧 힘에만 의존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에 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야당도 설득보다는 걸핏 하면 장외로 뛰쳐나가 농성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했다. 이것이 연이은 대선 패배와 권력을 품지 못하는 불임 정당의 단초가 됐다. 셋째, 포퓰리즘의 병이다. 특히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적인 선동 정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최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증세 없는 복지’ 논쟁의 뿌리는 2012년 대선 당시의 무상 복지 경쟁이다. 박근혜 후보는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절감 등의 방법을 통해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며 복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정부는 2013년 5월 국정 과제 실현에 필요한 약 135조원의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문제는 공약가계부의 틀 자체가 성장을 늦추더라도 복지를 늘리겠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경제부흥’에는 실질적으로 13조원 정도의 예산이 책정됐고 복지 확대가 핵심인 ‘국민행복’에는 약 100조원이 투입됐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기대한 만큼 살아나지 못하면서 세입은 줄고 세출은 늘어났다. 지난 2년간 세수 결손액이 20조원 가까이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수가 확보된다”, “증세는 배신”이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국민의 80%는 정부가 “증세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 확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증세냐, 복지 축소냐와 같은 소모적인 정치 논쟁보다는 지속 가능한 복지, 생산적 복지, 유연한 복지와 같이 복지 논쟁의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최근 문재인 대표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야당은 자진 사퇴가 거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라고 설명한다. 의견 수렴을 위해 여론조사는 필요하지만 여론조사로 정치적 결정을 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이자 대의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행위다. 최근 여야 대표가 참배 정치를 통해 국민 화합을 위한 힘찬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정치의 3대 난치병을 우선적으로 치유해야 한다. 치유의 최고 수단은 타협하고, 협조하고, 합의하는 정치로의 전환이다.
  • [사설] 총리 후보자 적격성 여론조사 적절치 않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과 관련해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 개최를 16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한 지 하루 만에 정치권이 또다시 들끓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어제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면서 ‘여야 공동으로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여론조사’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우리 당은 결과를 승복할 용의가 있고, 이런 사항의 경우 국민의 여론이 답”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여야를 가릴 필요도 없이 공당의 대표가 정치적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문제를 놓고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여론을 바탕으로 특정 사안에 소신 있는 원내 전략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라면 더더욱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본회의 표결의 결정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 대표의 전격적인 여론조사 제안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이 후보자의 ‘흠집’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상당 부분 힘입었을 것이다. 전문기관의 여론조사에서도 부동산과 병역 문제, 언론 외압 등에 휩싸인 이 후보자가 총리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적합하다는 의견보다 높게 나왔다고 한다. ‘국민의 뜻’을 앞세운 여론조사는 대통령 선거 후보의 단일화와 같은 정치적 고비마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됐던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내 선거 방식의 일부로 여론조사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총리 후보자의 자격이 있는지를 여론조사에 맡기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헌법상 총리 임명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으로 돼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양심에 따른 판단과 결정을 하면 될 일을 국민 여론에 미룰 일은 아니다. 총리 인준에 여론조사를 이용하겠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생의 고통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정의 정상화마저 늦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당 원내대표 시절의 평판만 믿고 총리 후보자의 자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청와대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총리 인준 가부(可否) 결정을 여론조사에 맡기겠다는 문 대표의 제안은 차기 대선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의 색채가 짙다는 점에서 순수하게만 바라보기 어렵다. 대표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그가 내놓은 ‘호남총리론’에 충청 지역 민심이 적지 않게 동요하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국민이 바라는 큰 정치인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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