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해외연수 운영 개선 시급
‘선진국의 의회 운영과 도시개발 실태를 시찰’하기 위한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가 올해도 줄을 잇고 있다. 의정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벤치마킹 기회로 알차게 활용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반면 한편에서는 알맹이없는 ‘호화 관광성 외유’도 여전히 끊이지 않아 주민과 시민단체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전국의 지방의원 4,180명(광역 690,기초 3,490)이 4년 임기중 한차례씩 떠나 매년 수십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해외연수가 보다 내실있게 운영될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실태 연수보고서에 담긴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자치단체의 시책으로 채택되고 지역현안 해결에 적용되는 사례도 많다.
서울시의회의 행정자치위 등 3개 상임위 소속 의원 37명은 지난해 각각 5일간의 일정으로 13개국에 해외연수를 다녀왔다.상임위별로 제출한 연수보고서도 알찬 편.특히 지난해 11월 미국과 캐나다,일본 등을 다녀온 건설위 소속의원들이 보고서를 통해 내놓은 제언에는 서울시로서도 귀담아 들을만한 내용이 많았다.예를 들면 월드컵경기장 내·외부에 주제별 공간을 만들어 활용도를 높이자는 것이나 외국도시의 실례를 들어가며 서울의 문화사업 개발 가능성을 제시한 내용,LA시의 재난관리기구가 운용하는 시나리오별 대응방안마련 등이다.
전남 시·군의회 의장단 12명은 2010년 세계박람회 여수 개최에 대비,2005년 세계박람회 개최지인 일본 나고야를 지난달 둘러본 뒤 환경친화적인 테마 설정과 홍보 등 전략을 정리해 여수시에 건의했다.
경북도의원 10여명은 지난해 4월 연수를 겸해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와 사할린을 방문,한·일 어업협정으로 어획량이 크게 줄어 어려움을 겪는 도내어민들을 위해 막혀 있던 러시아 어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덕택에 영일수협이 처음으로 러시아 어장 진출 기회를 얻었다.
이처럼 상당수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가 알차게 짜여지는 것과는 달리 아직도 유명 관광지 위주의 일정과 감상문 수준에 그치는 보고서로 ‘유람’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충북 제천시의원 14명은 11박12일 일정으로 유럽 5개국을 둘러보기위해 지난 4일 출국했으나 일정의 절반 이상이 유적지 답사로 짜여졌다.
이같이 주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충남 서산시의회는 지난달 잡혀 있던 의원 해외연수를 보류했다.충북 영동군의회 장종석의원은 값비싼 해외연수를 가지 않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지난달 유럽여행을 포기했다.전북익산시의회는 지난 10일 낭비성 해외연수와 관련해 시민단체 등에 공개 사과했다.
■개선방안 ‘지방의원의 해외여행 여비는 1인당 임기중 1회에 한해 편성한다’는 행정자치부의 예산편성지침이 무분별한 해외연수를 막기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오히려 호화 관광성 외유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놀러간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임기중 단 1번뿐인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액수를 최대한 늘려 외유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재 지방의원 1인당 해외여행 경비는 200여만원에서 700여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충남 보령시의회는 지난해말 집행부가 의원 1인당 500만원씩 책정한 해외연수비 예산을 “너무 적다”며 수정발의하도록 해1인당 600만원씩으로 증액했다.
따라서 횟수 제한보다는 예산의 상한선만 정한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연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필요하면 경비를 최소화해 여러 차례 연수할 수도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
연수 프로그램도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쳐 학계나 전문가 집단의 조언을 받아 충실하게 짜야 한다.현재처럼 2∼3개월 전에 여행사에 맡겨 허겁지겁 연수일정을 짜다 보면 테마가 없는 관광에 그칠수 밖에 없다.
이와 함께 연수 일정과 보고서 내용을 공개해 내외부의 검증을 받고,의원들의 연수보고서를 놓고 세미나를 여는 등 사후평가도 강화해야 한다. 전국 30개 시민단체로 결성돼 지난 3일 출범한 ‘예산감시 네트워크’는 실속없는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 등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낭비에대한 구상권 청구와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통해 책임을 묻고 낭비액을 회수하기 위한 ‘납세자 소송’을 추진하기로 했다.
청주YWCA 의정지기단 김미경(金美經)부장은 “의원들의 해외연수가 효과를거둘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운영상의문제”라며 “정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연수와 결과물의 철저한 공개가 이뤄진다면 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재순·청주 김동진기자 fide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