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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 3층건물 리모델링 중 지붕 붕괴···매몰자 2명 사망·1명 구조(종합)

    진주 3층건물 리모델링 중 지붕 붕괴···매몰자 2명 사망·1명 구조(종합)

    경남 진주의 한 상가건물 내부 리모델링 작업 중 3층 지붕이 무너져 매몰된 근로자 3명 가운데 2명이 숨지고 1명이 구조됐다. 소방당국은 추가 붕괴 우려 속에 사고가 난 건물 옥상에서 잔해를 하나하나 일일이 제거하며 사고 발생 16시간 만에 구조·수색작업을 마무리했다. 2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40분쯤 경남 진주시 장대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있는 3층짜리 건물 지붕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건물 안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던 근로자 3명이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12시간 만인 전날 밤 11시 10분쯤 공사 현장소장을 맡았던 강모(55)씨가 숨진 채 잔해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 이날 새벽 3시 20분쯤 숨진 김모(43)씨를 발견해 인근 병원에 바로 안치했다. 또다른 매몰자 고모(45)씨는 이날 새벽 1시 10분쯤 극적으로 구조됐다. 소방당국은 강씨 시신을 수습한 데 이어 그 주변에서 구조견을 동원해 수색작업을 하다가 고씨를 발견했다. 고씨는 허리 쪽에 통증을 호소하기는 했지만 그밖에 별다른 부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김씨와 강씨, 생존자 고 씨 등 매몰자 3명과 함께 작업하던 인부 성모(62)씨는 다행히 사고 직후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됐다. 성씨는 잔해에 깔리지 않아 중상을 입지 않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 당시 1층에 있던 택시기사 2명도 건물 파편에 부상,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바 있다. 이번 사고로 2명이 숨지고 모두 4명이 다쳤다. 사고 발생 직후 시작된 구조작업은 추가 붕괴 우려 탓에 상당히 지연됐다. 사고가 발생한 건물은 완공된 지 44년이나 지났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었다. 소방당국은 크레인 2대 등을 투입해 무너진 지붕 파편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지만 대부분 구조대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 속도가 더뎠다. 이 과정에서 매몰자 탐지기와 구조견도 투입했지만 무너져내린 천장이 바닥에 닿아 있는 데다 장애물이 많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에 따라 사고가 난 뒤 반나절이 지나도록 잔해에 매몰된 근로자 3명의 생사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앞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된 성씨는 “근로자들이 건물 여기저기 흩어져 작업을 하던 중 ‘꽝’하고 대포 소리 같은 큰 소리가 나며 지붕이 무너졌다”며 “나는 빠져나왔지만 나머지 동료들의 생사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여인숙이던 이 건물 2·3층을 사무실로 용도 변경했거나 시도한 점에 주목하고 불법 개조 여부 등을 포함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정부와 국민의 재정참모/이원식 한국재정정보원장

    [월요 정책마당] 정부와 국민의 재정참모/이원식 한국재정정보원장

    서울 회현동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가면 ‘땡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 등으로 나라 재정이 고갈되자 1866년 당백전(當百錢)이란 새 엽전을 만들어 거기에 상평통보(常平通寶)보다 100배 높은 가치를 매겼다. 상평통보 하나를 내면 500원어치 물건을 살 수 있지만, 당백전을 내면 5만원어치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백전의 액면 가치를 믿지 않았고, 결국 상인들도 잘 받지 않는 ‘무늬만 돈’이 돼 버렸다. 시장에선 당백전을 주고받는 대신 물물교환이 성행했다. 물가가 폭등하고 민생이 피폐해졌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이미 나라 경제와 재정이 무너졌던 셈이다. 이 당백전을 세게 발음한 데서 땡전이 유래됐으니 ‘땡전 한푼 없다’는 말은 ‘돈이랄 것도 없는 당백전마저 수중에 없을 만큼 빈털터리’라는 뜻이다. 이처럼 재정 악화로 나라 경제가 망가지고, 나아가 국가의 운명이 바뀐 사례는 동서고금에 비일비재하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로마의 경우 전쟁비용 조달을 위한 재정적자가 심화돼 망했다는 것이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 등 역사학자들의 정설이다. 가깝게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선진국으로 대우받던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재정위기를 겪고 국제기구에 손을 벌리면서 ‘PIGS’(돼지들)로 놀림받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그동안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 형편이 나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다른 위기국들과 달리 우리나라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고, 그만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당시 외신은 “한국이 ‘교과서적 경기회복’을 보여 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어느덧 40%에 육박하게 됐다. 복지 수요가 늘고 경제 비상 상황이 이어지면서 재정지출을 늘린 결과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보면 안심할 수 없다. 일단 중장기적인 세입 전망이 어둡다. 인구구조 변화로 당장 내년부터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몇 년째 지속된 저성장 추세도 크게 나아질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돈 나갈 곳은 점점 많아져 2018년부터는 법적 복지수당 등 의무적으로 써야 할 돈이 재량지출을 초과하게 된다. 지금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라면 재량지출과 의무지출의 격차는 더 급속하게 벌어지고, 재정의 경기대응 능력은 같은 속도로 축소될 것이다. 이는 경제위기가 와도 재정을 동원해 극복하기 어렵게 된다는 의미다. ‘좋은 재정정책’이란 세입과 세출의 단순 균형이 아니라 써야 할 때 쓸 수 있을 만큼 재정 여력을 확보하고, 돈을 푼 만큼 성장과 세입이 확대되는 선순환 정책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재정 전문 준정부기관’인 한국재정정보원은 이런 시대적 소명을 안고 지난달 1일 출범했다. 한국재정정보원은 우선 그동안 민간에 위탁했던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dBrain)을 맡아 운영한다. 디브레인은 예산 편성과 집행, 자금 이체, 국유재산 관리, 회계 결산, 성과 관리 등 재정 활동의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재정 통합정보 시스템이다. 한국은행, 국세청, 조달청 등 45개 기관과 연결돼 있고 6만 5000여명의 중앙·지방 공무원이 접속해 하루 평균 약 47만건의 재정 업무를 처리한다. 이렇게 중요한 국가 재정의 핵심 인프라를 민간에 맡겨 운영하다 보니 그동안 재정정보의 유출 우려나 재정정보화 기술의 민간 종속 논란이 제기됐었다. 올 3월 여야 합의로 한국재정정보원 설립법이 통과되고, 이번에 한국재정정보원이 디브레인 시스템 운영을 전담함으로써 이런 우려가 해소됐다. 아울러 그동안 민간 수탁업체의 잦은 교체로 시스템 수출 전문성을 축적하기 힘들었지만, 이제 전담 조직과 전문인력을 통해 개도국 재정 시스템 컨설팅 등 국제협력 업무도 한층 힘을 받게 됐다. 한국재정정보원은 디브레인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고품질 통계를 만들어 정부의 정책 수립을 제때 제대로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 성과 중심 재정운영 체제를 완전히 정착시켜 재정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재정정보원의 궁극적인 목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재정이 탄탄해야 한다. 한국재정정보원은 정부와 국민의 현명한 재정참모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 44년된 진주 3층건물 지붕 붕괴…근로자 1명 사망·2명 매몰

    44년된 진주 3층건물 지붕 붕괴…근로자 1명 사망·2명 매몰

    경남 진주의 노후화된 건물 지붕이 내부 리모델링 과정에서 무너지면서 매몰된 근로자 3명 가운데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2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소방당국은 사고 12시간 만인 전날 밤 11시 10분쯤 구조 작업을 하던 중 현장 소장을 맡았던 강모(55)씨가 숨진 채 잔해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강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에 안치했다. 앞서 전날 오전 11시 47분쯤 진주시 장대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있는 3층짜리 건물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나머지 매몰자 2명에 대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숨진 강씨를 포함한 매몰자 3명과 함께 작업하던 근로자 성모(62)씨는 다행히 사고 직후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됐다. 성씨는 잔해에 깔리지 않아 중상을 입지 않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 당시 1층에 있던 택시기사 2명도 건물 파편에 맞아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바 있다. 구조작업은 추가 붕괴 우려 탓에 상당히 지연됐다. 해당 건물은 완공된 지 44년이 넘었을 정도로 노후화됐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은 크레인 2대 등을 투입해 무너진 지붕 파편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지만 대부분 구조대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진행해 속도가 더뎠다. 이 과정에서 매몰자 탐지기와 구조견도 투입했지만 무너져 내린 천장이 바닥에 닿아 있는 데다 장애물이 많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에 따라 사고가 난 뒤 반나절이 지나도록 매몰 근로자 3명의 생사가 파악되지 않았다. 앞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된 성씨는 “근로자들이 건물 여기저기 흩어져 작업을 하던 중 ‘꽝’하고 대포 소리 같은 큰 소리가 나며 지붕이 무너졌다”며 “나는 빠져나왔지만 나머지 동료들의 생사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여인숙이던 이 건물이 사무실로 용도 변경된 점에 주목하고 불법 개조 여부 등을 포함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해당 건물은 연면적 417㎡로 병원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리모델링 작업 중이었다. 1층이 중식집, 2층은 병원 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리모델링 중이던 3층 위에는 33㎡ 크기의 옥탑방 하나가 더 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伊강진 241명 사망… “단테의 신곡 지옥편 보는 것 같다”

    伊강진 241명 사망… “단테의 신곡 지옥편 보는 것 같다”

    24일(현지시간) 새벽 움브리아주 노르차에서 발생한 규모 6.2의 강진으로 이탈리아가 ‘아비규환’에 빠졌다. 사망자가 200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도 수백명에 달했다. 실종자 수는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구조대원 수천명이 작업에 나섰지만 피해 지역이 고지대라 중장비가 투입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25일 안사통신 등에 따르면 지진 피해는 중부 움브리아·라치오·마르케 등 3개 주 경계인 산악 마을에 집중됐다. 피해가 가장 큰 라치오주 아마트리체의 경우 인구 2000여명 중 112명이 숨졌다고 이탈리아 관영 RAI가 전했다. BBC는 아마트리체 주민 전원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세르조 피로치 아마트리체 시장은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고 탄식했다. 중세의 기풍이 남아 있던 산악지대의 마을 역시 대부분이 소실됐다. 13세기에 지어진 마을 시계탑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지진 발생뒤 시간이 멈췄다. 한 목격자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보는 것 같다”고 지진 현장을 묘사했다. 도로와 교량이 파괴돼 구조 작업이 미뤄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맨손으로 땅을 파고 잔해 더미를 치우기도 했다. 구조 활동에 참가한 한 자원봉사자는 “잔해 속에서 꺼낸 사람 중 90%는 숨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노르차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지금까지 최소 247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당국은 이후 241명으로 사망자수를 정정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휴가지로 해마다 7~8월이면 정확한 거주자 수를 파악하지 못할 만큼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실제로 사망자 중에 루마니아 국적자가 5명 포함됐으며 11명은 실종 상태라고 루마니아 외교부가 밝혔다. 이 지역에는 8000명가량의 루마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본격적인 구조가 시작되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2009년 4월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해 308명이 사망했을 때의 피해 규모를 넘어 최근 몇 십년 사이 이탈리아에서 최악의 피해를 낸 지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물 잔해에 매몰됐던 10세 소녀가 극적으로 구조돼 이탈리아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페스카라 델 트론토에서 소방관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손으로 헤치고 부서진 돌과 앙상하게 드러난 철골 사이에 갇혀 있던 여자아이를 구해냈다. 어린아이 구조소식에 현지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신원이나 몸 상태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이번 지진 피해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시하면서 구조·피해복구 작업을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소방대원을 지진 현장에 급파해 구조작업을 돕도록 했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 예정이던 교리문답 강론을 취소하고 신자들에게 지진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지진에 따른 인명피해와 손실에 대단히 큰 슬픔을 느낀다면서 이탈리아 국민과 정부에 위로를 표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 지원 방침을 밝혔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내 “이탈리아 국민과 희생자들, 유가족을 생각하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이탈리아에 “모든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도 오는 29일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드론으로 실종자 구조 훈련

    드론으로 실종자 구조 훈련

    25일 강원 정선소방서 119 드론구조팀이 드론을 조종하며 훈련을 하고 있다. 올 2월 정선군에서 지원받은 1대와 구조대원 자체 소유 2대 등 드론 3대로 구성된 정선소방서 119 드론구조팀은 승용차 추락사고 실종자 수색 등 현재까지 20회 이상 현장에 투입됐다. 정선 연합뉴스
  • 심장 멎은 택시 기사 두고 ‘나 몰라라’ 떠난 비정한 승객들

    심장 멎은 택시 기사 두고 ‘나 몰라라’ 떠난 비정한 승객들

    택시기사가 운행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결국 숨졌지만, 당시 택시에 탔던 승객들은 기사에 대한 구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대전 둔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25일 오전 8시 40분 대전 서구 한 도로에서 승객 2명을 태우고 쏘나타 택시를 몰던 A(63)씨가 갑자기 급성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다. A씨는 핸들 조작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가속페달을 밟아 차량이 앞으로 계속 주행했고,조수석에 타고 있던 승객이 핸들을 조작해 사고를 피하려 했으나 택시는 주변을 지나던 차량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목격자 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A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목격자들은 “승객들이 기사를 두고 자신들의 짐을 챙겨 곧바로 다른 택시를 타고 떠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가 심정지 증세와 함께 의식이 상당히 혼미해졌거나 의식을 완전히 잃으면서 운전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목격자 등을 상대로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A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도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하기로 했다. 한편 사고 당시 A씨의 택시에 탔던 승객들은 사고 2시간 후 경찰서에 직접 전화해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경찰에 전화해 “공항버스 출발 시각이 10분밖에 남지 않아 바로 가야 했다. 귀국하는 대로 경찰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시간이 출근 시간대라 목격자들이 많이 있어 119 신고가 비교적 금방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승객들은 목격자들이 신고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현장을 이탈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탈리아 강진으로 최소 120명→247명 사망…“발견 90%는 시신”

    이탈리아 강진으로 최소 120명→247명 사망…“발견 90%는 시신”

    지난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 규모 6.2 강진이 발생해 생존자 수색·구조작업이 이틀째 계속되고 있지만 사망이 확인된 희생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지진 직격탄을 맞은 아마트리체 등 산골 마을은 여름 휴가객들이 몰리는 곳이고 주말에 열릴 파스타 축제를 앞두고 주민 이외 외부인들도 수천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인명 피해가 훨씬 커질 수 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과 외신을 종합하면 지진 발생 만 하루가 지난 25일 새벽까지 이탈리아 당국이 공식 집계한 사망자 수는 247명이다. 부상자도 수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마트리체·아쿠몰리 등 피해가 극심한 마을이 있는 라치오 주 리에티 현에서 190명, 페스카라 델 트론토가 있는 레마르케 주의 아스콜리 피체노 현에서 57명 사망이 확인됐다. 이번 지진은 2009년 4월 6일 아브루초주 라퀼라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해 308명이 사망하고 1500명이 부상했을 때보다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어 최근 몇 십년 사이 이탈리아에서 최악의 피해를 낸 지진이 될 가능성이 있다. 1997년 9월과 10월에도 움브리아에서 4.8~5.5의 지진이 발생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파괴되고 걸작 회화가 훼손되는 등 피해가 있었지만 인명 피해는 10여명이었다. 20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낸 지진은 1908년 시칠리아 섬 메시나에서 발생한 규모 7.2 지진이었다. 당시 8만 2000명 이상이 숨지고 도시는 쑥대밭이 됐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현장을 찾아 “우리는 지금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며 “앞으로 수개월 복구에 매달려야 하겠지만, 지금은 기도하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라고 고통과 슬픔을 표시했다. 지진 발생 이틀째도 소방 구조대원들과 군인들, 산악구조대원들, 주민들, 이탈리아 각지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이 생존자를 찾아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탐지견과 불도저 등 가능한 중장비를 모두 동원한 것은 물론, 삽과 맨손으로 잔해 더미를 파헤치며 생존자를 찾고 있다. 구조당국 관리인 루이지 단젤로는 CNN방송에 “이틀이 지나고도 사람들이 생존해 구조된 과거 사례가 많다”며 “그래서 우리는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하며 지진으로 난 산사태로 진입로가 끊긴 곳도 있는 산골 마을들에는 접근이 쉽지 않다. 또한 강력한 진동에 완전히 무너져내린 건물들에서는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가장 큰 피해 지역인 아마트리체와 아쿠몰리, 페스카라 델 트론토 등지에서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마을 체육관, 임시로 마련된 천막 숙소 등에서 밤을 보냈다. 이들 지역은 수도 로마에서 차로 1시간 반∼2시간 거리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여름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아 실종자는 정확히 집계되지도 못하고 있다. 당국은 현재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몰됐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소방대가 상공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폭삭 주저앉은 마을은 두꺼운 회색 먼지로 뒤덮여 있다. 이탈리아는 피해 지역의 범위와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자 유럽연합(EU)에 위성 사진을 요청하기도 했다. 토마토와 매운 고추 소스로 만든 파스타 ‘아마트리치아나’의 탄생지로도 유명한 아마트리체는 이번 주말 축제가 예정돼 있었다. 70여 명의 관광객이 묵고 있던 한 호텔에서는 11살짜리 소년을 비롯한 시신 5구가 확인됐지만, 나머지 투숙객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인구 700명의 작은 마을인 아쿠몰리도 여름철이면 휴가를 보내러 찾는 사람들로 거주 인구가 2000명까지 늘어나는 곳이다. 잔해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된 8살, 8개월 자녀가 포함된 일가족 4명도 휴가차 온 사람들이었다고 스테파노 페트루치 아쿠몰리 시장은 전했다. 피해 현장을 찾은 베아트리체 로렌친 보건장관은 로마 시민들의 별장이 많고, 이탈리아인들이 학기 시작 전 휴가를 보내는 곳이어서 어린이 희생자가 많다고 말했다.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이 극적으로 구조되는 모습도 전해지고 있다. 페스카라 델 트론토에서는 발견된 10세 소녀가 지진 발생 18시간 만에 구조대원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되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움브리아주 아시시의 작은 동네 카포다콰에서 구조대원이 돌무더기에 갇힌 여성을 안심시키려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도 영상에 담겨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지진 지역의 중세 가톨릭 문화유산 피해도 상당한 상황이다.진앙에 가까운 움브리아주 노르차에서는 기독교 성인인 성 베네딕토의 생가터에 있는 성당이 파손됐다.피해가 극심한 아마트리체에서는 중세 요새에 있는 박물관·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조각 등이 가득한 성당 100여곳이 피해를 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탈리아 강진으로 사망자 159명으로 늘어

    이탈리아 강진으로 사망자 159명으로 늘어

    이탈리아 중부를 강타한 규모 6.2의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 24일(현지시간) 밤 현재 159명으로 집계되고 부상자도 최소 368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가장 큰 피해지역의 하나인 라치오주(州) 페스카라델트론토에서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아마트리체 AP 연합뉴스
  • [포토] 이탈리아 강진으로 최소 120명 사망 “한명이라도 더 찾아야…”

    [포토] 이탈리아 강진으로 최소 120명 사망 “한명이라도 더 찾아야…”

    24일(현지시간) 강진이 발생한 이탈리아 중부 산악마을 아마트리체에서 구조대원들과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에서 생존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를 덮친 지진은 규모 6.2의 강진이었다. 이로 인해 최소 120명이 숨지고 360여명이 다쳤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이 숫자는 최종 집계가 아니다”고 말해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살아 있어!” 伊 지진 현장서 10세 소녀 극적 구조

    “살아 있어!” 伊 지진 현장서 10세 소녀 극적 구조

    “아이가 살아 있다!”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지역을 강타한 규모 6.2 강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세 마을 중 하나인 페스카라 델 트론토에서 10살 된 여자아이 한 명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아이는 해질 무렵, 생존자 수색을 돕던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당시 두 여성은 거리를 뛰면서 “아이가 살아 있다!”고 외쳤다. 이후 아이가 있는 곳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잔해를 치웠고, 잔해 속에서 몸이 거꾸로 된 채 갇혀 있는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고립 17시간 만에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자 주위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당시 현장을 지휘한 다닐로 디오네세이 소방대장은 밝혔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등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한편 이번 지진은 새벽 시간대에 발생해 상당수의 사람이 건물 잔해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최소 159명이 숨지고 부상자는 368명으로 집계됐지만, 여전히 수습되지 않은 실종자가 많아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게 확실시되고 있다. 사진=스카이 이탈리아 방송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탈리아지진, 매몰 17시간 만에 극적 구조된 10살 소녀

    이탈리아지진, 매몰 17시간 만에 극적 구조된 10살 소녀

    최근 지진이 발생한 이탈리아에서 무너진 잔해에 갇혀 있던 10살 소녀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24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이탈리아 페스카라 델 트론토(Pescara del Tronto)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10살 소녀가 매몰된 지 17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구조 현장 영상에는 건물 잔해를 조심스레 파헤치고 있는 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금속 구조물 아래 거꾸로 매몰된 소녀의 다리가 보인다. 잠시 뒤, 잔해 아래서 먼지를 뒤집어쓴 소녀를 구조대원들이 끄집어낸다. 소녀의 극적인 구조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아이가 살아있다”는 함성을 지르며 환호한다. 구조된 소녀는 다행스럽게도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안정을 취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24일 새벽 3시 35분께 움브리아주 노르차에서 규모 6.2 강진의 지진이 발생해 지금까지 159명이 사망했으며 368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사진·영상= SKY TG24/ FeelTheLife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이탈리아 강진으로 최소 120명 사망…“희생자 더 늘어날 수 있어”

    이탈리아 강진으로 최소 120명 사망…“희생자 더 늘어날 수 있어”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시골 마을을 덮친 규모 6.2의 강진으로 최소 120명이 숨지고 360여명이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망자·부상자 숫자는 최종 집계가 아니다”고 말해 피해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앞서 이탈리아 수도 로마 동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아마트리체 등에서 희생자가 8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아마트리체는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이다. 이탈리아 구조 당국도 공식집계에서 아마트리체와 로마로부터 북동쪽 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아쿠몰리에서 53구 등 라치오 주를 중심으로 73구의 시신을 수습됐다고 밝혔지만 “희생자가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조대원들을 지휘하는 임마콜라타 포스틸리오네는 구호 시설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 중 위독한 환자들이 있고 아직 많은 사람이 매몰돼 있어 사망자 수는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마르케주 아르쿠아타 델 트론트에서는 15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전역과 바티칸에서 파견된 구조대원들은 피해 지역 주변에 텐트를 설치하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건물 잔해에 매몰된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가장 피해가 컸던 아마트리체를 중심으로 150여 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지진은 새벽 3시 36분쯤 중세 문화유적의 도시 페루자에서 남동쪽으로 70㎞,로마에서 북동쪽으로 100㎞ 떨어진 노르차에서 시작됐다. 진원이 4km로 얕아 500km 범위에서 시민들이 진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로마에서도 한밤중 진동을 느낀 시민들이 잠을 깨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그의 웃음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좌절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더 커지고 짙어진 것일까. 소박하게 꾸며진 사장실 문을 열면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적힌 액자가 첫눈에 들어온다. 사무실과 공장을 겸하고 있는 경기 일산 본사에서 지난 17일 만난 김원길(55) 바이네르 사장에게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되뇌며 넘어지고 일어나 달려온 40년을 들어봤다. -옷가지 몇 벌이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영등포역에 내렸다. 처음 밟은 서울 땅.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녔더라면 고2 새 학기의 시작에 들떠 있었을 1978년의 봄이었다. 당시 영등포는 사람과 상점, 공장, 유흥가로 지금보다 훨씬 더 번잡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겁이 났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이 탔다. 화장실에서 벌컥벌컥 수돗물을 마시고 세수를 했다. 시간은 오후 4시. 자, 이제부터 한 집 한 집 내가 있을 곳을 찾아나서 보자. “제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 있는데요, 저 좀 써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땅거미가 내리고 전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와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퇴짜를 맞은 집이 스무 곳 가까이 되어갈 즈음, 문래동 쪽 허름한 구둣방에서 나를 받아주었다. 월급은 없이 하숙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기만 하는 조건이었지만 마다할 수가 없었다. -내 솜씨를 본 구둣방 주인은 좀 놀라는 눈치였다. 열일곱 살 먹은 ‘충청도 촌놈’치고는 실력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이 되자 주인이 불렀다. “장마철이라 물건이 너무 안 팔린다. 더이상 널 먹이고 재워 줄 능력이 안 된다.” 말하자면 정리해고였다. -“구둣방에서 잘렸어요.” 몇 달 동안 하숙하며 친해진 룸메이트 형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내가 강원도 양양 출신이어서 잘 아는데, 설악산에 가면 일자리가 있을 거야.”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다음날 새벽같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날 늦은 오후가 돼서야 도착한 설악산. 몇 달 전 영등포 역전에서처럼 상점과 산장의 문을 한 집 한 집 두드렸다. 하지만 하숙집 형의 말과 현실은 달랐다. 서울로 돌아갈 차비는커녕 김밥 하나 사먹을 돈도 없는데 서늘한 밤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냥 죽으란 법은 없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말할 요량으로 찾아간 산장에서 “방 청소하고 손님들 가방 들어 주면 한 달에 5만원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당시 설악산은 신혼여행이 피크였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 주자 팁이란 걸 주는데, 한 번에 2000~3000원은 기본이었다. 새로운 삶의 희망에 들뜬 신혼부부들은 일반 등산객들보다 손이 컸다. 지배인이 보는 데서 받은 팁은 도로 토해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팁은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팁에 맛을 들인 나는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밖에서 발소리가 나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갔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해야 더 많은 팁을, 그리고 지배인이 안 보는 데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갔다. 한 달이 지나자 다락방에 몰래 감추고 벽돌로 눌러놓았던 팁이 50만원으로 불어났다. 월급의 10배였다. 그 돈을 들고 나는 미련 없이 설악산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1961년 충남 당진에서 5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났는데, 가족이 의지할 거라곤 손바닥만 한 논 몇 마지기가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허약한 형을 대신해 풀 베고, 땔감 구하고, 논에서 피 뽑는 노동의 무게를 다 짊어져야 했다. 그 보상일까. 초등학교까지만 보낸 형, 누나와 달리 아버지는 나를 중학교에 넣어주셨다. 하지만 중학교 3년 동안 수시로 학업 중단의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 저…학교에서…100원만 가져오래요.” 집안 사정 뻔한데 차마 말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며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진작에 얘기했으면 좀 더 일찍 알아봤을 것 아니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봐야 어머니의 긴긴밤 잠 못 드는 괴로움만 더 깊어졌을 거란 사실을. 풀이 죽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물을 애써 외면하며 집을 나서곤 했는데, 나는 울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1977년 2월 중학교 졸업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중학교 3년이 나에게 보장된 최후의 학업이란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던 터라 고등학교 진학 얘기는 아버지도 나도 꺼내지 않았다. “원길이는 내 밑에서 구두 기술 배워라.” 서산 읍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시던 작은아버지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 지게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조카의 손재주를 익히 알고 있던 작은아버지였다. 하지만 ‘좁은 곳’에서 평생을 ‘족(足)쟁이’로 썩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넓은 곳’을 찾아 경기 고양군 지축면(현재의 지축동)의 분재농장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한 달 1만원을 받아서는 내 한 몸 먹고 자기에도 빠듯했다. 슬슬 염증이 났다. -“돈 번다고 올라가더니 사는 게 그리 만만하더냐.” 그해 9월 추석에 집에 와서 작은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가게로 와라. 이 기술 하나면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 -서산 구둣방에서 처음 배운 것은 가죽과 밑창이 단단히 붙도록 망치질을 하고, 접착면에 ‘뻬빠질’(사포질)을 하는 일이었다. “역시, 원길이 손재주는 대단하구나.” 남들이 1년을 해도 떼지 못한다는 남성용 구두 제작 전 공정을 나는 5개월 만에 마쳤다. “그 재주로 시골에 있긴 아깝다.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우거라.” 동료 아저씨들의 말이 몇 번 반복되자 마음이 흔들렸다. 작은아버지는 나의 고민을 이해해 주셨다.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쥐여주신 차비를 들고 나는 1978년 그 봄에 영등포역 가는 기차를 탔던 것이다. -설악산에서 번 55만원으로 경기 성남 상대원동에 월셋집을 얻고 서울 중곡동 어린이대공원 근처 구두 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제화업계의 판도는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케리부룩의 순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케리부룩에 납품하던 참스제화였다. 본격적으로 여성용 구두 만들기를 익혔는데, 얼마 후 나는 참스제화 안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기술을 갖게 됐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즈음 케리부룩에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1983년 9월 스물두 살 때였다. -‘생산라인에 있으면 신발을 20켤레 만들 수 있지만 관리자가 되면 2000켤레, 2만 켤레의 생산을 직접 관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더 큰 것’, ‘더 높은 곳’에 목말라 했다. 그래서 나를 믿고 부른 케리부룩 김정현 사장님에게 ‘생산직’이 아닌 ‘관리직’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사장님은 원했지만 주변에서 말들이 나왔다. ‘생산관리를 고작 중졸 출신에게 맡기다니’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관리직의 문들 두드렸고, 얼마 후 포장반에 배치됐다. 구두에 상표를 붙여 사각 박스에 담는 단순노동을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관리직이라는 이름표를 갖고 있는 부서였다. 생산라인에 있을 때 100만원이던 월급이 포장반으로 오니 20만원으로 깎였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계산은 적중했다. 몇 달 후 완제품을 최종 검사하는 검수반으로 옮겼다. ‘완벽한 제품’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깐깐하게 검사를 했다. 어느 날 공장 기술자 100여명이 “우리를 괴롭히는 김원길을 자르라”고 대놓고 사장님에게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사장님은 나를 지지했다.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그걸 마다할 사장이 어디 있겠나. 나는 ‘시키지 않은 짓’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다. 시장 조사였는데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등 경쟁제품 중에 잘 팔리는 건 어떤 게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했다. -1989년 인천백화점에서 우리 케리부룩 매장을 퇴출시키겠다고 통보해 왔다. 내가 영업관리를 하며 어렵게 입점을 성사시킨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월 매출이 600만원으로 다른 업체의 5분의1밖에 안 된다는 이유였다. 백화점에 시간을 한 달만 더 달라고 했다. ‘저 많은 걸 나 혼자선 절대로 못 판다. 고객의 입소문을 통해 팔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값 특가 세일과 동시에 내가 백화점 매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러분, 케리부룩 CM송 부르시면 구두를 그냥 드립니다.” 당시 ‘허리를 미끈하게 펴고~ 무릎을 쭉 뻗으면~ 케리부룩 케리부룩 예쁘게 걸어요~’라는 우리 TV CM송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달 매출이 1억 1000만원으로 거의 20배가 됐다. 그걸 계기로 뉴코아, 롯데, 신세계 등 서울 시내 백화점에 속속 입점을 했고 나는 ‘영업의 달인’으로 통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에 대한 시기와 모함도 커져 갔다. ‘사장이 되려고 한다’, ‘회삿돈을 제 맘대로 쓴다’ 악성 루머가 사내에 돌았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분노를 하니 더이상은 회사에 다닐 수가 없었다. -1990년 사표를 던졌다. 언젠가는 예정됐던 일, 그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케리부룩 퇴직금 280만원과 사장님이 별도로 챙겨주신 200만원을 밑천으로 서울 용산에 선심(구두의 앞코에 들어가는 부속) 제조회사를 차렸다. 간판은 ‘원길’로 내걸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는데 돈이 안 들어왔다. 못 받은 외상값이 2000만원이 넘어갔고, 빚이 쌓여 갔다. 답답한 마음에 전에 거래했던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의 바이어를 만났다. “아이고, 김 대리 회사 관두고 나서 케리부룩 엉망 됐어요.” 케리부룩 김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롯데백화점에 물건 한 트럭 보내주세요. 제가 팔아볼게요.” 매출의 10%가 내 몫이었다. -“사장님, 제가 직접 구두 만들어서 케리부룩 상표 붙여 팔겠습니다.” 다시 기세가 오른 나는 케리부룩에 로열티를 주고 하청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는 이번에도 비껴가지 않았다. 1993년 케리부룩 대표가 된 전문경영인이 케리부룩 상품권을 헐값에 불법 발행해 구속이 됐고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상품권들은 휴지조각이 됐고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구두와 빚더미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 됐다. 불면의 날이 이어졌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하지만, 20대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씩씩하게 출근을 했던 나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어떤 고마운 분이 급전을 융통해 줘서 최종 도산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 이름을 ‘안토니’로 바꾸고 그럭저럭 구두회사를 꾸려가고 있던 1994년 뜻하지 않은 전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구두 박람회 ‘미캄’에 갔는데 바이네르의 컴포트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나와 한국 독점판매 계약을 맺자”고 했다. 당시 바이네르는 하루 1만 2000켤레를 생산하는 대형 업체였다. 한국 수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나는 어렵사리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국내에서 바이네르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 주문을 넣고 제품을 받기까지 무려 석 달이나 소요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직접 생산이 절실해졌다. -“내가 한국에서 알아주는 구두 기술자다. 바이네르 상표를 붙여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팔면 안 되겠나. 바이네르의 명성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들을 꼬박 6개월을 설득했다. 나의 한결같은 노력은 바이네르 회장을 감동시켰고, 결국 나는 일산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하루 50켤레씩 컴포트화 생산을 시작했다. -바이네르로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악재가 터졌다. 나를 아껴주었던 이탈리아 본사 회장이 돌아가시고 그 분의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회계사 출신인 그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는데, 로얄티를 이 정도 밖에 안 내나.’, ‘이탈리아 본사에서 수입해 가는 물량을 더 늘려라.’ 아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바이네르와의 결별을 준비했다. 광고도 바이네르의 비중을 줄이고 우리 자체 브랜드인 안토니에 집중했다. 그런데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은 특히 충격이 컸다. 거기에서 바이네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바이네르는 당시 유럽과 홍콩 증시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 나는 이탈리아로 가서 아들을 만났다. “너희들 자금난이 심각하다는데, 내가 지원을 해줄 테니 바이네르 브랜드를 나에게 팔아라.” 그들은 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재 이탈리아에 바이네르 공장이 10군데 정도 있는데 그들이 쓰는 브랜드 상표권은 내가 갖고 있다. -바이네르 신발이 편안한 비결이 뭐냐고 많은 사람이 묻는다. 그러면 나는 “고객의 마음은 당신이 그 질문을 하는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고객은 항상 더 예쁘고, 더 편안한 구두를 찾는다. 그걸 떠올리면 절대로 연구개발(R&D)을 게을리하거나, 맘 놓고 쉴 수가 없다. 고객은 혹시 한 번은 몰라도 절대로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발이 편안한 신발을 뜻하는 ‘컴포트화’를 통해 연간 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업계 3위 바이네르의 최고경영자(CEO)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구두 분야의 장인(匠人)으로, 특히 ‘중졸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바이네르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전국 60여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했던 그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안토니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골프 꿈나무에게 연간 2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수도권의 독거노인을 초청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박애원, 벧엘의집 등 수많은 복지시설에 물품을 보내고 있다.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급여를 보장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다양한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961년 충남 당진 출생 ▲당진 도성초등학교, 미호중학교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 수상 ▲1994년 안토니 설립 ▲2008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 2012년 철탑산업훈장, 2013년 아름다운 납세자상 수상
  • 터키 “시리아 국경 넘어 IS 소탕”… ‘유프라테스 방패작전’ 개시

    터키군이 국경을 넘어 시리아 북부에 있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주둔지를 목표로 직접 군사작전에 나섰다. 터키 지상군이 국경을 넘어 시리아 영토에서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터키 총리실은 “터키 군과 IS 격퇴 국제동맹군 공군이 시리아 알레포주 자라블루스 구역에서 테러조직 다에시(IS의 아랍어 약칭)를 몰아내는 군사작전에 돌입했다”고 24일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터키 방문에 동행한 미 관료는 미 공군이 터키군의 자라블루스 군사작전을 지원했으며 미국이 터키와 공조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군사작전은 이날 새벽 4시에 시작됐다고 관영 매체 아나돌루통신이 전했다. 터키 매체 휴리예트는 터키군이 ‘유프라테스 방패작전’을 전개했으며 6시쯤 터키 특수부대가 국경선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도안 통신사 등은 터키군 탱크가 이날 오전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고 전했다. 자라블루스는 이달 초 시리아 북부 요충지 만비즈에서 퇴각한 IS 대원들이 집결한 터키 접경지역이다. 터키군은 이날 새벽 가지안테프주 카라카므시에서 자라블루스로 포격을 퍼부었으며 터키 공군 전투기는 폭격에 나섰다. 터키 당국은 이날 지상군 작전에 앞서 23일 카르카므시 등 이 일대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가지안테프주는 군사작전지역을 ‘특별안보구역’으로 선포했다. 별안보구역은 터키 남부 가지안테프주 알라괴즈부터 국경선을 따라 동쪽으로 샨르우르파주 치체칼란까지 직선거리로 약 30㎞ 구간이다. 터키 총리실은 특별안보구역에 대해 언론의 접근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터키군이 무장단체 대원 추적 같은 국경 경비활동의 일환으로 국경선을 넘어 소규모 작전을 벌인 적은 있지만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해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강남 호텔서 필로폰 투약한 20대 여성 2명 적발···20대 남성 1명 도주

    강남 호텔서 필로폰 투약한 20대 여성 2명 적발···20대 남성 1명 도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여성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 구급차를 불렀다가 다른 남녀와 함께 필로폰을 집단 투약한 사실이 탄로났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 등 20대 여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2일 새벽 1시쯤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20대 남성 B씨와 주사기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세 명은 하루 전날인 지난 21일 이 호텔에 투숙했고, 그날 밤 B씨가 가지고 온 필로폰을 투약했다. 그러던 중 여성 A씨가 몸에 고통을 호소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여 119구급대를 불렀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은 이들이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여성 2명은 체포했지만, 남성 B씨는 경찰이 호텔에 도착하기 전 도망쳐 잠적한 상태다. 경찰은 호텔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B씨를 추적하고 있다. 또 여성들을 상대로 정확한 투약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이들의 모발과 소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확한 투약량과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민방위 날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서울포토] 민방위 날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종로소방서 대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민방위의 날 민방공 대피훈련 연계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2016. 08. 24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서울시민’ 이름으로… 물부족 국가 어린이 지원

    ‘서울시민’ 이름으로… 물부족 국가 어린이 지원

    23일 서울 청계천 팔석담에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주최로 열린 ‘행운의 동전’ 현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동전을 던지고 있다. 관광객이 청계천에 던진 동전은 ‘서울시민’의 이름으로 유니세프에 기부돼 전 세계 물부족 국가 어린이들의 물지원 사업에 활용된다. 왼쪽부터 서대원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이진용 서울시 하천관리과장, 손병일 서울시설관리공단 청계천 관리처장.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與 ‘보훈’ 野 ‘경협’… 대북 보상 입법 봇물

    20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남북관계 관련 보상법들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여당은 전쟁 공로자나 전투 희생자를 위한 보상에, 야당은 남북 경제협력 사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 보상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2002년 제2연평해전 사망자들의 보상액을 상향하는 특별법안을 지난 22일 발의했다. 법안은 전사와 순직의 구분이 없던 당시, 본인 월소득의 36배로 책정된 ‘공무상 사망자 사망보상금’을 받은 사망자 6명에게 전체 공무원 월소득 평균의 57.7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시 3000만~6500만원을 받았던 윤영하 소령 등 전사자 6명은 그동안 2015년 개정된 현행 군인연금법의 전사 사망보상금 규정을 소급 적용받지 못하고 있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각각 2억 7000만원을 지급받게 된다. 같은 당 김종태 의원은 지난 6월 30일 6·25전쟁 전후의 비정규군 공로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기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전쟁 전후 국군이 아닌 신분으로 적 지역 안에서 유격, 첩보 등의 작전을 수행해 공로를 인정받은 이들과 유족에게 법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비정규 공로자들 중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엑스레이’ 작전 성공에 큰 기여를 한 대북첩보부대인 ‘켈로부대’ 대원들도 포함된다.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도 지난달 18일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여당 의원들이 주로 전쟁이나 북한의 도발로 인한 전사자, 공로자 보훈을 목적으로 법안을 발의했다면, 야당은 역대 정부의 대북 활동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 보상에 초점을 맞췄다. 더민주 원혜영, 홍익표 의원은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운영 등 대북경제협력 중단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법안을 지난 5일과 지난달 29일 각각 발의했다. 원 의원의 법안은 2008년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사업과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뒤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와 대북 지원을 전면 중단한 5·24조치로 인해 경제적 손실을 입은 남북경제협력 사업자들과 강원 고성군의 경제 주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홍 의원의 법안은 이들과 함께 지난 2월 개성공단 사업 전면 중단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업자들과 관련 투자자들을 보상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원 의원 안은 보상심의위원회를 총리 산하에, 홍 의원은 통일부 장관 산하에 두도록 하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서울포토] 테러상황 어둠 속 부상자 구조 훈련

    [서울포토] 테러상황 어둠 속 부상자 구조 훈련

    23일 서울 신도림역에서 을지연습의 일환으로 열린 지하철 테러대응 합동훈련에서 소방대원들이 부상자들을 구조하고 있다.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테러 무기’로 내몰리는 아이들

    판단력 등 부족… 보코하람·탈레반도 아이들 이용 터키 남부 지역의 한 결혼식장에서 20일(현지시간) 발생한 폭탄테러 공격이 12세 청소년에 의해 자행되고, 숨진 어린이도 2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테러 현장에 내몰리는 아이들의 비극적인 삶이 조명받고 있다. AP는 터키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가지안테프 자살 폭탄 공격 사망자 중 신원이 확인된 44명 가운데 최소 22명은 14세 미만 어린이라고 22일밝혔다. 사망자 가운에 18세 미만의 청소년과 어린이는 모두 29명으로 집계됐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번 테러에 따른 전체 사망자 수도 애초 51명에서 54명으로 늘었다고 dpa 통신이 보도했다. 터키 당국은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대원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현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IS는 ‘칼리프의 아이들’이라는 별도 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IS는 2015년 어린이 조직원이 러시아 스파이와 10대 인질을 처형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IS는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세뇌교육을 진행한다. 올 3월 바그다드 남부의 한 마을 축구장에서 벌어진 자폭 테러로 29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당한 사건도 IS에 세뇌된 10대가 벌인 일이다. IS 사정에 정통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지난해 7월 IS가 북동부 지역에서 쿠르드족 반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18명의 어린이를 자폭 테러에 동원했다”고 밝혔다. 보코하람이나 탈레반 등 다른 극단주의 단체도 어린이를 테러에 내몰고 있다. 지난해 11월 11세로 추정되는 여자 어린이가 나이지리아 북부의 한 휴대전화 판매장에서 자폭해 15명이 숨졌다. 2012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있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 앞에서 발생한 자살 테러도 16살 탈레반 대원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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