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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사는가/무량스님 지음

    무량 스님의 8인승 자동차 번호판에는 ‘Y ALIVE’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왜 사는가. 자신의 자동차를 보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이 질문을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포크레인을 손수 몰면서 10년째 한국식 절 ‘태고사’(영문 이름 Mountain Spirit Center)를 짓고 있는 미국인 무량 스님이 ‘왜 사는가’(열림원 펴냄)라는 제목으로 2권의 책을 출간했다. 어머니와의 사별 등 어린 시절의 아픔, 성장기, 숭산 스님을 만나 23세에 출가해 시봉이 된 이야기(1권), 태고사를 짓는 다사다난한 과정(2권)을 포함해 자신의 인생관, 종교관, 환경과 평화에 대한 소신을 진솔하게 담았다. 전편에 걸쳐 소년 같은 맑고 순수한 감수성과 구도자의 자세가 묻어난다. 그는 예일대 시절 포스터를 보고 참가한 법회에서 숭산 스님에게 ‘오직 할 뿐(Only Do)’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후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우며 화계사와 수덕사의 선방에서 수행생활을 한다.1986년에는 여러차례에 걸쳐 전국을 걷는 만행을 시작한다. 무량은 1992년부터 미국 서부에 한국식 절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동부에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고 조직도 정비되었지만 서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그때 자신의 속에서 놀랍게도 “그래, 내가 해야겠다.”는 답이 명쾌하게 올라왔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할 때부터 땅과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무량은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직접 현장을 답사한 끝에 1년여 만인 1993년에 현재 태고사가 들어서 있는 모하비 사막 터를 발견했다. 앞은 탁 틔어 있고 뒷산은 웅장하고 좌청룡 우백호 주작봉 현무봉까지 완벽한 땅이었다. 무량 스님은 ‘일생에 한번이라도 전혀 의심 없는 상태, 보자마자 완전히 믿게 되는 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그 감격을 표현하고 있다. 무량 스님은 위대한 의문,‘나는 무엇인가’를 묻고 깨어나, 우리의 참된 인간성을 찾고 올바른 길, 진리, 올바른 삶을 얻을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행을 통해 내면의 본성품을 발견하면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고 순간순간 무엇이 올바른 상황인지, 올바른 역할, 올바른 관계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오직 할 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태고사에는 현재 요사채와 대웅전이 들어서 있다. 내년 초에는 ‘평화의 종’을 타종할 예정이다. 하지만 태고사 공사는 언제 완료될 지 모르는 기나긴 과제다. 태고사는 완성보다 그것을 짓는 과정, 즉 노동 수행의 의미가 더 중요한 현장이다. 무량은 ‘참나’를 찾았을까. 무량은 자신도 무량을 모른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요청한다.“우리는 먼저 참나를 찾아야 합니다. 당신은 무엇이며 누구입니까. 당신과 나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무량은 태고사에서 한국 불교가 세계와 연결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한국의 불교 문화와 역사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지, 태고사가 어떤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한다.‘왜 사는가’의 출간으로 얻는 수익은 한국의 선불교를 미국과 세계에 전하는 태고사를 발전시키는 데에만 쓴다. 각권 9500원 황진선기자 jshwang@seoul.co.kr
  • ‘남한 스님’ 모집합니다

    ‘남한 스님’ 모집합니다

    “금강산에 상주할 스님을 찾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북한 금강산에 복원중인 신계사 대웅전 완공 후 이 절에 머물면서 불사(佛事)관리와 방문 관광객에 대한 신행 및 홍보를 담당할 스님을 공개모집한다.조계종이 상주 스님 공개모집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조계종과 북측 조선불교도연맹이 “대웅전 낙성에 즈음하여 복원기간까지 조계종 소속 스님이 체류하여 신행활동을 하도록 보장한다.”고 합의한 데 따른 것으로 남측 종교인이 북한 지역에 상주하면서 종교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분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상주 스님은 오는 10월 말부터 2007년 신계사 복원이 완료될 때까지 신계사에 머물게 되는데 지원자격은 승랍 10년 이상의 종단 소속 비구 또는 비구니로 지원마감은 오는 14일까지이다.조계종과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은 지난 3월 실무회담을 갖고 2007년까지 공동으로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키로 합의했으며 이에 따라 조계종은 복원추진위를 결성,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대웅전 복원을 위한 자재와 장비를 북송했다.양측은 새달 19일 합동으로 대웅전 낙성식을 봉행할 예정이다.(02)2011-1821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플러스] 조계사 창건기념 ‘오세암’ 공연

    조계사는 오는 10∼17일을 창건기념주간으로 정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마련한다. 10일 대웅전에서 열리는 입재식을 시작으로 11일 오후 7시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페스티벌 대상에 빛나는 애니메이션 ‘오세암’이 뮤지컬로 재창작돼 조계사 특설 무대에 오른다.16일에는 각 학교 춤동아리가 총출동하는 ‘청소년 댄스 페스티벌’과 ‘조계사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가게 바자회’도 열린다.(02)732-2115.
  • 부산의 맛·볼거리 - 이것도 꼭

    부산의 맛·볼거리 - 이것도 꼭

    ■ 안보고 가면 절대 후회! 부산 지하철 1,2호선을 이용하면 해운대,광안리,남포동,서면 등에 쉽게 갈 수 있다.지하철 부산역에서 30∼40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지하철(800원)을 이용해 태종대,을숙도,범어사도 한번은 들러 볼 만하다. ●태종대 울창한 해송들과 기암괴석의 절벽이 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깎아지른 바위절벽과 탁 트인 바다의 절경이 너무 아름다워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이곳의 해안 절경에 심취했다고 해서 ‘태종대’로 불린다고 한다.이곳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한때 사람들이 자살을 하러 태종대를 많이 찾았다는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현재 모자상이 있는 전망대가 한때 자살바위로 불리던 곳이다.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전망대를 세웠는데,다시 한번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의미다. 태종대 중턱에는 폭 6m의 순환관광도로가 4.3㎞에 걸쳐 있으며 망부석,신선바위,전망대 휴게실(자살바위),병풍바위 등 절경이 이어진다.태종대를 걸어서 구경하는 데 보통 1시간30분이면 넉넉하다.입장료 1인당 600원,승용차는 탑승객 수에 상관없이 차 1대당 3000원.셔틀버스가 없어져 걸어서 다니거나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하지만 버스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4명까지 3000원에 전망대까지 데려다 준다. 또 태종대 주변을 도는 유람선은 어른 6000원,아이 4000원,약 40분이 걸린다. 근처에 바이킹 등 12종의 놀이기구와 조류원 등이 있는 자유랜드(405-0043)나 태종대 온천(404-9001) 등 한나절 나들이로 좋다. 가는 방법은 1호선 남포동역에서 6번 출구로 나와 8,13,30,88번을 타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을숙도 우리나라 최대 철새도래지로 낙동강 하구에 있다.사계절 먹이가 풍부하고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넓은 갯벌과 갈대가 우거져 있어 철새들의 쉼터와 잠자리가 되고 있다.겨울이면 철새로 장관이지만 지금도 쇠제비갈매기,딱새과의 개개비,뜸부기류인 쇠물닭 등도 눈에 띈다.요즘은 하얗게 핀 갈대꽃이 장관이다. 을숙도 위쪽에는 넓은 주차장과 간이축구장,잔디광장,휴게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을숙도 안에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7군데다.2인용 자전거는 시간당 5000원,1인용은 3000원.갈대 숲에서 연인과 자전거를 타면 영화 주인공이 된 착각에 빠질 정도다. 부산지하철 1호선 하단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5분 거리. ●범어사 합천 해인사,양산 통도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 중 하나이다.부산 금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약 1300년 전 신라 고승 의상이 창건했다.삼국시대의 유물인 삼층석탑과 대웅전이 보물이다.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서산대사,경허,용성,동산 스님 등 고승을 배출한 호국불교의 전당이기도 하다.다른 절과 다른 독특한 형태의 일주문,독성각 입구의 아치문 등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주문 왼쪽의 등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176호로 안 보면 후회하게 된다.등나무 400여 그루가 참나무,소나무 등과 어울려 사는 모습은 멋지다.참나무,소나무의 줄기를 휘어감고 사는 등나무,등나무의 등쌀에 못 이겨 말라죽은 소나무,2∼3줄기가 서로 뒤엉켜 흡사 뱀처럼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등나무가 음산한 듯 장엄하다. 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을 이용할 것.부산역에서 지하철로 40분 정도.범어사역에서 범어사 매표소까지 시내버스 90번이 다닌다.운행간격 15분. ■ 꼭!!! 맛 보고 가이소 국내 해산물 최대 집산지인 부산.온갖 종류의 회가 다 있지만 요즘 미식가들을 색다르게 유혹하는 음식이 아귀회다.부산 연제구 목화예식장 맞은편 국민은행 뒤쪽 4거리의 팔팔횟집(865-1518)은 자연산만 취급해 아귀도 회로 떠준다. 메뉴판에는 아귀회가 없고,아귀 코스가 있다.아귀 코스를 주문하면 아귀회와 아귀수육,아귀탕이 차례로 나온다.깔끔하게 차려진 밑반찬과 함께 전채처럼 나오는 아귀회는 아귀의 꼬리 부분의 살점을 회로 뜬 것.광어회처럼 밝은 색이 돌면서 껍질 부분은 붉은 빛이 난다.한 동행인은 “살이 물컹거릴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고 졸깃하다.”고 말했다.약간 미끌거리면서 씹히는 질감이 어찌보면 복어회와 비슷했다.회는 이 집에서 별도로 마련한 간장 소스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간장소스는 간장에 고추냉이와 풋고추 등을 넣어 만들었다. 이어 나오는 것이 아귀수육.수육은 흔히 먹는 콩나물이 가득한 아귀찜과는 차원이 다른 음식이다.회를 하고 남은 부분을 그대로 쪄 낸 것으로 아귀가 수북하다.테이블에서 아귀 뼈를 발라 앞접시에 들어준다.아귀 내장도 고스란히 나온다.아귀 내장은 거위간인 푸와그라와 맛과 질감이 비슷해 미식가들이 무척 즐기는 부위다.복 수육보다 더 담백하면서 맛이 깔끔하다.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아귀탕.맑은 국물이 시원하다.밥을 말아 먹어도 좋다. 아귀 코스의 가격은 시가.4년 전부터 아귀회를 시작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는 주인 류순이씨는 “살아있는 아귀를 구하기 위해 통영·고성·삼천포·여수 등 남해안을 샅샅이 헤매고 다닌다.”며 “어떨 땐 하루 700㎞ 이상 다닌다.”고 말했다.이렇다보니 가격이 만만찮다.요즘은 비교적 많이 나는 편이어서 2인분은 5만∼6만원,4인분은 8만원.산 아귀를 다듬는 데 시간이 걸려 예약하는 것이 좋다. 동래구청 뒤쪽의 동래할매파전(552-0791)도 한번은 찾을 만하다.부산민속음식점 1호답게 고가구가 예스럽게 꾸며져 있다.부산의 뿌리인 동래는 광복 전까지 장꾼들이 들끓었다.“파전 먹는 재미로 동래장에 간다.”는 말이 전할 정도로 파전은 인기 메뉴였다. 4대,70년째 가업인 파전을 잇는 김정희씨는 “파는 향이 진하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기장산을 쓴다.”며 “여기에 바지락·새우·굴·홍합 등을 찹쌀가루와 멸치 육수에 섞어 걸쭉한 반죽으로 개어 유채꽃기름에 부쳐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자랑했다.부드러우면서 파의 향이 진하다.신선한 해물과 향기 좋은 파를 구하기가 힘들어 분점 개업을 꺼린단다.파전 1만 8000원.논고둥찜(2만원)도 좋다.직접 빚는 동동주(6000원)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서부 경남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포쪽으로 가는 길목의 유명갈비(313-3392)는 와인삼겹살(5500원)로 내공이 깊다.삼겹살에 한약재인 정향·월계수잎과 함께 포도주에 하루 동안 대나무통에 절여 둔 것이다.약간 두툼하지만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부드러워 입에 착착 감긴다.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즐겨 경남지역에서 더 많이 알려진 집이다.갈매기살(6000원)은 쇠고기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맛이 좋다.식사로 나오는 영양돌솥밥(3000원)에는 잣·콩·밤·대추 등이 많이 들어 있다.밑반찬도 깔끔하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광안리해수욕장 옆의 민락씨랜드 7층의 경포횟집(752-9393)은 자연산만 고집하는 몇 안 되는 집이다.주인 이영철씨는 2대째 30년 동안 민락동에서 횟집을 운영해온 토박이인 까닭에 다른 업주들은 구하기 힘든 자연산 고기를 쉽게 구한다.그래서 자연산은 끊이질 않는다.요즘엔 게르치 회가 싱싱하다.서비스로 나오는 오징어순대도 그만이다.산 오징어를 통째로 40분가량 삶아 나오는 것으로 먹물과 내장이 그대로 들어 있어 쌉싸래한 맛이 나지만 식욕을 돋운다. 부산에서 시간이 난다면 금정산에 한번 올라보는 것도 괜찮다.어느 쪽에서 오르든 2시간가량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부산항과 바다,김해평야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도 좋다. 금정산 안쪽의 산성마을에는 흑염소불고기 전문점들이 있다.대표적으로 산성창녕집(517-6288)을 들 수 있다.달콤·매콤하게 양념한 염소불고기(2만 5000원)는 염소 특유의 노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부드럽다.민속주 1호인 산성막걸리(5000원)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전화를 하면 차량을 보내준다.
  • [추석연휴 가볼만한 곳] 귀성길에 ‘休 休 休’

    [추석연휴 가볼만한 곳] 귀성길에 ‘休 休 休’

    아무리 돌아가고 질러가도 귀경,귀성길은 막히기 마련이다.주차장을 방불케하는 고속도로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잠깐 도로에서 빠져 여유를 가져보자.전국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30분내에 가볼만한 곳들을 안내한다. ●서해안고속도로 삽교호 함상공원(송악IC) 지난 2002년 개장한 동양 최초의 군함 테마공원이다.우리 바다를 지키다가 퇴역한 상륙함 ‘화산함’과 구축함인 ‘전주함’을 충남도가 임대해 테마공원으로 꾸몄다. 운영은 ㈜삽교호 함상공원이 맡고 있다.군함 내부에는 5인치 함포를 비롯,미사일,어뢰,폭뢰,기관포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해대교를 건너자마자 송악IC에서 5분 거리에 있다.(041)362-3321,363-9229. 해미읍성(해미IC) 조선초에 쌓은 읍성.보존상태가 좋다.동헌,객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성내 회화나무는 수령 600년으로,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했다고 한다.성곽을 따라 한바퀴 돌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길이는 1,160m로 천천히 걸어서 1시간쯤 걸린다.해미IC에서 10분.해미읍성 관리사무소(041)660-2540. 곰소항(줄포IC) 젓갈산지인 곰소항은 줄포IC에서 빠져 내소사 가는 길목에 있다.도로변이건 포구 어시장이건 온통 젓갈상회다.곰소가 젓갈맛으로 명성을 얻게 된데는 인접한 천일염 염전의 소금 덕이 크다.곰소 염전은 무려 면적만 15만여평에 이르는데 예로부터 이곳 염전에선 소금을 만들 때 간수를 적게 사용했다.그래서 쓴맛이 거의 없다.많이 팔리는 새우젓의 경우 김치에 들어가는 추젓이 1㎏에 7000∼1만5000원.반찬용으로 인기 있는 오젓과 육젓은 1만∼3만원. 고인돌군락(고창IC) 고창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의 집단 밀집 지역이다.85곳 이상에서 2000기 이상이 분포하는 동양 최대의 고인돌 군락지다.특히 447기가 밀집된 고창군 아산면 죽림리,상갑리 일대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이곳엔 남방식 및 북방식 고인돌이 두루 분포해 있어 동북아 고인돌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푸른 초원 위에 늘어선 고인돌을 구경하는 탐방로는 색다른 분위기를 주는 산책 코스.고인돌공원 관리사업소 (063)563-2793 ●중부고속도로 이천도예촌(서이천IC) 이천시 사음동 및 신둔면 수남리 일대에 자연스럽게 도자마을이 형성됐다.현재 300여 업체가 모여 있다.특히 3번 국도 주변으로 도자업체들의 전시판매장 및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어 작품 감상과 함께 구입도 할 수 있다.‘도예농‘(031-637-6555)과 신둔면 남정리의 ‘예원도요’(031-634-2244) 등에 가면 도자기 페인팅에서부터 손으로 빚기,물레성형,장작 가마 안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건강나라(일죽IC) 중부고속도로 일죽IC에서 빠져 17번 도로를 타고 용인 방향으로 5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초원 위에 지중해풍 양식의 건물이 눈길을 끈다.찜질방 ‘건강나라’다. 1만 5000여평의 부지에 지어진 건강나라엔 석굴암을 본떠 만든 12m 높이의 전통 한증막,대형 사우나,노천탕이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한방치료실,옥석굴,불가마,휴게실 등으로 이어지는 동선엔 꽃과 그림,가구 등이 적절히 배치돼 있어 마치 고급 카페 같다.입장료는 찜질방만 이용할 경우 6000원,사우나 시설을 함께 이용하면 1만원.(031)674-8255. ●중앙고속도로 물돌이마을(영주IC)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는 알려지지 않은 물돌이 마을이다.고풍스러운 고가들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져 마치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다녀오기에 적당하다.내성천이 마을 삼면을 돌아 흐른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옥은 ‘해우당고택’이다.고종 16년(1879년)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海愚堂) 김낙풍(金樂豊·1825∼1900)이 1875년 건립한 가옥.이 마을에서는 가장 큰 가옥으로 옛 선비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초가집 ‘박천립 가옥’,마을 뒤쪽의 ‘만죽재(晩竹齋) 고택’도 관심을 기울여 살펴볼 만 하다.중앙고속도로 풍기IC 또는 영주IC에서 빠져 5번 국도를 타고 문수면 방면으로 가면 된다.영주시 문화관광과(054)634-2153. 봉정사(서안동IC)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있다.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조사가 세웠다.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역사적,학문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웅전과 고금당,화엄강당 등 고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서안동IC에서 빠져 34번 도로를 타고 안동시 방향으로 가다보면 봉정사 이정표가 나온다.(054)853-4181. ●천안-논산고속도로 마곡사(정안IC)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천년고찰.송림욕장과 온천을 끼고 있어 사계절 관광지로 인기다.마당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5층 석탑은 원나라 말기 라마교 양식을 본뜬 것으로 세계에서 3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귀중한 문화재이며,석탑 왼편 응진전 앞에는 마치 분재를 한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린 노송이 고풍미를 더해준다.(041)841-6220 공산성(남공주IC)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뺏긴 백제가 남쪽으로 내려와 60여년간 백제의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성내에는 백제의 궁궐터와 연못이 남아 있다.공산성에는 조선 인조에 얽힌 얘기도 전해온다.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온 인조에게 성안마을 사람 임씨가 떡을 해 바쳤는데,맛이 하도 좋아 임금이 ‘임절미’로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 인절미가 됐다고 한다.성곽 둘레는 2.5km로 천천히 돌아보면 2시간 정도 걸린다.입장료 일반 1000원. ●경부고속도로 아산스파비스(천안IC) 천안IC에서 빠져 628번 도로를 타고 아산 방향으로 30분 정도 직진하면 음봉면 신수리에 이르러 아산온천단지가 나온다.90년대 들어 개발된 아산온천은 다양한 레저시설을 갖춰 아이를 둔 가족 나들이로 각광받는 곳이다.그중 아산스파비스(041-539-2000)는 슬라이더를 갖춘 야외 온천풀과 바데풀,가족탕,유수탕 등을 갖춘 워터파크 형태의 온천으로 물놀이를 겸한 온천욕에 적당하다. 직지사(김천IC) 경북 김천 황악산 기슭의 직지사는 ‘다친 산짐승들이 생명력을 충전하는 곳’으로 전해내려온다.그만큼 불심이 충만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직지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이 창건했고,이후 사명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고승들이 깨우침을 얻은 곳이다.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웅전과 비로전 등이 거의 전부인 보통 크기의 절이었으나,이후 대형 불사를 일으켜 수십개의 전각,탑을 갖춘 대형 사찰이 됐다.김천IC를 나오자마자 우회전한 뒤 다시 우회전해 4번 국도를 타고 12㎞ 정도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영동고속도로 삿갓봉 온천(여주IC)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인 삿갓봉(당고개)에 위치하고 있다.지하 800m에서 솟아오르는 최고 수질의 온천수를 자랑한다.국내 최초로 안데스산 청정호수염에 아로마테라피를 접목시킨 ‘아로마 소금탕’을 즐길 수 있다.깨끗한 숲 가까이 자리잡고 있어 등산과 산책을 하며 산림욕까지 즐길 수 있다.요금은 일반 5000원,미취학아동 4000원.(031)885-4800. 구룡사(새말IC)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에 의하여 만들어진 절로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다.울창한 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산책은 물론 구룡사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좋다.또 계곡 안쪽으로 구룡폭포를 비롯하여 귀암,용연 등의 경치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치악산국립공원 입장료 어른 3200원,어린이 700원.(033)732-4800. 강원참숯 숯가마(둔내IC)는 참숯으로 유명한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 고래골에 자리잡고 있다.36년 동안 오직 숯만 구워온 최흥원(67)씨가 재래식으로 숯을 굽는 곳이다.이곳의 숯가마는 숯을 꺼낸 뒤 하루동안 열기를 식히고 다음날 황토숯찜질방으로 개방된다.숯가마는 모두 24개.이중 평일 2곳,휴일 3곳 정도가 찜질방으로 개방된다.나일론 옷은 고온에 녹기 때문에 반드시 면제품 옷을 입어야 한다.입장료는 5000원,면옷 대여 2000원.(033)342-4508 월정사(진부IC)는 오대산 동쪽 계곡에 있으며 1㎞에 달하는 500년 수령의 전나무 숲과 함께 오대산을 상징하는 사찰이다.국보 48호인 팔각 9층 석탑 및 보물 139호 월정사석조보살좌상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볼 수 있다.(033)332-6664.여유가 있다면 역시 오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자생식물원도 가볼만 하다.총면적 3만 3000여평에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야생화와 식물 100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033)332-7069. 임창용·나길회기자 sdrago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양평의 강변길

    [뒷골목 맛세상] 양평의 강변길

    가을이다.어느 주말 느닷없이 하늘이 높아져서 푸른 물을 뚝뚝 떨구고 투명한 햇살 속에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잊었던 그리움마저 아련하게 불러일으킨다면,그리고 그리움의 무게에 비례해 사는 일이 그대를 지치고 허기지게 한다면,차를 지닌 친구라도 불러내어 훌쩍 길을 떠나고 볼 일이다.양평의 빼어난 풍광에는 몇 번이고 더듬어도 질리지 않는 유혹이 있다.더군다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함께 어우러지는 두물머리의 강심 위에서 황금빛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고 있는 풍광은 차라리 눈이 시리다. 강길의 에도는 굽이굽이 경관 좋은 자리마다 빼곡히 들어앉은 모텔이며 국적불명의 괴이한 건물들,예술보다는 상술을 앞세운 몇몇 갤러리며 화려한 라이브 카페들이 눈엣가시처럼 다가올 터이지만,오래 눈에 담지는 말자.그것은 그것대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어서 생겨나지 않았으랴. ●두물머리 강심은 한폭의 동양화 서울을 떠나 구리를 거쳐 이제 막 팔당댐 부근의 강길을 달려가고 있을 그대에게,나는 맨 먼저 양수리 검문소에서 대성리 쪽으로 빠지는 45번 국도변에서 수종사(水鍾寺)라는 작은 입간판을 찾아보기를 권한다.너무 작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자칫 흘려넘기기 쉽다.어렵게 찾은 수종사의 입간판을 따라 이제 산길을 올라가노라면,채 포장도 하지 않은 길바닥의 흙들이 지난여름의 폭우에 쓸려나가 움푹질푹 요철을 이루고 있을 터이다. 좀 더 수종사의 숨겨진 매혹에 빠질 예정이라면,그쯤에서 한 편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가도 좋다.그렇게 걷다 보면 이마에는 땀방울이 돋고 시원한 샘물 한 모금이 간절해질 무렵에 기다렸다는 듯이 절 입구에 있는 약수터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약수터의 샘물마저도 무심코 지나치기를 권한다.정히 갈증을 못 견디겠다면 딱 한 모금만 마시기 바란다.그리하여 마침내 절의 경내에 들어서면 그대는 어쩔 수 없이 대웅전이며 산신각 같은 건물보다도 먼저 무료다실이라는 쪽지가 붙은 삼정헌(三鼎軒)에 눈길이 멈출 것이다. 일말의 주저를 무릅쓰고 삼정헌의 문턱을 넘어서면 무엇보다 통유리로 확 트인 전면에 한 폭의 빼어난 수묵화처럼 펼쳐진 두물머리의 전경을 발견할 것이다.바로 두물머리의 전경을 배경으로 친구와 함께 낮은 다탁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라.아름다운 풍광에 먼저 넋이라도 나간 듯 그대의 입부터 벌어지리라. ●잊을 수 없는 수종사의 차와 산채비빔밥 바로 그렇듯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빼앗긴 것은 비단 그대뿐만이 아니다.수종사가 세워진 아득히 먼 세월부터 일찍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인묵객들이 바로 그대가 앉아 있는 삼정헌 어름에 터를 잡고서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고 또한 붓을 들어 화선지에 옮겼으리라.만일 그대가 알려고만 든다면 삼정헌에 비치된 책자 중에서 쉽게 시인들의 노래를 찾을 수 있으리라.서거정(徐居正),김종직(金宗直),홍언필(洪彦弼),이이(李珥),이덕형(李德馨),정약용(丁若鏞)….이 중에서도 그대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시 한편만은 꼭 빼놓지 말고 읊어보기를. 수종사 절집은 아스라한데 이내 속에서도 기와 홈통을 알아보겠네 호남땅 4백여 많은 사찰도 이 누각보다 크다 못 하리 그대가 차를 먹는 예법에 처음일지라도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뭔가 망설이는 눈치라면 어느새 젊고 예쁜 보살님이 나타나 친절하게 차를 울궈내어 음미하기까지 다법의 과정을 일러줄 것이다. 만일 일요일의 낮공양 시간에 수종사에 다다랐다면 무료로 마신 차에 곁들여 역시 무료인 맛깔스러운 산채비빔밥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터이다. 무료다실이나 무료 산채비빔밥은 어쩌면 절을 홍보하기 위한 고등수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절을 홍보한다고 해도 경내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곳에 터를 잡아 무료다실을 열거나 공양까지 보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적어도 수종사 스님들의 어떤 선의만은 비틀어보지 말자. 기왕에 가을맞이를 나섰으니까 수종사의 차맛에 곁들여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나서자.대성리 쪽의 강변을 거슬러 오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연세중학교 정문 앞에서 ‘죽여주는 동치미국수’(031-591-4632)라는 조금은 무례한 간판을 만나게 될 터이다.간판처럼 죽여줄 정도는 아니지만 4000원짜리 동치미국수며 5000원짜리 김치만두는 확실히 맛이 있다.깔끔한 맛의 김치만두를 먼저 먹고 살얼음이 둥둥 떠있는 동치미국수를 먹는 것이 순서이다.이 ‘죽여주는 동치미국수’는 한 곳만이 아니라 강변도로 곳곳에 있어서 서로 원조임을 내세우는데,맛은 모두 비슷하니까 어디를 찾아도 무방할 듯하다. ●맛은 비슷비슷… 어느집 찾아도 무방 만일 두부전문집을 찾을 요량이라면 그대는 45번 국도의 팔당 방향의 옛 국도를 잠깐 되돌아가서 ‘기와집순두부’(031-576-9009)라는 간판을 발견하기 바란다.옥호 그대로 허름한 옛 기와집인데도 불구하고 무슨 저잣거리처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얼마쯤은 황당하기까지 한 광경을 만날 터이다.순두부백반(5000원)이며 콩비지백반(6000원),생두부(6000원),두부김치(8000원) 이외에도 두부제육볶음,파전,녹두전 등 메뉴가 다양한데,어쩌면 이 다양한 메뉴가 이 집의 흠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가 보다 순수한 두부전문집을 찾을 요량이라면 양수리 읍내에서 서종으로 방향을 틀어 문호리 강변을 지나는 옛날 국도변에 있는 ‘시골손두부전문’이라는 입간판이 걸린 평범한 시골집을 찾기 바란다.‘서종가든’ (031-773-6035)이라는 옥호인데,어디에도 가든은 보이지 않지만,주인 할머니의 손두부 빚는 솜씨만은 오래전부터 호가 난 집이다.손두부전골이며 두부찜,손두부,콩탕이라고 부르는 비지탕이 각각 1인분에 6000원씩인데,그중에서 푸짐한 버섯에다가 돼지고기를 썰어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손두부전골을 빠뜨리지 말자. 서울과 강원도 내륙을 잇는 6번 국도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양수콩나물국밥(031-771-5995)이 양수리에서 양평으로 가는 어름의 국수역 앞 국도변에 있다.콩나물국밥과 황태해장국이 4000원씩인데,콩나물에 북어국물을 붓고 배추김치를 썰어넣어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콩나물국밥이 역시 시원하다. 투명한 햇살이 내려쌓이는 가을들판을 바라보며 콩나물국밥에 1000원짜리 모주 한 사발을 곁들인다면 몸과 마음을 함께 힘들게 하던 그대의 허기도 어느 정도 가실지 모른다.어차피 모주 한 사발로 허기를 달래기에 부족하다면 5000원짜리 새우부추전이나 황태구이를 안주로 역시 5000원하는 동동주 한 됫박에 아예 허기를 채워도 좋다.가을들판에 햇살이 저리도 투명한데 누가 그대의 낮술을 탓하랴. 6번 국도에서 벗어나 옥천으로 접어들어 중미산으로 가는 길목에 도토리국수집(031-771-7562)이 있다.도토리 요리 전문답게 도토리묵탕국(5000원),도토리비빔밥(5000원),도토리냉면(5000원),도토리전병(7000원),도토리전(6000원)으로 도토리 일색인데,그중에서도 고기를 삶아낸 육수에 도토리묵과 김치를 채 썰어넣고 밥을 말아먹는 도토리묵탕국이 일품이다.묵탕국 한 그릇만으로도 충분히 넘치는 양이지만 어쩐지 부족하게 여겨진다면 도토리전이나 도토리전병을 곁들이자. ●용문산 은행나무축제는 ‘덤’ 가을 양평에서 용문산 ‘은행나무축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용문사 앞마당에 있는 수령 1200년의 은행나무를 기리는 축제인데,‘세계사물놀이겨루기한마당’,산사음악회,영산제,용문산신령제 등이 열린다.용문산의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이제 막 가을의 서장을 여는 듯한 은행나무축제까지 만날 수 있다면,예상하지 못했던 가외의 즐거움이 아니랴. 돌아오는 길에 국도변에서 ‘무명화가의 찰옥수수’라는 붓으로 쓴 입간판을 만날지도 모른다.그대는 결코 무심하게 지나치지 말고,아니 지나쳤다가도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되돌아가서 어쩐지 어수룩해 보이는 무명화가에게서 찰옥수수 한 봉지를 사기 바란다. 혹시 누가 알랴,찰옥수수를 주고받는 손길 사이로 찌르르,알 수 없는 어떤 전류가 흘러 그대가 벼락처럼 무언가를 깨닫게 될지를.그리하여 오랫동안 그대를 지치고 허기지게 하던 삶의 화두가 눈앞에서 번쩍,풀려나게 될지를.그럴지도 모른다.깨달음이란 결코 무슨 커다랗고 엄청난 대상에서 오지 않는 법이다. ■ 일부 음식점 ‘미끼상품’ 조심을 양평을 도는 여행길에서 한 가지만 주의하자.주로 정체불명의 괴이쩍고 웅장한 외양을 하고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혹은 갤러리 앞에 내걸린 입간판들에 내걸린 소위 ‘미끼상품’에 대해서다.무슨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점에만 있는 줄 알았던 ‘미끼상품’이 4000,5000원짜리 가격을 내세운 채 양평 일대의 아름다운 강길 여기저기에서도 나부끼고 있다. ‘미끼상품’에 홀려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문을 밀치고 들어선다면,기다렸다는 듯이 정도 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가죽 메뉴판이 그대 앞에 놓일 것이다.그런데,이것 봐라. 그대가 입간판에서 보고 들어온 미끼상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대신에 3만∼4만원짜리 비싼 메뉴들만 즐비하게 그대의 눈을 어지럽힐 것이다.미끼상품의 정체를 깨달았다면 그대는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오기 바란다.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한 채 3만,4만원짜리 비싼 메뉴를 시켜도 나중에는 뒷맛이 쓸 것이고,또한 4000∼5000원짜리 미끼메뉴를 우격다짐해도 나중에는 더더욱 뒷맛이 쓸 것이다.
  • [문화단신]

    ●道典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한국의 민족종교 가운데 처음으로 증산도가 경전인 ‘도전(道典)’을 새달 열리는 제56회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13종 200여권의 다른 증산도 관련서와 함께 출품한다. 증산도는 세계의 명상·종교 도서들이 전시되는 종교관에 10평 규모의 부스를 예약해 놓았다.증산도는 지난 10여년간의 번역작업 끝에 최근 ‘도전’을 영어,일본어,중국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6개 국어로 번역.출간했다. ●차베스 총장신부 17일 내한 세계천주교살레시오수도회를 총괄하는 파스칼 차베스(57) 총장신부가 살레시오회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아 오는 17일 방한한다.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는 1954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헨리 대주교가 일본에서 청소년 교육활동을 펴던 살레시오회를 초청하면서 출발해 1999년 한국이 정식 관구로 승격됐다. 현재 전국 각지에 청소년직업학교와 청소년수련시설,‘나눔의 집’등 복지시설,정규 중고등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보살계 수계 산림대법회 봉행 조계사는 17∼19일 대웅전에서 보살계 수계 산림대법회를 봉행한다.수계자들은 3일간 법사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회향하는 19일에는 계를 받을 때 향이나 심지로 팔을 태우는 연비와 함께 10중계(重戒)와 48경계(輕戒)를 받게 된다.보살계는 부처님 앞에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삶을 살겠다는 발원을 올리는 행사이다.(02)732-2115. ●올림픽 기독교인선수 초청 예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11일 오전 7시 CCMM빌딩 우봉홀에서 아테네올림픽선수단 기독인 선수들을 초청,감사예배를 개최한다.한기총 공동회장 최성규 목사의 사회로 열리는 예배에서는 한기총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가 환영사,한기총 고문 조용기 목사가 설교를 각각 한다.
  • 금강산 신계사 복원 11월 대웅전 낙성식

    금강산 신계사 복원 11월 대웅전 낙성식

    조계종이 올해부터 4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중인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중 1단계인 대웅전 복원이 11월 중순쯤 마무리될 전망이다. 2일 조계종에 따르면 16일부터 24일까지 대웅전 1차 조립공사에 들어가 10월1일부터 2차 조립공사를 진행하며 10월12일쯤 복원공사를 총괄 진행할 현지 상주 스님을 파견할 계획이다. 대웅전 낙성식은 11월18일부터 20일 사이 법장 총무원장을 비롯한 스님과 신도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한편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비구니회 대표단이 현장을 방문해 공사의 원만한 진행을 비는 기원법회를 열 예정이다. 대웅전 복원 공사는 초석다짐부터 시작해 기둥조립 대웅전 지붕 밑 나무로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부분인 포,지붕,처마,기와,단청의 순서로 진행된다.단청은 소나무의 송진이 빠지는 1년 후에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대목과 석수,와공,미장,소목 등 17명이 공사에 매달려 있으며 모든 공사는 문화재수리기능공 제1521호인 대목수 최현규씨가 총괄하고 있다.최씨는 여주 신륵사 심검당 중창 공사와 아산 고성사 대웅전 신축을 담당한 베테랑으로,현재 분당 열반사 무량수전 공사를 맡고 있으며 지명입찰을 통해 신계사 대목수로 선정됐다. 대웅전 공사에 이어 올해 말까지는 삼층석탑이 복원되며 내년에는 만세루가 복원돼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한편 조계종은 지난 3일부터 25일까지 신계사에 대한 2차 발굴조사를 벌여 대웅전 남쪽에서 일제강점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방형(方形)의 부석(敷石)시설을 확인했다.이와 함께 조선 말기에 건립된 만세루는 일제강점기의 만세루에서 북쪽으로 1.2m,동쪽으로 3m가량 떨어진 곳에 세워졌으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만세루는 정면 5칸,측면 3칸의 15칸 건물인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신계사는 신라 법흥왕 5년(519) 보운 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후 여러 차례 중수·중건됐으며 광복 이후 화재로 소실되어,현재는 석탑과 1929년에 세워진 만세루의 돌기둥(石柱) 몇 개만 남아 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안성 가서 포도 먹고 가을도 따고

    안성 가서 포도 먹고 가을도 따고

    가을여행은 ‘안성맞춤’ 안성이오∼ 서늘한 바람에 활짝 열어놓던 창문을 슬며시 닫게 된다. 가을의 문턱에서 생각나는 과일은 ‘포도’다.포도야 벌써부터 슈퍼마켓에 나와 있지만,비닐하우스에서 자란 것이 아니고 거침없는 햇볕과 무더위를 이겨내면서 농부들의 땀을 먹고 자란 싱싱한 포도라야 제맛이 난다. 청포도,거봉,홍서부 등이 한창이고 캠벨,머스캣,델라웨어 슈트벤트 등도 맞볼 수 있다.이름부터 이색적인 포도의 종류들은 수확기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국내 최대의 포도타운으로 알려진 경기도 안성 일대.포도나무 넝쿨이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싱싱한 포도를 먹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초가을의 발길을 느껴보자. 포도밭에선 포도만 먹는다는 생각은 낡아도 한참 낡았다. 아이들을 위해 잠자리도 잡고 포도도 직접 따며 자연학습도 하자. 또 가족들이 가지고 온 도시락과 고기도 구워 먹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자연농원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안성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찰 청룡사,된장 박사가 운영하는 서일농원,남사당의 신명나는 공연,동양 최대 규모의 고급 찜질방을 표방한 ‘건강나라’등이 있다.싱싱한 포도도 먹고 구석구석 찾아본다면 가족나들이로 ‘안성맞춤’이다. 고속도로 경부선 안성·평택IC로 나와 안성방면으로 달리자 국도 주변에는 무슨 무슨 포도밭이라며 현수막과 깃발을 휘날리며 곳곳에서 포도를 팔고 있다.‘이제 포도의 고장으로 들어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오하농장 안성시내에서 서운면 방향으로 향하다 안성 제3산업단지 옆으로 난 길로 가면 된다.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오하농장은 포도로 유명한 안성에서도 꽤 이름난 곳.주인인 이종상(68)씨가 40여년 전부터 이곳에서 포도농사를 지었다고 한다.1만 2000여평 부지에 포도밭만 1만평이나 된다.식당 수영장 잔디밭 등을 갖추고 있어 가족나들이로 좋다. 제1회 안성포도축제에서 1등상을 받았고,86아시안게임,88올림픽에 포도를 납품했다.포도의 종류도 다양해서 보통 3∼4종류 이상의 포도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2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식당에서 맛보는 보리밥은 별미.각종 나물을 얹은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 맛은 꿀맛이다.또 함께 나오는 구수한 된장찌개도 개운하다.어른 얼굴보다 더 큰 부추전,푸짐한 도토리묵 등을 맛볼 수 있다.각각 5000원씩. 식당 뒤편의 수영장에는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좋다.60여평의 수영장에는 물을 어른 무릎 정도 받아 놓아 첨벙거리며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연인이나 부부는 포도밭을 걸어보고,그늘막이 있는 평상에 누워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아무런 준비 없이 떠나기에 알맞은 곳이다. 포도는 4㎏에 3만원선.9월 초까지 운영하며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031)671-4500. ●삼정 노부부의 인심을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처럼 느낄 수 있는 곳이다.20여년 전 송태연(65)씨가 몸이 좋지 않아 이곳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나무를 괴롭히는 일을 빼고는 모든 것이 자유스럽다.나무 그늘에서 바비큐그릴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어도 되고 잔디밭에서 축구,족구를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아이들이 가면 주인 송씨가 먼저 손자들이 가지고 놀던 미끄럼틀 장난감자동차 등을 가지고 와서 주기도 한다.“심심하면 이 장난감 가지고 놀아라.” 심지어는 부부가 심심풀이로 치려고 포도밭 한구석에 만들어 놓은 2타석짜리 인도어골프장도 손님들에게 내주었다.또 포도밭 밑에 700∼800평 규모의 메기양식장을 하던 곳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고기를 퍼낸다고 퍼냈지만 남아있던 고기들이 새끼를 쳐 붕어와 메기 등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2만 5000평 중에 5000여평만 포도농사를 짓는다.이곳에는 점심을 싸가지고 가야 한다.거다란 평상이 8개가 있고 드럼통을 자른 대형 바비큐통이 3개,개인용 바비큐그릴이 10개나 있다.포도도 먹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또 포도밭 주변에 꽃을 심어 나비와 잠자리도 많다. 포도는 보통 4㎏에 1만 5000원이다.하지만 포도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등 특이한 품종은 3만원선.10월 초까지 포도가 나오며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한다.(031)672-1364. ●가나안 농장 안성IC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다.4500여평의 포도밭에 2500여그루가 심어져 있다. 여기도 포도밭에 12개의 커다란 평상을 만들어 놓았다.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를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음식을 가지고 가서 먹는 것은 괜찮다.하지만 고기를 굽는 것은 안 된다. 잔디밭 등이 없어 아이들이 놀기는 좀 힘들다.포도는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캠벨은 4㎏ 기준으로 1만 5000원,거봉이나 청포도는 2만원선.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031)653-2684. ■이곳도 가보세요 안성 주변에는 들러 볼만한 곳이 많다.청룡사(031-672-9103)는 오하농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절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고목이 절 한편에 서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국보 제824호인 대웅전,사적비,3층 석탑,청동종 등의 볼거리가 아기자기함을 더해 준다. 중부고속도 일죽IC로 가다보면 있는 서일농원(080-673-3171)은 수백 개의 된장항아리가 있는 농원으로 유명하다.서분례씨가 천연 암반수와 우리 콩으로 만드는 된장 맛이 그만이다.더덕,달래,각종 장아찌가 밑반찬으로 나오는 된장백반과 청국장백반이 7000원이다.물론 된장을 사올 수도 있다. 널찍한 방안에서 초록으로 우거진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먹는 식사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다. 안성은 남사당의 본고장이다.특히 ‘바우덕이’라는 여자 꼭두쇠가 있었는데,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줄타기 재주가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보개면 복평리에 있는 남사당전수관(031-675-3925)에 가면 안성 남사당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안성시립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은 매주 토요일 저녁 전수관 앞마당에서 남사당놀이 토요 상설공연을 열고 있다.사물놀이부터 시작해 상모놀이,덜미(인형극),살판(땅재주놀이),어름(줄타기),무동놀이 등을 보여준다.관람료는 무료.전수관에선 남사당놀이 체험 및 강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말이 찜질방이지 건강나라((031-674-8255)는 미니 리조트라 해도 손색이 없다.1만 5000여평의 부지에 독특한 외양으로 지어진 건강나라엔 석굴암을 본떠 만든 12m 높이의 전통 한증막,대형 사우나,노천탕이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다. 특히 너와집처럼 나무기와가 얹힌 지붕과 붉은색 서양식 기와가 덮인 지붕이 어우러져 독특하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찜질방 2층에선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매주 토요일엔 통기타 및 색소폰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생맥주 파티가 펼쳐지고,뷔페식 봄나물 축제도 열린다.찜질방만 이용할 경우 6000원,사우나 시설을 함께 이용하면 1만원.
  • [데스크 시각] 강화도와 행담도/서동철 사회부 차장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건너다 보면 행담도와 만나게 된다.몇년 전까지만 해도 50여명의 주민이 바지락을 잡아 살아가던 작은 섬이다.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에 속하는 행담도는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아산만을 건너뛰는 징검다리가 됐다.이 섬이 없었더라면 길이 7310m의 서해대교를 세우는 작업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아산만이 바라다보이는 바닷가에는 휴게소가 지어졌다.아마도 가장 호쾌한 풍광을 가진 고속도로 휴게소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휴게소는 여름휴가 기간동안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볐지만,이 섬이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868년 5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몰고온 1000t급 차이나호는 바로 이 행담도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소총으로 무장한 일행은 작은 배로 갈아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로 상륙했다.이후 덕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시신을 파내려 무덤을 파헤쳤으나,실패하고 황망히 도주했다는 얘기는 국사시간에 배운 바와 같다. 오페르트 사건을 떠올린 것은 프랑스인 페롱 신부가 여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병인박해(1866년) 당시 동료 프랑스 신부들이 순교하는 과정에서 간신히 중국으로 탈출한 페롱 신부는 그만큼 조선 전교(傳敎)의 뜻이 남달랐을 것이다.일행이 시신을 ‘인질’로 대원군과 통상 및 선교를 흥정하고자 한 것도 조선인들이 조상을 극진히 모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선 전교의 실마리를 어떻게든 찾겠다는 뜻은 평가받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남연군의 묘를 파헤친 사건은 결과적으로 천주교 탄압만 심화시켰다. 강화도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또 다른 교훈을 주는 섬이다.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언덕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지금 사제관의 한옥 지붕을 다시 이느라 분주하다. 강화성당은 영국인 트롤로프 신부가 구상하여 1900년 완성시켰다.정문에 해당하는 외삼문에 들어서면 성당인지,절인지 잠시 혼란을 겪게 된다.절을 호위하는 사천왕문의 모습을 한 내삼문이 방문객의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내삼문에는 절에서 봤음직한 큼직한 한국식 종도 하나 매달려 있다. 2층 한옥으로 지어진 본당도 서양의 전통적 성당건축인 바실리카 양식을 한국식으로 변형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절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다만 ‘대웅전’이 아니라 ‘천주성전’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기둥글(柱聯)에도 ‘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같은 천주교 성구가 씌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강화성당에서는 오페르트 일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한 애정이 읽혀진다.조선인 대부분이 익숙했을 불교사찰의 분위기는 기독교라는 새로운 서양 문화에 대한 이질감을 크게 줄여주었을 것이다.‘현지인’에 대한 배려가 선교 효율의 극대화를 노린 성공회의 노하우라고 해도 가치는 퇴색하지 않는다.나의 신념을 설득하기에 앞서 상대의 신념을 먼저 끌어안는 것은 종교의 범주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23일부터 서울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실행위원회가 열리고 있다.케냐 출신의 사무엘 코비아 WCC총무는 “한국은 가난한 나라에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과거 서구의 일부 부국(富國)이 저지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중동이든,아프리카든 한국 기독교의 해외 선교가 오페르트와 페롱 방식이 아니라 강화성당을 지은 트롤로프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충고일 것이다. 서동철 사회부 차장 dcsuh@seoul.co.kr
  • 불교계 조·태분쟁 재연되나

    ‘불교계의 조·태분쟁 재연되나?’ 최근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에 있는 사찰 봉서사에서 조계종과 태고종 승려들이 사찰 점유를 둘러싸고 충돌해 조(조계종)·태(태고종)분쟁이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봉서사는 조계종과 태고종 양 종단의 승려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두 살림을 해오던 기형적인 사찰이다. 태고종측은 지난 14일 밤 10시쯤 조계종 스님 30여명과 민간인 20여명이 봉서사에 무단 침입하여 대웅전 등 건물 일부를 파괴한 채 무단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계종측은 “봉서사는 엄연히 조계종단이 임명한 광복 스님이 주지로 있는 사찰로,태고종측 스님들이 지난 13일 먼저 무단침입해 사찰을 접수(점거)한 것을 광복 스님을 비롯한 신도들이 밀어내고 원상회복한 것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계에서는 소유권과 사찰 운영을 각각 태고종과 조계종이 나눠 행사하고 있어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이번 분규가 다른 사찰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봉서사의 경우 본 사찰은 현 주지 광복 스님을 중심으로 한 조계종이 운영하고 있으며,봉서사와 길을 마주하고 있는 태고종 영산작법 교육관에는 태고종측 승려들이 거주하는 가운데 양측 사이에 사찰 소유·운영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현재 봉서사처럼 소유권과 운영권이 조계종과 태고종으로 나뉘어 있는 사찰은 전국에 걸쳐 60여곳.지난 1962년 현재의 통합종단(조계종)이 출범하면서 분종한 태고종 스님들이 기존에 점유하고 있던 사찰을 종전대로 운영해 왔지만 그 소유권은 조계종에 있는 모순 때문에 문제를 빚고 있는 사찰들이다.그 대표적인 사찰이 전남 순천 선암사와 서울 신촌의 봉원사.선암사와 봉원사는 모두 법원에서 조계종의 소유권을 인정받았으나 현재 태고종이 운영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봉서사와 비슷한 성격의 사찰들에서는 언제든지 분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잠재한다.”면서 “그러나 양 종단이 전향적인 입장을 갖고 한걸음씩 양보해 통합 재단이사회 등을 구성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美 캘리포니아 태고사에 ‘평화의 종’ 세우는 무량 스님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 한국식 사찰 ‘태고사(太古寺·영문명 Mountain Spirit Center)’를 10년째 건립중인 미국인 무량(44·미국명 에릭 버럴) 스님이 한국을 찾았다.이전에도 10여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이번 방문은 경기도 용인에서 주조 중인 ‘평화의 종’ 타종식을 가진 뒤 이 종을 태고사 착공 10주년인 오는 9월19일에 맞춰 미국으로 운반할 계획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스님이 우리의 에밀레종을 본뜬 범종을 제작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미국 9·11 테러 직후.“테러 후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너무 속이 상해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죠.하지만 내가 시위에 참가해 목소리를 높인다면 결국은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종을 만들기로 결심했지요.”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로 설명하기보다 ‘평화의 종’을 통해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종소리를 들을 땐 모든 생각이 소리에만 모이게 마련인데,그 순간 종소리를 통해 평화가 실천되는 거지요.” 평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라는 스님은 “인류는 항상 싸워 왔고,전쟁 때면 저마다 다른 이유를 내세웠지만 결국은 석유 등 남의 물건을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150㎞ 떨어진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자리한 태고사도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대웅전과 요사채는 완성됐고,종각은 공사 중이라고 했다. “일요일마다 법회를 여는데 보통 20명,많으면 50명 정도가 찾아옵니다.아무것도 없는 산에서 돌 나르고 땅 파던 일이 힘들긴 했지만,그만큼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산 오르記] 이천 원적산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산(圓寂山·563.5m) 오르는 길.길목에 자리잡은 영원사로 드는 길이 고요하다.어제까지 내린 비로 냇물 흐르는 소리만이 골짜기를 깨운다.휘적휘적 오른 영원사(靈源寺) 앞마당의 축구장 크기 만한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물길이 되어버린 돌계단을 올라 쳐다보니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고려 문종왕 12년,해거국사가 영원사를 중창한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진다.이천시 시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이 나무의 둘레는 5m,수령은 800년이 넘었다 한다. 물통에 물을 담고,인적 없는 절간을 떠나,고요를 떨쳐버리듯 산길로 들었다.찾는 이 많지 않은 듯한 산에 길만은 뚜렷하다.굴참나무가 울창한 길을 거슬러 힘들이지 않고 능선에 올랐다.나무 의자 두 개가 산객을 맞이한다.의자에 앉아 맞는 골바람이 시원하다.아무리 찌는 더위에도 산에만 들면 시원한 것은 산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피톤치드라는 것이 있어,삼림욕장에서는 옷을 벗고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던가. 굴참나무 숲을 지나 나무 의자 두 개가 엎어져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서북방향으로 바라본,원적산 정상에서 천덕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방화선을 쳐 놓았는지 더벅머리에 이발기계 대 놓은 꼴을 하고 있다.잡목숲 사이로 길은 잘 나 있다.숲이 워낙 우거져 길 아닌 곳은 들어갈 엄두도 못 낼 것 같다. 또다시 의자 두 개가 있는 봉우리에 섰다.쉬는 곳마다 의자는 두 개다.이곳에서 조망이 제일 좋다.남쪽으로 백사면의 넓은 들판이 바라보인다.지척에 있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 초원 가운데로 실선을 그었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키 큰 나무는 없고 초원을 이루고 있다.산불이 나서 타버렸다는 정상 부근에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 있다.‘이 지역은 공용화기 사격장으로 불발탄이 산재하여….’ 출입금지 경고판까지 세워져 있으니 굳이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이천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원적산의 천덕봉(天德峰·635m)은 ‘하늘의 덕’은커녕 ‘천덕꾸러기’가 되었단 말인가.산불이 난 곳에 또 사격을 해댄다니.그러고 보니 조림도 사격장 반대쪽만 되어 있다. 수십만평이 됨직한 억새 밭의 가을 풍경이 볼 만할 것 같다.앉아 쉬면서 보니 조망이 제법 좋다.신대리의 백송(白松)이 보이는 듯도 하고 도립리 반룡송(蟠龍松)이 아른거리는 것도 같다.산아래 커다란 기와집 지붕이 보이는데 저곳은 암자인가? 까만 나무판대기에 ‘낙수대’라 쓰인 안내판을 따라 하산길로 들었다.남쪽으로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던 산길이 갈지(之) 자 댓 번을 그리더니 골짜기 물을 만났다.나란히 달리던 산길이 와폭을 피해 산 중턱을 휘돌고,물은 그대로 와폭으로 곤두박질치더니 그예 낙수대 폭포에서 소로 쑤셔 박혔다.그리고 길은 다시 물을 만나지 못했다.터덜터덜 걷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두메산골 보리밥집’이 붙잡았다. 송말리에서 영원사를 거쳐 원적산을 오른 후,낙수대폭포로 내려오는 코스는 세 시간 정도 걸린다. ●볼거리·먹을거리 영원사(靈源寺)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대웅전과 범종각이 볼 만하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해법(海法)선사가 창건한 1300년 된 사찰이다.지금의 건축물은 조선 순조 때 영안부원군이었던 김조순(金祖純)이 건립했다고 한다. 이천 백송(白松)은 신대리 이천농협주유소 건너편 1km 지점에 있다.전국에 10여 그루 있다는 희귀종으로 천연기념물 253호이고 높이는 16m.약 210년 전,참판을 지낸 민달용의 묘소를 기념하여 심었다고 한다. 반룡송(蟠龍松)은 도립리에 있다.백사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영원사로 들어가는 길옆에 있다.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용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4.2m,둘레 1.8m이고 천연기념물381호. 도립서당(道立書堂)은 도립리에 있는데 남원에서 온 삼형제 훈장이 운영한다.전통 한옥으로 잘 지은 사설서당이다. 한재홍·재근 훈장은 전통한학을 수학했고 막내인 재훈 훈장은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 중이다.031-634-3357. 도립리의 두메산골 손두부집의 두부 요리가 맛있다.콩비지정식,순두부정식 6000원.꽁당보리밥 5000원.031-632-4261. ●가는 길 수도권에서는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을 나와,이천시청 사거리에서 70번 도로로 백사면사무소 소재지까지 간 후,좌회전하여 송말리까지 가면 된다.영원사 안내판을 따르면 된다.낙수대폭포로 하산할 경우는 도립리까지 20여분 걸어야 한다.이천에서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산악문학인 안재홍
  • [산 오르記] 이천 원적산

    [산 오르記] 이천 원적산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산(圓寂山·563.5m) 오르는 길.길목에 자리잡은 영원사로 드는 길이 고요하다.어제까지 내린 비로 냇물 흐르는 소리만이 골짜기를 깨운다.휘적휘적 오른 영원사(靈源寺) 앞마당의 축구장 크기 만한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물길이 되어버린 돌계단을 올라 쳐다보니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고려 문종왕 12년,해거국사가 영원사를 중창한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진다.이천시 시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이 나무의 둘레는 5m,수령은 800년이 넘었다 한다. 물통에 물을 담고,인적 없는 절간을 떠나,고요를 떨쳐버리듯 산길로 들었다.찾는 이 많지 않은 듯한 산에 길만은 뚜렷하다.굴참나무가 울창한 길을 거슬러 힘들이지 않고 능선에 올랐다.나무 의자 두 개가 산객을 맞이한다.의자에 앉아 맞는 골바람이 시원하다.아무리 찌는 더위에도 산에만 들면 시원한 것은 산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피톤치드라는 것이 있어,삼림욕장에서는 옷을 벗고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던가. 굴참나무 숲을 지나 나무 의자 두 개가 엎어져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서북방향으로 바라본,원적산 정상에서 천덕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방화선을 쳐 놓았는지 더벅머리에 이발기계 대 놓은 꼴을 하고 있다.잡목숲 사이로 길은 잘 나 있다.숲이 워낙 우거져 길 아닌 곳은 들어갈 엄두도 못 낼 것 같다. 또다시 의자 두 개가 있는 봉우리에 섰다.쉬는 곳마다 의자는 두 개다.이곳에서 조망이 제일 좋다.남쪽으로 백사면의 넓은 들판이 바라보인다.지척에 있는 정상으로 가는 길이 초원 가운데로 실선을 그었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키 큰 나무는 없고 초원을 이루고 있다.산불이 나서 타버렸다는 정상 부근에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 있다.‘이 지역은 공용화기 사격장으로 불발탄이 산재하여….’ 출입금지 경고판까지 세워져 있으니 굳이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이천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원적산의 천덕봉(天德峰·635m)은 ‘하늘의 덕’은커녕 ‘천덕꾸러기’가 되었단 말인가.산불이 난 곳에 또 사격을 해댄다니.그러고 보니 조림도 사격장 반대쪽만 되어 있다. 수십만평이 됨직한 억새 밭의 가을 풍경이 볼 만할 것 같다.앉아 쉬면서 보니 조망이 제법 좋다.신대리의 백송(白松)이 보이는 듯도 하고 도립리 반룡송(蟠龍松)이 아른거리는 것도 같다.산아래 커다란 기와집 지붕이 보이는데 저곳은 암자인가? 까만 나무판대기에 ‘낙수대’라 쓰인 안내판을 따라 하산길로 들었다.남쪽으로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던 산길이 갈지(之) 자 댓 번을 그리더니 골짜기 물을 만났다.나란히 달리던 산길이 와폭을 피해 산 중턱을 휘돌고,물은 그대로 와폭으로 곤두박질치더니 그예 낙수대 폭포에서 소로 쑤셔 박혔다.그리고 길은 다시 물을 만나지 못했다.터덜터덜 걷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두메산골 보리밥집’이 붙잡았다. 송말리에서 영원사를 거쳐 원적산을 오른 후,낙수대폭포로 내려오는 코스는 세 시간 정도 걸린다. ●볼거리·먹을거리 영원사(靈源寺)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대웅전과 범종각이 볼 만하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해법(海法)선사가 창건한 1300년 된 사찰이다.지금의 건축물은 조선 순조 때 영안부원군이었던 김조순(金祖純)이 건립했다고 한다. 이천 백송(白松)은 신대리 이천농협주유소 건너편 1km 지점에 있다.전국에 10여 그루 있다는 희귀종으로 천연기념물 253호이고 높이는 16m.약 210년 전,참판을 지낸 민달용의 묘소를 기념하여 심었다고 한다. 반룡송(蟠龍松)은 도립리에 있다.백사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영원사로 들어가는 길옆에 있다.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용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4.2m,둘레 1.8m이고 천연기념물381호. 도립서당(道立書堂)은 도립리에 있는데 남원에서 온 삼형제 훈장이 운영한다.전통 한옥으로 잘 지은 사설서당이다. 한재홍·재근 훈장은 전통한학을 수학했고 막내인 재훈 훈장은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 중이다.031-634-3357. 도립리의 두메산골 손두부집의 두부 요리가 맛있다.콩비지정식,순두부정식 6000원.꽁당보리밥 5000원.031-632-4261. ●가는 길 수도권에서는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을 나와,이천시청 사거리에서 70번 도로로 백사면사무소 소재지까지 간 후,좌회전하여 송말리까지 가면 된다.영원사 안내판을 따르면 된다.낙수대폭포로 하산할 경우는 도립리까지 20여분 걸어야 한다.이천에서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산악문학인 안재홍
  • [나의 디지털스토리] 업그레이드 테크닉

    한 단계 더 나아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알아보자. 보통 낮에는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데 경우에 따라 터뜨리면 더 좋다.얼굴에 그림자가 많이 생기는 경우,역광으로 얼굴이 검게 나오는 경우,그늘에 있는 인물을 밝은 배경에 찍는 경우에는 플래시 모드를 조정해 강제로 터뜨리는 편이 좋다.단 플래시를 터뜨릴 때는 피사체가 5m이내에 있어야 한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줌에서 망원쪽으로 찍는 편이 좋다.화면에서 피사체의 크기를 동일한 비율로 찍더라도 멀리서 망원쪽으로 찍는 편이 배경이 흐릿하게 나와 분위기 있는 사진이 된다.반대로 대웅전이나 아름다운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광각(넓게 찍히는)쪽을 사용하자.건물이 전체가 나오게 하고 인물을 카메라 앞쪽으로 이동시켜 화면의 비율을 정하면 된다. 야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인물을 찍을때는 플래시모드를 ‘별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사용하면 멋진 사진을 얻는다.또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할 때도 마찬가지다.이때는 사진이 흔들릴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러야 한다. 인물사진을 찍을 때 연속촬영 모드로 놓고 여러 장을 찍으면 좋다. 그래야 좋은 표정을 건질 수 있다.‘웃어 김∼치’라고 말을 해도 표정은 어색하다.연속적으로 여러 장을 여러 번 찍어야 좋은 표정이 나온다.˝
  • [종교·학술 단신]

    ●‘돈키호테’ 발간 400돌 기념 학술대회 ‘돈키호테(Don Quixote)’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세르반테스 국제학술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한국스페인어문학회(회장 박철 한국외대 교수)는 오는 11월 17일부터 20일까지 서울대에서 제11차 세계세르반테스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조계사 ‘종교화합이 희망’ 법회 조계사 청년회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인 변진흥 목사를 초청,17일오후 4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종교화합이 희망이다’라는 주제로 희망법회를 봉행한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 개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총회장 김옥남)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6층 건물 2·3층에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을 마련,오는 22일부터 본격적인 진료를 실시한다.(02)863-6622 ˝
  • [나의 디지털스토리] 업그레이드 테크닉

    한 단계 더 나아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알아보자. 보통 낮에는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데 경우에 따라 터뜨리면 더 좋다.얼굴에 그림자가 많이 생기는 경우,역광으로 얼굴이 검게 나오는 경우,그늘에 있는 인물을 밝은 배경에 찍는 경우에는 플래시 모드를 조정해 강제로 터뜨리는 편이 좋다.단 플래시를 터뜨릴 때는 피사체가 5m이내에 있어야 한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줌에서 망원쪽으로 찍는 편이 좋다.화면에서 피사체의 크기를 동일한 비율로 찍더라도 멀리서 망원쪽으로 찍는 편이 배경이 흐릿하게 나와 분위기 있는 사진이 된다.반대로 대웅전이나 아름다운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광각(넓게 찍히는)쪽을 사용하자.건물이 전체가 나오게 하고 인물을 카메라 앞쪽으로 이동시켜 화면의 비율을 정하면 된다. 야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인물을 찍을때는 플래시모드를 ‘별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사용하면 멋진 사진을 얻는다.또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할 때도 마찬가지다.이때는 사진이 흔들릴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러야 한다. 인물사진을 찍을 때 연속촬영 모드로 놓고 여러 장을 찍으면 좋다. 그래야 좋은 표정을 건질 수 있다.‘웃어 김∼치’라고 말을 해도 표정은 어색하다.연속적으로 여러 장을 여러 번 찍어야 좋은 표정이 나온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 솔직하고 부드러운 ‘얼음공주’

    부처님 오신날인 26일 오전 9시58분쯤.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봉축 법요식을 기다리던 신도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시선은 일제히 한 사람에게 쏠렸다.‘와와’ 하는 함성이 일었고,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열광적인 ‘팬’의 환호를,‘스타’는 만끽하는 듯했다.그는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도록 환하게 웃었고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인사를 했다.박수 소리는 더 거세졌고,사람들은 더 크게 외쳤다.“박근혜닷!”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어디서나 주인공 대접을 받는다.70대 촌로(村老)도,열여덟살 여고생도 한 걸음에 달려와 ‘박근혜’를 환호한다.그들은 무척 기뻐한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이고,TV에 자주 나오는 유명 정치인을 직접 봤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한다.그리고 두번 놀란다.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늘 꼿꼿해 ‘얼음 공주’라고 불리는 박 대표가 내면으론 따뜻하고 진솔한 태도로 인간적인 매력을 함뿍 발산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번 만나면 잊지 못하도록 사실 박 대표에게는 ‘미련’한 구석이 있다.그는 바쁜 일정 중에 길거리에서 만난 늙수그레한 참전 용사의 넋두리도,시장에서 만난 50대 주부의 하소연도 끝까지 경청한다.늘 상대의 눈을 응시하면서 “아,그렇습니까.”,“예,제가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말한다.수행 비서나 당직자가 이런 시민을 막을라치면 박 대표는 “그분들이 저를 만나서 얼마나 얘기가 하고 싶었으면 저러겠어요.”라고 나무라는 것을 기자는 여러차례 들었다. 그는 1대1 대면 관계에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지난 23일 제주공항에서 렌터카 대리점의 여직원과 인사를 나눌 때 일이다.대표는 일단 활짝 웃었고,“안녕하세요.잘 부탁드립니다.”고 인사를 건넸다.여직원이 건넨 수첩에는 ‘○○○님께,박근혜’라고 사인을 해줬다.그리곤 “(이름 같은 게)뭐 잘못된 거 없죠?”라고 물었다.한명을 만나도 감동을 주겠다는 것일까.따뜻한 태도에 감격한 그 여직원은 “언제 또 오실 건가요.건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박 대표는 지독한 메모광이다.언제나 수첩을 들고 다닌다.크기는 A4용지 절반 정도고 가격은 2000∼3000원 선이다.그는 틈만 나면 이 수첩을 펴고 상대의 말을 적는다.메모할 상황이 아니면 ‘손가락 필기’도 마다하지 않는다.지난 20일 춘천의 한 육묘장에서 제반 시설에 대한 브리핑을 들을 때는 손가락으로 숫자와 단어를 쓰는 시늉을 했다.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말 중에 핵심 단어를 조용히 입속으로 되뇌인다.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뜻이다.가끔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대다수 정치인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그만의 특징이다. ●눈높이를 맞추는 센스 지난 21일 박 대표는 대전을 방문해 대덕의 화학연구원에서 여성 과학자와 간담회를 가졌다.이 자리에서는 굽이 4∼5㎝정도 되는 검정색 정장 구두를 신고 있었다.그러나 곧바로 장소를 옮겨 중앙재래시장에 갔을 때는 어느새 베이지색 ‘효도 신발’로 바꿔 신었다.이동하는 차 안에서 갈아신은 모양이다.재래시장에 맞는 옷차림과 장신구로 바꾸고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박 대표의 센스다. 이틀 뒤 제주 서문시장을 찾았을 때의 일화도 재미있다.박 대표는 지역 상인이 건넨 드링크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뒤 수행하던 여성 당직자에게 병을 부탁했다.그런데 이 당직자가 쓰레기통을 찾는 순간 박 대표는 “그거 아무데나 두지 마세요.”,“그러지 마세요.아예 차에 들고 타세요.”라고 다그쳤다.평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무리 사소한 선물이라도 정성이 고맙지 않느냐.”고 말한 것과 딱 들어맞는다. 그는 진솔하고 따뜻한 면이 있다.사석에서 더 활짝 웃고,재미있는 말을 한다.강원도를 방문해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김용학 의원과 조우하게 되자 “아유∼전화해도 안 받으시대요.아주 세상을 등지기로 하셨습니까.”라고 했다.“낙심이 크시지요.”,“다음 기회에 잘 되겠죠.”라는 식이다.판에 박힌 말은 삼가는 센스가 엿보인 대목이다. ●그녀의 꼼꼼함과 성실함 평소 박 대표는 걸음이 무척 빠른 편이다.그를 따라가려면 보폭을 크게 해서 성큼성큼 걸어야 한다.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그래서 가끔 “제가 워낙 걸음이 빠르지요?마음이 급해서…”라고 말하곤 한다.그러나 무엇이든 결정을 내릴 때는 신중하고,꼼꼼하다. 21일 여성 과학인과 간담회를 열었을 때 주최측이 방명록에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박 대표는 사전에 준비를 안 했던 모양이다.그는 일단 “꼭 재미있게 써야 합니까?”고 농을 걸더니,“갑자기 쓰려니까…또 두 개나 쓰려니까 힘드네요.”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이어 만년필을 쥔 오른손을 관자놀이에 갖다대고 2∼3분씩 고민하기 시작했다.“여성 과학의 힘으로 2만달러 시대가 앞당겨…”라고 혼잣말도 했다.누군가 옆에서 적당한 문구를 추천해도 듣지 않았다.고집스럽게 고민한 끝에 “2만불 시대를 여성과학인들께서 앞당겨 주시리라 믿습니다.2004.5.21.박근혜”라고 썼다.간단한 문구라도,‘박근혜표’로 남을 것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연거푸 방명록을 두 개 쓴 다음 그는 “오자마자 시험을 두개나 치른 느낌”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긴 뒤에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한계,앞날에 대한 우려 “(박정희 전)대통령이 지어준 과학기술원 아파트에 20년째 살면서 덕을 많이 봤다.”,“대통령이 마을회관 건립에 지원해 준 덕분에 ‘우수 부락’이 됐다.지금도 감사드린다.” 박 대표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얽힌 사소한 인연을 부각시키려고 한다.‘얼굴’로 먹고사는 정치인에게 태생적인 유명함은 대단한 밑천일 수가 있다.그러나 모두들 지적한다.박 대표가 진정한 의미의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박정희 후광’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민주화 보상심의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두운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한 기자의 질문에는 어색한 미소로 “국가 원수를 시해하면 다 민주화 열사란 말입니까.”고 되물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잊지 말아야 한다.많은 국민에게 ‘박통’은 ‘경제부흥의 주역’이라는 영광과 함께 60∼70년대를 숨 막히게 한 어두운 독재자로도 남아 있다.박 대표가 그 시대의 희생자와 부단히 화해하고,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력 ▲1952.2.2 대구 출생 ▲1964 장충초등학교 ▲1967 성심여중 ▲1970 성심여고 ▲1974 서강대 전자공학과 ▲1974~1979 퍼스트레이디 대리 ▲1974~1980 걸스카웃 명예 총재 ▲1982~1991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학교 이사장 ▲1996~2000 15대 국회의원 ▲1998~2002 한나라당 부총재 ▲2000 16대 국회의원 ▲2002 한국미래연합 대표 ▲2004 한나라당 대표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박 기자는 제주 출신으로 지난 2002년 2월 서울신문사에 입사,1년8개월간의 사회부 경찰기자를 거쳐 지난 3월부터 정치부에서 한나라당을 출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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