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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과 가정’ 어떤 의미일까

    가정과 가족의 의미가 날로 퇴색해 가고 있는 가운데 가정의 가치를 일깨우는 행사가 산중사찰에서 열려 관심을 모은다. 경기도 안성 도솔산에 자리잡은 보현도량 도피안사(주지 송암 스님)와 현대불교신문사는 5월1일부터 7월3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30분 대웅전에서 ‘우리에게 가족과 가정은 무엇인가-새로운 가정의 가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제1차 구국구세(救國救世) 대법회를 개최한다. 가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우리 시대에 가장 시급한 구국이며 구세라는 판단 아래 불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되살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강사진은 스님과 교수,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됐다. 법회기간인 5월15일(부처님오신날)에는 안숙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명창이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강생(降生)편을 판소리로 공양한다. 송암 스님은 “부처님에게서 이어진 구국구세 정신을 불광운동으로 계승한 창건주 광덕 스님의 뜻을 이어받자는 취지로 이번 법회를 기획했다.”며 “일회성이 아니라 인문과학·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법회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세부 법회 일정. ▲부처는 가정과 부부를 어떻게 보는가(5월1일·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 ▲서양인은 한국의 가정을 어떻게 보는가(8일·서명원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오늘날 한국가족의 모습은 어떠한가-한국가족 바로 보기(22일·조희금 대구대 교수) ▲모두 다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변화하는 사회 속의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이해(29일·옥선화 서울대 교수) ▲부부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6월5일·정현숙 상명대 교수) ▲건강한 부모와 자녀 관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청소년 자녀를 중심으로(12일·고성혜 자녀안심하고학교보내기운동 서울협의회 연구위원) ▲건강한 부모와 자녀 관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성인자녀와 노부모(19일·최혜경 이화여대 교수) ▲불자가족의 가정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26일·김외숙 방송대 교수) ▲바람직한 가정과 부부의 상은(7월3일·최훈동 한별정신병원 원장) (031)676-8700.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유서깊은 사찰 산불에 강하다

    유서깊은 사찰 산불에 강하다

    목재에서는 세월이 지날수록 수분이 빠져나간다. 산불 앞에서 목조 건물 일색인 사찰은 화약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불국사와 해인사·선운사·전등사 같은 유서깊은 절들은 산불을 대비하는 전통도 남다르다. 자체적으로 산불에 강한 사찰을 만드는 내화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들은 수분이 많아 쉽게 타지 않는 수종으로 내화수림대를 조성하고,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도록 공간을 넉넉히 남겨두었다. 절의 연륜이 쌓이고 심어놓은 나무가 자라나면서 산불을 방어하는 능력도 든든해졌다는 것이다. ●선운사 동백나무 방화림 역할 고창 선운사의 대웅전 뒤편에는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500살짜리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겨울철에도 화려한 꽃봉오리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선운사 동백나무는 그러나 산불이 가람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내화림으로 심어졌다. 국립산림과학원 임주훈 박사는 “옛 문헌에는 산불을 방지하기 위해 선운사 대웅전 뒤에 동백나무 숲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면서 “상록활엽수인 동백나무는 잎이 두껍고 수분함유율이 높아 사철 산불의 진행을 최대한 더디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선운사는 또 대웅전에서 동백나무 숲까지 15m 이상 공간을 띄워 산불이 동백숲에 옮겨붙는다 해도 절 마당까지는 쉽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다. 선운사에는 최근 학계의 관심사인 내화수림대가 이미 훌륭히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내화수림대는 선운사 같은 방법도 있지만 산불이 번지지 못하도록 산 정상에는 나무를 심지 않은 채 길을 만들고, 길 주변에 불에 강한 수종을 심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전등사 건물 옆엔 식수 안해 불국사가 있는 경주 토함산은 동해안지역의 특성대로 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불국사는 대잎나무·개잎갈나무 등으로 수종을 다양화하는 방법으로 내화체계를 갖췄다. 사찰 특유의 조림방식으로 나무 사이를 멀찍이 띄워 산불이 나도 번지지 못하도록 했다. 합천 가야산 해인사는 수령 300∼500년에 이르는 나무가 죽어도 함부로 베어버리지 않는다. 죽은 나무를 양분으로 토양이 비옥해지자 소나무 일색의 식생이 참나무·서어나무로 다양화됐다. 가야산 국립공원사무소 유창우 관리계장은 “해인사 주변의 졸참나무와 잣나무는 소나무보다 산불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강화도 전등사는 사찰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25만평에 이르는 사찰림을 관리한다. 경내의 숲은 500∼600년짜리 느티나무, 은행나무로 이루어졌으며, 역시 건물 옆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방법으로 대비한다. 한국도시건축병리연구소 양성욱 박사는 “전등사 주변의 수종은 30년 전부터 소나무 중심에서 참나무 중심으로 바뀌고 있지만, 왜송과 아카시아 등 외래종도 많이 자라나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시론] 산불 확산방지와 선조들의 지혜/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박사

    [시론] 산불 확산방지와 선조들의 지혜/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박사

    우리나라는 봄철마다 산불에 시달린다. 대륙의 동쪽에 위치해 대기가 비교적 건조한 데다 봄철엔 아직 열대 몬순이 올라오지 않아 비도 별로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조건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우리 조상들은 산불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산불의 확산을 막기 위해 슬기롭게 숲을 관리해 온 선조들의 사례는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산불이 잦은 동해안 지역을 다니다 보면 오래된 집 주위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풍경이 흔하다. 옛 어른들은 단순히 경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거나 농용자재로 쓰기 위해서만 대나무를 심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0년 동해안에 2만 3970㏊를 태운 대형 산불이 났을 때도 이런 집이 불타지 않은 것을 보면 선조들은 대 숲의 내화(耐火) 기능도 충분히 고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창 선운사의 울창한 동백 숲은 또 어떠한가. 스님들이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동백에 사랑을 듬뿍 쏟은 결과이겠지만, 대웅전을 병풍처럼 둘러싸며 잘 보전된 동백 숲은 주변 산림에서 넘어올지 모르는 불길을 막기 위한 것이란 짐작도 간다. 동백나무는 잎이 두꺼워 건조한 봄에도 수분을 많이 지니고 있는데, 이렇듯 불에 잘 견디는 동백의 속성을 옛 스님들도 틀림없이 간파했을 것이다. 이번 산불로 많은 산림과 문화재가 졸지에 잿더미로 변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런데 불에 약한 소나무가 산불을 키웠다고 애꿎은 소나무를 탓하는 말도 들려온다. 소나무가 산불 확산의 주 요인이라면 역사적으로 그렇게 흔하게 산불이 났던 강원 해안지역을 지금도 소나무림이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소나무가 아니라 숲을 관리하는 방식에 있다. 과거에는 자연적 작용이나 사람에 의해 소나무 간의 거리가 적당히 유지되었는데, 지금은 너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사람들이 숲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빽빽한 나무들을 어느 정도 솎아 베어내면 숲에 숨구멍이 트이면서 소나무림은 건강을 되찾고 산불확산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아 집이나 절 주위에 둘렀던 내화림도 조성해야 한다. 기온이 낮아 동백이나 대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곳이라면 불에 강한 코르크 껍질의 굴참나무가 제격이다. 더욱이 소나무와 굴참나무는 서로 어울려 잘 자라니 양질의 목재 생산도 기대할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울진 불영계곡에서는 이들 나무가 사이좋게 20∼30m 높이까지 쑥쑥 자라고 있기도 하다. 소나무림을 조금 솎아주고 내화수종을 섞어 심는 것이 산불확산 방지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생태학적 근거가 있다. 레이첼 카슨 여사는 ‘침묵의 봄’에서 낮은 농도의 DDT가 먹이사슬을 거치면서 생물학적으로 농축되어 나중에는 맹금류의 새끼가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독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생태적 과정에서는 작은 차이라도 큰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소나무를 10% 정도만 솎아내 거기에 불에 강한 굴참나무를 심어도 강한 방지턱이 생겨 산불의 위세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물론 구체적 효과는 실증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이같은 방지턱의 효용은 굴참나무의 빈도와 규모에 비례하여 복리 이자가 붙는 것처럼 커진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이렇듯 소나무림을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면, 숲의 건강도 살아나고 값비싼 송이도 생산할 수 있을 터이니 환경도 지키고 지역경제도 살리는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슬기롭게 숲을 관리해 온 조상들의 지혜를 오늘날 우리가 되살려야 하는 까닭이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박사
  • [종교플러스] 조계사 대웅전 중수불사 상량식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주지 원담 스님)는 9일 오전 11시 대웅전 앞마당에서 대웅전 중수불사 상량식을 봉행한다. 조계사는 천장 상부의 목재들이 심각하게 틀어지고 불화가 훼손되는 등 안전·보존상의 문제로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2002년부터 진행해왔다.
  • [식목일 산불] 낙산사 화재 현장

    [식목일 산불] 낙산사 화재 현장

    천년사찰엔 불에 탄 잔해만이 가득했다. 5일 오후 화마가 지나간 낙산사에는 의상대와 관음전, 곡예문만 남은 채 주요 건물이 모두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숯으로 변한 목조건물의 잔해뿐 천년고찰의 장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다만 무너져내린 기와조각과 인근 담에서 아직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남아 화마의 엄청난 기세를 느끼게 했다. ●사찰내 건물 15채중 11채 소실 일주문과 스님들이 머물던 요사채가 전소됐고, 대웅전격인 원통보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처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보타전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시도유형문화재 34호), 홍예문(虹霓門·시도유형문화재 33호) 등 목조 건물들 대부분이 없어졌고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도 범종각과 함께 불에 타 훼손됐다. 낙산사 경내에 있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불인 ‘건칠관세음보살좌상(보물 1362호)’을 비롯한 신중탱화, 후불탱화 등 3개의 문화재는 이날 오전 지하 창고로 옮겨져 일단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 당국이 파악한 낙산사의 화재 피해는 홍예문, 일주문 등 사찰 내 건물 15채 중 11채가 소실된 것으로 집계됐다. 바닷가쪽에 위치한 의상대, 관음전은 간신히 화마를 피했다. ●바닷가쪽 의상대·관음전 화면해 산불은 이날 오전 7시쯤 강풍을 타고 양양과 속초 사이 7번 국도를 넘어 낙산 해수욕장 내 송림 단지에 옮겨붙었다. 헬기 10대와 소방 인력 800여명을 투입, 총력 진화작전을 펼친 끝에 오전 10시쯤 불길이 집히는 듯했지만 오후 3시쯤 초속 15∼30m에 이르는 강풍을 타고 다시 급속히 번져나갔다. 수백년 된 소나무숲은 송진을 머금고 있어 불길이 낙산사로 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낙산사 스님들이 긴급 대피한 후 송림쪽에 가까운 낙산사 서쪽 일주문에 불이 붙었고, 화마는 순식간에 천년사찰의 대부분을 삼켜 들어갔다. 당시 낙산사 종무실에서 근무하다 불길을 피해 긴급 대피했던 전희경(26·여)씨는 “원통보전 뒷산에서 불길이 치솟아 아무것도 치우지 못하고 동료들과 함께 황급히 뛰쳐나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낙산사측은 이날 오전 긴급 구입한 소화기 150개를 이용, 자체 진화작업을 폈지만 양양 지역을 휘감은 산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낙산사 주지스님은 “오늘 아침에 헬기가 물을 뿌린 다음에 잔불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성으로 옮겨갔다.”며 “‘낙산사에 유물이 많으니까 확실히 소화를 하기 위해 헬기를 남겨달라.’고 부탁했지만 너무 빨리 철수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유홍준씨 “불타기 이전모습 복원 가능하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산불로 사찰 내 건물을 많이 잃었으나 다행히 보물 등 주요 문화재는 안전하다.”며 “소실된 건물은 6·25 이후 복원된 건물인 만큼 불타기 이전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양 조한종 유지혜 이재훈기자 bell21@seoul.co.kr
  • [식목일 산불] 낙산사는 어떤 절

    [식목일 산불] 낙산사는 어떤 절

    낙산사(洛山寺)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재위 시절인 671년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됐으며 사찰 전체가 시·도유형문화재 35호로 지정돼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낙산사는 처음에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 창건했으며, 그 직후에 의상과 함께 신라 불교의 쌍벽을 이룬다고 평가되는 원효대사가 이곳을 찾기도 했다. 그만큼 유서가 깊은 사찰로서 한국 고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낙산사는 관동팔경(關東八景) 가운데 하나로, 이곳에서 보는 동해의 일출이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또한 인천 석모도의 보문사, 경남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3대 관음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로 365일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낙산사는 그동안 다섯차례 화마(火魔)에 휩싸여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했다.786년 화재로 사찰 대부분이 불에 탔다가 858년 범일(梵日) 스님에 의해 중건됐다. 이후 1231년 몽고의 난 때 전소된 낙산사는 조선 세조 때 중창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때도 소실됐다가 1953년에 다시 창건됐다. 낙산사에는 명성에 걸맞게 각종 유물도 많다.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은 높이 1m58㎝, 입지름 98㎝로 1469년 조선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한 종이다. 보물 499호 낙산사 칠층석탑은 1467년에 조성됐으며,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주가 탑 속에 봉안됐다고 한다. 낙산사는 대웅전이 없는 대신 원통보전(圓通寶殿)이 본전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학적으로는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팔자 모양으로 돼 있는 원통보전 안에는 보물 1362호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2) 변산에서 만난 정감록과 미륵신앙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2) 변산에서 만난 정감록과 미륵신앙

    ●부안행 버스 속에서 남사고는 먼젓번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나는 이 기회에 변산의 길지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서울서 부안까지는 고속버스 편을 이용했다. 서울남부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쯤 지나 삼례를 지난다. 이 때부터 드넓은 호남평야가 눈앞에 가득하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부안은 김제 만경평야의 서남쪽 끝에 있다. 그곳은 곡창지대이면서도 서해바다에 연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부안 출신의 한학자 한 분을 만났는데, 그는 예부터 ‘생거(生居) 부안’이란 말이 있다고 자랑했다. 농수산물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변산(邊山)이란 명산이 있어 부안은 무척 살기 좋은 고장이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부안은 다소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변산에서 군산까지 이어질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인해 생태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적지 않다. 잠시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이 시작되는 백산이란 지역도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다. 갑자기 1984년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귀에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농민군들은 모두 흰옷에 죽창을 들고 있어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고 했다던가? 이런 역사적 격랑의 한복판에 변산이란 길지(吉地)가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밤 나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꺼내놓고 혹시 변산에 관한 설명을 찾아 볼 수 있을까 해서 좀 뒤적여 보았다.“노령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파고들어간다. 서·남·북 3면은 모두 바다다. 이곳은 많은 봉우리와 허다한 골짜기로 돼 있는데 변산이라 부른다.” 맞는 말이다. 변산은 3면이 바다에 닿아 있고 봉우리와 골짜기가 유난히 많다. ●변산은 백두대간의 서자 그러나 이중환의 설명과 다른 점도 있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변산의 멧부리는 노령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백두대간의 계보를 자세히 적은 ‘산경표(山經表)’에도 변산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고지도를 보더라도 변산은 홀로 떨어진 외로운 산이다. 말하자면 백두대간의 서자인 셈이다. 정감록의 길지는 대부분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에 확실하게 능선이 닿은 적자(嫡子)들이다. 그렇다면 서자 격인 변산은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어 길지로 거론된 것일까? 누구도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답을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난 변산의 지리와 역사를 좀더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버스는 서서히 부안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난 지 4시간 만이다. 읍내 길거리엔 바다 냄새가 물씬하다. 남도의 봄 향기도 객을 반기는 듯하다. ●내변산 우동 정감록서 말한 길지 지인의 소개로 나는 읍내에서 지관 김철수(71·가명)씨를 만났다. 김 지관의 말을 들으니 변산은 길지에 필요한 외형적인 조건을 제법 잘 갖춘 편이란다. 변산의 산세는 용맥이 강이나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갑자기 멈춰선 경우에 해당해, 이른바 산진처(山盡處)의 명당이란다. 김 지관은 서남해안 일대에는 그런 명당이 몇 군데 더 있다며 가야산과 팔령산과 태안반도를 예로 든다. 그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변산의 지세를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지관의 대답은 이러했다.“변산의 청룡, 즉 동쪽 산세는 사창재, 노승봉(상여봉), 바드재를 건너 옥녀봉으로 이어지다가 잠시 남서쪽으로 흐르는 듯하다가 내소사의 주산인 세봉을 건너서 월명암의 주산인 쌍선봉으로 반원을 그리며 내뻗어요. 그게 학치, 청림리 삼예봉에서 끝나지요. 변산의 백호, 즉 서쪽 산세는 개암사의 주산인 우금산에서 우슬재를 거쳐 의상봉으로 이어진다고 봐야지요. 이 두 흐름을 갈라놓은 것이 그 옛날 백천이었는데, 지금은 부안호가 돼 없어졌어요. 백천의 물길은 본래 우슬재에서 시작됐거든요. 백천도 그렇지만 변산의 청룡과 백호가 그려낸 형상은 결국 산 태극, 물 태극이오. 계룡산과 같다, 이런 말씀이지요.” -그럼 ‘정감록’에 나오는 변산 동쪽의 길지는 구체적으로 어딘가요? “아, 그것은 말이지요. 일단 내변산으로 통하는 입구인 우슬재나 바드재를 좀 잘 봐야 해요. 그저 그 길목만 잘 지키면 인근의 청림리와 중계리는 참 좋은 피난처가 돼요. 거 뭐더라, 정감록에 나오는 호암을 찾으려면 상서면 통정리에서 우슬재를 넘어가면 돼요. 우슬재를 살짝 넘어가면 쇠뿔바위라고 나오지요. 그런데 이게 변산 최고봉인 의상봉의 오른쪽에 있어요. 쇠뿔바위 동남쪽을 잘 살펴보면 산비탈에 실학자 반계 유형원이 우거하던 집이 지금도 있지. 몇 해 전에 복원됐지요. 그 산 아래 마을이 우동이야. 보안면 영전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곰소로 가다 보면 마주치는 동리인데 원래 이름은 우반동이란 말이오. 이 마을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옥녀봉이 있고 멀리 그 산 끝자락에 굴바위가 보인단 말이지요. 바위 입구가 틀림없는 호리병 모양이에요. 호암이라 이거지요! 우동은 앞이 시원하게 터진 듯하면서도 천마산이 막아주고 있어 삼태기형 명당이 분명하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난 우동이 바로 그 ‘정감록’에서 말하는 길지다, 그렇게 봐요. 안 그렇겠어요?” -김 지관님, 그런데요. 역사상으로 볼 때 길지가 있다는 내변산이 외변산보다 훨씬 더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구한말이나 6·25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변산의 우동을 길지라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그거야 잘 모르겠소! 누가 그걸 알겠어요? 그래도 옛 말이 조금도 틀린 게 없어요. 우리가 사는 이 변산은 아주 옛날서부터 미륵님이 나타나신 땅이고, 관세음보살님의 성지요. 원효, 진표, 진묵 등 큰 스님들도 많이 오셔서 도를 닦으신 것만 봐도 이게 보통 땅이 아닌 것은 틀림없어요! 근세엔 증산교를 세운 강일순이도, 원불교의 소태산도 다 여기 변산서 도를 닦았단 말이죠. 그 분들이 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분들인데 왜 다른 명당 다 놔두고 부안을 왔겠어요? 정감록에도 길지라고 나와 있단 말이에요. 미륵님이 현신하신 곳이니까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봐요.” 김 지관의 설명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변산은 과연 미륵신앙의 발상이요, 불교의 성지였다. 왜,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점이 중요하게 생각돼 난 서둘러 발길을 현장으로 옮겼다. ●변산의 옛 사찰들 부안읍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박재환(45·가명) 선생이 길잡이를 맡아주었다. 나는 박 선생과 함께 내변산 입구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대형 지도에서 변산의 유적지를 다시 점검했다. 변산은 제법 큰 산 덩어리여서 변산면(邊山面)·하서면(下西面)·상서면(上西面)·진서면(鎭西面)에 걸쳐 있다. 그런데 최고봉이라는 의상봉 마천대(508m)도 실은 야트막한 편이라 웅장한 느낌은 별로 없다. 이곳 사람들은 서해안을 따라 겹겹이 포개어진 산봉우리를 외변산이라 하고, 내륙으로 뻗은 골짜기와 봉우리는 내변산이라 부른다. 외변산에는 격포리(格浦里) 해안의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이 특히 유명하다. 이 두 곳의 명칭은 강이지만 실제는 해안의 바위벽이다. 채석강이니 하는 이름은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과 대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노닐던 중국 지명을 본뜬 것이다. 그만큼 경관이 수려하다는 뜻이다. 변산의 해안풍경이 그처럼 절경이라 해도 정작 변산을 전국적인 길지로 만든 것은 산속에 위치한 옛 사찰들이었다. 박 선생이 승용차로 변산을 구석구석 구경시켜 준 바람에 모든 게 뚜렷해졌다. 외변산에 해당하는 상서면 감교리의 개암사(開岩寺)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왕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대웅전(보물 292호)이 참으로 볼 만하다. 개암사에 딸려 있던 원효방이란 암자는 신라 때 명승 원효가 수행한 곳이라 전한다. 그런가 하면 변산면 석포리에 위치한 내소사(來蘇寺) 역시 신라 때의 고찰인데 대웅보전(보물 291호)·고려 동종(보물 277호)·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 보물 278호) 등 문화재가 많다. 내소사 경내의 전나무 숲은 울창하기가 전국 최고라 하고 이 절간의 저녁 종소리는 변산8경의 하나로 친다. 내변산은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깊은 계곡이 여럿이고 나무 또한 울창해 풍광이 곱다. 그 중 산내면 중계리(中溪里)에는 신라 때 창건됐다는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변산의 제2봉인 쌍선봉(498m) 중턱에 자리잡은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아침 바다의 물안개는 변산8경의 하나다. 암자 뒤편의 낙조대(448m)에서 서해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역시 변산8경으로 손꼽는다. ●불사의방과 영산사, 한국 미륵신앙의 성지 변산에는 위에서 말한 사찰들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중요해 뵈는 암자 하나가 있었다. 의상봉 꼭대기 있었다고 믿어지는 불사의방(不思議房)인데 이곳이야말로 미륵하생신앙의 진원지였다. 장차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수많은 사람들을 불교적 이상세계로 인도할 거라는 하생신앙이 처음 뿌리를 내린 곳이 변산이라니 신기한 느낌이 든다. 따지고 보면,‘정감록’에 약속된 새 세상도 미륵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미륵하생신앙은 정감록 신앙의 뿌리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불사의방에서 미륵신앙을 체험한 승려는 신라의 진표(眞表)였다. 그는 경덕왕 19년(760)부터 3년 동안 3업(身·口·意業, 몸뚱이·언어·의지의 작용)을 닦았다. 아울러 망신참법(亡身懺法·몸을 희생시키는 참회법)에도 힘써 5륜(두 무릎, 두 손, 머리의 5體)을 바위에 마구 부딪쳐 무릎과 손이 깨져 피가 비오듯 했다고 한다. 진표의 극진한 기도에 감동한 지장보상(地藏菩薩)은 진표에게 모습을 드러내 정계(淨戒)를 주었다. 그러나 진표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부근의 영산사(靈山寺)로 수행 장소를 옮겨 더욱 정진했다. 미륵보살을 친견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마침내 미륵보살이 진표 앞에 나타나 그의 신심을 칭찬하고 점찰경(占察經) 2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수행으로 얻은 果와 점치는 대쪽) 189개를 주었다. 진표는 미륵보살의 수기(授記)를 받은 셈이다. 경덕왕 21년(762), 진표는 신도들을 이끌고 금산사(전북 김제)에 16척이나 되는 거대한 미륵보살을 조성하기 시작했다.2년 뒤 마침내 미륵상은 완성되었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된다. 진표에 관한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변산에서 미륵신앙이 출범했다는 점이다. 그 뒤 우리 역사상 미륵신앙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 특히 난세에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위로를 줘왔다. ●월명암, 또 하나의 종교적 성지 알고 보니 변산의 월명암(月明庵) 역시 종교적인 성지로 의미가 크다. 월명암은 관음보살을 모신 곳이라는데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영지라 한다. 월명암에 오르기 위해 나는 남여치에서 차를 내려 쌍선봉 쪽을 바라보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이 암자는 신라 신문왕 12년(692)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중건했다. 한말엔 의병들이 월명암을 근거지로 삼아 일본군과 싸웠는데 전투에 진 바람에 1908년엔 다시 잿더미가 됐다. 그 후에도 월명암은 몇 차례 심한 몸살을 겪었다. 지금 월명암 옛터에는 대웅전을 건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월명암을 개창한 부설거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의 행적은 ‘부설전’이란 고소설에 상세하다. 경주에서 출생한 부설은 법우(法友)인 영조·영희와 함께 구도의 길을 떠나 변산(능가산)에 들어가 묘적암을 세우고 오직 수도에만 몰두했다. 뒷날 그들 3인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오대산으로 길을 떠나는데, 부설원(정읍군 칠보면)에 이르렀을 때 부설은 삼생연분(三生緣分)이 있는 묘화를 만난다. 두 사람은 반드시 부부가 돼야 할 운명이었다. 환속한 부설거사는 아들 등운(登雲)과 월명(月明)이란 딸을 두었는데 말년이 되자 변산에 등운암(登雲庵)과 월명암(月明庵)이란 두 암자를 지어 아들딸에게 각기 하나씩 맡겼다. 겉으로 보면, 부설과 묘화 부부는 속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평생 남몰래 수도에 정진해 도력이 출중했다. 부설거사보다 한 수 낮았다는 묘화만 해도 환한 대낮에 조화를 부려 비나 눈을 내리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때로 묘화는 빗방울이나 눈송이를 단 하나도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했다고 전한다. 월명암을 중건한 진묵대사도 많은 이적을 남겼다. 진묵은 조선 중기 호남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이었는데, 어느 날 탁발을 나갔다가 매운탕 한 솥을 얻어 마셨다. 그 다음 진묵은 물가에 가서 토해냈는데 탕 속에 들어 있던 죽은 물고기들이 전부 살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근대에는 백학명(1867∼1929)과 같은 고승이 월명암에 주석했다. 학명은 불교개혁의 일환으로 선농(禪農)일치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참선과 농사를 같은 것으로 파악해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원불교를 개창한 소태산 박중빈도 세상을 구제할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월명암을 찾았다.1919년 소태산은 학명과 더불어 동안거를 했다. 이때 학명의 거처는 법당이었고 소태산은 그 옆방을 사용했다. 원불교의 2대 교조인 정산종사도 한때 학명의 상좌 노릇을 했다. 뿐만 아니라 증산교를 창설한 강일순(姜一淳) 역시 월명암을 찾았었다. 강증산과 소태산은 모두 새 세상을 열기 위해 부심했다고 한다. ‘부설전’을 보면 월명암에서 모두 4성인,8현자,12법사가 나온다고 했다. 월명암 스님들은 부설거사 가족 4명을 성인으로 간주한다. 옛날 이 암자에 주석했던 성암·행암·학명 스님은 3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5현과 12법사가 더 나올 예정이라는 뜻인데 과연 그 말대로 될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 장차 지켜볼 일이다. 요컨대 변산은 불보살과 깊은 인연이 있어 정감록이 손꼽는 길지가 되었다. 변산의 경우에서 보듯 때로 민중의 깊은 불심은 풍수조건을 능가하기도 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한국불교 미래를 듣는다’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는 13일부터 5월1일까지 매주 일요일 8차례에 걸쳐 경내 대웅전에서 ‘한국불교, 미래를 듣는다’라는 제목의 기획법회를 연다. 부처의 가르침과 수행을 되새기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조명, 불교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법회는 ‘여는 마당’‘수행의 마당’‘나눔의 마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여는 마당’에서는 생명평화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도법(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스님과 수행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수불(안국선원 이사장)스님이 각각 ‘생명·평화의 불교’(13일)와 ‘불교의 깨달음’(20일)을 주제로 법문한다. ‘수행의 마당’에서는 부처의 제자로서 갖춰야 할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두루 살펴본다.‘계율의 의미’(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27일),‘현대사회에서의 계율’(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4월3일),‘우리들의 가까운 벗, 수트라’(동화사 강주 지운 스님·4월10일) 등으로 진행된다. ‘나눔의 마당’을 통해서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불교가 어떤 위상과 활동방향을 갖춰야 할지를 고민한다. ‘글로벌 시대의 한국 불교’(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4월17일),‘지역과 함께하는 불교’(수원포교당 주지 성관 스님·4월24일),‘통일시대의 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명진 스님·5월1일) 등을 다룬다.
  • “종교계 나눔문화 더 확산 됐으면”

    “종교계 나눔문화 더 확산 됐으면”

    “올해부터 신도들의 축원기도금 가운데 15%를 사회복지기금으로 적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나눔의 15% 운동’은 종교단체의 사회참여를 양성화하고 또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주지 원담(圓潭) 스님은 최근 경내 설법전에서 기자들과 만나 올해 조계사 주요 사업의 하나로 ‘나눔의 15% 운동’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매년 3억원 이상 사회복지기금으로 조계사는 그동안 매년 3억원 이상의 예산을 사회복지기금으로 사용해 왔다.‘나눔의 15% 운동’은 이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으로, 불교계 나아가 사회 전반의 나눔문화를 확산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우리 종단은 지금까지 기도금 수입을 포함한 전체 사업비 가운데 일정액을 떼어내 복지사업에 써왔습니다. 이제 30여종에 이르는 축원기도금과 관련된 회계는 따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이원화, 재정운영을 보다 투명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는 10일(음력 2월1일) 열리는 초하루 법회에서 신도들에게 이런 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힐 생각입니다.” 조계사는 정법 도량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한 사업도 꾸준히 펼쳐 나갈 계획이다. 그 중 하나가 연구소 설립이다. 원담 스님은 “아직 공의를 거치지 않았지만 올 하반기에 조계사 부설 연구소를 발족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법 도량 연구소’ 설립 추진 “대형사찰이라면 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관이 하나쯤 있어야지요. 어떤 성격의 연구소를 세울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불교의 미래 혹은 불교사회학 등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조계사를 젊은 세대들도 즐겨 찾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스님의 구상. 그런 맥락에서 연구원들도 소장학자 위주로 뽑고, 인터넷을 통한 종무행정의 현대화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온라인상으로도 각종 행사와 신도축원 등의 접수업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계사 중창불사도 계속 진행된다.12일에는 일주문 기공식이,4월9일에는 대웅전 상량식이 예정돼 있다. 대웅전 보수공사는 올해 11월 말까지 끝낼 계획이다. 원담 스님은 “경제도 어려운데 대규모 불사를 벌여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이라며 “한국불교 1번지인 조계사가 ‘무질서’에서 벗어나 사격(寺格)에 맞는 도량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인 만큼 많은 이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중매쟁이 나선 주지스님

    중매쟁이 나선 주지스님

    “맑은 절 공기를 쐬면서 선남선녀가 좋은 인연 맺길 바랍니다.” 휴일인 27일 오전 초면의 남녀 10여명이 부처님이 내려다 보고 있는 대웅전에 모여 앉았다. 이들은 앞에 앉은 상대의 눈길도, 뒤에 앉은 가족의 헛기침 소리도 부담스러운 듯 말을 아꼈다. 그러자 스님은 “부부의 연은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니 서로를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렇게만 앉아 있으면 더 어색해지니 주위를 함께 걸어보라.”고 권했다. ●부처님 앞에서 부부인연맺기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대성사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선남선녀 인연맺기 특별법회’가 열린다. 만남을 주선하는 ‘커플매니저’는 다름아닌 주지 혜철(47) 스님이다. 처음 만난 남녀는 스님의 말씀에 힘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은 미소를 서로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부부의 연은 1겁의 연인데 1겁이란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바위를 뚫을 때까지 걸리는 무한대의 시간이니 그만큼 소중하다.”면서 “만남이란 소중하지만 인연으로 쌓아가기 위해선 너무 쉽게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살펴보라.”고 충고했다. 대전에 사는 유통회사 직원 이석호(32)씨는 “이색 법회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어머니와 누나를 모시고 찾았다.”면서 “스님이 이렇게 나서기 쉽지 않을텐데 아무 대가없이 자리를 마련해주고 좋은 말씀도 해주셔서 꼭 좋은 인연을 만날 것 같다.”고 웃음지었다. 역시 가족과 함께 전북 익산에서 온 초등학교 교사 엄모(27·여)씨는 “집안이 엄해 이제까지 남자친구 한번 사귀어본 적이 없는데 부처님 앞에서라면 건강하고 착실한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충남 공주에서 찾아온 30대 중반의 남성은 “여섯살짜리 딸과 함께 가족의 인연을 맺을 사람이 어디 없겠느냐.”고 재혼 상대를 물색했다. 이들은 법회에 이어 한 시간 남짓 자기소개와 대화의 시간을 가진 뒤 함께 점심 공양을 했다. 당장 맺어진 짝은 없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스님을 통해 연락하기로 했다. ●3주만에 회원 270명… 문의전화 쇄도 선남선녀의 특별법회는 스님이 지난 7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옥천 대성사 따뜻한 만남(cafe.daum.net/dasungsa)’이란 ‘중매카페’를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이날은 지난 13일과 20일에 이어 세 번째로, 지금까지 모두 70여명의 남녀가 맞선을 봤다. 몇몇 커플은 벌써부터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카페나 전화로 신청하면 특별법회에 참석할 수 있다. 카페는 문을 연지 3주 만에 27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하루 30여통씩 문의전화도 쏟아진다. 심지어 한 결혼정보회사는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기도 했다. 스님은 “짝을 찾아달라는 옥천군청 여직원의 부탁을 계기로 아예 적극적으로 나섰다.”면서 “부부의 연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져 안타까운데, 부처님의 인연으로 맺어진다면 쉽게 헤어지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라고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글 사진 옥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쌍계사 대웅전 내년까지 보수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대웅전(보물 제500호)의 주요 구조물이 심하게 변형돼 해체보수가 불가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점검 결과 오랜 세월로 인해 대웅전의 기둥(사진 위)이 늘어지고 내려앉아 건물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대들보(사진 아래)에 큰 틈이 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심해 이른 시일 내에 해체보수가 필요하다는 연구소의 결론을 받아들여 올해부터 내년 12월까지 보수에 들어간다.”고 21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를 위해 문화재위원과 고건축전문가들로 ‘하동쌍계사보수 기술지도단’을 구성해 기술자문을 수시로 받기로 했다. 쌍계사는 신라 문성왕 2년(870)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조선 인조 10년(1695)에 중건되고, 숙종 21년(1695)과 조선 영조 11년(1735)에 중수한 뒤 오늘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지율스님 단식 100일째] 천성산과 함께한 모든 인연 거두어 주소서

    원장스님께 귀의 삼보하옵고, 조계사 대웅전에서 철야 정진 기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나간 탕자처럼 떠돌던 마음을 거두어 주시니 오히려 몸과 마음을 내릴 곳이 없습니다. 띠끌처럼 낮아지고 가벼워져야 제 원력도 끝이 날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천성산과 함께한 모든 인연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거두어 주소서. 2005년 2월1일 지율 합장 삼배. 받는사람 원장스님께
  • [클릭 이슈] 문화재 보존 해법은 무엇인가

    [클릭 이슈] 문화재 보존 해법은 무엇인가

    지난해 9월 유홍준 문화재청장 취임후 ‘문화재 보존방식’을 둘러싼 설전이 뜨겁다. 취임 이전 미술사학자(명지대 교수)로 문화재 행정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가 무분별한 복원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문화재 보존관리정책이 잇따라 재검토되고 있는 것. 그러나 복원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유홍준식 보존정책’을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아 문화재 복원문제는 당분간 문화재계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재검토되는 문화재 복원계획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보로 지정된 석조문화재 6건에 대한 보존대책 보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석가탑, 감은사지탑 등 안전진단에서 문제가 드러난 문화재의 보수 및 복원계획이 담긴 보고서였다. 문화재청은 지난 21일 옛 국립중앙박물관 회의실에서 보고서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그러나 이 문건은 지난해 10월 이미 문화재위원회에서 사실상 해체 및 복원 결정이 났던 석가탑의 경우 장기간 지켜본 뒤 보수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바뀌는 등 유 청장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되면서 ‘해체’ 또는 ‘복원’보다는 장기간의 ‘정밀관찰’이나 ‘부분 보수’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었다. 유청장은 앞서 지난 연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여수 진남관은 해체복원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고, 석가탑과 다보탑,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 해체및 보수계획 복원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었다. 이와 함께 복원이 완료된 미륵사지 동탑을 ‘20세기 최악의 복원사업’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충북 보은 법주사의 청동대불,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 철원 도피안사의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등의 예를 들어 복원의 폐해를 강력 비판했다. 유 청장은 “차라리 그대로 두었다가 무너지면 그때가서 복원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문화재 복원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해체·복원의 불기피성 주장도 적지 않아 문화재 해체·복원에 대한 유청장의 이같은 거부감에 대해 문화재청이나 문화재연구소 일부 전문가들은 “실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빚어진 현상”이라고 반감을 나타냈다. 문화재연구소의 한 간부는 “석가탑의 경우 정밀 안전진단 결과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 해체·복원이 사실상 결정됐었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까지 통과한 사안이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다른 간부는 “기존의 해체복원 방안도 충분한 관찰과 추가적 검사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청장 발언 이후 기존의 정책이 모두 무분별한 것으로 비쳐졌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전문가들 “원형손상 더 심해져” 이들은 “무너지면 그때가서 복원해도 늦지 않다.”는 청장의 말은 무분별한 해체복원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나온 상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목조 문화재의 경우 무너지면서 목재가 늘어지거나 부러질 수 있으며, 석조 문화재도 붕괴 과정에서 석재가 추가로 부서져 원형 손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분 보수를 통해 무너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그것마저 한계에 다다르면 해체·복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미륵사지 동탑 등 충분한 조사와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해체복원의 결과물은 유 청장의 지적대로 문제가 적지 않음을 시인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특별관리중인 문화재-석가탑 해체·복원 보수유지로 전환 현재 논의의 중심이 되는 문화재는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제21호)과 다보탑(국보 제20호),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및 동삼층석탑(국보 제112호), 미륵사지 서탑(국보 제11호),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등 6개다. 이들은 모두 7∼8세기 건립된 우리나라 최고의 석조 문화재로, 오랜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균열과 풍화, 내부 공동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어 ‘특별관리’에 들어간 지 오래됐다. 지난 21일 국립문화재연구소 배병선 건조물연구실장은 이들 석조문화재의 현재 상태와 보존관리 대책을 브리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감은사지 서삼층석탑은 맨 꼭대기층을 덮은 옥개석의 탈락 우려가 있고 옥개 받침석이 파손되는 등 옥개석 구조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이에 따라 연구소측은 최소한 꼭대기층인 3층의 해체보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국사 3층석탑은 당초의 해체복원 계획에서 장기계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균열 및 이격 부위 등 위험 부위에 각종 계측장치를 부착해 실시간 모니터링에 들어가기로 했다. 모니터링 도중 안전상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해체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벌어지거나 파손된 부위를 석재로 메우는 방법(의석 처리)을 쓰고, 표면강화제 처리로 더 이상의 부식이나 파손을 막는 방식으로 보수를 진행하게 된다. 다보탑은 누수가 석탑 훼손의 주요 원인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난간부 해체후 누수경로를 파악해 누수를 막고, 균열된 부재를 접합·강화처리할 계획이다. 미륵사지 서탑은 4년 전부터 해체조사가 시작돼 이미 1층만 남기고 모두 해체된 상태다.1층까지 해체조사가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보수 및 복원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엄동설한(嚴冬雪寒), 그야말로 깊은 한겨울이다. 겨우살이 짐승들은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채 더 이상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한껏 몸피를 움츠릴 터이며, 벌거벗은 나목들도 더 이상 수액을 얼리지 않기 위하여 한껏 중심을 뿌리에 내릴 터이다. 모든 생명들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하여 안간힘으로 혹독한 추위에 맞서고 있을 때, 어디 사람이라고 다르랴. 더군다나 혹독한 추위가 비단 수은주만은 아닌, 사람살이의 여러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라면 더욱 몸피를 움츠리고 차라리 주검이듯 뿌리 밑바닥으로 잦아들 터이다. ●한겨울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여주 8경 추위며 사람살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혹독하다면, 그대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 소중한 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자.‘소풍농월(嘯風弄月)’이라는 멋스러운 말이 있다. 바람에 휘파람을 불고 달을 희롱하며 기꺼이 한 몸이 되는 경지를 이른다. 어떤가, 차라리 저 바람이며 달만은 아닌 엄동설한과도 어울려 기꺼이 한 몸이 되어 보는 것이.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인 여주에는 뜻밖에도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풍광들이 많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여주팔경’ 혹은 ‘금사팔경’이라 하여 여주의 빼어난 풍광 8가지로, 여주 일대의 남한강을 일컫는 여강에 내려앉는 기러기, 청심루에서 바라보는 달빛,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마을의 저녁연기,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 아래 떠있는 고깃배들의 등불, 영릉의 푸른 신록, 팔대수의 청청한 숲을 꼽았다. 과연 어느 곳에나 드맑게 고답한 기운이 서려 있어, 소풍농월의 그대를 금방이라도 감싸 안을 풍광이다. ‘여주팔경’ 중에서도 나로서는 신륵사 종소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가 없다.1980년대에 신륵사에는 원경(圓鏡)스님이 주지로 주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거의 사흘이 멀다 하고 신륵사를 찾았다. 물론 원경 스님을 찾아서이다. 모르기는 해도 나는 자신이 지닌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없는 혹독한 시절이었을 터이다. 어느 때는 스님을 따라 나 또한 머리를 깎고서 단식을 하거나 혹은 한 달 넘어 머물면서 새벽이나 저녁이면 예불 대신에 신륵사의 종을 치기도 하였는데, 아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여 마침내 온누리로 퍼져가던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이라니! 처음에는 속된 중생의 손에 의하여 울리는 종소리가 혹여 삼십삼천의 뭇생명들을 잘못 인도할까 두려워 심장마저 벌벌 떨려났으나, 차츰 내 손으로 울리는 서른세 번의 종소리가 뭇생명들을 깨우고 또한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원력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다 보면 또 알랴, 어느 날 새벽에 저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어떤 무지함에도 번쩍 눈뜨게 될지. 원경 스님을 처음 대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스님은 역시 여주에 있는 흥왕사라는 절에서 주재하고 있었는데, 신륵사와는 달리 달랑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는 참으로 빈한한 절이었다. 절 식구 또한 빈한한 절답게 원경 스님과 벌써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 이렇게 달랑 둘이었다. 당시 작가 송기숙, 작가 황석영, 시인 조태일, 작가 이문구, 시인 이시영 등의 여러 문인들이 어울려 원주의 김지하 시인 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여주를 지나는 어름에 황석영 선배가 갑자기 원경 스님 이야기를 꺼내어, 에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고 흥왕사를 찾은 것이었다. 이미 원주에서 술이 거나해진 일행은 흥왕사에 오를 때도 아랫마을에서 한 말들이 막걸리 두어 통을 들고 올라와 대웅전 앞마당에 대뜸 술판부터 차렸는데, 송기숙 선생이 원경 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신륵사 종소리 뭇생명 일깨우고… “어이, 원경, 저 부처가 내 동생인데, 그러면 자네하고 나는 촌수가 어떻게 되는 것이여?” 그러자 원경스님이 호쾌하게 껄껄, 웃어넘겼다. “부처님 촌수야 너무 어려우니까 따지지 말고, 까짓것 저하고도 그냥 형님 아우 합시다. 형님!” “좋아, 그러면 부처 대신 아우가 먼저 내 술 한 잔 받게.” “좋지요.” 원경 스님은 막걸리 사발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더니 다시 송기숙 선생에게 넘겼다. 그런 원경 스님을 대경으로 우러러보는 나에게 누군가가 귓속말로 ‘저 스님,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들이야.’라고 소곤거렸다.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 행여 이름 모를 새라도 근방에서 귓속말을 엿들을까 싶어서였다. 시절이 많이 좋아진 지금이야 하늘이며 땅에 대놓고 무슨 말인들 못하랴. 그러나 당시로서는 박헌영이니 공산당이니 하는 말은 무슨 비상(砒霜)보다도 더 무서운 독극물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훗날 알았지만,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은 바로 원경 스님의 어머니였다. 빈한한 절, 한 사람은 스님이 되고 또 한 사람은 그 스님의 옆에서 공양주보살 노릇을 하는 박헌영 남로당 당수의 살붙이들. 역시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도 흥왕사 시절의 원경 스님만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젖어온다. 벌거벗은 나목이듯 뿌리를 밑바닥에 깊이 내리고 숫제 주검처럼 살아온 모자에게는 사람살이가 사시사철 엄동설한이 아닌 때가 없었으리라. 소풍농월의 여주에 어찌 드맑게 고답한 맛이 뒤따르지 않으랴. 신륵사 입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로 5km쯤 달려 강천면 이호나루를 지나면 바로 목아불교박물관이라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박물관의 한 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수줍게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걸구쟁이네’(031-885-9875)가 있다. 그러나 걸구쟁이네에 가기에 앞서 반드시 박물관에 들러 먼저 눈을 맑게 할 일이다. ●오신채·육류·해물 없지만 진수성찬 목아불교박물관의 목아(木芽)는 박찬수 관장의 호인데, 목조각 부문의 무형문화재 제108호인 그이가 필생으로 빚어내거나 수집한 6000여 불교 관련 작품들을 2600여평의 드넓은 터에 전시해 놓은 곳이 목아불교박물관이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야외조각공원에는 연못이며 수목들 주변에 돌이며 청동 같은 재료로 정교하게 빚어낸 미륵삼존대불, 백의관음상, 비로자나불,3층석탑 등 4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삼존대불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미륵삼존대불은 제작기법이 종전의 여느 부처상과는 달리 몸체 자체의 선을 반추상 기법으로 과감하게 처리하여 현대적인 세련미를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인도의 석굴사원을 모방했다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건물인 전시관은 외양부터 아름답지만, 안에 있는 여러 전시품을 둘러보다 보면, 박물관장의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깊은 종교적 심성 또한 무슨 향기처럼 저절로 보는 이의 가슴에 드맑게 스며온다. 걸구쟁이네는 주인인 안은자씨가 태어나서 자란 ‘걸구쟁이’란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바로 인근에 있는 강촌면 걸구쟁이에서 나고 자라 마흔 나이에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주인의 순진한 인상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원래 사찰음식은 오신채라 불리는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멀리 하고, 육류며 해류 따위 고기를 일체 쓰지 않은 고답한 음식이다. 오신채며 고기 대신에 스님들의 수행 중에 부족한 기름기는 깨며 콩, 부각 등으로 보충하고, 계절마다 산야에서 나오는 냉이나물, 취나물, 유채나물, 곤드레, 씀바귀, 소루쟁이, 고사리, 도라지, 머위, 근대, 곰취 등 각종 싱그러운 나물들을 주로 한다. 오이며 고추, 무, 가죽나물, 깻잎, 콩잎, 더덕, 산초 같은 여러 장아찌류에 버섯구이, 호박꼬지, 박꼬지, 산초두부, 장떡, 도토리묵무침에 된장국이며 청국장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한상 떡 벌어진 진수성찬이다. 걸구쟁이네는 사찰정식(1만5000원) 이외에도 도토리 요리도 전문으로 해서, 도토리수제비(6000원), 도토리묵밥(5000원), 도토리총떡(5000원), 도토리묵(1만원)이 있고, 각각 8000원짜리인 곤드레돌솥밥, 취나물돌솥밥, 산나물돌솥밥에, 모듬버섯전이며 장떡도 있다. 어느 것이나 안주 삼아 곡차라고 부르는 동동주 몇 사발까지 거나하게 마실 수가 있다. ●12가지 한약재 사용한 별미 돼지고기 보쌈 만일 여러 이유로 목아불교박물관이며 사찰음식이 저어된다면, 역시 신륵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북내면으로 접어들 일이다. 거기에 넓은 벌을 앞마당 삼아 무슨 사대부 집안처럼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의 형태의 ‘예닮골(031-883-5979)’이 있다.‘예닮골’이란 그대로 옛날을 닮은 마을이란 뜻인데, 얼핏 둘러보아도 뜰 안의 대청마루며 물레방아에서 가옥 뒤편의 장독대며 심지어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든 주인 되는 이순옥씨의 섬세한 손길이며 마음씨가 쉽게 묻어난다. 예닮골의 맛은 무엇보다도 예닮정식(1만 2000원)이 우선이다. 무려 12가지 한약재를 사용하여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없앤 돼지보쌈에다가 묵은 김치에 시래기를 섞고, 두부며 당면, 고기를 사용하여 커다랗게 빚은 왕만두에, 뚝배기 위로 샛노란 연꽃처럼 예쁘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며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고등어조림, 동치미, 망초대, 시래기무침, 표고버섯볶음, 도토리묵, 잡채, 짜배기김치,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무장아찌, 멸치조림 등 25가지에 이르는 반찬이 커다란 상이 좁아라고 가득 펼쳐진다. 게다가 이천쌀에 못잖은 여주쌀의 기름진 쌀밥이 나오고, 끝머리에는 누룽지까지 기다리고 있다. 아니, 식사를 끝내기 전에 주인이 자랑하는 예닮주를 반드시 맛볼 일이다. 전통적인 비법에 따라 빚었다는 예닮주의 누룩냄새가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이며 입에 살갑게 감쳐드는 감칠맛은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았다. ■ 전통차 손수 끓여보세요 여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미진하다면 마지막으로 신륵사 앞에 있는 세계도자기엑스포의 토야도예공방에 들러보자. 내가 즐겨 찾던 80,90년대와는 달리 신륵사 앞 넓은 강변이며 들판은 어느 새 관광지가 되어 강에는 황포돛배가 떠있고, 강변에는 보트장이며, 퍼팅장, 야영장 같은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뜻한 외양의 식당이며 숙박시설들이 또한 뒤따르고 있어, 옛날의 황량한 강변이며 들판만 기억하고 있는 나의 눈을 차라리 설게 만든다. 그런 신륵사 일대에서도 먼저 돋보이는 것은 단연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건물들이다. 생활도자전시관을 비롯하여 토야도예공방 건물이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시원시원하게 들어서 있어서 보는 이의 발길을 저절로 이끈다. 토야도예공방은 이를테면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다. 직접 도자기를 빚어볼 수 있는 ‘흙체험’에서부터 도예작가가 될 수 있는 ‘도예교실’, 아이들을 위시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흙놀이’, 전통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토야다실’까지 모두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다. 이중에서 ‘토야다실’(031-884-8552)은 전통차를 다룰 줄 모르는 이에게도 본인이 손수 차를 즐기게끔 찻물을 끓이는 법부터 차를 마시고 난 후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고른 도자기 찻잔으로 차를 담아 입안에 오래 맴도는 드맑은 차향을 얼마든지 즐긴 끝에, 나중에는 도자기 찻잔도 집으로 가져갈 수가 있다. 차향을 즐기고 도자기 찻잔을 챙기는 값이 불과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이다. 토야도예공방의 휴무인 월요일만 제외하면 언제든지 토야다실을 이용할 수 있다.
  • 전철타고 떠나는 천안삼거리 여행

    전철타고 떠나는 천안삼거리 여행

    ●서울~천안 수도권 전철 20일 개통 천안을 아시나요? 과거급제 꿈을 품은 남도 사람들이 서울을 향해 가던 중, 잠깐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아래 땀을 씻고 갔던 곳이지요. 그후 기차가 주요한 교통수단이던 시절에는 그 유명한 호두과자를 사기위해 지폐 두어장을 들고 기다리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일반화된 후 천안은 지나가는 곳이 됐습니다. 그러나 1월20일, 오늘 충남 천안까지 전철이 개통되면서 천안은 새로워졌습니다.2300원짜리 전철 표 한장이면 서울에서 천안나들이가 가능합니다. 민족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는 역사교실, 천안을 가볼까요. 숨어있는 맛도 다양한 ‘맛있는 도시’ 천안을 추천합니다. 천안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와~~~ 맛나는 천안 ●천안명물 호두과자 고속도로 휴게소 어디든 있는 호두과자의 원조는 역시 천안에 있다.70여년 역사의 구성동 천안소방서옆 학화 할머니 호두과자(www.hodoo1934.com,041-567-3370)가 효시. 가게에 들어서면 맛있는 호두과자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부드럽고 고소한 뒷맛을 여운으로 남기는 호두과자는 씹히는 호두의 크기가 틀리고, 흰팥의 껍질을 제거해 쓰는 흰색 소는 기품이 느껴질 정도로 적당한 단맛이다. 천안역에서 택시로 2000원 거리. ●오리의 모든 것 다양한 오리 요리를 코스로 즐기는 신토불이는 천안에서 유명한 집이다. 한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금상첨화 정식(4인·5만 9000원)은 생오리로스구이, 오리훈제 바비큐, 양념꽃게장, 오리양념주물럭, 영양죽에 이어 후식으로 팥빙수까지 나온다. 맛깔스러운 백김치와 밑반찬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다. 얇게 저민 식초에 절인 무에 싸 먹는 오리로스는 아작아작 씹히는 무와 담백한 오리고기의 조화가 절묘하고, 훈제로스는 머스터드 소스에 찍어 입에 넣으면 그냥 녹는다. 서산에서 직접 가져온 꽃게장은 꽉 찬 게살과 양념 고추장의 조화가 일품이다. 본점(584-4477)은 직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양당리 신토불이로 가면된다.4000원 정도. 천안분점은(553-5292)은 천안역에서 택시를 타고 새터마을 신토불이로 가자면 된다.4500원정도. ●순대의 본고장을 찾아 순대는 ‘병천’이 원조다. 병천에서도 원조를 찾는다면 충남집(564-1079)이다. 당면 마늘 양파 등과 돼지피를 살짝 섞어 만든 속을 깨끗하게 씻은 창자에 꾹꾹 눌러 넣은 다음 푹 쪄낸 순대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하다. 또 돼지사골에 생강 마늘 양파 등 특유의 재료를 넣고 은근한 불과 센불을 교대로 24시간 이상 곤 국물에 순대와 머릿고기 등을 담아내는 순댓국은 천안을 찾으면 반드시 맛봐야 한다. 순댓국 특유의 냄새는 전혀 없다.40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충남집은 김치부터 순대까지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순대 한 접시 5000원, 순댓국은 4000원. 천안역에서 병천행 버스는 많다.30분 정도 소요.950원. 대부분 독립기념관을 거쳐 병천의원 앞이 종점이다. 종점에 내려 걸어가면 3분. ●장금이 솜씨도 맛보세요 ‘메밀총떡’ 들어보셨나요. 천안 유창동에 있는 봉평장터(556-6272)가 자신있게 내놓는 별미다. 다진 고기와 호박 배추 당근 등 갖은 야채를 볶은 다음 얇게 부친 메밀에 넣고 말아 놓았다. 아작아작 씹히는 야채와 고기, 쫄깃쫄깃한 메밀의 맛이 잘 어울린다.4개에 4000원. 막국수도 특이하다. 커다란 냉면 그릇 하나에 고추장 다대기가 올려져있는 메밀 국수 사리와 아무것도 없는 메밀사리, 두개가 가지런히 담겨있다. 일단 다대기에 면을 비벼 먹는다. 다대기의 매콤달콤함을 입안 가득 느끼고 그 다음에 시원한 육수를 부어 나머지 면을 먹는다. 시원하고 산뜻한 육수와 약간 남아있는 다대기가 어우러져 정말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5000원. 천안역에서 택시를 타고 유장동 천성중학교 맞은편으로 가자고 하면된다.15분 정도 걸리고 3000원 정도 나온다. ●너희가 돼지를 알아 신부동의 고기(563-9233)는 정말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집이다.‘가브리살’과 ‘볼살’전문점. 돼지 등심의 안쪽을 일컫는 가브리살은 한마리에 300g, 말 그대로 돼지 볼살은 한쪽에 100g씩 200g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다. 비계가 전혀 없는 돼지 살코기인 볼살(7000원)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가브리살(8000원)은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최고. 날치알을 얹은 알밥(2000원)은 된장찌개와 함께 식사로 든든하다. 천안역이나 두정역에서 택시를 타고 신부동 갤러리아 주차장 맞은편 제일은행 앞에 내리면 된다.2000원. ●떡볶이도 천안에선 달라 ‘떡볶이 맛이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신안동 떡볶기 나라(562-2677)로 가봐야 한다. 테이블이 5개뿐, 젊은이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쫄깃한 떡과 진한 국물맛이 ‘끝내준다’. 아주 매콤하면서 뒷맛은 달콤하다. 떡볶이 2500원. 천안역에서 신부동 국민은행 뒤 먹자골목으로 가자고 하면 된다.2000원정도. 힐튼장 여관옆에 있다. ●이탈리아의 맛을 천안에서 천안 봉명동에 있는 쿠치나(578-5556)는 이탈리아 정통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주인이자 주방장인 이종철(47)씨가 직접 식재료를 사고 음식을 만든다. 해산물샐러드(1만 5000원), 안심스테이크(3만 2000원), 해산물 스파게티(1만 4000원)가 주메뉴. 천안역에서 서부역쪽 출구로 나와 택시를 타고 봉명동 전자랜드로 가자고 하면 된다.2000원. ●맘씨좋은 아저씨가 만들어주는 초밥 맛있는 초밥을 무한정 먹을 수 있는 곳이 쌍용동 스시 이찌방(572-9288)이다. 오후 1시30분까지는 어른 1만 5000원이면 각종 초밥과 우동, 캘리포니아롤 등을 실컷 먹는다. 저녁에는 어른 3만원 천안역에서 서부역쪽 출구로 나와 택시를 타고 쌍용동 컨벤션센터로 가면 된다.3000원정도. ●세계의 꼬치요리도 천안에서∼ 다양한 꼬치요리를 맛볼 수 있는 두정동 화투(563-5292). 멕시코 타코(1만 5000원), 도리쿠시 야키(1만 2000원) 등 세계 각국의 꼬치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멕시코 타코는 베이컨, 피망, 소고기 등을 꼬치에 구워 토르티야에 살사 머스터드 등 소스를 발라 싸서 먹는다. 천안역에서 택시로 두정동 부경아파트 정문 앞에 내리면 된다.3500원정도. ■ 야~~~ 신나는 천안 ●민족의 혼을 느끼고 일제 강점기의 항일 투쟁사와 아픈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독립기념관과 유관순열사 사적지가 있다. 독립기념관을 가는 버스는 천안역에서 320,350,410번 등 12개가 있다.20분 거리,950원. “엄마 저거 뭐야?”하는 아이의 물음에 눈길을 들어보니 어마어마하게 높은 탑이 눈을 끈다. 가까이 가보니 무려 높이가 51m나 되는 겨레의 탑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서 지은 겨레의 집은 높이 45m, 길이 126m로 웅장하다. 겨레의 집 뒤편에 있는 전시관으로 가보자. 시대별·주제별로 근대민족운동관, 일제침략관,3·1운동관 등 7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세히 보려면 4시간이나 걸린다. 어른 2000원, 어린이 700원.(041)560-0114. 유관순열사 사적지는 1919년 3월1일 3000여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불렀던 아우내장터에서 300m 떨어져 있다. 유관순열사기념관(564-1223)으로 들어간다. 기념관에서는 열사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와 아우내만세운동을 묘사한 부조물 등을 볼 수 있다. 기념관 뒤편으로 유관순 열사 생가도 있다. 입장료 무료. 천안역에서 병천가는 버스를 타면된다. 병천순대마을에서 걸어서 15분.950원. ●온천행궁(溫泉行宮)의 본고향 유명한 온천도 많지만 온양온천은 조선의 왕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곳이란 점에서 남다르다. 천안역에서 90,91번 버스로 35분 정도 가면 온양온천역에 도착.1450원. 그중에서도 온양관광호텔(540-1201)이 유명하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온양온천역에서 걸어서 5분. 이밖에도 태조산 각원사(561-3545)는 거대한 청동대불로 유명하다. 높이 15m, 귀의 길이만도 175㎝,60t 무게의 청동좌불 미소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인근 태조산 조각공원(550-2522)도 인기다. 산책로와 정상 전망대, 눈썰매장까지 갖추고 있어 아이들이 있다면 들러볼 만하다. 버스가 1시간에 한대씩 다니므로 택시가 낫다. 천안역에서 4500원 거리. 천안시는 매주 일요일 한 차례씩 무료 순환관광버스를 운행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천안역광장을 출발, 우정박물관~태조산조각공원~각원사~유관순열사 유적지~조병옥 박사 생가~ 독립기념관 등을 도는 코스. 천안시 문화관광과 (041-550-2032).
  • [공무원시험 대강연회 지상중계] 명강사 8인 ‘족집게 강의’

    [공무원시험 대강연회 지상중계] 명강사 8인 ‘족집게 강의’

    공무원 시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그만큼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13일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신문 공무원 시험 대강연회’에는 각 과목별로 명강사들이 총출동, 공무원 7·9급 시험 준비요령 및 과목별 점수를 높이기 위한 비법 등을 소개했다. 영어는 시험 비중을 감안,2명의 교수가 특강을 했다. 강연회에 미처 참석하지 못한 시험 준비생들을 위해 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 국사-심태섭 교수 전 분야에 걸쳐 출제된다. 따라서 특정 부분만 공략해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최근 지문형 문제가 많이 나오고 있다. 국정교과서의 비중이 높아 지문 그대로 문제화되기도 한다. 국정교과서를 기본으로 수험 준비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9급의 경우, 국정교과서 활용 문제가 특히 많다.7급은 상대적으로 지문 활용도는 낮은 편이고 암기력을 요하는 문제 비중이 크다. 직렬별로 출제 경향이 조금씩 다르다. 행자부와 검찰직에서는 원인, 현상, 결과 등을 묻곤 한다. 단답형의 보기가 많은 법원직 또는 등기직과 차별화된다. 지방직은 지역과 관련된 문제가 출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충남의 경우 수덕사 대웅전에 관련된 문제를 출제하는 식이다. 지난해 대구 시험에서는 노태우 정부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최소한 응시하는 지역의 중요문화재나 중요인물 등은 숙지해야 당황하는 일이 없다. 법원직, 등기직에서는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문제가 종종 출제된다. 세계문화유산, 백두산정계비를 이용한 간도귀속문제 등이다. 올해도 북한의 고구려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나 중국의 동북공정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의 경우 최근 출제경향이 수능시험과 매우 유사해 수능시험 교재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지문과 보기의 길이 등 출제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된다. 이와 함께 주의할 것은 많은 수험서를 이것 저것 보지 말라는 것이다. 국정교과서와 문제집 정도면 충분하다. 다만 교재 전체를 정독해 한 권이라도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매번 동일한 사람이 출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 수준은 유동적일 수 있지만 난이도나 경향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2005년도 문제 역시 이전 시험의 기출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정교과서의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남부행정고시학원 ■ 행정법-홍성운 교수 행정법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 공무원 시험준비 자세로서의 능률적인 방법은 행정법 관련 문제들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피상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학은 논리적인 학문이다. 처음과 끝이 인과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이것이 이해 위주의 행정법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예습·복습이 합쳐진 행정법 강의를 통한 반복 학습만이 체계 완성의 지름길일 것이다. 매번 강의를 들을 때 책의 목차를 보면서 현재 공부하는 부분이 행정법 전체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짚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분석하여 동종유형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응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2004년에 시행된 국가직 9급 시험 문제, 각 시·도 지방직 9급 시험 문제, 국회직 8급 시험 문제 등과 함께 최근 10년 동안 행정법 기출문제들을 ‘신월 행정법’에 정확하게 반영시켜 놓았다. 아울러 최근에 제·개정된 법령은 철저히 숙지해야 한다. 행정법 관련 법조문에서 조문내용을 묻는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고 있는 경향이다. 최근에는 판례문제가 점증하는 추세이다. 신월 행정법에서 주요 판례를 완벽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그 판례 요지를 정리해 두어야 할 것이다. 행정법에 대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행정법은 7·9급 공무원시험 등에서 10여년 동안 출제돼 왔기 때문에 출제경향이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다. 특히 올해 처음 시행된 행정법총론의 출제경향도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행정법의 출제 흐름을 파악하여 꾸준히 정진하면 행정법총론의 정복은 의외로 빨리 올 수 있다. 한교고시학원 ■ 헌법-채한태 교수 헌법은 다른 법률에 비해 추상적이어서 공부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과목이다. 무조건 암기해서는 고득점을 딸 수 없다. 일반적인 원칙에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고, 원리를 이해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왕도는 없으나 효율적인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첫째, 헌법조문을 수시로 낭독할 것을 권한다. 각각의 문언을 분류해 읽는 것이 그 방법이다. 둘째, 헌법의 목차를 중심으로 맥을 잡는 것이 우선이다. 세부내용은 목차를 통해 큰 틀을 잡은 후 정리한다. 셋째, 기출문제를 완벽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수다. 기출문제를 통해 출제유형과 경향을 파악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넷째, 헌법재판소의 판례와 관련 개정법률을 중심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장르별로 살펴 보면, 헌법서론편에서는 고유한 의미의 헌법, 근대입헌주의 헌법, 현대복지국가의 헌법, 형식적·실질적 의미의 헌법이 중요하다. 헌법의 제정과 개정은 매년 1문항 정도 출제된다.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제도와 관련해서는 정당, 선거, 공무원,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매년 2∼3문제가 출제된다. 가장 분량이 많은 기본권편은 특히 중요하다. 기본권의 내용과 위헌·합헌을 중심으로 출제된다. 통치구조편에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차이점을 확실히 정리해 둬야 한다. 행정부 관련, 국무총리의 지위 및 권한, 국무위원과 행정 각부의 비교, 감사원의 권한 등이 정리 사항이다. 법원 조직 중에서는 대법원의 조직, 사법부 독립, 상소제도 등이 중요하다. 또한 헌법에 관련된 부속 법률과 헌법조문 내용의 출제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헌법조문을 발췌해 정확한 숙지여부를 묻는 문제도 2∼3문제씩 출제되고 있다. 헌법 관련 부속 법률에서는 국회법,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정당법, 정부조직법, 부패방지법 등이 자주 출제된다. 남부행정고시학원 ■ 국어-김재정 교수 7·9급 공채 시험에서의 국어시험은 국어과목에 관한 실력을 측정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의외로 많은 수험생들이 현재의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과 공무원 시험의 국어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무원 국어시험에 수능에서 요구하는 발상을 토대로 한 문제가 최근 몇 문항씩 출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능에서의 언어영역은 국어가 포함된 통합 교과이지, 국어과목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5년에 한 번씩 바뀌는 고교 교육 과정에 따라 2002년부터 7차 교육과정이 실시되고 있으나 공무원 국어시험은 고교 교육과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험이 아니므로 5차,6차,7차 과정을 포괄적으로 학습해 두는 것이 좋다. 문법과 한자, 한문 분야에서 반드시 만점을 획득해야 한다.7·9급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학습 범주가 뚜렷한 문법과 한자, 한문에서 반드시 만점을 받아야 한다. 문학과 어휘 분야는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수월하고 상대적으로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학습 범주가 너무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만점을 기약하기 어렵다. 때문에 한 두 문항 정도는 틀릴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시험 수준에 적합한 교재와 강의를 잘 선택해야 한다. 합격을 위해서는 시행 착오를 최소화하고 단기간에 국어 시험에 관련된 제반 사항의 틀을 잡아줄 수 있는 잘 짜여진 교재와 강의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교재와 강의를 선택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에는 과장된 광고 등에 현혹되지 말고 먼저 시험 준비를 한 선배들의 조언을 참조하는 것이 좋다. 분명한 것은 우직하고 끈기 있게 시험 준비를 한 자가 결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험생 여러분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교고시학원 ■ 경제학-박지훈 교수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다. 수학적인 개념 이해에 익숙하지 못해 무조건 암기하려만 한다. 하지만 경제학은 암기과목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함수관계만 이해한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오히려 경제학은 돌출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에만 이르면 고득점을 할 수 있는 전략과목이다. 무엇보다 경제학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이론은 내용이 방대하고 상호연결돼 있어 특정 부분만 학습해서는 안된다. 전체를 논리적으로 이해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기본서로 출발해야 한다. 경제학원론 교재를 3개월간 천천히 정리한 후, 이론정리를 기본으로 문제풀이 연습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수리적 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대부분의 이론이 그래프로 표현되기 때문에 직접 손으로 써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래프를 눈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실패를 좌초하는 일이다. 그래프 그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시험에서도 실수를 줄이고 문제풀이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다.7급 국가직 시험에서는 미시경제학 30%, 거시경제학 50%, 국제경제학 20% 등의 비중으로 출제된다. 경제학원론을 이해하면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기본서에서 다루지 않거나 응용해야 하는 문제들이 출제되기도 한다. 응용문제는 매년 5문제 내외의 비중을 차지한다.2002년 3문제,2003년 6문제였다.2004년의 경우 지난해보다는 평이하게 출제됐지만 경제원론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이 4문항 출제됐다. 응용문제 역시 원리이해가 기본이지만 응용력 향상을 위해서는 문제집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기출문제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한다. 출제경향이 기출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7급 기출문제뿐만 아니라 행정고시, 사법시험, 감정평가사시험 등의 기출문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남부행정고시학원 ■ 영어-김민권 교수 공무원 시험을 1∼2년 정도 준비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영어 어휘를 어휘책에 나와 있는 알파벳순의 어근을 따져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더욱이 7급은 9급에 비해 7개 과목이라는 적지 않은 과목 부담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대안이자 여태까지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이 각자 자신이 준비하는 시험에 맞게 어휘집을 선택해서 순환개념으로 해 나가는 것이다. 문법의 경우는 2002년을 기점으로 많게는 6∼7문제까지 포함됐다. 물론 과거 문법문제 비중이 크지 않을 때에도 기본적인 문법지식을 강조해 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과거에 해 왔던 방식대로 문법책을 보고 그에 해당하는 문제를 풀어봐서 실력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 목차위주의 공부다. 예를 들면,3형식 가운데 ▲4형식으로 오인하기 쉬운 동사 ▲동족목적어 ▲재귀목적어 ▲동사구 등으로 목차를 세워 목차를 보고 내용을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공부방법과 반대로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지만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 확신한다. 독해는 문법과 어휘의 총아다. 그러므로 다양한 사고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행히도 공무원 수험 영어에서는 그다지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독해지문은 잘 나오지 않는다. 지문 자체만 잘 이해하면 큰 무리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출제된다. 철저한 분석만 하면 독해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독해지문을 수식어와 비수식어 그리고 품사 개념으로 분석해서 문장구조를 익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문장을 볼 수 있는 시각이 몇 배 넓어질 것이고, 어느 부분의 해석이 틀렸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눈으로만 하는 공부는 금물이다. 한교고시학원 ■ 행정학-최승호 교수 객관식 시험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서나 문제집의 세부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행정학을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작 행정학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돼 있고, 중요한 주제들 간의 연결이 어떤 식으로 돼 있는지 방향성은 잃어버린 채 세부적인 내용에만 치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암기량은 늘어나지만 성적은 올라가지 않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학교 수업이나 학원 강의를 통해 행정학의 전체 흐름을 들어본 후에 중심책을 차분히 정독하고, 참고서나 문제집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즉 행정학을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무조건적으로 기본서를 읽거나 문제집의 반복적인 확인이나 암기하는 방식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중심책을 반복적으로 학습해 익숙해지는 것이 지름길이다. 중심책이란 기본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험장에까지 가지고 갈 최종 정리교재를 말한다. 중심책의 선택기준은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나도 봐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부 스타일에 적합하면 된다. 이와 관련, 중심책의 내용을 대신하는 서브 노트를 작성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서브 노트는 행정학의 흐름과 세부적인 핵심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노트를 말한다. 서브 노트를 작성하는 것은 반복학습에 있어서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주제의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며, 수험생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방식이다. 객관식 시험의 특성상 문제집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개인적으로 문제집은 보충교재라고 생각한다. 즉, 어디까지나 중심책이나 서브 노트가 주교재가 되어야 하고, 문제집은 보완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집의 문제 중에서 기출문제는 중심책이나 서브 노트를 일독 하는 단계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한교고시학원 ■ 영어-김신주 교수 외국어 수험공부의 핵심은 그들의 어법 즉, 문법을 익히는 것이다. 출제 비중이 가장 높은 독해는 시험경향에 맞춰 많은 지문을 접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글의 구성 방식에 대한 이해 없이 단어 조합을 해석하는 데 급급해 한다면 고득점을 받을 수 없다. 문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법 공부가 기본이 돼야 한다. 예를 들어 ‘전치사+명사’가 형용사나 부사로 쓰인다는 것은 독해시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문법이다. 또 영어문장의 형태를 이해한다면 독해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주제, 예시, 결론의 순서가 일반적인 영어문장의 형태이며, 중요사항은 한 문장의 앞 부분, 한 단락의 첫 문장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연결사의 의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추가(in addition,moreover), 예시(to illustrate), 대조(on the opposite,conversely), 역접(however,yet) 등 연결사의 의미별로 분류해 정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법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병치법, 수의 일치, 시제 일치, 가정법, 수동태, 부정사, 동명사 분사 등이다. 문법책은 중요 내용이 간략히 정리된 것이 좋으며, 이해 위주로 반복해야 한다. 어휘 문제도 3∼4문제씩 꼭 출제된다. 다의어 정리가 고득점의 지름길이다. 단어를 암기할 때는 기본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과 더불어 그 단어가 문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1∼2문제씩 출제되는 생활영어는 상황별로 문장을 정리해 반복학습함으로써 눈에 익히도록 한다. 공무원 시험에서 영어를 정복하지 못하면 합격은 요원하다. 쉬운 길을 택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교재를 이용해 정석대로 공부할 것을 권한다. 또 좋은 영어지문을 가능한 한 많이 접하면서 수험공부뿐 아니라 교양인으로서의 자질도 함께 길러 나갈 것을 권한다. 남부행정고시학원
  • [데스크 시각] 씁쓸한 금강산관광 6돌/김균미 국제부 차장

    지난 19일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 6주년을 맞아 금강산 현지에서 마련한 골프장 착공식과 기념식, 신계사 대웅전 낙성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현대가 지난 1998년 11월 18일 밤 동해항에서 금강산 관광선을 띄운 이후 해로와 육로로 금강산을 다녀온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금강산 출장은 전혀 새삼스러울 것도, 더 이상 관심을 끌지도 못한다. 하지만 아직도 금강산에 가보지 못했느냐는 주변의 시큰둥한 반응과는 달리 이번 금강산행은 여러 면에서 직업적인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달 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외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 핵과 탈북자 문제 등 북한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 16일부터 외신들이 북한의 공공장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철거되고 극존칭이 생략되고 있다며 북한 권력 내부의 이상조짐 가능성을 잇따라 제기하고 나선 것도 주목할 만했다. 또 6년동안 한국 관광객들을 접한 북한 현지인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1박2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이같은 궁금증들이 하나라도 풀릴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고 19일 ‘출국수속’을 밟았다. 방북 절차가 간소화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만으로 수속을 마쳤다. 현지 여성 관광안내원은 이날 금강산 관광 전용도로가 개통돼 우리가 첫 이용객이라고 했다. 전용도로 개통으로 북측 입국사무소까지는 5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도로 양측에는 한국 관광객들의 통행이 허용된 연두색 철책이 길게 세워져 있었다. 금강산 지역인 고성군 온정리 마을을 지날 때 차창 너머로 김일성 주석의 대형 사진만 걸려있는 모습이 잡혔다. 관광안내원은 최근 김 주석의 사진과 함께 걸려있던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내려졌다고 했다. 북측이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관광특구내 숙소와 온천장, 등산로 입구에 이르는 길들이 최근에 포장됐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천선대와 상팔담 등산로 곳곳의 절벽에 새겨져 있는 김일성·김정일 찬양문구의 붉은 칠들은 거의 대부분 벗겨져 있었다. 이것도 최근 몇달새 일이라고 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거부감을 들어 현대아산측이 요구한 것이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다. 하지만 앞서 등산길에서 만난 북한측 여성 안내원은 개인적인 대화는 일체 피했다. 금강산 관광특구 내까지 이어져있는 연두색 철책은 관광객과 일반 북한 주민들과의 직접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매일 평균 1000여명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올라본다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아산측은 특구내에 골프장 2개를 착공한 데 이어 인근에 눈썰매장 공사도 한창이었다. 스키장과 수상레포츠, 쇼핑센터를 갖춘 국제적 레저단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본격화하고 있다. 단순한 사업이 아닌 남북교류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때문에 특구내에 빠르면 연내에 이산가족면회소를 착공할 수 있다는 소식은 의미가 크다. 19일 현재 금강산을 다녀간 한국인은 83만 9000명. 올겨울 정부의 경비지원으로 교사와 학생 2만여명이 이곳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관광지내 휴게소와 레저단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온정각과 금강산특구 개발 청사진을 보면서 기대보다는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북핵 등 외부 정세에 따라 언제든 급변할 수 있는 게 남북교류의 현주소인 까닭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김균미 국제부 차장 kmkim@seoul.co.kr
  • [학술·종교플러스] 조계종 포교대상에 동춘스님

    부산 내원정사 조실인 동춘 스님(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 제16회 불교조계종 포교대상(종정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조계종 포교원(원장 도영 스님)은 최근 심사위원회를 열어 포교대상에 동춘 스님을, 공로상에 찬불동요 보급ㆍ제작에 힘쓰고 있는 ‘좋은 벗 풍경소리’와 손안식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을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12월 4일 오후 3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다.
  • 조계사, 전통문화중심으로 탈바꿈

    조계종 총본산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조계종은 2일 2008년까지 조계사를 전통문화의 중심공간으로 조성하는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성역화 불사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성역화 계획에 따르면 조계종은 오는 2008년까지 총 250억원을 투입해 조계사를 서울 도심의 문화중심 공간으로 정비한다. 우선 조계사 경내 2600여평 대지에 일주문을 비롯해 보제루,3층목탑인 만불보전, 극락전 등을 해체복원하거나 신축하게 된다. 현재 보수 공사가 한창인 대웅전을 빼놓곤 경내의 모든 건물을 새로 짓는 대규모 불사다. 조계종은 1단계로 대웅전 보수를 마무리짓고 일주문, 보제루, 문화사업관, 극락전, 지하식당을 정비한 뒤 종각, 지하보도, 지하주차장, 종무소 및 신도회 사무실, 신도회관에 이어 만불보전, 해탈문 재건 등 5년간 총 4단계에 걸쳐 성역화 불사를 진행한다. 이 가운데 목탑 만불보전은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세운다는 복안이다. 조계종은 조계사를 정비한 뒤 인근 경복궁과 인사동을 연결하는 문화벨트를 조성, 조계사를 서울의 문화중심 공간으로 만들어 낸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조계사와 인사동을 잇는 지하보도와 지하상가를 만들어 인사동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조계사에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조계종은 이같은 불사가 모두 마무리되면 조계사를 중심으로 경복궁-인사동까지 연결되는 문화벨트뿐만 아니라 스님들의 교육·신행·수행 공간과 일반 신도·시민·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열린 휴식공간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말 지금의 수송공원에 창건된 각황사부터 시작된 조계사는 그동안 조계종 총본산의 명성에 맞는 도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조계사측은 따라서 그동안 이같은 불사를 위해 주변 부지 매입에 매달려 왔지만 별 진전이 없어 현재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중심으로 불사를 시작하게 됐다. 조계사 주지 원담 스님은 “이번 불사는 크고 작은 조계종 내분 탓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는 조계사의 좋지 않은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며 “일반 신도들과 서울시 당국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불사 추진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땅거미가 질 무렵, 낯선 마을에 들어서도 밥짓는 향기가 가득한 마을은 따스해 보인다. 거기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먹던 음식, 내 어머니의 솜씨보다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지만, 그래도 음식맛이라면 ‘남도’를 으뜸으로 치게 된다. 남도 중에서도 순천은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은 곳이다. 특히 이맘때 순천은 짱뚱어가 맛있는 철이다. 겨울잠을 자러 갯벌로 들어가기 전의 짱뚱어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이다. 가을에 떠나는 남도 별미여행, 일단 속을 헛헛하게 비웠다. 맛있는 음식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 자꾸 입에 가득 침이 고였다.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아무리 짱뚱어가 손짓해도 해지는 순천만을 놓칠 수는 없는 일. 일단 대대포구로 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배를 타고 나간 순천만은 아름다웠다. 아니 황홀했다. 썰물에 드러난 광활한 바다의 속살, 갯벌과 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의 수로, 군데군데 동그랗게 자리잡고 있는 갈대와 보랏빛의 칠면초, 다가가면 푸다닥 하얀 날개를 펼치며 춤을 추는 이름모를 철새들의 군무,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빠알간 저녁놀까지 누구나 10대의 문학소년·소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왼쪽의 여수반도와 오른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여 드넓은 순수한 갯벌인 순천만에서 해안까지 펼쳐진 갈대군락이 무려 5.4㎞. 유기물이 풍부한 탓에 조개, 갯지렁이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갯벌은 철새들의 터전이다. 수로주변에 있던 갈대밭에서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갯벌에서 자리잡아 갈대군락이 이뤄졌다는데 이상하게도 갈대밭이 동그랗게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원형의 갈대밭은 마치 세포증식을 하듯 합쳐져 타원형에서 더 큰 원형으로 커져가고 있다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혼자 앉아 바다와 파도와 갈대와 철새들과 친구하며 앉아 있고 싶은 곳이다. 가는 길 :서순천IC에서 국도 2호선을 타고 순천시내와 청암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818번 지방도를 타면 순천만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대대포구는 이정표가 없어 지나치기 쉬우므로 대대마을에서 길을 반드시 확인할 것. 대대포구에는 순천만을 돌아보는 유람선이 운행중이다. 보통 6명 기준으로 3만원을 받는다. 대대포구에서 순천만을 따라 해안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된다. 대대포구 어촌계장(019-605-0511)에게 연락하면 된다. 바닷가에서 두어 시간 놀다 보니 배가 출출해져서 그만 짱뚱어를 맛보러 일어섰다. 짱뚱어 요리를 잘 한다는 해돋이 가든(061-742-8745)으로 갔다.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좋지만 친척들이 직접 잡아오는 짱뚱어를 쓰기 때문에 맛과 신선도가 최고다. 짱뚱어는 요즘 가격이 많이 올라 보통 마리당 2000원선이라고 한다. 구이는 잘 달군 프라이팬에 짱뚱어 애(내장)를 복아 기름을 만들어 굵은 소금과 함께 짱뚱어를 굽는다. 고소한 맛이 별미. 짱뚱어전골 또한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 호박과 시래기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된장으로 간을 한 후 살아있는 짱뚱어를 넣고 끓인 전골은 구수하다. 소화가 잘 되고 영양가도 풍부한다. 보통 4인 가족 기준으로 3만 5000원. ●낙안읍성의 음식축제 마침 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리고 있는 낙안읍성으로 가봤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음식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낙안읍성 안에 설치된 천막에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장식된 음식들이 즐비하다. 연포탕, 생각촉김치, 붕장어회, 미역수제비, 돔배젓…. 듣도 보도 못한 남도의 음식들이 즐비하다. 또한 스님들의 발우에 정갈한 나물과 떡 등 선암사 사찰음식도 눈길을 끈다.‘눈’으로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입’으로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난전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을 사다 먹어봤다. 저절로 ‘역시 맛은 남도야!’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러나 여기서 배를 채웠다가는 낙안 팔진미를 먹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낙안읍성은 전시를 위한 민속마을이 아닌 사람들이 그곳에서 먹고 자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짚으로 엮어 만든 초가집 사이로 빨간 감이 열린 돌담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해질녘이면 초가지붕 옆 굴뚝에서 모락모락 저녁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울타리에 호박꽃, 지붕 위에 주렁주렁 커다란 박이 열리는 곳. 어린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둠이 짙게 깔릴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던 추억을 깨워주는 고향마을 같은 곳이다. 낙안읍성의 초가에서 하룻밤 묵으면 밤에는 온갖 풀벌레소리에, 새벽에는 성 안팎에서 주고받는 수탉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해뜰 무렵 높이 약 4m, 둘레 1.4㎞의 성벽을 산책하는 것도 운치있다. 성벽을 한바퀴 돌아보면 초가지붕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낙안읍성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황금빛 논과 주렁주렁 빨갛게 익은 감과 어우러진 가을아침 풍경이 넉넉함을 준다. ●남도음식문화축제 오는 25일까지 열리는‘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남도 22개 시·군에서 우리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700여종의 음식과 송광사, 선암사 등 사찰음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한솥밥나눔행사, 떡만들기, 홍탁 삼합 체험 등 다양한 참여 이벤트와 줄타기 공연, 짚물공예, 야외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곁들인다. 낙안읍성에 가면 주막 평상에 앉아 낙안 팔진미를 먹어 봐야 한다. 낙안팔미는 더덕무침과 조기, 표고버섯 무침, 녹두부침개, 도토리묵, 꼬막, 돼지고기, 게장 등 갖은 반찬에 남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반찬이 바뀐다.1인분 1만원. 동동주는 5000원. 찾아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종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송광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27번 국도를 타고 약 10㎞ 가면 된다.낙안온천(061-753-0035)이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도 좋다. 유황과 게르마늄이 많이 함유된 국내 최고의 온천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5000원. ●조계산과 보리밥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산중에 정말 맛있는 보리밥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 찾아갔다. 조계산(884m)은 남동쪽에 태고종 고찰 선암사, 북서쪽에 조계종 송광사를 품고 있는 명산이다. 조계산 굴목이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길로 해발 600고지에 문제(?)의 보리밥집이 있다고 한다. 선암사로 해서 보리밥집을 들러 점심을 먹고 송광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선암사 매표소를 지나 선암사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무지개모양의 다리가 나온다.‘야 멋지다’하는 생각에 다가가서 보니 보물 400호 승선교였다. 최근 보수공사를 끝내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주문 앞에는 불교의 심오한 정신을 담고 있는 조그마한 연못인 삼인당. 천년고찰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선암사로 들어섰다. 삼층석탑, 푸른 하늘이 처마 끝에 걸려 있는 대웅전, 야생차밭 등 볼거리가 많다. 꼭 들러야 할 곳이 ‘해우소’다. 정호승 시인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노래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이 해우소는 몸 속의 오물뿐 아니라 세속의 욕심과 번뇌까지 버리고 돌아가라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하다. 보리밥을 먹기 위해 가야 하는 굴목이재 산행은 6.7㎞, 보통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선암사 들머리에서 ‘송광사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섰다.15분여를 걷자 길 왼쪽에 쭉쭉 뻗은 편백나무 휴양림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온갖 나무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냄새를 맡으며 가파른 경사길을 올랐다. 오래간만에 흙을 밟으며 걷고 또 걸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흐른다. 계곡가에 앉아 땀을 식히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쉬엄쉬엄 올랐다. 배바위 정상까지가 약 1.5㎞인데 1시간이 더 걸렸다. 보리밥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바위에서 내리막길로 15분쯤 가면 조계산 명물인 조계산보리밥집(061-754-3756)이 보인다.1인분에 5000원. 반찬을 담은 작은 접시가 커다란 쟁반에 가득하다. 변변한 밥상도 없다. 누구나가 평상 위에 앉아 쟁반에 놓인 채로 그냥 밥을 먹는 것이 이 집의 맛이다. 돗나물, 참나물, 호박나물, 부추무침 등 갖은 나물들과 멸치젓, 구수한 시래깃국이 나온다. 참기름과 고추장이 담긴 큰 대접에 보리밥과 나물들을 넣고 썩썩 비벼서 한 입 가득 넣으면 맛이 그만이다. 이 집의 또 다른 별미인 동동주 한잔 들이켜보니 부러울 게 없다.“힘들여 올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동주, 야채파전, 도토리묵이 각각 5000원. 보리밥집에서 송광사 갈 때는 반드시 윗길 등산로로 가야 한다. 아래쪽 큰길은 장안마을, 깨금골로 빠지는데 이정표가 없어 헷갈리기 쉽다. 여기서 송광사까지는 3.7㎞로 가득찬 배를 두드리며 천천히 내려가도 2시간이 못돼 도착한다. 계곡물소리, 잡목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벗삼아 걷기에 그만이다. 송광사 경내는 대숲과 편백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법정 스님이 오래 기거하셨다는 불일암도 들러 볼 만하다. 가는길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주암나들목(IC)에서 빠지면 송광사, 승주나들목에서 나오면 선암사다. ●순천여행 팁 순천은 시티투어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순천역에서 오전 9시30분과 10시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편안하게 순천의 명소를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061)749-3328,www.sc.go.kr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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