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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표 “6월국회 추경하는 게 소원” 자승 “공정·서민 모두 우리의 화두”

    김진표 “6월국회 추경하는 게 소원” 자승 “공정·서민 모두 우리의 화두”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가 20일 취임 인사차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예방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강창일·최재성 의원과 함께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찾아 대웅전을 참배한 뒤 자승 스님 등과 간담회를 가졌다. 김 원내대표는 “민생 경제에서 제일 힘든 건 역시 일자리”라면서 “2009년에는 예산을 통해 만들어내는 일자리가 80만개 정도였는데 올해는 56만개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가 추경안을 내놨다. 6월 국회에서 추경을 하는 게 제일 큰 소원”이라면서 “원장 스님께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얘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21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자승 스님을 예방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에 자승 스님은 “한나라당이나 정부도 서민정책이 제일 우선 아닌가.”라면서 “공정사회와 서민정책이 우리 사회의 화두”라고 답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길섶에서] 찬찬히/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잠깐 방심하면 조급해지고 만다. 출근길의 앞차는 좀 쌩쌩 달려줬음 좋겠고, 좋은 일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많이 와줬음 좋겠다. 늘 웃고 싶고, 늘 갖고 싶다. 그럴 때 수덕사의 그 여인을 떠올린다. 수덕사를 찾은 것은 10여년 전, 여름휴가 때였다. 단청이 희끗희끗한 오래된 절의 정취가 멋졌고, 한낮에 들어선 대웅전은 서늘해서 더 좋았다. 삐걱대는 마룻바닥에서 조심스럽게 삼배를 올렸다. 순간, 내 앞에서 절을 올리던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귓전에 닿았다. “찬찬히…찬찬히…” 그가 누굴 위해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을 위한 기원은 아니리라는 것. 그런데 ‘빨리빨리’ 해달라는 게 아니라 천천히, 찬찬히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 마음의 깊이가 느껴져 그만 방석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꽃무늬 바지였을까, 치마였을까. 절하던 그 펑퍼짐한 뒷모습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여인이었지만 한숨처럼 흘러나오던 ‘찬찬히’는 조급한 내 마음의 고삐를 잡아주는 스승이다. 찬찬히, 찬찬히.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 [나와 통일] (13) 조계종 혜경스님

    [나와 통일] (13) 조계종 혜경스님

    지난 4일 조계종은 북한의 조선불교도 연맹과 금강산 신계사에서 어린이 구충제 10만정 등 지원물품을 전달하고 공동 참배를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남북의 불교도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3년 만이다. 10여명의 방북단을 이끌고 신계사를 다녀온 혜경 스님은 “불교문화에서 남북이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면서 “이번 방북이 남북관계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계사 방문이 얼마 만인가. -지난해 가을에 다녀오고 7개월 만이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에는 스님들이 금강산 온정리에 상주하고 있었다. 5·24 조치 이후에는 아예 북에서도 신계사에 아무도 보내지 않는 모양이다. →신계사는 조계종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신계사는 신라시대(519년)에 지어진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이다. 6·25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것을 2004년 조계종과 현대아산,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대웅전을 복원했다. 완전 복원된 것은 2007년으로 한창 공동관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을 때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남북이 공동법회를 연 것은 3년 만이다. -원래는 공동법회를 하고 싶어했는데 통일부에서 승인이 안 났다. 스님들이 예불하고 은공하는 것은 일상인데 이걸 왜 못하게 하는지…. 그래서 그냥 ‘남북불자들의 신계사 공동참배’라고 했다. →최근에서야 인도적 지원이 재개됐는데. -통일이 만약 우리의 지상과제라면 통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같은 민족이고 형제이지 않은가. 일본에는 지진 피해가 났을 때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지원은 별개라고 해서 지원하지 않았나. 왜 북한에는 이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식구부터 챙기는 게 인지상정인데 영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남북관계에서 불교계의 역할은 무엇인가. -전통문화 측면에서 남과 북이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도 보물급 사찰이 있고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문화의 동질성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방북을 하고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부처님 말씀 중에 “모든 존재가 나와 한몸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듯 돌보는 게 잘사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신계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5시간 동안 이걸 생각하니 참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원망스러웠다. →정부나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해 총무원 집행부의 공식 슬로건이 소통이다. 우리 현실은 남남갈등이 심각하다. 정치인은 더 소통이 안 되고 있다. 불교의 목표가 부처님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듯, 정치의 목표는 정치인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념이 다르더라도 나를 비롯한 이웃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이번 방북이 계기가 돼서 정부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남북관계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됐으면 한다.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통일은 반드시 돼야 한다. 이번에 갔을 때 솔잎혹파리인지 재선충인지 몰라도 신계사 주변 소나무들이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 소나무는 우리 할아버지와 친구다. 두 세대만 올라가면 남북이 어디 있고, 정치적 이념이 어디 있나. 하루빨리 그렇게 (하나가)돼야 한다. →남북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계절로는 봄이 왔는데, 아직 우리 가슴엔 봄이 먼 것 같다. 계절의 봄은 환경이 만들지만 가슴의 봄은 우리의 생각과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도들이 가슴에 진달래, 개나리를 피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처님 오신날 충남 서산 개심사 가는 길따라

    부처님 오신날 충남 서산 개심사 가는 길따라

    이맘때 충남 서산의 이미지는 ‘둥글다.’로 모아집니다. 서산의 오른쪽, 그러니까 운산면과 해미면, 음암면 일대의 느낌이 특히 그렇습니다. 한우를 방목하고 있는 야트막한 산들은 이국적인 둥근 구릉의 자태로 이방인을 맞습니다. 그 위에 신록이 입혀지고, 한우들이 뛰놀기 시작하면서 예쁜 풍경화가 완성됩니다. 둥근 구릉들 너머엔 소박하고 단아한 개심사도 있습니다. 작은 절집이지만 풍경의 크기는 그보다 몇 배 더 큽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입니다. 시기에 맞는 여행지를 찾는다면 충남 서북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서산도 대안이 될 듯합니다. 세상에 온 부처님의 뜻이야 범부로서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혹시 모를 일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서산을 주유하다 번뇌를 끊는 반야의 칼을 찾을 수 있을는지도요. ●순박한 절집에서 혼탁한 마음 털기 충남 서산은 내포(內浦·충남 서북부) 불교문화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수덕사와 보덕사 등의 절집과 마애삼존불상 같은 불교 문화유산들이 가지처럼 펼쳐져 있다. 개심사는 그 가운데 첫손 꼽히는 명찰 수덕사의 말사다. 절집 초입엔 벌써 많은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거나,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봄철 개심사의 아이콘인 진분홍 왕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해탈문 앞 겹벚꽃과 명부전 앞 청벚꽃은 벌써 절정에 달했다. 자목련과 흰동백도 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적기에 따르면 ‘마음을 여는 절집’ 개심사(開心寺)는 백제 멸망(660년)을 6년 앞둔 의자왕 14년, 서기 654년에 창건됐다. 당시 절을 세운 혜감 스님은 절집 이름을 개원사(開元寺)라 했으나, 고려 때인 1350년에 처능 스님이 중건하면서 개심사로 개칭했다. 절집 뒤편 상왕산(象王山)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연못을 지나면 해탈문과 안양루 등 소탈한 건축물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규모가 작은 데다 번듯한 느낌도 없지만, 어딘가 차분한 기운이 절집 안팎을 휘감고 있다. 개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대웅보전이다. 보물 제143호다. 그 안에 보물 제1619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엄정한 자태로 앉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 중 하나로, 나무 위에 금박을 입혔다. 또렷하면서도 엄숙하게 표현된 이국적인 얼굴 등이 조각예술의 진수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방문객의 시선을 끄는 건 대웅전 옆 심검당(尋劍堂)이다. 얽히고설킨 번뇌를 벨 반야(般若)의 칼을 찾는 집이란 뜻. 한데 이름은 날카로우나 자태는 더없이 순박하다. 사람 인(人)자를 겹친 맞배지붕 아래 이리저리 휜 목재를 기둥 삼았다. 단청도 하지 않았다. 껍질만 벗긴 소박한 두리기둥과 기둥 위를 가로지르는 창방의 나무들이 물결 같은 곡선을 그려낸다. 그 모습을 보자니 회색 도시에서 다져진 각진 마음이 은연중 둥글어 가는 듯하다. ●용현계곡의 내포 불교 유적들 사실 대웅전을 제외한 개심사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이처럼 굴곡진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 명부전이 그렇고, 무량수각과 범종각, 해탈문 등도 비슷한 형태다. 개심사를 창건한 이는 기둥에 어떤 뜻을 담았던 걸까. 이강열 서산시 문화관광과 학예사는 “치목(다듬어진 목재)을 사용해 건물을 짓는 게 이리저리 휜 목재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왜 이런 목재를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절집을 돌아 보며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는 오롯이 방문객의 몫으로 남는다. 예까지 온 마당에 ‘마애삼존불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국보 제84호다. 마애삼존불상은 개심사 인근의 용현계곡 들머리에 서 있다. 백제시대 용현계곡은 중국과의 교역항이었던 태안반도에서 사비(부여)로 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마애삼존불상은 사비를 떠난 사람들이 다리쉼을 하거나, 먼 교역길의 안녕을 비는 곳이었던 셈이다. 계곡 너머 너덜겅 사이로 놓인 돌계단을 올라 가면 세 불상과 만난다. 불상마다 꾸밈없고 순박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있다. 나른한 오후 햇살 아래라선지 미소가 더욱 은은해 보인다. ‘백제의 미소’라 부를 만하다. 누군들 저 미소를 피어나게 한 내면의 평화를 찾고 싶지 않을까. 용현계곡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보원사 절터도 남아 있다. 한때 1000여명의 승려가 기거했을 만큼 대찰이었으나, 이제 법인국사탑과 비,오층석탑과 당간지주,석조 등만이 광대한 절터를 지키고 있다. ●청년 이순신 머물던 해미읍성 개심사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해미읍성(海美邑城)도 둘러볼 만하다. 230여년간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이 있었던 곳. 왜구의 빈번한 침략을 막기 위해 1417년 축조 사업이 시작돼 세종 3년인 1421년 완성됐다. 이순신 장군도 서른다섯 살 때(1579년) 이 성에서 종8품 훈련원 봉사로 열 달간 근무했다고 한다.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의 성채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성벽의 높이는 4.9m, 성의 둘레는 약 1.5㎞다. 오래전엔 성의 둘레에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탱자나무를 심었다 해서 ‘탱자성’이라 불리기도 했다. 해미읍성은 여느 성벽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 진남문은 결코 위압적이지 않고, 복원된 관아와 주택들도 정겹고 소박하다. 읍성 초입의 회화나무는 병인박해(1866년) 때 천주교도들을 목매달아 처형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동헌 위쪽 서벽 근처의 소나무들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서문 밖 여숫골 등에도 천주교 유적들이 남아 있다. 글 사진 서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서산 나들목→운산→개심사(68 8-2256) 순으로 간다. ▲맛집 마애삼존불상 초입의 용현집(663-4090)은 어죽 전문 식당이다. 추어 국물에 국수와 쌀을 넣고 끓여 양푼에 담아 내는데, 비리지 않고 얼큰한다. 1인분 5000원, 2인분 이상 판다. 해미읍성뚝배기(688-210 1)는 소머리곰탕이 맛있다. 80 00원. 해미읍성 앞에 있다. ▲주변 볼거리 천수만과 간월도 등은 서산의 관광 명소. 지곡면 화천리에 조선 초 산수화의 대가 안견기념관이 있다. ‘몽유도원도’ 영인본 등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돼 있다. 660-2536.
  • 통일신라 광림사… 조선시대 오정사… 1200년만에 빛 보다

    통일신라 광림사… 조선시대 오정사… 1200년만에 빛 보다

    1200년 동안 땅속에 묻힌 채, 역사가 놓쳐 왔던 절의 실체가 확인됐다. 조선시대의 사찰로 전해지는 오정사(烏井寺) 터와 함께 그 아래쪽에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절 광림사(廣林寺) 터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영남문화재연구원은 21일 “국군체육부대가 이전하는 경북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 445 일대에서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고려시대 중·후기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에서 적심건물터 9동, 축대시설 6기, 부속시설 8기 등을 발굴했다.”면서 “이와 함께 거의 완벽하게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4점과 금동보살입살 1점 등 7점과 ‘광림사부’(廣林寺付)라고 적힌 기와가 여러 점 확인됐다.”고 밝혔다. 광림사는 적심건물터의 층위 양상과 금동불상, 통일신라시대 연화문수막새, 고려시대 귀목문수막새 등을 통해 볼 때, ‘오정사 터’보다 훨씬 앞선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동불상 7점은 모두 광림사의 대웅전 터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적심건물지 2호 내부에서 수습됐다. 금동여래입상 4점과 금동보살입상 1점은 부식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나머지 2점은 훼손이 심해 형태를 추정하기 힘든 상태다. 불상 중 가장 큰 것이 높이 19㎝이고 대부분 12~17㎝ 크기다. 오정사 또한 해동지도(海東地圖), 광흥도(廣興圖) 등 조선시대 고지도 등에서, 그리고 서거정(1420~1488)과 김종직(1431~1492)의 시조 등을 통해 조선후기에 존재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실체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한도식 책임조사원은 “오정사의 구체적 실체를 밝혔다는 점에서 발굴 조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채집된 유물에 대한 편년이므로 연도 자체는 부정확할 수 있고 더욱 자세한 유구 조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일단 광림사는 1200년 전의 사찰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두 점 출토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무더기로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금동불상 역시 한국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계사 문 열렸다” 與 불자회 의원 4개월만에 법회

    “조계사 문 열렸다” 與 불자회 의원 4개월만에 법회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굳게 닫혔던 조계사 문이 4개월여 만에 활짝 열렸다. 19일 오전 한나라당 불자회 소속 의원 20여명이 ‘전통문화수호 및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상생과 화해 다짐법회’를 가지면서다. 국내 최대 종단인 조계종도 정부·여당에 대한 출입금지령을 완화했다. 이로써 지난해 말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등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한나라당과 불교계의 관계가 해빙단계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김무성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불자회장 이인기 의원, 국회 불자모임인 정각회 회장 최병국 의원, 조윤선·김학송·서병수·장윤석·정태근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은 대웅전에서 참회의 108배를 한 뒤 법문을 들었다. 법회를 주도한 도법 스님은 “정부·여당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을 마치 특정 종교를 지원하고 혜택을 주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라면서 “정부·여당과 조계종단 모두가 자성과 쇄신을 통해 오직 국민을 부처님처럼 섬기고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한 것에 대해서 “그 대상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국민들로부터 냉소와 비난을 받을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면서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나라당 불자회 총무인 조문환 의원은 발원문을 통해 “불자회는 정부·여당과 불교계 간의 상생화합과 소통을 위한 가교역할에 소홀했던 점을 참회하며 앞으로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회에 앞서 한나라당 출입 허가에 반발해 침묵시위를 하던 대한불교청년회장이 의원들을 막아서면서 김학송 의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김수환·법정 영화 무료시사회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편이 오는 19~20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잇따라 상영된다.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배급사 마운틴픽쳐스는 15일 김 추기경의 선종 2주기를 기념한 전기 다큐멘터리 ‘바보야’의 특별시사회를 19일 오후 7시 조계사 마당에서 연다고 밝혔다. 강성옥 감독이 연출한 ‘바보야’는 영화배우 안성기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정식 개봉은 21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아직도 국보 20%가 전기화재 무방비라니…

    엊그제 우리 국보급 문화재의 20%가 전기화재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실시한 문화재 전기설비 안전점검의 결과다. 지난해 국보 24건 중 5건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그중에는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구례 화엄사도 들어 있다고 한다. 보물은 관리가 더욱 허술해 97곳 중 무려 27%인 26곳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보·보물이 이 정도라면 다른 비지정 문화재의 상황은 어떨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숭례문 소실 이후 요란하던 문화재 관리의 다짐이 헛것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3년 전 국민은 숭례문이 불타 내리는 장면을 보면서 분노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그런 반응은 단순한 상실감이 아니라 대표 문화재를 지켜 내지 못한 죄책 때문일 것이다. 이후 문화재청을 비롯해 곳곳에서 화재 매뉴얼을 비롯한 방재·위기관리 재정비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여기저기 툭툭 불거지는 어두운 소식들은 불안감을 갖게 한다. 지난해 말만 해도 국보·보물의 목조건물 105곳 중 절반이 넘는 54곳이 화재 위험에 노출됐다는 조사가 있지 않았는가. 90곳은 소방차가 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없는 곳에 있다고 한다. 방재시설이 없거나 허술한 상태로 있다가 순식간에 불타 버릴 제2, 제3의 숭례문 참사는 언제든 생겨날 수 있는 셈이다. 문화재는 소실, 혹은 훼손되면 사실상 원상복구가 힘든 유산이다. 사라진 모습을 되살려 내는 것보다 재앙에 앞선 방재와 관리가 훨씬 중요함을 우리는 귀중한 문화재의 잇따른 소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가뜩이나 숭례문 참사 이후 새로 들인 CCTV며 감시·감지 시스템, 자동 화재경보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말이 많다고 한다. 옛 모습을 옹골차게 살려 낸다는 광화문 복원 현장의 공개도 중요하지만 먼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의 소중한 것들에 더 힘과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 “부처가 비 내리게 하냐” 조계사 난동 3명 입건

    조계사 경내에서 목사라고 신분을 밝힌 70대 노인이 “예수를 믿으라.”며 일행과 소란을 피우다 경찰 조사를 받았다. 11일 서울 종로경찰서와 조계사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20분쯤 정월 조상천도재를 봉행 중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목사를 자칭한 이모(78)씨와 80~90대 노인 일행 3명이 들어왔다. 조계사 측은 이들이 대웅전 앞에서 메가폰을 들고 “하나님 때문에 밥 먹고 사는 거다. 부처가 비를 (내리게 해)주냐. 비가 와야 농사짓고 밥 먹는 거다.”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퇴거불응 혐의로 이씨를 불구속 입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제철’ 雪山 맛볼까…소원 명소 가볼까

    ‘제철’ 雪山 맛볼까…소원 명소 가볼까

    설 연휴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혹시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두뇌스포츠’ 고스톱을 염두에 두고 계신 건 아닌지요. 그렇게 구들장만 지고 있다 보면 자칫 ‘어른 따로, 아이 따로’ 설 연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래서 전국의 가볼 만한 곳을 추려봤습니다. 소원 성취 명소도 있고, 곤돌라 타고 편히 오를 수 있는 설산(雪山)도 있습니다. 제철 맞은 풍성한 풍경과 더불어 좋은 기억도 만들고, 밝은 내일도 구상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가족과 雪國으로… ●전북 무주 덕유산 덕유산은 겨울이면 유난히 빛을 발하는 설국(雪國)으로 변한다. 서해의 습한 공기가 거봉을 기어오르다 힘에 겨워 눈을 뿌려대기 때문이다. 이 덕에 거의 예외 없이 빼어난 설경과 마주할 수 있다. 설천봉(1520m)까지는 무주리조트 관광 곤돌라를 타고 오른다. 기묘한 자세로 가지를 비틀고 선 고사목들을 지나면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1614m)으로 향하는 등산로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의 표고차는 채 100m도 되지 않는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어린이는 물론, 어르신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향적봉에 서면 북쪽으로 적상산과 계룡산, 서쪽은 운장산과 대둔산, 남쪽은 지리산, 동쪽으로는 가야산과 금오산 등이 일망무제로 줄달음친다. 영·호남을 가르는 덕유연봉의 장쾌한 파노라마다. 곤돌라 어른 1만 2000원(이하 왕복), 어린이 9000원. (063)322-9000. ●강원 평창 발왕산 발왕산(1458m)은 강원 평창의 진산이다. 산세가 완만해 겨울철 설원의 정취를 즐기려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정규코스로 오르면 3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곤돌라를 타면 20분 안쪽에 정상 바로 아래 드래건피크에 닿는다. 발왕산에서는 아기자기한 눈꽃보다 산들의 파노라마에 주목해야 한다. 내로라하는 백두대간의 마루금들이 한눈에 잡힌다. 멀리 북서쪽으로 선자령과 대관령 풍력발전단지가 시원하고, 맑은 날엔 대관령 능선 오른쪽으로 펼쳐진 강릉 앞바다도 볼 수 있다. 발왕산 정상은 곤돌라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쯤 더 올라가야 한다. 정상 남동쪽 산자락에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며 주르륵 늘어서 있다. 용평리조트 관광 곤돌라 어른 1만 2000원, 어린이 8000원. (033)330-7421. ●강원 정선 백운산 백운산(1376m)은 특유의 고원지형과 백두대간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국내 최장(2832m)의 곤돌라를 타고 은색의 태백준령을 발 아래 두는 맛이 각별하다. 정상에 이르는 곤돌라가 2개(마운틴 곤돌라, 하이원 곤돌라)나 되고, 환승하듯 서로 갈아탈 수도 있다. 하이원리조트 마운틴 콘도에서 정상인 ‘마운틴 탑’(1345m)까지 이르는 시간은 20여분. 곤돌라가 고도를 높일 때마다 조금씩 드러나는 고산준봉들의 장쾌한 모습에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산정의 전망카페 ‘탑 오브 더 탑’은 45분마다 한 바퀴씩 회전하는 리볼빙 레스토랑. 차 한잔 즐기면서 태백산과 함백산, 지장산 등의 설경을 앉은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마운틴 탑에서 백운산 정상까지 등산로도 개발돼 있다. 설경이 아름다운 산 중턱의 도롱이연못은 반드시 찾을 것. 곤돌라 어른 1만 2000원, 어린이 1만원. 1588-7789. ●전남 해남 두륜산 두륜산은 해발 703m로, 바다에 인접한 봉우리 치고는 제법 높은 편이다. 명찰 대흥사(大興寺)와 동다송(東茶頌)을 지은 초의선사가 수행했던 일지암 등이 이 산에 기대어 있다. 케이블카는 대흥사 옆에서 출발해 고계봉(638m)까지 이어진다. 길이는 1.6㎞에 달한다. 정상까지 8분 정도면 닿는다. 전망대에 서면 ‘섬들의 천국’이라는 서남해의 섬들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멀리 볼 수 있다. 맑은 날이면 제주의 한라산까지 관측된다고. 두륜산에서 굽어보는 풍경은 강원의 산들을 바라보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산 넘어 산’이 만드는 장쾌한 파노라마 대신 너른 들녘과 넉넉한 바다가 주는 평온함을 한껏 맛볼 수 있다. 케이블카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 (061)534-8992. 가족과 새해소원을… ●경북 문경 꽃밭서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경북 문경의 새재(鳥嶺)는 예로부터 한양과 영남을 잇는 제1의 대로였다. 충북 영동의 추풍령, 경북 풍기와 충북 단양에 걸친 죽령 등의 길도 있었지만, 영남의 선비들은 유독 새재를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죽령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은 과거시험에서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호남의 선비들조차 이 길로 돌아갔다고 하니, 새재는 곧 ‘소망의 길’로 통했던 듯하다. 새재에서 주흘산 가는 등산로 중간에 ‘꽃밭서덜’이 있다. 꽃밭서덜은 ‘너덜’(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의 현지 사투리 ‘서덜’과 진달래 등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곳이란 뜻을 담은 ‘꽃밭’이 합쳐진 말이다. 꽃밭서덜이 있는 조곡계곡에 들어서면 먼저 대단한 규모의 돌탑들에 놀란다. 100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돌탑들이 흰 눈을 이고 서 있다. 마치 등산객들이 산행길을 오가며 하나둘 쌓은 것처럼, 납작한 돌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문헌 등에 전해지는 구절은 없지만, 현지 관계자들은 근대사 이전에 형성된 것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산자락 50여m 위쪽에서 쌓아 내려온 돌탑은 등산로를 벗어나 계곡까지 이어져 있다. 들쭉날쭉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새재 초입에서 꽃밭서덜까지는 채 두 시간이 안 걸린다. 6.5㎞의 새재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넓어 겨울철 가족들과 함께 걷기에도 맞춤하다. 문경새재관리사무소 (054)550-8356. ●강원 삼척 새천년탑 강원 삼척의 새천년도로는 빼어난 풍경이 함께하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정라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동해를 끼고 약 5㎞를 달린다. 새천년도로를 따라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좋은 기(氣)가 모인다는 고갯마루에 ‘소망의 탑’이 서 있다. 소망의 탑은 3단 타원형이다. 1단은 신혼부부, 2단은 청소년, 3단은 어린이 소망석으로 되어 있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끝이 맞닿은 탑신의 모양은 소원을 비는 양손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탑의 몸체는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이 돌들엔 여러 사람의 소원이 적혀 있다. ‘대나무의 꽃이 열 번 피고 질 때까지 서로 사랑하겠다.’는 연인, ‘10년 후 아들 딸 손을 잡고 다시 찾겠다.’는 신혼부부 등 저마다의 소원으로 빼곡하다. 소망의 탑 아래엔 기억상자(타임캡슐)도 묻혀 있다. 소망의 탑에서 소원을 빈 뒤, 조각공원이나 해가사터에서 추암 촛대바위를 조망해 볼 만하다. ●부산 해동용궁사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꼭짓점에 터를 잡은 절집이 부산 기장의 해동용궁사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12지신상과 함께 ‘소원 한 가지는 반드시 이뤄주는 해동용궁사’란 팻말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절집들이 기복(祈福)을 근간의 하나로 삼긴 하지만 해동용궁사처럼 여러 소원을 들어 준다는 곳도 드물다. 몸 아픈 이들이 병을 놓고 가는 약사여래불은 물론, 득남불(得男佛)과 학업성취불, 교통안전기원탑까지 있으니 말이다. 바닷가에 서 있는 지장보살도 빼놓을 수 없다. 연말연시만 되면 구름처럼 몰려든 중생들이 밤을 도와 소망을 빈다. 절집에서 가장 ‘바쁜’ 불상은 해수관음대불이다.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바로 그 불상이다. 대웅전 앞을 지나 계단을 몇 걸음 올라가면 만난다. 바다를 굽어 살피듯 용궁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절집 주변을 오가는 해안산책로도 조성돼 한결 편하게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씨줄날줄] 말의 허물/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뇌 세포의 98%는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말을 하면 뇌에 입력되고 뇌는 척수를 지배해 행동을 좌우한다는 과학적 논리다. ‘말은 행동을 지배한다.’는 사회학적 주장이나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말의 중요함에 대한 강조다. 중국 당대 인재 등용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둘째 항목도 말 씀씀이의 정교한 관찰이다. 말을 가려 쓰자는 신중함의 당부는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의 시조며, 귀는 두개인데 입은 하나인 까닭도 잘못된 말이 부를 화를 경계해서다. 불교도 인간이 살면서 몸·말·뜻으로 짓게 되는 세 가지 죄업(三業) 가운데 하나로 세치 혀의 잘못된 놀림인 구업을 놓고 있다. 말은 이렇게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으로 신중함이 강조되지만 보통 사람들의 입은 여전히 오염과 허물의 씨앗이다. 우리 사회 속 잘못된 말의 폐해는 심각하다. 지식인은 물론 정치인, 학생 할 것 없이 폭언을 쏟아낸다. 안방극장에 저질 말이 넘치고 공식석상에서 정치인의 시정잡배식 막말도 예사다. ‘헛소리하는 이명박 정권을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라는 막말에 이어 성형 안 한 여성을 ‘자연산’이라 빗댄 비하의 후유증이 심하다. ‘두번 감옥간 사람이 세번은 못가겠냐.’며 ‘착각하는 현 정부 한번 붙어보자.’고 했다는 한국노총 위원장의 폭언은 또 어떤가. 그런데 종교계의 막말도 험악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찰 주지 스님이 법회에서 ‘총무원을 찾아가 내 승적을 불태우겠다.’고 하더니 사찰 대웅전을 점령한 개신교 신자들은 ‘이 절이 무너지게 해주십사.’고 소리 높여 기도를 했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의 극언은 또 어떤가. 기자간담회에서 추기경이 한 발언을 놓고 ‘골수 반공주의자’로 몰아세워 사퇴까지 요구했다니 한국 천주교 초유의 반란이란 비아냥이 무색하지 않다. 세속과 구별되는 사랑·배려의 가치를 외면한 독선의 일탈이 심상치 않다. 엊그제 조계종 총무원장, 한기총 대표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의 회동이 화제다. 모임에서 한기총 회장은 “가장 큰 허물은 언어의 허물”이라고 했다. 심해져 가는 이웃종교 간 갈등을 의식한 발언일 터. 종교 간 충돌을 저어하는 말의 자제와 신중함에 대한 당부. 그런데 지금 우리 종교의 허물을 인정하는 언사로 비쳐짐은 왜일까.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종교인데, 말 그대로 말의 허물만이라도 벗겨낼 수 있다면….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사설] 범어사 방화 범인·동기 반드시 밝혀 내라

    우리의 소중한 불교 문화유산이 수난당하는 비극이 또다시 발생했다. 13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신라 고찰(古刹) 범어사에 지난 15일 밤 불이 나 천왕문이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경찰은 CCTV 감식 결과 방화라고 결론짓고,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시민에게 1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교계 일각에서는 경찰이 과연 적극적으로 범인 검거에 나설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20일에도 해돋이 명소인 여수 향일암에서 화재가 발생해 대웅전이 소실됐다. 당시에도 방화로 추정됐지만 경찰은 발화지점과 화재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면서 사건을 미결인 채로 덮었다. 비단 향일암 화재만이 아니다. 불교 문화재 훼손 사건은 종종 있어 왔고, 가끔은 광신적인 개신교 신자가 저지른 범행임이 드러났다. 오죽하면 불교계 일각에서, 매년 부처님오신날과 성탄절을 전후해 전국 사찰에 방화로 보이는 불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탄하겠는가. 이번 범어사 방화사건의 동기가 무엇인지 예단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범인을 검거해 그 동기는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그래서 현재 불교계와 국민 다수가 의혹을 가진 것처럼 광신적인 개신교도의 짓이라면 법이 정한 범위에서 최대한 엄벌해야 한다. 아울러 개신교계에 철저한 자기반성이 따라야 할 것이다. 반면 개신교도의 범행이 아니라면 개신교계는 불필요한 누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찰을 비롯한 불교 문화재는 불교계만의 자산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문화 유산이다. 신앙의 자유가 남의 종교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 또한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만에 하나 이번 방화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우리사회 내부에 곪고 있는 종교 간 갈등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이를 막는 막중한 책임을 졌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 섬 돌고도는 8.5㎞ 길이 ‘비렁길’ 여수 금오도

    섬 돌고도는 8.5㎞ 길이 ‘비렁길’ 여수 금오도

    나그네가 발품 팔아 갈 수 있는 뭍의 막다른 곳에 항구가 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섬은 여행의 끝이자 시작인 거지요. 아, 그 섬의 바다는 어찌 그리 예쁜 빛깔을 갖게 됐을까요. ‘에메랄드빛’ ‘옥빛’ 등의 흔한 표현을 갖다 붙이기엔 물빛의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바다와 몸을 섞은 섬 자락마다 조그만 포구가 들어찼는데, 그 자태 또한 여간 서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전남 여수 금오도입니다. 덜 알려진 탓에 이름조차 생소한 절경들이 섬 곳곳에 펼쳐져 있지요. 금오도에 최근 ‘비렁길’이 조성됐습니다. ‘비렁’은 벼랑의 사투리이니, 곧 ‘비렁’을 따라 섬을 에둘러 돌아가는 트레킹 코스를 일컫습니다. 군데군데 높낮이는 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먼 바다와 호흡을 함께하며 걷는다는 것, 참 새로운 경험입니다. ●작지만 풍경만큼은 거대한 금오도 뭍과 섬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곳곳에 세워지는 연륙교와 날로 빨라지는 KTX 덕이다. 울산과 경주가 수도권에서 2시간 안팎으로 당겨졌고, 거가대교는 부산과 거제를 한 몸으로 묶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 축인 전남 여수도 마찬가지. 진행 중인 전라선 복선 전철화 공사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둔 새해 10월쯤 끝나고, KTX가 본격 투입되면 3시간 30분 만에 닿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 같으면 ‘1박~2일!’도 부담스러운 여행지였지만, 당일여행을 시도할 만큼 가까워지는 셈이다. 여수 앞바다에는 317개의 섬이 떠 있다. 말그대로 다도해(多島海)다. 그 중 뭍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섬이 금오도(鰲島)다. 금빛 자라를 닮았다는 섬. 여수에서 불과 25㎞ 정도 떨어져 있으면서도 절해고도의 풍모를 고스란히 지녔다. 금오도는 거대하다. 물리적 크기는 작지만, 풍경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여수 끝자락 돌산도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까지는 배로 30분 안쪽에 닿는다. 여수항 여객터미널에서 가는 배편도 있으나, 하루 두편(동절기)에 불과한 데다, 배시간도 신기항에 견줘 두세배 더 걸린다. 무엇보다 돌산도 특유의 넉넉한 풍경과 마주하지 못한다는 게 여행자로서는 ‘명백한’ 손해다. 금도오에서는 갯마을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어판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덕에 외진 섬답지 않게 정갈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천항에 내리면 우선 하얀 십자가의 교회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국내 대부분의 섬에서 용왕각 등 무속신앙의 흔적을 먼저 만나는 것에 비해 이례적이다. 이처럼 ‘교회가 있는 풍경’은 섬 어디를 가건 마주한다. 한 주민의 과장 섞인 표현처럼 “주민 99%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우학리교회는 무려 10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절경과 스릴이 함께 하는 비렁길 조선시대 금오도는 봉산(封山), 즉 일반인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궁궐에서 사용하는 벌목장과 사슴목장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섬이 개방된 것은 1885년. 비렁길 기획 당시 이름이 ‘봉산 임금님 둘레길’이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직포까지 총 8.5㎞쯤 된다.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 주민들이 유자밭을 일구고, 옆 동네로 마실갈 때 주로 이용했던 길이다. 원래 금오도는 섬 산행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다도해와 함께 매봉산(대부산)을 오르는 맛이 각별하다. 하지만 노약자들이 오르기엔 다소 험해, 완만한 산사면을 따라 걸으며 다도해의 풍광을 즐기라는 뜻에서 비렁길이 조성됐다. 길은 거리와 난이도에 따라 세 코스로 나뉜다. 코스마다 마을로 이어지는 하산길이 있어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달릴 경우 곧바로 내려올 수 있다. 비렁길은 금오도의 끝자락인 함구미(含九味)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이름이 독특하다. 한자 대로 풀자면, 아홉개의 맛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란 뜻일 터. 그런데 이름의 연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멸치나 군벗, 방풍나물 등 아홉 가지 마을 특산품을 일컫는 표현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해안절벽이 9개라거나, 금광 9개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마을에 들면 상큼한 유자 향기가 이방인을 맞는다. 다소곳한 자태로 매달려 있는 노란 유자가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며 제법 장한 풍경을 펼쳐낸다. 마을 고샅길을 5분 정도 오르면 곧바로 바다를 낀 길이 시작된다. 첫 번째 만나는 풍경은 ‘미역바위’. 해안절벽의 생김새가 마치 미역이 늘어진 것 같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절벽의 높이가 수십 미터는 족히 된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길이 나 있는 모양새가 독특하고 웅장하다. 미역바위에서 ‘V’자 형 홈통을 지나면 ‘스달빛벼랑’이다. ‘달빛’ 앞에 ‘스’자를 붙인 까닭이 궁금했지만, 이 역시 아는 사람은 없다. 스달빛벼랑 위쪽은 절터. 옛 문헌에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금오도의 송광사, 순천 송광사를 오가다 돌산도 은적암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을 송광사터라 믿는다. 길은 이후로도 높이 50m 내외의 해안절벽을 따라 초포를 지나 직포까지 이어진다. 아슬아슬하기로는 어느 곳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 길 위에서 맞는 풍경이 여간 장쾌하지 않다. 바다를 마당 삼은 너른 개활지 ‘굴등’도 있고, 전설이 깃든 ‘신선대’와 ‘용머리바위’도 나온다. 이런 장쾌한 풍경 덕에 ‘인어공주’ ‘혈의 누’ 등 다수의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금오도에서 각광받는 여행 패턴 중 하나가 해안드라이브다. 26㎞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수항도, 횡간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줄곧 따라온다. 여수 등 인근 지역 자전거 동호회원들의 발길이 잦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금오도 가면 안도는 보너스 안도는 둘레가 29㎞에 불과한 조그만 섬. 지난 2월 안도대교가 개통되면서 금오도와 한 몸이 됐다. 섬에 들면 조용하다. 걷건, 차를 몰 건 자신이 내는 소리 외에는 들리는 게 없을 정도로 적막하다. 선착장 오른쪽 야산은 발품 팔아 오를 만하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으나, 오르는 데 어려움은 없다. 산정에 서면 반월형의 몽돌해수욕장 등 작고 예쁜 안도의 전경과 멀리 다도해 풍광이 잘 어우러진다. 선착장이 있는 본동마을 위에도 당산공원이 조성돼 있다. 안도 최고의 풍경 포인트를 꼽으라면 단연 백금포해수욕장이다.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기 맞춤한 데다, 물색 또한 연한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다. 물빛 곱기로 소문난 제주도 협재, 함덕해수욕장과 닮았다. 워낙 외져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전부다. 여느 해수욕장처럼 음식점이나 상점 등이 일절 없어 깔끔하고 고적하다. 금오도의 해넘이 풍경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해거름이면 파스텔톤의 파란색 바다 위로 석양빛이 물드는데, 시간이 흐를 때마다 진노랑에서 주황색으로, 붉은빛 감도는 자주색으로 빛깔을 달리한다. 해넘이 풍경과 마주하려면 섬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여수로 가는 마지막 배 출항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기 때문이다. 낙조 감상 포인트는 함구미마을 위쪽. 이른 아침 망산(344m) 봉수대에 올라 장엄한 해오름 풍경과 만나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여수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돌산도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까지 하루 7회(7:45 9:10 10:30 12:00 14:00 15:50 17:00) 페리호가 오간다. 운임은 5000원. 승용차는 운전자 1인 포함 1만 3000원, SUV 1만 5000원(이상 편도). 한림해운(666-8092) 측에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 주는 게 좋겠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배편이 일찍 끊길 경우, 전화로 통보해 준다. 여천항에서 면소재지 우학리까지는 남면버스(011-616-9544)나 택시(666-2651~2, 011-608-2651)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 1000원. 택시는 여천항을 기준으로 우학리 1만원, 직포 1만 2000원, 함구미와 초포 1만 5000원이다. 섬 내 주유소는 우학리 농협 한곳뿐이다. 경유만 판매한다. 뭍 보다 다소 비싸다.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맛집:감성돔, 군벗 등 자연산 어패류를 맛보려면 예약을 하고 가는 게 좋다. 여느 관광지와 달리 식당마다 그날 그날 어민들을 통해 필요한 만큼 물건을 받기 때문이다. 1인당 1만원부터 4만원까지 다양하다. 식당은 대부분 면사무소 주변에 몰려 있다. 여남식당(665-9546), 명가식당(665-9520) 등이 알려져 있다. →잘 곳:금오도에 명가모텔(665-9520), 안도에 안도모텔(665-3369)이 있다. 3만원선. 민박은 금오도와 안도를 합쳐 2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2만원선. 남면사무소 690-2605. →둘러볼 곳:돌산도 끝자락의 향일암은 일출 명소로 이름난 곳. 화재로 전소됐다고 알려졌으나, 대웅전과 종각 등 일부가 소실됐고 나머지 건물은 건재하다.
  • [씨줄날줄] 금 간 석가탑/김성호 논설위원

    불국사 대웅전 뜰에 마주 선 다보탑과 석가탑. 과거 불의 현신이라는 다보탑이 복잡한 구조를 띤다면 현재 불인 석가탑은 정제된 아름다움의 극치로 빛난다. 그중에서도 석가탑은 탑 곳곳에 적용된 황금비율의 확인으로 아름다움이 더 배가된 석탑이다. 신의 비율이라는 황금분할과 황금구형, 황금사선 말이다. 감은사지탑, 고선사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3대 걸작 석탑으로 꼽힘이 괜한 게 아니다. 오죽하면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답안”이란 극찬까지 나올까. 그림자가 없다 해서 무영탑으로 통하는 석가탑. 무영탑이야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구현이란 불국사 창건에 연결된 이름일 듯. 하지만 석가탑은 어려운 불교이론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일화가 숱하다. 석가탑 건조에 참여한 도공 아사달·아사녀의 전설이 그렇고, 현존 최고의 목판본이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이 대표적 사연들이다. 아사달·아사녀의 전설이 석탑 조형미로 해서 각색된 전설이라면,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가탑 자체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복장유물일 것이다. 걸작 석가탑에는 오랜 세월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가 붙었다. 신라 경덕왕10년(751년) 불국사 창건 때 세워진 뒤 단 한번도 수리·보수가 없었다는 온전함의 신화다. 그런데 1966년 도굴을 맞아 해체·수리에 들어가면서 발견된 종이뭉치 묵서지편은 이 신화를 산산조각냈다. 고려 현종기(1024년)와 정종기(1038년) 지진을 맞아 대규모 중수가 있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묵서지편은 이 중수 말고도 고려후기∼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수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무영탑이니 선대의 보존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일 석가탑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다. 상층 기단석에 난 길이 132㎝·폭 5㎜ 크기의 금. 도굴사건 후 해체 보수로 모습을 되찾은 끝이었으니 큰 낭패다. 방치한다면 탑 전체가 무너진다는 위기론이 만만치 않다. 오래된 석재며 지진 탓이라는 말들이 분분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미궁. 느닷없는 균열을 놓고 불교계와 문화재청의 공방이 뜨거운 가운데 조계종 문화부장의 발언이 새삼스럽다. “종교적 관점에만 미룬 채 문화재 측면에서의 관심과 유지보수에 소홀했다.” 어차피 금 간 국보에 날 선 공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복원된 광화문 현판 균열의 전철은 밟지 않기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봉은사 땅밟기’ 관련자, 명진스님에 공식사과

    ‘봉은사 땅밟기’ 관련자, 명진스님에 공식사과

    일부 기독교 신자들의 ‘봉은사 땅밟기’로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서울신문 10월 27일자 8면> 물의를 빚은 장본인들이 27일 봉은사를 찾아 공식 사과했다. 봉은사와 개신교계에 따르면 ‘찬양인도자학교’ 대표인 최지호 목사와 담당간사, 동영상을 만든 학생 등 10명은 이날 오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찾아 “봉은사와 불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특히 몇몇 유명 목사들이 공공연하게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비하해 왔다.”며 “이번 사건이 종교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한국 사회의 화합을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봉은사 차원에서 사과는 받아들이겠지만 향후 종교 간 소통과 갈등 해소를 위한 토론회 등을 제안하겠다.”고 덧붙였다. 찬양인도자학교 학생들은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우상의 땅이 하나님의 땅이 되기를 기원한다.”며 기독교식 예배를 올리고, 이를 ‘봉은사 땅밟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불교계가 발끈한 것은 물론 개신교계 안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 동영상과 함께 대구기독교단체가 만든 “대구에서 지하철 참사가 나고 이혼율이 높은 것이 동화사 등 사찰 때문”이라는 주장과 불교테마공원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어이없는 일부 개신교도들의 ‘봉은사 일탈’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 경내에서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도들이 개신교식 예배를 올리며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를 한 것은 너무 한심하다. 봉은사 땅밟기 논란은 ‘찬양인도자학교’ 20대 수강생 수명이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보고 기도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최근 인터넷에 올리며 시작됐다. 영상에서 젊은이들은 봉은사 경내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올렸다. 불교가 우상숭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했다. 하나님에 의해 이 땅은 파괴될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회복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편협하기 그지없는 위험한 생각이요, 행동이다. 우리 사회에 내재된 종교 갈등을 자극할 소지도 있다. 일부 개신교도들의 ‘봉은사 일탈’은 정말 어이없다. 문제의 젊은이들은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기독교식의 예배 뒤 “우상은 무너지고 주의 나라 되게 하소서.”라고 빌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저주까지 퍼부은 것이다. 이런 소식에 누리꾼들은 “다른 종교를 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은 치졸하다.” “현대판 십자군”이라는 등 우려와 비난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개신교도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불교계 인사들과 사회지도자들도 이들의 행동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어찌됐든 일부 개신교도들의 일탈이 종교 갈등을 자극하는 건 결단코 피해야 한다. 다행히 문제의 동영상을 유포한 젊은이들과 찬양인도자학교를 주관하는 단체의 목사가 어제 오전 봉은사를 찾아가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에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남을 배려하고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청년예수의 진정할 가르침이다.”고 타일렀다. 또 이번 사건이 종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한국 사회의 화합을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다행스럽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각 종교 간 소통과 갈등 해소를 위한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극단적 개신교도들이 봉은사 외에도 국내·외 다른 사찰에서 땅밟기를 한 영상이 속속 유포되는 것은 걱정스럽다. 종교 갈등은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 ‘봉은사 땅밟기’ 논란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조계종 사찰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라는 기독교식 예배를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파문이 커지자 해당 신자들 측에서 사과 의사를 밝혔지만 불교계는 종단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강구 중이다. 발단은 지난 주말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봉은사에서 땅 밟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발견하면서부터. 6분여 분량의 영상에는 자신들을 ‘찬양인도자학교’ 소속이라고 밝힌 기독교인들이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예배를 보고 기도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명진 스님은 지난 24일 일요법회에 앞서 문제의 동영상을 신도들에게 보여준 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이런 행동이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며 기독교 측에 종교 갈등을 주제로 한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봉은사 관계자는 26일 “찬양인도자학교를 운영하는 단체에서 오늘 전화를 걸어 와 사과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공식 사과는 받지 못했다.”면서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땅 밟기 하러 간다’는 글이 몇 년전부터 다수 올라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진상 파악이 끝나는 대로 종단 차원의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봉은사에서 기독교 예배를…‘불교 폄훼’ 동영상 논란

    봉은사에서 기독교 예배를…‘불교 폄훼’ 동영상 논란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조계종의 핵심 사찰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하는 동영상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영상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우상 숭배’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등 종교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말과 행동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문제의 영상은 지난 24일 ‘봉은사 땅밟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 왔다. 6분30여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자신들을 ‘찬양인도자학교’ 소속이라고 밝힌 젊은 기독교 신자들은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보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크게 우상 숭배를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면서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봉은사 곳곳의 전경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만든 우상들’, ‘헛된 것들’ 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기독교식 예배를 한 뒤에는 “우리가 밟고 지나간 자리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보냈다고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24일 일요법회에서 이들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이같은 행동들이 한국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진스님은 기독교 목사들에게 종교 갈등을 주제로 공개 토론을 제안하면서 “봉은사는 신도들과 함께 이런 망동을 막아내고 한국불교의 불꽃을 피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佛寶 사찰 통도사의 숨겨진 비밀

    佛寶 사찰 통도사의 숨겨진 비밀

    진리를 찾아 정진하는 불자들의 수행 공간인 사찰. 하지만 그 자체로도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상징의 총체다. 경남 양산 통도사는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로 불린다. KBS 1TV가 25일 오후 11시에 방송하는 특선다큐 ‘통도사(通度寺), 상징의 비밀’은 통도사의 숨겨진 비밀을 공개한다. 국보 290호인 통도사 대웅전은 한국사찰 건축의 백미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재다. 본존불을 모시는 다른 사찰의 대웅전과는 달리 불상이 전혀 없는 특이한 구조다. 건물의 정면 모습이 팔작지붕의 측면과 정면을 동시에 취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 유일한 사찰 건축 양식이다. 건물의 지붕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T자형을 하고 있다. 제작진은 3차원(3D) 그래픽 복원을 통해 통도사 대웅전이 T자형 지붕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혀내고 그것이 갖는 건축사적 의미와 불교문화재로서의 위상을 살펴본다. 통도사의 가람배치(사찰 건물의 배치)도 특별하다. 석가모니 부처의 진리를 새기고, 그것에 따른 교의를 충실히 전하기 위한 고도의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대웅전을 가려면 다리에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진리로서의 총체인 대웅전에 이르기 위한 과정, 즉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존재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다양한 배치 방식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통도사 경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맞는 건축물이 바로 삼성반월교다. 이는 속(俗)과 성(聖)의 경계를 구분하는 동시에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사찰의 교각답게 중요한 상징을 숨겨 놓았다. 대웅전 앞의 용꼬리 조각물의 비밀도 파헤친다. 이 조각물은 통도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장식물이다. 사찰 곳곳에 걸려있는 용모양 장식을 보면 사찰의 법당은 하나의 반야용선이다. 반야용선은 해탈을 통해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 타고 가는 용모양의 배를 의미하는데 법당 자체가 반야용선이라는 의미다. 취재팀은 이를 위해 인도의 코나락에 위치한 수레형 사원과 한국형 반야용선형 법당을 비교 분석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씨줄날줄] 日불교 조동종의 참사/김성호 논설위원

    전북 군산시에는 동국사란 독특한 사찰이 하나 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져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 대웅전이며 요사채, 범종, 석불상이 일본사찰 모습 그대로다. 정작 내국인들에겐 소외됐지만 일본인들은 꼭 찾는다는 명소. 동국사가 일본인들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찰의 외형 말고도 이 절에 담긴 역사일 것이다. 1919년 일본인 주지가 썼다는 범종 명문엔 이렇게 적혀 있다. “천황 은덕이 영원히 미치게 하니, 국가 이익과 백성 복락이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이 굳세게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이 땅에 세운 일본사찰은 500여개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한말 열강들의 각축 선봉에 빠짐없이 종교가 있었던 것처럼 일본불교도 마찬가지였다. 1899년 부산 개항에 맞춰 이 땅에 물밀듯이 들어온 일본불교의 배후엔 어김없이 일본인 부호들이 있었다. 한일병합 바로 전해에 개창된 동국사도 예외가 아니다. 범종 명문에 이름을 올린 발기인들은 지금도 군산시 지적부에 이름이 남은 일본인 유지들. 일본사찰들의 역할과 사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한국 근현대사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일본의 불교 종파는 단연 조동종이다. 군산의 동국사를 세운 종단. 일제강점과 수탈과정에서 끊임없이 종교의 명분 아래 맹활약한 조동종의 악명은 곳곳에 있다. 한국불교 초대종단 격인 원종(圓宗)을 통감부 비호 아래 일본불교와 동맹을 맺게 한 종단이다. 1930년대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공적을 기린다며 장충단공원에 박문사란 절을 세운 것도 조동종이었다. 해방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은, 한국 유일의 일본사찰 동국사를 세운 종단답다. 그런 조동종이 강제병합의 과거를 반성하고 일본정부에 징용자 유골 발굴을 촉구하는 영상을 한국정부기관에 보냈다고 한다. ‘조선출신자의 유골은 왜 남겨졌는가’라는 타이틀의 41분짜리 영상. 사실상 18년 전 종단차원에서 작성한 것을 이번에 보냈다는 참사문(懺謝文)은 알쏭달쏭한 간 총리 담화와는 사뭇 다르다. “한민족과 국가를 말살할 때 우리 종문이 첨병역할을 했다. 두번 다시 과오를 저지르는 일은 없다고 맹세한다.” 일본 전역에 무려 1만 5000개의 사찰을 둔 일본 최대의 선불교종단. 일제강점기 정교일치에 휘둘려 압제와 수탈의 선봉에 선 일본 불교 종단의 실천적 참회가 새삼스럽다. 신사참배며 강제징용, 내선일치의 물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을 우리 종교들. 어째 조동종 참사문이 썩 기분 좋지만은 않은 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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