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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장사 대웅전에 불지른 승려 뒤늦게 사과

    ‘천년 고찰’ 전북 정읍시 내장사(內藏寺) 대웅전에 불을 지른 50대 승려가 뒤늦게 사과했다. 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호송차를 타고 전주지법 정읍지원에 온 최모(54) 씨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씨는 ‘왜 불을 질렀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서운해서 우발적으로 그랬다”고 대답했다. 불을 지른 뒤 스스로 신고한 이유는 “주변 산으로 번지면 안 되니까”라고 했다. 구체적 범행 경위에 대해서는 “들어가서 설명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최씨는 지난 5일 오후 6시 30분 내장사 대웅전에 인화물질을 끼얹고 불을 지른 혐의(현주건조물방화)를 받고 있다. 이 불로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대웅전이 전소 돼 17억원(소방서 추산)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최씨는 화재를 직접 신고하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서 “사찰 관계자와 다툼이 있어서 홧김에 그랬다”며 범행을 인정했다. 반면 내장사 측은 “다른 스님들 간에 불화는 없었다”고 최씨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최씨에 대한 구속 여부는 이날 오후 늦게 결정 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내장사 대웅전 방화 죄송…산에 불 번질까봐 신고했다”

    “내장사 대웅전 방화 죄송…산에 불 번질까봐 신고했다”

    내장사 대웅전 불 지른 승려 영장심사“서운해서 우발적으로” 뒤늦게 사과내장사 측, 사찰 내 불화설은 일축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50대 승려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뒤늦게 사과했다. 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호송차를 타고 전주지법 정읍지원에 온 승려 최모(54)씨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씨는 ‘왜 불을 질렀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서운해서 우발적으로 그랬다”고 답했다. 불을 지른 뒤 스스로 신고한 이유에 대해서는 “주변 산으로 번지면 안 되니까”라고 했다. 최씨는 구체적 범행 경위에 대해서는 “들어가서 설명하겠다”고 말한 뒤, 형사들의 손에 이끌려 법원으로 향했다. 최씨는 지난 5일 오후 6시 30분쯤 내장사 대웅전에 인화물질을 끼얹고 불을 지른 혐의(현주건조물방화)를 받고 있다. 이 불로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대웅전이 모두 타 17억원(소방서 추산) 상당의 재산피해가 났다. 최씨는 화재를 직접 신고하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서 “사찰 관계자와 다툼이 있어서 홧김에 그랬다”며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내장사 측은 “최씨와 다른 스님들 간에 불화는 없었다”며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대우 스님은 이날 취재진을 만나 “내장사 대웅전 방화와 관련해 일각에서 떠도는 이야기와 다르게 사찰 내 불화는 없었다”며 “그분은 경찰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그 누구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부처님을 잿더미 속에서 지켜드리지 못한 죄는 목숨이 다한들 갚지 못할 것”이라며 “모든 죄와 업을 엎드려 눈물로 참회한다”고 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포토] ‘대웅전 방화’ 승려 ‘죄송합니다… ’

    [포토] ‘대웅전 방화’ 승려 ‘죄송합니다… ’

    지난 5일 전북 정읍 내장사의 대웅전에 방화를 저지른 승려 최씨가 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정읍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 대웅전 잃었지만…조금 늦었다면 국립공원 내장산도 위험했다

    대웅전 잃었지만…조금 늦었다면 국립공원 내장산도 위험했다

    소방당국이 ‘천년고찰’ 내장사(內藏寺) 대웅전 화재에 발 빠르게 대처해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국립공원 내장산으로 확대되는 사태를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전북도 소방본부에 따르면 내장사 대웅전 화재는 지난 5일 오후 6시 37분 승려 최모(54)씨에 의해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전북도 재난상황실, 한국전력공사, 경찰 등에 신고상황을 즉시 통보하고 오후 6시 50분께는 관할 소방서 인력을 모두 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선착대가 대웅전에 도착한 시간은 신고 20분 만인 오후 6시 57분이다. 당시 불은 이미 대웅전 전체로 번진 상태였다. 이어 인접한 순창과 고창, 부안소방서 등에서도 진화 인력 85명과 펌프·탱크차 등 장비 21대가 속속 도착해 화재 발생 1시간 20여 분 만인 오후 7시 53분께 큰불을 잡았다. 잔불 정리와 인명 수색을 마치고 완진된 시간은 오후 9시 10분이다. 진화가 신속히 이뤄진 덕에 2012년 화재로 새롭게 지어진 대웅전(165㎡)이 전소한 것을 제외하고 추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다행히 대웅전 건물은 지정 문화재가 아니고 내부에 문화재도 없었다. 특히, 무엇보다 대웅전을 감싸고 있는 국립공원 내장산으로 불길이 번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전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대웅전 화재진압이 늦어져 건조한 날씨에 산불로 확대됐더라면 국립공원 전체로 불이 번져 헤아릴 수 없는 큰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는 승려 최씨가 사찰 관계자와 갈등으로 술을 마시고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현장에 있던 최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후 4시 30분 정읍지원에서 열린다.  한편, 백제 무왕 37년인 636년 영은조사가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50여 동의 전각을 세우고 영은사로 창건한 내장사(內藏寺)는 건립 이래 네 차례나 화마 피해를 보는 비극을 맞았다.   첫번째 비극은 조선 중기 정유재란 당시 사찰이 전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한국전쟁 초기인 1951년 1월 내장사와 암자가 전소됐고 세번째는 2012년 10월 31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내장사는 잿더미가 됐다.  정읍시는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 옛터에 시비 등 25억원을 들여 건물을 복원했으나 165㎡ 규모인 대웅전은 승려의 방화로 또다시 불에 타 신도와 주민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포토] 잿더미로 변한 내장사 대웅전

    [포토] 잿더미로 변한 내장사 대웅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북 정읍 내장사의 대웅전이 지난 5일 한 승려의 방화로 전소된 가운데 6일 정읍 내장사 대웅전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2021.3.6 뉴스1
  •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화재에 전소... 조계종 “심려 끼쳐 유감”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화재에 전소... 조계종 “심려 끼쳐 유감”

    조계종 “최소한의 도의마저 저버린 행위”“내부 규율서 최고수위 징계 이뤄지도록”50대 승려 “불 질렀다” 직접 신고소방서 추산 17억여원 재산피해, 인명피해는 없어경찰 “동료 승려들에 불만 품고 범행” 5일 내장사 대웅전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소한 것과 관련해 대한불교조계종이 유감의 뜻을 표했다. 6일 조계종은 입장문을 내고 “9년 전 대웅전 화재 사건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대웅전 화재 사건이 발생했고, 그 배경에 내부 대중이 대웅전에 고의로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종단은 “종단 소속 승려가 대웅전에 고의로 불을 지른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또한 출가수행자로서 최소한의 도의마저 저버린 행위”라며 “조계종은 방화한 행위에 대해 반드시 종단 내부 규율인 종헌·종법에서 정한 최고수위의 징계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화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할 계획으로, 다시 한번 국민과 사부대중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인 636년 영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 1557년 조선 명종 12년 희묵 대사가 영은사를 중창하면서 이름을 내장사로 바꿨다. 지난 2012년 10월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대웅전 등 경내 전각이 전소했다. 정읍시는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 옛터에 시비 등 25억원을 들여 건물을 복원한 바 있다. 경찰은 내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혐의로 이 사찰 승려(53)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5일 오후 6시 35분쯤 경찰에 전화를 걸어 “대웅전에 불을 질렀다”고 신고했다. 그는 신고 후 도주하지 않고 현장에 있다가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약 1시간 30분 만인 오후 7시 53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소방서 추산 17억여원의 재산피해가 났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A씨는 3개월 전 수행을 위해 내장사에 들어온 이후 다른 승려들과 마찰을 빚다 이 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동료 승려들에 불만을 품은 A씨가 절에 있던 인화물질을 붓고 불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포토] 화마에 휩싸인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포토] 화마에 휩싸인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전북 정읍시의 천년 고찰 내장사(內藏寺) 대웅전이 또다시 불탔다. 2012년 화마에 휩싸인 이후 9년 만이다. 5일 전북소방본부와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30분께 전북 정읍시 내장사 대웅전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현장에서 불을 진압했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신고는 경찰에 오후 6시 35분, 전북소방본부에는 6시 37분에 접수됐다. “누군가 대웅전 전각에 불을 냈다”는 방화 의심 신고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방화 용의자인 승려를 검거했다. 승려 A(53)씨는 술을 마신 채 휘발유로 추정되는 인화물질을 사용해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최근 사찰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A씨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운하게 해 불 질렀다”...‘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전소(종합)

    “서운하게 해 불 질렀다”...‘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 전소(종합)

    전날 오후 내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승려 A(53)씨에 대해 전북 정읍경찰서는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이날 사건을 조사 중인 정읍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일 오후 6시 35분쯤 경찰에 전화를 걸어 “대웅전에 불을 질렀다”고 신고했다. A씨는 신고 이후 도주하지 않고 현장에 머물러있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돼 연행됐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약 1시간 30분 만인 오후 7시 53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소방서 추산 17억여원의 재산피해가 났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3개월 전 수행을 위해 내장사에 들어온 이후 다른 승려들과 마찰을 빚다 이 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동료 승려들에 불만을 품은 A 씨가 절에 있던 인화물질을 붓고 불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내장사 스님들은 망연자실했다. 특히 승려가 불을 질렀다는 것에 대해 내장사 한 스님은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인 636년 영은조사가 영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1095년(고려 숙종 3년) 행안선사가 당우와 전각을 중수했으며, 1566년(조선 명종 22년) 희묵 대사가 법당과 요사를 중수했다. 이 때 이름이 내장사로 고쳐졌다. 내장사가 불에 탄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년) 소실됐다가 인조 17년인 1639년 개축됐다. 이후 1938년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을 신축했지만 6.25 전쟁 때 전소됐다. 1958년 대웅전을 중건했지만 2012년 10월 원인 불명의 화재로 전소됐다. 정읍 시민들의 성금과 시 예산 등 총 25억원이 투입돼 2015년 7월 복원된 대웅전이 이번에는 승려의 방화로 허망하게 사라졌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내가 불냈다”…내장사 대웅전에 불 지른 승려 ‘검거’(종합)

    “내가 불냈다”…내장사 대웅전에 불 지른 승려 ‘검거’(종합)

    경찰 “내부 다툼 있었던 것으로 추정”2012년 10월 이어 두 번째 화재2015년 시비 25억 들여 재건 전북 정읍시의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이 다시 불탔다. 2012년 화마에 휩싸인 이후 두 번째다. 전북 정읍시의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이 다시 불탔다. 2012년 화마에 휩싸인 이후 두 번째다. 전북경찰청은 5일 내장사 대웅전 방화 피의자인 승려 A(53)씨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현행범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피의자는 방화 후 경찰에 직접 전화해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용의자를 검거했다. 그는 범행에 휘발유로 추정되는 인화물질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체포 당시 그는 술을 마신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으로 대웅전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전소 가능성이 크다고 경찰은 전했다.소방당국은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진화에 나서 오후 7시 53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결과 A씨는 최근 사찰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다가 다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읍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피의자를 검거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승려들과) 내부적 다툼 이후에 불만을 품고 대웅전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 범행 동기는 피의자 조사가 끝나봐야 파악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내장사는 내장산에 있는 선운사의 말사로 전북도 기념물63호이다. 내장사 대웅전은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8년 중건됐다. 내장사는 지난 2012년 10월 31일 오전 2시10분쯤 전기적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 대웅전이 모두 불에 탔었다. 당시 불화 3점과 불상 1점이 소실된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전북 내장사 대웅전 화재…경찰 “방화범 검거”

    전북 내장사 대웅전 화재…경찰 “방화범 검거”

    전북경찰청은 내장사 대웅전 방화 피의자 A씨를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5일 오후 6시 50분쯤 정읍시 내장사 대웅전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다. 구체적 방화 수법 등은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진화에 나섰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피의자를 이제 막 검거했다”며 “범행 수법과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속보] 내장사 대웅전 화재…경찰 “방화범 검거”

    [속보] 내장사 대웅전 화재…경찰 “방화범 검거”

    5일 오후 6시 50분쯤 전북 정읍시 내장산동 내장사 대웅전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내장사 대웅전 방화 용의자를 붙잡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문화재청, 문화재 수리이력 통합 관리…HBIM 구축

    문화재청은 문화재 수리 이력을 3차원 유형으로 통합 관리하는 HBIM(Historic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을 구축해 오는 2025년까지 국보 및 보물 목조 건조물 문화재 중 221건에 적용한다고 15일 밝혔다. HBIM은 건조물 문화재의 3차원 형상 정보뿐만 아니라 생애 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수리이력 등에 관한 정보를 포함하는 통합정보 모델이다. 기존에는 확인이 어려웠던 건조물 문화재 주요 구조부의 접합 방법, 내부 부재의 형상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훼손 원인, 수리 주기, 수리방법 등 수리이력과 부재별 재료 정보에 관한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져 해당 문화재를 수리할 때 과학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일례로 HBIM이 숭례문에 적용되면 최초 건축 및 중창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 기둥, 대들보 등 주요 부재의 수종과 수리 및 교체 시기, 훼손 원인과 수리방법 등 다양한 자료가 서로 연결된다. 올해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등 27건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국보·보물 목조 건조물 문화재 221건의 HBIM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후 국보·보물 중 석조 건조물 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등으로 대상을 확대한다. 문화재청은 “HBIM 정보를 민간에 공개해 가상·증강현실(VR·AR), 3차원(3D) 프린팅 등 문화재와 관련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고 확산하는 데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불끈불끈, 겨울이 빚은 설근

    불끈불끈, 겨울이 빚은 설근

    충북 괴산에서 물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단양, 충주 등과 만난다. 이 도시들의 한겨울 풍경도 꽤 극적이다. 특히 36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들이 그렇다. 드라이브스루로 빙하기 풍경을 관통하는 느낌이랄까. 달래강과 충주호(제천 관내에선 청풍호라 부른다)를 따라 충주와 단양의 겨울 명소들을 돌아봤다.●칼바위 암벽 요철 따라 근육질 뽐낸 수주팔봉 괴산 산막이옛길에서 달래강(달천) 물길 따라 충주 쪽으로 가면 살미면에서 수주팔봉과 만난다. 달래강변에 솟아오른 8개 봉우리라는 뜻이다. 오래전에 절벽 가운데가 절단돼 원래 모습은 잃었지만, 절개면을 따라 실개천이 폭포처럼 흐르면서 이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으로는 한여름 장마철에 폭포수가 넘쳐 흐를 때의 수주팔봉을 절정으로 친다. 그 모습도 나무랄 데 없다. 한데 바위 절벽의 우람한 골격이 도드라져 보일 때는 한겨울 눈이 내릴 때다. 흰 눈이 암벽의 요철을 따라 쌓이면서 음영을 만들고, 암벽 전체에 운율이 생긴다. 보디빌더가 애면글면 만든 근육질의 몸을 보는 듯하다. 바위산은 그래서 겨울에 더 멋있다. 흑백 사진 같은 암벽 사이로는 폭포수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북극 한파’가 며칠 더 이어졌다면 폭포수마저 얼어붙었겠지만, 이만 해도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빼어나다. 멀리서 보면 딱 수묵화다. 칼바위 암벽 위엔 전망대가 있다. 폭포 위를 오가는 출렁다리도 조성됐다. 전망대를 가려면 수주팔봉 뒤편으로 가야 한다. 주차장 옆에 출렁다리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수안보 성봉 채플·금봉산 석종사 ‘인증샷 명소’ 수주팔봉과 인접한 수안보면엔 성봉 채플이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기는 충주 지역 젊은이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작은 예배당이다. 수안보 온천단지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에 숨어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공식 명칭은 성봉메모리얼채플이다. 예배당은 우리나라 성결교단의 부흥을 이끈 이성봉 목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이 목사의 딸이 세계 여러 곳의 아름다운 예배당을 돌아본 뒤 장점을 따 지었다고 한다. 금봉산 자락의 석종사도 요즘 SNS의 ‘인증샷’ 명소로 관심을 모으는 곳이다.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은 천척루와 대웅전 사이 공간이다. 보통은 탑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감로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들어서 있다. 이름 그대로 다디단 물이 솟는 곳에 세운 건물이다.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가람 배치가 꼭 경북 봉화의 축서사를 보는 듯하다.●충주호 달리면 도담삼봉 겨울 풍경 주렁주렁 드라이브스루의 최종 목적지는 단양 도담삼봉이다. 강력한 한파가 몰려올 때 극한의 풍경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충주에서 도담삼봉까지는 충주호 수변 도로를 타고 간다. 36번 국도다. 차창 너머로 한겨울 풍경들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길이다. 적막에 싸인 산간 마을, 시린 겨울 호수, 월악산 영봉 등 우람한 산들이 번갈아 차창을 비집고 들어온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물줄기가 휘어 도는 도담마을 앞의 세 기암괴석을 일컫는다. 단양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이름난 명소다. 한겨울이면 도담삼봉까지 얼음길이 열린다. 날씨가 혹독할수록 얼음길은 더 단단해진다. 이맘때 선착장 부근엔 어김없이 ‘출입금지’ 현수막이 나붙지만, 스스로 ‘출입을 금하는’ 관광객은 별로 없다.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굳이 막지는 않았다. 예전엔 그랬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올겨울엔 상황이 다르다. 관광객 숫자가 확 줄었고, 얼음 위로 내려서는 이도 없다. 한겨울 비경을 찍는 사진작가들의 셔터 소리만 요란하다. 이런 황량한 풍경조차 어쩌면 두 번 보기 힘든 풍경일지 모른다. 감염병이 물러나고 나면 다시 얼음나라의 기이한 풍경이 계속될 테니 말이다. 글 사진 충주·단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순천 팔마비 등 3건 보물 지정 예고

    순천 팔마비 등 3건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은 26일 전남 순천 팔마비, 충남 공주 갑사 대웅전, 경북 의성 대곡사 범종루 등 지방유형문화재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순천 팔마비는 고려시대 충렬왕(1236~1308) 때 승평부사를 지낸 최석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고려사’ 열전에 따르면 승평부(지금의 순천)에서는 수령이 교체될 때 말 8필을 기증하는 관례가 있었다. 최석은 1281년 비서랑의 관직을 받아 개성으로 가면서 승평부에서 준 말 8필에 자신의 말이 승평부에 있을 때 낳은 망아지까지 합해 돌려보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최석의 공덕을 기리고자 팔마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말 건립된 비석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 완전히 훼손됐다가 1616년 순천부사로 부임해 온 이수광이 이듬해 재건했다. 9세기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공주 갑사의 대웅전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지만 대체로 원형을 유지해 온 건축물로 꼽힌다. 대웅전 내부 ‘갑사소조삼세불’(보물 제2076호)이 1617년에 제작됐고, 1659년에 ‘갑사사적비’가 세워진 점으로 미뤄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성 대곡사 범종루는 의성 지역에서 불교 사찰이 부흥하기 시작한 17세기의 양식적 변화를 잘 간직한 문화유산이란 평가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순백의 산’ 눈길 따라… 진경산수화 속으로

    ‘순백의 산’ 눈길 따라… 진경산수화 속으로

    오래전 절정의 단풍철에 전남 장성의 백양사를 찾은 적이 있다. 단풍으로 이름난 내장산국립공원에서도 정수로 꼽히는 곳이니 그 풍경의 화사함이야 더 말할 게 없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백양사 뒤에 버티고 선 거대한 바위산이었다. 사람들은 그 산을 백학봉(白鶴峯)이라 했다. 열병이라도 걸린 듯, 하루 종일 그 이름을 되뇌면서 언젠가 큰눈이 내리는 날 꼭 저 산을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흰 눈을 뒤집어쓴 백학은 어떤 모습일까. 그 웅장한 바위 절벽의 꼭대기에서 굽어보는 풍경은 어떨까. 장성 일대에 대설경보가 내려진 날, 백양사를 찾았다. 작은 연못과 눈 쌓인 단풍나무들, 단아한 쌍계루와 웅장한 백학봉이 수묵화처럼 어우러져 있다. 예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명성이 높았던 쌍계루와 백학봉의 ‘겨울 버전’이 펼쳐진 것이다. 풍경의 정수는 역시 어느 한 계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백학봉(651m)이 속한 산은 백암산(741m)이다. 장성과 전북 정읍, 순창 등이 이 산의 능선을 따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돼 마치 내장산에 속한 산줄기로 인식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내장산과는 인접해 있을 뿐, 결이 다르다. 최근 장성 주민 거의 모두가 ‘국립공원’ 안에 별도로 백암산 표기를 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설경보 뚫고 올라간 백암산 산행 백암산 산행은 보통 장성과 순창에서 시작된다. 백암의 주봉인 상왕봉을 빠르게 정복하려는 이들은 주로 순창 쪽에서 오른다. 거리가 짧고 오르막도 비교적 순해서다. 산꾼들에게 정석으로 꼽히는 코스는 장성 쪽 백양사를 들머리 삼아 약사암~영천굴~백학봉~상왕봉~능선사거리(남창고개)~운문암 입구~백양계곡을 거쳐 다시 백양사로 돌아오는 코스다. 거리는 약 10㎞ 정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소요된다. 이번 여정에선 백학봉까지만 다녀왔다. 장성 일대에 쏟아진 폭설 때문이다. 제설 작업이 이뤄진 약사암까지는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지만, 그 이후는 거의 러셀(눈길 뚫기)이나 다름없는 심설 산행을 해야 한다. 산행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고, 난이도 역시 그만큼 높아진다.산행 기점인 백양사 일대는 명승(38호)이다. 문화재 명칭은 ‘장성 백암산 백학봉’. 안내판은 “백양사 대웅전과 쌍계루 너머로 보이는 백학봉의 암벽과 삼림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백암산이 내장산과 함께 단풍 명소인 데다,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를 비롯해 1500여종의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자원의 보고”라고 적고 있다. 백양사와 쌍계루에 더해 백학봉이 있기에 비로소 ‘문화재급’ 풍경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여러 경관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저마다의 개성 또한 잃지 않으니, 이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해도 틀리지 않겠다.●비자림 숲으로 찍어낸 푸른빛 산행 들머리는 쌍계루(雙溪樓)다. 운문암과 천진암 쪽에서 흘러온 두 계곡이 만나 작은 연못을 이룬 곳에 날아갈 듯 앉아 있다. 등산로는 백양사 옆으로 나 있다. 백학봉까지 거리는 편도 1.9㎞ 정도. 그리 길지 않지만 오가기는 만만하지 않다. 백학봉이 거의 수직벽처럼 솟아오른 터라 처음부터 끝까지 된비알투성이다. 백양사 바로 뒤는 비자림이다. 높이 8∼10m에 달하는 비자나무 500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비자나무 북한지대(생장할 수 있는 북쪽 한계선)에 형성된 숲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진초록의 이파리들이 인상적이다. 푸른 빛깔의 참빗을 닮았다. 소복이 쌓인 흰 눈 덕에 푸른빛이 한결 도드라져 보인다. 약사암 초입까지는 비교적 무난한 산길이다. 다소 경사는 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약사암으로 향한 갈지자 계단 앞에 서면 비로소 진짜 오르막이 시작됐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표지판엔 백학봉에 이르는 계단 수가 1670개라고 적혀 있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수명이 4초 늘어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니 백학봉까지 가면 최소 112분, 얼추 2시간 가까이 수명이 늘어나는 셈이다.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약사암’ 계단 곳곳에선 ‘2분 휴식하면 심장이 편해진다’는 푯말도 종종 눈에 띈다. 쓸데없이 빠르게 오르는 걸 경쟁하지 말라는 거다. 서두르다 보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백학봉 같은 급경사의 산은 특히 그렇다. 약사암은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터를 잡았다. 양지바른 곳이어선지 ‘북극 한파’가 들이닥친 와중에도 볼에 와닿는 겨울 햇살이 제법 따스하다.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도 기막히다. 백양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주변 산자락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쏟아져 내려가고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한 폭의 거대한 진경산수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약사암 뒤로 돌아가면 영천굴이다. 거대한 암벽 옆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암자다. 먼 옛날, 영천굴에서 수도하던 고승의 독경 소리에 흰 양이 깨달음을 얻어 인간으로 환생했다던가. 이 설화는 백양사(白羊寺)라는 절집 이름이 탄생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백학의 등 오르면 펼쳐지는 일망무제 영천굴에서 백학봉까지는 시종 된비알이다. 목재 계단에 코를 박은 채 올라야 할 만큼 힘은 들지만, 전망이 사방으로 트인 덕에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백학의 등자락에 오르면 일망무제의 풍경과 만난다. 백양사나 장성호 쪽 풍경도 좋고, 순창 등 이웃 고을을 들여다보는 맛도 각별하다.들머리의 백양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명찰이다. 흰 눈 뒤집어쓴 당우들의 어울림이 근사하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팔층석탑(팔정도탑이라고도 불린다)의 설경도 인상적이다. 보통은 금당 앞에 불탑을 두는데 특이하게 대웅전 뒤에 세웠다. 주차장에서 경내로 드는 갈참나무 숲길, ‘국민 포인트’라 불리는 쌍계루 등의 설경 역시 명불허전이다. 백양사 인근의 장성호는 필수 방문 코스다. 눈 덮인 ‘장성호 수변 길’을 따라 적요한 호수를 돌아보는 맛이 각별하다. 호수 뒤엔 문화예술공원이 조성돼 있다. 백미는 조각공원이다. 박목월의 ‘나그네’ 등 시, 이중섭 등의 그림, 정약용 등 위인들의 어록에서 모티브를 얻은 조각작품 103점이 나지막한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일대만 차분히 둘러봐도 예술의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언덕 꼭대기의 전망대에선 장성호 등 일대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글 사진 장성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코로나19로 장성 관내의 일부 실내 시설들이 문을 닫았다. 이 지역 출신 임권택 감독의 영화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장성호 시네마테크와 북상면 수몰문화관, 필암서원, 홍길동테마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재개장 여부는 17일 이후 결정된다. 방문하기 전에 장성군 홈페이지 등을 참조하는 게 좋겠다. 건물 바깥은 언제든 접근할 수 있다. 특히 필암서원의 경우 조용하고 너른 솔숲에 앉아 옛 건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산, 호수 등 실외 여행지 대부분은 별문제 없이 돌아볼 수 있다. 코로나 탓에 어디를 가도 방문객이 적은 편이긴 하나 서로를 위해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는 필수다. →백양사와 장성호 사이에 있는 북이면 사거리는 고흐 벽화거리로 유명한 마을이다. 두 명소를 오갈 때 잊지 말고 둘러보길 권한다.
  • 따로 또 같은 고려의 수학적 미학… 한국 건축의 황금시대 ‘우뚝’

    따로 또 같은 고려의 수학적 미학… 한국 건축의 황금시대 ‘우뚝’

    현존하는 고려의 목조 건축물은 한반도 전체를 꼽아도 열 손가락이 남는다. 북한의 심원사 보광전과 성불사 응진전을 비롯해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조사당, 거조암 영산전, 강릉 객사문 등이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역사적 가치는 물론 건축적 가치도 뛰어난 유산들이다. 특히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은 구조적 결구법이나 건물의 형식미에서 고려 목조건축물을 대표한다.●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 천등산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봉정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이 7세기 후반에 창건했다 전한다. 현존하는 봉정사의 건물들은 하나하나 모두 중요해 살아 있는 건축박물관을 이룬다. 고려 중기의 극락전(국보 15호)을 비롯해 조선 초기의 대웅전(국보 311호)과 고금당(보물 449호), 조선 중기의 화엄강당(보물 448호)과 만세루, 조선 후기의 영산암 등이 시대적 특징들을 잘 간직한 채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처럼 시대적 건물들이 순차적으로 보존된 곳은 봉정사가 유일하다. 특히 극락전은 가장 오래된 현존 목조건물이다. “1363년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통상 지붕 해체 수리는 건설 후 150년 정도 뒤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최초 건립 연대는 고려 중기인 13세기 초반이다. 건립 시기가 확실한 수덕사 대웅전(1308년)보다 한 세기 정도 앞서는 셈이다. 극락전은 ‘정면 3칸×측면 4칸’ 몸체에 맞배지붕을 얹었다. 한식 건물로 정면보다 측면의 칸 수가 더 많은 건 희귀하다. 정면 한 칸은 4m 내외, 측면 칸은 1.5~2m로 매우 짧다. 측면에 기둥을 비정상적으로 촘촘히 세운 셈이다. 5개 기둥을 지붕 밑까지 세워 높이가 모두 다르다. 기둥들 윗부분을 수평부재가 꿰뚫어 서로를 연결한다. 그 위로 사선 부재들이 높이가 다른 기둥 끝들을 다시 연결한다. 그 위에 9개의 도리를 걸고 서까래를 얹어 지붕을 만들었다. 벽면의 크기에 비해 엄청 많은 부재들로 견고한 벽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기둥식 구조가 아니라 벽식 구조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천두식’이라 하여 남부 지방에서 흔히 쓰는 구조법이다. 신라 때 조성한 양양 선림원 터 법당에도 이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 중기까지 천두식 구조는 종종 쓰였을 테지만 봉정사 극락전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봉정사 극락전과 너무 다른 무량수전 영주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676년 창건한 최초의 화엄종 사찰이다. 소백산맥 급경사지에 10여 단의 석축을 쌓고 건물들을 배열해 독특한 가람을 조성했다. 가장 높은 단의 무량수전(국보 18호)이 현재 본전이며 뒷산에 의상을 기리는 조사당(국보 19호)이 위치한다. 조사당을 1377년 재건했고, 바로 전해에 무량수전을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현 무량수전의 창건 연대는 그보다 150년 앞선 13세기 초로 보는 것이 주류 학설이다. 봉정사 극락전이 재평가되기 전까지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영예를 누렸다. 두 건물은 비슷한 시기에 근접한 지역에 세워졌지만, 구조와 형태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몸체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정면과 측면 모두 기둥 간격이 넓고 기둥 높이도 거의 동일하다. 이러한 구조는 ‘대량식’ 또는 ‘들보식’이라 하여 조선 이후 모든 목조건축의 구조법이다. 극락전의 천두식 구조에 비해 부재의 수를 급격하게 줄여 경제적이고 넓은 공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천두식에 비해 덜 견고해서 별도의 구조체를 고안해야 했다. 내부에 두 열의 높은 기둥을 세워 건물 전체의 중심 구조체를 만들었다. 자연히 가운데 높은 내진 공간이, 그 앞뒤로 낮은 외진이 만들어진다. 마치 중세 유럽 성당의 바실리카 공간과 같은 구성이다. 무량수전은 남쪽이 정면이지만, 내부의 아미타불은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본다. 고주 열의 방향에 맞추어 내부공간의 방향성을 바꾼 것이다.●불안을 잠재우는 감각적 정교함 한식 건축의 구조는 무겁고 경사진 지붕면을 선적 요소인 목재로 지지하기 위한 공학적 틀이다. 뒤집어 말하면, 육중한 기와지붕의 무게가 목조 뼈대를 눌러 건물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봉정사 극락전의 천두식 구조나 부석사 무량수전의 고주 집합체는 각기 지붕의 하중을 감당하려 개발된 서로 다른 구조체계였다. 그러나 두 건물에 사용된 세부기법들은 놀랍게도 공통적이다. 부재들은 모두 목재이며 나무의 물질적 속성은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죽어서도 유기체적 성질을 유지한다. 휘기도 줄어들기도 비틀리기도 한다. 특히 한식 건물의 주재료인 소나무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이 심하다. 목재의 변형에 대해 이를 상쇄할 여러 기법들이 발전했고, 그 완성을 고려의 두 건물에서 볼 수 있다. 무거운 지붕의 하중은 모퉁이 기둥에 집중돼 안쪽 기둥에 비해 좀 더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귀솟음’이라 하여 모퉁이 기둥을 좀 더 높게 만든다. 경사진 지붕은 기둥을 바깥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를 방지하려 수직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둥을 기울인다. 중국 송나라 때 출간된 건축기술서 ‘영조법식’에는 귀솟음과 안쏠림의 기준 수치들을 계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건축은 기계적인 중국식 기술보다 전체의 조화를 우선해 유연한 기술이 발달했다. 창작자로서 목수의 판단과 안목이 건축의 격을 좌우하게 됐다. 이러한 세부기법들은 물리적 변형을 보완하려 개발됐으나, 궁극적으로 심리적 불안을 제거하고 시각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됐다. 지붕 처마를 수평선으로 맞춘다면 처마선은 처질 것 같아 불안해 보인다. 그래서 아예 좀 심하게 들어 올린다. 처지더라도 들어 올린 채로 안정된다.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배흘림하면 더 견고해 보인다.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단 하나지만 곡선은 무수히 많다. 직선이 휘어지면 곡선이 되지만, 곡선은 휘어도 곡선이다. 귀솟음도 안쏠림도 배흘림도 물리적 변형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수평, 수직, 직선으로 변하지 않는다. 변형되더라도 여전히 솟은 채로, 쏠린 채로, 배흘린 채로 안정돼 있다.●세밀가귀, 건축은 큰 가구다 봉정사와 부석사는 운 좋게도 전쟁도 피해 가는 깊은 산속에 있어 지금까지 보존됐다. 극락전은 경전을 보관하는 대장전이었고 무량수전은 강당이었다는 설도 있다. 산골 사찰에 있는, 주불전도 아닌 부속건물이었다. 거조암 영산전 역시 시골 사찰의 강당이었고 강릉 객사문은 지방 관청의 정문에 불과했다. 당대 최고의 격을 갖춘 건물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뛰어나게 아름답고 정교하다. 우연히 남은 변방의 건축물들이 이럴진대 최고작들의 수준은 얼마나 더 높았을까? 고려의 대들보는 항아리 모양으로 윗면은 두껍고 둥글게, 아랫면은 얇고 직선으로 가공한다. 윗면은 지붕의 하중을 담당하며 아랫면은 시각적 날렵함을 제공한다. 봉정사 극락전 항아리보의 밑면 두께는 4치(약 3㎝)인데 이 수치가 모든 부재들의 기본이 된다. 다른 부재들은 1.5배, 2배, 2.5배가 되어 6치, 8치, 1자 등으로 규격화된다. 이런 수학적 관계를 가져야 수많은 부재들을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고 짜 맞출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폭과 높이, 길이의 비율은 1대1대1.62로 황금비율이다. 정면 한 칸의 높이와 길이는 1대1.4로 루트2비율이다. 이 비례들은 기둥과 도리와 보의 길이 등 구조 부재들의 관계다. 그러한 수학적 관계 속에서 부재를 마련해야 견고한 뼈대를 만들 수 있다. 합리적인 구조와 골격의 비례는 황금비나 루트비 등 비례를 낳았고 동서를 막론한 고전적 형식미가 되었다. 고려가 남겨준 어떠한 건축물도 완벽하고 아름답다. 정교한 수학적 비례의 구조, 그리고 시각적 안정성까지 고려한 섬세한 세부기법들이 하나의 전체로 통합된 까닭이다. 고려의 건축은 너무나 공예적이어서 한 점의 큰 가구와 같다. 목재의 물성을 탐구하고, 부재를 정밀하게 가공하고, 합리적인 구조 뼈대를 짜 맞추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공예품들을 “세밀함이 가히 귀하다 할 만하다”(細密可貴)고 평했다. 고려의 건축은 여기에 완벽한 전체적 아름다움까지 더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천두식과 같이 다양한 실험들을 시도했던 한국 건축의 황금기였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첫눈이 와도 거리는 ‘썰렁’… 한눈에 봐도 쇼핑몰 ‘한산’

    첫눈이 와도 거리는 ‘썰렁’… 한눈에 봐도 쇼핑몰 ‘한산’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선 13일 서울 시내 곳곳의 거리는 썰렁했다. 눈이 내린 뒤 한파까지 닥치면서 도심이 텅 비었다. 눈으로 덮인 전국의 겨울 관광지도 한산했다. ‘누구나 언제든 어디서나 감염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연말 분위기가 실종된 모습이었다.이날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거리에 있는 대부분 상점이 문을 닫았다. 점심 때였지만 문을 연 몇몇 식당에도 손님은 없었다. 간간이 길을 지나는 시민들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구 명동, 서대문구 신촌 거리도 인적이 드물긴 마찬가지였다.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황준호(67)씨는 “평소보다 더 행인이 안 보인다. 확진자 1000명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이 큰 것 같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까지는 밤이 되면 사람이 좀 늘었는데, 2.5단계부터는 밤에도 사람이 안 다닌다”고 말했다. 평소라면 주말 나들이 인파가 몰렸을 쇼핑몰도 한적했다. 신촌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는 식자재를 파는 지하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판매 공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이날 신촌 쇼핑몰을 찾은 박모(54)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대를 넘었다는 소식에 많이 걱정된다”며 “오늘은 딱 살 것만 사고 빨리 집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눈 내린 겨울 관광지도 한적한 모습이었다. 경기 임진각에는 평소 주말의 25% 수준인 4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동두천 소요산에는 평소 절반 정도인 500명 정도의 탐방객이 다녀갔다. 송도국제도시 센트럴파크와 중구 월미공원, 차이나타운, 경인아라뱃길 등 인천 주요 유원지와 공원도 한산했다. 제주 한라산은 이날 입산이 가능했지만, 탐방객이 1000명 미만으로 평소 주말의 절반에 못 미쳤다. 기독교 연례 주요 행사인 성탄절을 열흘가량 앞뒀지만, 교회, 성당 등 종교시설을 찾는 신자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줄었다.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20명까지만 종교 행사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중구 명동성당은 신자 20명까지만 입장을 허용하고 나머지 신도들은 돌려보냈다. 종로구 조계사 대기장소에서는 대웅전에 입장하지 못한 신도 30여명이 합장하며 대기했다. 다만 이날 일부 대학가에서는 주말을 맞아 논술고사가 진행되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몰렸고 개장한 스키장에도 인파가 몰려 우려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단풍, 가을과 ‘밀당’

    단풍, 가을과 ‘밀당’

    선운사 도솔암에 딸린 작은 암자 나한전갓난아이 손바닥보다 작은 노란 단풍들여전히 푸른 이파리들이 절반 가까이…무명 치마저고리 두른 어머니처럼 수수한꺼번에 익은 선운산 단풍 구경은 못해 도솔암서 천마봉까지… 옹골찬 풍경 일품도솔계곡 암벽 아래로 농익은 단풍 가득유네스코 등재 기다리는 60㎢ 고창 갯벌날물 땐 정말 끝내주는 해넘이 풍경 선물‘과일이 익어 갈 때 한꺼번에 익는 것이 아니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나한전 오르는 길에 본 문구다. 어떤 심오한 가르침이 담긴 문장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한데 단풍의 경우만 본다면 비교적 이해가 쉽다. 나무의 이파리 전체가 한꺼번에 붉게 물드는 일은 없다. 늙고 거대한 나무일수록 그렇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선운사 나한전의 단풍도 그랬다. 붉거나, 노랗거나, 심지어 푸르른,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보는 듯했다. 거기뿐이랴. 단풍 숲 자체가 천연기념물인 절집 문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예상했던 건 강렬한 원색의 녹의홍상 같은 풍경이었다. 실제는 무명 치마저고리 입은 어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소박하지만 결코 누추하지 않은 아름다움. 나한전의 단풍이 딱 그랬다. 요염한 선운사를 본 적이 있다. 몇 해 전 늦가을 무렵이었다. 도솔천이 흐르는 계곡 주변과 선운사 경내가 단풍들로 온통 붉었다. 한데 선운사의 산내 암자인 나한전은 달랐다. 분명히 선운사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데도 나한전 주변의 단풍들은 잎이 푸르렀다. 다른 산의 이파리들은 고도가 높은 곳부터 붉게 물드는데 나한전 주변의 단풍잎들은 왜 순리를 거스르는 걸까. 가슴속에 어떤 갈증 같은 것이 남은 건 그때부터였다. 올가을 다시 나한전을 찾았다. 절정에 이른 선운사 단풍을 못 보는 한이 있더라도 나한전의 단풍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선운사와 도솔천을 뒤로하고 먼저 오른 나한전이었다. 절집 종무소 직원에게도 지금이 절정이라는 걸 단단히 확인했으니 이제 눈으로 보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한데 나한전 단풍은 뜻밖에 수더분했다. 갓난아이 손바닥보다 작은 애기단풍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붉은 잎도 있지만 노란 잎이 압도적이다. 이 뜻밖의 반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렇다고 아름답지 않은 건 결코 아니다. 애초 기대했던 나한전의 자태가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모습이었다면, 실제는 무명 치마저고리 두른 어머니처럼 수수하고 단아한 자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더 놀라운 건 여전히 푸른 이파리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저 이파리가 단풍이 될 때면 지금 익은 단풍들은 바짝 말라 제 빛을 잃거나 낙엽으로 뒹굴 터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오색으로 형형할 때가 절정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어쨌거나 분명한 건, 부처님의 가피가 있지 않는 한 한꺼번에 익은 선운산 단풍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꺼번에 물드는 게 외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이 대목에서 다른 명소 하나 더 살피고 가자. 이번 고창 여정의 또 하나의 목적지, 문수사다. 절집을 두른 단풍 숲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463호)인 곳이다. 여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빨강, 노랑, 연두, 초록 등 다양한 빛깔의 이파리들이 빛의 스펙트럼을 펼쳐내고 있다. 역시 과일이 익어갈 때 한꺼번에 익는 법은 없는 거다. 노거수일수록 더욱 그렇다. 다시 나한전 주변의 풍경을 살피자. 나한전은 선운사 도솔암에 딸린 작은 암자다. 나한전 위는 내원궁이다. 멀리서 보면 마애불과 내원궁, 나한전 등이 거대한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이 모습은 절집 맞은편의 천마봉에서 볼 수 있다. 주차장에서 천마봉까지 거리는 약 4.7㎞다. 빠른 걸음으로 3시간 안팎에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선운사와 도솔암, 내원궁 등을 천천히 돌아본다 해도 4~5시간이면 충분하다. 선운사를 찾는 많은 이들이 천마봉 트레킹을 선호하는 이유다. 도솔암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야트막한 오르막은 있어도 된비알은 없다. 도솔암에서 천마봉까지는 다소 품을 들여야 한다. 그래 봐야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것보다 조금 더 힘을 쓰는 정도다. 사실 선운사 주변을 에두른 산들은 대부분 300m 안팎으로 낮다. 선운산 역시 최고봉이 336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근동에선 내금강 운운하며 명산 대접을 받는다. 수려한 산세와 웅장한 암벽 등 옹골찬 풍경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선운산엔 문화재가 많다. 동백나무숲(184호), 장사송(354호) 등은 천연기념물이고 선운사 대웅전(290호)과 도솔암 마애불(1200호) 등은 보물이다. 나한전이 깃든 도솔계곡은 국가지정 명승(54호)으로 자체가 ‘보물’이다. 도솔암에서 천마봉 쪽으로 난 철제 계단 옆의 무명 바위가 전망 포인트다. 벼랑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내원궁과 늙은 호박처럼 동글동글하게 어깨를 마주한 도솔계곡의 암벽들, 그 아래로 농익은 단풍들이 가득하다. 천마봉 정상은 너른 너럭바위다. 다리쉼하기 딱 좋다. 이제 갯벌로 나간다. 신안, 서천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고창 갯벌은 면적이 얼추 60㎢에 달할 만큼 거대하다. 한눈에 담을 수 없는 너른 갯벌이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준다. 만돌마을 계명산 아래에 서해안바람공원이 조성돼 있다. 너른 갯벌을 찬찬히 굽어볼 수 있다. 저물녘 풍경은 이웃한 하전마을에서 맞는다. 국내 최대 바지락 산지로 꼽히는 곳 중 하나다. 날물 때 맞춰 가면 정말 ‘끝내주는’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갯벌까지 가려면 고창의 들녘을 지나야 한다. 수많은 크고 작은 구릉들과 붉은빛의 대지가 쉼없이 펼쳐진다. 곳곳에 나붙은 동학 관련 표지판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곳이 ‘황토현’(黃土峴)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풍경들이다. 푸른 계절에는 볼 수 없었던, 가을걷이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이다. 요즘 고창에서 ‘핫플’로 뜨는 곳은 ‘책마을 해리’다. 폐교를 활용해 도서관, 북스테이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낡은 교실을 가득 채운 수만권의 책, 교정의 나무 위에 세운 트리 하우스 등 ‘인증샷’을 찍을 만한 곳이 많다. 입장료는 책을 사는 것으로 대신한다. 해리면 월봉마을에 있다. 미당시문학관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평생 사랑한 아내가 죽자 곡기를 끊고 함께 생을 마감한 서정주 시인의 생애와 마주할 수 있다. 미당은 친일 행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는 시인이다. 전시관 한편에 그의 친일 행적만 모은 전시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미당의 스산한 과거가 마음을 어지럽히긴 하지만, 이 역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사가 아닐까 싶다. 미당시문학관 맞은편은 돋움볕마을이다. 돋움볕은 ‘처음으로 솟아오르는 햇볕’을 뜻한다.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를 소재로 동네를 예쁘게 꾸몄다. 글 사진 고창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하전갯벌과 가까운 심원면에 맛집들이 많다. 아주 작은 지역인데도 희한하게 음식점들이 밀집돼 있다. 굴밥정식 등을 내는 수궁회관, 갈치조림 등을 내는 선녀네장작구이와 갈비찜을 내는 전주식당, 할매네국밥, 중국요리집 나성반점, 우족탕 등을 내는 건강식소발탕, 커피와 이탈리아 요리를 파는 퍼핀 등이 몇 발짝 안에 몰려 있다. -문수사는 예전과 달리 절집 한참 아래부터 차량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절집까지 최소한 20분 이상 걸어 올라야 한다. 여정을 짤 때 참조해야 할 듯하다.
  • 사찰 불태운 혐오·증오의 불씨, ‘차별금지법’ 도화선에 옮겨붙다

    사찰 불태운 혐오·증오의 불씨, ‘차별금지법’ 도화선에 옮겨붙다

    경기 남양주 수진사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을 둘러싸고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새벽 개신교인으로 밝혀진 여성이 수진사에 들어가 불을 질러 건물 일부가 전소된 사건이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는 ‘더이상 참사가 없어야 한다’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개신교계는 잇따라 사과하고 나섰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면서 수진사 방화 사건이 차별금지법 제정의 도화선으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불교계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개신교인들에 의한 사찰 방화와 훼손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개신교인에 의한 사찰 훼손 사건은 과거에도 빈발했다. 2016년 1월 경북 김천에서는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60대 남성이 가톨릭 성당과 사찰에 진입해 성모상과 불상 등을 훼손했다. 1998년 6월엔 제주 원명선원 대웅전 불상 750여구를 훼손하기도 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수진사 방화 사건 즉시 성명을 내고 “개신교의 지도자와 목회자들은 신자들의 이 같은 반사회적인 폭력행위가 개신교 교리에 위배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공표해 신자들을 올바로 인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 장자 종단이 타 종교의 훼불 사건에 정색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진사 측도 “개신교 전체의 의식에서 나온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개신교가 잘못된 한 사람으로 인해 전체 종교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이홍정 목사)가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대표해 가장 먼저 사과 입장을 밝힌 데 이어 개신교계의 사과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NCCK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이번 일로 모든 불교 신자와 지역주민께, 그리고 관련 당국에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2016년 개운사 방화 사건 당시 불교계에 참회하며 복구 비용 모금을 펼쳤던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불자들을 향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개신교 시민단체 평화나무 대표는 “수진사 복구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종전 개신교 신자들에 의한 불교 침해 사건에 개신교계가 덤덤한 반응을 보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특히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개신교 신자 훼불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되짚고 진정한 종교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를 따지는 개신교계의 움직임에 이목이 모인다. 최근 개신교계의 자성과 다짐을 천명하고 나선 ‘2020 다시희망’은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가르침이 기독교적 가치와 동행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선언하며 잘못된 개신교회의 행동들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해 주목된다. 개신교계의 이 같은 입장 발표는 국회 주도로 추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움직임으로도 번질 수 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수진사 방화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와 함께 정치권에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절대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보수 개신교계의 대응이 어떨지 관심이 쏠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아스라이 청풍호 물안개 너머, 울긋불긋 참 곱다

    아스라이 청풍호 물안개 너머, 울긋불긋 참 곱다

    내륙의 호반도시 충북 제천에 가을이 한창이다. 예년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제천까지 와서 단풍 구경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계절에 가볼 만한 제천의 단풍 명소를 몇 곳 추렸다. 제천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내륙의 바다’ 청풍호를 찾아야 한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호반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알려졌듯 청풍호는 제천권역의 충주호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이 지역에서 자칫 ‘충주호’를 입 밖에 냈다가는 눈총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비봉산 정상… 청풍호 일대가 360도 파노라마 봄의 청풍호는 드라이브가 제격이다. 딱 눈높이에서 펼쳐지는 벚꽃의 향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다. 단풍 시즌엔 다소 다르다. 울긋불긋해진 산 전체를 조망하려면 높이 올라야 한다. 등산이 싫은 사람이라도 걱정할 건 없다. 비봉산이 있기 때문이다. 비봉산은 ‘내륙의 바다’ 가운데쯤에 솟아오른 산이다. 천혜의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정상에 서면 청풍호 일대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고도는 531m 정도지만 사방에 높이를 견줄 만한 산이 없어 주변 풍경을 돌아가며 눈에 담을 수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모노레일과 케이블카. 모노레일은 이미 알려진 제천의 효자 상품이고, 케이블카는 지난해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물태리에서 정상까지 2.3㎞ 구간을 왕복한다. 오르내릴 때 모노레일과 케이블카를 번갈아 이용해도 된다. 모노레일이 산비탈을 올라가며 맛보는 짜릿한 스릴이 압권이라면, 케이블카는 고도를 높일 때마다 달라지는 청풍호 일대의 풍경이 일품이다. ●거대한 암벽에 안긴 정방사… 월악산 한눈에 호반 드라이브로 만나는 단풍도 서정적이다. 정방사는 청풍호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집이다. 거대한 암벽에 안긴 절집의 자태도 좋지만 그 아래 펼쳐지는 풍광은 훨씬 빼어나다. 대웅전 앞에 서면 멀리 월악산과 푸른 바람 일렁이는 청풍호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바위와 호수,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려면 능강계곡 쪽으로 가는 게 좋다. 제천이 추구하는 관광 마케팅 포인트는 ‘물의 도시’다. 내륙의 바다 청풍호와 국내 최고 저수지인 의림지(명승 20호) 등을 끼고 있는 이점을 살리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된다. 제천의 여행지도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른바 ‘신상 여행지’ 3곳 역시 모두 물과 관련돼 있다.제천 중심부에 조성한 ‘달빛정원’은 낙후돼 가는 원도심에 낭만의 옷을 입힌 여행지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상가들이 밀집된 도심 340m 거리에 수로를 만든 뒤, 방문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조명, LED영상 시설 등을 설치했다. 낮보다는 밤에 찾아야 한결 더 낭만적이다. 이 일대에 제천의 독특한 먹거리인 ‘빨간 오뎅’을 파는 집들이 많다. 주전부리 삼아 먹으며 다녀도 좋겠다.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아찔한 유리전망대 의림지는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의림지에 살 떨리는 관광 시설물이 들어섰다. 용추폭포 유리전망대다. 용추폭포는 의림지 무너미에 조성된 인공폭포다. 폭포 위에 있던 예전 콘크리트 다리를 걷어내고 유리전망대를 새로 만들었다. 전망대는 이름처럼 바닥이 강화 유리다. 발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일부는 매직유리다. 평상시엔 반투명이다가 관광객이 발을 디디면 ‘짠~’ 하고 투명유리로 바뀐다. 발아래 폭포가 범의 아가리처럼 드러나는 장면이 제법 섬뜩하다. 밤에 특히 그렇다. 스릴 있는 공간이 필요한 젊은 연인들에게 딱일 듯하다.코로나19로 폐쇄됐던 의림지역사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건물 앞은 물의 정원이다. 잔잔한 물 조형물 덕에 차분하게 정돈되는 느낌을 준다. 박물관 주변에 쉴 만한 공간도 있다. 특히 ‘누워라 정원’이 인상적이다. 여러 설치미술 작품 사이에 해먹 등의 시설물들을 배치했다. 다리쉼을 해도 좋고 따스한 가을 햇살 받으며 쪽잠을 청해도 좋겠다. 의림지 위에 있는 솔밭공원에도 수로를 만들었다. 오래된 노송들 사이로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솔밭공원엔 반려견과 함께 찾는 이들이 특히 많다. 글 사진 제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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