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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당사 강릉으로 옮겼나

    ◎당지도부 총출동 趙 총재 위원장 데뷔 축하/趙 총재 “선거패배땐 黨 산산조각” 출마 각오 한나라당 趙淳 총재가 3일 강원 강릉을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7·21 재선거’의 출진 채비를 마친 셈이다. 지구당 임시대회가 열린 강릉 실내체육관에는 소속 의원 55명을 비롯해 3천여명이 참석했다. 당 지도부도 총출동했다. 축포와 색종이 세례로 잔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구당 위원장을 처음 맡은 趙총재로서는 ‘화려한 데뷔’다. 趙총재는 위원장 수락 연설문에서 “당의 운명과 정치의 방향이 이번 선거에 달렸다”며 “대승한다면 우리 당은 반석 위에 놓일 것이지만 만에 하나 패배한다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출마의 각오를 밝혔다. 趙총재는 특히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우리 당을 탈당,무소속으로 출마한 崔珏圭 후보를 연합공천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번 선거는 두 金씨로 상징되는 낡은 정치와 趙淳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와의 대결”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趙총재는 “55개 기업과 5개 은행의 강제퇴출,빅딜 등 관(官)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의한 구조조정은 총체적 부실을 몰고 올 것”이라며 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축사에 나선 당 지도부는 당권파,비당권파 가릴 것 없이 경쟁적으로 趙총재를 추켜 세웠다. “金大中정권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이끌 탁월한 지도자”(李會昌 명예총재) “가슴이 동해보다 넓고 산소같이 신선한 정치인”(李漢東 부총재) “잘못된 정치를 좌시할 수 없다는 숭고한 애국심을 발휘한 야당 총재”(李基澤 부총재) “국민을 위해 크고 참다운 정치를 할 정치인”(辛相佑 부총재) 특히 총재 경선을 앞두고 당권파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李명예총재는 ‘괜한’잡음을 우려한 듯 축사 직후 趙총재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 육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5)

    ◎“조국사랑” 참군인 정신 일깨운다/선사시대 이래 군사자료 8,600점 한눈에 金日成 작전명령서·베트콩 전단까지/부서진 총열·녹슨 수통·구멍뚫린 철모…/장렬히 숨져간 무명용사의 외침 절절이 불암산의 서기(瑞氣)가 어린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호국 간성의 요람인 이곳에 들어선 육군박물관은 일반인들의 군(軍)에 대한 거리감을 친근감으로 바꿔주는 묘한 공간이다. ‘한국의 시인 건축가’ 金重業씨(88년 작고)가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그 물꼬를 트는 상징으로 열쇠 형상을 택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흰색 화강암 건물로 잔디와 숲으로 차분히 정돈된 육사 캠퍼스 남쪽 끝에 들어앉아 있다. 정면에 연병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바로 앞에는 고 姜在求 소령 동상이 달려가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30여년전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훈련장에서 부하를 구하고 산화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이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참군인정신과 함께 참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육군박물관은 이 땅에서 ‘저질러진’ 전쟁에 관한 많은 것을 증언한다.지상3층 지하1층 건물중 고대실·현대실 등 두 개의 전시실에는 가깝게는 6·25전쟁에서부터 임진왜란,멀리는 선사시대의 군사 관련 유품과 문화재까지 모두 8,6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가치는 유형의 물질에서 옛 사람들의 혼과 정신을 만나는데 있다고 했던가. 전시실을 떠받치고 있는 14개의 원추형 돌기둥이 두 열로 돌아나간 옥외 전시장에서 당시의 총통과 대포들이 전장의 신음을 오늘에 전한다. 건물 중앙으로 맞닿은 기둥 사이에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 때까지 타던 캐딜락과,맹호부대가 월남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한 ‘안케패스 전승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군인으로 시작해 대통령이 되고,또 독재자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한 불운한 정치인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현대실에는 광복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각종 무기와 장비 복식 문서 등 4,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대사의 흐름을 요약한 다양한 색과 제각각 형태의 볼 것들이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은 6·25전쟁이다. 전쟁에 쓰였던 장비와 전단 복장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붉은빛 일색인 공산군의 그것들은 지금도 섬짓한 느낌을 전한다. 어느 시인은 뜰 안에 핀 장미꽃 빛깔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 0097호’에는 金日成이 전쟁중 직접 작전을 명령한 극비사항이 적혀있다. 1951년 8월8일로 찍혀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지령문’도 있다. 특히 6·25전적지인 설악산 소청봉에서 유골과 함께 발굴된 무명용사의 유품 앞에는 관람객들이 유난히 많다. 소총의 총신부분과 녹슬은 수통·구멍뚫린 철모.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전장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다가 외롭게 숨져갔을 그의 외침이 귓전을 때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6·25전쟁중 물자가 고갈되자 인민군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쓴 병뚜껑으로 만든 모표,허름한 방한화,버선,철모,수통 등이 월남전 당시의 궁색한 베트콩 군수품과 나란히 진열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고향의 달밤,임이 그리워 밤마다 웁니다.”“그리운 이여! 딸라도 선물도 싫어요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의 산 목숨뿐” 등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살포됐던 전단도 눈길을 끈다. 2층의 고대실에는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 이전까지의 군사관련 문화재 4,128점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등 석제무기와 3∼4세기 신라의 철검·무쇠도끼·무쇠창 등 철제무기들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을 정도의 현대무기에 비하면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한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조선후기 화살 연발장치인 녹로노나 부녀자도 쏠 수 있게 만든 수노(手弩)인 삼시수노기(三矢手弩機)가 복원품이긴 하지만 눈길을 끈다. 화살을 4개까지 장전해 쏘던 조선전기의 사전총통(四箭銃筒),조총,화강암 탄알인 단석(團石),발사기인 대완구(大碗口)와 비격진천뢰쯤에 이르면 본격적인 전쟁 분위기가 풍긴다. 대완구는 국내 유일한 것이며 비격진천뢰도 연세대박물관과 함께 유일한 소장자로 돼있다.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 군민(軍民)들의 처절한 항전모습을 담은 보물들이다. 박물관 건물을 나와 연병장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헬리콥터 장갑차 곡사포 전차들이 도열한 야외전시장에 접어들게 된다.50년 6월25일 남침의 선봉에 섰던 북한군 탱크 T­34와 이에 맞섰던 미제 M46탱크,전쟁초기 투입된 적 관측및 업무연락용 항공기 L­19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40여년 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첨예하게 대치했던 주인공들이 지금은 친구가 되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관장 姜性文 중령/“40년 전통 국내 유일 군사종합박물관”/군사문화 발달과정 전시/전쟁유적지 학술 조사도 육군박물관의 현 관장 姜性文 중령(53·18대)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주2회씩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96년 12월 관장직을 맡아 박물관 운영을 책임지랴 강의준비 하랴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바람에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에 초점을 맞춘 전쟁과 무기중심의 기념관 성격을 갖추고 있다면 육군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군사관련 종합 박물관입니다. 40년이 넘은 전통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경내를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마련되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지요” 육군박물관은 56년 육군사관학교 기념관으로 처음 문을 연뒤 10년만인 66년 육군사관학교 군사(軍事)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3년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이 완공돼 2년뒤인 85년 개관했다. 주변의 넓은 공원 분위기와 어울려 딱딱하게 느껴지는 군사문화를 순하게 바꿔낸다. 군사유물을 통해 군의 업적과 전통·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형태가 독특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형적인 군사관련 소장품들이 무형의 자산을 표현한다고 할까요.외침이 있을 때마다 민군(民軍)이 일치단결해 민족 수호에 나섰던 조상들의 자취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자부심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지요” 비록 군사문화를 다룬 박물관이지만 전통문화 유지역할에 큰 몫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게 姜관장의 설명이다. 휴전선 일대 군사유적지에 대한 학술조사와 군사유물에 대한 논문지 발간도 활발하다. 지난 94년부터 파주·연천·철원·포천군 지역의 산성·봉수대·한국전 격전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해 왔고 학술 논문지 ‘학예지’도 통권 5권을 펴냈다. 육군 박물관이 군사(軍史)를 다룬 박물관인 만큼 대학 역사교육의 보조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대학의 역사교육에는 군사 문화재의 발달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지요. 이 틈새를 메울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육군박물관입니다. 소장품들이 모두 가치있는 자료들인 만큼 영구보존을 위한 전시장 보완이 시급합니다” ◎육군박물관 가는 길/전철·노선버스 연계/육사후문으로 입장 70만평의 캠퍼스안에 다양한 레포츠 시설과 편의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특수목적 대학인 육군사관학교 안에 자리잡은 이색 박물관이다. 육군사관학교가 관리 운영하는 군 관련 시설인만큼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고 관광코스도 마련돼 있어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알찬 볼거리들을 만날수가 있다. 전철 1호선이 석계역,7호선이 먹골역까지 닿아 있고 노선버스는 45­2,803,45,745번이 운행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여대 앞에서 내린다. 매일 상오 9시 호텔신라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다. 육사 후문에서 안내를 받아 박물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며 정기 관광코스는 상오 10시와 하오 2시 등 매일 두차례. 화요일∼일요일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관람료는 어른 2,000원,학생 1,000원.
  • 금융혼란 빨리 수습하자(사설)

    퇴출은행 직원들의 집단반발로 인수작업이 이틀째 난항을 겪으면서 은행간 어음·수표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금융시장이 마비되는 큰 혼란을 겪고 있어 수습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퇴출은행 직원들은 관련문서를 파기하거나 전산암호를 삭제함으로써 금융전산시스템의 정상복구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여 고객과 거래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게다가 금융노련등 노동계가 퇴출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선언하는등 강경태도를 보임에 따라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는 실정이다. 국내 사상 초유의 부실은행퇴출을 맞아 발생한 이번 금융혼란의 직접적 원인은 직업윤리를 망각한 퇴출은행 직원들의 반발과 태업에서 빚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같은 상황에 대한 당국의 예측과 준비가 소홀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은 당초 은행퇴출에 따른 전체적인 업무정지는 없고 전산시스템도 계속 정상운영됨에 따라 고객 입출금이나 어음·수표결제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혁명이라 할수있는 금융 빅뱅(Big Bang)을 추진하면서 퇴출은행측의 물리적 반발과 계획적인 작업방해를 예상치 못한 데서 비롯된 판단착오였다고 볼수 있겠다. 퇴출대상은행을 발표한 날짜선정도 문제다. 하필이면 모든 자금결제가 몰리고 은행으로서도 한은(韓銀)지급준비금 계산등으로 가장 바쁜 월말을 택했느냐는 지적을 받지 않을수 없다. 물론 당국도 일부 퇴출대상명단이 사전에 유출됨에 따라 갖가지 악성루머가 나돌고 심각한 정도의 예금인출이 빚어지는 등 걷잡을수 없는 교란상황이 벌어지자 불가피하게 발표날짜를 앞당긴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예금의 원리금보장과 함께 인수은행을 통해서 입출금이 계속된다는 계획등을 사전에 고객들에게 충분히 알려야 했던 것이다. 이번 사태로 당국은 퇴출은행의 고객은 물론 거래기업이 금융시스템의 마비로 인해 최종 부도처리되는 잘못이 없도록 철저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잖아도 장기간의 금융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및 수출입업체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끔 하루 빨리 자금지원을 강화하고신용장개설,수출환어음 매입,해외송금등의 무역관련업무를 정상화해야 한다. 퇴출은행 직원들의 경우 거시적이고 대승적(大乘的)인 안목이 요청됨을 강조한다. 사직당국이 인수업무 방해자의 사법처리방침을 밝힌 것과는 별도로 공익(公益)에 기여하는 금융인의 윤리의식을 되새겨서 국가경제회생을 위해 불가피한 인수작업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보이도록 당부한다.
  • “사선 넘은 전우 명예 찾아주오”

    ◎6·25때 민간인 유격대 ‘백골병단’ 용사들/647명 적후방 침투 3개월 활동 “전과 혁혁”/360여명 전사… “종전후 돌아온건 무관심뿐” “물질적인 혜택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조국을 지키려고 사선을 넘나들었던 우리가 그에 걸맞는 명예를 찾자는 것뿐입니다” 지난 51년 북한군 점령지역에 침투돼 수백명의 전사자와 실종자를 낳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유격대 ‘백골병단’ 용사들.이들은 지금도 이름없이 산화한 전우들을 생각하면 처절한 가슴을 달랠 길 없다. 백골병단은 1·4후퇴를 즈음해 적 후방교란을 위해 급조한 유격대였다. 육군본부는 민간인 647명을 차출,대구 육군보충대에서 불과 3주간의 특수훈련만 시키고 51년 2월 강원도 북한군 점령지역으로 인민군 복장을 시켜 투입했다. 비록 3개월 동안의 유격활동이었지만 혁혁한 전과를 올혔다. 양양군 인구리에 주둔했던 인민군 69여단의 궤멸은 이들의 공이었다.백골병단 대원들은 69여단의 작전계획,병력 등이 기록된 전투상보를 갖고 상급부대로 가던 인민군 장교 4명을 생포,전투상보를국군 수도사단에 전달해 대승을 거둘 수 있게 했다. 대남 빨치산 사령관 임무를 띠고 남한으로 내려오던 인민군 중장 길원팔(吉元八)을 인제군 가리산리 필례마을에서 생포한 것도 이들이었다.그러나 길원팔과 함께 붙잡힌 인민군 여장교가 탈출,이 때부터 인민군 부대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시작됐다. 인제군 용대리에서 1만여명 규모의 인민군 부대에 맞서 싸우다 60명이 목숨을 읽었다. 단목령은 이들에게 비극의 자리였다.일주일 동안 굶은 채 격전을 치른 대원들은 이곳에서 120여명이 굶어 죽거나 얼어죽었다.끝내 살아남은 사람은 647명중 283명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정부의 무관심.생존자들중 일부는 대한유격참전동지회를 만들어 국방부에 여러차례 훈장도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훈장수여는 전쟁직후 이미 끝났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동지회 全仁植 회장(69·당시 작전참모·대위)은 “우리가 훈장을 받겠다는 것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흐려져가는 호국정신을 다시 살리자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與野 오랜만에 힘 모았다”/청와대 회동 각당 반응

    ◎국민회의­협력분위기 타분야로 이어지길/자민련­공동정권 한축으로 전폭적 지지/한나라­나라 걱정하는데 여야 따로 없어 여야는 15일 4당 대표들이 金大中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으로 힘을 모으기로 한 데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뜻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회동이 끝난뒤 辛基南 대변인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여야가 하나가 돼 초당적으로 협력키로 한 것은 바람직하고 시의적절했다”고 설명했다.이어 “이 번 합의를 계기로 야당은 경제위기 극복 뿐만 아니아 국정 전반에 걸쳐 변화가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또 “모처럼만에 여야가 건전한 대화를 나눈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자민련도 공동정권의 한 축으로써 경제위기 극복에 여야가 초당적으로 대응하게 된 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또 국정개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함으로써 당당하게 공동정권의 몫을 챙기기로 했다.또 여야의 화해 무드에 편승,오는 7월초 원구성과 동시에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의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원만하게 해결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청와대 회담을 마치고 당사로 돌아온 趙淳 총재는 집무실에서 徐淸源 사무총장과 李康斗 총재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회담 내용을 설명.趙총재는 “여야가 나라를 걱정하는 분위기였고 대화내용도 좋았다”면서 “대화는 언제든지 필요하다”고 긍정평가. 趙총재는 “金大中 대통령이 주로 訪美 성과를 얘기했고 특히 경제문제와 대북관계를 자세히 설명했다”고 전하고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방미성과가 구체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고 소개. 그는 또 참석자 중에 법조인이 있어 (金대통령이) 정계개편을 비롯한 정치 문제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고 부연.대신 金대통령은 방미성과 보고후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실업대책과 수출증진대책,중소기업대책 등 국내 경제 활성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趙총재는 회담 끝무렵 “몇 말씀 드리겠다”며 여야간 정쟁 중지,인위적 정계개편 중단,6·4 지방선거 기간동안의 고소·고발 취하 등 정치현안을 거론.그는 “대승적 견지에서 여야가 서로 협력해 풀어 나가자”면서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고 소개.
  • 4당 대표 등 3부 요인 청와대회동 대화록

    ◎“정치가 위기극복 걸림돌 안돼야”/金 대통령­엔低에 위안화 절하되면 큰일/金 총리서리­美 설득하러 여야지도자 파견/趙淳 총재­인위적인 경제개편은 없어야/李萬燮 총재­지역연합보다 국가 대연합을 金大中 대통령은 15일 낮 3부 요인과 여야 4당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하며 30여분 동안 방미 성과를 설명했다.그리고 여야 대표들에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인 협력을 당부했다. 여야 대표들은 모처럼 여야 공동 노력에 동조했다.그러나 趙淳 한나라당총재와 李萬燮 국민신당 총재는 정계개편 등 정치 현안을 거론했다.특히 趙총재는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반대했다. 金대통령은 이에 “별로도 만나 얘기하자”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비켜갔다.배석한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영수회담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지는 모르겠다”고 다소 부정적인 부연 설명을 했다. ▷식사 전◁ ▲金대통령=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언제 열립니까.대의원수는 얼마나 됩니까. ▲趙 한나라당총재=8월 말에 열릴 것이며,1만명 정도 됩니다. ▲金대통령=우리 당은 4,000명인데,요즈음 늘고 있습니다. ▲李 국민신당총재=여권은 줄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어 金대통령은 지난 60년 서울시공관에서 열린 趙炳玉,張勉 박사의 대통령후보 경선때 3표 차로 趙박사가 이긴 얘기를 했으며,李총재는 정치부 기자시절 취재 일화를 공개.金鍾泌 국무총리서리와 朴泰俊 자민련총재는 군복을입고 한강 백사장 유세를 듣던 일화 등을 소개.) ▷식사 후◁ ▲金대통령=국민과 특히 여러 지도자들의 성원 덕분에 미국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이후 경제분야 방미 성과 종합,대통령 방미 결과,방미 귀국 기자회견문 등 3개의 자료를 배부하고 30분 동안 방미 성과 설명) ▲朴 자민련총재=미국에선 일본의 엔(円)화 하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金대통령=엔저(円低)가 우리나라 수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일본이 아시아 경제를 도와야 하는 입장인데도 부담이 되고 있으며,그 영향으로 중국의 위안(元)화까지 절하되면 우리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우리 외환 보유고가 360억달러이고,앞으로 100억달러가 더 들어올 예정이나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미국이나 일본이 해결을 위해 무릎을 맞대고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朴총재=(일본에서)30억달러를 빨리 들여와야 하겠습니다. ▲金대통령=정계에 계신 분들도 일본 지도자들을 만나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金총리서리=미국도 설득하기 위해선 여야 지도자들을 함께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趙총재=우리 당에도 좋은 분들이 많으니 함께 보내지요. ▲李총재=金대통령의 방미 성과는 참으로 큰데 그 결실이 국내에서 맺어져야 합니다.정치가 경제위기 극복의 걸림돌이 돼선 안됩니다.의원 수도 줄이고,선거 제도도 영남이나 호남에서 다른 당도 당선되게끔 바꿔야 합니다.인위적인 지역연합보다는 국가대연합이 바람직합니다.이번 방미에서 대북 문제가 한치도 차질없게 잘 처리됐다면 이제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대통령께선 국난 극복 또는 통일을 전제로 해서 국가대연합을 구상해 주십시오.별도로 말씀 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趙총재=나라를 위해 큰 노력을 해주신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립니다.방미 성과가 국내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게 우리 당도 여야없이 총력을 기울여 협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정쟁 중지를 통해국력의 낭비가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우리도 경제문제에 전폭적으로 힘을 모아줄 것을 생각 중입니다.절실히 진언하고 싶은 것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없었으면 하는 것입니다.우리 당에서 몇 사람이 간다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대승적 견지에서 선거 기간에 많았던 고소·고발을 서로 취하했으면 합니다.또 영수회담을 하면 서로 건설적인 얘기가 나올것이니 자주 대화를 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우리 당 국회의원이 점잖지 못한 말을 한 것은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金대통령=오늘은 사법부에서도 오셨으니 두 총재 말씀은 참고로 듣고 3개 항에 합의합시다.(참석자들이 모두 동의를 표시하자)정치 문제는 별도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 元均 복권론 부당성 해부/이조영編 ‘李舜臣과 王朝實錄’

    ◎“단독전투서 단 한번도 승리못해/狀啓문제로 이순신과 평생 원한”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가로챘다.그런 만큼 원균은 재평가돼야 한다” 조선 선조때의 무신 원균에 대한 복권론이 무성한 가운데 이를 강력하게 반박하는 책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외국어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인 이조영씨가 펴낸 ‘이순신과 조선왕조실록’(대성문화사).이씨는 이 책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원균 복권론의 부당성을 낱낱이 지적한다. 원균 복권 운동은 80년대에 시작됐다.원균의 억울함을 밝히는 논문형태의 ‘원균론’이 발표됐고,‘원균 그리고 원균’이라는 소설이 나왔으며,원주(原州)원씨 종친회에서는 진정서와 담화문을 내기도 했다.“이순신은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1614년 즉 광해 6년에 사망했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선조실록’을 보면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기록에 혼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히 살펴 보면 임란 초기의 원균은 무군장(無軍將)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순신이 전라 좌수영 수군 함대를 이끌고 왜적을 치러 경상도 당포 앞바다로 나갔을 때 원균은 단한 척의 판옥선(板屋船)을 타고 이순신 함대를 찾아 왔다.이순신이 옥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것이 바로 이 때의 일로,조정에 장계(狀啓)를 올릴 참이었다. 원균은 이 장계에 자신의 이름도 함께 넣어 주길 원했지만 이순신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해 평생 원한을 품게 됐다는 것이다.원균은 이순신과의 연합함대가 아닌 단독전투에서는 단 한번도 왜적에게 승리한 적이 없었다. 반면 이순신은 비록 적장이긴 하지만 일본 수군까지도 군신(軍神)으로 섬겼다.그들은 충무공 영정을 모셔 놓고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른 뒤 전장에 나갈 정도였다.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충무공에 대한 기록을 발췌한 것으로 되어 있다.대의명분을 밝혀 세워 춘추필법의 정신을 되새기도록 한다는 게 이 책의 의도다.
  • 6·4 民意/향후 정국 전망

    ◎與,선거대승 민심업고 개혁 박차/국민회의 정국주도 강화/야 의원 영입 본격화… 지역연합도 모색/與大野小 이룬뒤 정치개혁 우선 추진 국민회의가 정국 주도권 장악을 서두르고 있다.6·4 지방선거 결과가 金大中 대통령과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이 예고한 정계개편의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국민회의 지도부는 5일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선대위 집행위 회의를 열어 정국운영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했다.이어 6일 趙대행이 金대통령에게 선거결과와 함께 국민회의의 정국주도 방안도 보고하고 당 총재인 金대통령의 지침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는 정국주도를 위해 무엇보다 정계개편을 필수조건으로 본다.趙대행이 이날 “이번 선거결과는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본격적인 경제회생과 개혁에 나서라는 국민적 당부”라고 전제,“앞으로 정치권에 변화가 있을 것이며 우선 의원들의 개별입당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趙대행을 비롯,鄭均桓 사무총장 韓和甲 총무대행 金相賢 의원 韓光玉 부총재 등 지도부는 이미 국민회의가 석권한 기초단체장 지역의 야당의원을 집중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최우선 대상 지역은 인천이다.이번 선거에서 국민회의가 10명의 기초단체장을 석권한 만큼 이곳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이 설 땅이 없어졌다는 판단이다.沈晶求 李源馥 의원 등 3∼4명이 거론된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신당도 주시하고 있다.한나라당과 달리 대선을 위해 급조된 만큼 영입 가능성도 높다는 판단이다.張乙炳 의원을 비롯한 朴範珍 元裕哲 의원 등이 영입대상 1순위로 꼽힌다.국민회의는 수도권에서 최소 10명의 영입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당의 관계자들은 “정계개편은 단순한 여소야대 파괴가 아니라 경제구조 및 사회 전반의 개혁이 목적”이라며 여권이 원내 다수를 확보하면 곧바로 정치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위해 여권은 국회의장 당적 이탈을 비롯,상임위 중심의 연중국회 운영 등 국회법 개정,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지역주의 조장 및 흑색선전 근절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국민회의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여서야동(與西野東)현상도 정치개혁의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국민회의는 그 한 방법으로 TK 혹은 PK 세력과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동서화합을 위해선 무엇보다 지역간 연합체제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 6·4 지방선거­여야 지도부 표정

    ◎국민회의 “만세” 한나라 “잘했다”/국민회의­수도권 대승에 축제분위기·텃밭 무소속 선전엔 당혹/자민련­당운건 강원 패배에 침통 “전략부재 탓” 지도부 성토/한나라­부산·강원 승리로 잔칫집 “與 정계개편땐 강력 대응” 지방선거 투표일인 4일 여야 지도부는 개표상황을 지켜보며 선거결과에 대해 희비 쌍곡선을 그렸다. ○…국민회의는 선관위 개표결과 여권이 수도권을 석권한 것으로 나타나자 환호성이 터져나오는 등 축제 분위기가 완연했다. 여의도당사 6층에 마련된 종합상황실에는 趙世衡 총재대행,鄭均桓 사무총장,韓和甲 총무대행 등 당지도부와 100여명의 당직자들이 개표상황을 지켜봤으며 자정을 넘기면서 수도권에서의 전승이 확인되자 승리의 함성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高建 서울시장후보와 林昌烈 경기지사후보가 밤 11시30분께 나란히 상황실에 모습을 나타내자 당지도부와 당직자들은 “고건,임창열”을 연호했고 확성기를 통해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등 승리 분위기를 돋웠다. 趙대행 등 지도부는 두 후보에게 “수고 많았다”,“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내며 승리감에 취했고 두 후보도 “정말로 고맙다”며 당의 전폭적 지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선전을 기대했던 강원도와 부산에서 한나라당이 이기자 아쉬움을 표시했으며,텃밭인 호남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들이 잇따라 당선되자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민련은 대구 경북 강원에서 참패하자 침통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충청권 3곳과 인천에서의 압승에도 불구 전체적으로 선거 패배감에 휩싸였다. 특히 당운을 걸고 총력전을 펼쳤던 강원도에서 패배하자 상황실에서 朴泰俊 총재 등 지도부들은 향한 불만이 당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충청권에 모인사는 “이번 선거는 지도부의 전략부재에서 비롯됐다”며 朴九溢 총장 등 지도부의 인책론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엎치락 뒤치락하던 부산시장 선거에서 박빙의 승리를 거두자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여의도 중앙당사 10층 상황실은 ‘대역전극’을 축하하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손에 땀을 쥐며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당 지도부는 “온갖 악조건에서도 강원을 포함해 광역단체 6곳에서 승리를 일궈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향후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당 지도부는 하오 11시쯤 무소속 金杞載 후보 전략지역의 개표를 거의 끝마친 뒤에도 당 소속 安相英 후보가 선두를 유지하자 “승부는 끝났다”며 박수를 쳤다.당 조직국도 보도자료를 통해 “역대 유례없는 관권선거와 편파적인 TV토론,금권선거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최선을 다해 선거를 치뤘다”며 “지역편중 인사,경제정책 혼란,실업대책 전무 등에 대한 심판이 선거결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부산지역의 승리로 광역단체장은 6곳,기초단체장은 73곳에서승리를 거뒀다.지난 95년 6·27 지방선거 당시 각각 5곳·70곳을 차지한 것에 비하면 성공적이라는 것이 자체 평가다.그러나 일부 당직자들은 “여권이 전체적인 선거 결과를 빌미로 정계개편의 시나리오를 구체화할 것”이라며 향후 정국 추이를 우려했다. ○…국민신당은 시종 초상집 분위기였다.각 지역에서 소속후보들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자 사무처 요원들 사이에는 ‘공중분해’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 국민의 정부 출범 100일­특별대담:Ⅱ

    ◎정계개편 민주화 세력 규합 바람직/구조조정 1년내내 마무리해야 성공 가능/남북한 경제·사회교류 대승적 접근 꾀할때 ○국민에게 직접 정책호소/민중주의로 연결될 우려 ▲崔교수=당장 이번 지방선거 후 선거를 의식한 민중주의(Populism)적 유혹,또는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을 물리치고 모든 분야에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2000년이후 선거 준비 기간을 빼고 나면 앞으로 6개월,1년안에 이 정부의 구조조정 능력이 발휘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정체된다.우리 사회는 망하기엔 너무 크지만,취약요소가 너무 많아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고통이 이어진다.현 정부는 민중주의를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국민과의 대화’가 그 예다.엘리트보다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중주의로 연결될 우려도 없지 않다. ▲韓교수=지방자치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선거가 지방자치의 지역적 편중성을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한편 지방자치를 통해 각 지역주민들을 생산적인 정치의 장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그래서 중앙정치의 전횡시대가 아니고 지방시대의 다양성을 끌어내야 할텐데 이에 역행하는 현상도 눈에 띈다.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쟁점이 있지만 기초단체는 기본정보의 소통자체가 어렵다.정치에 대한 실망과 무관심 때문에 지방자치가 착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崔교수=앞으로 정계개편은 권력 투쟁의 과정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위해서 해야 한다.여야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구조조정을 위해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다. 정계개편이 경제회생과 직접 연관돼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야당과 노동계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정치가 불안하면 외국인의 눈에는 정국 불안으로 비쳐진다.당연한 결과로 외국인들이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타협도 좋지만,현 정부의 단호한 의지로 여야 정쟁과 노사분쟁을 진정시키는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한다.지방선거에서 여권에 대한 지지가 확인될 경우 지나친 민주주의 절차에 집착하기 보다 강력한 의지와 경영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반면 지방선거에서 여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다면 정계개편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집권후 다수당 개혁 방해/정치지형 다시 설계해야 ▲韓교수=현 정부에게는 밀월기간이 없었다.“집권 그날부터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한나라당이 개혁을 방해했다”는 집권당의 항변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나는 시점으로 밀월기간은 사실상 끝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국민들은 이제 훨씬 더 냉정한 눈으로 현 집권세력을 평가할것이다.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개혁작업이 민주주의의 큰 틀을 파괴시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정계개편이라는 것도 충분히 정당성을 얻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이것이 앞으로 金大中 정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정계개편의 필요성은 다들 인식하고 있는데,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대중이 요구한다고 해서 칼을 잘못 빼들면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반드시 개혁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이 클 것이다.이번 지자제선거 결과를 놓고 우리나라 정치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정치중립·인권중시 원칙/안기부 개혁 긍정적 평가 ▲崔교수=정계개편은 원리원칙대로 말하면 정치노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그리고 개혁방향에 대한 합의대로 이뤄져야 한다.지금 여야간에는 정치 이념 등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본다. ▲韓교수=정계개편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중요한 점은 과거 행동의 투명성과 가치지향의 유사성이다.이것이 없는 무차별 영입은 정치적 불안정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과거 민주화를 추진했던 세력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일 것이다.그래야만 명분도 있고 국민들이 이를 수용할 수도 있다. ▲崔교수=검찰 경찰 안기부 등 권력기관은 중립성을 견지해야 한다.특히 새 정부 출범후 안기부의 개혁은 상당한 신뢰를 주고 있다.안기부의 인권중시 발언은 그대로 실천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역사적으로 남을 발언이다.권력기관도 정당이나 정권차원이 아니라 구국의 차원에서 뚜렷한 원칙,즉 정치적 중립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韓교수=金대통령이 안기부를 방문해 “정치중립을 지키고,대통령 개인에게 봉사하는 기구가 되지 말고 국민에게 봉사하며 인권을 존중하라”고 말했다.그러나 우리나라 수사기구들은 아직도 가혹수사 등 과거 잔재를 많이 갖고 있다.이런 기구들이 앞으로 인권을 보장하는 기구로 변신한다면 굉장히 중요한 발전이 될 것이다.이를 위해 안기부가 수사기관의 인권 침해요소를 모니터링해서 유관기관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崔교수=새 정부 출범이후의 인사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개혁·구조조정과 역사적 방향이 맞는 전국의 각 계층에서 주도세력을 골고루 찾는 것이 인사 탕평책이다.깊은 역사적 통찰을 해야 하는데 출신 시·도 지역을 안배하는 것은 치졸하다.역사적 방향에 반하는 사람은 유능해도 유보해야 한다. 관료중에는 반개혁적 인사들,개발주도의 타성에 익숙한 사람들 가운데 유능한 사람이 현 정권에 등용된 경우가 많다.그런 사람 가운데 우연하게도 호남인이 적지 않다.이 점이 인사비판의 초점이 되고 있다.계층별 지역별로 선택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현 정부의 목표를 분명히 내세워도 단기적으로 호남인이 많이 등용될 것이다.개혁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을 충분히 홍보해야 하다. ○노사정 협력하는 것처럼 남북도 공동체의식 필요 ▲韓교수=남북관계를 보는 눈도 국내문제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한편에서 구조조정,노사정 협력을 하는 것처럼,북한을 상대로 상호주의(시장모델)의 원칙을 지키면서 또한 공동체적 공존 모랄을 적용해야 한다.이해타산만이 아니라 서로 보살피고 양보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그동안 냉전시대 논리에 의해 공동체적 공존의 논리가 많이 침식돼왔다.이는 정부 관료들사이에서도 그렇다. 특히 경제지원과 사회문화 교류에서의 대승적인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앞으로 학문 예술 종교 미디어 부문에서는 활발한 교류가 예상된다.정보가 교류하기 시작하면 남북한 동질성이 살아날 것이다. ▲崔교수=대통령이 취임직후 무력도발 불용,흡수통일 배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이것이 확인된 이상 남북기본합의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여기에 실용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정부차원에서는 상호주의를 해야 하지만 상호주의에 얽매여 남북관계 진전에 걸림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평소 민족과 미래를 위해 ‘큰 계산’을 해야 한다.민간수준에서는 너무 주고 받는식이 되면 안된다.다만 국민들의 형편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주의 원칙을 표방하는 가운데서도 특히 (미국의)남한 빼돌리기 등을 견제하는 상호주의가 필요하다.경수로건설에도 많은 비용이 들지만 큰 계산에서 보면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계산된 양보인 것이다.사실 상호주의의 경우 (북한으로부터) 받을 것이 별로 없어 동시에 주고 받기식의 협상에너무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韓교수=세계화의 촘촘한 그물망에 살고 있는 요즘,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보느냐에 못지 않게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한 시대다.바깥에서 볼때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IMF 위기 극복이지만 金大中 정부의 출범과 함께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가 어떻게 나타나며 金大中 정부가 여기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도 깊은 관심을 끄는 문제다.앞으로 외교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우리나라 인권정책의 위상을 새롭게 짜 국제무대에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위상을 확보한다면,국제교류는 물론 경제통상협력에서도 굉장히 유리할 것이다. 지난 94년 당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수상과 金大中 국민회의 총재가 벌였던 논쟁이 외국에서는 큰 관심을 끌었다.우리는 이제 아시아의 문화와 민주주의 및 인권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글로벌한 시각에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미국서 현 정권 큰 신뢰/對美·日 관계 새 틀 짜야 ▲崔교수=현 정권은 한미,한일 관계의 큰 틀을 짤 수 있는 자격이 있다.미국의 신뢰가 크다.오는 6일부터 시작되는 金대통령의 방미로 한미 외교는 큰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미국의 대북전략인 연착륙과 金대통령의 통일정책에도 모순이 없다.하지만 미국과의 외교에서는 남북 당사자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한일문제는 다소 까다롭다.큰 틀에서 보면 우리에게 도덕적 우월성이 있다.냉전 이후 한일관계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외교통상부는 실무에서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주고 받는 협상을 해야 한다.대통령이 전향적으로 밝힌 틀에 들떠 실리를 놓칠까봐 걱정이다.즉 헤프게 과거문제를 양보하고 문화개방을 해서는 안된다.문화개방은 곧 문화사업을 의미하므로 계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과 일본사이에는 합의가 있다.바로 역사인식의 공유다.그러나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과거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논의하되 과거 직시를 내팽개치면 안된다.따라서 일본과의 외교는 한쪽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주장하고 한쪽에서 실리외교를 주창하는 등 중용의 배합이 필요하다.
  • ‘한국호’ 불안한 항해/全寅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서울광장)

    심각한 외환·금융위기를 맞아 온 국민을 태운 ‘한국호’가 침몰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속에서 불안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승무원과 승객들은 급격한 기상악화와 밀려드는 거센 파도로 배의 일부가 손상되고 침수되자,사태의 급박함을 알고 당황해 하고 있다.바람과 물결이 거세고 선체가 크게 파손되어 안전운항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승객들과 배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승무원들은 위기발생 원인 및 책임소재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은 승선한 배와 기상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줄 알았지만,승선자들은 으레 그런 것으로 알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위기 초반에 새로 교체된 선장과 기간요원들은 이 배의 성능과 악천후에 익숙하지 않아 긴장하면서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승객들은 한편으로 기상상태가 호전되고 새 승무원들이 배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호’의 시련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사의 어네스터 네피어 아시아·태평양 담당이사는 향후 1∼3년동안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현재의 평가에서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상향조정의 가능성이 희박함을 밝혔다.또 다른 미국의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도 지난 11일 국내 19개 은행에 대해 무더기로 1∼3단계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함으로써,국내은행들의 외화차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정부가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외평채)금리도 투자부적격 채권(정크본드)수준으로 치솟았다.설상가상으로 인도네시아 사태와 일본의 어려운 경제사정이 한국경제를 더욱 불안하게 위협하고 있다. ○선장의 지시·요구 따라야 ‘한국호’는 일시에 밀어닥친 고실업·고환율·고금리·기업들의 연쇄도산·외국인 투자미흡·노사분규·주가폭락·저임금·저성장·IMF(국제통화기금)압력 등 동시다발적으로 거센 파도들이 밀어 닥쳐 전후좌우로 흔들리고 있다.이 위기상황에서 살아 남으려면 우선 배안의 모든 사람들이 남탓만 하며 우왕좌왕하다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선장의 지시와 요구에 따라 맡은바 최선을 다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지금의 ‘한국호’는 비전이 있고유능하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선장,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승객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적 승무원들,그리고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안전과 이익을 우선시하고 인내하며 협조하고 고통을 분담할 줄 아는 성숙한 승객들을 필요로 한다. 본격적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야,대기업과 노조 및 국민은 지난 연말 IMF 충격속에서 보여주었던 비장한 각오와 투혼을 점차상실하고 있다.기대되던 노사정 합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불협화음만 내고 있다.정부의 기구개편과 조정능력 및 정치권 혁신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늦어지고 있으며,대량해고를 우려하는 노조원들은 거리로 나와 생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들 초당적 협력을 국난을 맞아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여야 정치인들은 경제위기를 외면한채 당리당략과 환란,책임회피 및 6·4 지방선거에 몰두하고 있다.야당은 총리 인준거부를 위시하여 정부·여당의 발목을잡고 늘어지고,여당은 정치판을 바꾸는 정계개편에 열중하고 있다. 정부·민간·여야,그리고 노사 등 사회구성원의 거의 모두가 심각한 상황을 인식조차 못한 채 소모전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살리는 일 급선무 우리 사회와 주변환경은 너무나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눈앞에 닥친 위기는 매우 심각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별로 없다.환란·금융위기를 초래한 책임자 색출도 물론 중요하지만,죄없는 국민을 살리는 일이야 말로 최상의 급선무다. 우리는 조그만 여유라도 남아있을 때 실기하지 말고 시의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그렇지 못하면 우리 모두의 생존과 재기가 크게 위협을 당하고 말 것이다.모두가 사사로운 이익추구나 당리당략에서 과감히 탈피하고,대승적 차원에서 합심협력하여 공동체의 안전을 추구할 때다. 지금은 갈등과 입장차이를 접어둔 채 민족의 지혜와 저력을 모아 붕괴된 경제전선을 수습하고,인내와 투혼을 발휘해 활로를 개척해 나갈 비상시다.비록 현재는 환란발생으로 나라 전체가 큰 상처를 입었지만 국민이 단결하고 협력해 나간다면 반드시 활로가 열리고 경제위기도 극복될 것이다.
  • 네팔 카트만두(세계 문화유산 순례:72)

    ◎삶도 죽음도 없는 ‘지혜의 사원’/스와얌부나트 스투파에 새긴 ‘부처의 눈’/만물을 꿰뚫어 보는 ‘all­seeing eyes’/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는 종교 초월 숭앙받고/황금사원 옆에는 영원을 흐르는 바그마티강이… 【카트만두(네팔)=金鍾冕·金明國 특파원】 히말라야의 준봉을 우러러보고 있는 네팔왕국의 수도 카트만두. 네팔 사람들은 지금도 카트만두에 가는 것을 “네팔로 간다”고 말한다. 산간오지의 네팔인들에게 카트만두 분지는 곧 동경의 땅이자 마음의 주인이다. 그곳에는 깍아지른 듯한 계단식 밭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농사 지을 땅이 있고 유서깊은 사원들 또한 즐비하다. 전설에 따르면 카트만두 분지는 원래 하나의 커다란 산정호수였다.그런데 만주슈리 즉 문수보살이 나타나 ‘지혜의 칼’로 산허리를 자르고 물을 퍼낸 뒤 육지로 일궈냈다는 것이다.그때 맨처음 수면 위로 빛을 내뿜으며 떠오른 곳이 바로 카트만두의 성지 스와얌부나트이다. ○룸비니 버금가는 성지 스와얌부나트는 지금부터 2천여년 전에 세워진 불교사원이다.카트만두 시내에서 서쪽으로 2㎞쯤 떨어진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사원 입구에 가루다상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면 힌두사원도 겸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가루다는 힌두교의 신 비슈누가 타고 다닌다는 상상의 새이다.사원은 온통 야생 원숭이들의 울음소리로 왁자했다.‘멍키 템플’로 불릴 정도다.스와얌부나트로 오르는 길은 300개가 넘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져 있다.카트만두의 평균 고도가 1천400m라는 데 생각이 미치니 숨이 더욱 차올랐다.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허위단심 사원에 올랐다.요란하게 치장된 거대한 탑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네팔 불교에서 룸비니 동산 다음으로 신성시되는 스와얌부나트 스투파였다.솔도파(率堵婆)라고도 불리는 스투파는 불사리를 봉안하거나 절의 장엄함을 나타내기 위해 쌓은 탑을 말한다.하지만 이곳의 스와얌부나트 스투파는 여느 스투파와는 달랐다.무엇보다 눈길을 끈것은 스투파 상단부 4면에 새겨진 사방을 응시하는 부처의 눈이었다.만물을 꿰뚫어 본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올 싱 아이즈(all­seeing eyes)’라고 부른다.대승불교에서는 과거겁과 현재겁,그리고 미래겁에 걸쳐 각각 1천명의 부처가 출현한다고 한다.이곳의 스투파는 과거겁의 한 부처인 본초불(本初佛)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스투파 주변은 참배객들로 북적댔다.특히 부처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들은 스투파의 둘레를 몇번이고 돌고 또 돌았다.스투파를 한바퀴 돌면 불경을 1천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는 게 그들의 믿음이다.스투파 옆에 죽 늘어서 있는 기도용 휠 ‘마니차’ 주위에도 순례자들의 행렬은 이어졌다.그들은 라마교의 진언(眞言)인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진 원형의 마니차를 연신 돌려댔다.마니차를 돌리는 것은 불경을 외우는 것과 같은 공덕행(功德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이 수수께끼 같은 사원에 서면 누구라도 성자가 되고 현자가 될 법했다. 스와얌부나트 스투파의 ‘예지의 눈’을 멀리서 다시 보았다.순간 네팔의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의 이마에 붙인 티카(tika)가 떠올랐다.쿠마리에게 있어 그것은 삼라만상의 이 법을 훤히 꿰뚫는 ‘제3의 눈’이다.기자는어느새 쿠마리의 자장(磁場)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발걸음은 이미 쿠마리가 살고 있는 쿠마리 바할로 향하고 있었다.카트만두 시내의 남쪽 뉴 로드라 불리는 신생 거리를 지나 바산트풀 광장에 닿았다.쿠마리 바할이 모습을 드러냈다.작은 창이 달린 3층의 낡은 목조건물이 세월의 무게를 전해줬다. ○불경 1천번 읽는 공덕 고대 경전을 보면 쿠마리의 신체조건은 까다롭기 짝이 없다.쿠마리의 신체는 반얀(banyan,벵골 보리수의 일종)나무와 같고,허벅지는 사슴의 그것과 같으며,목은 고둥 같아야 하고,눈꺼풀은 소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쿠마리 바할에서는 쿠마리를 볼 수 있지만 사진촬영 만큼은 엄격히 금했다.영화에서나 보던 쿠마리는 실제 어떤 모습일까.사원의 종이 울리고 비둘기 몇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르더니 마침내 2층 창문으로 쿠마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석류꽃같이 빨간 입술에 조붓한 어깨,호리호리한 목선,게다가 기품까지 갖췄지만 표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쿠마리.아침이슬처럼 잠시 나타났다 이내 몸을 숨겨버리는 쿠마리는안쓰러움 바로 그것이었다.네와르족의 어린 소녀 중에서 선발되는 쿠마리는 힌두교 탈레주 여신의 현신(現神)으로 여겨지지만 종교를 초월해 두루 숭배받는다.나이가 들어 초경을 치르면 쿠마리는 사원을 떠나야 한다. ‘목조의 절’이라는 뜻을 지닌 카트만두에서는 어디를 가도 사원과 마주친다.그 중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힌두교의 성지 파슈파티 사원이다.카트만두 시내에서 동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한 이 황금빛 2층 사원은 힌두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정면에는 시바신이 타는 성스러운 소 ‘난디’상이 수호신처럼 웅크리고 있다.이곳은 힌두교의 성인 사두(sadhu)나 요기들에게는 메카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파슈파티를 한층 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원을 휘감고 흐르는 바그마티 강이다. 이 강은 흘러 흘러 인도의 강가(Ganga,갠지스강)와 만난다.바그마티 강 역시 강가처럼 가트(ghat,화장장)로 성역시된다. 매캐한 화장 연기속에서 태연히 머리를 감는 여인,식기를 닦는 아낙,의지가지 없이 병들어 누워있는 노인…. 이들에게는 더이상 죽음도 삶도 없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종교의 비의(秘義)만 숨쉴 뿐.바그마티 강은 오늘도 영원을 안고 흐른다. ◎여행 가이드/대여 자전거 이용 편리/통행규제 심해 주의를 카트만두 시내를 여유 있게 둘러 보려면 대여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개조한 오토 릭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카트만두 시내의 일방 통행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전거도 규제를 받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스와얌부나트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 카트만두 시내 서쪽에 있는 국립박물관 앞을 거쳐 가는 것이고,또 하나는 구왕궁 앞 듀버 광장에서 서쪽으로 비슈누마티 강의 조교(弔橋)를 건너서 가는 것이다.이국정취를 만끽하고 싶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좋을 듯.카트만두에는 많은 여행사들이 밀집돼 있다.이들은 카트만두 성지 순례 외에 트레킹이나 래프팅 등도 주선해준다.
  • 국회의원 무엇하고 있나(사설)

    우리 경제는 지금 금융시장의 경색현상이 심화되고 부도(不渡)대란이 크게 우려되는 등 각 부문에서 일제히 제2의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경고 등이 켜진 절박한 상황을 맞고 있다.게다가 노동계는 오는 16일 대규모 시위에 이어 총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지며 실업자들은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국민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국민경제는 사활(死活)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형국이다.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와 민의(民意)를 헤아리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할 국회의원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답답할 따름이다.물론 정부도 지방선거를 너무 의식해서 정책입안·집행의 일관성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다. 국회는 지난 1일 15일간의 회기로 시작됐지만 이렇다 할 활동없이 대부분을 의사일정 논의와 환란(換亂)책임을 둘러싼 ‘네 탓 정쟁(政爭)’으로 보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의사정족수도 못채우는 때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국회에서의 비생산적인 정쟁은 새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 너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경제위기에 대한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지 의구심을 가질 정도다.총리인준과 추경예산안 처리문제 등으로 시작된 여야국회의원들의 소모적 줄다리기 싸움의여파로 경제회생을 위한 20여건의 주요법안이 그대로 방치된 상태이다. 이 가운데는 경제위기극복의 핵심적 정책수단인 외자(外資)유치를 위한 ‘외국인 투자 및 외자도입에 관한 법률개정안’‘외국인투자 자유지역 설치법안’ 등 최우선적으로 처리돼야 할 중요 안건들이 적지 않다.국난(國難)의 위기상황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더욱이 얼마전의 고스톱화투건(件)과 관련,국회의원의 책무와 소명의식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크게 훼손된 점을 감안하면 선량들의 반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일은 아무리 되풀이해 강조하더라도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를 둘러싼 과열상태의 정쟁을 자제하고 정치권 개혁과 경제회생의 전열(前列)에 서 주기를 당부한다.특히 국민경제 회생불능의 위험성이 큰 노동계 불법시위를 사전에 막기위한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행여 당략적으로 불법·부당을 방관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지방선거운동의 헤게모니를 잡기위한 상대헐뜯기 정쟁보다는 경제와 민생을 위해 의연히 앞장서는 대승적(大乘的) 모습을 보일 때 민심과 표票)가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국미회의 단체장 후보 공천심사 마무리 단계

    ◎서울 4개 구청장 후보 자민련 몫으로/금품수수 의혹 광주시장 후보 교체 내일 확정 6·4 지방선거 후보 등록(19일)을 앞두고 국민회의의 단체장후보공천 심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전국 20여곳에서 선출·추천된후보들에 대한 재심사에 착수,조만간 최종후보를 매듭지을 방침이다.적지않은 후보들이 막판 희비가 엇갈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대 관심사는 광주시장 후보다.금품수수 의혹이 터져나온 高在維 전 광산구청장에 대한 교체론이 우세하지만 최종결론을 내리지 못한 분위기다.趙世衡 대행은 11일 “금품수수 사실이 밝혀지면 교체할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鄭均桓 사무총장은 “반대도 없지 않지만 그대로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유임 가능성을 내비쳤다. 자민련과의 연합공천도 마무리 지었다.서초,강남,노원 등 서울 지역 4개 구청장 후보 경기·인천 일부 기초단체장 후보를 자민련 몫으로 연합공천키로 했다.경선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 ▲경기 안산(박성규)과 전남 고아양(김옥현)은 경선결과대로 후보를 확정한 반면▲전남 해남은 재선출,경기수원은 보류키로 결정했다.경기 군포는 한국노총이 추천한 김윤주씨로 후보를 교체했다.노조의 정치참여 약속을 지키면서 2기 노사정 위원회 발족에 앞선 노동계 달래기의 의미다. 경기도 부천의 경우 경선결과를 뒤집고 통추그룹 출신의 元惠榮 전 의원으로 전격교체됐다.의왕은 姜相燮 지구당부의장 대신 申昌賢 현 시장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경선 결과를 번복한다면 민주주의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발하고 있다.적지않은 휴유증이 예상되는 대목이다.그럼에도 공천심사위원회(위원장 金令培 국회부의장)는 “대승적 차원에서 불가피한 일”이라고 일축,‘당선 가능성’의 잣대를 거두지 않을 방침이다.
  • 설악­오대산 입산 재개/16일부터 8개 등산로

    【속초=趙誠鎬 기자】 국립공원 설악산과 오대산 관리사무소는 7일 국립공원일대에 녹음이 우거지면서 산불발생 위험이 줄어들어 16일부터 등산객들의 입산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설악산은 백담사∼봉정암∼대청봉간 13.9㎞ 구간을 비롯,비선대∼마등령∼백담사(13.2㎞),비선대∼희운각∼대청봉(8㎞),오색∼설악폭포∼대청봉(5㎞),남교리∼대승폭포(11㎞) 구간 등 5개 등산로 51.1㎞구간에 대한 입산이 재개된다. 오대산의 적멸보궁∼비로봉∼상원사 13.1㎞ 등 3개 등산로 31.1㎞ 구간도 해제한다.
  • 南北 화해외교 주도권 잡자/金炳局 고려대 교수·정치학(時論)

    ○역사는 독재자에 관대 지금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노동당과 군부 등에 포진한 기득권 계층이 충성하는 한 金正日 체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 아래 변방 지역의 주민을 굶기면서까지 식량을 비축하고 당과 군부를 먹여 살리고 있다.미국 정부의 한 전문가가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이렇게 정권안정의 제물로 죽어가는 변방 지역의 주민은 전체 북한 인구의 사분의 일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처럼 무시무시한 생존전략이 실패할 조짐은 어디서고 보이지 않는다.당은 여전히 金正日 비서에 대한 충성의 노래를 읊어대고 군부는 무력으로 사회질서를 지탱한다. 그러나 시야(視野)를 조금 넓혀 세계사를 훑어보면 오히려 체제붕괴를 기대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역사는 폭력과 착취에 대한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혁명의 미명 아래 어린아이까지 학살한 크메르루즈가 권좌에서 쫓겨나기 까지에는 5년의 세월이 걸렸고 수천만명을 시베리아로 추방해 굶겨 죽인 스탈린은 오히려 전쟁에서 러시아를 구한 국민적영웅이 되어 편안히 자신의 생을 마쳤던 것처럼 ‘역사’는 독재자를 상당히 관대하게 대하곤 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독일식 통일이 일어나면 2등시민이 되고 만다는 위기의식에다 국민의 상당수를 아사(餓死)상태로 몰고 가면서 자기만의 살 길을 모색해 온 ‘죄의식’까지 가세하여 북한의 지배층을 金正日 비서의 편에 확고히 묶어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미국에서는 대북한 정책의 기본방향을 틀어 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북한이 붕괴(崩壞)되지 않는다면 우선적 과제는 남과 북의 화해 및 공존을 이끌어 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과 평양을 갈라놓는 두터운 불신의 벽에다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 탓에 미국 내에서 논의되는 남북 화해론(和解論)은 아직은 그 논리가 어슬프다.남과 북이 ‘언제’‘무엇’을 ‘어떻게’ 서로 주고받아 대화의 폭을 넓혀 가는가 하는 구체적 문제에 대한 심층적 논의가 아직은 없다.단지 모든 정책대안을 다같이 검토하다 보면 언젠가는 남과북의 교착상태를 깰실마리를 찾을 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하에 논의의 폭을 대단히 포괄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美 거론 화해론 미봉책 화해의 실마리는 아무런 조건없이 아사상태에 놓인 북한 주민을 살리는 식량 원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는가 하면 임시방편(臨時方便)에 불과한 원조 보다는 경제적 봉쇄에 대한 해제가 북한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끌어낼 촉매제라는 주장 역시 심심치 않게 들린다.그러나 문제의 본질인 ‘정치’를 이처럼 비껴가는 한 남북 화해의 창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심지어 미군의 지위와 역할까지 남북대화의 주제로 삼을 자세가 되어야 화해를 가능케 할 일괄타결의 기회가 온다는 극단적 견해마저 등장하는 형국이다. ○실상은 남한 양보론 불과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주의 주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논리가 있다.남과 북이 화해하려면 강자인 한국이 대승적(大乘的) 자세에서 먼저 북한을 감동시킬 만한 양보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화해의 실마리를 원조의 제공에서 찾든 대화의 기회를 경제적 제재에 대한 해제나 군사적 회담의 개최에서 찾든 한국이 화해의 책임자로 부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 내에서 거론되는 ‘남북 화해론’은 결국 ‘남한 양보론’이다.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면 마음이 편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경제가 환란(換亂)으로 쓰러진 마당에 무슨 수로 북한을 살릴 원조에 나설 수 있는가 하는 무력감 때문은 아니다.하물며 승자독식의 독일식 통일을 갈망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오히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테러를 일삼아 온 북한이 ‘전향(轉向)’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 피해자인 우리가 아무런 사전보장없이 단지 대화의 창을 열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먼저 양보하여야 한다는 것이 기막힐 뿐이다. ○구체적 전략 빨리 짜야 우리는 생각나는대로 마구 내놓는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 미국식 화해론에 민족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그러나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무조건 양보를 거부하면 한국은 아사상태에 놓인 동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 조차 싫어하는 냉혈(冷血)동물로 국제사회에 비추어 진다.심지어 북한의 붕괴를 은연중에 바라면서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의 개선에 발을 걸고 북한 주민을 아사상태로 몰고 간다는 의혹까지 받을 수 있다.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어설픈 화해론이 미국의 정계와 관계 및 학계에 더 확산되기 전에 남과 북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서로 주고 받느냐 하는 구체적 전략을 미국에 내놓으면서 화해외교의 이니시어티브를 쥐어야 한다.
  • 옐친 3연임 야망과 키리옌코 總理(해외사설)

    대승적인 전략차원인가.단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가.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세르게이 키리엔코를 총리로 전격 임명한 이후 제기되는 이같은 의문은 러시아대통령 권력의 모든 모호성을 함축하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였다면 35세의 테크노크라트의 총리지명은 상징적일 수 있다.60세였던 빅토르 체르노미딘 전 총리와 비교하면 구 蘇聯시대의 회색빛 이미지는 완전히 탈색됐다.훌륭한 에너지장관이었던 키리엔코의 총리 지명 자체만으로도 변화를 충분히 의미한다.공산주의자들 퇴장이후 1세대의 권력무대 등장을 말해 주고 있다. 러시아 행정부는 최근 몇달 동안의 긍정적인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득권층에 대응할만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오히려 기득권층은 석유은행 언론등을 독점하면서 정치인들을 조종했다.따라서 전혀 연루되지 않은 키리엔코의 선택은 기득권층의 전횡에 성공적인 대응을 보장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 옐친 대통령은 또다른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잦은 병치레로 인해 정부를 모든 일을 사실상 맡아서 했던 체르노미르딘 전 총리가 권부에 존재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점에서 나타나고 있다.체르노미르딘 전 총리는 기득권 층의 보이지 않는 후원으로 2000년의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부상,엘친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최근 미국방문을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국제사회에서도 이같은 분석이 제기됐다. 옐친 대통령은 체르노미르딘 전 총리의 복귀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지난 26일 쟈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과 헬무트 콜 독일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옐친 대통령은 그 의도를 드러냈다.정치적 기반이 전혀없는 백의서생인 키리옌코를 총리로 지명한 것도 자신과의 경쟁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옐친 대통령은 대통령직 3연임을 의중에 두고 있는게 확실하다.현재 러시아 헌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지만 지난 91년 옐친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당선이 됐을때는 러시아가 구蘇聯의 연방국가였으므로 그의 계산은 93년 새헌법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공산당이 다수인 의회에서 키리엔코총리에 대한 인준거부 움직임을 의회해산이라는 초강경 카드로 맞선 것도 동일선상에서 행해진 정치적 도박일 것이다.
  • ‘大洞制’를 지자체 개편 모델로/孔民培 창원시장(공직자의 소리)

    ○구청과 洞의 중간 기능 IMF한파와 더불어 지방행정의 경쟁력이 다시금 문제가 되고 있다.오는 6월의 지방선거 이후 지방행정 조직의 개편작업을 할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 창원시의 행정동을 절반으로 감축한 대동제(大洞制)시행을 생각해 본다. 지난해 초 창원시의 인구는 50만명에 이르렀다.당시 지방지치법에 규정된 구청을 설치할 것인가를 두고 공직사회와 시민들간에 논란이 분분했다. 침체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구청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그러나 구청 설치는 현행 3단계의 행정계층을 4단계로 복잡화하고 이에 소요되는 인력과 예산 낭비도 만만치 않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같은 양측의 일응 타당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행정의 전산화에 힘입어 행정동의 업무량은 50% 이상 감축되는 추세임에 틀림없다.따라서 새로운 행정서비스의 공급체계를 모색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됐고,그 결과 창원시가 시행하고 있는 대동(大洞)의 도입을 결정하게 된것이다. 대동제는 기존의 2∼3개 동을 생활권으로 묶어 1개 동으로 만들고,구청과 동의 중간적 기능을 부여해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 자리잡게 했다. ○예산절감 500억원 효과 대동제 시행 후 창원시의 동은 종전 24개에서 12개로,동별 인구는 1만8천900명에서 3만7천700명으로,공무원 수는 동당 평균 17명에서 30명으로 각각 늘었다.이는 400여명의 인력과 5백억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왔으며,동별로 늘어난 인력은 규모의 이익을 가져와 시청에서 처리하던 90여종의 민원사무를 과감하게 동으로 위임할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시 본청은 물론 최일선 행정조직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특히 남은 동사무소 12개를 시민의 문화·복지공간으로 활용,삶의 질을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뒀다. 대동제 도입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승진기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는 산하 공무원들의 불만,그리고 선거구조정에 따라 의원 수가 감축되는 시의회의 아픔 등 넘어야 할 산은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21세기를 바라보면서 ‘경쟁력있는 창원’으로 만들고자하는 시민들의 지지와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한 시의원들의 대승적 판단,시장을 믿고 따라준 산하 공무원들의 신뢰 등이 어우러져 국내 최초의 대동제는 시행될 수 있었다. 지방행정의 새로운 모델로 정착되고 있는 창원시의 대동제가 다가오는 지방조직 개편시 하나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앤드류 잭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4)

    ◎미 영토 확장 크게 기여한 전쟁영웅/개척농민 유복자로 변호사·의원·대법판사도/귀족정치서 대중정치시대 연 첫 서민대통령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미국의 7대 대통령(1829­1837) 앤드류 잭슨은 미합중국 정치문화에 ‘대중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이른바 ‘잭소니안시대’을 전개시킨 대통령으로 전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6명의 전직 대통령이 버지니아,매사추세츠 등 동부 출신의 대농장주 후손으로 좋은 정규교육을 받은 ‘신흥귀족’ 출신이었던데 반해,그는 가난한 개척농민의 유복자로 통나무집(log cabin)에서 태어났으며 정규학교라고는 문턱도 밟아본적이 없었다.그 때문에 첫 ‘서민대통령’으로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 대통령에 오른 잭슨은 대통령직 자체를 ‘최고의 지위’라기 보다는 ‘일할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으며 미국 정치사에서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시킨 대통령으로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강인함 또는 단단함의 상징인 히커리나무에 비유되어 ‘올드히커리’(Old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올드 히커리’ 애칭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67년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시골에서 태어난 잭슨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의 병사로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됐다.성질이 급하고 거친 그는 싸움질을 일삼아 아들을 목사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할 정도 였다. 장로교 목사로부터 가까스로 글을 깨친 그는 14세때 독립군 민병대에 가담,소년병으로 영국군과의 전투에 참가했다. 잭슨은 용맹스럽게 싸웠으나 이듬해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그러나 적개심에 불타던 그는 구두를 닦으라는 영국군 장교의 명령에 불복,그로부터 칼로 머리를 맞아 깊은 상처를 얻게 됐다.그는 평생동안 그 상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다녔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나온 그는 솔리스베리의 한 변호사 밑에서 법률공부를 시작,20세때인 1787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후 테네시주 내슈빌로 옮겨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96년에는 새로 주로 승격된 테네시주의 연방하원의원에 선출됐으며 이어 상원의원,테네시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의 호전적인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1812년 미합중국의 선전포고로 영국과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였다.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병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잭슨은 인디안과의 전투에서 연승,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군 중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서남부 전체 미군의 지휘권을 얻게 됐다. 잭슨은 플로리다 펜사콜라 전투에서 승리,플로리다를 장악했으며 15년 겨울,뉴올리언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영국군과 미군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사령관을 포함한 2천600명의 사망자를 낸 반면,미군은 단지 8명의 사망자만 냈을 뿐이었다. ○영군과 전투서 대승 세계 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방적 승리로 기록된 뉴올리언스의 승전은 영국민에게는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다.그동안 군사력 열세에서 유럽 강대국들에 소극적 대응을 해오던 미국은 자신감을 갖게 됐으며 국제사회에 독립국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됐던 것이다.지금도 뉴올리언스 시가지 한복판에는 포효하는 말에 탄 그의 동상이 높이 서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은 그를 자연스레 1824년 새로 태어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부상시켰다.잭슨은 1차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과반수에 미달했고,2차투표에서 정치적 흥정에 의해 존 퀸시 아담스에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그러나 잭슨은 4년후 다시 도전,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됐다. ○첫 암살대상자 기록도 잭슨은 작은 정부를 강조하면서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하면 가까와질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율의 관세제도를 개혁,관세율을 낮추었으며 예산절감을 통해 연방예산의 잉여분을 주정부에 골고루 이월할 것을 제안했다.따라서 그는 연방정부가 공공복지사업이나 건설사업 등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반대했다.정부의 지나친 부채는 국민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까지 주장했다.이같은 국민편에 선 통치는 그의 재선을 무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잭슨은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많은 시행착오도 일으켰다.친구들을 요직에 등용,‘주방내각’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인사행정의 난맥상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특히 그는 이혼녀인 부인 레이첼을 따라다니는 악의적 소문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그 문제로 대통령이 되기전까지 많은 사람들과 결투를 벌이곤 했다.그는 또 1935년 실패로 돌아갔지만 암살기도가 발생,역대 미대통령 가운데 처음 암살대상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는 ▲영토의 확장 ▲귀족정치에서 대중정치로의 전환 ▲연방정부의 부채청산으로 건전재정 확립 ▲부패한 연방은행의 규제제도 확립 등이 꼽히고 있다.대중정치의 확립은 라이딩스의 미대통령 랭킹에서 잭슨은 42명 가운데 비교적 높은 8위에 랭크되고 있다.그는 69세 대통령을 퇴임하여 자신의 농장인 내슈빌 교외의 허미티지에서 78세로 숨을 거둘때까지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잭슨 유적지 ‘허미티지’/평생 가꿔온 사저… 테네시주 내슈빌 위치/55만평에 정원·교회·농장·후손들의 집도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유적지로 지정된 ‘허미티지(Hermitage)’는 잭슨이 평생을 가꿔온 사저로 컨트리뮤직으로 유명한 테네시주의 주도,내슈빌에 위치해 있다. 외딴집이라는 의미의 허미티지는 55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잭슨과 그 가족이 기거하던 맨션을 중심으로 부인 레이첼을 위해 만든 정원과 교회,후손들의 집 등 각종 부속건물과 농장으로 돼있다.비지터센터 뒤에 위치한 맨션에는 잭슨 생존 당시의 실내장식과 함께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18세기말∼19세기 중반에 이르는 당시 미국 상류사회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이 터는 잭슨이 내슈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1804년부터 조금씩 구입해 모은 것으로 오늘날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대통령 재임중인 1833년 무렵이며 37년 대통령 퇴임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허미티지는 워싱턴 교외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사저인 마운트버논과 함께 미국내 대통령문화 보존의 한 본보기로 유명하다.1889년 애미 잭슨에 의해 창립된 허미티지부인회에 의해 보존되고 운영되고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이 부인회는 내년 2월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애미 잭슨은 자식이 없던 잭슨 대통령 양아들의 아들인 잭슨3세의 부인이다.그녀는 45년 잭슨 사망후,수십년 동안 역사적 장소가 일부는 팔려나가고 퇴락해가는데 안타까움을 느낀 끝에 허미티지부인회를 결성,유적지키기에 나섰던 것이다. 30년 앞서 결성된 마운트버논부인회와 함께 허미티지부인회는 남자들이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에 휩쓸려 있는 동안 부인들의 힘으로 문화유적을 지켜낸 훌륭한 본보기로 남아 있다.
  • 북풍조작 파문­여권의 의혹제기

    ◎“편지사건에도 안기부 개입”/오익제­김변식­김장수 사건 등 거론/구속 윤씨에 “DJ­북 연계” 3차례회견 사주 검찰이 6일 안기부의 이우석씨(32·가명·6급)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한 것을 계기로 지난 해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주도한 이른바 ‘북풍 공작’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대선 직전 재미교포 윤홍준씨(32·구속·무역업)를 만나 국내외에서 3차례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 후보가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거짓말을 하도록 사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회의 등 여권은 이 사건 말고도 ‘오익제 편지사건’‘김병식 편지사건’‘김장수 편지사건’ 등도 안기부와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이 개입한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는 ‘공작’의 배후를 규명하는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이우석씨는 96년 봄 서울에서 윤씨를 처음 만났다.미국 워싱턴의 아메리칸대학 경영학과를 95년 4월 졸업한 윤씨는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부동산컨설팅과 해외투자 브로커로 활동 중이었다.96년 대북투자 바람이 불자 그해 9월 북한에서 열린 나진·선봉지구 투자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안기부 해외조사 담당이었던 이씨를 만났고 꾸준히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다. 윤씨는 북한에 봉제공장을 차리려는 생각에 6번이나 북한을 방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씨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이다. 윤씨와 안기부와의 인연은 이시를 만나기 전인 94년부터 였다.당시 미국에서 권총을 갖고 다니며 안기부 공작원 행세를 하던 사람을 귀국한 뒤 안기부에 신고했다.이를 계기로 또 다른 ‘이과장’과 몇차례 어울렸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씨와도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해 12월9일 윤씨를 북경으로 불러 김대중후보를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열 것을 제의했다.발표 내용을 다듬은 이씨는 “여기까지 불렀는 데 여비로 쓰라”며 윤씨에게 미화 2천달러를 건넸다. 곧이어 도쿄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도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도록 사주하고 자신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편 오익제 편지사건은 월북한 오씨가 김대중후보에게 편지를 보낸 사건으로 안기부는 지난해 12월6일 고성진 103실장을 검찰 출입기자실로 보내 ‘대선정국을 놓고 북한의 여러 인사들이 대승을 기대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공개했다. ‘김병식 편지사건’은 지난해 12월7일 북한 조선사회민주당위원장 김병식 명의의 편지가 국내 일부 언론사와 각계 인사에게 팩스 등으로 전달된 사건이다. ‘김장수 편지사건’은 김장수라는 북한인이 지난해 11월20일 중국 북경에서 김대중 후보 ‘음해 편지’를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의장에게 보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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