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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혼선 없는 개인정보보호 추진체계 필요/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혼선 없는 개인정보보호 추진체계 필요/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 국민의 72%에 해당하는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초대형 침해사고가 있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싸이월드가 해커의 공격을 받아 가입자의 개인 아이디,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통째로 유출된 것이다. 경찰은 해커의 침입 경로와 개인정보 유출 경위에 대해 수사에 들어간 상태이며, 방송통신위원회도 사고경위 파악을 위해 보안전문가가 포함된 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벌이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역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고객정보 보호대책을 내놓았다. 보관하는 개인정보를 최소화하고 수집하는 모든 개인정보는 암호화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어 발효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대형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한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조금만 더 일찍 제정되었더라면 최악의 침해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좀 더 세밀히 속을 들여다보면 설사 개인정보보호법이 발효 중이었다 할지라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6조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하여는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SK커뮤니케이션즈와 같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을 우선 적용받는다. 실제로 정보통신망법은 분쟁조정, 침해신고센터 관련 규정 이외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보호 관련 조문을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전자적으로 처리되는 정보는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되고, 수기정보 등 전자적으로 처리되지 않는 정보와 비록 전자적으로 처리되더라도 이용자가 없는 정보(정보통신망법은 이용자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므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법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일은 개인정보 유출사고이면서 해킹이라는 정보보안사건이다.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정보보안사건이 터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정부의 정보보안 추진체계, 즉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한 지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에 산재해 있는 정보보안 추진체계를 종합·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어느 기관이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 정보보안 침해사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개인정보보호만큼은 조직화된 추진체계를 통하여 효과적인 대응전략을 수립·집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롭게 출범할 예정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위상을 분명히 정립하여야 하며,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대승적 협력과 양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여러 부처에 산재해 있는 국가정보화정책을 종합·조정하기 위해 출범한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당초 설립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위원회로 전락해 버린 까닭도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자체가 그 위상을 분명히 정립하지 못한 데다가 각 부처가 대승적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부처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자기 것 지키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개인정보보호 추진체계도 정보보안이나 국가정보화정책처럼 추진체계의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 취지는 개인정보처리자(사업자)들을 규제하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와줌으로써 사업자와 정보주체 모두를 개인정보의 침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 추진체계도 규제보다는 진흥과 지원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 속에서 탄생한 개인정보보호법이 원래의 입법취지에 맞게 잘 정착될 수 있도록 관계 부처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아쿠아리스트’의 세계를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아쿠아리스트’의 세계를 가다

    장마에 이어 예상치 않은 폭우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요즘의 날씨는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기 참 어렵게 한다. 해외로 나갈 계획이 없거나 국내 피서지도 마땅치 않다면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바다를 대리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대형수족관이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거북이 등을 타고 놀며 돌고래와 장난을 친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었을 마린보이와 인어공주다. 이런 상상 속의 모습을 대형 수족관을 무대로 펼쳐보이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아쿠아리스트’라 부른다. 대형 수족관에서 수중·해양 동식물을 기르고 돌보며 관리하는 직업이다. 한여름을 맞아 도심 속 수중세계에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서울 여의도 63씨월드. 우리나라에 아쿠아리스트라는 직업을 처음 도입한 수족관이다.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형형색색의 물고기, 거북이, 수달, 상어와 같은 수중생물을 보면서 부모들과 사진도 찍고 웃고 떠들고 있다. “1년 중에 지금이 제일 바빠요.” 아쿠아리스트 경력 6년의 김경문씨의 일과는 오전 8시에 시작된다. 개장(오전 10시) 전에 수조 청소와 여과장치의 점검을 끝내야 한다. 그가 관리하는 동물은 바다표범. 관람객을 위한 쇼는 하루에 네 번. “녀석과 친해지기까지가 힘들었어요.” 실습생 시절의 그를 만만히 보며 말썽을 부리던 바다표범들도 이제는 꾀를 피우지 않고 잘 따른다고 한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물속에서 시원하게 즐기는 직업으로 착각하지만 수중에 들어가면 친하던 동물들도 야생성을 드러낼 때가 있기 때문에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수중동물들의 식사준비는 아쿠아리스트들의 일과 중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업무이다. 동물의 종류, 습성에 따라 껍질을 까주거나 잘게 다져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마리라도 탈이 나면 큰일이다. 정근태 아쿠아리스트는 “물속에서는 병이 퍼지는 속도가 빨라서 집단 폐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관리한다.”고 말했다. 국내 수족관 중 유일하게 직접 만든 인공 바닷물을 공급하는 코엑스아쿠아리움. 바닷속 풍경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거대한 수족관에서 바다거북을 비롯해 온갖 물고기들과 하나가 돼 어울리는 다이버들이 관객들을 시원한 수중의 세계로 안내한다. 2만 마리의 정어리 군무(群舞)는 아쿠아리움의 자랑거리다. “체력이 굉장히 좋아야 돼요. 아니면 물에 하루 5,6번이나 들어가지 못해요.” 다이버 경력 4년의 김대승 아쿠아리스트는 “잦은 잠수에 피부도 말썽이고 옷에 밴 비린내도 반갑지 않지만 즐거워하는 어린이들을 보면 이 일을 멈출 수 없다.”며 미소짓는다. 관람시간이 끝나도 아쿠아리스트들은 분주하다. 물고기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청소해주고 아픈 물고기를 어떻게 조치했는지 사육일지도 작성하고, 물고기들이 잘 지내는지 늦은 밤까지 관찰한다. 대형수족관이 늘어나면서 아쿠아리스트도 증가했는데 전국적으로 1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오태엽 코엑스아쿠아리움 어류팀장은 “채용은 보통 동물파트와 어류파트로 나뉘어 진행된다.”며 “수산, 해양 관련 학과 출신 대졸자들이 대부분이며 최근에는 해양생물 분야 석사학위 이상의 전공자들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중동물의 관찰에 요구되는 섬세함 때문에 여성에게도 적합하며 양식(養殖)기사, 어병(魚病)기사 등 수산 및 해양 관련 자격증도 취업에 도움이 된다. 수중 쇼를 하고 수족관의 생물들을 돌보는 일이 더없이 힘들지만, 환호하는 관람객들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물빛 미소’를 짓고 사는 아쿠아리스트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바다기운을 선사하는 이들이 있기에 도심 속에 옮겨놓은 ´바다´는 생동감이 넘쳐난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베컴 잡는 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재계약을 목전에 둔 박지성(30)이 환상적인 골로 무력시위를 펼쳤다. 박지성은 28일 미국 뉴저지의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MLS) 올스타와의 친선경기에 선발 출장해 1-0으로 앞선 전반 45분 팀의 두 번째 골을 터트렸다. 박지성의 프리시즌 3호골. 맨유는 4-0 대승을 거뒀고, 미국 투어 4연승을 달렸다. 맨유는 전반 19분 안데르손의 선제 결승골로 앞서 갔다. 상대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2대1 패스를 주고받던 웨인 루니가 오른쪽에서 침투하던 안데르손에게 공을 내줬고, 안데르손은 이를 주저 없이 골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MLS 올스타팀도 만만치 않았다. 한때 맨유의 ‘판타지 스타’였던 데이비드 베컴(LA갤럭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베컴은 중원에서 플레이메이커로 공격을 조율하면서, 전반 7분과 22분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오른발 중거리포로 맨유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전반 29분에는 브레드 데이비스의 위협적인 왼발 중거리포가 맨유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기도 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지성은 중앙과 측면을 활발히 오가며 공격의 활로를 텄다. 또 한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며 ‘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티에리 앙리(뉴욕 레드불스)를 꽁꽁 묶는 등 수비에서도 만점 활약을 펼쳤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전반 막판 승부의 균형을 급격히 맨유 쪽으로 기울게 한 주인공도 박지성이었다. 페널티 박스 왼쪽 구석에서 패스를 받은 박지성은 여유 있는 페인트 동작으로 상대의 대인마크를 무너뜨린 뒤 달라붙는 수비 2명 사이에서 골문 오른쪽 구석을 향해 강력한 왼발슛을 날렸다. 공은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를 총알처럼 뚫고 골망을 흔들었다. 마치 어린이 축구단을 상대로 개인기 돌파 시범을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박지성은 후반 16분 교체돼 나왔고, 맨유는 후반 6분과 23분 베르바토프와 대니 웰백의 연속골로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최근 맨유에서 2년 연장 계약을 제안받아 최종 타결을 목전에 두고 있는 박지성은 이날 맹활약으로 남은 재계약 조건 협상에서 한층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됐다. 경기 최우수선수(MVP)의 영광도 박지성의 몫이었다. 그는 “경기력에 만족한다. 오늘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많았기 때문에 누구든 MVP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수상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겸손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또 31일 리턴 매치를 갖게 될 FC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대해서는 “좋은 경기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지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도 “그는 열정적이고 꾸준한 선수다. 그의 플레이를 보는 것은 행복하다.”며 박지성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프로야구] SK·삼성 후반레이스 굿스타트

    [프로야구] SK·삼성 후반레이스 굿스타트

    두 팀 다 상황은 절박했다. 26일 경기 전까지 3위 SK는 2위 삼성과 2.5게임 차였다. 5위 롯데는 4위 LG를 1.5게임 차로 쫓고 있었다. 둘 다 치고 올라가느냐 처지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런 두 팀이 사직에서 만났다. 후반기 첫 경기였다. 의미가 크다. 분위기를 잘 잡아야 앞으로 레이스가 편해진다. SK 김성근 감독은 “전날 밤 고민이 많았다. 4시간밖에 못 잤다.”고 털어놨다. 선발 투수 이름값만 보면 롯데가 나아보였다. 롯데는 고원준이 나섰다. 전반기 마지막 SK전에서 8이닝 2실점 호투했었다. SK는 올 시즌 선발로 두번만 나선 이영욱을 내세웠다. 사직 팬들은 경기 시작 전 전광판을 보고서 은근히 승리를 예감하며 들떴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였다. 초반부터 SK가 치고 나갔다. 1회초 2사 뒤 박정권의 내야 안타 뒤 이호준이 투런 홈런을 때렸다. 2회에는 안치용이 솔로 홈런을 날렸다. 금세 3-0. 그러는 사이 SK 이영욱은 1, 2회를 퍼펙트로 막았다. 이후 상황 전개도 SK가 좋았다. 4회말 이영욱이 2실점하자 막강 SK 불펜이 바로 가동됐다. 큰 이승호(37번)가 올라왔고 3이닝 1피안타 무실점했다. 이후 송은범-고효준이 효과적으로 롯데 타선을 틀어막았다. 수비에선 2회와 3회 중견수 김강민이 기막힌 다이빙 캐치를 선보였다. 안치용은 8회에도 쐐기 투런 홈런을 때렸다. 전체적으로 SK 팀워크가 롯데보다 좋았다. 결국 SK가 롯데에 11-2 대승했다. 광주에선 삼성이 KIA에 5-2로 역전승했다. 1-2로 뒤지던 8회 2사 뒤 드라마를 썼다. 최형우의 중전안타가 터졌고 이후 바뀐 투수 한기주를 상대로 대거 4득점했다. 2위 삼성과 1위 KIA의 승차는 1게임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지성 또 터졌다… 환상시즌 서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30)이 경기에만 나가면 골을 넣는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박지성은 21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센츄리링크 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축구(MLS) 시애틀 사운더스와의 친선경기에서 3-0으로 앞선 후반 24분 웨인 루니의 골을 돕고, 2분 뒤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었다. 맨유는 해트트릭을 기록한 루니와 1골 1도움의 박지성 등의 활약에 힘입어 7-0 대승을 거두고 미국 투어 2연승을 달렸다. 맨유는 전반 15분 마이클 오언의 헤딩 선제골을 시작으로 한 수 아래인 시애틀을 줄기차게 몰아쳤다. 하지만 오언이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애슐리 영의 슈팅이 골문을 벗어나는 등 전반을 추가골 없이 1-0으로 마쳤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답답한 경기 흐름을 뚫기 위해 후반 시작과 함께 루니와 마메 비람 디우프, 박지성 등 주전들을 대거 투입했다. 이 같은 퍼거슨 감독의 교체전술은 미국 투어의 성격을 감안해 전반에는 상대가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게 1.5군이나 2군 선수들을 투입하고, 후반에는 주전들을 투입해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의 정상급 경기력을 보여주는 ‘팬 서비스’의 의미도 갖고 있다. 라이언 긱스와 교체 투입된 박지성은 후반 초반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며 안데르송과 호흡을 맞췄다. 후반 20분 조니 에반스와 파비오, 가브리엘 오베르탕, 마이클 캐릭이 투입되자 박지성은 원래 자신의 자리인 왼쪽 측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퍼거슨 감독의 의도대로 후반에만 6골이 터졌다. 시애틀은 쉴 새 없이 얻어터졌다. 맨유는 후반 3분 디우프, 6분과 24분 루니, 26분 박지성, 27분 루니, 43분 오베르탕까지 골을 넣으면서 완승을 거뒀다. 중앙 미드필더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박지성은 왼쪽 측면으로 이동한 뒤 루니의 낮고 정확한 크로스로 두 번째 골을 도왔고, 바로 뒤 골 맛도 봤다. 중앙선에서부터 쇄도하던 박지성은 오른쪽 측면에서 오베르탕이 찔러준 낮은 크로스를 루니가 살짝 흘려주자 오른발로 골문 구석을 찔렀다. 시애틀 골키퍼는 맨유의 빠른 공격작업을 혼이 나간 듯 쫓아가다 역동작이 걸려 버렸고, 박지성의 슈팅이 골망을 흔드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맨유는 24일 MLS 시카고 파이어와 미국 투어 세 번째 경기를 치른다. 한편 미국 투어에 나선 볼턴의 이청용은 텍사스주 휴스턴의 로버트슨 스타디움에서 열린 휴스턴 디나모와의 경기에 선발출전했지만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볼턴은 이반 클라스니치와 케빈 데이비스의 연속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프리시즌 2연승. 이청용은 후반 22분 마르코스 알론소와 교체됐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프로야구] 오, 플~ ‘리즈’

    [프로야구] 오, 플~ ‘리즈’

    스코어 3-3이던 8회말 넥센 공격. 목동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LG의 바뀐 투수 때문이었다. 1사 1·2루 상황. 불펜에서 걸어나오는 네번째 투수는 외국인 선수 리즈였다. 20일 경기 시작 전, LG 박종훈 감독이 미리 예고했었다. “총력전이다.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선발 가운데 가장 구위 좋은 리즈를 쓰겠다.” 전날 주중 첫경기를 연장 끝내기로 내준 LG로선 이날 경기를 꼭 잡아야 했다. 애초 박 감독은 “이기는 상황에만 리즈를 내겠다.”고 했지만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5위 롯데는 턱밑까지 따라붙은 상황. 이날 LG가 넥센에 지고 롯데가 잠실에서 두산을 이긴다면 두팀의 격차는 1.5경기가 된다.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다. 사실 다른 의미도 있었다. 임찬규가 불안한 LG는 누군가 다른 마무리 투수를 찾아야 한다. 박 감독은 리즈가 마무리로 어떤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일지도 궁금했을 법하다. 그래서 리즈의 이날 투구 내용은 중요했다. LG의 후반기 큰 그림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8회말 위기 상황을 잘 넘겼지만 9회말 무너졌다. 첫 타자 이숭용을 2루 땅볼로 잡았다. 그러나 허도환에게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맞았다. 여기부터가 문제였다. 경기 막판 위급한 상황에 주자가 나가자 눈에 띄게 흔들렸다. 다음 김민성 타석 때 초구 폭투를 범했다. 흥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후 김민성이 침착하게 공을 커트하자 승부가 급해졌다. 134㎞짜리 슬라이더를 밋밋하게 가운데로 넣었다. 김민성은 놓치지 않고 끝내기 안타. 결국 리즈는 고개를 숙인 채 마운드를 떠났다. 넥센이 LG에 4-3 승리했다. 실험은 실패했고 박 감독의 고민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잠실에선 롯데가 두산에 13-5 대승했다. 롯데는 전준우-김주찬-문규현이 3안타씩 치는 등 6명이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이제 5위 롯데와 4위 LG의 승차는 1.5게임이다. 대구에선 SK가 삼성을 10-4로 눌렀다. 2회말 SK 세번째 투수로 구원등판한 이영욱이 7이닝 동안 1안타 1실점 7삼진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KIA는 대전에서 한화에 5-3으로 이겼다. KIA는 하루만에 삼성을 제치고 1위로 복귀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구자철 프리시즌 두번째 골… 팀 18-0 대승

    구자철 프리시즌 두번째 골… 팀 18-0 대승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의 구자철(22)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골을 터뜨렸다. 구자철은 1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케른텐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하부리그 팀 FC 바드 클라인키르스하임과의 평가전에서 후반 10분 7-0을 만드는 득점을 올렸다. 9일 SC기터와의 경기에서 프리시즌 첫 득점을 올린 구자철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두 번째 골 맛을 봤다. 볼프스부르크는 전반 6-0에 이어 후반에만 12골을 터뜨려 18-0 대승을 거뒀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열린세상]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식 해법/장제국 동서대 총장

    [열린세상]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식 해법/장제국 동서대 총장

    지난 6일 자정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날아온 소식은 온 국민을 감격과 성취의 기쁨으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두번의 처절한 좌절을 겪은 후 삼세번의 도전으로 얻어 낸 평창동계올림픽 티켓이기에 더욱 값지고 뜻이 깊었다고 하겠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민들에게 안겨준 큰 선물임에 틀림없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떠들썩했던 지난주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주부터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 지루한 한국 내 갈등이 언론매체의 주요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 민주당 내의 대북정책 노선 갈등, 반값 등록금을 비롯한 복지 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혼돈, 한진중공업의 노사 갈등 등 뜨거운 논쟁으로 가뜩이나 무더운 여름을 더욱 달구고 있다. 감동과 갈등의 뉴스를 동시에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평창 유치식 해법’으로 접근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창식 해법이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내심 평창의 동계 올림픽 유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일각의 의견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광범위한 유치 찬성 분위기를 거스를 만한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갈등은 결국 정치권의 각종 주장과 정책이 국민 대다수를 납득시켜 대세를 형성시킬 만한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몇몇 정치인의 ‘개인적’ 의견이 아닌 대다수 국민의 뜻이 반영된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둘째, 평창식 해법에는 양보와 화합이라는 예술이 있었다. 예를 들면 부산은 2020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결정되면 부산의 꿈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역이기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평창을 위한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부산의 지역 언론들도 평창 유치 소식에 대해서 환영 일색이었다. 정치도 대승적 양보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대세가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주장만 일관하며 딴죽을 걸게 될 때 사회의 갈등은 증폭되고 소모적 정쟁만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평창식 해법에는 공통목표를 향한 유치위원회 각 구성원들의 다양한 역할이 있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로서 한국의 유치 의지를 강하게 표출했고, 김연아의 연설은 대한민국이 이미 겨울 스포츠의 강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건희 회장은 한국이 돈 많이 드는 동계올림픽을 감당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각자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을 모두들 완벽하게 해냈다. 그러한 다양한 완벽성에 성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가 한번 더 선진적 전진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각계가 자신들이 펼치고 있는 수많은 주장들이 과연 정교성과 완벽성을 갖추고 있는지, 또한 국가 100년 대계의 관점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어설픈 역할은 대한민국호의 항해를 방해할 뿐인 것이다. 넷째, 평창식 접근법에는 목표 달성을 위한 지도자들 간의 총화단결이 있었다는 점이다. 평창올림픽은 김진선 전 강원지사가 시작한 유치운동이다. 그는 두 차례 유치 실패의 쓴잔을 마셨고, 그 후 임기가 종료되어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최근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지사는 민주당 출신으로서 김 전 지사와는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평창 유치를 위해 함께 뛰었다. 김 전 지사의 경험과 전문성을 최 지사가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정치권도 국가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부족한 자신을 잠시 숙일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평창식 접근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우리사회가 평창식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면 지금의 갈등과 소모전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정치판에 평창식 모델 적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 [분데스리가] 물오른 손흥민 “난 최전방 체질”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의 손흥민(19)이 한 경기에서 무려 5골을 넣었다. 손흥민은 13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현지 선발팀인 질레르탈오스발과의 경기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나와 전반 19분 선제 결승골을 넣은 뒤 후반에만 4번이나 골망을 흔들며 팀의 12-0 대승을 이끌었다. 손흥민은 지난 6일 연습 경기에서도 4골을 넣는 등 5차례 연습 경기에서 무려 14골을 기록하고 있다. 비록 연습 경기라 상대의 견제가 심하지는 않지만 이쯤 되면 ‘득점 기계’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손흥민이 다음 달 6일 2011~12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이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름휴가 기간 아버지인 손웅정 춘천FC 감독의 지도하에 수행한 ‘지옥 훈련’과 함께 팀 내 포지션 변경이 주효했다. 지난 시즌 주로 측면에서 활약했던 손흥민은 옛 스승과 재회하면서 포지션을 바꿨다. 이번에는 최전방이다. 유소년팀에서 손흥민을 직접 지도했던 로돌포 카르도소 2군 감독이 1군 수석코치로 올라오면서 생긴 변화다. 카르도소 코치는 2군 감독 시절 손흥민을 2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시켰다. 카르도소 코치는 2군에서 손흥민을 최전방 공격수로 활용했었다. 체격과 자신감 있는 플레이가 최전방에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올 시즌 1군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미하엘 외닝 감독에게 손흥민을 최전방에 놓을 것을 강력하게 건의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말라가로 떠난 뤼트 판 니스텔로이의 공백을 걱정해오던 외닝 감독은 이를 받아들였다. 손흥민은 원톱과 투톱을 번갈아가며 테스트를 받았다. 결과는 골로 드러났다. 덩달아 손흥민의 팀 내 위상도 높아졌다. 지난 시즌 40번을 달았던 손흥민은 올 시즌 15번을 달고 뛴다. 지난 시즌 주전으로 뛰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아로 떠난 미드필더 피오트르 트로호프스키가 쓰던 번호다. 손흥민이 주전으로 뛴다는 뜻과 다름없다. 또 함부르크는 지난 8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언론도 난리가 났다. 함부르크 지역 신문 ‘함부르크 모르겐포스트’는 ‘소니’라는 애칭을 쓰면서 ‘손흥민이 함부르크의 골든 보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손흥민이 최근 활약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클럽에 막대한 수입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마스코트라며 칭찬을 늘어놨다. 함부르크는 한화그룹과 2013년까지 연간 80만 유로(약 12억원), 금호타이어와도 같은 시기 연간 70만 유로(약 10억원)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손흥민이 이런 추세라면 대표팀에서 주전 공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동료들도 긴장을 풀 때가 아니다. 박주영(AS모나코), 지동원(선덜랜드)은 큰일 났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CEO 칼럼] 금강산의 희망을 되돌려줘야 할 때다/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CEO 칼럼] 금강산의 희망을 되돌려줘야 할 때다/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금강산 길이 이제 열리는 거요?” 얼마 전 현대아산 콜센터로 걸려온 한 노인의 전화 한통에 담당 직원은 말문이 막혔다. 몇 개월 전 “내가 눈감기 전에 고향 땅에서 아버지 제사상 한번 차리게 해 달라.”고 생떼를 쓰던 그 노인이었다. 전후 사정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팔순 노인에게 담당자는 “뉴스 잘 보시고, 금강산에 다시 갈 수 있다고 나오면 그때 꼭 연락주세요.”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최근 통일부 등 당국자들이 협의를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오해하셨던 모양이다. 수개월 동안이나 침침한 눈을 비비며 TV 앞을 지켰을 노인의 모습이 눈에 밟혀 담당 직원은 한동안 수화기를 놓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로 금강산 관광이 멈춰선 지 3년째다. 여기저기서 안타깝고 애절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앞서 말한 노인처럼 고향을 잃은 이산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금강산과 그 길목에 전 재산을 던졌던 이들에게도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다. 불과 몇해 전만 해도 금강산은 이들에게 통일의 현장을 일구는 사명감 그 자체였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었다. 실제로 금강산 10년의 역사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반세기 분단의 벽을 허물고 200만명 관광객이 군사분계선을 넘었으며, 학자·청소년·종교인·예술인·노동자·농민 등 남북 각계의 사람들이 금강산에 모여 마음속 통일의 염원을 나누며 민족 화해와 협력을 몸소 실천했다. 금강산은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산가족들의 해한(解恨)의 장소이기도 했다. 금강산에서만 15차례 진행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해마다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셨고, 상시 상봉을 위해 건립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는 다음 생(生)으로 만남을 미뤄야 했던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도 금강산은 남북 신뢰의 기초를 다진 곳으로 의미가 깊다. 1998년 남측 관광객이 금강산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남과 북은 서로가 낯설고 두려운 상대였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굳은 표정들은 온화한 미소로 바뀌고, 거리낌없이 남측 손님을 맞는 북측 봉사원들의 모습은 금강산의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쌓인 남북의 신뢰는 중대한 남북교류를 견인해 다양한 협력사업들을 가능케 했다. 금강산의 소중한 경험은 고스란히 2003년 개성공단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불을 밝힌 120여개 공장에서 5만여 남북 근로자가 함께 일하고 있다. 자라온 환경과 생활방식은 달라도 하나의 목표 아래 높은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이 또한 금강산 관광이 잉태한 남북경제협력의 대표적 산물이며,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상생협력의 모범적인 사례라 하겠다. 그러나 3년간 금강산 가는 길이 막히면서 모든 것이 삐걱거리고 있다. 남북 간 잦은 악재로 남북 경협 기업들은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선 지 오래며, 금강산의 문턱인 강원도 고성 길목에는 폐업한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또한, 기약 없는 상봉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한숨도 더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되돌려줘야 할 때다. 물론 얽히고설킨 남북관계가 조화롭게 풀려야겠지만 더 이상 지체하기에는 시간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꿈과 희망이 곧 우리 전체의 미래일 수 있음을 올바로 인식하고, 더욱 대승적 차원의 진정한 소통이 절실하다. 육화경(六和敬)의 견화동해(見和同解)란 덕목처럼 남과 북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바른 견해로 화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금강산 길이 열리는 뉴스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그 노인을 금강산에 다시 모실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고향 땅에 차려진 아버지의 제사상을 보며 기뻐할 노인의 선량한 미소가 눈에 선하다. 다만 “내가 눈감기 전에….”라는 노인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 “野 뭉칩시다” 손학규 민주대표 귀국 일성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방중 일정을 마치자마자 야권 통합으로 발길을 옮겼다. 손 대표는 귀국일인 8일 당 야권통합특위에 참석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고 통합을 시작하자.”며 다른 야당에 통합 논의를 공식 제안했다. 그러면서 “차이도 있지만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대승적 토론 기회를 만들자.”고 덧붙였다. 손 대표의 요청으로 ‘민주당 발’(發)의 통합 행보가 본 궤도에 올랐다. 민주당은 오는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야 4당 연석회의’를 제안할 예정이다. 손 대표의 잰걸음은 정치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진보정당의 통합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고 국민참여당도 박자를 맞추고 있다. 야권 소통합으로는 2012년 총선·대선 승리가 불투명하다. 통합은 정치 세력 간 합의로 이뤄지는 것이지만 유력 대선 주자 입장에서는 리더십을 요구받게 된다. 단계적 통합보다는 일괄 대통합 틀에서 정치적 전망을 찾는 편이 낫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전열 재정비에 나선 반면, 야권은 아직 분화돼 있는 것도 손 대표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이를 염두에 둔 탓인지 손 대표는 “통합은 단지 선거 승리를 위한 공학적 수단이 아니다.”라며 통합의 의미를 넓혔다. 충남의 양승조 의원과 선병렬 전 의원이 회의에서 자유선진당도 통합 논의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특위는 ‘진보개혁 세력의 통합’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야권 통합은 서민의 삶을 바꾸는 정책의 진보, 서민의 삶을 바꾸는 데 헌신하는 정치 세력의 진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모든 대륙이 “PyeongChang” 선택했다

    모든 대륙이 “PyeongChang” 선택했다

    “압도적이다. 모든 대륙이 평창에 고루 표를 던졌다.” 평창이 지난 6일(현지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에서 역대 올림픽 개최지 1차 투표 사상 최다득표 기록을 작성하며 독일 뮌헨을 누르고 유치에 성공하자 ‘완벽한 승리’라며 전 세계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각국 취재진과 외신들은 그 배경과 성공 요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비약적인 산업 발전을 보인 경제 강국인 줄만 알았던 한국이 세계 최대의 이벤트를 훌륭하게 치러낼 인프라를 갖춘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유치전에서 확인된 한국의 저력에 세계가 놀랐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평창과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 계약을 체결한 후 “1차 투표에서 개최 도시가 결정된 것도 놀라웠지만 압도적인 표차를 보고 더욱 놀랐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독일의 뉴스전문 N-TV는 “평창은 그동안 끈질기게 펼친 노력의 보상을 받을 만하다. 뮌헨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평창에 대한 지지율은 66.3%로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전통의 표밭인 아시아·아프리카는 물론 중남미에서도 상당수의 표를 건졌다. 뮌헨과 안시가 속한 유럽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표를 흡수해 대승했다. 이겨도 그냥 이긴 게 아니라 압도적인 지지를 얻음으로써 한국 스포츠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는 효과를 얻었다. 그동안 국제 스포츠의 중심 무대는 대회 운영 능력과 자금력을 갖춘 일부 선진국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이런 스포츠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함께 서게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은 이로써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유치한 나라로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이며 세계에선 여덟 번째다. 한국은 이미 경기력으로만 보자면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이다. 이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경기력 외에 전체 스포츠 위상은 그 이상이 됐다. 굳이 한국의 스포츠 위상을 순위로 따진다면 몇 단계 상승한 세계 6~8위권으로 여겨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런 성과를 얻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들었다. 평창 유치의 선봉장인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이건희 IOC 위원, 김진선 특임대사 등은 일본·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대륙부터 누볐다. 국제복싱연맹(IBF) 회장인 타이완의 우칭궈 위원과 세계태권도연맹(WTF) 부총재인 태국의 낫 인드라파나 위원 등은 한때 국내 인사와의 마찰로 한국에 등을 돌렸다. 그러나 평창은 거듭 공들인 끝에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선봉 장수들은 개최지 투표를 앞두고 토고에서 열린 아프리카올림픽위원회연합(ANOCA) 총회에 참석한 뒤 아프리카 대륙을 훑고 남아공에 입성했다. 아시아·아프리카의 표밭을 다진 평창은 경쟁 도시 뮌헨·안시의 안방인 유럽 공략에 나섰다. 대한항공 회장인 조양호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 공항 등에서 IOC 위원들을 대상으로 ‘VIP 서비스’를 시작해 큰 호응을 얻었다. 또 박용성 회장은 5월 말부터 아예 프랑크푸르트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유럽표 공략에 매진했다. 이건희 위원은 지난해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관한 이후 약 1년 반 동안 모두 11차례에 걸쳐 170일간 해외를 돌며 유치 활동을 폈다. 유럽 IOC 위원들의 상당수가 평창 쪽으로 기운 것도 이 위원의 활약과 무관하지 않다. 최종 프레젠테이션(PT)도 한몫했다. ‘피겨퀸’ 김연아와 미국 입양아 출신 스키선수 토비 도슨이 감동을 선사했다. 외신 기자들은 “웃음과 눈물을 함께 전달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끈질긴 도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한국 정부의 강력한 뒷받침, 그리고 삼성의 지원에 큰 힘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세 번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평창대표단은 7일 오후 9시 30분(한국시간) 대한항공 전세기 편으로 남아공 더반을 출발, 8일 오후 2시 1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더반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사설] 김준규총장 사퇴 새 검찰상 계기로 삼아야

    김준규 검찰총장이 어제 공식 사퇴했다. 국회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파기하고 수정안을 의결한 데 대해 조직의 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모양새를 택한 것이다. 임기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김 총장은 “합의가 파기되면 어긴 쪽에 책임이 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사퇴 입장을 설명했다.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중에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만류를 끝내 뿌리친 셈이다. 김 총장의 사퇴는 사법정의 실현이라는 대승적 차원이 아닌, 검찰의 안정과 보호라는 조직 논리에 매몰된 결정이라고밖에 달리 볼 수 없다. 검찰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김 총장의 사퇴는 국민적 호응과는 거리가 멀다. 다음 달 19일 종료되는 법적 임기를 스스로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통령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밖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이 느끼는 불쾌감은 한층 높을 수밖에 없다. 김 총장은 “사퇴 핵심은 합의의 파기”라고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74, 반대 10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킨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행정부의 한 조직으로서 당연히 존중해야 할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분명 새 국면에 맞닥뜨렸다. 김 총장의 사퇴가 ‘항명’으로, 대검 핵심 간부들의 사의 표명은 제 밥그릇 챙기려는 집단 행동으로 비친 이유에서다. 그만큼 국민의 신뢰로부터 멀어졌다. 그렇기에 일단 부실수사라는 비판을 사고 있는 저축은행 수사에 보다 전념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함도 물론이다. 또 총선과 대선 관련 수사를 도맡을 후임 검찰총장의 책임도 막중하다. 검찰은 수장이 중도퇴진한 작금의 시련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새 검찰상을 구현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 [검경 수사권 갈등 2R] ‘쉬쉬’하며 갈등만 조장한 총리실

    “집에 갑자기 손님이 오면 더러운 물건들은 다 방 한구석에 안 보이게 치워놓고 일단 손님을 맞잖아요.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이 그런 상황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청와대까지 나서 극적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 합의가 이뤄진 지난 20일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정부 관계자가 귀띔해준 말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가 몸을 던져야 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번 수사권 조정을 높이 평가했지만, 정작 당사자 격인 일선 경찰과 검사들의 반응은 심상치 않다. 경찰관들은 “청장이 개악을 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격앙된 분위기이고, 검사들 역시 “손댈 필요가 없는 부분을 괜히 건드렸다.”면서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조정으로 국민적 우려를 고려해 검경 수뇌부가 ‘대승적 결단’을 했다고 엄숙하게 발표했지만, 그 결단 속에 정작 조직원들의 목소리는 빠져 있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문제는 내부의 반발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모든 수사’에 대한 지휘권의 구체적 범위 등 가장 첨예하게 대립할 소지가 있는 부분은 모두 6개월 뒤 법무부령에서 정하라고 미뤄버렸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 보고할 날짜는 다가오는데, 김황식 총리가 직접 나서고 이 대통령도 ‘밥그릇 싸움’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는데도 합의가 불발되자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미봉책으로 일단 급한 불만 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중심을 잡아야 할 총리실은 사방에서 조정안에 대한 온갖 설이 흘러나오는데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NCND)으로 일관해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합의안을 발표한 뒤에도 총리실은 구체적인 논의 과정은 공개하지 않아 뒷말을 낳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갈등 및 정책조정 기능이 본연의 임무인 총리실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김 총리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수사권 조정을 두고 기관별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필요한 갈등의 단초를 남긴 것은 바로 중재자 역할을 맡았던 총리실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사설]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정신 끝까지 살려야

    검찰이 종전처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보유하되 경찰도 자체적으로 수사개시권을 갖는 내용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어제 극적으로 도출됐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도 합의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산될 뻔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막판 적극 개입에 나서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고, 한치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검찰이 한발 물러선 것은 일단 박수받을 만하다. 수사권 조정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필연적 과제였음에도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이번에도 물 건너 가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막판 합의안 도출로 수사권 조정은 이제 국회 관문만 남겨 놓게 됐다. 검찰과 경찰은 앞으로 세부사항을 매듭지을 때에도 수사권 조정의 합의정신을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국회는 이번 합의가 수사 현실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인 만큼 형사소송법 등 관련법 개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 검찰 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다소 미흡한 점은 있을지라도 개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측면에서 대승적인 판단을 내려주길 당부한다. 우리는 국회 못지않게 중요한 게 검찰과 경찰의 진정성 있는 자세라고 본다. 검찰과 경찰은 관련법이 처리되는 대로 후속조치를 차질 없이 진행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이기주의를 버리는 게 관건이다. 이번 합의안의 정신은 국민 인권과 범죄 수사의 효율성, 수사 절차의 투명성 등이다. 원론에 합의해 놓고 각론에 들어가 서로 더 차지하겠다고 아옹다옹한다면 합의안은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이는 국민을 속이고 배신하는 행위다. 앞으로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수사 개시권의 범위, 경찰 수사 진행권 여부, 내사 및 입건 지휘 등의 해석 등 검찰과 경찰이 또다시 얼굴을 붉힐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또 법무부가 관장하는 부령이어서 검찰에 유리하게 경계선이 그어질 것이라는 의구심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필요하다면 총리실이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재에 나서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검찰과 경찰이 다투는 수사권의 대상은 국민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놓고 더 이상 다투지 말기 바란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3) 주자학자 퇴계 이황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3) 주자학자 퇴계 이황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은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는 엄격한 숙부 밑에서 수학했으며 기묘사화 등을 경험하면서 사림의 처세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았다. 경(敬)의 실천으로 요약되는 그의 일생은 이와 같은 내적·외적 이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퇴계는 이 모든 사실을 훌쩍 뛰어넘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퇴계는 한 인간이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높고 깊은 인격의 다른 이름이었다. 얼핏 보면 퇴계의 삶은 건조하고 답답하다. 매우 진지하고 실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공부만 해도 그렇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공부를 못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로서는, 퇴계의 공부 사랑은 결코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퇴계에게 공부는 일상이었다. 그는 밥 먹듯이 공부했던 사람이 아니라 앉거나 서거나 걷는 것처럼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공부가 생활이고 놀이이자. 단순히 배움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자. 퇴계는 실제로 그런 인물이었다. 퇴계가 정확히 언제부터 주자학에 몰두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주자를 만나면서 퇴계는 인생의 분명한 비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자전서’의 글자가 희미해질 정도로 주자를 읽었다. 그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반드시 성현의 말과 행동을 마음에 본받아서, 조용히 찾고 가만히 익히는 것” 이었다. 요컨대 공부는 삶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가 보기엔 “바쁘게 말하여 넘기고 그저 예시로 외우기만 하는 것”은 가장 나쁜 독서다. 성현의 말씀과 내 생각이 다르다면 일단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다. 그럴 땐 “성현의 말을 더욱 믿어서 딴 생각이 없도록 간절히 찾아야” 한다. 이 간절함이 퇴계 공부의 요체다. 간절했기에, 퇴계에게 책 속의 글자들은 일상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출렁이며 되살아나야 했다. 퇴계는 책과의 치열한 싸움만큼, 일상의 유연함 속에서 배움을 일궜다. 그렇기에 그의 노력에 엄숙함이나 비장함을 떠올리는 건 사실상 오늘날의 우리가 공부에 대해 갖는 편견의 결과일 뿐이다. 퇴계는 천재라기보단 노력파였다. 천지가 배움으로 가득차 있어 끝없이 질문하는 것에 머물고 싶었던 진솔함. 배움 앞에선 자신을 잊어버리면서까지 까마득히 몰입해 들어가고 또 무얼 배웠는지 따져보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 배움을 이루어내는 성실함. 퇴계는 배움을 ‘즐기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한 경지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책과 치열한 싸움·일상의 유연함으로 배움실천 퇴계는 34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출사했다. 홀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주위의 충고가 없었다면 아예 벼슬할 생각조차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 벼슬에 뜻이 없었던 까닭에, 그는 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사대부로서 출사하는 일 자체가 무용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는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하고 큰 공부를 원했다. 이후 공직(公職)에서 물러나기 위해 그가 벌인 노력은 처절하리만치 눈물겹다. 번번이 사표는 반려되었고, 사양할수록 더욱 높은 품계와 작위가 되돌아 왔다. 한번 잘못 발을 내디딘 세계는 그렇게 늪처럼 퇴계를 붙잡았다. 완전한 물러남! 퇴로를 찾을 때까진 어떠한 틈도 보이지 말아야 했다. 명종의 눈물겨운 구애에도 불구하고, 퇴계는 마치 자동응답 기계처럼 사퇴의 이유들을 되풀이했다. 아픕니다, 능력이 부족합니다, 관례에 어긋납니다, 시기가 적절치 않습니다, 집안에 상이 있습니다. 또 아픕니다…. 줄기찬 줄다리기. 급기야 몸이 단 임금의 친필까지 등장했지만, 퇴계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어리석음을 숨기면서 벼슬하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종종 보게 되는 인사청문회는 퇴계 인사 풍경의 네거티브 버전이라 할 만하다. 퇴계를 향한 구애는 명종에서 선조로 이어졌다. 68세의 퇴계는 5개월간 7차례나 관직을 제수하는 선조의 공세에 대해 바른 군주의 몸가짐을 충고하는 여섯 조목(‘무진육조소’)과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열 장의 그림(‘성학십도’)을 올리며 버텼다. ‘제발 성학(聖學)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고, 도덕과 학술로 인심을 밝히시길’(‘무진육조소’), ‘길(道)은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는 법!’(‘성학십도’) 요컨대 답은 이미 자신에게 있으니, ‘부디 나를 찾지 말고, 스스로 답을 구하시라!’ 퇴계에게 공부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 삶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 앞에 나를 세울 것을 요구한다. 시선들을 계산하고 챙기느라 바쁜 곳, 그것이 관직의 세계다. 한 마디로 나를 위한 공부(위기지학)의 장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퇴계가 140여회나 계속되는 군주의 청을 거절한 이유였다. 1558년 겨울,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퇴계는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고봉(高峰) 기대승(奇大昇)의 방문을 받았다. 젊은 고봉은 퇴계의 학설을 비롯해 성리학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그리고 몇 달 후,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논박을 듣고 나서 (나의 생각이)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고쳐 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이 문장은 마치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배의 문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쓴 것은 퇴계였다. 이에 대한 기대승의 답장. “그렇게 고친다면 비록 지난번의 설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제 의견으로는 그래도 불만스럽습니다.” ●유명한 기대승과 서신 논쟁도 퇴계-고봉의 서신 논쟁이 시작되었다. 고봉은 주자의 글을 배경삼아 따졌고, 퇴계는 주자의 마음을 가지고 응수했다. 논쟁의 핵심은 순수 도덕 감정인 사단(四端)(측은, 수오, 사양, 시비)과 비도덕 감정인 칠정(七情)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리(理)와 기(氣)에 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리에 해당하는 사단이 기와 상관없이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주자의 기본 구도에 따르면 이치는 결코 기를 떠나 존재할 수 없었다. 8년에 걸친 논쟁의 결론은 파격적이었다. 퇴계는 결국 ‘이치도 (스스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던 것. 퇴계와 고봉의 논쟁은 표면상 ‘고봉의 승리’처럼 보인다. 퇴계가 주자(학)를 이탈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퇴계에게 주자는 세계(우주)였다. 그에게 그 세계 밖은 상상의 외부였다. 그러했기에 퇴계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언설들이 주자의 구도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논쟁의 한복판에서, 기대승의 날카로운 비판에 직면한 퇴계가 두 차례나 자신의 논지를 수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고봉이 주자의 논리에 근거했다면, 퇴계에게 중요한 건 주자의 ‘뜻’에 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성인의 길을 묻는다. 주자는 그 길을 보여주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런 길을 정말 우리가 갈 수 있느냐고. 불가능하다고, 너무 이상적이라고. 그런데 퇴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길을 정말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길 위에 서서 걷는 자! 하지만 그 길은 이전의 길이 끝난 길이었고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그렇게 퇴계는 주자를 넘어서 버렸다. 주자의 삶을 살고자 한 자, 그래서 주자가 다다르지 못한 길마저 개척한 자. 그럼으로써 주자마저도 새롭게 만든 자. 퇴계는 주자학의 내부에서 주자를 넘어가 버린 유일한 주자학자였다. 문성환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런던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골…골…골… ‘홍명보 극장’ V역전쇼

    [런던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골…골…골… ‘홍명보 극장’ V역전쇼

    ‘홍명보 극장’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올림픽대표팀이 후반에만 세 골을 몰아치며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썼다. 전·후반이 확연히 달랐다. 지난 1일 오만과의 평가전(3-1 승)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내년 런던올림픽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1차 홈경기에서 요르단에 3-1로 이겼다. 요르단에서 벌어지는 원정 2차전(23일 밤 12시)에서 비기거나 한 골 차로 져도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2차 예선은 1·2차전 합계가 같으면 원정 다득점 원칙을 적용하고, 그래도 동률이면 연장전-승부차기로 승자를 가린다.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 탓인지 올림픽팀은 전반 내내 무기력했다. ‘어웨이에서 비겨도 본전’인 요르단은 예상대로 밀집 수비를 들고 나왔다. 한국은 두꺼운 수비벽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빠른 템포의 패싱플레이 없이 볼을 질질 끌다 수비에 막혔고, 겨우 수비를 뚫더라도 더 정돈된 수비라인에 맞닥뜨렸다. 골문 앞의 세밀한 패스 대신 측면에서 올려주는 투박한 크로스에 의존했다. 상대 뒷공간을 파고드는 스루패스 대신 횡패스와 백패스가 난무했다. 구자철(볼프스부르크) 대신 ‘핵’이 된 윤빛가람(경남)은 주위 선수들과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조직력을 끌어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했을 터. 선제골도 내줬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전반 45분, 홍정호(제주)가 페널티 지역에서 김영권(오미야)에게 연결한 실책성 패스가 무하마드 자타라의 발에 걸렸다. 요르단 선수들은 이긴 것처럼 기뻐하며 환호했다. 반전이 시작됐다. 하프타임 때 전열을 가다듬은 한국은 후반에 ‘다이내믹’해졌다. 후반 9분 김태환(FC서울)의 동점골로 분위기를 가져왔고 후반 30분에는 윤빛가람이 페널티킥을 차분히 넣어 역전에 성공했다. 후반 40분에는 김동섭(광주FC)이 윤빛가람의 프리킥을 머리로 방향을 바꿔 쐐기골까지 터뜨렸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거뒀던 대승(4-0)은 아니었지만, 안방에서 거둔 기분 좋은 역전승이었다. 홍 감독은 “내용은 아쉽지만 승리는 승리이기 때문에 기쁘게 생각하겠다.”고 위안하면서 “집중력이 부족했고 공수전환이 늦어 고전했다. 운동장을 측면과 가운데 균형을 잘 맞춰 공격해야 상대 수비가 부담을 느끼는 데 전반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경기 직후 회복훈련과 얼음샤워까지 마친 올림픽대표팀은 오후 11시 55분 인천공항에서 요르단으로 출발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를 거쳐 결전지인 요르단 수도 암만에 입성한다. 홍 감독은 “요르단에 도착해 (2차전까지) 3일간 시간이 있기 때문에 더 나은 경기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암만 경기장은 1000m 이상의 고지대라 환경에 얼마큼 빨리 적응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K리그 골 폭풍!…8경기 총 29골 폭발

    프로축구 K리그 14라운드가 열린 지난 18일 ‘골폭풍’이 몰아쳤다. 전국 8개 경기장에서 모두 29골이 터졌다. 경기당 3.6골이 나왔다. 역대 K리그 하루 최다 득점 신기록이다. 이전 기록은 1999년 8월 25일 5경기에서 나온 28골. 비록 경기 수에서 차이가 있지만 순위 싸움이 치열해지는 시즌 중반, 무더위 속에서 경기장을 찾은 10만 1517명의 관중들이 공격축구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화끈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명경기가 속출했다. 수원 염기훈은 2006년 프로데뷔 뒤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최근 7경기 무승의 부진에 허덕이던 팀도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수원은 대구에 4-1 역전 대승을 거뒀다. 지난 4월 15일 강원과의 홈 경기에서 2-0으로 이긴 뒤 8경기 만의 승리다. 전북은 제주와 살 떨리는 난타전 끝에 3-2 역전승을 거두고 리그 선두를 지켰다. 전북은 제주 산토스에게 전반 10분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 19분 에닝요의 동점골로 따라갔지만, 바로 1분 뒤 다시 산토스에게 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후반 37분 제주 김인호의 자책골에 이어 43분 루이스의 역전 결승골이 터지면서 승점 3을 쌓았다. 2위 포항은 상주에 나란히 역전승을 거두고 ‘양강체제 굳히기’에 들어갔다. 경남FC는 부산과 홈 경기에서후반에 난타전을 벌여 3-2 역전승을 올렸다. FC서울은 강원과의 원정경기에서 전반 하대성과 몰리나의 득점으로 2-0으로 이겼다. 울산과 인천은 1-1, 광주와 전남은 0-0으로 비겼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그가 공직임명을 140차례나 거부한 이유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은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는 엄격한 숙부 밑에서 수학했으며 기묘사화 등을 경험하면서 사림의 처세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았다. 경(敬)의 실천으로 요약되는 그의 일생은 이와 같은 내적·외적 이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퇴계는 이 모든 사실을 훌쩍 뛰어넘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퇴계는 한 인간이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높고 깊은 인격의 다른 이름이었다.   주자학을 꿰뚫었던 ‘공부의 신’ 선생(퇴계)은 일찍이 서울에서 ‘주자전서’를 구하여 문을 닫고 들어앉아서 조용히 읽기를 시작하여 한 여름내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혹 누가 더위로 몸이 상하지 않을까 경계하면, 선생은 “이 글을 읽으면 가슴 속에서 문득 시원한 기운이 생기는 것을 깨닫게 되어 저절로 더위를 모르게 되는데, 무슨 병이 생기겠는가?”하였다.(‘언행록’)    얼핏 보면 퇴계의 삶은 건조하고 답답하다. 매우 진지하고 실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공부만 해도 그렇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공부를 못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로서는, 퇴계의 공부 사랑은 결코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퇴계에게 공부는 일상이었다. 그는 밥 먹듯이 공부했던 사람이 아니라 앉거나 서거나 걷는 것처럼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공부가 생활이고 놀이인 자. 단순히 배움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자. 퇴계는 실제로 그런 인물이었다.  퇴계가 정확히 언제부터 주자학에 몰두하게 되었는 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주자를 만나면서 퇴계는 인생의 분명한 비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자전서’의 글자가 희미해질 정도로 주자를 읽었다. 그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반드시 성현의 말과 행동을 마음에 본받아서, 조용히 찾고 가만히 익히”는 것이었다. 요컨대 공부는 삶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가 보기엔 “바쁘게 말하여 넘기고 그저 예시로 외우기만 하는 것”은 가장 나쁜 독서다. 성현의 말씀과 내 생각이 다르다면 일단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다. 그럴 땐 “성현의 말을 더욱 믿어서 딴 생각이 없도록 간절히 찾”아야 한다.  이 간절함이 퇴계 공부의 요체다. 간절했기에, 퇴계에게 책 속의 글자들은 일상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출렁이며 되살아나야 했다. 퇴계는 책과의 치열한 싸움만큼, 일상의 유연함 속에서 배움을 일궜다. 그렇기에 그의 노력에 엄숙함이나 비장함을 떠올리는 건 사실상 오늘날의 우리가 공부에 대해 갖는 편견의 결과일 뿐이다.  퇴계는 천재라기보단 노력파였다. 천지가 배움으로 가득차 있어 끝없이 질문하는 것에 머물고 싶었던 진솔함. 배움 앞에선 자신을 잊어버리면서까지 까마득히 몰입해 들어가고 또 무얼 배웠는지 따져보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 배움을 이루어내는 성실함. 퇴계는 배움을 ‘즐기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한 경지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군주의 100여차례 관직 요청을 퇴짜놓다  퇴계는 34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출사했다. 홀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주위의 충고가 없었다면 아예 벼슬할 생각조차 접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 벼슬에 뜻이 없었던 까닭에, 그는 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사대부로서 출사하는 일 자체가 무용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는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하고 큰 공부를 원했다.  이후 공직(公職)에서 물러나기 위해 그가 벌인 노력은 처절하리만치 눈물겹다. 번번이 사표는 반려되었고, 사양할수록 더욱 높은 품계와 작위가 되돌아 왔다. 한 번 잘못 발을 내디딘 세계는 그렇게 늪처럼 퇴계를 붙잡았다.  완전한 물러남! 퇴로를 찾을 때까진 어떠한 틈도 보이지 말아야 했다. 명종의 눈물겨운 구애에도 불구하고, 퇴계는 마치 자동응답 기계처럼 사퇴의 이유들을 되풀이했다. 아픕니다, 능력이 부족합니다, 관례에 어긋납니다, 시기가 적절치 않습니다, 집안에 상이 있습니다. 또 아픕니다. 줄기찬 줄다리기.  급기야 몸이 단 임금의 친필까지 등장했지만, 퇴계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어리석음을 숨기면서 벼슬하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이쯤되면 우리가 종종 보게 되는 인사청문회는 퇴계 인사 풍경의 네가티브 버전이라 할 만하다.  퇴계를 향한 구애는 명종에서 선조로 이어졌다. 68세의 퇴계는 5개월간 7차례나 관직을 제수하는 선조의 공세에 대해 바른 군주의 몸가짐을 충고하는 여섯 조목(‘무진육조소’)과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열 장의 그림(‘성학십도’)을 올리며 버텼다.  ‘제발 성학(聖學)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고, 도덕과 학술로 인심을 밝히시길’(‘무진육조소’), ‘길(道)은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는 법!’(‘성학십도’) 요컨대 답은 이미 자신에게 있으니, ‘부디 나를 찾지 말고, 스스로 답을 구하시라!’  퇴계에게 공부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 삶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 앞에 나를 세울 것을 요구한다. 시선들을 계산하고 챙기느라 바쁜 곳, 그것이 관직의 세계다. 한 마디로 나를 위한 공부(위기지학)의 장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퇴계가 140여회나 계속되는 군주의 청을 거절한 이유였다.   저 유명한 기대승과의 서신 논쟁  1558년 겨울,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퇴계는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고봉(高峰) 기대승(奇大昇)의 방문을 받았다. 젊은 고봉은 퇴계의 학설을 비롯해 성리학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그리고 몇 달 후,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논박을 듣고 나서 (나의 생각이)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고쳐 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이 문장은 마치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배의 문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쓴 것은 퇴계였다. 이에 대한 기대승의 답장. “그렇게 고친다면 비록 지난번의 설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제 의견으로는 그래도 불만스럽습니다.”  퇴계-고봉의 서신 논쟁이 시작되었다. 고봉은 주자의 글을 배경삼아 따졌고, 퇴계는 주자의 마음을 가지고 응수했다. 논쟁의 핵심은 순수 도덕 감정인 사단(四端)(측은, 수오, 사양, 시비)과 비도덕 감정인 칠정(七情)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리(理)와 기(氣)에 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리에 해당하는 사단이 기와 상관없이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주자의 기본 구도에 따르면 이치는 결코 기를 떠나 존재할 수 없었다.  8년에 걸친 논쟁의 결론은 파격적이었다. 퇴계는 결국 ‘이치도 (스스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던 것. 퇴계와 고봉의 논쟁은 표면상 ‘고봉의 승리’처럼 보인다. 퇴계가 주자(학)를 이탈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퇴계에게 주자는 세계(우주)였다. 그에게 그 세계 밖은 상상의 외부였다. 그러했기에 퇴계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언설들이 주자의 구도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논쟁의 한복판에서, 기대승의 날카로운 비판에 직면한 퇴계가 두 차례나 자신의 논지를 수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고봉이 주자의 논리에 근거했다면, 퇴계에게 중요한 건 주자의 ‘뜻’에 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성인의 길을 묻는다. 주자는 그 길을 보여주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런 길을 정말 우리가 갈 수 있느냐고. 불가능하다고, 너무 이상적이라고. 그런데 퇴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길을 정말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길 위에 서서 걷는 자! 하지만 그 길은 이전의 길이 끝난 길이었고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그렇게 퇴계는 주자를 넘어서버렸다. 주자의 삶을 살고자 한 자, 그래서 주자가 다다르지 못한 길마저 개척한자. 그럼으로써 주자마저도 새롭게 만든 자. 퇴계는 주자학의 내부에서 주자를 넘어가 버린 유일한 주자학자였다.  문성환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프로야구] 품었다! 시즌 첫 2위

    [프로야구] 품었다! 시즌 첫 2위

    삼성이 시즌 첫 단독 2위로 솟구쳤다. 이대수(한화)는 통렬한 쐐기 만루포를 쏘아올렸다. 삼성은 14일 대구에서 벌어진 프로야구에서 다승 선두 박현준을 선봉에 세운 LG를 7-3으로 격파, 4연승의 휘파람을 불었다. 이로써 삼성은 이날 나란히 패한 LG, KIA를 반 경기 차 공동 3위로 끌어내리고 시즌 처음으로 단독 2위로 뛰어올랐다. 선두 SK와의 승차는 1.5경기. 삼성은 0-0으로 맞선 3회 1사 후 김상수의 1점포를 신호탄으로 박석민의 2타점 2루타 등 장단 5안타로 박현준을 두들겨 대거 5득점, 승기를 잡았다. LG 에이스 박현준은 4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강판되는 수모를 당했다. 진갑용은 LG가 1점을 따라붙은 6회 말 쐐기 1점포를 쐈다. 삼성 선발 윤성환은 8이닝 동안 7안타 1실점으로 5승 고지를 밟았다. 한화 류현진과 KIA 서재응의 선발 맞대결이 펼쳐진 대전 경기에서는 이대수의 만루포 등 무서운 뒷심을 발휘한 한화가 KIA에 12-3으로 대승했다. 류현진은 7이닝 동안 5안타 2볼넷 3실점으로 6승째를 기록, 다승 싸움에 본격 가세했다. 특히 삼진을 무려 11개나 솎아내 자신이 세운 올 시즌 최대 탈삼진과 타이를 이뤘다.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은 지난해 10월 5일 LG를 상대로 류현진이 작성한 17개. 팽팽한 투수전으로 0의 행렬이 이어지던 6회 초 상대 나지완에게 3점포를 허용한 한화는 공수가 교대된 6회 말 곧바로 4점을 뽑아 전세를 뒤집은 뒤 7회 이대수의 만루포에 이은 이여상의 랑데부포 등으로 8득점, 승부를 갈랐다. 전날 김경문 감독의 전격 사퇴를 몰고온 위기의 두산은 잠실에서 김현수의 3점포 등으로 넥센을 5-3으로 제압, 김광수 감독 대행에게 값진 1승을 선사했다. 2패로 부진,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선발 페르난도는 5와 3분의2이닝 동안 삼진 6개를 낚으며 7안타 3실점으로 버텨 뒤늦게 한국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넥센은 다시 4연패에 빠졌다. SK는 문학에서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롯데에 8-3으로 역전승했다. 3연승. 롯데 이대호는 1회 1점포로 시즌 17호 홈런을 터뜨렸으나 역전패로 빛을 잃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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