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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계파,“하나로의 결속” 다짐/민자 첫 의원세미나 「1박2일」

    ◎노대통령,“국민이 안심하게 힘모으자”/김대표,상위별 토론장 돌며 현안 청취/국정 뒷받침 위한 원활한 당정협조 강조 민자당은 합당이후 처음으로 27·28일 1박2일간에 걸쳐 의원세미나를 갖고 당내 3계파간 이질감 해소노력을 벌였다. 통합후 당권과 당 노선및 인사문제등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민자당이 지난 10일 창당전당대회를 계기로 당 일체화라는 정상궤도에 진입했고 이번 합숙세미나를 통해 서로 마음을 열어 상대계파를 「진정한 동지」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민자당이 이번 의원세미나를 계획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도 형식적 모임에 그치지 않고 참석자 모두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세미나 일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고. 27일 저녁 「단합의 시간」이나 그 이후 술좌석등이 3계파간 응어리진 마음을 푸는 데 상당히 기여했고 숙소배정도 계파별로 적절히 섞어 방을 배치,친교에 도움을 주도록 기획. 세미나에는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을 비롯해 소속의원 2백18명중 외유중인 김종호의원등 6명과 기소중인 박재규의원을 제외한 2백11명이 참석했고 이승윤부총리등 입각의원들도 모두 참석. ○…27일 밤 여흥과 술좌석의 「효과」가 나타난 탓인지 28일의 세미나진행이 「일사불란」했으며 28일 낮 세미나에 참석,의원들과 오찬을 함께한 노태우대통령에 대한 「충성맹세」로 이어졌다는 평가. 휴식시간등에 출신계파별로 따로 모이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으나 대세는 「계파를 초월하자」는 것이었으며 28일 상오 이승윤부총리를 비롯,학계·경제계 인사를 초빙한 경제특강도 모두가 경청. 이어 노대통령이 연수원에 도착,강의장에 들어섰을 때 민주·공화계 의원들도 어색하지 않은 모습으로 기립박수,경의를 표했고 이런 분위기는 오찬장까지 지속. 연수원 구내식당에서 있은 이날 오찬에 앞서 노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일국의 대통령의 힘은 국민의 힘에서 나온다』고 전제,『국민이 힘을 지니고 있을 때 대통령이 힘이 생기고 강력여당이 버티어주는 한 국민들이 안심할 것』이라고 강조. 노대통령은 이어 『따라서 민자당이 하나로 결속되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국민들이 우리의 현상황을 「총체적 위기」라고 보는 것은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피력. 이날 오찬석상에서 김대표·김최고위원과 김동영총무등이 노대통령을 위한 건배를 제의. 김대표가 「대통령의 건승」을 기원한 데 이어 김최고위원이 「대통령의 편안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단결」을 강조했고 김총무는 노대통령을 「대통령님」이라고까지 지칭하며 칭송. ○…28일 의원세미나 마지막 순서인 의원총회를 겸한 전체토론회는 2시간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토론자가 한사람도 나서지 않아 정창화수석부총무의 상임위별 토론결과 보고와 김영삼대표의 폐회인사말만으로 30분만에 싱겁게 종료. 상임위별 토론결과를 놓고 전체토론회에서 많은 의견들이 개진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예상과 달리 토론신청자가 없자 김대표는 『이틀간 세미나를 가지며 전체회의에서 토론이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상임위별로 충분한 토론을 한 결과』라고 긍정적인 평가. 의총및 전체토론이 30분만에끝난 뒤 김대표는 폐회인사말에서 『이틀간의 모임은 민자당의 단합과 하나가 되기 위한 모임이었다』면서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정국을 책임지는 집권당이 자신을 가지고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정치를 하게 됐다』고 평가. ○…이에앞서 27일 저녁 상임위별 분임토론에서는 각종 현안을 놓고 의원들간에 열띤 토론이 전개. 김대표와 김최고위원등은 각 토론장을 돌며 참석자들을 격려한 뒤 『여러분들의 토론내용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
  • 「증안기금」떠받쳐 780대 유지

    ◎주중 20포인트 만회… 대세전환엔 아직 한계/「월말자금 수요」로 주가상승지속 힘겨울 듯/주말 7포인트 밀려… 「7백90」다시 무너져 지수 8백대의 능선이 가까이 다가설수록 멀어만 보인다. 이번주 역시 종합주가지수 8백선을 밟아보지 못한 채 지나갔다. 26일 주말장은 전날보다 일보 후퇴,6.99포인트가 하락한 7백83.74로 마감됐다. 5월 증시에 불어닥친 바람이 훈풍인 건 틀림없으되 지수 7백대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 힘이 달리는 기색이 역연하다. 특히 이번주 후반의 주가동향은 주초반과 금방 대비된다. 주초 3일장까지는 22포인트 가깝게 꾸준히 오르는 단정한 상승커브를 그렸다. 그러나 주 3일째인 수요일장의 종가가 7백87로 속등과 속락이 맞물린 큰물결들이 상승추세 속에 정돈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곧 한계를 드러냈다. 뒤를 받쳐주던 바람의 힘이 끊기자 자력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이다. 주말직전장에서 7백90선에 닿았으나 증시안정기금이 밀어붙인 결과이고 증안기금이 팔짱을 낀 주말 반자절장에서 7포인트가 줄줄이 빠졌다.주 후반의 종합지수를 주중수준과 비교하면 등락폭이 마이너스 4,플러스 3으로 큰 변동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장세가 바로 전일장의 역방향을 취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는데 이런 동향은 속등ㆍ락이 거듭된 이달에서는 첫 모습이다. 이 때문에 종합지수 7백80대와 함께 5월 대세전환의 전반적인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전환의 진실성 여부는 어느정도 판가름났지만 그 크기에 후한 점수를 주는 투자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증시안정기금이 내주에도 이번주와 비슷하게 힘을 보태주더라도 웬만해서는 종합지수가 7백80대를 차고 오르기가 쉬울 것 같지 않다. 주가가 지난달 최저치에서 1백포인트 회복된 선에 자리를 잡은 건 증안기금의 뒷심이 잘 발휘된 결과이다. 증안기금의 후견인 노릇은 일단 성공작으로 평가할만하다. 덕분에 주가변동의 최저예상 지수가 지난주보다 최소한 20포인트가 높아졌다. 그렇지만 증시의 대세전환을 믿는 투자자로서는 이제 최저수준보다는 상승최고점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데 현재로선 뚜렷하게 잡히는게 없는 것이다. 내주에도 주가는 지수 8백선 바로 밑에서 지루하게 진을 칠 것이란게 대다수의 견해이다. 답답하지만 이같은 정돈상태에서 소량씩이나마 대기물량이 소화돼 에너지가 끌어모아지는 조정작용이 수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가가 만성적인 조정국면의 늪에 갇힌다면 대세에 지장이 초래될 것이라고 증시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7백70대나 7백80대에서 주가가 탈출하자면 외부적 호재의 공급이 제일로 꼽힌다. 물론 주가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은 실물경기지만 경제성장률이 예상밖으로 두자리 숫자의 고율이라고 발표됐음에도 증시에서는 호재로서의 역할이 미미한데 그쳤다. 경기와 관련해 내주에 커다란 변수가 있을 수 없으므로 지수 7백80대를 딛고 올라서는 상승세를 결국 외래적인 호재에서 구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종합지수 8백대의 회복이 투자자 그리고 증시 자체에 중요한 고비로 대두되는 이유는 그 회복이 몰고올 심리적인 플러스 파장 때문이다. 국면이 전환됐다지만 상징적인 지수대의 돌파가 오랫동안 지연되면 이달 초순의 변화도 평범해지고 말 것이다. 내주에는 증권거래세가 인하되나 월말자금 수요기간으로 자금사정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기존의 증안기금외에 별다르게 좋은 소식이 덧붙여지지 않는다면 호전됐던 투자심리가 금주 후반보다 더 흔들릴지도 모른다.
  • 한ㆍ일 「감정적 매듭」 일단락/일왕 사과는 만족스러운 방일 성과

    ◎노대통령,주일특파원과 간담 【도쿄=강수웅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5일 『일본 국내의 헌법상의 제약과 정치ㆍ외교적 한계속에서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사죄발언을 받아낸 것은 한일 양국사이의 인식의 차이에 대한 핵심을 매듭짓고 풀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공식발표문뿐만 아니라 일왕과의 밝힐 수 없는 비공식 대화,총리의 충분한 사죄 등 제반사정을 고려할 때 이번 방일은 만족스러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자신한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3시30분부터 40여분 동안 방일기간중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난 주일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일왕의 발언은 일본 국내적 제약의 범위를 약간 넘은 것으로 본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이날 노대통령은 『진실한 동반자가 됐어야 할 한일관계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국간 역사의 인식의 차이에서 모든 문제가 파생됐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동안 일본 언론인들과의 접촉,정치인들과의 협력 등을 통해 역사인식의 동일화에 역점을 둔 결과 이제 대세는 일본측이역사를 그릇 인식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 그레그,새달 광주 방문/미 문화원 재개관 맞춰

    【뉴욕 연합】 도널드 그레그 주한미대사가 다음달 한국 반미감정의 진원지인 광주를 방문,옛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지가 21일 보도했다. 저널지는 연대세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도널드 클라크교수의 말을 인용,한반도 분단문제로부터 침체한 경제,심지어 보수거대여당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일부 한국인들이 마음에 맞지 않는 일들을 무엇이나 미국과 연관시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레그대사가 이같은 경향을 바꿔 보려고 광주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레그대사의 광주방문 계획은 그동안 27차례나 화염병 세례를 받아 문을 닫아온 광주 미 문화센터의 내달 재개관에 때를 맞추는 것이다.
  • 대만의 변화(사설)

    이등휘 대만총통은 20일의 제8대 총통 취임연설을 통해 중국을 반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초헌법적인 전시비상조치법의 폐기를 선언하고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거부하는 「3불정책」의 포기를 분명히 밝히는 한편 20여명의 정치범 사면ㆍ복권과 함께 과감한 민주화개혁을 약속했다. 한마디로 대만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선언이요 조치들이라 하겠다. 2년내의 민주화 헌법개정까지 약속하고 있는 이번 조치는 우리의 6ㆍ29민주화선언 및 7ㆍ7대북선언을 종합한 것 같은 인상으로 대만의 민주화는 물론 중국과의 관계 내지는 통일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전시비상조치법으로 헌법에 우선하는 사실상의 헌법역할을 해온 「동원감시기임시조관」(공산반란진압동원령)의 폐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당이 대만으로 패주하기 1년전인 47년 선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이 법은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헌법을 포함,일체의 민주적 기본권리를 유보시키는 특별법으로 그동안 대만의 대륙정책과 국내정치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 이 법의 폐기는 중국 공산정부에 대한 42년만의 실체 공식인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과의 전쟁상태 공식 종결선언으로 대만의 대륙정책을 보다 자유롭게 하고 전쟁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제반 민주화개혁을 가능케 하는 법적 기반의 마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집권2기를 맞는 이총통 지도하의 대만은 국내적으로 민주화를 가속시켜 나가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보다 현실적인 바탕위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을 시도해 나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도 그동안 경제적 성공에 수반되는 민주화 욕구분출의 국내 정치적 압력을 받아왔으며 국제적으로는 거대한 중국의 존재에 대한 세계 각국의 현실인정 대세로 고립을 면치 못해왔다. 최근에는 민주화개혁이 공산권을 휩쓸 정도의 세계적 추세로 발전하게 된 시대적 상황의 변화 등이 대만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으며 이총통은 이런 변화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나선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총통의 이같은 새로운 변화의 의지가 앞으로 어떻게 구체화되고 발전해 나가며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는 천안문사태이후 개혁이 중단된 중국의 정치ㆍ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총통으로서는 중국의 민주화개혁 재개 역시 불가피한 추세로 믿고 있을 것이 틀림없으며 그럴 경우 이번 조치는 중국통일의 과정에서 대만의 국민당정부로 하여금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줄 중요한 포석이 될지도 모른다. 전후 4개의 분단국중 베트남이 무력적화통일을 달성했다. 그 희생과 갈등 그리고 오늘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독일이 전후 최초의 민주화 평화통일을 달성해 가고 있다. 이제 아시아의 중국ㆍ대만과 남ㆍ북한만이 남아 있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 노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의 모델이 동일할 수는 없다. 베트남을 염두에 두고 독일ㆍ중국의 경우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름의 실현가능한 가장 바람직한 통일모델 개발의 노력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 「전대협」목소리 극렬화예고/「4기 출범식」계기로 본 학생운동 전망

    ◎「반미통일ㆍ민자해체」를 핵심 과제로/학생들 관심끌려 「학원자주화」병행/일부대 탈퇴등 반대세력 늘어 분열조짐도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19일 광주 전남대에서 전국 1백61개대학(전문대포함)의 2만여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제4기 출범식」을 치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전대협은 이날 경찰이 「출범식」을 원천봉쇄하기위해 학교안으로 들어올 경우에 대비,비상식량과 화염병등 다량의 시위용품을 상경대 건물 옥상등 3개건물에 갖다놓고 장기적인 점거농성을 벌이고서라도 「전대협」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앞으로의 투쟁행태가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대협」은 이날 출범식을 통해 올해 투쟁방향으로 ▲민자당분쇄및 노태우정권 퇴진을 통한 민중생존권쟁취 ▲반미조국통일투쟁 ▲사대노예교육과 학원내 저질문화를 척결하기위한 학원자주화투쟁을 제시했다. 특히 「전대협」은 지난9일 창당된 민자당의 내분,전ㆍ월세값 폭등,재벌의 부동산투기방조,현대중공업과 KBS사태때의 공권력투입등으로 노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10%도 못받고 있다고 판단 민자당해체투쟁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전대협」의 송갑석의장(24)은 「제4기 출범식」을 갖기 직전 전남대 학생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민자당분쇄투쟁을 위해 평민당과 가칭 민주당과의 연대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평소 「제도권 야당」으로 매도했던 두 야당과도 손잡고 일하겠다는 「주도적」인 제의를 했다. 이에따라 「전대협」은 오는 27일 「국민연합」주최로 전국에서 열기로 한 「민자당해체와 노정권 퇴진 국민대회」를 통해 「5월투쟁력」을 총결산한뒤 6월2일 「국민연합」이 개최하는 「비상시국회의」(시국대토론회)를 거쳐 「6월 항쟁」 3주년인 6월10일에 대규모 시위를 벌여 민자당해체투쟁을 가속화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전대협」은 또 미국을 「광주학살의 주범이자 3당야합의 산파자」로 규정,22일을 「반미의 날」로 설정해 전국 각 대학별로 「반미투쟁 결의대회」와 미대사관에서의 항의투쟁,양담배와 농축산물수입반대운동 등으로 반미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심산이다. 88올림픽 공동개최투쟁을 벌였던 「전대협」은 지난해 평양축전 참가투쟁을 벌인데 이어 통일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산하에 「전면개방 자유왕래 실현및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위원장 권오중ㆍ23ㆍ연세대 총학생회장)를 구성,본격적인 통일운동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7월20∼27일 남북국토순례대행진 ▲광복절을 맞아 10만학생 방북교류추진 및 콘크리트장벽 참관투쟁 ▲10월 UN단독가입 저지투쟁 등으로 통일운동의 열기를 확산시키기로 했다. 「전대협」은 이밖에도 교육악법개폐및 사립학교 재단전입금확보등 학원자주화투쟁을 병행시켜 일반학생의 호응을 얻음으로써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노리겠다는 전략도 짜놓았다. 그러나 「전대협」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계속 확보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일부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전대협」을 탈퇴하는등 운동노선에 반발하는 새로운 학생세력들이 등장하고 있어 앞으로 학생운동의 양태가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공안당국이 송갑석의장등 핵심간부 17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선 상태여서 조기에 이들이 붙잡힐경우 지도부가 흐트러져 구심점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학생운동권의 소수파이면서 NL계열(민족해방파)과 함께 양대 세력인 PD(민중민주파)계열의 총학생회장과 학생회 간부들이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전대협」측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전국학생투쟁체연합」(전학투련)주비위 발족식을 갖고 사실상의 활동에 들어감으로써 「전대협」노선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올해의 학생운동은 「민자당분쇄투쟁」과 「반미조국통일운동」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이나 문제의 관건은 일반학생및 국민이 이를 어느정도 수긍하고 호응하느냐는 점에 달려있다.
  • “조정마무리”… 주가 안정권 진입(금주의 증시)

    ◎예탁금 증가ㆍ「증안기금」조성등 호재 뚜렷/「7백50」이 지지선… 「장외불안」걷혀야 상승/주말 약보합… 0.9포인트 밀려 「7백65」로 마감 19일 주말장의 주가는 7백65로 끝났다. 5월이 다 가기전에 지수 8백대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8백선회복은 그만두고라도 남은 10일장을 별탈없이 보내 한달간 7백대를 지켜냈다는 조그마한 보람이나마 맛볼 수 있을까. 하순이 시작되는 내주로 바톤이 넘겨진 지수 7백60대는 여러모로 안정적인 짜임새를 갖췄으나 그대신 융통성은 적어보인다. 19일 주말장의 종가는 전일장에서 0.99포인트가 빠진 7백65.16이었다. 이날의 종가 등락폭은 이달들어 가장 적은 것으로 내림세(약)보다는 보합성격이 주목된다. 이 보합은 지금까지의 5월 동향에서 예외적이기 때문이다. 5월은 시작과 동시에 5일(장)속등으로 1백8포인트가 치솟았고 6일 속락으로 72포인트를 되물렸다가 또다시 48포인트를 되찾는 널뛰기 장세가 이어져 왔다. 19일의 종가는 직전 반등세가 8포인트 재반락한 이틀째 시점으로 등락폭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금주의 주가 움직임은 이같이 어지럽게 진행돼 온 등락교차국면에 맞물려 있지만 두가지 단서를 정연하게 드러냈다고 할 수있다. 우선 폭등세 후속의 반락국면 때 최저지수가 완연하게 상승하는 추세라는 것. 6일 속락세의 끄트머리인 15일 지수 7백24는 직전 최저점 6백88을 크게 웃돈 것인데 이 최저점까지는 올들어 계속 속락국면의 최저치가 낮아져 왔었다. 또하나의 특징은 정신이 헛갈릴 정도로 들쭉날쭉하던 주가의 움직임이 이달의 전반적 전개에서는 차츰 물결이 작아지며 안정되는 모양이다. 여기에서 이번주 주말장의 보합적 양상을 증시관계자들이 주목하게 됐다. 이 두가지 큰 움직임을 한데 묶어보면 5월로서는 최소한 7백대가 전연 깨지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으리라는 것. 그러나 동시에 최근의 지수는 복합적인 형성과정을 겪은 탓으로 증시내적 형편과 관련해서 움직임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8백대 회복이 수월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향후 주가에 대해 박스권 형성을 예상하고 있으며 그 범위를 7백50대에서 7백90대 사이로 예상하고 있다. 7백50대 밑으로는 내려가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8백대로 올라서리라고는 선뜻 말하지 못한다. 박스권의 바닥에 대해선 한층 자신이 있다는 투들인데 여기에는 이번주 증시주변여건이 연결된다. 지난주초부터 이번주초까지 계속된 속락국면은 증시안정화대책 발표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나 시국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염려가 하락세를 부추겼었다. 그런데 이처럼 불보듯 뻔한 외적 악재가 널려있는 이번주에 주가는 이달초순부터 지난주까지의 시황보다 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속락과 속등이 되풀이된 것도 따지고 보면 대세전환을 위한 정지작업으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이 결과 바닥이 더 단단히 다져져서 새출발이 보다 확실한 방향을 갖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이달들어 이번주 중반까지 험한 물결이 굽이 쳤지만 이는 대세전환에 다리를 놓기위한 조정작업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징조가 주후반들어 하나둘 나타났다고 강조한다. 지난주에 감소세로 돌아섰던 고객예탁금이 16일부터 증가하는 양상으로 변했으며 미수금도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 증시안정기금의 1차조성분 가운데 1천3백억원이 남아있는 가운데 2차분 2천5백억원이 내주부터 가동된다는 점도 호재로 꼽힌다. 그러나 사회불안 요인까지 포함해 제반여건이 좋아지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나 경기회복이나 자금사정 개선등 본질적 호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점진적인 「중간치기」의 상승세밖에 일으키지 못할것 같다.
  • 중국 「서안사건」의 주역 장학량 54년만에 “자유의 몸”

    ◎장개석을 감금,홍군회생에 기여/대만,연금 풀고 망백연개최 추진/중국과 관계개선 노린 유화제스처인듯 지나간 역사의 페이지속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장학량이 54년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게 됐다. 만주군벌이던 장은 중국대륙에서 장개석과 모택동에 의한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36년 12월7일 독전차 그를 만나기 위해 서안으로 온 장을 감금,국공합작을 통한 항일전선을 구축케 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한 인물. 당시 모의 홍군은 막 장정을 마친뒤여서 세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으며 장은 이러한 홍군에 대공세를 감행,완전 소탕하기 위해 국민당정부군산하 만주군지휘책임자인 장에게 공격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장학량은 그의 부친 장작림이 일본군에 의해 폭사한 원한 등으로 공산당이 내건 항일민족통일전선전략에 동조,장을 구금했고 이에 따라 괴멸직전에 놓였던 모택동의 홍군은 숨을 돌려 세력확장에 힘을 기울인 결과 대세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장은 그후 장개석에게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체포돼 1949년 국민당정부와 함께죄인의 몸으로 대만에 온뒤 줄곧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연금생활을 해왔던 것. 대만의 중국시보 17일자보도에 따르면 장학량은 오는 6월1일 대북시 원산호텔에서 90회 생일축하연회를 가질 예정이며 이 연회에는 이등휘총통을 비롯한 국민당 고위간부 등 2백여명이 참석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 신문은 「서안사건」이후 54년만에 장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사실은 국민당 정부가 그에게 특사의 혜택을 주는 것이며 앞으로 장은 기나긴 연금상태에서 풀려나 자유인으로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으로 끌려온 이후 그는 대북시 북투의 한 가옥에서 부인 조일적과 살고 있으며 생활비는 국민당에서 마련해 주고 있다. 이번 장의 90회 생일잔치를 위해 국민당측은 「장한경(장학량의 호)선생 9순경축위원회」까지 조직,요란스레 축하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관측통들은 오늘의 초라한 국민당정부를 있게 만든 장에 대한 대만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가 너무 연로해 더이상 연금의 필요성이 없는데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선 불필요한 구원을 간직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을 비롯,모택동과 서안사건의 중재를 맡았던 주은래 등 동시대의 관련인물들이 이미 타계한지 오래됐음에도 장이 90세를 맞아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 목민관의 냉수 한그릇/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잠롱 스리무앙씨는 말한다. 『젊었을 땐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크고 좋은 집ㆍ자동차ㆍ고급가구를 갖고자했다. 누구를 속이지는 않았으나 굉장한 구두쇠였다. 드디어 모든 것을 갖게 됐을 때 기쁨보다 불안과 걱정이 엄습했다. 값비싼 스테레오,금덩이가 모두 도둑들 눈독의 대상이었다. 집을 비울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괴로웠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 잠롱씨의 세속적인 소유욕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끝에 「마음 비우기」로 귀착했다. 모든 것을 내놓은 것이다. 잠롱씨는 불교의 나라 태국의 수도 방콕시장이다. 달포전 우리 텔레비전프로로도 소개된 바 있다. 그는 봉급을 모두 자선단체에 헌납하고 사글세로 공장창고에 살고있다. 채식주의자로 하루 한끼만 먹고 무명옷 세벌이 그가 가진 의관의 전부이다. 85년 태국 최초의 민선시장이 됐고 지난 1월 재선됐다. 선거기간중에 반대세력의 암살테러를 가까스로 면했다. 그는 88년 부패정치인 및 공직자,기업인의 추방과 정경유착을 질타하면서 팔당다르마당을 창당, 「가진자들을 위한 정치」를비난했다. 그때부터 일부 정치인과 부유층의 미움을 샀다. 시민원업무에 급행료와 뇌물이 통하지 않게되자 불만을 품은자들이 모두 그의 적이 됐다. 청렴결백이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느 나라건 대개 수구적 기존체제는 속살이찐 탐관오리들이 장악한다. 청백리는 그속에서 미운오리가 되기 십상이다. 「공직자 새정신운동」이 강조되더니 수뢰공무원들이 구속됐다. 파면ㆍ면직된 사람들도 있다. 서슬퍼런 이름의 청와대 특명사정활동도 서릿발 같다. 지난 날에도 더러 그래왔거니와 아연,소리는 큰데 결과가어찌되려나…. 용두사미격이 안될는지…. 관가의 술렁댐을 지켜보면서 오늘의 모든 공직자,깨끗한 공직생활을 거쳐 「명예로운 은퇴」가 그리 어려운가 생각해 본다. 옛 중국의 조궤라는 사람이 제주별가 벼슬자리에 있었다. 이웃집 복숭아 나무에서 탐스런 열매가 더러 자기집 담쪽으로 떨어지면 일일이 주워 돌려 보냈다. 말하기를 『내가 이로써 청백하다는 이름을 낚으려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본심에서이다』라고했다. 얼마후 영전이 되어 제주를 떠나는데 고을 부노들이 길을 막고눈물을 흘렸다. 『별가께서 이 고을에 오신후 물 한방울을 백성들과 주고받은 일이 없으나 오늘 공을 전별하는 마당에 한잔술이나마 올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공께서 받지 않으실 줄 알기에 냉수 한그릇(냉수일배)으로써 석별의 정을 표합니다』 선정을 펴고 표표히 떠나는 목민관에게 냉수 한잔 권하고 마시는 정경에서 청고한 공직생활의 보람과 영예가 눈에 잡히는 듯하다. 공직자는 그 자리에 있을때 항상 영예로운 결산을 준비해야 한다. 옛 글에 『높은 벼슬아치로 있을때 산촌의 맛을 잃어선 안되고 초야에 묻혀서는 모름지기 천하의 경륜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역시 예로부터 그러했다. 그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벼슬이 끝나면 곧바로 낙향,은둔함이 사대부의 금도이며 법도였다. 벼슬을 내려놓고 서도 세도의 변두리를 감돌고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오고가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일 것이다. 더욱이 떠나는 이 한점 부끄러움이 없이 운신코자 하는 지기추상의 미덕일 수 있다. 고금의 공인들이 진퇴의 시리와 수분지기의 도덕성을 간직하지 못해 참담한 말로에 이른 사례를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다산 정약용은 목민관이 부임할 경우 『청렴한 선비의 행장은 겨우 이부자리에 속옷,그리고 고작해야 책 한수레쯤 싣고 가면 된다』고 했다. 또 재임중에 있어서는 『수령노릇을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애스럽다. 자애하고자 하는 자는 청렴해야 하고 청렴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절약해야 한다. 그러니 절용한다는 것은 수령된 자 제일 먼저 해야할 임무』라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산은 또한 그래서 공직자는 재임중일 때보다 자리를 떠날때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목민심서 해임육조에 『목민관이 임무를 마치고 떠날때 고을의 부노가 도구밖에 전송나와 술을 권해 보내기를 어머니가 어린애를 잃는 심정으로 정을 표한다면 더할 수 없는 광영일 것』이라고 적었다. 요즘은 어찌된 셈인지 공직을 떠나는 자가 술 한잔 냉수 한그릇 받기는 커녕 원성과 지탄과 외면을 받기 일쑤다. 오늘의 세상일이 허망하고공직사회의 삭막함이 이에서 비롯된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그로인한 사회적 비리와 부조리가 어디에서 오는가. 한마디로 사회정의 특히 분배의 공정이 실현되지 못한 데서 야기된다. 경제사회의 모든 갈등과 대립은 모두 그로부터 출발한다. 탁월한 사회철학자의 한사람인 존로크는 정의의 의미를 공정성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회의 모든 법,제도와 규칙은 모두 공정성의 균배에 근거해야만 도덕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정의개념은 역시 고전적이다. 그에게 있어 국가와 사회의 정의는 개인적 정의에 확대일 뿐이다. 인간이 머리로는 지혜,가슴으로는 용기,배로는 절제 등을 나누어 도덕적 품성을 조화롭게 발휘할 때 그는 정의롭다. 국가사회도 그러하다. 따라서 국가적 정의가 극대로 실현되는 시점은 정의로운 사회구성원들이 각기 개인의 소질과 능력에 맞추어 특성을 최고도로 시현할 때이다. 이번 공직사회에 대한 철저한 사정활동의 당위성은 인정된다. 하나 그것이 어느날 아침 순간적으로 돌출됐음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사정은 항시적이어야 하되 기침소리가 나서는 안된다. 그 활동이 엄정한 원칙과 증거에 의한 것일 터이어서 부패부정한자가 격리되는 것은 당연하나 언제나 영예로운 결산을 준비하는 공직자들에게 억울함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부패무능공직자 열을 놓치더라도 억울하게 함정에 드는 한명의 공직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정활동이 항시적이어야 함은 그런 까닭에서이다.
  • 리투아니아공,오늘 비상최고회의 소집/「독립선언 유보」 결의할 듯

    ◎총리­고르바초프회담서 타협/소,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에 군 증파 【모스크바 AFP 연합】 소련 발트해의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는 19일 개최될 비상회의를 통해 일련의 독립지향 조치들을 동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모스크바와 빌니우스에 있는 리투아니아공화국 관리들이 18일 말했다. 이번 비상회의는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카지미에라 프룬스키에네 총리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연방정부 대통령과 17일 저녁 독립문제를 놓고 회담을 가진데 뒤이은 것으로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최고회의 의장의 소집으로 개최가 결정됐다. 프룬스키에네 총리는 리투아니아공화국이 독립을 구체화하기 위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을 일시적으로 유보할 것을 제시한 공화국 정부와 최고회의의 공동결의안을 휴대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달 11일 독립선언 이후 양측 최고관리로는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한 고르바초프ㆍ프룬스키에네 회담에 대해 모스크바주재 리투아니아공화국 대표부의 리온기나스 바실리오스카스 대변인은 이를 『일보전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와 관련,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더이상 독립선언의 취소를 요구치 않고 이의 유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의 통과여부를 묻는 질문에 과반수의 의원들이 이미 17일밤의 회의에서 공동결의안을 채택하는데 찬성했다고 대답했다. 프룬스키에네 총리는 18일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회담을 갖는다. 【모스크바 A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18일 소련의 헌정이 준수된다면 리투아니아공화국의 독립을 둘러싼 분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검토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힘으로써 사태 해결에 희망적인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상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의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리투아니아 사태에 언급하며 『헌정을 통해서라면 우리는 어떠한 가능성,어떠한 문제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발언은 그가 전날 모스크바를 방문한 리투아니아공화국의 프룬스키에네 총리와 1시간40분동안 요담한 직후에 나왔으며 리투아니아 관리들과 타스 통신등에 의해 회담의 진전이 시사됐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한편 카지미에라 프룬스키에네 총리도 회담후 모스크바 주재 리투아니아공화국 대표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관련조치들을 유보하자는 제안을 공식화하기 위해 19일 비상회의를 갖는다고 확인,사태해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공화국 수도에서 독립지지세력과 반대세력간에 충돌이 벌어짐에 따라 양공화국의 질서유지를 위해 소련군 특수부대가 양공화국에 파견됐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19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특수부대가 현지수비대를 도와 순찰과 교통통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증원군이 얼마나 파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리투아니아에선 소련군 헬리콥터들이 『분리주의정부 타도,소연방 리투아니아 만세』라고 쓰인 유인물을 살포했으며 군초소에 접근하려던 리투아니아 10대 1명이 군의 발포로 사망하고 인근을 지나던 행인 2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긴장이 계속되고있다.
  • 반성론…명분론…두얼굴의 일본 “대변”/「대한사죄」…일본인의 목소리

    ◎분명한 역사적 죄과 책임인정을 찬/정치적 발언은 국사행위 아니다 반 한일관계를 냉각시키고 있는 일왕의 사죄문제는 지금까지 나타났던 그 어느 현안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과거청산」의 시발점이며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대전제」이다. 한일협정의 체결,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보장과 처우개선,교과서 왜곡사건,사할린간류 한국인 귀환문제와 원폭피해자문제등 전후처리문제,무역불균형 시정과 기술이전문제등 한일간에는 많은 현안이 부침했으며 현재도 걸려있으나 일왕의 사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한일간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제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견해는 도쿄(동경)주재 외교관계자들과 재일 한국인들은 물론 일부 정치인과 관료층을 제외한 많은 일본인들도 갖고 있다. 16일자 아사히(조일)신문 3면에 게재된 각계인사들의 코멘트는 이같은 사실을 대변한다. JR윤락죠(유락정)역 근처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 난부 사치요(남부상대ㆍ31)씨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때 확실히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일차 분명하게 사죄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신뢰관계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유감」이라는 말은 관료적이며 모호하다. 분명한 사죄를 하더라도 지금의 일본으로서 잃을 것은 없지 않은가』라며 사죄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자민당수뇌의 『무릎 꿇고 빌라는 말인가』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멸시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한국측은 「무릎을 꿇라」고 말한 일이 없지 않은가』라고 비판적이었다. 기계 메이커 차장인 가와바타 요시히코(천단의언ㆍ49)씨는 『머리를 얻어 맞은 쪽은,때린 쪽에서는 옛날에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일 새시대라는 말도 생겨났으며 전후 새로운 우호의 기초도 다져진 마당에 옛일을 다시 문제삼을 것은 없지 않은가. 자민당 일부에서 말하듯 「경제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청산됐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한국측이 언제까지나 「사죄」에 계속 구애되고 있는 것은 대인답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학계의 대세는 보다 더 부정적이다. 학습원대 아시베노부요시(노부신희ㆍ66)교수는 『헌법이념은 일왕을 정치의 세계로부터 격리시키려 하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를 갖는 발언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 발언인가의 여부는 발언할 때의 상황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이번처럼 발언내용이 외교적인 문제가 되어 있을 경우에는 발언이 정치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한일관계의 역사적 연혁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예외를 인정하면 그것이 선례가 된다. 역시 일본전체의 대표로서 총리가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도 견해의 차이는 많다. 일본ㆍ아시아관계론을 전공하는 우쓰미 아이코(내해애자ㆍ48)조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재한피폭자 및 일본군에 징용된 사람에 대한 보상등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초래했던 문제가 남아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져야만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같은 문제의 실태를 정확히 조사,보상해야 할 것은 보상하고 사죄해야만 할 것은 사죄한다는제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방위대교장이며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ㆍ75)씨의 견해는 더욱 분명하다. 그는 『(소화일왕의 발언은) 어느쪽이 가해자이며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나쁜 짓을 한국에 저질렀다.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화일왕의 발언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문언을 삽입했더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이노키회장은 특히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치성을 띠게 된다』고 지적하고 『일본인은 역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다. 현대사의 무지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민당수뇌의 발언은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정당의 간부로서 한심스럽다』고 통박했다. 나아가 이노키회장은 「상징일왕」은 국가원수라는 해석에 입각,『일왕이 외국원수에 사죄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결의로는 서푼의 가치도 없다』며 도이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이 제창한 「국회결의」안을 일축했다. 반면 국제대 다카노 유이치(고야웅일ㆍ73),사상사 전공인 다케다시미코(무전청자ㆍ72) 교수 등은 『일왕이 국민을 대표해 사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일왕은 헌법상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넘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반론을 편다. 문제는 일왕의 헌법상의 제약과 그의 발언이 과연 정치적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일본헌법상 일왕은 헌법에 규정된 국사행위만을 행한다. 국사행위란 정치적 기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헌법개정ㆍ법률ㆍ명령의 공포,국회의원 총선거의 시행공포,외국사절의 접견등 형식적ㆍ의례적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일왕의 국사행위 중에는 총리와 최고재판소장관의 임명과 중의원해산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도 포함되고 있다. 따라서 국사행위의 성격해석을 둘러싸고 학설이 대립되어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일본국왕은 일본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일왕이 행하는 국사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며 일왕의 국사행위에 관하여내각은 책임을 진다. 이렇게 볼때 일본의 경우 행정권만을 관장하는 총리를 국가원수로 보기는 힘들며 「국민의 대표」라는 입장은 역시 일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 일왕의 발언이 「정치적」이냐의 해석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을만큼 미묘하다. 이원경 주일대사가 15일 하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대장상과의 면담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의 발언의 정치성여부를 떠나 자신의 심경만을 피력하면 족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소화일왕은 헌법에 근거하여 전쟁을 수행하는가. 시대와 인물은 바뀌었더라도 일왕의 이름아래 수행된 전쟁은 일왕의 이름으로 사죄되어야 한다. 상징일왕이라면 그 상징에 맞는 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결자해지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헌법의 제약은 구실이며 역사인식은 초법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도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미,「아시아 군사전략」 수정 논란

    ◎“감군”ㆍ“계속 주둔” 싸고 팽팽한 대립/「평화배당금」 국내전용 여론 비등 감축/국익ㆍ민주수호위해 상주불가피 주둔 【워싱턴 AFP 연합】 미국은 필리핀에서 개시된 기지 협상과 때를 같이 해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역할을 90년대의 냉전이후 체제에 알맞게 재규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소련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추진하고 유럽의 군축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면서 초강대국간의 긴장이 완화되기 시작함에 따라 미국의 아시아주둔 군사력도 마찬가지로 감축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의원들과 국민들은 아시아주둔 미군을 감축시켜 여기서 나오는 「평화배당금」을 미국내의 만성적인 예산적자를 줄이고 다른 급한 국내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전용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군사전략가들은 비록 소련의 위협이 감소하고 동­서긴장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이익보호와 역내대결 상황감시를 위해서는 미군이 아시아에 가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주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방부의 폴 월포위츠 정책담당차관은 『미국이 세계의 강국으로 남고 국익을 보호하며 민주주의 및 자유경제체제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미군이 아시아에 주둔,신뢰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로 기존의 아시아전략이 이처럼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아시아방위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대두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역내 맹방들도 이제는 경제강국이 됐기 때문에 자체방위에 대한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미국인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 맹방들 안에서 분출되고 있는 민족주의 감정도 미군의 계속적인 주둔에 장애요소로 부각되고 있는데 특히 클라크공군기지 및 수빅만해군기지의 임대기한연장 협상을 14일부터 갖고 있는 필리핀의 경우가 그렇다. 미국방부는 아시아주둔 미군철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동서대결상황에 토대를 두고 있던 미군주둔의 논거를 90년대의 상황에 맞게 바꾸려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에 밝힌 전략검토보고서에서 아시아지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4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중소국경주둔 소군을 감축하고 베트남의 캄란만주둔 군함 및 항공기일부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소련의 극동군사력은 자체방위에 필요한 수준을 여전히 훨씬 넘어서고 있을 뿐 아니라 공군 및 해군력의 현대화계획 추진으로 미국의 아시아역내 이익에 대한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둘째 아ㆍ태지역과의 무역이 미전체무역고의 37%를 차지,오히려 대유럽무역 규모보다 50%가 더 큰데다 역내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미해ㆍ공군을 전진 배치시켜 해로를 보호하는 것이 긴요하다. 셋째 90년대는 아시아에 「엄청난 변화와 불안」이 도래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월포위츠차관의 말을 빌린다면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가장 무모하고 위험한 배역들 가운데 하나』로 계속 남을 것이며 미군과 궁극적인 대결상황이 빚어질 공산이 가장 큰 적대세력이다. 마지막으로팽창주의적인 열망을 가진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의 안보적 주둔이 「대체할 수 없는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군사분석가들은 이러한 사례로 인도가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있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미맹방들 사이에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아태지역 미 기지 현황/한국ㆍ일ㆍ비 등 3곳이상씩… 지구절반 커버/클라크ㆍ수빅만 최대… 일에 4만9천 주둔 【홍콩 로이터 연합】 필리핀내 미군기지의 장래문제에 관한 미국과 필리핀간의 협상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방위구도를 개편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방부는 강대국간의 긴장이 완화됨에 따라 현재 지구의 절반에 걸쳐 배치돼 있는 아ㆍ태평양 지역의 병력중 10∼12%,총 12만명의 병력을 감축하는 계획을 현재 마련중이다. 다음은 아태지역에 배치한 주요 미국병력의 주둔 국가별 현황이다. ▲필리핀=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만해군기지 등 총 6개기지에 약 1만7천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두 기지가 이 지역 안보에 있어 핵심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수빅만기지에는 미 7함대가 있다. ▲일본=남부 오키나와섬 카데나(가수납)와 도쿄 외곽의 요코다(횡전),북부 미사와(삼택)등 3곳에 미군기지가 있고 도쿄 근처에 주한미군 지원부대가 배치돼 있다. 일본서부 사세보(좌세보)와 도쿄 남부 요코스카(횡수하)의 해군기지와 오키나와의 미해병 1개사단,일본서부 이와쿠니(암국)의 미해병 항공대 기지가 있다. 주일미군 4만9천명중 육군이 10%,해병이 40%,그리고 해군과 공군이 각각 2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주한미군의 숫자는 약 4만4천명. 육군이 대부분이며 해군과 공군도 일부 있다. ▲싱가포르=미군 군함에 대해 연료공급과 선박수리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군 수송기의 통과도 허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측에 더 많은 시설 이용권을 제의했으나 싱가포르에는 몇대의 군함밖에 정박할 수 없으며 F16기 편대의 경우 1∼2개 편대가 교대로 착륙할 정도다. ▲호주=누룬가르,파인캡,노스웨스트만 등지에 3개의 미ㆍ호주합동군사기지가 있으며 노스웨스트만 기지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해역의 잠수함들을 감시한다. 누룬가르와 노스웨스트만 기지는 정보수집도 하며 아울러 조기경보와 군축감시기지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들 기지에는 호주인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이 미군이며 지휘부도 미국이 맡고 있다. ▲괌=캘리포니아로부터 서쪽으로 6천마일,도쿄로부터 비행기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미국령 괌섬에는 앤더슨 공군기지,미8공군사령부,해군기지 1개가 배치돼 있다.
  • “증시급냉”… 750선 붕괴/시국 불안에 매수세 “실종”

    ◎4일간 47포인트 속락 「7백49」 주가가 4일째 하락,종합지수 7백50대가 무너졌다. 주말인 12일 주식시장은 개장후 20분간은 오름세를 타 전일대비 2.5포인트 상승이 기록됐으나 이내 가파른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반나절 장에서 13.19포인트나 빠져 종가는 7백49.08로 7백60대와 7백50대가 다같이 깨졌다. 4일 연속 하락으로 종합지수는 47.5포인트 주저앉았으며 7백50대 붕괴로 한때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5월 대세전환」이라는 낙관이 무색해진 인상이다. 5월 첫날부터 증시에 몰아친 주가반등세는 8일까지 연 닷새장 동안 종합지수를 1백8포인트나 솟구치게 했다. 지수 8백을 바로 눈앞에 두고 반락했으며 이 국면 또한 직전 반등세 못지않게 속도가 빨랐다. 앞서의 3일 연속 폭등장세(1,3,4일)로 되찾았던 지수를 44%가량 다시 끌어내린 것이다. 내림폭이 크기는 크나 오름세의 절반에 못미친다는 사실에 위안받을 투자자는 적겠지만 4일 속락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전문적 견해가 있다. 폭등장세는 필연코 반락하기 마련이며 오름폭의 꼭 반만큼내려서는 조정기간을 거쳐서야 보다 본질적인,따라서 훨씬 더 안정적인 상승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 논리는 폭등연속으로 주가의 오름세를 당연시하는 생각에서 깨어나게 하는데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이번 속락에 가슴이 떨리는 투자자들을 크게 진정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4월 속락 국면은 처음부터 기술적 분석이 미치지 않는 주변사항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폭등장세를 일으킨 증시 및 경제대책에 대한 기대감이, 대책의 발표로 사라짐에 따라 주가는 하락세로 돌았으며 이 점은 조정국면의 필수코스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속락은 대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기대감의 공백을 메꾸면서 나타났다는 주장이 크다. 거기에 증시외적 여건으로서 시국불안이 뚜렷하게 가중됐으며 어느면에서는 주가하락의 주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시국에 관한한 내주(14∼19일)는 이번주와는 비교가 안되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본래가 간접적이며 중장기적 성격의 증시대책이 내주들어 갑자기 호재적 진면목을 나타내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증시전문가들은 내주의 시황은 증시외적 여건에 그대로 종속되어 있다고 못박고 있다. 그 물결을 헤쳐나간 연후에야 조정국면의 끝이니,안정적 상승세 재진입이니 하는 증시내적 예상을 들먹일 수 있다는 것이다.
  • 평민ㆍ민주 통합협상 벽두부터 암초에

    ◎“이기택위장 발언은 반통합적” 규탄 평민/경남조직책,당대당 통합 추인 거부 민주/14일 2차협상 무산위기 김대중평민당총재의 2선후퇴를 밝힌 이기택 민주당(가칭)창당준비위원장의 발언파문으로 평민ㆍ민주 양당간 야권통합협상이 벽두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민주당은 이위원장의 발언에 이어 9일 창당준비위를 열어 「김총재 2선후퇴」를 통합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울지의 여부를 오는 13일 다시 회의를 갖고 당론으로 최종 결정짓기로 했다. 창당준비위의 이같은 결정은 김총재 거취문제라는 통합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린 것으로 이 문제를 거론치 않기로 한 평민ㆍ민주협상대표간의 사전협약을 깬 셈이어서 통합협상의 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에따라 13일 창당준비위가 김총재 2선후퇴를 협상전제조건으로 결정할 경우,평민ㆍ민주 양당의 14일 2차협상은 무산되고 통합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장석화대변인은 『이날 회의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고 전하고 『13일 창당준비위에서 김총재 2선후퇴 전제여부가표결에 부쳐질 경우,누구도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전망. 특히 부산ㆍ경남지역의 지구당조직책들은 『50대50으로 경선하더라도 결국은 조직과 금력이 우세한 김총재가 대표로 당선될 것』이라며 김총재 2선후퇴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한 전직의원은 김총재의 전력을 들며 『이런 사람과 어떻게 경선을 할 수 있느냐』고 「경선자체불가론」까지 주장했다는 후문. 이위원장은 8일 김정길통합협상대표로부터 평민당과의 협상결과를 보고받고 창당준비위 소집을 지시한 뒤 곧바로 외신기자초청 오찬간담회에서 김총재의 2선후퇴를 거론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이위원장의 예정된 수순이 아니냐는 분석. 이위원장은 외신기자들에게 『당내에 김총재 2선후퇴를 주장하는 세력과 50대50경선을 통해 후퇴시키자는 세력이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이날 창당준비위에서 『당내의 두가지 흐름을 전달했을 뿐』이라며 발언내용을 확인했다. 창당준비위의 이같은 분위기는 통합이 될 경우 자신들의 불확실한 장래 위치가 불안해진다는 지역구 조직책들과 당지도부의 계산이맞떨어져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통합의 당위성에 대한 여론을 업고 통합의 대세를 몰아왔던 「통합추진파」 의원들은 김총재 2선후퇴 전제가 당론으로 결정되면 당내 입지도 축소되고 통합의 목소리가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평민당은 9일 전날 이기택위원장이 김대중평민당총재의 2선후퇴론을 재론한 데 대해 발끈하면서 진의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당초 민주당측이 제시한 대표최고위원경선제와 관련,현역의원 지역구(평민55ㆍ민주8)의 기득권을 인정한 채 나머지 지역구의 지분균분문제를 논의할 속셈이었던 평민당 주류는 이위원장의 발언으로 민주당 주류의 대세가 「세대교체론」임을 재확인,통합협상 자체마저 기피하려는 분위기이다.
  • 부양책 기대… 주가 폭등/투자심리 되살아 이틀째 활황

    ◎32포인트 뛰어 「7백50」 회복/상한가 7백80개… “팔자”없어 매물 바닥 주가가 이틀째 폭등,종합지수 7백50선이 회복됐다. 3일 주식시장은 침체증시 회생을 위한 정부의 적극개입 의지가 한층 명확해짐에 따라 개장 초부터 「사자」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라 단숨에 32.37포인트나 급등했다. 이로써 종합주가지수는 7백50.82로 6일전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날 지수 상승폭은 대세를 반전시킨 전일보다 2.5포인트나 높은 것으로 종합지수는 이틀새 63포인트 가깝게 반등했다. 7백98개 종목이 상승한 가운데 무려 7백80개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날 상한가까지 오른 종목은 전체 상장종목의 89.7%로 지난 12ㆍ12부양책 직후의 81%를 크게 상회했고 상승률도 4.51%로 증시사상 3위를 기록했다. 상한가 종목이 무더기로 쏟아진 반면 거래량은 3백95만주로 올해 평일장 최저수준에 그쳤다. 이는 상한가로 사자는 주문이 쏟아져 나온 반면 팔려고 내놓은 물량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극심한 매물부족 사태로 이날 상한가로 매수주문을 냈으나 물량이없어 매매를 이루지 못한 상한가잔량이 실거래량의 5배가 넘는 2천만주에 이르렀다. 전날의 휴장에도 불구하고 「사자」열기는 전일장보다 더 거세 개장 첫지수가 25포인트 상승을 기록했으며 그후에도 상승세는 가속화됐다. 일반투자자들 사이에 정부가 강구중인 증시부양책의 폭이 통화문제에 걸려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긴 했으나 매수세를 위축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증권전문가들은 통화문제를 건드리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이 정부의 개입의지를 계속 신뢰하게 된다면 주가 상승세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 “상승이냐 하락이냐”… 5월 주가진단

    ◎증시 신뢰감 회복되면 “침체 탈피”/“실명제 유보­성장우선등 내릴 이유 없다”/돈줄 환류정책 펴면 대세전환 가능성도 5월이 와도 증시는 마냥 얼음판 그대로일까. 아니면 증시침체 13개월째였던 4월과 함께 주가하락의 대세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4월의 마지막장인 30일 종합주가지수는 침체기를 통틀어 맨 밑바닥에 닿았다. 5월 첫날인 다음날 장에서 주가는 침체기직전의 3년활황 어느 순간보다도 드높은 상승률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증시침체는 올들어 4개월 사이에 한층 심화되고 그 기조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작년 침체기에 해당되는 9개월 동안의 종합지수를 살펴보면 8백대보다는 9백대가 훨씬 눈에 많이 띈다. 증기침체의 대세는 변동하지 않았지만 해가 바뀌면서 그 양상이 일변했다. 주저하는 기색이 없지 않았던 침체지속 국면이 외곬로 치닫기만 한 것이다. 올해의 연중 최고지수 9백28은 연초(1월4일)에 작성된뒤 그후 한번도 엇비슷하게나마 도전받은 적이 전무했던 반면,최저지수는 15번의 경신행진을 벌이며 6백88.66에다달은 4월30일까지 계속되어왔다. 금년의 연간 지수등락폭은 연초지수와 최근지수와의 차이기도 한데 무려 2백40.16포인트(하락률 25,8%)로 작년 침체기 수준을 크게 능가한다. 침체기 시발점인 증시최고점에서 증시사상 최대폭하락과 함께 기록된 4월30일의 지수까지 3백19포인트(하락률 31.6%)가 13개월동안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침체의 기간에서는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올해 하락률이 더 깊다는 사실이 주가하락의 대세를 뚜렷이 지적해주고 있다. 또 지난해와는 달리 올들어서는 최저지수 경신후 뒤따르는 반등국면지수가 한번의 예외도 없이 계속 낮아져 하락일변도 추세에 이론을 달수없게 했다. 지난해의 최저지수는 올 2월말 하향돌파되었지만 주가하락은 지수 8백이 붕괴된 4월14일 이후들어 거의 광적이 되다시피했다. 30일까지의 14일장 동안 3번 반등국면을 기록하며 일거에 1백15포인트가 내리고 말았다. 반등국면은 더 큰 하락을 초래하는 구실만 줬을 뿐인데 5월1일의 급등세는 주가움직임을 단순하게 보았을 때 이같은 반등국면의 4번째에 해당된다. 82년이후 최고상승률로 치솟은 5월1일의 오름세는 폭락을 부르러 나선 4번째 하인인가,아니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세전환의 전령인가. 침체의 골을 깊게 판 올해의 주가하락 추세는 경제적 실제상황보다는 투자자들의 심리에서 기인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증시를 침체로 몰고간 구조적 요인들인 주식과잉공급및 실물경지 부진이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거나 회복되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의 주가하락을 이같은 요인의 상존으로만 푸는 것은 부족하다. 오히려 숱한 면에서 올해의 증시주변 여건은 지난해보다 개선되었으면 되었지 악화됐다고 볼수 없다. 지난해보다도 일목요연한 주가하락 대세는 보다 나아진 여건에서 나왔다는 「괴상한」성격을 갖고 있다. 증시자금을 이탈시킨 금융실명제 실시방침도 전면 유보되었었다. 그런데도 주가는 내렸다. 경제각료들이 개혁주의자에서 성장우선 성향으로 교체되었고 보수지향의 투자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정국도 여대야소로 뒤바꿔졌다. 투자자들이 요구하던 증권주신용허용도 이뤄졌고대용증권대납 비율도 변경됐으며 증권사 공동출자의 증시안정기금도 조성된다고 발표됐다. 하지만 이처럼 좋으라고 마련한 방침이 공표되기만하면 주식시세는 도리어 나빠지기만 해왔다. 투자자들이 일견 「청개구리」식으로 반응하게 된 것은 이같은 조치나 상황변화들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증시기저를 다시 튼튼하게 하는데도 별무소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증시기저의 복원은 증시를 떠나 산지사방으로 새나가버린 자금의 재유입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이고 당국이 원칙적인 조치로 자금환류의 길목을 만들든가 아니면 직접 돈을 대라는 요구이다. 정부의 태도는 돈줄을 대는 일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인데 전체 경제사정을 따져 이를 이해하는 투자자가 대다수라고 볼수 있다. 투자자가 주가하락으로 정부의 다른 조치들에 불만을 표출해온 것은 그같은 조치들이 실속없는 면책ㆍ면피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4월30일 정부는 침체증시회복에 대한 각종 조치성안에 들어 갔고 다음달 주가급등이 이뤄졌다. 올 주가동향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모처럼 쌍방이 정방향에서 만난 셈이다. 당국의 자세가 그전과 다르며 그것을 투자자들이 5월1일처럼 계속 인정하게 된다면 증시의 「돈」을 어디서 대든 대세전환은 가능할 것이다.
  • 정상화 번복서 공권력 투입까지

    ◎“김전총무처 개인자격”에 거부로 급전/비대위 설득도 허사,사원투표서 부결 지난 28일 비상대책위가 방송제작을 정상화하기로 결정,사태해결을 눈앞에 두었던 KBS사태가 30일 사원찬반투표를 거치는 진통끝에 정상화방안이 거부됨에 따라 결국 공권력의 재투입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됐다. 지난 28일 비대위측의 방송정상화방안발표가 있었던 직후부터 우려가 됐던 김용갑 전총무처장관의 협상과정 및 자격시비가 이날 상오 열린 각실ㆍ국대표 50여명의 방송정상화방안의 수용거부라는 결과를 낳았고 이러한 분위기는 찬반을 묻는 사원총회에 까지 그대로 이어져 정상화안 반대라는 최악의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더 이상의 파업에 따른 제작거부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므로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방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배경에서 나온 결정이 이날 찬반토론에서 본말이 전도된 김용갑 전총무처장관의 역할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면서 김 전장관이 개인자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태가 급격히 반전된 것이었다. 사원들은 이날 상오 9시쯤 실ㆍ국별로 총회를 갖고 「지난 28일 방송정상화방안에 대한 사원들의 총의를 수렴해야 한다」고 결정,대표를 선임했다. 대표 50여명은 곧바로 상오 10시쯤부터 본관 6층 제1회의실에서 「비대위」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기로 투표를 통해 결정한 뒤 이를 비대위측에 공식통보했다. 이같은 거부결정을 통보받은 「비대위」는 실ㆍ국대표들이 전체 분위기를 거부쪽으로 몰아갈 것에 대비,「사원총회대책회의」를 갖고 사원들에게 방송정상화방안을 수용하도록 설득해 나가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설득작업에 나섰다. 이에앞서 서기원사장도 상오 9시5분쯤 출근해 분위기가 거부쪽으로 기울자 바로 실ㆍ국장단을 소집,회의를 갖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실ㆍ국사원대표,비대위,실국장단 등이 각기 나름대로 정상화 찬반활동을 벌이는 가운데 이날 하오 2시 사원 3천5백여명이 본관 2층농성장에 모인 가운데 열린 사원총회에서 안동수위원장 등 「비대위」 측 협상대표들은 김 전장관과의 막후협상에 대해 해명하면서 비대위측 결정에 따라줄 것을 호소했다. 안위원장등은 『김 전장관이 청와대측 특사가 분명하다는 확언을 받았다』『서사장 퇴진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있었으니 5월 중순까지 기다렸다가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제작거부에 다시 돌입하자』면서 설득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토론 참석자 12명중 11명이 『김 전장관 자격에 문제가 있으니 밀약의 효력은 없다』고 주장하며 「선 서사장퇴진 후 방송 정상화」의 당초 입장을 주장함에 따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거부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회가 끝난 하오 4시20분쯤부터 본관 2층 TV공개홀에 마련된 투표장에서 찬반투표가 진행되면서 이미 거부쪽으로 대세는 기울었다. 이에 실국장단들은 투표종료 10분전쯤인 하오 6시50분쯤 『방송정상화 여부는 방송종사자들의 투표로 결정할 상황이 아니며 전권을 위임받은 비대위측의 최종결정을 사원투표에 부치는 것은 대국민 기만행위』라고 반박하고 나섰으나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하오 7시30분쯤 개표가 시작되기 전 안위원장도 『투표결과에 관계없이 승복해주기 바란다』면서 역시 대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시인했다. 하오 8시30분 개표완료결과는 예상대로 총투표자 3천8백여명중 63%인 2천3백여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고 이때부터 더이상 대화로는 사태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측에 의해 공권력투입이 착착 진행됐다.
  • “바닥세주가”한주 54포인트 속락/「증시방치」에 울분,투매사태

    ◎투자 심리 가라앉힐 「정부의지」긴요 전광판의 주식 시세판은 하락 일변도의 녹색으로 물들어 있으나 투자자들의 마음은 진한 검은 색이라 할 수 있다. 이번주 주식시장의 상황은 캄캄하기 짝이 없다. 28일 주말장의 종합지수는 곧장 7백10대의 급류에 빨려 들어갈 지경에 이르렀다. 28일 종가는 7백20.37을 기록,간신히 7백20대에 걸쳐있으나 발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는 「지수 7백붕괴」에 이미 반쯤은 혼이 나가버린 상태다. 지수 8백이 붕괴된지 13일장 만의 상황이다. 물론 이동안 한번도 7백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금주의 주가동향은 「이러다가는 7백대에서 영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니냐」는 비관을 손쉽게 일반화시켰다. 그만큼 주가하락 추세가 도도했고 속도로 급격했다. 1년1개월째인 침체기를 통틀어 이처럼 막무가내로 미끄러진 적은 없었다. 주초(23일)의 주가지수는 7백74포인트였고 2번의 최저지수 경신을 거쳐 주말장에서 다시 침체기 최저치로 밀려났다. 주간 지수낙폭(종가)이 54포인트인 것도 암울한 기록이지만 아래쪽으로만 떨어지는속락 양상은 제어력을 아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하락세의 성격은 간단히 이분할 수 있다. 분기점은 4일째장(목요일)에 나타난 사상 최대폭의 하락으로 그전 3일장은 이를 예비하는 듯했고 그뒤 2일장도 이같은 대세에 휩쓸리고 말았다. 목요일인 26일의 지수하락은 폭으로서는 증시최대(28.96포인트)이고 하락률(3.83%)은 역대 4위이나 최근 1년여의 침체기에서는 모두 수위기록 이었다. 27일 급등시 우려되던대로 28일에는 또다시 26일에 버금가는 침체기 최대의 폭과 비율로 폭락했다. 7백대 중간에서 급속하게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주가는 증시내의 시장기조보다는 투자심리의 취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금면에서 볼때 전주보다 나아지지도 않았지만 몰라보게 나빠지지도 않았다. 반면 제도측면에서는 증권업협회의 증시안정기금 조성방안과 대용증권 대납비율 변경이란 플러스가 있었다. 그런데도 주가대폭락은 바로 이같은 플러스적 요인이 공표되면서 표출되었다. 투자자들은 증시부양책 명목으로 나온 이같은 조치가 자신들이 원하고 있는부양책의 실시가능성을 막아버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주의 주가움직임은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부양책 가능성과 1대1로 연계되어 있다. 주가하락은 정부가 증시를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다는 불만의 표시다. 정부는 국민경제 전체를 다루는 시각에서 증시에 힘을 불어 넣을 묘책이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로서는 돈을 푸는 길만이 유일한 회생책이나 물가불안을 고려할때 이는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물가야 어떻게 되든 우선 증시부터 살려야 한다며 증권당국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따라서 부양책을 실시하지 않는 당국에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이같은 불신과 불만이 경기호전ㆍ부동산투기의 실상보다 더욱 큰 영향을 끼친 탓에 증권파동의 위기감까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안한 투자심리를 노사분규ㆍ집권당내분 등의 경제외적인 불안정이 더욱 불안ㆍ초조하게 만들었다. 투자자의 가슴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이러한 암적요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의 전망 역시 어두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유자금을 지니고도 지금껏 증시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상황을 바닥권으로 인식,새삼스럽게 주식투자에 나설 채비를 추스리고 있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는 움직임이라 하겠다.
  • 「대세 전환」인가 「일시반등」인가/「주가폭락 하룻만의 폭등」배경

    ◎「투자심리 불안」반영… 장중등락폭 55포인트/“자생력 상실”증시 떠받칠 획기적 조치 시급 증시의 밑둥에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려는 것인가. 다 썩은 나무인양 금방이라도 푹 고꾸라져버릴 것만 같던 주식시장이 대폭락 하룻만에 훤칠한 상승세의 줄기를 위로 올곧게 치켜들었다. 27일 종합주가지수는 22.75포인트 뛰어올라 7백48.86을 마크,7백50대에 육박했다. 하루전인 26일 주가는 증시사상 최대폭인 28.96포인트나 떨어져 7백50대에서 그대로 7백20대로 곤두박질해 증권파동이 필연적인 귀결일 듯 싶었다. 상한가 종목은 물론 상승종목 하나 없었던 장세였고 증시의 기저에서 생기란 생기는 죄다 빨려나가 버렸다는 것이 대다수의 결론이었다. 증시에 새싹을 키워낼 수액이 몇방울이라도 고여 있으리라고 짐직하는 것은 대폭락 앞에서 창백해지지 않는 투자자를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속수무책으로 상실했던 주가지수의 능선을 다음날 즉시 8할 가까이 되찾았다. 이날의 상승세는 과연 증시기저에서 솟구친 것인가. 혹 이 힘찬 반등은 폭락장 후에 「으레껏」생겨나는 현상으로 수액이나 생기하곤 무관한 기술적인 모양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27일의 폭등장세를 대폭락이 만들어낸 「빛좋은」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드물지 않다. 상승세에 발동을 걸고 추진시킨 힘을 찾자면 증시 「내」보다는 「외」가 더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주가가 저절로 오르지 못하고 바깥바람에 쐬어서 둥둥 떠올랐다는 견해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경제부처장관들과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무된 투자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근기에 대해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대형상승세의 즉각적인 후속으로 주가가 만회된 점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증시사상 미증유의 하락이 기록된 지 하룻만에 그기억을 애써 잊어버리고자 한다면 너무 성급하다고 하겠다. 26일의 주가대폭락은 대국적 견지에서 살펴본 지수동향이나 추세 면으로 논리적일 수 있으나 반면 주가의 하락추세 그 자체는 상식적인 궤적이었다고 볼 수 없었다. 증시침체 시발점인 지난해 4월부터 그해 연말 대폭락까지는 등락이 심한 반면 올들어 주가의 움직임은 이에비해 보다 단일한 선을 그렸다. 하락일변도 였다고 말할수 있으며 이같은 경향은 이달들어 더욱 심해 26일 대폭락까지 포함,21일장 가운데 9번이나 최저지수가 연달아 바꿔쳐 졌다. 그 반면 경제적 상황은 침체성격을 확실하게 탈피하지 못했지만 금년이 작년에 비해 여러면에서 개선되었다고 통틀어 말한대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거기다 증시와 관련된 사항으로서 금융실명제나 경제정책의 성향등이 증시우호적으로 급변했다고 할 수 있다. 주가 움직임이 상식적인 선의 반대방향을 쫓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두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 첫째는 최근의 주가 하락추세는 바닥권 을 향한 험난한 도정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상승반전의 대세전환은 바닥권 추락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며 바닥이 가까운 만큼 그 추락의 양상은 상식 「논외」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말. 또 하나의 시각은 경제적 반영으로선 약간 비틀린 상인 주가이지만 그 반영의 대상을 사회전반으로 확대시켜볼 때는 아주 정직한 거울이 된다는 이야기다. 즉 우리 사회전반에 걸쳐 얕든 깊든간에 배어들고 있는 불안심리가 여지없이 전달됐다는 것. 이는 단순히 대형제조업체의 노사분규나 공영방송의 파업이란 시사적인 사건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사회의 저류를 흐르는 기운이 그렇다는 것으로 정부당국에 대한 불신이 이것을 강화시켜 왔다. 시중자금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부동산투기의 실제 크기도 문제지만 이에대해 사람들이 무작정 품고 있는 의식 또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27일의 급등세가 오로지 증시부양책에 대한 기대,정부의 재정적 지원 가능성에서 나왔다면 기술적 반등국면에도 못미치는 단기에 끝날 수도 있다. 이날 상승세는 좋은 결과를 이루긴 했으나 그 장중의 과정이나 내면의 힘이 결코 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등락폭이 28포인트에 가깝고 지수의 전행정이 무려 55포인트를 오르내렸다는 사실은 상승ㆍ회복에도 불구,「불안」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증시부양 구호 이전에 이것과 싸워야 한다.〈김재영기자〉
  • 평양­모스크바 「매스컴분쟁」확산/북한의 「소 언론취재 봉쇄」언저리

    ◎북한 한ㆍ소 수교 움직임에 강한 불만 표시/소련 개방유도 겨냥,북한체제 실상 비판/소 기자 부분철수ㆍ외교마찰로는 번지지 않을듯 최근 북한과 소련 언론들사이에 빚어지고 있는 미묘한 분쟁이 북한당국의 평양주재 소련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로 이어짐으로써 개혁과 개방을 둘러싼 두나라 언론의 대립이 또다른 차원으로 비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소련의 모스크바방송은 지난 24일 알렉산드로 레비 주평양타스통신기자의 말을 인용,북한의 고위인물들과 만나겠다는 소련기자들의 요청이 벌써 두달이상 묵살되는 등 소련기자들의 활동이 사실상 봉쇄되었으며 이는 소련의 방송과 신문ㆍ잡지 등에 북한을 비판하는 기사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련은 지난 20일 저명한 역사학자 미하일 스미르노프의 말을 인용한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6ㆍ25전쟁이 북한의 기습남침에 의해 일어났다고 시인,북침설을 주장해온 북한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모스크바방송은 또 지난 10일 주간지 「논거와 사실」의 최근호에 실린 기사를 인용,김일성은 소련군대위로 빨치산의 한 부대를 지휘한 것에 불과하다고 폭로하는 한편 북한의 경제가 날로 곤란해지고 있으며 이는 동력 및 원료부족,과다한 군사비지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북한은 22일 평양방송을 통해 『미국이 50년 6ㆍ25전쟁을 조선에서 일으키지 않았다면 민족이 피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한소간의 수교움직임 등 관계발전이 가시화되자 지난 6일 당기관지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의 모스크바방문 사실을 처음 보도하면서 『소련이 남조선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하면 조선의 통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한소간의 수교움직임에 대해 강한 불만과 불편한 입장을 드러냈다. 같은날 관영중앙방송은 한소관계 진전에 대해 『절대 허용치 않을 것임』을 거듭 밝혀 소련측에 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소련은 다음날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일정한 방향에서 한국과의 접촉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유익하다는데 대해 북한측으로부터 이해를 구했다』는 소외무부대변인의 발표내용을 상세히 보도,북한측의 불만을 묵살하면서 한소관계발전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며 북한이 이를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북한의 중앙통신은 사흘 뒤인 지난 10일 『우리의 우방인 소련은 우리인민의 적과 친구가 되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소관계개선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한편 소련의 유력잡지인 노보에 브레미아지는 지난 3월 남북한과 소련관계를 조명하는 기사에서 『한쪽에는 사회구조자체를 개편하자는 모스크바개혁자들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쪽에는 대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인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이 있다』고 강조,소련의 급진주의개혁파와 북한의 교조주의적 권력세습을 대비시키면서 김부자를 비난했다. 이 잡지는 이어 모스크바당국이 평양을 초조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으나 소련출판물들이 북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혀 소련의 언론들이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기사만을 게재해오던 종전 자세에서 탈피,북한체제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소련의 공산당청년동맹기관지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도 지난달 26일 평양특파원 알렉산드로 라코프스키의 기사를 인용,『북한은 주민들을 사상 정치적인 투쟁에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특히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 보도에만 집착할 뿐 진실은 숨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취재봉쇄는 이제까지 취해온 「언론을 통한 대소비난」을 넘어선 보다 강경한 대응조치로서 소련언론들의 잦은 대북한 비난보도에 맞서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하고 그러나 북한외교부 보도국과장이 『우리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소련언론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일종의 경고라고 해석했다. 김부자 세습체제에 대한 비난과 개혁 및 개방의 압력을 거듭해 오고 있는 소련언론에 대해 일종의 경고성 조치를 취함으로써 「부당한」 개방압력을 최소화하고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한소수교의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계산이라는 것. 그러나 소련의 입장에서는 대북한 비판기사를 통해 한소관계의 발전이 어쩔 수 없는 대세임을 인식시켜주는 동시에 종전처럼 북한만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을 이해시키려 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 소련당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해 내심 개방과 개혁을 강력히 원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때도 적절한 압력수단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우회적으로 개방과 개혁을 유도해보려는 속셈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소련기자들의 취재봉쇄조치가 북한에 있는 소련기자들의 부분적인 철수라든지 외교적인 분쟁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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