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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그 시절 ‘별들의 귀환’… 5월 가요대전 접수하다

    그때 그 시절 ‘별들의 귀환’… 5월 가요대전 접수하다

    ‘역시 구관이 명관!’ ‘5월 대전’이라고 불리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가요계에 ‘구관’들의 맹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10년 만에 컴백한 ‘가왕’ 조용필을 시작으로 ‘국제가수’ 싸이, 3년 만에 돌아온 이효리, 발라드의 지존 바이브 등 10년차 이상 관록을 지닌 가수들이 가요계를 주도하고 있다. 5~6년간 브레이크 없이 계속되던 아이돌 음악의 흥행이 주춤하고 싱어송라이터의 약진이 계속되면서 국내 가요시장이 쏠림 현상을 벗어나 다양성을 되찾고 있다. 이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영원한 오빠’ 조용필이다. 지난달 23일 발매한 그의 19집 앨범 ‘헬로’(Hello)는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10일 현재 사전 주문을 포함해 15만여장이 판매됐다. 음반 유통·배급사인 유니버설뮤직은 이런 열풍이면 30만장도 거뜬하게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음반 시장이 2000년대 초반의 10분의1가량으로 줄어든 요즘 10만장은 과거 100만장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최근 10만장을 넘은 가수는 팬덤(열성팬)을 갖춘 아이돌 가수가 전부다. 조용필은 젊은 감각의 음악으로 음원에서 20~30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의 전성기를 함께한 40~50대 중장년층이 대거 음반 구입에 나서면서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석권했다. 그는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23년 만에 TV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며 가요계에 ‘세대통합’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31일~새달 1일 열리는 콘서트로 조용필 신드롬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13년차 가수 싸이는 신곡 ‘젠틀맨’으로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가며 대선배 조용필과 팽팽한 경쟁을 펼쳤다. 5월에 들어서 왕년의 언니 오빠들은 더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6일 3년여 만에 정규 5집 앨범의 수록곡 ‘미스코리아’를 선공개한 이효리는 발매 직후부터 3일간 멜론 등 음원차트 1위를 독식했다. ‘미스코리아’는 외모 지상주의에 물든 사회 풍조를 비판한 자작곡으로 걸그룹으로 시작해 섹시 아이콘을 지나 아티스트로 안착한 가수로서의 그의 생명력을 입증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술이야’ 등으로 R&B계를 대표했던 데뷔 12년차 듀오 바이브도 신곡 ‘꼭 한번 만나고 싶다’를 통해 변치 않는 애절한 음색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98년에 데뷔한 실력파 R&B 그룹 포맨의 신곡 ‘청혼하는 거예요’는 공개 당일(8일) 음원차트에서 이효리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아이돌계에서도 신인보다 5~6년차의 중견 아이돌이 대세다. 4인조 여성 걸그룹 ‘포미닛’은 경쾌한 곡 ‘이름이 뭐예요?’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히트제조기 용감한 형제가 작곡한 신곡으로 선배 걸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지난 앨범에서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뒀던 이들은 올 초 전지윤, 허가윤이 듀오 ‘투윤’을 결성해 컨트리 음악으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음악적인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남자 아이돌계를 대표하는 2PM 역시 기존의 보이 그룹들과는 달리 한층 성숙한 ‘원조 짐승돌’로 차별화 했다. 이들은 6일 공개한 타이틀곡인 감성 댄스곡 ‘이 노래를 듣고 돌아와’에 이어 11일 남성미가 돋보이는 두 번째 타이틀곡 ‘하,니,뿐’을 공개한다. 여기에 오는 16일 16년차의 원조 아이돌 그룹 ‘신화’가 정규 11집을 내고 이 대열에 합류한다. 신인은 아이돌보다는 싱어송라이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성급하지만 아이돌 음악이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나온다. ‘슈퍼스타K’ 출신 로이킴은 포크 장르로 전 세대를 공략한 자작곡 ‘봄봄봄’으로 대선배 조용필과 싸이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유승우 역시 자신이 작곡한 ‘헬로’로 8일 데뷔했다. 반면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은 아이돌의 음원 성적은 저조했다. 걸그룹 ‘헬로 비너스’, 티아라의 새 유닛 그룹 ‘티아라엔포’ 등이 대표적이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이처럼 관록을 갖춘 ‘구관’들의 강세에 대해 “대중이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 음악에 지친 데다 좀 더 질 높은 음악과 서비스를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TV를 통한 음악 소비보다 스마트폰을 통한 음악 소비가 최근 늘어나면서 ‘보는 음악’보다 ‘듣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중음악 관계자들은 아이돌에 대한 피로감이 많이 제기된 상황에서 관록 있는 가수들의 컴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또 음악적 다양성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아이돌 가수는 숱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변별력은 없는 상황에서 음악으로 검증받은 가수들의 재등장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면서 “특히 레전드급이라고 평가받는 가수들의 활동이 뜸한 가운데 조용필이 음악가로서 모범적인 행보를 보이자 음악 소비에서 소외된 장년층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 수요자들의 달라진 기호와 능동적인 소비 패턴으로 인해 생긴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음악 수요자들이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음악을 벗어나 다양한 음악 콘텐츠를 원했다는 방증이고 미디어도 아이돌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면서 “좋아하는 음악과 좋은 노래를 능동적으로 찾아 듣는 대중이 나타나면서 세대의 벽을 허무는 음악의 ‘뷔페’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호랑나비’ 리메이크로 돌아온 가수 김흥국

    [김문이 만난사람] ‘호랑나비’ 리메이크로 돌아온 가수 김흥국

    화려한 곡선보다는 단순한 직선이 낫다는 말이 있다. 견인질직(堅忍質直)이라고 한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았는데 도대체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 하루 이틀 기다려도 도대체 사람 없네 이것 참 속상해 속상해 못 살겠네~’ 노래 ‘호랑나비’에 나오는 대목이다. 24년 전에 발표됐다. 그래도 ‘즐겨찾는 이’ 여전하다. 이 노래는 40대 중년층 이상인 경우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쓰러질 듯 넘어질 듯하는 특유의 춤은 예나 지금이나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가수 김흥국이다. 물론 ‘59년 왕십리’ 등 여러 곡이 있지만 ‘호랑나비’만큼 전 국민에게 애창됐던 곡이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호랑나비’ 하나로 가수 김흥국의 직선 인생(1959년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이번에는 ‘호랑나비2’로 제2의 인생 시작을 선언하고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호랑나비로 이어지는 ‘직선상의 아리아’를 들고 말이다. 그의 무대 복귀가 흥미로운 것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분개(?)해서 ‘강북스타일’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서울 인구의 반이 강북 사람인데 왜 강남 사람만 ‘대표적 스타일’이냐고 항변하면서 내놓은 곡이어서 눈길을 끈다. 또한 원래 호랑나비 춤이 싸이의 말춤보다 훨씬 앞선 선구적 춤인데 ‘유튜브’를 활용하지 못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했을 뿐이며 따라서 이번에는 유튜브에 뮤직비디오 동영상을 먼저 내보냈다. 반응은 ‘베리 굿’이다. 강북스타일로 새롭게 들이대는 김흥국씨를 지난 3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화창한 5월답게 밝은 옷차림에 까만 안경을 썼다. 늘 그렇게 안경을 쓰고 다니냐고 하자 “싸이도 쓰고 있지 않느냐, 김흥국은 원래부터 썼다”며 웃는다. 라일락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에서 잠시 사진 촬영을 하자고 했더니 “호랑나비는 꽃을 좋아하지요. 허허”라고 응수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어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 엠바고룸에서 마주 앉았다. 녹음이 짙어가는 바깥 경치가 좋다는 말로 시작했다. 이어 ‘호랑나비2’를 만들게 된 계기를 물었다. “기러기 아빠된 지 10년이 됐어요. 방학 때면 미국에 있는 딸한테 가거든요. 13살된 딸인데 나중에 커서 세계적인 유튜브 스타가 되겠다고 자꾸 하더라구요. 예쁘게 가꾸고 사진도 찍고 자신만의 멋과 장기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해요. 춤도 잘 춰요. 아빠 닮아서 그런지 끼가 많구요. 그러면서 아빠도 유튜브를 활용하라고 하더군요. 호랑나비가 얼마나 멋있느냐고 해요. 그걸 다시 리메이크해서 유튜브에 올리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3년 전이었습니다. 그래야겠다고 마음 먹고 준비하던 차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 쫙 번진 것이지요. ‘아이고 이것 참 속상해 속상해 못살겠네’라고 할 수밖에요(웃음).”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최근에야 ‘호랑나비’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새로 입혀 리메이크 작업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이래뵈도 10대 가수 출신인데 그동안 노래를 부를 시간이 많지 않았으며 뮤직비디오 한 번 못 찍은 가수라는 점에 큰 자극을 받았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딸이 뮤직비디오 제작에 살짝 동참은 했지만 대부분 자신의 고향인 강북구 번동 주변에서 찍었다. 어릴 때 놀던 장소도 등장시켰다. 번동을 비롯, 왕십리, 인사동 등이 주요 무대이다. 호랑나비는 봄에 나오니까 계절의 타이밍도 맞췄다. 그런데 싸이의 ‘젠틀맨’이 나왔다. 주위에서는 “좀더 있다가 내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젠틀맨’과 ‘호랑나비2’는 스타일이 다르다. 24년 전 먼저 했던 호랑나비 춤을 리메이크해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강행했다. 그랬더니 여러 사람한테 “잘했다. 재미있다. 싸이보다 훌륭한 원조다”라는 평을 들었다. “때마침 조용필 형님도 훌륭한 신곡을 냈어요. 요즘 중년들이 대세 아닙니까, 하하. 좋은 작품을 들고 나오면 됩니다. 중년에 맞게 우리 문화, 우리 음식, 우리 가요 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순순한 자연 그대로 비디오 촬영을 했습니다. ‘호랑나비2’로 제2의 가수인생을 신나게 해볼랍니다. 자신있어요, 기대하셔도 됩니다.” ‘호랑나비2’로 ‘강북스타일’을 세계 만방에 떨치겠다는 각오를 거듭 밝힌다. 또한 “김건모, 이정, 박상민 등 여러 후배들도 ‘어릴 적 호랑나비를 들으면서, 또 그런 춤을 흉내 내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싸이도, K팝 스타도 물론이다. 가왕 조용필도 ‘호랑나비’가 처음 나올 적에 ‘야, 굿 아이디어다. 이 시대에 그런 노래가 필요하다.’며 칭찬해줬다”며 껄껄 웃는다. 아울러 “최근에 나온 용필 형의 ‘헬로’도 얼마나 훌륭한 곡이냐. 바야흐로 중년 이상의 시대가 왔어요, 왔어~”라고 흥을 다시 한 번 돋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가요 평론가 등에 따르면 조용필씨가 10년 만에 발표한 앨범 ‘헬로’가 K팝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여기에 김흥국과 이용씨 등 조용필 이후 세대들이 잇달아 돌아오면서 K팝 또한 새롭게 태어나려는 준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다시 귀환하는 중장년 가수들의 경우, 젊은 층이 선호하는 음악의 트렌드를 도입해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시도를 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흥국씨는 호랑나비 리메이크 외에 내친김에 신곡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문득 24년 전 ‘호랑나비’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궁금했다. “보컬로 무명 10년을 보내던 중 ‘배따라기’의 이혜민씨한테 ‘호랑나비’를 받았어요. 고생했던 세월을 한방에 날렸습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니까 스타가 됐습니다. 전 국민에게 호랑나비를 강타했지요. 그때는 뮤직 비디오 찍을 여건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쪽에서는 다 알더군요. 이제 ‘호랑나비2’로 세계를 강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 막내가 ‘호랑나비’ 하나로 온 가족을 먹여살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번동 사람들은 한결같이 “번동에서 스타가 나온 것이 기적이다”라며 많은 찬사를 보냈다. 어머니는 무명 시절을 보내는 아들이 안타까워 매일이다시피 절에 가서 불공을 들였다. 그는 서라벌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부 생활을 했고 해병대에서 전역한 후 ‘오대 장성’ 그룹을 결성, 음악활동을 했다. 따라서 그의 음악 인생은 30년을 훌쩍 넘는다. 앨범 13집, 발표한 곡은 100곡이 넘는다. 이러는 동안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느라 노래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후회 섞인 고백을 한다. 그는 월드컵 경기때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을 응원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 ‘응원의 원조’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2년 월드컵때에는 봉은사에서 월드컵 성공 기원을 위해 2002배를 할 만큼 축구에 열성적이다. 당시 새벽 3시부터 5시간 가까이 스님한테 ‘네가 쓰러지면 월드컵이 잘되겠느냐’고 죽비로 맞아가면서 2002배를 꽉 채웠다. 그의 휴대전화 번호 끝자리는 여전히 ‘2002’다. 뿐만 아니다. 2010년 6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면 콧수염을 깎겠다고 약속한 후 정말로 16강에 진출하자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30여년간 애지중지 길러온 콧수염을 깎았을 정도다. “아버지가 평소 콧수염을 길렀다. 결혼식때에도 안 깎았던 수염을 월드컵때 처음으로 깎았다”고 술회한다. 내년에 브라질 월드컵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라며 웃는다. 월드컵때마다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털어 현지에 가서 직접 응원에 합류한다. 그는 축구 외에도 장학재단을 만들어 13년째 불우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1000원, 1만원, 5만원 등 주변 지인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여진 장학금이어서 더욱 값지다. 자신은 술값을 줄여 통장에 입금시킨다. 한때는 밥차를 만들어 전국에 돌아다니며 ‘밥퍼’ 봉사활동을 했다. 다시 ‘강북스타일’로 화제가 돌아온다. “아마 앞으로는 강북 땅값이 좀 올라가지 않겠어요. 어릴 때 추억, 고고 춤, 관광 춤, 해병대 춤 등으로 막 들이댔거든요.” 그는 1985년에 발라드 풍의 노래 ‘창백한 꽃잎’으로 솔로로 전향했다. 데뷔 시절부터 코털을 가지고 있어 별명은 코털 가수이고 나중에는 월드컵 가수가 됐다. 1989년에 3집 앨범을 발표하고 ‘호랑나비’ 열풍으로 대한민국 가요계를 휩쓸어 단번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주로 방송 진행과 축구 등에 관심을 쏟으면서 노래활동은 뜸하다시피했다. 이제 ‘제2의 가수인생’을 선언한 그가 어떤 모습으로 대중들과 친숙해질지 기대된다. 체력관리를 위해서는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주말에는 지인들과 함께 축구모임에 참여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흥국은 1959년 서울 강북구 번동에서 태어났다. 서라벌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생활을 했다. 해병대 전역후 그룹 ‘오대 장성’을 결성해 본격적인 노래 인생의 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1985년 발라드 풍의 노래 ‘창백한 꽃잎’으로 솔로로 전향했다. 데뷔 시절부터 코털을 기르고 있어 별명이 코털 가수였다. 10년 가까이 무명생활을 하던 중 1989년에 3집 앨범 ‘호랑나비’를 발표하면서 혜성같이 나타나 가요계를 휩쓸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1992년 ‘59년 왕십리’로 정통 트로트 장르까지 선보이며 인기가도를 이어나갔다. 1994년 ‘레게파티’를 발표, 처음으로 레게장르를 한국 대중가요에 접목시켰다. 1996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한동안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했다. 영화와 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했다. 이 밖에 월드컵때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위해 열띤 응원을 펼쳐 ‘월드컵 가수’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밥차’를 만들어 ‘법퍼’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김흥국 장학재단’을 통해 매년 불우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김흥국의 축구이야기(2002년)’,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2005년’) 등이 있으며 주요 수상으로는 MBC 10대가수상·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1989년), 국민봉사 장려상(1993년),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1996년), MBC 라디오 골든 마우스상(2010년) 등이 있다.
  • 로비에 얼룩진 교과서… 당국은 징계 교원수도 몰라

    대형 출판사에 몸담았던 한 출판 편집인은 출판사의 교과서 선정 로비 활동을 ‘전력전’이라고 비유했다. 출판사가 사활을 걸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의미다. 출판·교육 관계자들이 전한 전력전의 모습은 이렇다. 출판사에는 교과서 선정을 위해 주로 부장급 교사를 공략하는 영업 사원이 있다. 하지만 교과서 인정 및 일선 학교 선정 절차가 이뤄지는 5~7월에는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에 교과서 로비만 전문으로 하는 ‘시즌형 영업 직원’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전국 학교를 구역별로 나누고 여관을 전전하며 영업을 한다. 교과서 선정에 입김에 센 교사들에게 어떻게든 ‘자사 제품’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노골적 금품 제공 대신 주변의 시선을 고려한 ‘변칙 로비’가 대세다. 학습 자료를 담았다며 최신형 메모리를 주거나, 양장본 교사용 교재를 주는 건 귀여운 수준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만나기가 부담스러운 교사들을 위해 ▲교과서와 무관한 출판 행사에 교사를 초청한 뒤 슬쩍 접대를 하거나 ▲에둘러 특정 교사 연구 모임을 지원하고 ▲교사들을 출판 검토 위원으로 모셔 먼저 ‘눈도장’을 찍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고는 회사에 매일 누구를 만났고 어떤 얘기를 했으며 또 누구를 공략해야 하는지 차후 전략까지 보고한다. 출판 관계자는 “교과서 로비는 투자 대비 회수율이 매우 높아 선정되기 위해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출판사마다 관련 활동에 상당한 돈을 투자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올해부터 인정 교과서 수가 대폭 늘면서 출판사들의 교과서 로비는 한층 심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일선 학교의 자정 능력에만 의지한 채 불법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8일 초·중·고등학교에서 출판사의 불공정 행위가 발견되면 즉시 지역교육지원청 부조리 신고센터나 본청으로 신고하라고 지도했다고 밝혔다. 교과서 로비 활동이 교과서 선정의 투명성을 해치고 교과서 가격을 높여 결국 학부모와 학생의 부담을 키운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지도 활동 이상의 교과서 로비 감시에는 손을 놓고 있다. 교육부는 교과서 로비 관련 불공정 행위의 규모는 물론 관련 비리로 징계받은 교원 수 역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우리가 출판사를 대상으로 직접 지도할 수는 없다”며 “불공정 행위가 있었다면 시·도교육청에서 교원들을 징계한다”고 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이 일선 학교나 출판사들의 로비를 단속하지는 않는다”며 “학교에서 불공정 행위 발견 시 신고토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경제민주화 어떻게] 쏟아지는 경제민주화 법안… 연일 부담 떠안는 재계

    [경제민주화 어떻게] 쏟아지는 경제민주화 법안… 연일 부담 떠안는 재계

    재계가 ‘경제민주화 파상 공세’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엔저와 계속되는 경기불황에도 정부와 정치권이 연일 재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경제민주화 법안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압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재계의 ‘엄살’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일 서울 강남 JW메리어트호텔에서 허창수(GS그룹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성과공유제를 1차 협력사뿐 아니라 2, 3차 업체들에까지 확대하는 ‘산업혁신3.0’ 운동에 적극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표현은 완곡했지만 담긴 의지는 강력했다. 하청업체에 ‘제값 주기와 제값 받기’, ‘전속거래 개선’ 등을 확대하고 책임지라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연봉 5억원 이상 상장사 임원의 개별 연봉 공개 등은 경제민주화 법안의 시작이었다. 이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금산 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재벌 총수의 횡령 및 배임에 대한 형량 강화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 위반을 검찰이 수시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폐지와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 본부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가맹사업법 개정안,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는 FIU법 개정안 등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여야가 기본 방향에 합의했지만 세부 내용에서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시국회 회기가 오는 7일까지인 만큼 처리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지분 한도를 9%에서 4%로 축소,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금산 분리 법안 역시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횡령·배임액이 300억원 이상일 때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하게 하는 등 한층 강화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산업부와 공정거래위, 국세청 등도 재계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이미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납품단기 후려치기’ 등을 근절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재계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경제민주화 요구가 투자 위축과 고용 기피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시적으로는 공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국가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경제민주화를 역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부 조항의 문제점이 너무 커 우리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을 위축시키는 일은 없도록 법 적용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지난달 30일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로 일자리가 50만개 이상 줄 것으로 추정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노동비용이 1% 증가할 때 일자리가 0.24~0.27% 감소하는 것으로 본다. 아직 비용 추계가 안 된 정년 연장을 제외하고 대체휴일제(연간 4조 3000억원), 통근재해(1조원), 통상임금 소송(8조 8663억원·기업이 상여금 등을 빼고 기본금만으로 통상임금을 낮춰 퇴직금을 적게 정산한 것에 대한 반환소송)만 합해도 매년 약 14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14조원은 지난해 국내 근로자 1739만 7000명이 받은 임금 433조원의 약 3.2%다. 여기에 통상임금 소송의 일시금 부담 38조 5000억원을 합하면 비용은 52조 5000억원이 돼 총 임금의 12.1%까지 치솟는다. 결국 이들 정책만으로 현행 일자리(1700만여개)의 3% 정도가 감소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 창출은 경제활동의 외생변수인데 규제정책을 도입하면서 더불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투자 위축이 더욱 큰 문제다. 정년 연장과 대체휴일제 도입 등으로 국내 공장의 인건비가 올라가면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즉, 국내 투자 위축은 일자리 감소와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위한 재계의 ‘공’은 없어지고 ‘과’만 남은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크다”면서 “그동안 부의 편중이나 대기업 위주의 정책은 바꿔야 하지만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경제민주화 요구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산업부 종합 hihi@seoul.co.kr
  • 특정후보 밀어주기 이합집산? 민주당 대표 경선 계파대결 양상…친노, 이용섭 지지 여부 관심

    민주통합당의 5·4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경선이 김한길·이용섭 후보 간 맞대결로 재편된 가운데 계파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계파별로 특정 후보 지지를 위해 이합집산하는 분위기다. 특히 친노(친노무현)·주류 측이 이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후보 간 신경전도 치열하다. 김 후보는 29일 한 라디오에 출연, “그동안 당을 장악해 온 막강한 세력이 특정 후보를 뒤에서 밀고 있다”면서 “단일화가 민심과 당심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후보는 라디오에서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지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단일화가 되면 이용섭이 이긴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며 ‘대세론’을 일축했다. 지난 28일 강기정 후보의 사퇴로 인한 단일화 효과 전망은 엇갈린다. 강 전 후보와 이 후보가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해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김 후보 측은 친노·주류가 결집해 세몰이에 나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친노 핵심인 김태년 의원이 경기도당 위원장에 당선된 것을 친노·주류 세력 결집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친노 윤호중 의원도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당 선관위에서 단일화 대의원 대회를 불법으로 판정한 것은 유력 대표 후보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라면서 “김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비주류 패권주의가 올까 우려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사퇴한 강 전 후보가 이 후보를 지원할지도 관심이다. 강 전 후보를 돕던 정세균 상임고문계의 물밑 지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손학규 상임고문계 일부 인사들은 이미 계파색이 엷은 이 후보 지원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당무위원회를 개최해 ‘우클릭’ 논란을 빚었던 당 강령·정강정책 개정안과 당헌·당규 개정안을 수정 의결, 5·4 전대에서 처리키로 했다. 수정안에서는 북한의 핵개발을 ‘한반도 평화의 위협’으로 명시하고, ‘북한민생인권’ 관련 조항을 신설했다. ‘보편적 복지’, ‘재벌개혁’, ‘통일’ 등의 표현은 그대로 살려뒀다. 한편 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원내대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우남 의원을 임명했다. 원내대표 선거는 다음 달 15~16일쯤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민주당 대표 경선 김한길·이용섭 압축

    민주당 대표 경선 김한길·이용섭 압축

    민주통합당 5·4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강기정 후보가 28일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배심원 간담회를 통한 이용섭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가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의 제동으로 무산되면서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전대는 비주류의 김한길 후보와 범주류의 이 후보 간 ‘2파전’으로 압축됐다. 강 후보는 이날 광명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기 지역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이용섭 후보를 통해서 새롭게 탄생하는 민주당이 되기를 소원해본다”면서 “저는 여기까지 하겠다”며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강 후보는 연설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와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오전까지만 해도 이 후보와의 단일화 무산에 반발하던 강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퇴 결정을 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 두 후보는 내년 광주시장 선거를 앞두고 담합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단일화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탓에 ‘김한길 대세론’도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당초 강·이 후보는 이날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500~600여명의 배심원단을 상대로 간담회를 개최한 후 현장 투표를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 선관위는 27일 심야회의에서 간담회는 허용하되 ‘후보자 상호 간 의견교환 불가’ 등 간담회 방식에 여러 제약을 달았다. 이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당 선관위의 결정은 당초 합의한 단일화 방식에 대해 어느 것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배심원제를 통한 ‘명분 있고 원칙 있는 아름다운 경선’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며 단일화 배심원대회 무산을 선언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남자예능 전성시대

    남자들이 주로 출연해 그들만의 이야기를 다루는 ‘남성 예능’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여자 MC의 출연기회가 줄어드는 등 상대적으로 ‘여성 예능’의 설 자리가 급감했다는 지적에도 ‘빵’하고 터진 남자들의 이야기는 당분간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현재 안방극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남성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MBC ‘무한도전’ ‘나 혼자 산다’ ‘일밤-진짜 사나이’ 등을 꼽을 수 있다. ‘무한도전’에서 시작된 남자 예능이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 프로그램은 남성 MC들만 출연한다는 점에서 남자들이 꾸려가는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최근 새롭게 닻을 올린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남자들의 적나라한 이야기를 그렸고, ‘일밤-진짜 사나이’는 남자들의 병영 체험기를 담았다. ‘상남자’들의 이야기로 진화한 셈이다. ‘나 혼자 산다’에선 기러기 아빠인 이성재, 김태원과 노총각 김광규를 비롯해 미혼남인 데프콘, 서인국, 노홍철 등 6명의 혼자 사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외모와 달리 지저분한 삶을 사는 서인국, 홈쇼핑 마니아인 김광규, 통조림으로 연명하는 김태원 등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14일 처음 방송된 ‘진짜사나이’ 역시 우리사회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야 하는 군대에서 김수로, 서경석, 류수영, 샘 해밍턴, 손진영 등 남성 연예인들이 5박6일간 실제 입대해 체험기를 선보인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케이블 채널 tvN의 ‘푸른거탑’이 군대 생활을 패러디한 예능프로그램이라면 ‘진짜사나이’는 아예 진짜 군생활 모습을 담았다. 여기에 MBC ‘일밤-아빠 어디가’는 아이들과의 오지 여행기를 다루면서 제목처럼 죄다 아빠만 출연시킨다. 아빠들의 좌충우돌 육아법과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이 안방극장에 전해지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빠’로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아이들과의 여행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서도 고정 MC 가운데 여성은 송지효 한 명뿐이다. ‘잘나가는’ 리얼 예능프로그램은 남성 MC들로만 채워지거나 여자 MC가 홍일점을 이뤄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반면 이영자, 박미선 등 이름값 좀 한다는 여자 MC들은 리얼 예능이 아닌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에 출연 중이다. 여자들 위주로 구성된 리얼예능 프로그램은 케이블채널 MBC에브리원의 ‘무한걸스’뿐이다. 이 같은 방송계의 ‘남초’(男超) 현상은 시청자들의 심리와 직결된다. 한 지상파 방송의 PD는 “시청자들은 여자 연예인의 솔직한 모습을 접하면 가식이 아닐까 하며 의심부터 한다”면서 “여성 시청자들도 남자들의 리얼 예능에는 관심이 커, 남자 예능은 안전한 시청률 확보를 위한 지름길”이라고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종이책은 죽지 않는다, 다만 숨 고를 뿐이다

    [주말 인사이드] 종이책은 죽지 않는다, 다만 숨 고를 뿐이다

    전자책이 정말 종이책을 없앨까.1998년 미국의 누보미디어가 처음으로 ‘로켓 e북’을 내놓자 출판계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 이래 15년째 반복되고 있는, 그래서 비명이라기엔 앙칼진 목소리가 무던해져버린 비명이다. 공상과학(SF)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 처음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 머릿 속에 그려진 그림은 이렇다. 모든 사람이 책을 쓴다. 전문가? 교수? 작가? 기자? 그런 계급장 따윈 필요없다. 분량에 상관없이 모든 주제, 모든 형식의 글을 쓸 수 있다. 그렇게 써서 올리면 소비자의 선택이, 그러니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알아서 정리해준다. 전자책 사업자는 일종의 유통 플랫폼 사업자로 중개수수료만 챙긴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책을 매만져왔던 노련한 편집자? 책의 전반적인 가치와 위치를 설정해주는 평론가? 그런 혹 따윈 떼버려도 된다. 좀 지나친 거 같다고? 그럴리 없다. 전자책으로 마침내 ‘글쓰기의 민주화’가 완벽하게 달성되는거니까. 민주화, 그 얼마나 신성한 단어이던가. 이런 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아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에 그쳤다. 그러나 한번씩 고개를 쳐든다. 처음 고개를 든 것은 2007년 아마존이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을 내놨을 때다. 뒤질세라 한국에서도 이런저런 단말기가 나왔다. 전자책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호들갑이 들끓었다. 결과는 실패. 단말기 생산이 은근슬쩍 중단되더니 차츰차츰 시장에서 사라졌다. 단말기를 산 사람들도 대개 20~30대 남성이었다. 20~30대 여성, 40~50대 남성처럼 책시장의 주력부대군이 아니었다. 책읽기 도구로 단말기를 샀다기보다, 단말기 그 자체의 성능을 시험해보려는 얼리 어답터, 그러니까 ‘IT 덕후’들의 놀잇감에 더 가까웠다는 뜻이다. 그뒤 사그라졌던 전자책 얘기가 다시 불거져나온 것은 순전히 스마트기기 덕이다. 휴대전화, 패드, 태블릿PC 등 값비싼 전자기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자, 그 훌륭한 기계로 고작 웹서핑이나 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고 결국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한 요소로 전자책이 다시 불려나온 것이다. 아니, 화려한 동영상 콘텐츠에 밀려 자꾸만 변방으로 내밀리니 뭐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어섰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한동안 사라졌던 전용단말기도 슬금슬금 다시 등장했다. 이전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파격적 행보도 곁들였다. 교보문고는 전용단말기와 함께 회원제 전자책 대여 서비스인 ‘샘’을 내놨다. 한 달 만에 1만 3000대를 팔았고 회원도 1만명 이상 확보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도 지난해 ‘크레마터치’를 내놓으면서 살림지식총서 100권을 붙인 버전, 박경리·조정래의 소설을 붙인 버전, 셜록 홈스 등 추리소설을 붙인 버전 등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 개별 출판사로는 대형출판사 ‘열린책들’이 지난 2월에 ‘세계문학’ 앱을 내놓고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출판계로부터 욕은 진탕 들어먹었지만 일단 이런 움직임들이 전자책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이용자들은 만족감을 드러낸다. 전자책에 특화된 ‘e-잉크’ 기능을 사용하는 전용단말기의 경우 요즘의 현란한 디지털기기에 비하자면 다소 답답한 부분이 있다. 화면전환도 느린 편이고 잔상도 남는다. 그럼에도 10만원 정도의 비교적 싼 단말기 가격에다 읽는 데만 특화돼 쓸 만하다는 평이다. 한국 소설을 즐겨 읽고 학생시절 때부터 모아온 책들이 상당한 회사원 강소연(여·37)씨는 “책을 쭉 꽂아놓고 소장하는 재미는 줄었지만, 그 대신 정말 소장하고픈 책을 빼고는 나머지는 전자책으로 바꿔나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고전을 즐기는 회사원 강신(남·30)씨는 순전히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앱 때문에 아이패드까지 사들인 경우다. 강씨는 “실물 책이 가득찬 책장이 주는 뿌듯함이 없고 오래 읽으면 눈이 좀 아프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만족”이라면서 “처음에는 종이가 주는 질감이나 맛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책갈피, 밑줄, 메모, 독서노트처럼 종이책과 다를 바 없는 여러 기능들을 쓰면서 아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 실제 판매 추이에서도 약간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 그동안 전자책이라면, 가벼운 자기계발서나 확실한 마니아계층이 형성되어 있는 장르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쉽게 말해 가벼운 내용의 책을 싸게 사들이는 곳이 전자책 시장이라는 얘기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의뢰해서 최근 3년간 베스트 50에 든 전자책들의 종류를 확인해보니 2011년 18권에 이르던 장르문학의 비중이 최근 6개월간에는 5권으로 줄었고, 문학 비중이 12권에서 18권으로 늘었다. 인문·사회분야가 5권에서 10권으로 늘었다. 예스24 측은 “장르문학의 비중이 차츰 낮아지고 있는 데다, 책 가격이 점점 다양화되고 있는 점을 확인해볼 수 있다”면서 “이는 고만고만한 책을 싸게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써본 사람들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고, 고전급 문학서적을 발판 삼아 전자책이 마침내 IT덕후들의 놀잇감에서 벗어나는 징후를 보이고 있으니, 이제 전자책의 공포가 마침내 현실화될 차례인가. 무슨무슨 연구소니 무슨무슨 증권사들이니 하는 곳에서 잠잠할 만하면 전자책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한껏 분위기도 띄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출판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지금 느껴지는 전자책 붐은 고전을 덤핑으로 팔아치운 데 따른 거품이라는 진단이다. 이런저런 시장 조사 결과를 보면, 같은 콘텐츠라면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으로 보겠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그나마 자본력을 갖춘 곳에서 저작권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고전을 이렇게 싼값에 폭탄세일하듯 팔아치워버리면, 나중에 새 콘텐츠를 제값 받고 팔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나온다. 최근 전자책 행보에 출판계가 끙끙 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전자책으로 제작되는 것은 저작권 시효가 끝난 고전, 그냥 쓱 읽고 마는 가벼운 에세이나 장르소설들, 토익이나 운전면허시험 같은 시험에 대비할 수 있는 가벼운 수험서, 대학 등에서 쓰이는 각종 두꺼운 교재 정도가 아니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실은 이마저도 잘 안되고 있다. 복제의 위험 때문이다. 대학교재를 많이 내는 A출판사 관계자는 “종이책을 변환한 것은 물론, 전자책 버전으로 다듬은 시험제작판도 나름대로 만들고는 있지만 회사에 차곡차곡 쌓아만 두고 있다”면서 “가장 큰 걱정은 시장에 내놓는 순간 저작권 침해행위가 만만치 않을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콘텐츠를 내놓을 출판사들이 모두 몸을 사리고 있으니 시장선점 욕심 때문에 몸이 바짝 달아오른 플랫폼 사업자가 그간 문화사업자로서 쌓아왔던 좋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을 감수해가며 가격을 후려치는 방식으로 일단 판을 벌린 경우”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보면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종이책을 즐겨보는 독자가 전자책도 사보고, 전자책을 보는 독자가 종이책도 사보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독자라는 사실”이라면서 “저가전략, 할인공세는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자책 시장이 안 뜬다고 초조해하는 이들은 독자들이나 출판사들이 아니라 오직 전자책 시장 관련 사업자들뿐”이라 꼬집었다. 그래서 여전히 전자책은 시험 중이다. 가령 민음사는 기존 콘텐츠를 디지털화해서 공개하는 대신 ‘디지털 싱글’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잡지 기사보다는 길고 단행본보다 짧은 분량의 글을 선보이는 것이다. 출퇴근시간, 찻집에 앉아 보내는 시간 등에 스마트기기를 통해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집중 개발, 보급한다는 전략이다. 이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실험이 많다. 장르, 분량, 형식면에서 기존 단행본의 전철을 밟지 않는 책이 나오면 알게 모르게 진행되는 실험일 가능성이 높다. B출판사 관계자는 “대기업 혹은 언론사를 끼고 최근래 몇년간 새롭게 생긴 각종 문학상, 혹은 보통 300쪽 안팎으로 구성되는 단행본 분량에 비해 더 짧거나, 아니면 아예 다 파괴하고 더 길게 쓰면서도 파격적으로 편집된 책 같은 경우 전자책 제작을 염두에 둔 일종의 실험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15년 동안 전자책 혁명을 떠들었으나, 전자책 혁명은 여전히 더 두들겨봐야 할 돌다리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워싱턴의 온돌/서동철 논설위원

    아궁이에 불을 때서 구들을 데우는 온돌은 추운 지역에서 고안된 반면 나무판자를 깔아 만든 마루는 더운 지역에서 발전했다. 온돌과 마루가 동시에 존재하는 한옥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다. 우리 주거문화는 이제 아파트가 대세로 자리잡았지만, 마루로 이루어진 거실을 온돌방이 감싸고 있는 한옥의 내부 구조만큼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초기의 온돌은 하나의 방을 전체적으로 난방하는 형태가 아니라 방의 일부에 구들을 만드는 쪽구들이었다. 쪽구들을 처음 만든 사람은 두만강 유역 일대의 옥저인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강원 춘천 율문리를 비롯해 한반도 곳곳에서 시기가 비슷한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쪽구들을 발전시켜 가장 널리 사용했다. 당나라 정사(正史)인 ‘구당서’는 ‘겨울에는 모두 기다란 구들(長坑)을 만들고, 그 아래 불을 때서 따뜻한 열기로 난방을 한다’고 고구려의 온돌문화를 서술했다. 쪽구들이 완성된 형태의 온돌로 발전한 모습은 고려시대에 나타난다. 문인 최자(1188~1260)는 ‘보한집’(補閑集)에서 방 밖의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는 온돌방을 묘사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가 자주 머문 경기 양주 회암사에서는 대형 구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는 궁궐에도 온돌은 거의 없었고, 왕이 온돌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었다. 민간에서는 온돌을 만들었지만 노인이나 병자의 방에 국한됐다. 성균관의 기숙사 격인 동재와 서재는 흙벽에 마룻바닥이었다. 세종시대에는 추위와 습기에 시달린 다수의 유생이 괴질로 사망하는 사태에 이른다. 온돌이 보편화된 것은 이른바 소(小)빙하기가 닥치면서 이상저온이 시작된 17세기 후반 이후라고 학계는 설명한다. 온돌과 비슷한 난방법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공중목욕탕의 물을 데우고, 바닥을 덥히던 히포카우스툼(hypocaustum)이 그것이다. 하지만 일반 주택에 보편적으로 쓰인 것도 아니고, 이후에는 완전히 잊히다시피 해 지금은 건축교과서에나 나오는 난방법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건설업체 부영이 미국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학과 한국식 온돌을 갖춘 학생 기숙사를 짓는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은 반갑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이미 온돌의 장점이 널리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들어서 아는 온돌과 체험한 온돌은 많이 다를 것이다. 온돌이 서구인들에게 우리 생활 문화의 매력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주택건설 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AFC 챔피언스리그] 반전은 없었다, 수원 16강행 좌절

    프로축구 수원이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호주)에 일격을 당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수원은 23일 홈에서 열린 센트럴코스트와의 대회 조별리그 H조 5차전에서 후반 35분 마이클 맥글린치에게 결승골을 내줘 0-1로 졌다. 수원은 3무2패(승점 3)에 그쳐 가시와 레이솔(일본·승점 11), 센트럴코스트(승점 7), 귀저우 런허(중국·승점 5)에 이어 H조 최하위로 밀려나면서 오는 30일 귀저우와 최종전 결과에 관계없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수원은 최근 해트트릭으로 골 감각이 절정에 오른 정대세와 스테보를 최전방 투톱으로 세우고 좌우 날개에 박종진, 서정진을 배치해 센트럴코스트를 상대했지만 역습 한 방에 허를 찔렸다. 후반 35분 페널티지역 왼쪽까지 깊숙이 파고 든 맥글린치의 강력한 오른발 슈팅이 정성룡을 맞고 골대 오른쪽 구석에 꽂힌 것. 수원은 막판까지 동점골을 노렸지만 무위에 그쳤고, 대회에 나선 4개 K리그 클래식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쓴잔을 들었다. 16강 진출을 조기 달성하려던 포항도 중국 베이징 노동자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장 궈안과의 G조 경기에서 0-2로 완패해 최종 6차전까지 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K리그 클래식과 AFC 챔피언스리그를 통틀어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한 포항은 베이징(승점 8)에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승점 6)로 내려앉았다. 포항은 30일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벌인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수출용 담뱃갑 끔찍한 경고그림 내수용엔 단순 경고문구로 대체

    수출용 담뱃갑 끔찍한 경고그림 내수용엔 단순 경고문구로 대체

    전 세계 63개국에서 시행 중인 ‘담뱃갑 경고 그림’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표류하고 있다. 때문에 같은 국산 담배라도 수출용에만 경고 그림이 삽입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2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세계적 대세: 담뱃갑 경고 이미지’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 암협회 조사 결과 지난해 10월을 기준으로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삽입한 나라는 모두 63개국에 이른다. 2001년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경고 그림은 2010년 40개국, 2011년 57개국이 참여했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홍콩, 타이완, 마카오 등에서도 경고 그림을 도입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가이드라인은 경고 문구보다 그림 삽입을 권하고 있으며 그림이나 문구 크기를 담뱃갑 전체 면적의 50% 이상이 되도록 권하고 있다. 경고 그림 비중이 전체 담뱃값의 50%를 넘는 국가는 호주, 우루과이, 스리랑카 등 모두 13개국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담뱃갑 경고 그림 삽입, 경고 문구 면적 확대, 담배 성분 공개 등을 골자로 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담배사업법에서도 경고 문구 삽입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복지부의 방안이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다. 때문에 타이완, 동남아시아, 중동 등에는 경고 그림이 삽입된 국산 담배가 수출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규제를 받고 있지 않다. 이성규 미국 캘리포니아대 담배 연구·교육센터 박사후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많은 나라들이 경고 문구 대신 경고 이미지를 도입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우리나라 역시 더욱 적극적으로 경고 그림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긴급출동 24시(KBS1 밤 10시 55분) 2013년 3월 1일. 고(故) 정옥성 경위는 자살 기도자를 막고자 바닷속으로 주저 없이 몸을 던진다. 하지만 강화도의 밤바다는 끝내 그를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시신 없는 영결식이 거행됐다. 프로그램은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정 경위를 추모한다. ■위기탈출 넘버원(KBS2 밤 8시 50분) MC로 맹활약 중인 가수 김종국이 개편을 맞아 데뷔 18년 만에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그는 봄철 나들이를 떠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사고와 관련해 낚시 여행을 가는 한 남자로 출연한다. 한편 새로운 안방마님이 된 장윤정은 여경으로 변신하고 새신랑 김준현이 직접 실험에 참여해 각각의 개성을 선보인다. ■MBC 다큐스페셜(MBC 밤 11시 20분) 축구 선수 이천수와 정대세가 있어 K리그는 뜨겁다. 악동과 인간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그라운드에서 무서운 승부욕으로 거침없이 공을 차는 이들. 최고 스트라이커들의 골을 향한 강한 집념의 승부가 펼쳐진다. 또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감춰져 있던 두 스타 플레이어의 일상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문화가중계(SBS 밤 4시) 뛰어난 통찰력과 한계 없는 테크닉,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첫 리사이틀이 시작된다. 뛰어난 테크닉이 돋보일 만한 쇼팽의 발라드 2번을 비롯해 마주르카, 스케르초 왈츠 등과 샤를 발랑탱 알캉의 ‘12개의 단조 연습곡’ 중 12번 ‘이솝의 향연’을 감상해본다. ■다큐 프라임(EBS 밤 9시 50분) 식물과 동물, 사람에 이르기까지 유전정보가 없는 생명체는 없다. 모든 생명체에 돌연변이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중 왜소증인 라론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암이나 당뇨 등의 질환에는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에 암이나 당뇨 등의 질환에 걸리지 않는 것일까. ■경찰 25시(OBS 밤 11시 5분) 분당의 한 상가 건물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전날 밤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퇴근했다는 피해자. 하지만 출근해보니 현금만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파손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다른 직원과 지인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예상 밖의 인물이 포착된다.
  • [프로축구] 골, 골, 골… 대세가 대세라오

    [프로축구] 골, 골, 골… 대세가 대세라오

    ‘인민루니’ 정대세(수원)가 시즌 1호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 선두 데얀(서울) 추격에 나섰다. 정대세는 지난 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의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8라운드에서 세 골을 잇따라 터트려 4-1 역전승을 혼자 이끌었다. 그 덕에 수원은 최근 2경기 무승(1무1패)의 부진을 털어냈다. 정대세는 시즌 4골로 단숨에 득점 순위 2위로 뛰어올랐다. 데얀과는 1골 차이. 시즌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어 일부에서는 거품이란 지적도 나왔다. 정대세는 지난달 30일 전북과의 정규리그 4라운드 후반 12분 서정진의 결승골을 도우면서 감각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6일 대구와의 정규리그 5라운드에서 마침내 리그 데뷔골을 꽂은 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의욕이 넘쳐서일까, 지난 14일 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는 전반에 경고 2장을 받고 퇴장당하며 팀의 서울 상대 무승 기록을 9경기(2무7패)로 늘리는 데 앞장(?) 섰다. 한 경기를 쉬면서 칼을 벼린 정대세는 마침내 이날 해트트릭으로 골 가뭄을 풀어냈다. 모두 영리한 위치선정과 뛰어난 감각이 빛을 발했다. 홍철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골대 정면에서 발끝으로 방향만 살짝 바꿔 동점골을 만든 데 이어 조지훈의 슈팅에 가까운 강한 크로스를 문전에서 번쩍 뛰어올라 발바닥으로 공을 찍어 바운드시켜 역전 결승골로 연결했다. 정대세는 스테보의 쐐기골이 터져 3-1로 앞선 상황에서 마지막 집중력을 발휘, 살짝 몸을 틀어 골키퍼 김선규와 골문 사이를 파고드는 슛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최근 4경기에서 4골 2도움을 작성했다. 그는 “스트라이커로서 골을 넣어야만 나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며 “많은 골을 넣고 싶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성남은 21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조커 김성준의 벼락 같은 중거리포로 울산을 1-0으로 제쳤다. 전북, FC서울에 이어 울산까지 사냥한 성남은 3연승 상승세를 타며 명가의 부활을 예고했다. 부산은 광양전용구장에서 후반 추가시간 터진 임상협의 극적인 동점골로 2-2 무승부를 이뤄 소중한 승점 1을 땄다. 경남은 창원축구센터에서 골대를 맞히는 불운 속에 강원과 페널티킥으로 1골씩 주고받아 1-1로 비겼다. 경남은 시즌 7경기 연속 무패(1승6무)를 이어갔지만 5경기 연속 무승부를 거두며 팀의 통산 100승 달성을 다음으로 미뤘다. 반면 시즌 첫 승리에 실패한 강원은 8경기 연속 무승(4무4패)에 빠졌지만 승점 1을 보태 대구(승점 3)를 최하위로 끌어내리고 꼴찌에서 벗어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민원 신청도 이젠 온라인이 대세

    온라인을 통한 민원 신청이 대세다. 발품 팔지 않고 어디서든 손가락만 몇 번 딸깍거리면 민원 신청이 오케이(OK)다. 안전행정부는 18일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행정기관 등 모든 행정기관의 2012년 민원사무 신청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민원신청 6억 900만건 중 52.4%인 3억 1900만건이 온라인을 통해 해결됐다”면서 “온라인 이용률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처음으로, 민원 신청 방법의 흐름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2011년에 비해 민원 신청 건수는 2.4% 증가했지만 방문 민원은 오히려 7.9% 줄었고, 온라인 민원은 2800만건(9.6%)이 늘었다. 2008년 64.0%까지 차지하던 방문 민원은 57.2%(2009년), 46.1%(2010년)로 해마다 줄어들다가 2011년 46.7%, 2012년 41.9%로 횡보하고 있다. 같은 기간 온라인 민원은 24.1%(2008년)에서 2012년 52.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정부민원포털사이트인 ‘민원24’의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유엔 공공행정상’을 받는 등 국내 안팎에서 위상을 높여온 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조달청은 경쟁입찰 참가자격 등록 등 1억 526만건의 업무 100%를 모두 나라장터에서 해결했고, 관세청 역시 전자통관시스템을 통한 온라인 이용률이 99.4%에 이르렀다. 이 밖에 국방부, 특허청 등도 90% 이상의 온라인 이용률을 보였다. 반면 ‘민원24’ 가입자의 70%가 서울, 경기, 부산, 인천, 경남 등 5개 광역단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점은 정보기술(IT) 인프라 문제, 고령 이용자들의 불편함 등에서 비롯된 문제들로 향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프로축구] 서울 ‘승점 자판기’ 오명 벗을까…이천수 친정 상대로 득점포 쏠까

    [프로축구] 서울 ‘승점 자판기’ 오명 벗을까…이천수 친정 상대로 득점포 쏠까

    K리그 디펜딩 챔피언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할 위기에 몰린 FC서울이 이번엔 승점 3을 건질까. 서울은 17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성남과 K리그 클래식 7라운드에 나선다. 하위권으로 처진 수도권 명문 구단끼리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서울의 올 시즌 목표는 K리그 클래식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타이틀 두 마리 토끼였다. 챔피언스리그(2승1무1패)는 그럭저럭 끌고 나가고 있지만 K리그 클래식에선 낯을 들지 못할 정도로 죽을 쑤고 있다. 올 시즌 여섯 차례 경기에서 4무2패. 승점은 4에 그쳐 14개 팀 중 12위까지 밀려났다. 맞대결한 6개팀이 모두 승점을 따내 ‘승점 자판기’란 부끄러운 별명도 붙었다. 선두 수원(승점 13)과의 승점 차가 ‘9’까지 벌어진 터라 성남에 지면 자칫 상위권으로 올라설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성남은 2무3패로 허덕거리다 6라운드에서 ‘대어’ 전북을 낚아 마수걸이 승리를 신고했다. 현재 리그 10위로 휘청대는 서울을 상대로 내친김에 승점 3을 더 뽑아 상승세를 타겠다는 각오다. 인천은 16일 전남을 홈으로 불러 7라운드를 치른다. 전남에서 퇴출당한 이천수가 친정에 득점포를 날릴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 인천은 이천수를 데려오면서 전남 팬들의 정서를 감안해 광양 경기에는 그를 기용하지 않겠다고 계약했다. 그러나 인천 경기 엔트리에 이천수를 제외한다는 조항은 없었다. 이천수도 대구FC와의 6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벤치를 지켜 힘을 비축했다. 김봉길 감독도 “전남전에 대비해 이천수를 아꼈다”고 했다. 부산은 17일 선두 수원을 아시아드경기장으로 불러들인다. 지난해까지 수원 사령탑을 지낸 윤성효 부산 감독은 앞 경기 퇴장으로 이날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2승2무2패(승점 8)로 8위를 달리는 부산이 ‘컨트롤타워’ 없는 힘겨운 경기를 펼치게 됐다. 정대세(수원)가 서울과의 6라운드에서 퇴장해 이번 엔트리에서 제외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초선들 여론몰이 ‘캐스팅보트’ 될까

    민주통합당 당 대표 후보자들이 당내 초선 의원들이 말한 검증대에 올랐다. 초선 의원들은 17일까지 투표를 통해 공식적인 지지 후보를 결정키로 해 이들이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이 당 혁신을 빌미로 또 다른 세몰이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당 초선 의원 21명은 15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민주통합당 초선 의원 초청 당 대표 후보 혁신·비전 토론회’를 열고 이용섭, 강기정, 김한길 후보순으로 한 시간씩 강도 높은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후보들에게 ▲지난 대선에서의 ‘좌클릭 패배론’ ▲민주당 제1혁신 과제 ▲지도부 중간 평가론에 대한 공통 질문을 했다. 초선 의원들은 공식적인 지지 후보를 17일까지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경선 선거관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2명을 제외한 19명 가운데 3분의2 이상의 표를 얻은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을 할 방침이다. 하지만 3위 후보를 제외한 결선 투표에서도 3분의2를 넘지 못하면 지지 결의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초선 의원들이 지지 후보를 정한다고 대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당원들의 마음을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 내외에서는 초선 의원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반발도 있다. 한 관계자는 “이날 토론회도 명칭만 토론회였지 사실상 면접과 다름없었다”면서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당 대표 후보 면접 권한을 줬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초선 모임에 참석한 한 의원은 “주류 측이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투표를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모임에 불참한 다른 초선 의원도 “처음부터 특정 계파가 좌지우지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까닭에 당초 33명으로 출발했던 초선 의원 모임은 21명으로 줄었다. 127명의 민주당 의원 가운데 초선은 55명이다. 앞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이날 당원 등에게 보낸 ‘문희상의 희망통신’을 통해 대선평가보고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류·비주류 간의 갈등에 대해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면서 “지금의 싸움은 정말 아무짝에도, 그 누구에게도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이 국면에서 제일 의연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문재인 전 대선 후보가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그는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하면서 자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의원은 이날 소속 상임위원회인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추가경정 예산 편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서 본격적인 정치활동 재개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문 의원은 기재위 회의에서 올해 12조원 규모의 세입결손과 관련, “세입 부분에서 큰 오류를 범해 사상 유례 없는 세입 추경안을 제출하게 된 데 대해 기획재재부 장관으로서 사과부터 해야 하지 않느냐”고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몰아세웠다. 현 부총리가 “세수 추계가 잘못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변하자 문 의원은 “왜 그런 잘못이 범해졌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문책할 용의가 있느냐”고 재차 추궁했다. 문 의원은 지난 13일 부산 영도에 출마한 김비오 후보를 지원하면서도 “현 정부가 부산 민심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를 비판했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노 前대통령이 뛰어내려 2010년 지방선거 승리”

    민주통합당이 5·4 전당대회를 위해 전날 부산, 경남을 시작으로 14일 울산과 대구 합동 연설회를 열었지만 대통령 선거 패배 책임을 둘러싼 계파 간 논란과 남북 긴장 고조로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다. 게다가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유성엽 의원이 이날 울산 남구 울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합동 연설회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해 민주당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대선 패배에 대한 친노무현계의 책임론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유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님 비록 불행한 일이었습니다만 문제 제기가 되자 뛰어 내리셨다”면서 “그 결과 우리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어 “저는 총선과 대선 패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분들이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만 이번 전대를 통해서 민주당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세력을 정조준해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유 의원의 발언은 대선 패배와 무관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거론하면서 친노의 대선 패배 책임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당내에서는 총선과 대선 책임을 주장한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민주당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 나왔다”며 유 의원 발언의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선관위는 현장에서 유 의원에게 “대선 패배의 책임과 관련된 내용에 문제가 있으니 자제하라”고 구두 경고를 했다. 한편 당 대표 경선의 관심사는 ‘김한길 대세론’과 이에 맞선 강기정·이용섭 후보의 단일화 여부로 압축되고 있다. 비주류인 김한길 후보는 지지율 면에서 상당한 격차로 타 후보들보다 앞서 가는 기류다. 합동 연설장에서 화합과 운명 공동체론을 외치며 대세를 잡아 가고 있다. 대항마로 지목됐던 신계륜 의원이 예상 외로 예비경선에서 탈락하면서 김 후보의 독주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범주류는 강·이 후보의 단일화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단일화를 한다 해도 김 후보에게 대적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우세한 편이지만 당내에서는 전대 흥행과 이변 연출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하다. 범주류 재결집과 단일화가 동시에 이뤄진다면 당권 향배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강·이 후보 단일화 성사를 제약하는 요인도 적지 않다. 광주에 기반을 둔 강·이 후보 모두 내년 광주시장 선거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어 셈법이 복잡하다. 범주류 결집론에 대한 회의론도 많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프로축구] “서울엔 안 진다”… 라돈치치, 동점골로 수원 구원

    [프로축구] “서울엔 안 진다”… 라돈치치, 동점골로 수원 구원

    라돈치치(수원)가 교체 투입 5분 만에 동점골을 뽑아내 리그 선두를 지켰다. 수원은 14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으로 FC 서울을 불러들여 치른 현대오일뱅크 2013 K리그 클래식 6라운드에서 0-1로 뒤진 후반 42분 터진 라돈치치의 헤딩골로 패배를 모면했다. 수원은 2010년 8월 28일(수원 4-2 승) 이후 이날까지 서울과의 아홉 차례 대결에서 7승2무를 기록,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반면 전반 19분 데얀의 선제골로 앞서 나간 서울은 전반 30분 상대 정대세가 서울 골키퍼 유상훈에게 쓸데없는 파울로 퇴장 당해 수적 우위까지 갖춰 슈퍼매치 9경기 만의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경기 종료 5분여를 남기고 통한의 동점골을 내줘 4무2패로 올 시즌 첫 승리를 또 다음으로 미뤘다. 같은 해 7월 28일(서울 4-2승) 이후 991일 만의 ‘슈퍼매치’ 승리도 날렸다. 수원은 ‘인민 루니’ 정대세와 스테보가 선발 출장했고 서울은 데얀을 최전방에 두고 에스쿠데로, 고명진 등을 날개로 활용하며 상대 골문을 노렸다. 차두리도 왼쪽 풀백으로 선발 출장했다. 서울이 주도하던 경기의 흐름을 바꾼 것은 후반 37분 교체 투입된 라돈치치였다. 라돈치치는 후반 42분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스테보가 올려준 크로스를 정확히 머리로 마무리, 동점골을 터뜨리고 환호했다. 한편 경기 전까지 꼴찌였던 성남은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전북과 맞서 김동섭의 1골 1도움 활약을 앞세워 후반 44분 에닝요의 한 골로 따라붙은 전북을 2-1로 따돌리고 시즌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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