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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 정치 입문~청와대 입성 ‘정치인 이명박’이 걸어온 길은 ‘기업인 이명박’과 달랐다.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며 달려온 출세가도가 아니었다. 좌절을 맛보기도 했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정치무대를 떠나 전공인 건설이 아닌 금융분야에서 제2의 신화를 꿈꾸다 여의치 않아 접고는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도약기를 거쳐 최고 권좌에 오르게 됐다. ●현대와의 결별… 정치 입문 그는 ‘왕 회장’으로 불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게 된다. 이후 왕 회장의 상대 진영인 김영삼(YS) 진영으로 합류, 지난 1992년 14대 총선 때 전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1995년 지방선거 때 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YS가 밀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에게 패하고 만다. 첫번째 정치적 시련이었다. 그 이듬해 15대 총선을 준비하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다. 여당의 중진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98년 이 당선자는 다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총선 때 적발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 당시 비용 초과 지출을 폭로했던 김유찬 당시 비서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면서 “이명박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장으로 화려한 재기 이후 2년간 미국에서 ‘정치 방학’을 보내며 와신상담하다가 2000년 귀국해 정치 재개에 나섰다.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한나라당에서 5선의 중진 홍사덕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쟁해 후보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본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꺾으면서 세번째 서울시장 도전만에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때 내건 청계천 복원과 시내 5개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중앙차로제 도입을 내걸었다. 막상 당선되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주변에선 적잖이 만류했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4년 만에 해결했다.‘제2의 신화’는 ‘청계천 신화’로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로서 주목받게 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지독한 경선 2006년 6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 당선자는 다시 여의도 정치로 들어온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는 그가 살아온 세상과 달랐다. 한나라당의 벽은 높고 높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당내에서 철옹성을 세우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보다 높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는 높기만 하던 당심을 허물기 위해 민심을 공략했다.‘한반도 대운하’ 등의 공약과 성공한 경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그 해 추석 전후로 북한의 핵 실험 후 지지율 40%를 돌파,‘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경선룰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측과 사사건건 갈등하며 극한의 대치에 이르기도 했다.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로 돌파해 나갔다. 이상득 부의장의 동생 평이다.“내가 명박이보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나도 대기업(코오롱) 최고경영자(CEO)까지 해봤다. 하지만 명박이에게는 나에게 없는 게 하나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담대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명박이는 그걸 가지고 있다.” 그는 땅 투기 의혹과 ‘도곡동 땅’ 차명 의혹,‘BBK 주가조작 의혹’ 등 ‘지독한 경선’을 거쳐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박 전 대표와 불과 2452표차(1.5%)밖에 나지 않는 신승이었다. 그나마 현장 투표에서 500여표 뒤진 것을 여론조사에서 뒤집었다. ●더 지독한 본선…‘BBK 공세’와 김경준의 귀국 경선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주요 당직을 놓고 친박(친 박근혜)과 친이(친 이명박)의 갈등은 계속됐다.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직격탄을 쏜 최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은 물러나야 했다. 여권의 ‘BBK 주가조작’ 공세도 거셌다. 자녀들의 ‘위장 전입’과 위장취업으로 한때 이 당선자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틈새를 파고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회창 후보는 “불안한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며 박 전 대표에게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도 박 전 대표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며 “도와달라.”고 SOS를 보냈고 박 전 대표는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BBK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당선자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나가 수사를 받았고 본인도 서면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대선을 한달 앞두고 ‘BBK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범죄인 인도 송환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대선판은 요동쳤다. 검찰수사 결과 ‘BBK 주가조작’에 이 당선자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여론은 냉정했다. 검찰의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BBK와 이 당선자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론이 출렁거렸다. 이 당선자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운다. 부부가 살 집 한채 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오랜 기업인 생활을 끝내고 공인으로 나섰던 10여년 전부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작정했다.”며 “재산 환원은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면서도 아들을 바르게 키워 주신 어머니와의 약속이자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당은 소위 ‘이명박 특검’을 내세워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였다. 여야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며 극한 대치를 이뤘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밤 11시30분에 대선후보 TV합동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적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고비와 시련마다 과감한 승부수로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9일은 공교롭게도 이 당선자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대통령 당선으로 세번째 축하 케이크를 받게 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유년기~현대건설 회장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상 처음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당선자는 만 35세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월급쟁이’들의 우상으로 통했다. 기업인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그는 92년 정계입문 후 시련을 딛고 마침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기업생활 27년, 정계입문 1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등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했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가난과 싸웠던 소년 시절 소년 이명박을 키운 건 가난과 어머니였다. 목장 목부로 일하던 이충우씨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상(相)자 돌림이지만 본인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시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다.”고 설명했다. 족보에는 ‘상정’(相定)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소년 이명박은 가족들과 함께 1945년 11월 귀국선에 오른다. 하지만 배는 쓰시마섬 앞바다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가족들은 구조됐지만 살림살이와 짐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맨몸뚱이만 귀국했다. 고향에 대한 첫 기억은 포항 시장통의 가난이었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가난이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 들러 붙었다.”고 말했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양실조로 쓰러져 넉 달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가져오라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린 이명박은 철들기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좌판을 벌였다. 김밥, 풀빵, 엿, 아이스크림, 뻥튀기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생활비를 벌었다. 어머니는 엄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가난했지만 자식들을 당당히 키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다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새벽 4시면 가족들은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심부름으로 이웃집 일을 하러 가더라도 어머니는 어린 이명박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 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준다고 받아 와도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다. 가난은 그의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군의관은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준다.”고 병역 면제 처분을 내렸다.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집에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 안으며 “내 자식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팽개치고 있었구나.”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엄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이명박은 그 때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 시절 6·3사태로 옥고 그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집에서는 막내아들의 고교 진학도 말렸다. 집안의 기둥 작은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학비를 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비는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동지상고 야간부에 수석 합격했다.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상득이형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 이태원으로 이사갔다. 이 당선자는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으로 돈을 벌며 살림에 보탰다. 하지만 학업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돈이 없어 중퇴하더라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낫지 않겠나.”하고 생각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험서를 사서 입시를 준비, 고려대 상대에 붙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이태원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쓰레기 넝마주이 일을 맡겨준 덕에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64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며 6·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죄목은 내란선동죄였다. 어머니는 그가 구속됐을 때도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가르쳤다. 출소 후 한달 여 만에 인생의 스승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는다. 그는 “돈 벌면 어머니에게 새옷 한벌 사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현대그룹 입사… 초고속 승진 거듭 청년 이명박은 여느 운동권 출신과 달리 정치권이 아닌 기업을 택한다. 운동권 출신의 취직은 쉽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발목을 잡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나라가 열심히 사는 젊은이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썼다. 결국 박 대통령의 배려로 그는 당시 중소기업이던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왕 회장’으로 불리는 오너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띄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9세에 이사,35세에 사장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써내려 간다. 그는 종업원 96명의 현대건설을 16만명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현대그룹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오너가 정해 주는 목표치를 항상 초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오너와 경쟁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기업인 시절 ‘왕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에피소드도 많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각목과 칼을 든 폭도들에 맞서 금고를 지킨 ‘태국 금고 사건’은 그 중 하나다. 현대건설 과장 시절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불도저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기술자들이 텃새를 부려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과장은 밤새도록 불도저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혀 나중에는 불도저를 직접 몰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웃들은 현대건설 사장과 살고 있는 부인 김윤옥씨를 가리켜 “세컨드(둘째부인)아니냐.”고 뒷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사업상 건설부 장관실을 방문했을 때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이 당선자를 장관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당선자가 따지자, 장관 비서는 “사장 비서를 어떻게 장관실로 모시냐. 빨리 사장 데려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에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주요 계열사 10개사의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초·중·고 학적부 열어보니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초·중·고교 성적은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행동발달사항에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평이 인상적이다.2학년 때는 담임교사로부터 “경솔하다.”는 평도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결석이 없었지만 4학년에서 6학년까지는 몸이 아파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4학년 때 16일,5학년 때 5일,6학년 때 32일을 병으로 결석했다. 이 당선자측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 탓으로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도 질병으로 인한 결석이 많았다.1학년 때는 결석이 74일에 이른다. 담임 교사로부터 “명랑하고 온순하다.”는 평을 받았다. 동지상고 시절에는 지금처럼 석차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성적이 가장 안 좋았을 때가 3등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장래 희망으로 ‘관리’(官吏)를 썼고, 이 당선자의 부모도 ‘본인과 동일’이라고 기재했다.‘취미 또는 특기’란은 영어로 적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특기는 ‘체육(탁구)’이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오늘 선택의 날] 반부패 명분속 李vs反李 구도

    [오늘 선택의 날] 반부패 명분속 李vs反李 구도

    대선을 하루 앞둔 18일 정치권엔 ‘반부패’가 화두로 나돌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반부패 연대’를 말하더니,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역시 ‘반부패 5자 회동’을 제안했다.‘반부패’란 공통분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만 ‘왕따’시키고 힘을 합치자는 전략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인 ‘이명박 대 반(反)이명박’ 전선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특히 두 후보가 반부패라는 이름 아래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포함시킨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는 이 두 후보쪽 사람들, 즉 현재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쪽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정치적으론 ‘원수’에 가깝다. 그런 이들이 서로 연대할 가능성이라도 열어둔 것은 그만큼 이명박 후보에 대한 적대 프레임이 견고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이번 선거는 기존과 달리 정책·TV토론·관심이 전혀 없는 3무(無)로 치러졌다.2002년엔 수도 이전이라는 큰 이슈를 놓고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치열하게 토론했지만 이번엔 ‘경부 대운하’가 잠깐 주목을 끌다 이내 묻혀 버렸다.TV토론도 유력 주자들이 거부해 선거법에 따라 3번만 겨우 치렀다.1년 가까이 지속된 ‘이명박 대세론’에 유권자들은 무관심으로 응수했다. 반면 3탈(脫)의 선거학은 앞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우선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과 상극이었던 젊은 층과 노동계가 한나라당을 지지한 일이 눈에 띈다. 한국노총이 조합원 투표를 거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대학 총학생회장들도 철회 해프닝을 겪긴 했지만 어쨌든 이명박 후보에게 무더기 지지선언을 했다.‘노동계→진보정당’,‘20대 젊은 층과 대학생→진보정당’으로 향했던 기존 지지 공식에 변화가 온 것이다. 즉 탈이념화·탈연령화 현상이다. 여기에다 1987년 이후 영·호남으로 갈린 ‘지역정서’가 적어도 이번 선거 과정에선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 이색적이다.2002년만 해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광주, 전·남북, 즉 호남권에서 5%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여론조사 수치상으로 이명박 후보가 10% 이상 지지율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지역화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체적인 흐름, 큰 예상을 줄줄이 깨버린 선거라는 점도 특이하다. 일단 ‘거물’이 잇따라 중도하차했다. 올 초만 해도 고건 전 국무총리가 굳건한 위치를 지켰고, 정운찬 서울대 교수의 출마설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두 사람 다 실제 출마했다면 파괴력 있는 변수가 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럼에도 둘은 모두 선거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불출마 선언을 했고,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선거 막바지가 되면 범여권 후보가 어떤 식으로든 단일화를 이룰 것이란 전망도 여지 없이 빗나갔다. 정동영·문국현·이인제 후보 3명이 모두 완주해 표를 나눠 먹는 형상이다. 보혁 1대1 구도가 물 건너 갔다. 보수는 이명박 대 이회창, 진보는 정동영 대 문국현 대 이인제의 3파전으로 구도가 복잡해졌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오늘 선택의 날] 李도 昌도 구애,朴 상한가

    [오늘 선택의 날] 李도 昌도 구애,朴 상한가

    제1야당의 총재를 역임한 관록의 대선후보가 세 차례나 그의 집을 찾았으나, 그를 만나지 못했다. 압도적 여론조사 지지율로 대세론을 구가해 온 대선후보는 투표일 전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사의(謝意)를 표시했다. 대선 직전 이 뜨거운 구애(救愛)를 한 몸에 받은 주인공은 한나라당 박근혜(얼굴) 전 대표다. 당내 경선에서 진 정치인의 몸값이 대선 막바지에 상한가를 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18일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유세 과정에서 열심히 해 줘 감사하다.”고 했다. 이에 박 전 대표도 “고생하셨다. 열심히 해달라.”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와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마지막 남은 하루 열심히 하자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5일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유세를 부탁한 이후 이날까지 3∼4차례 이상 통화를 했다고 한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러브콜은 ‘절박한’ 수준이다. 그는 14일에 이어 17일, 그리고 18일에도 박 전 대표의 자택을 불쑥 찾았다가 허탕을 쳤다. 말 그대로 삼고초려(三顧草慮)였다. 이 후보는 이날 신촌 유세를 마친 뒤 오후 6시40분쯤 삼성동을 찾았다. 그는 자택 관리인으로부터 박 전 대표가 외부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채관 수행부장은 박 전 대표의 수행을 맡고 있는 안봉근 비서관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각각 “만찬 중이시다.”,“메모를 넣었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사실상 박 전 대표가 이 후보의 면담 요청을 또 거절한 셈이었다. 그랬음에도 18일 기자회견에서 집권하면 박 전 대표와 공동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의 의중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연대’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 후보측 최한수 정무특보는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통일을 전담하고 박 전 대표는 그외 모든 국정 운영을 책임지고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책임총리제보다 더 많은 권한을 총리에게 주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오늘 선택의 날] 뜨거웠던 대선레이스 결산

    지난해 2월 정동영 후보가 통일부장관에서 물러나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복귀했다.5·31 지방선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가 ‘대표선수’ 자리를 놓고 물밑 경쟁을 시작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적어도 이때까지는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피습을 당하면서도 5·31 지방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박 전 대표는 당내 입지를 굳혀 갔다.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이 후보는 대권을 향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또 다른 주자였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난 3월 탈당해 범여권에 합류했다. ●한나라당의 지독한 경선 지난 8월19일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가 확정되기 전까지 한나라당에서는 ‘본선 같은 예선’이 펼쳐졌다.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는 사생결단식 경쟁을 벌였다. 여론조사 지지율 1위로 대세론을 형성한 이 후보는 자녀 위장전입, 도곡동 땅과 다스 차명보유,BBK 연루 의혹 등을 떨쳐내고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지방선거 결과를 한나라당의 승리가 아닌 여당의 참패로 인식한 열린우리당은 장외후보를 물색했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이 한때 바람을 일으켰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견제와 현실 정치의 버거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범여권 주자들은 탈당과 이합집산을 이어 갔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 강연 등에서 한나라당과 이 후보, 박 전 대표의 정책을 비판해 선관위로부터 정치중립을 준수해 달라고 요청 받았다. 이후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 사건과 신정아씨 스캔들 등이 불거지고 대선후보 경선에서 친노(親盧) 진영이 패배하면서, 노 대통령의 입지는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범여권은 지난 8월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면서 전열을 갖춰 갔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 3인방이 이 전 총리로 후보를 단일화했지만, 정 후보의 조직세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지리멸렬했던 범여권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고공행진 속에 통합신당은 ‘후보 단일화 카드’로 역전을 노렸다. 지난 8월 ‘진짜경제’를 내세우며 출마를 선언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정통야당’을 기치로 내건 민주당 이인제 후보 등이 대상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위증교사, 자녀 위장취업, 탈세 의혹,BBK 문제 등 온갖 의혹을 둘러싼 검증과 공세에 시달렸다.10월 국회 국정감사는 ‘이명박 국감’으로 불렸다. 레이스가 종반으로 접어든 지난달 이회창 후보가 ‘깨끗한 진짜보수’와 ‘이명박 대항마’를 외치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어 BBK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가 국내에 송환됐다. BBK 사건의 여파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하향세를 보이던 지난 6일 검찰은 수사 결과 이 후보가 BBK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이에 다른 후보들은 ‘반(反)부패, 반 이명박 연대’를 주창하며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범여권의 후보단일화 시나리오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각 정파의 동상이몽으로 선거 하루 전날까지 현실화되지 못했다. 대신 통합신당이 발의한 ‘이명박 특검법’이 여야간 몸싸움 끝에 국회를 통과해 대선 이후 파란을 예고했다. 여론조사 공표 기간이 끝난 뒤 이명박 후보가 BBK 설립을 자인한 ‘BBK 동영상’이 공개돼 마지막 변수로 떠올랐다.‘BBK 동영상’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19일 저녁 판가름날 것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서울광장] 사표(死票)는 없다/진경호 정치부 차장

    [서울광장] 사표(死票)는 없다/진경호 정치부 차장

    하루 남았다. 내일이면 17대 대통령이 될 사람을 보게 된다. 참 요란했던 참여정부다. 취임 초 검사들에게 ‘지금 막 가자는 거냐’며 내뿜던 결기가 예사롭지 않다 싶더니 노무현 대통령은 끝내 정부청사 기자실에다 대못을 때려박는 것으로 임기 말을 채웠다. 남을 비판하는 데는 능했지만 남의 비판 앞에서는 너무도 서툴렀다. 싸우러 들어간 것은 아니었겠으나 그가 들어간 뒤로 청와대 안과 밖은 너무나 많이 싸웠다. 교수신문이 사자성어로 축약한 우왕좌왕(右往左往), 당동벌이(黨同伐異), 상화하택(上火下澤), 밀운불우(密雲不雨)의 피폐한 4년을 보내고 그 끝자락에 선 지금 민심은 많이 지쳤다. ‘이명박 대세론’의 1등 공신이 노 대통령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유효하다.BBK의혹에 위장전입, 도곡동 땅 투기 의혹 등 숱한 논란이 그를 찌르고 때렸지만 그는 버텨냈다.‘삽질경제’든 ‘천민자본주의’든 노무현에게서 벗어날 출구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바닥의 반노(反盧)·비노(非盧) 정서는 절박하고 완강했다. 탈(脫)노무현 열망은 이번 대선의 특질도 바꿔 버렸다. 이념, 지역, 세대에 따른 전통적 대립구도를 무너뜨렸다. 여론조사는 20∼30대 젊은 세대가 더이상 범여권의 지지기반이 아님을 말해준다.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이었던 40대조차 등을 돌렸다. 진보진영과 호남이 구심점을 찾지 못하면서 이념과 지역의 대결구도도 흐트러졌다. 적어도 우리 정치에서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었다. 현 정부에 대한 심판, 견제의 성격을 지니는 국회의원 선거와는 색깔을 달리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만은 현 정부를 심판하는 ‘회고적 투표’의 특성을 보여준다. 누가 좋아서라기보다 누가 싫어서, 차악(次惡)을 택하는 표심이 적지 않다. 여기에 차기 정부의 취약성이 들어있다. 이명박 후보가 과반득표를 목표로 한다지만, 그리고 설령 이를 이룬다 해도 그 표심은 언제든 떠날 채비가 돼 있다. 더욱이 BBK특검의 칼날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지지기반을 싹둑싹둑 잘라낼 수 있다. 내년 2월 취임 직전 나올 특검 수사결과에서 그의 연루 혐의가 인정되고, 기소대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취임을 해도 법적으론 대통령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기소대상자인,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대통령의 정통성을 둘러싸고 정국이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다. 취약하기로는 이회창, 정동영 후보도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까지의 여론조사를 감안할 때 막판 대역전에 성공하더라도 이들은 40%를 밑도는 득표율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번 대선의 투표율을 70%로 쳐도, 전체 유권자의 28%에도 못 미치는 지분만 확보하게 될 뿐이다. 그 어떤 패자도 승자를 인정하기 힘든 구도가 이미 짜여져 있는 셈이다. 허니문이 없는 대선이 될 것이다. 지독한 대선보다 더 지독할 총선이 내년 4월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재기를 위해 패자들은 몸부림칠 것이다. 엄청난 위세로 당선자와 집권세력을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그 혼돈의 정국에서 새 정부는 4월 총선을 넘기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다. 한 표의 무게가 남다른 때다. 누구를 뽑느냐를 넘어 대선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승자에게 별 의미 없이 얹어질 표가 아니고, 패한 사람에게 쓸모없이 내던져질 표가 아니다. 대선 이후 정치지형을 결정할 표다. 사표(死票)는 없다. 진경호 정치부 차장 jade@seoul.co.kr
  • ‘최대표밭’ 수도권 BBK충돌

    투표를 이틀 앞둔 17일 대통령 후보들 대부분은 최대의 표밭인 수도권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경기 지역을, 창조한국당 문국현·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서울 곳곳을 누볐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을 순회했다. 오전에 각각 전북과 강원 지역 일정을 잡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오후가 되자 용수철처럼 경기·인천 지역으로 향했다. 이번 대선 유권자 3765만 3518명 가운데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유권자수는 1827만 694명으로 전체의 48.5%를 차지한다. 절대적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표의 성격도 복잡다단하다. 다른 권역에 비해 유권자의 연령층이 다양하게 분포됐고, 영·호남 지역과 같은 지역적 유대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유권자들이 각종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선거 막바지 ‘이명박 후보의 BBK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확산되는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지역으로도 꼽힌다. 수도권에서 후보들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이명박 후보는 동영상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대세론’을 설파했다. 나머지 후보들은 일제히 ‘이명박 때리기’에 나섰다. 혼자서 때릴 것인지, 연대해서 때릴 것인지 정도에 대해서만 입장차를 보인 정도다. 모두 자신을 ‘반(反)이명박 연대’의 대표선수로 내세웠다. 정 후보는 “차기 정부를 반부패 공동정부로 만들겠다.”며 보수 이회창 후보를 포함한 ‘반부패연대’를 제안했다. 그는 이어 “표를 모아 국민이 단일화를 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이회창 후보는 방송연설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되자마자 물러나는 사상초유의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고 경제는 회복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검증되고 경험이 많은 저를 뽑아달라.”고 말했다. 권 후보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인수위 활동이 끝나기 전에 정권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쟁이 난무한 대선에서 정책중심 선거를 한 저를 선택해 달라.”고 부탁했다. 문 후보는 “이명박 후보는 은평 뉴타운의 부동산 거품을 국민에게 안겨주며 5% 특권층 경제를 비호했다.”면서 “토론회 할 때마다 오르는 지지율을 발판 삼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인제 후보는 이명박 후보 사퇴 관철을 위해 후보 5명 공동 기자회견을 열자고 제안했다. 이명박 후보는 “음해와 공작, 물리적 충돌로 얼룩진 여의도 정치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특검을 수용했다.”면서 “전날 동영상은 신금융사업 홍보 과정에서 일부 부정확한 표현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선택 2007 D-2] 李 “잠시 한걸음 물러서”

    [선택 2007 D-2] 李 “잠시 한걸음 물러서”

    종반을 맞은 대선 정국이 ‘이명박 동영상’으로 출렁이고 있다. 이 후보가 2000년 광운대 강연에서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이 16일 공개되자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등은 일제히 이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이 후보가 특검을 전격 수용하고 나서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꼼수”라고 공세 수위를 더욱 높였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이 후보는 16일 밤 ‘BBK 특검법’을 전격 수용하면서 ‘이명박 대세론’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검찰 수사로 ‘BBK 의혹’이 해소됐지만 이날 공개된 ‘BBK 동영상’으로 막판 돌발 변수가 발생하자 다시 한번 특유의 승부수를 띄우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이 후보는 “오늘 TV 토론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보았다. 국회가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며 “여의도식 정치풍토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수용 배경을 밝혔다. 표정에서는 비장함이 묻어나왔다. 강재섭 대표에게도 “나의 뜻을 받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후보는 특검 수용의 뜻을 정하고 강 대표를 당사로 호출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지시했다. 기자회견 직후 이 후보는 당사 앞에 몰려와 “이명박 대통령”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이 나의 힘이다.”면서 “거짓이 진실을 흔들고 있다. 진실을 흔들 수 없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이어 발길을 돌려 밤늦게까지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여의도에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잠시 한걸음 물러선다고 생각한다.”며 “새 시대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희생도 필요할 것”이라고 의원들에게 자신의 뜻을 받아달라고 이해를 구했다. 이 후보의 결심 배경에 대해 박형준 대변인은 “이 후보가 토론회 끝나고 (국회)상황보고를 받았다.”며 “어떤 식으로든 물리적 충돌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여의도식 정치에 대한 환멸이다.”고 강조했다. 특검 수용으로 자칫 이 후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 대변인은 “특검을 통해서도 후보의 결백함이 입증되면 국정 운영 탄력을 받을 것”이라면서 “그 부분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고 전했다. 그는 “검찰 수사와 마찬가지로 이 사안은 수사를 정확히 하면 후보를 부르지 않아도 해결될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후보는 17일로 전북과 경기 지역 유세를 예정대로 소화하며 이틀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대세론을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짝짓기 다 옛말이여 충청은 균형 지킬겨”

    “짝짓기 다 옛말이여 충청은 균형 지킬겨”

    중원(中原)이 달라졌다.‘지가 뭘 아남유∼’라며 막판까지 표심을 꼭꼭 숨겨 후보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충청이 아니었다. 김종필·심대평은 가물가물 옛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고, 행정도시 건설도 옛일이 됐다. 대선을 닷새 남겨둔 14일. 표심은 들끓고 있었다. 그만큼 복잡다단했다. 이곳이 17대 대선 최대의 격전지임을 내보이는 징후는 시장에서, 거리에서 거리낌없이 묻어났다.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실망은 경제 회생에 대한 지역의 갈망을 한껏 키워놓았다. 여기에 무소속 이회창 후보에 대한 애증이 맞물리면서 표심은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경제 살리면 누가 돼도 좋다” 무엇보다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회사를 다니는 홍영표(45)씨는 “어제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는데 공무원들은 하나도 안 보이더라. 나라의 기강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다.”고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은 자연스레 정권교체론과 ‘이명박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곽모씨는 ‘누구를 찍을 것이냐.’는 질문에 “요즘 매출이 지난해 반도 안 된다. 살 수가 없다.”는 말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 심지어 주부 이명근(51)씨는 “도덕성이 문제라지만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명박 후보 독주에 대한 견제 기류도 읽혔다. 학원강사 조완재(26)씨는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이명박 후보의 오만과 독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충청권에서는 균형을 맞춰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BBK 발표후 昌風 주춤 출마와 함께 일었던 이회창 후보 바람은 BBK 수사 결과 발표 이후 한풀 꺾인 모양새다. 자영업을 하는 양모(42·여)씨는 “수사 결과 발표 뒤 이회창 후보 출마의 정당성과 관련해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대선 판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영업자 김경훈(42)씨는 “주변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자를 한 명도 못 봤는데, 대세론에 거품이 심한 것 같다.”면서도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이라서 뽑기가 망설여진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시·도민들은 이회창 후보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관심을 보였다. 옥천에 사는 금종관(52)씨는 “대선이 끝나면 충북 신당 의원 대다수가 당을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인 그는 “박근혜씨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 광풍이 불 것”이라며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반면 회사원 이모(50)씨는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야합에 속을 만큼 충청인은 어리석지 않다.”고 비판했다. ●“鄭후보 공약 현실성 있더라” 뜻밖에 시·도민들은 이회창-심대평 연대와 이명박-김종필 연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영업을 하는 김경훈(42)씨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이명박을 민다고 하니까 배신자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주부 최모(41)씨는 “당시에는 몰라도 지금 JP는 영향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완고한 중장년층에 비해 젊은층에서는 통합신당이 활동할 여지도 엿보였다. 대학생 조모(23)씨는 “TV토론회를 보니 정동영 후보가 공약에 대해 가장 현실성 있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대전·옥천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선택 2007 D-6] 그들은 D-119?

    “이미 대선 결과는 뻔한데 총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정동영 후보와 친노 진영, 손학규 전 경기지사측 등 당내 분파가 총선을 앞두고 쉽게 정리되겠습니까.”(대통합민주신당 관계자) “당에서는 일단은 대선일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자제하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경선 과정도 치열했고, 대선 이후 줄 서는 사람도 많을 테니 공천이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요.”(한나라당 공천 희망자) 정치권에서 눈앞에 닥친 대선이 아니라 내년 4월 총선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에게 12일은 ‘D-7일’이 아니다.‘D-119’일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독주 체제로 대선 승패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대세론’ 때문이다. 통합신당에서는 벌써부터 대선이 아닌 내년 4월 총선으로 목표를 돌려잡는 듯한 행보가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팀을 꾸려 대선 인수위를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역에서는 공천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날 오전 통합신당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선대본부장단 회의에는 조세형 최고고문 등 10명 정도가 참석해 한산한 장면을 연출했다. 오충일 대표는 이틀째 참석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유세장에 있는 일부 의원을 제외한 의원들은 ‘이명박 특검법’이나 ‘BBK 수사검사 탄핵소추안’ 등의 처리에 투입됐다. 두 가지 법안 모두 적용 시기와 내용면에서 ‘총선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특검법안이 통과되더라도 2월 중순쯤에야 이명박 후보 기소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동안 BBK 공방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의원들끼리 개별적으로 총선에 대비해 지역구를 중심으로 총선 대비 워크숍을 개최하거나, 컨설팅업체에 총선 준비용 여론조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출마와 창당 선언 이후 영남권·충청권 의원들이 탈당을 할지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통합신당 의원 7명이 현역 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날 시작된 총선 예비후보 등록에 응한 것도 관심이 총선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풀이된다. 범여권 단일화가 잇따라 무산되는 것도 총선 때문인 측면이 많다고 분석된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나 지지율 답보상태이면서 ‘참여정부 심판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통합신당과 손잡기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인제 후보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에게 탄압받았다.”고, 문국현 후보는 “참여정부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통합신당과 거리를 뒀다. 보수 진영에서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연대 뒤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며 노골적으로 총선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친노(親盧) 진영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이 후보 진영으로 옮기는 등 합종연횡도 가속화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이 후보 지원 유세가 ‘5년 뒤’를 대비하는 총선용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구혜영 홍희경기자 koohy@seoul.co.kr
  • 범여권 후보 단일화 사실상 무산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와 통합이 결렬됐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신당 정동영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으로 단일화 논의를 거부했다. 이로써 범여권의 양자 또는 3자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무산됐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 속에 범여권은 정동영·이인제·문국현 후보의 3자가 각자 대선을 치르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11일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신당과의 합당 및 단일화를 논의한 결과에 대해 “향후 대선까지 일절 단일화와 통합 논의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다수 국민이 참여정부와 통합신당을 심판하려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실패한 참여정부 연장선에 함께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창조한국당 문 후보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정동영 후보에게 묻고 있는 상황에서 정 후보로의 단일화는 승리할 수 없다.”며 정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정 후보가 모든 기득권과 정치적 목표를 접고 사즉생의 결단을 해주길 바란다.”며 정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대단히 아쉽고 유감스럽다.”면서 “그래도 우리는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간절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선택 2007 D-7] ‘검사탄핵’ 대치

    [선택 2007 D-7] ‘검사탄핵’ 대치

    11일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이 BBK특검법과 수사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를 둘러싸고 대치하는 등 막판 대선 정국이 출렁이고 있다. 신당은 이날 본회의를 단독으로 개의해 특검법을 상정하고 탄핵소추안 보고를 강행하려 했으나 한나라당이 한때 국회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면서 임시국회 본회의가 이틀째 무산되는 등 파행을 빚었다. 양당은 12일 중 임채정 국회의장의 중재로 원내대표간 의사일정 협의를 시도할 예정이지만 양당의 첨예한 입장차로 합의가 어려울 전망이다. ●한나라 한때 의장석 점거로 국회 파행 신당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12일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 보고와 특검법 직권상정 절차를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신당은 사실상 대선판을 흔들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다. 특검법과 탄핵소추안 처리과정을 통해 검찰 수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민적 여론을 최대한 결집한다는 복안이다. 이 후보가 ‘위태로운’ 후보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곁들여져 있다. 한마디로 이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전의 최종판인 셈이다.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수사기간은 당선자 시절이라 유권자를 향해 “대통령 당선자가 수사 대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통과될 경우 최장 60여일의 수사기간이 있기 때문에 대선이 지나더라도 정국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고 곧바로이어지는 총선에 대비해 범여권 진영을 정비할 수 있다. 때문에 신당은 한나라당이 의사 일정을 거부할 경우 군소정당들과 연대해 특검법과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일 계획이다. 김종률 원내부대표는 “정상적으로 의사진행 절차가 진행된다면 충분히 재적 과반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당 의석은 141석이고 민주노동당 9석, 민주당은 7석, 창조한국당 1석이어서 신당과 군소정당이 공동보조를 취할 경우 재적 과반수인 150석을 넘기게 된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를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고 본회의 개의를 무조건 막겠다는 입장이다. ●오늘 의장직권 개의키로… 충돌 불가피 안상수 원내대표는 “신당이 BBK특검을 시도하는 것은 대선 후보까지 끌어넣어 대선과 총선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정략”이라며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처사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반반했다. 김정훈 원내 공보부대표는 “공무원 직무집행상 위법행위가 있어야 탄핵소추가 가능한데, 이번 탄핵소추안은 헌법상 탄핵 발의 요건에 어긋난다.”며 신당을 공격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굳어지는 상황에서 ‘마지막 악재’를 대선 후로 끌어가지 않겠다는 자세다. 만에 하나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삼성특검법와 함께 ‘쌍끌이 특검법’에 휩싸여 국정 초기 주도권이나 내년 총선에서의 유리한 국면을 확보하는 데 타격을 입지 않도록 강력히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구혜영 한상우기자 koohy@seoul.co.kr
  • [선택 2007 D-7] 李 45.3 昌 14.7 鄭 13.4%

    [선택 2007 D-7] 李 45.3 昌 14.7 鄭 13.4%

    ‘BBK 수렁’을 탈출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막판 독주체제를 굳혀가고 있다. 서울신문이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에 의뢰,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지난 9∼10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45.3%의 지지를 획득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의 격차를 30%포인트 이상으로 벌렸다. 오차범위 내에서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회창·정동영 후보는 각각 14.7%와 13.4%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4.5%,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4.2%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부동층 상당수 李지지로 대선전이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부동층 규모는 큰 폭으로 줄었다. 지지후보를 한 차례만 물었던 지난 1일 조사에서 38.8%까지 치솟았던 부동층 비율은 이번 조사에선 1회 질문시 28.4%, 재차 질문 때는 14.2%로 줄어들었다. BBK 검찰수사를 관망하며 부동층으로 돌아섰던 이명박 후보 지지층의 일부가 수사발표 뒤 다시 결집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남영(세종대 교수) KSDC 소장은 “이명박 후보가 모든 세대·지역·이념층에 걸쳐 높은 지지도를 나타내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의 ‘탈이념화’와 기성세대의 ‘탈지역주의화’라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선 가능성을 묻는 문항에서도 응답자의 79%가 이명박 후보를 지목했다. 이회창·정동영 후보는 각각 3.8%,2.4%에 머물러 ‘이명박 대세론’을 흔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범여 鄭후보로 단일화” 61% 범여권 후보단일화와 관련,‘정동영·문국현 후보 가운데 누가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엔 61.4%가 정 후보를 꼽았다. 문 후보는 18.2%에 그쳤다. 후보 단일화의 파괴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인색했다. 정치권의 이른바 ‘합종연횡 변수’ 가운데 ‘선거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동영·문국현 후보단일화’를 꼽은 응답은 10.5%에 그쳤다. 반면 ‘박근혜의 이명박 지지’는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0.5%에 이르렀으며 ‘정몽준의 이명박 지지’는 13.4%로 나타났다. 한편 ‘꼭 투표하겠다.’는 적극적 투표 의사층은 82.0%로 조사됐다. 지난 1일 조사 당시보다 13%포인트 남짓 증가한 수치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3.1%포인트, 응답률은 13.5%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선택 2007 D-7] 김혁규 昌캠프로

    범여권은 후보 단일화 무산뿐 아니라 내부진영의 균열과 이탈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요지부동인 터에 과거의 ‘동지’들이 속속 떠나면서 속을 태우고 있다. 11일에는 김혁규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택했다. 여기에 신당 소속 영남권·충청권 의원 4∼5명의 이름이 이 후보 지지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서울 남대문 이 후보의 캠프 사무실에서 가진 지지선언식에서 “이 후보는 현 대선후보 가운데 도덕성과 정직성 등 국가지도자가 갖춰야 할 품성이 가장 훌륭한 분”이라며 이 후보 지지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관선 1회와 민선 3회 등 경남지사를 4차례 지낸 뒤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으로 대선 도전을 시도하다가 지난 8월 대통합민주신당에 불참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 후보 캠프에서 상임고문과 함께 부산·울산·경남 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김 전 의원은 지지선언문에서 “지난 1971년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은 끝까지 거짓말해서 국민에게 탄핵받은 것”라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우회적으로 견주어 말했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로 쏠리는 세력을 분리하기 위한 연대 차원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신당 창당이 ‘총선 연대’를 겨냥했다고 본다면 결국 김 전 의원도 반 이명박·보수라는 공감대로 한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영남이라는 ‘지역적’ 공감대도 얹혀진다. 현재 신당에서 이 후보 지지를 위해 추가 이탈자로 거론되는 의원들도 대부분 영남·충청 지역 소속이다. 구혜영 홍희경기자 koohy@seoul.co.kr
  • [선택 2007 D-7/여론조사] 李, 2위와 30%P差 독주

    [선택 2007 D-7/여론조사] 李, 2위와 30%P差 독주

    이번 조사에서 ‘이명박 대세론’은 결코 허세가 아님이 수치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이 후보는 40% 중반대의 지지율을 가볍게 회복했다. 검찰의 BBK 의혹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지난 1일의 지지율과 비교해 눈에 띄는 상승세다. 물론 2주 전엔 1회만 묻는 방식으로 28.8%가 나왔지만 이번에 똑같은 방식으로 해도 38.8%로 올랐다. 한번 더 물어 종합한 결과는 45.3%였다. 당선 가능성 예상 역시 80%선에 육박한다. 검찰의 BBK 수사발표가 흔들리던 ‘이명박 대세론’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투표일을 불과 일주일 남짓 남겨둔 시점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변이 없는 한 이 후보의 무난한 당선을 점치게 하는 대목이다. ●이명박, 수도권·대구·경북 상승세 뚜렷 이 후보의 상승세는 수도권과 영남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최초 지지 후보 질문에서 이 후보는 지난 조사보다 서울6%, 인천·경기는 14.3% 포인트 상승했다. 대구·경북지역은 무려 22% 포인트가 올랐다. 취약지역인 호남에서도 12.3%를 기록해 선전했다. 국민중심당과 손을 잡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대전·충청과 강원권에서만 각각 소폭 상승했을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3∼12% 포인트 남짓 하락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서울에서 2.6% 포인트 올랐다. 반면 대전·충청선 8.6% 포인트 내렸다. 텃밭인 광주·전라지역에서 오히려 10.4% 포인트가 빠졌다. 이 지역 부동층이 40.1%로 늘어난 결과다. ●투표율 60%대 하락할 수도 부동층은 지지 후보에 대한 1차 질문 때 28.4%였다가 2차 질문 시 14.2%로 줄었다. 권역별로는 광주·전라지역이 20.4%로 강원과 제주지역을 제외하고 가장 높았다.10%대 지지율의 덫에 갇혀 있는 범여권 후보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명박 후보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지역은 부동층이 각각 13.9%,10.7%에 머물렀다. 부동층을 대상으로 ‘투표할 후보 결정시기’를 물은 결과 ‘투표 2∼3일 전’이란 응답이 36.3%로 가장 많았다.‘투표 당일 결정하겠다.’는 응답도 31.9%나 됐다. 선거 막판까지 부동층 향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지금까지 70%대를 유지했던 투표율이 자칫 6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지역주의 위력 발휘할 것’ 59.6% 이번 선거에서 예상되는 지역주의의 영향력에 대해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응답이 59.6%로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응답(34.7%)을 압도했다. 흥미로운 점은 응답자의 출신지별 편차다. 호남 출신은 ‘발휘할 것’이란 응답과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응답이 47.9%로 동일하게 조사된 반면, 영남 출신은 ‘발휘할 것’(대구·경북 61%, 부산·울산·경남 68.7%)이란 응답이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응답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호남 출신 유권자의 정동영 후보 지지율이 30%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는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후보 슬로건 ‘거기서 거기’ 각 후보 진영 슬로건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평가된 것은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국민성공시대’(20.5%)였다. 이회창 후보의 ‘반듯한 대한민국, 듬직한 대통령’(20.4%), 문국현 후보의 ‘사람중심 진짜경제’(19.0%)가 근소한 차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가 내세운 ‘가족행복시대’는 11.3%, 권영길 후보의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은 4.1%에 그쳤다. 이번 선거의 성격에 대해서는 ‘국정실패 세력에 대한 심판’이란 응답이 44.0%,‘부패 보수세력 집권 저지’라는 응답은 38.5%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선택 2007 D-8] 李·昌·鄭 ‘老心 구애

    [선택 2007 D-8] 李·昌·鄭 ‘老心 구애

    ■“외로움·질병·가난 해결”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10일 ‘노심(老心)’과 ‘노심(勞心)’잡기에 나섰다. 이 후보는 대한노인회 초청강연과 한국노총 정책협약식을 가지며 대선 막판 대세몰이를 이어갔다. 이 후보는 서울 효창동 대한노인회를 방문,“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건강만 허락하면 일하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한다.”며 노인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그는 노인들의 외로움, 질병, 가난의 ‘3고’(苦)를 거론하며 “어르신들의 노년은 국가가 지켜줄 수밖에 없다. 점진적으로 복지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지역 및 산별 위원장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노총 조합원 88만명의 이 후보 적극 지지, 한국노총과 약속한 이 후보의 공약 적극 이행, 이 후보 당선시 한노총과 정책협의회 정례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2007대선 정책협약 협정서’에 서명했다. 한국노총이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어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노총과 노동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한국노총이 이 후보를 지지키로 함에 따라 ‘이명박 대세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가 약속한 정책공약은 ▲정규직 전환회피를 목적으로 한 기간제 근로자와의 재계약 거부 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사업장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노사발전재단 설립 ▲노사정 동수의 고용보험기금운영위 설치 ▲연령 차별금지 및 60세 정년보장법 제정 ▲노사정위원회 대폭 확대개편 ▲연간 실노동시간 2000시간 이하 단축 적극 추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보장 적극 검토 ▲원·하청 공정거래 질서 확립 등이다. 이 후보는 “지난 10년간 사실상 노사정의 실질적인 협력이 없었다.”면서 “차기 5년은 정말 노사정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화합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이러한 성과가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기초연금 20만원으로”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10일 태안기름유출 현장과 노년시대 신문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지지율 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일찍 방제복과 장화 차림으로 만리포 해수욕장을 찾아 피해복구에 땀을 흘리고 있는 시민들과 자원봉사자 등을 격려하고 복구작업에 참가했다. 이 후보는 “이번 기름유출 재앙은 인재”라면서 “특별재난지구로 지정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예전 씨 프린스호 사고가 났을 때도 기름저장고가 한 겹인 단일선차여서 큰 재난으로 이어졌다.”면서 “이번에도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면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 후보는 이어 “해수욕장에서 횟집이나 관광업을 하는 어민들의 계속된 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피해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되면 단기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생계 대책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방제 작업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이 후보는 효창공원 대한노인회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강연회에 참석해 노인문제를 두고 타 후보들과 자웅을 겨뤘다. 이 후보는 “저는 반드시 노인을 깍듯이 받드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노인 기초 연금 20만원으로 인상▲▲수급 혜택 60%에서 80%로 확대▲노인 일자리 증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노인표를 적극 공략했다. 또 자신의 출마의 변을 얘기하면서 “여당은 지금 누가 나와도 저희(보수진영)를 이길 수 없다.”며 “안정된 60∼70%의 여건을 가진 좋은 조건에서 보수가 경쟁을 해야 한다.”고 보수 분열의 우려를 피해갔다. 그는 “중요한 것은 누가 원칙을 가지고 있느냐 또 남북 관계에서 주체 있게 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저는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이니깐 그리고 한나라당의 후보가 보수 후보니깐 그들을 보수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무늬만 보수다.”라며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싸잡아 공격했다. 태안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일자리 30만개 창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10일 대한노인회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노인 공약을 쏟아내며 적극적인 ‘노심(老心)잡기’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원죄가 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2004년 총선 당시 ‘노인폄훼’발언을 염두에 둔 말이다.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본의가 아니었고 당의장직과 국회의원직도 버렸다.”고 밝혔다. 이미 여러 자리에서 “젊은층의 투표를 격려했던 게 와전된 것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행정자치부가 작성한 선거인명부에 따르면 60대 이상 노인 유권자의 비중은 전체의 18.1%를 차지한다.50대(15.1%)보다는 높고 20(19.4%)대에는 약간 못 미친다. 노심의 향배가 청·장년층 못지 않은 판세의 중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 후보는 이날 거듭 노인들 앞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노인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정 후보는 “노인분들이 직접 일하고 또 일한 노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전국 1만여 초·중·고교에 실버폴리스 4만명 배치 등 노인 일자리 30만개 창출을 약속했다. 또 ▲기초노령연금 대상을 80%로 확대 ▲기초노령수급액 임기내 16만원까지 인상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으로 70세 정년시대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정 후보는 대한노인회 초청 강연회에 앞서 강원 춘천을 찾아 유세전도 벌였다. 이 자리에선 ‘교육대통령’이미지를 강조하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대구 수성구가 학군이 좋아 위장 전입이 많다더라.”면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5번이나 주민등록 위장전입했는데 왜 나만 단속하느냐.’는 항의가 심하다더라.”고 주장했다. 또 “교육청이 단속을 할 수가 없어 중단했다고 한다.”고도 했다. 정 후보는 “이 후보는 자사고 100개를 만든다는데 1년에 3000만원씩 들어간다.”며 “여기 못들어가는 학생은 인생 낙오자가 되며 유치원부터 입시 지옥이 될 것이다.”고 공세를 지속했다. 춘천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선택 2007 D-9] 李 방탄유세,昌·鄭 육탄유세

    이명박 후보는 입고, 이회창·정동영 후보는 안 입고…. 강화도 총기 탈취 사건으로 대선 후보들의 신변 안전이 막판 변수로 급부상한 가운데, 후보간 유세 방식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압도적인 여론조사 지지율로 대세론을 구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방탄조끼를 착용하는가 하면, 거리유세를 자제하고 있다. 반면 이 후보를 추격하는 무소속 이회창,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방탄조끼를 사양하고 대중 속에 몸을 던지는 ‘육탄 유세’를 펼치고 있다. 이같은 차이는 후보간 위협 체감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李, 테러 협박에 방탄조끼 착용 이명박 후보측은 직접적인 테러 협박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4시 50분 자신을 총기 탈취범이라고 밝힌 50대 가량의 남성이 한나라당 민원실로 전화를 걸어와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언론에는 8일 알려진 이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에는 “장난이 아니다.”는 기류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정황상 취객의 장난전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나 한나라당 사람들의 체감 긴장도는 남다르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찰의 BBK 의혹 무혐의 처분으로 당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거법은 12월3일 이후로는 후보 유고 시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경원 대변인은 9일 “조사 결과 발신지가 서울 시내의 한 공중전화로 파악됐다.”면서 “옥외 야간 유세는 가급적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당직자는 “지지자들로부터 후보 몸조심을 당부하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고 했다. 협박 대상으로 거명된 박 전 대표에게도 10일 유세부터 4명 정도의 경찰 경호팀이 따라붙는다. 한나라당측은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북한과 연계된 세력이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눈치다. 홍준표 의원은 “국정원에서 대공 용의자를 집중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명박 후보도 7일부터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 경찰이 이 후보 방문지에 탐지견과 전자검색대를 동원하고 출입기자에게도 비표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거의 현직 대통령급 경호 수준이다.7일에 이어 9일에도 이 후보는 거리 유세를 하지 않았다. ●昌·鄭, 몸 사리지 않고 유권자 접촉 반면 지지율에서 뒤처져 있는 이회창, 정동영 후보는 총기 탈취 사건에 몸을 사릴 여유가 없다. 두 후보는 한사코 방탄조끼를 입지 않는 등 비장감을 과시하고 있다. 테러 위험 국면을 오히려 전의(戰意)를 불태우는 데 활용하는 눈치다. 이회창 후보는 이날 “저를 쏘고 가해한다면 죽어 주겠다. 이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위해서 제 목숨이 필요하다면 초개 같이 버릴 각오가 돼 있다.”고 격정을 토해 냈다. 정동영 후보는 ‘안아주기’ 유세를 펼치는 데다 야간에 주로 열리는 BBK 수사결과 발표 규탄집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경호팀이 진땀을 흘리기 일쑤다. 경호팀 관계자는 “정 후보에 대한 근접 경호를 1명에서 3명으로 늘렸다.”면서 “접근하는 시민들의 눈빛을 감시하는 방법으로 위해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김상연 구동회 박창규기자 carlos@seoul.co.kr
  • 李후보 “집 한채 빼고 전재산 환원”

    李후보 “집 한채 빼고 전재산 환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7일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후보는 7일 KBS 선거연설 방송에 앞서 보도자료를 내고 “어렵게 살아가는 고마운 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우리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대선후보 등록 때 이 후보가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서울 논현동 토지 등 총 353억 8000만원 규모다. 이 후보는 “대통령 당락에 관계없이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면서 “어려운 분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데 (내 재산이) 쓰이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환원 방법과 시기에 대해 이 후보는 “주위의 좋은 분들과 의논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근은 “공익재단 설립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 등이 가능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는 대선 후에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의 재산 환원은 BBK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 결정을 계기로 더이상 자신의 재산을 둘러싼 의혹을 불식하고 다른 후보 진영의 공세를 차단함으로써 이른바 ‘이명박 대세론’을 굳히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의 재산 환원 방침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기부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 한 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 후보는 1995년 쓴 자서전에서 이미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면서 “재산 사회환원은 오랜 소신”이라고 했다. 측근인 정두언 의원도 “서울시장 시절에도 재산 환원 말씀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7월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제 성취를 우리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재산 환원을 시사했었다. 이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진작부터 그러고 싶었지만 그동안 여러 의혹이다 뭐다 해서 공방이 심했고 검찰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보류했었다.”면서 “이제 이런 일들이 모두 정리되었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국민 앞에 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은 “투기로 벌어들인 돈으로 대통령직을 사려는 속내”라고 혹평했다. 최재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유전무죄의 결정판이다. 특권층의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사고가 이제 대통령직을 사는 데까지 이르렀다.”면서 “이 후보의 재산환원은 위장재산으로 은닉재산을 보호하는 위장환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상연 박창규기자 carlos@seoul.co.kr
  • 李·昌·鄭 캠프 사령탑에 듣는 막판 선거 전략

    17대 대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후보들의 선거전이 더욱 불꽃을 뿜고 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진영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돌출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판세 굳히기에 나섰다. 반면 무소속 이회창,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측은 전세 역전이 가능하다며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세 후보 진영의 선거 사령탑들과의 긴급인터뷰를 통해 열흘 남짓 남은 선거전략을 점검한다. ■ 강재섭 한나라 공동선대위원장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겠다.”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재섭 대표는 7일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는 말로 대선 승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이명박 후보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면서 대선 승리의 걸림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판단이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강 대표는 대세론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강 대표는 이번 대선 최대 승부처로 충청권을 꼽았다. 그는 “어느 지역이든 다 승부처이지만 충청권은 상당히 중요하다. 한나라당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충청권의 마음을 얻지 못해 집권에 실패했다. 지금 충청권에서 이 후보가 앞서 있지만 절대적 지지를 얻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불모지’인 호남을 제외하면 이 후보에게 유일한 취약지역인 충청권에서의 승리가 대선 필승을 담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을 불과 열흘 남짓 남겨 놓은 시점에서 강 대표가 꼽은 남은 변수는 이 후보의 신변 안전이다. 강 대표는 “후보의 경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혹시 있을지 모를 저쪽(여권)의 네거티브도 신경 쓰인다. 잘 단합해서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강 대표는 “남은 기간 우리의 뜻에 맞는 분들을 모시는 것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해 외연 확대 작업도 병행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또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계속되는 여권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의 공세에 대해서는 “이회창 후보가 법과 원칙을 강조해 왔는데 법이 정한 것을 인정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 부정이다.”고 비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강삼재 무소속 전략기획팀장 무소속 이회창 후보 캠프의 선거 사령탑인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7일 “시간은 많다.”고 잘라 말했다. 대선까지 남은 열흘 남짓의 시간을 그는 많다고 했다.“국민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는 “선거일을 12일 앞두고 지지율 40%대로 독주하는 후보가 있는데도, 미국 정가에서 한국 대선의 향방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만큼 역동성을 지닌 게 한국의 대선”이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BBK 수사발표 뒤 40%대인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선거일 직전에는 35%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근거로 그는 BBK 수사에 대한 여론이 점점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해져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표 첫날 수사발표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절반 정도였다면, 지금은 40%대라는 것이다. 강 팀장은 “현명한 국민들이 진실을 꿰뚫어보고 탄핵 사태 때와 같은 역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이회창 구도가 형성되면, 최종적으로 이회창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후보가 대선을 완주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남은 선거기간 중요한 홍보 포인트 가운데 하나라고 강 팀장은 설명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사퇴를 요구하며, 완주불가 여론을 만들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국민들이 정권교체에 실패할까봐 쉽게 이명박 후보를 이탈하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회창 후보가 대안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불공정 게임을 하는 측면이 있는데도, 국민들이 20% 가까운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고 자평한 뒤 “앞으로 더 많은 국민들이 우리 고충과 마음을 헤아려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정대철 신당 총괄선대위원장 대통합민주신당 정대철 총괄 선대위원장은 7일 대선을 불과 열흘 남짓 남기고도 ‘역전 가능성’의 꿈을 놓지 않았다. 검찰의 ‘BBK 수사’ 발표 이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지만 정동영 후보가 결국 최종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 후보측이 놓인 상황은 불리한 요인들로만 휩싸여 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가 이날 사실상 무산돼 정 후보의 지지율 상승 요인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대안으로 “일단 문 후보와의 단일화를 접고, 민주당과의 합당을 다시 추진하겠다.”며 수정된 선거 전략을 내놨다. 정 위원장의 논거는 호남 표심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전략의 일환이다.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호남 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 정 후보의 지지율이 현재 15%대에서 5∼10%포인트 상승해 20% 중반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동안 난항을 겪던 양당간 합당 논의도 최근 이탈 현상을 겪은 민주당의 적극적인 자세 전환으로 인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게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20∼30대가 통일과 민주주의 개혁에 대해 진보적이지 못해 아쉽지만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 결국 정 후보 지지로 돌아설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 위원장은 문 후보의 지지율이 대선에 임박할수록 급감할 수밖에 없어 대선일 직전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 정 후보측의 지지율이 37∼38% 정도에 이르러 이명박 후보와 2∼4% 포인트 차이에서 박빙 승부를 다툴 것으로 예상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李·昌·鄭 ‘BBK발표’ 이후 유세대결 재점화] 李 “발로, 가슴으로 뛴다는 생각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7일 중원으로 달려갔다. ‘BBK 뇌관’을 제거하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지지를 얻고 달려간 첫번째 방문지가 충청권이다. 이 후보의 취약지역을 선택한 것이다. 검찰 수사 발표 이후 지지율 반등에 힘입어 충청 표심을 잡겠다는 계산이다. 이 후보는 이날 대전 지역에서의 거리유세는 군 초소 총기 탈취사건에 따른 테러 가능성을 감안해 생략한 채 한나라당 대전시당에서 대전·충남지역 확대선거대책회의를 갖는 것으로 ‘중원 공략’을 갈음했다. 이 후보는 회의에서 “투표가 끝날 때까지 아직 선거가 끝난 게 아니다.12월19일도 선거 운동일이라는 생각을 가져 달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그는 “한 시간 일찍 일어나고 한 시간 늦게 잔다는 생각을 가져 달라.”“발로 뛰고, 가슴으로 뛴다는 생각을 가져 달라.”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 후보부터 대세론에 안주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오만과 안이가 우리 공통의 적이다. 우리가 (지지율이) 더 높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고도 했다. 이날 이 후보의 충청 방문에는 강재섭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정몽준 의원, 김형오 일류국가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하지만 테러위험 속에 이날 예정된 청주 거리 유세는 취소됐다.대전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선택 2007 D-11] 재산의혹 털고 대세론 날개 달까

    부와 권력을 둘다 거머쥔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부자가 권력에 도전하다 넘어질 때 사람들은 천리(天理)를 입에 올린다.1992년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와 경쟁한 김영삼 후보는 “재벌이 대통령 되는 건 쿠데타보다 나쁘다.”라는 말로 천리를 거론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7일 재산의 사회 환원을 밝힌 것이 천리를 두려워해서인지, 아니면 대통합민주신당의 주장대로 ‘천박한 술수’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유권자의 표심에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대선 후보가 거의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한 전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후보의 최대 약점으로 거론돼 온 도덕성 논란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회심의 카드라는 데 폭발력이 있다. 이 후보를 지지하고 싶어도 그의 수백억 재산이 맘에 걸려 망설이던 서민층, 돈을 둘러싼 각종 의혹 때문에 마음을 주기 주저했던 사람들에게 홀가분하게 지지할 명분을 안겨줄 만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적어도 각종 의혹 때문에 이 후보한테서 이탈한 부동층을 다시 끌어올 만한 파괴력은 된다.”고 했다. “집 한 채만 빼놓고 전부”나 “당락에 관계 없이”와 같은 ‘이명박답게 화끈한’ 표현도 인상적이다.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가 자신의 현대중공업 주식 등을 신탁한다고 했다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흐지부지한 전례가 있는데, 이마저도 재산 환원이라기보다는 ‘임기 중 재산권 동결’에 불과했다. 이 후보의 재산 환원 선언이 민심에 먹혀들 경우 대세론 굳히기의 쐐기 역할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대선이 10여일 남은 상황에서 지고 있는 쪽이 아닌 한참 앞서가고 있는 1위 후보가 도리어 쟁점을 생산해 낸 것은 추격하는 쪽의 입지를 더욱 좁힐 가능성이 있다. 검찰의 BBK 사건 수사결과 발표 후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는 이 후보가 이같은 파격 선언을 한 것은 2002년 대선에서 대세론에 안주하다 역전패한 이회창 후보를 반면교사로 삼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후보는 2002년에 이회창 후보가 외면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최근 포용하는 등 돌다리도 두드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후보의 재산 환원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도록…”이라는 이 후보의 취지에 비춰 보면, 빈곤층 대상 교육재단이나 장학재단 출연 등 공익재단을 통한 환원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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