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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미 장교 2명 추방/홍콩주재 무관

    ◎“군 지역 잠입… 비디오 촬영” 【북경 연합】 중국은 24시간이내에 미공군장교 2명을 추방할 것이라고 중국 외교부의 심국방대변인이 2일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심대변인은 이날 중국 국가안전당국의 발표를 인용,홍콩주재 미총영사관에 근무하는 무관 조세프 웨이 찬 미공군연락장교와 드웨인 하워드 플로렌지 공군연락장교보가 중국에 머무는 동안 중국법을 위반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심대변인은 이들 미군장교 2명이 최근 주중미대사관및 총영사관측과 업무협의를 목적으로 중국입국비자를 신청,지난달 23일 입국한 뒤 중국 동남연해지구의 여러 군사금지구역에 잠입해 불법적으로 사진및 비디오촬영을 해 군사정보를 절취하다가 지난달 29일 상오10시4분(이하 현지시간) 근무중인 중국인민해방군병사에게 현장에서 발각돼 체포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국 국가안전당국은 법에 따라 조사한 결과 이들의 행위가 『명백한 사실과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진 불법행위임을 확인하고 24시간이내에 이들을 추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심대변인은 전했다. 그는 이어 이 두 미군장교는 「중화인민공화국 군사시설보호법」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법」 「중화인민공화국 외국인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국가안전에 『중대한 위해를 가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중국 외교부의 장굉희 영사국장은 이날 상오10시 스코트 헐퍼드 주중미대리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미국정부에 환기시키고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는 한편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의 재발방지를 보장할 것을 미국측에 요구했다고 심대변인은 덧붙였다. 한편 전문가들은 중국정부의 이번 조치로 최근 미행정부의 강택민중국 국가주석 방미초청 움직임등으로 회복될 기미를 보이던 중·미관계가 또다시 냉각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 태풍 「개리」 북상/한반도 비켜갈듯

    기상청은 31일 하오 제4호 태풍 개리(Gary)가 홍콩 동북쪽 약 2백50㎞ 부근 해안지방에서 매시간 30㎞의 속도로 북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심기압 9백90헥토파스칼로 C급인 개리는 중심부근 최대속도 초속 23m로 반경 1백50㎞ 범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계속 북진,8월1일 낮 중국 쟝시분지 부근까지 진출하면서 점차 열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4·19­6·3세대 시국선언의 함축

    ◎“세대교체로 지역주의 막자” 한목소리/”사당정치로 불신 조장” 정치행태 맹정/전국민 참여 「개혁 국민연합」 구성 촉구 이금홍 한국학생운동자협의회장 등 4·19및 6·3세대 인사 3백여명이 29일 김대중 상임고문의 신당 창당과 「3김정치」의 재현을 반대한다는 시국선언문을 냈다. 지난 26일 30대 각계인사 1백50명이 김고문의 정계복귀를 반대한다는 연대성명을 낸지 3일만에 다시 「반(반)신당」의 선언문이 발표된 것이다. 이날 서울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시국선언대회에서 이들은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구태의연한 사당정치로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국민 배신적 행위를 규탄한다』고 김고문과 김종필자민련총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들은 김고문의 신당 창당과 관련,『권력욕에 사로잡혀 1인추종의 사당정치를 부활시키고 김종필 총재와 손을 맞잡아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국가체제의 붕괴와 국민 분열을 초래하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규정하고 『두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한 망국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이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계속해선 안된다』고 김고문의 정계복귀를 비난한 뒤 『추악한 정치모리배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일이 없도록 마지막 충고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종필총재에 대해 『유신독재의 본당인 사람에게는 충고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힐난한 뒤 『정치지도자들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손바닥만한 지역분할에 몰두할 뿐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며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또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분단과 냉전을 종식하고 독재의 잔재를 없애면서 통일시대를 여는 일이 대통령 한사람만의 힘으로 이뤄지겠느냐』고 물은 뒤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참패를 각성과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아 21세기와 국가개혁을 위해 전국민이 참여하는 「개혁을 위한 국민대연합」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을병 전성균관대총장은 「지역할거주의 이대로 둘수 없다」는 강연에서 『한 정당이 지방자치단체와 의회를독차지할 때 민주주의는 발붙일 곳이 없다』며 『지역갈등과 3김시대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신진세력들이 정계에 진입,새로운 활로를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에는 이금홍 회장을 비롯,이기택 민주당총재,남호명 4·19회회장,조일묵 한국재활협회장,강효식 인제대교수,김삼연 애국선열녹화사업회장 등 4·19때 학생회간부 출신들이 참석했다.
  • 남북한학자/「한반도 문명기원」 논란 예상

    ◎일 오사카 국제학술심포지엄에 16명 함께 참석/한국­“위만조선이 최초의 고대국가” 역설/북한­정권 정통성 위해 “대동강 중심” 주장 광복 50주년을 앞두고 남북의 역사·고고학자들이 일본에서 만난다.오사카경제법과대 주최로 오는 8월4∼6일까지 이 대학에서 열리는 국제학술심포지엄 역사부회가 그 자리.「동아시아의 원시·고대문명의 재검토」를 주제로 한 이번 회의에는 남북학자 16명이 참석한다.러시아·중국·일본학자도 5명이 참석하지만 발표주제는 주로 남북학자들에게 할애되었다. 한국학자들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참가하는 반면 북한학자들은 획일화한 주제를 채택했다.특히 북한은 대동강유역의 문명과 고조선·단군에 대해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여기에는 북한정권의 정통성을 고조선과 고구려에서 찾고,한반도 고대문화에서 대동강유역문화를 우위에 두고자하는 정치적 복선이 깔렸다.그리고 주제발표자들도 북한정권이 설립한 조선사회과학원 소속 학자들이 일색을 이루었다. 그 발표내용을 보면 ▲새로운 발견,대동강유역 고대문명의발생과 발달사(이순진·조선사회과학원) ▲고조선시기의 지석묘와 석관묘(석광준·〃) ▲대동강유역의 고조선유적과 유물(송영헌·〃) ▲단군 말살운동및 민족말살정책의 산물(강용성·〃)로 되어있다.이밖에 ▲고조선시기의 고대성곽(김종혁·〃) ▲고조선사 재정립에 따른 민족사적 의의(김철식·〃)등이 포함되었다. 발표주제가 암시하는 대로 북한은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크다.지난 93년10월 단군릉 및 단군유골 발굴 발표이후 대동강유역과 평양을 한반도 고대문명의 중심지라는 주장을 재론할 것이라는 관측이다.그 허구성은 한국학계가 여러차례 지적했지만,북한이 이 문제를 해외에까지 들고나옴으로써 남북학계가 논쟁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안고있다. 그러나 한국학계는 북한과 의도적으로 대응할 조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측 발표자는 주최측의 개별접촉에 의해 선정되었고,발표내용도 「동아시아의 원시·고대문명의 재검토」라는 주제에 맞추어 학자들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다만 성균관대 손병헌 교수(고고학)의 「고선사에대한 연구현황과 과제」와 서울대 최몽룡 교수(〃)의 「고대국가의 성립과 발전」에서 북한 발표내용과 상반된 견해가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최몽룡교수의 「고대국가의 성립과 발전」은 한국역사속에 잘 알려진 위만조선(위만조선·기원전 194∼108)을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로 본 논문이다.위만조선은 사회조직,직업적인 행정관료,조직화된 군사력,행정중심지로서의 왕검성 존재,왕권의 세습화를 통해 국가체제를 갖추었다는 것이다.이와 더불어 고고학 편년으로 초기철기시대(기원전 300∼0년)에 해당하는 위만조선은 세형동검 계통의 유물과 돌무덤(석관묘),움무덤(토광묘),독무덤(옹관묘)등의 유적을 제시했다. 이는 결국 북한이 발굴했다는 단군릉의 인골 분석결과를 서기전 3018년으로 발표한 절대연대 주장은 물론 고조선의 국가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다.북한이 주장한 인골 분석연대는 과학적인 고고학 편년상 신석기시대 중기(서기전 3000∼2000년)나 후기(서기전 2000∼1000년)다.그래서 서울대 임효재교수(고고학)는 원시사회의 문화상을 밝히는 연구논문 「5천년전의 한국」을 발표키로 했다.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 조유전관장(고고학)은 남북한 학자들이 참가한 이번 학술회의에서 「남북학술교류 제의」를 주제로 한 발표문을 통해 그 가능성을 타진할 계획이다.광복5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학술교류는 한번쯤 딛고넘어갈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 운동권출신 포함/30대 인사 백50명­“신당 반대” 성명

    ◎“DJ 정계복귀는 민주정신 훼손” 비난/“사당에 불과… 젊은세대 지지 기대말라”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30대 각계인사 1백50명이 26일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정계복귀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신당창당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21세기 전략아카데미」와 「경실련」등 각종 포럼 및 시민운동단체에 소속된 이들은 이날 여의도 맨해탄호텔에서 「현정국에 관한 연대성명」을 내고 『현정권의 실정 때문에 김이사장이 나설 수 밖에 없다는 논리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오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김이사장이 창당의 명분으로 「민주당의 개혁 불가능성」을 내세웠으나 민주당의 실제 대주주가 김이사장과 동교동계였다는 점에서 신당창당은 공당의 분열과 사당화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김이사장은 6·27 지방선거에서 지역할거주의를 옹호,국민통합의 대의를 저버렸으며 김종필씨와도 손을 잡아 범민주연합의 명분을 무너뜨렸다』고 비난한 뒤 『6·27 지방선거 결과는「반YS」의 민심이 지역주의에 편승된 것이지 김이사장에 대한 지지표명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신당을 「김대중당」이라고 표현하며 『신당을 반기는 세력은 자민련 뿐이며 국민의 3분의 2가 신당을 반대한다』면서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지지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이와함께 민주당 잔류파를 지칭하며 『사리에 집착,당권싸움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3김시대를 청산할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시하라』고 주문한 뒤 『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도 민주발전을 저해하고 국정을 그르치는 계기가 됐다』고 비난했다. 한편 민주당의 이규택대변인은 『김대중 분당세력은 젊은 세대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들여 창당을 즉각 중지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라』고 촉구했으며 신당은 『자신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성명에는 이우재 반유신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대표 간사,장신규 경실련 지방자치 국장,임종석 전대협3기의장,이양원 변호사,이범 정치개혁 시민연합 조직간사,김호기 연세대교수,고성범 나라정책 연구회 편집실장 등이 서명했다.
  • 낙농의 중심지/바라빈스크(시베리아 대탐방:25)

    ◎끝없는 초원… 러시아 제2버터산지/목축업 최적지… 강물엔 염분 많아/오일·가스 다량매장,유럽까지 가스공급관 연결/서시베리아 전역 같은 시간대… 모스크바와 4시간차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배 생활을 했던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즈 미술관 본관건물을 연상시키는 3층 건물이 있는데 녹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건물이다.주립오페라·발레극장인데 모스크바의 아르바트거리에 있는 예브게니 바흐탄코바극장이 2차대전 때 바로 이 극장으로 피란왔던 것으로 유명한 건물이다.1층 현관 왼쪽에 「달러 체인지」라고 써붙인 환전소가 들어서 있어 건물 분위기를 해치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건물이다. 옴스크 거리에서 특별히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물이다.옛 서시베리아의 수도답게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레닌거리에 있는 세라핌 차소브냐라는 작은 교회는 이 도시의 상징처럼 된 예쁜 건축물이다. ○3종류로 교회 분리 러시아의 교회 건물은 크게 3종류로 나누어진다.가장 큰것이 「사보르」라고 부르는 대성당으로 큰 도시에 보통 1개씩만 있다.예외로 모스크바에는 4∼5개,레닌그라드에는 3∼4개의 사보르가 있다.그다음 규모가 각 구역별로 있는 「체르코프」라고 부르는 일반교회다.신도들이 예배를 보기 위해 들르는 통상적 교회를 일컫는다.마지막으로 「차소브냐」라는 기념교회가 있다.차소브냐는 「차스(시간)」에서 온 말로 중요한 사건을 기념해서 세운 교회 모양의 기념건축물인 셈이다.건물 내부에는 그 사건과 관련된 작은 박물관도 꾸미고 교회성물을 파는 작은 매점이 하나씩 있는게 전형적인 차소브냐의 풍경이다.금년에 제2차대전 승전 50주년을 기념해 모스크바에 새운 차소브냐,에카테린부르크의 황제처형장소에 세워진 목조교회 등이 차소브냐의 전형적인 예다. 혁명전 모스크바의 교회수를 나타내는 말로 「소록(40) 사라코프(제곱)」라는 말이 있다.3가지 종류의 교회를 모두 합쳐 교회 수가 1천6백개에 달한데서 생겨난 말이다.모스크바 전역을 40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각구역에 40개의 교회를 지었던것이다.러시아어에서 「소록 사라코프」라는 말은 현재 「수도 없이 많다」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구로도 쓰인다. ○폴란드도 연결 계획 서시베리아는 오일·가스의 주산지다.오브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수르구트·니즈니유간스크 등 한티 만시자치구의 석유주산지들이 있고 좀더 북으로 가면 가스의 주산지가 나타난다.특히 야말반도에서 나는 가스는 러시아 전역은 물론 옛 동구지역과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에까지 공급된다.최근에는 코미공화국∼야로슬라블∼백러시아를 거쳐 폴란드로 직접 가스관을 연결하는 건설 계획이 확정됐다.현재 가스파이프라인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가 계속 높은 통행세를 요구해 새 가스파이프의 건설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과거 브레즈네프 시절까지만 해도 이 지역의 오일·가스는 군수산업을 위한 주요 외화가득원이었는데 최근 수년 사이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톰스크주·옴스크주 북부에도 오일·가스가 많이 매장돼 있는데 옴스크는 특히 시베리아 최대 정유단지가 조성돼 있어 튜멘에서 이곳까지 직접 파이프라인이 건설돼 있다. 옴스크에서 하루를 묵은 뒤 이튿날 하오 7시(현지시간으로는 하오 10시) 노보시비르스크로 가기 위해 옴스크역을 출발했다.열차이름은 옴스크를 관통하는 강 이름을 딴 「이르티시호」.옴스크역을 벗어나는 지점의 푯말은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가 2천7백15㎞라고 가리키고 있다.원래 지도상으로 노보시비르스크주부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1시간이 더 벌어져 4시간이 된다.하지만 지난해 이곳 주정부의 결정으로 서시베리아 전역이 같은 시간대를 쓰기로 해 실제 시차변경은 하지 않는다.자칫 낡은 여행정보를 갖고 왔다가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낭패를 당하게 된다. 열차가 통과하는 노보시비르스크주 중서부지역은 모스크바주 북쪽 볼로그다주에 이은 러시아 제2의 버터 산지다.바라빈스카야 스텝·쿨룬딘스카야 스텝 등 목축에 최적인 초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 덕분이다.한때 유럽으로 수출되는 버터는 대부분 이곳에서 생산됐다.그리고 시베리아 혹한에서 신는 긴 가죽장화 「펠트」의 주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소득수준 매우 높아 이곳으로 들어서며 기차는 유난히 작은 강을 많이 지난다.러시아에서 작은 강·호수가 제일 많은 곳을 통과하는 것이다.북동 시베리아의 언 땅이 녹으며 생성된 작은 강들이 서남쪽으로 일제히 흘러들면서 막대금을 비스듬히 그은 듯한 모습으로 줄줄이 생성돼 있다.이곳에 만들어진 호수들은 또한 염분이 많기로 유명하다.그래서 목축 외에 농업은 거의 불가능하다.열차 안에서 파는 이 지방의 생수도 거의 소금물에 가까워 입을 댈 수 없을 지경이었다. 노보시비르스크주의 첫번째 역은 타타르 이름인 타타르스크다.19 11년 지금은 카자흐 영토가 된 남동쪽 쿨룬다시로 대시베리아철도가 연결되며 건설된 도시다.주민 3만1천명의 소도시이지만 버터의 주산지로 소득 수준은 매우 높다.이곳에는 유난히 타타르 이름이 많다.치크·옴·출림·찬늬 등 단번에 타타르 이름임을 알 수 있는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당연한 현상이지만 동으로 나아갈 수록,즉 모스크바로부터 멀어질수록 러시아에 정복되기 전 원주민들이 쓰던이름이 많이 남은 것이다.이 부근에서 러시아식 이름의 도시는 볼셰비키들이 새로 건설한 노보시비르스크 한 곳 뿐이다. 옴스크를 떠난 열차가 노보시비르스크로 향하며 북쪽으로 20∼30여㎞ 거리를 두고 거의 평행되게 따라오는 강이 있다.바로 옴강이다.시베리아철도가 건설되기 전까지 서시베리아의 교역로는 이 강을 따라 이루어졌다.그리고 이 교역로의 중심지로 성장했던 도시가 바로 쿠이비셰프다.쿠이비셰프와 남쪽 30㎞에 위치한 시베리아철도역 바바린스크 두곳도 철도가 도시의 흥망을 갈라놓은 좋은 예다. 1722년 카인스크란 이름으로 건설된 쿠이비셰프는 한동안 버터·육류·섬유·가죽·모피·어업의 중심교역지로서 번창했었다.그러나 남쪽으로 떨어진 지점으로 철도가 통과하면서 지리적 중요성을 상실,이후 급속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대신 남쪽의 시베리아철도역 바바린스크시는 쿠이비셰프로 연결되는 지선과 대시베리아철도의 교차점으로서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됐다.
  • 부실추방의 계기로 삼자(사설)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는 예상했던대로 설계·시공·감리·관리등 총체적 부실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결과 밝혀졌다.설계는 구조계산을 무시했으며 시공은 기둥·슬래브등 곳곳에서 부실이 이뤄져 하중을 견디지 못하게 했고,감리 또한 상주감리원을 두지 않는등 형식에 그쳤다.백화점 매장을 늘리느라 부실이 가중되기도 했다.게다가 이 모든 부정과 비리를 감독해야 할 관련공무원들은 뇌물로 매수되어 부실의 비호세력으로 둔갑했다.그 결과가 4백58명의 사망자와 1백8명의 실종자를 낸 사상최악의 대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우리 건설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비리를 집대성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그것은 공사에 있어서 기본철칙인 「원칙의 무시」와 「안전불감증」이 자초한 예견된 참사였다.오랜 관행으로 묵인돼온 비리의 총화가 엄청난 재난을 몰고 왔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삼풍」의 부실과 비리가 80년대말에만 한정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수백명의 고귀한인명을 희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참담한 좌절감을 안겨주었다.건축기술에 대한 신뢰 또한 무너져버렸다.그동안 해외에서 쌓아올린 한국건설기술의 명성도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되었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삼풍」의 잔해가 완전제거되고 붕괴원인이 확연해진 지금 우리는 이 땅에 다시는 이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반성과 교훈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건축의 주체인 건축주나 시공업자들은 비리는 부실을 낳고 부실은 결국 대형참사로 연결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건설업계는 원칙을 중시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건축문화의 새 기풍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과거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비리와 부실을 척결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업체로 다시 태어나기를 촉구한다.
  • 성악가 조수미씨 런던 에어스튜디오 CD녹음 현장

    ◎「한오백년」 열창에 “원더풀”/민요·외국곡 수록… 「광복50돌 선물」로 제작/런던 칠 협연… 녹음작업 나흘동안 강행군 런던 북쪽의 아름다운 동네 햄스테드에 자리잡은 에어스튜디오.18 80년에 지어진 빅토리아 스타일의 거대한 교회건물을 개조한 이곳은 유럽에서도 세 손가락안에 드는 최상의 음악녹음실이다.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현지시간) 바로 이 스튜디오의 가장 큰 녹음실인 린드헐스트홀에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조수미)씨의 컴팩트 디스크(CD) 녹음작업이 이뤄졌다. 반주를 맡은 영국 최고의 교향악단인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녹음 당일에 주어진 한국노래 악보를 완벽한 솜씨로 연주했으며 조씨 또한 절정에 이른 음악세계를 과시했다. 레퍼토리는 한국노래 「한오백년」「울산아가씨」「봉숭아」「고독」「강건너 봄이 오듯」「아리아리랑」등과 외국의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들. 흥겨운 가락의 우리노래 「울산아가씨」를 연주하는 런던필 단원들의 어깨는 그 가락의 의미도 모르는채 저도 모르게들썩거렸고 조씨의 미성은 옥구슬로 변했다. 조씨가 광복50주년을 맞는 올해,조국에 바치는 선물로 제작하는 이 앨범의 머릿곡인 신가곡 「아리아리랑」(안정준 곡)의 녹음작업은 린드헐스트홀의 공기마저 명정하게 바꾸었다.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한국여인으로서 그녀의 반주 없는 「한오백년」 열창이 끝났을 때 홀과 스튜디오에선 「원더풀」이 터졌다. 소리의 부피가 작고 단단하며 가벼울수록 기교가 빛나는 천의 목소리를 가진 조씨는 나흘간의 강행군 녹음작업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미성을 유지했으며 런던필 단원들도 성실하게 호흡을 맞췄다. 조씨와 몇차례 함께 작업한 바 있는 미국 지휘자 스테판 폰 크론씨와 뮤직 디스크 제작에 명성이 높은 프랑스의 프로듀서 아놀드 드 프로버빌씨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 열중,밤샘 작업을 하던 관계자들을 감탄케 했다. 크론씨는 조씨가 『순발력이 뛰어나고 섬세하며 자연의 새 같은 노랫소리를 들려준다』면서 『그녀는 본능적인 리듬감각을 지니고 있고 가사의 해석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2년전부터 앨범 녹음을 함께 하며 조씨를 알게 됐다는 크론씨는 동양음악에 특히 관심이 많아 중국음악을 공부해 왔는데 이번에 한국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고 밝혔다. 프로듀서 프로버빌씨도 『무대열정이 뛰어나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에너지발산의 가수』라고 조씨를 칭송했다. 조씨의 이번 앨범은 지난해 삼성나이세스와 계약을 맺어 첫 CD앨범 「새야새야」를 발매,클래식 음반으론 예상치 못한 25만장 판매의 대성공을 거둔데 힘입어 탄생하는 것.조씨는 물론 제작진의 뜨거운 열의로 「조수미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앨범이 될 것으로 삼성나이세스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 대전 중앙신금 거액 금융사고/대주주에 5백70억 불법대출

    ◎신용기금서 특별관리 충북상호신용금고의 대규모 예금유용 사건에 이어 대전의 중앙상호신용금고에서도 대주주가 5백70억원을 불법 대출해 쓴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재정경제원은 26일 중앙금고의 대주주 이재길씨가 「출자자 대출금지 규정」을 위반,차명으로 대출받아 자신이 경영하는 계열사에 5백70억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 이날부터 신용관리기금이 경영권을 인수,금고업무 및 재산의 관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충북금고와 같이 부외거래 등 악성행위는 없는 것으로 밝혀져 예금은 정상 지급토록 했다. 재경원은 또 25일자로 이재길씨와 임직원 등 7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 자산실사가 끝나는대로 이들을 금고법 위반혐의로 형사 고발키로 했다. 이윤재 재경원 금융1심의관은 『신용관리기금이 지난 25일부터 특별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대주주 이씨가 계열사 직원명의로 5백7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나 신용관리기금 이사장 등 6명의 공동관리인단을 구성,자산실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그는 『위규대출액은 대주주 이씨가 진술한 금액이어서 조사결과 금액이 커질 수도 있다』며 『실사가 끝나는대로 금고의 처리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제까지 조사결과 이씨는 경성주택 대성철강 경성코아 경성스포츠플라자 대성백화점 안성종합건설 등 자신이 경영에 간여하는 계열사가 최근 몇년새 대전 둔산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등 무리한 사업확장을 하다 자금난에 빠지자 중앙금고로부터 불법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금고는 대전 본사 외에 충남 공주와 논산에 1개씩 지점을 갖고 있으며 5월말 현재 여신 2천3백42억원,수신 2천5백61억원,자기자본 1백63억,납입자본 93억원의 중견 금고다.그러나 지난 해 8월 은행감독원의 검사에서는 위규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출국 금지자는 ▲이재길 ▲김용근(중앙금고 대표이사) ▲이재윤(〃 전무) ▲양응철(〃 감사) ▲박경서(〃 이사) ▲한기륜(〃 이사)▲오병묵(〃 이사)씨다.
  • 부옇고 두툼한 얼굴(송정숙 칼럼)

    요즈음의 뉴스화면에는 누구보다 빈번하게 김대중씨의 얼굴이 등장한다.그러다보니까 그의 인상에서 느껴지는 것도 감각적으로 다양해지는 것을 발견한다.요즈음의 그는 옛날의 그에게서 느끼던 것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무엇보다도 TV화면을 「그득이」 채우는 그의 부옇고 두툼한 얼굴의 느낌이 옛날과는 아주 다른 점이다.별안간 얼굴이 커진 것도 아닐텐데 왜 그럴까. 필경,그가 차지하는 뉴스의 비중이 요즘와서 한층 커진 것이 그런 착시현상을 불렀는지도 모른다.어느 조간에는 누군가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웃저고리를 「입혀드리는」 모습도 실렸다.상징적인 민주인사의 평민스러움이 사상된 그 뒷모습에서는 「대부」같은 보스냄새가 물씬났다. 「부옇고 두툼한」 그의 그 가부장적 모습은 그의「신당」과 함께 「힘」의 실체를 현저하게 실감시키기도 한다.가령 그가 신당을 만드는 당위론으로 내세운 『여도 야도 제구실을 못하므로 내가 부득이 나서기로 했다』는 요지의 말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마치 기업의 노오너가 『아이들에게 맡겨두었더니 제대로 못해서』부득이 은퇴한 자리를 털고 나서야 했다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이런 경우 『그게 어떻게 이룬 기업인데…』하는 창업주의 소리 같은 것이 오버랩되어 미덕으로 비치는 효력을 낸다.3번씩 호소하고도 국민의 허락을 얻어내지 못한 선거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에 절묘한 효력이 있다. 정치활동 재개에 대해『국민에게 굳이 변명하지 않겠다』는 말은 또다른 효력을 가진 말이다.그 말은 『나 나왔다 그래,날 어쩔래…』하는 정한한 느낌을 담고 있다.다소 거친 힘의 분위기다.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당선된 광역 지역단체장들과 의원들에 대한 「관리」론도 그의 힘을 과시하는 말로 적절한 효과가 있는 말이다.지방행정의 성숙하고 원활한 행정을 기하기 위해서 당이 관심을 가지고 훈련도 하고 토론도 한다는 수사학이 따르고는 있지만 이는 오히려 신당에 즈음하여 고답한 관록의 가부장적 영향력을 선언하는 말이다.『누가 봐줘서 된 자리인지 잊지말게.하고 섣부른 이반은 용서하지않는다는 것을 알게』하는 「가족」론으로 들린다.사람에 따라 겁먹게 하기에 알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 처절한 『살생부』.그를 둘러싼 분위기를 점차로 고조시켜 결정적인 힘으로 완성시킨 용어가 이 것이다.생살 여탈권을 쥔 힘의 소재를 인식시키는,효과가 지나치게 좀 큰 용어였다. 우리 다 알다시피 살생부란 저승사자를 내보내는 염라대왕이 쥐고 있다는 명부다.이 시점에 왜이리 험악한 용어가 나돌았을까.이제와서는 신당을 음해하기 위해 누군가가 만든 것이라며 억울해 하는 말도 나오지만 그말이 나오기에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든 것은 어쨌든 김대중씨다. 그의 대변인은 예사로 『선생님의 뜻이다.당신은 공천에 문제가 없으니 신당에 함께 가자』는 말로,「살생부」를 두려워하는 인사들을 회유한다는 보도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김대중씨의 힘의 절대성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그의 신당행을 따르지 않는 의원에게는 『…차라리 초선의원으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하는,사람들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충분히 자극하는 힘을 쥐고 있는 그 「두툼함」. 그는 창당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생각해보면 국민들은 그에게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다.국민이 그에게 은퇴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은퇴」를 번복한 것은 오직 그의 문제일 뿐이다.그가 국민에게 심판을 받을 때 그에 대한 의견을 국민은 표로 나타낼 뿐이다.그런데도 두툼하고 힘과 권위가 넘쳐보이는 모습으로 기라성 같은 권솔을 거느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모양새는 그의 문제를 『국민적인 문제』처럼 보이게 하는 효력이 있었다.잘 연출된 그림이다. 당사에 투자된 수십억의 재산을 포기하면서 그는 옛집으로 들어가 기성의 것을 차지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선생님」이란 호칭이 『신성 불가침』하게 자리잡은 그 본집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방해받을 리는 없겠는데 그래도 그는 셋방살이로라도 새살림을 차렸다.낡아서 손질해보아야 표도 나지 않고 아무리 연고가 있는 집이라도 남의 집이었던 집에 들어가는 모양새로는 가부장적 권위가 침해받을지도 모른다.「선별해서」받을 수도 없고 두고보니 「괘씸했던」아랫사람을 갈아치워 버리기에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두툼해진 그의 모습은 그런 것을 시시 때때로 읽게 해준다.
  • 남파된 빨치산부대(새로쓰는 한국현대사:28)

    ◎3개단 수천명 북한조종따라 게릴라전/경찰·관공서 무차별 습격·방화… 살인까지 대한민국은 건국 초기부터 남북 공산당의 도전을 받았다.그것은 가히 야누스적인 것이었다.공산당은 몇개의 다른 얼굴을 하고 혁명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했다.그 양상은 합법 공개적 정치공세와 민족통일을 명분으로 내세운 통일전선공작,무력투쟁 등으로 표출되었다.특히 북한 노동당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노선과 남로당의 좌경모험주의적 지도노선이 맞물린 유격투쟁은 역사의 범죄로 기록될 수 있다. ○북한노동당 직접 개입 우리는 유격전이 전면화한 1949년 이른 시기에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 이전 대한민국 태동기나 정부수립 직후의 유격전을 남로당이 거의 주도했던 것과 달리 북한의 노동당이 직접 개입했기 때문이다.49년 2월 북한 노동당은 남한에서 전면적 유격전을 펴 나간다는 방침을 굳혔다.유격전의 배경에는 계급투쟁이라는 공산주의 기초이론이 깔려 있었다.그리고 남조선 해방의 여건을 부추긴다는 측면에서 유격전을 서둘렀다. 이같은 결정에 따라 북한노동당 연락부와 남로당 재북 지도부 및 서울 현지지도부는 당 조직력을 풀가동시켰다.먼저 남한의 산악지대를 대상으로 5개 유격전구를 설정했다.그 유격전구는 ▲지리산지구 ▲태백산지구 ▲오대산지구 ▲월아·속리산지구 ▲제주도지구였다.유격전의 전력은 북한에서 직접 조직하여 침투시킨 부대와 남한의 지하당 당원들로 조직된 부대들로 충원되었다.이들 유격부대는 19 48년 2·7폭동을 계기로 조직한 무장소조 야산대와는 성격이 사뭇 다른 본격적 빨치산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노동당 지도부는 이미 1948년말께 3천5백여명의 남로당원들을 월북시켰다.유격전에 필요한 군사교육 훈련을 위해서였는데,이들은 강동학원에 들어갔다.강동학원은 남로당 간부들의 정치·군사교육을 위해 1947년 8월말 평남 강동군 대성면 대성탄광 시설물에 설립되었다.설립당시 학원장은 김책이었으나,얼마후에 박병율로 교체되었다.이밖에 함북 회령군관학교에서도 유격전에 필요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유격훈련 시켜 남파 1949년 3월 남북 노동당 연합정치국은 유격투쟁개시신호를 올렸다.「남조선에서 유격투쟁을 조직 전개한데 대하여」라는 성명이 그것이다.그리하여 남로당 주도의 김지희부대가 남아있던 지리산에 지휘간부가 파견되었다.이어 이현상을 비롯한 선발대 5명이 38선을 넘어 서울로 숨어들었다.서울에서 김삼룡을 접촉한 선발대는 남한 정세와 유격전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전주를 거쳐 지리산에 입산했다.이현상이 출발한지 20여일 정도 뒤에 정두한·전병권이 지휘하는 간부부대가 부안해안에 상륙,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남로당 계열의 지리산 김지희 부대는 북로당 중심의 빨치산 부대로 개편된 것이다.그 유격대가 바로 이현상을 사령관으로 한 제2병단이다.지리산 부대는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활동했다.19 49년 6월초에는 김달삼을 사령관,남도부를 부사령관으로 한 제3병단이 오대산 지구에 침투했다.강동학원 출신 6백여명이 제3병단의 주병력이었다.이가운데 3백명은 남도부의 지휘로 가야산에 입산할 계획이었으나 끝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제1병단은 8월6일 태백산·소백산 지구에 침투해 들어왔다.이호제 부대로도 불린 제1병단은 인민유격대 총사령부격으로 남파되었지만,국군 토벌대에 의해 전멸하고 말았다.이 토벌작전에서 사령관 이호제와 정치위원 박치우가 사살되었다.참모장이었던 서철이 겨우 살아서 월북했다.이런 와중에 강철(본명·박민학)이 지휘하는 3백명의 유격대가 월악·속리산 지구에 닿았다. 산악지대에 침투한 인민유격대의 공격은 이른바 9월 대공세를 정점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경찰서와 지서,각종 관공서에 대한 습격과 방화는 물론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다.특히 전남북과 경남북,강원도에서 기승을 더 부렸다.그러나 한국군과 경찰의 강력한 토벌작전에 직면했다.경북 북부와 강원도의 인민유격대의 타격은 치명적이었다.그 결과 이현상 부대를 제외하고 유격전구 설정은 실패하고 말았다.그래서 지리산 유격전구는 남한 유격투쟁의 총본산이 되었다. ○경남북·강원도 더 기승 1949년 10월 북로당 빨치산 출신들에 의해 남한에서의 유격전은 국부전략으로 바뀌었다.일정지역에서 유격거점을 만들어 빨치산과 정규군이 합친다는 것이 국부전략이다.그 거점으로 ▲옹진반도 ▲강원도의 태백·소백·일원산 지역 ▲지리산과 백운산 지역을 활용했다.이에따라 1950년 3월 김무현,김상호,윤상철을 사령관으로 한 3개 빨치산 부대 1천여명의 병력이 남으로 다시 내려왔다.그러나 남하도중 국군토벌대를 만나 거의 북으로 달아났다. 이들 빨치산부대는 현지 지하단 조직과 연계하지 않고는 활동이 불가능했다.그래서 남로당에 잔존한 지하당원들이 가담했다.대한민국 수립 이전부터 무장투쟁을 담당했던 야산대도 뒷받침되었다.또 19 48년 10월 여수반란사건과 같은해 11월부터 3차례에 걸쳐 일어난 대구반란사건,1950년 4월의 제주 4·3사건에 연루되어 입산한 사람들도 유격대에 편성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역임한 바 있는 R A 스칼라피노 교수는 이정식과 함께 쓴 저서 「한국의 공산주의」에서 당시 남한의 공산당원을 4만명으로 추산했다.그러나 이 숫자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다.이보다 더많은 국민이 공산당 동조자나 지지자이고 또는 회유되거나 협박에 의해 공산당 지령을 수행한 것으로 기술했다.남파된 빨치산은 바로 이러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신생 대한민국의 토양위에 얼마만큼 기생했던 것이다. 그러면 공산주의 핵심세력은 접어두더라도 동조자들은 누구인가.말할 나위도 없이 로맨틱한 공산주의 환상에 빠져든 사람들이다.「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환상에…. ○남로당 지하당원 가당 건국이후 19 49년부터 전면 유격전 양상을 띠고 활동한 빨치산은 평양의 노동당이 조종했다.이른바 「혁명적 민주기지」를 후방에 건설한다는 전략적 의도를 깔았던 것이다.북한의 정규무력과 협동·배합한 가운데 지속적으로 빨치산 부대를 남파했다.특히 19 50년에 남으로 내려보낸 빨치산 존재를 간파했더라면 한국전쟁의 징조를 일찍 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양 「투사신문」/북,50년 「5·30총선」 방해 극렬 선동/「선거관계자 숫청·후보자 처단」 등 내용/북 선전지… 빨치산아파트에 비밀 배포 북한이 대규모로 남파한 유격부대들이 신생 대한민국을 고립 약화시킨다는 전략 아래 19 50년 5·30총선거를 5·10총선거 못지 않게 방해한 사실이 드러났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공문서 보존기록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자료를 통해 입증한 것으로 선거방해수법이 아주 악랄했다. 이 자료는 소련파 한인 2세로 보이는 한효(주필)의 명의로 평양시 민본리 15에서 제작한 「투사신문」 19 50년 6월7일자.36×27㎝크기로 4면을 발행했다.그러니까 5·30총선이 실시된 직후에 배포한 이 선전지는 거의 선거 방해공작 실상을 기사형식으로 다루었다.「제2의 망국선거 파정투쟁에서 빨치산은 이렇게 싸웠다」는 제목을 뽑고 각 지역 선거방해 소식을 싣고있다.이밖에 대한민국 정부와 공무원을 공격하고 물가가 비싸다는 내용의 기사도 보인다. 그리고 「제2 망국선거는 매국노들의 폭압하에 허위날조 되었다」는 제목의 장문을 싣기위해 아래쪽 4단을 할애했다.또 「빨치산 실화」를 실었는 데,그 제목은 「산나물 팔러온 소녀」.당시 신문편집 스타일을 지키면서 활판 인쇄물로 제작했다.이 선전지는 강동학원 등의 빨치산 양성기관과 대남사업 담당요원에 배포한 데 이어 비밀루트를 통해 남한 전역의 빨치산 아지트에 보내졌다.
  • 독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세계의 명작/걸작건축 감상:20)

    ◎디자인된 “3차원적 공간”/전시관 내부는 절묘한 「여백의 미」 연출/건물·미술품이 완벽한 하나의 작품으로/거장들의 개인전시 공간은 각각 다른 형태로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 20세기초 새로운 건축 형태를 추구하는 대전환의 바람은 독일을 중심으로 세차게 일어났다.2차 대전 후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시간적 제약 조건 속에서조차도 독일의 폐허되었던 도시들은 근대 건축의 철학을 깊이 담고 있는 건축물들로 복구되어,지금은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역할을 하고 있다.이러한 근대 건축운동의 신기원을 열어간 독일인들은 현재까지도 세계 유명건축가들을 초대하는 건축전과 공모전을 수시로 열어 간과할 수 없는 현대 유명 건축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건축하고 있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축기행의 명소가 되고 있다. 독일인들의 건축에 대한 높은 예술적 인식은 19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각 도시들의 미술관 신축 및 증축계획으로 또다시 세계 건축인들의 관심을 모았다.이중에서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건축된 10여개에 달하는 소규모 미술관과 박물관은 제각기 독특한 소장품과 함께 창의적인 건축형태를 지니고 있어 전시관 박람도시를 연상케한다. ○“하나의 예술품” 승화 여기서 소개하는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은 입면 형태와 공간적 조형성을 통하여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되어 강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미술관 건축의 새로운 시도를 제창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미술관은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지역의 보행자전용 상가 지역인 자일,이 도시의 상징인 파올 교회,로마 지배 당시부터 시청사로 사용해온 뢰머 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이렇게 시민들의 접근이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점은 현대미술이 일상 생활과 매우 친근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한 눈에 알게 한다.원래는 2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된 곳에 식당이 있던 자리로 시에서 처음에 음악 박물관을 계획하였던 곳이었다.그 당시 현대미술관은 지금의 건축 박물관 자리에 함께 할 계획이었으나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기에 부적합한 대지 조건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독립된 미술관이 건립되기까지는 프랑크푸르트시의 12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오랜 기간의 계획 끝에 건축된 현대 미술관은 종래의 틀에 박힌 설계개념에서 탈피하여 건축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술관으로 탄생되었다.외관은 브라우 바흐 거리,베르리너 거리,돔 거리가 만드는 뾰족한 삼각형의 대지 형태를 그대로 쌓아 올리고있어 「케이크조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삼거리에 면한 세방향의 외관은 서로 다르게 처리되고 장식이 강조된 포스트모던 양식을 추구하고 있다.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건축물이기에 형태창출의 제약을 받고 있는 외적조건은 금속조각품과 건축을 접목시켜 건축의 조형성을 통해 「현대」미술관임을 외부에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이러한 건축 형태적 제스처는 현대의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회를 현대 미술이 복합적인 언어로 구성하여 표출해 내고 있듯이 단순하지 않은 「현대성」을 지닌 미술품들을 수용하고 있는 건축물임을 자인하며 표현의 절제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공간 조형물도 작품 그런가하면 전시관으로서는 실험적인 내부공간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인들의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일반적으로 미술관은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장소」로서 전시된 미술품이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배경 공간으로 설계된다.그러나 프랑크푸르트 미술관은 이러한 종전의 미술관 건축의 기본개념에 도전하고 있다.건축물 자체가 거닐 수 있는 조형 예술로 작품화되어 공간 속에 미술품들을 전시함과 동시에 디자인된 3차원적 공간도 함께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대칭적이면서도 관람자의 흐름을 강하게 유도하고 있는 내부공간은 천장·벽·바닥·계단 등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조각품으로 승화되어 공간 조형물로 관람되지 않을 수 없도록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특히 중앙홀은 상층이 개방되어 단지 동선의 연결을 위한 기능 뿐만 아니라 관람자들의 움직임과 함께 다각도에서 조망될 수 있게 하여 공간조형물로 작품화되고 있다.원래 전시공간으로 계획되어 있지 않았던 중앙홀에 전시가 계획되었을 때 건축가와 전시책임자가 지면을 통해 논쟁을 벌일 정도로 순수 건축공간 자체에 대해 설계자는 강한 자부심을 표명하고 있다. 동시에 전시관 내부는 전시품들의 적절한 연결과 적절한 공백이 절묘한 공간 기교로 연출되고 있어 그 속에서는 공간 조형의 빈틈없는 감상과 함께 숨가쁜 관람의 무드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요셉 보이스·앤디 와홀·백남준 등등 세계의 현대미술 거장들의 개인 전시공간이 제각기 다른 형태로 제공되고 있는 점은 이 미술관의 건축적 가치를 극에 달하게 한다.현대의 조각품은 전통조각품과는 달리 지지하고 있는 받침대를 넘어서고 있고,회화는 고립시키고 있는 액자를 불필요하게 하고,환경 설치물은 그것을 담고 있는 공간과 특별한 관계를 요구한다.이러한 현대미술의 특성들을 살려 개개인의 작품특성에 따라 전시실의 크기나 높이가 다르고 전시 방법이나 조명이 작품마다 다르게 처리되고 있다.이것은 마치 건축 공간과 더불어 작품이 완성되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도 들게할 정도다.따라서 이곳에서는 건축이 전시품의 배경이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전시품들과 대화를 가지고 상호 더욱돋보이게 강화해 주는 예술적 건축 공간만이 존재한다. ○건축가 홀라인 설계 제공된 건축공간이 없이는 전시된 미술품도,예술가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시품과 건축이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미술관이 창작되기까지는 건축가의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배경이 되고 있다.1985년 국제 현상공모로 당선된 이 건축작품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건축가 한스 홀라인에 의해 설계되었다.그는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이곳에 상설 전시될 작가들과 설계이전부터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오랜 기간을 두고 작품전시에 대한 논의를 거친 후에야 건축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설계진행 과정에서부터 전시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 건축과 미술품이 완벽한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된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을 대하면 창조된 건축공간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한편으로는 문화적 용도이든,주거용도이든,용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수용위주로 졸속이계획되고 있는 우리의 경박스런 건축문화에 견주어 보면 이 미술관이 지니는 건축공간 자체의 숭고한 질적 가치에 대해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 극초저온 냉각 성공/콜로라도대 연구팀/아인슈타인 예언 실험

    【도쿄 연합】 미국 콜로라도 대학 연구팀이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박사가 70년전 예언한 「슈퍼 원자」상태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콜로라도 대학의 칼 워먼 박사팀은 이날자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지지를 통해 기체를 극초저온상태로 냉각시킴으로써 원자가 운동을 정지하는 이른바 슈퍼 원자상태를 실현했다고 발표했다.
  • 전시회 총지휘 호암갤러리 학예 연구실장 김재열씨(인터뷰)

    ◎“문화민족 자긍심 찾는 계기 됐으면” 『고려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은 실로 경탄할만큼 우수합니다.그러나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평가절하돼 오늘날에는 청자,불화 등 몇가지 두드러진 성과만으로 피상적인 평가를 받고 있을 뿐 그 위대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문화전반을 총망라하는 「대고려 국보전」을 총지휘한 호암갤러리 학예연구실장 김재열씨(42)는 『이같은 역사적 오류를 바로 잡아 우리 문화의 본류를 밝히는데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찬란한 고려시대 문화의 진수를 보여줄 귀중한 예술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지난 2년동안 각국의 미술관 도록을 다 뒤지다시피 했고 해외 출장도 셀 수 없이 다녀왔다』는 김실장은 『최근들어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향상되어서인지 외국 박물관이나 소장처에서 상당히 협조적이었다』고 말했다. 『몇년 전까지만해도 한국 문화재를 본국에 빌려줄 경우 과연 제대로 되돌아올까 하는 의구심에 출품하기를 꺼려했던 일본에서조차도 웬일인지 쉽게 물건을 내 주더군요.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예전에 비할 수 없을만큼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에 흩어진 고려 문화재를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았지만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의 귀중한 예술품을 흔쾌히 출품해주는 경우도 예상밖으로 많았다. 현존하는 불화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일본 경신사의 「수월관음도」나 런던 대영박물관의 「청자 진사채 당초문완」,뉴욕 메트로 폴리탄미술관의 「나전대모국당초문 삼엽형함」,일본 당마사의 「나전대모국당초 염주함」,도쿄박물관의 「청자조각동녀형 연적」 등이 그 예. 반대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직지심경」은 여러차례 시도를 했으나 결국 수락을 얻어내지 못한 경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경」을 실물로 전시하지 못하고 영인본만을 전시하게 돼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그는 「그래도 가장 방대한 규모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가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찾게 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코트디부아르 「평화의 성당」(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19)

    ◎3년만에 건립한 세계최대 성전/콘크리트 기둥·대리석을 조립식으로 축조/“영혼없는 건축”… 집권자의 과대망상적 산물/높이 170m 총33만 8천여명 동시 미사참여 가능 명지대학교 최재필 지금은 작고한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새삼 경탄을 하게 된다.김환기화백의 그림은 그저 조그만 네모와 그 속의 점들이 커다란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다.이 그림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이거 뭐 이래? 애들 장난같잖아』하는 반응을 보일는지 모른다.아무런 뜻도 없는(다시 말해서 의미있는 형태가 아닌)그저 조그만 무늬의 반복은 시정 아낙네의 치마폭에 인쇄된 무늬와 무엇이 다를까 하고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김화백이 네모 하나하나,점 하나하나를 캔버스에 그리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자.김화백은 노년이 되어 마지막으로 그 큰 캔버스에 네모 하나,점 하나를 찍으며 그간 그의 일생에서 스쳐지나갔던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만나서 좋았던 사람.이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젊었을 시절 신세를 졌던 사람.김화백은 네모 하나 점 하나를 그려가며 이들과의 추억을 되살리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리라.밤이 새도록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새벽 그 넓은 캔버스에 이제는 더 채워넣을 공간이 남지 않았음을 발견했을 때,그는 그가 그동안 보냈던 삶의 전부가 이 한장의 캔버스에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하며 탈진한 그의 육체를 뛰어넘는 초월의 경지를 느꼈으리라. ○규모 웅장… 감동은 없어 바로 이런 것이 예술품의 가치가 된다.이러한 가치는 비단 미술품에 그치지 않는다.건축도 마찬가지다.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물도 이것이 땅 위에 굳건히 서게 되기까지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것에 용해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유럽에는 대성당이 많다.로마 바티칸시의 성베드로 성당,파리의 노트르담사원,런던의 성바오로 성당 등.이들 성당 앞에 서면 그 웅대한 규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에까지 정열을 쏟아 만들어 놓은 세심한 장식 디자인에 우리는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신을 향한 인간의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이들 건물을 짓는데 수백년이 걸렸다.중세의 장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는 말이다.이들중 대부분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된 건물을 보지도 못했다.그렇지만 이들은 벽돌 한장한장을 쌓아가며 스테인드글라스 한조각 한조각을 맞추어 나가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또 그것이 아름다웠든 그렇지 못했든지를 막론하고 그것을 신에게 바친다는 태도를 견지했을 것이며 자신이 마치지 못한 작업은 그의 아들에게,그의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그래서 수백년이 흐르면 비로소 그토록 아름답고 장엄한 성당이 완성되어 오늘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이보다는 인내심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바로 5년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 단 3년만의 공사 끝에 건립되었다.더구나 이 성당은 본고장 유럽에 있지도 않다.「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이름지어진 이 건물은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라는 나라의 야무스크로시에 세워진 것이다. 성당 중앙부의 돔은 지름이 90m에 이르며,꼭대기의 높이는 지상에서부터 1백70m니 우리나라 63빌딩보다 약간 낮은 정도다.그러나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몇개가 이 돔 안에 들어갈 수 있다.성당 내부 제단의 캐노피(차양)높이만도 9층 높이가 되며,10층 건물의 높이를 가진 창문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총면적은 2만3천평에 이른다.그뿐이랴.이 성당에는 좌석이 7천석이 있고,추가로 1만1천명이 서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게다가 대리석이 깔린 옥외광장은 3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모두 총합 33만8천명이 동시에 미사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코트디부아르의 행정수도로 근래 새로이 개발된 야무스크로시의 총인구가 3만명을 넘지 못하고,그중에서도 카톨릭 신자는 4천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렇듯 비현실적이다 못해 과대망상적으로 큰 성당을 지은 사람은 다름아닌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인 펠릭스 우페이 바냐다.참고로그는 코트디부아르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이제껏 35년간 대통령을 해오고 있다. ○63빌딩보다 약간 낮아 우페이 바냐 대통령이 어린시절,그의 고향 야무스크로에는 성당이 없었기 때문에 영세를 받기 위해서 수십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그의 고향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자신의 고향에 아름다운 성당을 갖고자 하는 개인적인 염원 자체야 높이 사 줄만 하지만,이러한 염원이 과대망상적인 사고로 귀결지어진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이 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3년만에 뚝딱 지어졌다.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피에르 카브렐리라는 건축가는 다음과 같이 회상을 하고 있다.처음 우페이 바냐 대통령에게 불려간 자리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대한 꿈을 이야기했다.나는 요즈음 누가 이런 고전양식의 성당을 지으려고 할까하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그리고는 이 성당을 언제까지 완공해야 할는지 물어보았다.대통령은 바티칸의 교황이 4년만에 한번씩 아프리카를 방문하는데 그가 작년에 왔다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다음번 방문까지 몇년이 남았는지를 나보고 계산해 보라고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대의 성당은 3년만에 지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기술이 없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돌 하나하나를 깎고 기둥을 하나씩 만들어 지은 중세의 성당과는 달리 이 성당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부재(공상에서 미리 만든 콘크리트 기둥이나 벽체 등)를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을 써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김환기화백의 네모와 점에 녹아든 영혼,또는 중세 장인들의 수공예작품에 밴 종교적 열정을 여기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 대통령의 업적” 과시 어느 후진국 장기 집권자의 개인적 욕구에서 시작되어 과대망상적으로 지어진,그러나 영혼이 없는 건축,이것이 이 세계최대 성당의 현주소다.우페이 바냐 대통령의 나이는 현재 90세가 넘었다.그가 대통령직에서 어떤 연유로든지 물러난 후에도 이 성당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닐지 우리는 예측할 수가 없다.후진국의 장기 집권자나 식민통치자들은 거개가 다 자신의 통치기간 중에 개인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대형 구조물을 한 두개쯤은 지어놓게 마련이고,이들이 권력을 잃은 후에도 대부분의 이러한 건축물은 오래지 않아 장대한 기념식과 함께 허물어지거나,요행히 그렇지 않더라도 그 모습이 쇄락해지게 마련인 것을 우리는 멀고 가까운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올 8월이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게 된다.5공 시절 세워진 천안의 독립기념관의 그토록 장엄한 모습이 요즈음 그리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쓸쓸한 퇴기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국민의 성금(?)으로 시작된 평화의 댐 공사는 그래도 중간에 무산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34년만에 처음으로 인구 1천만의 국제도시 서울에 민선시장이 선출되었다.포부도 크고 개인적인 신념도 가지고 있겠지만 세계최대의 무엇을 서울에 들여놓고자 무작정 밀어붙이는 일만은 삼갔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 “고사작전 맞서기” KT 전열정비/민주당 양계파 물밑 접전 치열

    ◎당권 재도전 위해 비주류와 연대 모색­이 총재/DJ 친정체제 구축… 승부수 곧 가시화­동교계 민주당 이기택총재는 6일 국회 정당대표연설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지역등권론」에 대한 비판수위를 무척 낮췄다.『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지역정당화는 심각한 정치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고 원론적으로 언급했을 뿐이다.세대교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치는 정치적 정체와 퇴행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간접화법으로 한마디 한게 고작이다.전날 동교동계의 한화갑의원이 자신을 겨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음에도 즉각 반격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이총재와 동교동계의 내분양상도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든 모습이다.하지만 서로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룰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다는 해석이 적절할 것 같다.국가적 재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삼풍 사고를 앞에 놓고 당권싸움으로 비쳐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모양새로나 적절치 않다는 게 양측의 생각이다. 그러나 물밑싸움은 치열하다. 이총재는 동교동계가 이미 자신의 배제방침을 굳히고 「고사작전」에 돌입한 것으로 판단,나름의 대비책을 강구중이다.공세적 차원에서 당권 재도전 의사도 분명히 하고 있다.사조직인 통일산하회를 통한 세확대에도 이미 착수했다.이총재측은 대통령제와 세대교체론을 한묶음으로 하고 내각제개헌과 지역등권론을 또다른 묶음으로 한 단일전선으로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당권경쟁을 「동교대 비동교」대결구도로 몰아가 개혁모임 및 김상현고문의 비주류측과도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이것이 성사만 되면 동교동측의 당권주자인 이종찬·정대철고문중 누구도 당권장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같은 맥락에서 이총재측은 8월 전당대회의 연기와 이에 따른 상황변화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만반의 시나리오를 상정,김이사장의 친정체제 구축작업을 벌이고 있는 인상이 짙다.김이사장도 장고에 들어갔다.당주변에 떠도는 시나리오만도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이총재를 배제한 공동대표제,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한 순수 단일지도체제,김이사장이 당고문을 맡는 고문체제등 여러가지다. 하지만 김이사장은 아직 정계복귀를 공식화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순수 단일체제와 고문체제가 채택될 공산은 희박하다.결국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냐,아니면 공동대표제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다.첫째는 이총재가 자파세력을 총동원,동교동의 시나리오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DJ 흠집내기」에 열을 올린다면 김이사장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또하나 변수는 김상현고문이다.만약 그가 이총재와 연합하면 동교동의 구도는 착근조차 힘들다.까닭에 동교동계는 최근들어 김고문을 이·정고문중 한명과 함께 공동대표로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악의 경우는 「헤쳐모여」식의 신당창당도 검토하고 있으나 너무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된다는 점에서 아직 설에 그치고 있다. ◎이기택 총재 국회연설 요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희생자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비통한 심정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연이은 대형참사로 국가위신은 물론 국제적 신뢰까지도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이번 대형참사는 국가와 정부·사회공동체의 총체적 붕괴위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이번 참사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범국민적 대책을 강구할 것을 제안합니다. 무엇보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몰고온 심각성에 주목하여 국민에게 사과해야 합니다.1천명이상의 사상자를 낸 현정권의 무능과 책임은 더이상 사과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현내각은 마땅히 총사퇴해야 합니다.아울러 미국의 연방재난구조국처럼 상설적인 국가안전관리처를 설치,시설물 안전관리와 재난구조,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그리고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대형사고의 책임자를 민·형사상의 엄벌에 처할 수 있는 법적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제 성장제일주의 우선정책을 끝내야 합니다.물질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건강한 사회를 위해 범국민적 차원에서 정신개혁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돼야 합니다. 6·27지방선거는 현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였습니다.현정권은국가경영 실패에 대한 국민의 냉엄한 심판을 뼈저리게 수용해 새출발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독선과 오만을 버리고 개혁의 방향과 방법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한편 이번 선거는 지역갈등이 심화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그 일차적 책임은 바로 현정권이 져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망국적인 지역갈등 치유에 나서 지역개발의 균형과 안정에 발벗고 나서야 합니다.선거운동기간중 나타난 현행 선거법상의 불합리한 점은 고쳐야 합니다.기초의회까지 정당공천제를 실시해야 합니다.그러나 민자당의 지방선거 분리실시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뿐입니다. 대북쌀지원을 계기로 WTO이행특별법상의 남북간 민족내부거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해야 합니다.외교문서 변조파문은 엄정한 조사를 통해 조속히 그 진실을 밝혀 문서변조가 사실로 드러날 때는 관계장관을 인책해야 합니다.올상반기 무역적자가 67억달러에 이르러 작년동기에 비해 두배이상 늘어났습니다.무엇보다 중소기업에 대한 획기적인 회생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우리의 마지막 경종입니다.원점에서 우리 모두 무너진 도덕의 다리를 재건하는 운동에 나섭시다.
  • 이춘구 대표 「선거제도 개혁」 왜 제의했나

    ◎“지역할거 청산” 중선거구제 해법 제시/총선서 여소야대구도 탈피 모색/민주 찬반양론… 성사 불투명 민자당의 이춘구 대표는 5일 국회 정당대표연설에서 6·27 지방선거이후 지역적으로 갈라진 정치구도에 「선거제도개혁」이란 묘한 해법을 제시했다.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대표의 발언은 지역감정극복을 위해 국회의원선출방식을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어떠냐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를 둘러싼 정가의 반응은 다양하다.민자당은 명분에서 공감하지만 내놓고 추진할 처지는 아니라는 분위기다.민주당은 얽혀 있는 당내 역학구도 때문에 분명한 의견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본격적으로 공론화가 된다면 그만큼 진통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듯 민자당도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고 꼬집어 얘기한 것은 아니라고 일단 「꼬리」를 내리고 있다.이대표가 언급한대로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타파하기 위한 모든 노력의 한 방법일 수는 있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사정은 한결 절실하다.민자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감정의 「쓴맛」을 보았다.상당수가 『특정지역에서 1등이 어렵다면 2등이라도 해서 따내자』고 주장한다.다만 이러한 의도를 내비추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이다.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호남·충청·대구권 출신의원은 두손을 들어 환영하고 있다. 충남 예산 출신의 오장섭의원은 『소선거구제는 선거비용이 많이 들어 시대추세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지역이기주의를 벗어나려면 골고루 뽑을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반응은 계파에 따라 판이하다.동교동계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주장한 지역등권주의를 통해 3당구도를 정립시켰다는 데 대해 만족스러워하고 있다.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여소야대」국면을 내년 총선까지 그대로 끌고가면서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계산이다.따라서 이대표의 선거구제도 개편제의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이기택 총재쪽은 이와 달리 긍정적이다.민주당이 지역색을 극복하기 위해 2인이상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지역정당탈피라는 명분과 함께 비호남권에 자기세력을 구축하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곁들여 있다. 하지만 동교동계가 당내 역학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자당의 주장이 먹혀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민련은 현행 제도를 유지해도 밑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나 충청권 이외 지역의 이해득실을 검토하며 당론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민자당에서도 아직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이대표가 제의한 「선거제도개혁」 문구를 놓고 고위당직자회의 및 대표연설문기초소위에서 『넣자』『빼자』는 의견이 맞서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윤환 사무총장은 『국회의원선거가 9개월밖에 남지 않는 시점에서 야당이 반대하면 어렵지 않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이대표의 이날 제의는 여론과 야당의 반응에 따라 추진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애드벌룬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춘구 대표 국회연설 요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부실한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이번 참사를 계기로 안전관리청의 신설,신속하고 효율적인 재난구조를 위한 재난관리법 제정,건설분야의 총체적 부실치료를 위한 건설제도개혁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겠습니다. 4대지방선거를 통해 국민 여러분은 준엄하게 집권당을 꾸짖어주셨습니다.집권당이 자만에 빠지고 결속하지 못할 때 받는 채찍질을 절감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국정을 펴나가는 데 있어 당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며 언로를 활짝 열어 직언하는 풍토를 만들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됐습니다.지방자치가 당파적 대결장으로 전락해서는 안되며 중앙과 지방의 대립,지역간 대결등을 경계해야 합니다. 지역감정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며 그 타파를 위해 선거제도개혁등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선거기간중 일부에서 개헌문제를 제기했으나 대통령직선제를 시행한 지 10년이 안되고 통일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므로개헌논의는 소모적·분열적 논쟁에 불과합니다. 실질적 현안으로 먼저 지방화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제도보완이 필요합니다.지역이기주의 극복,중앙과 지방의 조화,자치단체간 분쟁조정등 대책을 세우고 지방세제를 개혁하겠습니다. 6·27선거는 가장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였지만 동시선거로 인해 국민의 참다운 선택권이 제약당하는등 문제가 많았습니다.선거의 분리실시를 검토하고 선거제도의 불합리는 국회 지방자치특위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한 쌀지원선박이 인공기를 달고 하역작업을 한 데 대해 정부는 깊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무조건 양보나 타협이 능사가 아닙니다. 나라의 체통과 정부공신력에 타격을 준 외무부공문서 변조사건은 문서변조사실이 분명히 밝혀졌습니다.정부는 누가,무슨 목적으로 변조했는지 속히 의혹을 풀어줘야 합니다. 한국통신 분규수습과 관련,종교인에게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바입니다. 안전관리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 국민불안을 해소하고 2001년까지 도시철도망을 2배로 확장하는 한편 98년까지 전국민연금제도를 실시하는등 민생문제해결에도 앞장서겠습니다.
  • “북에 경영 컨설팅/이달말 중국서 사업의향서 교환”

    ◎국내 컨설턴트협 국내 컨설팅업체들은 북한의 기업에 경영기법을 알려주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빠르면 연내에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경영컨설턴트협회는 5일 남북쌀회담의 북쪽 파트너인 조선삼천리총회사와 북한의 최대 무역회사인 대성무역에 대해 올 하반기에 무역 마켓팅 등 경영컨설팅을 실시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발표했다.한국경영컨설턴트협회는 경영컨설턴트들의 모임이다. 협회의 전담팀은 이달말 중국에서 북한쪽과 만나 사업의향서를 교환할 방침이다.중국 등 제3국에서 조선삼천리총회사와 대성무역의 무역일꾼(외화벌이꾼)들에게 컨설팅할 계획이다.협회는 이번 주에 통일원에 대북사업신청서를 내기로 했다.
  • 「여씨춘추」 완역 출간/김근 계명대교수,집필 5년여만에

    ◎전국시대 정치철학서 총 26편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정치철학서 「여씨춘추」가 5년여 만에 완역됐다.김근 계명대교수는 여씨춘추 번역본의 셋째권인 「육론」을 최근 펴냈다(민음사 출간). 육론은 「십이기」,「팔람」과 더불어 여씨춘추를 구성하는 세부분의 하나.십이기와 팔람 번역본은 지난 93∼94년 이미 나왔으며 따라서 이번 육론 발간으로 총 26편,20여만자에 이르는 여씨춘추의 번역 작업이 완성됐다. 여씨춘추는 서기전 3세기 진나라 재상인 여불위가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을 집대성한 위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편찬케 한 정치철학서로 동양 정치철학의 원류로 꼽힌다.제왕에게 전횡을 자제하고 「백성의 부모가 되라(위민부모)고 가르친 그 내용은 한나라 이후 중국 통치철학의 줄기가 됐다.도가사상을 비롯해 유가·병가·농가·혁명가등 제자백가의 사상을 두루 담으면서도 여불위 특유의 해석이 더해져 잡가 또는 신도가라는 별도의 사상체제로 분류된다. 또 중국 역사의 시작인 삼대로부터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는 각 시대의 역사와 설화를 곳곳에 인용한 문장은 중국 고전 가운데서도 백미로 인정받는다. 여씨춘추 완역에 대해 정재서 이화여대교수는 『중국 고대의 역사와 문화,특히 진한시기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치하하고 더욱이 난잡한 한문투 번역을 벗어나 쉬운 우리말로 표현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 사라진 미풍양속(두만강 7백리:18)

    ◎홍살문 자리에 문혁열사 기념비가…/문혁이후­“토호열신 타도”… 사찰·성황당 등 불태워/「모택동 선집」·곡괭이·삽을 결혼예물로/개방바람 타고 최근 기우제·농악놀이 되살아나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에는 혁명열사 및 혁명전적기념비가 전망좋은 자리에 서 있다.이와는 반대로 그 많고도 많았던 민족 전통풍물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이를테면 혁명을 당해 사라진 것이다.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혁명열사비는 제법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왜냐하면 일제가 조선민족의 혈맥을 끊는답시고 쇠말뚝을 박았던 산혈에 세웠기 때문이다.그러나 화룡시 노과진 죽림촌의 열사비는 자리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다.산언덕에 세운 이 기념비 자리는 본래가 마을 어귀에 있었던 홍살문 자리여서 찜찜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종교를 미신 행위로 이 홍살문은 마을 사람들이 고사를 지내는 한 처소였다고 한다.해마다 음력 10월 초순이면 찰떡을 메로 치고 돼지를 잡아 홍살문 앞에 한상 차려놓고 단군성인께 치성을 드렸다.다음해에도 제발 풍년이 들게해달라고 넙죽넙죽 절들을 했다.치성이 끝나면 제물을 집집이 나누어 창호지에 싸다가 곡식더미 속에 묻었다.그리고 나서 다음날에 가서야 음식을 먹었다. 그래서 홍살문에 얽힌 사연도 많다.한국전쟁 당시 강건너 북한에 사는 안흥국이라는 사람은 홍살문 치성에 참석했다가 떡을 가져다 볏가리에 묻어두었다.그날 마침 미군 비행기가 떼로 날아와 폭격을 해댔다.그 때 벽가리에도 폭탄 파편이 튀었는데,공교롭게도 찰떡에 파편이 박혀 화재를 면했다는 것이다.하지만 홍살문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되었다.마을 노인들의 아쉬운 마음이야 아직도 남아있지만…. 노인들에게는 홍살문 뿐아니라 여러 가지의 민족풍속이 머릿속에 살아있다.그저 생생한 추억으로만 남은 민속을 놀아보지 못 하는 한을 오래도록 지닌 사람들이 오늘날 조선족 노인들이다.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되지 못하지만 노인들은 두고두고 말한다. 『어디 홍살문에만 제사했나….국사당에도 치성을 드렸다.가뭄이 들면 돼지잡아 피를 뿌리고 비를 달라고 기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비가 안와도 기우제를 지내면 마음이 놓였다 이기야.기우제를 지낼때 과부들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내치고 알몸에 물을 뿌리면서 통곡을 해댔디.더러워서라도 하늘이 비를 내릴 것이라고 기런거야』 민족들 가슴에 묻어온 수천년 전래의 풍속이 저의 다 없어졌다.세 차례 혁명에 철퇴를 너무도 세게 맞아 풍비박산이 났다.민족의 전통풍속은 1947년 이른바 토호열신을 타도하는 운동에서 첫뺨을 얻어 맞았다.오늘날 화룡시 덕화진 구역 선경대에는 1885년 하홍락 스님이 지은 절이 있었다.그 후에 불에 탄 것을 1940년 강원도에서 황정숙이라는 비구니가 불상과 종을 가지고 와 절을 복구하고 칠성사라고 불렀다.해마다 초파일이면 이웃 촌민들이 떡을 치고 감주를 빚어와 칠성사에서 불공을 드렸다. ○족보까지 태워 없애 그러다 1947년 정부가 불교를 미신행위로 몰아붙였다.그것도 반동적이라는 명목으로….그 때에 군중이 동원되어 절에 불을 질렀다.절간에서 쫓겨난 그 비구니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다.절의 종은 신흥동학교로 떼어가 오랫동안 학교종으로 썼다. 두만강연안의 수십개 마을을 편답하는 동안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에서 성황당 나무 두 그루를 보았다.1958년 반우파투쟁때 성황당 나무를 닥치는대로 잘라버린 터여서 그것은 참으로 요행이었다.원래는 마을에 네 그루였으나 허수라는 사람이 두 그루는 찍어다 화목으로 썼다.반우파투쟁 이후에 이 나무들에는 왼새끼나 창호지 가닥 대신에 포탄피가 매달렸다.종을 대신한 포탄피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데 이용되었다. 문화대혁명은 모든 전통을 더욱 깡그리 말살해버렸다.상두를 불살라 사람이 죽어서도 덜컹거리는 수레에 실려나갔다.닭을 풀어놓아 묘자리를 잡는 일도 어림없게 되었다.부자간에도 갈라져 「자산계급혈통론」이 나오고 족보까지 태우는 풍파가 일어났다.결혼 때 주고 받는 예단도 「모택동선집」이 제일이요,남자에게 주는 예물은 곡괭이나 삽이었다. 결혼식날 신부는 치마 저고리 대신에 당시 유행하던 군복을 입었다.잔칫상에 개떡이 올라 옛날 지주집 머슴 살던 때를 회상하기 일쑤였다.그래서 잔칫날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어떤 신부는결혼식날 새벽에 망태에다 집징승 똥을 거름으로 담아왔대서 당원으로 발탁되었다.농악놀이에 돌리는 상모가 공산당 영도력을 부정하는 몸짓으로 해석되어 농악을 복고주위로 낙인 찍어버리기도 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친척관계가 엉망으로 변한 것이다.연변에서는 한 때 할아버지는 아바이,할머니는 아매로 불렀다.그러니 외가나 다른 노인들이라고 별수가 없어서 아바이와 아매로 통했다. 아버지 나이를 기준으로 백부는 맏아바이,백모는 맏아매였다.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말하는 아바이·아매와 혼동을 가져왔다.또 아버지 나이를 기준으로 그 아래 친인척을 죄다 아주바이,아주머니로 호칭되었다.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대로 둔 것을 보면 지금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풍속이나 신앙을 뿌리째 말리지는 못했다.1958년 부동골에 극산병이 돌아다닐 때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쌀을 모아 떡을 치고 돼지를 잡아 치성을 올렸다.문화대혁명 당시 우리 고향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에 투쟁을 맞은 비구니가 살았는데,어렸던 내가 아프기만 하면 어머니께서 그 비구니를 찾아가곤 했다는 것이다. ○정치투쟁에서 해방 개혁개방 이후는 구질구질한 정치투쟁에서 해방되어 이제 하고 싶은 일은 하게 되었다.지난해 여름 심한 가뭄이 연변지역에 들자 두만강 연안 용연동에서 기우제를 지냈다.이 때 상화촌 과부 몇이 알몸으로 두만강에 들어가 옛날 사람들이 하던대로 통곡을 하면서 몸을 씻었다.화룡시 용성향 봉산동 마을 옆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어린이들이 자주 생명을 잃자 실로 오랜만에 마을에 솟대를 세웠다. 1938년 경상도에서 집단으로 이주해와 안도현에 자리잡은 신툰의 노인들은 마을에 농악을 보급시켰다.그래서 신툰농악은 지금 조선족의 한떨기 꽃으로 피어나는 참이다.지난해 선경대가 길림성관광지로 개발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북두칠성 절이 복구될 것이라는 소식이다.옥으로 만든 불상은 벌써 옛 절자리에 먼저 안치해 놓았다. 어떤 풍속을 미신으로 매도만 해서는 안된다.전통적 관습으로 마음에 자리잡은 공동체 삶의 한 부분이다.그것은 때로 위로가 되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민족의 단합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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