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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중문화 정립이 세계화로 가는 길”/ 취임 2주년 앞둔 정신문화연구원장 장을병 씨

    “외세강점과 외풍에 시달릴 때마다 우리의 민족문화가 시들었지만 번번이 재기한 것은 굳건한 우리의 향토문화,즉 민중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이 민중문화를 체계화,정립하는 것이 세계화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임을 확신합니다.” 지난 78년 설립된 지 25년 만에 새 틀을 짜기 위한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는 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 장을병(사진·70) 원장.취임 2주년을 앞두고 29일 기자들과 만나 “세상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과거 군사정권의 잔재처럼 인식되는 정문연의 성격이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면서 ‘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을 그 변신의 첫 사업으로 강조했다. ‘향토문화전자대전’은 전국 232개 시·군·구에 산재한 향토문화 자료를 발굴 수집 연구해 집대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내년부터 10년간 연인원 2만여명의 전문학자가 참여해 문화콘텐츠를 구축하게 된다. “정문연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이 지난 97년에도 한 차례 있었지만 무산된 채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하지만 정문연이 이룬 업적중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은 자부심을가질 만한 성과입니다.향토문화전자대전은 그 연장선상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정문연은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명실상부한 한국학 분야의 기초·보호학문 육성의 중추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육성법 정관 제1조(목적) 개정안을 만들어놓고 있는 상태.정부입법이든 의원입법이든 개정안이 통과하는 대로 인적구조 개선과 기구개편 작업에 바로 들어갈 것이라는 게 장 원장의 설명이다. “우선 명칭을 정문연에서 한국학중앙연구소로 바꿀 계획입니다.그야말로 한국학 연구의 중심이자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학 관련 인적자원과 자료를 네트워크화한 핵심으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지요.이를 위해선 물론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정문연 연구와 프로젝트 수행에서 안이한 자세가 지적돼 왔다.”는 장 원장은 “지금과는 달리 시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과제를 연구원이 자체적으로 마련해 교수들에게 맡기는 과감한 개혁이 있을 것이며,정기적인 성과평가를 통해 3년연속 하위권에 머물 경우퇴출,재임명 탈락 등 초강도의 인사조치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kimus@
  • [편집자문위원 칼럼] ‘세계인’기획 차별화 돋보여

    직업상 신문읽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자연히 많은 신문을 비교하게 된다.그럴 때마다 드는 의문 한가지는 특파원이 보내오는 기사가 현지 언론이 보도한 내용들을 번역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기사에 인용한 언론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훨씬 상세한 보도에 접할 수 있는데도 마치 기자만 아는 듯이 호들갑을 떠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대한매일의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기획시리즈는 다른 신문과 차별화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또 주요지면에 특정 이슈를 집중 조명하고, 간단히 알려야 할 기사는 ‘뉴스플러스’라는 단신으로 처리하는 방식도 돋보인다.하지만 단신도 최소한의 기사 구성요건은 갖춰야 한다. 7월16일자 2면 뉴스플러스에 실린 ‘한국의 언론자유도 아시아 7위’라는 단신은 좀 문제가 있어 보였다.이 기사는 대한매일을 비롯, 조선과 동아일보 등 3개 신문에만 보도됐다.그러나 기사 내용 중에는 평가를 내린 홍콩의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가 어떤 기관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또 제목은 아시아7위라고 되어있었지만 기사에는 미국과 호주까지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었다.일부 국내언론은 국경없는기자회(RSF),국제언론인협회(IPI),프리덤하우스 등 국제언론단체들이 발표하는 우리 언론에 대한 자유도 평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언론자유에 대한 평가척도는 정치권력만이 아니다.언론사주나 데스크,광고주나 정치권력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산재한다.언론자유 제한이 정치권력의 압력과 동일시되는 잔영이 가시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가볍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이와 관련, 최근 한국언론재단이 언론인 7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40%가 ‘편집·보도국의 내적 구조’를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있다. 28일자 2면에는 ‘인터넷 국정신문 9월 발간’소식을 단신으로 보도했다.이 기사는 15일자 6면에 3단으로 단독 보도한 내용이었다.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와 ‘김운용 파문’은 7월1일부터 보름이 넘게 지면을 지루하게 장식했다.7월7일자 3면 ‘현지 참석자들이 본 훼방설’기사는기사화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내용이었다.세 명의 기자가 투입돼 정부 고위관계자에서부터 재계관계자에 이르기까지 여섯 꼭지의 인터뷰를 넣었지만 취재원을 밝힌 것은 하나도 없었다.아무리 심증이 가는 사건이었더라도 김운용씨 입장에서도 생각해 봤어야 했다.독자입장에서 보면 평창 유치실패와 김운용 관련기사는 제2의 옷로비 보도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언론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저널리즘의 핵심원칙은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1997년 ‘저널리즘의 미래를 염려하는 언론위원회(CCJ: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가 2년간에 걸쳐 이에 대해 대대적인 해법찾기를 시도했다.3000여 명이 참석한 21번의 공개토론회,300명이 넘는 언론인들로부터 들은 증언을 집대성해 2001년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라는 이름의 책으로 발간했다. “익명의 취재원을 기사 속의 첫 번째 인용으로 절대 사용하지 말라.” 이 책에 나오는 ‘익명의 취재원’부분에 나오는 강령이다.언론 종사자들이 다시 한번 음미해볼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최 광 범 한국언론재단 조사분석팀장
  • “내년부터 7차교육과정… 올해가 마지막” / 학원가 ‘반수생’열풍

    서울대 공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2)씨는 지난달부터 수능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다.공대가 적성에 안 맞는데다 취업 걱정도 계기가 됐다.그는 “서울 공대에 다니는 후배들 상당수가 의학 계열 진학을 위해 다시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에서 1학기를 마치고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이른바 ‘반수’(半修) 열풍이 뜨겁다.2005학년도 입시부터 7차교육과정이 적용돼 재수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확산된 탓이다.실제 내년 입시부터는 재학생들에게 유리한 수시 모집 정원이 전체의 50%까지 늘어나는 등 재수생에게는 불리한 면이 적지 않다. 특히 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안정된 취업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추세에 따라 반수생들의 목표는 주로 의·치·한의예과 등 인기학과에 집중돼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입시에서 이들 학과의 입학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치대 가려고…명문대 가려고 재수 경험이 있는 건국대 1학년 정모(21)씨는 최근 ‘반수’의 길을 택했다.수능 문제집까지사다 주며 “마지막이니 한 번 더 해보라.”고 권유하는 어머니의 뜻에 따랐다.서울 법대에 진학하기 위해 반수 중인 K대 법학과 새내기 한모(20)씨는 “수능 상위권 학생들은 거의 반수를 하거나 고려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S전문대 관광영어통역과 2학년 장모(21·여)씨는 4년제 대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지난해부터 독학으로 수능을 준비 중이다.그는 “수능을 준비하느라 두 차례나 학사경고를 받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K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 과대표인 안모(20)씨는 수능 준비 때문에 1학기 기말고사 시험지를 백지로 냈다.재수생 출신인 같은 대학 김모(21·여)씨는 약대 진학을 위해 지난달 학원에 등록했다.‘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학원가 작년보다 20% 늘어 대학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학원가에도 반수 열풍이 불고 있다.종로학원에는 지난달에만 600여명의 편입 신청자가 몰렸다.강남 분원 백주현 실장은 “지난해 수능성적 360점 이상 고득점자 가운데 의학계열 지망자 90명을 선발,야간반 2학급을 새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고려학원에도 지난달 반수생 200여명이 추가 등록했다.이상학 차장은 “반수생이 지난해에 비해 20%쯤 늘었다.”면서 “반수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대성학원에는 이달 들어 500여명이 새로 등록했다.이영덕 평가실장은 “치의예과의 경우 전문대학원제 도입으로 지난해보다 정원이 45%나 감소한 반면,고득점 반수생은 크게 늘어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연고대’ 카페 등 온라인 10여곳 성업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daum.net)에는 이미 10개의 반수 관련 카페가 운영 중이다.지난해 12월 개설된 ‘반수생들의 재활훈련’ 회원 수는 3800여명에 이른다.‘설연고대(서울대·연대·고대) 가려는 반수생 모임’처럼 특정 대학을 목표로 하는 반수 카페도 생겼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수능 100여일 앞으로/영역별 체크 포인트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이제 100일 가량 남았다.올해 초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책상에 앉았던 마음가짐도 서서히 약해지는 시점이다.쉼없이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초조와 불안감도 더욱 커질 때다.하지만 수능 D-100일을 맞아 목표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면서 마음을 다져야 한다.특히 여름방학을 활용,부족한 부문을 보완하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마무리 100일 학습 전략을 소개한다.또 영역별 입시전문가들에게 시험 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할 부분도 들어보았다. 언어 듣기와 쓰기는 실생활과 관련된 ‘생활밀착형’ 문제,문학은 다른 장르로 변형을 시도하는 ‘장르변용 문제’,독해는 를 활용한 문제가 출제되는 추세다.최근 3년간의 기출문제를 통해 취약점을 확인한 뒤 매일 3∼4지문씩 빠지지 않고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듣기는 뉴스나 TV토론 등을 메모하면서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시는 백석과 박두진,김수영,조지훈,신동엽 등 문학사적으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엮어서 감상할 필요가 있다.근·현대사의 주목되는 사건들을 다루는 소설도 출제 가능성이 높다.소설에서는 김원일의 ‘어둠의 혼’,오상원의 ‘유예’,선우휘의 ‘불꽃’,하근찬의 ‘수난이대’,이청준의 ‘서편제’‘줄’‘매잡이’‘선학동 나그네’,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박경리의 ‘토지’ 등을 권한다.극문학에서는 이근삼의 ‘원고지’,천승세의 ‘만선’,오태석의 ‘춘풍의 처’ 등이 주목할 만하다.이양하의 ‘신록예찬’‘나무’,피천득의 ‘은전 한 닢’‘황포탄의 추억’,이어령의 ‘폭포와 분수’ 등 수필도 일독이 필요하다. 도움말 종로학원 강사 전승복 수학 최근 수능과 모의고사의 출제 경향은 수학 내·외적 문제해결능력을 묻는 문제가 전체의 40% 수준까지 출제되는 점이다.‘다음 보기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면?’과 같은 문제 유형은 꾸준히 출제될 것으로 예상된다.때문에 부족한 단원에 대해서는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하지 말고 그동안 공부해온 교재로 기본 개념과 법칙을 철저히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수학적으로 새롭게 정의된 함수 문제는 배점이 높게 출제되고 있다.역함수의 그래프,절대값 그래프,그래프의 변환과 주기성,그래프를 이용한 방정식·부등식 문제 등을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중학교에서 배웠던 삼각형의 성질,닮음,원에 관한 문제도 자주 등장한다.생활 속의 소재를 활용한 문제도 꾸준히 출제된다.로그와 결합된 비율 문제,속도 거리의 문제,이자 계산하는 방법 등은 반드시 점검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 대성학원 강사 손광균 사회·과학 사회탐구에서는 도표나 그림 등 교과서에 실린 시각 자료를 응용한 문제가 자주 출제된다.특히 예년까지 5∼8문제에 불과하던 시사 문제가 올해 모의고사에서는 무려 16문제나 출제되고,질적으로 심화된 문제도 다수 출제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일반 사회의 경우 주5일 근무제,집단갈등과 노사문제,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사교육 경감문제 등의 쟁점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다.지리는 새만금 간척사업,그린벨트 해제문제,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출제 가능성이 높다.윤리에서는 공직자 윤리 및 정치자금,북한 핵문제,샴쌍둥이,신용카드와 신용사회 등을 점검해야 한다.국사는 고려와 발해의 중국사 편입문제,일본역사왜곡 등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과학탐구는 개념과 원리,법칙을 기본으로 도표와 그림,그래프 등 다양한 자료를 해석할 수 있는지를 묻는 해석형 문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교과서에 나온 다양한 자료와 실험 등도 꼼꼼히 이해해 두자.공통과학 교과서 마지막 단원인 ‘환경과 현대과학’은 대부분의 시사적인 문제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야 한다. 도움말 고려학원 강사 권오경 외국어 듣기 평가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여가활동 등 주로 학생들의 일상 생활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음악회나 전시회,영화,스포츠,컴퓨터 사용 등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익혀야 한다.듣기 공부를 할 때는 일단 외국인의 대화를 듣고 문제를 푼 뒤,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대본을 보고 내용을 확인한 뒤 다시 대화를 듣는 방법으로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휘는 그동안 공부했던 참고서에서 혼동되거나 몰랐던 것을 따로 정리해 암기장을 만들어서공부하는 것이 좋다. 문법은 병렬구조,동사의 시제와 일치,부정사,동명사,분사,관계대명사 등 항상 출제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익혀야 한다.문법은 무조건 암기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 이해하면서 외워야 기억할 수 있다. 도움말 에듀토피아중앙교육 영어팀장 천은옥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2)김윤식

    ‘국문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 김윤식 선생을 뵙고 한국문학 연구의 현 단계를 묻기로 했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선생이 일생에 걸쳐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직분의 논리다.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밖에 할 수 없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그는 이렇게 말했다.“안일한 나날보다도 비통한 나날을,죽음 이외의 휴식은 없는 것이다.”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 인터뷰 때 찢어진 바랜 잡지를 가리키며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월평 쓰려고 준비하기 위해 갖고 다닌 거요.그 옆에 종이는 작품 읽고 메모해 놓은 거고.월평을 쓰려면 세 번 읽어야 된다고.한 번 읽고,쓸 때 다시 꺼내가지고 읽고,쓰고 난 다음에 대조해가면서 다시 읽고.그래야 돼.외국 갈 때는 잡지를 찢어가지고 가방에 넣어가.안 그러면 무거워서 많이 못 가져가니까.” 김윤식 선생을 만나러 가는 날은 몹시 긴장되었다.내게 무서운 선생님인 까닭이다.강의실에서 선생의 꾸짖는 소리를,고개를 숙이고 숨소리를 죽여 가며 들어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런 무서움에 앞서 선생은 제자들보다 더 일찍 연구실에 불을 켜놓는 부지런함 때문에,날마다 읽고 쓰는 놀라운 규칙성 때문에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딱딱한 안면,퉁명스러운 말씀을 떠올리며 용산 자택으로 찾아갔다.기어들어 갔다고나 해야 할까.예상 외로 강의실에서와는 달리 선생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래,어떻게 지내나?” “….” 선생이 건네는 말씀은 독백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다할 대답을 하지 않는다.간단한 ‘요식 절차’가 끝나자 인터뷰를 서두른다.여전히 긴장한 탓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책을 하나 써서 곧 나올 때가 되었어요.우리 세대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연구는 일제 강점기 문학이니까….정년 퇴임 후에 일제말기 한국 작가들이 일본어로 글 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해 왔고….한 400페이지 되는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내용이라면?” “유진오,김사량,이효석 이 세 사람이 일본말 창작을 자유롭게 했는데 이중에 이효석이 제일 정확하고 언어감각이 뛰어났어요.그냥 일본말로 바로 창작을 했지요.유진오도 대단히 정확했고 김사량은 그중 제일 서툴렀고….” “일제 말기 일본어 문학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그들은 이중어 글쓰기를 했던 셈인데,한국의 근대문학이라고 했을 때 그 문학은 근대국가가 만든 말을 가지고 해야 하지 않겠소? 그게 국어지.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망하고 없었으니 조선어학회 같은 곳이 국가 역할을 대행했어요.그런데 일제 말기에 국가를 대행하는 이것을 잡아 가둬 버리기 시작한 것이 1942년 10월이에요.33인을 잡아넣었어요.33인이라는 것은 삼일운동 때 33인,그걸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그래서 그때부터 1945년 광복까지가 암흑기라는 것이오.1942년 10월까지는 조선근대문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없어요.그럼 작가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조선근대문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문학을 하는 수밖에 없고 일본어로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한국근대문학의 고통스러운 운명이 느껴지는군요.” “근대문학이 뭐냐 하면,자본재 생산양식 또는 국민국가주의가 문학에 투영된 것이잖소? 그런데 우리는 근대국가를 만들면서 동시에 일제라는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단 말이에요.근대국가라는 것이 사실은 ‘제국주의’인데 ‘제국주의’가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던 거죠.이 특수성,자기모순,우리 근대문학은 근대문학으로서의 보편성 외에 이 특수성을 반영하는 문학이었어요.” “최근 들어 특수성 대신에 보편성,즉 식민성 대신에 근대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에 176개의 나라가 있지만 근대화하지 않은 나라는 아무데도 없어요.국민국가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고약한 것인가는 천하가 다 아는 거라고.우리만 사람이고 우리 아닌 사람은 다 짐승이고,그래서 잡아먹어도 괜찮다,카니발적인 거라고.카니발리즘.그러나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우리끼리는 잡아먹지 말자는 거죠.그러니까 지금 사람이 생각해낸 것 중에서 제일 고약하지만 합당한 원리는 이것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 대목에서 선생의 일생을 지탱해온 문학 근대주의자 면모를 새삼 재발견한다.그렇다면 문학 역시 특수성에 연연하기보다는 아직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이 되지 않으면 안될 터.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내가 김현하고 문학 활동하던 그 세대에는,어땠냐면,어떻게 하면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어요.임화의 이식문학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걸 가지고 떠들고 했어요.자본주의가 우리 내부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하려고 했었고.그런데 요새는 어떠냐.안병직씨 이론이 더 맞다고 하잖소.조선은 근대화할 능력이 없었다,일본이 와서 근대를 이식했다는 거지요. 그러면 이식문학 극복하자고 떠들던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국민국가문학,이런 거 하는 것보다도,문학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이게 광복 직후에 김사량이 펼친 주장이잖소.이태준이 김사량 보고 너 일제시대 때 일본말로 글 쓰지 않았느냐 했더니,김사량이 뭐라고 했소.나 큰소리 안 친다 말이야,그러나 당신은 그럼 뭘 했는가.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나는 일본말로 썼든 뭐로 썼든 쓰지 않았느냐. 요즘 시점에서 보면 이 김사량의 입장이 뚜렷한 의미를 갖고 부상하는 것 같습니다.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도 일본하고 전쟁한 거라고 보지 않아요? 이런 세대가 부각되고 있음을 사실로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어딘가 거북해진다.386세대의 일원인 나는 특수성에 목을 매고 살아온 까닭이다. 한편으로 보면 식민성이니 제국주의니 하는 특수성을 떨치고 세계화니 현대화니 하는 보편성을 향해 거침없는 진군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선생의 관심사를 한국문학이라는 특수성 쪽으로 환기시키려 해 본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국근대문학의 특질은 무엇입니까.” “한국근대문학사를 공부해 오다 보니까 이게 일본근대문학사로부터 대단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지 않았겠소? 한국근대문학을 일본근대문학과 비교하면서 보는 시각은 한국근대문학만 보는 시각하고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의 관심사가 언어와 문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국문학도가 살아남으려면 국문학만 해서는 안됩니다.한국근대문학사의 특질이다,뭐다,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은 어떻고 중국은 어떻다,하는 시각을 갖고 동북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틀 속에서 견주어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선생은 오히려 나를 선생의 시각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문학은 세계문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수준에 와 있습니까.한국문학은 세계문학사상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까.” “언어나 문학이나 이제 단일성만 주장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이런 상태에 머물고 있는 나라는 아마 일본이나 한국 정도가 아닐까 해요.다른 문화권은 이미 단일성을 주장하지 않아요.우리만 한국어라는 단일한 전제를 갖고 한국어로 된 문학이 국민정서 전체를 버티고 있는 거죠.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우리 문학이 늘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문학은 늘 인간은 벌레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어요.인간의 위엄에 어울리는 문학을 우리는 해왔단 말이에요.일제 때도 그렇고,광복 후 분단 문제와노사문제를 다룬 것도 그렇고.그런데 20세기 이후 21세기의 한국문학은 방향이 바뀌고 있어요.거꾸로 인간은 벌레라고 주장하고 있어요.인간은 벌레다,짐승이다,요녀다,물고기다.이런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요.이것이 한국문학의 단일한 정체성에 파열구를 내고 그 방향을 바꾸고 있어요.인간을 하나의 생물로 보는 커다란 상상력을 통해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에 곧바로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국적성의 해체 국면이군요.” “한글로 쓰든 영어로 쓰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DNA예요.DNA 문제예요.여기서는 한국이고 뭐고 세계가 다 똑같다는 거죠.”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그렇다 해도 나는 여전히 하버마스 쪽을 지지하고 있어요.이성이 아무리 도구적인 이성이 되어 가지고 유태인을 죽이고 미사일 가지고 실험한다 하지만 창조하는 것도 이성이란 말이에요.인류는 어떻게 하든 간에 이성을 살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내가 제일 많이 흔들린 때는 구소련이 무너졌을 때였어요.프랜시스후쿠야마가 역사가 끝났다고 하더군요.역사가 끝장났다면 인간은 그럼 뭐냐.나는 역시 이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이성이 아무리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그것을 버리면 허무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정년퇴임한 선생이 나이 어린 나보다 더 젊게 보이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다.선생은 세계화라는 시대의 대세를 거침없이 받아들이며 또 다른 국면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생의 아파트를 빠져나올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예사 장맛비가 아니라 좍좍 내리 퍼붓는 소나기였다.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험한 비가,장대 같은 빗방울이 내 이마에 꽂히고 있었다.나 또한 매일 젊어져야 하리라.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평론가 김윤식 ●조선 향기 가득한 자택 겉모습만 보면 김윤식 선생은 서구식 멋쟁이다.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뒤로 잘 빗어 넘긴 머리칼은 지성을 상징한다.양복과 와이셔츠와 넥타이는 항상 세련된 조화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모던 보이’ 같은 외모와는 달리 뜻밖에 아파트는 전통미가 살아 숨쉰다.흔한 서구식 응접세트 대신에 자리를 깐 마룻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야 안성맞춤인 낮고 넓은 옻칠 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그 위에는 우리네 화병이 하나,흰 접시가 하나,접시 위에는 산수유 열매 몇 점. 한쪽 벽에는 백자며 분청사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어 고전미를 자아내는데 방문은 모두 격자무늬다.선생의 서구식 외모와는 전혀 다른 ‘조선식’ 생리를 발견한 것이 더할 수 없이 반가웠다. 그런데 내외만 사는 그곳엔 먼지 한 점 찾을 수 없다.여인은 어디론지 나가고 없고 선생 혼자 지키는 대낮의 실내는 적막하기만 하다.선생은 국문학이라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고독한 항해자였다. ●문학 유목과 지적 여정 1936년생인 김윤식은 한국 현대소설 및 비평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자이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읽고 소화해 내는 현역 비평가다.한국전쟁 이래 한국 현대문학사의 뼈대를 만든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이래 숱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벌여 100권을훨씬 상회하는 한국현대문학 관련 저서를 출간했으니,그로 인해 한국 현대문학 연구는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염상섭 연구’,‘김동인 연구’,‘김동리와 그의 시대’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가 연구는 젊은 국문학도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이외에도 ‘한국근대문예비평사’,‘한일문학의 관계 양상’ 등은 한국현대문학사를 일본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연구서다. 또 ‘황홀경의 사상’ ‘낯선 신을 찾아서’ 등의 예술·기행 산문집은 현대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佛서 전시회

    파리 함혜리특파원|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용·사진·65)씨의 개인전이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미술관에서 열린다. 기메미술관은 오는 28일부터 9월 29일까지 ‘디자인과 전통,현대성의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이타미 준씨의 33년 건축인생을 대변하는 설계도면과 도형,스케치,건축모형,회화,소품,가구 등 총 17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아시아 예술 전문 국립박물관으로 파리에 있는 기메미술관이 개인 작가 초청전시회를 여는 것은 지난 1899년 이 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이다. 기메미술관의 피에르 캉봉 수석학예연구원은 “이타미 준은 현대 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로 국적을 떠나 국제적인 건축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평했다. 재일교포 2세인 이타미 준씨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무사시 공업대학건축학과를 졸업했으며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건축 100년’전에 작품을 내기도 했다. lotus@
  • 부고 / 애국지사 김충홍옹

    애국지사 김충홍씨가 22일 오후 8시48분 노환으로 별세했다.79세.전남 완도 출신인 고인은 1944년 11월 중국 광둥성의 일본군 제42부대를 탈출,중국 제9전구 4군단 101사단에서 활동하다 광복군 제1지대 3구대로 편성돼 공작활동을 전개했다. 빈소는 전남 완도 대성병원 영안실,발인 24일 오전 11시,장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061)552-0644.
  • 이사람 / 한국 라면의 산증인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

    한국 라면의 산증인’ 전중윤(全仲潤·83) 삼양식품 회장.라면 하나로 1960년대 보릿고개를 해소하는 데 일조(一助)한 ‘그 사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생산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작지만 단단한 체구였다.적어도 20년은 젊게 보이는,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특별한 건강비결은 없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틈만 나면 뛰거나 걷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점심 식사 후 30분 정도 낮잠을 즐기고 주말이면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을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시는 습관도 건강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한때 즐기던 골프는 1998년 회사가 화의를 신청하면서 그만뒀다. “1961년 회사를 설립해 승승장구했지요.그런데 1989년 우리 회사를 포함한 5개 식품업체들이 라면에 비식용 우지(牛脂)를 넣었다고 검찰이 발표했어요.이 무슨 날벼락입니까.나중에 대법원이 무죄라고 판결했지만 엄청난 타격을 받았어요.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경영난이 심화돼 화의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최근 영업이익이 몇년째 흑자를 보이고 있어 2,3년이 지나면 화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 등 채권단이 지난달 채무액 2300억원 중 보증채무 400억원을 출자전환해 줬습니다.담보채무의 금리는 연 10%에서 7%로,무담보채무는 7%에서 4%로 각각 낮춰줬어요.큰 혜택이지요.” 전 회장은 시간 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직과 신용을 가장 앞세워라.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생각하라.그래야만 우리가 일구어놓은 기업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대대손손 번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30여년 동안 그를 지켜본 정호권(鄭鎬權·전 건국대총장) 박사는 “전 회장은 아마 기업인보다 교수를 했으면 더 잘 했을 것”이라면서 “항상 책을 읽고 확고한 철학도 가지고 있는 데다 바른 정신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고 평했다. 그래서일까.전 회장은 한달에 50만박스씩 팔려 회사의 주력상품으로 40년째 자리를차지하고 있는 삼양라면의 맛은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라면시장의 70%를 매운 라면이 차지하고 있지만,삼양라면의 맛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요즘 입맛으로 치면 맨송맨송할 수 있겠지만,“맵게 먹어 건강에 좋을 게 없다.”는 전 회장의 지론 때문이다.다만 품질만 업그레이드할 뿐이다.전 회장은 “우리나라에 암환자가 많은 것은 맵고 짜게 먹는 탓”이라면서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더라도 처음 내놓은 삼양라면의 맛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먹거리 철학은 경영권을 넘겨준 아들 인장(40)씨에게로 이어졌다. 인장씨는 1999년 처음으로 매운 맛의 수타면을 내놓았다.회사를 살리기 위한 비상대책이었다.그럼에도 무작정 맵게는 하지 않았다.수프를 분말· 플레이크·고추양념 등 세 가지로 만들었다.소비자가 기호에 따라 매운 맛을 조절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다른 회사 제품은 매운맛과 야채 등 두 가지 수프로만 돼 있다.세 개의 수프는 먹거리의 철학을 지키면서도 시장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고심의 결과라고 주변에서는 풀이한다.그러나 앞으로 새로운 매운 라면은 내놓지 않을 작정이다. 그가 ‘우지 파동’을 겪은 것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었다.“(그때를 회고하며 지금도 화가 나는 듯) 난생 처음 듣는 공업용 우지라니,말이나 됩니까.검찰 발표가 무책임했죠. 결국 3개월간 회사 문을 닫고 시중에 유통 중이던 라면을 전량 회수해 사료로 처분했습니다.” 이때 가슴을 차지한 한(恨)을 다스리기 위해 독서에 매달렸다.전 회장이 소장한 책은 무려 9000여권.관심 분야는 식품회사 창업자 답게 주로 식품과 건강 서적이다.요즘은 역사와 철학,불교 책을 읽는다.끊임없이 독서한 덕분에 불교 입문서인 ‘대승불교경전(大乘佛敎經典)’과 교육 방법론인 ‘인격과 교육’ 등의 책을 펴냈다. 정박사는 “전 회장은 특히 불교와 유교 등 동양문화에 철학적 깊이를 두고 있다.”면서 “‘자기가 정당하면 반드시 바로 선다.하지만 한번 잘못하면 나는 말할 것도 없고 후손들에게 해가 미친다.’는 말을 외우고 다닐 정도”라고 전한다. 슬쩍 화제를 정치 등 다른 사안으로 옮기려 하자 전 회장은 손사래를 친다.우지파동에 워낙 ‘덴’ 탓인지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면서 “정치나 사회 얘기를 하다 보면 잡념이 생겨 회사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라면을 만들 때 안전한 천연 원료만을 고집한다.“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식품업계가 돈벌이에 급급하면 안됩니다.자칫 안전성이 떨어지고 영양이 부실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식품은 절대 안전해야 합니다.인간은 120살까지 살 수 있습니다.사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식품이 75%를 기여하는 만큼 건강식품을 만들기 위해 안전성이 검증되고 영양이 많은 성분을 추가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라면산업의 낙관적 전망에서 비롯된다.라면 시장은 해마다 4∼5%씩 꾸준히 신장하고 있고,세계 120여개국에서 소비되고 있다.하지만 경영이 정상화되더라도 결코 사업의 외연(外延) 확장에 치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재무구조 건전화와 윤리경영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라면의 인기는 21세기에도 계속됩니다.가격이싸고,빨리 조리할 수 있으며,맛도 있고,영양을 갖춘 식품이기 때문이죠.특히 시장개방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밀려와도 라면만큼은 수입품이 발을 못 붙일 것입니다.” ‘인생백회 천세우(人生百懷 千歲憂)’ 그의 좌우명이다.사람은 백년을 살지만 천년 후를 생각하자는 뜻이다.폭넓은 독서를 통해 그가 찾아낸 이 좌우명은 인간과 기업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김규환기자 khkim@ ■‘삼양라면' 발자취 ‘제2의 쌀’로 불리던 삼양라면의 탄생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전 회장이 식량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제일생명 사장직을 포기하고 나와 삼양식품을 설립하면서 비롯됐다. 하지만 라면을 생산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계속됐다.1년여 동안 하월곡동 창고에서 숙식을 하며 개발에 착수,우리 입맛에 맞는 라면을 개발했으나 곧바로 생산에 들어가지는 못했다.일본에서 라면기계를 들여올 만한 자금이 없어 생산라인을 갖추지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외환보유고가 1800만달러에 불과할 때였죠.라면기계구입비 6만달러가 어디 있겠습니까.그래서 주무부서인 상공부를 찾아가 설득했습니다.5개월에 걸친 끈질긴 설득작전이 주효해 5만달러를 지원받았죠.” 전 회장은 5만달러중 2만 7000달러로 일본 명성식품으로부터 라면기계 2대를 구입하고 로열티 지불없이 선진 제조기술까지 전수받았다. 지한파(知韓派)인 당시 명성식품 사장이 국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그를 ‘예쁘게’ 봐준 덕택이다. 특히 당시로는 거액인 나머지 2만 3000달러를 국가에 반환함으로써 정부의 신뢰감도 얻었다.63년 9월15일 마침내 ‘삼양라면’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첫발을 내디딘 삼양라면의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광고매체가 발달돼 있지 않아 제대로 홍보할 기회를 갖지 못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무료 시식회였는데 대성공이었다. 서울역·남대문시장에 설치한 즉석 라면 요리대의 쫄깃쫄깃한 면발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극장가등에서 무료로 나눠주면서 라면은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때마침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져 라면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라면 개발 초기 2년 동안 무려 1억원의 적자를 낸 삼양식품은 3년째 들어 흑자로 돌아섰다.63년 29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65년 2억 3900만원,67년 10억 1400만원,71년 100억원대를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삼양식품은 89년 우지파동이라는 직격탄을 맞아 30년 가까이 쌓아온 명성이 뿌리째 흔들렸다. 4000여명이던 종업원들 가운데 1000여명이 떠나갔고,65%를 웃돌던 시장 점유율도 6%대로 곤두박질쳤다. ‘화불단행(禍不單行·화는 잇따라 온다)’이라고 했던가.우지파동으로 위기를 겪는 와중에 97년 외환위기라는 악재가 겹치자 결국 98년 1월 화의를 신청했다. 이후 서울 종로 본사 부지 등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고 강원레저 등 계열사 매각과 함께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했다. 이러한 자구책과 ‘수타면’ 등 신제품 개발에 힘입어 시장 점유율이 20%대로 올라갔다. 지난해에는 2500억원대의 매출과 2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창출했다. 전중윤 회장은 ●1919년 8월 강원도 철원 출생 ●57년 동방생명보험 부회장 ●61년 제일생명보험 사장 ●61년∼현재 삼양식품 회장 ●67년 경희대 경영행정대학원 졸업 ●76년 연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82년∼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공공정보’전/‘아름다운 서울’의 이중성

    600년의 세월을 거쳐 진화해온 서울은 현대사회의 욕망과 권력,문화가 어우러진 이 시대의 도상이다.미래지향적인 활기찬 도시.한·일 월드컵 기간중 외신들은 서울을 ‘아름다운 도시’로 묘사하기도 했다.그러나 다양한 가치관과 계층,정체성이 혼재하는 거대도시가 그렇듯,그 역동적인 모습의 이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개발시대의 망령 속에 난개발되는 땅,물신주의에 희생되는 우리의 정신적인 가치….메갈로폴리스의 정점으로 치닫는 서울에는 여전히 그런 디스토피아적 환영이 존재한다. 젊은 사진작가들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15일부터 8월12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열리는 ‘공공정보(부제:디스토피아 서울)’전에 참여하는 여덟명의 사진작가들이 보여주는 서울의 모습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권순평·조용준·박경택·류상수·고현주·이효태·강무성·buzz(본명 정훈).그들에게 현대의 서울을 상징하는 것은 오락실일 수도 있고 침침한 서울 변두리 외곽지역일 수도 있고 재개발지역의 흐트러진 방,허황된 명품족,소외감에 시달리는 개인일 수도 있다.그들은 현대 서울에 감춰져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고도의 함축적 기법을 통해 일상의 평범한 모습으로 가장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 buzz는 지난 시절 대중가수로 활동했던 기억속의 공간을 다시 찾아가 촬영한다.CD케이스나 거울 같은 데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해내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흐름속에 놓인 자신의 정체성을 묻기 위해서다.서울 변두리의 모습을 담은 권순평의 어둡게 가라앉은 흑백사진은 서민들의 신산한 삶을 보여주며,박경택의 오락실 사진에는 기계화·획일화되어가는 도시와 그 속에서 고립된 개인의 모습이 나타난다.이 작품들은 현대 도시의 의미와 그 속에 감춰진 현대성의 문제들을 문득문득 일깨운다. 전시기간 동안 오후 8시30분부터 자정까지 화랑 건물 외관에 빔 프로젝션으로 전시작품들을 편집한 화면을 보여준다.이 전시는 젊은 사진작가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Stray Cats’ 프로젝트의 하나로,박영덕화랑은 매년 서울을 배경으로 현대사회의 핵심적 요소들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골라 전시할 계획이다.(02)544-8481. 김종면기자 jmkim@
  • 실직 중장년·여성가장이 사장님으로 4630명‘인생역전’/ 근로복지공단, 최대 1억 창업지원

    IMF 한파가 온 나라를 휩쓸던 지난 1997년.지현옥(여·44·경기 안양)씨는 커다란 절망에 빠졌다.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남편의 건강도 문제였지만 두 아이와 가족들의 입에 풀칠조차 할 수 없었다.지씨는 공공근로사업에 나갔지만 남편의 재활치료비도 감당하기 힘들었다.할 수 없이 집을 팔기 위해 부동산중개소를 찾아갔다가 신문에서 ‘실직여성가장 창업지원’ 안내광고를 보았다.그 광고는 지씨에게 행운이었다. 지씨는 근로복지공단의 도움으로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공단으로부터 전세금 5000만원짜리 사무실을 연리 7.5%의 조건으로 6년 동안 임대받았다.당시 대출이자가 연리 20%에 육박할 때였기 때문에 ‘공짜’나 다름없었다.온열 매트 등 의료기를 판매하는 회사를 차렸고 무료체험방식을 통해 창업 첫해인 지난 2001년에 총매출 2억원,순이익 3000만원을 올릴 수 있었다.현재는 직원을 7명이나 두고 있으며 야간대학까지 다니고 있다. 전주시에서 비디오와 편의점을 합친 형태인 ‘비디오포스’을 운영중인 최지석(33)씨는 지난봄까지만 해도 실직자였다.모 회사 영업사원이었던 최씨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15개월 동안 실직자 생활을 했다.최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6000만원을 지원받고,6000만원을 더 투자해 점포를 냈다.최씨는 하루 매출 40만원을 올리고 있다. 김태진(44)씨는 생명보험회사에서 8년 동안 영업소장을 해왔으나 97년 일자리를 잃었다.회사를 그만둘 때 받은 퇴직금으로 빚잔치도 부족했다.오히려 보증섰던 빚만 남았다.새 직장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반겨주는 곳은 없었다.아내와 함께 식당에서 일을 했다.그러다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장기실직자 창업자금으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식당을 차리는 데 성공했다. 김씨가 준비한 메뉴는 전통 쌈밥.개업 첫날 147만원의 매상을 올렸고 대성공을 거두었다.지난해 10월에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빌린 돈도 다 갚았다. 광주시에서 특공무술 체육관을 운영하는 김용희(29)씨는 전자제품 제조회사에서 생산주임으로 일하다 98년에 실직했다.3년 동안 실직자 생활을 하다 2001년 4월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창업지원신청서를 냈다. 김씨는 합기도 4단,킥복싱 4단,특공무술 4단의 무술실력자였기 때문에 일반업종 창업이 아닌 전공분야를 택했다.김씨는 이제 막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99년 2월부터 실업자 창업지원사업을 펴오고 있다.실직후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 실업자와 실직여성가장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전문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있지만 일자리가 없는 청년실업자에게는 점포를 직접 임대해서 빌려주고 있다.지원 규모는 7000만원. 서울시 및 광역시의 경우 1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 6월말까지 이 사업을 통해 4630명의 실직자들이 창업에 성공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94.3%가 흑자를 유지하고 있었다.월 평균 소득은 209만원이며 64.2%가 1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 정규환 실업대책부장은 “창업 전에 현장 실습을 시켜주고 있으며 교육 기간에는 50만원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부드럽고 순한 그림·조각 / 청작화랑 ‘꿈·자연·생명’전

    회화와 조각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미술은 마르셀 뒤샹 이후 일상의 사물을 미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면서 그 외연을 넓혀왔다.현대미술은 특히 예술과 테크놀러지의 만남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예술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예술같지 않은’ 설치작품이나 온갖 형태의 뉴미디어 아트 등이 현대미술의 주류 행세를 하는 게 요즘 미술세계다.이른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미술은 인상파 이전의 미술처럼 그림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알 수 있었다.그러나 최근 현대미술은 눈으로 봐선 좀처럼 알 수가 없다.현대미술이 난해성을 더해갈수록,‘장난기’가 심해질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게 부드럽고 순한 그림 혹은 조각이다.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이 개관 16주년을 기념해 1일부터 15일까지 여는 ‘꿈·자연·생명’전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맞춤전시’다.구자승·김병종·이두식·박대성·오용길·이숙자·장순업·이왈종·김재학·장지원·정현숙·황주리(이상 회화),전뢰진·강관욱·고정수·김창희·박수용·심인자·유영교·한진섭(이상 조각)등 독자적인 목소리를 지닌 2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작가마다 2점 정도씩 작품을 내 모두 40여점이 선보인다.맛맛으로 먹기 위해 바특하게 차린 음식상 같아 좀 아쉽긴 하지만 중견·원로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수 있다.(02)549-3112. 김종면기자 jmkim@
  • ‘영원속으로 초대’된 은막의 여왕 / 캐서린 헵번 96세로 타계

    ‘모닝 글로리’‘초대받지 않은 손님’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4번이나 받은 미국의 여배우 캐서린 헵번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각) 고향인 미국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지난 여름 갑자기’‘필라델피아 스토리’‘아프리카의 여왕’‘겨울의 사자’ 등에 출연해 아카데미 후보에만도 12번이나 오른 헵번은 몇년전부터 파킨슨병 등을 앓았으며 최근에는 고관절 수술을 받고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왔다. 1907년 뉴잉글랜드에서 태어난 헵번은 1928년 연극 ‘요즘 나날’로 배우생활을 시작,4년 만인 1932년 ‘이혼협정’에 출연해 할리우드의 스타로 급부상했다.이후 세번째 영화 출연작인 ‘모닝 글로리’(1933),‘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겨울의 사자’(1968),‘황금연못’(1981) 등 60여년의 연기인생에서 무려 4번이나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황금연못’으로 수상할 당시 그는 74세였다. 케리 그란트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는 밝고 재치넘치는 헵번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애초에 그를 위해 극본이 쓰여진 동명의 연극이 대성공을 거두자,제임스 스튜어트 등과 이를 다시 영화로 찍어 톱스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경쾌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상을 스크린에 심어온 그는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연기열정을 접지 않았다.1982년 75세의 나이로 브로드웨이에서 ‘웨스트사이드 월츠’에 출연해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했다.87세때인 1994년에는 워렌 비티의 설득으로 로맨틱 코미디 ‘러브 어페어’에 비티의 숙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하워드 휴즈 등 명배우들과 염문을 뿌렸지만,정식결혼은 단 한 번했다.연극무대에 데뷔하던 해에 필라델피아의 사교계 저명인사인 러들로 오그덴 스미스와 결혼했다가 6년 뒤 이혼했다.그후 9편의 영화를 같이 찍은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와 1967년 그가 죽을 때까지 인생의 동반자로 지냈다. 황수정기자 sjh@
  • 오피니언 중계석/ 盧정부의 개혁과 사회통합

    고려대 김호진 교수는 30일 민족통합개혁연대 주관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대토론회에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과 사회통합’이란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개혁의 성공 조건 개혁에는 언제나 비판과 저항이 따른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고,특히 잃을 것이 많은 기득권층은 개혁을 자기들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 첫째,개혁정책의 패러다임과 브랜드를 선명하게 부각시켜야 한다.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비전과 추진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개혁담론을 논리정연하게 다듬어 내야 한다.물론 시대변화와 역사성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개혁의 무게중심을 가치창조에 두어야 한다.김영삼 정부가 개혁에 실패하고 경제 환란을 초래한 것은 파괴적인 과거청산에 너무 치중했기 때문이다.노무현 정부는 창조지향적인 개혁에 역점을 둬야 한다.과거를 부수는 게 개혁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 개혁인 것이다.셋째,실사구시의 관점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정부가 개혁목표로 내세운 평화와 번영은 너무 멀리 느껴지고 동북아경제중심론은 구체성이 없다.또 국가개조론은 너무 담대하고 자칫하면 제2건국처럼 정치쟁점으로 비화될 우려가 있다.이런 점에서 개혁은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하며 누구나 수긍하는 시대적 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넷째,개혁적 리더십과 통합적 리더십을 병행해야 한다.개혁 마인드가 강한 인사를 기용한다거나 각 부처에 업무혁신팀을 만드는 것이 개혁적 리더십이라면,지역과 이념,성과 연령을 초월하여 필요한 인재를 기용하는 것은 통합적 리더십이다. 다섯째,시행착오를 극소화시켜야 한다.국가경영의 암적 요소는 낭비다.시행착오에 수반되는 국정에너지의 낭비는 더 큰 문제다.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5년이라지만 시스템 안정과 정책구상을 위한 준비기간 1년과 임기 마지막 1년을 빼면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밖에 되지 않는다. 여섯째,선택과 집중이다.일에 과욕을 부려 너무 많이 벌이면 아무 일도 못 한다.꼭 해야 할 몇 가지만 선택해서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교육정책을 예로 든다면 NEIS갈등 해결과 공동체 복원,공교육 살리기와 사교육비 줄이기,대입제도의 선진화와 대학의 경쟁력강화만 제대로 해도 성공적이다. 일곱째,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이 성공의 디딤돌이다.노사갈등 해소와 협력이 중요한 과제이다.만약 이에 실패한다면 개혁도 경제도,삶의 질도 수포가 된다.2002년도 우리나라 노사관계 경쟁력이 조사 대상국 49개 국가 중에서 47위를 기록하고 있다.분규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는 조사대상국 30개 중에서 30위로 최하위를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가능성과 한계 노무현 대통령 리더십의 장점으로는 절차적 정당성이 강하다는 점과 탈권위주의,승부사형,지지세력의 강한 연대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정서적 정당성이 취약하다는 점은 약점이다.아직도 일부 수구세력과 영남정서는 노 대통령을 ‘절반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또 일부 언론과의 관계가 비우호적인 점과 여소야대 구조 등도 한계로 꼽힌다. 이럴 때는 비판과 저항이 심한 분열성 정책보다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통합성 정책을 선택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노 대통령이 임기중에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연다면 역사에 남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이게 경제 환란을 겪은 국민들이 한강의 기적을 다시 연출하고 싶어하면서 갖고 있는 일종의 보상심리다.노 대통령은 이 점을 감안해 경제 리더십에 승부를 거는 CEO로 변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정시스템의 효율적 가동은 필수적이다.이것을 뒷받침하는 게 책임경영체제이다.부서장에게 자율을 주되 국정성과를 내지 못하면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게 곧 책임경영체계다. 또 언론과의 대외적 긴장보다는 시스템을 역동적으로 작동시키는 대내적 긴장이 더 시급한 문제다.이것이 전제돼야 개혁과 동북아중심구상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정리 조승진기자 redtrain@
  • 기상예보와 생활 / 지구온난화로 집중호우 늘어

    일반적으로 장마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닥치기 직전인 6월에서 7월말 사이 비가 계속 내리는 현상을 말한다.물을 뜻하는 ‘매’에서 온 ‘마’에 장(長)이 붙어 생긴 낱말이다. 커다란 공기덩어리인 기단(氣團)이 서로 만나는 장마 전선이 생기면서 나타난다.여름철 장마 전선은 한반도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차고 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과 남동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하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의 경계면에 형성된다. 장마 전선은 잘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무르는 성질을 갖고 있다.6월말 일본 열도를 거쳐 7월 중순 한반도의 중부지방까지 천천히 북상하면서 한달 이상 한반도 곳곳에 비를 뿌린다.오호츠크해 고기압이 한풀 꺾이는 7월말 쯤에는 만주 지역까지 올라간 장마 전선이 점차 약해지면서 소멸한다. 장마 전선이 한반도에 완전히 상륙하면 높은 온도의 습한 열대기류의 영향으로 곳곳에 집중 호우가 내려 크고 작은 피해를 입는다.최근 들어서는 전 세계적인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집중호우의 사례가 늘고 기간도 불규칙해 지는 등 장마의 패턴도조금씩 변하고 있다. 특히 장마 이후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과 이로 인한 집중호우도 잦아 재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태풍 루사가 강타한 지난해 8월말.강원·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재산 피해가 3조원에 이르렀고,사망·실종자가 201명이나 됐다.2만 3700여 가구,6만 78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지난 98년에는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집중 호우로 1조 2000억원이 넘는 재산피해와 324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지난 59년에는 태풍 사라의 영향으로 849명이 사망,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기록했다.지난 87년에는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345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3900억원의 재산피해를 냈다.특히 98년 이후 평균 재산피해액만 1조원이 넘는 등 재산피해액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기상청 관계자는 “올해 장마가 불규칙한 남북 진동을 보이며 소강상태를 보일 때가 많겠고,2∼3차례 많은 비를 뿌린 뒤 오는 7월 25∼26일쯤 끝날 것”이라면서 “장마가 끝난 뒤 8월 초까지 무더위가 이어지다 8월 중순이후 2∼3차례 태풍을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지겠다.”고 내다봤다.
  • 죽령 옛길 트래킹 / 이 고개 넘으면 무엇이 날 반길고

    찻길과 철길이 거미줄처럼 깔린 요즘 고갯길을 걸어서 넘는 사람은 별로 없다.그러나 현대인들이 무심코 자동차를 타고 한달음에 넘어다니는 찻길 뒤편엔 선조들의 수백년,혹은 수천년 애환이 담긴 옛길이 있다. ●경북 영주·충북 단양 경계 고갯길 잊혀진 옛길을 찾아 선인들의 흔적을 더듬다보면 허물어진 주막집 돌담 옆에 난 풀 한포기도 각별하게 느껴질 것이다.삼국시대 이래 역사에 우뚝 선 명인들과 이름 모를 나그네들의 발자취 선연한 죽령(竹嶺)옛길을 찾았다. 백두대간인 소백산맥을 넘는 죽령(689m)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경계짓는 고개.문경새재,추풍령과 더불어 영남과 기호 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의 3형제로 꼽힌다. 죽령은 그중에서도 연대와 높이,구실이 단연 으뜸이니 맏형격이다.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가 수백년간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던 군사적 요충지다. 죽령옛길은 1930년대이전까지 해도 동북지방의 여러 고을에서 서울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길이다.하지만 이후 찻길(5번 국도)이 나면서 잊혀져 수풀만 무성했는데,수년전 관광자원 개발 차원에서 일부 복원돼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옛길 탐방 기점은 풍기읍 수철리 중앙선 희방사역.풍기에서 5번 국도를 타고 단양 방면으로 죽령을 향해 가다보니 왼쪽으로 ‘희방사역’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좁은 길로 조심스럽게 빠져 내려가니 아담한 역사가 나오고,그 아래로 민가가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하지만 ‘죽령옛길’이란 표지판은 어디에도 없다.한참을 두리번거리는게 답답했는지 역사에서 직원이 나와 친절히 가르쳐준다. 직원 말대로 100m쯤 전방에 하늘 높이 지나가는 고가도로(중앙고속도로) 밑에 차를 세우고 5분쯤 걸어 올라가니 그제야 ‘죽령옛길·죽령주막’이란 표지판이 나타난다. ●삼국시대 쟁탈전 벌이던 군사요충지 겉으로 보기에 죽령옛길은 그저 평범한 산길일 뿐이다.무심코 지나친다면 천년 이상 번잡했던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렵다.그래서 수백년 전의 모습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천천히 올라보기로 했다.다행히 국립공원측에서 곳곳에 안내판을 세워 선인들이 지났던 흔적을 설명해 놓았다.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낙향하는 이현보를 마중나와 죽령에서 배반(杯盤)의 자리를 베풀며 함께 읊었던 시. ‘나부끼며 돌아가는 어부같이/…/오늘 죽령으로 돌아온 뜻은/천고 만고의 강상(綱常)이 아니랴!’란 시구가 은퇴와 낙향을 자연의 이치와 도리에 비유한 당대 석학들의 초연한 풍모를 드러내준다. 옛길은 다니기에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무와 덩굴이 터널을 이룰 정도로 숲이 무성하다.가장 흔한 식물중 하나가 으름덩굴.어릴 적 가을에 산에 올라가 만나면 횡재한 듯 기뻐했던 덩굴이다.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으름열매를 따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오솔길 옆으론 보랏빛 붓꽃이 한창이고,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20분쯤 더 올라가니 속칭 ‘느티정’이라는 옛 주막거리터다.예전엔 느티정과 함께 희방사역이 있는 마을 어귀의 ‘무쇠다리’,고갯마루 밑의 ‘주점’,고갯마루 주막거리 등이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지금은 무너지다 남은 토담과 잡초 속에 뒹구는 방앗돌 등이 세사(世事)의 무상함을 되새기게 할 뿐이다. ●무성한 수풀사이 수백년 전 선인들 발자취 고갯마루 못미쳐 잠시 숨을 돌리려니 ‘신라의 명신 죽지(竹旨)’란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술종(述宗)이란 신라의 명신이 죽지령(죽령의 옛 이름)을 넘던 중 범상치 않은 한 거사를 만났는데,이후 거사가 꿈속에 나타난 뒤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다고 한다.알아보니 거사는 꿈을 꾸던 날 죽었다고 했고,그래서 태어난 아들 이름을 죽지라고 지었다고 한다.죽지는 이후 화랑이 되어 김유신 등과 통일 대업을 이루게 된다. 고갯길엔 이밖에도 신라 망국의 한을 품은 마의태자,고려때의 태조 왕건,고려말 정몽주,조선시대 의병대장 유인석과 이강년 등에 얽힌 수많은 전설과 사연이 서려 있어 죽령옛길을 걸으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다. ●옛 주막거리터 보고 길옆 야생화도 보고…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까지 총 길이는 2.5㎞ 정도.옛길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소개한 안내판도 읽고,길 옆의 야생화도 쉬엄쉬엄 감상하면서 오르다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다시 5번 국도와 만난다.길 건너에 초가지붕을 얹은 음식점 ‘죽령주막’이 있다.고개 너머는 충북 단양군 대강면.고갯마루에서 다시 희방사역까지 내려오려면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영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높이 28m 희방폭포 장관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빠져 5번국도를 타고 단양 방면으로 가야 한다.15분쯤 달리면 죽령에 오르기 전 왼쪽으로 희방사역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서울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타고 희방사역에서 내리면 바로 옛길로 들어갈 수 있지만 하루 1회만 정차하므로 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아예 열차가 자주 서는 풍기역에서 내려 희방사행 시내버스를 타고 희방사역 입구까지 가도 된다. ●숙박 소백산 옥녀봉휴양림 속 숙소를 이용해보자.울창한 숲속에 있어 삼림욕을 즐기면서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방갈로와 가족단위로 묵을 수 있도록 콘도식 객실을 갖추고 있다.요금은 평형별로 4만원에서 8만원.문의 휴양림관리사무소(054-636-5928). ●가볼 만한 곳 죽령옛길 탐방 후 5번 국도에서 들어가는희방계곡과 희방사에 가보자.희방계곡은 울창한 수림속에 자리잡아 여름이면 피서지로 각광받는 곳.벌써 계곡 구석구석엔 더위를 피해 돗자리를 펴고 쉬는 사람들이 꽤 많다.계곡을 오르다보면 희방사 못미쳐 높이가 28m에 이르는 희방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폭포를 지나 300m쯤 더 올라가면 소백의 연봉을 병풍처럼 두른 채 아담하게 자리잡은 희방사가 나온다.문의 영주시청 문화관광과(054) 634-2153. [식후경] 풍기 ‘인삼갈비' 일미 영주는 한우,풍기는 인삼이 유명하다.그래서 풍기에 가면 ‘인삼갈비’를 파는 음식점이 많다.그중 읍내 봉현 네거리에 위치한 ‘풍기인삼갈비’(054-635-2382)가 유명하다. 인삼과 11가지 한약재를 달인 물에 24시간 고기를 재어 두었다가 조리한다.이렇게 하면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며 냄새가 전혀 없다고 한다. 주요 메뉴는 인삼한우갈비(500g 3만원),인삼 한우불고기(200g 1만2000원),인삼 돼지갈비(200g 5000원),인삼 갈비탕(6000원). 희방사역 입구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죽령으로 오르다가 오른쪽에 보이는 ‘신대성식당’(054-638-5399)의 음식도 맛이 괜찮은 편이다. 특히 인삼갈비와 10여가지 산채나물,된장찌개로 이루어진 ‘인삼정식’(1만 2000원)이 먹을 만하다.소백산 일원에서 나는 산채를 쓰는 산채비빔밥(5000원),돌솥비빔밥(5000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
  • 불황속 잘나가는 日6개사 비법 / “고객 눈높이에 맞추고 승산없는 사업은 퇴출”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1일 ‘장기불황에도 우량기업은 더 이익을 낸다’는 보고서에서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제로 성장을 걷고 있는 일본 경제에서 해마다 최고 이익을 경신하는 6개사의 성공 전략을 소개했다. ●변신은 ‘무죄’ 캐논은 일본식 종신고용과 미국의 실력주의를 접목해 경쟁력을 키웠다.또 생산부문에 첫 공정부터 최종 공정까지 책임지는 ‘셀(Cell)’ 방식을 도입,다품종 소량생산에 주력했다.그 결과 지난해 매출액 1조 8000억엔으로 세후 이익이 경쟁사 니콘의 8배인 1900억엔을 기록했다. ‘주먹밥’으로 상징되는 세븐일레븐재팬은 고객 욕구에 부응하고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9000개 점포의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소비자 반응을 곧바로 반영했다.가설까지 세워 상품을 공급할 정도였다.10년째 20%대의 순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굴뚝’은 살아 있다. 닛산 자동차의 부활은 철저한 구조조정과 CEO의 탁월한 경영 능력에 기인했다.1999년 프랑스 르노사에 지분 37%를 팔았고 항공부문도 매각했다.또 카를로스 곤 사장을 영입,인력 구조조정 차원에서 종업원 8800명을 줄였다.그래서 곤 사장은 냉혹하게 잘라낸다는 뜻의 ‘코스트 커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그는 간부 600명과 3개월간 면담을 통해 조직 체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탈바꿈시켰다. 경영 성과는 눈부셨다.닛산은 2000년 흑자로 돌아섰고 현재는 매출·순이익면에서 혼다를 추월했다. 종합화학 산업의 부진속에 ‘나홀로 호황’을 구가한 신에쓰화학의 성공 비결은 ‘비정한’ 수익 제일주의.최대 순이익을 기록한 지난해에도 직원의 15%인 1500여명을 줄였다. 미국내 자회사인 신테크는 총무·재무담당 직원이 1명도 없다.특히 연간 생산능력 231만t 규모의 세계 최대 공장을 겨우 230명의 종업원이 움직이고 있다. ●잘 나갈 때 준비하라 가정용품 생산 1위업체인 카오는 13년째 순익이 늘어난 기업으로 유명하다.그러나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정보관련 사업과 대중의약품 사업이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철수했다.버릴 줄 모르는 일본 업계에서는 ‘이단아’ 같은 행동이었다.다케다 약품도 농약·화학·식품 등 비약품사업에서 손을 떼고 미국시장을 집중 공략,대성공을 거뒀다. 이우광 수석연구원은 “어려운 여건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이 진정한 우량 기업”이라며 “요즘 어려움에 처한 국내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
  • 이런 책 어때요 / 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홍수원·구자현 옮김 / 중심 펴냄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사려 깊은 철학자이자 뛰어난 문필가였다.상대성 원리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인식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알기 어려울 정도로 철학적이다.과학과 물리학은 철학과 맞닿아 있으며,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철학자인 동시에 독실한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보여준다.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고 말했다.이 책은 의무병역제도와 군대를 혐오하고,전쟁의 종식을 위해 세계정부 수립을 촉구한 평화주의자로서의 아인슈타인의 모습도 조명한다.2만 2000원.
  • 大田도심 열차사고 계기 / 다시 터진 ‘고속철地下化 목소리’

    최근 대전 도심에서 발생한 새마을호 열차 탈선사고를 계기로 고속철도 등 도심통과 노선의 지하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경부고속철도 대전·대구 구간의 지하화 여부에 대한 전문기관의 용역 결과가 이달 말 나올 예정인 가운데 지하화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지하화 요구는 비단 고속철도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철도 역시 전국 곳곳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대전시 동구의회는 지난 달 29일 ‘대전통과 구간 반지하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집행부에 넘겼다.지난 2월 ‘경부고속철도 대전 도심구간 지하화 추진 특별위원회’를 만든 구 의회는 이같이 입장을 정리했다.의회는 “경부선 때문에 동서로 갈라진 지역발전의 장애요소와 소음 등을 없애려면 경부선과 함께 반지하로 경부고속철도 노선을 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대전시는 동구와 시의회 의견 수렴,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이달 말까지 입장을 결정한 뒤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대전 일부에서는 그동안 지상화를 수용하고 지하화할 때와의 차액(5000억원)을 동구지역 발전과 역세권 개발을 위해 쓰자는 현실론이 굳어진 상황이어서 이같은 입장변화는 상당한 혼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대전 이달 시민공청회 대구지역 정치권도 “기존 경부선이 대구 도심을 동서로 갈라 도시 균형발전을 크게 해치고 있다.”며 경부선과 함께 반지하화를 요구하고 있다.이전까지 지하화를 주장한 대구시는 아직 입장정리가 안된 상태다.대구와 대전시는 고속철도공단과 함께 이달중 각각 시민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10년 넘게 논란을 빚고 있는 경부고속철도 도심통과 구간 건설방식은 98년 8월 건설교통부에 의해 대전·대구 구간을 지하화하기로 최종 결정됐으나 일부 지역 국회의원이 ‘반지하론’을 제기하면서 같은해 말 다시 교통개발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했다. 새롭게 등장한 반지하화방안은 지하철처럼 지하 20m에 터널형 박스를 묻은 뒤 기존 지상의 경부선 노선을 옮겨 철로를 함께 사용하자는 것이다.지하 60m 아래로 고속철도 선로만 만드는 지하화와는 차이가 있다.이 공법은 ‘경부선과 함께 지하로 들어가 소음과 공해 등을 줄일 수 있다.’‘지상을 활용할 수 있다.’는 등 장점이 있다,그러나 ‘철로가 학교와 아파트 등 지하를 지나 민원이 발생하고 현재 운행·공사중인 지하철 노선 때문에 철로 놓기가 쉽지 않다.’‘길이는 지하화에 비해 짧아도 사업비가 2배 정도 더 든다.’‘기존 경부선과 병행 공사로 대구지하철 운행을 3개월쯤 중단해야 하는 등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등의 단점도 적지 않다.반지하화하면 당초 지하화 도심구간이 대전 22㎞(대전시 대덕구 신대동∼동구 대성동)와 대구 29㎞(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리∼대구시 수성구 고모동)에 비해 대전 8.8㎞,대구 5.8㎞로 각각 크게 짧아진다. ●정책변경 잦아 논란 지속 그러나 반지하화 방식은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이번 용역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져 또다시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고속철도공단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고속열차와 화물열차가 한 철로를 사용하는 예는 한곳도 없다.”고 말했다. 반지하화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도 경부고속철도 도심구간 노선은 수없이 번복돼왔다.지하화(90년)→지상화(93년)→지하화(98년)과정을 거치고 있다.‘지하화하면 사업비가 많이 든다.’ ‘주민들이 지상화를 반대한다.’는 등 이유를 들어 방식이 변경될 때마다 대전과 대구에서는 지하화 등을 요구하며 정부에 건의서를 올리는 등 여론이 크게 요동쳤다. 재용역에 들어가기 전 98년에 발표된 정부의 계획은 2004년 4월 개통예정인 서울∼부산간 409㎞중 222㎞는 신설(사업비 12조원) 철로,187㎞는 기존 경부선 철로를 이용하기로 했다.이어 대전 회덕∼충북 옥천간,대구 신동∼부산간 경부선은 2010년까지 18조원을 들여 철로를 신설키로 하고 대전 및 대구 도심은 지하화하기로 했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정부가 자꾸 번복하는데 지자체가 지하화든 지상화든 방안을 내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불만을 쏟아냈다.고속철도공단 관계자는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나 기술·재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 ■지하화 요구 구간은 철로도심구간의 지하화 요구는 각 지의 고질 민원이다. 아파트 밀집지역인 인천 연수구 주민들은 철도청이 추진중인 수인선 전철의 지하화를 관철시켰다.철도청은 주민들의 지하화 요구가 수년째 계속되자 인천구간(연수∼인천역) 9.5㎞를 지하화하기로 했다.이에 따라 시흥시 오이도∼연수(11㎞)구간은 지상 및 고가로,연수∼인천역 구간은 각각 지하로 건설될 전망이다.철도청 관계자는 “연수∼송도간 1.8㎞는 고가에서 지하구조로 변경돼 사업비가 350억원 늘어 820억원이 필요하다.”며 “자치단체 부담분인 25% 외에 지하화에 따른 증액비를 인천시가 부담하는 문제를 놓고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의선이 지나는 경기 고양시 주민들은 도심구간 18㎞의 지하화를 요구하고 있다.시민들은 “2001년 7월 철도청과 고양시가 합의한 반지하화는 지상 철로와 같다.”며 “소음·분진·환경피해,건널목 시설로 인한 교통체증은 물론 일산신도시와 구 일산을 분리해 균형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시민단체와 시의회도 대책위와 특위를 구성하고 이에 가세했다.지하화 요구는 철로와 인접한 구 일산 주민들쪽이 더 강하다.철도청은 “사업비가 4000억∼5000억원 더 들고 사업기간도 3년 늦춰진다.”고 밝히고 있다.고양시는 도시계획을 다시 바꾸기가 어렵지만 풍동·일산 1·2지구 택지개발과 파주신도시 조성 등 교통수요 급증 요인이 많아 지난달 지상화 개선대책에 대한 용역을 발주하는 등 고심하고 있다. 전철 분당선 연장 노선인 분당 오리역∼수원역 18.2㎞ 구간 가운데 유일하게 지상 철로로 계획된 오리∼죽전(1.8㎞)간 인근 주민들도 소음공해 등을 이유로 지하화를 요구하고 있다.죽전지구 주민들은 지상철 공사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철도청과 용인시에 진정서를 내고 “분당선이 성남대로를 따라 지하로 건설되지 않고 죽전주유소∼차량기지 1㎞여 구간이 지상화되면 인근 대단위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소음공해에 시달리게 될 뿐더러 지역 상권도 무너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상철로를 강행할 경우 실력행사로 맞서겠다고 벼르고 있다.철도청은 “이 구간은 기술적인 문제로 성남대로 밑으로내기 어려워 기본계획 때 지상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원 춘천시는 시민들과 철도청이 3년 넘게 논란을 벌여온 경춘선 복선전철 도심통과 구간을 올해 초 ‘고가화’로 최종 결정했다. 시민 여론조사에서 고가화쪽에 45.2%가 찬성,반대(44.1%)를 앞질렀기 때문이다.시민들은 “관광도시인 춘천 중심지역의 철길이 고가로 놓이면 도심이 양분되고 흉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철로·운행시간 짧아져 ‘지하화’비용이 큰 부담 도심구간을 통과하는 철로의 지하화는 과연 최선의 방법일까.무엇이든 장·단점이 있듯 철로의 지하화 또한 마찬가지다. 장점은 철로 거리가 짧아진다는 점이다.건물과 하천 등 도심의 각종 장애물을 피해 노선을 구불구불 깔지 않아도 된다.자연히 운행시간도 짧다.경부고속철도 대전구간의 경우 지상화할 때보다 1㎞가 짧고 운행시간은 3분 12초 정도 단축된다.대구는 5㎞가 차이 나 8분 27초 덜 걸린다.지하화하면 역 직전까지 고속운행할 수 있으나 지상 노선의 경우는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미리 속도를 줄여야 한다. 공사 과정에서 경부선 등 기존 철로의 열차 운행에 지장이 없다.지상과는 무관하게 공사가 이뤄지는 까닭이다. 대전 새마을호 열차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 위험도 자연 줄어든다.이번 새마을호 열차 사고는 시속 80㎞로 달려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그러나 고속철도는 열차가 최고 시속 300㎞로 달려 사고가 발생하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철로 통행 등 주민들의 불편도 없어진다.주변 주민이 소음,진동,공해 등으로 피해를 당하는 일도 없는 편이다.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장점이다.도시계획 및 실시계획 승인 등 각종 행정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상태다.고속철도공단 관계자는 “지상화로 결정돼 행정절차를 다시 밟으려면 최소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단점으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경부고속철도 대전구간의 경우 경부선과 함께 지상에 깔면 사업비가 1조원 가까이 들어가는데 비해 지하화는 1조 5089억원으로 50% 정도 더 든다.승강장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환기시설과 화재예방시스템 등 완벽한 방재시설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60m 밑 땅속으로 철로가 놓여져 현재 운영중이거나 건설중인 지하철 승강장과 연결하기도 쉽지 않다.지상에서 경부고속철도 승강장까지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가는데 5분 49초가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따라서 승객들도 고속열차를 이용하기가 불편하다. 녹색교통운동 민만기(39) 사무처장은 철로 지상화는 도심을 단절하고 소음 등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뒤 “완벽한 방재시설과 구난체계 등이 갖춰진다면 지하화는 좋은 방안의 하나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고가화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부고속철도 대전·대구 도심은 지하 구간이 너무 길어 방재·구난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으면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 영화계 진출 선언 김영훈 대성그룹 글로벌에너지 회장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영화를 액세서리로 여긴 것 같습니다.상품성을 살리기보다는 기업 이미지 홍보에 치중했으니 경영이 방만해졌죠.그러다 보니 IMF사태를 맞아 영화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지요.” 최근 영화계 진출을 선언해 화제가 된 대성그룹 글로벌에너지네트웍.대성연탄이 모기업이다.부나비처럼 덤볐다가 너나없이 백기를 들고 떨어져 나가는 현실에서,대성의 도전이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그 중심에 선 김영훈(51) 회장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거품이 빠져나간 시기가 투자의 적기죠.에너지산업이라는 하드웨어가 근간인 우리 그룹이 영화라는 소프트웨어도 병행해야 한다는 경영진단도 있었고요.무엇보다 침체된 영화산업에 불을 지피는 촉매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젊은날 일깨워준 꿈 꿈틀꿈틀 그의 이력을 보면 영화 진출은 예정됐던 길인 것 같다.그는 현실인 땅(경영학·법학)과 이상인 하늘(신학)을 두루 경험한 뒤 ‘중간’인 영화에서 접점을 찾았다.7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온 뒤 가업 승계를 염두에두고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석사(MBA)와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이어 시티뱅크 서울지점에서 2년 근무한 뒤 다시 미국의 하버드대학으로 갔다.한국이란 우물에 갇히지 않고 국제경영을 배우게 하려는 부모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러나 역사와 신에 관심이 많던 젊은이는 신학으로 진로를 바꾼다.“기독교에 관심이 많았는데(그는 모태 신앙이다),하느님의 말씀을 원전으로 본다는 떨림으로 집어든 책이 진로를 바꾸게 한 거죠.” 미국 교회에서 장로로 활동하면서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내친 김에 아예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고 했다.“신학대학원 진학 계획을 들은 아버지께서 섭섭해 하셨습니다.제 의향을 존중해주시는 분이라 강하게 반대하시지는 않았습니다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반대를 하셨죠.” 그러나 ‘신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기업을 이끌기에 심신이 지친 아버지의 인간적이면서도 간절한 호소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기획조정실장으로 가업에 뛰어든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10년 동안 기업 규모를 10배로 늘렸다.기반이 잡히자 접어둔 ‘꿈’이 꿈틀꿈틀했다.너무 늦었다는 판단에서일까? 젊은 날을 일깨워준 것은 목회자가 아니라 영화였다. “중학교 때부터 문학과 영화를 좋아했습니다.신상옥 감독의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아버지와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모 신문에 비슷한 내용이 실려 놀란 적도 있습니다.언제부턴가 ‘좋은 영화가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민족의 문화와 정서가 온전히 녹아 있는 영화는 그 자체로 세계를 이루고,그런 이유로 상품 수출의 첨병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할리우드를 상징 코드로 하여 ‘미국 기호’를 만듭니다.이런 맥락에서 우리 영화도 동북아 중심축 형성을 위한 중요한 투자 포인트입니다.전통적 소재가 세계에서도 통합니다.유학시절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춘향전’을 봤는데 제가 본 뮤지컬 영화 중에 최고였습니다.” ●영화사엔 ‘미운 시어머니’ 될듯 그의 이력이나 세계관을 보노라면 영화 제작에도 방관하지 않을 성싶다.나름의 잣대를 갖고 주문을 많이 해 영화사에는 ‘미운 시어미’(?)가 될지 모른다는 느낌을 주었다.이미 전략적 제휴를 한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에게 ‘선정성과 폭력성’을 배제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흥행과 작품성의 공존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아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딴죽을 걸었다.“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보세요.어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나옵니까.그런데도 ‘리어왕을 가장 잘 해석한 영화’라며 잘 팔리잖아요?”라고 말한다. “가장 예술적인 영화가 흥행성이 강하다.”는 그의 ‘아름다운 고집’에는 젊은 시절부터 간직해온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물씬 묻어났다. 이종수기자
  • [대한포럼] 1000억 달러의 행방

    ‘무역흑자가 나면 부동산 값이 폭등한다.’ 대다수 경제학자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아마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나라경제의 대외적 수입과 지출인 국제수지와 국내의 부동산 가격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혹시라도 이에 관한 연구논문이 있지 않을까 싶어 관련 기관들의 자료DB를 검색해 보았으나 단 한편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이 말이 맞는 것 같다.두번의 경험이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97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 우리 경제가 무역흑자 기조를 유지했던 때는 딱 두번 있었다.두번 다 엄청난 부동산 값 폭등을 가져왔다.우연의 일치라고 넘기기에는 두번의 사례가 너무도 닮은꼴이다. 첫번째는 1986∼1989년 사이다.우리 국민들은 당시의 ‘3저 호황’을 잘 기억할 것이다.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다 올림픽 특수까지 겹쳐 우리 경제는 보기 드문 호황을 누렸다.그 4년 동안에 3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문제는 그 다음이다.1990∼1991년 사이에 전국은 극심한 투기열풍에 휩싸였다.자고 나면 집값,땅값이 뛰고 전셋값까지 덩달아 치솟아 거리에 나앉게 된 서민들이 속출했다.정부는 당시 위헌논란을 감수해가며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고 기업이 보유한 비업무용 토지를 강제 매각토록 하는 등의 초법적 조치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똑같은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다.우리 경제는 지난 1998∼2002년까지 5년 연속 총 10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흑자기간이 끝나자마자 수도권과 충청지역 일대에서 그 망국병이 다시 도지고 있다.지난주 서울 강남에는 분양가가 28억원이나 되는 아파트가 등장했고,평당 3000만원이 넘는 아파트도 곧 분양될 것이라고 한다.서민들은 1년간 번 돈을 한푼도 안 쓰고 저축해도 이 아파트 한 평을 못 산다는 얘기가 된다.정부가 무려 3000명에 달하는 국세청 직원들로 투기억제 기동타격대까지 편성해 부동산 시장에 투입하는 등 열심히 뒷북을 치고 있지만 투기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망국병의 근원인 부동산 투기 열풍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두번의 사례를 근거로 무역흑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대외무역에서 수년동안 누적된 흑자가 기업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고스란히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 투기 열풍의 에너지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마치 적도 부근에서 생긴 열대성 저기압이 점차 북상하면서 뜨거운 습기를 빨아들여 무시무시한 태풍으로 발전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지난주에 발표된 한 통계자료는 이런 상황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은행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잔액은 지난 99년말 130조원이었다.이것이 지난 4월말 현재 260조원으로 무려 130조원이나 늘어났다.어디에서 그 많은 자금이 한꺼번에 부동산 시장에 흘러갔을까.지난 5년간의 무역흑자 1000억달러를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20조원.우리나라가 외국과 장사를 해서 어렵게 벌어들인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돼 집값과 땅값 폭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에 대한 선호도가 유난히 강하다.‘한푼 두푼 벌어 땅에 묻어두라.’는 재테크 격언에는 한국인의 이런 성향이 잘 나타나 있다.우리는 무역에서 번 돈을 기업에 끌어들여 설비확장과 기술개발 등 지속 성장을 위한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대신 고스란히 아파트와 땅에 묻었다.정부는 1986∼1989년의 뼈아픈 실책을 경험하고도 소중한 무역자본이 투기자금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두번의 흑자관리 실패 경험을 통절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염 주 영 논설위원 yeom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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