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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고위감사공무원 <전보> [국장]△재정·경제감사 왕정홍△공공기관감사 조규호△사회·복지감사 김병석△행정·문화감사 이세도△지방행정감사 김충환△감사청구조사 김진해[실·단장]△심의실 문호승△전략과제감사단 이재덕<승진>△감사품질관리관 박찬석△감사교육원 교육운영부장 이해인△감사원(파견) 원성희[단장]△교육감사 진유조△국방감사 정경순△지방건설감사 최대선△감찰정보 유희상△공공감사운영 김성홍◇3급 승진△건설·환경감사국 제4과장 유인재△교육감사단 제1과장 유병호△국방감사단 제2과장 마광열△지방건설감사단 제1과장 이영웅△감사청구조사국 조사1과장 이영△심의실 법무담당관 윤승기<금융·기금감사국>△제2과장 조성은△제3〃 박재신△제4〃 이영하<사회·복지감사국>△제2과장 백복수△제4〃 남주성<지방행정감사국>△제1과장 이남구△제2〃 이상욱△제4〃 김현국<특별조사국>△조사1과장 박동균△조사4〃 이관직◇과장 <신규보임(승진)>△교육감사단 제3과장 최정운△특별조사국 조사2과장 정규섭△감사청구조사국 대전사무소장 나제방△기획관리실 성과·제도담당관 박완기△감찰관실 감찰담당관 김용범△공보관실 공보담당관 유병호△감사교육원 교육운영부 교육운영1과장 이윤재△감사연구원 연구부 연구1팀장 김성준△감사원(파견 등) 김상문 김영신 구경렬 김동섭[공공감사운영단]△제1과장 김영관△제2〃 이수연[심의실]△심사1담당관 안상문△심사2〃 박승준<전보>△금융·기금감사국 제1과장 김명운△공공기관감사국 제4과장 홍영남△전략과제감사단 제1과장 정상우△교육감사단 제2과장 전광춘△지방건설감사단 제2과장 김계중△기획관리실 기획담당관 김경호△감사원(파견) 박재용[재정·경제감사국]△제1과장 최성호△제2〃 이재호△제5〃 김광영[건설·환경감사국]△제2과장 황장호△제3〃 이도승[사회·복지감사국]△제1과장 김시관△제3〃 장난주[행정·문화감사국]△제1과장 최기정△제2〃 최채우△제3〃 이철진△제4〃 이준재[지방행정감사국]△제3과장 유병찬△제5〃 조웅길△제6〃 한남희[국방감사단]△제1과장 정상복△제3〃 송윤근[특별조사국]△총괄과장 현완교△조사3〃 정항면[감찰정보단]△제1과장 박성익△제2〃 박종풍[감사교육원]△교육운영부 교육운영2과장 김경혜△교육지원과장 정경중◇4급 <전보>△건설·환경감사국 제1과 백맹기△감찰정보단 제1과 김두식△공공감사운영단 제2과 이정순△행정지원실(서무행정팀) 장병원△감사원(파견 등) 신치환 백철우 신상모[재정·경제감사국]△제1과 정광명△제4과 이동수△제5과 김용천 이세열[금융·기금감사국]△제1과 남수환△제4과 김병수[공공기관감사국]△제1과 김수종△제4과 전형철[전략과제감사단]△제1과 박준홍△제3과 이영회[사회·복지감사국]△제1과 황진연 전우승△제2과 황하승 한태진△제3과 이상철△제4과 이영갑[행정·문화감사국]△제1과 안무열 박용준△제2과 도대성 박석진△제3과 김창식△제4과 이광우[지방행정감사국]△제1과 장양국 강승원△제2과 황광돈 남상진△제3과 임서수 김석중△제4과 신능식△제5과 김병림△제6과 이희두[교육감사단]△제1과 김종운 이우종△제2과 박경수 권태경△제3과 박기우 김태성[국방감사단]△제1과 강민호 이진종△제1과(방산비리TF) 엄광섭△제2과 전영진 박상용△제3과 박영철 윤종식[지방건설감사단]△제1과 김영석 이재홍△제2과 조철환[특별조사국]△조사3과 이진완△조사4과 구현모[감사청구조사국]△조사1과 정진석△조사2과 어원△대전사무소 양주석 박시석△서울 국민·기업불편신고센터 남기철△광주 국민·기업불편신고센터 조승현△부산 국민·기업불편신고센터 정재종[기획관리실]△기획담당관실 황해식△결산담당관실(재정분석TF) 강성덕△성과·제도담당관실(전산운영팀) 송영소△국제협력담당관실(ASOSAI사무처) 이주형[심의실]△법무담당관실 이진열△심사1담당관실 이종각 남가영[감사품질관리관실]△조정1팀 유종남 오준석 이성훈 최익성△조정2팀 홍성모 한영욱 이상혁 김하석[감사교육원 교육운영부]△교육운영1과 배정량 홍성재△교육운영2과 김학순 김태석 ■방송통신위원회 ◇과장급 전보 △정책관리담당관 곽진희△국제기구〃 유대선<과장>△융합정책 오승곤△디지털방송정책 송상훈△방송정책기획 이정구△지상파방송정책 장봉진△방송채널정책 오광혁△통신정책기획 이상학△통신경쟁정책 이창희△통신자원정책 이재범△조사기획총괄 최영진△시장조사 전영만△이용자보호 박철순△시청자권익증진 박준선<팀장>△방송통신녹색기술 최우혁△네트워크정보보호 이상훈△홍보기획 이승원△공보 정성환 ■국무총리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고기석 ■특허청 ◇부이사관 승진 △정보기획국 정보기획과장 최종인◇부이사관 전보△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진흥관 파견 박성준◇과장급 전보△고객협력국 국제협력과장 권규우 ■우정사업본부 △새주소우편전략팀장 천장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기획실장 차두원△성과확산〃 손석호 ■중소기업중앙회 ◇상근이사 승진 △경영기획본부장 김철기△인재교육〃 강성근 ■부산항만공사 ◇전보 △선진경영팀장 김찬규△전략기획실장 차민식△감사팀장 이채복△홍보실장 최철희 ■서울대 ◇서기관 △기획과장 정봉문 ■포스텍(포항공대) △부총장(대학원장 겸임) 장태현<처장>△기획 김무환△교무 이진수△입학(학생처장 겸임) 한성호△연구(산학협력단장 겸임) 김승환△학술정보 박찬익 ■고려대 △교무부총장 강선보△교무처장 명순구△법과대학장(법무대학원장·법학전문대학원장 겸임) 박노형 ■건국대 <서울캠퍼스>△사범대학장 최은식△교육대학원 행정실장 강대용<글로컬캠퍼스>△입학처장 강흥중△중원도서관장 백우진<건국대의료원>△원장 양정현 ■홍익대 △공과대학장 김병주△산학협력단장 박상주△교학관리처장 장인식△입학관리본부장 이정해△중앙도서관장 김철중△문정〃 권석기△공학교육혁신센터소장 이호경 ■경북대 △부총장(대학원장 겸임) 임지룡△교무처장 김규원△학생〃 김장억△기획〃 최평△대외협력〃 서정해△산학협력단장 김화중△입학관리본부장 유기영△국제교류원장 이광목△교무부처장 박환배△학생〃 채연숙△대외협력〃 김정철△입학관리본부 부본부장 김판수△신문방송사 주간 왕태웅△출판부장 홍순상△농업생명과학대학부속실험실습장 박순기△산학협력지원단 분단장 김재수△평생교육원 분원장 강우원△기초교육원 부원장 류승필△보건진료소장 이종명<관장>△도서 장태원△생활 이원희△공동실험실습 김영호△자연사박물 김교원<원장>△정보전산 김상욱△어학교육 이예식△국제농업훈련 신동현△평생교육 김효신△과학영재교육 이광필△정보영재교육 한욱신△사회과학연구 배양일△반도체융합기술연구 신장규△한국어문화 남길임△교육연수 성위석<센터장>△체육진흥 강호율△실험동물자원관리 류재웅△IT융복합글로벌인재양성 조진호△중소기업산학협력 박재경<단장>△테크노파크 김광태△산학협력중심대학산업 이상룡△노화극복웰빙을위한의료기술개발사업 김정철 ■숙명여대 △대학원장 조무석△교육대학원장 송기창△연구처장 강명욱△박물관장 임중혁△아태여성정보통신원장 최동주△창업보육센터장 김규동△숙명역사관장 목은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학처장 설원기△기획〃 김수기△음악원장 박광서△영상〃 장윤희 ■국민일보 △경영전략실장(이사대우) 최삼규△판매국장 직대 박문수 ■한국일보 ◇승진 △경영지원국 국장 최성범△재무관리국 〃 김경순 ■동부증권 ◇보임 △영업추진팀장 김찬구△경영혁신파트장 인태욱△업무개발〃 정재균△모바일TF팀장 박상열△명일지점장 김성수 ■신영증권 ◇이사 선임 △IB본부 김성택 ■유진투자증권 ◇상무 승진 △채권금융본부장 차장훈△파생법인영업파트장 최현 ■한화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 문철호 ■동양그룹 ◇승진 △동양/매직 이사대우 김삼열 ■서울대병원 △대외정책실장 이종구
  • 삼성 ‘모바일’ LG ‘3D’ 유럽 홀린다

    삼성 ‘모바일’ LG ‘3D’ 유럽 홀린다

    2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하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인 ‘국제가전전시회’(IFA 2011)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양대 가전업체들이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펼친다. 삼성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을, LG는 3차원(3D) 입체영상 TV 등 ‘3D’를 키워드로 하반기 유럽지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이다. 31일 삼성과 LG에 따르면 애플과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삼성전자는 이번 행사에서 모바일 기기들을 대거 선보여 경쟁 업체들과 차별화에 나설 계획이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제(OS)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정보기술(IT) 주도권 싸움에서 삼성이 얼마나 강력한 4세대(4G) 기반 스마트 기기를 내놓느냐를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은 이번 전시회에서 독자 개발한 운영체제(OS)인 ‘바다2.0’을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 시리즈 3종을 비롯해 갤럭시W·M 등 새로운 갤럭시 시리즈(4종)를 대거 선보인다.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두께 7㎜대의 태블릿 ‘갤럭시탭 7.7’(7.7인치)과 ‘윈도7’용 태블릿인 ‘슬레이트 PC’도 공개하고, 스마트폰의 휴대성과 태블릿PC의 가독성을 모두 살린 5인치 태블릿폰 ‘갤럭시 노트’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4G 통신기술인 롱텀에볼루션(LTE) 기반의 스마트폰 ‘갤럭시S 2’(셀룩스)와 태블릿PC ‘갤럭시탭 8.9’(8.9인치)를 내놓을 계획이다. 스마트 기기 분야에서 신제품을 거의 내지 않은 경쟁 업체들과 달리 삼성은 이번 행사에 올인하다시피 모바일 기기로 승부수를 던졌다.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할 4G 시장에서도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종류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하드웨어 분야 선도 기업 이미지를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자체 OS인 ‘바다’ 기반의 제품들도 대거 공개해 ‘바다 띄우기’에도 나서는 등 최근 IT 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경쟁력도 확보해 간다는 생각이다. 반면 LG는 이번 전시회의 핵심 주제를 ‘3D 체험’으로 잡고 자신들의 편광안경 필름패턴(FPR) 방식의 3차원 영상을 최대한 많은 관람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 FPR 방식을 지원하는 편광안경 하나면 TV와 모니터, 프로젝터, PC 등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대규모 인파가 한꺼번에 입체영상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IFA 관람객들이 무료로 사용한 뒤 가져갈 수 있도록 ‘시네마3D 안경’도 10만개 정도 준비했다. 삼성 등 경쟁 진영인 셔터안경 방식보다 안경 가격이 월등히 저렴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FPR 방식만으로 TV 제품군을 모두 갖춰 참가한다. 그만큼 LG전자로서는 세계 시장에서 FPR 방식 및 ‘시네마 3D TV’의 성공 여부를 타진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촉각을 세우고 있다. FPR 패널을 공급하는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까지 직접 참가해 해외 거래처들과 관계 다지기에 나서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용어 클릭] ●국제가전전시회(IFA 2011) 매년 9월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지역 최대 가전 전시회로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제품전시회(CES)와 함께 세계 양대 정보기술(IT) 관련 전시회로 평가받는다. CES가 그 해 출시될 신제품을 주로 선보인다면, IFA는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 등 한해를 마무리하는 제품들이 전시된다.
  • 얼굴 단장인가? 역사 훼손인가?

    얼굴 단장인가? 역사 훼손인가?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시민단체와 마찰을 빚어왔던 서울 명동성당이 마침내 개발 국면에 들어섰다. 30일 천주교계에 따르면 서울대교구는 다음 달 16일 오전 10시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기공식을 갖는다. 기공식은 지난 18일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가 ‘명동성당 종합계획’을 발표한 뒤 전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1982년 명동성당발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시작된 ‘명동성당 종합계획’이 30여년 만에 사업을 본격화한 셈이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의 얼굴’이자 ‘한국 천주교 1번지’인 명동성당은 환골탈태가 불가피하게 됐다.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가 낸 명동성당 종합계획의 기본 방향은 ▲명동성당 보존과 ▲신자·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 조성 ▲150만여 교구민을 위한 지원 공간 확보에 초점을 두고 있다. ●30여년 만에 사업 본격화 우선 2014년까지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면 로얄호텔 맞은편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명동성당 진입부에 녹지 광장이 들어서고, 광장 지하에 2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 공간도 마련된다. 여기에 대성전 서편에 지하 4층, 지상 10층 규모의 교구청 신관과 문화홀을 새로 들이게 된다. 이와 함께 초기 명동성당 시절 있었던 경사로를 복원하고 옛 사도회관인 교구청 건물도 리모델링해 전시홀로 가꿔낸다. 서울대교구는 이를 위해 지금까지 공사에 참여할 뜻을 밝힌 5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현장 설명회를 열어 새달 초 우선 협상 대상자를 정할 예정이다. 감리업체로는 ㈜건원엔지니어링이 선정됐다. 반면 문화유산 관련 시민단체들은 명동성당 종합계획이 한국 천주교 1번지의 역사·문화 경관을 해칠 뿐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대성전 등 유구한 문화유산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며 계획 변경이나 취소 운동을 지속할 태세다. 특히 이들 단체들은 명동성당 개발계획과 관련한 문화재청, 서울시, 중구 등의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일었던 반대 의견이나 시정 건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공사를 지속적으로 감시·견제할 뜻을 밝혔다. ●“일부 건물 지반 침하 우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명동성당은 역사성과 종교적 차원에서 결코 훼손되거나 멸실되어선 안 될 귀중한 문화유산인데도 서울대교구가 경제논리와 일부 사제들 편의에 치우쳐 무리하게 확장, 개발하려 든다.”며 “지금이라도 유구·유물의 훼손을 막고 변형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남기 문화유산연대 공동대표도 “각급 단체가 명동성당 개발계획에 문제가 없다며 고층 건물과 주차장 신축을 승인했지만 건축 과정에서 본당과 옛 주교관 등 건물들의 지반 침하가 여전히 우려된다.”며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공사 과정을 밀착 모니터하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명동성당 종합계획은 교회가 세상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공사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이 우려하는 성당 유구와 유물의 훼손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대기업 계열사 빚보증 92% 늘어

    대기업의 계열사 간 빚 보증이 지난해보다 92% 늘어나면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2조원대를 넘어섰고 3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집단의 채무보증액은 줄었지만 새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그룹의 채무보증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2011년도 대기업집단 채무보증현황’에 따르면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인 55개 채무보증 제한기업집단 중 16개 집단이 계열사에 2조 9317억원의 채무보증을 해주고 있다. 기존에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됐던 13개 집단의 보증액은 1조 4933억원으로 지난해 1조 5246억원에 비해 313억원(2.1%) 감소했다. 신규 지정된 집단 중 유진, 대성, 태광 등 3개 그룹의 채무보증액은 1조 4384억원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빅뱅’ 대성 무혐의…檢 “피해자 이미 숨졌을 수도”

    ‘빅뱅’ 대성 무혐의…檢 “피해자 이미 숨졌을 수도”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부장 홍순보)는 자신의 승용차로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룹 ‘빅뱅’ 멤버 대성(22·본명 강대성)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29일 밝혔다. 검찰 측은 “강씨의 승용차가 피해자 현모(30)씨를 치기 전 현씨가 음주상태로 사고를 당해 치명상을 입었다.”면서 “현씨가 선행 사고로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 “강씨가 전방 주시 의무를 게을리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등의 과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강씨의 과실과 현씨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이종교배로 진화한 12개의 실험극 한자리

    이종교배로 진화한 12개의 실험극 한자리

    지난 19일 막이 오른 ‘2011 한팩 새개념 공연축제’엔 말 그대로 새로운 몸짓이 한데 모였다.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가 ‘새개념’으로 묶은 실험극을 모은 것이다. ‘메이크 더 디퍼런스(Make the Difference)-다른 것을 하라’는 축제 표어가 이를 드러낸다. 굳이 ‘실험’이란 표현을 피한 것은 괜한 오해 때문이다. 최치림 한팩 이사장은 “실험이라고 하니까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험적이라는 말의 범위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더라.”면서 “복잡하게 따지기보다 기존과 달리 접근한다는 의미에서 새개념이란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그간 ‘변방연극제’ 등 소규모 공연단체들이 진행해 왔던 비주류 장르를 공연시장 한복판에 끌어내 보자는 취지다. 때문에 극작가의 대본보다 연출가의 연출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10월 2일까지 진행되는 축제엔 모두 12개 작품이 나온다. 지난해 8월 대관 신청을 받을 때부터 새개념 작품을 응모하라고 미리 공지, 1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평가를 거친 작품들이다. 작품 완성도뿐 아니라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차세대 재목 가능성을 함께 평가했다. 그래서 이종교배 작품들이 많다. 가령 24~28일 무대에 오르는 ‘잼있는 공연-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연출 안영준, 제작 Lim-AMC)는 클래식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파핀현준의 비보잉과 하우스음악, 여기에 판소리까지 묶었다. 9월 8~9일 공연되는 ‘되기되기되기’(연출 적극, 제작 박나훈무용단) 역시 현대 설치미술을 무대 위에 놓고 이에 어울리는 몸동작을 선보이는 공연이다. 9월 30일부터 10월 1일 무대에 오르는 ‘윤이상을 만나다’(변혁 연출, 아지드현대무용단 제작)는 윤이상의 ‘가곡’, ‘이마주’, ‘니나와 정원에서’ 등의 작품을 현대적 음악으로 변용했다. 미디어아트가 섞인 작품들도 눈에 띈다. 9월 2~3일의 ‘휘어진 43초 속의 여행자’(박호빈 연출, 댄스씨어터까두 제작)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남녀관계로 교묘하게 바꿔치기했다. 무대를 미디어아티스트 최종범에게 맡겨 빛과 무용수의 움직임을 어우러지게 한다. 9월 22~25일로 잡힌 ‘미디어 퍼포먼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김효진 연출, 한팩·YMAP 제작)는 미디어 연출비로만 3억원을 들인 야심작이다. 아예 무대 위에 영상을 투사하고 무용수의 움직임을 여기에 맞췄다. 9월 23~24일의 ‘싱크로너스’(이승연 연출, 인터미디어퍼포먼스랩 제작)는 미래 사이버 세계를 일렉트로니카 음악과 컴퓨터를 이용한 3차원 비주얼매핑으로 표현한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열린다. 공연 뒤 최우수작을 선발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축제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보류했다. 다만 작품 완성도가 뛰어나고 관객 반응이 좋은 작품은 추가공연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만~3만원. (02)3668-000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 시각]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를 인수했다면…/김태균 온라인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를 인수했다면…/김태균 온라인뉴스부장

    “직원이 8명에 불과한 작은 소프트웨어 개발사 ‘안드로이드’의 대표가 삼성전자를 찾았다. 앞으로는 휴대전화가 컴퓨터 같은 기능을 할 텐데, 현재 자기들이 진행 중인 리눅스 기반 스마트폰 운영체제(OS) 개발에 삼성전자가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투자를 하면 나중에 OS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개발·투자 제안을 해 오는 고만고만한 국내외 벤처기업이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고심 끝에 삼성전자는 통째로 그 회사를 사버렸다. 자사가 보유한 세계 최대 검색엔진과 세계 최대 웹메일 서비스, 세계 최대 동영상 커뮤니티, 세계 최대 콘텐츠 유통망에 안드로이드 OS를 결합하면 모바일 콘텐츠 시장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에 이 소프트웨어를 무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안드로이드폰을 이용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막대한 모바일 광고수익과 다양한 콘텐츠 수익창출이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기존에 자사가 개발했던 OS를 외면했다. 좀 더 빠른 확산을 위해서는 오픈소스 기반인 안드로이드가 더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OS 자체의 완성도는 경쟁상대인 애플 ‘아이폰’의 ‘iOS’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무료, 개방성, 다양성 등 때문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아니어서 노키아, 모토롤라, LG전자 등 경쟁업체들은 아무 부담 없이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갖다 썼다. 그 덕에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목록을 하나 더 늘리는 동시에 전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확고히 했다.” 어지간한 독자라면 위에서 말한 ‘삼성전자’가 미국의 ‘구글’임을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현재 구글 수석부사장으로 안드로이드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앤디 루빈의 주장(2004년 삼성전자에 투자 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함)대로라면 한국의 삼성전자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발로 뻥 차버린 걸로 돼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삼성전자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안드로이드 OS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이 대목에 관한 한 삼성전자가 받고 있는 비난은 억울한 것이다. 1위 소프트웨어 업체의 선택으로 가능했던 안드로이드의 성공을 1위 하드웨어 업체에 무리하게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예를 하나만 들면 삼성전자가 개발한 OS를 노키아나 모토롤라 같은 경쟁업체들이 자사 제품에 채택했을 리가 없다. 이는 노키아를 맹주로 해서 주요 하드웨어 업체들이 공동참여한 OS ‘심비안’의 실패에서 잘 드러난다. 삼성전자를 변호하자는 게 아니다. 왜 ‘구글 안드로이드’는 가능하고 ‘삼성 안드로이드’는 불가능한지 이유를 짚어보자는 얘기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과 조류, 세계시장의 흐름, 국내 기술의 수준 등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고 어설프게 해석하고 대응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요즘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사와 함께 3년 안에 개방형 토종 OS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런 계획은 한번쯤 강하게 추진할 필요도 있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경부 안드로이드’나 ‘삼성전자 안드로이드’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체 틀을 짜주고, 대기업은 투자 지원을 약속하고 조용히 발을 빼야 한다. 실제 소프트웨어 개발은 역량 있는 전문인력들이 맡아야 한다. 구글의 사례에 착안하자면 소프트웨어 기술과 방대한 콘텐츠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인터넷 포털업체들을 참여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windsea@seoul.co.kr
  • 국세청, 고소득 전문직 37명 기획 세무조사

    국세청이 변호사, 회계사, 성형외과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25일 “지난해도 귀속 소득에 대한 신고내용 등을 정밀 분석해 음성적 현금거래, 차명계좌 사용 등을 통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큰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 37명에 대해 23일부터 기획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올 상반기에 전문직 274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1534억원을 추징했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은 친인척·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임료·등기대행 수수료 등을 신고 누락해 세금을 탈루하고 친인척 명의로 다수의 부동산을 취득한 혐의가 있는 변호사와 법무사다. 등록대행 수수료 등을 신고 누락하거나 경영자문수수료를 허위로 계상해 세금을 빼돌린 뒤 자녀에게 편법 증여한 세무사·변리사도 대상에 포함돼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통해 외화수입을 올리면서 차명계좌를 이용해 국외소득을 탈루한 성형외과 의사와 지방흡입술 등 비만 치료 관련 수입을 신고누락한 비만클리닉 의사도 명단에 들어 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의 효율성과 파급효과를 높이기 위해 조사대상 업체와 관련자에 대해 동시조사를 실시하고, 금융 추적조사 및 거래상대방 확인조사 등을 통해 누락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할 방침이다. 국세청이 이날 탈루사례로 소개한 A법무법인은 유명 로펌으로, 고액의 사건 수임료를 법인계좌가 아닌 직원명의 계좌로 입금받는 방법으로 수입금액 21억원을 탈루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송수행 과정에서 지출한 접대성 식사, 유흥비용을 직원들의 복리후생비로 변칙 처리해 1억원을 탈루한 점도 확인됐다. 김재웅 조사2과장은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서라도 고소득 전문직의 고질적, 변칙적 탈루 행위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新베트남 기행] 박물관들의 화두는 ‘독립·저항’ 하지만 건물은 中·佛 형식 일색

    [新베트남 기행] 박물관들의 화두는 ‘독립·저항’ 하지만 건물은 中·佛 형식 일색

    해외여행을 가면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으로 박물관을 꼽는다. 박물관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공간이어서 한 곳에서 역사와 문화를 일별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국립박물관의 전시는 그 나라가 국민과 외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 모은 극히 의도된 연출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베트남 여행에서 필자는 ‘보여주고’ 싶은 역사와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현실의 간극을 재어 보았다. ●거리엔 식민지 역사 고스란히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는 시가지풍경에서 프랑스식 건물이 의외로 많았다. 하노이시내와 시내를 벗어나 할롱베이로 가는 길가에는 2, 3층의 프랑스식 주택이 이어져 있다. 창문 앞에 베란다를 마련하고 베란다 양쪽에는 상단에 장식을 입힌 기둥을 세우고 지붕에는 삼각 첨탑을 올린 주택이다. 베란다 주택은 비나 햇볕에서 건물을 보호하고 무더위와 습기에 적응하는 열대 건축양식이면서 동시에 인도, 싱가포르, 홍콩에도 널리 세워졌던 콜로니얼 건축양식이기도 하다. 북부지역에는 프랑스풍 주택이 많았던 반면 중국식 주택은 적었다. 프랑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던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베트남에 왜 중국양식의 주택보다 프랑스풍의 주택이 많은가? 이러한 의문은 중부와 남부 베트남과 비교하면 더욱 강해진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 왕조의 근거지였던 중부베트남의 후에나 호이안에도 서구식 주택이 많이 보이나 보다 단순화된 스타일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은 호찌민 시에는 프랑스풍 민간주택은 상대적으로 가장 적게 보였다. 현재의 주택양식에서 보자면 베트남은 유교와 한자, 조공체제를 근거로 한 동아시아세계의 일원으로서의 ‘월남’과는 거리가 멀다. 동아시아로서 월남의 역사는 박물관에 있다. 베트남의 역사는 북으로는 항거하고 남으로는 팽창하며, 중국 쪽에는 왕이라고 굽히나 주변국에는 황제라고 위세 부리는 ‘북거남진 외왕내제’(北拒南進 外王內帝)의 8자로 압축할 수 있다. 하노이 역사박물관에는 토기 등 고대의 발굴품, 불상, 도교사원, 발굴선박, 한문으로 된 고서, 나전칠기, 벽화, 병풍, 조각 등이 대체로 시대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품은 중화문명화의 과정을 밟았던 베트남의 역사를 보여준다. 박물관에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민족의 독립에 관한 대형 역사화였다. 1, 2층에 몽골 침략을 저지한 역사화와 1945년 9월 2일 독립선언의 역사화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실물을 전시하며 말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데, 굳이 대형역사화를 내걸어야 할 필요를 느낄 정도로 역사화 자체에 박물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그 의도란 중국에 저항한 역사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겠다. 원나라 침략을 저지한 역사화는 호찌민의 역사박물관에도 입구에 대형 조각화로 내걸렸을 만큼 중국대륙에 대한 저항 역사는 베트남인의 대중적 역사인식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몽골 침략 저지 대형역사화 전시 그러나 하노이 박물관의 전시에는 프랑스가 지배한 60여년 식민지의 역사는 소략하고, 수탈이나 착취를 강조하는 전시보다는 독립투사의 사진이 걸린 정도다. 일본의 5년 지배에 관한 전시도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프랑스와 미국과 싸운 1, 2차 인도차이나 전쟁도 역사박물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프랑스풍의 주택이 많은 점을 이러한 박물관의 전시에 비추어 보면, 프랑스에 지배받은 역사를 수탈과 착취 혹은 차별의 역사로 기억하기보다는 서구문명의 세례를 일찍 받은 점을 역사적 자산으로 삼는 인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노이의 건물들은 대개 1975년 이후의 것으로 짐작된다. 미군의 잦은 폭격으로 전통적인 시가지가 온전하게 남았을 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집을 지을 때 주택의 모델을 남부베트남의 프랑스풍에서 구한 것은 당시 문화대혁명의 회오리에 빠져있던 중국보다는 역사 속에 새겨진 프랑스문화에 대한 선망이 우선되었고 도이머이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그 선망은 더욱 주택 신축에 강하게 투사되었을 법하다. 열대가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이듯이, 열대의 베트남은 문화적 다양성을 품고 있다. 열대의 정글은 인간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따라서 국가적 통일성보다는 지역문화에 강한 독자성을 띠게 한다. 베트남의 역사에서 왕조의 이합집산이 거듭된 배후에는 고유한 지역문화를 바탕으로 한 토착세력이 있었다. 종족이라는 혈연적 유대가 사회조직의 바탕이고 사투리가 발달한 것은 그 증거의 하나이다. 지역문화의 대표적인 존재는 참파 문화이다. 2~17세기에 걸쳐 베트남 중남부에 존재했던 참파 왕국의 문화는 하노이 박물관에서도, 호찌민 박물관에서도 일정한 전시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발전 후 건물에 ‘선진국 선망’ 반영 호이안의 역사마을은 1990년대 이후 옛날 건물을 복구하여 마을을 재조성하고, 옛 건물이 수많은 화랑과 상점을 이루면서 여기저기 산재한 작은 박물관으로도 활용되었다. 1층 입구는 그림을 파는 화랑이면서 1층 안쪽과 2층을 박물관 전시실로 꾸몄다. 건물과 전시실이 역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화랑이나 상점의 역할을 겸한 것이다. 웅장한 대형 박물관은 관람객을 쉽사리 지치게 만드나, 지척에 산재한 작고 아담한 박물관은 구경꾼이 자신의 시선으로 유물에 말 걸기가 수월하다. 후에의 궁궐에는 복구하지 않은 루문과 건물이 탈색되거나 혹은 반쯤 허물어진 그대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세월의 상처를 실감시키는 탈색되고 허물어진 유적이야말로 훌륭한 역사 교재였다. 글 사진 하세봉 한국해양대학교 박물관장
  • 23년 째 관에서 잠드는 할아버지, 이유는?

    딱딱하고 비좁고 왠지 모를 오싹함마저 느껴지는 관에서 무려 23년 째 잠을 청하는 브라질 60대 노인이 있어 그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브라질 현지신문 G1에 따르면 전직 전기기사 젤리 페레이라 로시(61)는 1988년부터 한주도 빠짐없이 금요일이면 침대가 아닌 집안 한편에 마련한 관에 몸을 누인다. 할아버지가 이런 불편을 자처하는 이유는 사망한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친구의 장례를 치른 주부터 매주 관에서 잠을 잔다.”면서 “불편해 보이지만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하거나 내 인생을 곱씹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생전 이 친구와 함께 “먼저 죽는 사람에게 관을 선물하자.”는 약속을 자주 했었다. 1983년 할아버지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에서 헤맬 때 도시에서 일하던 친구는 소식을 듣고 관을 사들고 달려와 대성통곡했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극적으로 살아나자 그 친구는 할아버지에 관을 선물로 줬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 이번에는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할아버지는 직접 정성스럽게 장식한 관을 친구에게 바치며 매주 하루씩 평생 관에서 잠들 것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우정은 죽음으로도 가르지 못했던 것. 할아버지는 “친구의 죽음은 인생에 대해 많은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면서 “비록 죽는 날까지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남은 인생으로 친구에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부고]

    ●강승원(전 서울신문 발송부 사원)씨 모친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5시 (02)3410-6909 ●전대웅(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씨 별세 민(신경정신과 의사)윤희(약사)씨 부친상 이혜숙(TBN강원교통방송 편성제작국장)씨 시부상 박종근(산부인과 의사)씨 장인상 21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053)956-4416 ●김윤식(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장)씨 별세 김선희(전 분당구미중 교장)씨 남편상 21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31)787-1506 ●주영설(청주시시설관리공단 이사장)씨 모친상 박치만(한국레노버 대표)씨 장모상 20일 청주의료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43)279-0157 ●홍석준(조선일보 정치전문기자)씨 별세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16 ●정희목(전 미국 연방원자력연구소 수석연구원)현목(미국 거주)영목(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명자(전 동명여고 교사)명희(전 혜원여고 교사)명란(〃)씨 부친상 정진우(사업)김영(전 은행원)권용주(미국 거주·건축설계사)씨 장인상 이혜정(전 성악가)유동마리아(전 프랑스대사관)이승신(건국대 상경대학 교수)씨 시부상 19일 서울대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2072-2011 ●정석균(전 한국공작기계 사장·전 국제화재보험 부사장)씨 별세 종호(그린손해보험 기업보험부장)씨 부친상 류흥목(한국공작기계 회장)김길수(삼성생명 전략채널사업본부)씨 장인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410-6915 ●유경손(원로 성악가·전 서울YWCA 회장)씨 별세 나건(사업)효선(동덕여대 교수)효진씨 모친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410-6914 ●이진석(전 대선주조 대표이사·전 부곡컨트리클럽 회장)씨 별세 재원(미국 거주)씨 부친상 최영하(전 엘지 구조조정본부 회장비서실 과장)송영신(대성그룹)씨 장인상 2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2227-7566 ●박성원(SBS 심의팀 부장)씨 부인상 수진(SBS 드라마센터 PD)씨 모친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1 ●임무룡(전 강원도 행정부지사)씨 모친상 20일 강원대병원, 발인 22일 오전 6시 (033)258-9401 ●김동영(전 로케트전기 대표이사 사장)칠영(전 국민은행 지점장)창영(선진사료 순창대리점 대표)씨 부친상 안숙재(송원중 교사)씨 시부상 김주형(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연구원)주완(한국경제신문 기자)씨 조부상 20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22일 오전 10시 (062)250-4413 ●김장희(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팀 차장)씨 부친상 20일 인천 청기와장례식장, 발인 22일 오전 7시 (032)571-1326 ●김구자(전 이화여대 생리학 교수)씨 별세 김일영(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씨 모친상 유한욱(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씨 장모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92 ●신재현(김앤장 변호사·에너지자원 협력대사)재국(사업)씨 부친상 최재일(사업)이경철(〃)씨 장인상 신우진(미국 변호사)규진(SK 과장)씨 조부상 2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4일 오전 6시 (02)2227-7580 ●김창열(사업)씨 모친상 이종숙(전 광명 광문초 교장)씨 시모상 김현숙(대한항공 차장)현진(동아일보 산업부 기자)민규(프로노비아스 이사)씨 조모상 21일 고려대 구로병원, 발인 23일 오전 5시 (02)857-0444 ●이서구(전 삼성그룹 비서실장·전 대림산업 고문역)씨 별세 성우(대동켐텍 회장)복우(자영업)능우(대동유통 대표)몽우(펜텍 감사)기우(프리마키 대표이사)씨 부친상 송상윤(상고 대표이사)씨 장인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30분 (02)3410-6902 ●이종승(현대증권 종로지점장)종성(이종성치과의원 원장)씨 부친상 2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30분 (02)222-7587
  • [흔들리는 IT코리아-해법은 없나] (2) 소니를 반면교사로

    소니는 지난달 자신들이 독자 개발해 판매해 온 미니디스크(MD)플레이어를 단종시켰다. MD플레이어는 콤팩트디스크(CD)의 음질을 재현하면서도 내구성과 휴대성, 기록성 등을 모두 갖춘 휴대용 오디오 플레이어로, 소니가 1992년 처음 내놓을 때만 해도 차세대를 이끌 혁신 제품이 될 것이라고 정보기술(IT)업계가 격찬해왔다. 실제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모으며 2200만대가 넘게 팔리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MDP에 집착해 MP3 신기술 외면 그렇다면 소니는 왜 MD플레이어처럼 뛰어난 성능과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을 보유한 제품을 내놓고도 이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내버려둬야만 했을까. 20세기까지만 해도 ‘트리니트론’(브라운관 TV)과 ‘워크맨’(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소니 제국’의 몰락을 우리 IT 기업들이 따라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소니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기술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갖춘 업체였다. 1967년 소니만의 독창적인 브라운관 방식으로 개발한 ‘트리니트론’은 깨끗한 화질과 프리미엄 이미지 덕분에 누적 판매량이 3억대에 달하며 ‘TV는 소니’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1979년 출시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 역시 ‘음악은 실내에서 듣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며 4억대 가까이 팔렸다. MD플레이어 역시 이러한 워크맨의 계보를 잇는 소니의 야심작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소니의 아성도 디지털 시대를 맞으면서 퇴색하기 시작했다. 1998년 국내 업체인 새한정보통신이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출시했을 때만 해도 소니는 손실압축(데이터양을 줄이기 위해 화질이나 음질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것) 등으로 음질이 떨어지는 MP3 기술을 무시했다. MD플레이어 시장을 잠식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주요 고객인 선진국 소비자들의 취향과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TV 역시 한국 업체들보다 먼저 액정표시장치(LCD) TV를 개발해 놓고도 “색상 표현력에 문제가 많다.”는 이유로 추가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기존 트리니트론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했다. 최신 기술이라면 누구보다 앞서 개발하고 채택해오던 이전의 소니와는 다른 선택이었다. 결국 소니는 2001년 애플이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내놓자 휴대용 음악 재생기 시장의 패러다임을 빼앗겼다. TV 또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삼성과 LG가 화질과 디자인을 개선한 슬림형TV를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6년 삼성에 TV시장 세계 1위를 내주고 지난해까지 TV 부문에서 8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사업 철수까지 검토하는 처지가 됐다. ●최고기술 보유한 기업의 혁신 딜레마 최고의 기술과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기존의 성공에 도취돼 새롭지만 아직까지는 열악한 기술 트렌드를 등한시하다 패권을 빼앗기는 것을 ‘혁신 기업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개발한 앤디 루빈의 제안들을 거절했다는 삼성전자나, “(LG전자는) 혁신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혁신을 하겠다고 ‘주장’만 하는 회사처럼 보인다.”고 질타한 LG전자에 몸담았던 한 연구원의 지적에서 보듯이 우리 기업들도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 빠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 IT산업의 멸망’의 저자 김인성씨는 “대기업과 통신사들의 횡포가 심한 우리 IT 시장에서 ‘카카오톡’ 같은 서비스가 출현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면서 “진정한 혁신 없이 기득권에만 안주하려던 소니의 쇠락은 곧 우리 기업의 미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2) 서울 문묘 명륜당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2) 서울 문묘 명륜당 은행나무

    무릇 모든 생명은 그와 관계 맺는 대상에 의해 의미가 드러난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의미와 가치를 지어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존재자의 가치는 가늠된다. 나무도 그렇다. 큰 덩치로 높지거니 솟아오른 나무라고 무조건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게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목이라 해도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나무 줄기를 통해 떠나온 고향 마을의 게으른 황소 울음을 들을 수 있는 누군가가 그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무는 제 가치를 드러낸다. 그때라야 나무는 고향이 되고, 풍요 혹은 지혜의 상징이 된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며 스스로의 가치를 짓는다. 생명의 이치가 그렇다. ●고향이자 학교의 상징이 된 은행나무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우리나라 유학의 전당인 문묘 구역이 나온다. 그 문묘의 명륜당 앞마당에는 400살쯤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대학의 정문 주변 풍광을 압도하는 거목이다. “도시락을 먹기에 은행나무 그늘만 한 곳이 없었어요. 그늘도 좋지만, 은행나무 가까이에는 해충도 들지 않거든요. 지금은 나무 주위에 울타리를 쳤지만, 그때는 울타리가 없어서 좋았죠. 도시락이 아니어도 나무가 좋아서 짬 날 때마다 찾아와 고향을 떠올리곤 했어요.” 성균관대를 다니며 명륜당 은행나무 그늘에서 청춘을 보냈다는 홍보팀 최영록(54)위원의 이야기다. 남도의 고향을 떠나 낯선 고장에서 그리운 고향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은 오직 은행나무뿐이었다고 한다. 나무는 그에게 고향이었고, 평화였다. 은행나무를 찾는 건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나무는 보고 싶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었다. 최 위원의 대학 시절 추억의 배경에는 자연스레 은행나무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명륜당 은행나무는 최 위원에게뿐 아니라, 우리나라 유학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부터 대표적인 유학의 교육기관 역할을 한 문묘의 랜드마크로, 문묘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유학의 긴 역사를 지켜온 나무인 까닭이다. 은행나무는 유학이 들어오기 전부터 널리 심어 키운 나무다. 은행나무가 유학의 상징처럼 여겨진 것은 유학의 시조인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부터다. 은행나무 그늘을 ‘행단’(杏壇)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향교와 서원과 같은 유학 관련 건물에서 자연스레 은행나무를 많이 심은 이유이기도 하다. 명륜당 은행나무도 그와 같은 이유로 심은 나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유주 눈길 끌어 명륜당과 대성전을 포함한 문묘 구역의 건물은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웠지만 두 차례의 화재로 모두 타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후인 1602년에 새로 지은 것이고, 이 은행나무도 그때 심었다고 한다. 400년 넘게 우리나라 유학의 전당을 지켜온 한 쌍의 은행나무는 21m쯤의 높이로 자랐다. 줄기 둘레도 7m나 되는 거목이다. 웅장하게 자란 이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은 명륜당의 너른 앞마당을 가득 채울 만큼 넓다.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 오순도순 모여서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는 젊은 대학생들의 풍경이 빛 바랜 사진 되어 정겹게 떠오른다. 오래 전 명륜당에 드나들던 젊은 유생들도 그랬으리라는 짐작이 뒤따른다. 웅장한 자태의 이 나무에서는 은행나무의 별다른 특징도 관찰할 수 있어 흥미롭다. 유주라고 하는 은행나무의 특별한 현상이 그것이다.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의 가지에서 땅을 향해 아래쪽으로 자라는 돌기를 가리킨다. 가지처럼 보이는 이 돌기는 공기 중에서 호흡하는 뿌리로, 식물학에서는 기근(氣根)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부분이다. 은행나무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지만, 그리 희귀한 건 아니다. 명륜당 은행나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유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여서 눈길을 끈다. 이 나무에 달린 여러 개의 유주 가운데 큰 것은 70㎝를 넘는다. ●선비들 제사 지낸 후 열매 맺지 않아 성(性)을 전환한 나무라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원래 이 나무는 열매를 많이 맺는 암나무였다. 가을 바람 깊어지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명륜당 주위를 뒤덮었을 은행의 고약한 냄새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은행을 주우러 명륜당에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의 법석이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게다. 당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지만, 면학 분위기는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선비들은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이 은행나무를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가 되게 해달라는 바람을 담은 제사였다. 어이없는 제사였지만, 이듬해부터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직장에 다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던 때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은행나무였어요. 대학 때 그랬던 것처럼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죠. 모든 생각 다 내려놓고 노란 낙엽 위에 드러눕고 싶었어요. 서울 시내에서 고향을 느낄 수 있는 나무는 우리 은행나무가 유일하지 싶어요.” 나무에서 고향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그이뿐이랴. 누구라도 고향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마을 어귀의 커다란 나무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나무는 고향도 되고, 풍요의 상징도 된다. 명륜당 은행나무는 그렇게 사람과 더불어 살며 제 가치를 지키는 법을 침묵으로 가르치는 지혜의 나무다. 글 사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 53 성균관대 구내. 성균관대를 가려면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이나 3호선 안국역을 이용하면 되지만, 은행나무는 이 대학의 정문 쪽에 있으니, 혜화역을 이용하는 게 낫다.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왼쪽으로 이어진 상가 길로 200m 남짓 걸어가면 성균관대입구 사거리가 나온다. 길을 건너 학교 쪽으로 250m 가면 왼쪽으로 정문이 나온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명륜당이 있다.
  • [프로야구] ‘돌부처’ 200S

    [프로야구] ‘돌부처’ 200S

    언제나처럼 표정은 덤덤했다. 다소 느린 듯한 걸음걸이도 여전했다. 6-3으로 삼성이 앞선 8회 초 2사 1루 상황. KIA 공격이었다. 세이브 요건은 충족됐고, 삼성 오승환이 천천히 마운드로 올라왔다.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최소경기 200세이브 기록 달성이 걸린 등판이었다. 그런데도 평소와 똑같았다. 오승환의 얼굴에선 긴장도 흥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할 일을 하러 왔다는 표정. 오승환은 그런 투수다.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안치홍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다. 간단히 이닝을 마무리했다. 9회에도 특유의 ‘돌직구’를 묵묵히 뿌려댔다. 김상훈을 삼진, 이종범을 3루 땅볼, 이현곤을 1루 직선타로 막아 냈다. 7-3으로 삼성이 승리했다. 순간 대구구장엔 폭죽이 터졌다. 시즌 35세이브째. 개인 통산 200세이브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12일 대구 KIA-삼성 전에서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최소 경기 200세이브 기록을 달성했다. 오승환은 1999년 김용수(전 LG), 2007년 구대성(전 한화)에 이어 통산 세 번째로 200세이브를 기록했다. 만 29세 28일의 나이, 프로 334경기 만에 기록을 달성하면서 구대성이 갖고 있던 최연소(37세 11개월 12일) 최소 경기(432경기) 200세이브 기록을 동시에 갈아치웠다. 최소 경기 200세이브 세계기록이기도 하다. 일본 프로야구(NPB) 최소 경기 기록은 사사키 가즈히로(전 요코하마)가 가지고 있다. 370경기 만에 달성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조너선 파벨본(보스턴 레드삭스)이 359경기 만에 200세이브를 기록했다. 다만 최연소 200세이브는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2008년 9월 2일 세운 26세 7개월 26일에 못 미친다. 지난 2005년 데뷔한 오승환은 그해 10승 1패 16세이브 방어율 1.18로 신인왕이 됐다. 2006년엔 47세이브로 1994년 정명원(전 태평양)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40세이브)을 경신했다. 2005년엔 일본 주니치 이와세 히토키가 세웠던 NPB 한 시즌 최다인 46세이브 기록도 갈아치웠다. 이후 2007년엔 40세이브로 사상 첫 2년 연속 40세이브를 돌파했고 2008년에도 39세이브로 구원왕 3연패에 성공했다. 2009년과 지난 시즌엔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주춤했지만 올 시즌 다시 페이스를 올리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사상 첫 시즌 50세이브도 꿈은 아니다. 이날 기록 달성 뒤엔 ‘돌부처’ 오승환도 잠깐 흔들렸다. 폭죽이 터지는 동안 살짝 눈시울이 불거졌다. 오승환은 “대기록을 세워 기분이 좋지만 나 때문에 안지만이 2타자만 잡는 등 동료의 희생이 있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300세이브, 400세이브까지 가도록 열심히 하겠다. 마무리도 롱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화-두산(대전), LG-롯데(잠실), SK-넥센(문학)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악대금으로 원형 대금산조 처음 풀어낸 이생강 명인

    [김문이 만난사람] 정악대금으로 원형 대금산조 처음 풀어낸 이생강 명인

    조용히 눈을 감는다. 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잔잔하던 가슴을 후벼 판다. 전신을 휘감아 돈다. 귀신을 일으키고 거친 바다를 잠재운다. 하여 신적(神笛)이다. 신라시대 설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한 대나무가 있었다.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됐다. 이때 용이 나타났다.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신기한 대나무는 곧 피리로 만들어졌다. 소리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흩어졌던 민심은 이 소리를 듣고 하나가 되고, 다들 안정이 됐다. 피리는 국보가 됐고 이름을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했다. ‘삼국사기’ 악지에 ‘악기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바람과 파도가 잔다.’는 기록이 남게 된 배경이다. 이후 대금(大笒), 중금(中笒), 소금(小笒), 단소, 퉁소 등의 악기로 무궁하게 이어졌다. 세월을 뛰어넘는다. 조선 후기 진도의 세습무 출신 박종기(1879~1939) 명인이 대금산조를 창시했다. 이때부터 무속음악으로 발전했고 오늘날 우리의 전통춤 무대에서 90% 이상 배경음악으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원래 대금의 종류에는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이 있다. 정악대금은 주로 궁중음악이나 양반들의 풍류음악을 연주하려고 만든 악기로 다른 악기와 합주할 때 적합하다. 관이 길게 돼 있는 것도 다른 악기와의 음정을 고려한 이유이다. 그런데 정악대금은 취구(吹口)가 작고, 손가락을 짚는 지공이 넓어서 다루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호흡 또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산조대금과 같은 꺾기나 깊은 농음(音), 다루치기(순간적인 지공의 개방을 통해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하는 기술)가 어렵다. 반면 산조대금은 대금산조 독주를 위해 만들어진 악기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가락이 많아 손동작을 원활하게 하려고 정악대금보다 짧게 만들어져 손 움직임을 편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정악대금으로 산조를 연주할 수 있을까? 박종기 명인은 당시 산조를 연주할 때 대금의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악대금으로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대금산조 이생강(75·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명인은 박종기 이후 최초로 정악대금으로 산조 한바탕을 최근에 풀어내고 ‘이생강 원형 대금산조’라는 제목으로 음반을 냈다. 나이도 나이지만 대금인생 70년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내가 아니면 누가 할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을 던지며 만들어냈다고 했다. 우리 국악사에 큰 획을 긋는 일임이 분명하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이 명인을 만났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온 고등학생들에게 한수 가르쳐 주고 있어 잠시 기다렸다. “너무 (대금을) 흔들면 안 돼.” “네.” “호흡을 길게” “…” 제주도에서 온 학생도 있었다. 연습이 끝나자 이 명인은 괄괄한 목소리에다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가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간다. “강원 신철원에서 제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 다시 물었다. “우리 아들(이광훈)이 제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이지요.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철원에 있는 초등학생 700여명에게 단소를 가르쳐 주고 있지요. 학교에서 우리 국악을 하면 아름다운 교육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을까. 이 명인은 지난해 강원 정동진에서 열린 전국 초등학교 교장모임에서 강연을 했다. 대나무의 소리 하나로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더니 감동을 받은 일부 교장 선생의 뜻에 따라 시골 학교에서 조금씩 국악 붐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소로 했지요. 원하는 학교에는 제가 단소를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대금으로 교체해 줄 때가 됐지요. 자금조달은 어떻게 하냐고요. 제가 공연을 하잖아요. 그걸로 담양에서 대나무를 사고 아는 사람한테 찾아가 수공비만 받고 싸게 대금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육용으로 만든 180여 가지 CD와 DVD 등도 보내주고 있지요. 아들은 제주에서 가르치고 저는 틈이 나는 대로 강원 지역에 가서 지도를 해줍니다. 요즘에는 유아용 ‘병아리 단소’도 만들어 어릴 적부터 국악과 친해지도록 권장하고 있지요. 어린애들이 단소를 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명인은 신철원과 제주에서 시작된 단소 불기 운동이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날 때 멋진 공연을 할 것이라며 웃는다. 잠시 얘기를 멈추는 사이 질문을 던졌다. “이번 음반을 낸 원형(原形) 대금산조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우리 국악에서 원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살아 있을 때 원형 대금산조를 확실히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1937년생입니다. 일흔이 넘었고 대나무 소리를 낸 지도 70년이 됐습니다. 살아 있을 때 남겨둬야 합니다. 원형 대금산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 스승(한주환)의 스승(박종기)이 했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그걸 음반으로 제작했지요. 그래야 후배들이나 국악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나무 소리인생 70년을 맞아 정악대금으로 풀어낸 ‘원형 대금산조’ 음반에는 전체 63분 23초 길이에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시나위’ ‘자진모리’를 순서대로 실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정악(正樂)은 ‘인쇄체’요, 산조(散調)는 ‘필기체’라는 것. 손가락을 잘 떼서 매끄럽게만 불면 되는 정악대금에 비해 산조대금은 개성 있는 꼴바꿈이 가능하며 선율이 다채롭고 인간 세계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고 덧붙인다. 국악계의 한 평론가는 이번 음반을 낸 것과 관련해 “박종기의 탁월한 예술성을 한주환이 극복하며 대금산조의 중시조로 등극했듯이 한주환의 천재성을 극복한 유일한 재비가 이생강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라고 평했다. 이 명인은 반주악기로만 사용돼 온 대금으로 첫 독주를 시도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1960년 4·19 직후 에어프랑스 비행기가 서울에 왔습니다. 거기에 한국민속예술단 소속 무용수와 악사 등 33명이 타고 프랑스 파리에 갔지요. 춘향전을 무용극한 내용으로 공연을 하는데 주인공 안나영씨가 급히 맹장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타로 제가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대금을 들고 무대에 섰지요. 아이러니하게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민속악기 독주회를 처음 갖게 됐습니다. 우리 민속악기는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이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참가공연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아 50여개국 순회공연을 갖게 된다. 그의 대금에 대한 사랑과 의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가 낸 음반의 종류만 해도 500여 가지. ‘동백아가씨’ ‘목포의 눈물’ 등은 물론이고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웬만한 노래는 죄다 대금으로 풀어냈다. 얼마 전에는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놔 국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농악 등이 총망라된 우리 전통 무용음악의 100년사를 담은 ‘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단지 대나무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일진대 청아하고 신기에 가까운 뻐꾸기 소리 등을 마구 뱉어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든다. ‘이생강이 아니면 과연 누가 할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는 앞으로 태교, 명상, 추억, 회상 음악 쪽에 방향을 맞춰 꾸준히 일상으로 파고드는 작업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리랑’을 현대감각에 맞게 작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악의 원형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이 명인은 다섯 살 때부터 소금을 배웠다. 이후 11세 되던 1947년, 스승 한주환을 만나면서 대금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6·25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 온 당대 국악의 대가들과 자주 접한 것도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욕심이 커서 어떤 때는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 대가들에게 찾아가 ‘한수, 한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일취월장,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서양의 7음계를 우리 5음계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다. ‘대니 보이’(Danny Boy),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등의 팝송과 재즈를 넘나들며 대금의 음역을 계속 넓혀 나갔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는 악보도 없이 ‘눈물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 등 우리의 전통가요까지 자유자재로 불 수 있게 됐다. 아버지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해 대금의 한주환,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전통과 현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온 명인의 열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이생강 명인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45년 광복 후 부산에 정착해 살았다. 다섯 살때 아버지에게 단소를 배웠고 이후 이덕희, 지영희, 전추산, 오진석, 방태진, 한주환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피리, 단소, 퉁소, 소금, 태평소, 대금 등을 익혔다. 1959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대금반주을 했으며 19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참가공연 때 처음으로 대금독주를 했다. 1977년 국내에서 첫 대금산조 개인 발표회를 가졌으며 이때 원형 대금산조를 처음 연주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 등 크고 작은 무대에서 20여 차례 개인발표회를 가지며 독특한 ‘이생강류’의 대금음악을 만들어오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폐회식 때 대금독주로 주목을 받았고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2007년 6월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을 제작한 데 이어 지난달 최초로 정악대금으로 ‘원형 대금산조’를 풀어낸 음반을 냈다. 현재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를 운영하면서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전주 대사습대회 장원(1978), 신라문화재 대통령상(1984년), KBS국악대상(1984년), 서울시 자랑스러운 시민상(1994), 대한민국 국민상(1997), 한국국악대상(2002년) 등이다.
  • [부고]

    ●김상현(전 중외제약 상무)일현(대구지방국세청 운영지원과장)씨 부친상 희년(일동제약)지연(서울대병원 내과의사)씨 조부상 김택훈(전 삼환기업 대표)한창희(대성산업 상무)씨 장인상 8일 경북 의성 다인농협장례식장, 발인 11일 오전 7시 (054)861-4011 ●선덕치(한국메가스포츠 사장)영철(창원MBC 영상부 부국장)씨 모친상 박용(전 대구대 총장)씨 장모상 9일 서울 청담성당, 발인 11일 오전 7시 011-876-0111 ●김재율(전 남강문화재단 이사장)씨 별세 준길(전 주미공보공사)준철(국제전기 회장)준걸(자영업)준일(TT&P 대표)씨 부친상 오정만(자영업)김용호(트랜스코리아 부사장)씨 장인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2)3410-6912 ●한병돈(예비티 대표이사)병구(DHL코리아 〃)병일(사업)경숙(미국 거주)성숙(YBM THE TEXT 차장)씨 모친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2)3410-6916 ●강종원(전 국회사무처 윤리특위 전문위원)유원(사업)씨 모친상 9일 서울경찰병원, 발인 11일 오전 10시 (02)431-4400 ●윤미숙(충남도의원)씨 모친상 9일 충남 천안하늘공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41)621-8011 ●김상욱(GS건설 토목기획팀장)씨 모친상 장석주(사업)오관록(〃)이흥식(〃)씨 장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2)3410-6902 ●최신덕(전 신용관리기금 이사)씨 별세 호승(현대캐피탈 팀장)현성(약손명가 〃)씨 부친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03 ●정용각(전 대전시청 조경과장)상기(전 한남대 사무처장)상범(전 대전시교육위원회 의장)씨 모친상 9일 충남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11시 (042)257-1704 ●김원국(목포경찰서장)씨 장인상 9일 광주 금호장례식장, 발인 11일 오전 9시 (062)227-4381
  • 소말리아 해적 항소심 무기징역 구형

    검찰이 삼호주얼리호 납치 등의 혐의로 징역 13~15년을 선고받은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부산지검 공안부(부장 최인호)는 8일 오후 부산법원 301호 법정에서 부산고법 형사1부의 심리로 열린 소말리아 해적 5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압둘라 후세인 마카무드(20) 등 4명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아라이를 제외한 피고 4명이 1심에서 석해균 선장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공범의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범행을 저지했어야 했다.”면서 “범행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징역 13~15년은 너무 가볍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마카무드는 “1심에서는 당황해서 혐의를 부인했다.”면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태풍 ‘무이파’ 휩쓴 서·남해안… 인명·재산 피해 속출

    태풍 ‘무이파’ 휩쓴 서·남해안… 인명·재산 피해 속출

    서해상으로 북상하던 제9호 태풍 무이파가 8일 밤 늦게 세력이 약해진 채 한반도를 벗어났다. 하지만 한반도는 태풍의 영향 탓에 9일에도 전국적으로 흐린 날씨가 계속될 전망이다. 기상청은 8일 “태풍은 계속 북진해 요동반도 부근에 상륙한 뒤 북북동진해 9일 오후부터 밤 사이에 태풍의 성질을 잃고 온대성 저기압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러나 태풍은 예상보다는 약했지만 전국적으로 인명 피해와 함께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광주·전남과 부산, 충북 지역의 피해가 컸다. 8일 새벽까지만 해도 중심기압 975헥토파스칼에 최대 풍속 34m를 유지하던 태풍은 약화돼 이날 오후 4시쯤 중소형 태풍으로 바뀌었다. 태풍이 서해상에 진입하면서 항공기와 여객선의 결항이 잇따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전남도에 따르면 태풍으로 부산, 전남 등지서 5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전남 여수·광양·해남·신안 등에서는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광양 백운산 일대에서는 피서객 19명이 고립됐다가 2시간 만에 구조됐다. 양식장과 과수원도 초토화됐다.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로 완도, 진도, 신안, 장흥 등 서남해안 양식장이 치명상을 입었다. 순천과 보성에서는 논밭 341㏊가 침수됐으며 13㏊ 규모 논에서 키우던 조생종 벼가 쓰러졌다. 전남 곳곳에서 비닐하우스 382개 동 18만여㎡가 파손됐으며 무안에서는 2000㎡에 달하는 인삼 재배시설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시설물 파손과 침수, 정전도 잇따랐다. 지난해 태풍 곤파스와 지난 6월 태풍 메아리로 유실됐던 국토 최서남단 신안군 가거도 방파제는 64t짜리 테트라포드 2000여개가 유실됐다. 이 방파제는 밀물 때에 맞춰 불어닥친 초속 40m 이상 강풍에 480m 가운데 200여m가 파손 또는 유실돼 200억원 이상의 피해가 났다. 낙뢰로 인해 현대자동차 울산 1, 4공장의 생산라인이 10여분간 멈춰서는 등 정전 사고도 잇따랐으며 광주·전남서만 15만여 가구에서 일시적인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전남 최종필·서울 김동현기자 choijp@seoul.co.kr
  • BERLIN-지금 여기 베를린

    BERLIN-지금 여기 베를린

    베를린은 생물체 같은 역동성이 느껴지는 도시다. 도시 전체가 풍부한 표정을 가진 사람의 얼굴같다고 할까? 파괴와 갈등, 그리고 다시 화해의 역사를 지나온 도시는 한 편의 웅장한 대서사시, 그 자체다. 거기에 베를린 사람들이 그리고 싶어한 세계, 들려주고 싶던 이야기가 엉키고 버무러져 기형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총알자국이 선명하게 박힌 흉측한 건물조차 예술로 승화시키는 이 도시는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현재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비극의 도시에서 예술의 섬으로 ‘유럽의 섬’이라 불리는 베를린은 예술가들을 흡인하는 ‘수렴의 섬’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고 전파하는 ‘발산의 섬’으로 세계 예술계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여긴 독일이 아니다. 유럽도 아니다. 그저 베를린이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독일 내에 섬처럼 존재했던 베를린은 정신적, 문화적으로도 섬처럼 독특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다. 베를린이 예술의 메카로 떠오른 데는 ‘분단’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강들의 힘겨루기에 의해 동독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베를린은 차디찬 장벽에 의해 동서로 나뉘었다.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지나 장막이 무너지자 독특한 문화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약 40년간 분리됐던 문화가 섞여 무한한 시너지를 창출했다는 말들은 피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정부의 강력한 예술 활성화 의지가 있었다. 정부가 나선다 하면 으레 ‘생색내기’식 정책을 양산하거나 개발주의에 매몰돼 도심 한복판에 광장이나 조형물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익숙한 우리로서는 독일 정부의 세련된 예술 지원책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베를린시는 “베를린이 예술의 장으로서 발전함은 물론 문화적 다양성과 혁신적인 작품활동을 펼치는 예술가들의 생계를 지원해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기금 지원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적 레토릭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예술가들이 정부의 도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1989년 통일 이후, 정부는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 방치된 낡은 동베를린의 건물들을 아티스트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베를린에 작가로 등록만 하면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저렴한 물가, 넉넉한 예술 공간, 정부의 지원책이 조화를 이뤄 예술가들이 하나둘 운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는 미술가부터 작가, 대중음악 연주자, 연극단까지 범주도 넓고 국적도 다양하다. 베를린에는 현재 약 600개의 갤러리가 있으며, 미술가 5,000명, 작가 1,200명, 대중음악 밴드 1,500개, 300개의 연극 극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베를린시는 기금을 조성해 이들을 후원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연간 2,000만유로(약 300억원)의 기금이 27개의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예술가들에게 지급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업과 기관이 개별적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베를린이 예술가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실 베를린은 예술의 도시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Spree River에 떠 있는 섬, 뮤지엄 아일랜드Museum Island에는 200여 년을 거치며 박물관들이 하나씩 문을 열었다. 국립회화관, 보데박물관, 구립미술관, 페르가몬미술관, 공예미술관에 대성당까지….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집중 폭격으로 초토화된 박물관, 미술관들을 동독 정부는 차례로 복원시켜냈다. 포화를 맞은 흔적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에 치밀하고도 감쪽같은 복원력이 감탄스럽다. 베를린을 새로운 아트씬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이 통일 독일에 의해 추진됐다면, 전쟁으로 소실된 옛것들의 가치를 원상복구하는 것은 옛 동독의 역할이었던 것. 이념과 시대를 떠나 독일인들이 간직한 예술에 대한 깊은 애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 분단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특수성은 베를린에 독특한 예술과 문화를 꽃피운 동력이다. 베를린 장벽에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을 새겨놓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2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은 통일 독일의 상징이다 3 유럽의 대도시, 독일 주요 도시에 비해 베를린의 물가는 낮은 편이다. 예술가들과 여행자들이 최근 베를린으로 몰려드는 결정적인 이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길에서 만난 예술, 베를리너들 혹자는 이미 세계 미술계의 축이 베를린으로 이동했다고까지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덜하니 예술가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이 점이 뉴욕, 파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운집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자연스레 많은 갤러리와 작품 수집가들도 베를린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에서도 가장 많은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은 미테 지구Mitte District다. 베를린 예술에 중독된 여행자가 있다면 열병처럼 그리워할 곳이 바로 여기다. 근현대 엘리트 미술과 고대 유적을 볼 수 있는 뮤지엄 아일랜드와 같은 공간은 사실 런던이나 파리에도 있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이 폐허가 된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레스토랑과 카페, 기괴한 분위기의 클럽이 밀집해 있는 곳은 베를린 미테에서만 만날 수 있다.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갤러리를 만나면 입장료 없이 들어가 작품을 즐기고, 또 마음에 들면 구매할 수도 있는 이곳.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들고 나와 여행자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곳이 바로 베를린이며, 뉴요커보다 파리지엥보다 더욱 신선한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베를리너Berliner들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도 베를린의 가장 큰 매력은 저렴한 물가다. 유럽의 대도시, 다른 독일 도시를 여행하다 베를린으로 건너온다면 저렴한 베를린의 미덕을 더욱 체감하게 된다. 실제로 저렴한 길거리 음식부터, 다국적 음식까지 근사한 맛을 자랑하면서도 값은 싼 편이다.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큰 피자조각을 2유로에 사먹고, 2유로짜리 커피 한 잔까지 즐길 수 있는 유럽의 대도시는 흔치 않다. 짧게 스쳐가는 여행자보다 베를린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체감하는 물가의 매력은 더 크다. 집값이 특히 저렴한 까닭이다. 아파트를 빌려 장기 투숙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 미테 지구에서는 소규모 갤러리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규모 미술관이나 전시관에서 볼 수 없는 젊은 예술가들의 참신한 작품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2 유대인 박물관은 나치 시절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했다 3, 4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타켈레스는 통일 이후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국적 예술가 60명이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후원금도 좋지만 나무, 철을 보내 달라” 베를린의 예술을 논함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타켈레스Tacheles다. 20세기 초, 백화점으로 사용되다가, 전자제품 전시관으로, 나치 당원들이 머물던 건물로, 프랑스 전쟁 포로수용소로 수차례 용도가 변경된 이 건물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운명을 다한 듯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이 건물은 전혀 다른 용도로 거듭났다. 정부는 타켈레스를 재개발하려 했으나, 1990년 세계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은 이를 반대하며 건물을 무단 점거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이색 퍼포먼스를 개최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결국 정부는 손을 들었고, 이제는 이곳에 상주하는 예술가들에게 지원금까지 주게 됐다. 타켈레스 내부에 들어서자 지구상의 공간이 아닌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건물은 온통 그래피티로 뒤덮혀 있고, 버려진 자동차 등 각종 폐품을 활용한 정크아트 조형물들이 널려 있다. 언뜻 보면 슬럼가 같기도 하고, 가출 청소년들의 아지트처럼 보이는 이곳에는 약 60명의 다국적 예술가들이 기거하고 있다. 자기 작품을 전시한 예술가들은 정부 보조금 외에도 작품을 팔아 생계를 영위한다고 한다. 베를린이 예술의 메카로 떠오른 중요한 대목이 여기 또 하나 있다. 작품이 팔린다는 것. 미테 지구 골목골목에는 액자나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이들이 즐비하다. 모두 현장에서 구매한 작품들이다. 집시처럼 보이는 미술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말을 걸었다. 터키인 아드난 칼칸치Adnan Kalkanci. 그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다며 달라고 하지도 않은 자신의 그림엽서를 선뜻 건넸다. 군불을 쬐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다가갔다. 베를린 출신의 모리츠라는 친구가 차를 한잔 하고 가라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곤 1유로밖에 안한다며 동전이 들어 있는 종이컵을 딸랑였다. 조금 의아했다. 그저 집나온 비행 청소년처럼 보이는 이들이 이곳에서 ‘예술가’로서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한다는 사실이. 모리츠에게 말했다. “난 한국에서 온 기자다. 네 얘기를 잡지에 실어줄게. 하고픈 말 있으면 무엇이든 해봐.” “하고픈 말? 좋아. 우리를 후원해 달라. 우리가 필요한 건 돈만이 아니다. 나무든 철이든, 뭐든지간에 작품에 쓸 재료들이 필요하다.” “나무? 철?” “재료가 있어야 작품을 만들지 않겠나.” 알고 보니, 보통 친구들이 아니었다. 타켈레스에서는 예술가들끼리 엄격한 기준을 세워 함량미달이면 내보내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타켈레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도 많다고 한다. 예술가들의 치열하고도 신성한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5 타켈레스에는 폐품을 활용한 정크아트 작품들이 많다. 예술가들은 후원금도 좋지만 작품에 활용할 소재들이 필요하다가 말한다 6 유대인들은 민족적 우수성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아인슈타인은 대표적인 유대인 과학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반성과 속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베를린의 매력은 역시 길에서 발견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가 있다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일 것이다. 동과 서를 차갑게 갈랐던 장벽은 이제 베를린 중심부, 1.3km 길이의 병풍으로 남아 있다. 1990년 자유와 평화를 기원하며 다국적 화가 100명이 동쪽 벽면에 그림을 그렸다. 20주년을 맞은 지난 2009년에는 옅어진 그림을 덧칠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기억을 보존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기억에 대한 집착은 남다르다. 많은 독일인들은 냉전과 분단을 거슬러 올라 나치 시절 조상들의 만행을 지금도 부끄러워하고 있다. 가해자가 속죄의 의미로 박물관을 운영하는 나라가 독일이며, 그 상징적인 공간이 베를린에 있다. 유대인 박물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랍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할레쉐스 토어Hallesches Tor역에서 내려 차도르를 두른 아랍계 어린이들이 뛰노는 아파트를 지나자 기괴한 모형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어지러운 역사의 시공간을 가로지른 듯했다. 2001년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박물관은 건물 외관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유대인들이 받은 상처와 고통을 공감적으로 표현한 고도의 설계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유대인들이 받은 고통을 형상화한 내부 디자인은 밖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기형적이다. 이토록 강렬한 감정이입을 일으키는 박물관이 또 있을까. 예술로 구현된 집단의 기억은 그 어떤 텍스트보다 강렬했다. 몇 해 전 방문한 예루살렘의 야드바쉠Yad Vashem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생각났다. 야드바쉠이 나치의 잔혹성과 유대인들이 겪은 시련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베를린 박물관은 유대인의 우수성과 독일과 유대인의 관계에 주목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용서와 속죄. 그 입장의 머나먼 간극이 예술 속에 은연히 배어 있었다. Travel to Berlin ▶베를린 가는 길 한국과 베를린을 잇는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푸르트나 뮌헨까지 간 뒤, 항공이나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루프트한자항공이 프랑크푸르트에 취항 중이며, 루프트한자는 뮌헨에도 취항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럽의 주요 대도시에서 항공편이 운항되고 있다. 환율 1유로는 약 1,500원(2011년 7월 기준) 시차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느리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여름철에는 7시간 느리다. 전압 독일은 240V 전압을 사용하므로 멀티어댑터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베를린 추천 명소 뮤지엄 아일랜드Museum Island 200년 이상의 유서 깊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구립미술관Old Museum에는 프로이센 왕가의 예술품이 수집되어 있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구국립 미술관, 이집트 박물관을 비롯해 고대 도시 페르가몬의 유적이 있는 페르가몬 미술관, 비잔틴 예술품들이 수집되어 있는 보데 박물관 등이 있다. U-Bahn 프리드리히슈트라세Friedrichstr역, S-Bahn 하케쉐르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역에서 가깝다. 입장료는 박물관에 따라 5~12달러 수준이며, 베를린 웰컴카드가 있으면 절반 가격에 입장할 수 있다. www.smb.museum 미테 예술 지구Mitte District 소규모 갤러리와 베를린에서 가장 힙한 클럽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타켈레스Tacheles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U-Bahn 오라니엔부르거 토어Oranienburger tor역, S-Bahn 오라니엔부르거 스트라세Oranienburger Strasse역, 하케쉐르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역에서 가깝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 1990년 100여 명의 화가들이 통일을 기념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뜻에서 1.3km 길이의 베를린 장벽에 그린 그림들이다. 오스트반호프Ostbahnhof역 부근에 위치해 있다. www.eastsidegallery.com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1933년 설립됐으나 폐쇄와 재개장을 반복하다가 지난 2001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박물관이다. U-Bahn 할레쉐스 토어Hallesches Tor역에서 도보로 갈 수 있다. www.jmberlin.de ▶베를린 아트 씬이 더 궁금하다면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왜 베를린이 예술가의 천국으로 불리는지 현실적으로 접근한 미술 에세이다. 책의 부제도 ‘베를린의 미술과 미술 환경에 관한 에세이’다. 베를린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한 저자는 예술가를 만나면 단도직입적으로 ‘도대체 어떻게 먹고사는지’를 물었다. 결국 저자는 ‘조건과 예술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기 위해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현미경으로 바라본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와 굴곡 많은 역사, 정부의 예술 지원 정책의 어우러짐이 베를린이 가진 ‘천혜의 조건’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조이한 저/ 현암사 다시 베를린 여행기자 이동미 씨가 최근 몇년 새 미술, 건축 등 새로운 문화가 급부상하고 있는 베를린의 다채로운 매력을 소개한 에세이다. 베를린이 왜 파리와 뉴욕의 뒤를 잇는 힙한 도시인지 직접 거리를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며 취재했다.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베를린의 패션, 클럽 문화, 먹거리까지 읽을거리가 수두룩하다. 저자는 1990년대부터 스트리트매거진을 통해 도시의 트렌드와 문화를 알려왔으며 <프라이데이 콤마>의 여행팀장을 지낸 이력에 걸맞게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맛깔나게 소개했다. 이동미 저/ 미디어블링 베를린 코드 ‘티 나지 않게 사람을 중독시키는 매력을 지닌 도시’, ‘틈새가 많은 도시’, ‘자유롭고 가난하고 섹시한 도시’라고 베를린을 일컫는 저자가 8년간 유학생활을 하며 경험한 베를린 이야기를 전한다. 베를린 아트씬에 대한 내용, 가난한 예술가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독일의 역사와 정치까지 다양한 베를린의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다. 저자는 여행안내서보다 더 본질적인 내용들을 다루었고, 일기처럼 사소하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숨김 없이 책에 담아냈다. 이동준 저/ 가쎄 카드 한 장으로 가벼운 여행 베를린 웰컴카드Welcome Card 베를린의 모든 대중교통을 카드 한 장으로 해결하고, 150개의 주요 관광지 입장권까지 절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웰컴카드는 베를린 여행의 필수품. 관광객 안내센터나 주요 전철역, 호텔에서 구매할 수 있다. 2일권은 16.90유로(약 2만6,000원), 3일권은 22.90유로, 5일권은 29.90유로다. 옵션으로 인근 도시인 포츠담Potsdam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패스도 있다. 베를린관광청 홈페이지(www.visitberlin.de)를 방문하면 웰컴카드를 구매할 수도 있고, 각종 유용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0) 금산 요광리 행정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0) 금산 요광리 행정 은행나무

    나무에 전설이 담기는 건, 그 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가를 보여주는 뚜렷한 예다. 하나의 전설은 또 하나의 전설을 낳고, 세월이 흐르면서 전설은 실제 있었던 일처럼 부풀려진다. 세월은 옛 전설에 또 하나의 전설을 보태고, 보태진 전설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새로운 전설로 탈바꿈한다. 어느 틈에 전설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와 환상이 되고 사람살이의 상징이 된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시간의 흐름을 짚어본 ‘옛날에 대하여’에서 “옛날이란 완결될 수 없는 출발”이라고 했다. 옛날 이야기는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순간까지 유효할 때에 살아남는 법이고, 다시 또 새로운 전설을 싹 틔울 씨앗인 셈이다. ●굶주린 호랑이도 뒷걸음질치게 한 위용 충남 금산 요광리 행정 은행나무 그늘에 트럭 한 대가 찾아 들었다. 트럭을 몰고 온 사내는 비를 피하려기보다는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비를 응시하려는 낌새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사내는 차문을 열어젖히고 열린 창틀 위로 두 발을 뻗어 올린다. 불편한 자세의 사내는 차 안에서 권태로운 몸짓으로 꿈지럭거리며 낮잠에 들 요량이다. 넉넉한 품의 나무가 품어 안은 트럭이 앙증맞다. 아주 오래 된 옛날, 이 마을에 살던 한 사내도 지금 트럭의 사내처럼 여름 한낮에 나무 그늘에 들어섰다. 나무 그늘에서 빠져든 달콤한 낮잠은 들판에 땅거미가 밀려올 때까지 이어졌다. 그 즈음 뒷산에서 배고픈 호랑이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리던 호랑이는 들판에서 풍겨오는 사람 냄새를 맡았다. 저녁거리인 사람을 잽싸게 찾아내기는 했지만 호랑이는 다가서지 못했다. 사람이 누운 자리에는 도저히 덤빌 수 없을 만큼의 위엄을 갖춘 거대한 ‘무엇’이 떡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은 숲 속에서 흔히 보던 나무라 하기에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먹이를 앞에 놓고 두리번거리던 호랑이가 거대한 ‘무엇’을 향해 몇 차례 ‘어흥’ 거렸지만, 그건 꿈쩍도 않았다. 두려워진 호랑이는 그 자리를 냉큼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굶주린 호랑이를 뒷걸음질하게 한 건 한 그루의 나무, 옛날에 그랬듯이 지금 트럭의 사내를 품은 요광리 은행나무였다. 무려 1000년을 넘게 살았다는 이 나무에는 숱하게 많은 전설이 전해온다. 오래 된 나무들에 전하는 거개의 전설을 총망라한 집대성판이라고 해도 될 만하다. 1000년에 걸쳐 마을 살림살이를 지키며 사람들의 숱한 이야기를 담은 나무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부러진 가지로 3년동안 쓸 밥상 만들어 요광리 은행나무는 생김새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키는 24m이고 줄기 둘레는 13m다. 원래는 더 컸다. 오래 전에 폭풍을 맞아 남쪽과 동쪽으로 난 큰 가지가 부러져 작아진 게 이 정도다. 그때 부러진 가지로 사람들은 요긴하게 쓸 가구를 만들었다. 무려 3년 동안 마을 모든 집에서 쓸 밥상과 37개의 관을 만들었다는 게 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러진 가지의 크기뿐 아니라, 그전까지 나무가 보여주었던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큰 가지가 부러졌지만 여전히 나무는 크다. 게다가 벌판에 홀로 서 있어서 더 커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부분이 부러진 탓에 나무는 특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남쪽의 가지는 순한 모습으로 둥글게 자랐는데, 북쪽으로 솟구친 가지들은 끝 부분이 사각형 꼴로 사납게 뻗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 곁에는 ‘행정헌’(杏亭軒)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육각정자가 있다. 새로 지은 정자이지만, 500년 전부터 이 자리에는 정자가 있었다. 당시 전라감사를 지낸 이 마을 선비가 짓고,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에서 행정이라고 했다. 이 나무를 ‘행정 은행나무’라고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그때부터 이 나무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 밤에 당산제를 올렸다고 한다. 나무 줄기에서는 능히 1000년의 세월을 짚어보고도 남음이 있다. 잘 빚어낸 항아리처럼 가운데가 불룩하게 부푼 줄기는 곳곳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전체적인 수형만큼은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이 은행나무에는 그가 지나온 세월만큼 다양한 전설들이 전해온다. 마을에 재난이 닥쳐 올 기미가 있으면 큰 소리로 울음 소리를 내서 대비하도록 예고했다거나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웬만한 노거수에 전하는 평범한 전설들이다. ●한밤중에 아이 세워놓으면 똑똑해져 잠잠했던 비가 다시 쏟아붓는다. 차문을 열고 낮잠을 자던 사내도 빗줄기를 감지하고 차문을 닫고 흐트러진 매무시를 바로잡는다. 호랑이까지 물리친 나무이건만 하늘의 뜻은 물리치지 못한다. 떠날 채비를 하는 사내에게 다가가자, 창문을 빼꼼히 열고 털어놓는 사내의 이야기 끝에 또 하나의 전설이 담겼다. “하도 비가 와서 일을 못 하잖아요. 집에서 빈둥거리느니, 비 구경이라도 하려고 나왔어요. 밤에 비 그치면 방학이라고 집에서 노는 딸 아이도 데려올 거예요. 밤에 이 나무 아래에 아이를 한 시간쯤 세워놓으면 똑똑해진다고 하거든요.”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왜 하필이면 아이들이 무서워 하는 밤중인가. 호랑이도 쫓아 보낼 만큼 못할 게 없는 나무의 영험함에 기댄 이야기이겠지만, 들을 때마다 재미있지만, 낯설고 어설프다. 그래도 사람들은 1000년 동안 나무의 전설을 소중히 간직했다. 다시 수천의 세월이 흐르면 나무에 또 다른 전설이 보태질지도 모른다. 옛날은 또 하나의 출발이라는 파스칼 키냐르의 발언은 충남 금산 요광리에서 충분한 증거를 얻는다. 글 사진 금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남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329-8. 요광리는 통영~대전 간 고속국도가 통과하는 곳이다. 나무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두면 고속국도를 지나는 중에도 은행나무를 찾아 볼 수 있다. 대전 쪽에서 나무를 찾아 가려면 고속국도의 남대전나들목으로 나가서 오른쪽 도로로 6.5㎞ 가면 요광리에 들어서는 요광교에 닿는다. 무주 쪽에서 북진하여 갈 때는 추부나들목으로 나가서 우회전하여 2㎞ 쯤 가면 된다. 다리를 건너면 곧 나무가 있는데, 건너편에서도 나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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