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대성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산사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성동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발열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나나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361
  • 대성그룹-WEC, 28일 ‘남북러 가스 파이프라인과 동북아 에너지협력 콘퍼런스’ 개최

    대성그룹-WEC, 28일 ‘남북러 가스 파이프라인과 동북아 에너지협력 콘퍼런스’ 개최

    대성그룹이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한국위원회와 공동으로 오는 28일 대한상의 의원회의실에서 ‘남북러 가스 파이프라인과 동북아 에너지협력 콘퍼런스’를 공동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한국, 러시아, 일본의 전문가들이 급변하는 세계 가스시장 상황과 러시아에서 한반도까지 이르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실현가능성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추진 방안을 논의하는 콘퍼런스다. 특히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 확대, 러시아와 중국 간의 PNG(파이프라인 가스) 거래 본격화 등 시장변동에 따른 한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관련국들의 입장 변화를 점검한다. 아울러 남북러 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한 동북아 에너지협력 확대 가능성을 짚는다.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기조연설을 맡는다. 김연규 한양대 에너지거버넌스 센터장과 권세중 외교부 기후변화환경외교국장이 2개 세션의 좌장을 각각 맡는다. 1세션에서는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과 러시아-동북아 PNG 유통 전망 등을 주제로 로만 삼소노프 러시아 사마라대 수석 부총장, 료 후쿠시마 도쿄가스 해외사업기획부 부부장,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가 토론을 한다. 2세션에선 남북러 가스 파이프라인의 실질적인 추진방안 등을 주제로 류지철 미래에너지전략연구협동조합 이사, 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북방에너지협력팀장, 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의 발표와 토론이 예정돼 있다.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은 한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이 모두 회원국으로 가입한 WEC를 ‘남북러 가스 파이프라인’ 협의의 플랫폼으로 활용해 실질적인 논의 진전을 모색하며, 이번 콘퍼런스 개최를 위해 노력해왔다. 김 회장은 “러시아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가스 파이프라인은 참여국 모두에게 실익이 되는 프로젝트 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걸림돌 때무에 수십 년간 진전을 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정부간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더라도 WEC라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국제 민간기구를 통해 관련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콘퍼런스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오는 9월 9~12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WEC 세계에너지총회에서도 이 주제와 관련한 세션이 마련된다. ‘번영을 위한 에너지’를 주제로 열린ㄴ WEC 아부다비 총회에서 김 회장은 한국인 최초로 2016년부터 WEC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9월 WEC 세계에너지총회엔 150개국에서 1만 5000여명의 에너지 관련 기업 CEO, 산업게와 학계, 국제기구 전문가 집단, 각 국 정부의 정상과 에너지 부처 고위관료 등이 참석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전통 선박 용어사전 나온다

    전통 선박 용어사전 나온다

    우리나라 전통 선박 한선(韓船) 용어를 집대성한 사전이 발간된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5년 동안 작업한 ‘우리 배 지식 웹·모바일 사전’을 26일 발간한다고 24일 밝혔다. 사전은 선사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우리나라 해역에서 활동한 전통 한선 용어를 총 망라했다. 배의 종류, 전통 선박 구조, 조선 도구, 배 짓기, 선소와 선창, 조선·항해 의례, 항해 기술 등 주제별로 분류해 모두 1939개 항목을 수록했다. 선소는 배를 만드는 곳, 선창은 배를 대는 곳을 뜻한다.여기에 글, 그림, 영상과 2·3차원(2D·3D) 자료 등 다양한 방식의 데이터베이스도 담았다. 국립해양문화연구소는 사전을 웹·모바일(dic.seamuse.go.kr) 형태로 먼저 공개하고, 누리꾼들이 댓글을 달거나 의견을 내면 이를 반영해 내용을 보완해 내년쯤 책자 형태의 ‘우리 배 용어사전’을 발간하기로 했다.연구소 측은 “선공(船工) 고령화로 점차 사라져가는 무형문화유산 자료와 전통 조선 기술을 보전하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사전을 발간한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월요 정책마당] 정부와 국민 사이의 벽을 허물려면/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월요 정책마당] 정부와 국민 사이의 벽을 허물려면/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1394달러를 기록하며 선진국 진입선이라 할 수 있는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도 1조 5300억 달러로 세계 12위를 차지했다. 외형적으로 대한민국은 놀라운 발전을 일궜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사회적 양극화는 봉합되지 않고 있고 저출산·고령화도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과거 우리에게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과제가 놓여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국가 역량을 경제성장에 집중했다.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하며 국제사회의 모범 사례가 됐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압축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환부가 곪아 터지고 있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정부가 단독으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을 이뤄야 하고 정부와 국민이 목표를 함께 고민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한 것이 바로 ‘정부혁신’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만들려고 한다. 그 첫걸음으로 국민과 정부 사이의 벽을 허물고자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벽을 허물 수 있을까. 이에 관한 해법으로 ‘3C’를 제안한다. 먼저 국민과 정부 간 진심 어린 ‘공감’(compassion)이다. 세계적인 비언어 소통 전문가인 폴 에크먼(84)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43개의 미세한 얼굴 근육을 활용해 19가지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정말로 기뻐서 웃는 미소는 단 한 가지인데, 놀랍게도 이를 접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이처럼 진정한 공감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넘어 심리적 유대로까지 이어진다. 다음으로 ‘공동체’(community)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 모두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가족을 부양하기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국민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국정 참여를 요청하면 과연 몇 명이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때 공동체 정신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공동체는 정부와 국민을 연결하는 고리다. 국민들이 입법·행정에 참여하기 위한 기반이 되고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공동체 연대성은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꼴찌다. 어느 때부터인가 공동체의 가치가 뒷전으로 밀린 탓이다. 이제부터라도 공동체 의식을 깨워야 한다. 마지막 해법은 ‘공동창조’(co-creation)다. 정부와 국민이 다 함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혁신을 이뤄 가는 것이다. 지역 주민이 중심이 돼 사회적경제를 이뤄 가는 협동조합이나 생활 속에서 주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 리빙랩, 미국 정부가 국가적 이슈를 해결하는 데 시민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고자 만든 ‘챌린지닷거브’(challenge.gov)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국민의 집단지성으로 해결하려는 방안은 모두가 함께 잘살기 위한 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벽을 허무는 데서 시작했다. 14세기 유럽에서는 르네상스를 통해 문화·예술·학문 간 경계의 벽이 무너졌고 인류의 큰 진보를 일궈 냈다.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이 철거되면서 냉전 시대가 끝났다. 2019년의 대한민국 또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국가 운영의 중심을 경제적 가치에서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고 혁신적 포용국가도 달성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정부혁신이다. 이제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돼 우리 내부의 벽을 허물고자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 파격의 1박2일… 시진핑 ‘혈맹’ 과시, 김정은 ‘우군’ 확보

    파격의 1박2일… 시진핑 ‘혈맹’ 과시, 김정은 ‘우군’ 확보

    金, 숙소로 금수산 새 영빈관 첫 제공 당 정치국 성원과 기념촬영도 최초 한밤까지 밀착 동행… 동선 직접 챙겨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21일 북한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밀착 동행하며 ‘황제급’으로 예우했다. 미중 갈등, 홍콩 시위 등으로 국내외에서 수세에 몰린 시 주석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파격 예우를 받으며 북한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했고, 김 위원장은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데 있어 중국으로부터 지지와 지원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조선중앙TV가 지난 22일 공개한 시 주석 방북 관련 기록영화를 보면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이 20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튿날 떠날 때까지 1박 2일 내내 시 주석의 동선을 직접 챙겼다. 김 위원장은 20일 공항 영접 행사부터 평양 도심 무개차 퍼레이드,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환영 행사에 시 주석과 함께했으며, 행사 후 시 주석 숙소인 금수산 영빈관까지 동행해 시 주석을 방까지 직접 안내하고 숙소를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새로운 영빈관을 숙소로 제공하면서 극진한 예우를 선보였다. 시 주석의 숙소인 금수산 영빈관은 그동안 북한 매체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으며 외국 정상 숙소는 주로 1983년 평양 대성구역에 건립된 백화원 영빈관이 이용됐다. 지난해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도 백화원 영빈관에서 묵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 금수산 영빈관에서 회담을 한 뒤 자신의 집무실인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 시 주석을 초청, 당 정치국 성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해 방북한 문 대통령과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본부청사에 초청받았으나 김 위원장 및 당 정치국 성원과 기념촬영을 한 것은 시 주석이 유일하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 환영연회를 하고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불패의 사회주의’를 관람한 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 숙소인 금수산 영빈관에 먼저 도착해 시 주석을 맞이했다. TV는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의 진심 어린 극진한 정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면서 비록 길지 않은 하루였지만 조선 인민에 대한 지울 수 없는 훌륭한 인상을 받아안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튿날인 21일에도 시 주석과 함께 중국 인민지원군의 6·25전쟁 참전을 기념해 건립된 북중 우의탑을 참배하며 북중 혈맹을 과시했다. 이후 금수산 영빈관으로 이동해 부부 동반으로 영빈관 내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오찬을 했다. 김 위원장은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나가 시 주석을 환송했다. 한편 시 주석의 방북 기간에 북한의 지도부 구성에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신호가 포착돼 주목된다. 20일 정상회담에는 그동안 네 차례 북중 정상회담에 모두 배석한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빠지고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 제1부위원장이 배석했다. 또 북중 정상회담 관련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리용호 외무상이 서열상 위인 리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보다 먼저 호명됐다. 이에 최 상임위원장과 리 외무상이 향후 북미 협상에서 주요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시 주석과 김 위원장, 당 정치국 성원 기념촬영에서 빠졌지만, 공항 영접 행사에서 정치국 위원인 김수길 군 총정치국장보다 앞에 도열해 정치적 위상에는 변화가 없다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 제1부부장은 2017년 10월 당 중앙위 7기 2차 전원회의에서 후보위원에 보선된 이후 현재까지 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정치적 위상은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14세 탁구 신동 신유빈 최연소 국가대표에

    14세 탁구 신동 신유빈 최연소 국가대표에

    이에리사, 유남규의 종전 15세 기록 뛰어넘어 역대 최연소1~2위 양하은, 이은혜 .. 세계랭킹 자동 출전 전지희, 서효원과 아시아선수권 출전 ‘탁구 신동’ 신유빈(수원 청명중 3학년)이 역대 최연소인 14세에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다.신유빈은 21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여자부 상비 1군 12명이 풀리그를 벌인 2019 아시아선수권대회 파견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8승3패의 성적으로 3위에 올랐다. 이로써 신유빈은 양하은(포스코에너지·10승1패), 이은혜(대한항공·9승2패)와 함께 3명을 뽑는 국가대표에 자력으로 선발됐다. 2004년 7월 5일생인 신유빈은 만 14세 11개월 16일의 나이로 국가대표가 되면서 남녀를 통틀어 자력으로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만 15세 때 국가대표로 뽑힌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과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의 종전 기록을 넘었다. 이에리사 촌장은 문영여중 3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혔고, 유남규 감독은 부산남중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상비 1군 자격으로 선발전에 나선 신유빈은 선배 이은혜와 유은총(미래에셋대우)을 각각 3-1과 3-2로 물리치며 ‘막내 돌풍’을 일으켰고, 마지막 상대였던 김별님(포스코에너지)까지 3-0으로 돌려세워 국가대표로 확정됐다. 신유빈은 올해 9월 15일부터 22일까지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신유빈은 “국가대표로 뽑혔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국가대표 발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잘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6명의 선수로 대표팀을 꾸리는 아시아선수권에는 신유빈과 이은혜, 양하은과 함께 1명이 대한탁구협회 추천으로 합류하고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랭킹에 따라 자동 선발된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서효원(한국마사회)까지 모두 6명이 출전한다. 양하은은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지난 4월 헝가리 세계선수권(개인전)에 나가지 못했지만 같은 달 대한항공에서 포스코에너지로 옮긴 후 2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복귀했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으로 2010년 11월 귀화한 이은혜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남자부에서는 정영식(미래에셋대우)이 13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고, 김민혁(한국수자원공사·11승2패)과 헝가리 세계선수권 동메달 주인공인 안재현(삼성생명·9승4패)이 3위까지 주는 태극마크를 달았다. 조대성(대광고)도 8승5패로 4위에 올라 협회 추천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 가능성을 남겨뒀다. 아시아선수권에는 이들 3명에 협회 추천 선수 1명, ITTF 세계랭킹에 따라 자동 선발된 장우진(미래에셋대우), 이상수(삼성생명) 등 6명이 출전한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김정은 “시 주석, 가장 존중하는 귀빈” 역대 최고 의전

    김정은 “시 주석, 가장 존중하는 귀빈” 역대 최고 의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14년 만에 처음 방북한 시진핑 국가주석을 역대 최고 수준의 의전으로 맞이하며 북중 간 전략적 밀월 관계를 공고히하고 대외적으로도 이를 드러냈다. 21일 중국 관영 중앙(CC)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번 방북 기간 ‘가장 존중하는 귀빈’으로 불리며 환영 행사때부터 남다른 대우를 받았다. 시 주석이 평양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차례 대규모 환영행사를 진행했으며,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또 한 차례 환영행사를 성대하게 열며 과거 ‘혈맹’으로 불렸던 북중 관계를 과시했다. CCTV는 환영행사를 두 차례 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한 번 더 환영의식을 치른 것은 외국정상 중 시 주석이 최초라고 전했다. 공항 영접 인사들도 리수용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김영철 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등 북한 외교 3인방을 비롯해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당 조직지도부장으로 알려진 리만건 당 부위원장, 인민군 김수길 총정치국장, 리영길 총참모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등 군 수뇌 3인방 등이 북한 최고위급 간부들이 모두 동원됐다.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행사에도 권력 서열 2위인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를 필두로 김재룡 총리, 박광호(선전)·김평해(인사)·오수용(경제)·박태성(과학교육) 당 부위원장 등 북한 실세들이 대거 참석했다. 시 주석이 두 환영행사장을 이동할 때에도 북한 당국은 연도 환영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북한 인공기를 든 수십만명의 평양시민을 동원해 “환영 습근평(시진핑)”을 연호하는 등 공을 들였다. ‘당 대 당’ 관계를 중시하는 양국답게 시 주석이 북한노동당 중앙본부를 방문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CCTV에 따르면 이날 중앙본부에는 노동당 정치국원과 정치국원 전원이 나와 시 주석을 영접했다. 환영만찬에서도 시 주석에 대한 특별한 의전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축사에서 시 주석을 ‘가장 존중하는 중국 귀빈’이라고 칭하며 최고 예우를 갖췄다고 CCTV는 전했다. 시 주석 내외가 묵는 숙소인 ‘금수산영빈관’도 이전에 거론된 적 없던 명칭으로 북한이 시 주석을 위해 새롭게 마련한 숙소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외빈 숙소로 1983년 평양 대성구역에 건립한 백화원영빈관을 사용해 왔다. 만약 금수산영빈관이 북한이 새롭게 조성한 외빈 전용 숙소라면 시 주석이 첫 손님이 되는 셈이다. 북중 정상 부부가 함께 관람한 축하 공연인 북한 집단체조(매스게임) ‘불패의 사회주의’는 특급 의전의 극치를 보여줬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을 위해 10만여 명이 동원되는 집단체조를 대폭 수정해 ’시진핑 맞춤형‘ 공연으로 선보였다. 특히 집단체조 ’인민의 나라‘는 지난 3일 개막했다가 김 위원장의 지적으로 지난 10일부터 일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북중 우호의 상징인 ‘북중 우의탑’에 참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튿날 일정을 시작한다. 참배를 마친 뒤에는 김 위원장의 오찬을 겸한 2차 회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첫날 의전 수준을 고려하면 둘째 날도 시 주석에 대한 대대적인 연도 환송과 공항 환송 행사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210년 만에 중국 간 ‘한류 원조’ 추사

    210년 만에 중국 간 ‘한류 원조’ 추사

    “벼루 열 개, 붓 천 자루를 써버리는 열정으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과의 대화’ 특별전이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했다. 과천시는 예술의전당, 중국 국가미술관과 공동으로 8월 23일까지 두 달간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올해는 추사체로 상징되는 글씨의 명인 김정희(1786~1856년)가 1809년 연행을 한 지 210년 되는 해다. 특별전은 ‘괴(怪)의 미학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을 주제로 세 부문으로 나눠 진행한다. 과천추사박물관을 비롯해 제주추사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등 총 30여곳에서 출품한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이 총망라돼 있다. 추사와 청나라 대학자 옹방강이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한 ‘필담서’는 현지에서 화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글을 주고받으며 의사소통한 일화는 유명하다. 추사가 청나라를 방문했다 귀국하기 전 문인, 화가와 벌인 송별잔치를 기록한 서화 ‘추사동귀도시’는 베이징행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 옹방강이 조선학자에게 전해받은 금석문을 정리한 ‘해동금석영기’는 조선금석학을 청나라에 소개한 중요 자료다. 추사와 자하 신위 등 금석문 매 건마다 보내준 사람의 이름과 그들의 견해가 수록됐다.추사 김정희는 청나라 고증학을 기반으로 한 금석학자이며 실사구시를 제창한 경학자다. 그는 글씨와 그림의 일치를 주장했으나 “글씨나 그림이나 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이르면 자연히 우러나온다”고 했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이번 특별전을 통해 우리만 아는 추사가 아닌 세계인이 함께 감상하고 느끼는 추사 서화의 새로운 장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백종원? 이국종? 박찬호? 한국당 총선 인재 확보 논란

    자유한국당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일부 유명인들의 이름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어 논란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20일 “당 중앙위 차원에서 인재들을 추천받고 있고, 이를 선별해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라며 “앞으로 추가될 인사들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에서 흘러나오는 영입 대상자 이름은 ‘외식 사업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스타 방송인’ 김성주 전 아나운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 한국야구위원회 국제홍보위원,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이자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 ‘쏘카’의 이재웅 대표 등이다. 이들은 한국당의 영입 희망 대상자일 뿐이며, 아직 한국당에서 의사 타진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이들의 이름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실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당의 A의원은 “당에서 비공식적으로 접촉도 하기 전 이름이 나오는 것에 본인들도 놀랄 것”이라며 “정치를 한다는 건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것인데 지금 이름이 나오는 분들이 과연 포기를 할만큼 당 차원에서 당근책을 제시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당은 당 인재영입위원회를 중심으로 외교·안보, 경제·경영, 법조, 과학·기술, 문화 등 분야별 전문가를 포함, 인재 2000여명을 국회의원 등 원내외 당협위원장들로부터 추천받은 뒤 선별작업을 거쳐 170명으로 압축한 상태다. 인재영입위는 이를 다음주쯤 황교안 대표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새누리당 19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을 재현할지 주목하고 있다.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 전 대통령은 유명 인사들을 영입해 비례대표 후보로 올렸다. ‘완득이 엄마’로 통했던 다문화 여성 이자스민 주무관, 올림픽서 금메달을 받은 ‘아테네의 영웅’ 문대성 선수,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 주치의였던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등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전설은 잊혀지지 않는다

    전설은 잊혀지지 않는다

    통산 만루홈런 1위(17개)로 ‘만루홈런의 사나이’라 불린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38)가 지난 18일 은퇴를 선언했다. 2000년 한화 이글스에서 데뷔한 이범호는 2010년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2011년부터 KIA에서 뛰며 주장을 맡는 등 주전 타선으로 활약했다. KIA는 다음달 13일 광주에서 열리는 이범호의 친정팀 한화전에서 그의 은퇴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KIA, 타 구단 출신 이범호 새달 은퇴식 … 임창용 일방적 방출과 대비 이범호의 은퇴식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KIA는 그동안 타구단 출신 선수의 은퇴식을 치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범호가 2014~2016년 3년간 주장으로 팀에 헌신한 만큼 예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KIA는 이범호의 개인 통산 1995경기 출전 기록도 감안해 2000경기까지 출전을 배려하는 특별한 약속까지 은퇴식에 얹었다. 박흥식 감독 대행은 19일 1군 선수단에 합류한 이범호에 대해 “만루 상황 등 중요한 순간에 투입할 수 있다”며 마지막 활용 의지를 밝혔다.이 같은 모습은 지난 3월 구단을 통해 은퇴를 알리는 메일 하나만 보내고 사라진 또 다른 레전드 임창용(43)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임창용은 1995년 KIA에서 데뷔해 일본 프로야구와 삼성 라이온즈를 거쳐 2016년부터 친정에 복귀했다. 하지만 지난해 시즌 종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은퇴식조차 없는 일방적인 퇴장에 분노한 KIA 팬들이 김기태 전 감독에게 항의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팬들은 레전드 선수에 대한 감정이 특별하다. 국내 프로야구에 족적을 새기며 오랫동안 팬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은퇴식은 선수 본인과 소속 구단뿐 아니라 팬들에게도 각별한 자리다.●물러나는 풍경, 선수 이미지·사건사고·구단 문화 등에 따라 달라져 야구 레전드들의 ‘은퇴 법칙’은 해당 선수의 이미지나 사건사고 등의 외부 변수와 맞물리는 경향이 짙다. ‘무쇠팔’ 최동원은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파동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겪은 후 1991년 삼성에서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다. ‘헐크’ 이만수(61)나 두산 베어스의 ‘두목곰’ 김동주(43)는 현역 연장을 놓고 각각 구단과 갈등하다 은퇴식 없이 물러났다. 올 시즌 최고령 현역 타자였던 박한이(40)는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당일 자진 퇴장했다. 음주 난동을 일으킨 정수근(42)도 2009년 쓸쓸히 은퇴했다. 반면 ‘국민타자’ 이승엽(43)과 ‘양신’ 양준혁(50)의 은퇴식은 축제처럼 치러졌다. 삼성맨으로 쌓아 온 화려한 이력과 사건사고에 연루되지 않은 클린 이미지 덕분이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49)도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야구장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은퇴식으로 화제가 됐다. 한화는 ‘홈런왕’ 장종훈(51)과 ‘대성불패’ 구대성(50) 등 소속 선수들을 예우하는 성대한 은퇴식을 선사한 모범 구단으로 꼽힌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46)도 국내 리그에서 1년밖에 안 뛰었지만 한화는 각별하게 은퇴식을 챙겼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전설은 잊혀지지 않는다

    전설은 잊혀지지 않는다

    통산 만루홈런 1위(17개)로 ‘만루홈런의 사나이’라 불린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38)가 지난 18일 은퇴를 선언했다. 2000년 한화 이글스에서 데뷔한 이범호는 2010년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2011년부터 KIA에서 뛰며 주장을 맡는 등 주전 타선으로 활약했다. KIA는 다음달 13일 광주에서 열리는 이범호의 친정팀 한화전에서 그의 은퇴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범호의 은퇴식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KIA는 그동안 타구단 출신 선수의 은퇴식을 치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범호가 2014~2016년 3년간 주장으로 팀에 헌신한 만큼 예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KIA는 이범호의 개인 통산 1995경기 출전 기록도 감안해 2000경기까지 출전을 배려하는 특별한 약속까지 은퇴식에 얹었다. 박흥식 감독 대행은 19일 1군 선수단에 합류한 이범호에 대해 “만루 상황 등 중요한 순간에 투입할 수 있다”며 마지막 활용 의지를 밝혔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 3월 구단을 통해 은퇴를 알리는 메일 하나만 보내고 사라진 또 다른 레전드 임창용(43)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임창용은 1995년 KIA에서 데뷔해 일본 프로야구와 삼성 라이온즈를 거쳐 2016년부터 친정에 복귀했다. 하지만 지난해 시즌 종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은퇴식조차 없는 일방적인 퇴장에 분노한 KIA 팬들이 김기태 전 감독에게 항의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팬들은 레전드 선수에 대한 감정이 특별하다. 국내 프로야구에 족적을 새기며 오랫동안 팬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은퇴식은 선수 본인과 소속 구단뿐 아니라 팬들에게도 각별한 자리다. 야구 레전드들의 ‘은퇴 법칙’은 해당 선수의 이미지나 사건사고 등의 외부 변수와 맞물리는 경향이 짙다. ‘무쇠팔’ 최동원은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파동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겪은 후 1991년 삼성에서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다. ‘헐크’ 이만수(61)나 두산 베어스의 ‘두목곰’ 김동주(43)는 현역 연장을 놓고 각각 구단과 갈등하다 은퇴식 없이 물러났다. 올 시즌 최고령 현역 타자였던 박한이(40)는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당일 자진 퇴장했다. 음주 난동을 일으킨 정수근(42)도 2009년 쓸쓸히 은퇴했다.반면 ‘국민타자’ 이승엽(43)과 ‘양신’ 양준혁(50)의 은퇴식은 축제처럼 치러졌다. 삼성맨으로 쌓아 온 화려한 이력과 사건사고에 연루되지 않은 클린 이미지 덕분이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49)도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야구장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은퇴식으로 화제가 됐다. 한화는 ‘홈런왕’ 장종훈(51)과 ‘대성불패’ 구대성(50) 등 소속 선수들을 예우하는 성대한 은퇴식을 선사한 모범 구단으로 꼽힌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46)도 국내 리그에서 1년밖에 안 뛰었지만 한화는 각별하게 은퇴식을 챙겼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세계 탁구 톱스타들… 어서 와요 부산항에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인 2019 신한금융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가 오는 7월 2일부터 7일까지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다. 내년 3월 열리는 부산 세계선수권대회(단체전)를 8개월 앞두고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여느 때와 달리 세계 톱랭커들이 대거 출전한다. 남자부 세계 랭킹 1위 판전둥을 비롯해 2위 린가오위안, 3위 쉬신(이상 중국), 4위 일본의 간판 하리모토 도모카즈 등이 나선다. 여자부도 세계 1위 천멍과 류스원(2위), 딩닝(3위), 주위링(4위), 왕만위(5위·이상 중국) 등 톱스타들이 빠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남자부 전관왕(3관왕)에 빛나는 장우진(10위), 이상수(11위)와 여자부 ‘맏언니’ 서효원(10위), 전지희(17위) 등 국가대표들이 총출동해 안방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지난 4월 헝가리 세계선수권대회(개인전) 남자단식에서 깜짝 동메달을 수확한 안재현(삼성생명)과 차세대 남녀 ‘에이스’로 꼽히는 조대성(대광고), 신유빈(청명중)도 도전장을 내민다. 경기 종목은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등 5개다. 또 이 대회에는 국내외 상위 랭커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나서기 때문에 내년 도쿄올림픽의 메달 기상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초전’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남자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등 3개 부문 우승을 차지한 장우진은 중국의 도전에 맞서 안방에서 타이틀 수성에 나선다. 올해 헝가리 세계선수권 남자단식 16강에서 일본의 ‘에이스’ 하리모토를 4-2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던 안재현은 또 한번 돌풍을 일으킨다는 각오다. 장우진은 “작년에는 3관왕에 올랐지만, 올해는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와 첫 경기를 잘한다는 각오로 임할 생각”이라면서 “임종훈과의 호흡이 살아난 복식에선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코리아오픈에 처음 참가했던 북한은 엔트리 마감 시한까지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아 불참이 확정됐다. 당시 차효심(북측)과 남북 단일팀으로 우승을 합작했던 장우진은 “작년에 북한이 출전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좋은 성적도 냈다“면서 “많이 아쉽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는 아닐 것”이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단독] 살해한 사실도 잊어버린 피고인… “치료경과 지켜본 뒤 판결”

    “엄마는 어디 갔냐” 묻는 중증 치매환자 ‘구속 후 사회 복귀는?’ 고민에서 시작 검찰 “중대 범죄자 처벌 간과해선 안 돼 병원 구금할 근거 명확하지 않아” 지적 치료감호기관 1곳뿐… 체계적 치료 한계 아내를 살해한 사실도 잊고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묻는 중증 치매환자. 법원은 이 사람에게 과연 형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했다. 몇 년 구속됐다 나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가 19일 시도해 보겠다고 선언한 ‘치료 구금’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 중증 치매와 과대망상 증상이 있는 이모(67)씨 측은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대신 양형이 무겁다는 이유로만 항소했다. 아들은 “단순히 형량이 높다, 낮다는 게 아니라 질병이 있는 환자 입장에서 재판을 받는 게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 달라는 뜻으로 항소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 주소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곧 잠을 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녀들은 피해자의 자녀들이기도 하다”며 치료가 시급하다고 말하는 이씨 자녀들의 복잡한 심정에 공감했다. 또 “2017년 9월 대통령이 ‘치매 국가책임제’를 밝혔고 국가에서도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며 이씨 또한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 치매환자임을 강조했다. 5년간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구속돼 있다가 석방되면 오히려 가족관계는 물론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됐다. 다만 치료 구금이 실행되기까지는 여러 벽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부터 반발했다. 검사는 “치료도 중요하겠지만, 사안의 중대성이나 범죄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면서 “치료 감호가 가능한지 알아보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치료 감호는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검찰의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여 판결 선고와 함께 명령하는 제도다. 그러나 공주 치료감호소가 유일한 치료감호기관으로 많은 질병을 체계적으로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치매는 치료감호 대상 질환이 아니다. 재판부는 검찰에 치매 환자도 치료감호가 가능한지를 먼저 알아볼 것을 요구했다. 국가가 도울 수 없다면 가족의 힘으로 이씨가 치료를 받도록 하자는 게 재판부의 생각이다. 대신 관리가 가능하도록 보석제도를 활용해 판결 선고 전에 일반 병원에 피고인을 사실상 구금하고 재판부가 병원과 소통해 치료 과정을 지켜본 뒤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회복적·치료적 사법’ 개념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법제도를 단순한 처벌에만 활용하지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치유해 사회로 온전하게 복귀시켜야 한다는 개념이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인천지법 부천지원장을 지내던 2013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충분한 사과를 하고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는 취지의 ‘형사 화해제도’를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이씨 가족에게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씨의 아들은 “여러 병원을 물색해 봤지만 아버지의 범죄 사실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며 재판부에 가능한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부흥 기폭제 ‘춘향전’ 멜로 이끈 ‘자유부인’… 장르의 신세계 열었다

    부흥 기폭제 ‘춘향전’ 멜로 이끈 ‘자유부인’… 장르의 신세계 열었다

    지금까지의 연재를 통해, 1900년대 초입 한국에 처음 영화가 들어온 시점부터 6·25 전쟁이 끝나고 재건을 시작한 1954년 시점까지 약 50년 동안의 영화사를 살펴봤다. 1901년 미국인 여행가 버턴 홈스 일행이 대한제국기 서울의 풍경을 촬영해 왕실에서 상영회를 개최한 것과 1903년 동대문활동사진소에서 표를 사고 입장한 대중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한 것이 한국에 영화가 소개된 가장 앞선 기록이었다. 또한 1919년 단성사에서 조선인 신파극단의 제작으로 연극 무대와 영화가 결합한 연쇄극을 상연한 것은 한국영화 100년의 출발로 기록된다. 이후 일제강점하 조선영화계는 무성영화와 발성영화시기를 개척해 가며 조선인 관객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고, 일제 말기에는 국책선전영화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영화 제작을 멈추지 않았던 영화인들의 열정은 1945년 8월 이후 해방 정국과 1950년 6·25 전쟁 시기에도 꾸준히 극영화를 만들고 관객들과 만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는 1950년대 중반 한국영화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이제부터의 연재는 1955년 이후 한국영화계가 어떻게 국가 정책 그리고 제작 자본과 협상하며 ‘한국’ 영화를 만들어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이번 지면은 우선 1950년대 중후반까지의 상황을 알아볼 것이다.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계 전후 한국 사람들의 깊은 상처를 위로한 것은 역시 영화였다. 전쟁 중에도 영화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던 영화인들은 폐허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곧바로 상업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1954년 18편, 1955년 15편을 기록한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1956년 30편, 1957년 37편으로 늘어나더니, 1958년 74편으로 전 해보다 두 배가 증가했고, 1959년에는 111편으로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편대에 진입하게 된다. 한국영화산업이 휴전 후 불과 6년 만에 이 정도의 급성장을 이룩한 배경은 역시 인력이었다. 영화에 대한 한국영화인들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했던 것일까. 가장 대중적인 예술에 참가한다는 개인 창작자로서의 욕망, 자본을 투여한 것 이상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상업영화 셈법의 확고한 인식, 또 직업으로서 계속 영화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영화를 기다리고 지지하는 관객들의 존재가 가장 중요한 동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매체는 대중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도한 이승만 정부도 이러한 한국영화의 역할을 인식하고 영화계의 의견을 반영해, 1954년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조치’, 1959년 ‘국산영화 장려 및 영화오락 순화를 위한 보상특혜실시’라는 과감한 지원책으로 한국영화 진흥을 도모한다.전후 한국영화 부흥의 기폭제가 된 작품은 이규환이 연출하고 배우 조미령과 이민이 주연한 ‘춘향전’(1955)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전 소설 ‘춘향전’은 1923년 한국 최초의 상업영화,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영화화되었다(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까지 모두 17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5년 벽두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이규환의 ‘춘향전’ 역시 몰려드는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고, 2주간 상영에 10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들며 제작사에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단 하나의 프린트로 전국 상영을 하던 시절, 서울 상영 이후 지방 각 도시의 상영관에서도 열띤 흥행은 계속되었고, 영화는 2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관객들과 만났다. 춘향 역의 조미령과 이몽룡 역의 이민이 이 영화 한 편으로 일약 스타가 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롭게 출발한 한국영화계는 이 영화 덕분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영화로는 제작비 회수도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지만, 채산을 맞추는 것을 넘어 큰 수익도 올릴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잘 만든 한국영화라면 언제든 뜨거운 지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영화의 효과였다. ‘춘향전’의 성공은 이후 사극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1956년에 제작된 30편 중 무려 16편이 사극 혹은 시대극 장르일 정도로 인기를 구가한다.●사극에서 멜로드라마로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또 다른 축은 바로 현대극 장르였다. 관객들이 시대극 장르에 싫증을 내기도 전에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가 흥행 전선에 나선 것이다. 이 경향을 주도한 것이 바로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1956)이다. 영화는 대학교수와 교수 부인 각각의 연애를 다뤄 전후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원작은 작가 정비석이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해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소설로, 연재 당시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며 중공군 50만명과 맞먹는 국가의 적이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195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휘몰아치던 계, 댄스, 사치라는 세 가지 바람을 시의성 있게 소설화한 원작이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한형모는 영화로까지 여세를 몰아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한 “뭐든지 최고급품으로 주십시오, 최고급입니까”라는 극 중 백사장(주선태)의 대사는 당시 “최고급”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자유부인’은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이자,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되었다. 이듬해 1957년에는 홍성기의 ‘애원의 고백’, ‘실락원의 별’, 김성민의 ‘처와 애인’, 김기영의 ‘여성전선’, ‘황혼열차’, 이용민의 ‘산유화’, 한형모의 ‘순애보’, 유현목의 ‘잃어버린 청춘’ 등의 멜로드라마가 전후 사회의 정서와 시대상을 반영하며, 여성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주의적 미장센(화면 구도)이 유려한 유현목 감독의 ‘그대와 영원히’(1958), 박종호의 감독 데뷔작이자 배우 김지미의 청초한 매력이 돋보이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1959), 조긍하 감독의 대표작 ‘육체의 길’(1959)도 빼놓을 수 없다. 1950년대 후반의 멜로드라마 지형은 홍성기·김지미 콤비의 영화가 주도하는 가운데,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작품이 경쟁 구도를 그리며, 한국 대중영화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 전자는 ‘별아 내 가슴에’(1958), ‘산 넘어 바다 건너’(1958), ‘별은 창 너머로’(1959), ‘자나깨 나’(1959)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 ‘동심초’(1959) ‘자매의 화원’(1959) 등을 들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들의 성공을 발판으로 ‘신필름’을 설립, 1960년대 이후 한국영화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적 증가 넘어 영화 문화·산업 전반으로 성장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성장은 제작편수로 대변되는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영화문화와 산업 전반이 확장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전후 사회적, 개인적 악조건 속에서 ‘미망인’(1955)을 연출한 박남옥은 한국영화사의 첫 번째 여성감독으로 기록되며,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1956)은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 되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중요한 특징은 다양한 장르가 시도된 점이다. 멜로드라마와 스릴러를 혼합한 ‘운명의 손’(1954)의 한형모는, 악극 요소를 가미한 코미디 ‘청춘쌍곡선’(1956), 탐정영화 ‘마인’(1957), 가요를 극 속으로 녹여낸 멜로드라마 ‘나 혼자만이’(1958)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는 야심 찬 행보를 보였다. 노필 감독 역시 극 중 등장인물의 노래 장면이 삽입된 멜로드라마 ‘꿈은 사라지고’(1959), ‘사랑은 흘러가도’(1959) 등을 연출했다. 이 영화들은 미리 녹음한 음악을 촬영현장에서 틀면서 입 모양을 맞추는 ‘플레이백’ 녹음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음악영화들이 시도된 이유는,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기재와 기술력이 부족했던 당시 한국영화계가 절충적 제작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화기술에의 도전과 이를 뒷받침한 물적 기반도 검토해 봐야 한다. 해방기 ‘무궁화동산’(안철영, 1948) ‘여성일기’(홍성기, 1949)에서 도전했던 컬러영화 제작도 다시 시도되었다. ‘선화공주’(1957, 최성관)를 시작으로 ‘사랑의 길’(1958, 장황연), ‘춘향전’(1958, 안종화), ‘콩쥐팥쥐’(1958, 윤봉춘)가 컬러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 한편 홍콩과 합작한 ‘이국정원’(전창근·도광계·와카스기 미쓰오, 1957)은 해외 기술을 빌어 안정적인 컬러 색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한홍 합작영화로 기록되는 ‘이국정원’은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와 홍콩 쇼브라더스사가 공동 제작했고, 김화랑 감독의 ‘천지유정’(1957)이 그 뒤를 이었다. 두 영화는 1958년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2.35:1의 시네마스코프 포맷을 통해 넓고 긴 화면 즉 와이드스크린도 선보였다. 그 첫 번째 작품은 수도영화사 대표 홍찬이 건설한 안양촬영소의 창립작 ‘생명’(이강천, 1958)이다. 영화는 미첼 카메라에 비스타라마 렌즈를 달아 촬영했고, 오프닝 크레디트와 포스터에는 수도영화와 시네마스코프를 합친 ‘수도스코프’라는 명칭을 내세웠다. ●정릉·삼성·안양 등 영화 전문 스튜디오 등장 컬러와 와이드스크린 등 1950년대 후반의 기술 시도는 영화촬영소라는 공간과 연동된 것이었다. 한국영화문화협회의 정릉촬영소, 삼성영화사의 삼성스튜디오, 수도영화사의 안양촬영소 등 본격적인 스튜디오 세 곳이 등장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제작 기반이 되었다. 사실 스튜디오라는 공간은 선진 영화제작 시스템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주먹구구식 수공업적 제작을 벗어나 할리우드식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한국영화인들의 오랜 꿈이었다. 스튜디오 시대의 첫 주자는 1957년 1월 개소한 정릉촬영소였다. 120평의 촬영장과 100평 규모의 현상소에 미국의 민간원조기구 아시아재단이 기증한 미첼 카메라, 휴스턴 자동현상기 등이 설비되었다. 촬영소를 건립한 한국영화문화협회는 아시아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영화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1956년 7월 설립한 단체다. 한편 ‘자유부인’으로 큰 수익을 거둔 삼성영화사는 1957년 7월 군자동에 삼성스튜디오를 만들어 권영순의 ‘오해마세요’(1957), 유현목의 ‘그대와 영원히’, 한형모의 ‘나 혼자만이’(1958)를 제작했다. 규모나 내용에 있어 가장 주목할 곳은, 평화신문사와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이 이승만 정권의 특혜를 받아 1958년 6월 개소한 안양촬영소이다. 그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본떠 본격적인 프로듀서 시스템을 도입했고 자신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양촬영소는 3만 3500평의 부지에 총건평 1975평으로 9개의 건물이 자리잡은 그야말로 ‘영화공장’이었다. 미첼 카메라 3대, 웨스트렉스 녹음 시설 등 미국의 최신 기재들도 들여왔다.하지만 수도영화사의 홍찬은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생명’과 두 번째 작품 ‘낭만열차’(1959)의 흥행 실패로 수십억원의 부채를 졌고, 결국 촬영소는 1959년 10월 부도 처리되며 산업은행의 관리로 넘어갔다. 1966년 9월 박정희 정권의 지원하에 신필름에 인수될 때까지 애물단지로 방치되었던 안양촬영소는 영화산업의 근대화가 산업 내부의 동력 없이 국가의 정책적 지원만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1950년대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1960년대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들어서는 기반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헤어지자는 여자친구 폭행하고 협박한 30대 구속

    헤어지자는 여자친구 폭행하고 협박한 30대 구속

    이른바 ‘안전 이별’(폭력과 협박, 스토킹 없이 연인이 안전하게 헤어지는 것)에 실패해 연인을 폭행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폭행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여자친구를 다시 찾아가 협박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 등)로 김모(36)씨를 구속했다고 17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13일 오후 10시 30분쯤 광주 서구에 있는 전 여자친구 A씨의 집에서 A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3개월간 사귄 A씨가 헤어지자고 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김씨는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다음날 오전에도 A씨 집을 찾았다. 이곳에서 또다시 현관문을 발로 차며 A씨를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보복범죄의 중대성과 재범 우려 등을 고려해 김씨를 구속하는 한편 A씨를 신변보호 대상자로 등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65일 케이팝…이것이 강남 스타일

    365일 케이팝…이것이 강남 스타일

    지난달 31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광장이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강남구와 지역 기획사들이 공동 추진한 ‘2019 케이팝 뮤직페스티벌’ 첫날인 이날 코엑스광장은 케이팝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자친구, 오마이걸, 공원소녀, 플래쉬, 임채언, 지젤, 성담, 릴리, 하이컬러, 온앤오프 등 가수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열광의 도가니가 펼쳐졌다.공연은 이튿날인 1일에도 이어졌다. 가수 우디, 뉴키드, 앤씨아, 동급생, 이시은, 모티, 준, 가호, 정진우, 빌런, 디크런치, 동키즈가 출연해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정순균 강남구청장도 행사장을 찾았다. 무대 시스템을 비롯한 안전펜스, 관람객 동선 등 안전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신인 아이돌그룹 ‘디크런치’에게 “이번 무대를 시작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 방탄소년단(BTS)처럼 전 세계에 케이팝을 알리는 아이돌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한 10대 소녀는 “이른 무더위에 지친 피로를 날려버릴 한 줄기 바람 같은 시원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미국인 관광객은 “강남의 아름다운 거리에서 평소 좋아하던 케이팝까지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구는 365일 즐길거리로 가득한 ‘매력도시, 강남’을 전면에 내세우고, 올해 다양한 페스티벌을 마련했다. 오는 11월까지 강남 곳곳이 공연장이 되는 ‘365일 펀 앤 판(FUN & PAN) 강남’이 진행된다. 주민이 직접 공연에 출연해 끼와 재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있는 ‘지-스타킹(G-STAR킹)’, 비트·음악이 있는 ‘댄스·싱어킹’, 작은 공연이 있는 ‘거리버스킹’, 열정이 있는 ‘청춘밴드’ 등 8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가을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극장’이라는 콘셉트로 ‘2019 강남페스티벌’이 열린다. 코엑스, 영동대로, 양재천 등 대표 장소를 거점으로 케이팝, 의료관광, 뷰티, 갤러리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강남구 문화관광 자원을 집결,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선도할 계획이다. 기간·장소·프로그램을 개편한 지난해 강남페스티벌엔 15만명 이상이 찾아 대성황을 이뤘다. 정 구청장은 “강남만의 고유한 특색과 독창적 가치들을 관광 자원화하고, 지속가능한 한류관광 중심지로 자리 잡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며 “케이팝과 연계된 강남만의 한류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 ‘글로벌 강남’으로 우뚝 서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안전모 쓰고…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두 달 만에 미사

    안전모 쓰고…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두 달 만에 미사

    지난 4월 15일 화마에 휩쓸려 첨탑과 지붕이 소실된 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한 지 꼭 두 달 만인 지난 15일(현지시간) 첫 미사가 열렸다. 안전모를 착용한 사제들은 화재 당시 피해를 보지 않은 성모 마리아 예배실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이날 미사는 안전상의 이유로 약 30명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가톨릭 TV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AFP통신은 성당 재건을 위해 모금 서약된 기부금 8억 5000만 유로(약 1조 1350억원) 가운데 실제 모금된 금액은 9%인 800만 유로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파리 AFP 연합뉴스
  • 안전모 쓰고…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두 달 만에 미사

    안전모 쓰고…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두 달 만에 미사

    지난 4월 15일 화마에 휩쓸려 첨탑과 지붕이 소실된 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한 지 꼭 두 달 만인 지난 15일(현지시간) 첫 미사가 열렸다. 안전모를 착용한 사제들은 화재 당시 피해를 보지 않은 성모 마리아 예배실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이날 미사는 안전상의 이유로 약 30명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가톨릭 TV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AFP통신은 성당 재건을 위해 모금 서약된 기부금 8억 5000만 유로(약 1조 1350억원) 가운데 실제 모금된 금액은 9%인 800만 유로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파리 AFP 연합뉴스
  • [포토] ‘안전모’ 착용한 사제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2개월 만에 첫 미사

    [포토] ‘안전모’ 착용한 사제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2개월 만에 첫 미사

    성직자들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서 안전모를 쓴채 미사를 보고 있다. 이날 미사는 화재가 발생한 지 2개월 만에 열린 것으로 안전상의 이유로 사제와 성당 직원, 일부 복원 작업자 등 약 30명만 참석했다. AP·EPA 연합뉴스
  • [서울포토] 헬멧 쓴 사제들

    [서울포토] 헬멧 쓴 사제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한 지 2개월 만에 첫 미사가 열렸다. 이날 미사는 화재피해가 적은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서 열렸고 안정상의 이유로 일부 인원만 참석한 체 소규모로 열렸다. 사제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붕괴에 취약판정을 받은 이유로 안전모를 착용했다.
  • [2000자 인터뷰 18]임재성 “강제동원 日 기업, 피해자 화해하도록 정부가 외교력 발휘해야”

    [2000자 인터뷰 18]임재성 “강제동원 日 기업, 피해자 화해하도록 정부가 외교력 발휘해야”

    일제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매각 신청(5월 1일)을 법원에 낸지 한 달 반 가량 지났다. 또한 일본 정부가 5월 2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2018년 10월 30일)과 관련해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한 기한(6월 18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악화된 한일관계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6월28, 29일)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 전망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일본제철과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온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정치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일본 기업이 과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2015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일제 시기 강제동원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 참가했다. 제주 4·3 사건 군사재판 생존자 18명을 대리해 재심, 형사보상 청구,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다음은 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내용. 매각신청->감정->매각명령->송달->집행에 3개월 이상 Q: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들은 대구지법 포항지원과 울산지법에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후지코시로부터 압류한 자산을 매각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 한 달 이상 경과됐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이고, 실제 자산 매각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며,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가. A: 5월 1일 보도자료를 냈을 때 ‘최소 3개월’이라고 했다. 법원이 매각 명령을 내리고, 일본 기업에 송달되어서 그 명령이 확정되는 순간까지를 계산한 것이다. 실제 현금화는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절차를 얘기하자면 먼저 압류한 자산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압류된 일본제철과 후지코시의 자산은 비상장 주식인데, 액면가만 있을 뿐 시장 거래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은 감정을 통해 이 주식을 매각하면 집행 비용을 빼고서도 채권자(원고측)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판단한 이후, 매각명령결정을 일본 기업에 송달시킬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법원행정처가 매각명령결정서를 일본 외무성으로 보내고, 일본 외무성이 일본 기업에게 송달시키는 방식인데, 일본 외무성이 사인 간의 민사소송에서 이 송달절차를 거부한 적은 없었다. 일본 기업들은 매각명령결정서를 송달받고 즉시항고 절차를 통해 다툴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유효한 이의제기 사유가 없는 상황이기에 매각명령결정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본다. 이후 절차에서는 집행관의 재량권이 큰데, 집행관이 일본제철에게 자신의 주식을 사갈지 의사를 물어볼 수도 있고, 경매에 부칠 수도 있다. 법원, 일본제철에 의견서 기회 줘 기간 늘어날 듯 최근 법원으로부터 대리인 측에 통보가 온 게 있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매각명령 과정에 심문기일이 필수적이지만 채무자(일본 기업들)가 외국에 있는 경우라면 심문기일을 생략할 수 있다. 그런데 포항지원에서 심문기일을 열지 않으나, 일본제철에게 의견서를 제출할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주목을 많이 받는 사건이라 법원으로서도 방어권 행사를 꼼꼼하게 보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쁜 일은 아닌 듯하다. 일본 기업들의 의견서 제출 절차가 이루어지게 되면, 매각명령결정이 확정되기까지의 기간이 다소 늘어날 수 있다. Q: 그렇다면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다. 이들 일본 기업 자산(일본제철 소유 PNR 주식 19만 4794주 9억 7400만원 상당, 후지코시 보유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 7만 6500주 7억 6500만원 상당)이 실제로 매각되기 전까지 대리인단이 그간 시도해 온 일본 기업과의 협의를 통한 화해 가능성은 있는가.이춘식 할아버지, 연내 해결 희망 A: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대리인단, 지원단은 일관되게 일본 기업에게 합의를 요청해왔다.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의사표시를 하고,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요청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국면에서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 기업들 본사에 수차례 방문하였지만 면담은커녕, 책임있는 답변도 듣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법이 정한 집행 절차를 계속 늦출 수 없었다. 그동안 피해자분들에게 ‘일본 기업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집행 절차를 미루는 것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 피해자분들 역시 일본 기업들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 하셨기에 우리를 믿어주셨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사과는커녕 판결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령의 피해자분들에게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드릴 수 없었다.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께서는 연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신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셨다. 대리인으로서 당사자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Q: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이전까지 대리인들은 일본 기업과 화해를 위한 어떤 일들을 해왔는가. A: 광주 근로정신대 소송대리인단과 미쓰비시중공업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도쿄와 나고야에서 16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일본제철도 일본 내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리인과 논의하는 과정이 있었다. 물론 이들 협상에서 어떤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에 나섰던 역사가 존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 사회가 그래도 유연성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월급조차 주지 않고 노동을 강요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확정 이후 일본 기업의 태도는 강경 일변도이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일본 기업 강경한 태도 배후에 일본 정부 있는 듯 Q: 일본 기업의 강경한 태도의 배후에는 일본 정부가 있다고 보는가. A: 그럴 것으로 추측한다. 판결 전에도 16차례 협상을 했던 기업이 판결 이후에는 일절 만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2012년 일본제철 주주총회에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발언도 나왔다. 화해 통해, 사과와 배상 받는 게 최선의 길 Q: 지금의 한일관계는 사상 최악이라고들 한다. 그 배경에는 강제동원 판결을 꼽는다. 한일관계 타개책으로서 1)피해자 구제를 위한 2+2(한국 정부·기업+일본 정부·기업) 혹은 2+1(한국 정부·기업+일본 기업) 등에 의한 기금 방식 2)국제사법재판소(ICJ)에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어겼다는 일본 주장이 맞는지를 가려보자 3)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전면적인 외교전쟁을 선언하고 국민들에게도 피해를 감수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이런 논의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 ICJ에서 가리자는 방안은 부적절 A: 2, 3번은 정치가 없는 방식이다. 2번은 제3자에게 사법적 판결을 하라는 것인데 정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피해자의 권리구제에도 효과적이지 않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쪽 정부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일본에서도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해 인정한 것은 드물지 않다. 일본 내 소송에서 하급심 법원들은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후지코시 사건의 경우 “면학 기회가 있는 것처럼 기망하고 근로정신대로 권유해서 참가시킨 행위는 충분한 판단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진학 기회가 제한돼 있던 어린 나이의 여성에 대해 이른바 그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고, 더불어 10대 여성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메이지헌법 하의 법제에서도 위법이라고 평가되는 권유방법”이라고 판시했다. 식민지 조선사람들을 속여서 일본으로 끌고 가 노예와 같은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점에 대한 양국의 공통된 인식이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ICJ로 가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양국 사회의 합의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닌, 사법적 판단에만 목을 매달게 할 것이다. 판단을 받기까지 시간과 비용 역시 상당할 수밖에 없다. 외교전쟁 불사 주장은 이해 안돼  3번 같은 외교적 전쟁 주장은 그 자체로 의문이다. 일부 전문가의 주장으로 알고 있는데,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나. 사실상 한국의 민주화 이후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해가면서, 식민지 시기 과거사 문제가 상수가 된 상황에서 외교적 전쟁을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공방 속에서 결국 피해자들의 권리실현은 또다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싸울 필요가 있다면 싸워야겠지만,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야 하지 않겠나. 화해 통한 기금 조성, 초창기부터 논의된 방식  1번은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강제동원 문제가 등장하였던 초창기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들이 2차 대전에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게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설립하여 보상한 사례가 존재하며, 일본 기업이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중국 적십자 등을 통한 기금방식으로 배상금을 지급한 전례도 있다. 2010년 12월 11일 대한변협과 일본변호사연합회가 공동선언을 내고 기금방식의 해결에 대한 선호를 천명한 적도 있다. 기금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의사표시를 하고, 배상금을 출연하는 것이다. 이 원칙이 지켜진다면, 기금에 다른 주체들의 참여는 탄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소송이 아닌 기금을 통한 해결이 더욱 적절한 이유는, 소송에 참여하기 어려운 많은 피해자들의 권리까지 구제할 수 있으며,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의사표시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송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연금기록 등 관련 자료가 대부분 일본에 있는 상황에서 엄격한 사법적 입증 책임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피해자가 많지 않다. 또한 판결을 통해서는 손해배상금 지급만을 강제할 수 있을 뿐인데, 피해자들께서는 자신을 끌고 갔던 기업들의 사과를 원하신다. Q: 중국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이 개별 사안에서 화해를 했는데 왜 다른가. A: 남한과 일본, 중국와 일본이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각 체결한 협정이 다르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중국은 일본의 교전국이라는 차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피해자 규모로 인하여 일본의 대응이 다른 것이 아닌가 의심도 있다. 한국은 피해자 숫자는 강제동원위원회에서 파악된 것만 17만명이고 범위를 넓히면 104만명까지 된다는 통계치가 있다. 화해 없으면 강제동원 소송 꾸준히 늘어날 것 Q: 현재 진행 중인 강제동원 피해 관련 소송은 몇 건 정도이고, 향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가. A: 2018년 10월30일 판결 이전까지 제기됐던 것과 그 이후를 비교해보면, 판결 이전까지 소송 건수로는 16건이었다. 소송 1건에 피해자 숫자는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 경우도 있으나 모든 소송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 판결 이후에는 피해자 기준으로 광주 대리인단이 54명, 서울 대리인단이 30여명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日, 협정 아닌 인권 시각으로 강제동원 봐야 Q: 대리인으로서 일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A: 1965년 협정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라고 반복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일본 기업들에 의해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구권협정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양국 정부가 온전히 인식하고, 이들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합의를 체결하지 못했다는 정황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는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시기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사법부 역시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는 존재했고, 청구권협정을 통해서도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다만, 소송을 제기할 소권이 소멸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 더 큰 日기업 소송비용  그렇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1965년의 협정만을 주문처럼 되뇌일 것이 아니라, 1990년 이후 비로소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며 사회적으로 등장한 식민지 시기 여러 조선인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청구권에서 인권으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존 해석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시기 피해자에게 온전한 배상과 사과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압류하는 등의 집행절차로 나아가면서 한일관계가 파탄나고 있다고 보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그렇다면 20년 가까이 소송에서 싸워 비로소 승소한 피해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침묵해왔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무너지는 양국관계라면, 그 관계는 문제다.  우스개소리를 하나 하자면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소송에 대응하면서 국내 대형 법무법인에 막대한 변호사비용을 지불했을 것인데, 이 돈이 실제 피해자들이 청구한 손해배상금보다 클 것이다. 일본 정부든, 일본 기업이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손해일 수 있다. ‘국제법 무시한 대법 판결 잘못’ 日 시각이 잘못 Q: 일본에서는 한일협정이란 국제법이 한국 법률보다 상위에 있는데 한국 대법원이 그걸 무시한 판결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A: 비법률적인 주장이고, 사실 왜곡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일본은 국제법, 즉 국가 간 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하면, 그에 따른 별도의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원론적 법체계가 아니다. 협정을 맺고 국회 비준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일원론을 취하고 있다. 즉,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은 그 자체로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다. 국제인권법의 경우 국내법보다 상위 효력을 지녀야 한다는 논의가 있지만, 청구권협정은 인권협정도 아니다.  청구권협정이 법률의 효력을 지닌다면, 법률에 대한 최종해석의 권한이 사법부에 있다는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청구권협정의 해석권한 역시 각 국가의 법원이 가진다. 즉 한국 내에서 청구권협정에 대한 배타적이고 최종적인 해석권한은 한국 대법원이 가진다. 한국 대법원은 그 권한을 행사하여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한 것이다. 해석권한을 가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13명 대법관 모두가 의견을 내며 치열하게 해석한 판결에 대해, 일본이 “한국 대법원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라는 부당한 비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 대구, 광주 3개 지역에서 소송 진행돼 Q: 대리인단 구성은 어떻게 돼있나. A: 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과 대구, 광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법무법인 해마루가 대리인으로,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가 지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법무법인 삼일의 최봉태 변호사님이 이 소송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등이 지원단체로, 이상갑, 김정희 변호사님들이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선고 이후 추가소송을 위해 대리인단 규모가 확대되었는데, 서울에서는 민변 공익변론센터, 광주에서는 광주 민변지부를 중심으로 대리인단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일본서 소송 이끈 일본인 지원에 감사 Q: 일본 측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A: 한국에서의 소송 이전, 1990년대 일본에서 강제동원과 관련한 소송이 있었다. 모두 패소하고 2000년대에 한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어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내려진 것이다. 일본 소송 당시 결합하였던 일본 변호사들과 시민단체들은 한국 소송 과정에서도 많은 조력을 보냈다. 대법원 판결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도 한일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 중이다. 특히 일본 측 활동가들은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 내에서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금요행동’이 대표적이다.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앞에서 진행되는 캠페인인데,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는 많이 알지만, 정작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금요행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묻는 활동을 그 오랜 시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상상해보면 고개가 숙여진다.피해자 목소리 누군가 대변해야 Q: 대리인으로서 이번 소송에 임하는 자세라고 할까, 마음가짐은. A: 중압감이 크다. 같은 사무실에서 강제동원 사건을 같이 대리하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는 ‘살얼음을 걷는 것 같다’고 한다. 집행절차에 나가가는 과정이 특히 그러했다. 일본 정부의 맹공격과 거대한 일본 기업들의 의도적인 침묵이 있다. 우리 대리인의 역할은 거대한 주체들이 서로 소리지르는 판 속에서 또 다시 배제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한일관계 파탄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여기 피해자의 고통도 좀 보아달라고 이야기하는 역할 말이다. 피해자분들이 정말 고령이시다. 판결에 이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일본 기업에게 사과를 받고 배상을 받으시는 것, 누군가는 그걸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강제동원 소송 관련 일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강제동원 근로자 1인당 1억원 배상 판결  12월 31일: 피해자 대리인, 일본제철 한국 자산 강제집행 신청 -2019년-  1월 3일: 대구지법 포항지원, 일본제철 한국 자산 압류 신청 승인  1월 9일: 일본 정부, 한일청구권협정에 근거, 한국에 협의 요청  3월 7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전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압류 신청  3월 15일: 울산지법, 후지코시 소유 국내 자산 압류 신청 승인  3월 22일: 대전지법,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압류 신청 승인  4월 4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코크스공업을 대상으로 추가 손해배상청구소송  5월 1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각 지방법원에 일본제철, 후지코시 국내 자산 매각 신청  5월 20일: 일본 정부,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한국에 요청 6월 28,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서 한일정상회담 불투명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