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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광주는 폭동” “전 재산 29만원” 분노만 키운 정치군인의 퇴장

    빈농의 아들 출신으로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제11·12대 대통령직을 움켜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굴곡지고 어두운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않은 채 23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 중에 육군사관학교 입학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의 빈농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성적은 228명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육사 합격은 내 인생에서 운명적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처음부터 돋보이지는 못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한직을 전전하다 1961년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서 육사 생도들의 지지 선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 소장의 눈에 띈 이후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으로 기용된다. 그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30대대장, 1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가 속했던 하나회의 전신 오성회도 군 내 주류 모임으로 급부상했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유신 통치의 마침표를 찍은 10·26 사태가 발생한다. 그는 하나회를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 총격 사건 수사·처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마저 체포하면서 12·12 신군부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대학생들이 군부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다. 그러자 전씨는 ‘시국 수습’을 핑계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5월 18일 서울 시위에 이어 광주에서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신군부는 계엄군·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에야 마무리된 계엄군의 무분별한 진압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개헌까지 하며 11·12대 대통령 연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며 국정 실권을 장악한 전씨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사임 직후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같은 해 10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고, 1981년 간선제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열었다.‘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을 누리는 국가 개발 시기에 정권을 잡았으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탄압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거세졌고, 맞대응으로 내놓은 4·13 호헌조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후보가 집권여당 대표로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씨는 여생 내내 심판대에 올랐다. 퇴임 직후 전씨가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강원 백담사로 들어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들어 본격적인 법적 심판이 시작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최종 선고받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 명분으로 그를 특별 사면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반성 없는 모습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씨는 2003년 법원의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 29만원’을 기재하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씨 등 3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환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는 훈장 반환도 거부하다 7년 만인 2013년에야 12·12 이후 받은 9개 훈장을 반납했다.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등 1심 유죄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도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은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등으로 고발했다. 전씨는 1심 내내 알츠하이머 투병, 고령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다 2019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해 재판을 진행하다 오는 29일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올해 8월 다발성 골수종 확진을 받았던 전씨는 생전 가깝게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의 일생…분노만 키운 全의 입

    사과없이 떠난 전두환의 일생…분노만 키운 全의 입

    빈농의 아들 출신으로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제11·12대 대통령직을 움켜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욕은 굴곡지고 어두운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냈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절 인정하지 않은 채 23일 세상을 떠났다. 전씨는 1931년 경남 합천의 빈농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 식품공장에서 배달 일을 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성적은 228명 중 끝에서 두 번째였다. 육사 합격은 내 인생에서 운명적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걸었으나 처음부터 돋보이지는 못했다. 군 생활 초반에는 한직을 전전하다 1961년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서 육사 생도들의 지지 선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 소장의 눈에 띈 이후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으로 기용된다. 그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30대대장, 1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가 속했던 하나회의 전신 오성회도 군 내 주류 모임으로 급부상했다. 전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79년 유신 통치의 마침표를 찍은 10·26 사태가 발생한다. 그는 하나회를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 총격 사건 수사·처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마저 체포하면서 12·12 신군부 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대학생들이 군부에 반기를 들고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요구 시위에 나선다. 그러자 전씨는 ‘시국 수습’을 핑계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5월 18일 서울 시위에 이어 광주에서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신군부는 계엄군·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며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달 27일에야 마무리된 계엄군의 무분별한 진압은 무고한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며 국정 실권을 장악한 전씨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사임 직후 선거에 단독 입후보해 제11대 대통령이 된다. 같은 해 10월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공포하고, 1981년 간선제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열었다. ‘3저(저금리·저유가· 저달러) 호황’을 누리는 국가 개발 시기에 정권을 잡았으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탄압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거세졌고, 맞대응으로 내놓은 4·13 호헌조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국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선후보가 집권여당 대표로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씨는 여생 내내 심판대에 올랐다. 퇴임 직후 전씨가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강원 백담사로 들어가 769일간 은둔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들어 본격적인 법적 심판이 시작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최종 선고받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국민 대화합 명분으로 그를 특별 사면했다. 전씨는 이후에도 반성 없는 모습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씨는 2003년 법원의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 29만원’을 기재하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전씨 등 3년 이상 형을 선고받은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 환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는 훈장 반환도 거부하다 7년 만인 2013년에야 12·12 이후 받은 9개 훈장을 반납했다.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도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은 “정당한 법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두고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사자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 등으로 고발했다. 전씨는 1심 내내 알츠하이머 투병, 고령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다 2019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해 재판을 진행하다 오는 29일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올해 8월 다발성 골수종 확진을 받았던 전씨는 생전 가깝게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쓰리 허’와 장세동…5공 실세들의 현재는

    ‘쓰리 허’와 장세동…5공 실세들의 현재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5공 실세들의 현재 상황에도 관심이 쏠린다.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 씨 등 ‘쓰리(3) 허’ 등이 그 대상이다. 허화평 씨는 ‘5공 설계자’로 불렸다. 허 씨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신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에 속했다. 그는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 12·12 군사반란 획책에 가담했다. 허씨는 전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청와대 정무1수석비서관으로 일하며 최측근 거리에서 전씨를 보좌했다. 그러나 1982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당시 전씨의 친인척 공직 사퇴를 건의하면서 전씨와 멀어졌다. 그해 말 청와대를 떠났다. 허씨는 노태우 정권 출범과 함께 국내 복귀한 뒤로 1992년 14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며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민주자유당에 입당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관련자에 대한 사법 처리를 추진하면서 구속됐다. 15대 총선에서 ‘옥중 당선’됐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고, 16·17대 총선에서 연달아 낙선하며 정치권과 멀어졌다.허씨는 지난달 26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하자 유족 측 장례위원을 맡기도 했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서 취재진과 만나 ‘노 전 대통령이 5·18 유족에 사과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5·18 사격 지시’와 관련된 질문에는 “그건 저한테 물어보지 말라.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때 비서실장을 했기 때문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허삼수 씨는 육사 동기인 허화평 씨와 함께 하나회에 가입한 ‘단짝’이자 12·12군사반란 당시 보안사령부 인사처장이었다. 당시 대령이던 허 씨는 12·12군사반란 직후 80여 명의 수사본부 병력과 함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씨 집권 이후 허 씨는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에 임명돼 실권을 휘두르며 실세로 자리매김했으나 허씨와 함께 눈 밖에 난 뒤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로 복귀한 허씨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해 당시 통일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부산 동구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허씨의 패배였다. 설욕을 노리던 허씨는 이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 노무현 후보와 재대결을 펼친 끝에 당선됐다. 15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 뒤 구속됐다. 이후 더는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았다. 허씨는 이후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당시에 유족 측 장례위원에 포함됐지만, 그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기자 출신인 허문도 씨는 1980년 신군부로부터 발탁돼 중앙정보부 비서실장, 문화공보부 차관, 청와대 정무비서관, 국토통일원 장관 등 요직을 지냈다. 언론 통폐합을 주도했고,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던 1981년 5·18민주화운동 1주년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이른바 ‘국풍 81’을 일으키기도 했다.허삼수·허화평 씨와 달리 전두환 정권에서 끝까지 남았던 허문도 씨는 1989년 5공 비리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 언론 통폐합은 잘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1996년 14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1998년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 공천을 받았지만, 공천장을 스스로 반납하고 불출마했다. 허문도 씨는 2016년 76세로 별세했다. ‘쓰리 허’ 외에 실세로는 ‘5공 2인자’로 불렸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있다. 장 씨는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으로 12·12군사반란에 가담했으며 대통령 경호실장과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을 지내며 ‘전두환 후계자’로까지 거론된 인물이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안기부장에서 물러났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5공 청문회에 출석해 전씨와 관련해 끝까지 입을 닫았다. 이후 5공 비리에 연루된 혐의 등으로 수 차례 옥살이를 했다.2002년 16대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대선을 하루 앞두고 사퇴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해 정치 무대에 서지 못했다. 장씨는 이후 전씨의 연희동 자택을 꾸준히 찾으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근에는 전씨와 별다른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특별한 직함이나 대외활동 없이 지내고 있다.
  • 밥값이 金 0.25g… ‘경제 폭망’ 베네수엘라, 정치서 해법 찾나

    밥값이 金 0.25g… ‘경제 폭망’ 베네수엘라, 정치서 해법 찾나

    21일(현지시간) 국제사회로부터 독재 정권이란 이유로 비판받는 베네수엘라에서 지방선거가 열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출마한 선거다. 한때 ‘남미의 부국’에서 ‘망국의 대명사’로 몰락한 베네수엘라가 다시 예전의 영광을 꿈꿀 수 있을지 가늠할 선거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툭하면 조롱의 대상으로 언급될 만큼 친숙해져 버린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는 ‘초인플레이션’ 지표 하나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한 논의에 분주하다. 베네수엘라 사례와 비교하기엔 위기의 원인이나 주변 상황 등이 크게 다르지만,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얼마나 큰 위험 요소가 되는지 환기하는 기회로는 삼아 볼 수 있다.#그림 그리는 의대생 엘리아니 디 그레고리오(24)에게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지폐는 캔버스다. 그는 색색의 지폐 위에 물감으로 베네수엘라의 자연, 위대한 예술가들의 회화 작품, 대중에 익숙한 여러 캐릭터 등을 그린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화폐의 액면가를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뒤 ‘휴지 조각’이 된 구권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그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지폐의 가치를 복원하는 일은 내가 꿈꾸는 미래의 베네수엘라를 건설하려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달 1일 베네수엘라 정부는 자국 화폐 단위에서 0 여섯 개를 한꺼번에 빼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전날까지 100만 볼리바르였던 물건은 이날부터 1볼리바르가 됐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1볼리바르 동전과 5, 10, 20, 50, 100볼리바르 신권을 발행했다. 구권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화폐 훼손이 아닌 창작 활동이 될 수 있는 이유다. 2008년에는 화폐 단위에서 0 세 개, 2018년에는 0 다섯 개를 뺐다. 불과 13년 사이에 무려 열네 개의 0이 사라졌다. ●100만 볼리바르=1볼리바르 리디노미네이션 베네수엘라가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초인플레이션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그래도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인플레이션율이 마두로 대통령 집권 후 고삐가 풀렸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2015년 처음 세 자릿수에 접어든 뒤 2016년 254.95%, 2017년 438.12%로 점차 가속도가 붙더니 2018년엔 무려 6만 5374.08%에 이르렀다. 1만원이던 치킨 한 마리가 1년 사이에 650만원을 돌파했다는 얘기다. 자고 나면 가치가 폭락하는 볼리바르화가 교환수단으로서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일부 지역 주민들은 100년 전 과거로 회귀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디지털 간편결제가 이뤄지는 시대에 실물자산인 금이 다시 거래 매개체로 등장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베네수엘라 남동쪽 광산 마을 투메레모의 실상을 보도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가격이 금의 무게로 표시된다. 호텔 1박은 2분의1g, 중식당에서 2명분 점심값은 4분의1g 그램, 이발비는 8분의1g이다. 금을 차지하기 위해 이 지역엔 갱단이 들끓는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임금을 금으로 받을 수 있는 광산으로 몰려든다. 다른 지역에선 이웃 나라 화폐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를 대체했다. 서쪽 국경지대에서는 콜롬비아 페소가, 남쪽 국경지대에서는 브라질 헤알이 지배적인 통화다.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달러가 통용된다. 외화에 접근이 힘든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이 여전히 볼리바르를 주로 쓸 따름이다.●인구 20% 560만명 탈출… 난민 범죄도 기승 경제 파탄에 떠밀린 국민들은 대탈출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 6월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이후 560만명의 베네수엘라 국민이 고국을 등졌다. 전체 인구의 약 5분의1에 해당하는 수다. 코로나19로 주변 국가들이 국경봉쇄를 시행하고 있을 때도 매일 2000명 가까이가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갔다. 취약한 난민의 처지를 노린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콜롬비아에선 반군 세력이 이들을 포섭하기도 한다. 난민 중 일부는 생존을 위한 성매매에 내몰린다. 한때 남미의 경제 강국 베네수엘라 몰락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2014년 국제 유가 폭락이다.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산성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비해 낮았던 탓에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하자 직격탄을 맞았고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몰락을 온전히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도 베네수엘라 경제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정치·정책 실패에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21세기 사회주의’와 ‘반미 노선’을 앞세운 우고 차베스 정권 말 부통령이었던 마두로는 2013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높아져 가는 인플레이션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상품 가격과 환율에 적극 개입했고, 그 결과 암시장만 키우는 결과를 불러왔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재정지출을 무분별하게 늘렸다.나라가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다가온 2018년 대선에서 마두로는 선거 개입을 자행했다. 선거일을 멋대로 바꾸고 유력 야당 인사들의 대선 참가를 금지한 끝에 6년 임기 대통령에 재선했다. 여소야대 국회는 마두로 대통령 취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하는 과도 정부를 선포했다. 뒤이어 벌어진 과이도의 쿠데타는 군부를 장악한 마두로에 의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미국·유럽연합(EU) 등 마두로 정권을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경제는 여전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치적 변화가 선행하지 않는 한 베네수엘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쉽게 끊기 힘들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21일 열린 지방선거는 향후 베네수엘라가 위기를 딛고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우선 야당이 출마 거부를 끝내고 선거에 나선 것이 변화의 단초다. 야당은 2018년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야당 인사들의 출마를 봉쇄한 후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고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도 불참했다. 야권은 최근 베네수엘라의 오랜 정치·사회·경제 위기를 해소하겠다며 마두로 정권과의 대화를 재개했다. 베네수엘라 여야가 갈등을 봉합하더라도 경제 회복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원유 및 석유정제품 수출량은 하루 평균 62만 6534배럴로 전년보다 37.5% 급감, 7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PDVSA는 물론 PDVSA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도 제재 리스트에 올리는 강력한 경제제재를 취하고 있어서다. 다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후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1년간 베네수엘라로의 액화석유가스(LPG) 수출을 허용하는 등 ‘인도주의적 제스처’를 보인 것은 한 가닥 긍정적 신호로 풀이된다.
  • 심상정·안철수 ‘제3지대’ 공조 시동

    심상정·안철수 ‘제3지대’ 공조 시동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22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조건 없는 만남을 제안하며 제3지대 공조에 시동을 걸었다. 거대양당 후보들의 양강구도로 대선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군소정당 후보들이 연대해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심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양당체제 종식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제3지대의 공조를 시작하겠다”며 “첫 만남은 안 후보께 제안한다. 이른 시일 내 조건 없이 만나 양당 체제 종식을 위한 연대를 포함,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심 후보는 이어 “안 후보님,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님 등은 모두 출마선언을 통해서 기득권 양당정치의 틀을 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뜨겁게 환영한다”며 “양당체제 종식은 시대적 사명이고, 저 심상정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쌍특검’(대장동 의혹·고발사주 의혹)을 제안하며 “심 후보 및 정의당과 함께 풀어갈 수 있길 기대한다”며 심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에 심 후보는 “안 후보의 제안은 지극히 정당하다”며 “특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검을 할 경우 대선 후보 공식 등록일 이전인 내년 2월 12일까지 결과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호응했다. 다만 심 후보는 안 후보와의 만남이 단일화로 비치는 모습에는 선을 그었다. 심 후보는 “단일화는 앞선 이야기”라며 “지금은 양당체제 종식과 시대교체를 위해 어디까지 협력할지 어떤 노력을 함께할지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는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선후보 중 마약 복용자 있다” 필리핀 두테르테의 폭로

    “대선후보 중 마약 복용자 있다” 필리핀 두테르테의 폭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내년 5월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한 후보 중 한 명이 마약인 코카인을 복용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필리핀 매체 인콰이어러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해당 후보자의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부유한 가문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오리엔탈 민도로 주에서 가진 연설에서 “(코카인을 복용하고도 대선에 나온) 그 사람이 필리핀에 어떤 기여를 했나. 왜 우리 국민은 그를 향해 그렇게 열광하고 지지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때가 되면 여러분은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면서 “그는 이름만 빼면 매우 나약한 지도자”라고 덧붙였다. 현재 필리핀에서 대통령 선거 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크리스토퍼 고 상원의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 그리고 두테르테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온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 복식 영웅인 매니 파키아오 상원의원, 배우 출신인 프란시스코 도마고소 마닐라 시장, 로날드 델라 로사 전 경찰청장, 판필로 락손 상원의원 등이다. 이중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이자 다바오 시장인 사라 두테르테와 대통령·부통령 후보로 러닝메이트를 이뤄 대권에 도전하는 인물이다. 사라 두테르테는 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독재자 가문으로도 유명한 마르코스 전 의원과 ‘범죄와의 전쟁’을 이끈 두테르테 딸의 협력은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까지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언급한 ‘마약 대선 후보’의 실명이 섣불리 거론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그가 ‘힘 있는 가문 출신’이라고 주장한 만큼 조만간 특정 후보가 지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스트롱맨'으로도 불리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으로 인권 침해 논란을 낳았다. 특히 마약 사범에 대한 자비 없는 처벌을 강행했고, 그 결과 경찰의 자체적인 단속 및 수사 과정에서 6000명 이상이 사법절차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현지 인권단체 추정치는 3만 명에 달한다. 현지 인권단체와 정치범 지원 단체는 이달 초 선거관리위원회에 마르코스 전 의원의 대선 출마를 막아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독재자의 아들과 '스트롱맨'의 딸이 한 팀을 이뤄 필리핀을 이끌 경우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단히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필리핀은 내년 5월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 1만 8000명 규모의 상·하원 의원과 관료들을 선출한다.
  • 장군 옷 입고 김포 ‘지옥철’ 체험나선 허경영

    장군 옷 입고 김포 ‘지옥철’ 체험나선 허경영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가 18일 경기 김포도시철도 김포공항역에 장군 옷을 입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허 명예대표는 이날 퇴근 시간대인 오후 7시 서울시 강서구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에 장군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어 김포검단교통시민연대 회원들과 지지자등과 함께 전동차를 타고 경기도 김포시 구래역까지 30여 분간 김포도시철도를 체험했다. 그는 “김포 시민단체 요청에 따라 이 도시철도를 체험하러 왔다”며 “이 철도는 처음 기획 때부터 졸속으로 이뤄졌다.시속 80㎞ 이상 못 달리게 돼 있고 탈선 위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면) 서울지하철 5·9호선이 김포와 인천 검단을 통과하게끔 (연장)하고 (수도권을 순환하는) 외곽순환 전철을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서형배 김포검단교통시민연대 위원장은 “내년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체험을 건의하고 대책 마련을 공약에 넣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다른 후보들도 체험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포도시철도는 1편성이 전동차 2량으로 구성된 도시철도로 이용객 정원 172명이지만 출·퇴근 시간대에는 이용객이 정원의 2∼3배가량 한꺼번에 몰려 혼잡률이 300%에 육박할 정도로 불편해 지옥철로 불리고 있다.
  • “후보교체? 글쎄요”…이준석 칭찬한 홍준표, 홍준표 우려한 이준석

    “후보교체? 글쎄요”…이준석 칭찬한 홍준표, 홍준표 우려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홍준표 의원이 인터넷에 정치플랫폼 ‘#청년의꿈’을 만들어 직접 소통에 나서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우려를 표했다. 홍 의원은 지난 14일 개설한 #청년의꿈 플랫폼에서 네티즌들의 질문에 직접 답글을 달며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청년의꿈은 출범 나흘째인 17일 오전 기준으로 누적 방문자 11만여명, 누적 페이지뷰 1000만회를 훌쩍 넘기고 있다. 특히 ‘청년의 고민에 홍준표가 답한다’는 취지의 ‘청문홍답’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에 직접 답글을 달며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개설 하루 만에 ‘2027년 대선에도 출마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자 “잠들기 전까지 한 걸음이라도 더 간다”면서 대권 재도전을 시사했다. 또 ‘탈당해 대선에 출마해 달라’는 질문에 “안됩니다”라며 짧고 단호한 답변으로 거부했다.이준석 대표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하자 “영특하고 사리분명한 청년입니다”라고 답했고, 이준석 대표를 향한 당내 일각의 탄핵론에 대해선 “이준석 내치면 대선에서 진다”고 적었다. 문제는 현재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윤석열 후보에 대해 명확한 지지 또는 선대위 합류 의사에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홍 의원은 ‘정권교체를 위해 윤 후보를 미는 게 맞다고 보느냐, 아니면 소신투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불가”라고 답했다. 이어 ‘그래도 윤 후보를 밀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홍 의원은 “윤 후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각종 가족 및 본인 의혹 때문에 (내가) 마이크를 잡을 명분이 없다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특히 ‘후보교체론이 제기되면 다시 출마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부정하지 않고 “글쎄요”라는 모호한 답변을 남겼다.향후 후보교체론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해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답변이다. 이처럼 홍 의원이 경선 패배 후 탈당이나 독자 출마 등 극단적인 불복 가능성엔 선을 그었지만 선대위 합류는 물론 활발한 소통 정치를 통해 독자세력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내에서는 우려의 시각이 나오고 있다. 자칫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 단합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홍 의원이 국민의힘에 새롭게 유입된 20·30대 남성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터라 이번 대선에서 표심의 열쇠를 쥐고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 역시 홍 의원의 소통행보에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이날 TBS라디오에서 “(홍 의원이) 결과에 승복한다는 표현을 했지만 아무래도 선거 뒤에 후유증이 좀 있는 것 같긴 하다”면서 “(윤) 후보가 그런(전화 시도) 노력을 계속 기울이는데도 불구하고 홍 의원이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면, 여론이 홍 의원에게 안 좋게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홍 의원은 거기에 좀 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해찬 선대위 등판?…“위기 극복 적임자”vs“중도 확장 주특기 아냐”

    이해찬 선대위 등판?…“위기 극복 적임자”vs“중도 확장 주특기 아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해찬 전 대표와 17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찬회동한 것으로 확인돼 이 전 대표의 전면 등판론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되고 선거대책위원회 개편론이 분출하는 위기 상황에서 관록의 ‘구원투수’로서의 이 전 대표의 전면 복귀 여부에 주목하는 흐름이다. 선대위 관계자는 18일 “이 후보가 이 전 대표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이 전 대표가 갖춘 풍부한 경험, 경륜을 들어 현재 이재명 후보 선대위가 맞닥뜨린 위기 극복의 적임자라는 긍정 의견이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국정상황실장이자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윤건영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당이 가진 훌륭한 자산을 총결집해보자는 취지로 이해한다”고 말했다.그는 이 전 대표의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며 “그 부분은 선대위와 후보가 판단할 영역”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다소 ‘올드’한 이미지의 이 전 대표에 대한 안팎의 여론을 고려할 때 이 전 대표가 선대위 전면에 나서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시각이다. 여권 원로 인사인 유인태 전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이해찬 전 대표가 별로 중도 확장은 주특기가 아니다”라며 “9년 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한테 지던 해에 그때도 별로 대선에 도움 안 된다고 (당 대표를 하다) 중도 사퇴했던 사람을 뭘 또다시 전면에 내세우겠느냐”라고 말했다.공교롭게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위에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원톱’으로 유력시되면서 ‘33년 악연’을 지닌 두 사람이 이번 대선판에서 또 맞붙는 그림이 연출될지 주목된다. 가장 최근 악연은 5년여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던 김 전 위원장이 당시 세종시 현역의원이었던 이 전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한 일이다. 이 전 대표는 탈당해 무소속 출마 후 당선돼 복당했다. 여야 두 후보 모두 여의도 정치 경험이 일천한 ‘합계 0선’이라는 점에서 이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 간 대리전 구도가 성사되면 양 진영 간의 ‘상왕(上王)’ 논쟁도 격화하는 조짐이다. 민주당 조승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의 접촉을 두고 “결재판을 가지고 갔지만 반려 당하고 상왕의 심기까지 건드린 것”이라며 “시작부터 삐걱삐걱, 고장 난 수레가 요란하기만 하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반면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은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비상이 걸리니까 이해찬 전 대표를 이제 모셔온다는 건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을 지금 갑자기 중간에 단추 끼우려고 하는 이게 안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독재자 아들·스트롱맨 딸 뭉쳤다… 마르코스·두테르테 원팀 대선 출마

    독재자 아들·스트롱맨 딸 뭉쳤다… 마르코스·두테르테 원팀 대선 출마

    독재자의 아들과 스트롱맨의 딸이 한 팀을 이뤄 필리핀 대권에 도전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왼쪽·64) 전 상원의원과 사라 두테르테(오른쪽·43) 다바오 시장이 내년 5월 열리는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러닝메이트로 출마한다고 로이터통신이 17일 보도했다. 마르코스 전 의원은 1965년부터 21년간 장기 집권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린 사라 시장은 수천명이 숨진 ‘마약과의 전쟁’을 주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이다. 마르코스 전 의원은 성명을 내고 “사라 시장과 나는 선거 승리를 위해 통합된 리더십을 추구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사라 시장도 “내가 속한 정당은 마르코스와 연계돼 있고 그를 지지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이런 요구에 응답하기로 했다”고 화답했다. 필리핀 정계는 두 사람의 협력이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마르코스 가문과 두테르테 가문은 각각 필리핀 북부와 남부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마르코스 가문은 북부 왕조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 하와이로 망명했고 3년 후 사망했다. 1990년대 필리핀으로 복귀한 마르코스 일가는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의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퍼스트레이디였던 이멜다는 3선 하원의원을 지냈고, 페르디난드는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뽑혔다. 필리핀은 내년 5월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 1만 8000명 규모의 상·하원 의원과 관료들을 선출한다. 현재까지 등록한 대통령 후보는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 상원의원, 배우 출신 프란시스코 도마고소 마닐라 시장,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 판필로 락손 상원의원, 로날드 델라 로사 전 경찰청장 등이다.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의 규합에 시민사회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지 인권활동가와 정치범 지원 단체는 이달 초 선거관리위원회에 마르코스 전 의원의 대선 출마를 막아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인권단체 카라파탄도 두 가문의 동맹에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단히 심각한 위협”이라고 표명했다.
  • ①단일화 ②독자 출마 ③제3지대 연대… 대선 승패 가를 최대 변수

    ①단일화 ②독자 출마 ③제3지대 연대… 대선 승패 가를 최대 변수

    20대 대선을 앞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후보 단일화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는 지지율이 열세인 한쪽 진영에서만 단일화 이슈가 분출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대 양당 모두 군소후보와 ‘단일화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각각 단일화 대상이다. 일단 군소후보들은 완주 의지를 강하게 밝히고 있다. 국민의당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인 이태규 의원은 이날 TBS 라디오에 출연해 “후보 자리를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안 후보의 중도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심 후보도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 왔다. 군소후보들의 완주 의지는 ‘당의 얼굴’인 후보들이 존재감을 보여야 하는 군소정당들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 2016년 총선에서 38석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안 후보와 국민의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3석에 그치며 지리멸렬 상태의 위기에 처해 있다. 심 후보의 이번 대선 성적표는 향후 진보정당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지 여부와 직결된다.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6석으로 기존 의석을 지켰지만, 대부분 지역구 후보가 낙선했고 당초 목표했던 교섭단체 구성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결국 대선이 임박하면 단일화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특히 거대 양당의 지지층이 결집하며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박빙의 구도를 그리게 되면 양 진영에서는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칠 수밖에 없다. 이런 요구로 안 후보는 2012년 대선과 올해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각각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양보했고, 심 후보 역시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대선 때 후보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더불어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보궐선거 공천권 등이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되면 한층 복잡한 양상이 전개될 수도 있다.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군소후보 간 ‘제3지대 단일화’ 여부가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안 후보 측은 대선 완주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면서도 같은 대선주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의 연대 가능성에는 다소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 전 부총리 역시 전날 심·안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배종찬 인사이트K 연구소장은 “군소후보로서는 정치적 보상이 없다면 양강 후보와 단일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이 경우 이·윤 후보는 단일화 대신 군소후보들의 정책을 취하는 방식으로 지지층을 확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천안함 유족 만난 尹 “北 피격 명백”

    천안함 유족 만난 尹 “北 피격 명백”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순국선열의 날’인 17일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과 유족 대표를 만나 “북한의 피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라면서 “(천안함이 정쟁 대상이 되는 것이) 북한에 대한 굴종적인 자세에서 다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 전 함장과 천안함 침몰 당시 전사한 이상희 하사 부친인 이성우 유족회장과 약 40분간 면담했다. 윤 후보는 “국격은 그 국가가 어떤 역사, 어떤 사람을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천안함에 대한) 이 정부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 전 함장은 “천안함을 믿으면 보수고, 믿지 않으면 진보라는, 말도 안 되는 (식으로) 국론이 분열됐는데, 나중에 집권하면 이런 상황이 없도록 해야 전우들이나 남은 장병들, 유가족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윤 후보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장병이 희생됐는데, 그 사건은 정치 영역으로 들어올 일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윤 후보는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국가 안보를 강조해 왔다. 이날도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천안함은) 정치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면서 “희생된 분들 명예를 훼손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안보를 강조하는 행보가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걸 정치에 끌어오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윤 후보는 면담 뒤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은 끝내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국가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해하는 행위”라고 다시금 문 대통령을 직격했다.
  • 고민정 “안철수 후보님, 이번엔 ‘철수’ 말고 끝까지 뛰시길”

    고민정 “안철수 후보님, 이번엔 ‘철수’ 말고 끝까지 뛰시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선 주자로 뛰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 ‘완주’를 빌었다. 고 의원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안철수 후보님, 무리한 선거운동으로 이목을 끄니 기분이 좋으시죠?”라고 썼다. 안 대표가 전날 ‘준비된 미래 폴리버스 캠프’라는 이름의 대선캠프 발족식에서 ‘공정’을 이야기하며 “이제 더이상 대한민국에서 제2의 조국 자녀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발언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소환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이날 고 의원은 “정작 본인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는 나와야 국민의힘으로부터 러브콜도 받을 텐데”라며 비꼬았다. 그러면서 “이번에야말로 ‘철수하지 말고 끝까지 뛰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 1일 안 대표는 세 번째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을 묻자 “저는 당선을 위해 나왔다. 또 제가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여당은 범야권의 표 분산을 반기는 분위기다.
  • “후보만 죽어라 뛰어” 與의원 직격한 양정철은 누구

    “후보만 죽어라 뛰어” 與의원 직격한 양정철은 누구

    여권의 대표적인 ‘책사’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려온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17일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전략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양 전 원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민주당 영입인재·비례대표 의원모임 비공개 간담회에서 “저쪽(국민의힘)과 너무 대비된다”며 “대선을 코앞에 두고 위기감이나 승리에 대한 절박함, 절실함이 안 느껴진다”고 말했다고 동석했던 신현영 의원이 전했다. 양 전 원장은 이성복 시인의 시 ‘그 날’의 한 대목인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문구를 소개하며 “우리 당 현실을 한 마디로 얘기한다”고 했다. 그는 “의원들의 한가한 술자리도 많고, 누구는 외유 나갈 생각 하고, 아직도 지역을 죽기 살기로 뛰지 않는 분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라며 “대선이 넉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이렇게 유유자적 여유 있는 분위기는 우리가 참패한 2007년 대선 때 보고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보만 죽어라 뛰고 있다”며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은 분들이 벌써 마음속으로 다음 대선, 다음 대표나 원내대표, 광역 단체장 자리를 계산에 두고 일한다. 탄식이 나온다”고 말했다.선대위 구성을 두고도 “희한한 구조, 처음 보는 체계”라며 “주특기와 전문성 중심의 전진배치가 아니라 철저한 선수 중심의 캠프 안배 끼워맞추기”라고 비판했다. 양 전 원장은 “후보 핵심 측근들과 선대위 핵심 멤버들이 악역을 자처하고 심지어 몇 명은 정치 그만둘 각오까지 하고 후보 중심으로 키를 틀어쥐고 중심을 잡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안 하면 승리가 어렵다”며 “과거 한나라당이 천막 당사를 하던 마음으로, 후보가 당내 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간담회를 전후해서도 기자들과 만나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오늘 고민을 나누고 싶은 게 그 대목”이라며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양 전 원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준비 캠프에 합류해 2003년 12월 홍보기획비서관으로 당시 39세의 최연소 비서관으로 청와대 활동을 시작했다. 언론 정책을 담당하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을 “일관성과 균형성을 상실한 특정 매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맡았던 그는 사무처장직을 사퇴하며 과거 불편한 관계에 있던 언론에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지키기 위해 후회없이 싸웠고 그 과정에서 기자들과도 참 많이도 부딪혔다”며 “상처받은 기자들, 마음 상한 언론사도 많을텐데 이해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위해 감당해야 했던 몫으로 여겨주면 좋겠다”며 “누군가는 `악역‘을 감당했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서울 중랑구을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으나 예비경선 탈락했다.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했으며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청와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돌연 출국해 미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작가로 활동했다. ‘압승’이라고 평가되는 2020년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을 맡아 선거 밑그림을 그렸다.
  • 독재자 카다피 아들 리비아 대선 출마

    독재자 카다피 아들 리비아 대선 출마

    14일(현지시간) 리비아 남부 세브하시에서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왼쪽)가 다음달 24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그는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해 2011년 민중 봉기로 쫓겨나 처형될 때까지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둘째 아들로 6년간 구금됐다 2017년 풀려난 후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리비아 선거관리위원회 제공 EPA 연합뉴스
  • 허경영 “결혼 1억, 출산 5천 ‘허토피아’ 만들겠다”

    허경영 “결혼 1억, 출산 5천 ‘허토피아’ 만들겠다”

    20대 대선에 출마한 국가혁명당 허경영 대표는 14일 “돈 때문에 억울함이 없는 허토피아를 만들겠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허경영 대표는 “여야가 모두 한통속이란 것을 깨닫고 허경영을 알아보기만 하면 끝이다. 재원 마련 방안? 충분합니다. 허경영은 다 계획이 있습니다”라며 ‘허토피아. 국민배당금 월 150만원. 결혼수당 1억원. 출산수당 5000만원. 돈 때문에 억울함이 없는 세상’이라는 내용이 적힌 포스터를 공개했다. 한편 허경영 대표는 주말 내내 투표 독려 전화를 돌렸다. 네티즌들은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허경영 전화니 받지 말라.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노출된거냐”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 때문에 ‘허경영 전화’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이와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독려하는 내용이라면 누구나 전화를 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 “‘인싸’들만 받는 전화?” SNS 인증 난리난 번호의 정체

    “‘인싸’들만 받는 전화?” SNS 인증 난리난 번호의 정체

    지난 주말 ‘허경영 전화’ 실트 올라 “안녕하십니까. 허경영 대통령 후보입니다. 코로나로 얼마나 힘드십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첫걸음은 용기 있는 투표입니다. 허경영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02-780’으로 시작하는 번호의 전화를 받으면 흘러나오는 목소리.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다. 지난 주말, 네티즌들 사이에서 ‘허경영 전화 인증’ 바람이 불었다. 지난 14일 트위터에는 ‘허경영 전화’가 총 8700 이상의 트윗을 기록하며 ‘실시간 트렌드’(실트) 목록에 올랐다. 당시 허 대표 측은 13초 분량의 대선 투표 독려 전화를 돌렸다. 먼저 전화를 받은 네티즌들은 “우리들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전화를 받지 말라”며 해당 전화번호를 공유했다. 하지만 ‘허경영 전화’가 실트에 오르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한테도 진짜 허경영 전화가 왔다”, “‘인싸’들만 받는 전화 아니냐” 등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나한테도 왔으면 좋겠다”며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한 것이냐”, “고등학교 3학년이 공부 중인데 허경영 전화를 받아야겠냐” 등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15일 해당 전화는 2만여명이 넘는 인원의 ‘싫어요’ 기록을 세우며 결국 스팸 전화로 분류됐다.
  • “탈당 후 출마해달라” “이준석 어때” 질문에 홍준표 답변

    “탈당 후 출마해달라” “이준석 어때” 질문에 홍준표 답변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 당 대선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에도 활발히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홍 의원이 청년정치 부흥을 위해 지난 14일 공식 개설한 정치 플랫폼 ‘청년의 꿈’의 ‘청문홍답’에는 15일 오전 9시 45분 현재 1260여개의 질문이 올라왔다. ‘청문홍답’은 ‘청년의 고민에 홍준표가 답하다’라는 취지로 개설된 문답 게시판으로 이용자들의 질문에 홍 의원이 직접 답변을 남기기도 한다. 홍 의원은 ‘청년의 꿈’에서 홍준표 대신 ‘준표형’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 의원은 이날까지 60여개의 질문에 직접 답변을 남겼다.답변이 완료된 질문 중에는 ‘탈당 후 대선 출마해주시면 안됩니까’라는 질문도 있었는데, 홍 의원은 “안됩니다”라며 단호한 답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정치라는 아수라장에서 멘탈(정신)을 어떻게 잡고 버텼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로다”라고 답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엔 “영특하고 사리분명한 청년입니다”라고 답했고, ‘준표형님에게 안철수란?’이라는 질문엔 “The good friend”라고 답했다. 향후 행보에 관한 질문도 많이 나왔는데, 당대표 도전 의사를 묻자 “당대표는 두 번이나 했습니다”라고 답했고, 경남도지사 출마에 대해선 “그기는 졸업했어요”라며 선을 그었다.차기 대선에 출마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잠들기 전까지 한걸음이라도 더 간다”면서 차차기 대선 출마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홍 의원은 전날 청년의꿈을 열면서 페이스북 글을 통해 “청년들의 고뇌와 제안은 언제나 함께하도록 하겠다”며 “함께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모바일 앱도 만들어야 하고, 기능도 향상해야 하는 등 할 일이 태산”이라며 “청년들의 놀이터답게 각종 동아리 모임도 만들고 가입과 탈퇴도 자유롭게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욕설, 비방, 저질스러운 말들은 차단 기능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 카다피 아들 12월 리비아 대선 후보 등록, 독재자 자녀들 잇단 출마

    카다피 아들 12월 리비아 대선 후보 등록, 독재자 자녀들 잇단 출마

    2011년 민중봉기로 축출돼 죽임을 당한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이 다음달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로 등록했다고 AP와 블룸버그 통신 등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대선은 리비아 역사 상 처음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이뤄진다. 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온라인 성명에서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49)가 남부 지역 세브하에서 대선 후보로 등록하고 투표 카드도 받았다고 밝혔다. 온라인 영상에서는 베두인 전통 복장에 두건을 두른 그가 후보 등록 직후 이슬람 경전 쿠란을 인용해 짧게 연설하는 모습도 나왔다. 알이슬람은 한때 카다피의 후계자로 유력했으나 지난 몇년 공개 활동을 해오지 않다가 지난 7월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정치에 복귀할 뜻을 내비쳤다. 10년 전에 아버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원을 받는 민중봉기로 쫓겨나 죽임을 당한 이후 그도 몇년 동안 구금돼 지냈다. 그는 2017년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판결이 뒤집혀 같은 해 6월 민병대가 풀어줬다. 하지만 2011년 반인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아직 영장이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카다피 아들의 대선 출마는 주요 인사 가운데 처음이다. 동부지역 군벌인 칼리파 하프타르와 압둘 하미드 드베이바 임시 총리 등이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일 시작된 대선 후보 접수는 오는 22일까지로 카다피 아들의 대선 후보 자격은 반론 등을 받아들이는 절차가 남아 있어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dpa 통신이 전했다. 당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워낙 리비아 국민들에게 카다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각인된 데다 아들 역시 봉기 당시 잔악한 진압을 독려하는 등 좋지 않은 이미지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카다피 아들의 출마로 다음달 24일로 예정된 리비아 대선 구도가 동서 지역 대립, 선거법 미해결 문제, 무장단체 충돌 등에 더해 한결 복잡해졌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리비아는 2011년 카다피 축출 후 내전에 돌입해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한 통합정부와 동부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한 군벌이 대립해오다 지난해 10월 유엔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한 뒤 대선과 총선 일정에 합의한 바 있다. 원래 총선도 대선과 같은 날에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리비아 의회는 총선만 분리해 내년 1월로 연기했다. 15일 후보 등록이 마감되는 필리핀 대선에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그와 러닝 메이트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 리사 다바오 시장이 부통령 후보로 출마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우려를 샀던 부통령 선거에는 나서지 않아 부녀가 격돌하는 일을 피했고, 대신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 두테르테 딸 사라 부통령 선거 출마, 마르코스 아들의 러닝 메이트로

    두테르테 딸 사라 부통령 선거 출마, 마르코스 아들의 러닝 메이트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딸인 사라(43) 다바오 시장이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내년 5월 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지난달 이미 대권 도전을 선언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 측은 그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13일 로이터와 GMA 뉴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대변인인 크리스티나 프라스코 릴로안 시장은 사라 시장이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에 부통령 선거 후보로 등록했다고 발표했다. 프라스코 시장은 조만간 사라가 성명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리핀은 내년 5월 선거를 통해 정·부통령을 포함해 1만 8000명에 이르는 상·하원 의원과 관료들을 대거 선출한다. 이를 위해 지난달 1일부터 15일까지 선거 입후보 등록을 진행했다. 사라도 이 기간에 다바오 시장직에 재출마하겠다면서 후보 등록을 마쳤다가 지난 9일 갑자기 철회했다. 현행 선거법으로는 오는 15일까지 후보 등록을 철회하고 다른 선출직 출마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사라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조만간 대선 후보 등록을 마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줄곧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려온 것도 이같은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또 최근 여성인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이 이끄는 라카스-CMD당 관계자도 “사라 시장이 당에 합류했으며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밝힌 일이 있다. 하지만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자 필리핀 정계는 놀라워하면서 향후 대선 구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인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이 사라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한 데 대해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대의 정치학과 교수인 안토니오 라 비나는 “한마디로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대선은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 외에 복싱 영웅인 매니 파키아오 상원의원, 배우 출신인 프란시스코 도마고소 마닐라 시장, 두테르테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온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 판필로 락손 상원의원, 로날드 델라 로사 전 경찰청장 등이 후보 등록을 각각 마쳤다. 또 지난달 부통령 선거 출마 등록을 한 크리스토터 고 상원의원도 대선에 나서기 위해 이날 후보 등록을 변경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집권당인 ‘PDP 라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두테르테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지만 지지층이 취약하고 여론 조사에서도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두테르테 대통령이 후보 등록 최종 마감일인 15일에 후보 교체를 통해 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GMA 뉴스 등은 대통령 공보 비서관인 마틴 안다나르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당초 두테르테는 내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지난달 2일에는 임기를 마치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힌 일이 있다. 안다나르 역시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로선 계획이 그렇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내일이나 15일에도 똑같은 계획일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재임 기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경찰로 하여금 무자비한 단속과 사법권한을 벗어난 체포와 린치를 가하게 한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 조사를 받고 있어 대통령 재출마든, 부통령 출마든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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