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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정보위 “조성길은 지난해 7월 한국에 자진해서 왔다”

    국회 정보위 “조성길은 지난해 7월 한국에 자진해서 왔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북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자진해서 국내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7일 국회에서 “조 전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자진해서 왔다”며 “수차례 한국행 의사를 자발적으로 밝혔고 우리가 그 의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입국이 1년 이상 공개되지 않은 배경과 관련해선 “본인이 한국에 온 것이 알려지는 것을 당연히 원하지 않았다”며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이 사안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접촉했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국회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정보위 여야 간사 합의로 조 대사의 입국사실 정도만을 확인해주기로 했다”며 “신변안전 문제 때문에 그 이상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이유로 이탈리아 정부가 문정남 당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를 추방한 이후 대사대리를 맡았다. 2018년 11월 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종적을 감추면서 제3국 망명설이 도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탈리아에 남아있던 미성년 딸은 북한으로 송환된 것으로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외교부가 확인했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은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이 부모를 따라 망명하는 대신 자발적 귀국을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외교부는 “북한 측 통보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이 고국에서 조부모와 함께 있길 희망해, 11월 14일 대사관 여성 직원과 함께 북한에 돌아갔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이탈리아 정계에서 위험에 처한 미성년이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이중의 배신, 납치됐다고 알려진 북한 소녀에 대한 진짜 이야기’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는 2017년 10월에 대사 역할을 맡으면서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 됐고, 당시 17세였던 그의 외동딸은 정보기관의 보고서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묘사됐다. 또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은 북한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했으며, 부모가 북한 정권의 사상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할 때마다 부모를 책망하고 이런 사실을 평양의 조부모는 물론 북한대사관의 다른 직원들에게도 이야기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북한 정부가 조 전 대사대리에게 귀국 명령을 내린 것도 딸의 발언 때문이라고 이탈리아 언론은 추측했다. 2018년 11월 10일 부모가 잠적하자 딸은 즉시 이 사실을 북한대사관 직원들에게 알리고 부모의 망명 나흘 뒤인 11월 14일 북한대사관 여성 공관원과 함께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북한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성길 이후 이탈리아에 부임한 김천 대사대리는 “남한에서 제기한 ‘납치설’은 이탈리아와 북한의 관계를 훼방 놓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조성길은 딸 조유정의 정신장애 때문에 아내와 부부 싸움을 한 뒤 대사관을 나갔고, 다음 날 아침 그의 아내도 대사관을 떠난 뒤 두 사람 다 돌아오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고 설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조성길, 1년 넘게 한국 있었다…친구 태영호 “아주 인도적 사안”

    조성길, 1년 넘게 한국 있었다…친구 태영호 “아주 인도적 사안”

    2018년 11월 돌연 잠적했던 북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극비리에 한국행을 택하고 1년 넘게 국내 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성길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은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20여년 만의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한국 망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016년 한국 망명을 택한 태영호 당시 영국대사관 공사는 2020년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태영호 의원은 지난해 1월 자신의 블로그에 “친구 조성길에게. 한국은 나나 자네가 이루려던 바를 이룰 수 있는 곳”이라며 “서울은 한반도 통일의 전초기지. 서울에서 나와 함께 의기투합해 북한의 기득권층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를 통일해야 한다. 한국으로 오면 신변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직업도 자네가 바라는 곳으로 해결된다. 자녀교육도 좋다”고도 망명을 권유했다. 더불어 “내가 쓴 책 ‘3층 서기실의 암호’는 6개월 동안 15만권 이상이 팔렸다. 자네도 한국에 와 자서전을 하나 쓰면 대박 날 것”이라며 “미국 쪽으로 망명타진을 했더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이탈리아 당국에 (남한 망명을) 당당히 말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개 편지를 쓴 뒤 6개월 후인 지난해 7월 조성길 전 대사대리는 한국으로의 망명을 택했다. 태영호 의원은 7일 입장문을 내고 “나는 조 대사의 소재와 소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언론사들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보도하지만, 북한에 친혈육과 자식을 두고 온 북한 외교관들에게 본인들의 소식 공개는 그 혈육과 자식의 운명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인도적 사안”이라며 “조성길이 만약 대한민국에 와 있다면, 딸을 북한에 두고 온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우리 언론이 집중 조명과 노출을 자제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날 실시하는 외교부 국감에서 “조성길 관련 질의는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외교관들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외교관들

    북한 고위급 인사의 탈북은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 해체로 사회주의 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 데다 식량난과 에너지난, 경제난 등이 겹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내면서 탈북이 줄을 이었다.1994년 탈북한 조명철 김일성대 박사와 3년 뒤 귀순한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탈북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 최고 대학인 김일성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조 박사는 1994년 귀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알려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탈북인 의원 1호로 활동했다. 황 전 비서의 탈북 소식은 한반도 주변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일성 유일통치체제의 핵심인 ‘주체사상’의 설계자이자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까지 지낸 지도급 인사가 탈북하자 국제사회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당시 그는 탈북 이유에 대해 “조국의 체제에 의분을 느껴 변혁을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북한 고위급 탈북민 중에는 2016년 주영국 북한 공사로 근무하다 탈북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과 이번에 귀순이 확인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처럼 외교관들의 사례가 많은 편이다. 외국 생활을 오래한 탓에 북한의 실체를 잘 알고 있으며 탈북 기회도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외교관의 탈북을 막기 위해 자녀는 평양에 두고 부부만 출국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지 장치를 마련해 뒀지만 탈북을 근절하진 못했다. 대표적으로 1991년 고영환 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 1996년 현성일 주잠비아 북한대사관 서기관, 1997년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 대사, 2000년 홍순경 주태국 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 등의 탈북 사례가 있다. 이 외에도 정부가 공식 확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앙부처 고위급 인사를 비롯해 정찰총국 등 다양한 북한 기관 소속의 간부들이 다수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제3국 망명 실패로 한국행 가능성… ‘살얼음’ 남북관계 악재될 듯

    제3국 망명 실패로 한국행 가능성… ‘살얼음’ 남북관계 악재될 듯

    국정원 “잠적 직후 접촉 없어” 국회 보고美, 북미회담에 망명 수용 어려웠을 듯조 귀순, 北반발 일으킬 단초 제공 우려공개 시점 안 좋지만 北반발 적을 수도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2018년 11월 이탈리아에서 잠적했다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입국, 정착한 사실이 6일 알려지면서 귀순 전 행적과 귀순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조 전 대사대리는 최고위급 외교관으로 출신 배경도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대사대리의 아버지와 장인은 모두 북한 대사를 지난 고위급 외교관이며, 그도 엘리트 외교관을 배출한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했다. 조 전 대사대리가 망명한 이유는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공관에서 본국에 송금할 상남급을 모금해야 하는데 모금액을 채우지 못했거나, 관리하던 상납금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근무했던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은 해외 고가 제품을 수입하는 주요 통로여서 운영하는 자금의 규모도 다른 북한 대사관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대사대리는 처음부터 한국행을 의도하고 탈북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 전 대사대리의 잠적 사실이 처음 알려진 지난해 1월 국가정보원은 그가 잠적한 2개월간 국정원과 연락을 취한 적은 없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국정원은 당시 조 전 대사대리의 신변은 이탈리아 당국이 보호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가 한국행을 목적으로 했다면 국정원 등 한국 정부기관에 접촉해 왔거나, 제3국으로 일단 도피했더라도 한국에 망명을 요청했을 텐데 잠적 당시 조 전 대사대리는 귀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조 전 대사대리가 잠적 후 이탈리아나 제3국에서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에 망명을 타진했다는 관측이 당시 현지 언론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조 전 대사대리가 결국 한국행을 택한 것은 제3국 망명이 좌절됐거나, 중간에 뜻을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 조 전 대사대리가 잠적했던 당시는 미국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시점이라 미국이 망명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 전 대사대리의 귀순 사실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에 알려져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말 북한군에 의해 한국 공무원이 사살된 데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안함’을 표명했지만 한국 정부의 공동조사 요구엔 침묵을 지킴에 따라 남북 간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귀순 사실 공개는 남북 관계 악화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북측이 그가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몰랐겠는가”라며 “공개 시점이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조 전 대사대리의 귀순 사실을 계속 쉬쉬하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북한 역시 반발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최근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주고받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위로 전문을 보내면서 남북·북미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기에 조 전 대사대리의 귀순을 계기로 관계를 깨트리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엘리트 외교관 집안 출신… 반북단체 ‘자유조선’ 망명 도운 듯

    엘리트 외교관 집안 출신… 반북단체 ‘자유조선’ 망명 도운 듯

    부친 외무성 대사·장인은 주태국 대사대북제재 피해 외화벌이·사치품 수입 지난해 7월 한국에 정착한 것으로 6일 확인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는 북한의 6차 핵실험의 여파로 2017년 10월 문정남 대사가 이탈리아에서 추방되자 대사대리로 임명돼 대사관 업무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조 전 대사대리는 고위층 외교관의 ‘엘리트 집안’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지난해 1월 조 전 대사대리와 관련해 “조 전 대사대리와 외무성 같은 국에서 근무했다”며 “아버지가 외무성 대사였고 장인은 전 주태국 북한대사”라고 밝힌 바 있다. 조 전 대사대리 본인도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했고 경제적으로도 상류층에 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일했던 이탈리아 대사관은 북한 외화벌이 주요 거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대북 제재를 피해 사치품을 북한에 몰래 들여가는 일도 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대사대리 망명 과정에서는 반북(反北) 단체가 개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4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가 행적을 감춘 뒤 부인과 함께 북한 대사관을 탈출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정보 당국의 보호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가 잠적한 당일 아침 직원들에게 부인과 함께 산책하러 간다며 밖으로 나간 후 근처에 있는 차에 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조 전 대사대리 망명 과정에서는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부부가 탄 차량의 운전석에는 자유조선 관계자가 앉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조선은 2017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살해되자 그의 아들 김한솔의 도피를 도운 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 전 대사대리는 망명 이후 밝혀지지 않은 서구 국가에 은신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외무부는 지난해 2월 조 전 대사대리와 그의 아내가 2018년 11월 10일 대사관을 떠났고,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딸은 같은 해 11월 14일 북한으로 송환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조성길 北 고위 외교관, 한국 택했다

    조성길 北 고위 외교관, 한국 택했다

    2018년 11월 종적을 감추었던 북한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이미 1년여 전 한국에 입국해 정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최고위급의 한국행이다. 남북 경색 국면에서 북한 고위급의 귀순 사실이 알려지면서 향후 남북 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아울러 서해상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북한 고위급의 귀순 사실을 1년 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6일 “조 전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제3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와 있다”며 “가족도 함께 입국했다”고 밝혔다. 다만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에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페이스북에 “조 전 대사대리는 지난해 7월 한국에 입국해서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같은 외교관 출신으로 2016년 귀순한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 공사(현 국회의원)보다 직급이 높다. 대사급 인사가 탈북한 것은 1997년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21년 만이다. 주이탈리아 대사관은 식량 지원을 다루는 식량농업기구(FAO)를 맡고 있어 북한에서는 중요한 재외공관으로 뽑힌다. 이에 북한 외무성에서도 성분이 좋고 실력을 인정받은 엘리트들만 배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대사대리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며 문정남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가 유엔 대북 제재의 여파로 추방된 이후 대리직을 맡을 정도로 실무 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대사대리는 임무 수행 중이던 2018년 11월 부인과 산책을 나간 뒤 잠적해 최근까지도 행방이 묘연했다. 한때 외신 등에서는 조 전 대사대리 부부가 이탈리아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망명을 기다리고 있다거나 이미 미국, 영국으로 건너갔다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단 조 전 대사대리의 미성년자 딸은 북한으로 송환됐다고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외교부가 공개한 바 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잠적 北 조성길 전 이탈리아 대사대리 한국 정착 확인

    잠적 北 조성길 전 이탈리아 대사대리 한국 정착 확인

    2018년 11월 종적을 감추었던 북한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이미 1년여 전 한국에 입국해 정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대사급 이상 북한 고위급의 첫 한국행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을 이어 가는 가운데 조 전 대사의 귀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반도 정세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6일 “조 전 대사가 지난해 7월 제3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와 있다”고 밝혔다. 조 전 대사의 가족도 함께 귀순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조 전 대사와 가족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에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페이스북에 “조 전 대사는 지난해 7월 한국에 입국해서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조 전 대사는 같은 외교관 출신으로 2016년 주영국 북한 공사로 있다가 탈북해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 의원보다 급이 높다. 대사급 인사 중에는 1997년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20여년 만에 확인된 탈북이다. 또 2011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처음 있는 북한 재외공관장의 탈북이기도 하다. 주이탈리아 대사관은 유엔의 식량 지원 문제를 다루는 식량농업기구(FAO)를 담당하고 있어 북한 외교에서는 중요한 공관으로 뽑힌다. 이 때문에 북한 외무성에서도 성분이 좋고 실력을 인정받은 엘리트들만 배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대사는 이탈리어, 프랑스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며 유엔 대북 제재의 여파로 문정남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가 추방당한 뒤 대리 업무를 맡을 정도로 실무 능력도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대사는 대사대리 임무 수행 중이던 2018년 11월 잠적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한때 외신 등에서는 조 전 대사가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망명을 기다리고 있다거나 이미 미국 또는 영국으로 건너갔다는 추측성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으로 다시 송환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으나 이탈리아를 포함한 각국 당국에서는 관련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았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정부 “아세안 안보포럼서 北 대화 복귀 촉구”

    정부가 오는 9일과 12일 화상으로 잇따라 열리는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 ‘항행의 자유, 평화적 해결’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할 계획이다.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유지함으로써 일방을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피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한·아세안, 12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다. 미국과 중국이 참가하는 EAS와 ARF 외교장관회의에서는 코로나19 대응 공조와 한반도 정세, 남중국해 문제 등이 주로 논의될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공산당이 남중국해에서 이웃 국가를 괴롭힌다’며 이번 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7일 “우리는 기존 입장대로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외교부는 이번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참가국들이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돼 대립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세안 10개국은 지난달 외교장관 공동성명에서 국가 간 대화와 호혜적 협력을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세안의 전통적인 단합, 일치된 자세를 이번 성명에서도 보여 주고 있다”며 “회의에서 특정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몰아세우지는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는 북한이 참가하는 유일한 다자안보협의체인 ARF에서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 낸다는 방침이다. 북한은 코로나19 이전에는 ARF에 외무상을 보내 회의를 계기로 남북 간 접촉이 이뤄지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접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7월 ARF 준비를 위해 화상으로 열린 고위관리회의(SOM)에는 북한 대표로 리호준 주베트남 대사대리가 참석했으나 발언은 하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아세안이 어떤 평가를 하는지 북한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해 회의에서 채택될 한반도 관련 문안에 대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서아프리카 감비아 교민 16명, 닷새 걸려 오후 인천공항에

    서아프리카 감비아 교민 16명, 닷새 걸려 오후 인천공항에

    아프리카 서부 감비아에 고립돼 있던 우리 교민 16명이 코로나19 확산을 피해 닷새 동안 육로와 항공을 거쳐 29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28일(이하 현지시간) 세네갈 주재 한국대사관(대사대리 신건호)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4개월 동안 감비아에 고립된 우리 국민 16명은 귀국 항공편 탑승을 위해 지난 25일 오전 5시 30분쯤 감비아 수도 반줄을 출발했다. 한국대사관이 임차한 전세차량을 타고 대사관이 주선한 이동 허가서로 12시간 육로로 이동해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도착했다. 감비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 항공노선이 중단되고 육상 국경이 봉쇄됐다. 세네갈은 지난 15일부터 정기 항공편 운항을 재개했다. 교민들은 세네갈 입국 후 다카르 시내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코로나19 검사(PCR 방식)를 받았다. 이들은 28일 오전 10시 40분쯤 에티오피아 항공 ET 908 편에 올라 이날 오후 9시쯤 에티오피아에 도착한다. 곧바로 10시 45분쯤 ET 672편으로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해 29일 오후 4시 15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내림으로써 닷새 만의 귀국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세네갈 주재 한국대사관은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말리, 카보베르데 등 서아프리카 5개국도 관할하고 있다. 대사관은 이번 귀국 지원에 앞서 모두 21차례에 걸쳐 재외국민 97명의 귀국을 지원한 바 있다. 나라별로는 세네갈 15차례 75명, 기니 네 차례 9명, 말리 두 차례 13명 등이다. 감비아는 서울의 한강과 같은 감비아 강 줄기를 따라 죽 이어진 길다란 영토를 갖고 있으며 온통 세네갈에 포위돼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1891년 파리에서 협정을 맺어 국경 선을 그었다. 국경 선이 부족과 부족의 연대를 파괴한 것은 물론이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 서부를 여행할 때 감비아 항공을 탑승한 적이 있는데 스튜어드(남성 승무원)들의 키가 엄청난 장신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美 “고위험 국가發 입국 때도 의료 검사”… 韓 “美 전 노선 발열검사”

    美 “고위험 국가發 입국 때도 의료 검사”… 韓 “美 전 노선 발열검사”

    “탑승전 검사와 병행” 이중으로 방역 강화 국토부 “모든 국적기·美 항공사 오늘부터” 몰디브, 서울 일대 출발 땐 입국 허용키로 사우디, 전면금지→취업·사업비자는 허용 터키 대사대리 불러 운항 중단 유감 표명 英외무, 康장관 안 만난 이유는 ‘자가격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관련해 고위험 국가와 지역에서 들어오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해당 국가에서 미국 입국 시에도 의료검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우리 국토교통부는 미국 노선에 대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시행하고 있는 탑승 전 발열검사를 3일 0시 이후 출발편부터 모든 국적 항공사와 미국 항공사로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고위험 국가) 여행자들에 대해 탑승 전 의료검사를 실시하는 것에 더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역시 의료검사를 받게 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는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전날 한국의 대구와 이탈리아 일부 지역의 여행경보를 4단계 ‘여행 금지’로 격상한 뒤 나온 발언으로, 한국과 이탈리아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 자체에는 3단계 ‘여행 재고’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중 의료검사’를 통해 방역을 강화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는 일단 입국 제한 조치는 아니라는 입장이나 한국의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입국 절차 강화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국토부는 탑승 전 발열검사 결과 체온이 37.5도를 넘으면 항공사가 탑승 거부와 환불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한국과 미국 간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델타, 유나이티드 등 9개 항공사가 로스앤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 시카고, 보스턴, 애틀랜타, 댈러스, 워싱턴, 라스베이거스, 호놀룰루, 디트로이트, 괌, 사이판 등 15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국토부는 “우리나라 비즈니스 핵심 항공 노선인 한미 노선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2일 오후 7시 기준 한국발 방문객 입국 제한 국가는 모두 82곳으로, 전날 집계보다 1곳 늘었다. 입국 금지 국가는 36곳이고 입국 절차 강화 국가는 금지 국가에 중복 게재됐던 앙골라가 빠지고 러시아, 뉴질랜드가 추가된 46곳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캐나다, 몰디브 외교부 장관 등과 통화하는 등 동시다발적 입국 제한 상황 대응에 나섰다. 이에 당초 전면 입국 금지를 예정했던 몰디브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경우에 한해 입국을 허용하기로 변경했다. 입국 금지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취업비자나 사업비자를 가진 국민의 입국을 허용했다. 외교부는 이날 외메르 주한터키대사대리를 초치하고 예고 없는 한국행 여객기 운항 중단에 유감을 표명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 주요 수출 대상국 30위 중에서 홍콩과 터키에서 입국을 금지하고 있고, 중국과 베트남에서 입국 절차를 강화했다”며 “경제적, 인적 교류가 많은 국가 중심으로 교섭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회항과 강제 격리 사태가 속출하면서 외교력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이날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한 대응이 미숙하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강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한편 지난달 강 장관과의 회담을 갑자기 취소한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코로나19 우려에 따른 자가격리 중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한국 봉쇄’ 확산… 이스라엘 등 14개국 입국 금지·절차 강화

    ‘한국 봉쇄’ 확산… 이스라엘 등 14개국 입국 금지·절차 강화

    외교부, 사전 예고없는 조치에 강력 항의 美, 韓여행경보 상향… 美 입국 지장 없어한국에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각국이 한국인의 자국 입국과 자국민의 한국행에 대한 제한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23일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한 가운데 확진환자가 계속 증가하면 한국인 입국 제한이나 한국행 자제 조치를 취하는 국가가 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는 24일부터 한국과 일본에 14일 이내 체류한 외국인을 입국 금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앞서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텔아비브에 도착한 대한항공 KE957편에 탑승한 한국인 130명 등 외국인 177명을 입국 금지시키고 항공편을 회항시키는 임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한국 외교부는 23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대리를 초치해 전날 임시 입국 금지 조치가 사전 예고 없이 이뤄진 데 대해 강력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향후 신중한 조치를 당부하고 사전에 긴밀히 협의하자고도 했다. 아울러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 체류 중인 한국인 관광객 1000여명 중 200여명에 대해 예루살렘 인근 군부대에 격리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현지 언론이 23일 보도했지만, 외교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필요 시 조기 귀국 등 관련 대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요르단 정부도 이날 한국과 중국, 이란으로부터 방문하는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이에 한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한 국가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바레인, 키리바시, 사모아, 미국령 사모아 등 6개국이다.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영국, 브라질, 브루나이,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오만,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8개국이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22일 여행경보 4단계 중 한국과 일본에 대해 1단계 ‘일반적인 사전 주의 실시’에서 2단계 ‘강화된 주의 실시’로 상향했다. 국무부는 “한국에서 지속적인 지역사회 확산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여행공지 3단계 중 한국과 일본에 대해 2단계 ‘강화된 사전 주의 실시’를 발령했다. 다만, 국무부와 CDC의 여행경보·공지 2단계는 ‘여행금지’는 물론 한국의 여행경보 2단계인 ‘여행자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국 외교부는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우리 국민의 미국 입국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외교부, 주한 이스라엘 대사대리 초치해 한국인 입국 금지 항의

    외교부, 주한 이스라엘 대사대리 초치해 한국인 입국 금지 항의

    외교부가 23일 이스라엘 정부가 전날 사전 예고 없이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이미 텔아비브에 도착한 한국 국적기를 되돌려보낸 데 대해 항의의 뜻으로 주한 이스라엘 대사대리를 초치했다. 외교부는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대리를 초치해 전날 입국 금지 조치가 사전 예고 없이 이뤄진 데 대해 강력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향후 신중한 조치를 당부하고 사전에 긴밀히 협의하자고도 했다고 외교부 관계자가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텔아비브에 도착한 대한항공 KE957편에 탑승한 한국인 130명 등 외국인 177명을 입국 금지시키고 항공편을 회항시키는 임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24일부터 한국과 일본에 14일 이내 체류한 외국인을 입국 금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21일 최초로 확진환자 1명이 발생하자 입국 금지 대상 국가를 기존 중국 등에서 한국, 일본으로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자국에서 성지순례를 하고 귀국한 한국인 관광객 77명 중 다수가 확진 판정을 받자 한국인 관광객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자국 학생과 교사 200여명에 대해 자가격리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 체류 중인 한국인 관광객 1000여명 중 200여명에 대해 예루살렘 인근 군부대에 격리시킬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현지 언론이 23일 보도했지만, 외교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필요 시 조기 귀국 등 관련 대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23일까지 한국에서의 입국을 금지한 국가는 이스라엘과 바레인, 키리바시, 사모아 등 4개국과 미국령 사모아다.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영국 등 8개국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해리스 대사, 호르무즈파병 압박 등으로 ‘총독’ 비난받아역대 23명 대사 중 유일 직업군인 출신, 국민에게 낯설어결례 논란 전임 대사도 자유롭지 않아…현대사에 영향력미국대사 과거 막후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외교관변화된 역할 조정 과정서 시행착오 겪으며 논란 불거져 ●한국민에게 낯선 미국대사, 해리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지 않느냐. 자기가 무슨 총독인 줄 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 7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곳에(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정부에 파병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총독 행세’라고 비판한 것이다.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당정청은 일제히 반발했다. 다음 날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통일부 이상민 대변인),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남북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표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같은 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국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데 대해 실망했다”며 종료 결정을 번복할 것을 압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선 대사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대사는 첫 직업군인 출신 주한 미국대사다. 1949년 부임한 1대 존 무초 대사부터 해리스 대사까지 23명 대사 중 6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비외교관 출신 6명 중 해리스 대사를 제외하고는 외교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목사, 외교에 익숙한 중앙정보부(CIA) 출신 요원, 국회와 국방부에서 외교를 담당한 정치인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 화법에 익숙한 해리스 대사가 한국민에겐 ‘낯선 대사’라는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한국어에 능숙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한국민과 스킨십을 즐겼던 마크 리퍼트 대사에 익숙했던 한국민에게 4성 장군으로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의 야전군 사령관 스타일이 낯설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와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표출하는 등 거만한 태도를 보여 이 대통령의 반감을 샀다. 박정희 정권에 베트남 파병을 압박했던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카운터파트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을 ‘패싱’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인 조지 W 부시 정부가 마찰을 빚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총독’이라는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 정부와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한국 정치에서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원수급 대우 받은 초대 미국대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주한 미국대사는 존 무초 대사다. 무초 대사는 1948년 8월 13일 주한 최고대표로 임명돼 사흘 후 부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1월 1일 한국을 정부로 승인하고 4월 7일 무초 최고대표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1년 전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장엄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49년 4월 20일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이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삼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고, 무초 대사는 중앙청에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은 무초 대사는 1950년 이 대통령과 6·25 전쟁 첫 2년을 함께 겪었다. 무초 대사는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초 미국 의회에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전쟁 당일인 25일 워싱턴 국무부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됐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들어갔다. 무초 대사는 피난가겠다는 이 대통령을 말렸지만,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알리지 않고 27일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를 따라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가던 도중 이 대통령을 자신의 차에 태워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하야 작전의 선봉장?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을 한 친미주의자였지만, 집권기에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기간 휴전 반대,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휴전을 원하던 미국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 미국은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뿌리쳤고, 미국의 우려에도 독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됐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미국대사들이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하야 계획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대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1955년 5월 취임한 3대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재한 미국인 상사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충돌하자 이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반감을 느껴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했고, 취임 다섯 달 만에 레이시 대사는 사임했다. 후임인 4대 월터 다울링 대사는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의 정치 탄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부딪쳤다. 다울링 대사는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야당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사형을 구형하자 정권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두 차례 만나 조봉암을 구명하려 했으나 조봉암은 1년 후 사형당한다. 1958년 12월에는 이승만 정권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울링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1959년 12월 부임한 5대 월터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 정권의 종말에 일조했다. 매카너기 대사는 1960년 4·19 혁명 당일 “시위자들과 당국이 폭력을 자제하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일과 21일 경무대에 이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2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자 매카너기 대사는 “전국적으로 퍼진 정당한 국민의 불만 표시에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직후 경무대로 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야 의사를 전달 받았다. 경무대 앞에 있던 시위대는 매카너기 대사의 차가 경무대에서 나오자 그가 이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며 ‘매카너기 만세’, ‘미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정희 인정하되 미국 요구 관철시킨 대사들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미국대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으며, 국익과 가치의 딜레마에서 이들의 독재를 방관하기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 취임한 6대 새뮤얼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인정하되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에게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는 전역하고 1963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며, 2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했다.7대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국이 수행하던 베트남전 참전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자 그 해 9월 베트남에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했는데, 브라운 대사는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증파를 요청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0월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했고, 브라운 대사는 이듬해 3월 한국의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로 한국은 경제·군사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국군 장병의 피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유신 정권과 대립했던 대사들 1970년대 미국에 닉슨·포드·카터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길을 걸으며 양국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냉전 완화(데탕트)를 이유로 아시아에서의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력 방위를 요구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8대 윌리엄 포터 대사는 1970년 박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감축에 불만을 갖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 요구를 거부하자 포터 대사는 “(박 대통령은) 엉클 샘(미국)의 큰 젖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 한다”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1971년 10월 취임한 9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미국 당대의 가장 걸출한 전문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구명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비브 대사는 1973년 8월 박정희 정권이 야권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자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김대중 납치 사실을 알고 있으며 김대중이 죽는다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장이자 후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도널드 그레그가 회고했다. 김대중은 납치 닷새 후 서울 자택에서 풀려났다. 후임 10대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실을 알아채고 박정희 정권에 경고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 정권의 견제자인가 방관자인가 11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78년 7월 취임, 이듬해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을 겪은 인물이다. 1977년 출범한 카터 정부는 도덕주의 외교 노선을 앞세우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철군을 추진함에 따라 한미 관계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군 계획을 철회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국회에서 여당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를 동원해 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의원직에서 제명하자 카터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도 했다.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거나 최소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과 그의 참모들을 만나 광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항의하기도 했으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수행하기 하루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보고한 것으로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묵인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신군부의 행동에 미국이 공모자는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12대 리처드 워커 대사는 1981년 8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약 7년 5개월간 재임해 현재까지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1대 무초 대사부터 11대 글라이스틴 대사까지 모두 직업 외교관이었으나, 워커 대사는 학자로서 첫 비외교관 출신 주한 미국대사이기도 하다. 워커 대사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석방 대가로 전두환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성사시켜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화 이행기의 CIA 출신 대사들 13대 제임스 릴리 대사와 14대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CIA 요원 출신으로, 1987년 6·10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했으며 민주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방조 의혹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됐던 1980년대 말 부임했던 릴리 대사와 그레그 대사는 한국민의 거센 반감에 직면해야 했다. 릴리 대사는 반미 시위대로부터 수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으며, 그레그 대사는 시위대의 관저 침입을 겪기도 했다. 특히 릴리 대사의 후임으로 연이어 CIA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야당과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외교 대상이 아닌 정보·공작 대상으로 본다’며 반발하기도 했다.하지만 1987년 6·10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명동성당에 강제 진입해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릴리 대사는 13일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라며 진입을 저지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검토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시위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요청해 받았다.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18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릴리 대사는 결국 다음 날 전 대통령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하고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레그 대사는 취임 약 4개월 후인 1990년 1월 광주를 찾아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책임을 묻는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취임 후 첫 외국 정상으로 초청한 것은 김대중을 사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레그 대사는 노태우 정권의 남북화해정책과 북방정책을 지지했으며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철수를 추진하며 1992년 남북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그 대사는 1992년 남북화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도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미 정부는 그레그 대사와 상의 없이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은 준선시상태를 선언했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레그 대사는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북핵 전문 외교관 전성시대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자 미국의 대한국 외교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취임한 15대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목사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은 아니었으나, 1947~1950년 서울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1959~1964년 연세대에서 신학을 가르친 ‘지한파’였다. 레이니 대사는 1994년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봉 추출을 강행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시행하려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르자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대북 특사로 방북해 중재할 것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으나, 7월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는 9월 제네바합의를 타결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켰다.레이니 대사의 후임인 16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7대 토머스 허버드 대사, 18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모두 북핵 전문 외교관이다. 보즈워스 대사는 1995~1997년 제네바합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역할을 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보즈워스 대사는 2001년 주한 미국대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2009~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미국 대북 협상파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허버드 대사 역시 1994년 북미 제네바협상에 실무급으로 참여한 대북 협상 전문가다. 2001년 9월 취임한 허버드 대사는 이듬해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아울러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 사건, 이듬해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2004년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는 데 임기를 보냈다.후임인 힐 대사는 2004년 9월 취임해 이듬해 2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지명됐으며, 두 달 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하면서 대사직을 내려놓았다. 힐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반미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 대사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리코드 브레이커’ 대사들의 명과 암 19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부터 23대 해리 해리스 대사까지 다섯 명의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 역사의 ‘신기록 보유자’들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직전에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 중 역대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어 구사 대사,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였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는 현재까지 최연소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해리스 대사도 최초의 직업군인 출신 대사 기록을 세웠다. 2005년 10월 취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부임 초기 북한의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를 거론하고 김정일 정권을 ‘범죄 정권’이라고 칭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보였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북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스럽다”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데 대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했으며, 민주당 측은 이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다만 버시바우 대사는 힐 대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공공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사로 평가받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1975~1977년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는 1978년 국무부에 입부한 후 1983~1989년 한국에 다시 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 10월 취임하자마자 33년 전 봉사한 예산중학교를 방문, “예산은 내가 외교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배웠던 곳”이라며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샀으며, 블로그도 개설해 글을 연재하며 ‘파워 블로거’로서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후임 성 김 대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6자회담 특별대표를 역임하다 그 해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김 대사는 2017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듬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과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같이 갑시다’ 한미 동맹 캐치프레이즈 만든 리퍼트 리퍼트 대사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인수팀에 합류했다.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 수석보좌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14년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이전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들이 ‘늘공’(늘 공무원)이었다면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참모로서 관직을 맡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셈이었다.리퍼트 대사는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기종 씨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자 리퍼트 대사의 수술은 물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높아졌다. 리퍼트 대사는 사건 당일 수술을 마치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합시다. 같이 갑시다!”라고 올리며 우려의 여론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같이 갑시다’(Go together)는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가 돼 한미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건배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리퍼트 대사는 대사 부임 전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부임 후 빠르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한국민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부임 후 갖게 된 첫째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줬고, 딸에게도 ‘세희’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유명한 리퍼트 대사는 대사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야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면서 ‘야구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막후 외교서 공공 외교로 대사의 역할 변화했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2월 주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됐다가 세 달 후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된 뒤 7월 취임했다. 전임 리퍼트 대사가 퇴임하고 1년 6개월여 만에 공석을 메운 터라 기대도 높았던 반면, 그가 대북·대중 강경파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6월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제 협상에 진지한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해리스 대사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한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대변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뿐만 아니라 전임 대사들도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는 이슈에서 항상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도 재임 기간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의 기조대로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해리스 대사처럼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티븐스 대사도 2010년 한미의 핵심 현안이자 2000년대 한국 내 반미 정서의 주요인이었던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국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를 바라지만 이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정제된 톤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그럼에도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협상 등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를 전례 없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교롭게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중에 해리스 대사가 부임하고, 그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해리스 대사에게는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미 관계가 과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을 변화한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같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한미 관계가 상호 호혜적 관계로 재조정되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국민 공공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과거 미국대사의 한 마디에 한국 정부의 기조가 흔들렸던 경험을 겪었던 한국민은 미국대사의 발언을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대사들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역사와 한국민의 의심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해를 자초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냉전 이후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미국대사는 한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로 변화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사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한미 정부가 변화된 양자 관계 속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발표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탓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문 대통령 中 출국 전 “예산부수법안, 비상입법사항 등 민생법안 처리” 당부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에게 “예산부수법안, 비상입법사항 등 민생법안을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하기 전 서울공항에 마중나온 당정 인사들과 환담하며 이같이 당부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밝혔다. 문 대통령이 처리를 당부한 민생법안에는 올해 일몰을 앞둔 지방세법 등 재정분권법과 농어업인 보험료를 지원하는 국민연금법, 내년 연금 인상을 위한 기초연금법과 장애인연금법 등이 포함된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피해 양돈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가축전염병 예방법,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대체복무 법안 등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 대표는 “연말까지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고 고 대변인은 전했다. 이날 서울공항에는 이 대표 외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조세영 외교부 1차관, 진옌광 주한중국대사대리,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등이 나와 문 대통령을 환송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시진핑, 미국 탄도미사일 한국 미배치 다짐 받을것

    시진핑, 미국 탄도미사일 한국 미배치 다짐 받을것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열리는 8차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중국으로 출발했다. 이날 서울공항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조세영 외교부 1차관, 진옌광(金燕光) 주한중국대사대리,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등이 나와 문 대통령을 환송했다. 문 대통령은 청두로 가기 전 베이징을 들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오찬을 함께 한다. 시 주석과의 회담은 지난 6월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로 만난 지 6개월 만이다. 특히 회담에서는 한중 양자관계 진전을 위한 논의는 물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타개하고 북미 간 대화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북한의 ‘성탄 도발’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인 만큼 문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도록 도와달라는 ‘우회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또 봉인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불거진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논의도 할 것으로 전망된다.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사드 후속조치 가운데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한국 방문 등과 같이 중국이 풀지 않은 부분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올해 안에 약속했던 시 주석의 방한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 방한 일정을 확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중국 쪽에서는 내년 3~4월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고 밝혔다. 또 시 주석이 국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육상 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대일로 참여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제적 대응 조치란 것이다. 이어 미국이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중거리 탄도 미사일이 한국에 배치되는 것을 중국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 배치에 대한 한국의 다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문 교수는 “사드 사태 이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논리가 깨졌다”며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하는데 미국과 중국의 이해균형점 그리고 국가 이익의 최대 극대화 지점에서 우리는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사안별로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도발에 대해서는 중국도 반대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으로 보이는 불만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중간 북한 무력도발에 대한 합의도 관심거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오찬 이후에는 곧바로 청두로 이동해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양자회담을 하고 만찬을 할 예정이다. 리 총리와는 양국 간 경제·통상·환경·문화 등 실질 분야 등 구체적인 협력을 제고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하게 된다. 이어 문 대통령은 24일 오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나 수출규제 철회와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문제 등 양국 현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이날 오전에는 대한상공회의소·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한중일 경제인들이 주최하는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 3국 경제인 간 교류를 격려한다. 아울러 제 8차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를 비롯한 3국 경제협력 방안, 한반도 비핵화 및 역내 평화 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1박2일 간 중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24일 귀국할 예정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윤상현 외통위원장·러 대사대리 악수

    윤상현 외통위원장·러 대사대리 악수

    막심 볼코프(오른쪽)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가 24일 국회를 방문해 윤상현(자유한국당)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외교·국방부, 러 당국자 초치해 ‘영공 침범’ 엄중 항의…中대사도 초치

    외교·국방부, 러 당국자 초치해 ‘영공 침범’ 엄중 항의…中대사도 초치

    외교부와 국방부가 러시아 당국자를 불러 러시아 군용기가 23일 오전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고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침범한 데 대해 러시아 측에 엄중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는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도렴동 청사로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를 불러 이러한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주한 러시아 대사가 휴가 중이라 대사 대리를 대신 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차관보는 볼코프 대사 대리를 초치한 자리에서 “러시아 군용기의 우리 영공 침범은 한러 양국 간 우의 및 신뢰 관계를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제규범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에 볼코프 대사대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신속하게 본국에 보고하고, 철저한 진상조사 뒤 사실관계를 한국 정부와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도 국장급 인사가 합동참모본부 청사로 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공군 무관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을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이에 앞서 윤 차관보는 오후 2시 30분쯤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도 초치해 중국 정찰기가 사전 통보 없이 KADIZ에 진입한 데 대해 항의했다. 국방부도 두눙이 주한 중국 국방무관을 불러 항의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외교부는 국방부와 관련 정보를 공유하면서 긴밀히 대응하고 있고 계속 그렇게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오늘 아침 중국 H-6 폭격기 2대와 러시아 TU-95 폭격기 2대 및 A-50 조기경보통제기 1대 등 5대가 KADIZ에 진입했다”면서 “이 가운데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영공을 두 차례에 걸쳐 7분 간 침범해 우리 군이 대응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독도 침범’ 뻔뻔한 열강들…러 “침범 아냐”, 중 “비행의 자유”

    ‘독도 침범’ 뻔뻔한 열강들…러 “침범 아냐”, 중 “비행의 자유”

    독도 인근 우리 영공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각각 군용기로 침범한 러시아와 중국이 침범 사실을 부인하거나 “비행의 자유”를 운운하는 등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23일 자국 군용기가 동해를 비행하면서 타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쇼이구 장관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에 대해 경고사격을 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고 러시아의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한국군의 F-16 전투기가 자국의 전략폭격기(TU-95MS)에 대해 비전문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중국은 자국 군용기가 진입한 방공식별구역이 영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구체적 상황은 알지 못한다”면서도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며 국제법에 따라 각국은 비행의 자유를 누린다”고 말했다. 심지어 화 대변인은 중국 군용기가 KADIZ를 “침범”했다는 지적에 “중국과 한국은 좋은 이웃으로 ‘침범’이라는 용어는 조심히 써야 한다”고 경고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늘 아침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 군용기 3대가 KADIZ에 진입했고, 이 가운데 러시아 군용기 1대는 독도 인근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해 우리 군이 대응했다”고 밝혔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앞서 올해 2월에도 있었으며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날 한국 외교부는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와 국방무관을 초치해 항의했다. 또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도 불러 엄중히 항의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中, 88올림픽 선수단 열차로 서울 오려다 北 반대로 무산

    中 참사관 “판문점 경유 北 단호히 거부” 덩샤오핑, 김일성에 올림픽 참가 요청 소련 등 사회주의국가 참여 명분 목적 사마란치 위원장, 北에 분산 개최 제안 중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을 열차에 태워 한국에 보내려 했으나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증언이 31일 공개된 외교부 외교문서에서 나왔다. 당시 주파키스탄 한국대사대리는 1988년 8월 7일 외무부 등에 보낸 전문에서 사흘 전 주파키스탄 중국대사관의 참사관에게 들었다며 “중국이 철도편으로 북한과 판문점을 경유하여 올림픽 선수단을 서울에 보내려고 북한과 교섭했으나 북측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보고했다. 당시 88서울올림픽에 참가한 중국 선수단은 항공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후 남북은 2007년 10·4 정상선언에서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공동응원단을 보낸다는 데 합의했지만 이행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중국은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까지 나서 북한의 서울올림픽 참가를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88년 7월 20일 주미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미국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지난 6월 덩샤오핑은 주베이징 북한대사관을 통해 김일성에게 올림픽 관련 개인적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이어 “메시지에서 덩샤오핑은 김일성에게 북한도 평화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한 세계적 노력에 동조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메시지가 문서인지 구두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7월 초까지 김일성으로부터 메시지에 대한 회신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서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88올림픽의 남북 분산 개최를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사회주의 국가의 대회 참가 명분을 제공할 목적으로 분산 개최를 북한에 제안한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1984년 9월 27일 한국을 찾은 사마란치 위원장은 이튿날 익명의 ‘위원장’(노태우 당시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추정)과의 대담에서 일부 종목을 북한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제의하면서도 “북한은 결코 이 제안을 수락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9월 26일 주프랑스 한국대사에게 북한이 분리개최안을 거부한다면 소련으로서는 “모든 가능한 성의를 표시하였으나 북한이 거절했으므로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북한에 통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985년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네 차례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은 IOC 헌장에 따라 북한이 주장하는 남북 올림픽 공동개최는 불가하다며 일부 종목을 한국과 북한에서 분산해 개최할 수 있다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북한이 거부하면서 분산 개최는 무산됐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김정남 아들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중대 발표 예고

    김정남 아들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중대 발표 예고

    2017년 피살된 김정남 아들 김한솔의 도피를 돕고, 인터뷰 영상을 공개한 비공개 민간단체 천리마민방위가 25일 중대 발표를 예고했다. 천리마민방위는 이날 ‘통지해 드립니다’라는 짧은 공지글을 통해 “이번 주에 중대한 발표가 있겠다. 우리 조직은 어느 서방국가에 있는 동지들에게 도움 요청을 받았다. 위험도 높은 상황이지만 대응하였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 11월에는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잠적한 이후인 1월 3일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보안 이메일 주소를 공개했다. 이번 발표가 조 전 대사대리와 관련이 있을지 주목된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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