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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주민 이어 군인도 분리 전략… ‘김정은 체제 붕괴’ 압박 포석

    北주민 이어 군인도 분리 전략… ‘김정은 체제 붕괴’ 압박 포석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군인과 주민들을 향해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고 밝힘에 따라 ‘탈북 행렬’이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계기로 김정은 체제의 붕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북한 당국 간부와 주민을 향해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통일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어 이번 발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군인과 주민에게 자유와 희망을 약속하며 김정은 체제를 버릴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는 대량 탈북 사태를 통한 체제 붕괴를 조장하는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지금 당장 북한 군인과 주민의 대량 탈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거나 독일식의 ‘프라이카우프’(자유를 산다)를 시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실질적인 대북 붕괴 조치를 시행한다기보다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선택할 자격이 있고 대한민국은 그런 분들을 언제나 환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해 수학영재, 군 장성급 인사, 외교관의 탈북은 물론 지난달 29일에는 북한군 상급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등 몰락하는 북한 체제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운영 중인 대북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가 북한 군인들과 주민을 향해 귀순을 독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 군인들의 심경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1953년 6·25 전쟁 정전 이후 38선 이남으로 넘어온 군인은 수백명을 헤아린다. 일각에서는 북한 급변 사태 등의 문제로 북한 군인과 주민이 대량 탈북할 때의 수용 능력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귀순자들이 거치는 하나원은 교육기관 및 정착지원시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수용시설과는 다르다. 군인들은 탈북한 일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1차 조사를 받고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12주간 정착교육을 받는다. 통일부 내 탈북민 정착 및 수용시설은 경기도 안성 하나원과 강원도 화천분소 두 곳이다. 최대 수용 능력은 1000명 정도다. 이에 대해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에서 대량 탈북이 발생하면 접경 지역에 수용시설을 추가 건설하면 된다. 난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식량과 주거지라면 하나원 같은 교육기관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며 “급변 사태에 맞게 긴 시간의 교육 및 정착보다는 식량과 주거지, 심리적 안정 등을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우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과거에는 북한 군인들이 귀순하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줬다. 1979년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이 마련돼 탈북한 병사들이나 장교들이 혜택을 받았다. 이웅평 대령이 대표적이다. 북한군 공군 조종사 출신인 이씨는 1983년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월남했다. 당시 그가 받은 보상금은 13억원으로, 어지간한 소기업의 1년 매출과 맞먹었다. 이후 탈북 행렬이 늘어나면서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이 ‘귀순북한동포 보호법’으로 바뀌며 혜택이 많이 줄었다. 현재는 탈북 군인들이 가져온 정보의 ‘전술적 가치’에 의해 보상금이 책정돼 있으나 최고액은 수백만원 정도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미그19機 몰고 귀순했던 北군인, 보상금이 무려

    미그19機 몰고 귀순했던 北군인, 보상금이 무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군인과 주민들을 향해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고 밝힘에 따라 ‘탈북 행렬’이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계기로 김정은 체제의 붕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북한 당국 간부와 주민을 향해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통일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어 이번 발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군인과 주민에게 자유와 희망을 약속하며 김정은 체제를 버릴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는 대량 탈북 사태를 통한 체제 붕괴를 조장하는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지금 당장 북한 군인과 주민의 대량 탈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거나 독일식의 ‘프라이카우프’(자유를 산다)를 시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실질적인 대북 붕괴 조치를 시행한다기보다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선택할 자격이 있고 대한민국은 그런 분들을 언제나 환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해 수학영재, 군 장성급 인사, 외교관의 탈북은 물론 지난달 29일에는 북한군 상급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등 몰락하는 북한 체제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운영 중인 대북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가 북한 군인들과 주민을 향해 귀순을 독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 군인들의 심경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1953년 6·25 전쟁 정전 이후 38선 이남으로 넘어온 군인은 수백명을 헤아린다. 일각에서는 북한 급변 사태 등의 문제로 북한 군인과 주민이 대량 탈북할 때의 수용 능력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귀순자들이 거치는 하나원은 교육기관 및 정착지원시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수용시설과는 다르다. 군인들은 탈북한 일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1차 조사를 받고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12주간 정착교육을 받는다. 통일부 내 탈북민 정착 및 수용시설은 경기도 안성 하나원과 강원도 화천분소 두 곳이다. 최대 수용 능력은 1000명 정도다. 이에 대해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에서 대량 탈북이 발생하면 접경 지역에 수용시설을 추가 건설하면 된다. 난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식량과 주거지라면 하나원 같은 교육기관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며 “급변 사태에 맞게 긴 시간의 교육 및 정착보다는 식량과 주거지, 심리적 안정 등을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우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과거에는 북한 군인들이 귀순하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줬다. 1979년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이 마련돼 탈북한 병사들이나 장교들이 혜택을 받았다. 이웅평 대령이 대표적이다. 북한군 공군 조종사 출신인 이씨는 1983년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월남했다. 당시 그가 받은 보상금은 13억원으로, 어지간한 소기업의 1년 매출과 맞먹었다. 이후 탈북 행렬이 늘어나면서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이 ‘귀순북한동포 보호법’으로 바뀌며 혜택이 많이 줄었다. 현재는 탈북 군인들이 가져온 정보의 ‘전술적 가치’에 의해 보상금이 책정돼 있으나 최고액은 수백만원 정도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20년 도움’ 김승연 회장 만난 로버트 김

    ‘20년 도움’ 김승연 회장 만난 로버트 김

    “국민으로서 빚져”… 출판도 지원 로버트 김 “어려울 때 도움 감사” 재미동포 로버트 김과 남몰래 그를 도왔던 김승연 회장이 29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만났다. 최근 출간한 ‘로버트 김의 편지’ 출판기념회를 위해 고국을 찾은 로버트 김이 감사 표시를 하기 위해 김 회장을 방문한 것이다. 1996년 미국 해군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하던 로버트 김은 당시 한국정부가 알고 있어야 하지만 미국 정부가 알려주지 않은 정보 등을 주미대사관에 알려준 혐의로 체포돼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형을 받았다. 당시 로버트 김의 이야기를 들은 김 회장은 가족들의 생활이 어떤지를 파악하게 한 뒤 남몰래 생활비를 지원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그룹에서도 (내용을) 모르다가 2005년 보호관찰 집행정지로 풀려난 로버트 김이 라디오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밝히며 세상에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번에 나온 ‘로버트 김의 편지’ 출판에 필요한 비용도 지원했다. 이날 만남에서 로버트 김은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고 김 회장은 “20년 전 선생님께서 겪은 고초를 언론으로 접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선생님께 ‘빚을 졌다’고 생각했고 제가 작은 뜻을 전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고 답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나가 서울신문이랑 인연이 아주 깊지라.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를 들어갔는데 서울신문에서 파란 눈 외국인 학생이 입소했다고 나를 대문짝만 허게 써줘붑디다. 그래서 나가 지금도 서울신문을 상당히 좋아허요.” 190㎝ 장신에 정말로 솥뚜껑만 한 손.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실린 전라도 사투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듯하다. 지난 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실에서 만난 인요한(57)은 대뜸 벽에 걸린 붓글씨를 가리키며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地不如順天’(지불여순천). “기름지고 풍성한 땅은 순천만 한 곳이 없다”며 흥선대원군이 썼던 표현이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게 소리높여 말하기로는 그만한 사람이 없을 성싶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서도 첫마디를 예의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로 시작했다. -“거짓으로 신고한 게 탄로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냥 추방당하는 걸로 끝날까, 혹시 남조선 첩자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 같은 데 끌려가는 건 아닐까.” 1997년 1월 21일 중국 선양을 떠나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차 안. 창밖으로 보이는 하얗고 차가운 풍경처럼 내 마음도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남한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하면 못 들어오게 할까 봐 선양 주재 북한대표부에 ‘미국 거주자’라고 허위 신고를 해 겨우 방북 허가를 받은 터였다. 한참을 달려 북·중 국경인 압록강에 다다르자 강둑에서 북한 아이들 네댓 명이 드럼통에 불을 지펴 놓고 앉아 까르륵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시커먼 검댕도 지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다. 순천에서 천둥벌거숭이로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고, 북한에도 남한과 똑같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데서 솟구친 가슴 벅찬 느꺼움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1959년 전북 전주에서 내가 태어나자마자 순천으로 터를 옮겼다. 내 이름이 한국어로 인요한, 영어로 존 린턴인데 사람들은 내 영어 이름 ‘존’을 따서 ‘짠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매곡동 일대를 내 집 마당처럼 휘젓고 다녔는데, ‘매곡동 짠이’라고 하면 모르는 동네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생김새가 다른 서양 아이여서도 그랬지만, 워낙 동네 구석구석을 망아지처럼 훑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가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더욱 분명한 내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순천 촌놈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을 웃겨 보려고 일종의 개그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그건 나의 진정성을 전혀 모르는 탓이다. -둘째 형 스티븐 린턴(인세반)은 진외조부의 이름에서 딴 북한지원단체 유진벨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을 세 차례나 만났으며 대북 의료 지원에 앞장서 왔다. 셋째 형 제임스 린턴(인야곱)은 건축가로서 다양한 형태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북한 지원 활동을 하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데, 아버지가 이 땅에서 했던 활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그 일을 우리의 숙명으로 인식하게 됐다. -우리 집안과 한국과의 인연은 동학농민혁명 이듬해인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유진 벨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파송됐는데, 이분이 나의 외증조할아버지다. 그는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첫 출근을 하러 기차를 타고 가다가 ‘이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선교에 뛰어들었다. 벨 할아버지는 광주와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열었다. 그의 사위 윌리엄 린턴은 선교와 의료를 넘어 항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되기도 했다. 그분의 아들이자 나의 아버지인 휴 린턴도 부친의 뜻을 좇아 평생을 전라도 농촌과 도서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당시 심각했던 결핵 퇴치 운동으로 많은 생명을 구했다. -부모님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들의 교육 문제였다. 형들은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아버지가 장로교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들어가 형들이 잠시 미국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형의 담임선생이 어머니를 불러 “이 댁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유치원생만도 못하다”고 한 데 충격을 받고서 한국에 돌아와 막내인 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동료 선교사의 부인에게 일대일 개인지도를 받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의 통신학교 교재를 이용해 영어, 수학, 사회 등을 배웠다. -열세 살 때인 1972년 9월 나는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들고 뜨거운 늦여름 햇빛을 받으며 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대전외국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다. 대전외국인학교는 당시 대전대(지금의 한남대) 뒤편에 있었다. 학교생활은 지겹기 짝이 없었다. 대전외국인학교는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였다. 아마 사관학교 생도들보다도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매곡동 짠이’ 시절만 해도 ‘크면 엿장수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맛있는 엿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가위질로 박자를 맞추는 저 직업은 얼마나 멋진가.’ 염소를 매어 두려고 박아 놓은 꼬챙이들을 뽑아서 엿장수에게 몽땅 가져다주고 엄청난 양의 엿을 얻었다가 혼찌검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뀐 건 열 살 무렵이었다. 염소가 개에게 물려서 치료하는 과정을 고개를 받치고 지켜보는데, 당시 아버지 친구이자 내가 존경하던 장로 선생님께서 “불쌍하지? 염소도 이런데 돈도 없고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하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비로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좀 더 나이를 먹고는 어머니 로이스 린턴(인애자)의 결핵 퇴치 사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 내 목표는 연세대 의과대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국인 미국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미국 대학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나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진학했지만, 생활이 영 편치 않았다. 어서 빨리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지내 보기로 아버지와 약속했던 1년간의 미국 생활이 끝나고 나는 미련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1979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등록했는데, 6개 레벨의 수업 중 나에게 맞는 단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는 형편없는데 말은 너무도 유창하게 하니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를 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980년 연세대 의예과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 동기들보다 두어 살이 많았다. 나의 대학 입학은 한국의 신군부 독재와 함께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기나긴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새로운 독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몇 달 전 10·26이 터졌을 때 한국이 민주화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해 5월 친구와 함께 남해에 놀러 가는 중이었다. 버스가 광주 근처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차에 올라탔다. 청년은 “여러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아주 많은 사람이, 계엄군에게 죽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 그의 말은 두서가 없었지만 간절했다. 정든 고향 순천의 거리 역시 흉흉했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거지?’ 조선대와 전남대에 다니던 친구들이 끔찍한 얘기를 들려줬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광주에 갔다. 만약 검문에 걸리면 나는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고, 한국인 친구는 나의 통역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 같았다. 파괴된 도시, 분노로 일그러진 시민들의 얼굴. ‘왜? 그리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는 60구 정도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고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 모여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확성기를 들고 “왜 내 아들이 국군의 총에 죽어야 했나요”라며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나를 보고는 통역을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이를 본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각국 기자들이 줄줄이 내게 통역을 부탁했다. 시민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북으로 향해야 할 총부리가 남으로 향해 우리의 가족과 선량한 시민을 죽였다”며 분노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영어로 옮겼다. 또 외신기자들의 질문을 한국어로 전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신군부로부터 ‘권고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당시 문무대 입소를 자원하면서 간신히 추방을 면했다. -“요한아…빨리 순천으로 내려와야겠다…아버지께서…돌아가셨다.” 1984년 4월 어느 날 오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연세대 의대 본과 2학년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신 것도 아니고 돌아가셨다니.’ 아버지는 당시 짓고 있던 농촌 교회 건축에 쓰일 자재를 싣고 차를 몰고 오시는 길에 관광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관광버스 기사는 음주운전 상태였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부축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아버지는 계속 물을 찾았고 고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놔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광주기독병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순천은 물론이고 서울의 몇 군데 큰 병원을 빼면 앰뷸런스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졌다. 응급환자를 대하는 의료체계가 이렇게 엉성하다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8년이 흐른 1992년 나와 가족은 3200여만원을 밑천 삼아 ‘한국형 앰뷸런스’ 개발에 착수했다. 15인승 승합차를 광주에서 주문해 순천으로 옮겼다.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목수와 용접공, 자동차 정비공을 불러 개조에 들어갔다. 환자를 눕힐 공간과 환자 머리맡에 의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침대 밑과 천장에 응급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일이 착착 진행돼 1주일 만에 개조된 앰뷸런스를 완성했다. 처음으로 한국형 앰뷸런스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병원보다는 소방서가 인명을 구조하는 데 우선이라는 판단에 소방서에 줬다.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도 미국 텍사스에서 응급구조 일을 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도움을 청해 가르쳤다. 순천소방서의 앰뷸런스는 활동 첫해 1000회의 출동 건수를 기록했고, 이 중 62건은 앰뷸런스가 없었더라면 사망했을 사람을 구조한 출동이었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다지는 일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1997년 1월의 첫 방북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1996년 어머니는 40년 의료봉사의 공을 인정받아 삼성문화재단이 주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상금 5000만원의 용도를 ‘북한에 앰뷸런스 기증’으로 지정했다. 한국에서 직접 북한을 지원할 방법이 없어 선교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이름으로 기증하기로 했고, 그 실무 작업을 위해 들어갔던 것이다. 얼마 후 유진벨재단에 북한 보건성의 통지문이 날아들었다. 결핵 퇴치 사업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북한에서도 이미 1970년대 결핵 환자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1995~1996년 잇따른 홍수 피해와 1997년 가뭄으로 다시 결핵이 확산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결핵환자요양소를 방문해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약품을 분배하고, 검진차 사용 방법을 일일이 알려 주고 다녔다. -나는 4년 전 한국인으로 특별귀화를 했다. 어머니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못하게 해서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2012년 정부에서 다른 나라 국적에 더해 ‘한국인’ 국적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특별귀화제도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온돌방 문화’의 부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온돌방에서 어른들께 지식을 배웠고, 도덕을 배웠고, 소통을 배웠다.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지금 한국은 너무 찢어져 있다. 어린 시절 순천에서 가족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온돌방 아랫목이 너무도 그립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 구한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의 후손으로, 연세대 의과대학을 나와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1997년부터 29차례에 걸쳐 방북, 결핵으로 고통받는 북한 사람들을 돌봤으며 1980년대 ‘한국형 응급차’를 개발하고 보급시켜 당시 낙후된 국내 응급구조 시스템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 의술의 국제화를 통해 ‘의료 한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에 임명됐다. 1895년 한국에 파송돼 광주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 목포 정명학교·영흥학교, 광주기독병원 등을 설립한 호남 기독교의 아버지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그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다. 스물두 살 나이에 한국에 와 48년 동안 의료와 교육 선교 활동을 벌인 윌리엄 린턴(인돈) 선교사가 할아버지, 군산에서 태어나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6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한 휴 린턴(인휴) 선교사가 아버지다.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대전외국인학교, 연세대 의학과, 고려대 의학 석·박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재단법인 순천기독결핵재활원 이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전문위원, 제4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홍조근정훈장
  • [2016 공직열전] 남북 관계·통일 문제 주도… ‘한반도 미래 설계자들’

    [2016 공직열전] 남북 관계·통일 문제 주도… ‘한반도 미래 설계자들’

    통일부는 국가 백년대계인 한반도 통일 문제와 남북 관계를 관장한다. 그러나 남북 관계 부침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으로 남북 화해를 도모하는 듯했으나 북한의 거듭되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연이은 핵실험으로 현재는 대북 압박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핵 문제는 외교부와 국방부가, 대북 정보는 국가정보원이 쥐고 있어 통일부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통일부 고위 관료들은 다른 부처와 달리 ‘한반도의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장관을 비롯해 고위 관료 대부분이 대북 정책과 남북회담의 베테랑들이며 석·박사 학위 소지자로, ‘작지만 강한 조직’이란 평가다. 통일부는 홍용표 장관을 필두로 산하에 2실, 3국, 1단, 25과 1팀으로 이뤄졌다. 인력은 본부 240명을 포함해 총원 553명이다. 산하기관으로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과 남북교류협회가 있으며 최근에는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앞두고 있다. 장관 아래 통일부 업무 전반을 살피고 있는 김형석(51·행정고시 32회) 차관은 통일부의 핵심인 정세분석국장, 대변인, 남북회담본부 상근대표, 청와대 통일비서관 등을 거쳤다. 북한 정세에 밝고 ‘아이디어맨’이란 평가다. 정세분석국장 시절 아이디어를 쏟아 내고 직원들에게 이틀 만에 보고서를 만들어 오라고 주문할 정도로 성격이 급하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김의도(50·행시 32회) 기획조정실장은 대국회 업무를 비롯해 통일부 안팎의 사정을 살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치밀하고 안정적인 업무 스타일로 기획조정실장에 적임자라는 평이다. 또 말수가 적고 성실하게 일하는 정통 공무원형이다. 대변인 시절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단골 비난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북한의 행태에 대해 정부 성명을 전달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상대였을 것이다. 통일정책협력관, 남북출입사무소장, 대변인, 남북회담본부 상근대표·운영부장을 거쳤다. 김남중(52·행시 33회) 통일정책실장은 통일 정책의 선봉이자 밑그림을 그리는 통일부의 핵심이다. 남북 교류 협력뿐 아니라 북한과의 협상 등 회담의 기조와 방향성을 결정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통일 정책을 조율하기에 부내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로 꼽힌다. 김 실장은 꼼꼼함과 동시에 융합적인 업무 스타일로 능력을 인정받아 가장 중요한 자리에 지명됐다. 신망이 뛰어나 지난해 부내 6급 이하 직원들이 뽑은 ‘가장 닮고 싶은 고위 공직자’ 1위에 올랐다. 교류협력국장, 통일교육원 교수부장,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선임행정관, 교류협력기획과장 등을 역임했다. 한기수(53·행시 34회) 남북회담본부장은 회담, 교류, 탈북민 등 부내 주요 업무를 경험한 베테랑이다. 소탈하고 업무 추진력이 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가까운 직원들과는 허물없이 지내지만, 업무에서는 공사 구분이 명확하다는 평이다. 본부장으로 오기 전에는 입국 초기 탈북민 정착 교육을 전담하는 하나원장을 1년 넘게 맡아 무리 없이 이끌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사무소장, 개성공단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장,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장 등을 거쳤다. 이덕행(56·행시 32회) 남북회담본부 상근대표는 부내에서 ‘덕장’으로 통하고 있다. 대표적인 ‘긍정의 아이콘’으로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원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며, 두주불사(斗酒不辭)로 알려졌다. 자타가 인정하는 ‘북한이탈주민 전문가’다. 탈북민 업무를 담당하는 하나원 교육기획과장과 통일정책협력관을 합쳐 7년 넘게 일했다. 이 대표는 주미 한국대사관 주재관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일했다. 통일정책협력관, 정책기획과장, 교육기획과장을 맡았었다. 부내 유일한 가급 개방직위인 통일교육원장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신인 이금순(53) 원장이 맡고 있다. 이 원장은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과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한 북한 인권 전문가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이후 산업대와 교육대를 중심으로 한 통일교육 선도대학 지정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병철(49·행시 34회)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장(하나원장)은 대변인, 정세분석국장, 통일정책기획관,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장 등 통일부 주요 부서를 두루 거친 정책통이다. 친화력이 뛰어나 직원들의 신망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에서는 꼼꼼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변인을 역임해 언론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평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탈북 수학영재, 제3국 거쳐 24일 한국 도착”

    1997년 홍콩 주권 中 반환 이후 홍콩에서 탈북자 한국행 첫 허가 지난 7월 중순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했던 북한 수학영재 학생이 한국에 입국했다고 홍콩 통신사인 팩트와이어가 28일 보도했다. 통신은 “북한 수학 영재인 이모군이 80일간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홍콩을 떠나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을 외교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복수의 외교소식통도 이군이 지난 24일 홍콩을 떠나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은 탈북자가 중국에서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제3국을 거쳤지만 당일 한국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참가를 위해 7월 6일부터 홍콩에 머물던 이군은 7월 19일 대표단과 함께 중국 광저우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같은 달 16일 저녁 사라진 뒤 한국총영사관을 찾아 망명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은 한때 8월 말 입국설이 나왔으나 이후에도 홍콩 체류가 계속 목격된 바 있다. 8월 말과 9월 초까지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에서 침구를 정리하는 모습 등이 홍콩 매체에 포착됐다. 1997년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뒤 탈북자가 홍콩에서 한국행을 허가받은 것은 처음이다. 이군은 한국과 인접한 북한 강원도에 살면서 한국 TV와 라디오 방송을 접할 기회가 많았으며 오래전부터 한국을 동경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학교사인 부친의 독려로 어릴 적부터 한국행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탈북 학생이 홍콩 체류 기간 내내 밝은 모습을 보였다”며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 직원이 학생을 위해 영사관 내 임시 숙소를 마련하고 심야 보초를 섰으며 주중국 대사관의 탈북자 담당 직원도 한국행 대비 등을 도왔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北대사관 개설 논란 벨라루스 “아그레망 요청도 없었다”

     옛 소련국가인 벨라루스에 북한 대사관이 공식적으로 개설된 것은 아니라고 벨라루스 외무부가 27일(현지시간) 밝혔다.  벨라루스 외무부 대변인 드미트리 미론칙은 27일(현지시간) 자국 외무부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문을 통해 북한 측의 대사관 개설주장과 관련 이같이 밝혔다.  미론칙은 “벨라루스에 제대로 활동하는 북한 대사관은 없다”면서 “대사가 공식 부임하지 않았으며 아그레망(사전 부임 승인) 요청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 측의 아그레망 요청이 오면 “이와 관련한 결정은 별도로 내려질 것”이라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미론칙은 “벨라루스와 북한은 지난 1992년 수교했으며 이는 상호 합의에 따라 외교 관계 유지를 위한 대사관을 개설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상황 악화가 있기 오래전부터 우리 측에 대사관 개설을 요청해 왔다”면서 “이같은 요청은 지난해 3월 북한 외무상이 벨라루스를 방문했을 때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양측은 경제통상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했으며 이는 개방 경제를 가진 벨라루스에 중요하다”면서 “이 방문 뒤 벨라루스 외무부에 경제통상 관계를 담당하는 3명의 북한 외교관이 주재 등록을 했다”고 덧붙였다.  리수용 전 북한 외무상은 지난해 3월 벨라루스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마케이 외무장관과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미론칙 대변인은 이어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북한이 언급되는 모든 소식이 파문을 불러일으키지만 (북한) 대사관 개설과 관련한 소식은 놀라울 게 없다”면서 “평양에는 중국, 러시아는 물론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폴란드 등을 포함한 약 30개국의 외교 공관이 있고 체코, 스웨덴,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포함 약 40여개국에 북한 대사관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역사가 보여주듯 (직접) 대화는 위협이나 공갈, 간접적 대화보다 낫다”면서 “우리는 모든 갈등 상황의 해결을 위한 직접적 대화를 지지하며 이같은 입장은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견지돼 왔다”고 강조했다.  미론칙은 그러나 어떤 경우든 최근 북한이 국제법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어기고 행한 행동에 대한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시험에 대한 비판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벨라루스 측의 이같은 발표는 북한이 잇따라 핵·미사일 시험을 하면서 국제법과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상황에서 자국 내 북한 대사관 개설을 당장 허가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북한은 지난 21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벨라루스에 대사관을 개설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벨라루스 주재 외국 공관 목록에는 북한 대사관이 올라오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김사드’의 한가한 사드 외교

    [world 특파원 블로그] ‘김사드’의 한가한 사드 외교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는 지난해 초 중국에 부임할 때부터 ‘김사드’로 불렸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명실상부한 한국 안보의 ‘간판’인 김 대사가 해야 할 일은 중국을 상대로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올해 들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고 한·미가 공식적으로 사드 배치를 선언하면서 대중 외교의 최전방에 선 김 대사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졌다. ●외통위 국감자료로 외교활동 살펴보니 김 대사는 중국에서 어떤 외교 활동을 펼쳤을까? 서울신문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인영(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김 대사의 공식 활동과 주중 한국대사관 예산 집행 내역 자료를 얻었다. 243일 동안 김 대사의 공식 활동은 96차례였다. 평일에도 공식 활동이 없는 날이 많았다. 이 가운데 중국 관계자와의 면담은 27차례였다. 나머지는 주로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의 면담 또는 중국에서 열린 한국 행사 참석이었다. 특히 중국 측과 경제·문화 교류 목적의 면담이 아닌 ‘한·중 관계 및 한반도 정세 관련 의견교환’이 목적인 순수한 외교적 면담은 13건에 불과했다. 13건 가운데 2건은 중국 외교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항의하기 위해 김 대사를 초치해 이뤄진 것이다. 북한 제재와 사드 설득을 위해 대중국 외교 활동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던 시기에 주중 대사가 한 달에 불과 1.6번꼴로 중국의 외교라인 담당자를 만난 셈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지난 1월 6일 김 대사는 중국 관계자를 만나기는 했으나, 북핵 문제와는 거리가 먼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이었다. 김 대사는 닷새 뒤에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한 7월 8일 직후 중국의 ‘한국 보복론’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김 대사는 당일 중국 외교부에 초치된 이후 한 달 만인 8월 8일에야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면담을 가졌다. ●한국 안보 간판치곤 초라한 성적표 물론 공식 활동만으로 대사의 외교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부임 이후 줄곧 “우리는 정보를 생산하고 보고만 할 뿐 공개할 권한은 없다”며 ‘보안’을 강조한 김 대사의 특성상 비밀리에 외교 작업을 벌였을 수도 있다. 김 대사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최근 주중대사관은 대사관 국정감사까지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을 고려하다가 특파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북핵·사드… 對中 공세외교 절실한 때 외교는 국방과 달라서 보안만큼이나 공개 활동도 중요하다. 올해 1~8월 주중 한국대사관이 쓴 업무추진비는 22만 9905달러(약 2억 5329만원)였다. 이 기간 대사관저에서는 연회가 25번 열렸는데, 한국인을 상대로 한 연회가 16번이었다. 업무추진비를 더 쓰고, 연회를 더 열어도 좋으니 중국 외교 라인을 상대로 공세적인 외교를 펼쳤으면 좋겠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설치미술가 이불, 佛 공로훈장 받는다

    설치미술가 이불, 佛 공로훈장 받는다

    파리서 ‘새벽의 노래 Ⅲ’ 전시 등 한국 -프랑스 문화 교류에 협력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설치미술 작가 이불(52)이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예술 분야 협력을 이끈 공로로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받는다고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27일 밝혔다. 이불은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하는 공식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파리의 팔레드도쿄 내 ‘명예의 공간’에서 대형 설치작품 ‘새벽의 노래 Ⅲ’를 전시했고, 북부도시 릴에서 열린 기획전시 ‘서울, 빨리빨리’전에 출품해 동시대 한국의 예술을 프랑스에 알렸다. 서훈식은 새달 7일 오후 서울 서소문로 주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열린다. 그동안 국내 인사 가운데는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영화배우 윤정희·피아니스트 백건우 부부,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를 운영하는 전용준 태진인터내셔널 회장 등이 이 상을 받았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1980년대 말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불은 다양한 퍼포먼스와 설치, 오브제 작업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 상품화 등을 비판했다. 1990년대 들어 과장된 신체와 괴물 형태의 조형물을 이용한 사이보그 시리즈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초대전에서는 날생선의 썩어 가는 냄새를 끌어들이는 파격적인 시도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에 이어 프랑스 퐁피두아트센터 등 주요 해외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인류의 역사적 사건과 결합시켜 성찰과 비판의 시각을 제시하는 ‘나의 거대서사’ 시리즈를 이어 가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11월 5일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에 세계적인 스타 프룸 참가

    11월 5일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에 세계적인 스타 프룸 참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이클 스타 크리스 프룸(31)이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세계적인 아마추어 사이클 대회 ‘2016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L’Etape Korea by le Tour de France)’에 참가한다.    오는 11월 5일과 6일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개최되는 ‘2016 레탑 코리아’는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아마추어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 레탑 두 투어’의 일환으로, 11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프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의 일부 스테이지를 재현해 아마추어 선수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회다. ‘레탑 두 투어’에는 정상급 프로 선수들도 함께 초대돼 약 3000명의 아마추어 선수들과 라이딩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이번 ‘2016 레탑 코리아’에는 프룸과 국내 라이딩 팬들이 함께 호흡하게 된다.    11월 5일 레이스 경기가 펼쳐지며 쳐져, 사이클 또는 프랑스 문화를 알리는 공개 축제도 이틀 동안 진행되며, 자전거 엑스포 및 ‘투르 드 프랑스’ 특별 전시, 스타 선수와의 만남, 프랑스 문화 체험 등이 준비된다.    프룸은 영국의 국제사이클연맹(UCI) 프로 팀인 ‘팀 스카이’(Team SKY) 소속으로 지난 2013년, 2015년, 2016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투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프룸은 올해 대회 몽방투 구간에서 부서진 바이크를 들고 새 바이크가 올 때까지 두 발로 뛰어 올라가 많은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주한프랑스대사관과 함께 대회를 주관하는 스포츠 및 문화사업 전문 회사 왁티(WAGTI)의 강정훈 대표는, “’제 1회 레탑 코리아’ 개최를 맞아 현존하는 최고의 사이클리스트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프룸의 한국 방문이 성사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프룸의 이번 방한이 한국의 많은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들과 사이클 팬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2016 레탑 코리아’ 참가 신청은 다음달 5일까지 대회 공식 홈페이지(www.letapekorea.com)를 통해 하면 된다. 페이스북(www.facebook.com/LEtapeKorea), 인스타그램(@letapekorea)을 통해 관련 내용을 문의할 수 있다.    투르 드 프랑스’의 영감을 받아 기획된 ‘레탑 두 투어’의 아시아 스테이지가 한국에서 최초로 구현돼 ‘투르 드 프랑스 레탑 코리아’(L’Etape Korea by le Tour de France)로 11월 5-6일 이틀간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개최된다. 레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부고]

    ●윤치상(전 서울경찰청 경무관)씨 별세 성욱(기획재정부 국장)씨 부친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3410-6902 ●전병준(전 신흥항공 전무이사)병율(차병원그룹 대외협력본부장)병곤(존스메디 대표)씨 부친상 염창선(리더스헬스케어 영상의학과 과장)씨 시부상 23일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2019-4003 ●남재우(창원대 사학과 교수)씨 모친상 25일 창원시립상복공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55)712-0893 ●김동균(서울도시철도공사 부역장)상균(공항철도 주임)승균(한국일보 종합편집부 차장)씨 모친상 25일 의정부 백병원, 발인 27일 오전 5시 (031)844-4450 ●김호영(연합뉴스TV 부산광고지사장)씨 모친상 25일 부산 서호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51)949-1024 ●최민영(충청북도교육청 학생배치담당 사무관)씨 장인상 24일 청주성모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43)210-5444 ●홍성경(이노센트가구 대표이사)성도(브라우니 인테리어소품 대표)영자(마두파킹프라자 대표)민영(주한영국대사관 선임공보관)여신(여신갤러리카페 대표)씨 부친상 류해원(일산 헤이즐넛농장 대표)서형석(더명장몰 대표)송용기(강진도깨비농장 대표)씨 장인상 24일 인천 국제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3시 (032)290-3525 ●이춘석(우미건설 홍보부장)씨 장인상 2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2227-7580 ●류종성(전 광주광역시청 대변인)씨 부친상 25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7시 (062)250-4413
  • [2016 공직열전] 다자외교·통상분야 주력… 경제영토 확장에 한몫

    [2016 공직열전] 다자외교·통상분야 주력… 경제영토 확장에 한몫

    외교부 2차관 산하에는 다자외교와 경제통상 관련 부서들이 포진해 있다. 1차관 산하 지역국들이 일대일 외교를 담당한다면 2차관 산하 부서들은 국제기구, 조약·협약, 안보 및 경제공동체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이 관계된 문제들을 다룬다. 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를 넓히거나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우리 교민과 여행객들을 보호하는 일도 맡는다. 원자력비확산외교기획관실은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군축·비확산, 핵안보 문제를 담당하며 이와 관련된 대북 제재 이행 상황도 관할한다. 함상욱(48·외시 25회) 기획관은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 채택 이후 외교부에서 가장 바쁜 인물로, 수시로 장관실에 불려 가는 등 윤병세 장관의 신임이 두텁다. 부드럽고 차분한 인상 뒤로는 총알과 포탄이 스쳐가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생환한 극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족구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협력국은 해외 무상원조 및 인도적 지원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다. 이용수(50·외시 22회) 국장은 사무관, 과장 시절을 거쳐 유엔 대표부에서도 개발협력 업무를 맡는 등 10년 넘게 이 분야에 집중한 개별협력정책 전문가다. 유엔에 있을 당시 우리나라가 경제사회이사회 의장국으로 선출되는 데에 사전 작업을 했고 ‘리우+20’ 등 국제 환경회의 실무를 맡기도 했다. 유쾌한 성격으로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 국제법률국은 조약과 국제법 재판, 영유권 문제 등을 담당한다. 세계에 독도 주권을 알리는 데 땀을 흘리는 부서이기도 하다. 박철주(49·외시 25회) 국장은 과장, 심의관을 차례로 거치며 국제법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유기준(51·외시 27회) 심의관 역시 국제법규와 서기관, 영토해양과장 등을 거치며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문화외교국은 한국을 알리는 공공외교와 문화예술스포츠 교류, 유네스코 업무 등을 담당한다. 최영삼(50·외시 24회) 국장은 동북아2과장(중국담당) 등을 거친 중국 전문가다. 지난해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대응 업무를 맡아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기록하도록 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재외동포영사국은 교민과 여행객 보호, 영사·여권 업무 등을 담당하며 최근 테러가 빈발하면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곳이다. 김완중(53·외시 24회) 국장은 2016리우올림픽 당시 임시영사사무소 운영단장을 맡아 우리 선수단과 여행객을 보호하는 업무를 맡았다. 정진규(51·행시 35회) 심의관은 외교부 주요 국장·심의관 중 유일하게 행시 출신이다. 공보처, 정보통신부를 거쳐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에서 경제협력 업무를 맡았고 이후에는 계속 외교부에 몸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 부산 세계원조총회 유치 등 개발협력 분야와도 인연이 깊다. 2014년 시에라리온 등에 에볼라바이러스가 확산됐던 당시 의료지원을 위한 정부합동 선발대장으로 현지에서 활약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경제 공동체 관련 업무를 지휘하는 김영준(52·외시 24회) 국제경제국장은 경제·통상 분야에서 20년 이상 경력을 쌓아 온 손꼽히는 통상 전문가다. 다자통상협력과 근무 시절 우리나라 FTA 협상의 청사진을 그린 ‘FTA 로드맵’을 작성했고 한·칠레 FTA 등에 관여했다. 지난해 수입규제 대책 업무를 맡아 4건의 반덤핑 상계조치 사건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소탈한 성품에 신뢰를 주는 업무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천준호(52·외시 23회) 양자경제외교국장 역시 경제통상 관련 업무를 오래 맡았다. 주미 대사관 근무 시절에는 미국에서 한·미 FTA 체결 지원을 위한 실무를 맡았다. 홍영기(50·외시 24회) 심의관도 통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으며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다. 수입규제 대응반장 역할을 하며 한·일 수산물 수입 분쟁 관련 업무를 맡고 기업 지원, 경제 활성화를 위한 외교정책 등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후협약 이행 관련 업무를 맡은 이형종(49·외시 23회) 기후변화환경국장은 주OECD 대표부, OECD사무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차분하고 세심한 성격에 글재주가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앙코르 제국의 역사와 유적을 소설 형식으로 다룬 ‘소설 앙코르와트’라는 책을 썼다. 북핵 업무를 총괄하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6자회담을 비롯해 북핵 정책 협의를 담당하는 북핵외교기획단과 평화체제·통일 문제 등을 맡은 평화외교기획단으로 나뉜다. 6자회담 차석대표인 김건(50·외시 23회) 북핵외교기획단장은 북미·북핵 부서를 모두 거쳤다. 신중한 성격에 아이디어가 풍부해 윤 장관으로부터 큰 신뢰를 받고 있다. 김용현(51·외시 24회) 평화외교기획단장 역시 북핵·북미 업무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라크에서 아르빌연락사무소장을 맡아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현지 주민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이어 가 한국에 대한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나지 않고 활발한 성격으로 ‘뚝심’이 강한 업무 스타일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핏줄 속인 첼시 리보다 덮어준 연맹이 더 밉다

    핏줄 속인 첼시 리보다 덮어준 연맹이 더 밉다

    2015~16시즌 여자프로농구 하나은행의 준우승 기록이 삭제됐다. 범죄 의도가 명확한 첼시 리(27)의 ‘혈통 사기’ 때문에 그와 함께 땀흘린 동료들이 일궈낸 준우승 영예도 허공에 흩어졌다. 이를 막지 못하거나 방조한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검찰 수사 발표 100일이 지나도록 책임지는 이가 없다.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달 29일 2016~17시즌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선수들의 피땀을 날려버린 것과 팬들을 실망시킨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시작한 새 시즌에 누가 신뢰와 성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의아하기까지 하다. KEB 하나은행 구단 간부들만 제재하곤 허술한 승인으로 범죄에 동조한 연맹의 책임을 스스로 뭉개고 있다. 한 시즌 내내 이어진 사기극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언론도 정면으로 연맹의 책임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지난 두 달여간 이 일에 간여한 이들과 연맹의 잘못을 누구보다 아파하는 이들과의 이메일 인터뷰와 면담을 통해 이 희대의 사건 전모와 연맹이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돌아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2015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처 어바인에서 첼시와 그의 미국 에이전트 코리 매코이가 A구단 관계자들과 만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매코이는 첼시의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며 1989년 태어난 첼시의 출생증명서를 제시했다. 이상하게도 반쪽이 테이프로 붙여진 채 복사된 문서였다. 부친의 국적란에 ‘Seoul Korea’라고 돼 있었고 부친의 사회보장번호 없이 모친 것만 있어 A구단 관계자들은 이것부터 미심쩍어했다. 매코이와 A구단의 다리 역할을 맡은 재미교포 X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실 X씨는 2014~15시즌 중 다친 외국인 선수의 대체 선수를 물색하던 B구단과 매코이를 연결해 준 인물이었다. 당시 매코이는 첼시의 증조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WKBL의 해외동포선수 자격에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X씨는 2007년부터 계속해서 동포 선수를 WKBL에서 뛰게 하는 데 역할을 했던 에이전트라 그때도 동포 선수와 계약할 때 반드시 필요한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매코이는 첼시가 루마니아에 있어 서류를 떼려면 자메이카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B구단은 서류도 불충분하고 샐러리캡도 남아 있지 않아 영입을 포기했다. X씨는 매코이와 A구단을 연결하면서 다시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했고, 매코이는 자메이카까지 가야 한다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오전에 테스트를 마친 매코이와 첼시는 오후에 계약 조건을 논의하기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A구단 관계자들과 X씨는 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8시간 뒤 돌아온 둘은 로스앤젤레스에 쇼핑을 다녀왔다고 둘러댔다. 매코이는 첼시의 계약 조건에 대해 굉장히 자신 있는 태도로 50만 달러는 줘야 한다고 했다. A구단은 첼시의 서류가 완벽하게 구비되면 7만 달러를 줄 수 있다고 맞섰다. 그렇게 헤어진 다음날 A구단 관계자들은 이튿날 로스앤젤레스 공항 출국장에서 박종천 하나은행 감독, 재미교포 에이전트 Y씨와 마주쳤다. 같은 비행기로 어색하게 귀국했다. 박 감독은 외국인 선수 테스트 때문에 왔다고 설명했지만 A구단 관계자는 매코이가 박 감독과 접촉했으며 그 결과 몸값을 그렇게 높여 불렀구나라고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매코이와 하나은행은 Y씨를 에이전트로 삼아 계약했다. X씨는 이 과정에 WKBL 지도부가 간여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 감독은 두 달 뒤 미국 뉴욕 맨해튼 술집에서 A구단과 B구단 관계자들, X씨에게 ‘첼시를 가로챈 것 같아 선배로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박 감독은 Y씨에게 5000달러를 건네 사립탐정을 고용, 첼시의 한국인 친할머니를 찾았다며 곧 첼시를 한국에 데려온다고 했다. 할머니 이름이 처음에는 ‘김복순’이었는데 어느 순간 ‘리현숙’으로 바뀌었다. 두 구단 관계자들은 다른 팀이 교섭 중인 선수를 접촉하지 않는다는 농구계 신사협정을 파기한 것을 지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두 구단 모두 첼시의 아버지가 한국인이라고 했다가 두 달 만에 한국인 친할머니를 찾았다고 말이 바뀐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A구단에 입단하려던 해외동포 선수들에게는 가족관계 증명서, 부모의 주민등록등본과 여권 사본, 본인의 출생증명서 등을 요구했지만, 첼시를 영입한 하나은행에는 본인과 부친의 출생증명서, 할머니의 사망증명서만 제출하도록 허용한 것도 의아한 대목이었다. WKBL은 아주 어렸을 때 입양됐다는 점, 부친과 할머니가 모두 사망한 점을 예외 승인의 이유로 들었다. 와 A구단, C구단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중순부터 2015~16시즌 개막을 앞두고 미디어데이를 개최한 10월 19일까지 계속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X씨는 미국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양원준 사무총장 등에게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 양 총장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연맹의 자문변호사도 괜찮다는데 왜 너만 그러느냐”고 핀잔을 놓았다. WKBL의 한 팀장은 ‘왜 다른 동포 선수에게는 부모의 국적포기증명서 등 상식적이지 않은 서류까지 요구하면서 첼시에게는 가장 기본이 되는 가족관계증명서조차 요구하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그건 X씨가 알 바 아니다”라고 면박을 줬다. WKBL이 연맹 자문변호사로부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 것은 ‘아포스티유’를 발급받았기 때문이었다. 정식 명칭은 ‘외국 공문서에 대한 인증의 요구를 폐지하는 협약’인데 줄여서 ‘아포스티유 협약’(Apostille Convention)이라고 한다.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아포스티유 확인만으로 외국 공문서의 효력을 인정하도록 한 다자간 협약이다. 가입국끼리는 공문서를 제출하기 위해 해당 국가 영사기관의 확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A구단과 C구단 관계자들은 우리네 공증 절차와 마찬가지로 얼마 안 되는 돈만 쥐어 주면 발급받을 수 있는 허술한 아포스티유로는 첼시의 서류가 적법하게 발급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WKBL에 첼시의 선수 등록을 유보하더라도 미국 대사관 등 미국 사법기관을 통해 서류를 발급한 기관이 적법하게 발행했는지 크로스 체크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묵살됐다. 으로 첼시의 혈통 사기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미디어데이 직후 열린 이사회에서 주어질 수 있었다. 절반이 넘는 구단 단장들이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 첼시의 선수 등록을 유보하고 검증하자고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신선우 총재의 ‘뒷배’로 여겨지는 여권 실세의 매제이자 보좌관이 연맹의 특별고문 자격으로 참석하자 없던 일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기업이 금융권인데 실세의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X씨는 며칠 뒤 한 구단 관계자로부터 “신 총재가 하나은행을 제대로 밀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책임질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A구단 관계자는 “리그가 인기도 있고 형편이 넉넉하다면 연맹이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든 바로잡겠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연맹과 구단들, 리그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솔직히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럽다”고 자책했다. C구단 관계자는 “지금은 구단들이 숨죽이고 있지만 실세와 신 총재의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판단되면 구단들도 제 목소리를 내 다시 (첼시 문제로)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5~16시즌이 시작돼 첼시가 1라운드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WKBL 안에서 그녀의 혈통 증명을 정밀하게 해보자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언론도 일부 매체가 번갈아 가면서 단편적인 문제제기만 했을 뿐이다. 첼시는 지난 3월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기자단 투표 93표 중 90표를 얻어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상 소감으로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지금 돌아보면 소름 끼치는 멘트를 남겼다. 귀화시켜 국가대표팀에 선발해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대한농구협회, 대한체육회 등이 일사천리로 법무부에 특별 귀화 신청을 했고 이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부친과 할머니 서류 모두 가짜인 것으로 들통나 지난 6월 영구제명됐다. 당초 부적격 선수 첼시와 한 시즌을 함께 뛰었던 6개 구단 120명 안팎 선수들의 모든 수고와 고통이 오롯이 담긴 기록들도 삭제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하나은행의 준우승과 첼시 본인의 기록만 삭제된다.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참 어이없고 허망한 일이다.
  • 中도 강한 對北제재 나서나

    中도 강한 對北제재 나서나

    북핵 6자회담의 한국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3일 5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을 제재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이 강력한 신규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中에 원유 수출·육로 물자 차단 등 요구 김 본부장은 이날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의 전날 회동 결과를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한·중 양측은 북한의 핵실험에 엄중한 우려를 공유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재확인했다”면서 “무모한 도발에 대해 북한이 대가를 치르도록 국제사회가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대응 조치와 관련, 김 본부장은 “우선 안보리 차원의 보다 강력한 신규 결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중국 측이 동의했다”면서 “앞으로 채택될 신규 결의 이행 과정에서도 양측은 서로 긴밀하게 협의해 나아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안보리 결의안에 한국이 요구하는 사안이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에 민생 관련 광물 수입과 원유 수출도 제한할 것과 육로를 통한 물자 운송 차단 등을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구체적인 사항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안보리 이사국들의 제재 논의를 지켜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회담과 관련해 고위 당국자는 “우리는 기존 안보리 이행 과정에서 허점이 있으니 이 틈새를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국도 더 강력한 제재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훙샹그룹 문제도 함께 논의 회담에서는 북핵 개발 지원 의혹을 받는 중국 훙샹그룹 문제도 논의됐다. 고위 당국자는 “중국 측이 이 그룹의 불법 행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면서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조사를 추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의 한반도 관련 3원칙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 있지만,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도 대화를 꺼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인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담은 만찬을 포함해 5시간 동안 이어져 기존 2~3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북한은 “있다” 벨라루스는 “없다”? 대사관 미스테리

    북한은 “있다” 벨라루스는 “없다”? 대사관 미스테리

     러시아에 이웃한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국기) 내 북한 대사관 개설 여부를 두고 북한은 개설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벨라루스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벨라루스 현지 온라인 뉴스통신 툿바이(TUT.BY)는 22일(현지시간) 자국 외무부가 북한 대사관 개설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벨라루스 외무부는 북한 대사관 개설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벨라루스 주재 외국 공관 목록을 참고하라고만 했다. 이 목록에 북한 대사관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 관계자는 통신에 “지난 19일 오승호 외무성 (제3)국장의 벨라루스 방문 기간에 현지 대사관이 개설됐으며 현재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면서 “2~3명이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대사가 파견되지 않은 만큼 본격적 대사관 업무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1일 “조선(북한) 외무성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외무성 실무대표단이 벨라루씨(벨라루스) 외무성의 초청에 따라 18일부터 20일까지 벨라루씨를 방문하였다”면서 “방문 기간 대표단은 벨라루씨 외무성 국장과 협상을 진행하고 이 나라 주재조선 대사관 개설식에 참가하였다”고 밝혔다.  북한 측의 대사관 개설 보도에 대해 벨라루스 당국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잇따라 핵·미사일 시험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벨라루스가 자국 내 북한 대사관 개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각국의 제재 속에도 대사관을 새로 열었다는 사실을 알려 자신들의 건재를 주장하고 싶은 반면, 벨라루스 정부는 주변국들의 눈치를 보느라 (대사관 개설을 승인했음에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옛 소련에서 독립한 벨라루스와 지난 1992년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지금까지 무역성 산하 무역대표부만 뒀을 뿐 외교 공관을 개설하지 않았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美하원 ‘위안부 결의안’ 9주년… 혼다 의원·이용수 할머니 재회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미국 의회에서 대표적 지한파인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20일(현지시간)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미주한인 풀뿌리단체 시민참여센터(KACE)가 이날 워싱턴DC 연방의회 건물에서 개최한 ‘미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 9주년 기념행사’에서 혼다 의원과 이 할머니는 서로를 “자랑스럽다”고 치켜세우며 감격의 포옹을 했다. 9년 전 혼다 의원과 에드 로이스(공화·캘리포니아) 하원 외교위원장 등이 중심이 돼 발의, 채택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은 1943년 16세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로 희생당한 이 할머니가 의회에서 한 생생한 증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다 의원은 “다음 세대가 위안부 문제를 배울 수 있도록 (역사)교과서에 제대로 기술하고,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통해 직접 느끼고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1월 정계를 은퇴하는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 찰스 랭글(민주·뉴욕) 하원의원은 “내년 초 방한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위안부 역사는 잘못됐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고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행사 후 서울신문과 만나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했지만 위안부 결의안 기념 행사는 매년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식민시대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고국 위해 美 정보 유출… 아팠지만 후회 없어”

    “고국 위해 美 정보 유출… 아팠지만 후회 없어”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6년 9월 24일 밤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이 예고 없이 찾아와 “당신 자동차가 접촉 사고를 냈다”며 그를 데려갔다. 가족과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이별한 그는 미국 국가기밀을 누설한 스파이 혐의로 9년의 복역과 1년의 보호관찰을 포함해 20년 동안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싸늘한 시선을 홀로 감내해야 했다. 미 시민권자로 항공우주국(NASA)과 해군정보국(ONI)에서 일하던 한국계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76)이 고난을 겪는 동안 한국 정부는 철저히 그를 외면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출소 후 지인들에게 고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매주 보냈다. 그렇게 쌓인 편지 425통 가운데 80여통을 엮은 책 ‘로버트 김의 편지’(온북미디어출판그룹)가 최근 출간됐다. 추석 명절과 출판기념회 참석을 위해 지난 9일 고국에 온 그를 21일 만났다. 김씨는 “(기밀 유출은) 한국인이었기에 망설임 없었던 선택이었다”며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였지만 (그 일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자료를 넘긴다고 해서 내가 스파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의 우방인 한국 역시 북한의 동향을 추적한 정보를 알아야 할 당사자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다. 그는 “영국, 호주와도 공유하는 정보였기 때문에 국가기밀을 누설한 스파이라는 혐의는 정말 억울했고, 왜 내가 스파이냐고 항변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로버트 김 사건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만 이 사건은 한국 정부와 전혀 무관하고 관심도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내가 한 일은 한국에서 시킨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것이었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죠. 한국 정부는 한·미 간의 공조 관계에서 저를 언급하는 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을지도 모릅니다. 제 사건을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스파이 사건은 그를 지독하게 아프게 했다. 출소 6개월 전 부친이 별세했고, 불과 한 달 보름을 앞두고 모친마저 영면했다. 그는 “씻을 수 없는 한”이라고 말한다. 아내가 교회 청소부로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아이들에게 ‘네 아버지는 사심 때문에 범죄자가 된 게 아니라 고국을 사랑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가르쳤지만 자녀들에게 박힌 상처는 잘 아물지 않았다. 그는 보호관찰 집행정지 결정으로 풀려난 직후인 2005년 11월 2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의 편지를 이메일로 받아 보는 구독자가 3만여명에 달했다. 그는 “고국을 그리며 매주 편지를 쓰게 됐다”며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인간 내면은 쇠퇴하고, 정신적으로 한국 사회가 성숙하지 않은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참사 소식을 접하고 편지 쓰기를 중단했다. “이게 나라인가”라고 한탄하다 쓰러져 수술을 하고 병상에서 지내다 이제야 몸을 추슬렀다. 그는 “많은 한국민들이 제게 박수를 보내고 격려해 주셔서 결코 외롭지 않았다. 많이 행복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퇴색한 유원지에 화사한 공공예술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퇴색한 유원지에 화사한 공공예술

    경기 안양은 서울 남쪽의 위성도시다. 시흥시에 속한 한 촌이었다가 일제시대 경부선이 지나면서 급성장했다. 오랜 역사가 남아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제지, 섬유 중심의 산업이 다소 발달했을 뿐 서울의 위성도시 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꼽기 어려운 약점도 있다. 그러던 안양이 21세기 들어 새롭게 주목한 분야가 바로 공공예술이다. 2000년대 초 안양은 공공예술에 큰 관심을 갖고 ‘공공예술의 도시’를 꿈꿨다 그 첫 실행으로 2005년 ‘제1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APAP:Anyang Public Art Project)라는 공공예술 축제를 열었다. 이후 2~3년에 한 번씩 꾸준히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개최해왔다. 올해 제5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오는 10월 열린다. 순수 지자체 예산으로만 치르는 행사여서 2~3년에 한 번씩 개최하기도 쉽지 않지만 ‘국내 최초, 유일한’ 공공예술 축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안양이 갖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수도권 대표 나들이 명소, 노천 전시관 대변신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이 공공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심이 되는 곳이다. 만안구 석수동 일대에 위치한 이 공원은 ‘안양유원지’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1960~70년대 수도권의 대표 나들이 명소였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에 흐르는 맑은 계곡을 중심으로 포도나 과수농원이 주를 이루던 곳이었다. 그러던 유원지가 난개발되고 무허가 주택, 음식점, 사행성 게임업소 등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사회 환경적인 문제가 심각해지자 1980년대 이후로는 차츰 명성을 잃어 갔다. 2000년대 들어 공공예술에 큰 관심을 기울여 온 안양시는 안양 원지부터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5년 제1회 APAP를 안양유원지 중심으로 개최하면서 대변신을 서둘렀다. 하천과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한편 유원지의 이름을 ‘안양예술공원’으로 바꾸었다. 1회에만 공원 내에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참여한 예술작품 52점을 선보였다. 안양예술공원을 공공예술작품들이 즐비한 노천 전시관처럼 구상한 또 다른 목적은 과거 가족이나 청소년을 위한 나들이, 소풍 장소로 유명했던 공원의 기능을 되찾기 위함이기도 했다. 안양 유원지에 대한 추억 한 자락은 갖고 있는 60대 이상 장년층들처럼 오늘날 지역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도 안양예술공원이 추억의 명소가 되길 바랐다. 공원에 설치된 공공예술 작품들을 아이들이 부담 없이 만지고 놀 수 있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산, 계곡이 아름다운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우러지도록 했다. ●안양 파빌리온·김중업박물관 개관으로 제2막 안양예술공원은 공공예술 전문 도서관인 안양 파빌리온의 탄생과 근현대 대표적인 건축가 김중업 박물관의 개관과 함께 제2막을 열었다. 예술공원 중심에 위치한 안양 파빌리온은 포르투갈 출신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알바로 시자 비에이라가 아시아 지역에 처음 설계한 건축물이다. 2006년 설립되어 기획전시관으로 활용돼 왔으나 2013년 10월 안양 파빌리온으로 이름을 바꾸고 공공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어느 한 곳에서도 같은 모양이 없는 건물 외관과 시원하게 뚫린 반구형 내부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파빌리온 홀 한가운데 놓여 있는 원형 벤치가 눈길을 끈다. 종이로 만든 이 벤치에서 시민들은 제각기 편한 자세로 책을 본다. 심지어 가운데 공간에선 눕거나 엎드릴 수도 있다. 의자는 종이로 만든 것인지 의심이 들만큼 견고하면서도 치밀하다. 2000여권의 공공예술 및 관련 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도 모두 종이로 만들어졌다. 역대 APAP 관련 영상과 서류 기록, 설계도 등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장비도 갖추었다. 예술공원 입구의 김중업박물관은 안양시 문화예술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인 건축가인 김중업에 대한 전문 박물관으로 부산대 본관을 비롯한 서강대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옛 삼일빌딩(현 산업은행 본점) 등을 남긴 그의 작품과 건축에 관한 각종 자료를 열람하고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의 모태가 된 건물 또한 김중업의 작품으로 제약회사인 유유산업 안양 공장 건물이었다. 폐공장이 공공건물인 박물관으로 변신한 공공예술의 또 다른 예시를 보여 준다. 이 부지 내에는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삼층석탑 등이 있으며 개보수 중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안양(安養)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고려시대 안양사(安養寺) 명문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박물관과 전시관 등으로 사용되는 건물 2동은 김중업이 설계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공공예술작품 78점 설치… 가을 산책길로 좋아 공원의 공공예술작품들은 현재 총 78점이 설치돼 있다. 안양시 전체 140점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작품들은 공원 입구의 김중업박물관 부지에서부터 등산로 입구인 공영주차장까지 약 2㎞에 걸쳐 골고루 배치돼 있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연장하기 위해 설치된 ‘전망대’, 외국인들도 일부러 보기 위해 찾아오는 아콘치 스튜디오의 ‘나무 위로 선으로 된 집’ 등이 대표적이다. 가을이면 더욱 산책하기 좋은 계곡 옆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10여년 넘게 공공예술의 도시로서 안양을 부각시키려고 해왔지만 정작 지역 내에서는 인지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5회째 열리는 APAP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 (지역번호 031) →가는 길:서울 지하철 1호선 안양역, 4호선 범계역, 평촌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공원으로 갈 수 있다. 김중업박물관(687-0909)은 오전 9시~오후 6시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 휴무. 입장은 무료다. 안양 파빌리온(687-0548)은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오픈. 제5회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는 오는 10월 15일, 16일 안양 파빌리온과 예술공원, 평촌중앙공원 일대에서 개막행사가 열리고 12월 15일까지 지속된다. 안양의 지형, 문화, 역사를 기반으로 미술, 건축, 영상, 디자인, 퍼포먼스 등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며 도시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든다. 홈페이지(www.apap.or.kr) 참조. 전문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687-0548)도 평일 하루 2회, 주말 3회 진행된다. →맛집:김중업박물관 3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더 테라스(689-4540)는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양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식당의 야외 라운지에서 내려다보는 예술공원과 주변 전경도 일품이다.
  • [2016 공직열전] 동북아·북미 등 지역정책 총괄… 외교 컨트롤타워役

    [2016 공직열전] 동북아·북미 등 지역정책 총괄… 외교 컨트롤타워役

    외교부 1차관 산하에는 ‘지역국’이라 불리는 양자외교 담당 부서들과 지원 부서가 포진해 있다. 지역국들은 관할 지역에 관한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주재국 대사관 등을 통해 각국과 외교 관계를 다지며 각종 협의·협력사업을 꾸려 나가는 등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우리 외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또 대사관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정부와 기업,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지역국이 담당한다. 대중(對中)·대일(對日) 외교를 책임지는 동북아국은 북미국과 더불어 외교부 내 최고 핵심 부서로 뽑힌다. 정병원(53·외무고시 24회) 국장은 일본과장(동북아1과장), 동북아국 심의관에서 국장으로 승진하는 등 동북아 라인을 충실히 밟아 온 지역 전문가다. 심의관 시절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실무를 맡았고, 국장으로 승진한 뒤로는 합의 후속 조치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으로 복잡해진 중국과의 문제도 정 국장 관할이다. 듬직하며 선이 굵은 외모에 소신이 강하고 균형 감각이 뛰어나 중·일 외교관들과의 기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야전지휘관’ 스타일이다. 정 국장과 함께 동북아국을 운영하는 배종인(48·외시 26회) 심의관은 주일대사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다. 조약, 국제협약 등 국제법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공공외교 분야에도 관심과 열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대표적 ‘출세 코스’인 북미국은 여승배(49·외시 24회) 국장이 맡고 있다. 여 국장은 북미·북핵 라인을 거쳤고 주중대사관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어 외교부 핵심 업무를 두루 꿰고 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 선후배들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구(50·외시 26회) 심의관도 북미2과장, 주미대사관 참사관을 지낸 ‘미국통’이다. 스마트하면서도 쾌활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과 잘 화합하며 빈틈없는 성과물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이다. 중남미국과 아중동국은 근래 중요도가 급속히 커지고 있는 부서다. 이 지역 국가들과의 교류가 중요해진 것은 물론 올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활발히 진행된 ‘대북 압박 외교’에도 큰 역할을 했다. 임기모(51·외시 25회) 중남미국장은 외교부 내에서 손꼽히는 이 지역 전문가다. 스페인어 전공자로 과테말라, 멕시코에서 근무했고 중남미지역협력과장, 중남미국 심의관을 거쳤다. 중국에서 연수를 하고 상하이영사관에서 근무했으며 대미 외교에 대한 이해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등 큰 미션을 맡고 있다. ‘외교관의 솔직 토크’라는 책도 썼다. 권희석(53·외시 20회) 아중동국장은 소말리아, 구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 등 ‘격오지’에서 평화 유지·재건 업무 맡은 경험이 많다. 후배들 사이에서 열성적·열정적 외교관이란 평가를 많이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첫 이란 방문, 아프리카 3국 순방 등 실무를 맡아 조율하며 상당한 성과들을 남겼다. 유럽국은 박철민(52·외시 23회) 국장이 곧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 임수석(48·외시 25회) 심의관이 사실상 국장 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임 심의관은 지난해 외교부 사업 중 초유의 히트를 쳤던 ‘유라시아 친선특급’의 실무 전반을 담당했다. 젠틀한 성품과 뛰어난 매너를 가졌으며 글쓰기와 문서 작성 능력이 뛰어나 후배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외교부 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조정실에는 예산편성 등을 맡은 조정기획관, 인사를 담당하는 인사기획관, 보안·통신 담당인 외교정보관리관이 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외교관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조구래(47·외시 25회) 인사기획관은 북핵2과장, 북미2과장, 북미국 심의관, 주미대사관 참사관 등 외교부 핵심 코스를 충실하게 밟았다. 장관 보좌관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뛰어난 연설문 작성 능력과 번뜩이는 발상 등으로 윤병세 장관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 능력은 정평이 나 있어 이번에는 외교부 내 김영란법 대책 마련 태스크포스까지 맡아 운영하고 있다. 외시 합격 당시 최연소 합격자(21살)였다. 장관 직속인 이상화(48·외시 25회) 장관정책보좌관은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돼 주목을 받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비서실에서 7년 넘게 반 총장을 보좌했고 관련 책까지 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외교부 내에서는 반 총장과의 인연보단 업무가 주어지면 어떤 환경에서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성실한 업무 스타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선남국(49·외시 26회) 부대변인은 공보담당관을 거쳐 개방직인 부대변인에 올라 이 분야에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 근무 당시 우리나라와의 직업교육 교류사업 등을 기획하는 등 교육사업 및 외교협력정책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와도 편히 어울리고 화합을 유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최근 부임한 마상윤(49) 정책기획관은 국제정치학 전공 교수 출신이다.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외교부와 통일부에서 자문위원도 맡아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터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괴한 접근… 총격 후 체포

    터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괴한 접근… 총격 후 체포

    터키 경찰 특수부대원들이 21일(현지시간) 앙카라의 이스라엘 대사관 주변 도로를 봉쇄한 채 지키고 있다. 이날 정오께 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 이스라엘 대사관 건물에 접근했으며 다리에 총탄을 맞은 후 체포됐다. AFP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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