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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서도 한국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 주고 싶어요”

    “해외서도 한국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 주고 싶어요”

    “해외에서도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김하나(42) 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 관장은 최근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2018 세계한인차세대 대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김 관장은 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시작해 북미 지역에서 한인 최초로 브리티시 컬럼비아대(UBC) 아시아도서관장이 됐다. ‘독도지킴이’로도 불리는 김 관장은 2008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독도 관련 도서 분류의 주제어를 ‘독도’에서 ‘리앙쿠르 록스’로 바꾸려는 계획을 보류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김 관장은 독도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미 의회도서관에 독도 주제어를 삭제하려는 계획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작성해 이를 극적으로 보류시켰다. 그는 토론토 총영사관과 미 워싱턴DC 주재 한국대사관에 관련 소식을 알렸고 미디어에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 회원들의 뜻을 모았다. 김 관장은 “당시 북미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 한국학자료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었다”며 “미 의회도서관에서 독도 주제명을 리앙쿠르 록스로 바꾸는 제안서가 들어왔는데 심의기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관장은 2009년 한국·캐나다 문화 및 역사적 자원을 위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목표로 한 ‘한국·캐나다 문화 및 역사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 관장은 한국 문화와 문학을 현지 사회에 홍보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캐나다 주류사회가 선정하는 ‘최우수 이민자’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 관장은 당시 75명의 후보 가운데 유일한 한인 후보였다. 김 관장을 비롯한 24개국 80여명의 한인들은 재외동포재단이 9월 하순에 열었던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참석했다. 특히 경영, 법조, 예술, 의료,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차세대 한인 리더들은 참가자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내외 동포 간 교류 확대의 장이 됐다. 이들은 방한기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주최 환영 만찬과 이낙연 국무총리 예방, 각종 포럼과 토크콘서트, 안보·문화 체험 등을 가졌다. 김 관장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시는 한인들을 만나게 돼서 기쁘다”며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석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네크워크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사진 재외동포재단 제공
  • 주중 北대사관 게시판 태극마크 첫 등장

    주중 北대사관 게시판 태극마크 첫 등장

    주중 북한대사관이 30일 정문 옆 대형게시판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정상회담 사진 25장을 대거 게시했다. 이 게시판에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사진만 배치한 것이나 태극기가 등장한 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전용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사진은 전용기 꼬리 날개 부분(선 안)에 ‘태극 마크’가 선명히 드러난 채 그대로 게시돼 있다. 대신 그 전에 게시판을 채웠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 등 북·중, 북·미 정상회담 사진들은 모두 철거됐다. 베이징 연합뉴스
  • 외교부 “인도네시아 강진 쓰나미 지역 연락두절 교민 수색 요청…직원 2명 급파”

    외교부 “인도네시아 강진 쓰나미 지역 연락두절 교민 수색 요청…직원 2명 급파”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을 덮친 강진과 쓰나미에 연락이 두절된 우리 교민과 관련해 외교부가 현지 당국에 조속한 수색 및 구조를 요청했다고 30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은 교민 1명이 지진 발생 지역 체류 중 연락이 두절됐다는 신고를 접수한 직후 인도네시아 외교부, 국가재난방지청, 국가탐색구조청 등에 교민의 조속한 수색과 구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조속한 수색 및 구조 작업을 위해 담당 영사를 포함한 직원 2명을 인도네시아 당국의 협조를 받아 현지에 급파했다고 밝혔다. 피해가 발생한 술라웨시섬 팔루 지역에 거주하는 교민 4명과 영사콜센터 및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신고가 접수된 연락두절자 7명에 대해서는 모두 신변의 안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팔루 거주 교민의 경우 부부 사이인 2명은 지진 당시 팔루를 떠나 다른 지역에 있었고, 2명은 팔루에 있었으나 인적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알렸다. 이 당국자는 한 교민이 사업상 팔루에 체류하거나 오가는 교민 7명이 더 있다는 제보를 해옴에 따라 현지 파견 영사가 구체적인 사실 관계와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7명 중 3명은 현재 전화 연결이 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는 아직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 확인되지 않은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우리 국민 피해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 피해 상황이 확인되면 영사 조력을 신속하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도네시아 강진 쓰나미 뒤 한국인 2명 연락두절…무너진 호텔에 숙박

    인도네시아 강진 쓰나미 뒤 한국인 2명 연락두절…무너진 호텔에 숙박

    지난 28일 규모 7.5의 강진과 쓰나미가 덮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 연락두절된 한국인 A씨의 소재가 아직도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한인 기업가 B씨도 지난 21일 팔루에 간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숙소로 사용한 팔루 시의 호텔이 지진으로 무너진 것으로 파악된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재난 당국은 호텔 잔해를 헤치며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30일 “한국인 A씨와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다른 한인 관련 추가 피해 상황은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평소 발리에 거주하는 A씨는 패러글라이딩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국적 지인 6명과 함께 지난 24일부터 팔루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지인과 통화가 됐지만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같이 간 지인들 모두 연락이 닿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팔루의 로아 로아 호텔을 숙소로 잡았으며, 현재 이 호텔은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다. 지진 발생 당시 A씨가 이 호텔에 머물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현재 이 호텔 잔해더미를 헤치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젊은 여성 1명이 구조됐지만, 그 외에 붕괴를 미처 피하지 못한 일부 투숙객들은 여전히 잔해 밑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호텔 소유주인 코 제프리는 현지 메트로TV에 “60명가량이 건물 더미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도 A씨와 연락을 취하고 필요시 구조를 지원하기 위해 현지에 직원 2명을 급파했다. 그러나 현지 팔루 무티아라 SIS 알-주프리 공항이 오는 4일까지 민항기 이착륙을 허용하지 않을 예정이라 이들은 술라웨시 섬의 다른 공항을 이용해 군용기 편으로 현지로 이동할 예정이다. 게다가 교민사회에 따르면 광산개발 사업과 관련해 중앙술라웨시 주 팔루를 자주 드나들던 한인 기업가 B씨가 광산 관련 장비 통관 문제로 팔루에 들른 뒤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현지 지인은 “B씨가 (재난 당일인) 28일 아침 통화했을 때 ‘다음주에 자카르타로 가겠다’고 했는데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나 외교부에 B씨가 피해 지역에서 연락이 두절됐다는 신고는 아직 공식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팔루 시에는 A씨와 B씨 외에도 교민 2명이 있지만, 신변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팔루 지역에 있던 외국인 5명의 행방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BNPB 대변인은 “한국인 1명과 프랑스인 3명, 말레이시아인 1명의 소재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진 발생 당시 팔루에는 독일, 호주, 중국, 베트남, 벨기에 등의 국적 외국인 71명이 있었고 대다수가 아직 현지에 발이 묶여 있다고 덧붙였다. 팔루에서 북쪽으로 약 80㎞ 떨어진 동갈라 지역에서는 지난 28일 오후 6시(현지시간_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가 약 20분 뒤 해안과 접한 팔루 시를 덮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재난 당국은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최소 832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도네시아 강진 쓰나미 뒤 연락두절 한국인 여전히 소재 불명

    인도네시아 강진 쓰나미 뒤 연락두절 한국인 여전히 소재 불명

    지난 28일 규모 7.5의 강진과 쓰나미가 덮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 연락두절된 한국인 1명의 소재가 아직도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한국인이 숙소로 사용한 팔루 시의 호텔이 지진으로 무너진 것으로 파악된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재난 당국은 호텔 잔해를 헤치며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30일 “한국인 A씨와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다른 한인 관련 추가 피해 상황은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평소 발리에 거주하는 A씨는 패러글라이딩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국적 지인 6명과 함께 지난 24일부터 팔루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지인과 통화가 됐지만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같이 간 지인들 모두 연락이 닿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팔루의 로아 로아 호텔을 숙소로 잡았으며, 현재 이 호텔은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다. 지진 발생 당시 A씨가 이 호텔에 머물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현재 이 호텔 잔해더미를 헤치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젊은 여성 1명이 구조됐지만, 그 외에 붕괴를 미처 피하지 못한 일부 투숙객들은 여전히 잔해 밑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호텔 소유주인 코 제프리는 현지 메트로TV에 “60명가량이 건물 더미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도 A씨와 연락을 취하고 필요시 구조를 지원하기 위해 현지에 직원 2명을 급파했다. 그러나 현지 팔루 무티아라 SIS 알-주프리 공항이 오는 4일까지 민항기 이착륙을 허용하지 않을 예정이라 이들은 술라웨시 섬의 다른 공항을 이용해 군용기 편으로 현지로 이동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팔루 지역에 있던 외국인 5명의 행방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BNPB 대변인은 “한국인 1명과 프랑스인 3명, 말레이시아인 1명의 소재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진 발생 당시 팔루에는 독일, 호주, 중국, 베트남, 벨기에 등의 국적 외국인 71명이 있었고 대다수가 아직 현지에 발이 묶여 있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도네시아 강진·쓰나미 희생자 수천명 넘을 수도…한국인 1명 연락두절

    인도네시아 강진·쓰나미 희생자 수천명 넘을 수도…한국인 1명 연락두절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북부에서 발생한 규모 7.5 강진과 뒤이어 닥친 쓰나미로 숨진 사람의 수가 384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심지어 향후 피해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면 희생자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에 따르면 전날 중부 술라웨시 주 팔루와 동갈라 리젠시 일대를 덮친 규모 7.5의 지진과 뒤이은 쓰나미로 최소 384명이 숨지고 540명이 중상을 입었다. 실종자 수는 현재 29명으로 집계됐다. 재난당국은 지진이 발생한 뒤에도 고지대로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해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이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전날 오후 6시(현지시간)쯤 규모 7.5 강진이 발생한 뒤 약 20분 만에 1.5~2.0m 높이의 쓰나미가 덮쳐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BNPB 대변인은 “중상자는 540명, 실종자는 29명으로 집계됐다”면서 “건물 수천채가 파손되거나 무너졌고, 해당 지역 지방정부는 비상상황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BNPB 대변인은 전날 낮부터 팔루 해안에서 수천명이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쓰나미 위험이 발생했는데도 사람들이 해변에서 계속 활동하며 즉각 대피하지 않아 희생됐다”고 말했다. 술라웨시 섬 주변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대체로 1.5~2.0m 높이였지만, 팔루 탈리세 해변을 덮친 쓰나미는 높이가 무려 5~7m에 달했다. 팔루 시가 중앙술라웨시 주의 주도라 인구가 밀집해 있는데다 너비 5㎞, 길이 18㎞의 좁은 협만 가장 안쪽에 있는 입지조건 때문에 쓰나미 충격이 증폭돼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수토포 대변인은 “쓰나미가 자동차와 통나무, 주택의 잔해 등을 휩쓸고 이 잔해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지상의 모든 것을 치고 지나갔다”면서 일부 주민은 6m 높이의 나무에 기어올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덧붙였다. 현지 방송은 지진으로 무너진 팔루 시내의 이슬람 사원과 주변 거리가 쓰나미로 밀려온 바닷물에 잠긴 모습과 얼굴이 천으로 덮인 시신이 해변과 거리에 줄지어 놓여 있는 모습 등을 보여주고 있다. BNPB는 팔루 해변의 랜드마크였던 대형 철골조 다리가 완전히 무너졌고, 다른 지역과 이어지는 고속도로도 파괴된 상태라면서 시내 24개소에 1만 6700명의 이재민이 대피해 있다고 밝혔다. 팔루의 대부분 지역은 아직도 정전과 통신 장애를 겪고 있다. 진앙지인 동갈라 리젠시 일대의 피해 상황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수토포 대변인은 30만명이 사는 동갈라 지역은 “통신이 완전히 두절돼 정보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현지에서 앞으로 사상자 규모가 급격히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이번 사태로 인한 사망자 규모가 수천명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지진으로 관제탑이 파손되고 활주로에 400~500m 길이의 균열이 발생했던 팔루 무티아라 SIS 알-주프리 공항은 이날 오후부터 구호물자를 나르는 항공기에 한해 운영을 재개했다. 다음달 4일까지는 민항기의 이착륙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BNPB는 전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관련 부처에 즉각적인 대응을 지시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인도네시아 당국과 접촉 중이라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실제 술라웨시 섬 북부에선 이후 이날 아침까지만 100차례 가까운 여진이 일어났다. 한편 인도네시아 교민 사회에 따르면 이 지역에 갔던 한국인 1명이 연락두절 상태다. 평소 발리에 거주하는 A씨는 패러글라이딩 대회에 참석하고자 인도네시아 국적의 지인 6명과 함께 지난 24일부터 팔루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재인도네시아 패러글라이딩협회 관계자인 A씨는 28일 저녁부터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 언론은 패러글라이딩 대회 주최 측을 인용해 참가자 34명 중 A씨를 포함한 10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정전과 통신장애 때문에 상황 파악이 쉽지 않다”면서 “관계당국 협력을 받아 A씨 소재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지진과 화산 분화가 자주 일어난다. 2004년에는 규모 9.1의 강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로 인도네시아에서만 12만명이 숨지는 등 인도양 일대에서 약 23만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지난달에는 유명 휴양지인 롬복 섬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일어나 557명이 숨지고 4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도네시아 강진·쓰나미 사망자 384명으로 급증…한국인 1명 연락두절

    인도네시아 강진·쓰나미 사망자 384명으로 급증…한국인 1명 연락두절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북부에서 발생한 규모 7.5 강진과 뒤이어 닥친 쓰나미로 숨진 사람의 수가 384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9일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은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을 인용해 중부 술라웨시 주 팔루와 동갈라 리젠시 일대를 덮친 규모 7.5의 지진으로 최소 384명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에서는 전날 오후 6시(현지시간)쯤 규모 7.5 강진이 발생한 뒤 약 20분 만에 1.5~2.0m 높이의 쓰나미가 덮쳐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BNPB 대변인은 “중상자는 540명, 실종자는 29명으로 집계됐다”면서 “건물 수천채가 파손되거나 무너졌고, 해당 지역 지방정부는 비상상황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특히 팔루 시는 중앙술라웨시 주의 주도라 인구가 밀집해 있는데다 너비 5㎞, 길이 18㎞의 좁은 협만 가장 안쪽에 있는 입지조건 때문에 쓰나미 충격이 증폭돼 피해가 더욱 컸다.현지 언론은 해변 곳곳에 천 등으로 임시로 가린 시신들이 놓여 있다고 전했다. 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BNPB 대변인은 전날 낮부터 팔루 해안에서 수천명이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이들의 소재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정전과 통신 장애 해결이 먼저라면서 이날 오전 통신과 항공운송 전문가들이 팔루 공항에 도착했다고 대변인은 전했다. 팔루 공항마저 관제탑이 파손되고 활주로에 400~500m 길이의 균열이 발생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항공당국은 팔루 공항의 운영이 정상적으로 재개되려면 최소 24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의 주민들은 여진과 쓰나미가 재발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고지대 등으로 대피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술라웨시 섬 북부에선 이후 이날 아침까지만 100차례 가까운 여진이 일어났다. 한편 인도네시아 교민 사회에 따르면 이 지역에 갔던 한국인 1명이 연락두절 상태다.평소 발리에 거주하는 A씨는 패러글라이딩 대회에 참석하고자 인도네시아 국적의 지인 6명과 함께 지난 24일부터 팔루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인 28일 오후 4시 50분까지는 통화가 됐지만 이후 연락되지 않고 있다. 같이 갔던 지인들도 모두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정전과 통신장애 때문에 상황 파악이 쉽지 않다”면서 “관계당국 협력을 받아 A씨 소재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지진과 화산 분화가 자주 일어난다. 2004년에는 규모 9.1의 강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로 인도네시아에서만 12만명이 숨지는 등 인도양 일대에서 약 23만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지난달에는 유명 휴양지인 롬복 섬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일어나 557명이 숨지고 4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도네시아 규모 7.5 강진 뒤 한국인 1명 연락 두절

    인도네시아 규모 7.5 강진 뒤 한국인 1명 연락 두절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 발생한 규모 7.5 강진과 뒤이어 덮친 쓰나미 이후 한국인 1명이 현지에 고립돼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2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따르면 재인니 패러글라이딩 협회 관계자 A씨는 지진 발생 당시 주요 피해 지역인 중앙 술라웨시 주 팔루시에 머물고 있었다. 평소 발리에 거주하는 A씨는 패러글라이딩 대회 참가 차 인도네시아 국적 지인 6명과 함께 지난 24일부터 팔루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소식통은 “지진 발생 전인 28일 오후 4시 50분까지는 통화가 됐지만 그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같이 갔던 지인들도 모두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대회 조직위 역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혼란 때문에 A씨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정전과 통신 장애 때문에 상황 파악이 쉽지 않다”면서 “관계당국 협력을 받아 A씨 소재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28일 오후 6시쯤 중앙 술라웨시 주의 해안도시 팔루 인근에서 규모 7.5의 강한 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약 20분 만에 1.5∼2.0m 높이의 쓰나미가 뒤따라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확인된 사망자는 48명이지만, 상황이 안정돼 피해 집계가 제대로 이뤄지면 사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여기는 중국] 스위스서 백조 거칠게 다루는 中 단체 관광객 논란

    스위스에서 백조 한 마리를 거칠게 다루는 단체 관광객들의 영상이 공개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4일(현지시간) 스위스 일간지 ‘20minuten’는 스위스 중부 루체른의 슈바넨 플라츠 근처에서 찍힌 영상을 소개했다. 소셜 미디어 스냅챗에 처음 올라온 영상은 큰 백조 한 마리를 둘러싼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됐다. 영상에는 한 관광객 여성이 종이 한 장으로 백조와 씨름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백조가 여성의 손에 있던 종이를 낚아채자 다른 여성이 끼어들어 백조의 머리와 목덜미를 움켜잡고 부리에서 종이를 억지로 꺼내려했다. 백조가 그 종이를 놓지 않자 단체 관광객들은 베이징 표준어로 “잠깐만, 아직 사진을 못 찍었다”고 외쳤고, 이를 촬영 중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백조를 대하는 모습에 자신이 받은 충격을 표현했다. 현지 매체는 관광객들의 국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말로 보아 이들을 중국 관광객으로 추정했고, 해당 영상은 중국 매체와 소셜 미디어로 빠르게 번졌다. 인터넷에서는 해당 영상에 대한 분노가 쏟아졌고, 중국 네티즌들은 “체면이 깎였다”며 “끔찍한 행동을 한 관광객들에게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여성이 백조가 종이를 삼키지 못하게 입에서 꺼내려고 했던 것일 수 있다”거나 “중국인을 중상 모략하는 외국매체의 제작 영상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해당 영상은 최근 스웨덴의 중국 관광객에 대한 지나친 대우가 외교적인 마찰로 번진 후 공개돼 물의를 빚고 있다. 이달 초 스톡홀름 호스텔에 한 중국인 가족이 체크인 시간보다 빨리 도착해 경찰에게 강제로 쫓겨났었다. 또한 스웨덴의 한 TV쇼가 중국 관광객들을 조롱하자 스웨덴 주재 중국 대사관이 성명을 통해 “인종차별과 외국인혐오증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퍼뜨렸다”며 이 프로그램 사회자를 비난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위안부재단 해산 놓고 한일 외무장관 ‘평행선’

    위안부재단 해산 놓고 한일 외무장관 ‘평행선’

    韓 강경화 “지혜롭게 풀자”日 “합의 착실히 이행해야”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약 100억원)을 받아 설립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문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뚜렷한 입장 차가 확인됐다. 우리 정부는 기능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재단의 해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일본 외교당국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가 타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회담에서 화해치유재단 처리와 관련해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가자”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강 장관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나 “25일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하 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 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었다.강 장관은 재단 해산을 시사한 문 대통령과 같은 맥락의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노 외무상이 재단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언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외교부는 고노 외무상이 위안부 등 과거사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 기조에 비춰볼 때 고노 외무상은 ‘한일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위안부합의에 근거해 설치된 재단의 해산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재단 처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공식 입장을 묻는 연합뉴스의 질문에 “이번 정상회담(한일정상회담)에서 재단 현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며 “그것을 바탕으로 양국 정상은 이 문제가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서로 지혜를 모아 나가자는데 뜻을 같이했다”고 답했다.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이어 “한일 간 합의의 착실한 이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제 기능 못하는 화해치유재단 해산 당연하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어제도 서울 종로구 옛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렸다. 26년간 계속된 집회였지만 이날의 의미는 각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시사한 것과 겹쳤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화해치유재단이 정상 기능을 못 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단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의 결과물이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와 국민 감정을 배제한 채 졸속 합의가 이뤄지면서 ‘100억원에 역사를 팔아먹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이라는 문구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1월 “위안부 합의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재단은 민간 이사진이 전원 사퇴한 지난해 말부터 이미 개점휴업 상태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을 우리 예산으로 대체하기 위한 예비비 지출안도 지난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등 합의 정신에 배치된 일본 고위층의 망언까지 계속되는 상황에서 재단의 존립 근거는 희박해졌다. 다만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합의 파기나 재교섭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가 간 공식 합의를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론을 감안했을 것이다.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서는 단호히 조치하면서 대북 문제 등에서는 일본과 긴밀히 협조하는 투트랙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일본의 협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재단 청산 문제로 분쟁을 야기하는 대신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자세다.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천국과 지옥 오간 광희문… 그 굴곡진 삶 더듬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천국과 지옥 오간 광희문… 그 굴곡진 삶 더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0회 신당동(광희문 주변) 편이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2일 진행됐다. 이날도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추석 연휴 특별 프로그램 신청 창구인 서울미래유산홈페이지가 지난 17일 오픈 즉시 매진될 정도였다. 추석 프로그램은 26일에 이어 29일에도 계속된다.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7번 출구를 출발한 투어단은 중앙아시아거리~국립중앙의료원~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동대문운동장기념관~이간수문~옛 서산부인과~광희문~장충초등학교~신당동 성당~범삼성가주택~터키대사관~종이나라박물관~태극당 코스를 타박타박 걸었다. 이날 서울미래유산 해설사로 처음 데뷔한 윤현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한양도성 성곽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난코스에도 당황하지 않고 설득력 있는 해설로 답사단의 마음을 잡았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다. 동서남북 사방에 4개의 큰 문을 세우고 그 사이에 4개의 작은 문을 뒀다.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부터 남쪽으로 광희문·흥인지문·혜화문·숙정문·창의문·돈의문·소덕문이 그것이다. 8개의 크고 작은 문의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숭례문은 남대문, 흥인지문은 동대문, 돈의문은 서대문같이 해당 방위에 따라 쉽게 불렀지만 숙정문을 북대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숙정문은 태종 때 풍수가 최양선의 건의에 따라 대부분 닫혀 있었기에 문의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4소문의 경우 혜화문은 동소문, 소덕문은 서소문이라고 방위를 따서 쉽게 불렀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하문 혹은 장의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숙정문이나 창의문은 도성의 통행문이 아니라 방위에 맞춘 형식적인 문이었다. 창의문 바깥 숲과 계곡을 ‘자줏빛(紫) 노을(霞)의 동네’라고 해 자하동이라고 불렀기에 문 이름도 자하문이라고 통용됐다. 창의문 바깥 동네를 ‘자문밖’이라고 했고, 창의문이라는 정식 이름보다 자하문이라는 별칭을 더 즐겨 썼다.이날 투어단이 밟은 광희문은 4소문 중 하나다. 도성의 동남쪽 문이기는 하나 남소문은 아니다. 남소문은 별개의 문이다. 혜화문이 동소문이고, 소덕문이 서소문이며, 창의문이 북소문인 것과는 딴판이다. 숙종실록(1690년 7월 19일)에 보면 “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동남에 광희문이 있다 했는데 이게 남소문의 이름인 듯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남소문과 광희문을 구별하지 못한 사례가 잦았다. 남소문은 남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도성통행 용도로 세조 3년에 세워졌지만 건립 12년 만인 예종 1년(1469년)에 문을 닫은 뒤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실제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예전에 광희문 남쪽, 목멱산 봉수대 동쪽에 남소문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남소문은 세조의 장남 의경 세자의 죽음이 “도성 동남쪽에 문을 낸 탓”이라는 풍수독설 때문에 폐쇄의 운명을 맞았다. 남소문을 열면 왕가에 황천살이 열려 세자가 요절하고, 임금도 시름시름 앓는다는 불길한 풍수설이 나돌았다. 또 개문파와 폐문파로 나눠 “남소문을 열면 남인이 득세하고, 닫으면 서인이 권세를 잡는다”는 당쟁의 대상물이 됐다. 남소문은 물자와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한강나루(한강진)를 거쳐 도성을 통과하는 최단거리 지름길이었다. 장충단공원에서 국립극장 길로 올라가다 보면 한남동으로 통하는 오르막길의 보도 왼쪽에 남소문터를 알리는 표석이 서 있다. 국립극장과 반얀트리호텔 사이쯤이다. 남소문과 함께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지점에 세워진 홍지문(한북문)도 4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한양도성은 4소문 체계로 시작했지만 새로운 통로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5~6소문 체계로 운영됐다고 할 수 있다. 광희문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 문이다. 한양풍수의 핵심 중 하나인 수구문(水口門)에서 불명예의 대명사인 시구문(屍口門)으로 명칭과 용도가 오락가락했다. 명실상부한 남소문이면서 12년간 잠깐 존재한 또 다른 남소문에 의해 위상을 위협받아 단 한번도 대접받지 못했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도성의 모든 하수 모여드는 곳, 조그만 바위구멍 광희문이네, 사람의 혈맥 같은 수많은 개천 밤낮으로 이곳을 새어나가고…”라고 광희문의 풍경을 읊었지만 광희문은 대개 ‘물의 출구’라는 명예로운 지위 대신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한양은 흠잡을 데 없는 천하의 명당은 아니었다. 명당수가 부족하고, 경복궁 좌우 지맥이 허약하며, 태자의 위상을 뜻하는 동쪽 낙산의 지세가 서쪽 인왕산보다 낮고, 물이 흘러나가는 청계천 출구가 열려 있는 게 문제였다.그래서 물과 함께 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인공산(假山)을 만들거나, 옹성을 쌓거나, 사당을 지어 보호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훈련원 동북쪽에 인공산을 쌓았으니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함이다”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광희문을 통해 기가 빠지는 것을 막고자 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국립의료원 옆에 가산(방산시장)을 조성했고, 동대문에 옹성을 둘러쌓고, 수구(水口)와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기를 돋우려고 동묘(관운장묘)를 세웠다. 이 모든 게 ‘풍수성형’ 즉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장치였다. 광희문은 시구문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독한 유교 논리가 판친 조선사회는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죽음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탓이다. 시구문을 빠져나간 상여 행렬은 숭인동과 황학동 사이 청계천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영도교(永渡橋)를 지나 창신동 동망산(東邙山)을 향했다. 왕족이나 사대부는 영도교를 건너 뚝섬이나 광나루를 거쳐 왕릉이나 선산으로 나아갔다. 조선시대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매장이 엄격하게 금지됐기에 1909년까지 사람이 죽으면 광희문이나 서소문을 통해 시신이 나갔다. 성저십리(성 밖 십리)에도 묘지를 쓰거나 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는 게 금지돼 시신은 주로 광희문 밖 금호동, 남대문 밖 이태원과 용산, 서대문 밖 아현과 홍제원 바깥에 묻었다. 일제강점기 경성부에 설치된 19곳의 화장장과 공동묘지는 대부분 조선시대 이후 공동묘지였다.신당동의 행정구역은 18세기 이전 한성부 남부 두모방 신당리계였다. 광희문 주변인 현재의 신당동, 광희동, 장충동 일대는 군병과 유민, 걸인이 거주하는 빈민 지대였다. 광희문은 시체와 상여가 나가는 문이었기에 문밖 신당동은 장례를 치르는 무녀와 승려가 몰려 살았다. 신당동(新堂洞)이라는 동명이 신당(神堂)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근거다. 북이나 장구, 징, 꽹과리 등 무구와 목기나 철기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간수문 밖은 개천변을 따라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버드나무를 이용해 가재도구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 훈련도감 군병과 가족들이 부업 삼아 시장을 열었다. 동소문 밖 동부 연화방(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던 동활인서가 광희문 옆으로 옮겨 왔다. 활인서는 전염병이 돌 때 무당으로 하여금 역귀를 쫓거나 구호 활동을 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휼 업무와 무당을 단속하고 세금을 거두는 기관의 역할도 맡았다. 광희문 앞에는 신당동 화장터와 금호동 공동묘지로 가는 고개가 있었는데 길이 꼬불꼬불하고 넘기 힘들다고 하여 아리랑고개라고도 불렸다. 도둑이 많아 순라꾼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고 소리쳤는데 이 말이 변해 ‘버티고개’(6호선 버티고개역)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개편된 현대 서울에서도 신당동의 서울 동남 방면 관문 역할은 변함이 없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초동(우면산의 가을) ●일시: 9월 29일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 앞(사당역 1번 출구에서 5413번 버스 환승)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文대통령의 북핵 해법 파격 구상 셋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북핵 문제 해법 중엔 새롭고 다소 파격적인 구상들이 꽤 많이 포함돼 있었다. ‘영변 핵시설 폐기 참관(사찰) 계기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 미국의 종전선언 취소 가능’,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 필요’ 등이다. ① 대사관 전단계 연락사무소 문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초기 비핵화 조치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로 영변 핵사찰 계기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시했다. 그동안 언론은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정도만 예상했는데, 문 대통령은 그뿐 아니라 제재 완화, 인도적 지원, 예술단 교류, 경제시찰단 상호 교환,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등도 제시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가 눈에 띈다. 평양과 워싱턴의 교차 연락사무소 설치는 향후 대사관 설치 등 국교 수립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시발점이다. 기존의 비핵화 로드맵에서 연락 사무소 설치는 비핵화에 따른 후순위 보상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파격적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앞당겨 북·미 관계 개선을 급속히 견인하는 식으로, 연락사무소를 조기 개설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묵은 비핵화 협상 틀을 깨고 후순위를 선순위로 앞당김으로써 불가역적인 관계 개선을 이끌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의 ‘핵신고-폐기’ 구도가 아니라 ‘폐기-검증’으로 속도를 내려는 게 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② 北 변심하면 종전선언 취소 문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는 미국 일각의 여론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건, 북한이 취하는 비핵화 조치는 불가역적인 반면 미국의 상응조치는 언제나 거둬들일 수 있어 미국이나 한국이 손해 볼 게 없다”고 단언했다. 즉,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및 발사대, 영변 핵시설,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 등을 폐기한 뒤 나중에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돼 다시 복구하는 것은 금전적·시간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반면 한·미 양국이 취한 군사훈련 중단은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고, 종전선언도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 취소할 수 있으며, 제재 완화 문제도 언제든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현찰을 주고 미국은 어음을 준다’는 비핵화 협상의 차별적 본질을 직설적으로 밝힌 셈이다. 다시 말해 ‘손해’에 민감한, 즉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여론을 향해 ‘ 일이 잘못됐을 때 미국이 잃을 건 별로 없으니 걱정말라’는 메시지를 거침없이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③ 동북아 평화 위한 주한미군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물론 남북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 주둔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는데, 그보다 더 나간 것이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이어질 거라는 한·미 강경 보수층의 의구심을 일축하는 발언인 셈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무관하니 종전선언을 해도 걱정할 게 없다는 얘기다.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미래의 일을 단정적으로 말했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이 문제에 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남북 정상 모두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문 대통령은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통일 후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서울포토] 연휴에도 계속되는 수요집회

    [서울포토] 연휴에도 계속되는 수요집회

    26일 서울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스웨덴 방송, 중국인 싸잡아 “개 잡아 먹고 길에서 볼일 본다”

    스웨덴 방송, 중국인 싸잡아 “개 잡아 먹고 길에서 볼일 본다”

    스웨덴과 중국의 외교 갈등이 갈수록 악화돼 정말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고 영국 BBC가 26일 전했다. 이달 초 중국 관광객들이 스톡홀름의 한 호텔에서 내쫓기는 장면이 생생하게 폭로되면서 시작됐다. 한 남성과 그의 부모는 체크인 시간이 아닌 한밤중 도착해 로비에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호텔측이 경찰을 불러 자신들을 내쫓았다고 절규했다. 그 남성은 드라마틱하게 넘어진 뒤 영어로 “이건 살인이야. 이건 살인이야”라고 외쳤고 그의 어머니는 오열하며 중국어로 “도와달라”고 외쳤으나 경찰관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몇 시간 뒤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오르자 엇갈린 댓글이 달렸다. 스웨덴의 거친 대응을 꾸짖는 이들도 있었지만 중국인 가족이 지나치게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 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해당 호텔 매니저는 이들 가족은 다른 날짜에 예약해놓고는 떠나달라는 호텔의 요구를 거절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주재 중국 대사관이 스웨덴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지난 3주 동안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스웨덴 국영방송 SVT의 시사풍자 쇼 ‘스벤스카 니헤터’가 지난 21일 중국인 관광객들을 싸잡아 개를 잡아 먹고 길에다 아무렇게나 대변을 해결한다고 조롱하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이 방송은 중국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쿠(Youku)에 삽화가 담긴 동영상을 올려 놓았다. 삽화는 뭘 먹으면서 대변을 보는 중국인을 그려놓고 한자로 ‘금지대변’이라고 적었다. 여성 진행자는 “만약 거리에서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을 본다면 점심 거리를 챙겨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놀려댔다. 또 중국인들은 인종주의자지만 스웨덴은 아랍계이건 유대인이건, 심지어 동성애자들조차 환대하고 있다고 한 뒤 “스웨덴이기 때문에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신봉하고 있지만 이런 원칙이 중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중국 관광객들을 환영하겠지만 잘못하면 매질을 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중국 누리꾼들이 얼마나 흥분했을지, 얼마나 많은 댓글을 쏟아냈을지는 굳이 옮기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당국은 “상스러운 언어”를 동원했으며 “차별과 편견, 도발로 가득차 있었다”고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마저 공식 논평을 낼 정도였다. 스웨덴 방송은 “스웨덴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들려준 얘기”라며 “코미디였을 뿐”이라고 대꾸했다가 나중에 제작 책임자가 “공격의 의도가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BBC는 겉으로 드러난 중국 관광객과 스웨덴 TV의 공방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이달 초 스웨덴을 방문한 것이 두 나라 갈등의 근본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관영 매체는 일단 달라이 라마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더 멀리는 지난 1월 중국 동부 닝보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체포된 중국계 스웨덴인 복권업자인 귀민하이 체포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당시 그는 두 스웨덴 외교관, 동업자와 동행해 스웨덴 의사에게 진단을 받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고 있었는데 귀민하이가 국가 기밀을 넘기려 했다고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정부 예산정보 불법 유출’ 심재철 “백스페이스 누르니 자료 뜨더라”

    ‘정부 예산정보 불법 유출’ 심재철 “백스페이스 누르니 자료 뜨더라”

    정부의 비공개 국가 재정정보를 불법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검찰이 압수수색하자 자유한국당이 ‘야당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신속히 실체를 규명해야 하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검찰은 심 의원실뿐만 아니라 정보가 유출된 한국재정정보원도 함께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 의원실(심재철 의원실)은 정기국회 국정감사 준비를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예산회계시스템에서 접속권을 부여받고 합법적 예산정보를 조회했다”면서 “무슨 치부가 드러나기에 청와대까지 나서서 ‘손버릇’, ‘자숙’ 운운하며 이렇게 노골적인 야당 탄압행위에 나서는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인 심 의원의 보좌진들을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전자정부법 위반 혐의로 지난 17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기재부는 “보좌진들이 이달 초순경부터 상당 기간 대통령비서실, 국무총리실, 기재부,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등 30여개 정부기관의 47만건에 이르는 행정정보를 무단으로 열람 및 다운로드했다”고 고발 사유를 밝혔다. 한국재정정보원 직원들은 지난 14일 심 의원실을 방문해 자료 반납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심 의원은 “세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등의 정보는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자료”라면서 반납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김재훈 한국재정정보원장 등을 무고 혐의로 지난 19일 검찰에 고소했다. 심 의원은 “정상적으로 접속해 다운로드받은 자료”라고 항변했다. 같은 날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심 의원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이 출석한 전체회의에서 “클릭만 하면 다 들어갈 수 있다”면서 “비정상적 방법? 백스페이스를 누르니 들어갑디다. 그것이 비정상이냐”고 따졌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같은 날 전북 군산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 참석 후 취재진에게 “지난 10년 동안 아이디를 활용해서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을 이용한 사람들이 1400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면서 “비인가 구역까지 들어와 방대한 양을 다운로드받고 반납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심 의원실은 입수한 한국재정정보원의 내부 보고서를 지난 20일 공개했다. 지난 13일 작성된 이 보고서는 심 의원실이 비인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 “통계 보고서 조회시 대상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백스페이스키를 연속 입력할 경우 본인 권한이 아닌 다른 사용자 권한의 보고서가 조회 가능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양측의 공방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진수)는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 있는 심 의원실과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재정정보원 사옥을 찾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심 의원실 앞에 가서 검찰에 항의한 김 원내대표는 “국가재정 정보와 관련해서는 쌍방 고발 건인데, 고발인 수사도 제대로 했는지 답도 못하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다”면서 비판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먼저 고발이 있었고, 의원실에서 무고라며 맞고소를 했다. 쌍방이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상황이라서 신속하게 실체 규명이 안 되면 논란만 지속된다”면서 “신속히 실체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압수수색을 위한 범죄 소명이 다 됐기 때문에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의원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당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를 비롯해 주요 부처들이 예산 지침을 어기고 업무추진비 사용이 금지된 곳에서 사적으로 유용한 사례를 무수히 발견했다”면서 한 예로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따라간 이들이 사적으로 예산을 썼다. 한방병원에서 썼다고 해서 확인해보니 그 호텔은 한방병원이 없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심 의원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심 의원이 지적한 내용이 “인도 순방기간(2018년 7월) 중 인도 대사관 관계자들과 통상협력 강화와 관련된 한-인도 확대정상회담 사후 조치사항을 협의하기 위한 간담회 비용으로 인도 뉴델리 Oberoi 호텔 내 중식당(Baoshuan)에서 집행한 것이며 이는 정상적인 집행 건”이라면서 “다만, 카드 승인내역에 가맹점 업종이 ‘한방병원’으로 나온 것은 신용카드사가 해외승인내역을 통보받아 입력하는 과정에서 국제업종코드(7011: 호텔)를 국내업종코드(7011: 한방병원)로 숫자코드의 자동입력에 따른 업종명 미전환 오류인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에서 허위 기재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靑, ‘정부 예산정보 유출’ 심재철에 “자숙해달라”

    靑, ‘정부 예산정보 유출’ 심재철에 “자숙해달라”

    청와대는 21일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수행한 사람들이 업무추진비 예산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청와대는 “해당 건은 대통령의 인도 순방기간(2018년 7월) 중 인도 대사관 관계자들과 통상협력 강화와 관련된 한-인도 확대정상회담 사후 조치사항을 협의하기 위한 간담회 비용으로 인도 뉴델리 오베로이 호텔 내 중식당에서 집행한 것”이라며 “이는 정상적인 집행 건”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카드 승인내역에 가맹점 업종이 ‘한방병원’으로 나온 것은 신용카드사가 해외승인내역을 통보받아 입력하는 과정에서 국제업종코드(7011: 호텔)를 국내업종코드(7011: 한방병원)로 숫자코드의 자동입력에 따른 업종명 미전환 오류인 것으로 확인되었는바, 청와대에서 허위 기재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청와대 지출내역에 ‘단란주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등의 주장도 전혀 사실이 아니며 청와대에서는 업무추진비 등 정부 예산은 법령을 준수하여 정당하게 지출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 의원이 정부의 비공개 예산정보를 무단열람·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별도의 논평을 통해 “심재철 의원실 보좌관들이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예산회계시스템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예산정보 수십만건을 내려받아 보관하고 있다”면서 “이를 반환하라고 공문까지 보내도 막무가내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이는 명백히 정보통신망법, 전자정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 의원은 이렇게 불법적으로 얻은 정보를 마음대로 뒤틀고 거짓으로 포장해서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며 “18일에는 얼토당토않게 단란주점을 들고 나오더니 오늘은 듣도보도 못한 한방병원”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변인은 심 의원에게 “자숙해달라”고 요구하면서 “5선 의원으로서, 국회의 어른으로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이날 검찰은 정부의 비공개 예산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하고 유출한 혐의로 심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야당 의원 피켓시위 속 檢, 심재철 의원실 압수수색

    야당 의원 피켓시위 속 檢, 심재철 의원실 압수수색

    기재부 고발사건…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가 수사 심재철 “해외순방 수행원 업무추진비 사적 사용 정황”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진수)가 21일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회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서자 한국당이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검찰은 심 의원 보좌진이 한국국가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에서 정부 비공개 예산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 유출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심 의원 측이 다운로드 받은 정부 비공개 예산 정보 내역을 반환하지 않자 기획재정부가 검찰 고발을 감행했고, 심 의원 측은 무고 혐의로 맞고발을 감행한 상태다. 검찰이 오전 10시쯤 수색에 나서자 한국당 의원들은 심 의원실에 모여 ‘의정활동 탄압하는 정치검찰 규탄한다’, ‘여당무죄 야당탄압 정치검찰 각성하라’ 등이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에 돌입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심 의원실 앞으로 모이라고 의원들에게 ‘소집령’을 내렸고 심 의원과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사무총장, 나경원·임이자 의원 등이 호응했다. 김 원내대표는 “국정감사의 기본인 자료 수집을 하는 의원 본연의 활동에 재갈을 물리는 폭거는 야당 탄압을 넘어 대의민주주의 말살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국토 개발정보를 고의 유출해 엄청난 사회 혼란을 야기했는데, 한참 전에 고발장을 접수했는데도 아무런 수사가 없다”고 지적한 뒤 “심 의원이 한국국가재정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이 정권과 검찰이 뭔가 크게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국회 보좌진 자격으로는 접근이 불허된 정부 업무추진비 자료 입수 경위에 대해 “업무망에 정당하게 접속했고, 조작 도중 백스페이스 키를 한 번 눌렀더니 해당 자료가 떠서 다운 받은 것인데 기재부는 비정상적 방법으로 작동해 자료에 접근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또 “대통령 해외 순방 때 수행한 사람들이 업무추진비 예산을 한방병원에서 썼다고 얘기해서 확인했더니 그 호텔에 한방병원이 없었다”면서 “정권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한) 이런 자료 등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이날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해당 건은 대통령의 지난 7월 인도 순방기간 중 인도 대사관 관계자들과의 통상협력 강화 간담회 비용”이라면서 “다만 카드 승인내역에 가맹점 업종이 한방병원으로 나온 것은 신용카드사가 해외승인 내역을 통보받아 입력하는 과정에서 국제업종코드(7011:호텔)를 국내업종코드(7011:한방병원)로 자동입력된 걸 전환하지 않아 생긴 오류”라고 설명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붓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려야죠…수묵담채화 기법 후세 남기고파”

    “붓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려야죠…수묵담채화 기법 후세 남기고파”

    “한국화, 특히 수묵화가 오랫동안 침체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수묵을 연구하는 화가들이 공부를 게을리해서 노력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봅니다. 대학에서는 동양화나 한국화 전공 학과가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그래도 나는 우리 고유의 수묵담채화 전통과 기법을 후세에 남기고 싶습니다.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릴 겁니다.” 길이 57m의 초대작을 그렸다는 오산 홍성모(58) 화백의 화실을 지난 12일 찾았다. 흰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묶었고, 빨간색 셔츠와 검정 개량 한복 바지를 입고 나왔다. 악수하며 맞잡은 손에서 작은 굳은살들이 느껴졌다.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그의 화실로 들어서자 안쪽 벽에 걸린 가로 2.75m, 세로 1.7m 크기의 흑백 그림이 반겼다. 무슨 그림인지 묻자 “사자 바위”라고 짧게 답한다. 설명을 듣고 그림을 보니 동그란 눈과 오뚝한 콧날, 수북한 갈기가 엿보이는 게 앞을 내려보는 사자처럼 보였다. 홍 화백은 “적벽강 사자 바위는 채석강과 함께 부안의 명물”이라고 설명해 줬다. 그는 전북 부안 출신이다. 그가 작품 구상을 설명했다. “사자니깐 전반적으로 좀더 거칠게 사납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림 오른쪽 상단을 가리키며) 빛을 이쪽으로 넣고···.” 이 그림은 부안군의회 포토존에 걸릴 예정이다. 화실의 다른 벽에는 용 비늘 같은 껍질의 소나무와 노란 개나리가 피어난 마을, 살구꽃이 흐드러진 동네 어귀의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길이 57.4m짜리 초대형 그림을 그렸다던데. -계화도에서 줄포만생태공원까지 변산반도 83㎞의 해안 사계절을 담았습니다. 한지에 그린 수묵화로, 길이가 57.4m, 높이가 1.2m입니다. 가로 2.05m짜리 작품 28개를 그려 이었지요. 시작한 지 20개월 만인 지난 6월에 완성했습니다. 그사이 쓰러져 병원에 두 번 실려 갔죠. 지난 7월 부안군에 이 그림 ‘해원부안사계전도’를 기증했습니다. 군청 민원실 1층과 2층 사이 난간 벽에 길게 걸려 있습니다.→이런 초대형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2013년 여름에 위도로 하얀 상사화 스케치를 하러 갔었거든요. 돌아오는 길에 선상에서 변산반도를 바라봤는데 너무 아름다워 이곳을 연작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바다에서 육지 쪽인 채석강을 보면 그야말로 신이 혼자 즐기려고 만든 정원같이 빼어난 절경입니다. 말 그대로 ‘해원’(海苑·바다의 정원)이지요. 이를 그려 기증하겠다고 제안하니 부안군에서 흔쾌히 받아 주었습니다. →부안군이 많이 지원해 줬겠다. -부안군이 곰소항 쪽에 작업실을 마련해 줬습니다. 저는 월~목요일 서울에서 활동하다 금요일 부안에 내려가 일요일까지 작업했습니다. 주말마다 266㎞를 달려 내려갔지요. 해안을 스케치하러 낚싯배를 15번 빌려 타고 나갔지요. 낚싯배 한 번 빌리는 데 30만원, 그건 제 지갑에서 나갔습니다. 겨울엔 줄포만 쪽엔 수심이 얇아 배가 못 들어가니 조개 캐는 아주머니들 태우는 경운기와 트랙터를 얻어 타고 갔지요. 잠은 처음엔 여관방에서 자다가 비용 문제로 찜질방에서 자고···. →작업할 때 가장 큰 애로는. -먹는 것이었습니다. 작업에 열중하다 깜빡 저녁 시간을 놓쳐 밤 8~9시쯤 나가면 식당들이 문을 닫아 먹을 데가 없어요. 또 간장게장이니, 무슨 찌개를 한 그릇 먹으려 해도 1인분은 팔지 않고 2인분 이상만 팔더라고요. 그래서 2인분을 시켜 1인분만 먹고 1인분은 포장해 와서 다음날 먹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서울에서 출발할 때 도시락을 두 끼 정도 싸 다니기도 했고···. 표구 값만 1000만원 넘게 들었는데, 모두 제 사비로 충당했습니다. →남다르게 깊은 고향 사랑 아닌가. -고교 졸업 후 가출하다시피 고향을 떠났습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나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팠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고향이지요. 아름다운 풍광의 고향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고향에 대한 보은의 마음입니다. 나이가 더 들어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떨려 작업이 힘들어지기 전에 그림을 남겨 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사진 촬영을 위해 작품을 그리는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직접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붓질 한 번에 산이 솟고, 나무에서 잎이 돋고, 길이 만들어지고, 강이 흘렀다. 그는 작품을 할 때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스케치를 보고 바로 붓질을 하죠. 그러다가 잘못되면 작품을 고칠 수도 없으니 그대로 종이를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버린 화선지 값만 해도 강남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겁니다.” →심장병 어린이를 많이 도왔다던데. -제가 심장병으로 대학 4학년 때 수업 중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때 의사가 ‘수술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고 했어요. 동료 학생들이 1000원씩 걷어 모금한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했고, 그 덕분에 살아났습니다. 그 후 돈이 생기면 단 한 명에게 심장병 수술을 시켜 주자고 결심한 것이 심장병 환자를 돕는 계기가 됐습니다. 1985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까지 13년 동안 어린이 50명에게 심장병뿐만 아니라 언청이 등의 수술을 해 줬습니다. 환자가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바로 찾아 입원시켰습니다. →심장병 어린이를 돕자면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자랑 같지만 제가 졸업과 동시에 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잘나갔죠. 병원비는 그때 작품을 그려 팔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그려서 팔고, 후원금 계좌도 만들고, 그렇게 해서 해마다 병원에 2500만원가량을 한꺼번에 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니 그림이 팔리지 않았고, 후원금도 끊겼습니다. 병원에서는 외상 수술비 갚으라고 독촉도 오고···. 그때 병원 외상이 2억원 남짓 했습니다. 금모으기 운동할 때 와이프 몰래 결혼 반지, 아이들 돌 반지까지 모조리 팔아 병원비를 갚는 데 보탰습니다. 그래도 남은 빚은 병원에서 탕감해 줬습니다. 지금은 심장병 수술을 돕는 단체도 많고, 보험도 적용되고 해서 더는 안 합니다. →그림 실력을 타고났나 봐요. -요즘도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하루 최소 2시간씩은 붓을 잡습니다. 대학 다닐 때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동양화로 바꿨습니다. 동양화 특히 한국화의 맛과 멋, 선의 묘미를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요즘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오른쪽 팔이 아파 들지를 못합니다. 한참 풀어 줘야 움직일 수 있지요. 이것도, 직업병 아닌가요. 하하하. 그의 오른손을 다시 만져 봤다. 가운뎃손가락의 마지막 끝 부분이 한쪽으로 뭉턱 들어갔다. “오랜 시간 붓을 잡고 씨름한 훈장이지요.” 그리고 그 손가락 끝과 손톱은 다른 손가락과는 달리 먹물로 검게 변해 있었다. →강원도 그림을 많이 그렸던데. -IMF 이후 병원 빚을 겨우 갚고 나서, 또 건강이 악화되어 숨어 살려고 강원 영월에 들어갔습니다. 그전에 80년대부터 영월군 청령포를 처음 접했을 때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기암절벽의 산과 계곡이 전부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런 풍경에 반해 영월의 폐교에 화실을 마련해 거기서 살았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 정말 그림을 많이 그렸지요. →다음 전시회는 언제 여나. -내년에 열한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에 스토리텔링을 하는, 약간 색다른 전시를 할까 합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정자나 경치, 나무 등에 얽힌 역사와 야사 등도 함께 적어서 그림 아래에 붙여 전시할 계획입니다. 요새 시간이 날 때마다 부안에 내려가 이야기를 채록하고 있습니다. 한 100점 정도 전시할 생각인데, 지금 70점 정도 완성했습니다. 글 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홍성모는 누구 - 1961년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 사범대 미술교육학과 졸업, 동국대 예술대학원 미술학과 졸업(석사), 개인전 10차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성균관대 겸임교수 역임, 동국대·원광대 강사 역임 ●작품의 대표적 소장처 - 한국은행 청주지점, 외교부, 국립현대미술관, 가천대 길병원, 싱가포르 대사관, 부안군청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베델 생가 英서 첫 확인 성과… 반세기 지나 ‘영원한 한국인’ 부활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베델 생가 英서 첫 확인 성과… 반세기 지나 ‘영원한 한국인’ 부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의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1909년 세상을 떠난 뒤 일제의 왜곡과 날조 등으로 한국인의 기억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반세기가 지나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베델이라는 이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부 수립 뒤 국가 재정비에 정신을 쏟느라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를 챙기지 못한 우리 자신의 책임이 컸다. 대한민국이 베델을 다시 찾은 건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독립된 정부가 세워진 지 20년이 지난 뒤였다.●베델 며느리가 손주 데리고 한국대사관 찾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학생과 근로자가 중심이 된 사회변혁운동)이 들불처럼 유럽 전역에 번지던 1968년 7월 15일. 영국의 ‘더타임스’ 16면에 조그마한 안내 광고 하나가 실렸다. 확대경을 대지 않으면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1905년 서울에서 신문을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이라는 분께 훈장을 드리려고 합니다. 연고자는 런던의 한국대사관으로 연락 바랍니다.” 한국과 영국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대영(大英) 남자’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베델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다 돼서였다. 하루 종일 신문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광고의 존재조차 파악하기 힘들 만큼 작게 게재돼 아무 반향도 없었다. 사실 우리 정부는 정말로 그의 후손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영국 최고 권위지 가운데 한 곳에 광고를 내 독립운동가를 찾으려 나름 노력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의도가 더 컸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반응이 나왔다. 신문 광고의 크기가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력을 반영하는 것 같아 측은해 보였던 것일까. 더타임스가 이 광고를 근거로 이튿날 ‘한국이 한 영국인에게 감사를 표하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쓴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대통령 훈장과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과거 한국의 국민 영웅이던 영국인 후손을 기다린다. 1905년 신문을 창간해 일본의 한국 지배에 저항하다가 1907~1909년 사이에 추방당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다.”더타임스 기사는 오류가 많았다. 그때까지 우리가 아는 베델에 대한 정보가 이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신문에 그의 이야기가 실리자 후손에게서 연락이 왔다. 베델의 며느리인 도러시 메리 베델(당시 52세·2002년 작고) 여사가 딸 수전 제인(당시 12세)과 아들 토머스 오언(당시 9세)을 데리고 한국대사관을 찾은 것이다. 베델 사후 반세기가 넘어 그의 가족과 한국이 다시 만난 순간이었다.●베델, 전 재산 한국에 쏟아 가족들 곤궁한 삶 도러시의 입을 통해 들은 베델 가족의 이야기는 한 편의 가슴 아픈 소설 같았다. 베델의 부인 메리 모드 게일(1873~1965)은 남편 사망 뒤 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을 데리고 결혼 전 살았던 영국 런던으로 돌아갔다. 베델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모은 재산 대부분을 대한매일신보 발간에 쏟아부어 영국에서의 삶은 힘들고 곤궁했다. 도러시가 한국대사관을 찾아왔을 때도 이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영국의 이웃들은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 가며 아무 이해관계도 없던 한국을 도운 베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메리 여사는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며 홀로 아이를 키웠다.한국 정부가 베델의 연고자를 찾았을 때는 그와 조선에 함께 살던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다. 1964년 아들 허버트가 63세에 사망했고 이듬해에는 베델의 부인 메리 여사도 92세로 숨을 거뒀다.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할아버지(베델)는 아버지(허버트)가 9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 역시 내가 10살도 되기 전에 떠났다. 할머니(메리 여사) 역시 말년에 치매 증세를 보여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베델의 후손들은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꾸준히 한국을 방문해 그를 기린다. 베델이 “영원히 살아남게 해 한국 동포를 구해 달라”고 당부한 신보는 어떻게 됐을까. 베델의 비서였던 영국인 알프레드 매넘이 신보사의 2대 사장이 됐지만 1910년 영국 정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본에 신보사를 팔고 떠났다. 이후 신보는 ‘매일신보’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했다. 조선인들의 신뢰도 사라졌다. 매일신보는 해방 뒤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꿨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 정권을 지지하다가 1960년 4·19 혁명 당시 시위대가 사옥과 시설을 파괴해 희귀 자료 대부분을 잃어버리기도 했다.●베델 다시 살려내는 데 정진석 교수 역할 커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베델의 발자취를 찾아내 ‘영원한 한국인’으로 부활시킨 이는 정진석(79)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였다. 1976년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영인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의 삶에 매료된 정 교수는 영국 런던정경대(LSE)에 수학하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베델 관련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냈다. 베델이 태어난 영국 브리스톨과 1888~1904년 무역업을 했던 일본 고베 등을 돌며 베델 기록 대부분을 바로잡았다. 지금 우리가 교과서 등을 통해 배우는 베델의 생애는 그가 일생을 바쳐 찾아낸 것들이다. 서울신문 역시 ‘조선을 사랑한 英 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기획을 통해 몇 가지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우선 언론학계의 주요 과제였던 베델의 영국 브리스톨 생가를 확인했다. 그간 베델 생가를 찾으려는 노력은 관훈클럽 창립자인 최병우(1924~1958)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 등에 의해 1950년대부터 수차례 시도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정 교수는 베델의 출생지 주소(Egerton villa, Egerton Road, Horfield)를 구했지만 지금의 영국 주소체계와 달라 생가를 특정하지 못했다. 국가보훈처는 서울신문이 찾아낸 베델 생가(현주소 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를 검증한 뒤 현충시설로 지정해 역사적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베델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던 베델 관련 자료도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전시하기로 했다. 여기에 서울신문은 베델의 가족관계 일부를 새로 발굴해 그가 왜 일본을 통해 조선에 오게 됐는지를 좀더 명확히 밝혀냈다. 해외 기사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베델이 통신원으로 조선에 와서 쓴 첫 번째 기사(전통놀이 석전)도 소개했다. 이밖에도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910년대 미국 작가의 역사소설 두 편(황제 납치 프로젝트·황제의 옥새)을 찾아냈다. 베델의 열정에 반해 러시아 기밀문서 등을 찾아내 독학으로 연구하는 외국인을 만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베델의 생애를 소개하며 그의 이름을 알리는 해외 네티즌도 확인했다. 베델의 발자취 찾기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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