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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DMZ 지뢰 도발] 軍 ‘저지→격멸’ 대응… “MDL 넘는 북한군 경고 없이 조준사격”

    [北 DMZ 지뢰 도발] 軍 ‘저지→격멸’ 대응… “MDL 넘는 북한군 경고 없이 조준사격”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1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을 적극 실시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군 당국의 DMZ 수색·정찰 작전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는 북한군을 격멸하는 수준으로 격상될 전망이다. 군은 MDL을 넘는 북한군을 경고방송 없이 조준사격하고 DMZ 내 수목을 제거하는 한편 전방지역에서 민간단체가 맡아 온 대북 전단을 직접 살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DMZ 주도권 작전은 우리 병력을 투입해 수색매복 작전을 강하게 해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쪽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DMZ 안은 여름에 숲이 울창하고 감시가 쉽지 않아 필요한 곳에는 수목을 제거해 감시 가능성을 더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북한에 대한 ‘혹독한 대가’ 차원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문제에 대해 “군내 핵심 담당 부서에서 가능한 모든 방안을 대안으로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특히 DMZ 수색 작전의 개념을 북한군이 MDL을 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소극적 저지 방식에서 벗어나 MDL을 넘는 북한군은 무조건 격멸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DMZ 내 MDL을 넘는 북한군에 대해 ‘경고방송, 경고사격, 조준사격’의 순서로 대응했던 수칙을 조준사격으로 단순화할 방침이다. 군 당국은 격멸 작전 개념을 극대화하고자 전방 부대의 수색 장소와 시간도 불규칙적으로 정할 예정이다. 북한군이 DMZ 안 우리 군 수색 장소와 작전 시간을 꿰뚫고 있고 그 장소와 시간을 피해 도발하거나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군 당국은 또한 DMZ 수색 작전 때 현장 지휘관 재량에 따라 지참하도록 한 무게 8㎏의 지뢰탐지기를 앞으로 필수적으로 지참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런 대책은 평소 북한 도발에 대해 “도발 원점을 타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실행 방안이 제한되는 상황을 의식한 우회 조치다. 군은 지난 4일 사고 현장에서 북한제 목함지뢰 잔해를 수거했지만 북한군이 이를 매설한 장면을 포착하지 못해 도발 원점이 명확하지는 않다. 일각에서는 지뢰 매설지역에서 가까운 북한군 경계초소(GP)를 도발 원점으로 보고 타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엔 헌장에서도 인정한 ‘군사적 자위권’의 실행 사유로 보기 어려워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때문에 북한의 체제 결속을 위협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부터 단계적으로 대응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확성기를 통해 북쪽으로 전파되는 방송 내용이 주로 북한 군부 인물 처형 등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북 심리전의 목표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노렸다는 의미도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朴대통령 “강력한 억지력으로 대북 압박 지속”

    朴대통령 “강력한 억지력으로 대북 압박 지속”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관련, “우리 정부는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을 지속해 나가는 한편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최근 이란 핵 문제 해결의 모멘텀을 활용해 북핵 문제도 진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북한은 여전히 비핵화 대화를 거부하고 핵 능력 고도화에 집착하고 있어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앞서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불법으로 침범해 목함지뢰를 의도적으로 매설한 명백한 도발”이라면서 “북한의 도발행위는 정전협정과 남북 간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북한이 이번 도발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 대변인은 “지난 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개최해 사건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가진 직후 “우리 군이 적극적으로 DMZ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을 시행할 것”이라면서 “대북심리전 확성기 방송도 (어제부터) 재개했고, 우선적 조치를 하고 차후 할 것들은 검토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국방부는 북한군이 DMZ 내 군사분계선(MDL)을 넘지 못하도록 저지해온 작전 개념을 DMZ 안 북한군을 격멸시키는 쪽으로 바꾸는 등 공세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MDL을 넘는 북한군에 대해서는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으로 대응해왔던 수칙도 ‘조준사격’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DMZ 도발을 ‘반인륜적 만행’으로 규정하고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북한은 분명하게 사과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설] 응징에 앞서 北 도발 루트를 원천봉쇄해야

    경기도 파주의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이 몰래 묻어 놓은 목함지뢰에 우리 군 부사관 두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북한군은 우리 군의 작전통로라고 할 수 있는 추진철책의 통문 앞뒤에 소형 지뢰를 매설했다고 한다. 일상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통문을 드나드는 우리 병사를 살상하겠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응당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 성명을 냈고, 국방부 장관은 현장을 찾아 “적이 도발하면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우리 군의 대응 방식이 신뢰감을 주기보다는 자괴감을 앞서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천안함 폭침에 연평도 포격, 무인정찰기 침투에 이르는 끊임없는 북한의 도발에 군의 대처는 한결같았다. 오로지 도발 원점 타격을 거론하며 단호하고도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는 것 한 가지뿐이었다. 우리 군은 지뢰 도발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그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고 한다. 대북 확성기는 2004년 9월 남북 합의에 따라 철거했지만, 2010년 3월 천안함 도발 이후 다시 설치한 것이다. 북한은 당시 방송을 시작하면 확성기 시설을 조준 포격하겠다고 협박했다니 DMZ에 배치된 북한 병사들을 상대로 하는 심리전에는 분명히 효과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통행로 지뢰 매설처럼 피눈물도 없는 계획적인 도발에 확성기 방송 재개 정도의 조치를 단호하고도 강력한 대응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우리 군이 자신들의 도발을 막아 내지 못한 것을 비웃으며 확성기 방송에 코웃음 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지 국민은 분노한다. 국방부는 어제 북한의 지뢰 도발에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개념이었던 것을 비무장지대의 북한군을 격멸하는 개념으로 바꾸는 내용이라고 한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북한군에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으로 대응하던 수칙도 ‘조준사격’으로 단순화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남북 관계가 정상 궤도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은 예상됐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2012년 이른바 ‘노크 귀순’과 지난 6월 초소 앞 ‘숙박 귀순’ 같은 비무장지대 작전에 허점이 드러난 것도 대비책을 세울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또다시 사건이 터진 뒤에야 대책을 내놓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국민은 도발을 저지른 북한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해 줄 것을 우리 군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쳐 버린 상황에서 무모한 도발 원점 포격 같은 조치가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군의 작전 개념은 북한이 아예 도발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가능한 모든 도발 루트를 원천봉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비무장지대의 긴장감을 낮추고, 나아가 남북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 北, DMZ 지뢰 도발… 軍 ‘심리전 방송’ 재개

    北, DMZ 지뢰 도발… 軍 ‘심리전 방송’ 재개

    군 당국이 지난 4일 경기 파주시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는 북한군이 의도적으로 우리 군 작전지역에 목함지뢰를 매설해 발생한 도발 행위라고 규정했다. 군은 응징 차원에서 11년 만에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대북 심리전 성격의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에 따라 8·15 광복 및 분단 70주년을 앞두고 경색된 남북 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0일 “지난 4일 서부전선 DMZ 수색 작업에서 우리 장병 2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건은 북한군이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매설한 목함지뢰 3발이 폭발한 데 따른 것”이라며 “도발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우선 MDL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부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군 당국은 북한군이 DMZ 안의 MDL에서 남쪽으로 440m 내려와 경계초소(GP)와 이어진 추진철책 통문 앞뒤에 목함지뢰를 매설했다고 설명했다. 지뢰를 매설한 시기는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1일 사이로 추정된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도 이날 “북한군은 정전협정을 위반했으며 북한군에 장성급 회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이번 지뢰 매설지와 가까운 서부와 중부 지역 등 2곳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했다. 방송 시간은 부정기적이다. 군은 방송 재개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건의해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의논해서 결정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군은 2004년 6월 남북 합의에 의해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지되자 방송시설을 철거했다. 이후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을 계기로 시설을 다시 설치했지만 실제 방송은 유보하고 있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체제 결속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는 북한은 2010년 당시 군이 방송을 재개하면 확성기 시설을 조준 사격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한 장관은 이날 사고 현장에서 750m 떨어진 GP를 방문해 “적이 도발하면 GP장(현장지휘관) 판단하에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한·미연합사령부도 이달 실시되는 한·미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에 미국의 전략무기 B2 스텔스 폭격기와 F22 전투기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군 당국은 이날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함께 경기 연천, 파주 등 접경 지역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에서 일하는 주민들에게 민통선 이남으로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北 목함지뢰 도발,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北 목함지뢰 도발,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이 사실상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로 밝혀지면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과거 군 복무 당시 이번 사건이 벌어진 지역 인근에서 수색, 매복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저절로 주먹이 쥐어질 정도로 큰 아픔과 분노를 느꼈는데요. 의도적인 도발이라면 과연 북한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 우리가 이번 사건을 통해 분명히 짚어봐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우선 2010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겠습니다. 2010년 7월 31일. 인천 강화군 주문도에서 낚시를 하던 주민이 나무로 만든 ‘목함지뢰’ 1발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목함지뢰는 무게 420g, 길이 22cm, 높이 4.5cm, 폭 9cm로 상자 안에는 TNT 220g의 폭약과 기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금속탐지기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찰과 군이 인근 지역을 수색해보니 볼음도, 아차도 해안에서도 목함지뢰가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무려 11발이었는데요. 6개는 실제로 폭발물이 들어있어 인위적으로 폭발시켜 해체했습니다. 목함지뢰는 북한이 주로 사용하는 지뢰였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진 것은 당시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실제 폭발 사고까지 일어났습니다. ●100발이 넘는 목함지뢰가 떠내려온 까닭은 이날 오후 11시 20분 경기 연천군 백학면 전동리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서 목함지뢰 1발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주민 한모(48)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김모(24)씨는 얼굴에 화상을 입고 팔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민통선 안 임진강으로 가서 낚시를 즐기다 갈대밭에서 목함지뢰를 발견했습니다. 한씨가 폭발물을 들고 나왔고, 김씨는 5~6m 뒤따라 갔는데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지뢰가 폭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가 여름철 호우 때문에 남쪽으로 떠밀려 내려온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북한의 의도적인 공격이라는 분석은 없었습니다. 군경은 좀 더 세밀하게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8월 1일 강화도 인근에서 2발, 경기 연천군 민통선 안 임진강 유역에서 17발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1일까지 36발, 2일에는 66발로 지뢰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은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통해 재발방지를 촉구했습니다. 1~2개가 발견된 사례는 있었지만 수십개의 지뢰가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지뢰를 방출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국민들을 거듭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지뢰는 안전장치가 없었고, 굴러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국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했습니다. 한편에선 피서 절정기에 서해에서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북한의 고의냐, 수해 때문이냐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일부 탈북자들이 먼저 북한이 의도적으로 목함지뢰를 흘려보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그 해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 5월 24일 남북교역을 전면 금지한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로 남북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탈북자들은 특히 5~7년이면 외관이 썩어 부식되는 목함지뢰 가운데 상당수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 안전장치가 없는 지뢰가 많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북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1990년대 이후 북한이 목함지뢰를 대량으로 매설한 사례가 드물다고 주장했죠. ●목함지뢰 발견 뒤 3개월 만에 연평도 포격 사건 뿐만 아니라 탄약고 붕괴로 인한 유실로 본다고 하더라도 다른 탄약이나 장비는 발견되지 않고 엄청난 양의 목함지뢰만 목격돼 의문이 증폭됐습니다.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10일 동안 발견된 지뢰는 110발을 넘어섰습니다. 그 와중에 북한은 해안포 110여발을 서해상에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대응 태세를 떠보려는 의도가 분명했지만 우리 군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11일이 돼서야 정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의도적 유출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언론에 “북한의 수해가 한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닌데 유독 올해만 목함지뢰가 떠내려온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군과 정보당국은 목함지뢰가 북한의 도발 징후라는 명확한 물증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갔고, 목함지뢰는 8월 말까지 176발이 발견됐습니다. 10월에는 강원도에서도 목함지뢰가 나왔습니다. 발견되지 않은 지뢰까지 합하면 300발 이상이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군은 북한의 의도나 도발 여부를 끝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해병대원 2명과 주민 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26명이나 됐습니다. 포격에 많은 가옥이 불타고 파괴됐으며, 주민 대부분이 섬을 떠나 육지로 대피했습니다. 저도 사건 직후 연평도에서 현장 취재를 했고, 수많은 정보를 접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목함지뢰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뚜렷한 도발 징후로 봐야했지만 목함지뢰는 곧 잊혀진 사건이 됐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드러난 이상한 점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전방지역에서는 꾸준히 목함지뢰가 발견됐습니다. 그렇지만 해마다 발견된 양은 20여발에 불과했죠. 2010년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매년 물난리를 겪었지만, 더 이상 목함지뢰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 아니라고, 우연이라고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도 사건의 상관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지 못했고, 의도적 도발 여부를 규명하기도 전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져 묻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도적 도발이라는 점이 거의 분명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강한 송진 냄새를 풍기는 새 지뢰가 우리 측 DMZ 전방 철책 출입구 바로 아래에 묻혀있었다는 겁니다. 2010년과 마찬가지로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포착하진 못했습니다. 묘하게 시점도 닮아있습니다. ●도발 강도 높이는 北…대비태세 점검이 시급하다 북한은 강도를 조절했을 뿐 매번 의도적으로 도발해왔습니다. 정치적인 계산이 분명했고, 대북제재 등의 경제적 타격을 무릅쓰고 거듭 도발을 강행했습니다. 2010년 이미 노쇠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들 김정은에게 정권을 물려주기 위해 치밀한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서른도 되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세습 기반을 닦아줘야 하는데, 그는 민가와 우리 군 진지 포격이라는 극악의 수를 썼습니다. 그리곤 아들이 내부적으로 군부에 휘둘리지 않도록 ‘포격술의 대가’라는 명성을 덧씌웠죠. 그 대가로 생길 민간인 희생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김정은은 그런 방식의 세습교육을 받은 이입니다. 이는 이번 목함지뢰 사건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이희호 여사의 면담은 불발됐습니다. 아니, 북한은 애초에 면담을 진행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의 대북 메시지도 무시했습니다. 대신 우리 병사가 드나드는 철책문 바로 아래에 목함지뢰를 놓아두는 도발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도발 징후는 2010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뚜렷했습니다. DMZ에서 지뢰를 추가로 매설하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군은 그다지 주의깊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합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지뢰나 부비트랩, 매복조 등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를 더 했어야 했다. 현장 지휘관의 전술조치에 과오가 있었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군은 11년 만에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를 결정했습니다. 지뢰 매설 모습을 실제로 포착한 것은 아니어서 도발 원점이 명확하지 않고, 마땅히 응징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을 보고 “대북방송이 무슨 타격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강력한 응징이냐, 아니냐로 논쟁하는 것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2010년의 사건들을 교훈삼아 서둘러 보완해야 할 부분은 우리 군의 대북 감시태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군의 특이동향을 미리 포착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여겨야 합니다. 2010년에도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은 이미 8월에 감청을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공격계획을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공격이 아닌 평상적인 훈련이나 위협 정도로만 판단했습니다. 북한은 10월 노동당 창건일을 앞두고 군사적 긴장감을 크게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목함지뢰 매설로 이달 실시하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앞두고 분명한 도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김정은은 경제 위기와 외교적 고립을 해소할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는 한계가 있겠죠. 지난달 극심한 가뭄으로 쌀 배급량이 40%나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의 올해 쌀 생산량은 230만t으로 지난해보다 12%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일본과 접촉하는 동시에 우리와는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과거에도 그랬듯이 북한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긴장 수위를 높이는 전형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도발 강도를 높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군은 DMZ 등 전방지역의 대비태세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합니다. 현재의 상황을 기회로 삼아 반드시 개선해야 할 허점은 없는 지 세심하게 되짚어보길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살아 있는 안보 체험’ 강원 고성 DMZ박물관

    [명인·명물을 찾아서] ‘살아 있는 안보 체험’ 강원 고성 DMZ박물관

    북한 금강산과 해금강을 지척에 두고 자리 잡은 ‘DMZ박물관’이 역사 교육의 장으로 뜨고 있다. 강원 고성 최북단에 위치한 DMZ박물관은 워낙 최전방에 있어 그다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9년 8월 개관 이후 해마다 13만~14만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잊혀 가는 한국전쟁과 분단된 남북의 현실을 직접 체험해 보고자 봄가을이면 수학여행 학생들이, 방학 때면 가족 동반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다 보니 박물관으로 오르는 과정부터가 안보 체험이다.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군사지역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DMZ 입구에 마련된 안보교육관에서 간단한 안보교육을 먼저 받아야 한다. 남북 대치 상황에 관한 약 8분짜리의 안보 영상을 보고 제진검문소에 출입신고서를 제출해야 들어갈 수 있다. 사방이 군인들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검문소에서 30분 간격으로 군부대 차량의 보호를 받으며 출입이 허용되는 유일한 곳이다. 박물관으로 가는 절차부터 분단된 나라의 엄혹한 현실을 접하는 산 경험이 되고 있다. 수년 전 금강산 육로 관광이 이어지던 길이지만 지금은 최북단 명파리마을의 몇몇 주민들과 박물관 및 통일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만이 오가고 있을 뿐이다. 15만 1242㎡의 넓은 부지에 3층 건물로 들어선 현대식 박물관은 언뜻 전쟁과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는 고고·역사(208점), 전쟁·군사(626점), 자연·생태(723점), 민속·예술(511점), 문헌·기타(7222점) 등 한국전쟁과 DMZ에 관한 9290여점의 방대한 유물이 소장돼 있다. 박물관 외부에는 단체 공연이 가능한 야외 무대가 있고 야생화동산, 철책 체험장, 생태연못 외에 대북심리전 방송장비, 탈북 목선, 전차와 자주포 등이 전시돼 있다. 야외 무대에서는 평화염원콘서트와 DMZ 미래길 걷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박물관 입구에는 수년 전까지 대북심리전에 사용됐던 대형 확성기 등의 방송장비도 전시돼 있어 남북의 심리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엿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바다를 통해 탈북하면서 사용했던 낡은 목선도 3척 전시돼 북한 어민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특히 박물관 인근 언덕에 마련된 야생화동산에는 DMZ 안에서만 자생하는 벌노랑이꽃이 심어져 봄이면 장관을 이룬다. 산책로를 따라 언덕에 마련된 동산의 전망대 데크에 오르면 금강산과 해금강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또 동부전선의 철책선 일부를 옮겨 와 그대로 설치해 놓은 250m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철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 이곳이 비무장지대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장고와 통신실, 일반 사무실이 있는 1층을 지나 박물관 2, 3층에는 전시관과 영상관, 다목적센터 등이 마련돼 있다. 테마별로 4개의 존으로 나뉘어 있는 전시관은 각종 유물과 전시 영상으로 채워져 있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DMZ’를 주제로 한 ‘1존’은 한국전쟁 전후의 실상과 휴전협상 과정을 잘 연출해 놓았다. 군사 편지, 총검, 철모 등 전쟁 당시 사용됐던 유품들과 3년이라는 긴 정전협정 기간 동안 발생한 정전협정서, 회견 서류 등을 시간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전시했다. ‘냉전의 유산은 이어지다’를 주제로 한 ‘2존’에는 휴전 이후 냉전이 이어지면서 발생한 사안들을 시간대별로 표현해 놨고 탄피와 군번줄, 수통 등의 병영 물품도 전시해 놓았다. ‘공존과 희망의 땅 DMZ’가 테마인 ‘3존’에는 전후 훼손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남아 있는 DMZ 내 생태계를 잘 옮겨 놓았다. DMZ 내 역사와 자연의 생태학적 가치도 보여준다. 이곳에는 철원의 태봉국터에서 발견된 유물과 조류박제 등도 전시돼 있다. ‘다시 꿈꾸는 땅 DMZ’의 ‘4존’은 미래의 전시 공간이다. 이곳에는 남북이 그동안 평화 통일을 위해 펼친 대북 협력 사업의 자료들을 시대별로 모아 놓았다. 전시관을 돌아보는 데는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외에 DMZ 등을 주제로 한 사진, 삐라 등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획전시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한번에 500여명을 수용해 포럼과 회의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센터도 있다. 소회의실과 대강당으로 나뉘어 있고 하루 25만원에 사용할 수 있다. 전시관과 별도로 마련된 영상관은 초·중등학생들을 주 관람객으로 삼아 DMZ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박물관을 소개하는 10분짜리 영상을 3차원(3D) 입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박물관 3층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의 뮤지엄샵에서는 특화된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이곳에서는 미니어처 군화, 철모 등의 기념품을 살 수 있다. 연중 다양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관람객 전시 참여 코너로 마련되는 소망엽서 만들기와 바람개비정원 꾸미기 등에는 5만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학교과 연계된 창의 체험 활동으로는 길 위의 인문학, 박물관 노닐기, 학생미술공모전 등이 열리고 ‘DMZ 콘텐츠 공예 체험’에서는 티셔츠, 에코가방, 천연비누, 군번줄 만들기가 인기다. 특히 군번줄 만들기는 2000원의 재료비로 직접 기념품으로 군번줄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어 5000명 이상이 몰리고 있다. 박물관이 민간인통제구역에 있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관람은 화~일요일 가능하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 시간은 3~10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이듬해 2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한다. 다만 성수기인 휴가철이나 가을 단풍철에는 3주일씩 상시 개관한다. 외국인 관람객들도 많이 찾고 있어 일어와 중국어, 영어에 능통한 안내원이 있다. 안내원의 안내를 받고 설명을 듣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신청하면 된다. 관람료는 어른 2000원(단체 1400원), 청소년 1400원(단체 1000원), 어린이 1000원(단체 700원)이다. 7세 이하 어린이나 65세 이상, 장애인과 보호자, 국가독립유공자와 유족 등은 무료다. 유인옥 DMZ박물관 경영관리실장은 “국내 유일의 DMZ 관련 박물관으로 잊혀 가는 한국전쟁의 아픔과 남북 분단의 현실을 고스란히 느끼고 배워 갈 수 있는 곳”이라면서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듯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를 체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vs 北 본격 사이버 전쟁땐 누가 이길까?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vs 北 본격 사이버 전쟁땐 누가 이길까?

    미국 연방수사국(FBI :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이 지난 주말 소니 픽쳐스에 대한 해킹 사건을 북한의 대응으로 규정하고, 이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비례적 대응'을 공언한 직후 북한 인터넷이 10시간여 완전히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의 인터넷 사이트들은 23일 오전 01시경부터 접속이 불안정해기 시작했고, 이후 새벽 시간대에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에 서버를 두고 있는 대외 선전용 매체의 모든 접속이 불가능해졌다. 이후 완전 다운 10시간여만인 23일 오전 11시40분께 북한 사이트들은 모두 정상화됐다. 북한 인터넷 접속 불가능 상황에 대해 미국의 IT전문 매체들과 연구소들 역시 일제히 "현재 북한의 인터넷 다운 상황은 그들이 사용하는 라우터가 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분석하면서 북한의 인터넷망이 공격받았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나섰다. 소니 픽쳐스 해킹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대북 사이버 공격에 나선 것이다. -미국의 사이버전 전력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오바마 대통령의 비례적 대응 발언 직후 발생한 정황으로 미루어 미국 사이버사령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에 대한 사이버 공격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베르나뎃 미핸(Bernadett Meehan)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북한 인터넷이 다운됐다면 그 사실은 그 나라 정부에 가서 논평을 구하길 바란다"면서 이번 사태에 미국이 연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사이버전 부대를 보유하고 있고, 연방정부 예산자동삭감(Sequestration) 상황에서도 사이버전 전력만큼은 예산을 늘려가며 전력을 강화해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미국이 주도했다면 미군 사이버사령부 전력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사이버전 수행은 국가안보국(NSA : National Security Agency)가 맡아왔다. 메릴랜드(Maryland) 소재 포트 미드(Fort Meade)에 위치한 NSA 본부에는 중앙안보원(Central Security Service) 본부와 사이버사령부(Cyber Command)가 함께 자리잡고 있는데, NSA에는 38,000여 명, CSS 25,000여, 사이버사령부에는 약 5,000여 명의 전문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NSA와 CSS는 요원 대부분이 석사급 이상 학위를 가진 엘리트 요원으로 알려졌고, 예하에 13개 사이버전 수행팀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조직 현황과 인력운용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진 바가 없으나, 사이버사령부는 그 조직과 인력 규모가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지난해 미 국방부는 기존에 900여 명 규모였던 사이버사령부를 4,900여 명 수준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장기적으로는 육군과 해군, 공군과 마찬가지의 별도의 군(軍)으로까지 격상시킬 계획이 있음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3개의 사이버전 수행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이 가운데 북한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유력한 부대가 있다. 사이버사령부의 전투부대는 유형별로 3가지로 분류된다. 미군 전산망 보호 임무를 담당하는 사이버 보호부대(CPF : Cyber Protection Forces)와 전력망이나 발전소 등 국가의 주요 인프라 전산망 방어 임무를 맡는 NMF(National Mission Forces), 적대 세력에 대한 공세적 사이버 작전을 펼치는 CMF(Combat Mission Forces)가 그것이다. CMF에는 전통적 개념의 물리적 전투가 발생하기 앞서 적의 전산망에 사이버 공격을 가해 지휘통제시스템을 사전에 무력화하거나, 전면적인 물리적 전투 행위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적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수행하는 임무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대북 사이버 공격에 이 부대가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사이버 공격을 통해 시스템을 파괴하거나 정보를 빼내는 형태의 공격이 아닌 단순 서버 마비 수준의 공격이었기 때문에 흔히 사용되는 분산서비스거부(DDoS : Distributed DoS) 형태의 공격이 실시되었고, 이번 공격 이후 북한의 복구 역시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이번 공격이 미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북한이 미국에 대한 사이버 보복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의 사이버 전력 수준은?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김정은 시대 들어서 비대칭 전력 강화의 일환으로 사이버 전력을 급속도로 강화하고 있으며, 사이버 공격 능력 수준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 8월, 김정은의 지시로 '전략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는데, 이는 정찰총국 산하 사이버전 전력을 독립ㆍ확대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2년 전략사이버사령부 창설 이후 북한의 사이버전 인력은 불과 2~3년 만에 기존의 3,000여 명 수준에서 6,000여 명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공격을 전담하는 전문 해커의 수가 1,200여 명을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전략사이버사령부는 지난 1998년 설립된 121소(所)에서 출발한다. 121소는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매년 그 조직을 확대해 왔으며, 2012년에 정찰총국 산하 전자정찰국 사이버전지도국(121지도국)으로 개편되었다가, 당과 군의 다른 사이버전 조직을 넘겨 받아 전략사이버사령부로 확대 개편된 것으로 알려졌다. 121지도국 당시 편제로는 전산망에 대한 공격이나 해킹을 통한 첩보 수집 활동을 담당하는 전문 해커 부대인 91소와 31소, 남한의 인터넷에서 이른바 '댓글부대'로 활동하는 사회일반인터넷심리전 담당부대인 32소,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자료조사실과 기술정찰조, 남한 정부와 군 기관에 대한 전문적인 사이버 공격 방법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110호 연구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는 이들이 명칭을 바꾸고 조직이 더욱 확대 개편되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이처럼 급속도로 사이버전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은 오래전부터 해커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평양에 있는 금성제1고등중학교는 물론 김책공업대학교와 미림자동화대학 등에 전문 해커 양성 과정을 개설하고 매년 50~100여명 규모의 해커를 양성하고 있으며, 영국과 중국 등 선진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최신 전산 공격 기술 획득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은 이밖에도 별도의 연구소를 설립해 해킹을 통한 정보 절취, 디도스 공격을 통한 서버 무력화 또는 파괴, 악성코드와 바이러스를 이용한 시스템 파괴 등 다양한 사이버 공격 수단을 보유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으며, 북한의 이러한 사이버전 수행 능력은 지난 2009년 7.7 디도스 대란 당시 청와대와 국회, 주요 포털 사이트 마비 사태나 2013년 주요 언론사와 농협 등에 대한 APT(Advanced Persistent Threats) 공격 등에서 입증된 바 있어 실제 미국에 대한 사이버 전면전에 나설 경우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으로 우려된다. -본격 발발땐 미국 피해 막대? 문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본격적인 사이버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입을 피해가 너무도 극심하다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물리적인 공격과 같은 확전의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1,100여개가 조금 넘는 수준의 IP를 사용하고, 워낙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인터넷에 대한 통제와 차단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미국은 인터넷 망 자체가 정치ㆍ사회ㆍ경제적으로 워낙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터넷 공격에 대해 대단히 취약한 상황이다. 영화 다이하드(Die Hard 4.0)에서 묘사되었듯이 이른바 '파이어 세일(Fire Sale)'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는 전직 정부요원이 국가 기간망을 해킹,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막대한 사회혼란을 유발시킨 뒤 금융기관 전산망에 침투, 천문학적인 돈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묘사된다. 문제는 영화 속에 묘사된 이러한 장면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1년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공공수자원관리시스템이 러시아 해커들에게 공격당한 뒤 통제권을 빼앗긴 일이 있었다. 당시 해커들은 이 시스템의 SCADA(Supervisory Control And Data Acquisition)에 접근, 관리 제어권을 획득한 뒤 펌프 가동에 부하가 걸리게 해 일대의 식수 공급을 마비시켰으며, 당국은 펌프가 고장 난 원인이 해킹에 의한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가 사고 원인을 조사한 뒤에야 해킹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 설계도 유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커들의 공격 대상이 수자원관리시스템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나 공항 등이었다면 문자 그대로 대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해커들이 원자력 발전소 제어 권한을 획득해 냉각장치를 멈추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마찬가지로 연료봉이 녹아내리면서 심각한 방사능 유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고, 해커들이 항공관제시스템에 접근해 제멋대로 관제 명령을 내리게 되면 곳곳에서 항공기 충돌과 추락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은 각지의 발전소나 공항, 금융기관 등 지켜야 할 전산시설이 너무도 많지만, 북한이 언제 어느 경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가해올지 모든 루트를 완벽하게 방어할 수 없다. 사이버 공격이라는 것이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만 있으면 미국 내 가정집이나 호텔방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북한에 의해 자행되어 왔던 사이버 공격은 북한 내부가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과의 협조 없이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번 미국의 대북 사이버 공격에 대해 북한이 대규모 사이버 보복에 나서 미국 국가 기간시설이나 금융시설 등에 큰 타격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북한에 대한 물리적인 공격, 즉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이번 미ㆍ북 사이버전 양상이 실제 전쟁으로 확대될지 여부를 놓고 많은 우려가 모아지고 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檢 ‘국보법 위반’ 잇단 압수수색…통합진보당 해산에 ‘공안 바람’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전후로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한껏 의욕을 보이면서 ‘공안 정국’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양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2일 국보법 위반 사건 두 건의 관련자 10명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경찰은 앞서 지난 11일에도 ‘종북 논란’을 빚은 토크콘서트와 관련, 황선(41·여)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재미교포 신은미(53·여)씨를 3차례에 걸쳐 조사했다. 서울경찰청 보안2과는 이날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북한 선군정치를 옹호,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시민단체 ‘코리아연대’ 사무실과 대표 이모(44)씨 등 회원 9명의 주거지 등 총 5곳을 압수수색했다. 이씨 등 9명은 이적단체로 규정된 ‘연방통추’, ‘범민련 남측본부’ 등과 연대해 연방제통일과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2011년 12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조문 목적으로 공동대표 황모(38·여)씨를 밀입북시켰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또한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의 이적 문건을 제작·배포한 혐의 등으로 ‘민통선 평화교회’ 목사 이모(57)씨의 경기 김포 주거지와 사무실 등 3곳도 압수수색했다. 목사 이씨는 지난해 11월 독일의 친북 성향 단체인 ‘재(在)독일 동포협력회의’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 북한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 박모씨 등과 접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세미나에서 “애기봉 등탑 점등은 남측의 대북심리전”이라고 말하는 등 북한 주장에 동조하고 이적 문건을 제작·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긴장의 한반도… 남북화해 물꼬 틀까

    유엔 총회가 오는 18일 북한인권결의안을 처리하기로 함에 따라 한반도에서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3주기(17일)를 맞아 16일 개성을 방문하기로 하는 등 이번주에 남북 관계의 주요 일정이 이어지지만 관계 개선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4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를 통과한 북한인권결의안이 18일(현지시간) 본회의 오전 회의 안건으로 잡혔고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소식통은 “유엔 총회에서의 북한인권결의안에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0개 이사국이 북한 인권을 의제로 다루자고 요청함에 따라 이번 주 중에 북한 인권이 안보리의 정식 의제로도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일 사망 3년이 되는 17일은 북한이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로 진입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11일 미국을 방문해 “통일대박론은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직후 박 의원의 방북 신청 사실이 알려져 남북한 간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달 유엔 총회 3위원회의 인권 결의안 채택에 대해서도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자 정치적 도발로 규정하고 “핵실험을 자제할 수 없다”고 위협한 바 있다. 특히 오는 23일에는 우리 정부가 허용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 행사가 예정돼 있어 북한이 대북 심리전이라고 반발할 것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박 의원의 방북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화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의 획기적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김 제1위원장이 해군 잠수함 부대를 방문해 어뢰 훈련을 지도하고 “내년을 해군무력 강화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해로 삼자”고 전의를 불태웠다고 전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인권결의안을 빌미로 더욱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라면서 “박 의원이 북한에 가도 의미 있는 대화는 나누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강동완 동아대 정외과 교수는 “김 제1위원장의 입장에선 김정일 3주기를 맞아 대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 체제 결속에 유리하다”면서 “북한은 정부 특사도 아닌 박 의원의 역할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오늘의 눈] 대북전단과 애기봉/김학준 사회2부 차장급

    [오늘의 눈] 대북전단과 애기봉/김학준 사회2부 차장급

    국내 최대 북한이탈주민 집단 거주지인 인천 논현 지구에서 만난 주민 대부분은 대북전단 살포를 반대했다. 탈북자 단체가 전단 살포를 주도한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단순한 반대 정도가 아니라 탈북자 단체의 정체성까지 들먹이며 혐오감을 드러냈다. “우리도 모르는 정체 불명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는 것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한 여성 탈북자는 “아무리 자유민주주의라 해도 이건 아니다. 정부가 왜 있느냐”고 반문했다. 국민들도 전단 살포가 남북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봐도 삐라는 분쟁을 이어 가는 불씨다. 결국 전단 문제가 남북 고위급회담 무산의 한 원인이 됐다. 우리 정부의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실세 3인방이 전격 방문한 이후 정부는 남북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민간단체의 자율적 행위이기에 실정법상 제지할 근거가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군이 전단을 향해 총을 쏴 유탄이 접경 지역 마을에 떨어져 주민들이 공포에 떠는 상황에서도 단속 근거가 없다고 한다. 취객이 아파트에서 조그만 소동을 벌여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가.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단속 근거가 없다면 탈북자 단체를 찾아가 설득이라도 했어야 한다. 탈북자 단체는 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안위가 달린 이 일엔 왜 가타부타 말이 없는지 궁금하다. 애기봉 등탑 문제도 야릇하다. 수만 개의 전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황해도 일대를 훤히 비춰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을 자극해 왔지만, 2004년 남북이 심리전 중단에 합의한 이후 사실상 가동이 중단됐다. 시설 노후로 붕괴 위험이 대두되자 국방부와 논의를 거쳐 지난달 등탑을 철거한 해병 2사단은 식은 땀을 흘려야만 했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등탑 철거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식 사과했으니 사정이 어떠했겠는가. 한 장관 역시 대통령으로부터 등탑 철거에 대해 호된 질책을 받은 뒤였다. 그리고 애기봉 시설물을 더 크게 짓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정녕 왜들 이러는지 알 길이 없다. 이기려면 힘이 있어야 하지만 져주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북 전단과 등탑 문제는 대승적 차원에서 져 줘도 괜찮은 사안이다. 실익도 없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남북 화해를 안 하려는 것이면 몰라도 당국이 대화를 외치면서 전단과 등탑은 ‘별개의 문제’처럼 치부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 탈북민은 “김정은이 나쁘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를 노골적으로 욕하는 삐라가 뿌려지는 상황에서 대화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탈북자만 한 식견도 없는 당국자들이 안타깝다. kimhj@seoul.co.kr
  • [오늘의 눈] 나의 독재자, 그리고 우리의 독재자/박록삼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나의 독재자, 그리고 우리의 독재자/박록삼 문화부 기자

    설경구 주연의 영화 ‘나의 독재자’는 애잔합니다. 산업화 시대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각각 살아온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둘 다 시대의 복판은커녕 끄트머리 변방에서 서성였던 이들입니다. 주변부에서 기신기신 사는 삶에 무슨 사회적 금기가 있었겠습니까. 당시로서는 ‘때려잡아야 하는’ 증오와 타도의 대상인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연기해야 하는 일임에도 무명배우 아버지는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픈 들뜬 마음 앞에 ‘레드 콤플렉스’ 같은 게 들어올 겨를이 없었죠. 아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단계 자석요를 팔면서 한탕이나 노리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겨다니는 부초 같은 삶을 삽니다. 아들은 자아분열, 과대망상증에 걸린 아버지를 처음에는 지긋지긋해하다가 나중에는 연민을 보내고, 결국 연민을 넘어서는 깊은 부성애를 확인합니다. 영화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은 자식의 성장과정에서는 ‘필수’ 통과의례입니다. 엄한 아버지가 쳐 놓은 인식과 행동의 울타리는 사실, 갑갑하기 그지 없습니다. 머리 굵어진 자식들은 가능한 한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 합니다. 혹은 일부러 비뚤어지면서라도 아버지의 기준을 벗어나려 애씁니다. 자식에게 아버지란 늘 ‘독재자’ 같은 존재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죠. 독재를 용납하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운 듯합니다. 훗날 돌이켜보면 아버지를 부정하려 애썼던 그 갈등과 투쟁의 시간들이 자신을 훌쩍 성장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식에게 흔적을 남겨 줍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한 채 영영 헤어지는 건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일이겠지요. 틈날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눈물 지을 일이 많아집니다. 물론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해 그의 자장 안에 머물며 사는 자식들 또한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아버지의 독재’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건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자식 관계가 아닌 사회 속에서 이뤄지는 ‘독재-반민주’는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아버지가 그어 놓은 금 안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곤 했던 대통령입니다. 요즘에는 레이저가 떨어졌는지 주로 호통을 치는 것 같습니다. 대북심리전의 상징과 같은 김포 애기봉 등탑이 철거되자 “왜 없앴냐”고 호통을 쳤고, 그러자 정부는 곧바로 새로 더 크게 세우기로 했습니다. 또 말 한마디로 국회의 합리적인 개헌 논의를 중단시키려 합니다. 대통령을 ‘닭’으로 표현한 화가의 그림은 전시가 거부됐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대북 삐라 보내기’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라며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래 놓고 국무총리는 국회에 나와 “우리 사회에 표현의 자유가 너무 지나치다”는 식의 반헌법적 발언을 버젓이 합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 정당을 해산시키려는 파렴치함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2014년 대한민국 사회에 ‘우리의 독재자’가 존재함이 분명합니다. youngtan@seoul.co.kr
  • [시론] 북한인권문제, 침묵이 능사는 아니다/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북한인권문제, 침묵이 능사는 아니다/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유엔 제3위원회에 공식 상정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지난달 30일 유엔 웹사이트에 공개됐다.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밝힌 인권 침해의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북한에서 지난 수십년간 최고 수준에서 수립된 정책에 따라 반인도 범죄가 자행됐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는 COI의 내용을 인정하며, 유엔 안보리가 북한에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특히 최고지도자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와 북한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내용을 결의안 초안에서 삭제하기 위해 온갖 압박과 회유를 구사했다. 유엔에서 설명회를 열어 인권 문제를 적극 해명하는가 하면, 최고지도자를 ICC가 기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삭제할 것을 조건으로 다루스만 보고관을 북한에 초청하겠다고까지 했다. 10년 동안 다루스만 보고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방북을 불허했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제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 통과를 앞두고 다급해진 북한은 미국과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연일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미국에 동조하면 남북 관계의 파국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대응하기 위해 탈북자들의 가족들을 이용한 심리전까지 펼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미국과는 더이상 ‘인권 대화’는 물론 ‘핵(核)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에 대한 압박수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4일 북한 실세 3인방의 인천 방문을 통해 합의한 제2차 고위급 회담은 무산위기에 처했다. 북한은 ‘삐라 살포야말로 국제법 유린으로 반인권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한다. 대북 전단 살포가 중단되지 않으면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극단적이고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당국이 부인한다지만 북한의 열악한 인권침해 실태는 사실로 밝혀졌다. 인권은 누구나 누려야 할 인류 보편적 가치로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 최악의 인권 침해 국가로 지목된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긴밀한 국제협력이 더욱 요청되는 이유다. 최근 유엔총회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공조 체제 구축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안팎의 지속적인 관심과 압박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당당한 원칙과 결연한 의지’로 남북 관계에 임할 필요가 있다. 대화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 두되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을 벗어나고자 남북대화를 악용하는 이른바 위장평화공세에도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알면 바뀐다”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증언처럼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위한 외부정보 유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외부정보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경험하고 인식한다. 북한 주민들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역량 강화를 위해 대북방송 및 영상물, 한국 상품 등을 투입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결국 그 불의에 대한 공범자다’라는 말이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는 수년간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싸고 남남 갈등만 심화되고 있다. 한반도 분단 70년을 앞두고 통일대박을 꿈꾸는 지금은 무엇보다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최악의 인권 침해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촛불을 밝힐 수는 없을까. 통일시대를 함께 살아갈 우리의 형제들이기에….
  • “군인·관료 쇄신 없인 남북·대외관계 대응 골든타임 놓친다”

    “군인·관료 쇄신 없인 남북·대외관계 대응 골든타임 놓친다”

    최근 외교·안보 부처의 엇박자는 남북 관계와 대외 관계가 복잡하게 흘러가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임기 초기에는 원칙과 기조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외교·안보 부처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지만 임기 2년차에 각종 변수에 대응하면서 혼선이 야기된다는 분석이다. 임기 1년차에서 비교적 무난한 평가를 받으며 정치권의 개각 논의에서도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던 이들 외교·안보 부처들은 정책 프로세스의 재점검이나 인적 쇄신이 없다면 또다시 엇박자를 반복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임기 중반 외교·안보 부문의 혼선은 과거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북핵 포기를 전제로 한 ‘비핵·개방 3000’과 남북 대화의 투명성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임기 2년차인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선전부 부장을 만난 사실이 드러나며 기존 원칙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임기 2년차에 북핵 문제 접근 방식 등을 놓고 한·미 동맹이 균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또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실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이 외부에 노출되며 NSC의 월권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임기 2년차인 2004년 논란이 됐던 휴전선 일대의 대북 심리전 장비 철거는 최근 논란이 된 애기봉 등탑 철거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임기 5년 안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는 정부의 조급증을 지적하기도 한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임기 중반에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면서 그 이슈에 대응하는 과정이 혼선으로 보이지만 그것 때문에 혼선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이어 “정부로서는 3년차에 성과를 내야 4~5년차에 그 성과를 관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이 때문에 임기 2년차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는데 이것이 혼선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수훈 경남대 정치사회학과 교수는 “남북 관계는 특히 역동적이기 때문에 외교·안보 기조의 초점을 ‘현상유지’에만 맞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외교·안보 관료들이 함께 있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군인 출신과 관료가 함께 있는 외교·안보라인의 인적 구성상 잡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 정부는 외교·안보정책을 수행할 인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군 출신들이 주도하다 보니 혼선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지나치게 간섭하면 안 된다는 제언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주적 개념을 유지할지를 놓고 국방부와 통일부 간 논란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주적 개념을 유지하자는 국방부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으로 매끄럽게 해결됐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대통령은 전략을 짜는 자리가 아니라 이처럼 판단하고 결단하는 자리”라면서 “현재는 대통령이 세세한 것에까지 개입하는 형태가 나타나 협상에서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까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용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 외교·안보 정책은 전체적인 지향점은 맞는데 세부적으로 추진할 때 엇박자가 나온다”면서 “관련 부처들이 서로 조율해 통일된 시각을 제시하고 다시 정책을 정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한기총 “애기봉 등탑 다시 세우겠다”

    대북 심리전의 상징인 김포 애기봉 십자가 등탑이 43년 만에 철거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호통 소식이 보도된 이후 다시 세워질 예정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31일 성명서를 통해 “등탑 철거와 관련해 그동안 침묵을 지킨 것은 남북 대화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의 뜻에 의해 철거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조용히 이 문제를 바라봤다”면서 “사안의 중대성을 논의한 끝에 철거된 등탑을 대신할 등탑을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기총은 등탑건립추진위원장에 직전 대표회장인 홍재철 목사를 임명했으며, 등탑을 세울 장소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앞서 국방부 시설단은 지난 16일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의 해발 165m 애기봉 전망대에 세워진 18m 높이의 등탑을 철거했다. 하지만 지난 30일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박 대통령이 “왜 등탑을 없앴느냐, 도대체 누가 결정했느냐”고 호되게 꾸짖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다시 급변한 셈이다. 김성호 기자 kimus@seoul.co.kr
  • 軍 애기봉 철탑 철거한 자리 두배 높은 전망대 신축 논란

    북한과 가까운 김포 애기봉(해발 165m)에 기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전망대가 설치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국방부와 김포시 등에 따르면 해병대 2사단이 담당하는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애기봉에 기존 전망대를 헐고 4층 규모, 54m 높이의 새로운 전망대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이는 현재 설치된 20여m 높이의 전망대를 훨씬 높여 신축하는 것으로, 현재 추진 중인 ‘애기봉 평화공원’ 조성 계획의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포시는 2017년 3월까지 총예산 296억원을 들여 애기봉 주변 4만 9500여㎡에 전망대와 야외 전광판, 6·25 전쟁영상관, 기념품점, 식당 등을 갖춘 애기봉 평화공원을 꾸밀 계획이다. 기존 전망대 옆에 있던 18m 높이의 철탑은 최근 철거된 상태다. 철거된 18m 높이의 이 철탑에서는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점등식이 이뤄져 왔고, 북한은 이에 대해 반발해 왔다. 김포시는 “이번 새로운 전망대 설치가 대북 심리전 차원의 시설물은 아니고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시설물 보강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애기봉 철탑을 철거한 지 얼마되지 않아 전망대를 기존보다 2배 이상 높인다는 계획에 대해 북한 측의 반발과 함께 논란이 예상된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커버스토리] 남북 70년 ‘삐라 전쟁’

    [커버스토리] 남북 70년 ‘삐라 전쟁’

    “인민군 동지 여러분! 평양, 원산 등은 이미 B29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고, 그대들을 사선으로 몰아낸 김일성 등은 만주 봉천으로 도피했다. 머지않아 전 세계 각국은 보조를 같이하여….” 1950년 7월 국방부가 북한군에 뿌린 대북전단(삐라)의 내용이다. 물론 이미 낙동강까지 밀고 들어온 북한군이 이를 믿을 리는 만무했다. 대북 전단은 1945년 해방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간헐적으로 살포됐지만 6·25 전쟁 때부터 본격화됐다. 일부 전단 살포 단체들은 성경에 나온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해 자신들이 보내는 대북 전단을 ‘다윗의 물맷돌’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기대하듯이 실제로 북한이라는 ‘골리앗’이 대북 전단으로 전복될 수 있을까. 대북 전단을 둘러싼 남북·남남 갈등의 한편으로 정말 북한 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이들 전단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따져 보자는 주장도 있다. 효과 논란은 6·25 전쟁 때도 있었다. 당시 미군은 포로들에게 전단을 읽었는지, 전단의 내용을 믿었는지 등을 물어 효과를 검증하기도 했다. 1950년 존스홉킨스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그해 9~11월 전쟁 포로를 신문한 결과 33.1%가 항복 이유로 심리전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다른 보고서는 이를 반박하기도 했다. 적의 발목까지 쌓일 정도로 전단이 뿌려졌는데, 적군의 사기가 저하됐거나 분열된 증거가 있느냐는 반론이었다. ‘삐라’가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언론학의 ‘탄환이론’을 연상하게 한다. “나도 삐라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대북 전단의 선전 메시지가 북한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을 줬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북한 주민의 의식을 계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내가 일단 그 수혜자”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삐라 한 장’ 자체만으로 북한 사회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북한 엘리트들의 반발도 체제 비판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지 주민 동요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북쪽을 향해 살포된 전단 가운데 북한 땅에 떨어지는 비율은 5%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북한이 반발하니까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대북 전단의 내용 자체가 너무 말초적이고 저급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라며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나온 노동신문을 깔고 앉아도 처벌되는 통제 국가에서 공안 당국의 단속과 충성심 경쟁만 유도해 북한 주민에 대한 효과보다는 내부의 공안 통치만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그래픽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 [커버스토리] “월북하면 100억” 달콤한 유혹… ‘USB에 한국 가요’ 문화적 충격

    [커버스토리] “월북하면 100억” 달콤한 유혹… ‘USB에 한국 가요’ 문화적 충격

    남북한이 살포해 온 전단의 내용물은 시대적 상황 변화와 궤를 같이해 왔다. 전단 살포의 목적은 물리적인 전투를 직접 벌이지 않고 상대 집단의 가치체계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전단은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해 왔다. ●남북 가치체계 혼란 야기 ‘조용한 전쟁’ 전쟁 중에는 항공기로 적지에 살포하는 전단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미 8군사령부와 극동사령부가 뿌린 대북 전단은 24억 6000만장이 넘는다. 우리 군이 뿌린 대북 전단까지 합하면 40억장이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에는 한 달간 1억 5000만장의 전단이 살포되기도 했다. 북한 측도 3억장을 살포하며 대응했다. 양측 모두 귀순을 유도하며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 주를 이뤘다. 국군이 전쟁 당시 북한군을 상대로 살포한 삐라에는 “중공군이 좋은 무기는 자기네가 차지하고 못쓸 무기만 북한군에 넘겨 주고 있다”며 북·중 혈맹 관계를 이간질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 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으로 연결되는 북·중 관계는 항일투쟁의 동지로 혈맹 이상으로 여겨졌다. 유엔군 총사령관 명의로 북한군에 살포한 삐라도 귀순을 유도하는 ‘안전보장증명서’가 대표적이다.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로 된 이 증서는 이 종이를 가지고 항복하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무고한 주민들을 살해하는 미군의 모습을 그린 삐라를 제작해 대응했다. 사기를 떨어뜨리고 미군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사랑하는 어머니께’(Dear Mom)로 시작하는 편지의 내용을 어머니가 읽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 군 장병 가운데 북한에 투항한 병사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내용도 많았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남북한의 삐라전쟁은 경제발전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특히 북한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1950~1960년대는 대남 공세가 거셌고 혼란한 시대상을 틈타 실제 월북한 인사도 많을 정도로 남한 정부는 수세에 몰렸다. 북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장군님 제일이야’, ‘민중 위주의 나라’, ‘치료비·공해 없는 민중이 살기 좋은 세상’ 등의 내용이 적힌 삐라를 살포했다. 특히 1960년대까지 평양의 빌딩과 가정집을 전단에 담아 월북하면 아파트까지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남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12달러로 북한(194달러)을 앞지른 1969년 이후 상황이 바뀌게 된다. 1970~1980년대 체제 경쟁에서 점차 밀리게 된 북한에서 넘어온 삐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 등을 거론하며 모욕하는 내용이 많았다. 1980~1990년대에 와서는 의거월북하는 국군 장병들에게 대학 교육까지 무료로 시켜 주는 동시에 생활보장금으로 최고 3억원, 상금으로 100억원이 넘는 돈을 준다는 과장된 내용도 나왔다. 남한은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높던 삼일빌딩(31층)을 내세웠다. 1980년대에 와서는 국산 자동차의 세계 수출이나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등 경제 발전상을 과시했다. ●1970년대 말부터 ‘풍선 대북전단’ 요즘처럼 풍선에 싣고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모습은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심리전을 기획하면서 타이완 국민당 정부가 풍선에 식료품을 실어 중국 본토에 보내는 사례를 본뜬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북한제 ‘천리마 라디오’와 같은 모양의 라디오를 만들어 대북 전단 풍선에 실어 보냈다. 대북 전단 풍선에 다는 타이머 역시 타이완 정부가 가르쳐 준 것으로 전한다. 정부는 당시 이에 대한 보답으로 타이완이 계절풍을 이용해 중국 둥성 쪽에 전단을 보낼 수 있도록 전북 부안에 임시 기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남한은 1980년대부터는 유명 연예인 사진을 전단에 넣고 월남을 유도하기도 했다. 또 선정적인 여자 모델 사진과 함께 귀순을 유도하고 월남할 때의 보상금과 혜택의 범위를 기재했다. 1990년대 중반 탈북한 정모씨에 따르면 당시 남한 정부는 삐라와 함께 옷 양말, 통조림, 1㎏짜리 봉지쌀, 여자 속옷, 시계 등을 비닐로 포장해 살포하기도 했다. ●北, 배용준·이승연 사진 넣어 대남전단 북한도 1990년대 이후부터 남측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한 삐라로 관심을 끌고자 했다. 당시 유명세를 탄 배용준이나 이승연의 사진에 ‘민족의 제일 자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문구를 넣어 이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처럼 디자인한 것이다. 북한의 대남 전단 공세는 김대중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실시하던 2000년대 초에도 지속됐지만 남북한이 2004년 심리전을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주춤해졌다. 북한은 대신 인터넷을 통한 선전 선동으로 방향을 바꿨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우리 민족끼리’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대북 제재 조치로 심리전이 재개됐고, 북한은 지난해 연평도와 백령도 등 접경 지역에 한국군의 전투의지를 꺾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정부 대신 탈북자 출신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섰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치부를 겨냥한 삐라 살포는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됐다. 이들은 김씨 정권이 수입하는 프랑스 코냑, 종마, 명품 가방, 시계와 유아용품 등 사치품을 부각시켰다. 특히 김정일의 여성편력 등 문란한 사생활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이 ‘상호비방’ 중지를 요구하고 나선 계기로 평가된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의 대북 민간단체들이 지난 10일 경기 파주시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풍선에 매달아 띄운 전단에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 사진과 함께 “우리 탈북자들은 북조선 인민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김정은 3대 세습을 끝내기 위한 자유민주통일의 전선으로 달려간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김정은 일가 가계도 실린 대북전단도 특히 최근 대북 민간단체들은 전단에 보통 1달러짜리 지폐나 USB 등도 같이 넣어 보낸다. USB에 담긴 한국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을 통해 문화적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최근 북한이 전단 살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일가의 가계도가 실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부친은 제주도 출신의 재일교포로 조총련의 동포 귀국 사업에 따라 북한에 들어간 인물이다. 북한에서 재일교포들은 항일혁명과 6·25전쟁 후 재건을 이룩한 주류 사회와 달리 기회주의자로 평가된다. 북한 당국이 순수혈통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백두혈통’이 알고 보니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 후손이라는 내용은 김 제1위원장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국내여행 | 마음이 뻐근해지는 DMZ 시간여행

    국내여행 | 마음이 뻐근해지는 DMZ 시간여행

    끊어진 국토의 허리는 우리 민족이 50년 넘게 앓고 있는 요통이다. 그러나 욱신거릴수록 주무르고 두들기며 관심을 쏟아야 하는 법. 철원 백마고지역으로 향하는 DMZ 트레인이 치유의 몸짓인 이유다.시간을 달리는 기차 기차가 ‘현재’를 출발했다. 2014년 여름, 도심의 고층빌딩숲과 아파트촌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기차가 철로를 휘감으며 질주하자 시간의 태엽도 뒤로 감기기 시작했다.경원선의 시간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4년 8월14일에 서울에서 원산元山까지 223.7km를 개통했다. 그러나 분단과 함께 허리가 끊겼고, 이후 용산에서 신탄리역까지만 운행했다가 2012년 11월에 백마고지역이 신설되면서 용산역-백마고지역까지 94.4km를 운행해 왔다. 그리고 이번 경원선 DMZ 트레인의 개통으로 운행 구간이 조금 더 늘어나게 됐다. 끊어진 북쪽 구간(백마고지역에서 평강까지 총 31km)에서도 조금씩이라도 운행구간이 늘어나면 좋겠는데, 세월만 고속열차보다 빨리 달리고 있다.가장 애가 타는 곳은 월정리역이다. 경원선의 간이역 중 하나였던 월정리역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멈춰선 이후 다시는 달리지 못하게 된 열차 하나가 슬픔에 겨워 철로 위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열차의 유언이 먹먹하다. 현실은 슬프고도 삼엄하다. 월정리역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곳이라 조금이라도 렌즈 방향이 금지된 곳을 향하면 군인들이 다가와 카메라를 확인한다. 역사의 아픈 장면들도 그렇게 쉽게 ‘Delete’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전쟁, 분단으로 멈춰 버린 것은 경원선뿐이 아니었다. 1931년에 완공된 금강산철교 역시 일만이천봉 금강산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다. 한때 이 교량은 철원에서 내금강까지 운행했던 전철이 수많은 물자와 관광객을 싣고 지나갔던 길이었다. 잠깐, 기차가 아닌 전철이 맞느냐고? 그렇다고 했다. 철원 문화관광해설사 김미숙 선생이 거듭 강조한 말이다. 1930년대에 금강산으로 가는 전철은 하루 8번 출발했는데 요금이 당시 쌀 한가마 값인 7원56전이나 됐다. 연간 15만4,000여 명(1936년 통계)이 전차를 이용했을 정도로 1930년대 철원은 번화한 남북 교통의 요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금강산철교(등록문화재 112호)는 허리춤에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라는 문구를 두른 채 한탄강을 내려다볼 뿐이다.사실 전쟁의 비극은 기차나 교량을 넘어선다. 전쟁 전의 철원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철원과 전혀 다른 도시였다. 10세기 초 궁예가 태봉국의 도읍으로 지정하고 청주 사람 1,000여 호를 이주시켜 건설했다는 도시. 궁예도성, 태조 왕건의 사저가 있던 곳이다.이후 남북을 잇는 중심 도시로 번성했는데 (구)철원역사, 철원군청 옛터, 제2금융조합 건물터(등록문화재 137호), 농산물검사소(등록문화재 25호), 얼음창고(등록문화재 24호), 철원제일감리교회 등이 건물 일부로, 혹은 그 터로만 남아 있다.쏟아지는 폭격, 한국전 사상 가장 치열했다는 철의 삼각지 전투 등은 철원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나마 가장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근대건축은 노동당사다. 1946년 주민들을 강제동원하고 모금까지 해서 지었다는 노동당사는 연건평 1,900여 평방미터 규모의 큰 건축물이다. 공산당에 협조하지 않는 이들을 끌고 와서 취조하고 고문했던 잔혹한 현장이기도 하다.소중한 것들은 사라지고 남겨진 것은 지뢰들이다. 철원 시가지는 남쪽으로 이동해 새로 건설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시가지에 살면서 구철원의 농경지로 출퇴근을 하며 살아간다. 딸이 아기였을 때 아장아장 걸어서 지뢰밭으로 들어갔었다는 해설사님의 체험담은 듣기만 해도 아찔했다. 1968년 대북 심리전을 위해 조성된 두루미마을은 황무지를 일구어 낸 이주민들의 결실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 지붕 아래 2가구씩이 살고 집집마다 무기가 지급되었었다는 이야기는 낯설지만 엄연한 현실이다.그러나 멸공OP에서 바라본 북녘 땅은 끝까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커튼에 가려져 있던 전면의 통유리창이 병사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나는 동시에 활짝 공개되는 ‘극’적인 전개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휴전을 앞두고 그 보이지 않는 선을 쟁탈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 목숨이 고지 위에 흩뿌려졌고, 종종 그 선을 넘는 자들은 죽음을 맞이했으며 지금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서로를 적이라 부르며 그 선을 사수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도 영상처럼 스쳐갔다. 얼어붙은 시간을 초월해 자유로운 것은 자연뿐. 지금의 철원은 철새들의 낙원이다. 날개를 펼치면 몸길이가 2~3m나 되는 두루미들이 겨울마다 이곳을 찾아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하루 동안의 철원 안보여행을 마치고 기차는 다시 온 길을 더듬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차창 밖의 풍경도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고 있었다. 백마고지에서 분단 상태로 얼어붙어 있던 시간이 해동되어 지난 5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 서울의 한복판으로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허리께가 뻐근하다. DMZ가 그렇게 내 몸에 각인되어 버렸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www.korail.comDMZ트레인평화열차 DMZ트레인은 두 곳으로 달려간다. 도라산역까지 가는 경의선은 지난 5월4일 개통했고,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경원선은 8월1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DMZ트레인은 총 3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객실별로 테마가 있다. 철도·전쟁·생태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사진 갤러리도 있고, 카페석, 전망석도 있다. 열차의 앞뒤 풍경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영상모니터로 승무원들이 깜짝 이벤트도 실시한다. 카페에서는 군용건빵, 주먹밥 등도 판매한다.경원선 DMZ 트레인은 서울역-백마고지역 구간 기준으로 1만2,400원(주말 1만2,800원). 1일간 왕복 이용할 수 있는 경원선 DMZ Pass는 성인 2만3,000원, 시니어와 청년은 1만6,000원이다. 문의 및 예약 | 철도고객센터 1544-7788 www.letskorail.com철원 안보관광 & 시티투어철원 안보관광에서는 두루미마을 시골밥상 및 반공호 체험, 노동당사, 백골부대 멸공OP, 금강산철교, 월정리역, 백마고지전적지를 방문한다. 안보관광에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며 민간인 통제구역에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철원 시티투어는 고속정, 승일교, 송대소, 백마고지전적지 등을 둘러보게 된다. 철원 안보관광 033-452-3030 1만1,000원 철원 시티투어 033-455-8275 1만1,000원☞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사설] 남북 화해 위해 대북전단 살포 자제해야

    국내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 관계가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탈북자단체가 날린 전단을 향해 경기도 연천 일대 민간인통제선 쪽으로 고사총 수십발을 발사한 북은 어제와 그제 잇따라 대남 비난성명을 통해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2차 고위급 회담 전면 취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양측 간 무력 충돌로 확대되지 않고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은 천만다행이나, 모처럼 맞이한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다시 엉키게 된 점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대북전단을 날린 탈북자단체에 강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전격적인 인천 아시안게임 폐회식 참석에 힘입어 어렵게 조성된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고려해서라도 탈북자단체는 전단 살포를 자제했어야 마땅하다. 우리 정부와 북측 대표단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2차고위급회담을 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황인 만큼 회담이 성사될 때까지만이라도 양측은 상대를 자극하는 그 어떤 행위도 삼가는 게 온당한 일이며 여기엔 탈북자단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사선을 넘어 자유의 땅을 밟은 탈북자들이 북의 세습체제에 대해 갖고 있는 분노를 모르지 않는다. 북에 남은 가족과 주민들을 하루빨리 독재정권의 압제로부터 해방하고픈 염원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 아니다. 전단 내용에 담겼듯 북한 주민들이 억압과 통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려야 함은 당위의 문제다. 지금 유엔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논의 역시 이 같은 기본가치 위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로 눈을 돌려 북한 체제를 들여다본다면 이는 단순히 전단 수천, 수만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사실 또한 분명하다고 하겠다. 비록 북한 정권이 전단 살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는 하나, 지금의 통제 수준을 고려할 때 전단을 본 북한 주민들이 ‘아랍의 봄’에서 목도한 집단적 항거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오히려 남북 간에 불필요한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를 빌미로 북한 정권이 내부 통제와 주민 탄압을 더 강화하는 역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설령 탈북자단체의 주장처럼 전단 살포가 북한 주민들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해도 이로 말미암아 빚어질 한반도의 급격한 혼란을 우리가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통일이 남북 모두의 대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통일 논의는 북의 점진적 개혁개방을 통해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한 전단 심리전은 자칫 올바른 통일 노력에 저해가 될 수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정부의 미온적 대응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민간 차원의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을 다하는 것인지 자문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10월 임진각 진입도로 통제를 통해 전단 살포를 막았던 것과 같은 물리력을 동원한 편법이 아니더라도 탈북자단체를 설득해 전단 살포를 자제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북한 당국에도 주문한다. 외교적 고립을 탈출할 길은 남북 대화뿐이다. 전단 살포를 빌미로 2차 고위급 회담을 무산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 [씨줄날줄] 전단(삐라) 심리전/정기홍 논설위원

    50, 60대 장년층은 전단(傳單·삐라)의 추억을 하나쯤 갖고 있다. 북한에서 띄워 보낸 조악한 ‘불온 삐라’를 주워본 경험이다. 호기심보다 무장공비가 옆에 숨은 듯해 무서워 얼른 학교나 지서(파출소)에 신고해야 했고, 하지 않으면 죄의식마저 가졌었다. 신고를 많이 하면 학용품도 받았다. ‘방공과 방첩’ 문구가 동네 어귀에 자리했던 때의 ‘삐라 단상’이다. 삐라는 독일의 나치가 처음으로 활용했다지만 미국이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애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영어 ‘Bill’(빌)을 일본인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삐루’라 하면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그 유래가 어쨌든 삐라는 우리에게 좌우와 남북 대치의 소산물이고 시대에 따라 내용을 달리해 왔다. ‘해방이 삐라와 함께 왔다’고 할 정도로 좌우의 대결 수단이었고, 한국전쟁 때는 ‘종이 폭탄’으로 불리며 심리·선전전으로 이용됐다. 1960년대 이후에는 남북간의 체제 우월성과 비방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한국전쟁은 거대한 ‘삐라 전쟁터’였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미군이 뿌린 삐라의 양은 40억장이었다. 눈이 내린 것처럼 무릎까지 수북이 쌓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당시 심리전 매체로 라디오와 확성기도 있었지만 삐라만 못했다. 북한군 포로의 70%가 삐라를 보고 항복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가 1960년대 펴낸 ‘심리전의 교범’에도 심리전에는 삐라가 가장 낫다고 적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삐라는 쌀가루 사탕인 옥춘당(玉春糖)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활용한 사례들도 흥미롭다. 북한이 띄워 보낸 ‘의거 월북하는 국군 장병들에게’란 삐라에는 월북하면 공짜로 대학을 보내주고, 고급 주택을 주는 등 평생 생활을 보장한다고 선전했다. 생활보장금이 당시 우리 돈으로 1억~3억원이었으니 허풍을 쳐도 세게 쳤다 싶다. 반면 우리는 김일성 일가의 호화 생활과 경제 발전상을 알렸다. 삐라를 실은 풍선에는 항시 식품과 약제, 생필품 등을 넣어 보냈다. 탈북자 단체가 며칠 전에 대북 삐라 20만장을 북한으로 날려 보내자 북한 당국은 “도발 원점을 초토화하겠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일가의 실상과 우리의 경제 발전사를 담은 책, 미화 1달러짜리 1000장을 담았다.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의 행위를 막을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의 민감한 반응은 여러 번 있었다. 풍선을 저격하는 조직까지 있다고 들린다. 남북의 삐라 공세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 이후 잠잠했다가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노선을 걸으면서 재개됐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를 넘겼는데도 아물지 않은 우리 민족의 씁쓸한 모습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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