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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 리포터/전문화 절실하다/5백명 활동중… 현장 취재능력등 부족

    ◎양성기관 설립·체계적 관리·재교육 시급 「생방송의 꽃」 방송리포터에 대한 전문화 요구가 높다. 최근 각종 교양·정보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한층 주목받기 시작한 이들은 프로그램의 윤활유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현장 메신저」로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적 지적도 아울러 받고 있다. 현재 TV3사를 비롯,기독교·불교·교통방송등 전국의 방송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포터는 줄잡아 5백여명선.이 가운데는 탤런트나 코미디언,모델생활등을 병행하는 이른바 「겸업리포터」를 제외한 「전업리포터」만도 방송사별로 30∼40명선에 이른다.그러나 이러한 양적 풍요에도 불구,이들이 ▲정제된 언어감각 ▲현장취재력 ▲창의적 기사작성및 전달력 ▲전문가적 소양 등 방송리포터로서의 기본덕목을 갖추고 있느냐에는 의문을 갖게한다. 방송리포터의 전문화를 막는 가장 큰 요인은 직업적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인식부족.방송가엔 언제부턴가 「리포터는 MC나 연기자로 가는 간이역」쯤으로 여기는 풍조가 팽배,「순수리포터」들의 사기를저하시키고 있으며 그 노동강도나 기여도에 비해 미흡한 방송사의 대우 또한 그들의 설 땅을 잃게하고 있다.리포터의 수입은 방송사나 프로그램 종류,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회 출연료를 기준으로 할 때 텔레비전은 평균 10만∼20만원선,라디오는 2만5천∼5만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는 경력이나 일의 난이도를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산정된 것으로 개선의 요구가 높다.프리랜서 신분인 이들은 고정프로를 맡지 못할 경우엔 출연기회도 불투명해 「뜨내기 리포터」가 「양산」되는 악순환을 빚기도 한다.이러한 현상은 시청률만을 의식,인기연예인등을 내세워 쉽게 승부하려는 방송사측의 편의주의에도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방송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 현재 리포터를 주로 활용하고 있는 프로는 아침 생방송 와이드물등.KBS­2TV「전국은 지금」(김현정 남선우 장수영),MBC­TV「생방송 새아침」(우정아 이재경 조선아),SBS­TV「출발!서울의 아침」(김승규 지수원 오미란 김효정)등이 대표적인 「리포터 프로그램」으로 꼽힌다.리포터의전문성 여하를 떠나 패션모델에서 스포츠맨 출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적 구성이 일단 눈길을 끈다. 그러나 프로성격에 따라 기획에서 현장섭외,구성까지 책임지는 리포터의 역할을 감안할때 외형만 화려한 것은 문제가 된다.그런 점에서 비방송전문인의 리포터 기용은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하며 리포터 자신 또한 방송의 최종전달자로서의 사명감과 함께 「기본기」를 충실히 다져야 할 것이다. MBC­TV 「생방송 새아침」프로를 6개월째 맡고있는 리포터 우정아씨(22)는 『현장리포트를 할때는 항상 대본보다는 임기응변의 애드립이 필요할 때가 많아 순간적인 상황판단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며 『TV리포터의 경우,비디오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전문가적 자질』이라고 자신의 방송리포터관을 밝힌다. 한편 방송리포터의 자질함양을 위해서는 정례화된 공채제도를 통해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지적이다.리포터 공채는 한때 SBS등 일부 방송사에서 실시한 적도 있으나 단발로 그친채 현재는 케이스별로 기용하고 있는 실정이다.「전문리포터시대」의 정착을 위해서는 ▲방송리포터 전문 양성기관의 설립 ▲보수체계의 합리화 ▲방송리포터에 대한 체계적 관리및 재교육등이 시급하다는 것이 방송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 TV드라마 공동집필제 확산/화가·법조인·의사등 전문직 종사자 참여

    ◎1인 집필,다원화 사회상황 수용에 한계/사실성 근거 극의 완성도 높여 TV드라마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드라마 집필방식도 공동화·전문화 경향을 띠어가고있다. 최근들어 드라마에 화가·법조인·의사·동시통역사·광고기획자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인물설정 빈도가 늘어나자 실제 이같은 전문직에 있는 인물들이 직접 드라마를 집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것. 이런 추세는 사실성을 근거로 한 극중인물과 상황설정이야말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첩경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이와함께 일부 전문직 종사자들은 아예 드라마작가로 겸업 내지 전업하는 경우도 있어 방송작가의 저변이 확대돼가고 있다. 오는 9월 중순쯤부터 방송될 MBC-TV의 「김가 이가」(책임 극본 이흥구 연출 김승수)가 이들 전문직 종사자들이 나서 공동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대표적인 작품. 본격 시츄에이션 코미디를 표방하고있는 「김가 이가」는 책임 극작가를 포함해 모두 6명의 작가들이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중에는 현재 광고회사 부장인 오인두씨,보건의로 군복무중인 김호영씨,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인 최윤정씨,작가지망생인 곽경룡씨등이 포진해있다.여기에 「코미디」의 특성을 고려해 「쓰리랑부부」로 지난91년 KBS 코미디대상을 수상한 권미경씨가 합류,재치와 유머를 제공한다.오인두씨는 극단 연우무대에서 극작과 각색을 한 경험이 있고 김호영씨도 대학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극작과 연출경험이 있는 나름대로는 이 분야의 유경험자들이다.이들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극중 광고회사 간부와 의대생,아동학과 박사역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직접 써 극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게 된다.각각의 에피소드를 놓고 극작가들이 토론과정을 거친뒤 책임작가가 이를 정리해 한편의 대본을 완성시킨다. 「김가 이가」는 또 선별된 관객들을 입장시킨 가운데 공개녹화를 하며 방청객들로부터 드라마에 대한 견해와 에피소드를 공급받아 시청자까지 드라마극작에 참여케할 계획이다. 이같은 방송작가의 전문화나 드라마의 공동집필이 우리 방송계에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한 것은 불과 5∼6년전. 그 시발은 건축업에 종사했던 이은교씨가 70∼80년대 「모닥불」등 기업드라마를 쓰고 고교국어교사 출신인 이금림씨가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교생 일기」를 써 호평을 받았던것. 한동안 주춤했던 작가의 전문화추세는최근 KBS-2TV 주말극「연인」의 작가 최연지씨가 신문기자와 동시통역사라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생기있는 드라마를 선보이면서 방송가 전반에 새롭게 붐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한편 전문화와 함께 여러사람의 아이디어와 글을 조합하는 공동집필 체제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도 1인 집필로는 다원화된 사회상황과 복합적인 관계를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기때문.KBS의 「굿모닝 영동」과 「먼동」,「내일은 사랑」,MBC-TV의 청소년 드라마「사춘기」등이 공동으로 집필되고 있으며 SBS의 「오박사네 사람들」은 개그작가인 장덕균씨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견습방송작가들과 함께 활동중이다. 이윤선 KBS­TV제작 부주간은 『기존의 획일적이고 일반적인 소재는 다양해진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시청자들의 욕구는 경험적 진술을 통한 설득력있는 정보제공과 논리적 타당성등이 뒷받침되야 하는데 이는 방송작가의 전문화와 공동집필등으로 보완될 수 있다』고 말했다.공동집필의 관건은 여러사람의 글과 생각을 얼마나 정교하게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 꿈나무 장학기금 진돗개가 키운다/소년탐험대 소속 4살박이 「해진」

    ◎5차례 새끼분양… 280만원 조성/국토탐험 참가,어린이도 보살펴 진도개 한마리를 재원으로 어린이장학회가 운영돼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소년탐험대(대장 강원규)는 지난 91년6월 어진옥장학회를 설립,불우어린이 장학사업 기금을 모으고 있는데 이는 한 진도개가 5차례에 걸쳐 낳은 새끼 26마리를 가정에 분양하고 얻은 사례금을 토대로 한 것 이다.지금까지 모은 돈은 2백80여만원으로 앞으로 5백만원이 모아지면 본격적인 장학사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자신의 새끼들을 이용, 어린이장학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이 화제의 개는 4살배기 암 진도개 「해진」이.89년 해남 땅끝 토말에 어린이국토종단탐험 기초답사를 갔던 강대장이 진도에 들렀다 한 농가에서 얻은 것으로 「해남과 진도」에서 한자씩 이름을 따서 해진이라 이름 지었다. 해진이는 91년 우수진도견선발대회에 나가 5위에 입상할 정도의 명견.어린이들을 매우 좋아해 어린이들과 뒹굴며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리 짓궂게 굴어도 어린이는 절대 물지 않는다. 또한 발바닥에 피가 나면서도한국소년탐험대에서 실시하는 3회에 걸친 어린이국토도보횡단탐험과 종단탐험등에 참가,어린이들을 보살폈다.일행을 안전한 길로 인도하고 짐을 지키며 낯선 사람들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해진이의 주임무. 이같은 해진이의 충절과 선행이 알려지면서 해진이는 탐험대본부가 있는 서울 옥수동일대의 명물로 떠올랐다.해진이의 「장학사업」을 아는 근처 식당아주머니들은 해진이가 들르면 사람들조차 먹어보기 힘든 좋은 부위의 고깃덩이만을 줄 정도다. 특히 검소하게 생활을 꾸려가는 서민이 대부분인 이 마을사람들은 장학사업에 동조,성의껏 돈을 갹출해서 장학기금을 불려주었다.어진옥장학회(02­297­5577)라는 명칭도 어린이·진도개·옥수동에서 한자씩 따온 것.
  • 문민시대의 광복 마흔여덟돌(사설)

    광복절 아침이다.마흔여덟돌이다.상해 임시정부요인 다섯분 선열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신지 닷새만이다.서른두해만에 참다운 문민정부가 세워진지 반년만이다.민족의 자존심과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 옛 총독부건물과 한때 청와대본관으로 불리던 그 총독관저를 헐어버리기로 대통령이 결단하고 국민들이 합의한게 바로 엊그제이다. 다시한번 챙겨보는 이 일련의 새로운 일들로 하여 광복 48돌 아침은 새삼 감개가 짙지않을 수없다. ○미완성의 광복 48년전의 광복은 글자그대로 우리에게 빛을 복원해줬다.질곡과 압박에서 해방되었고 감겼던 눈이 틔는 순간이었다.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미완의 것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아직도 그것은 미완의 장으로 남아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지상의 환희였다.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국토의 단절과 민족의 분단으로 이어졌고 이윽고는 동족전쟁의 시련과 비극으로 연결됐다.광복의 오늘이 아직도 미완인 것은 그로 인한 것이었다.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적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부수고 판문점을 열어 민족을 한 띠로 묶는 과업으로부터 「광복의 완성」을 시작해야한다. 하긴 이 역시 쉬운일이 아니다.서울에서 판문점,평양까지 통일기원 인간띠잇기운동이 제의됐어도 저쪽은 외면이다.그러니 이제 미완의 광복은 북쪽 당국자들의 인간성회복과 그쪽 동포들의 인권회복으로부터 비롯돼야 할 것이다. 다시 서른두해만의 문민정부를 얘기할지음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아왔는가를 새삼 새기지 않을 수없다.온통 권위주의색채의 군사문화가 지배한 지난 30여년은 정권의 정통성과 대표성이 항상 의문의 대상이었고 그에따라 민족의 정체성마저 회의를 느낄 지경이었다.문민정부가 값지고 소중한 것은 그런 끊임없던 의문과 회의가 주권자의 판단과 선택으로 완전히 해소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돌아오신 선렬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아왔는가는 고국에 돌아오신 다섯분 선열들이 말없이 증언한다.그러나 그 어른들은 못난 후손들을 책망하기보다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할 것이다.선열들을 안장하면서 후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교훈을 새겨야 했는가.비록 때늦은 봉환이었고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이역땅에 누워있지만 국민들은 이번 임정요인의 봉환을 통해 이렇게들 합의했을 것이다. 첫째 임시정부의 연면하고 정당한 법통을 새 문민정부가 실질적으로 승계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정신과 법통성계승을 확인검증한 첫 가시적조처였다고 할수있다. 둘째로 민족정기와 자긍심을 바로 세우는 획기적 계기였다는 사실이다.일제하 국내외 독립투쟁에서,특히 임정요인들의 활약상은 얼마나 우뚝하고 찬연한 것이었던가.앞으로 완성될 광복사는 나라가 쇠했을때 이를 구하고자 감연히 일어서 싸웠고 죽어서도 죽지않고 민족의 정기로 살아남은 이 어른들에 의해 더욱 빛날 것이다. 다음으로 선열의 봉환은 과거 친일의 잔재를 일소하는 계기도 되었다는 점이다.나라를 빼앗겼음도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광복후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며 살게했다는 사실이 아닐수 없다.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였으나 이들은 일제하에서 쌓은 배경으로 흔들림이 없었다.일제잔재 청산의 대상들인 것이다. ○다시 쓰는 현대사 지금은 국립묘지에 편히 잠드신 선열 박은식선생은 그 명저 「한국통사」의 서문에서 『국혼은 살아있다』고 썼고 그것은 이제 그의 비명의 한 구절이 되어있다.말그대로 국혼은 살아있어 분단속에서도 민족은 살아숨쉬고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 문민정부는 살아움직인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광복현대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과거의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던가』를 밝히는 작업은 역사학자의 본령만은 아니다.그것은 전 민족의 몫이어야 한다.지나간 근 50년동안 타의에 의한 광복을 자의에 의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우리에겐 역사에 대한 강요된 논리나 주장을 감연히 거부할 용기도 부족했다.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지적한바 「제2의 광복운동」으로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역사탐색으로서 「있었던 그대로」,「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실상을 찾아내어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일에 나서야한다.그리하여 국사를 비롯한 모든 교과서에 광복현대사 굽이굽이마다 왜곡되고 굴절된 민감한 부분을 새로 쓰고 이 사실과 함께 문민시대의 의미와 미래지향의 정신을 넓고 깊게 투영시켜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고 완성하는 길은 이 시대의 정신이기도 한 변화와 개혁의 성공을 이루고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통일을 성취하는 일 이외의 다른것이 아니다.남과 북이 통일을 이룰때 애국선열들이 시작한 광복운동은 비로소 대단원을 이루게될 것이다. 모든일의 성취가 결국 사람에 달렸다면 국권상실과 민족분단의 지난 세기를 민족번영과 통일의 새로운 세기로 바꾸는 책임 역시 국민에게 있다.그런 점에서도 2년후에 맞을 광복 50주년은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역정에 한 획을 긋는 해가 되어야한다.
  • 문민정부로 이어진 임정법통/조항래 숙대교수 (특별기고)

    ◎임정5위 봉환제전에 부쳐 1948년7월 우리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헌법 전문에서는 광복과 함께 건국된 대한민국을 민족사적 본질에서 3·1민족독립혁명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적인 계속성,즉 이념적인 정통성을 계승하는 정부로 천명하고 있다. ○정통성 계승 천명 1987년10월의 개정헌법 전문에서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자라는 것을 제헌헌법 보다 더욱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임시정부의 정통성·법통성 계승자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이념은 한동안 형식논리에 불과했거나,아니면 오히려 형식논리조차 거부될 만큼 위험한 분위기가 치솟아 대한민국의 이념을 혼탁하게 만들었다.이는 정부수립 초창기에 정치인의 민족사적 인식의 결함,또는 반민족사적 인물이 정계의 주체세력에 참여함으로써 국가의 이념적 맥락에 대한 형식논리조차 거부되는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민족의 양심을 외면한 인물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광복후에 민주정화작업이 없었기 때문이다.8·15 광복의 고비에서 민족의 정화는 당연히 양심적 단결을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이다.일본 제국주의의 우리나라 침략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민족역사의 승리가 1919년의 3·1민족독립혁명이었다.이의 최대 성과가 중국 상해에서 수립·선포되어 대표성과 대본영으로서의 광복정책의 구심점을 형성했던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1948)였다.상해 임시정부로 통합·단일화된 3·1민족독립혁명 전후의 여러개의 임시정부는 이동령·안창호·신규식·김구·조소앙·박은식·이시영·조완구·노백린·김인전·윤현진·이유필·신익희 등 40여명의 요인들이 30년 동안을 하루도 문민공화정부의 간판을 내리지 않고 하루 한끼씩이나마 연명하는 극심한 경제적 압박속에서도 부단히 광복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불굴의 광복투쟁 임정요인들은 한결같이 내정·교통·군사·외교·교육·문화·사법·재정 등의 여러가지 국가와 정부적 기능을 발휘하면서 중국의 지원을 받아 국내외를 통할 통치해 왔다.요인들은 이제 전통적인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제 정부를 헌법에 기초해서 오직 광복정책 중심으로 펴나가,1945년에는 그 직할군대인 한국광복군을 조직적으로 훈련해서 국내정진작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대의정치,민의 창달 정치를 실시해 나갔다. 따라서 임시정부가 조국광복의 구심점으로 인정되어 우방각국의 승인을 받아 카이로·테헤란·포츠담선언 등 국제회의에서 우리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되었다.8·15 이후 환국한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절대적으로 국민에게 환영을 받은 것은 임시정부가 자주적이고 발전된 정치의식에 의해 운영되어 문민민주적 법통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임시정부 30년사가 우리의 제1공화국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고,임시정부의 건국연후인 1919년을 대한민국의 건국기원(민국)으로 공식 준용되어야 하며,그것은 오늘날 문민공화정부의 개혁정치로 연결되고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라 할수 있다. ○민족에게 큰 의미 따라서 70여년동안 상해 만국공원에 안치되어 있던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 등 임시정부 요인 다섯분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10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의식은 우리 모두에게 이같은 맥락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들 임시정부 요인들은 민족수난기에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한 후 이역에서 묻혔던 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들이다. 이 다섯분의 안장을 계기로 광복사상 중요한 의미를 모두 상기해야 할것이다.이는 또 헌법에 명시한대로 우리가 임시정부의 정통성·법통성을 계승하였다는 것을 만천하에 확인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 분장미술가 전예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3)

    ◎천의얼굴 재현하는 분장의 마술사/작품 철저히 검토,배역에 꼭맞는 “인물 창출”/재료 직접제조… “생명력 깃든 화장기법” 정평/50년대부터 불모지 개척… 골상학 등 관련분야에도 조예 「배우란 한시대의 축소판이자 간결한 연대기지.죽어서 묘비명이야 어떻게 씌어지던 살아 있을 때 구설은 듣지 않는 게 상책이오」 어둠침침한 푸른 조명속에서의 햄릿의 절규는 세상의 끝은 바라보는 듯한 흐느끼는 눈빛으로 인해 더욱이나 관객을 전율케 한다.우수에 찬 눈동자엔 형용할 수 없는 번뇌와 오뇌가 꿈틀거리고 허공에 메아리지는 그의 독백은 메마른 입술에서 터져나오는 검붉은 피와도 같다.머리카락 한올,클로디어스왕을 저주하는 손가락 마디마디에도 주인공의 참담한 절망과 갈등이 흩날린다. 검은 그늘이 짙게 드리운 검푸른 눈동자,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듯한 메마른 입술,증오심과 원망어린 칙칙한 잿빛 금발,허공중에 허우적거리는 야윈 손가락 등등 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전예출씨의 예술영역이다. ○눈썹 한올에도 신경 그는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귀여운 여인 올렝카가 사샤를 희생적인 모성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늙고 병들어 쭈그러들 때까지,또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의 스칼렛 오하라가 오만방자한 얼굴을 퇴색시키고 한사람의 여성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무대위에 재현시키는 바로 천의 얼굴,수만의 표정을 그려내는 분장의 마술사다. 대본을 받으면 배우들이 대사를 외고 동작연습에 임하는 것처럼 그도 똑같이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성격분석,작품에서의 비중과 조화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몇차례씩 작품을 읽어보고 다시 소리내어 대사를 외어보면서 그 인물이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연극속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부모와 학교친구,취미와 일상적인 일거일동을 철저히 연구하여 디자인에 들어간다.연극에 등장하지 않는 부모까지 연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일 「대학교수」일 경우 학자집안에서 나온 교수와 장사꾼의 집안에서 나온 교수는 그 인상과 표정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분장실에서 배우를 분장시킬 때의 그의 열정은 조각가나 화가 못지않게 엄숙하고 진지하다.주름살 하나에도 배우의 피부조직을 살펴 50대의 주름살,60대의 주름살을 어느때는 곱게,어느때는 짙은 골을 파면서 역할이 살아온 성장배경,인생역정,앞으로의 변화를 선명하게 구별해나간다. 또 단순하게 인위적으로 그려진 선이 아니라 분노와 울화,기쁨과 성취,절망과 좌절의 강도에 의한 눈썹 한올에도 생동미와 처절미를 연출해낸다. 조각가가 인체해부학적 측면을 고려하듯이 그는 해부학과 골상학,세포조직과 근육분포,미술에서의 색채학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그리고 내가 구상한 비극적·희극적 인물,냉소적이며 초연한 것,모반을 꾀하거나 사색적 인물들이 붉은 조명아래서 당초 시도했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카메라 앵글에 의해 효과적인 신을 이루고 있는가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염두에 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나 그 일에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한낱 「분장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분장의 불모지이던 50년대부터 홀로 외롭게 몸부림쳐왔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유별난 편이다. ○일에 강한 긍지지녀 공연작품이나 영상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분석 없이는 손댈 수 없다는 시각에서는 「분장」은 연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모든 테크닉이 미술을 동반한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특수한 미술분야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는 물론 분장이 해야 하는 의상·소도구·조명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그리고 어떤 대상을 만나도 흑을 백으로,세모를 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으며 분장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극중인물로 등장할 수 없음을 투철히 믿고 있다.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는 30대이상의 연기자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분장에 관한 한 그는 도무지 남의 간섭을 용납치 않는다.「분장을 어둡게 하라」 「밝게 하라」는 주문을 받아들여본 적이 없다.이미 작가·연출가와 모든 의논을 끝낸 뒤 분장기법을 정리한 다음엔 배우가 만일 『여긴 강조하고 볼은 좀 죽이고 싶다』고 말하면 그는 두말없이 『네가 하라』고 붓을 던져버린다.상대방이 극구 사과해도 묵묵부답,두번다시 상대하지 않는다.주문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즉흥적인 기분과 감상을 말하지만 그로서는 한달이상 신중한 검토와 구상을 끝낸 마당이다.여러 변명이 필요없었다.전체적인 구도와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아집과 고집,자기주장이 강하다.그런 그의 고집불통으로 인해 주변에서는 간혹 곤혹스러워할 때가 많다.그런 상충된 의견으로 인해 격돌이 오갈 때도 있다.그러나 그의 오랜 경륜과 노련미는 짧은 안목을 묵살시킨다.결국 그가 옳았고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 완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모든 예술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는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편이다. 황해도 황주 중농의 아들 3형제중 막내.황주남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 그는 연극반을 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연극을 지도했다.직접 극본을 각색하여 연출을 맡았고 목재상을 경영하는 형님(전창신씨)가게에서 나무를 얻어다가 세트를 만드는 등 연극에 열을 올렸다. ○다방면에 다재다능 일상적인 평범한 얼굴이 전혀 다른 여러개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점때문에 분장에매료됐는지도 모른다.「베니스의 상인」이 될 수도 있고 「벚꽃동산」의 트로피모프,또는 라스콜리니코프,레트 버틀러나 애슐리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를 독살한 삼촌에 대한 복수와 원한,「사느냐 죽느냐」를 외치는 햄릿의 광기에 번뜩이는 눈빛을 그리며 그도 언젠가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려 왔다. 6·25가 나기 1년전 그는 형의 친구가 부소장(윤묵)으로 있는 북조선촬영소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부소장은 그에게 교통성산하의 교통성극단에 소개해주었다.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후에 월남해서 영화배우로 활약한 김칠성씨. 「춘향전」으로 데뷔후 50년6월 소련 번역극을 가지고 원산공연,외금강공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함흥공연길에 올랐다가 6·25를 만나 1·4후퇴때 월남했다. 부산 피란지에서 그가 할 것이라곤 연극밖에 없었다.어렵게 극단 「아랑」을 조직하여 분장에 출연까지 겸하면서 경상도일대를 유랑했다.분장을 하다보니 자연 일어로 된 화장품제조에 관한 서적 등을 구해 읽어야 했고 문득 화장품을 만들어 팔면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들었다.립스틱공장을 차렸으나 제품보다 케이스가 조잡스러워 망해버리고 말았다.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분장에 손댈 때도 그는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곤 했다.분장에 필요한 화장품이 전무상태인데다가 외국제품들이 우리피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더구나 유럽이나 중국은 창백미를 강조하는 데 비해 우리는 깊고 그윽한 유백화장술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웠다.지나치게 붉은 터치인 미국 화장품은 무대에서 튀고 조명아래서 겉돌았다. 여러가지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화장품을 피부에 발라 테스트를 해본 다음 다음날 분장에 사용했다.그래서 그만의 독특한,남에게 공개되지 않는 수십여종류의 비법을 비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특수분장중 대표적인 것은 TV문학관 「등신불」 「에바다」에서의 문둥병환자의 이그러진 얼굴이다.출연자의 열굴형을 여러 각도로 본뜬 다음 이를 다시 모자이크해서 흉터를 만들고 여기에 면도거품을 발라 분장,열을 가해 거품이 녹는 것과 동시에 피부가 정상회복하는 화면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연극·오페라에 집착 거의 매일이다시피 방영되는 TV드라마외에 그가 집착하는 것은 연극·오페라 등 무대분장이다.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의 분장한 모습은 또렷한 명암과 윤곽을 드러내면서 서양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그리고 광기어린 배우의 눈빛,외로운 그들의 몸부림은 그가 그려내고 싶던 무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멜방달린 바지에 베레모,아침9시면 동숭동 그의 작업실에 나와 청년같은 정열로 강의와 작업에 임한다.그에게 배우려는 제자·후배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가지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서다.그는 겉모습의 분장보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 생명력 깃든 분장을 지도한다.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동서고금,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인간상들이 「분장을 통해서만 극중인물로 재현」되고 「탄생」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다.그가 존재하는 한 이 분야에서 단연 선두주자이며 독보적 위치지만 든든한 뒤를 잇는 후배들로 인해 이제 그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보◁ ▲1927년 황해도 황주 출생(본명 전윤신) ▲1942년 황주농업중학교졸업 ▲1945년 경성법정대 졸업 ▲1945∼48년 황주남중 교사 ▲1949∼50년 교통성극단 단원 연극 「춘향전」 데 뷔 ▲1951년 부산에서 극단 「아랑」 창단 ▲1953년 극단 「신청년」 단원 ▲1954년 극예술협의회 회원 ▲1955년 영화 「안중근」으로 분장 및 연기 ▲1956년 국립극단 단원(국립극단·드라마센터분장담당) ▲1961년 KBSTV로 입사 ▲1961∼88년 서라벌예대·한양대·동국대 출강 ▲1963년 TBC 입사 ▲1981년 방송통폐합으로 KBS복귀 분장실장역임 ▲1988년이후 프리랜서 독립기념관 임정요인 33인 분장 ▲1989년 개인작업실 아트파워 개업 ▲1993년 개인작업실 동숭동이전 전예출 프로메이크업 설립 ▲현재 영화·연극·TV·CF 및 오페라공연 분장및 한양대음대 특강. 장준옥여사와 1남3녀 국립극단·드라마센터·민중극장 공연작품중 연극­「햄릿」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빌헬름텔」 「죄와 벌」 「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결혼중매」 「대수양」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태양을 향하여」 「산불」 「욕망」 「국물있아옵니다」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 「파우스트」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 「세인트 존」등 1백50여편. 오페라­김자경오페라·국립오페라·서울오페라·글로리아오페라 공연작품중 「토스카」 「라보엠」 「카르멘」 「춘희」 「나비부인」 「마적」 「돈 조반니」 「돈 카를로」 「아이다」 「사랑의 모약」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트란도트」 「피가로의 결혼」 「파우스트」 「심청」 「삼손과 데릴라」 「코지 판투테」 「라 조콘다」 「리골렛토」 「천지창조」 「운명의 힘」 「세빌리아의 이발사」 「펄리아치」등 2백여편. 영화­「황성옛터」 「대지」 「황혼열차」 「고려장」등 40여편,TV드라마(문학관등) 1천여편.
  • 컴퓨터 그래픽/실감영상세계 관심 높아간다

    ◎미생물·공룡 모습까지 생생히 재현/영화·CF·교육용 필름 등 활용 늘어 한 어린이가 거대한 공룡의 머리위에 앉아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독수리가 TV화면 안에 있는 앵무새를 잡아먹고(삼성시네마TV),물방울이 빨랫감에 닿으면서 터지는 모습(대우공기방울세탁기)이나,유리나 수정을 이루는 분자의 세계가 환상적인 입체화면으로 펼쳐진다.이것들은 모두 컴퓨터가 합성사진이나 그래픽으로 꾸며낸 또 다른 세계이다. 대전 엑스포를 앞두고 포스데이터가 국내 처음으로 컴퓨터그래픽(CG)입체영화를 탄생시켰고 스필버그감독이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이 최근 청소년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컴퓨터그래픽­CG기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포스데이터의 CG영화는 상영 시간이 14분짜리.육안으로 볼 수 없는 철·크리스털·유리·고분자화합물 등 여러가지 소재의 내면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스코트인 한국산 호랑이도 실은 CG기법으로 재현한 것이다.특히 전 화면을 CG기법으로만 처리했기 때문에 제작기간이1년이나 걸렸고 비용도 국산 대작영화 5편을 제작할만한 돈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공룡들의 움직임도 실사기법으로는 힘들어 모두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됐다.영화 제작진은 공룡의 실물모형외에 이를 5분의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을 다시 만들어 동작 하나하나를 컴퓨터에 기록했다.그 다음에 동작들을 프로그램화해 실물 크기 공룡과 똑같이 움직이도록 만들어 낸것으로 알려진다.CG는 상상도 할 수 없는 3차원의 세계를 마음대로 조작해 낼 수 있어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만 뛰어나면 얼마든지 환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CG제작은 대본을 작성하고 상세한 밑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그 다음에 그림에 색을 입히고 오브제와 편집을 한 뒤 애니메이션작업 과정을 거쳐 이를 VHS테이프에 담으면 완성되는 것이다.즉 만화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정에서도 386PC 이상이면 CG작업이 가능하지만 소프트웨어가 3백만∼4백만원이나 돼 너무 비싼 것이흠이다. 포스데이터의 CG전문가인 오득록씨는 『컴퓨터그래픽은 영화나 광고에의 응용은 물론 우리가 볼수 없는 미생물이나 분자·원자 등의 모습도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어 앞으로 과학교육 등에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 코고는 사람 사고율 2배라던데(박갑천칼럼)

    「덕수회」라는 모임에 얹혀 얼마전 2박3일의 휴가를 다녀왔다.첫날밤을 설악산기슭 설악동에서 맞았다.웬놈의 비는 그리 밤새껏 쏟아져 내리던 것인고.60세전후의 초로들이 열댓명인데 방은 큰 것으로 하나를 잡는다.친목의 뜻까지는 좋았지만 그게 잘못이었다 할까.술도 거나하게들 마셨것다,여기저기 뒹굴면서 코고는 소리가 설악산 치맛자락을 들썩거렸다. 남편이 밤마다 코고는 소리 견뎌낼수 없어 이혼했다는 경우가 있다.그런가하면 「음악소리」로 들으려고 노력한 끝에 익숙해지게 됐노라고 하는 경우도 생긴다.그런 경우는 코를 골지않을 때 오히려 불안해진다고 한다.수술을 해야 고친다는 것인데 코안골게 한다는 베개광고도 어디선가 본듯하다. 물론 옛사람도 코는 골았다.매월당 김시습(매월당 김시습)이 어느절엔가 들렀을때 그곳 중이 몹시 코를 골았던 듯하다.「중이 코고는것을 조롱함」(조승한)이라는 칠언율시를 남겨놓고 있다(매월당시집 제3권).『코고는 소리 천둥같아 사방이웃이 놀라니/명산 어느곳에 그 어깨를 쉬게하랴/좌선하여 정진할땐언제나 도망꾼이요/동네 들어가 불공드릴땐 대개 빠지고 없네…』하면서 읊어나간다.씨식잖아한 심경이 드러난다. 코고는 것에 대해 쓴글로는 상허 이태준(상하리태준)의 「비둥」이라는 수필이 압권이다.어느해의 요맘때 그가 외금강에 네번째 찾아갔을 때도 비가 많이 왔던 모양이다.그날밤 그는 구미산장 제일 넓은방에서 「코고는 방동무」때문에 잠을 설친다.『…드르러렁,드르러렁,이것도 비로봉이 있는듯 재쳐 올라가다가는 꺽꺽 절벽에 부딪쳐가지고는 끄,끄,끄르르릉이 되는 것이다.여기서는 그 자신도 약간 괴로운듯 씨익 돌아눕는다』 그는 산장의 처마물 떨어지는 소리쯤 비길게 못된다고 표현한다.『…대체 저코가 밤새도록 저렇게 강진을 겪고 어떻게 붙어배기나』면서 걱정도 한다.『하늘이 우룽거림을 천둥,땅이 우룽거림을 지둥이라 하니 코가 우룽거림은 비둥이다』로써 이글을 맺고있다.「비둥」보다는 「코둥」이라 했던 것이 어떨까.노산 이은상(노산 이은상)의 「성불사의 밤」에 빗대본다면 『새도록 코둥소리 더리고 잠못이뤄 하노라』의「외금강의 밤」이었다고 하겠다.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은 교통사고등 각종 사고율이 정상인의 2∼2·6배라는 말이 나왔다(카톨릭의대 박성학교수).코고는 것이 산소공급 부족현상을 일으키면서 다음날 무기력해지고 졸음을 몰고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코둥 울리는 사람들 콧등으로 콧방귀 뀔일만은 아닐듯하다.
  • 극단 세실 「0.917」 공연 취소

    ◎도덕성 이유로 출연 국교생 도중하차/“배우 대체·대본 수정 할수 없어 불가피” 성인배우들을 능가하는 국민학생들의 대담한 연기가 예고돼 세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연극 「0.917」(이현화작·채윤일연출)이 공연을 불과 보름 앞두고 극단측의 자체결정으로 돌연 공연이 취소됐다. 8월1일부터 14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의 돌연취소는 연극에 출연하기로 되어있던 여학생의 부모가 이 작품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딸의 출연을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어린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 마시면서 어른들을 유혹하는 장면들.한편 이에대해 극단대표겸 연출가인 채윤일씨는 『공연을 보름 앞둔 지난 14일 해당 여학생의 아버지로부터 출연을 시킬수 없다는 내용을 통보받았다』며 『현재로서는 다른 배우로 대체할 수도 없는데다 여론에 밀려 작품내용을 일부 수정하면서까지 공연하는데에는 작가나 출연배우들도 반대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공연을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본사전검열이 있던88년이전에도 정부의 행정조치에 의해 공연일정이 잡혀있던 연극이 취소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도덕성과 「벗는 연극」에 대한 사회적 비판여론에 의해 공연이 무대에 올려지지 못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 “오늘의 한국민주화 「제2한강기적」”/한미정상회담 첫날 이모저모

    ◎황영조우승 들어 강인성 찬사/클린턴/“대한 안보협력 매우 값진 투자”/김 대통령 ▷청와대 도착◁ ○…클린턴대통령 내외는 서울공항에서 검정색 리무진을 타고 하오 2시42분 청와대본관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김영삼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클린턴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면서 김대통령과 악수했고 김대통령은 영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대답.클린턴대통령은 손명순여사에게도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 힐러리여사도 김대통령과 손여사에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 김대통령 내외와 클린턴대통령 내외는 이어 나란히 현관 로비에 들어섰고 클린턴대통령은 로비 오른쪽편에 마련된 방명록에 「빌 클린턴」이라고 서명. 이어 두나라 대통령 내외는 1층 계단에 서서 기념촬영. ○…이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본관2층 접견실에서 단독정상회담을 시작. 두 대통령은 먼저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시한번 선채로 악수를 한뒤 상대측 배석자들과도 악수를 나누고 좌정. 김대통령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다리를 포개고 앉았고 클린턴대통령은 혈색좋은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띤채 두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바로앉은 자세.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도쿄에서 열린 G­7 회담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클린턴대통령이 회담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전하자 김대통령은 회담에서 클린턴대통령의 역할이 성공적이었다며 축하인사. 이어 클린턴대통령은 작년에 김대통령과 함께 선거운동기간을 보낸 점을 지적하면서 당시 김후보의 활동에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인사. ○…클린턴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2시 부인 힐러리여사와 함께 미공군 1호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영접나온 한승주외무장관과 반갑게 악수. ▷정상회담◁ ○…두사람의 단독회담시간은 당초 예정보다 배정도 늘어난 55분간 진행. 이어 두대통령은 접견실옆의 집현실로 자리를 옮겨 외무·국방장관등 배석자들을 참석시킨 확대회담을 시작. 두대통령은 여기서도 먼저 카메라를 위해 다시 악수를 나눈뒤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의 차례로 각기 배석자들을 소개. 김대통령은 『단독회담에서대단히 유익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처음 만났지만 옛 친구를 만난듯 시간이 길어졌고 모든 문제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고 좌중에게 설명. 김대통령은 이어 『올해는 마침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4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우리 두사람은 지금껏 한미동맹관계가 매우 효율적으로 지속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상호이익을 위해 유지·강화되기를 희망하며 미국의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언급. ▷국회연설◁ ○…하오 4시45분 여의도 국회에 도착한 클린턴대통령은 의장접견실에서 이만섭국회의장,김종필 민자·이기택 민주당대표,황락주·허경만 국회부의장등과 20여분간 환담. 클린턴대통령은 이어 이광로국회사무총장의 안내로 본회의장에 입장,이국회의장의 환영사를 경청한뒤 30여분동안 연설.클린턴대통령은 이날 예전의 미대통령들과는 달리 프롬프터(영상자막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특유의 힘차고 자신감있는 어조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기조를피력. 클린턴대통령은 특히 김영삼대통령의 출범을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민의 업적』이라며 거듭 축하한뒤 『언젠가는 한국의 인위적인 분단이 끝날 것으로 믿는다』고 자신에 찬 어조로 언급. 클린턴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은 서구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대내정신에서 생기는 것이며 보편적 열망』이라고 역설하며 공개된 선거,노조,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뒤 「아시아민주주의방송」창설을 제안. 클린턴대통령은 『바르셀로나올림픽때 한국의 황영조선수가 최후의 언덕을 넘어 우승할 수 있었던 에너지·지구력은 한국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런 정신을 존경한다』는 말로 연설을 마감. 이날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클린턴대통령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의원들의 박수를 받았으며 연설을 마친뒤 앞쪽과 중앙통로에 앉은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힐러리여사와 함께 퇴장. 한편 이날 연설도중에 김영진의원등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명은 『쌀은 우리 민족의 혼』이라고 한문과 영문으로 쓴 종이 피켓을 자신들이 앉은 의석에서 들고 있으며 미국의 쌀 수입개방 압력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 ▷청와대 만찬◁ ○…김영삼대통령이 클린턴대통령 내외를 위해 이날 저녁 청와대 본관에서 베푼 공식만찬은 저녁 8시쯤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시작돼 10시까지 진행. 김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클린턴대통령 내외의 방한에 환영의 뜻을 거듭 표한뒤 『각하의 이번 한국방문은 민주주의와 개방경제 그리고 지역평화를 함께 추구하는 우리 두나라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 클린턴대통령은 답사에서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을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하고 『대통령각하께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기 쉽지 않을때 용기있는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쳤다』며 김대통령의 민주화공적을 치하. 이날 양국대통령의 만찬사와 답사는 당초 통역없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클린턴대통령이 즉석에서 통역을 요청,순차통역으로 진행됐으며 클린턴대통령은 통역으로 인한 답사시간이 길어지자 당초 배포했던 답사내용중 상당부분을 생략. 만찬을 마친뒤 김대통령 내외는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숙소로 향해 출발하는 클린턴대통령 내외를 본관 현관에서 전송. 이날 만찬 참석자들은 새정부 출범후 간소해진 의전절차에 따라 연미복 대신 평복정장을 입었고 부인들은 한복차림이었으며 식사메뉴는 순수한 한국식에따라 신선로에 곁들인 국과 밥이 주식으로,구절판 호박죽 잣죽 전등을 후식으로 제공. 한편 김대통령은 11일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조깅을 한 직후 「대도무문」이라는 친필휘호를 선물할 예정. □클린턴대통령 수행원 명단 ◇백악관 ▲로이 닐 대통령비서실차장 ▲브루스 린지 백악관인사국장 ▲데이비스 거겐 대통령자문관 ▲조지 스테파노폴리스 대통령정책담당선임보좌관 ▲마크 기어렌 대통령홍보실장 ▲마샤 헤일 대통령일정담당보좌관▲디 마이어스 대통령공보비서관 ▲낸시 헌라이시 대통령일정담당부보좌관 ◇국가안보회의 ▲앤터니 레이크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이토 국가안보회의 행정보좌관 ▲제레미 라스너 대통령특별보좌관(의회담당) ▲샌드라 크리스토프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보좌관 ▲짐 리드 국가안보보좌관비서관 ◇국무부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토머스 도닐른 홍보담당차관보 ▲윈스턴 로드 동아태차관보 ▲레이몬드 버가트 주한미대사대리 ◇국방부 ▲레스 애스핀 국방장관 ▲짐 클래퍼 국방정보본부장 ▲로버트 앨리스국제안보담당부차관보 ◇재무부 ▲래리 서머스 재무부국제담당차관 ▷클린턴대통령 답사◁ 대통령각하내외분,그리고 귀빈여러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쉽지 않은 때에 각하께서는 민주주의의 대변자였습니다.각하께서 보여준 용기는 한국민이 보다 새로운 차원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왔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각하의 지도력은 한국민들을 보다 강력하게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위민적 충정의 발로인 것으로 믿어집니다. 한국의 발전은 군인·근로자·기업가·교사·학생등 이 아름다운 나라를 정치경제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해온 수많은 한국민들의 몫입니다. 서정주씨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도록 천둥과 번개가 울었나보다고 썼습니다.그러나 아침이 되었을 때 한송이 국화는 활짝 피어납니다. 한국국민들은 이제 자랑스럽게 활짝 피어났습니다.축의를 드립니다. 나는 모든 한국민들이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북한사람들이 서울의 위용을 목격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합니다.그리고 반드시 그날이 오리라고 확신합니다.통일되는 날 미국은 한국의 곁에 나란히 서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조국을 성취하려는 한국민들의 친구가 되고 동맹국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영삼대통령 만찬사◁ 존경하는 클린턴대통령각하 내외분,그리고 내외귀빈여러분! 우리 두나라 국민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전환기에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켜 새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한안보협력이 매우 값진 투자였음은 오늘의 발전된 한국이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한미안보협력을 바탕으로 확보된 평화속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의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북한은 모험주의적 대결정책을 고집하고 있으며 핵무기개발의혹으로 한반도와 전세계의 평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체제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나는 각하께서 「신태평양공동체」를 주창하신 것을 유념하고 있습니다.우리 두나라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속적인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동반자관계를 확대해야 합니다. 나는 앞으로 두나라의 경제관계가 단순한 교역파트너로부터 과학·기술·산업·문화·예술등 모든분야에서 협력하는 명실상부한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발전되기를 기대합니다.
  • 임정­우리의 첫 문민정부(일요일 아침에)

    1919년 4월13일 중국 상해 프랑스조계 내에서 정식으로 수립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5)는 전통적인 군주제를 청산하고 민주공화제를 채택,민간인이 대통령이된 최초의 문민정부였다.그것은 3·1혁명(운동)이 국내에서 일어난지 45일만의 일로서 민족 최대의 경사요 쾌거로 기록될 일이다.임정은 27년간 중국대륙을 누비면서 하루도 그 간판을 내리지 않고 비록 일제에 의한 단절의 역사를 강요받았으나 계속성의 민족사로 전환,5천년의 정통성을 잇는 임무를 확실히 수행하였다. 국내에서의 3·1혁명은 곧 해외및 국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의욕에 넘친 민족지사를 활동하기 편리한 교통의 요지요,국제도시로서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중국 상해로 집결케 하였다.이동령·신규식·이시영·조소앙·김구·노백린·박은식·여운형·조용구·조동우·이유필·안창호·김인전·신익희·박찬익·최창식·윤현진·김규식·남형우등 20대로부터 50대까지 40여명이 이곳에 와서 정통민간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마침내 역사적인 3권분립형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김신부로22호(현 서금2로)에서 수립,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전통 민간정부 표방 임시의정원의장 이동령은 국호를 「대한민국」이라했고 연호를 「민국」으로 했다.1919년을 민국1연으로 호칭해서 단기와 병기,공식문서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들은 임시정부청사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회의때 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며 환희의 눈물 속에서 조국을 향해 묵도를 올리곤 했다. 이틀에 세끼를 때울 때가 한두번이 아닌 이들의 모습은 초췌하기 이를데 없었다.중국인이 먹다버린 배추를 다시 집어다가 씻어서 허기를 채우면서도 정통정부의 각원(장관)으로서의 품위와 질서를 유지하는등 근엄성과 애국열의를 잃지 않았다. 이들은 내정교통·외교군사·교육문화·재정사법 등에 걸친 민간정통 정부로서의 광복정책을 펴나가면서 대표성과 대본영으로서의 통제적 사명을 가슴깊이 자긍심으로 여기고 세계정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중국·프랑스·폴란드·소련의 승인을 받으면서 상해로부터 중경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자존심은 드높았고 선비로서의 지조나 기품을 의연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후 27년간 율사를 동원,5번의 개헌과정을 통해서 지도원리를 광복정책에 맞게 적응시키느라 의회에서 사심없는 열변의 토론과정을 거친 것이다.이들이 만든 헌법은 대개 10개조에서 많을 때는 70여조에 이를 때도 있었다.그 제1조의 내용은 오늘날 1백30여조,부칙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헌법제1조와 동일하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 군주제의 양반체제로부터 결별인 동시에 문민공화정치의 입문이었다.이것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법통성이 임정으로부터 기연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광복군은 곧 의병과 독립군을 이은 우리 군의 정통성을 더해 준다.그러나 8·15는 이들의 법통성을 외면케하여 충격을 주었다.그뒤 1988년 제9차 개헌 전문에 비로소 대한민국의 법통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시하게 됐다.8·15광복 이래(1945)정통성을 찾는데 43년(1988)이 걸린 셈이다. ○43년 걸린 법통회복 그동안 정통성의 기반이 미약했던 군사정부나 임정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자유당정부는 임정의 법통성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피하거나 평가하려 들지 않았다.모두 밀착되게 관련이 있으면서도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회피했던 것이 사실이다.북한 당국도 오랫동안 임정의 정통성을 외면한 채 비방·폄하·성토·질책일변도로 달려왔다. 일부 운동권 시각도 임정을 성토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문민공화정부를 맞아 임정의 법통성문제가 거론될 때 30년간 임정을 연구한 보잘 것 없는 필자는 감격의 뜨거운 낙루를 금치 못하면서 오랜만의 법통성을 올바르게 찾았구나 싶어서 현대사의 정당한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임정의 법통성이 공식 인정되었으면서 아직도 그에 따른 후속법제조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임정27년사가 대한민국의 제1공화정이 되어야 함은 물론 「민국」의 연호 또한 단기와 병기되어야 한다.그리고 임정의 대통령(국무령·주석등)·국무위원의 예우 역시 소급적용 되어야 문민정부로서 뒷날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민국」 연호 병용을 임정의주석이었던 이동령의 천안 생가는 비가 새고 도로도 협소한데다가 표지판마저 불분명한 채 방치되어 있는게 작금의 실정이다.8·15이후 대통령을 역임한 분의 유적이 늘 관심속에 손질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비교가 되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이번 8월5일에 돌아오는 박은식씨등 임정요인 5위의 유해 봉송과 때를 맞추어 흩어져 있는 임정요인의 묘역이 국립묘지에 다듬어지고 있는 2천평 위에 가지런히 함께 모셔지길 바란다. 상해임정청사의 복원전시에 이어 중경임정청사의 복원작업도 이미 시작되었다.속히 임정의 법통성이 원만히 지켜져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절차와 순서가 이어지길 빈다.
  • 강원·제주 해수욕장/남·서해안 뒤이어 내일 일제 개장

    ◎휴가철 가볼만한 전국의 해수욕장 안내/경포·낙산등 46곳 군 철조망 철거로 여건 호전/바다 찾는 피서객 조사결과 63%가 동해 지망/덜 알려진곳 골라 교통·주차난 피하는 것도 슬기 지난 1일 해운대·송정·대천 등 부산및 서해안일대 해수욕장 개장을 시작으로 남·서해안의 해수욕장이 잇따라 개장하고 있는 가운데 10일 강원도와 제주도내 해수욕장이 일제히 개장에 들어간다. 이로써 전국이 본격 휴가철에 돌입하게 되며 장마가 끝나는 7월하순부터 8월초쯤이면 전국 해수욕장은 절정을 이루게 된다.올해 직장인들의 경우 가장 높은 비율인 38%정도가 바다를 휴가여행지로 꼽고 있으며 이중 63%는 동해안을 지망하고 있는 것으로 한 조사결과 밝혀졌다. 특히 이번 피서기간에는 문민정부 출범에 힘입어 동해안 해수욕장 가운데 경포·낙산·망상 등 시범해수욕장 12개소와 일반해수욕장 18개소,간이해수욕장 16개소 등 모두 46개해수욕장의 군사용 철조망이 철거돼 해수욕을 위한 더없이 좋은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청간정」등 관동8경 볼만 그러나올해 해수욕장을 피서지로 택하는 사람은 교통체증·주차전쟁 등 교통난을 단단히 각오해야만 할것이다.각 해수욕장마다 개장에 앞서 많은 준비를 했지만 주차장의 큰 확충은 불가능한 실정이며 이와함께 영동고속도로를 비롯해 서울∼양평∼홍천간 도로,강릉∼속초간 국도,서산∼태안간 도로,동해고속도로의 극심한 교통정체가 예상되고 있다.따라서 시기와 장소,지명도 등을 충분히 고려해 휴가지를 정해야 한다. 휴가철을 맞아 가볼만한 전국의 해수욕장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을 소개한다. ▷동해안◁ ◇교암리해수욕장=강원도 속초시에서 북쪽으로 10㎞지점에 있다.백사장 길이가 1㎞로 금강산 제일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린다.관동8경의 하나인 청간정을 중심으로 일대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속초에서 수시로 시외버스가 운행된다.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당 ◇오산해수욕장=군부대 철수후 지난해 개장,동해안중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깨끗한 곳으로 수심이 낮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피서지로 알맞다.서울신문사와 코오롱 스포츠공동으로 마련한 동해안 오산가족캠프장이 25일부터 8월15일까지 운용된다. ◇수산해수욕장=강원도 양양 바로 동쪽에 있는 해수욕장.동해도립공원의 일부로 물이 맑고 바닥경사가 완만해 초심자가 수영하기에 적합하다.양양읍내에서 가깝지만 한적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제격이며 근처에 흐르는 남대천에서 은어회도 맛볼수 있다.양양에서 수시로 운행되는 일반버스로 쉽게 닿는다. ◇근덕해수욕장=강원도 삼척시에서 남쪽으로 10여㎞ 지점에 위치.백사장 길이가 6㎞에 이르는 대형 해수욕장으로 조개가 많아 조개 잡는 재미도 맛볼수 있다.근처 마읍천에서는 은어가 서식,은어낚시를 즐길수 있으며 무릉계곡·죽서루·초당굴 등의 관광지와 가깝다.바로 아래의 궁촌해수욕장도 넓고 깨끗한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대본해수욕장=경북 경주시에서 동쪽으로 32㎞ 지점에 있다.해변에 모래대신 둥근 돌이 깔려있어 이색적인 멋을 풍기는 해수욕장이다.수심은 다소 깊고 가파른 편이어서 조심해야 한다.해수욕장 앞에 신라 문무왕의 해중릉인 대왕암이 자리하고 있다.경주에서 감포행 버스를 타면 되며 숙박은 여관과 민박이 가능하다. ◇칠포해수욕장=경북 포항 북쪽 18㎞지점에 위치한 대형해수욕장으로 백사장 면적이 4만평에 달한다.기암괴석의 바위군이 눈길을 끌며 해수욕장 가운데로 맑은물이 흘러 담수욕도 즐길수 있다.캠프장·방갈로 등 각종 편의시설을 잘 갖췄으며 포항에서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서해안◁ ◇난지도해수욕장=충남 당진 북쪽 대난지도에 위치한 해수욕장.교통이 조금 불편한 편이라 인적이 뜸한 곳이다.백사장 길이가 1㎞이며 물이 맑다.서산을 경유,대진면에서 배편을 이용해야 하지만 인천에서 직접 가는 배편도 있다. ○폭포등 절경·낚시터 유명 ◇선유도해수욕장=전북 군산에서 서남쪽으로 43㎞ 떨어진 고군산열도 중의 선유도에 위치.백사장이 10리나 돼 명승 고군산8경의 명사십리로 꼽힌다.선유도는 해수욕장 외에도 망주봉과 망주폭포가 이뤄내는 빼어난 절경과 낚시터로도 유명하다.군산에서 선유도까지 배가 하루 1회 왕복하는데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학암포해수욕장=충남 태안에서 북쪽으로 20㎞지점에 위치한 외딴 해수욕장.4㎞정도의 비포장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으로 만리포·연포 등 인근 해수욕장이 붐빌때 가볼만한 곳이다.서해안의 확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백사장도 넓다.근처에 어항이 있어 바다낚시 출조가 가능하며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다. ◇가마미해수욕장=전남 영광에서 20여㎞ 떨어진 홍롱 앞바다 해수욕장.울창한 소나무숲이 깨끗한 백사장을 감싸고 있어 아늑한 분위기다.호남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모래찜질로도 유명하다.광주서 10분간격으로 운행하는 영광행 직행버스를 탄뒤 영광에서 가마미까지 가는 일반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남해안◁ ◇구조라해수욕장=경남 거제도 남단에 위치.은빛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이 일품이며 수심이 1m이내에다가 경사도 완만해 마음놓고 해수욕을 즐길수 있다.인근 장승포구에서 해금강으로 통하는 유람선이 있어 해상관광도 겸할수 있다.풋풋한 인심과 제반 편의시설도 잘돼 있어 가족단위의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다.충무에서 장승포까지 직행버스가 있고 장승포에서 구조라까지 버스로 40분 걸린다. ○맑은물 흘러 담수욕 가능 ◇송호리해수욕장=전남 해남읍에서 36㎞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반도 최남단의 해수욕장으로 모래질이 좋고 담수도 흘러 샤워하기도 좋다.바로 옆에 땅끝마을인 토말이 있어 육지 최남단을 직접 답사하는 즐거움도 맛볼수 있다.해남에서 송호리행 완행버스로 1시간30분 걸리며 목포간 여객선도 해수욕장에 기항한다. ◇비진도해수욕장=충무에서 남쪽으로 13㎞ 떨어진 비진도에 위치.바닷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바닷물을 동서로 두고 남북의 두 섬을 기다란 모래띠로 이은 천혜의 해수욕장.특히 모래의 질이 좋고 해수욕장 뒤쪽에 울창한 수목이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어 피서에 적합하다.충무에서 정기여객선으로 40분∼1시간 정도 소요된다. ◇신지도해수욕장=완도 동쪽에 위치한 신지도에 위치.모래밭이 10리나 펼쳐져 있고 파도에 밀리면서 울리는 모랫소리가 10리까지 들린다고 해서 명사십리라고도 불린다.수온이 따뜻하며 가족동반에 적합하다.은빛 모래가 신경통및 피부병에 좋다고 해서모래찜질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완도에서 배가 자주 있는데 20분 정도 걸린다. ▷제주도◁ ◇곽지해수욕장=북제주군 애월읍 곽지리에 위치한 해수욕장.수심이 얕고 완만하며 해안선이 아름답다.야영장·주차시설 등 제반시설이 잘 돼있어 가족단위 피서객들에게 알맞다.주변에 항몽순의비를 비롯,아열대식물원이 있어 자녀들 학습의 장으로도 활용될수 있다. ○연갈색 해변모래 고와 ◇신양리해수욕장=남제주군 성산읍 신양리에 위치.반달모양 모래밭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어린이와 노약자가 해수욕하기 적합하다.모래는 연갈색 혹은 검은색으로 가느다랗고 고운것이 특징.주변에 성산일출봉이 있으며 해녀들의 물질광경도 직접 볼수 있다.
  • 교통도의와 신앙심/안경렬 역촌동성당 주임신부(굄돌)

    우리 일상의 삶 가운데 나와 남의 마음을 아프게하며 다투는 일이 무엇때문에 가장 많이 일어나는가 조사해본다면 너나할것없이 교통과 차량운행문제라고 대답할 것이다. 언젠가 나는 차선을 바꾸려다 뒤따라오는 분을 놀라게했나보다.경적을 울리며 뭐라고 해댄다.얼핏 백미러로 보니 아뿔싸,내가 잘아는 우리 교회신자였다.순간 부끄럽고 당황했는데 다행히도 직진신호가 떨어져 위기를 모면했다.색유리 덕분에 그는 미처 나를 몰라본게 틀림없다.후에 만나도 겸연쩍어 그 얘긴 못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난폭운전,얌체운전,안하무인운전과 부주의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멍들게하는가.우선 그중에 못마땅히 여기는 두가지가 좌회전 차선으로 앞서나가서 막무가내 직진으로 끼어드는 차와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중에도 위협적으로 급정거하며 보도를 밟으며 슬금슬금 나가는 차다.놀라며 분노하는 보행자를 볼때마다 죄스러운 느낌이다. 자동차때문에 좋은 면도 많겠지만 우리 심성과 생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어떻게 가늠할까.거기에 교통사고까지 합친다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게될까.드물지 않게 교통사고사망으로 장례미사를 집전할땐 이것이 우리 모두의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같은 현상은 흔히 우리의 조급한 성격과 생활습관때문이라한다.우리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백성이었지않은가.사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선가.느긋하게 천시를 기다려야하는 천하지대본인 농업을 포기해선가.정보의 홍수시대에 사회변화와 발전속도에 발맞추려는 허덕임인가.숱한 전쟁과 수탈의 역사와 정책의 불안정,요령과 선착순,투기의 시대에 벼락출세 벼락부자 물질적 향락 경제제일주의속에 빗나간 경쟁과 허세가 우리를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가의 어짐,불가의 자비,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이들이 대부분인 이 사회에 왜 이다지도 겸양과 자애와 희생을 교통도의에선 찾기힘든가.이름뿐의 신앙이 많기때문이다.남에게 베푼것이 내게로 돌아온다.벌칙강화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할 형제들임을 명심해야한다. 여기 신앙인들이 솔선해야할 이유가 있다.나는 보행자와 버스엔 우선 양보하련다.「혼자」라는 미안함에서라도 말이다.
  • 민간인 10명 군부대서 난동/기물파괴·사병 집단폭행뒤 도주

    【이천=조덕현기자】 20대 청년 2명이 술을 마시고 자신들이 근무했던 군부대를 찾아갔다가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한뒤 일행과 함께 군부대로 난입,난동을 부린뒤 달아났다. 지난 4일 하오7시쯤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 육군 모부대에 이 부대의 방위병으로 근무했던 조모씨등 마을 청년 2명이 술에 취해 부대에 근무하는 장교를 만나러 갔다가 연병장에서 훈련중이던 현역군인들과 시비를 벌여 군인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군부대 위병소유리창을 부수고 달아났다가 함께 축구시합을 했던 일행 8명과 함께 이날 하오9시쯤 차량 2대에 나눠타고 제지하는 초병의 총을 뺏은뒤 초소를 부수고 군부대로 들어갔다. 이들은 이어 중대본부로 들어가 바둑을 두고있던 중대장 임모대위(33)와 선임하사를 폭행하고 2층 내무반으로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군인들을 폭행한뒤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군부대에 난입했던 민간인 1명이 팔뚝에 11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었으며 군인 3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편 군부대에서 난동을 부린 조씨등은 5일 하오 모두 자수했다.
  • 이종찬씨 소환조사/정몽준씨 출두안해/대선법위반수사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7일 김재영전의원등 국민당 지구당위원장 4명이 정주영 전국민당대표등 6명을 대선법위반 혐의로 고소한 것과 관련,정몽준·정장현의원과 박세용·김영일씨등 14대 대선당시 국민당 선거대책관계자 4명을 소환했으나 정의원등이 출두하지않아 8일 이들을 다시 불러 조사키로 했다. 그러나 정의원등은 변호인을 통해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인 김동길최고위원과 선거대책본부장인 김효영사무총장등이 지구당을 지휘해 선거운동을 했으므로 구체적인 사항은 알지 못한다』며 당시 선대본부 부본부장이었던 J의원을 제외하고는 소환에 응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14대 대선 직전 새한국당과 국민당과의 통합조건으로 새한국당대표 이종찬의원에게 50억원을 주었다고 발언해 정전대표가 고소된 사건과 관련,이의원을 불러 참고인조사를 벌였으나 이의원은 『당대당 통합후 국민당으로부터 10억원을 받아 지구당에 선거자금으로 나누어준 적은 있으나 통합조건으로 50억원을 받은 일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쓸쓸한 위로/박정자(굄돌)

    5월 중순,기압이 낮은 날씨가 내 마음 속 어두은 부분을 자극하고 있었다.그날 나는 두 사람이 하는 연극을 보러 산울림 소극장에 갔다.「위기의 여자」「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하면서 내가 연극을 하는 배우라는,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뼛속까지 절감했던 그 극장에서 나는 관객인 채였다.나는 반드시 긴 행렬을 기대하진 않았다.그러나 관객은 스무명 정도였다.아직도 스무명의 관객 앞에서 연극을 한다는 사실에 나는 서글펐다. 연극이 시작된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한 배우의 목소리 톤이 뭔가 절박하게 들리고,그리고 다른 배우가 무대 뒤로 뛰쳐나갔다.그건 「피한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황황스런 움직임이었다.순간적으로 나는 「사고」를 느꼈다.혼자 남은 무대 위에서 그는 관객에게 말했다.『상대배우가 과로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대를 떠났다.10분만 기다려준다면 다시 공연을 하겠다…』 나는 소리도 못내고 객석에 앉아 울었다.견딜 수 없는 위기를 느꼈다.그 상황은 그 배우에게 일어났지만 나에게 일어난 것과 같았다.나는 당장 분장실로 내려가진 못했다.위로할 말을 찾지조차 못했다.88년 나는 「웬일이세요,당신」을 하던 이튿날,바로 이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흔들려 대사를 잃어버렸었다.그때 내가 느낀 것은 『죽고싶다』따위의 사치한 감정이 아니었다.어떤 말로도 증발해버리지 못하는 것만이 치욕스러운 그 참담함을 수사할 수 없다.배우는 그것을 안다. 분장실에서 그는 당황스레 대본을 들추며 『어디가 틀렸지! 내가 왜 이러지』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나는 그를 끌어안았다.배우도 인간이다.로봇이 아니다.그래서 실수할 권리가 있다.10분이 지났지만 그는 다시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관객들은 불쾌했을까.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그들은 연극이라는,상처와 고통으로 피흘리는 바로 그 현장 속에 있었다는 것을,나는 그에게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나는 그 약속이 그의 치유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났다.그건 누구를 위로하기 위한 눈물이었을까.나는 모른다.
  • 농기계보 내농촌일손 돕자(사설)

    오늘의 농촌은 「농자천하지대본」 깃발을 날리면서 격양가를 부르던 시절의 모습이 아니다.젊은이들은 도시로 빠져나가 버려서 노령층과 부녀자들이 지켜내는 곳으로 변모하여 간다.더러 뜻있는 젊은이들이 찾아들고는 있지만 빈집까지 늘어나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활기를 잃어가는 형편이다. 더구나 수입개방이라는 국제적인 파고속에서 그나마의 생산의욕마저 감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수익은 적은데 비해 소출을 위한 품삯은 비싸다.비싸더라도 구할수나 있었으면 하련만 기본적으로 인력이 없다.그래서 오늘의 농촌은 2중3중으로 외롭고 고달프다.요즈음같은 농번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또 그럴수록 영농기계화에의 소망은 더 절실해진다.이앙기 하나로써 사람 몇십명몫을 감당할수 있으니 그렇지 않겠는가.그러나 오늘의 우리 농촌이 그것을 집집마다 갖출수 있을만한 여력을 가진게 아니다.그래서 도움이 필요해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 해서 나날의 삶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우리의 근본이 농촌에 있었음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이 고달파진 농촌을 돕도록 해야겠다.특히 농촌이 고향인 도시민들의 경우는 한결 절실한 심정으로 수구초심을 살려야 할것이다.대체로 어느 도시건 향우회가 결성되어 있다.서울의 경우는 면민회까지 조직되어 봄가을로 야유회도 하고 선거철이 되면 더 활성화함을 보아오는 터이다.그뿐아니라 평상시에도 경조사에는 얼굴들을 맞댄다.이런 향우회가 농기계 사보내기 운동의 중심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데는 그곳이 우리모두의 정신적 지주로 되어주기 때문이라는 뜻이 크다.언제라고 헤아리기 어려운「식량전쟁」의 보뢰이기도 하다.그곳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은 그래서 우리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도 하겠다.서울신문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농촌 농기계 보내기 성금」을 모으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범국민적인 열화와 같은 호응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이사업을 벌이면서 간곡하게 덧붙이고자 하는 것이 있다.그것은 국민의 정성으로 보내어진 농기계가 보다 유효적절하게 쓰일수 있도록 당로자에 의해 배려되어야겠다는 당부이다.농기계대리점과 농협이 판매·수리문제로 옥신각신할 일은 아니다.농기계가 고장났을때 신속히 수리할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일이 급선무이다.그를 위하여 우수하고 친절한 수리기술자를 양성 확보해야 한다.그와 함께 불어나고 있는 농기계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이나 수리의 기초같은 교육도 반드시 따라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브로드웨이/탄생 1백돌 화려한 기념행사

    ◎미 24개 극단,고전뮤지컬 1년간 공연/영하페스티벌­사진·포스터전도 개최/1893년 「아메리칸 시어터」 첫 개관… 연극의 메카로 미국 「상업연극의 메카」브로드웨이가 올해로 대망의 탄생 1백주년을 맞는다.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지난 1893년 5월 22일 미국 최초로 완벽한 극장시설을 갖춘 「어메리컨 시어터」라는 극장이 42번가 북쪽에 위치한 타임스 스퀘어에 문을 열고 「방탕한 딸」을 무대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후 42번가와 타임스 스퀘어를 중심으로 점차 확대돼 최고의 전성기인 1928년에는 80개의 극장에서 연간 2백64편의 연극이 상연됐고 그동안 수많은 극장들이 새롭게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전세계 흥행의 중심지로 확고한 위치를 굳혀왔다. 특히「세계의 교차점」이라 불리는 타임스 스퀘어는 저녁 무렵과 각종 연극과 쇼가 끝나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는 시간에는 그야말로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만남의 광장으로 변한다.이때에는 극장과 영화관 말고도 레스토랑과 바,나이트클럽등도 활기를 띠어 거리전체가 열광하게 된다.또 이곳에는 포르노 숍,게임 코너,토플리스 바 등도 밀집돼 있어 각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때문에 미국 극장주협회와 연출가협회(LATP)가 뉴욕주와 시당국의 후원 아래 벌이고 있는 브로드웨이 탄생 1백주년 기념행사장은 요즘 몰려드는 인파로 더없이 활기를 띠고 있다.기념행사의 명칭은 「브로드웨이 축제­타임스 스퀘어의 1백년」. 지난 3월 24일「크레이지 포 유」가 공연되고 있는 슈베르트극장에서 거행된 개막식을 시작으로 앞으로 1년동안 펼쳐질 다채로운 축제행사에는 미국 전역에서 선정된 24개 극단및 연기단체들이 참가한다.주최측은 축제기간동안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는 「오클라호마」「포기와 베스」「마이 페어 레이디」「쇼보트」등 4편의 초대형 뮤지컬을 리바이벌해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3월 31일부터 공연이 시작된 「오클라호마」는 50년전부터 상연되기 시작,2천2백48회의 연속공연기록을 수립했던 작품으로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연기와 음악,춤 등을조화시킨 최초의 뮤지컬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초연 당시 이 뮤지컬은 오스카 해머스타인(대본·작사),리처드 로저스(작곡),루벤 마무리언(연출),아그네스 데밀(안무)등 탁월한 전문가들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는데 1909년 무렵 오클라호마의 한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목동·농부·처녀들의 사랑을 그린 향토색 짙은 작품이다. 지난 27년 초연된 「쇼보트」는 19세기말 미시시피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쇼보트(연예선)를 무대로 선장의 외동딸「맥노리아」와 도박사「게이로드」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이 작품은 특히 당시 세태와 흑인차별의 비극적인 실상을 그린 대작으로 29년,36년,49년에 걸쳐 여러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최측은 이밖에도 브로드웨이 무대에 먼저 올려진 뒤 영화로 제작돼 성공을 거둔 필름들을 한자리에 모은 영화페스티벌을 비롯,사진과 포스터 등을 모은 브로드웨이 회고전시회등을 함께 준비하고 있으며 무료공연및 콘서트를 통해 관객의 저변확대를 꾀할 계획이다.
  • 음악사용료 2백만원씩 지원/서울무용제 운영방식 대폭 개선

    ◎평가위원도 20명으로 증원 국내 최대의 무용경연무대인 「서울무용제」가 명성에 걸맞은 행사로 거듭난다.한국무용협회는 최근 무용제운영위원회를 소집,그동안 편파적 운영과 심사위원들의 사전담합설등으로 물의를 빚어 왔던 서울무용제의 운영방식을 대폭 개선키로 하고 세부시행계획을 확정했다. 이번에 달라진 내용은 ▲창작음악 사용시에만 지급하던 지원금 2백만원을 모든 작품에 일괄적으로 지원하고 ▲심사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작품평가위원수를 13명에서 20명으로 늘리며 ▲평가위원들은 작품평가서를 2개팀 1개조의 공연이 끝날때마다 제출토록 했다.또 ▲수상작선정시 대상,안무상,연기상등은 토론을 생략한채 모든 평가위원의 채점을 합산,점수순으로 뽑고 ▲예선심사제출용인 실연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는 꼭 참가작품으로 못박지 않고 안무자의 2년이내 최근작까지 포함시키며 ▲국·시립단원및 대학생은 전체출연진의 30%이상을 넘지 못하게 했다. 창작무용진흥을 위해 지난79년 창설이래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서울무용제는 새 운영방식에 따라 올 10월9일부터 11월2일까지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열린다. 한편 참가희망단체는 오는 5월17일부터 31일까지 한국무용협회에 원고지 10장내외의 대본(작품줄거리,무대구성을 포함한 안무의도)1부와 안무자경력1부,출연자명부1부,단체연혁및 공연실적 1부,10분 이내의 실연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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