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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續 사랑과 야망’ 19년만에 재회

    ‘續 사랑과 야망’ 19년만에 재회

    요새는 시청률 50%를 넘어서는 드라마를 찾기 힘들다. 시청률 조사기관이 없던 1970∼80년 대에는 시청률 70%를 우습게 여기는 작품이 많았다. 채널 수가 적었던 까닭도 있다. 이 때 시청률은 비공식 집계다. 그럼 어떻게 시청률을 가늠했을까. 곽영범 PD는 “세운상가를 오가며 수많은 전파사들이 켜놓은 TV 채널을 일일이 확인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1987년 1월부터 약 11개월 동안 방영되며 최고 74% ‘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이 2006년 버전으로 다시 부활한다. #‘사랑과 야망’은 어떤 드라마? 87년 힘을 합쳤던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와 곽 PD가 19년 만에 ‘사랑과 야망’을 새로 쓰고, 다시 찍고 있다. 새달 4일부터 50부 예정으로 SBS를 통해 시청자들과 재회한다. 30대 초반 시청자라 해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 있다.‘사랑과 야망’은 격변하는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집안의 가족사을 다루고 있다. 남편을 잃고 시골 마을 방앗간을 운영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한 여인과 삼남매의 삶과 사랑이 집중조명된다. 특히 냉철하지만 이기적인 박태준, 거칠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박태수 등 두 형제가 펼친 사랑과 일에 대한 판이한 인생역정은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고 남성훈과 이덕화가 각각 태준과 태수를 연기했고, 특히 태준의 첫사랑이자 끊임없이 애증 관계를 유지했던 김미자 역의 차화연은 단숨에 톱스타 반열에 올랐으나, 곧바로 연예계에서 은퇴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2006년, 이 점이 새롭다 당연히 연기자들이 달라졌다. 그런데 연령대가 젊어졌다. 옛날에는 고 남성훈이 40대 초반, 이덕화와 차화연이 30대 중반에 각각 태준, 태수, 미자를 연기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조민기, 이훈, 한고은 등은 그보다 최고 8살까지 어리다. 캐스팅이 젊어진 것이다. 97회였던 드라마가 50부로 압축된다. 그만큼 빠른 템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재 10부까지 나온 대본에는 87년의 20회 분량이 담겨 있다. 시대와 장소도 달라진다. 장소는 ‘강원도 춘천-서울’에서 ‘전라남도 순천-서울’로 바뀐다. 이를 위해 순천 1만 2000평에 50억원을 들여 대규모 세트를 지었다. 또 예전에는 58년에서 출발,80년대 중반까지 다뤘지만 이번에는 60년에서 시작해 90년대 중반까지를 그린다. 무엇보다 결말이 달라지는 점이 주목된다.87년 버전에는 태준과 미자의 애증 관계 등을 보여 주며 막을 내렸으나,2006년 버전은 그 이후를 비춘다. 곽 PD는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중반 이후 흐름이 예전과 바뀌게 될 것”이라면서 “20년 전과 시대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조민기는 “애증에서 화해로 이어지는 부분이 추가된다.”면서 “87년에는 없었던 주인공들의 노년 시절이 보태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준·태수의 동생 선희와, 미자를 영화 배우로 키우는 혜주 역의 비중이 커지는 한편, 파주댁 등과 함께 행상에 이어 식당을 꾸리는 명자(김나운)라는 새로운 감초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순천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올 대입 논술 시사문제 줄고 만화·영화 대본 등 활용

    올 대입 논술 시사문제 줄고 만화·영화 대본 등 활용

    올해 각 대학에서 실시한 정시 논술고사는 일상생활에 잠재해 있는 인간 본연의 문제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림, 광고 등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도 활용됐다. 유웨이 중앙교육이 지난 3일 이화여대 논술고사를 비롯, 지난 12일까지 실시된 8개 대학의 논술고사 출제경향을 분석한 결과다. ●창의적이며 균형적인 시각중요 분석결과, 시사적 주제보다는 일상생활에 잠재해 있는 인간 본연의 문제를 주제로 한 지문들이 많았다. ‘질서의 의미와 가치(고려대)´,‘바람직한 한국인 상(경희대)’,‘문자 표현(글)의 한계와 가능성(부산대)’,‘모조품 소비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인 함의 - 정체성 상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잣대에 대한 방향성 상실(성균관대)’,‘남아 선호 사상과 민족주의(숙명여대 인문)’,‘불안의 생산성과 항존성(연세대)’,‘언어가 사회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화여대)’등이다. 강신창 논술팀장은 “많은 학생들은 이런 주제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만을 암기하거나 당연히 그러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논술에서 이러한 고정관념은 매우 안 좋은 학습 습관으로, 이번 논술은 이러한 단편적인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평소 창의적이고 균형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공부해야 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림, 광고 등 시각적 자료도 그림, 광고, 표 등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도 나왔다. 변별력 강화를 위해서라는 게 강 팀장의 분석이다. 실제로 숙명여대는 최근 4년간 우리나라 출생성비를 나타내는 통계 자료를, 한양대(인문)는 인간형 로봇 ‘휴보’와 만화 ‘공각기동대’의 휴머노이드 그림, 영화 ‘메트릭스’ 대본 등 시각적 자료를 활용했다. ●고도의 이해력 요구도 대부분의 대학들이 ‘제시문을 바탕으로’,‘제시문을 비교 분석하고’,‘제시문 안의 논지를 밝히고’, 대화체의 제시문을 주고 ‘제시문 안의 특정인의 주장에 대해’,‘제시문들의 공통 주제를 찾아’,‘제시문 간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고’ 처럼 주어진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독해를 바탕으로 논술문 작성을 요구했다. 출제자가 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이나 배경 지식보다는 이해력과 독해력을 바탕으로 주어진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지식을 체계화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시중銀 中企대출 ‘각축전’

    시중銀 中企대출 ‘각축전’

    ‘중소기업인 천하지대본(中小企業人 天下之大本)’ 국책은행이나 시중은행 가릴 것 없이 은행장들은 요즘 입만 뗐다 하면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외치고 있다. 은행의 중소기업 담당자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전략회의를 하며 행장들의 ‘약속’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2006년 은행간 영업경쟁의 서막이 중소기업대출 쪽에서 올려지고 있는 셈이다. 과거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강화 전략은 대부분 ‘구두선’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모든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돕겠다고 외쳤지만 대출이 오히려 줄어든 은행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다를 것이라는 게 은행권의 전망이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이 한계에 이르러 중소기업대출을 늘리지 않고서는 은행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말부터 은행의 공익성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터라 중소기업 대출은 공익성 홍보 차원에서도 매력적인 사업이다. ●기업·국민·우리은행 자존심 건 한판 승부 올해 중소기업 대출 경쟁은 기업·국민·우리은행간 ‘3파전’으로 압축된다.2004년 말부터 중기대출 잔액에서 국민은행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기업은행은 지난해 46조 6900억원에 이르는 대출을 일으켜 전년 대비 6조 5500억원 이상을 늘렸다. 이는 은행권 전체 순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액수다. 기업은행은 올해 대출 순증액을 8조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강권석 행장은 9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전국을 돌며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 지원 사업설명회’를 갖는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31조 9600억원의 대출 실적을 기록, 시중은행에서는 가장 많은 2조 6400억원의 증가액을 보였다. 특히 국민은행과의 대출잔액 격차를 5352억원으로 좁혀 2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중기대출이 부실화하더라도 담당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특별대출 상품을 도입키로 하는 등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킬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2002년 합병 이후 시장점유율 확대 정책에 따라 2003년까지 중소기업 대출을 9조 2000억원 가까이 늘렸다가 대규모 부실로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실 여신 정리에 주력한 결과, 대출 잔액이 6조원 이상 줄었다. 국민은행은 부실 정리가 끝났다고 보고 명예회복을 위해 올해 중소기업 대출을 2조원 가량 늘릴 계획이다. ●“담보 위주 대출 탈피할 것”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은 통합 과정에서 두 은행에 모두 대출을 받은 중복고객의 이탈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통합 시너지를 활용해 신규 대출도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나은행도 중소기업 밀집지역에 11개의 영업망을 확충하고, 설비투자를 위한 시설자금 대출에 초점을 맞춘 대출상품을 개발해 주요 공단지역에서 마케팅을 벌일 예정이다. 담보 위주의 중기대출을 해온 은행들의 관행으로 볼 때 올해도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실제로 중소기업협동조합이 462개 중소기업을 조사한 결과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한 업체 중 신용대출을 받은 곳은 11.7%에 불과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담보가 있는 업체들을 서로 빼앗는 경쟁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신규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큰 성장세를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기업금융부 허진 팀장은 “올해 영업 목표는 단순한 대출금 확장이 아닌 신규고객 확보에 있다.”면서 “예금이나 환전으로 첫 거래를 튼 소호(SOHO·영세자영업자)기업이나 중소기업 고객까지 잠재적 대출 고객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단시일 내에 실제 대출고객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당신은 지금 ‘온달 콤플렉스’?

    당신은 지금 ‘온달 콤플렉스’?

    고전 이야기에 나오는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은 정말 사랑했을까. 첫눈에 반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어렵게 맺은 인연이기에 이들은 분명 곡진하고 애틋한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을 터. 평강 공주가 온달을 숙명처럼 사랑하게 되었다면, 죽어서도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온달의 사랑은 한층 원초적인 것이었으리라.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의 끝 부분을 보면 이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온달은 신라 군사들과 아단성에서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는다.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온달의 시신을 실은 상여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에 평강 공주가 다가와 관을 어루만지며 말한다.“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아아, 이제 떠나가세요.” 그제야 상여가 움직이고 온달은 마지막 길을 떠난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사랑이다. 한편으론 지독한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이 ‘고구려판’ 온달 콤플렉스가 요즘 와서는 얼마간 변주된 모습을 보인다. 능력 있는 여성의 모성본능을 자극해 그 품에 안기려는 유약한 남성. 아내의 목소리는 드높아지고 남편의 고개는 점점 다소곳해지는 가정의 역조(逆調) 현상. 오늘날 이런 ‘대한민국판’ 온달 콤플렉스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11,12일 오후 7시30분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옛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중견 안무가 이경옥(46)씨의 신작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시소게임’은 바로 이같은 문제를 건드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누구나 아는 원작을 유쾌하게 패러디한, 어른들을 위한 ‘춤동화’다. 막은 공주의 신분에서 쫓겨난 평강 공주가 울며불며 바보 온달을 찾아 산야를 헤매면서 열린다. 저 멀리 한 무리의 뛰노는 말들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뒤쫓아 달려가도 온달은 온데간데없다. 왕의 주술에 걸려 온달이 말로 변한 것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평강 공주. 이어 온달을 찾기 위한 회전목마 놀이가 시작되고, 평강 공주는 마침내 온달을 찾아낸다. 장군의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는 온달. 그러나 온달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고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인 말에 안기어 집으로 향한다. 말은 평강 공주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원작 속의 상여가 움직이지 않듯…. 평강 공주가 자신의 치마로 온달을 덮어준 뒤에야 말은 서서히 발길을 옮긴다. 무용 속의 온달은 평강 공주를 등에 업고 잠시나마 자만심에 빠져 허황된 꿈을 꾼다. 출세지상주의 시대를 사는 오늘의 못난 ‘온달형’ 인간의 모습이 얼비친다. 안무와 대본작업을 맡은 이경옥 무용단장은 “한 소년이 동화책을 보다가 꾸는 꿈의 여정으로 보면 될 것”이라며 “이야기의 핵심은 순수한 사랑, 용기, 희망 등 잃어버린 우리 동화정신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80년대부터 ‘내면풍경’ ‘거기 벼랑이 있다’ ‘머문 자의 슬픔’ ‘명혼’ ‘환향녀’ 등의 작품을 통해 역량을 인정받은 이씨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2005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으며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임성옥(평강 공주) 오창익(온달) 강지혜 손예란 김설경 배유리 등이 출연한다. 입장료는 1만 2000∼3만원. 문의 (02)2263-4680.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신성우-영화음악 김상진감독 연극 연출

    온갖 장르가 다 뒤섞이고 있는 요즘 가수가 영화에, 영화인이 연극에 참여한다. 로커 신성우(37), 그는 올 3월 말 개봉을 앞둔 이문식·김유미 주연의 코미디 영화 ‘공필두’(제작 키다리필름)의 영화 음악을 맡았다. 신성우는 이문식과 개인적 인연이 있었다. 신성우는 “아직 촬영장면을 많이 보지 못해 뭐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대본을 토대로 방향을 잡아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2년 앨범 ‘내일을 향해’를 내놓으면서 ‘테리우스’로 등극했던 신성우는 활동 10년 만인 2002년 MBC 드라마 ‘위기의 남자’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변신했다. 영화감독 김상진(39)은 이제 연극무대에 도전한다. 김 감독은 13일부터 3월12일까지 대학로 창조콘서트홀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의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는 김 감독 외에 코믹배우 박상면과 개성파 배우 강성진에다 여성댄스그룹 쥬얼리 멤버인 조민아까지 합세했다.‘안녕하십니까! 수녀님?’은 20여년전 초연된 ‘병사와 수녀’의 업그레이드판으로 인간의 성적 욕망과 갈등을 다룬다. 막이 내린 뒤에는 배우들과 관객들이 이 주제를 두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마련했다. 김 감독은 1995년 ‘돈을 갖고 튀어라’로 영화계에 데뷔,‘주유소 습격사건’,‘신라의 달밤’ 등 코미디물을 주로 만들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암환자에 희망되기를…”

    드라마에는 여러 가지 흥행 공식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주인공이 병에 걸려 죽는 것이다. 그 병은 대개 암이다. 시청자의 손수건을 적시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인기는 얻을 수 있겠으나,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에게 이런 드라마는 심리적인 타격을 준다. 의사들도 극적 효과를 위해 드라마가 의료 현실과 다르게 그려진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암=죽음’ 공식에 반기를 든 드라마가 선보인다.7일부터 시작하는 KBS 2TV 새 주말연속극 ‘인생이여 고마워요’(연출 김성근, 극본 박은령, 제작 팬엔터테인먼트)이다. 가정에 충실했던 또순이 주부가 암에 걸리고, 의사가 된 첫사랑을 만나 삼각관계를 이루는 등 어찌 보면 진부하기도 하다. 그러나 암을 극복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앞집 여자’‘두 번째 프러포즈’를 썼던 박은령 작가는 드라마를 위한 취재 과정에서 환자들과 의사들로부터 “희망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바람을 전달받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수많은 드라마가 암 환자를 다루며 결국 죽음을 맞게 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면서 “암 투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빛을 줄 수 있는 작품을 그리겠다.”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이번 드라마가 진정한 울림을 갖게 하려고, 두 달 동안 종합병원에 입원한 채 시놉시스를 썼다. 지금도 실제 병원 내에 공간을 마련하고 대본을 집필하고 있는 중이다. 2년 만에 연기를 재개하며 주연을 맡은 유호정도 어머니가 9년 동안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뜬 경험이 있다. 그는 “발병 후 8년 동안은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으셨다. 암에 걸렸다고 당장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내 연기가 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쇼틱커뮤니케이션즈 설립한 김종헌씨

    쇼틱커뮤니케이션즈 설립한 김종헌씨

    배우와 연출가로 피끓는 20대를 보냈다. 극단 기획실장 겸 프로듀서로 냉철한 30대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 불혹의 40대. 지난 20년간 현장에서 창작자로 일한 경험과 기획 능력을 접목시킨 틈새 사업의 CEO로 변신한다. ‘난타’제작사인 PMC프로덕션의 김종헌(40) 전 상무가 공연 창작자들과 제작자들을 이어주는 ‘쇼틱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했다. 일종의 ‘아티스트 마켓’이자 ‘콘텐츠 쇼핑몰’,‘공연 중개업소’다. “뮤지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영화나 IT 등 공연 이외의 분야에서 뮤지컬제작에 쏟는 관심이 커진 반면 정보제공이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입니다. 쇼틱은 이들을 대상으로 작가와 연출가, 작곡가 등의 이력과 현황 등을 온라인으로 제공해 제작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바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달고나’‘뮤직 인 마이 하트’ 등의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만난 아티스트들과 프렌드십을 맺었다. 연출가 조광화 장유정 이해제, 작곡가 이동준, 음악감독 원미솔, 작사가 유혜정 등 30여명이 참여했다. 김 대표는 “아티스트나 작품 콘텐츠를 소개하고 1%의 계약 대행 수수료를 받게 된다.”면서 “작품 구상, 시놉시스, 대본 등 공연 단계별로 제작사들이 원하는 형태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며, 추후에는 직접 제작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쇼틱(Showtic)’은 ‘Showtime is creative’의 줄임말. 창작의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대중앞에 선보이는 창작품을 만드는 마음가짐은 즐거워야 한다는 의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실용액션물 ‘싸움의 기술’ 백윤식

    실용액션물 ‘싸움의 기술’ 백윤식

    묘한 매력이다.‘깬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다. 말쑥한 외모와 중년의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뜨악한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독특한 오라(Aura)를 만들어 낸다. 백윤식(59). 그는 전혀 망가지지 않고도 과장된 ‘오버’연기 보다 더 배꼽빼는 웃음을 전달하는 배우다. 넘치지 않는 절제의 미덕으로 능청스러운 ‘정중동’ 연기의 진수를 선보여 왔다.‘지구를 지켜라’,‘범죄의 재구성’ 등을 통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대중에게 복습시켜 온 그가 이제 다시 한번 스크린을 통해 특유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번에 선택한 작품은 ‘실용액션물’을 표방한 영화 ‘싸움의 기술’(감독 신한솔·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 5일개봉). 지금까지 맞고만 살아 온 고등학생이 싸움의 고수로부터 약육강식의 세상 이치를 배워간다는 이야기의 이 영화에서 그는 싸움의 고수인 오판수 역을 맡았다. 분홍빛 체크 무늬 남방에 나비 넥타이, 그위에 붉은 색 스웨터를 걸쳐 한껏 카리스마를 뽐낸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철저한 몸 관리가 젊음 유지의 비결인 것 같네요.(그는 인터뷰에 앞서 영양보조 식품을 챙겨 먹었다.) -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웃음)항상 건강을 챙기고 있어요. 물론 운동도 하고 있죠. 지금 간식(약) 먹을 시간이 됐네요.(웃음)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속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나요? -저는 항상 책(대본)을 충실히 따르죠. 만족해요. 다만 열심히 찍었는데, 편집된 몇몇 장면이 추가되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감독에게 말했고 조율 중이죠. ▶작품속 리얼한 ‘싸움의 기술’을 보니 학창시절 ‘한가닥’ 했을 것 같은데. -하하. 부실 고등학생인 병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의협심으로 똘똘 뭉쳐 누가 부당하게 맞으면, 달려가 ‘교통 정리’해주곤 했죠. 장난기가 많아 시비도 종종 붙고, 방과후 인근 ‘격투장’에서 ‘맞장’을 뜨기도 하고요. 대부분 이겼어요. 영화 속에서 보듯 ‘깡’이 제일의 ‘싸움의 기술’이라니까요. ▶외모는 물론 연기 행보를 보면 나이를 무색케 하는데, 비결은? -배우는 주민등록상의 나이보다 화면속 나이가 더 중요하죠. 평소 철저한 자기 관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장 필요하다고 봐요. ▶아끼는 영화속 장면이 있다면. -영화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오판수의 이상향을 그린 멕시코 ‘칸쿤’신이에요. 제작비 관계로 동남아에서 제주도로, 다시 안면도로 장소가 ‘다운 그레이드’돼 안타까웠지만요. ▶나름의 연기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항상 채워나가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씩은 뒤도 돌아보고요. 연기라는 것이, 또 배우라는 것이 삶과 똑같거든요. ▶대중을 환호케 만드는 매력이 뭐라 생각하세요? -하하. 쑥스럽게…. 물어보니깐 말하죠. 저에게 관심 주는 층의 폭이 굉장히 넓은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로부터 중장년층까지. 나이드신 분들께는 대리만족을 주고, 중년 배우 등 또래들에게는 현역 활동 등에 대한 부러움을 살 것 같구요. 무엇보다 양면적인 이미지가 아닐까요?제가 독특하면서도 편하고, 뭔가 깜짝 놀랄 것을 던져 주면서도 부담은 없고…. ▶올해도 계속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실거죠?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4월부터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 등 작품을 통해 다시 인사드릴 계획이에요. 카리스마요?제가 카리스마 빼면 시체잖아요?(웃음)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인터뷰보다 더 재미난 후일담

    100호를 맞기까지 주말판 ‘We’를 빛나게 한 수훈갑은 뭐니뭐니 해도 톱스타들. 그때그때 영화, 드라마, 가요계에서 활약이 돋보이는 스타들을 ‘We’는 참 부지런히도 만나왔다. 주말판이 생기고 근 1년 동안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톱스타를 인터뷰해서 표지로 이끌어냈다. 분초를 쪼개 사는 스타들을 번번이 표지로 ‘모셔내기’란 간단할 수가 없는 일. 스타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지면 뒤에서 오고갔다. # 선한 눈망울의 과묵한 그녀, 수애 시쳇말로 연기력은 ‘끝내’주는데, 언변이 유별나게 달리는 스타도 꽤 있다.‘가족’‘나의 결혼 원정기’ 등을 거치며 연기파 신인으로 자리매김한 수애가 그랬다. 질문에 명쾌한 즉답을 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건 물론. 사슴처럼 선한 눈망울로 ‘예’‘아니오’의 단답형 대답만 돌려준 통에 인터뷰 시간이 곱빼기나 들었던 기억이 돌아보면 재미있다. # 송혜교 “죄송했어요, 독자 여러분!” 표지얼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끝내 불발에 그친 사례도 없지 않았다.TV드라마 ‘햇빛 쏟아지다’로 안방극장을 달구고 있던 송혜교. 촬영이 한창인 SBS 탄현스튜디오까지 찾아갔으나 방송담당 기자는 헛걸음을 해야 했다. 인터뷰 시간까지 정하고 갔으나, 웬걸? 아무리 기다려도 송혜교는 밴 차량(배우들이 타고 다니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승합차)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매니저는 “감정몰입이 안돼 배우가 난감해하니 오늘 인터뷰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답답한 말만 되풀이하고. 고스란히 하루를 공쳐버린 그날, 취재팀의 분노와 속앓이는 엄청났다. 갑자기 ‘빵구’난 지면을 땜질하느라 그날 밤 흘린 식은땀을 생각하면…. 최근 영화 ‘파랑주의보’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들은 그녀의 때늦은 해명.“감정이 제대로 안 잡히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코디네이터도 옆에 못오게 해요, 제가. 앞뒤 따져 보질 않거든요. 변명 같지만 증거도 있어요. 메이크업 손질도 못하게 까탈을 부려서 눈썹 한쪽이 바보처럼 지워진 채 눈물장면을 찍기 일쑤예요. 잘 한번 보세요.” 배시시 눈웃음으로 덧붙인 멘트.“We 독자 여러분, 그땐 진짜진짜 죄송했습니다∼” 이쯤해서 취재팀은 귀여운 그녀와 그만 화해하기로 했다. # ‘인간성’ 들통나는 ‘We’ 밀착인터뷰 사진촬영에 인터뷰까지 2시간여의 만남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품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터뷰의 리듬을 타지 못해 난감한 스타가 없을 리 없다. 누구 하면 세상이 다 아는 한 남자 스타.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다시 기자에게 돌리는 괴팍한 버릇으로, 취재팀이 인터뷰 백지화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 박솔미 “제 내숭에 속으셨죠? 호호” 새침떼기 같은 외모의 편견을 순식간에 확 걷어내주는 스타를 대면하는 건 언제나 신선한 ‘충격’. 한가인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매너를 보인 스타로는 박솔미를 잊을 수 없다. 잠자리 날개처럼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내숭’을 떨었으나, 인터뷰 자리에선 싹 얼굴을 바꿨다.“(첫 영화 ‘바람의 전설’의)시나리오를 우연히 보고 맘에 들어 제작사로 쫓아가 막 졸랐다.”며 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한 멘트를 날리던 스타였다. 공인으로서 박수 받을 만하다 싶게 ‘친절한 그녀’들도 많았다. 김정은, 엄정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근사근함으로 기자들에게 ‘표’를 많이 챙기기로 소문난 얼굴들. # ‘보고 싶은 얼굴´ 1호 한가인 ‘보고 싶은 얼굴’이란 타이틀 아래 첫 인터뷰 대상으로 잡은 얼굴이 한가인.‘연정훈의 여자’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때. 그러니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개봉을 앞둔 2004년 1월.CF 2편, 드라마 2편쯤 조연으로 출연한 게 이력의 전부였던 당시, 그녀는 기자에게 유달리 강력히 스타예감을 안겼던 얼굴로 기억이 생생하다.“얼굴에 칼(?) 한번 대본 적 없는 100% 자연미인”이라며 집게 손가락으로 심하게 돼지코를 만들어 보이던 장난기 많은 스물두살 ‘꽃띠’였다. # 하늘에서 울리는 피아노선율, 이은주 두고두고 가슴이 짠한 만남이 있었으니, 고 이은주이다.‘안녕, 유에프오’를 개봉시킬 즈음 만났던 그녀. 배우답지 않게 유난히 낯을 많이 가리던 ‘심사숙고형’.“온갖 잡생각이 많은 A형이며, 배우가 안됐으면 피아니스트로 살았을 것”이라고 조용조용 말하던 그녀가 지금 우리곁에 있다면? 그녀의 희망대로 이제쯤 피아노 음반을 한 장쯤 내서 또 한번 지면을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 인어아가씨, 오후의 반란? 그러고 보면 ‘인어아가씨’ 장서희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첫 영화 ‘귀신이 산다’의 개봉 즈음. 본사로 찾아온 그녀는 깍쟁이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사려깊은 맏딸 같은 여유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오후 3시쯤. 한참 마감중이던 편집국이 그녀의 ‘깜짝 순회공연’으로 한바탕 시끌시끌. 총각, 유부남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카메라폰을 눌러댄 즐거운 어느 오후였다. # 김래원, 소크라테스 다 됐네~ ‘We’ 스타 인터뷰난에 두 번이나 밥상을 받은 운좋은 스타도 몇 있다. 김래원. 로맨틱 코미디 ‘어린 신부’때 어눌해서 답답했던 그가 얼마나 빠르게 성숙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몇달 전 원톱 주연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앞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 왈,“웅변학원을 다녔나? 화술 많이 늘었네∼” # ‘귀하신 몸´을 낚아라! 정상에 올라갈수록 인터뷰가 까다롭게 성사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2,3주일 전 심지어는 몇달 전에 미리 인터뷰를 예약해야 하는 ‘귀하신 몸’들도 많다. 달리는 밴에서 새우잠을 자는 톱스타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인터뷰 짬을 낼 수야 없는 일. 배우라면 새 영화 개봉을 앞뒀거나, 가수라면 새 음반을 냈을 때 몸이 쪼개져라 정신없이 홍보작업에 매달린다. 그럴 때 잽싸게 그들을 낚아채(?) 커버스토리로 앉히는 게 취재팀의 역할. 촬영은 본사 5층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조막만한 얼굴을 다 가릴 만큼 큰 선글라스, 헐렁한 추리닝이나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들의 변신은 10여분이면 끝난다. 피곤에 절어 눈동자가 풀렸다 싶지만, 잠자리 날개 옷만 갈아입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낯빛이 달라진다. 그들에겐 카메라 앵글이 다시 없는 ‘원기소’. 사진에 애착이 유별난 여배우라면 20∼30분의 촬영에 옷을 두어번쯤 바꿔 입는 것도 예사이다. 인터뷰 스타일도 언변도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공통분모를 나누는 사실 하나. 초보 배우든, 최고의 톱스타든 인터뷰장을 떠날 때 남기는 한마디는 매한가지,“자∼알 좀 써주세요, 기자님∼” 이제 결론. 그들을 긴장시키는 가장 힘센 사람은 언제나 독자 여러분이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주혁 “조금씩 나를 보여줄게요”

    김주혁 “조금씩 나를 보여줄게요”

    2005년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배우들이 몇 있다. 김주혁(33)이 그 한 사람이다.TV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띄워올렸고, 주연한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로는 전국관객 240만명을 끌어모았다. 진중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뭔가 결정적 2%가 부족한 듯했던 그가 이로써 헛헛했던 그 공백을 메워버린 거다. 누가 뭐래도 이제 그의 좌표는 ‘톱’이다. 내친 걸음. 새 영화 ‘청연’(제작 코리아픽쳐스)을 29일 또 개봉시킨다. 기자시사회가 있었던 21일 저녁, 온통 까만 정장에 청록색 넥타이가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그를 따로 만났다. ▶3년여만에 어렵게 개봉되는 영화이다. 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 -CG작업이 늦어져 나도 오늘에야 처음 완성본을 봤다. 기대했던 만큼의 큰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 연기장면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짜증이 난다.‘저건 오버했고, 저건 약했고’ 그런 욕심 때문에 사실 영화가 제대로 안 보였다. ▶오래 찍은 작품이라 배우들이 기다리느라 힘들었을 법하다. -그건 진영이(여주인공 장진영)한테 해당되는 얘기이다. 나는 그동안 부지런히 딴 작품들을 찍었다. 크랭크인이 지연되면서 그 사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광식이 동생 광태’,‘프라하의 연인’까지. 한시도 안 놀았다.(웃음) ▶‘청연’은 여주인공에게 무게중심이 쏠린 영화이다. 지금 출연 제의를 받았어도 수락했을까. -맞다, 이 작품은 진영이 영화이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도 아니었다.(당황스러울 만큼 솔직한 대답이 많았다.)상대 여배우가 장진영, 순제작비 90억원이 넘는 대작. 블록버스터급 규모에 압도됐던 것도 사실이고. 지금 새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면, 글쎄…. 솔직히 그때보단 이것저것 훨씬 많이 주판알을 튕기고 생각도 복잡할 것이다. ▶극중 역할은 최초의 민간인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연인, 그러니까 실존하지 않은 가공의 인물이다. -가공된 캐릭터여서 오히려 연기하기가 편했다. 실존인물이었다면 그 인물을 텍스트 삼아 분석도 더 많이 해야 했을텐데 난 한가지만 생각하면 됐다. 내 역할은 진영이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생각. ▶장진영과의 호흡이 잘 맞기로 스태프들 사이에 소문이 나 있던데. -‘싱글즈’를 함께 찍기도 한데다 동갑내기라 더 빨리 편해졌다. 진영이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한 영화이다. 그 친구, 얼마나 이 작품에 빠져 살았는지 대본을 읽을 때마다 울었다. 누구보다 진영이를 위해 이 영화가 잘 됐으면 싶다. ▶2006년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단시간에 확 변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하기보다는 이것과 저것의 교집합을 통해 조금씩 새로운 김주혁을 드러내고 싶다. 정상에 올랐다는 생각은 더더구나 안 하려 노력한다. 지금은 튼튼히 기반을 닦을 시간이다. 그래야 무너지더라도 살살 무너질 테니까.(웃음) 차기작은 결정하지 못했다.“멜로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그냥 그 자체로 멋있는 남자 캐릭터라면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김주혁이 아니면 안 되는 영화라야 할 것”이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정감록’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주제를 40개 정도로 나눠 일년 가까이 연재를 해왔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예언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들이다. 그 중엔 그냥 버려두기 아까운 것이 꽤 많아 몇 가지를 간추려 보았다. 특히 암울했던 일제시대엔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염원이 간절해서인지 각종 예언과 관련된 일화가 많았다. 또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동학과 관련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예언에서 찾은 조선독립의 희망 1920년대에는 천도교가 예언과 관련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천도교는 동학의 후신이라 이상세계의 실현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했다. 당시 교단 지도부는 재정에 충실을 기하려고 성미(誠米) 적립운동을 펼쳤는데, 성미운동에서도 예언이 등장했다. 대강 이런 식이었다. 천도교 신도는 성심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끼니 때마다 가족 수만큼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교단에 바쳐야 된다고 했다. 하늘은 성미가 많고 적음에 따라 신도들의 성심을 상중하로 판단해 장부에 기재하므로, 성심이 깊으면 복을 많이 받지만 적거나 없으면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교단에 따르면, 교조 최제우는 동학이 창건된 지 61주년째 되는 1920년 한국에 갱생한다 했다. 세상에 다시 내려온 최제우는 오만 년 무극대도(無極大道)를 펼쳐 전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연맹을 대신해 세계정부를 세운다 했다.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예언이었다. 기독교의 재림예수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천도교 신도들은 교단의 가르침을 성심껏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했다. 그들 각자가 바치는 정성은 하늘을 감복시켜, 성미를 많이 바친 이는 새 세상에서 고위관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본인은 물론, 자손들까지도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르침은 통했다.1920년경 천도교 측이 거둔 성미 수입은 당시 화폐로 수십만 원이나 되었다. 참고로, 일제말기 초등학교 교원의 초임은 45원에 불과했다. 천도교의 성미운동을 식민지 당국은 사기적인 약탈행위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성미는 물론 천도교단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상당부분은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투입되었다.1919년의 3·1운동 때도 천도교 측은 운동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했다. 그 뒤에도 천도교 측은 ‘개벽’과 같이 선진적인 계몽잡지를 발간했고 농촌운동을 일으켰다. 기꺼이 성미를 적립했던 신도들도 마음속으로 조선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심지어 천도교의 곁가지인 무극대도교나 상제교 측도 그러했다. 무극대도교는 일제의 보안법을 자주 위반한 것으로 유명했다. 상제교도 교주 김연국이 상제로부터 홍서(紅書)를 받았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또 다른 일파인 수운교도 교조 최제우를 부처의 후신으로 보았다. 이들 교단은 여러 예언을 동원해 곧 지상천국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지상천국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독립을 기본전제로 했다. 일제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신종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감언이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상 그것은 단순한 감언이설이 아니었다.“이 교단”은 혁명 즉, 정권창출에 성공할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배출하게 되며,“이 교”에 입교해 신앙 활동을 잘 하면 생활이 안정되고 새로운 정치지배세력의 일원이 된다는 확신이 뚜렷했다. 이미 언급한 천도교 등 여러 신종교들을 비롯해 보천교, 금강도 및 청림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기존 예언서인 ‘정감록’을 중시했고, 거기에 자기네 나름으로 새 예언을 덧붙였다. 심지어 전혀 이름조차 없는 소규모 단체들도 ‘정감록’에 기대어 독립을 점쳤다.1931년 3월31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경찰서 고등계는 경북 상주와 문경 등지에 사는 평범한 남녀 주민 4명을 보안법 위반자로 검거했다. 당시 40∼50대 나이로 장년층에 속했던 이들은 조선독립을 목표로 비밀결사를 조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들은 ‘정감록’의 한 구절,“땅값이 똥값이 되며 천 마리 말이 소가죽을 입는다.(土價如糞 馬千牛服)”라는 대목을 장차 반드시 일어날 미래의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해석은 특이했다. 장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0년간 지속된다고 보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멸망하고 조선독립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된다 했다. 우연한 일이지만 이 예언은 거의 들어맞았다.1939년 제2차대전이 터졌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일본은 연합국 측에 패전해 무조건 항복했으며, 마침내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런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은 ‘정감록’ 예언을 따라 십승지를 찾아갔다. 그들은 경북 상주군 화북면 중대리에 있는 우복동에 주목했다. 거기 피난처를 정한 다음, 그들은 조선독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1928년 5월, 우복동에서 결사를 맺고 사찰을 지어 승려로 가장했다. 이웃한 지역사회에서는 그들의 취지에 공감해 사찰건립기금을 낸 사람이 20명가량이나 되었다. 우복동의 ‘선민’들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진인 정씨의 출현을 기다리며, 그 때 긴요하게 쓰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종교 교육활동에 몰두했다 한다. 사실 19세기 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예언이 난무했다. 그 중엔 ‘정감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 예언도 많았다.1933년 8월21일, 충청북도 영동 출신의 박모라는 사람은 그동안 누구도 풀이하지 못한 예언시를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그 일부가 우연히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문제의 예언시는 첫 구절이 이러했다.“봄날 나무에서 원숭이가 우니 귀신도 알지 못한다.”(猿啼春樹鬼不知)는 것이다. 박 도사는 여기 나오는 원숭이(猿)를 임신년 즉 1932년으로 간주했고, 그 해 3월 만주국이 창건될 것을 예견한 시라고 주장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비바람이 치는 날 닭이 울 때”(一天風雨鷄鳴時)라 했다. 박 씨는 닭이 울 때(鷄鳴時)를 계유년(1933)으로 상정했다. 그 해에 만주국의 주권을 둘러싸고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예견했다. 회의에서 일본이 만주를 불법 점령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내다보았다. 엄밀한 의미로, 이것은 틀린 해석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만주국의 성립은 장차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리란 예고편이었다. 그 전쟁이 확대되어 마침내 1939년, 세계 제2차대전으로 번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박씨의 예언 풀이는 제법 타당한 점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예언시의 마지막 부분은 “만국이 진을 이루고 개가 울 때” (萬國成陳犬吠時)란 구절이었다. 박씨는 이 구절에 대해,“개가 울 때”(犬吠時)는 갑술년(1934)이며 만주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계전쟁이 유발되고 악성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대로 1934년에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일본의 패망을 예언한 대본교(大本敎) 같은 신종교도 있었다. 그 교주 왕인은 1945년에 “국체변혁”(國體變革), 즉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내놓았다. 그의 위험한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식민지 당국은 대본교의 교당을 헐어버렸다. 왕인 등 교단 지도부도 몽땅 체포했다. 본래 왕인이란 사람은 농부였다. 그런데 예언능력이 탁월해 신종교의 교주가 된 것이다. 그는 교당의 터를 잡을 때 여기를 파면 반석같이 큰 바위가 나오리라 예언했다. 과연 그 말 대로였다. 세상 사람들은 왕인이 땅속까지 꿰뚫어보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할 만큼 형안을 가졌으면서도, 자기 교당이 허물어질 줄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며 비웃었다. 중요한 사실은 평범한 개인이든, 크고 작은 신종교 단체든 일제시기 내내 많은 한국인들이 늘 조선독립을 점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대부분 ‘정감록’을 토대로 했다.‘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弓弓乙乙’ 담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정감록’에 대해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동학경전을 읽어보면 그는 정감록을 믿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믿는 것 같다. 그가 “기이한 동국 참서”, 즉 ‘정감록’을 손에 쥐고 들려준 가르침을 좀 풀어보면 이렇다. 과거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利在松松 이여송 형제가 도움이 됐다)이라 하였고, 가산 정주 서적(西賊 홍경래 난)때는 이재가가(利在家家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라고 ‘정감록’ 등에 기록돼 있지. 다 맞는 말이었네. 그런 선례를 본받아 우리의 미래도 한번 설계해 보세. 앞으로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정감록’에 나오는 구절이네만 이재궁궁(利在弓弓 궁궁이 유리하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봐야 하네. 매관매직을 일삼는 세도가들도 그 마음은 오직 궁궁에 있는 듯하고, 돈 많은 부자들도 궁궁만 찾고 있네. 거지들도 궁궁, 풍수에 미친 사람들도 궁궁촌을 찾아 더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다네. 더러는 서학(西學 천주교)에 입교해 그것이 궁궁인 줄로 믿고들 있지. 세상 사람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이 몽땅 궁궁에 관한 것뿐이네. 그러나 제 몸을 닦고, 집안일을 바로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 강산을 찾아가면 뭐하나. 경박한 세상 사람들 같으니! 다들 이익이 송송(松松)이니 가가(家家)에 있다고 한 말뜻은 겨우 알아낸 듯하지만 정작 궁궁이 무엇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군. 최제우는 자신이 발견해낸 종교적 진리가 바로 궁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무극대도”라 불렀고, 앞으로 5만년간의 태평시절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감록’에 적힌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구절에 모든 진리가 압축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에 입각해 그는 궁을부(弓乙符)를 만들었다. 이 부적을 몸에 붙이면 상처가 생기지 않고, 이것을 불살라 먹으면 만병이 사라진다고 최제우는 가르쳤다. 그러다 고종1년(1864)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동학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던 갑오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군들의 깃발에는 ‘오만년수운대의´(五萬年水雲大義)란 글귀가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수운, 즉 최제우가 설파한 5만년 이상세계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요컨대 궁을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겠단 것이었다. 고종30년(1894)에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을 전후해 민간에 여러가지 노래가 유행했다. 단순한 노랫가락이 아니라 요참(謠讖), 즉 노래형태를 빈 예언이었다. 더러는 일제시대까지도 남아 인구에 회자되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甲午歲 甲午歲 乙未 乙未 丙申되면 못 간다)” 기왕 일을 벌이려거든 갑오년(1894)에 서울까지 밀고 올라가서 일을 마무리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을미년이나 병신년까지 지연되면 실패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 노래는 갑오 동학농민운동 당시 김개남 등 급진파 측에서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뒤늦은 후회를 예언의 형태로 담아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동학농민군이 서둘러 서울로 진격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원 방면을 공략하다 뜻밖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운봉 아전 박봉양이 이끈 반항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저항은 요참에도 담겨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아랫녘 새야, 윗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하루박(하눌타리), 후-여!” 전라도 고부 출신 녹두장군 전봉준은 ‘하루박´으로 표현되는 박봉양에게 밀린다는 말이다. 참시에서 저항세력을 하눌타리 또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박씨라고 일컬은 점은 재미있다. 이런 비유로 볼 때 노래를 만든 이나 부른 이는 농민군 편이었다. 노랫말에 보이는 “후-여”는 새 쫓을 때 내는 소리다. 녹두새 전봉준에게 미리 경고해 농민군이 남원쪽으로 움직이지 말게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느껴진다. 알다시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운동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전봉준과 김개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수많은 농민군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도 물론이다. 이런 동학농민군들의 비원을 담은 노래는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란 노래였다. 전봉준을 녹두꽃에 비유해 그의 죽음이 곧 민중의 비극이란 것이다. 그밖에 “솔잎과 댓잎이 파르라니 봄인 줄 알고 찾아 왔는데, 흰눈이 펄펄 흩날리니 송죽이 나를 속였었구나.”란 노래도 널리 유행했다. 솔잎과 댓잎만 보고 겨울을 봄으로 착각했다는 가사는, 농학농민군이 시세판단을 잘못해 너무 일찍 군대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농민군의 준비부족을 한탄한 것이다. 이들 가요는 내용을 가지고 보면 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그 편에서 만들어 부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노래를 채집한 이은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제시대 민중은 이 노래들을 후일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노래가 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유행한 예언이었다고 믿었다. 민중은 동학농민운동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에게 특별한 예지력이 있다고도 생각했다.1894년 음력 4월경 전라감사 김문현은 농민군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전봉준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는 자객 2명을 밀파했다. 자객들은 담배장사로 변장해 전봉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신분이 탄로되어 붙들리고 말았다. 전봉준은 점술에 밝았기 때문이다. 점괘를 던져본 그는 자객이 온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한다. 믿고 따를 지도자라면 당연히 예언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민중은 생각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국가기관이나 공신력을 자랑하는 주요연구소에선 다음해의 경제성장을 전망하곤 한다. 이런 예언, 예시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필수조건인 모양이다.
  • 명함에 ‘영화·드라마 작가’

    #장면 하나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신정구 작가. 오는 22일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작업의 정석’이 개봉한다.‘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B형 남자친구’도 신 작가도 작품이다.#장면 둘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해진 김은숙 작가. 그녀의 시나리오 ‘백만장자의 첫 사랑’이 영화로 맹렬히 촬영되고 있다. 현빈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와 드라마 작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드라마 작가들이 빚어낸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예전에도 지상학 작가가 스크린과 브라운관 양쪽에서 솜씨를 뽐냈고, 김수현 작가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3부’,‘어미’ 등을 집필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유례없는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정옥(아일랜드-여고괴담), 고은님(환생-번지점프를 하다), 조명주(접속-가을소나기), 박계옥(건빵선생과 별사탕-행복한 장의사), 설준석(불량주부-잠복근무), 윤학열(LA아리랑-오 해피데이), 김성덕(남자셋 여자 셋-은장도) 등등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렇듯 영역 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 판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반면, 양쪽 모두 수요에 비해 역량 있는 작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심 영 KM컬쳐 이사는 “드라마의 질적 수준이 영화 못지않게 향상되며 영화 쪽에서 드라마 작가의 역량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면서 “특히 로맨틱 멜로나 코미디에서 보여주는 순발력을 높이 사고 있는 편”이라고 했다.또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어 윈-윈 현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작가들로서는 사실 영화에는 경제적 매력이 없다.1년 넘는 시간을 쏟지만 편당 최대 5000만 원 이상 받기 힘들다. 반면 드라마는 A급 작가라면 회당 1000만∼1500만원을 거머쥘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영화에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치기를 해야 하는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문장력을 높이고 시간을 들여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도 하다. 브라운관 작가의 활약은 영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김은숙 작가는 한 때 연극 대본을 써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또 현재 MBC 드라마 ‘결혼합시다’를 집필하고 있는 예랑 작가는 최근 에세이와 소설이 결합된 이색 형식의 ‘키다리아저씨’(이미지박스 펴냄)라는 책을 내놨다.영화 ‘아찌 아빠’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던 예랑 작가는 “어떤 분야의 작가이건 순수문학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한다.”면서 “나도 드라마 대본을 많이 썼지만 앞으로는 수필, 시, 영화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파랑주의보’로 스크린 데뷔 송혜교

    ‘파랑주의보’로 스크린 데뷔 송혜교

    영화 ‘파랑주의보’(제작 아이필름)의 시사회장을 나서며 기자는 송혜교(23)에 대한 몇가지 편견을 버렸다.‘순풍 산부인과’(TV시트콤)시절의 젖살을 좀체 가셔내지 못할 만년 소녀, 청년과 성년의 중간지점에서 결정적 도약의 뒷심이 달릴 듯한 청춘스타.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22일 개봉하는 전윤수 감독의 청춘멜로 ‘파랑주의보’는 온전히 송혜교의 영화였다. 이루지 못해 가슴 저린 첫사랑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스크린 데뷔작에서 그녀는 교복 입은 여고생이 됐다. 출세작 ‘가을동화’(2000년)의 정서를 재탕하지 않겠냐던 충무로의 입방아를 잠재워버렸다.‘가을동화’의 감수성을 빌려오긴 했으되 영화에는 새로운 송혜교가 보였다. 미성숙의 풋내를 털어 여인의 향기를 피웠고, 첫나들이한 스크린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여유가 빛났다. 지난 14일 오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얼굴부기가 덜 빠진 아침 인터뷰를 여배우들이 싫어하는데…”라는 기자의 인사말을 털털한 웃음으로 받아쳤다.“부어도 그냥 (인터뷰)해요. 나중에 사진 보고서 또 후회하겠지만.” 그런 그녀라서 현장스태프들은 ‘톱스타 티를 내지 않는 스타’라 좋게 말하는 모양이다. #‘송혜교답게’ 스크린 착륙 연예계 데뷔 10년만에야 첫 영화를 찍었다.TV드라마 한편만 띄우면 총알같이 스크린으로 달려나오는 연예계 생리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가을동화’ 이후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어요. 더러 대작도 있었고요. 하지만 제 스스로가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어설픈 출발은 안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어요.” 극중 ‘수은’은 여고 2년생. 같은 반 남자친구(차태현)와 풋풋한 첫사랑을 나누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죽음을 앞두고 최루성 순애보를 엮는 영화를 송혜교는 “안전 카드”라는 솔직한 표현을 썼다.“‘또 저런 모습이야?’라는 소리도 듣겠지만, 첫 영화로 모험하긴 싫었다.”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가장 송혜교다운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멋몰라서 즐거웠던 스크린 나들이 ‘파랑주의보’는 즐거운 경험이었다.“카메라 앞에 서면 즐기자는 생각만 했어요. 태현 오빠랑 신나게 놀면서 찍으면 된다, 그렇게 최면을 걸었죠.” 청춘멜로에 있어선 ‘경지’에 오른 차태현을 상대배우로 만난 건 행운이라고 했다.“당대 최고인 여배우와 작업하긴 진짜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딜가나 나를 치켜세우며 이끌어주는 태현 오빠가 정말 고마웠다.”는 요지의 말을 몇번쯤 보탰다. 그녀의 안티팬 중에는 이런 삐딱한 시선이 있을지 모른다.‘가을동화’ 한편으로 한류스타에 등극했으니 인기거품이 적지 않다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같다고 에둘러 물었다.“그렇게 비춰질 뿐, 상처받은 적이 많았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순풍 산부인과’에서 ‘가을동화’로 넘어갈 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시트콤에서 갑자기 정극의 주인공에 캐스팅됐으니 주위에서 얼마나 수군댔겠어요? 두고보자 싶었죠. 근데 마음만큼 쉽진 않더라고요.‘가을동화’ 4,5회분 찍을 때까진 감독님(윤석호 PD)한테서 캐스팅을 바꾸고 싶다는 절망적인 말까지 들었으니까.” “이를 앙다물었고,10회 촬영분에서야 감독한테 ‘됐다. 이제 혜교가 안 보이고 은서(주인공)가 보인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연기생활에서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또박또박 되짚었다.“윤 감독님께 첫 영화를 꼭 보여주고 싶어 시사회 초청 문자를 날렸다.”는 그녀에겐 확실히 성숙의 여유가 넘쳐났다. #“이제 연기가 보이네요.” “감정연기를 할 땐 밥도 굶고 코디네이터조차 옆에 못 오게 할 정도로 여전히 예민하다.”면서도 “연기 탄력을 받고 있는 것같다.”는 자신에 찬 말을 했다. 가속이 붙을 때 영화 두세편쯤 연달아 찍겠다는 생각이다. 연기자로서의 오지랖이 부쩍부쩍 넓어지는 걸 스스로도 느낀단다. “‘올인’때까진 촬영장에서 한마디도 못했어요. 뭐가 뭔지 모르고 연기한 거죠.‘햇빛 쏟아지다’‘풀하우스’때 비로소 대본이 제대로 보였고요. 이번 영화에선 시나리오에 제 의견이 반영되기도 했어요.” 남자친구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수호야, 수호야…” 이름 부르기를 반복하는 쓸쓸한 장면은 그녀의 아이디어이다. 요즘은 와인 마시는 재미에 푹 빠졌다.“‘가을동화’찍을 때는 술을 입에도 못댔는데, 이젠 와인 맛을 즐길 줄 안다.”는 그녀는 “후속작을 결정하진 못했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일 거란 장담은 할 수 있다.”고 했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이런전공] 디지털방송

    고도 정보화사회로 사회 환경이 변화하면서 미디어 환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매스미디어의 영항력도 예전에 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커지고 있다. 디지털 방송 전공은 방송·영상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교과과정을 개설, 이론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실습 교육에 중점을 둬 방송 및 영상산업 분야에 진출할 때 쉽게 적응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요 교과목은 실습 위주로 구성돼 있다. 기초 이론과목으로는 취재보도론, 지역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영어, 연출론, 영상미학, 뉴미디어론, 방송윤리 법제 등이 있다. 실습 과목으로는 영상물을 만들 때 시각적으로 가장 좋은 표현을 만들어내기 위해 주어진 과제를 해석, 계획, 제작하는 프로덕션 디자인, 프로그램 기획과 대본, 사운드 프로덕션, 연기실습, 스튜디오 제작, 앵커링&리포팅, 방송편성론, 방송특강, 영상비즈니스, 방송비평 등이 개설돼 있다. 졸업 후에는 방송연출, 방송기자 및 아나운서, 리포터, 카메라맨,CF감독, 비디오 저널리스트, 뮤직비디오 감독 등으로 진출할 수 있다. 디지털방송 전공은 동양대(경북 영주)의 정보통신공학부와 동서대(부산)의 디지털영상매스컴학부 등 두 곳에 개설돼 있다. 비슷한 전공으로는 명지대(서울) 디지털미디어학과와 사회과학계열, 명신대(전남 순천) 디지털미디어학과의 디지털미디어 전공, 위덕대(경북 경주) 정보통신공학부의 디지털 방송통신 전공, 동서대 디지털콘텐츠학부의 디지털 프로덕션 전공이 있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안타까운 생명포기 2제] PD, 영화제작비 모자라…

    KBS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일부 제작비를 지원받아 영화 데뷔를 준비하던 KBS 김모(33) PD의 자살 기도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17일 유서로 추정되는 김 PD의 글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그동안 영화제작을 총괄했던 KBS 영화만화팀과 제작비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사실이 드러나 자살 기도에 대한 책임 소재 공방도 일어날 조짐이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에 대한 열정을 밝혔던 김 PD는 이 글에서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고 미안함의 불씨가 나를 죽이고 있다.”면서 “나를 화장하게 되면 대본 10부를 넣어달라.”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당초 계획된 예산은 10억원 정도였고, 나머지는 외부 투자로 충당해야 했다. 하지만 펀딩은 2억원 정도에 그쳤고, 이에 따라 제작비를 6억원 가량으로 축소하려는 KBS측과 불화를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분할지급 탓에 지금까지 김 PD에게 건네진 영진위 등의 지원금은 8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영화만화팀측은 “자체 지원금도 1억원을 늘렸고, 외부 투자 유치에도 함께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아 제작 규모를 줄여야 했다.”면서 “KBS가 자살로 내몰았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해명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10년만에 다시 주인공 맡은 양희경

    10년만에 다시 주인공 맡은 양희경

    남녀 관계에만 천생연분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배우와 작품(배역) 사이에도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찰떡궁합이 있다. 배우 양희경(51)에게는 모노극 ‘늙은 창녀의 노래’가 그런 작품이다.1995년 초연에서 서울에서만 7개월, 그리고 지방을 1년간 돌며 장기 공연할 정도로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고, 그해 서울연극제 연기상까지 안겨준 작품이니 어찌 안그렇겠는가. 그런데도 초연 이후 다시 볼 기회가 없었던 이 공연이 10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PMC프로덕션이 연중 기획한 ‘여배우 시리즈’의 하나로 18일 서울 우림청담시어터에서 개막한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프러포즈는 많았는데 모두 거절했어요. 초연 때 워낙 진이 빠지도록 한 데다 섣불리 했다간 금방 타성에 젖을까봐 일부러 피했지요. 지난해부터 ‘다시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는데 올해가 마침 딱 10년이 되는 해더라고요.” 초연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가 워낙 강해서였는지 다른 여배우들도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방 어디에선가 한번 무대에 올렸는데 잘 안됐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고 했다. ‘늙은 창녀의 노래’는 마흔 한살의 주인공이 처음 만난 ‘손님’에게 자신의 인생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1인극이다. 소설가 송기원이 뒷골목 기행을 하면서 목포의 거리에서 실제로 만났던 한 직업여성을 모델로 썼다.“후배의 권유로 처음 작품을 읽었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뒹굴뒹굴 누워서 읽다가 벌떡 일어났지요.‘언젠가 내가 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꼭 돈 땜시 그란달 것도 없이 손님들이 모다 남 같지 않어서 안즉까장 여그를 못 떠나라우. 썩은 몸뚱어리도 좋다고 탐허는 손님들이 인자는 참말로 살붙이 같어라우.’ 꽃다운 스무살 나이에 꾐에 빠져 창녀촌에 발을 디뎠던 ‘늙은 창녀’는 20년 세월의 회한이나 원망 대신 자신을 찾아오는 외로운 남자들을 따뜻하게 껴안으며 위로한다. 양희경은 이런 그녀를 두고 “도인이 따로 없다.”고 표현했다.“제주도에서 난생 처음 상경한 관객, 지방에서 올라와 막차 타고 내려가는 관객, 분장실에 찾아와 손을 잡고 우는 관객들로 공연장은 늘 북새통이었다.”고 회상했다. 오랜만에 ‘늙은 창녀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심정은 어떨까.“10년 만에 대본을 보는데도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못해 연출가에게 참 많이 혼났었는데…(웃음). 예전에 비해 체력은 달리지만 감정의 결이나 깊이를 표현하는 건 아무래도 낫겠지요.” “‘늙은 창녀의 노래’는 지치고, 위로받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한 연극”이라는 그는 “이전 공연에선 내가 주인공의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었는데 이번엔 나도 그녀의 품에 안겨 위로받고 싶다.”고 말했다.12월31일까지.(02)569-0696.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gpod@seoul.co.kr
  • M-TV ‘달콤한 스파이’로 안방 돌아온 최불암씨

    M-TV ‘달콤한 스파이’로 안방 돌아온 최불암씨

    “남자들이야 워낙 가을을 좋아하지. 노란 낙엽이 떨어지는 길을 걸어왔더니 기분이 다르던데…. 우리야 떨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거지….” 황혼에 접어들고 있는 연기자의 첫 마디다. 전날 무대에서 23년 동안 어머니로 모셨던 분의 빈소에 다녀왔던 탓이리라. 흐르는 세월을 유난히 타고 있는 것 같았다.“정애란 선생님도 무대 속에서 세상을 뜨셨어야 해.‘전원일기’가 너무 일찍 끝났어.”라는 목소리에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래도 영정 사진을 앞머리를 내린, 예쁜 사진으로 쓰셨더라고. 역시 배우는 배우야 했지. 허허.” 영원한 ‘최 반장’이자 ‘양촌리 김 회장’, 우리 시대의 아버지 최불암(65)을 11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최근 막 올린 MBC 월화미니시리즈 ‘달콤한 스파이’에서 한물 간 의리파 건달 두목 최범구 역으로 안방에 돌아왔다. 그것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깨는’ 모습을 연기하며. 자장면을 한 입에 털어넣고, 나무젓가락으로 이를 쑤시는 것은 예사다. 다음주에는 벌거벗고 때를 미는 사우나 신에다가 방귀를 뀌어 찜질방에서 손님들이 도망가는 장면도 나온다고 한다. “연출자가 원하니까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너무 힘들어. 그리고 망신이지 뭐.”라면서 “업보가 돌아오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수사반장 할 때 악역을 자주한 후배들이 ‘야, 네 아버지 도둑으로 나오더라.’는 얘기 듣고 상처 받았다고 했거든. 허허허.” 철저한 캐릭터 연구에 대본 이상으로 표현해 내는 것으로 유명한 그다. 토씨 하나 틀리는 것을 싫어했던 김수현 작가와 “나는 인형이 아니다.”며 다투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이를 먹으니 귀가 순해져서 주문대로 따라가게 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연기를 하지 못하면 갈증이 나는 게 연기자의 속성이야. 지금도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면 가슴이 ‘팡팡팡’ 뛰거든.” 이번에는 어떤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설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월 속에 연기 풍토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절감한다고 했다. 그는 “인기 관리나 돈벌이를 위해서 연기해서는 안돼. 내가 서는 무대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해야지.”라면서 “요즘은 자기 모습 그대로 연기를 하는 경우도 많아. 몸짓 하나에, 대사 하나에 내가 아닌 캐릭터의 성격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해. 그게 연기하는 재미야.”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제작 풍토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드라마가 너무 말초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것 같아. 그런데 그건 아니야.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내고,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정말 아쉬워.” 후배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그이지만, 그런 여지가 없어 더욱 안타깝다고 했다.“요즘은 뭐 그렇게 붙어 다니는 사람이 많은지…. 한 장면이 끝나도 코디, 매니저 5∼6명이 둘러싸고 있어서 다가가기도 힘들어. 어쩌다 보면 내가 먼저 존댓말을 쓰기도 하지.”라며 혀를 찼다. “요즘 새삼 느끼는 게 뭔 줄 알아?한 시대가 가도, 또 다른 시대가 오는구나, 그래도 언제나 태양은 다시 떠오르는구나…. 그런 게 세상이지.”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떨어져 있는 여의도 길을 걸어가는 노배우의 뒷모습에서 무한한 애정이 느껴졌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 작품 출연이 나의 장밋빛 인생”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안방극장을 눈물로 물들이며 시청률 40%대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KBS 2TV 미니시리즈 ‘장밋빛 인생’(연출 김종창, 극본 문영남)의 제작·출연진이 마지막회가 방영된 1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종방기념 잔치를 열었다. 이날 자리는 화기애애함 속에 눈물이 곁들여졌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아쉬움 때문이었다. 주인공 ‘맹순이’역을 맡아 열연한 최진실은 “아직도 쫑파티라는 기분이 들지 않고, 대본을 들고 다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혼이라는 역경을 딛고 제2의 연기인생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이제 맹순이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며 눈물을 글썽였다.8월 첫 방송 이후 발랄한 기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억척스러운 아줌마 연기에 몰입해 갈채를 받았다. 평생 가족을 위해 몸바쳤으나 남편이 바람나고, 암까지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맹순이의 모습에 시청자들의 손수건은 마를 날이 없었다. 주제음악이 흐를 때마다 눈시울을 적신 최진실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비록 모자람이 있어도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고 전했다.또 “어렵게 드라마를 시작했고, 촬영을 하면서도 힘든 시간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감독님이나 작가님, 동료들이 많이 다독여줘 4개월 동안의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공을 돌렸다. 그는 대사량이 너무 많아 고시 공부하듯 대본을 익혔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았는데 놓친 부분이 많은 것 같다.”며 아쉬움도 드러냈다. 특히 암투병 생활에 대한 경험이 없어 상상으로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장밋빛 인생’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성별을 떠나 여러 세대에 걸쳐 100%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했다.또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 모습 등에서 맹순이의 얼굴을 찾아 연기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최진실이 꼽은 드라마 명장면은 자신이 나오는 장면이 아니었다. 남편 ‘반성문’(손현주)이 아내를 보내고 오열하는 장면을 최고로 꼽았다. 여자가 흘리는 눈물보다 남자가 진실되게 흘리는 눈물에 더 매력이 느껴졌다는 것. 앞으로 계획을 묻자 “오늘까지는 맹순이로 살고 싶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촬영기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지 못해 미안한 듯 “내일부터는 아이들과 책을 함께 읽는 등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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