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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소금으로 연명하던 국회 ‘단식 농성’ 형제복지원 생존자 병원이송

    물·소금으로 연명하던 국회 ‘단식 농성’ 형제복지원 생존자 병원이송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24시간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형제복지원 생존자 최승우(50)씨가 29일 병원에 이송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서울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최씨는 이날 낮 12시 30분쯤 건강 악화로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에 이송됐다. 최씨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건강이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4일째 물과 소금, 약간의 효소만으로 연명해 왔다. 최씨는 공권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조사와 보상안 등을 골자로 하는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며 지난 6일부터 이날까지 고공 단식농성을 이어왔다. 이 법안은 지난달 행정안전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됐지만,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가 남았다. 여야는 과거사법 위원회 조사위원 구성안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법 개정안에는 국회가 선출하는 8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모두 15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 총 9인(여·야 각 4인, 국회의장 1인 추천)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최씨의 농성을 계기로 여야 의원들이 함께 농성장을 찾으며 합의안 도출에 기대가 쏠리기도 했다. 한편, 이날 형제복지원 유가족들과 민주당 홍익표 의원 등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 의원들에 과거사법 처리를 촉구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1970년대 정부가 부랑인을 선도하겠다는 명목으로 고아와 장애인 등을 끌고 가 불법 감금하고 인권을 짓밟은 사건이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8회] “법관은 다 똑같은 법관”… ‘인사 불이익’ 반박한 前인사담당심의관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8회] “법관은 다 똑같은 법관”… ‘인사 불이익’ 반박한 前인사담당심의관

    ‘핵심 회원들이 주축이 된 인사모 발족하여 인권법과 무관한 사법제도 논의 시작 →사법행정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냄’, ‘핵심 그룹에 한정된 사고가 법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 ‘돌출행동으로 보수언론의 ‘법원 때리기’ 유발 우려’…. 2016년 3월 10일자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명의로 작성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 문건에 담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문제상황’들로 이런 내용들이 거론됐다. 국제인권법이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연구회에서, 특히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핵심 회원들을 중심으로 사법행정제도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거나 대법원과 반대되는 취지의 하급심 판결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이 담긴 문건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연구회 정상화 방안’ 가운데엔 특히 핵심 회원들에게 선발성 인사나 해외연수 등에서 불이익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있다. 법관 사회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에 대한 거리낌을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7회 재판에서는 지난 20일 증인으로 나왔던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판사가 두 번째로 법정에 출석했다.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1년씩 인사1·2심의관을 각각 지낸 노 판사는 당시 김연학 인사총괄심의관의 지시를 받아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 김 전 심의관은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노 판사는 전했다. ●前인사심의관 “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문건 실행가능성 염두 안 해” 지난 재판에서는 검찰의 주신문과 박 전 대법관 측의 반대신문이 있었고 이날 재판에서는 노 판사에 대한 고 전 대법관과 양 전 대법관 측의 반대신문이 이어졌다. 변호인들은 반대신문을 통해 노 판사가 작성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 보고서가 실제로 실행하려던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며 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사 불이익을 가하지도 않았다는 취지를 거듭 강조했다. 노 판사도 “(임 전 차장의) 정확한 지시내용은 저희가 모르지만 그 문건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심의관들이 이해한 바로는 실행가능 여부를 떠나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정리해 보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나열했을 뿐이라지만 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거나 인사모를 폐지하기 위한 방안들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보수 성향 언론사에 인사모가 과거 우리법연구회 핵심 멤버들이 주축이 된 모임이며 긴급조치 위반이나 병역법 위반 등의 사건에서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되는 튀는 판결을 주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 기사가 나오도록 하는 방안도 있었다.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언론 활용 방안’을 ‘일종의 제 살 도려내기로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다만 ‘명분의 제공 측면에서는 최선이나 법원 전체가 비난 받을 우려가 있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 약화 또는 폐지시키려던 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에 대해 노 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우리법연구회가 여러 문제가 있어 사실상 없어졌는데 인권법연구회 내 인사모란 형태로 우리법연구회의 명맥이 유지되는 것은 문제이고, 일반 판사들이 (우리법연구회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데 유지하는 건 기만적이다. 소수 의사에 의해 인권법연구회 의사가 좌우되는 것도 문제”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진술한 이유를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묻자 노 판사는 “그런 취지로 말했지만 기만적이란 표현은 과하다”면서 “ 후배들로부터 연구회 안에 그런 소모임을 만드는 것을 알았다면 가입을 안 했을 것이란 얘기도 들어서 그런 측면으로 말한 건데 표현이 과했다”고 답했다. 보고서에도 인권법연구회가 사법행정에 대한 논의나 의견개진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문제상황으로 꼽혀있었다. ●‘인사모 핵심회원에 불이익 부과’ 방안 기재… “실행 가능성 적었다” 노 판사가 작성한 이 보고서의 본문 마지막에 ‘핵심 회원에 불이익 부과’ 항목이 있었다. 노 판사는 이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이익을 주는 방안으로 선발성 인사나 해외연수에서 불리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 ‘다만 간접적 방법이고 우수자원 활용에 제약 초래 → 개별적이고 신중한 접근 필요’라는 지적이 보고서에 더해졌다. 역시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모든 아이디어 중 하나로 적은 것일 뿐이었다고 노 판사는 말했다. “인사심의관으로 재직하면서 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회원이라는 사실로 인사불이익을 주거나 해외연수, 파견 등에서 불이익을 부과한 적이 없다고 검찰에서 진술하셨죠?” (고 전 대법관 변호인) “네.” (노 판사) “증인은 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회원이라는 것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부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변호인) “물론입니다.” (노 판사) “구체적 실행방안에 대한 (실행) 검토 지시가 있었다면 나이브하게 적지 않고 인사불이익 부과방안은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을 것이죠?” (변호인)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 판사) 지난 재판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뤄진 ‘물의야기 법관’들에 대해 이날 변호인들은 특정 연구회 회원이거나 특정 성향을 지닌 판사라고 해서 분류한 것이 아니며 이들의 전보인사 내용도 인사 불이익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노 판사와의 증인신문을 통해 강조했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노 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대법원장의 인사권에는 어느 정도 재량이 있어 부정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 범위 안에서 법관에게 불이익한 인사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물의야기 법관을 선별해 이들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하는 게 원칙적으로 인사권의 합리적인 행사 범위에 속한다는 취지인 것인가“ 물었다. 노 판사는 “실무자로서 그렇게 이해하고 업무를 수행했다”고 답했다. 다만 노 판사는 “대법원의 사법행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는 검찰의 지적에 “그런 경우는 없는 걸로 안다”면서 “물의야기 법관은 실제 문제 행위가 있던 법관들로, 물의야기 법관이 된 한 판사의 경우도 단순히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 뿐 아니라 판사들의 집단행위를 시도한 것이 법관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게 당시 많은 사람의 의견이었고 그렇게 볼 여지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판사는 법정에서도 이 같은 진술이 맞다고 했다. ●”특정 연구회 소속, 특정 성향 법관이라 인사 불이익 준 일 없다“ 이어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대법원장이 법관들에 대해 전보인사를 하는 것이 헌법 106조 1항에 규정된 법관에 대한 ‘불리한 처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노 판사는 “개인적 의견이 그렇고 제가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근무하던 시점에 그와 같은 이해 아래 업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헌법 106조 1항은 ‘법관은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판단 근거를 묻자 노 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불리한 처분에 인사 불이익이 포함되는지는 과거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행정처에서도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다만 인사상 여러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 처분이 있었던 것은 수십년간의 현실적인 측면도 있어서 불리한 처분에 인사상 불이익이 포함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실무자가 이해해 왔고, 또 하나는 법관의 직은 직이나 보직, 근무지역과 상관 없이 모두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보인사에 있어 본인 희망과 달리 보직이나 임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헌법에서 말하는 불리한 처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변호인이 “헌법 조항에서 말하는 기타 불리한 처분이라는 게 정직, 감봉 등 징계에 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단지 희망임지에서 배제됐다는 것만으로 불리한 처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증인의 생각인 것 같네요”라고 확인하자 노 판사는 “객관적으로 법관의 직위에 불리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는 불리한 처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전보 인사 관점에서는 어느 지역, 어느 직위에 있든지 똑같은 법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다시 설명했다. ●”전보인사는 헌법상 ‘불리한 처분’ 아냐…대법원장 인사권 재량“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법관들 가운데 우선순위로 선호 법원으로 배치될 수 있었던 형평점수 상위권인 A그룹에서 갑자기 물의야기 법관인 G그룹으로 분류됐고, 일부 보류된 경우를 제외하고 물의야기 법관들에겐 희망하지 않은 격오지에 보내지거나 1순위 근무지를 배제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인사권자의 재량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관 인사에 근무평정을 반영하도록 한 만큼 대법원장의 재량에 따라 인사배치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언급도 보탰다. “(대법원장 인사권의) 재량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근무평정 결과가 기재돼 있다면 그런 것을 인사에서 고려하는 건 허용할 수 있다고 이해했다”는 얘기다. 특히 공교롭게도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한 법관들 가운데 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회원, 대법원의 정책이나 판결에 비판적인 판사들이 다수 눈에 띄었지만 노 판사는 근무평정이나 법원장의 평가 등에 따른 결과로, 행정처에서 성향을 문제삼아 인사상 조치를 한 일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행정처를 비판하는 법관들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지정해 인사조치를 검토하는 방안을 지시받았다”는 검찰의 전제가 잘못됐고, 그런 지시는 받은 적이 없다고도 했다. 이후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특저 법관을 인사조치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도 노 판사는 “근무기간 동안 그런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준 일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사법연수원 32기인 노 판사는 올해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보임된 동기 법관들과 달리 부장판사 직급을 받지 못했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이 사유를 묻자 “구체적으로 고지받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난해 대법원 징계절차에 회부돼 징계청구를 받지 않고 ‘불문’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 점을 인사에 있어서 대법원장께서 고려하신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노 판사는 지난해 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대응방안을 검토해 법관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대법원 징계위원회에 넘겨졌지만 ‘불문’으로 처분됐다. 노 판사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법관의 직이나 보직, 근무지역 등과 관계 없이 다 똑같은 직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도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7회] 근무지로 차별·불이익 준 ‘사법부 블랙리스트’…양승태 강행 정황 첫 공개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7회] 근무지로 차별·불이익 준 ‘사법부 블랙리스트’…양승태 강행 정황 첫 공개

    법관들의 인사자료가 처음 공개된 법정은 시작부터 긴장됐다. 재판을 공개로 해야하는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공방을 벌였고 재판이 한참 이어지던 도중에도 재판장은 법관들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의 46회 재판에 법관 인사를 맡았던 전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인사 담당 실무부서에서 심의관을 지낸 판사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인사2심의관으로, 2016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는 인사1심의관으로 일한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하는 등 법관 인사의 실무를 담당했다. 노 판사의 증인 출석을 앞두고 변호인들은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고 재판부에 주장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법관 인사제도의 구조는 물론 개별 법관들의 신상정보와 평정 등이 공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판사들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평정 내용이 법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심리내용이 모두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 법관들과 법관이 수행하는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나아가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불신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변호인은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재판의 심리 과정은 공개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고, 헌법에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을 때만 공개를 안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법관 인사는 이와 관련이 없다”면서 “대법관들의 합의의 근거가 된 검토보고서도 법정에서 다 공개되는데 법관 인사자료만 비공개 할 필요가 있는가“ 지적했다. 검찰은 또 “법원의 전직 수장이 인사권을 남용해서 법관을 상대로 불법적인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서 “많은 국민들과 검찰 입장에서도 전직 사법부 수장의 인사권 남용에 대해 다른 사건과 평등하게 소송 지휘가 이뤄져야 한다는 희망이 있다. 법관 인사자료만 비공개로 하면 헌법이 규정한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나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재판에서도 내부 인사정보가 재판에서 공개됐다는 지적이다. ●검찰 ‘공개재판’ vs 변호인 ‘비공개재판’ 공방…재판부 ”신상정보 드러나지 않도록 제한적 공개“ 굳은 표정으로 양쪽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법원조직법이 정하는 비공개 재판을 해야 하는 사유, 국가의 안전보장과 질서를 해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서 노 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공개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신상정보가 공개돼 오해와 논란이 초래되고 사생활의 밀이 침해될 우려가 있으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증인에게만 제시를 해서 심리를 해도 검찰이 이야기하는 평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이 시작된 지 50분이 다 되어서야 노 판사는 법정에 들어섰다.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예상대로 일반적인 법관 인사 방식은 물론 ‘블랙리스트’로 지목된 ‘물의야기 법관’들이 왜 문제 법관으로 낙인찍혔는지, 특정 법관이 법원장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등이 자세히 드러났다. 매년 2월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일선 법원장들이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통해 일부 법관들의 근무평정 가운데 특이사항이나 문제가 되는 상황이 있으면 정리해서 보고하고 나면 여기서 취합된 내용을 바탕으로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정기인사에 반영했다. 노 판사는 “저희가 이해하기로는 각급 법원장이 대법원장께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드리면서 간단히 말씀도 나누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장들의 보고 외에도 인사총괄심의관실에는 판사들의 근무평정이 모두 모였다. 심의관들은 이 가운데 특이사항이나 문제상황들을 따로 정리했다. 세평이나 풍문도 모아서 따로 확일할 필요가 있는지 챙겼다고 한다. 법관들의 신상 및 인사정보가 모두 담긴 법관인사전자관리시스템에 ‘메모’란을 두고 여기에 각종 ‘특이사항’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판사들이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됐다. 물의야기 법관들은 인사에서 별도의 관리가 이뤄졌다. 법관들의 인사는 서울권·경인권·지방권 등 권역별로 2~3년 단위로 순환하는 전국단위 전보인사가 원칙이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처음 보임될 대상 법관들의 경우 지방에서 오래 근무한 판사들을 선호 법원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이전 근무경력 등을 바탕으로 평정 점수를 매겨 A그룹부터 E그룹까지 순위를 매겼는데 물의야기 법관은 G그룹에 속했다. A그룹은 가장 우선적으로 희망하는 법원에 배치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법관 인사는 매우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이 명확해 기존의 패턴과는 다른 인사가 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그 예외는 물의야기 법관들에게 자주 적용됐다. ●대법원 비판글 올린 뒤 A그룹 → G그룹 강등… ”1지망 배치 배제“ 대표적인 예가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였다. 수원지법에서 근무하던 송 부장판사는 2015년 2월 정기인사에서 희망하지도 않은 데다 ‘격오지’인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전보됐다. 송 부장판사는 당시 A그룹이었다가 G그룹으로 형평 순위가 강등됐다. 이날 공개된 2015년 당시 이흥주 법원행정처 인사1심의관이 작성한 ‘2015년 정기인사 후기’ 문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송승용 판사의 통영 배치는 인사실에서는 반대했지만 인사권자의 뜻이 강하여 이를 막지는 못했다.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글 게시에 대한 문책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소문이 있다.’ 정기인사를 앞둔 그해 1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서 송 부장판사에 대하 인사조치 1안으로 ‘형평 순위 강등하여 지방권 법원 전보’, 2안으로 ‘초임부장 배치 원칙에 따라 지방권 법원 전보’ 방안이 제시됐는데, 1안에 승인을 뜻하는 ‘V’ 표시와 함께 양 전 대법원장의 결재가 있었다. 송 부장판사의 순위가 낮아진 결정적인 이유는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부적절한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송 부장판사는 양창수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임명제청 절차가 진행되던 2014년 8월 2003년 코트넷에 ‘2003년 그해 여름에 대한 단상-대법관 임명제청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2003년 대법관 임명제청 관련한 사법파동에 대해 ‘법원 내부의 자발적인 역량들이 모여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거쳐 사법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으로 평가될 것’이라면서 ‘다음 번 대법관 제청 때는 최고 엘리트 법관이 아닌 인권이나 노동,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했으면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앞서 2011년 7월에는 ‘근무평정제도 개정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평정을 통한 법관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2012년 7월에는 ‘대법관 임명 제청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당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저축은행 관련 비리 의혹이 제기된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제청 철회를 촉구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당시 인사2심의관이던 노 판사에게 검찰이 송 부장판사의 형평 순위가 강등되고 통영지원으로 전보된 경위를 아느냐고 묻자 노 판사는 “인사실에서 (통영 배치를) 반대한 건 알았고 결재라인 어디에서 결정됐는지는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인사실에서는 왜 반대했느냐는 질문에는 “송 부장판사에 대해 물의야기로 검토된 (대법원 정책결정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다는)사안이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통영지원에 배치할 정도에 해당하는 것인가 실무자로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나 싶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형평 순위 A그룹이었던 송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나 부산지법 동부지원 등 희망근무지에 우선순위로 배치될 수 있었음에도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 등의 지시에 따라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배치하는 인사안을 작성했고, 당시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이 포항보다 더욱 격오지로 배치하라고 지시해 결국 통영지원에 배치된 것이라고 지목했다. ●전 인사심의관 ”판사 배치는 대법원장이 최종 결정…원칙 어긋난 인사 보고해야“ 노 판사는 이날 여러 차례 “판사 배치는 대법원장의 정책 결정 사안”임을 확인했고 “기존의 인사 원칙이나 관례와 다르게 배치할 때는 인사권자에게 보고하고 결심을 받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사권자가 양 전 대법원장만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정확히는 대법원장이지만, 법원행정처장, 차장, 대법원장 모두 인사권자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일 가능성이 높은 인사권자가 실무부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정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강행한 정황이 법정에서 처음 드러난 셈이다. 이후 정기인사에서도 송 부장판사를 비롯해 코트넷에 대법원에 비판적인 의견을 드러낸 전 우리법연구회 간사 출신 유모 판사와 노동 사건에서 노동자 편향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평가된 마모 판사 등이 A그룹에서 G그룹으로 옮겨졌다. 노 판사도 인사2심의관을 지내며 당시 김연학 인사총괄심의관 등의 지시 등을 토대로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G그룹에 대해 각각의 인사조치 방안들을 정리했는데 문건에서 각각의 판사들이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대략의 사유와 인사조치 방안은 다음과 같다. # 문유석 판사(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2016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적절한 내용 언론에 게재 ·인사조치 방안: 1안-1순위 희망 임지인 서울행정법원 배제 / 2안-2순위 희망 임지인 서울동부지법까지 배제. ‘본인이 서울행정법원을 강하게 원하고 있으므로 행정법원을 배제하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으로 느낄 수 있음’ # 김모 판사 (현 지법 부장판사) -2016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조울증 ·인사조치 방안: 인사조치 보류. ‘인사대상이 아닌데도 문책성 인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이전에 인천지법에서 수원지법 성남지원으로 전보한 것도 인사패턴에 반한다는 지적이 있어 1년 만에 또 전보하면 무리한 사법행정이라는 평가가 있음’ -2015년 정기인사 (※노 판사 작성 아님) ·물의야기 내용: 2014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판결 비판 등 코트넷에 3년간 지속적으로 (대법원 비판) 글 게시 ·인사조치 방안: 서울권 배치 배제. (경인권에서 근무하던 김 부장판사가 서울권에 배치될 차례였지만 인천지법 배치) # 성모 판사 (현 지법 부장판사) -2016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코트넷에 대법원 비판, 사건의 심리 및 심증형성 과정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히 기재 ·인사조치 방안; 지원장에서 배제하고 부산권 내 타 법원으로 전보 # 송승용 판사 (현 수원지법 부장판사) -2017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코트넷에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관련 설문조사 제안.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여과없이 표현, 좀더 신중한 언행 필요’ ·인사조치 방안: 1안-선호법원인 안양지원 배제 (실제 수원지법 배치) 노 판사는 이처럼 매년 작성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보고서 속의 물의야기자로 분류된 사유는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자체 판단한 것이 아니라 일선 법원장들의 평가라고 강조했다. 인사심의관실에서는 취합과 확인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울증’이라는 사유가 적힌 한 법관에 대해 “법원장 평가와 인사관리시스템 메모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면서도 실제로 그 법관이 조울증 진단을 받았는지, 약물 치료를 했는지 등을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코트넷에 대법원에 비판적인 글이나 정치적 성향을 올린 글을 쓴 법관들을 물의야기자로 분류한 데 대해서도 법원장의 평가가 기초된 것이라고 하면서 “정치적 이슈가 있는 사안에서 판사가 대외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게 법관의 윤리에 반한다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선호하는 법원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았던 법관들이 G그룹에 분류되면서 1순위에서 원천 배제되는 것이 인사 불이익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 부장판사나 송 부장판사처럼 A그룹임에도 불구하고 1순위가 아닌 2순위로 전보를 보내는 것 자체가 불이익이라는 얘기다. 노 판사는 “1지망을 원천 배제해 1지망을 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없어졌다는 관점에서는 불이익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다”면서도 “각 법원의 배치상황 등을 고려해 해당 법관들이 1지망에 갈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반대신문을 통해 ‘2006년 물의야기 법관 현황’ 문건(행정처 윤리감사관실 작성)과 2011년 작성된 ‘현행 인사원칙 및 인사 관행 정리’ 문건을 공개하며 양 전 대법원장 이전에도 물의야기 법관을 따로 분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등에 양 전 대법원장이 결재를 한 것은 맞지만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반대신문은 오는 27일 재판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인사실 반대에도 강행”… 양승태 ‘좌천 인사’ 정황 법정 첫 공개

    “인사실 반대에도 강행”… 양승태 ‘좌천 인사’ 정황 법정 첫 공개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야기 법관’ 명단에 있는 특정 법관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실무 부서의 반대에도 대법원장 등 인사권자가 강행한 정황이 법정에서 처음 공개됐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재판에서 검찰은 당시 이흥주 법원행정처 인사1심의관이 작성한 ‘2015년 정기인사 후기(2015년 9월 5일자)’ 문건을 공개했다. 그해 2월 법관 정기인사 이후 작성된 이 문건에는 ‘송승용 판사의 통영 배치는 인사실에서는 반대했지만 인사권자의 뜻이 강하여 이를 막지는 못했다.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글 게시에 대한 문책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소문이 있다’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 현재 수원지법에서 근무 중인 송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대법원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는 등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져 물의야기 법관으로 선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 부장판사는 2015년 인사 형평(근무지 형평성 관련 점수)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A등급이었지만 비판적인 글을 올린 뒤 G등급(물의야기 법관)으로 바뀌었다. 송 부장판사는 희망하지도 않은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발령 났는데,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격오지’다. 이와 관련, 2015~2017년 인사심의관을 지낸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이날 법정에서 “결재라인의 어느 단계에서 결정됐는지는 모른다”면서도 “판사 배치는 대법원장의 정책 결정 사안이고, 기존의 인사 원칙이나 관례와 다르게 배치할 때는 인사권자에게 보고하고 결심을 받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에서 공개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인사총괄심의관실 작성)’ 문건 속 방안들은 특히 당사자가 스스로 문책성 인사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 비슷한 ‘물의’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취지가 담겼다. 2014년 세월호특별법에 찬성하는 칼럼을 언론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물의야기 법관이 된 문유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노 판사는 문건에 ‘본인이 서울행정법원을 강하게 원해 1지망을 배제하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檢, 조국 소환 안 하나 못 하나

    檢, 조국 소환 안 하나 못 하나

    조국 전 장관의 추가 소환이 늦어지며 최종 수사 마무리 시점은 12월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소환에 불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원활한 수사 마무리에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첫 검찰 조사를 받은 조 전 장관의 2차 소환이 1주일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피의자의 추가 소환은 첫 조사로부터 늦어도 2~3일 내에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구속기소) 동양대 교수는 지난달 3일 처음 출석하고서 이틀 뒤 두 번째로 출석했다.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정점’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첫 조사를 마치고 이튿날 조서 열람을 위해 재출석하고, 그다음날 바로 2차 조사를 받았다.  추가 조사가 지연되자 일각에선 조 전 장관 측이 더는 검찰 조사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인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 조 전 장관은 1차 조사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뒤 변호인단을 통해 “일일이 답변하고 해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 조사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출석을 요청하기 전에 일자 등에 대해 변호인 측 입장을 다 듣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조율 상황에 대해선 함구했다. 또 조 전 장관이 소환에 불응할 가능성에 대해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검찰은 부인과 자녀 관련 의혹뿐만 아니라 지난 18일 구속기소된 동생 조모 전 웅동학원 사무국장이 연루된 의혹도 조 전 장관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조 전 국장이 2006년과 2017년 웅동학원을 상대로 벌인 ‘셀프 허위 소송’을 당시 웅동학원 이사로 재직했던 조 전 장관이 몰랐는지 여부와 관련해 “향후 (조 전 장관) 조사에서 확인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가 지난 18일 조 전 장관 딸의 고려대 부정입학 의혹과 관련해 정진택 고려대 총장을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성상헌)에 배당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김명수 코트’의 ‘미스터 소수의견’ 조희대 대법관 후속 인선 작업 시작···대법원, 진보색채 짙어지나

    ‘김명수 코트’의 ‘미스터 소수의견’ 조희대 대법관 후속 인선 작업 시작···대법원, 진보색채 짙어지나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조희대 대법관 내년 3월 4일 퇴임김명수 체제 전원합의체에서 가장 소수의견 많이 낸 대법관조 대법관 퇴임하면 박 전 대통령 임명 대법관 4명 만 남아탄핵 여파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동안 14명 중 13명 임명문 정부 들어 대법관 다변화···추가로 진보 성향 임명 가능성내년 3월 4일 퇴임하는 조희대 대법관 후임을 정하는 대법관 제청 작업이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조 대법관이 퇴임하면 ‘김명수 코트’의 진보 색채가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대법원은 조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제청 대상자 후보를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천거받는다고 20일 밝혔다. 천거기간이 지난 후에는 심사에 동의한 대상자의 명단과 학력, 경력, 재산, 병역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통상 후임 인선 작업은 3개월 전에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보름 정도 앞당겨졌다. 제청 대상자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에 설 연휴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기간을 늘렸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조 대법관이 퇴임하면 박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대법관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만 남는다. 권 대법관의 임기도 내년 9월까지다. 대통령 탄핵으로 문 대통령 취임이 앞당겨지면서 대법관 14명 중 13명을 문 대통령이 임명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후년 퇴임하는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의 후임까지 임명할 예정이다. ●국정농단, 병역거부 재판에서 소수의견 낸 조희대 조희대 대법관은 ‘김명수 코트’에서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낸 것으로 꼽힌다. 현재 대법원의 주류 의견에 그만큼 반대 의견을 많이 냈다는 의미다. 지난 8월 국정농단 전원합의체 상고심에서 조희대,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은 말 3마리가 뇌물인지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은 “승마지원용 마필이 최서원(개명전 최순실) 소유로 넘어갔다고 보기 어렵고, 영재센터 지원금이 승계작업 현안에 관한 대가라는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 최서원이 삼성 관계자로부터 마필 위탁관리계약서를 작성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화를 낸 것은, 마필 소유권이나 실질적 처분권한의 이전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지난해 11월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도 소수의견을 낸 조희대, 김소영,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조 대법관은 별도로 보충의견까지 냈는데, “피고인은 병역거부 이유로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른 국가적 차원에서의 무장해제와 평화주의, 납세 거부, 종교 우월까지 연계해 주장한다”며 “대체복무가 아닌 무죄 선고가 가능하게 하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서오남’에서 벗어나 문 대통령 취임 후 대법관은 서울대, 50대, 남성 등 ‘서오남’ 판사 일색에서 다변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먼저 지명한 조재연 대법관은 판사로 법조계 경력을 시작했지만 약 25년간 변호사로 일했다. 덕수상고 출신으로 1980년 22회 사법시험을 수석합격한 경력도 이채롭다. 여성 대법관도 세명으로 늘었다. 판사 출신인 박정화, 민유숙, 노정희 대법관이다. 노 대법관은 이화여대를 졸업해 1990년 판사로 임용된 뒤 199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2001년 다시 판사로 임용됐다. 최초의 여대 출신 대법관이다.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은 정통 법관 출신으로 보수로 분류된다. 안 대법관은 최초의 건국대 출신 대법관이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상환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진보적 판결을 많이 내렸다. 김명수 대법원장, 박정화·노정희 대법관도 같은 연구회 출신이다. 판사나 검사 경험이 전혀 없는 최초의 재조 출신 김선수 대법관도 나왔다. 김 대법관은 2010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내는 등 진보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전원합의체 결과 영향 미칠듯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담당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다. 대법관 3분의2 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판결이 이뤄진다. 진보 대 보수가 현재 8대 5, 또는 7대 7로 분석되는 상황에서 반대자를 자처해온 조 대법관이 퇴임하면 아무래도 대법원의 무게중심은 진보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 한동안 보수적 색채가 짙었던 대법관을 진보 성향의 법조인들이 채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법부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한 잔 술을 차려 놓고 ‘우리 상진아’ 하고 가슴을 치면서 고한다. 네가 죽던 날,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을 때는 성안에 있는 네 친구들이 모두 너를 어루만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남녀들이 상여를 따라 통곡하자, 길을 가던 남모르는 나그네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義士)의 삼년상을 마치던 날 대한제국 홍문관 교리였던 생부(生父) 박시규가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제문 앞부분이다. 고헌(固軒) 박상진은 1884년 12월 6일(음력)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3세 때 경북 경주 녹동으로 가 성장했다. 의사의 집안은 조부와 생부, 양부가 모두 급제했고 재산이 7000석이나 됐던 명문가였다. 종형을 따라 경북 청송 진보에 갔다가 그곳에서 왕산 허위를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 운명을 바꾸게 됐다. 왕산은 구한말 평리원장(대법원장 격)에 올랐다가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의병 투쟁을 벌인 혁신유림이었다.스승을 따라 상경한 의사는 21세에 양정의숙에 들어가 안희제 등 동지를 만나 국권 회복의 열망을 키웠다. 양정의숙을 졸업한 해인 1908년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고 서대문형무소로 들어가 버려진 스승의 시신을 포대기로 감아 안고 나오면서 의사는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교남교육회, 달성친목회 등에 가입하고 의사는 투쟁 계획을 세워 나갔다. 나라를 잃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의사는 스승과 가까웠던 안동 유림 이상룡, 김동삼이 설립한 만주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방문해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단둥에 안동여관을 설치했는데 독립운동 연락기관이었고 나중에 광복회의 거점이 됐다. 이듬해 귀국한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회사를 차렸다. 곡물 거래는 해외를 드나들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데 감시를 덜 받는 이점이 있었다. 국내외에 연락 거점을 마련한 의사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풍기광복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격인 대한광복회 출범식을 가졌다. 7개 강령의 첫째는 친일 부호의 의연금을 받아 내고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한다는 것이었다. 일제 고관과 한인 반역자를 처단하는 내용도 있다. 겉으로는 회(會)였지만 사령관, 사령부, 지휘장 등 군대식 조직과 전국 각지에 지부를 갖춘 무장투쟁 단체였고 박 의사는 총사령이었다.대한광복회는 거사에 나섰다. 박 의사의 명령을 받은 우재룡은 1915년 12월 24일 엄동설한에 경주 광명동 효현교(나무다리) 일부를 파괴한 뒤 풀숲에 숨어 기다렸다. 일제가 악랄하게 징수한 세금 수송 마차가 대구로 가려면 효현교를 건너야 했다. 전날 권영만은 마부를 찾아가 대구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며 애걸복걸해 짐칸에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마침내 효현교에 이른 마차가 부서진 다리를 보고 속도를 늦추자 그 틈을 타 권영만은 당시로선 거액인 8700원이 든 세금 행낭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1917년 11월 10일 밤 경북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경북 구미 집에서 권총탄 소리가 터졌다. 7만 5000석을 수확하는 당시 최고의 부자이면서 악명이 높았던 장을 처단하는 총소리였다. 그는 왕산의 추천으로 관찰사가 됐는데 자금을 대겠다는 약속을 어겼을뿐더러 밀고까지 해 광복회원 채기중과 강순필이 사살한 것이다. “조국 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하노라.” 거사 후 두 사람은 담벼락에 이런 격문을 붙여 놓았다. 장은 광복 후 미군정 수도경찰청장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아버지다. 장택상은 아버지 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노덕술 등 친일 경찰을 군정 경찰로 받아들였다.“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여 섬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해 가고 날로 거듭해 간다. 생각하면 피눈물이 샘솟는다. 각 동포는 능력에 따라 이를 도와….” 광복회원들은 친일 행각, 재산 규모에 따라 부호들에게 이런 포고문을 보내고 모금액을 통고했다. 불응하는 친일 인사는 사살했다. 악질 친일파 도고면장 박용하, 벌교 부호 서도현, 보성의 양재성 등이다. 조선총독 암살, 직산과 상동 광산 습격도 시도했다. 박 의사도 대구 부호 서우순 처단에 직접 가담했다가 발각돼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는데 이른바 ‘대구 권총 사건’이다. 장승원 처단 후인 1917년 겨울부터 박 의사와 광복회 조직원들은 일제의 추적을 받았고 1918년 1월 충남 천안 헌병대에 주요 회원들이 체포돼 광복회의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사는 망국(亡國)에 분개해 단식으로 순국한 이만도의 아들인 경북 안동 이중업의 집에 은신했다. 의사를 보살펴 준 사람은 이중업의 부인이며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고문으로 실명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이다.숨어 있던 의사는 뜻밖에도 생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도리가 아니겠는가”라며 만류도 뿌리치고 경주 집으로 갔다. 의사가 도착했을 때 생모는 눈을 감은 뒤였다. 1918년 2월 1일 장례를 치르는 중에 일경 수백명이 출동, 의사를 포박하려 했다. 의사는 “나는 내 할 일을 정당하게 했다. 너희에게 포박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꾸짖으며 백마를 타고 유유히 일경에 앞서 나아갔다. 물고문, 불고문과 3년이 넘는 재판 끝에 의사에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사형 집행 며칠 전 면회 온 가족에게 의사는 “울 까닭이 없다”며 태연히 미소를 지었다. 1921년 8월 11일 오후 1시 대구감옥에서 의사는 순국했다. “어머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국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을 갈까.” 이 유시(遺詩)와 전해지지 않는 4장의 유서, 사진 1장을 남기고 간 36년 8개월의 짧은 삶이었다. 시신이 옮겨지던 청천역(경북 경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통곡했다. 일제는 새벽부터 기마대를 보내 길가에 줄지어 오는 조문객들을 휘몰아 쫓는 등 조문을 방해했다. 의사 집안은 195만평이나 되던 광대한 땅을 모두 날리고 풍비박산이 났다. 경주 최부잣집의 최준(의사의 처사촌)이 농간을 부려 재산을 빼앗아 갔다며 송사를 벌였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의사의 생부는 “일곱 집안 100여 식구가 갑자기 모두 거지가 되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고, 나도 혼자서 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가 며칠 동안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썼다. 의사의 묘소는 경주 내남면 노곡리 등운산 기슭에 있다. 농로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고 산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의 가파른 경사지를 100m 남짓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숲속에 묘소가 나타났다. 잠시 묵념을 올렸다. 정부는 1963년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생가도 복원되고 동상이 세워졌으니 조금이나마 원혼을 달래 줄 것이다. 송정동 생가는 증손자 박중훈(65)씨가 돌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간 생가에서 박씨는 의사의 일생과 여태 끝나지 않은 장승원가와의 악연, 후손들의 비참한 삶을 들려주었다. 박씨는 의사의 일대기이자 평전인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을 펴냈다. 평생 고통을 겪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의 일생도 정리해 따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박씨는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울산 지역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악덕 친일 부호 장승원 사살… 세금 수송 마차 털어 독립운동 자금 조달

    “한 잔 술을 차려 놓고 ‘우리 상진아’ 하고 가슴을 치면서 고한다. 네가 죽던 날,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을 때는 성안에 있는 네 친구들이 모두 너를 어루만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남녀들이 상여를 따라 통곡하자, 길을 가던 남모르는 나그네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義士)의 삼년상을 마치던 날 대한제국 홍문관 교리였던 생부(生父) 박시규가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제문 앞부분이다. 고헌(固軒) 박상진은 1884년 12월 6일(음력)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3세 때 경북 경주 녹동으로 가 성장했다. 의사의 집안은 조부와 생부, 양부가 모두 급제했고 재산이 7000석이나 됐던 명문가였다. 종형을 따라 경북 청송 진보에 갔다가 그곳에서 왕산 허위를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 운명을 바꾸게 됐다. 왕산은 구한말 평리원장(대법원장 격)에 올랐다가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의병 투쟁을 벌인 혁신유림이었다.스승을 따라 상경한 의사는 21세에 양정의숙에 들어가 안희제 등 동지를 만나 국권 회복의 열망을 키웠다. 양정의숙을 졸업한 해인 1908년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고 서대문형무소로 들어가 버려진 스승의 시신을 포대기로 감아 안고 나오면서 의사는 무력투쟁을 다짐했다. 교남교육회, 달성친목회 등에 가입하고 의사는 투쟁 계획을 세워 나갔다. 나라를 잃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의사는 스승과 가까웠던 안동 유림 이상룡, 김동삼이 설립한 만주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방문해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단둥에 안동여관을 설치했는데 독립운동 연락기관이었고 나중에 광복회의 거점이 됐다. 이듬해 귀국한 의사는 대구에 상덕태상회라는 곡물회사를 차렸다. 곡물 거래는 해외를 드나들고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는 데 감시를 덜 받는 이점이 있었다. 국내외에 연락 거점을 마련한 의사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풍기광복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격인 대한광복회 출범식을 가졌다. 7개 강령의 첫째는 친일 부호의 의연금을 받아 내고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한다는 것이었다. 일제 고관과 한인 반역자를 처단하는 내용도 있다. 겉으로는 회(會)였지만 사령관, 사령부, 지휘장 등 군대식 조직과 전국 각지에 지부를 갖춘 무장투쟁 단체였고 박 의사는 총사령이었다. 대한광복회는 거사에 나섰다. 박 의사의 명령을 받은 우재룡은 1915년 12월 24일 엄동설한에 경주 광명동 효현교(나무다리) 일부를 파괴한 뒤 풀숲에 숨어 기다렸다. 일제가 악랄하게 징수한 세금 수송 마차가 대구로 가려면 효현교를 건너야 했다. 전날 권영만은 마부를 찾아가 대구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며 애걸복걸해 짐칸에 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마침내 효현교에 이른 마차가 부서진 다리를 보고 속도를 늦추자 그 틈을 타 권영만은 당시로선 거액인 8700원이 든 세금 행낭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왔다.1917년 11월 10일 밤 경북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경북 구미 집에서 권총탄 소리가 터졌다. 7만 5000석을 수확하는 당시 최고의 부자이면서 악명이 높았던 장을 처단하는 총소리였다. 그는 왕산의 추천으로 관찰사가 됐는데 자금을 대겠다는 약속을 어겼을뿐더러 밀고까지 해 광복회원 채기중과 강순필이 사살한 것이다. “조국 광복을 하자는 것은 하늘과 사람의 같은 뜻이니 이 큰 죄를 성토하노라.” 거사 후 두 사람은 담벼락에 이런 격문을 붙여 놓았다. 장은 광복 후 미군정 수도경찰청장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아버지다. 장택상은 아버지 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노덕술 등 친일 경찰을 군정 경찰로 받아들였다. “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하여 섬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해 가고 날로 거듭해 간다. 생각하면 피눈물이 샘솟는다. 각 동포는 능력에 따라 이를 도와….” 광복회원들은 친일 행각, 재산 규모에 따라 부호들에게 이런 포고문을 보내고 모금액을 통고했다. 불응하는 친일 인사는 사살했다. 악질 친일파 도고면장 박용하, 벌교 부호 서도현, 보성의 양재성 등이다. 조선총독 암살, 직산과 상동 광산 습격도 시도했다. 박 의사도 대구 부호 서우순 처단에 직접 가담했다가 발각돼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는데 이른바 ‘대구 권총 사건’이다. 장승원 처단 후인 1917년 겨울부터 박 의사와 광복회 조직원들은 일제의 추적을 받았고 1918년 1월 충남 천안 헌병대에 주요 회원들이 체포돼 광복회의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사는 망국(亡國)에 분개해 단식으로 순국한 이만도의 아들인 경북 안동 이중업의 집에 은신했다. 의사를 보살펴 준 사람은 이중업의 부인이며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돼 고문으로 실명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이다.숨어 있던 의사는 뜻밖에도 생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도리가 아니겠는가”라며 만류도 뿌리치고 경주 집으로 갔다. 의사가 도착했을 때 생모는 눈을 감은 뒤였다. 1918년 2월 1일 장례를 치르는 중에 일경 수백명이 출동, 의사를 포박하려 했다. 의사는 “나는 내 할 일을 정당하게 했다. 너희에게 포박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꾸짖으며 백마를 타고 유유히 일경에 앞서 나아갔다. 물고문, 불고문과 3년이 넘는 재판 끝에 의사에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졌다.사형 집행 며칠 전 면회 온 가족에게 의사는 “울 까닭이 없다”며 태연히 미소를 지었다. 1921년 8월 11일 오후 1시 대구감옥에서 의사는 순국했다. “어머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국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을 갈까.” 이 유시(遺詩)와 전해지지 않는 4장의 유서, 사진 1장을 남기고 간 36년 8개월의 짧은 삶이었다. 시신이 옮겨지던 청천역(경북 경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통곡했다. 일제는 새벽부터 기마대를 보내 길가에 줄지어 오는 조문객들을 휘몰아 쫓는 등 조문을 방해했다. 의사 집안은 195만평이나 되던 광대한 땅을 모두 날리고 풍비박산이 났다. 경주 최부잣집의 최준(의사의 처사촌)이 농간을 부려 재산을 빼앗아 갔다며 송사를 벌였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의사의 생부는 “일곱 집안 100여 식구가 갑자기 모두 거지가 되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고, 나도 혼자서 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가 며칠 동안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썼다. 의사의 묘소는 경주 내남면 노곡리 등운산 기슭에 있다. 농로를 지나 작은 개울을 건너고 산길을 따라가다 오른쪽의 가파른 경사지를 100m 남짓 올라가니 어두컴컴한 숲속에 묘소가 나타났다. 잠시 묵념을 올렸다. 정부는 1963년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생가도 복원되고 동상이 세워졌으니 조금이나마 원혼을 달래 줄 것이다. 송정동 생가는 증손자 박중훈(65)씨가 돌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간 생가에서 박씨는 의사의 일생과 여태 끝나지 않은 장승원가와의 악연, 후손들의 비참한 삶을 들려주었다. 박씨는 의사의 일대기이자 평전인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을 펴냈다. 평생 고통을 겪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의 일생도 정리해 따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박씨는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울산 지역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법서라] 조국의 검찰 진술거부…피의자 권리인가, 권력자 갑질인가?

    [법서라] 조국의 검찰 진술거부…피의자 권리인가, 권력자 갑질인가?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헌법 제12조 2항>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있었던 첫 검찰 조사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연일 논란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입장과 일반인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란 입장이 맞서고 있죠. 진술거부란 검사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묵비권을 행사한다’라고도 하죠. 변호인과 함께 조사실에 들어선 조 전 장관은 검사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진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이날 조 전 장관은 조사를 마치고 나와서도 변호인단을 통해 “일일이 답변하고 해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습니다. 검찰청이 아닌 재판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취지죠. 거칠게 해석하면 ‘검찰은 믿지 못하겠다. 차라리 빨리 기소해라. 법정에서 다투겠다’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형사소송법에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해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 전 장관의 진술거부권이 논란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당연한 피의자 권리…검사에 대항할 강력한 무기” 검찰 피의자 신문은 ‘검사의 공간’에서 이뤄집니다. 대개 검사가 소환날짜를 통보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피의자는 그에 맞춰 검찰청에 출석합니다. 검사실에 변호인이 동행할 수 있지만, 피의자를 대신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검사의 신문에 직접 답변하는 것은 전적으로 피의자의 몫입니다. 검사와 피의자 간에 오간 질문과 답변은 ‘피의자 신문조서’에 기재되고, 당일 조사가 끝나면 피의자가 직접 신문조서 내용을 읽어보는 조서열람 절차와 “내용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간인 및 서명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다만, 신문조서는 마치 녹음 파일을 풀듯이 한 글자 한 글자를 적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질문과 답변의 맥락이 불리하게 바뀌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조서 열람 절차는 피의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서명 날인까지 끝낸 신문조서는 검찰의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이 검찰 신문조서는 그대로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 입회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무리 신중하게 조서열람을 한다 해도, 수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아 탈진한 상태에서 허점을 놓칠 수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피의자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검사가 미묘하게 다른 맥락으로 읽히도록 답변을 기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당일에 조사만 마친 뒤 다른 날 검찰청에 출석해 맨정신으로 조서열람을 마저 진행했지만, 일반인 피의자는 검사에게 ‘내일 다시 와서 조서 열람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도 힘들다고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조사실을 벗어나고자 당일 빨리 조서열람을 마치고 서명해 나갈 뿐입니다. 결국 처음부터 검사에 맞서도록 피의자에게 주어진 ‘무기’가 바로 진술거부권입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모두 진술거부권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과 달리 검찰 단계에서 만들어진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에서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면서 “검찰이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면 굳이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소사실이 완전히 허구이며, 검찰도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죠.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검찰 출신 금태섭 의원이 쓴 ‘수사 잘 받는 법’을 보면 첫 번째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다”라면서 “전략에 따라 적극적으로 얘기를 하는 게 나은 경우가 있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게 나은 때도 있을 뿐이다. 권력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 전 장관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고, 법리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비판이 나오는 것은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라는 고위공직자의 직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일종의 갑질…일반인은 감내 힘들어”“생각해보세요.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는 것과 ‘누구나 부담없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진술거부에는 위험성이 뒤따를 수밖에 없고, 그걸 감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피의자의 지위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겠죠.”누구나 진술을 거부할 권리는 있고, 진술을 거부했다고 고문과 같은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아선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진술거부를 하고 조사실을 나선 뒤에 따라올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피의자의 몫입니다. 증거가 온전히 갖춰진 상황에서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한다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커집니다. 결국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커지겠죠.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술거부권 행사 자체는 수사를 어렵게 만드니 피의자에게 유리하나, 이후 증거인멸을 이유로 구속영장 청구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모든 혐의를 부인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검찰에서 파악하지 못한 게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숨겨진 증거가 더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혐의가 더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에서도 증거관계를 토대로 소명이 충분한데도 피의자가 혐의 부인을 넘어서 진술을 거부하고 나선다면 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영장 기각 사유 가운데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 진술 태도’가 언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김 교수는 조 전 장관이 진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일종의 ‘갑질’에 가깝다고도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고위공직자 신분에 있던 분이 수사에 협조를 안 하는 것은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진술을 해야 하는 내용은 적극 해명하면 되는 일”이라며 “도덕적, 윤리적 차원의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도 “정치적 입장을 떠나 고위공직자 출신이 뇌물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에 돌입한 뒤에도 검찰에서 진술을 거부한 사실은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최진녕 볍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은 ‘피의자 인권’이라는 공적 의제를 사적 이해로 치환시킨 것”이라며 “진술거부권이 헌법상 권리임에는 틀림없지만, 수사에 불성실하게 임하면 양형에서 평가가 이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죄가 뻔히 인정된다고 하면 ‘너희들이 입증해봐라’라고 말하는 것과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천지차이”라며 “조 전 장관 혐의는 다툴 여지가 큰데, 사실 관계를 다투지 않고 진술을 거부하는 전략을 고수하면 최종적인 법원의 판단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이번 논란을 계기로 진술거부권의 공론화를…” 결국 이번 논란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궁극적으로 올바른 방향은 누구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도 그 어떤 직간접적 불이익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진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속 가능성이라는 부담감과 불안함을 일반인 피의자도 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르거나 막강한 변호인단을 구성하지 않은 한, 불이익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죠. 한 변호사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괜히 일반인 피의자들이 (조 전 장관을) 따라했다가 검사의 영장 청구 빌미를 제공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진술거부권은 검찰개혁 논의 과정과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이미 헌법에도 명시된 권리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실과 이상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장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공론화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6회] 법원장의 재판장 인사평가 배경 법정에서 밝혀질까…김문석 사법연수원장 증인 채택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6회] 법원장의 재판장 인사평가 배경 법정에서 밝혀질까…김문석 사법연수원장 증인 채택

    법원장이 일선 재판부의 부장판사에게 한 근무평정을 법정에서 밝힐 수 있을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검찰이 신청한 김문석 사법연수원장에 대한 증인신청을 받아들였다. 한 부장판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내용이 담기게 된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따라 재판부는 김 원장을 다음달 6일 법정에 나오도록 할 예정이다.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5회 재판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김문석에 대한 증인신청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증인신문을 할 때 판사 근무평정표는 증인에게만 보일 수 있도록 하고 제발 방청객에는 드러나지 않도록 협조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공소장에도 등장하지 않는 김 원장이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데는 지난 6일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증인신문 과정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15년 김 원장은 서울행정법원장을, 조 부장판사는 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를 각각 지냈다. 조 부장판사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의원직 지위확인 소송과 관련해 각하 판결을 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법원행정처 검토 보고서를 재판부에 전달해 달라는 요청을 듣고 나중에 해당 사건을 맡은 재판장에게 구두로 취지를 전달한 바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보다 대법원이 사법기관으로서 우위에 있다는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몰두하던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법리 설명으로 포장해 일선 재판부에 전달된 것이다. 조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설명하기 전에는 김 원장에게 통진당 사건에 대한 행정처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통진당 소송 각하한 재판장에 부정적 평정…검찰 “당시 법원장 증인신문해야” 그러나 몇 달 뒤 재판부는 행정처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각하 결정을 했다. 헌재가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심리한 뒤 통진당 해산 및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만큼 법원이 이를 다시 심리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을 한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의 반정우 부장판사의 그해 근무평정에는 공교롭게도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담겼다. ‘일부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면서 여러 객관적인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논리적 모순이나 입증책임에 반하는 판시도 보임’. 검찰은 반 부장판사가 행정처의 입장대로 판결을 내리지 않아 이런 평가가 뒤따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가 “근무평정의 초안을 작성하긴 했지만 저 문구는 쓰지 않았다”며 부인하자 당시 법원장이던 김 원장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 원장에 대한 증인신청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꽤 많은 공방이 오갔다. 재판부도 처음에는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고 변호인은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반대했다. 이날 재판이 시작된 뒤 검찰은 김 원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행정법원 수석 조한창은 이규진으로부터 법원행정처 입장 등을 전달받은 뒤 김문석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조한창은 각하라는 것은 법리 문제가 있다며 재판에 개입했는데 행정법원은 소 각하 판결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 이규진은 ‘행정법원(재판부)에 전달한 것이 맞느냐’는 박병대(당시 법원행정처장)의 질책을 조한창에게 전달했고, 이규진은 구체적인 항소심 재판 계획이 담긴 통진당 소송 결과 보고서를 박병대·양승태에 보고했습니다. 양승태·박병대는 헌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례로 법관 평가에 반영한 교육을 마련하도록 지시했고 이규진 등은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소 각하 판결을 한 재판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습니다. 행정법원 행정13부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일삼던 중 반정우는 통진당 소송과 관련해서 배석판사에게 ‘서 판사 말을 들을 걸 그랬나’라며 심경을 토로했고 위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문석은 연말 회식에서 주심 판사에게 ‘왜 그랬나, 반 부장이 시킨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김문석은…” 그 때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말을 끊었다. “동의되지 않은 진술들을 인용하면서 말한 것은 불필요하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재판에서 재판장이 “간접증인을 부르기 위해서는 김 원장이 평정표 기재를 했고 피고인들의 지시 때문이라는 사정을 추론할 수 있을 정도로 소명이 돼야 한다”고 말한 것을 들어 “소명을 위한 것”이라고 변호인의 이의에 반박했다. 그러자 이번엔 재판부가 “그런 단계에서 증거로 동의되지 않은 내용까지 말한 건 더욱 부적절하다”면서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도 증거능력이 엄격해야 하는데 증거조사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아직 증거로 조사할 수 없는 부분까지 포함해서 계속 인용하면 더욱 부적절하다. 증거조사 필요성이 있는 이유를 진술하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설명을 이어갔다. “김문석은 행정법원의 특정 사건을 언급하며 인사평가를 했고, 그 사건은 해당 재판부가 처리한 사건에 해당한다”면서 “2015년 당시 행정13부에서 법원장이 관심을 갖는 주요 사건은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이 유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원장의 반 부장판사에 대한 부정평가가 소 각하에 대한 행정처의 실망과 직접적인 요구에 따라 기재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공소사실과 범행 배경, 공모관계를 인정할 주요 간접사실에 해당하고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재판부에 “다툼이 있는 경우 검사와 피고인에게 기회를 동일하게 제공돼야 한다”면서 “검사의 일방적 증거 설명에 의해 예단을 형성하지 않고 동일한 기회로 변호인에게 반박 기회를 주는 것이 형사소송법인데 오히려 검사의 증거설명을 (변호인이) 부정했다는 형식적인 이유로 증거설명을 무의미하게 하고,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변호인들 “법정에서 수사하겠다는 건가” 반발…재판부는 채택 그러나 변호인들은 반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이 아닌 내용인데 법정에서 수사를 허용하는 것과 다름 없어 (증인신청이) 기각돼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나 피고인이 동일해야 한다고 하는데 헌법상 피고인과 변호인, 검사와의 힘의 균형이 없기에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라면서 “여러 권리가 변호인과 피고인에게 있지만 우리가 압수수색을 할 수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도 반박했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부정적 평정을 기재한 사실에 대해 법정에서 입증하겠다는 것은 별도의 공소사실을 논하겠다는 것”이라고 했고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도 “부정적 평정이 통진당 소송에 대한 행정처의 의견에 따라 기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가능성을 갖고 불러댈 거면 재판을 어떻게 하겠나”라며 “법관에 대한 평정은 개인에게도 공개가 어렵고 다 공개해서도 안 되는데 평정한 불러서 왜 그랬냐고 따져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반문했다. 몇 차례 더 공방을 이어간 뒤 재판부는 3분간 휴정했고, 다시 진행된 재판에서 김 원장에 대한 검찰의 증인신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평정표를 증인에게만 제시하고 방청석에 드러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나 김 원장이 실제로 법정에 나올지는 미지수다. 지난 8일 증인을 신청하면서 검찰은 “김 원장을 검찰 조사에 불렀으나 ‘재판하는 법관이 어떻게 나가느냐’며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5회] “‘블랙리스트 프레임’ 걸리면 끝장”…겉과 속 다른 행정처에 “선 넘었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5회] “‘블랙리스트 프레임’ 걸리면 끝장”…겉과 속 다른 행정처에 “선 넘었다”

    2017년 2월 16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난 지 일주일 된 한 판사가 사표를 던졌다. 원 소속 법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겨우 만류됐지만 이 사표는 사법부의 역사를 바꾸는 핵심적인 단초가 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도록 한 이탄희 전 판사의 이야기다. 양 전 대법원장의 법정에 나와 당시 심의관으로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불러 일으킬 만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지시에 순응한 것에 대해 후회를 뱉어낸 판사들이 많았지만 거부하거나 항의한 사람은 없었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4회 재판에는 이 전 판사와 함께 기획조정실에 몸담았던 임효량 수원지법 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임 판사는 2016년 2월부터 1년간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당시 기획제1심의관)과 함께 기획제2심의관으로 일했다가 2017년 2월부터 1년간 김 부장판사의 후임으로 기획제1심의관을 맡게 됐다. 이 때 이 전 판사가 임 판사의 후임으로 기획제2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탄희 前판사 사직서 전날, 동료 법관 “인권법연구회 겨냥…블랙리스트 프레임 걱정” 이 전 판사가 사직서를 내기 전날인 2017년 2월 15일. 임 판사는 이 전 판사에게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에 대해 설명했다. 바로 사흘 전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최초 가입한 전문분야 연구회 커뮤니티 외에는 자동 탈퇴 조치가 된다는 공지사항이 게시된 뒤였다. 임 판사는 이 전 판사에게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한 것”이라면서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들어가면 끝장”이라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프레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검찰이 묻자 임 판사는 이렇게 답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해가 부끄럽긴 한데….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당시 문제가 됐는데 당시 인지한 상황은 한 마디로 공식적으로 외관에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형태였습니다. 지원금, 보조금이 등을 특정 예술인을 겨냥해 지원하지 않거나 하는 것이 외관으로는 국가가 지원하는 보조금을 활용하는 재량 범위 안에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도 당시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외관은 예규에서 금지한 중복가입을 이제는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명문화 된 규정을 시행한다는 것으로 외관상 불법 문제는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사법부도 자칫 잘못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임 판사는 “같이 일할 사람이라서 숨기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처음 만난 날, 제 걱정을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주신문에 이어진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반대신문 과정에서는 이렇게도 설명했다. “그 이전까지는 구체적 인식이 없었는데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수면 위에 나오고 보니 아직도 기억나는 (당시) 제 생각은 ‘이것은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비슷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도로 했는지는 드러난 것과 다를 수 있는데 이것은 행정처가 과거 국회에 보냈던 (전문분야연구회 회원수 등의) 자료와 워낙 배치되기 때문에 그게 드러나면 말이 맞지 않게 되고 그걸 해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지 않겠냐 해서 당시 이 전 판사에게는 ‘사법부가 자칫하면 문화계처럼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들면 큰일이다’ 라고 말한 겁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사법부에 파장이 확산될까봐 우려해서 걱정이 되니까 블랙리스트로 확장될 것 같다고 한 것인가, 중복가입 해소조치 자체가 블랙리스트라고 생각한 건가“ 물었다. 임 판사는 “리스트의 개념이 아니고, 실제로 명단이 있는 건 아니니까. 제가 프레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와 비슷한 시대의 비난 같은 게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다”고 답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 임 판사는 행정처에서 근무하던 초반부터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했다. 임 판사는 “2016년 2월 행정처에 부임하기 전날 주말에 사무실에 갔더니 김민수 부장판사가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인사를 가자’고 해서 휴일인데도 갔더니 임 전 차장이 저보고 ‘인사모를 아느냐’고 물었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것도 모르냐’는 취지로 얘기해서 뭔데 이렇게 관심이 있나 생각했다”면서 “이후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보낸 메일에도 (인사모 관련) 대법원장에 보고됐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 되게 관심이 많다는 건 인지했다”고 설명했다. ●“외관은 제도 개선이지만 실질은 특정 모임 불이익…선을 넘었다고 생각” 특히 심의관으로 보임된 지 한 달 만에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에 대해 행정처 간부들이 ‘부정적 인식’이 있다는 생각을 굳혔는데, 당시 기획조정심의관이던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쓴 ‘전문분야연구회 개선방안’(2016년 3월 25일자) 보고서 등을 접하고서였다고 한다. 그는 “3월 말 정도에 박 부장판사의 보고서를 본 시기라 그 무렵에는 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에 대해 초치를 취하는 거라 알고 있었고 보고서를 보기 전에는 인권법연구회가 인권과 무관한 사법행정 관련 의견을 많이 내서 행정처 간부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임 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이 보고서에 대해 “이후에 있던 경험과 바탕으로 봤을 때 그 보고서는 그런 의미였구나, 결국 외관은 전문분야연구회 개편이지만 실질은 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에 관한 것이었구나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조사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된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작성한 인사모 폐지 검토 관련 보고서에 ‘인권법연구회 핵심 회원에 불이익을 준다’는 취지로 해외 연수 선발 과정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방안이 담긴 것에 대해 “뒤늦게 보고 당혹스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임 판사는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가며 간부들의 ‘불편함’을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기획2심의관이 된 임 판사는 당시 행정처가 추진한 사법행정위원회를 꾸리기 위한 통합지원단 간사를 맡았다. 사법행정위원회는 사법행정에 법관들의 참여를 넓혀 더욱 많은 법관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한다는 목적으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추진했다. 그러나 막상 위원들이 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소속의 법관들로 대거 구성될 것을 우려해 법관 64명을 위원 후보자로 추려 각각의 성향과 특성 등을 파악한 것으로 대법원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법원문화개선위원회, 재판제도발전위원회 등에 각각 17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2016년 4월 11일 사법행정위원회 위촉식을 가졌다. 이 같은 위원회 구성을 두고 임 판사는 검찰의 주신문 과정에서 “정말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를 원했다면 더 오픈된 방식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경험한 바로는 위원 구성도 사전에 조율하려고 했던 시도가 보였고 안건도 특정 안건이 제안되면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걱정을 너무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임 전 차장이 (그런 걱정을) 많이 하는 걸로 보여서 사법행정참여에 법관 의견을 반영한다면 좀더 열린 마음으로 하면 좋지 않나, 너무 걱정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결국 그게 외관이 (내용보다) 더 관심이었던 것 같다”고 말을 이어갔다. ●“용기내서 적극적으로 나가도 됐는데 너무 걱정해서 오히려 진위 의심받아” 임 판사는 또 “어떻게 보면 용기의 문제라고 해야할까, 어떤 표현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자문기구를 만든다고 할 때 조금 더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나가도 될 텐데 오만 걱정을 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실제로 행정처에서 제도를 만들 때 진위가 어떤지 상관없이 의심받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사법행정위원회의 좋은 목적과 취지가 있다면 사법행정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법관들의 참여를 순수하게 넓혀 위원회를 꾸려야 할 텐데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갖고 있더라도 방식이 어긋나면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 아니겠냐는 뜻으로 읽힌다. 임 판사는 이어 “그래서 사법행정위원회라는 것은 결국에는 이제 모양만 갖추려고 하는 전시성 행정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당시 저로서의 걱정이었고, 어떤 이슈가 생겼을 때 임 전 차장의 지시가 떨어지고 했을 때는 ‘우리가 위원회를 만들었으니 의견을 잘 들어보자’는 것이 아니라 탈 없이 그냥 (위원회를 통한 의견 반영을) 한다는 것 정도로만 이 아이템을 해소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행정처는 사법행정위원회의 위원 구성 뿐 아니라 위원회에서 다룰 안건도 최대한 행정처에 ‘안정적인’ 내용이 될 수 있도록 검토했다. 임 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사법행정위원회 안건제출 활성화 관련 보고’(2016년 4월 5일자) 문건을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검토 배경으로 ‘향후 논의방향에 대한 예측가능성 저하’ 항목 아래 ‘특정 성향 법관이 무리한 안건을 제출하면서 논의를 주도할 경우 위원회가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법관의 의견 대립 장 내지는 특정 성향 법관의 주장 발표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 존재’라는 내용이 담겼다. ‘특정 성향 법관’의 의미를 검찰이 묻자 임 판사는 “(행정처의) 사법행정 방향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법관들을 표현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다만 임 판사는 “(보고서 작성) 지시자가 걱정한다고 해서 보고서에 넣은 것이지 실무지원단에서 그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특정 성향 법관’이 인권법연구회과 인사모에 속한 판사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행정처 간부들에게는 인권법연구회 등에 속한 판사들이 사법행정 관련 판단에 반기를 드는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사법행정위원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2016년 2월 ‘법관의 사법행정참여 제도화에 관한 건의문’을 코트넷에 게시한 송오섭 판사도 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다. 송 판사는 사법행정위원회에 참여할 위원의 3분의 2 또는 과반수를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이 글이 위원 후보로 추천된 64명의 판사들을 추리고 이들의 특성을 일일이 파악해 나열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된 것으로도 여겨진다. ●“이탄희 사직서 슬프고 안타까워…그런 결정 안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 결국 좋은 목적과 취지로 외관은 그럴싸하게 두면서 내부는 사실상 법관들과의 소통에 두려워하고 비판을 오히려 불이익으로 견제하는 분위기였음을 임 판사는 거듭 언급했다. 자신과 함께 일하게 된 이 전 판사에게 미리 귀띔하고자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결국은 인권법연구회 등을 겨냥한 조치라고 얘기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이 전 판사는 사직서를 냈다. 임 판사는 이 전 판사에게 문자메시지로 ‘새로운 기획조정실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설득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행정처 분위기와 달리 심의관 스스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부서 내 업무처리방식이나 분위기를 충분히 바꿀 수 있다며 두 사람이 함께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발적인 사직이 아니라 처장님(법원행정처장) 때문에 내린 거라 존중하기 힘들다’는 말을 더했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이 이 말의 의미를 묻자 임 판사는 숨을 한 번 내쉰 뒤 길게 설명했다. “저는 안타까웠던 게 탄희가 만약 기획조정실로 인사발령이 나지 않았으면 안 썼을 사표를, 인생의 계획에 없었던 사표를….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러이러한 순간에 법관 생활 그만해야지’ 해서 적극적으로 선택한 인생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 때문에 내린 결론이라면 그건 저는 본인의 인생에서 슬프고 안 좋은 결정이 아닐까…. ‘내가 이런 것을 하기 위해 사표를 써야지’가 아니라 외부적 조건이, 원하지 않는 조건이 생겨서 썼다는 게 슬프고 안 좋아서 탄희한테 인생에서 그런 결정은 안 했으면 좋겠다, 네가 외부 조건 때문에 안 했을 행동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입니다.” 이 전 판사의 사직서는 반려됐고 이 전 판사는 원래 소속이던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복귀했다. 대학 선후배면서 사법연수원 동기로 가까웠던 두 사람의 운명이 갈렸다. 다만 임 판사는 자신 역시 이후 기획조정실의 핵심 업무에선 배제됐다고 털어놨다. 이 전 판사가 사직서를 낸 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이 전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와의 대화내용을 임 판사에게 말하지 말라”면서 “이 판사가 행정처에 온 것은 나의 추천도 있다”, “인권법연구회랑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무관하다”는 말을 하며 사직을 만류한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임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기획조정실에서 진행된 일에서 저도 약간 배제됐습니다. 제가 너무 태도가 불량해서인지, 여러 이유에서인지. 업무 진행과정에서 저한테 어떤 내용이 진행되는지 공유된 게 없었고 아마 제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저랑은 공유하지 말라고 얘기한 듯 합니다.” 임 판사는 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김 대법원장의 지시로 ‘법원행정처(사법행정)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작성했다. 거기에 임 판사는 ‘무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양립할 수 없는 지위의 혼동’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행정처) 시스템 문제가 크기 때문에,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자칫 특정 한두 명의 문제라고 치부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적었고, 근본적으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더 큰 문제 아니냐는 생각을 해서 정리해봤다”고 이유를 밝혔다. 일선 법원에서와 달리 행정처에서는 상명하복 위계질서가 있는 구조가 있어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만 하는 분위기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도 보인다. 임 판사는 양립할 수 없는 지위에 대해서도 “법원행정처에서 법관끼리 상급자와 하급자로 일하다가 대등한 재판부로 일하면 과거의 위치관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사법행정에 참여하는 법관과 재판에 임하는 법관 사이의 괴리와 혼동을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이 보고서에 증인은 행정처를 법관이 아닌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고도 기재했는데 행정처 심의관은 법관인가?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인가?” 물었다. 임 판사는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공무원”이라고 답했다. 보고서엔 ‘상고법원 도입 위해 법관들이 전방위적인 입법로비를 했다는 기사도 났다’, ‘(행정처로부터) 해당 재판장에게 전화가 갔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내용도 언론 보도내용을 참고했거나 자신의 추측이라며 포함시켰다. 다만 임 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행정처의 문제점을 알아보라고 한 뒤 이후 별 말이 없어 이 보고서를 김 대법원장에게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여기는 인도] 생리하는 여성, 다시 출입금지되나…대법원 판결 재검토

    [여기는 인도] 생리하는 여성, 다시 출입금지되나…대법원 판결 재검토

    가임기 여성도 힌두교 사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인도 대법원의 판결이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NDTV 등 현지언론은 14일 인도 대법원이 사바리말라 사원 관련 판결을 재검토해 달라는 극우 힌두교도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인도 케랄라주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가임기 여성의 출입을 금지한 ‘사바리말라’ 사원의 조치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생리 기간만 아니면 여성들도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다른 사원과 달리, 사바리말라는 10세~50세 사이 모든 여성의 출입을 금지해 ‘금녀의 구역’으로 통한다. 법원 판결 이후 수십 명의 여신도가 경찰 호위 아래 4.5㎞를 걸어 사바리말라 사원을 찾았지만, 보수 힌두교 세력과 사원 승려의 저지에 막혀 100m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을 정도다. 극우 힌두교인들은 “신앙이 법에 앞선다”며 여신도와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폭행했다.올해 초 30~40대 2명이 가임기 여성 최초로 사원에 잠입했을 때는 곳곳에서 폭력 시위가 벌어져 시위대 수천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판결을 재검토하라는 청원 역시 60건 넘게 제기됐다. 끝없는 논란 속에 란잔 고고이 인도 대법원장은 14일 “이건 사바리말라 사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고 판결 재검토 뜻을 밝혔다. 대법원은 7명의 재판관을 선임해 해당 판결에 대한 재검토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사바리말라 사원을 지지하는 인도국민당의 영향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을 내놨다. 인도 연방 정부를 장악한 인도국민당은 힌두 민족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역시 케랄라주의 조치가 “역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대법원의 재검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전 판결의 효력이 유지돼 여성 신도의 사원 출입이 법적으로 보장되긴 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그간 사원 출입권을 따내기 위해 힘겹게 싸워온 여신도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힌두교는 여성의 생리를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초경 이후 가임기 여성은 오염됐다고 여겨 가족과 격리시킨다. 부엌에서 요리된 음식도 먹을 수 없으며,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소와 물에는 접촉도 할 수 없다. 이 같은 ‘차우파디’ 관습 때문에 올해 초 네팔에서는 아이들과 격리돼 헛간에 갇혀 있던 여성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대법원장 차에 화염병’ 70대 실형 확정...“정당방위 아니다”

    ‘대법원장 차에 화염병’ 70대 실형 확정...“정당방위 아니다”

    소송 결과에 불만 품고시너 담긴 페트병 던져1심 “법치주의 공격”징역 2년 선고 확정김명수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남성이 실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는 14일 현존자동차방화 혐의로 기소된 남모(75)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남씨는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김 대법원장을 태운 차가 정문으로 진입하자 시너가 담긴 플라스틱 페트병에 불을 붙인 뒤 차량을 향해 던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남씨가 던진 화염병은 김 대법원장 차량에 맞아 조수석 뒤 타이어에 불이 붙으며 큰 피해로 연결될 뻔 했지만, 다행히 현장에 있던 청원경찰이 소화기로 불을 꺼 인명 피해는 없었다. 강원 홍천에서 돼지 농장을 운영한 그는 2013년 유기축산물 친환경인증 관련 부적합 통보를 받은 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도 최종 패소하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1인 시위를 하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의 쟁점은 남씨의 행위가 정당방위 내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심은 “재판의 일방 당사자가 자신의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리적인 공격을 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 재판 제도와 법치주의 제도를 부정하고 공격한 것”이라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2심도 정당행위였다는 남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이를 알리기 위해 사람이 타고 있는 차량에 방화하는 남씨의 행위를 자신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정당방위)라거나 그 수단과 방법에 상당성이 있는 행위(정당행위)라고 할 수 없다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결론 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신임 법관 만난 대법원장...“주변 배려 소홀하면 안 돼”

    신임 법관 만난 대법원장...“주변 배려 소홀하면 안 돼”

    ‘법조경력 5년 이상’ 신임 법관13일 대법원장과 간담회 가져법관으로서 사회적 책무 강조검사 출신 7명 등 구성원 다양김명수 대법원장이 신임 법관들에게 가족 등 주변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법관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은 13일 사법연수원에서 연수 중인 신임 법관 80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평소 ‘좋은 재판’을 강조해 온 김 대법원장은 이날도 주변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지난달 11일 신임 법관 임용식 때도 김 대법원장은 “법정에서 만나게 될 당사자는 단순한 사건처리 대상이 아니라 재판권을 위임한 국민이고, 우리 모두의 부모이자 형제”라고 말했다. 피고인에게 모욕적인 언행 등으로 사법부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대법원장이 생각하는 좋은 재판이란’, ‘법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신임법관이 갖춰야 할 자세와 덕목’,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고 대법원은 전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의 건강 관리법부터 신임 법관 시절의 에피소드 등 개인적 사항에 대해서도 격의없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내년 2월까지 연수를 받고 3월 1일자로 각급 법원에 배치되는 신임 법관들은 법조 경력 5년을 채운 이들로 지난달 임용됐다. 이중 검사 출신은 7명, 태평양·광장 등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생활을 한 법관도 42명에 이른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서울동부·대전지법도 판사들이 법원장 추천

    내년 초 법원 정기 인사 때 서울동부지법과 대전지법 법원장도 해당 법원 판사들의 추천을 통해 뽑기로 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11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을 통해 “서울동부지법과 대전지법을 2020년 법원장 후보 추천제 시범 실시 대상 법원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내년 정기인사 기준으로 법원장 재직 기간 2년을 채운 지방법원은 서울중앙·동부·서부지법, 대전지법 등 8곳이다. 통상 법원장은 한곳에서 2년 근무한다. 조 처장은 “법원 규모, 법원장 후보 조건을 갖춘 법관의 수 등을 종합 고려해 2개 법원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말 의정부지법과 대구지법에서 처음 실시됐다. 대구지법 판사들은 3명의 부장판사를 추천했고, 이 중 한 명인 손봉기(54·22기) 부장판사가 법원장에 임명됐다. 반면 의정부지법 판사들이 단수 추천한 신진화(58·29기) 부장판사는 사법 행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결국 배제됐다. 대법원은 이를 감안해 추천 절차는 소속 법관들의 자율에 맡기면서도 법조 경력 22년(사법연수원 27기) 이상 및 법관 재직 경력 10년 이상 법관들만 후보자가 될 수 있도록 조건을 뒀다. 또 3명 안팎의 법원장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도록 했다. 고법 소속 법관들은 후보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들 법원은 다음달 23일까지 추천 결과를 대법원에 송부해야 한다. 추천제 결과를 반영한 법원장 보임 인사는 2020년 법원장 및 고법 부장판사 정기인사 발표 예정일인 내년 1월 31일쯤 함께 이뤄질 예정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4회] ‘피의 칼바람’ 예고한 중복가입 해소조치… “무슨 소용있나 생각”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4회] ‘피의 칼바람’ 예고한 중복가입 해소조치… “무슨 소용있나 생각”

    “피의 칼바람이 불겠구나.” 2017년 2월 13일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중복가입한 전문분야연구회 탈퇴 등에 관한 안내말씀’이라는 공지글이 게재됐다. 글이 올라오기 전 전산 등 기술적 실무를 담당한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이 공지사항의 내용을 듣고 ‘피의 칼바람’을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구 속에 담긴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가운데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기 위한 조치로 시행된 것이라고 검찰이 지목한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영한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로 적시돼 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3회 재판에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정보화심의관으로 일한 이상엽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 전 심의관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글을 작성한 김민수 당시 기획조정심의관(현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에게 연구회의 중복금지를 제한하는 방안이 가능한지 기술적 검토를 요청받았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지난 7월 19일 이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이 전 심의관과 기술적인 사항을 통화하면서 검토를 부탁하니 ‘피의 칼바람이 불겠구나’라며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여 전산정보관리국도 (조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임 전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지시를 받아 김 부장판사가 검토한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판사들이 활동하던 각 연구회의 커뮤니티에서 최초 가입한 연구회 한 곳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동 탈퇴하도록 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2016년 국회와 감사원에서 예산이 중복 사용되고 있고, ‘전문분야연구회의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예규’에 중복가입을 금지한 조항이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되면서 지켜지지 않는 점 등이 지적됐다는 것이 중복가입 해소조치의 명분이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 기술검토한 前정보화심의관 “기조실 결정 따른 것”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축소시키고 와해시키려는 목적이 담긴 조치였다는 것이 지난해 대법원의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를 거쳐 드러났다. 2011년 시작돼 다른 연구회에 비해 늦게 꾸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자동적으로 탈퇴조치 되면서 회원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사법부 수뇌부의 판단이었다고 검찰은 지적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인사모)’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내 반드시 정리하겠다”고 벼를 만큼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상고법원을 비롯해 법원행정처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사법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판사들 가운데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 회원이 많자 양 전 대법원장의 ‘트라우마’가 발동했다. 2003년 ‘사법파동’을 이끌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신인 우리법연구회와 모임을 이끌던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던 양 전 대법원장이 비판을 많이 들은 뒤 계속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1년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뒤 꾸려졌고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맡았다. 김 부장판사는 2017년 2월 6일 이 전 심의관에게 이메일로 보내며 중복가입 해소조치 관련 기술적 조치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전 심의관은 자신의 상급자인 이영훈 전산정보관리국장(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게 보고했다. 김 부장판사와 몇 차례 검토결과를 주고받은 이 전 심의관에게 그해 2월 13일 코트넷에 게시할 공지글의 최종본이 도착했다. 김 부장판사가 속한 기획조정실에서 모두 주도한 일이고 이 전 심의관은 기술적인 검토만 했을 뿐인데 공지사항은 임 전 차장이나 이 전 상임위원이 아닌 전산정보관리국장의 명의로 게시됐다. 이 전 심의관은 “다른 실국의 공지사항을 전산정보관리국장 명의로 게시한 것은 그 글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심의관은 김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밝힌 ‘피의 칼바람’ 발언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한 기억 자체가 없고, 2016년 초에 김 부장판사를 만났을 때 전문분야연구회 예규에 따라 중복가입이 허락되지 않는데 관행적으로 중복가입이 돼 있다, 국회와 감사원에서 예산 중복지원을 지적받았다는 설명을 들은 적은 있다”고만 설명했다. 당시 이 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압박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심의관은 검찰 조사에서 “(글이 게시되면) 전산정보관리국장이 욕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역시 특정 연구회를 축소시키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기 보다는 중복가입을 한 판사들이 많기 때문에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 변호인은 반대신문 과정에서 “당시 법관 수가 총 3000명에 못 미쳤는데 전문분야연구회 가입 수가 7000명이 넘어서 중복가입을 해소하면 많은 판사들이 피해를 입고 비난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라는 질문에 이 전 심의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고 전 대법관 변호인이 “이런 의미에서 ‘피의 칼바람이 부는구나’라고 말했다는 진술이 있던데”라고 묻자 “제가 말씀드렸듯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말을 했다면 그런(중복가입한 판사들이 워낙 많아 비난받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말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고 이 전 심의관은 이날 밝혔다. “실제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것이 있고 코트넷을 통해 연구회 커뮤니티를 지원했을 뿐입니다. 코트넷에서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것이지 전문분야연구회에 대한 게 아닙니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법원 전산망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지 못할 뿐 다른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 되는데 왜 이런 조치를 하는지 의아했습니다. 기획조정실이 결정했다고 하니 따른 것 뿐입니다.” 2월 13일 게시글이 공지되면서 시행된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판사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일주일 만에 유보하기로 하고 중단됐다. 일주일간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한 회원은 28명이었고,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연구회를 탈퇴한 회원이 73명이었다. ●검찰, ‘부정적 근무평정’ 김문석 사법연수원장 증인신청…재판장 “필요성 낮아” 이 전 심의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치고 그동안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조서 등 서류증거조사를 진행하던 법정에서는 새로운 증인신청을 두고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서증조사가 마무리된 뒤 오후 7시 30분쯤 재판부는 “검찰이 추가로 증인을 신청했다”며 김문석 사법연수원장을 언급했다. 검찰은 2015년 당시 서울행정법원장이던 김 원장을 불러 ‘통합진보당 의원 행정소송’ 재판장이던 반정우 부장판사에 대한 인사평정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당시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으로 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한 행정처 입장을 반 부장판사에게 전달했는데 반 부장판사가 이에 반대되는 판결을 낸 과정을 설명했다. “위헌정당으로 해산 결정된 정당의 의원직 지위확인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부분이라며 각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행정처의 입장이었는데 반 부장판사는 헌재가 판단해야 한다며 각하 결정을 했다. 그해 반 부장판사의 근무평정에는 ‘일부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면서 객관적인 여러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논리적 모순이나 입증책임에 반하는 판시도 보임’이라는 부정적인 문구가 쓰였는데, 조 부장판사는 자신이 근무평정의 초안을 작성했지만 이 문구들은 자신이 쓴 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검찰은 당시 법원장이던 김 원장이 이 문구를 작성한 것이 아닌지 김 원장을 법정에 불러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부터 검찰의 증인신청에 반감을 내비쳤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이 공소사실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은 임종헌, 이규진, 조한창, 반정우 정도로 이 관계인들은 반드시 증인신문을 필요하지만, 검찰이 신청한 김 원장은 조사의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간접증인인 김 원장을 부르기 위해선 반 부장판사 평정표 기재를 한 것이 김 원장이고, 김 원장이 피고인들의 지시 때문에 이러한 문구를 작성한 것인지 사정을 추론할 수 있을 정도로 소명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도 “김 원장이 공모해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것은 기소되지 않은 별도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수사하는 정도로 증인을 신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원장을 검찰이 불렀지만 재판하는 법관으로서 어떻게 검찰 조사에 나가냐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면서 “법정에서 김 원장이 이 평정표를 작성했다는 것이 명확해진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명분이 생겼는데 이 정도로도 안 된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은 포기해야 하는 건가“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김 원장에 대한 증인 채택 여부를 추후 결정하기로 하고 재판을 마쳤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3회] “재판부에 법리 전달 좀…” 동기법관의 ‘찜찜한 요청’ 거절못한 이유는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3회] “재판부에 법리 전달 좀…” 동기법관의 ‘찜찜한 요청’ 거절못한 이유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재판에 나오는 전·현직 법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이 가담한 행위들이 재판 개입 의혹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에 부적절했다고 말한다. 일선 법원 재판부에 특정 사건에 대한 내용을 파악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하거나 법원행정처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일을 지시받았을 때에도 당황스럽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시를 거부하거나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상급자들의 지시를 받은 경우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사법행정조직의 분위기 또는 평가가 직설적인 상급자의 업무 성향 등이 거부할 수 없던 이유로 주로 거론됐다. 그런데 상급자가 아닌 동기 법관의, 지시 아닌 제안이라고 해서 거부나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 고위 법관이 법정에서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평판’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2회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얘기다. 2015년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였던 조 부장판사는 그해 5월 26일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 강남의 한 일식당에서 초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였고 서울고등법원에서도 함께 근무해 가까웠다. 조 부장판사는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는 이 전 상임위원의 전화에 편한 마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전 상임위원이 서류봉투를 건네면서 조 부장판사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서류봉투 안에 담긴 이 문건은 그해 1월 7일자 김종복 전 사법정책심의관 등 법원행정처 통진당 태스크포스(TF)에서 작성한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 보고서에서 법원 이미지(CI)와 작성자를 빼고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 방법’을 추가한 문건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에 대한 해산결정을 한 뒤 통진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직 지위 확인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낸 것에 대한 판단 방향을 정리한 것이다. 소송 경위부터 사건의 구조, 행정소송에 대한 학계 입장 등과 함께 법원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이 돼있고 각 예상 주문별로 시나리오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맛있는 점심 먹자”던 이규진, 스시집에서 내민 서류봉투엔 ‘판결 방향’ 정리된 문건 이 전 상임위원은 봉투에서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문건을 꺼내 본 조 부장판사에게 “통진당 사건에 대해 검토한 내용이니 잘 읽어봐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건에는 사건 처리의 방향이 담겼다. “헌재와 관련 있는 사건이니 각하하는 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이 전 상임위원이 말했는지 검찰이 물었지만 조 부장판사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했다. “그냥 전반적으로 ‘법률 규정이 없다’며 국회의원 지위와 정당해산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면서 “제가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정당해산과 그 소속 지역구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의 지위 상실과 관련된 명문 규정이 없어서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문건을 재판부에도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조 부장판사는 진술했다. 조 부장판사는 순간 “이걸 어떻게 재판부에 주느냐”고 반발했다고 했다. “그런, 재판부 관련된 부탁을 받아본 적도 경험이 없어 거부감이 있었고 문서 자체가 각하, 기각, 인용 등 (상황별로) 이유와 근거들이 나열돼 있는 것을 보고 그 자체가 판결문에 작성되는 거라서 재판부에 직접 준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조 부장판사가 난색을 표하자 이 전 상임위원은 “잘 읽어보시고 재판부에 법리를 전달해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직접 (법리 등 문건의 내용을 재판부에 전달해달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닌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런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조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법리를 전달해 달라던 이 전 상임위원의 이야기를 행정처 차원의 입장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 전 상임위원이 특별히 개인적으로 관심 가질 만한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냥 직접 하지, 왜 나한테 (부탁)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문건을 받은 것 자체가 찝찜해서” 이 전 상임위원에게 받은 문건은 파쇄를 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는 결국엔 법원장과 해당 재판부에 문건 속 내용들을 전달했다. 당시 김문석 서울행정법원장에게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 이야기를 했는데 “보고를 드린 건지, 다른 말씀을 드리면서 드렸을 수도 있고 정확하지는 않다”고 그는 설명했지만 어쨌든 사건 이야기를 법원장에게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해 7월쯤엔 통진당 행정소송을 맡은 행정13부 재판장인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각하로 결론내는 것은 법리적인 문제가 있으니 신중히 검토해보라”는 취지의 뜻을 전했다. 단 둘이 있을 때는 아니고 부장판사들 서너명과 회식을 하게 된 자리에서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다 중요사건이 거론되자 ‘마침 기회가 됐다’며 반 부장판사에게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반 부장판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기만 했다고 한다. ●찜찜하지만 거절하지 못한 이유… “그런 일도 못하냐는 평판 문제 때문” “(재판부의 법리를 전달해 달라는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이 묻자 조 부장판사는 “허허” 웃었다. 그리곤 말을 이어갔다. “제가 검찰 조사에서도 말했듯… 평판의 문제로 그랬습니다. 업무를, 그런 업무도 못하느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제가 두루두루 잘, 이렇게 좋은 소리를 듣는 성격이라서 그런 취지에서 이걸 만약에 제대로 안 하면 좋지 않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뒤로 검찰과 조 부장판사의 문답이 이어졌다.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건, 누가 그렇다는 겁니까” (검사) “이 전 상임위원도 그럴 수 있고…” (조 부장판사)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이 사실상 대법원의 요청으로 이해됐고, 행정처에서 업무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검사) “전체적으로 보면 취지는 맞는데, 법원행정처 처장, 차장 이렇게 특정한 건 아니고 행정처 내에서 그렇게(업무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정도였습니다.”(조 부장판사) “증인은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문건을 받은 뒤 재판부에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심리적 부담을 느꼈습니까?” (검사) “통상적으로 그런 걸 해본 적도 없고 저도 재판을 30년 가까이 하며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부분은 생소한 경험이어서 좀 주저한 건 있었습니다.”(조 부장판사)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되면 질책받을 것을 걱정한 겁니까?” (검사) “질책이야 뭐 하겠습니까.” (조 부장판사) “증인은 당시 통진당 행정소송의 구체적 주문에 대한 결론이 적힌 문건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게 부적절한 재판개입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전달을 안 한 것입니까?” (검사) “재판개입인지 여부는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고요. 그걸 전달하거나 받아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조 부장판사) “부적절하다는 인식은 했습니까?” (검사) “네. 적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조 부장판사) “그렇지만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서 문건 내용을 구두로 재판부에 전달한 사실은 있습니까?” (검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한 건 아니고 대략적 내용은 말했습니다.” (조 부장판사) 결국 문건을 직접 건네지는 않았지만 문건 속 핵심 내용은 반 부장판사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고민을 하던 끝에 부장판사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중요사건이 거론되자 말을 꺼냈는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반 부장판사. 조 부장판사는 그의 표정을 비롯한 반응을 이 전 상임위원에게 “재판부에 전했다”는 취지로 다시 전달을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떨떠름하더라, 시큰둥하더라”라는 취지의 피드백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해 11월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반정우)는 통진당 국회의원들의 행정소송에 대해 “헌재의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 결정은 헌재가 정당의 해산심판을 관장하는 범위에서 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통진당 해산이라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직접 적용해 이끌어낸 결론에 해당하므로, 법원이 이를 다시 심리·판단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을 침해한다”면서 소송을 각하하는 판결을 했다. 헌재와의 위상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던 행정처가 원하던 방향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각하 판결 소식을 들은 박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이 전 상임위원에게 “행정처 입장이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된 게 맞느냐”며 강하게 질책했다고 지적했다. 반 부장판사의 그해 근무평정에는 이런 기록이 남겨졌다. ‘일부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면서 객관적인 여러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논리적 모순이나 입증책임에 반하는 판시도 보임’. 조 부장판사는 수석부장판사인 자신이 근무평정표의 초안을 작성했다면서도 이러한 표현들을 쓰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종헌 전화받고 ‘서기호 재판’ 사건번호 검색하며 재판부에 연락 조 부장판사는 그해 서기호 전 의원 재판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는 박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에도 연루됐다.서 전 의원은 서울북부지법 판사로 근무하다 2012년 2월 판사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뒤 그해 7월 통진당 비례대표를 승계해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한 서 전 의원은 그해 8월 28일 서울행정법원에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연임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 취소소송’을 냈다. 검찰은 소송이 접수된 때부터 행정처에서 조직적으로 소송 진행상황을 관리하거나 서 전 의원이 법사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알리는 등 재판이 법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인 것으로 파악했다. 2012년 12월 18일 첫 변론기일이 열린 뒤 계속 추정(기일을 추후 지정하기로 하고 기일진행을 보류하는 것)되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은 정다주 당시 기획조정심의관에게 서 전 의원의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의원은 2014년 2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재판부를 상대로 세 차례 자신의 근무평정 자료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내려줄 것을 신청했다. 2015년 1월 15일 재판부가 서술식 근무평정 자료에 대한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기각하자 서 전 의원은 1월 27일 항고했고, 다시 3월 6일 항고가 기각되자 3월 17일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몇 차례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변경됐다를 반복하다 그해 1월 22일로 예정됐던 재판은 문서제출명령 신청 문제로 또 추정됐다. 그리고 그해 5월 22일 대법원 역시 서 전 의원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2015년 3월 27일,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였던 조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을 통해 서 전 의원의 사건을 검색했다. 오후 3시 19분부터 51분까지 6차례를 검색했다. 그 직전인 오후 3시 14분에는 임 전 차장이 서 전 의원의 사건을 검색했다. 임 전 차장이 사건검색을 한 뒤 1월 22일 재판이 추정된 내용 등을 확인하고 조 부장판사에게 연락한 것이다. 임 전 차장이 사건번호를 불러주면서 “이런 사건이 있는데, 추정돼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좀 알아봐달라”는 취지의 통화였다고 조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전화를 받은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불러준 사건번호를 다시 검색했고, 재판부와 재판장을 확인했다. 조 부장판사는 곧바로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 재판장인 박연욱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부장판사의 전화를 받은 박 부장판사는 오후 5시 24분, 25분, 28분 각각 서 전 의원의 사건을 코트넷으로 검색했다. 다만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요청이 재판부에 직접 연락해서 확인해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이 지시한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추정된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생각해보면 문서제출명령 신청 항고 때문에 추정돼 있는 것 말고 다른 사유가 있는지 그걸 알고 싶은 게 아닌가 추측했다”고만 말했다. 재판부에 직접 물어보라는 지시로 이해하지는 않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런데도 박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건 조 부장판사는 직접 특별한 추정 사유가 있는지 물었다. 조 부장판사는 “제가 부담을 주려고 했다는 생각은 없었고 단순히, 이게 국회의원 사건이고 장기미제 사건이기 때문에 관리를 해야해서 그런 차원에서만 말한 것”이라며 박 부장판사에게 부담이나 영향을 주려는 의도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판사에게 들은 추정 사유도 재항고 때문인 것 같다는 자신이 추측한 내용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종결하라고 종용 안 했다…공소장 내 진술과 달라 기분 나빠” 그로부터 두 달 뒤인 5월 29일 오전 9시 46분. 조 부장판사는 다시 서 전 의원 사건을 검색했다. 처음 검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임 전 차장의 연락을 받은 뒤였고, 임 전 차장은 서 전 의원이 재항고한 문서제출명령 신청이 결국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재판 진행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임 전 차장 지시의)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진행이 가능한지, 진행할 수 있으면 해달라는 취지였다”고 기억했다. 그동안 재판이 열리지 못한 이유가 문서제출명령 신청 항고와 재항고 때문이었는데 이제 그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마무리됐으니 재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이후 조 부장판사는 다시 박 부장판사에게 전화해 문서제출명령 재항고가 기각됐음을 알려주었고 박 부장판사는 “그런가요?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박 부장판사의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을 조 부장판사에게 전했다. “박 부장판사가 검찰에서 진술할 때는 ‘재항고가 끝났다는 말을 조 부장판사에게 들었을 때 재항고가 끝난 사실만 알려주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문서제출명령 신청이 기각됐으니까 원 사건을 종결시키라는 임 전 차장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연락한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게다가 조 부장판사가 박 부장판사와 통화하며 “행정처에서 물어보는데…”라고 말한 뒤 사건의 진행 관련 질문을 했기에 더욱 박 부장판사로서는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받은 것으로 이해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는 “종결해 달라고 말한 적 없다”면서 “행정처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의 사건으로 장기미제사건이었으니 진행해야 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반박했다. 조 부장판사와 통화를 한 뒤인 그해 6월 1일 박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근무하던 서기보에게 서 전 의원의 변론기일을 7월 2일로 입력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사건을 조속히 종결하라는 취지의 증인의 연락을 받고 기일을 정한 것 아닌가” 물었지만 조 부장판사는 종결을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 부장판사는 같은 취지의 질문이 검찰과 변호인과의 신문에서 반복되자 목소리를 높였다. “공소장에는 제가 종결을 종용했고 결론도 피고 패소로 하라고 (박 부장판사에게) 말했다고 적혀있는데 그 부분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문이고 검찰에 묻고 싶다”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조사받을 때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통진당 소송 관련해서도 “검찰이 공소사실을 발표했을 때 제가 조사받을 때의 내용과 다르게 나와서, 제가 말하지 않은 내용이 어떻게 공소사실이 되는지 기분이 나쁘다면 나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소사실에는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으로 해산된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직위 상실에 대한 판단 권한이 헌재에 있다고 보는 것이 부적절하고, 사법부에 판단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행정처 입장을 반 부장판사에게 직접 전달해 반 부장판사의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적시됐는데 그런 입장을 전달하지는 않았다는 게 조 부장판사의 주장이다. 조 부장판사는 자신이 조사를 받을 때 조서를 함께 열람한 검사가 법정에 나왔는지도 물으면서 “(진술)내용은 ‘각하 등 법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조서에 ‘등’이 빠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판사 ‘잦은 인사이동’ 줄이기 위해…대법원, 비인기법원 장기근무 검토

    판사 ‘잦은 인사이동’ 줄이기 위해…대법원, 비인기법원 장기근무 검토

    내년 지방권 근무 법관 100명 이상 부족 상황 대법원이 판사들의 잦은 인사이동을 줄이기 위해 이르면 2021년 인사부터 판사들의 선호도가 낮은 지방법원에 법관이 장기근무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6일 ‘비경합법원 장기근무제도’에 대한 설명자료를 전날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게시했다고 밝혔다. 최근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밝힌 ‘2020년 법관인사제도 운영방향’에도 포함된 내용이다.현재 법관들의 전보인사는 서울권·경인권·지방권을 2~3년 단위로 순환하는 전국단위 전보인사가 원칙이다. 이를 두고 잦은 전보인사로 재판부가 변경도 잦아 법관들의 업무 효율성과 연속성이 떨어지고 재판을 받는 국민들도 법관 인사에 따라 심리가 지연되는 등 사법서비스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또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 이후 줄곧 인사를 포함한 사법행정 관련 권한들을 내려놓고 있는 가운데 법관들의 전보인사 권한 역시 점점 줄여간다는 취지도 담겼다. 특히 내년 정기인사를 앞두고 지방권 근무 법관이 100명 이상 부족한 상황으로 지방권 근무를 2년째 하고 있는 부장판사급(사법연수원 32기) 법관들의 다수가 지방근무가 1년씩 연장되게 돼 내부 불만도 높아진 상황이다. 또 법조일원화로 판사가 되기 위한 최소 법조경력이 지금은 5년이지만 2026년 이후 10년으로 상향돼 30~40대 법조인들이 짧은 주기로 전국 각지를 옮겨다녀야 하는 판사 지원을 꺼릴 수 있는 등 장기적으로 지금과 같은 전보인사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대법원은 “단기적인 인사패턴의 변화로 지방권 근무법관을 확보하는 방안은 있겠지만 결국 현재와 같이 매년 1000명이 넘는 판사에 대해 전보가 이뤄지는 불합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전보인사를 점차 줄여나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장기근무 희망자가 일정 비율 미만인 ‘비경합법원’에 장기근무할 법관들을 선정해 상당 기간 전보 없이 한 법원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볼 것을 제안했다. 2015년 폐지된 지역법관(향판)제도 이후 만들어진 ‘지역계속근무법관’ 제도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김 대법원장이 참여하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는 지난 9월 26일 첫 회의에서 대법원장의 전보 권한 축소 방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자문회의 내 법관인사분과위원회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검토하기로 했고, 이날부터 접수가 시작된 법관들의 인사희망원을 통해 설문조사를 거쳐 법관들의 의견도 수렴할 계획이다. 이르면 2021년 정기인사부터 시행될 것으로 대법원은 전망했다. 대법원은 또 판사들이 직접 법원장 후보를 추천해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서울동부·서부지법과 서울행정법원, 대전지법, 청주지법 등 8곳 가운데 4곳에 대해 내년 법원장 인사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올해 처음 시도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대구지법과 의정부지법에서 시범 실시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사설] 재판 공정성 예산 끌어다 공관 개보수한 한심한 대법원

    대법원장 공관 개보수를 위해 4억 7000만원을 다른 예산에서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그 가운데 2억 7875만원은 재판의 공정성 향상을 위한 ‘사실심(1·2심) 충실화’ 예산이었다. 재판의 신뢰도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사법 개혁 사업의 하나였다. 어떻게 이런 명목의 예산을 전용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총 개보수 비용은 16억 7000만원이었다. 국회와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 심의 과정에서 “15억~16억원은 너무하니 10억원 미만으로 하라”고 지적을 받고도 이를 무시했다. 건물에만 들어간 예산은 약 11억원으로 이 가운데 약 8억원은 벽돌이던 건물 마감재를 고급 석재 라임스톤으로 바꾸는 데 쓰였다. 이 석재는 ‘크레마 오로’(황금빛 크림)라 불리는 이탈리아제로 알려졌다. 공관의 지붕과 창틀·문짝 공사엔 2억 6500만원, 페인트칠·벽지교체 등 내부 마감 공사 등에는 1억원이 들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에 버스를 타고 나타나고, 대법원장 면담에 지하철을 이용해 많은 인기를 끌며 등장했다. 그러나 강남 아파트를 분양받은 아들 부부가 대법원장 공관에서 동거하는 것이 알려져 재산증식을 위한 ‘공관 재테크’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시위가 한창인 홍콩에서 공식 일정을 마친 뒤 김 원장 부부가 주말관광을 하겠다며 현지 영사관에 의전과 가이드 등을 요청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도덕률에서도 필부 이상의 기준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정도다. 감사 결과 법원행정처와 각급 법원은 해외 파견 중인 법관·법원 공무원들에게 지급해선 안 되는 재판수당과 재판업무수당을 지급했다. 서울가정법원 등 법원 28곳은 사용이 제한된 시간대에 증빙 자료 없이 집행하다 적발됐다. 이것이 우리 법원과 법관들의 수준이라니 부끄러운 일이다.
  • 법 무시하는 법원…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에 예산 4억여원 무단 사용

    법 무시하는 법원…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에 예산 4억여원 무단 사용

    2017년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이뤄진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면서 법원행정처가 5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전용하거나 국회 의결 없이 제멋대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4일 공개한 대법원 재무감사 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대법원장 공관(대지 면적 7100㎡에 연면적 1319㎡) 리모델링 사업비 15억 5000여만원을 요구했으나 국회가 비용 과다로 10억여원만 편성했다. 그러자 법원행정처는 국회가 의결한 공사비보다 6억 7000만원이 많은 16억 7000만원의 예산을 다시 배정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다른 사업의 예산을 무단으로 끌어다 썼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과정에서 이런 점이 문제로 지적되자 감사원이 대법원에 대한 별도 재무감사에 나섰고 그 결과 예산 전용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감사는 단순히 공관 리모델링 사업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적발한 데 그치지 않고 헌법기관인 대법원이 외려 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어 주목된다. 첫째 법원행정처는 ‘국가재정법’을 지키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는 당초 요구한 예산이 국회에서 깎이자 ‘사실심(1·2심) 충실화’ 예산이었던 2억 7000여만원을 기획재정부 장관 승인 없이 전용했고, ‘법원시설 확충·보수’ 예산 가운데 1억 9000여만원을 국회 의결 없이 이용하는 등 총 4억 7510만원을 무단 이용·전용했다. 둘째 ‘국가계약법’을 어겼다. 리모델링 사업은 국가계약법상 외부 마감, 창호, 도로포장 등 ‘공사계약’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국가계약법상 물품·용역계약에만 적용할 수 있는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해 적격성, 계약이행능력, 최저가 금액 등의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 감사원은 “법원행정처는 국회가 편성한 예산의 범위와 목적을 초과해 예산을 무단으로 이용 또는 전용했고, 공사계약에 적용할 수 없는 낙찰자 결정 방법을 잘못 적용했다”고 지적하며 주의 조치를 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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