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대법관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엠넷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레이저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투신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 기준금리
    2025-12-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879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4회] ‘피의 칼바람’ 예고한 중복가입 해소조치… “무슨 소용있나 생각”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4회] ‘피의 칼바람’ 예고한 중복가입 해소조치… “무슨 소용있나 생각”

    “피의 칼바람이 불겠구나.” 2017년 2월 13일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중복가입한 전문분야연구회 탈퇴 등에 관한 안내말씀’이라는 공지글이 게재됐다. 글이 올라오기 전 전산 등 기술적 실무를 담당한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이 공지사항의 내용을 듣고 ‘피의 칼바람’을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구 속에 담긴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가운데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기 위한 조치로 시행된 것이라고 검찰이 지목한 ‘전문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영한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로 적시돼 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3회 재판에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정보화심의관으로 일한 이상엽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 전 심의관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글을 작성한 김민수 당시 기획조정심의관(현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에게 연구회의 중복금지를 제한하는 방안이 가능한지 기술적 검토를 요청받았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지난 7월 19일 이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이 전 심의관과 기술적인 사항을 통화하면서 검토를 부탁하니 ‘피의 칼바람이 불겠구나’라며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여 전산정보관리국도 (조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임 전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지시를 받아 김 부장판사가 검토한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판사들이 활동하던 각 연구회의 커뮤니티에서 최초 가입한 연구회 한 곳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동 탈퇴하도록 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2016년 국회와 감사원에서 예산이 중복 사용되고 있고, ‘전문분야연구회의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예규’에 중복가입을 금지한 조항이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되면서 지켜지지 않는 점 등이 지적됐다는 것이 중복가입 해소조치의 명분이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 기술검토한 前정보화심의관 “기조실 결정 따른 것”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축소시키고 와해시키려는 목적이 담긴 조치였다는 것이 지난해 대법원의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를 거쳐 드러났다. 2011년 시작돼 다른 연구회에 비해 늦게 꾸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자동적으로 탈퇴조치 되면서 회원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사법부 수뇌부의 판단이었다고 검찰은 지적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인사모)’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내 반드시 정리하겠다”고 벼를 만큼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상고법원을 비롯해 법원행정처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사법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판사들 가운데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 회원이 많자 양 전 대법원장의 ‘트라우마’가 발동했다. 2003년 ‘사법파동’을 이끌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신인 우리법연구회와 모임을 이끌던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던 양 전 대법원장이 비판을 많이 들은 뒤 계속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1년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뒤 꾸려졌고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맡았다. 김 부장판사는 2017년 2월 6일 이 전 심의관에게 이메일로 보내며 중복가입 해소조치 관련 기술적 조치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전 심의관은 자신의 상급자인 이영훈 전산정보관리국장(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게 보고했다. 김 부장판사와 몇 차례 검토결과를 주고받은 이 전 심의관에게 그해 2월 13일 코트넷에 게시할 공지글의 최종본이 도착했다. 김 부장판사가 속한 기획조정실에서 모두 주도한 일이고 이 전 심의관은 기술적인 검토만 했을 뿐인데 공지사항은 임 전 차장이나 이 전 상임위원이 아닌 전산정보관리국장의 명의로 게시됐다. 이 전 심의관은 “다른 실국의 공지사항을 전산정보관리국장 명의로 게시한 것은 그 글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심의관은 김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밝힌 ‘피의 칼바람’ 발언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한 기억 자체가 없고, 2016년 초에 김 부장판사를 만났을 때 전문분야연구회 예규에 따라 중복가입이 허락되지 않는데 관행적으로 중복가입이 돼 있다, 국회와 감사원에서 예산 중복지원을 지적받았다는 설명을 들은 적은 있다”고만 설명했다. 당시 이 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압박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심의관은 검찰 조사에서 “(글이 게시되면) 전산정보관리국장이 욕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역시 특정 연구회를 축소시키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기 보다는 중복가입을 한 판사들이 많기 때문에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 변호인은 반대신문 과정에서 “당시 법관 수가 총 3000명에 못 미쳤는데 전문분야연구회 가입 수가 7000명이 넘어서 중복가입을 해소하면 많은 판사들이 피해를 입고 비난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라는 질문에 이 전 심의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고 전 대법관 변호인이 “이런 의미에서 ‘피의 칼바람이 부는구나’라고 말했다는 진술이 있던데”라고 묻자 “제가 말씀드렸듯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말을 했다면 그런(중복가입한 판사들이 워낙 많아 비난받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말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고 이 전 심의관은 이날 밝혔다. “실제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것이 있고 코트넷을 통해 연구회 커뮤니티를 지원했을 뿐입니다. 코트넷에서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것이지 전문분야연구회에 대한 게 아닙니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법원 전산망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지 못할 뿐 다른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 되는데 왜 이런 조치를 하는지 의아했습니다. 기획조정실이 결정했다고 하니 따른 것 뿐입니다.” 2월 13일 게시글이 공지되면서 시행된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판사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일주일 만에 유보하기로 하고 중단됐다. 일주일간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한 회원은 28명이었고,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연구회를 탈퇴한 회원이 73명이었다. ●검찰, ‘부정적 근무평정’ 김문석 사법연수원장 증인신청…재판장 “필요성 낮아” 이 전 심의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마치고 그동안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조서 등 서류증거조사를 진행하던 법정에서는 새로운 증인신청을 두고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서증조사가 마무리된 뒤 오후 7시 30분쯤 재판부는 “검찰이 추가로 증인을 신청했다”며 김문석 사법연수원장을 언급했다. 검찰은 2015년 당시 서울행정법원장이던 김 원장을 불러 ‘통합진보당 의원 행정소송’ 재판장이던 반정우 부장판사에 대한 인사평정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당시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으로 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한 행정처 입장을 반 부장판사에게 전달했는데 반 부장판사가 이에 반대되는 판결을 낸 과정을 설명했다. “위헌정당으로 해산 결정된 정당의 의원직 지위확인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부분이라며 각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행정처의 입장이었는데 반 부장판사는 헌재가 판단해야 한다며 각하 결정을 했다. 그해 반 부장판사의 근무평정에는 ‘일부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면서 객관적인 여러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논리적 모순이나 입증책임에 반하는 판시도 보임’이라는 부정적인 문구가 쓰였는데, 조 부장판사는 자신이 근무평정의 초안을 작성했지만 이 문구들은 자신이 쓴 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검찰은 당시 법원장이던 김 원장이 이 문구를 작성한 것이 아닌지 김 원장을 법정에 불러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부터 검찰의 증인신청에 반감을 내비쳤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이 공소사실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은 임종헌, 이규진, 조한창, 반정우 정도로 이 관계인들은 반드시 증인신문을 필요하지만, 검찰이 신청한 김 원장은 조사의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간접증인인 김 원장을 부르기 위해선 반 부장판사 평정표 기재를 한 것이 김 원장이고, 김 원장이 피고인들의 지시 때문에 이러한 문구를 작성한 것인지 사정을 추론할 수 있을 정도로 소명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도 “김 원장이 공모해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것은 기소되지 않은 별도의 공소사실로, 기소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수사하는 정도로 증인을 신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원장을 검찰이 불렀지만 재판하는 법관으로서 어떻게 검찰 조사에 나가냐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면서 “법정에서 김 원장이 이 평정표를 작성했다는 것이 명확해진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명분이 생겼는데 이 정도로도 안 된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은 포기해야 하는 건가“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김 원장에 대한 증인 채택 여부를 추후 결정하기로 하고 재판을 마쳤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인도 대법원, ‘아요디아 사원분쟁‘ 힌두교 손 들어줘 충돌 우려했지만

    인도 대법원, ‘아요디아 사원분쟁‘ 힌두교 손 들어줘 충돌 우려했지만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아요디아시는 힌두교와 무슬림 갈등의 진원지로 꼽힌다. 힌두교는 이곳이 비슈누 신의 일곱 번째 화신인 라마가 탄생한 성지라고 굳게 믿는다. 라마는 인도에서 이상적인 지도자 상을 대표하며 인도인이 가장 사랑하는 신 가운데 하나다. 힌두교도들은 이곳에 본래 사원이 있었는데 16세기 초 무굴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가 ‘바브리 이슬람 모스크’를 세우며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해서 이곳에 라마 사원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이슬람교는 라마 탄생지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맞서왔다. 1992년 과격 힌두교도들이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하면서 유혈 충돌이 벌어져 2000여명이 숨진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인도 대법원이 9일 아요디아 사원을 둘러싼 분쟁에서 힌두교의 승리를 선언해 비슷한 충돌이 재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아요디아 사원 부지는 본래 힌두교 소유”라며 “부지 2.77에이커(1만 1000㎡) 전체를 힌두교 측에 주고, 이슬람교 측은 모스크를 짓기 위한 5에이커(2만㎡)의 대체부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판결했다. 양측은 2002년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고등법원은 소송 대상 부지를 힌두교에 2, 이슬람 단체에 1로 나누라고 어정쩡하게 판결했다. 양쪽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대법원은 이날 다섯 명의 대법관 만장일치로 고법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고고학 조사 결과 바보리 사원 구조물 아래에 힌두교 사원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왔다”며 “힌두교 사원을 세울 수 있도록 해당 부지를 신탁에 넘길 것”이라고 판결했다. 다만 사원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모스크를 파괴하는 일은 법치에 어긋나니 금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판결 전부터 인도 경찰은 전국의 보안을 강화하는 한편 뉴델리 대법원 주변과 아요디아시에 수천 명의 경찰을 배치했다. 또 SNS에 충돌을 선동하는 글을 게시한 사람 등 500명 이상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판결 선고 후 대규모 충돌에 대비해 임시 구치소로 쓸 학교 여러 곳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앞서 트위터에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든 누군가의 승리나 패배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선고가 인도의 평화와 단결을 강화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영국 BBC는 법정 안에서 힌두교도들의 감격에 벅찬 환호성이 들리기도 했고 대법원 밖에서 지지자들의 집회가 열렸지만 우려와 달리 대체로 평온했다고 전했다. 한편 카슈미르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관통하는 ‘시크교 순례길’을 이날 개통했다. 4.2㎞ 길이의 이 길은 인도 펀자브주(州) 지역에서 파키스탄 쪽 카르타르푸르의 시크교 대표 성지 ‘구르드와라 다르바르 사히브’를 연결한다. 카르타르푸르는 시크교의 교조 나나크가 16세기에 생애 마지막 18년을 보낸 곳이다. 하지만,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한 뒤 인도 시크교도들은 비자 발급에 어려움이 있어왔다. 두 나라는 나나크 탄생 550주년을 맞아 회랑을 개통하고, 하루 5000명의 인도 시크교도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합의해 이날 700명 이상의 시크교도가 순례길을 통과한다. 모디 인도 총리는 순례길 개통식에서 “인도 시크교도들이 성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협조해준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나라는 지난 2월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전투기를 동원해 군사적 충돌을 벌인 뒤 지난 8월 인도가 자국령 잠무-카슈미르주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등 갈등이 고조된 상태라 이날 개통식이 화해의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3회] “재판부에 법리 전달 좀…” 동기법관의 ‘찜찜한 요청’ 거절못한 이유는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3회] “재판부에 법리 전달 좀…” 동기법관의 ‘찜찜한 요청’ 거절못한 이유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재판에 나오는 전·현직 법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이 가담한 행위들이 재판 개입 의혹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에 부적절했다고 말한다. 일선 법원 재판부에 특정 사건에 대한 내용을 파악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하거나 법원행정처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일을 지시받았을 때에도 당황스럽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시를 거부하거나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상급자들의 지시를 받은 경우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사법행정조직의 분위기 또는 평가가 직설적인 상급자의 업무 성향 등이 거부할 수 없던 이유로 주로 거론됐다. 그런데 상급자가 아닌 동기 법관의, 지시 아닌 제안이라고 해서 거부나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 고위 법관이 법정에서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평판’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2회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얘기다. 2015년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였던 조 부장판사는 그해 5월 26일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 강남의 한 일식당에서 초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였고 서울고등법원에서도 함께 근무해 가까웠다. 조 부장판사는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는 이 전 상임위원의 전화에 편한 마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전 상임위원이 서류봉투를 건네면서 조 부장판사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서류봉투 안에 담긴 이 문건은 그해 1월 7일자 김종복 전 사법정책심의관 등 법원행정처 통진당 태스크포스(TF)에서 작성한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 보고서에서 법원 이미지(CI)와 작성자를 빼고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 방법’을 추가한 문건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에 대한 해산결정을 한 뒤 통진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직 지위 확인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낸 것에 대한 판단 방향을 정리한 것이다. 소송 경위부터 사건의 구조, 행정소송에 대한 학계 입장 등과 함께 법원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이 돼있고 각 예상 주문별로 시나리오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맛있는 점심 먹자”던 이규진, 스시집에서 내민 서류봉투엔 ‘판결 방향’ 정리된 문건 이 전 상임위원은 봉투에서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문건을 꺼내 본 조 부장판사에게 “통진당 사건에 대해 검토한 내용이니 잘 읽어봐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건에는 사건 처리의 방향이 담겼다. “헌재와 관련 있는 사건이니 각하하는 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이 전 상임위원이 말했는지 검찰이 물었지만 조 부장판사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했다. “그냥 전반적으로 ‘법률 규정이 없다’며 국회의원 지위와 정당해산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면서 “제가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정당해산과 그 소속 지역구 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의 지위 상실과 관련된 명문 규정이 없어서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문건을 재판부에도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조 부장판사는 진술했다. 조 부장판사는 순간 “이걸 어떻게 재판부에 주느냐”고 반발했다고 했다. “그런, 재판부 관련된 부탁을 받아본 적도 경험이 없어 거부감이 있었고 문서 자체가 각하, 기각, 인용 등 (상황별로) 이유와 근거들이 나열돼 있는 것을 보고 그 자체가 판결문에 작성되는 거라서 재판부에 직접 준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조 부장판사가 난색을 표하자 이 전 상임위원은 “잘 읽어보시고 재판부에 법리를 전달해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직접 (법리 등 문건의 내용을 재판부에 전달해달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닌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런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조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법리를 전달해 달라던 이 전 상임위원의 이야기를 행정처 차원의 입장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 전 상임위원이 특별히 개인적으로 관심 가질 만한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냥 직접 하지, 왜 나한테 (부탁)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문건을 받은 것 자체가 찝찜해서” 이 전 상임위원에게 받은 문건은 파쇄를 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는 결국엔 법원장과 해당 재판부에 문건 속 내용들을 전달했다. 당시 김문석 서울행정법원장에게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 이야기를 했는데 “보고를 드린 건지, 다른 말씀을 드리면서 드렸을 수도 있고 정확하지는 않다”고 그는 설명했지만 어쨌든 사건 이야기를 법원장에게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해 7월쯤엔 통진당 행정소송을 맡은 행정13부 재판장인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각하로 결론내는 것은 법리적인 문제가 있으니 신중히 검토해보라”는 취지의 뜻을 전했다. 단 둘이 있을 때는 아니고 부장판사들 서너명과 회식을 하게 된 자리에서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다 중요사건이 거론되자 ‘마침 기회가 됐다’며 반 부장판사에게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반 부장판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기만 했다고 한다. ●찜찜하지만 거절하지 못한 이유… “그런 일도 못하냐는 평판 문제 때문” “(재판부의 법리를 전달해 달라는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이 묻자 조 부장판사는 “허허” 웃었다. 그리곤 말을 이어갔다. “제가 검찰 조사에서도 말했듯… 평판의 문제로 그랬습니다. 업무를, 그런 업무도 못하느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제가 두루두루 잘, 이렇게 좋은 소리를 듣는 성격이라서 그런 취지에서 이걸 만약에 제대로 안 하면 좋지 않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뒤로 검찰과 조 부장판사의 문답이 이어졌다.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건, 누가 그렇다는 겁니까” (검사) “이 전 상임위원도 그럴 수 있고…” (조 부장판사)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이 사실상 대법원의 요청으로 이해됐고, 행정처에서 업무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검사) “전체적으로 보면 취지는 맞는데, 법원행정처 처장, 차장 이렇게 특정한 건 아니고 행정처 내에서 그렇게(업무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정도였습니다.”(조 부장판사) “증인은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문건을 받은 뒤 재판부에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심리적 부담을 느꼈습니까?” (검사) “통상적으로 그런 걸 해본 적도 없고 저도 재판을 30년 가까이 하며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부분은 생소한 경험이어서 좀 주저한 건 있었습니다.”(조 부장판사)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되면 질책받을 것을 걱정한 겁니까?” (검사) “질책이야 뭐 하겠습니까.” (조 부장판사) “증인은 당시 통진당 행정소송의 구체적 주문에 대한 결론이 적힌 문건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게 부적절한 재판개입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전달을 안 한 것입니까?” (검사) “재판개입인지 여부는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고요. 그걸 전달하거나 받아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조 부장판사) “부적절하다는 인식은 했습니까?” (검사) “네. 적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조 부장판사) “그렇지만 (이 전 상임위원의 요청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서 문건 내용을 구두로 재판부에 전달한 사실은 있습니까?” (검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한 건 아니고 대략적 내용은 말했습니다.” (조 부장판사) 결국 문건을 직접 건네지는 않았지만 문건 속 핵심 내용은 반 부장판사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고민을 하던 끝에 부장판사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중요사건이 거론되자 말을 꺼냈는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반 부장판사. 조 부장판사는 그의 표정을 비롯한 반응을 이 전 상임위원에게 “재판부에 전했다”는 취지로 다시 전달을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떨떠름하더라, 시큰둥하더라”라는 취지의 피드백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해 11월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반정우)는 통진당 국회의원들의 행정소송에 대해 “헌재의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 결정은 헌재가 정당의 해산심판을 관장하는 범위에서 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통진당 해산이라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직접 적용해 이끌어낸 결론에 해당하므로, 법원이 이를 다시 심리·판단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을 침해한다”면서 소송을 각하하는 판결을 했다. 헌재와의 위상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던 행정처가 원하던 방향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각하 판결 소식을 들은 박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이 전 상임위원에게 “행정처 입장이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된 게 맞느냐”며 강하게 질책했다고 지적했다. 반 부장판사의 그해 근무평정에는 이런 기록이 남겨졌다. ‘일부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면서 객관적인 여러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논리적 모순이나 입증책임에 반하는 판시도 보임’. 조 부장판사는 수석부장판사인 자신이 근무평정표의 초안을 작성했다면서도 이러한 표현들을 쓰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종헌 전화받고 ‘서기호 재판’ 사건번호 검색하며 재판부에 연락 조 부장판사는 그해 서기호 전 의원 재판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는 박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에도 연루됐다.서 전 의원은 서울북부지법 판사로 근무하다 2012년 2월 판사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뒤 그해 7월 통진당 비례대표를 승계해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한 서 전 의원은 그해 8월 28일 서울행정법원에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연임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 취소소송’을 냈다. 검찰은 소송이 접수된 때부터 행정처에서 조직적으로 소송 진행상황을 관리하거나 서 전 의원이 법사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알리는 등 재판이 법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인 것으로 파악했다. 2012년 12월 18일 첫 변론기일이 열린 뒤 계속 추정(기일을 추후 지정하기로 하고 기일진행을 보류하는 것)되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은 정다주 당시 기획조정심의관에게 서 전 의원의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의원은 2014년 2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재판부를 상대로 세 차례 자신의 근무평정 자료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내려줄 것을 신청했다. 2015년 1월 15일 재판부가 서술식 근무평정 자료에 대한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기각하자 서 전 의원은 1월 27일 항고했고, 다시 3월 6일 항고가 기각되자 3월 17일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몇 차례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변경됐다를 반복하다 그해 1월 22일로 예정됐던 재판은 문서제출명령 신청 문제로 또 추정됐다. 그리고 그해 5월 22일 대법원 역시 서 전 의원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2015년 3월 27일,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였던 조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을 통해 서 전 의원의 사건을 검색했다. 오후 3시 19분부터 51분까지 6차례를 검색했다. 그 직전인 오후 3시 14분에는 임 전 차장이 서 전 의원의 사건을 검색했다. 임 전 차장이 사건검색을 한 뒤 1월 22일 재판이 추정된 내용 등을 확인하고 조 부장판사에게 연락한 것이다. 임 전 차장이 사건번호를 불러주면서 “이런 사건이 있는데, 추정돼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좀 알아봐달라”는 취지의 통화였다고 조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전화를 받은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불러준 사건번호를 다시 검색했고, 재판부와 재판장을 확인했다. 조 부장판사는 곧바로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 재판장인 박연욱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부장판사의 전화를 받은 박 부장판사는 오후 5시 24분, 25분, 28분 각각 서 전 의원의 사건을 코트넷으로 검색했다. 다만 조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요청이 재판부에 직접 연락해서 확인해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이 지시한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추정된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생각해보면 문서제출명령 신청 항고 때문에 추정돼 있는 것 말고 다른 사유가 있는지 그걸 알고 싶은 게 아닌가 추측했다”고만 말했다. 재판부에 직접 물어보라는 지시로 이해하지는 않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런데도 박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건 조 부장판사는 직접 특별한 추정 사유가 있는지 물었다. 조 부장판사는 “제가 부담을 주려고 했다는 생각은 없었고 단순히, 이게 국회의원 사건이고 장기미제 사건이기 때문에 관리를 해야해서 그런 차원에서만 말한 것”이라며 박 부장판사에게 부담이나 영향을 주려는 의도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판사에게 들은 추정 사유도 재항고 때문인 것 같다는 자신이 추측한 내용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종결하라고 종용 안 했다…공소장 내 진술과 달라 기분 나빠” 그로부터 두 달 뒤인 5월 29일 오전 9시 46분. 조 부장판사는 다시 서 전 의원 사건을 검색했다. 처음 검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임 전 차장의 연락을 받은 뒤였고, 임 전 차장은 서 전 의원이 재항고한 문서제출명령 신청이 결국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재판 진행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임 전 차장 지시의)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진행이 가능한지, 진행할 수 있으면 해달라는 취지였다”고 기억했다. 그동안 재판이 열리지 못한 이유가 문서제출명령 신청 항고와 재항고 때문이었는데 이제 그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마무리됐으니 재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이후 조 부장판사는 다시 박 부장판사에게 전화해 문서제출명령 재항고가 기각됐음을 알려주었고 박 부장판사는 “그런가요?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박 부장판사의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을 조 부장판사에게 전했다. “박 부장판사가 검찰에서 진술할 때는 ‘재항고가 끝났다는 말을 조 부장판사에게 들었을 때 재항고가 끝난 사실만 알려주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문서제출명령 신청이 기각됐으니까 원 사건을 종결시키라는 임 전 차장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연락한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게다가 조 부장판사가 박 부장판사와 통화하며 “행정처에서 물어보는데…”라고 말한 뒤 사건의 진행 관련 질문을 했기에 더욱 박 부장판사로서는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받은 것으로 이해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는 “종결해 달라고 말한 적 없다”면서 “행정처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의 사건으로 장기미제사건이었으니 진행해야 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반박했다. 조 부장판사와 통화를 한 뒤인 그해 6월 1일 박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근무하던 서기보에게 서 전 의원의 변론기일을 7월 2일로 입력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사건을 조속히 종결하라는 취지의 증인의 연락을 받고 기일을 정한 것 아닌가” 물었지만 조 부장판사는 종결을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 부장판사는 같은 취지의 질문이 검찰과 변호인과의 신문에서 반복되자 목소리를 높였다. “공소장에는 제가 종결을 종용했고 결론도 피고 패소로 하라고 (박 부장판사에게) 말했다고 적혀있는데 그 부분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문이고 검찰에 묻고 싶다”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조사받을 때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통진당 소송 관련해서도 “검찰이 공소사실을 발표했을 때 제가 조사받을 때의 내용과 다르게 나와서, 제가 말하지 않은 내용이 어떻게 공소사실이 되는지 기분이 나쁘다면 나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소사실에는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으로 해산된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직위 상실에 대한 판단 권한이 헌재에 있다고 보는 것이 부적절하고, 사법부에 판단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행정처 입장을 반 부장판사에게 직접 전달해 반 부장판사의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적시됐는데 그런 입장을 전달하지는 않았다는 게 조 부장판사의 주장이다. 조 부장판사는 자신이 조사를 받을 때 조서를 함께 열람한 검사가 법정에 나왔는지도 물으면서 “(진술)내용은 ‘각하 등 법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조서에 ‘등’이 빠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틱 장애’ 환자도 장애인…대법 “유사한 장애 찾아 등급 적용”

    ‘틱 장애’ 환자도 장애인…대법 “유사한 장애 찾아 등급 적용”

    신체를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특정 소리를 내는 ‘틱 장애’ 환자도 장애인복지법 적용을 받는 장애인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A씨가 경기도 양평군을 상대로 낸 장애인등록신청 반려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틱 장애 환자는 장애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조항 중에서 틱 장애와 유사한 유형을 찾아 장애등급을 부여하라는 취지다. A씨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틱 장애를 앓았다. 2005년 4월 병원에서 음성 틱(소리를 내는 틱)과 운동 틱(신체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틱)이 함께 나타나는 ‘투렛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입원 치료와 약물치료 등을 꾸준히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학업 수행과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A씨는 2015년 7월 틱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등록 신청을 했다. 그러나 양평군은 ‘틱 장애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정한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은 지체장애인, 시·청각장애인, 지적장애인 등 장애 기준을 15가지로 규정해놨는데 틱 장애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에 A씨는 ‘틱 증상이 심각해 일상생활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음에도 장애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행정 소송을 냈다. 1심은 “일정한 종류와 기준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장애인복지법의 적용 대상으로 삼아 우선적으로 보호하도록 한 것이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틱 장애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행정입법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로 인해 합리적 이유 없이 장애인으로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도 “A씨의 장애가 시행령 조항에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을 들어 장애인등록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는 A씨가 지닌 장애와 가장 유사한 장애 유형 규정을 유추 적용해 A씨의 장애등급을 판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군산 동거여성 살해범 징역 16년 확정

    함께 살던 지적장애 여성을 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주범 2명에게 중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상해치사·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23)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B(24)씨는 징역 11년을 확정받았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5월 12일 오전 9시쯤 전북 군산의 한 원룸에서 ‘청소를 하지 않았다’며 지적장애 3급 여성 C씨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야산에 묻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작년 가출 관련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함께 살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적 능력이 없던 C씨는 생활비를 면제받는 대신 청소와 설거지 등 살림을 도맡아 했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라거나 ‘집안이 더럽다’는 이유 등으로 동거인들로부터 수시로 폭행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 등은 폭행으로 C씨가 숨지자 시신을 집에서 20㎞가량 떨어진 야산에 묻었으며, 작년 7월 말 폭우로 매장지 토사가 일부 유실되자 시신을 들판에 다시 매장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를 수시로 폭행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 구호 조치가 없었고 시신을 매장한 피고인들의 범행은 그 죄질이 매우 무겁다”며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18년과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이들이 범행을 반성하고, 유족과 합의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각각 징역 16년과 징역 11년으로 감형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당선무효형 불합리” 대법 코앞서 브레이크 건 이재명

    “당선무효형 불합리” 대법 코앞서 브레이크 건 이재명

    대법 이르면 이달 내 최종 결론 예정 신청 인용 땐 상고심 장기화 가능성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지사는 지난 1일 대법원에 공직선거법 250조 1항와 형사소송법 383조 4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냈다. 이 지사 측은 허위사실 공표죄를 규정한 선거법 250조 1항에서 ‘행위’와 ‘공표’의 개념이 모호해 후보자 등의 발언은 물론 하지 않은 발언까지 해석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자의적일 수 있어 헌법상 명확성 원칙,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은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 문서 등의 방법으로 공표된 허위 사실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친형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 지사의 토론회 발언까지 처벌 대상에 올리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또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한해서만 대법원에서 양형부당으로 다툴 수 있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383조가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와 피선거권 박탈 등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나는 만큼 선거법에 대해서도 대법원에서 양형부당으로 다툴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신청에 대해 이르면 이달 안에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의 상고심은 원심 판결이 있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 지사의 상고심 판결 법정 기한은 다음달 5일이다. 이 지사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기한 안에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 반면 이 지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로 사건이 넘어가면 이 지사의 상고심은 장기화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이 피고인의 신청을 인용해 직접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경우는 1989년 이후 12건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드물다. 친형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등 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지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가 지난 9월 6일 수원고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판단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지사의 상고심은 노정희 대법관이 주심을 맡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2회] ‘한솥밥’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의 경계…모호하거나 명확하거나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2회] ‘한솥밥’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의 경계…모호하거나 명확하거나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에는 ‘선’이 있다. 한 건물에 머무는 선후배 법관들의 업무가 재판과 사법행정으로 나눠지면서 이들 사이엔 벽이 요구된다. 그러나 과연 완벽한 분리가 가능했을까. 식사를 같이 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참고하도록 보고서를 주고받으면서 경계가 흐려지진 않았는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법정은 많은 전·현직 법관들에게 이 부분이 집요하게 묻는다. 그리고 많은 판사들은 식사와 메일, 전화통화, 가벼운 대화 속에서도 선은 넘어가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1회 재판에서는 지난달 25일 증인으로 출석했던 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이 이어졌다. 홍 부장판사는 2013~2016년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뒤 2017년 8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으로 일했다. 그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던 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재상고심 관련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줘야한다며 의견서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등 재판 관련 언급이나 관련된 보고서를 전달받은 것이 지난 증인신문에서도 쟁점이 됐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에 ‘재판’이 오고가며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검찰은 물었고 홍 부장판사는 그런 영향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도 이날 홍 부장판사와의 증인신문을 통해 대법원 재판이 영향을 받았거나 특히 대법원장이 직접 재판에 영향을 주도록 지시한 적은 없다는 점을 역설했다. “증인께서는 대법원장이 특정 사건의 선고가 나면 보고를 해달라고 한 지시를 들었거나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증인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다른 대법관들보다 상급자이기 때문에 전원합의체 회부에 주저하거나 전합에 회부하는 게 맞으니 내 뜻대로 해야한다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까?” (변호인) “그런 적은 없으셨습니다.” (홍 부장판사) “증인이 근무하는 동안 양승태 피고인이 증인이나 다른 재판연구관에게 전합 사건이 아닌 다른 특정사건의 검토를 지시한 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양승태 피고인이 대법원장으로서 전합 사건 외의 대법원 재판에 관여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양승태 피고인이 특정 재판의 결과와 사법부의 정책적 목표를 결부지어서 언급하는 것을 듣거나 전해들은 기억이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강제징용’ 재상고 주심 대법관의 ‘말씀정리’ …유일하게 잃어버린 메일 1통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중에는 강제징용 사건의 주심이던 김용덕 대법관을 상대로 외교부 의견을 전달하는 등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2013년 8~9월쯤 접수된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의 주심은 2014년 6월에야 김 대법관으로 지정됐다. 피고인 전범기업 측의 상고이유서가 그해 5월에서야 접수됐기 때문이다. 주심 대법관이 지정되자 양 전 대법원장이 ‘김 전 대법관에게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판결이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거나 국제법적으로 문제될 것’이라며 사건의 방향과 결론을 언급해 김 전 대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했다는 게 검찰이 지적한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사실이다. 검찰은 그 근거 중 하나로 2014년 12월 김 전 대법관이 강제징용 사건 담당 재판연구관이었던 황진구 부장판사에게 건넨 2012년 판결의 재검토 지시를 제시했다. 그 뒤 행정처에서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 국가기관 등의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가 도입됐고, 외교부가 재판부에 의견서를 낼 것을 기다리며 재판이 2년 넘게 지연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황 부장판사가 홍 부장판사에게 2014년 12월 31일 보낸 ‘김용덕 대법관님 말씀정리’ 메일에 담긴 첨부파일 속에 김 전 대법관의 2012년 판결 재검토 지시 방안이 들어있는 만큼 홍 부장판사도 이미 강제징용 사건의 파기환송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홍 부장판사는 김 전 대법관의 지시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이 이 사건을 공동조(특정 대법관에 전속된 재판연구관이 아니라 여러 대법관들이 심리하는 사건을 공동으로 검토하는 재판연구관)에서 검토하라는 지시를 듣고 ‘대법관님께서 의문을 갖고 계시는구나, 사건처리가 힘들어지겠구나’ 생각했을 뿐”, “보통 공동조에 보내지면 심층검토를 할 것이고, 그럼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일반적인 내용만 설명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거듭 의문을 제기했다. 홍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메일을 삭제하지 않아 지난해 검찰 조사 당시 7000여개의 메일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했다. 행정처에서 메일 서버의 보존을 위해 ‘메일함을 정리하지 않으면 메일이 자동적으로 삭제될 것’이라는 취지의 공지를 하며 주기적으로 메일을 삭제할 것을 권고했지만 메일이 자동적으로 삭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한 차례도 삭제하지 않고 모든 메일을 그대로 보관했다는 것이다. 홍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를 받으며 이메일 압수수색을 통해 전체 메일을 검사와 함께 확인했다. 이 가운데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된 메일을 선별해 임 전 차장을 비롯해 17명과 주고받은 이메일 1487개가 추출됐다고 한다. 검찰은 홍 부장판사와 함께 1487개의 메일을 일일이 열어보며 다른 사람들의 진술과 상황 등을 맞춰보며 조사를 이어갔다고 한다. 홍 부장판사가 기억하지 못한 메일의 내용은 해당 메일의 발신인이나 수신인의 메일함에 담겨있던 메일과 그들의 진술로 퍼즐이 맞춰졌다. 그런데 1487개 메일 가운데 2014년 12월 31일자, 황 부장판사가 보낸 ‘김용덕 대법관님 말씀정리’ 메일 딱 하나만 퍼즐이 맞지 않았다. 홍 부장판사의 메일함에도, 홍 부장판사의 기억에도 해당 메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평소 이메일을 삭제하지 않은 증인이 유독 이 이메일만 삭제한 것은 그만큼 너무나 부적절하고 이례적인 이메일이어서 그대로 놔둔 것은 불안하다고 생각해서 삭제한 것 아닌가?” 물었다. 그러나 홍 부장판사는 “그 메일은 제가 황 부장판사에게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쟁점을 공개하고 빠른 시일 내에 공개변론을 열어 각게각층의 의견을 신중하게 들어야 한다고 기재해서 그게 저한테는 유리한 내용이 있다”며 자신이 메일을 삭제하지 않았고 검찰의 메일 조사 과정에서 누락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황 부장판사가 보낸 메일 속 첨부파일의 문건에는 김 전 대법관이 언급한 강제징용 사건의 쟁점들과 함께 홍 부장판사의 의견이 말미에 담겼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대법관은 황 부장판사에게 ‘청구권협정 관련 환송 판결의 판단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움’, ‘환송판결이 잘못이었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원고들(강제징용 피해자)이 직접 일본국이나 일본 회사를 상대로 청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숙제임. 방법을 찾아보아야 함’, ‘소멸시효 문제를 어떻게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를 시뮬레이션해 볼 필요가 있음’ 등의 검토 지시를 했다. 홍 부장판사는 “그 메일이 없었으면 오히려 제가 곤란해졌을 것”이라며 메일을 지울 이유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일상적인 제목도 아니고 대법관님 말씀을 파일로 정리했다는 내용의 메일인데 제목을 보는 순간 열어보겠고, 본문을 보는 순간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으면 김 전 대법관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어 당연히 주의깊게 열어봤을 것 같은데 아니었나”라는 검찰의 물음에도 “재판연구관이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 그것을 제가 (대법관에게 전달하기 위해) 꼼꼼하게 읽고 법리적 문제가 있는지 치밀하게 검토하는데, 보고서가 오기 전에는 쟁점이 뭔지 읽어볼 필요도 없다. 실제로 강제징용 사건 보고서가 저에게 오지도 않았고, 검토하지도 않을 사건의 쟁점을 미리 제가 열심히 읽어볼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식당에서 대법원 사건 얘기 안 한다”면서도 “임종헌 언급 이례적인 건 아냐” 홍 부장판사가 ‘크게 관심을 갖지도, 깊이있게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대충이나마 내용을 알고 진행방향을 짐작하고 있던 건 임 전 차장 때문이었다. 임 전 차장이 ‘절차적 만족감’이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수 있다’는 등의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이야길 꺼낸 것이 대법원 전용 구내식당 또는 전화통화에서였다고 홍 부장판사는 말했다. 식당에서가 아니면 만날 일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홍 부장판사는 행정처 실장과 부장판사급 심의관,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 등 14명만 드나드는 전용식당에서 대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의 이야기를 평소에는 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4명 중 행정처 인사가 12명이어서 그 안에서 대법원 사건을 거론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 드문 일 중 두 번이 임 전 차장에게서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홍 부장판사는 “두 번이지만 간격이 8개월인가 그랬다”면서 “식당에서 법률적 쟁점도 제가 얘기했을 수도 있고, 대법원에서 돌아가는 사건이 아니면 궁금해하는 쟁점이나 견해를 물어볼 수도 있고,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장시간 하는 이야긴데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앞서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과의 증인신문에서는 식당에서조차 ‘선’이 지켜진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 업무와 재판 업무 사이가 모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까?” (변호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홍 부장판사) “정보가 서로 간에 많이 오가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 사적으로 인사하고 식당을 같이 이용하지만 업무적으로 연락할 일이 없는 상태라면 경계가 명확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변호인) “연구관들은 자기 사건 보고서를 쓰고 그 때 심의관들과 상의할 일은 없고요. 기수도 차이가 나고 해서 행정처와 논의할 일은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대법원 건물 안에 행정처도 같이 있고 식당이 한 군데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보면 증인이나 선임재판연구관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직급이고 그에 맞춰 행정처 실장이 고등부장 판사급이어서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는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식사하시면서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행정처 관계자는 정책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변호인) “행정처 부장, 실장이 훨씬 많고 행정처 간부가 10여명이고 대법원 간부가 2명입니다. 대부분 대화는 행정처 사담이겠죠. (대법원 간부인) 두 사람이 대법원 사건 얘기를 꺼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홍 부장판사) 다만 홍 부장판사는 민사사건 가운데 등기나 호적, 공탁과 같은 실무적인 사건 처리에 대해선 행정처 심의관들이 훨씬 전문적이고 능숙해서 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행정처에 자료를 요청했다고 했다. 또 행정처 심의관 가운데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있어 논문을 작성하거나 깊이 연구를 했다면 그에 대한 자료를 확보해 재판연구에 도움을 받았다고도 했다. “재판연구관이 현안 자료를 얻기 위해 행정처에 연구자료를 요청한 것이 특이하고 이례적인가“라는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질문에 “요청한 경우가 꽤 있었다. 검토 사건에 대해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 검토하는 것이 법관의 보편된 자세로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부장판사는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뒤 2016년 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난해 대법원은 홍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를 청구했고 무혐의로 결론났다. 이날 재판에서는 지난해 홍 부장판사의 징계사건과 관련된 내용도 거론됐다. “동기 법관들은 법원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았고 증인은 법원 내부의 인사순위에서 법원장 발령의 선순위에 있던 것으로 아는데 법원장으로 인사발령이 나지 않은 이유를 아느냐”는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물음에서부터다. 홍 부장판사는 올해 초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법원장으로 보임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 생각에도 발령이 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오랫동안 비재판 업무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남은 기간에 그래도 재판 업무를 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내년에도 법원장 보직을 희망하지 않고 계속 재판부에서 일할 생각입니다. 차장님의 전화를 받고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자신을 법원장으로 발령 내지 않는) 취지가 저를 보호하는 취지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지방법원장(윤성원 전 사법지원실장)이 특별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문제가 된 게 없는 데도 언론에서 상당히 공격을 받고 사직한 상태였고 바로 그 인천 자리에 제가 가야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다음에 (법원장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차장님이 설명했고 저도 그 말씀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홍 부장판사가 징계에 넘겨진 것은 이른바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구회 내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한 방안으로 추진된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에 관여했다는 이유였다. 2017년 1월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 전 대법관의 주재로 열린 회의(처장회의)에서 연구회를 최초에 가입한 연구모임 외에는 중복으로 가입하지 못하도록 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축소시키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이 회의에 참석한 홍 부장판사는 징계에 넘겨졌지만, 이 회의에서 자신이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에 반대했다는 게 밝혀져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판사들이 많이 싫어할 것 같고, 탄압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게 그 자리에서는 그나마 강한 반대 목소리였던 것이다. 이날 법정에서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고 전 대법관은 중복가입 해소조치에 오히려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점을 밝히려 했다. “당시 회의에서 고영한 피고인이 ‘무슨 논리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하지 않았나”, “정 조치를 해야한다면 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3월 이후에 하자고도 했다던데” 등의 질문을 변호인이 이어갔지만 홍 부장판사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반복했다. 다만 “처장님이 많이 망설인 건 맞다”고 덧붙였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지난해 5월 법원행정처장 임기를 끝낸 고 전 대법관의 환송 만찬에서의 대화를 소개했다.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이 “처장님 말씀을 들었으면 이런 사태가 없었을 텐데 죄송하다. 임 전 차장이 주장하는 것마다 모두 하지 말자고 해서 임 전 차장의 면이 너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중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가장 시행할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만찬에 임 전 차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홍 부장판사는 “이 전 실장이 고 전 대법관에게 미안하다고 한 것은 들었다”면서도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1회] “도대체 어떤 일에 엮인 건지”… ‘통진당 재산 가압류’ 검토 문건의 배경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1회] “도대체 어떤 일에 엮인 건지”… ‘통진당 재산 가압류’ 검토 문건의 배경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판단하고 해산 결정을 했다. 당장 통진당 소송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가 쟁점이 됐고, 서울행정법원과 광주·전주지법에 의원직 지위확인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이 제기됐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행정소송을 맡은 일선 재판부에 소송과 관련된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가운데 대표적인 재판 개입 의혹으로 꼽히고 있다. 헌재의 결정으로 의원직만 잃은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정당 해산의 후속 조치로 통진당 재산을 국고에 귀속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통진당 중앙당 및 각 시·도당을 관할하는 법원에 통진당이 보유한 예금채권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이인복 대법관이었다.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0회 재판에서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사법지원실 심의관을 지낸 최우진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통진당 재산 가압류 신청사건과 관련해 행정처의 입장이 일선 법원에 전달된 과정을 설명했다. 가압류 신청사건이 접수된 뒤 통진당 각 시·도당에 당사자 적격이 있는지, 보전처분(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소송이 확정되거나 집행되기 전 법원이 하는 잠정적인 처분), 가압류와 가처분 중 어느 것이 가능하고 적정한지 등 여러 법률적 쟁점이 문제가 됐다. 이 사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청와대가 법원의 의견을 받아보기로 하면서 당시 김종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에게 연락해 “통진당 잔여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가압류나 가처분 중 어느 것이 적정한지에 대한 검토자료를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장이던 박 전 대법관과 임 전 차장이 사법지원실을 통해 검토자료를 만들고 일선 재판부에 전달하게 했다는 게 박 전 대법관의 공소사실이다. 2014년 12월 22일 최 부장판사는 대전지법 기획법관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국에 통진당 재산 가압류 사건이 많은데 검토를 해보니 가압류 신청이 부적절하고 여러 쟁점이 있으니 행정처 차원에서 검토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요청이 이어졌다. 전국 다수의 법원에 가압류 사건이 신청됐는데 각 법원별로 결론이 달라지면 혼선이 빚어질 수 있으니 행정처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쟁점을 검토해서 일종의 기준을 마련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당황해서 ‘조치’ 이야기하는데 무슨 조치인지 어려워 통화의 세부적 내용은 생각을 못했다”고 최 부장판사는 기억했다. 그는 “전화와서 말한 내용 자체가 당황스러워서 뭐를 해야할지 막막했고 말 그대로 무슨 조치를 해야하는지 생각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당 사건의 쟁점이 문제인 것 같고 해서 일단 행정처 차원에서 조치를 하기 보다는 연구회 등에서 개별적으로 쟁점을 올려서 토의하는 방법을 활용해 보면 어떻겠냐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헌재 통진당 해산 결정 후 잔여재산 환수 착수…일선 법원 “혼란” 그런데 같은 날 대전지법 천안지원의 판사에게서도 일선 재판부가 혼란스러워한다는 내용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최 부장판사는 “(대전지법의) 전화를 끊고 나니 각급 법원에서 재판에 혼란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 (행정처의 검토를) 요청한 건데 내가 그대로 묵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면서 “사건이 뭔지 파악하기 위해 검색을 해 실제로 전국 법원에 가압류 사건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잔여재산에 대한) 보전 처분 사례가 없어서 고민을 한 시간 정도 한 걸로 기억한다. 그 때 천안지원의 다른 판사가 같은 취지의 건의를 해왔다”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사법지원실 총괄심의관인 전지원 대전고법 부장판사에게 전국 법원에 통진당 재산 가압류 신청사건이 접수됐고 일선 법원에서 혼선을 겪고 있으니 행정처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전 부장판사는 “일단 사건 내용을 파악해보라”고 한 뒤 윤성원 당시 사법지원실장(전 인천지방법원장)에게 보고를 하러 자리를 떠났고 최 부장판사는 자신에게 연락을 한 대전지법과 천안지원 판사들에게 해당 사건의 검토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그날 저녁 무렵 최 부장판사는 전 부장판사에게 “부장판사 재판연구관들에게 사건 검토를 부탁했으니 쟁점을 보내주고, 부장들의 의견을 구한 뒤 각 쟁점 검토 내역을 일선 법원에 알려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시를 받았고, 다음날 부장 연구관들에게 의견을 받아 검토문건을 최종 정리했다. 부장판사인 재판연구관들이 검토한 내용은 통진당 예금 보전처분은 가압류가 아닌 가처분으로 신청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론이었고, 이는 최 부장판사가 작성한 ‘통진당 예금계좌에 대한 채권 가압류 신청사건에 관한 검토’ 보고서에 담겼다. ‘징수위탁은 유효한 집행방법이 될 수 없으므로 민사집행법에 따른 보전처분에 의할 수밖에 없고, 국고귀속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시·도당이 당사자 능력과 적격을 모두 갖추었다고 보는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이며, 국가의 해산정당에 대한 권리는 특정물에 대한 권리라고 할 것이어서 그 보전처분은 가압류가 아닌 가처분이 되어야 할 것’.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되거나 논의된 전례가 없었고 참고할 수 있는 판결례 등도 없었으며, 각 쟁점과 관련, 예상되는 상반된 견해들도 각각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특정한 결론이 가장 적합하다는 식의 판단이 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행정처 보고양식 뺀 일반 문서 양식으로 “자연스럽게 공유된 것처럼” 최 부장판사가 일선 법원들에 보낸 보고서는 기존의 행정처 내부 보고서와는 양식이 달랐다. ‘대외비’ 등의 단어가 빠졌고 제목을 표기하는 방식 등이 달랐다. 또 전달 방식도 조금 독특해 보였다. 최 부장판사는 자신에게 요청을 한 대전지법과 천안지원 판사들에겐 직접 메일로 이 보고서를 전달했고, 나머지 법원에는 신청 사건을 맡은 단독 판사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가장 먼저 서울중앙지법에서 신청 사건을 맡고 있던 김모 부장판사에게 일선 법원의 신청 단독을 맡은 판사들에게 배포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이러한 전달 방식에 대해 최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판사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공유되는 것으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최 부장판사는 보고서를 보내면서 “권위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양식도, 전달 방식도 남달랐던 데 대해 최 부장판사는 “행정처 표시가 나는 보고서를 보낼 경우 행정처에서 검토한 걸로 오해가 될 수 있어서 (기존 양식을) 지우고 보냈다”고 말했다. “우리(행정처)가 검토한 게 아니고 쟁점도 대전이나 천안지원 판사들이 검토한 것을 정리하기만 했을 뿐”이기 때문에 행정처가 공식적으로 내려보낸 보고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행정처의 조치를 요청한 해당 판사들이 분석한 쟁점 정리를 토대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세 명의 결론 정리가 이뤄졌고 자신은 이 모든 내용을 취합해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행정처 공식입장이 담긴 문건은 아니고 판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내용이 되길 바랐다. “증인은 당시에 법원행정처가 일정한 방향으로 정리한 검토 자료를 일률적으로 배포하지 않았다면 1심 재판의 결론이 다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검찰의 이 물음을 시작으로 검찰과 최 부장판사 사이의 약간의 신경전이 법정에서 오갔다. 최 부장판사가 “그 부분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고 답하자 검찰은 “검찰에서의 진술과 다르다”며 최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같은 질문에 “저 역시 통진당 잔여재산 1심 재판의 결론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정 내용의 법리 오류가 있을 때도 비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최 부장판사는 “그 조서를 작성할 때 검사와 오래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단언하게 진술한 것은 아닌데 최종적으로 검사가 저렇게 말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취지로 말한 거였다”면서 “판사들이 어떻게 검토할지는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다양한 결론이 나왔을 때 어떤 비난을 받을지 우려는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몇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주 다양하게 결론이 나온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행정처 문건 일선 판사들에 배포한 판사… “그 상황에선 괜찮은 방안” 이어 검찰이 “증인은 당시 윤 실장이나 전 부장판사로부터 검토 자료를 일선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거절하거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는가?“ 물었다. 최 부장판사는 “네. 행정처 내 외부 전문지식이 있는 부장판사들로부터 검토 의견을 받아서 결과를 취합해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해주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생각할 수 있었던 막연한 생각으로는 행정처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조치들 중에선 그 상황에서는 가장 괜찮을 수 있겠다, 문제가 안 되겠다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문건을 검토해서 배포하는 게 가장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했다는 건가?” (검사) “가장 적절했다는 취지가 아니고 당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최 부장판사) “검토 자료 작성 및 배포 지시에 대해 재판에 공정성과 독립을 침해할 수 있어 부적절한 지시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 (검사)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 안 했다.” (최 부장판사) “전혀 하지 않았나?” (검사) “네.” (최 부장판사)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과 다르다”며 검찰의 지적이 이어졌다. “조사 당시에도 (지시의) 부적절한 부분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진술을 해서 다시 물었다. ‘(앞선 조사에서) 윤 실장이나 전 부장판사로부터 자료를 담당 판사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부적절하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데 이유가 뭔가‘ 물으니 ‘일단 재판 기록을 특정한 방향으로 검토한 자료를 심의관인 제가 전달하는 것 자체가 아무리 재판을 지원한다는 순수한 의도를 설명해도 자료를 받는 판사들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거고 행정처가 부당하게 관여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전달 자체가 부적절하다. 제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진술했다.” (검사) “저것도 마찬가지로 오랜시간 검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처음에는 지금 (법정에서)한 것처럼 말했는데 검사가 ‘청와대가 개입됐다’고 말하고, 나는 전체 상황은 모르는 가운데 어쨌든 검사가 ‘재판에서 문제되는 쟁점에 대해 행정처 문건을 주는 것이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추궁을 이어갔고 그에 대해 반박했지만 검사가 보는 입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니까, 최종적으로는 저렇게 조서에 정리되는 것을 확인하고 날인했다.” (최 부장판사) “부담스럽다는 진술을 한 적이 있나, 없나.” (검사) “그 멘트는 검사가 한 멘트이고 내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부담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했더라도 그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거지, 지시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것은 아니었다.” (최 부장판사) 최 부장판사는 자신이 쓴 보고서가 청와대로 전달된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도 강조했다. 지시를 받을 때는 물론이고 자신이 일선 판사들에게 보고서를 배포할 때에도 청와대로 건네질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가 작성되는 무렵, 전 부장판사는 선관위를 통해 ‘채권 가압류 신청 제기 상황’ 자료를 받아 최 부장판사에게 건넸다. 가압류·가처분과 같은 신청 사건은 밀행성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법원의 규정 때문에 어떤 재판부의 누구 판사가 맡는지 행정처에서는 파악할 수 없도록 돼있기 때문이었다. 이 자료는 윤 전 실장이 선관위원장인 이 전 대법관에게 문의해 확보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신청 사건 당사자인 선관위에 자료 요청…재판부 ”이상하지 않았나?“ 증인신문이 끝날 무렵 좌배석 판사가 최 부장판사에게 “윤 전 실장이 이 전 대법관을 찾아가 사건 전체 현황과 내부검토 자료를 요청하면서 사법지원실에서 검토가 완료되면 보고하겠다고 한 것을 증인은 자세하게는 몰랐다고 했는데 눈치는 챘던 건가?” 물었다. 최 부장판사는 “그 무렵 전 부장판사가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니까’라며 변경된 내용을 보고서에 반영해서 보내달라고 했다”면서 “그래서 처장님이나 차장님께 보고하거나 아니면 선관위에 보고될 수 있겠다고는 생각했다”고 답했다. 다만 최 부장판사는 “그러나 이 전 대법관에게 직접 보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선관위가 신청사건의 당사자인데 보고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최 부장판사는 “깊이있게 생각하지 못해서… 최근에는 규칙이 개정돼서 안 되지만 (이전에는) 가처분 신청할 때 직접 당사자와 연락해서…(할 수 있어서)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당시 문제의식을 갖진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이 가장 마지막 질문을 보탰다. “네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분위기가 어땠는가?” 앞선 증인신문 과정에서 최 부장판사가 검찰에서의 진술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설명한 부분을 꼬집은 것이다. 최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추궁이라면 추궁이고요. 일단은 처음에 소환됐을 때 이 건 관련이라고 들었고 이 건이 외부에 행정처 문건으로 알려지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행정처에서 가장 고민하면서 처리했던 문제입니다. 다만 (행정처 문건을 일선 재판부에 보낸 것의) 범죄성립 여부 관련해서 간단하게 이 사건은 제가 경험한 것은 크게 문제 없이 받아들여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길래 제 얘기를 들어봐달라고 하면서 기억나는 이야길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나 조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스탠드 잘 잡으라’(※최 부장판사는 이 말을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고 이어진 고 전 대법관 변호인의 질문에 설명했다) 하고 청와대 얘길 했습니다. 그 때는 (청와대 얘기는) 거기서 처음 듣는 거라 제가 어떤 일에 끼어서 한 건지 가늠이 안 가고 위축되는 게 없지 않았습니다. 물론 검사님은 그 외 부분에서는 친절하게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의견을 물을 때는 저도 초반에 적극적으로 했는데 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일정도 있고 서울에서 잘 곳도 없어서 가급적 빨리 끝내는 것으로 조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했고 완전히 제가 얘기한 것과 다른 취지의 기재된 것만 수정했고 다 반영했습니다.” 자신이 취합해서 정리한 보고서가 과연 어디까지 전달됐는지, 대체 자신이 어떤 사건에 엮였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그는 강조하며 증언을 마쳤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속보] ‘정치자금법 위반’ 황영철 의원직 상실형 확정

    [속보] ‘정치자금법 위반’ 황영철 의원직 상실형 확정

    보좌진 월급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54·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이 의원직 상실형을 확정받았다. 향후 5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돼 내년에 있을 21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1일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황영철 의원 상고심에서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45조(정치자금부정수수죄) 위반죄에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나머지 정치자금법 위반죄에 벌금 500만원, 추징금 2억 3909만여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황영철 의원은 초선으로 18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보좌진 등의 급여를 일부 반납받아 지역구 사무실 운영비로 쓰는 등 2억 8799만여원의 정치자금을 부정수수한 것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5월부터 1년간 16회에 걸쳐 경조사 명목으로 총 293만원을 지역구 군민에게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았다. 정치자금법은 이 법 45조를 위반해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의원직을 곧바로 상실하고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대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운영자 40대 주부 징역 4년 확정

    대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운영자 40대 주부 징역 4년 확정

    “본인 명의 메일·은행 계정 제공…이익도 향유”추징금 14억 1000만원 취소한 원심판결도 유지다른 운영자 남편·다른 부부 등은 신병 확보 못해 국내 음란물 사이트의 원조격인 ‘소라넷’ 운영자에 대한 징역 4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배포 등)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송모(46·여)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송씨는 남편 윤모씨, 다른 부부 한 쌍과 함께 2003년 1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외국에 서버를 두고 ‘소라넷’을 운영해 불법 음란물 배포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1999년 ‘소라의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소라넷’은 국내 최대 규모의 불법 음란물 유통사이트다. 소라넷은 회원들에게서 이용료를 받고, 성인용품 업체 등으로부터는 광고료를 챙기는 방식으로 이익을 거뒀다. 송씨는 남편 등과 다른 나라를 옮겨 다니며 수사망을 피했다. 그는 외교부가 여권 무효화 조치를 하자 작년 6월 자진 귀국해 구속됐다. 수사당국은 송씨의 남편 등 다른 공범의 신병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씨는 수사와 재판에서 전적으로 남편과 다른 부부가 소라넷을 운영했고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부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송씨를 ‘소라넷’의 공동 운영자로 판단해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2심 재판부는 “‘소라넷’ 운영에 송씨 명의의 메일 계정, 은행 계정 등을 제공했으며 그로 인한 막대한 이익도 향유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의하면 송씨가 남편 등과 함께 ‘소라넷 ’사이트를 운영했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잘못이 없다”고 봤다. 송씨는 자신의 자수(자진 귀국)가 감경요인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나 “자수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법원이 임의로 형을 감경·면제할 수 있을 뿐이라서 자수감경을 하지 않은 것이 위법한 것이 아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대법원은 1심이 내린 14억 1000만원의 추징금 선고를 취소한 2심 판단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송씨 계좌에 입금된 돈은 ‘소라넷’ 운영에 따른 불법 수익금이라는 점이 명확히 인정·특정되지 않아 해당 금액을 추징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법이 부끄러운 거울이 아니려면

    [이종수의 헌법 너머] 법이 부끄러운 거울이 아니려면

    오늘날 법이 기본권과 여러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에 때로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국익에는 어긋나더라도 시민 한 사람의 소중하고 절박한 자유와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그래야 헌법국가이고 민주법치국가다. 사법권의 독립이 특별히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잘못을 따지는 국가배상청구권 등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기본권이 유명무실해진다. 이러한 까닭에 샌드라 데이 오코너 미국 연방대법관은 재직 중이던 2003년에 어느 강연에서 “사법권의 독립은 법관이 정부의 다른 기관들의 이익에 상반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문화처럼 법 또한 그 사회의 거울이다. 한 나라의 법 또는 법질서가 요청하거나 금지하는 내용들은 어디서든 같은 인간들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가 지니는 보편성과 함께 해당 사회의 특수성, 특히 그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지향하는 고유한 가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거울’이 독일어로 ‘슈피겔’(Spiegel)이다. 그래서인지 13세기 독일 작센지방에서 중세 최초로 편찬된 법서(法書)의 이름이 ‘작센 슈피겔’이다. 법과 권리가 별도의 단어인 영미권이나 우리와 달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법과 권리가 같은 단어다. 이들 사회에서는 개인들에게 권리를 보장하는 법 그리고 법으로 보장되는 권리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여서 따로 떼어내 생각하지 못해 온 까닭이다. 국가주의와 국익이 압도하는 곳에서는 개인의 자유나 권리가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희생되기 마련이다. 우리보다 앞서 ‘인구절벽’으로 내몰린 일본에서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오래된 문제다. 최근 이를 주제로 출간된 일본 소설이 꽤나 흥미롭다. 하나는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소설이다. 2020년 2월에 이 법안이 2년 후 시행을 예정으로 의회에서 가결된다. 국민은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단다. 다만 왕족은 예외란다. 정부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연금과 의료보험 등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의 재정 위기가 일시에 해소된다고 주장한다. 소설은 우여곡절 끝에 문제의 법률이 시행되기 전에 폐지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다른 하나는 같은 작가가 쓴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라는 소설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기혼율을 높이기 위해 ‘추첨중매결혼법’이 제정된단다. 25~35세의 모든 미혼 남녀들에게 추첨으로 상대가 배정되는 세 차례의 강제 맞선 기회가 제공된다. 그런데도 혼인하지 않으면 대테러 부대에 강제 입대해 2년간 복무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단다. 이 소설들은 물론 상상적 허구이고, 작품 속 화자(話者)들의 입을 빌려서 “말도 안 되는 법”이라며 비판하고는 있다. 그런데 국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시키고, 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가 의도하는 바를 강제로 이루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쨌든 뜨악하다. 우리 같으면 이처럼 욕먹기가 십상이고, 헌법재판소에서 곧바로 위헌으로 판단될 말도 안 되는 소재로 소설을 쓰겠다고 나서는 작가가 없을 법하다. 모든 사건들은 그 사회를 드러내는 단면이고, 문화와 법은 그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이렇듯 소설의 소재에서부터 일본 특유의 국가주의 사고가 여실히 드러나는 셈이다. 과거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국체(國體)인 천황을 위해 옥쇄(玉碎)를 다짐하던 신민(臣民)적 사고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다를까. 얼마 전 세간의 모든 눈길이 법무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쏠린 즈음에 다른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졌던 장면들이다. 공직 후보자의 배우자인 아내가 그동안 진보성향의 단체에 후원한 것을 두고서 어느 야당 청문위원이 “아내 하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해당 부처의 엄청난 국가 예산을 어떻게 관리하겠느냐”며 호통을 내지른다. 또 다른 인사청문회에서는 미혼인 공직 후보자에게 “본인 출세도 좋지만, 출산 의무를 다해서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 달라”는 청문위원의 생뚱맞은 지적이 있었다. 만일 이런 국회의원들이 국회 안에 다수라면 앞서 언급된 소설에서나 등장할 황당한 법률들이 실제로 만들어질 법도 하다. 법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거울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려면 각자 자신을 거울에 비추고 탐욕과 이기심을 늘 경계하고, 좋은 입법자를 뽑는 데 관심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총선이 다시 코앞에 다가서 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0회] “언론의 관심을 돌리고 청와대의 환심을 사라?” 행정처의 위기대응 안팎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0회] “언론의 관심을 돌리고 청와대의 환심을 사라?” 행정처의 위기대응 안팎

    2016년 4월 드러난 ‘정운호 게이트’ 사건은 그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게 되기까지 일종의 ‘나비효과’로 여겨졌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도박사건을 맡은 뒤 50억에 달하는 수임료 문제로 폭행사건까지 일어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낸 홍만표 변호사 등이 연루된 법조 비리로 사건이 커졌고,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얽히면서 미르·K스포츠재단의 문제점이 드러나며 결국 국정농단 사건이 알려졌다. 그런데 정운호 게이트는 국정농단 뿐 아니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도 한 축으로 등장한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김수천 당시 부장판사가 연루되면서 사건이 돌연 대형 법조비리 사건으로 번졌다. 양승태 사법부는 위기에 놓인 법원을 보호하기 위한 갖가지 방안을 모색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검찰은 ‘부당한 조직 보호’라고 지적했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39회 재판에는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을 지낸 최누림 대구지법 포항지원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증인으로 출석한 문성호 판사와 함께 근무했다. 정운호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일부 법관들의 비리 수사로 이어지자 법원행정처는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2016년 5월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 심의관들에게 수사와 관련된 여러 문제점이나 대응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서울중앙지법 법관들에게는 정운호 게이트 관련 사건에 대한 영장정보를 빼내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행정처에 영장 정보 등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을 지낸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영장전담 법관이던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도 피고인으로 별도의 재판을 받고 있다. ●‘정운호 게이트’ 터지자 행정처 ‘비상’…심의관들 “언론 관심을 검찰로 돌려야” 심의관들이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도 관련된 언론보도 내용을 수시로 공유하며 수사상황을 교류하느라 분주했다. “최대한 방향을 검찰로. 물론 검찰은 우리 공격 준비 중”, “정운호 관련 수사 축소로 관심을 돌리는 방법도 있겠네요”, “정운호 수임료가 천문학적 규모의 현금, 수표로 출처도 모두 확인 필요”, “(횡령 정황에도 도박만 수사했다는 언론보도 기사 링크와 함께) 좋은 기사입니다” (이상 2016년 4월 27일~5월 2일 행정처 심의관들의 카카오톡 대화)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심의관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가리켜 “심의관들이 정운호 게이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검찰로 돌리는 방안을 강구한 것인가“ 최 부장판사에게 물었다. 최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도 그런 취지로 발언해 진술조서에 담겨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그런 (방안을 강구한) 적 없다”, “그런 취지로 증언한 적 없다”고 답했다. “언론기사를 함께 스크랩하며 언론의 관심을 검찰로 향하게 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그럼 이런 스크랩은 왜 한 건가?”라는 물음에는 “당시 법조계 최대 현안이었고 법원에 대한 내용이어서 주요 이슈에 관한 기사를 공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처에서 대응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지도 않았다고 최 부장판사는 강조했다. 그는 심준보 당시 사법정책실장이 총괄한 TF에 팀원으로도 활동하지 않았냐는 검찰의 물음에 “TF를 발족한 적 없다”면서 “각 실국별로 제도개선안을 전부 기획조정실에서 취합한 뒤 관련 실무 심의관들이 모여서 토의한 적이 있다. 이후 5월 말이나 6월 초쯤 심 전 실장을 중심으로 정책개선 방향을 법원장회의나 대외적으로 공표할 것을 전제로 논의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당시 자신을 비롯한 심의관들이 검토한 것은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방안이 아닌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 사법 관련 제도개선안이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 대화 뿐 아니라 행정처 보고서에서도 언론의 관심을 돌리는 방안들이 거론됐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보고서에만 작성된 방안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당시 기획조정심의관)는 2016년 5월 12일자 ‘정운호 사건 관련 대응방안’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최 부장판사에게 보내며 “차장님께서 우리 심의관들의 활발한 의견 교환을 주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최 판사는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토의를 요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는 ‘홍만표 변호사가 관여한 형사사건 중 부적절한 기소가 의심되는 사건을 적극 발굴해 진보 언론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해당 문서는 거의 제도개선안을 다룬 것으로 검사가 말한 내용이 앞에 일부 기재된 건 사실이지만 저희는 뒷부분에 있는 제도개선안에 대해서만 의견을 나눴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앞서 이 재판의 증인으로 나와 5월 12일자 ‘정운호 사건 관련 대응방안’ 보고서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 전 대법관의 주재로 열린 실장회의를 거쳐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 부장판사는 “저는 아는 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정운호의 상습도박 사건의 증거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하기도 했다. 5월 13일 처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정운호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된 뒤 최 부장판사는 ‘2012년 6월 마카오 320억 도박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다. 증거기록을 열람·분석해 정운호의 과거 마카오 도박 혐의가 누락된 채 기소됐다는 등 검찰의 수사와 관련된 의혹을 찾아낸 내용인데, 심 전 실장이 김현석 당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게 부탁해 정운호의 상고 취하로 검찰에 반환됐어야 할 증거기록을 최 부장판사가 보게 된 것이다. 이후 최 부장판사가 작성한 보고서의 결론은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는 취지로 모인다.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런 보고서를 작성했냐는 검찰의 질문에 최 부장판사는 “아니다”라면서 재판 과정에 조금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언론에서 먼저 정씨 기소 범위가 이상하다는 의혹 보도를 했고 증거기록을 보다 보니 의문스러운 점이 있어서 정리하게 됐다고 다른 답변들보다 훨씬 길게 보고서를 쓴 이유를 설명했다. ●증거기록 무단 열람한 뒤 ‘정운호 수사 문제점‘ 보고서로 검찰 수사 부당성 지적 2016년 8월 중순을 넘어서자 법관들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임 전 차장은 최 부장판사에게 정운호 수사에 대한 문제점을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최 부장판사는 ‘6대 문제점’을 정리한 뒤 문제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방안들을 보고서에 담았다. 수사 과정 시 업무상 횡령 혐의사실을 조사했는지를 재판의 피고인신문에서 묻고, 마카오 320억 도박 혐의를 기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판부가 검찰에 석명을 요구하거나 횡령금의 구체적 사용처 확인을 위한 상습도박 기록 송부 촉탁 및 선행조사 등의 방안들이 적혀 있었다. 홍만표 변호사 사건에 대해서는 통신기록 사실조회, 검찰청 출입기록 사실조회 등이 적혔다. 검찰이 “행정처가 재판부에 석명 및 직권조사를 하게 해서 결국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드러내려는 취지였느냐” 물었다. 그러자 최 부장판사는 “행정처가 아니고 임 전 차장이 이 내용들을 불러줬다”면서 “본인 업무수첩에 긴 노란색 포스트잇에 목차가 있었고 앞에 나온 건 다른 문건을 주셨다. 제가 거기에 대해 듣고 나서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왜 그러느냐’고 물으셨고, 거기에 대해 저는 ‘현실성 없는 두 가지 방안 다 검토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임 전 차장은 ‘현실성 없는 방안이지만 토의용으로 논의만 하는 거다. 논의만 하려고 하니 빨리 정리만 해서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앞서 지난 11일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심 전 실장(서울고법 부장판사)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최 부장판사의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거나 관여했냐는 점을 거듭 물었다. 증거기록을 열람하도록 한 것도 자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최 부장판사가 먼저 와서 “기록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심 전 실장이 모른다는 입장을 반복하자 검찰은 “이 법정에 나와 증언한 심의관들은 당시 일이 너무 많아서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너무 격무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최누림 판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했다는 건가?“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심 전 실장은 “최 판사가 굉장히 별종이라는 걸 알고 본다면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지기 몇 달 전, 양승태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와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사건에서도 최 부장판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문 판사가 검토하기도 했던 헌재의 한정위헌 관련 사안들에 대해 임 전 차장이 최 부장판사에게도 지시를 한 것이다. 2015년 11월 8일 임 전 차장은 두 페이지 정도 분량의 기초자료와 함께 헌재에서 진행 중인 현대차 노조 사건 관련 내용을 건네면서 헌재가 위헌성 여부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한정위헌은 법률의 위헌성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대한 법원의 해석의 위헌성을 심판하는 것이다. 2010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은 정리해고를 이유로 정식 쟁의절차 없이 잔업과 휴일특근을 거부해 사업장에 약 3억원의 손해를 발생시킨 혐의(업무방해) 재판에 넘겨져 2012년 7월 12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이들이 형법상 업무방해죄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행정처에서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한 결과 한정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법원 판단이 이뤄진 사건에 대해 헌재가 다른 결론을 내릴 경우 대법원 판단이 위헌이라고 지적받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니 행정처로서는 헌재의 결정을 최대한 막으려 했을 것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임종헌, ‘국정운영 저해’ 표현 추가 지시… ”여당, 여권 쪽에 전달할 설명자료“ 최 부장판사는 지시를 받은 그날 바로 ‘업무방해죄 관련 한정위헌 판단의 위험성’ 보고서를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빨리 작성해서 보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용이 결국 임 전 차장이 불러준 것을 그대로 “타이핑했을 뿐”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하게 된다면 이는 대법원의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률해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최초의 사례로 사법기관 갈등을 부추겨 대법원·헌법재판소의 정면충돌을 초래‘, ‘법적 안정성, 질서안정 핵심인 사법기관 갈등 → 국정 안정의 저해요소로 작용할 것’, ‘국민의 입장에서 극심한 불안과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 또 ‘다른 소제목 아래에는 ‘업무방해죄에 대한 한정위헌 논리는 민주노총·민변의 숙원으로 광복 후 70년간 일관된 ‘위력’의 개념에 관한 해석을 부정하는 것으로 법치주의를 훼손’, ‘불법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형사처벌 공백이 발생하고 불법파업이 폭증하여 산업계·재계의 부담’이 급증하고 국가 경제가 급속히 악화’라는 내용이 담겼다. 최 부장판사가 보고서를 작성한 뒤 자신의 상급자인 한승 당시 사법정책실장에게 먼저 보고서를 보낸 뒤 임 전 차장에게 메일로 보고서를 전달했다. 이후 두 사람 모두에게 수정 지시가 왔고 자신이 작성한 초안에 없던 내용을 두 군데 추가했다고 한다. 한 전 실장으로부터는 ‘대법원은 과거 업무방해죄 처벌범위가 너무 넓다는 비판을 수용해 전격성, 중대성을 추가해 적용범위를 축소시켰음’이라는 표현을 추가하라고 지시했다고 최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과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례를 요약한 내용이다.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임 전 차장은 수정 주문사항이 더 많았다. 최 부장판사는 우선 임 전 차장이 법률적인 부분을 대폭 줄이고 산업계나 재계 등 대외적으로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강조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통계자료 등을 반영하라고 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통계를 집어넣었다고도 말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국정 안정의 저해요소’라는 표현을 더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최 부장판사는 언급했다. 보고서 초안에서부터 담긴 ‘파업공화국’ 등의 표현 역시 임 전 차장이 불러준 내용이라고 했다. 과연 이런 보고서는 왜 만들어졌을까. 이 문건은 기존의 행정처 내부 문건과는 양식부터 달랐다. 제목표시줄과 그 아래 작성 날짜와 작성자가 명시된 내부 문서와 달리 이 문건에는 작성일자와 작성자가 표시되지 않았다. 글씨체와 문서 양식도 달랐다. 최 부장판사는 “대외기관에 전달하기 위한 문건에는 통상 작성일자와 작성자를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검찰 수사 결과 이 문건은 곽병훈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전달됐다. 임 전 차장이 “청와대에 전달할 보고서”라면서 작성을 지시했는지를 두고 법정에서 약간의 혼선이 오갔다. 검찰은 최 부장판사가 검찰 조사에서 “임종헌으로부터 ‘청와대에 전달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며 조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서 “(심의관을 지낸) 2년 동안 청와대나 BH에 전달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임 전 차장이 이 보고서를 누구에게 전달하기 위해 줬다고 들었느냐는 물음에는 “여당이나 여권 측이라고 검찰 조사에서도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다만 보고서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가 됐는지, 어떤 경위로 청와대에 전달됐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이와 관련,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반대신문을 통해 행정처에서 대외기관에 전달하기 위해 작성하는 보고서는 해당 기관의 특성에 맞게 방향성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의 공소장에 임 전 차장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으로 인해 불법파업에 대한 형사처벌 공백이 발생해 결국 국가 경제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는 내용 등 청와대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문구들을 다수 포함시켜 청와대 설명용 문건을 작성하여 보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돼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 부장판사도 이 같은 취지의 변호인 질문에 “그렇다”고 호응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9회] “유치하고 말 안 되는 것도 모두 담아”···심의관들에게 보고서란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9회] “유치하고 말 안 되는 것도 모두 담아”···심의관들에게 보고서란

    ‘통합진보당 TF’ 작성 보고서에 “통진당 행정소송 각하는 부적절”‘민변 우군화’ 문구에 前심의관 “조금 오버했지만 정보 전달한 것”변협 압박 검토 보고서엔 “행태가 도 넘어서” 임종헌 표현 그대로강제징용 재상고심 외교부 의견 반영 위해 새 제도 신속 도입 정황 “구체적인 소송에 대해 유불리를 전제하며 법원의 판단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사법행정을 검토하는 한계를 넘고 재판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질책하지는 않았습니까”, “검토하는 자체가 사법행정의 한계를 넘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고 사법행정의 본질을 망각한다는 질책을 받을 것이라는 염려를 하지 못했습니까”. 여러 차례 비슷한 취지의 질문을 반복하던 검찰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사법행정에 대해 검사와 인식이 다른 것 같은데, 증인에게는 당시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보면 됩니까?”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38회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종복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은 그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줄곧 논란이 되고 있는 심의관(판사)들의 각종 보고서를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지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 지난 16일 증인으로 나온 문성호 판사의 전임자로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행정처에서 일한 그는 이후 광주지법 목포지원 부장판사를 지낸 뒤 올해 초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의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징계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하고 정의당 등이 추진한 탄핵법관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 진행 과정에서 외교부의 의견을 대법원 재판부에 전달하기 위해 행정처가 추진한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와 관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아 ‘강제징용 사건 외교부 의견 반영 방안 검토(2014년 12월 13일자)’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다. 또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 이후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의원직 지위확인 소송 등이 예상되자 행정처가 꾸린 ‘통진당 행정소송 태스크포스(TF)’에서 간사를 맡으며 관련 재판의 방향을 전망하거나 진행상황을 검토하는 내용의 각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하기 위한 방안이 담긴 보고서도 썼다. 검찰은 김 전 부장판사가 쓴 각종 문건들에 등장하는 여러 표현이나 문구들이 일선 법원의 재판에 개입한 정황으로 보이거나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그러나 김 전 부장판사는 시종일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고 있는, 심의관을 지낸 여러 전·현직 판사들이 자신들의 보고서를 ‘과소평가’하며 아이디어를 담은 것 뿐이라고 한 것은 공통적인 모습이지만 김 전 부장판사는 더욱 적극적으로 보고서의 의미를 줄이고 또 줄였다. ●‘통합진보당 TF’ 작성 보고서에 “통진당 행정소송 각하는 부적절” 2014년 12월 19일 헌재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위헌정당 해산 결정을 하자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비례대표 지방의원 등이 의원직 상실과 퇴직 결정을 다투는 행정소송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행정처에서는 12월 말쯤 ‘통진당 행정소송 대응 TF’가 꾸려졌는데, 검찰은 이와 관련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사실을 통해 “헌재 결정에 대해 법원이 사법심사를 함으로써 대외적으로 대법원의 최고 법원성을 선언함과 동시에 헌재에 대한 우위를 보여줄 수 있는 호기라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을 한 헌재가 대법원보다 청와대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법원보다 우월한 지위를 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김 전 부장판사가 간사로 참여한 통진당 TF는 2014년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활동하며 10건의 보고서를 완성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2015년 1월 7일자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 보고서 등을 작성했는데 ‘현 상황이 법원에 미칠 영향은 유·불리가 공존하므로 위 소송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음’,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은 법률상 권한 없는 결정이므로 현행 헌법과 법률 해석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더 큼’이라는 문구와 함께 ‘각하는 부적절하고 기각이나 인용 결정을 하는 경우에도 위헌정당해산 결정으로 해산된 정당 소속 의원의 직위 상실 여부에 대한 판단 권한이 헌재에 있다는 이유 구성은 부적절하며, 사법부에 위 사항에 대한 판단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이유 설시 필요’ 등의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다. 김 전 부장판사는 각 문구를 기재한 경위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 “질문이 너무 길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TF에서 작성한 보고서들이 당시 TF를 꾸리는 데 승인한 박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가 됐을 것이라는 추측만 언급했다.“이런 인식을 통진당 TF가 갖고 있었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김 전 부장판사는 이렇게 답했다. “인식을 갖는 것과 정보를 갖는 것 자체는 다르기 때문에 저런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쭉 나열하고 연구보고서로 만든 것이다. 꼭 저렇게 해야한다거나 어떻게 해야한다는 게 아니고 연구 기초보고서라는 측면이 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측면이 있는지를 양가적으로 제시해 놓아야 특정 상황에서 의사결정이나 질의답변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초 정보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렇게 행한다는 차원이 절대 아니었다.” 그러자 검찰은 “검토보고서에 기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인가?” 물었고 김 전 부장판사는 “네”라고 짧게 답했다. “재판에 활용하는 문건을 심의관이 작성한다는 게 맞나?”(검사), “재판에 활용한다는 게 아니다.” (김 전 부장판사) “검토하는 자체가 사법행정의 한계를 넘는다고 생각 안 했나?”(검사), “그 당시엔 아니었다.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뿐 저게 사법행정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인식으로 출발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김 전 부장판사) “증인은 통진당 행정소송을 헌재 압박하는 카드로 쓰는 것에 대해 (상급자였던) 이진만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으로부터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고 사법행정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는 질책을 받을 염려는 하지 않았나”(검사), “네.” (김 전 부장판사) ●‘민변을 우군화’ 문구에 前심의관 “조금 오버했지만 정보 전달한 것일 뿐” 특히 이 보고서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당시 행정소송을 낸 통진당 소속 의원들의 소송 대리를 맡은 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 민변이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에 비판적인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송에서 유리한 절차를 적용해 법원의 ‘우군’이 되도록 포섭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매우 부적절해 보이는데 이 전 상임위원이나 박 전 대법관으로부터 질책받을 염려는 없었나”라고 물었다. 김 전 부장판사는 “그 부분에 대해서 오버한 것 아니냐는 생각은 있었을 건데, 그런(재판에 실제로 영향을 준다는) 취지는 절대 아니고 현재 상황이 그렇다는 거고 원고 측에 유리한 결과를 내린다 이건···”이라며 말 끝을 흐렸다.“민변을 우군화한다는 내용을 기재하면서 상부에 보고했을 때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우리가 기재할 내용이 아니라는 질책을 들을 것을 염려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검사), “저건 조금 오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보를 드리는 거라서···” (김 전 부장판사) “이 부분에 대해 질책받은 것이 있나?”(검사), “그런 거 없다. 저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연구가 끝나기 때문에 질책을 받거나 그런 건 없다.”(김 전 부장판사) “이런 연구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증인과 검사의 전제가 다른 것 같은데 질책을 받은 적은 없다는 건가?” 검찰이 재차 확인을 요구해도 김 전 부장판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각하는 부적절하다는 식으로 재판의 결론을 예측한 듯한 내용에 대해서도 김 전 부장판사는 “법원 입장에서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고, 경우의 수를 각각의 유·불리에 따라 전부 망라한 것”이라며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했다. 일선 재판부에 보고서의 내용이 전달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다만 이처럼 특정 사건을 주제로 결론의 방향까지 구체적으로 다룬 보고서는 자신의 기억 속에는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 외에 없다고 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재판부에 전달하려는 취지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상급자들에게) 우려를 표명했을 것”, “실제로 재판개입이 있었다면 (자신이 쓴 보고서가) 그 단초가 된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고 진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법정에서 검찰이 이러한 내용의 진술조서를 소개하며 김 전 부장판사에게 “일선 재판부에 보고서가 전달된 게 일부 확인됐는데 지금은 어떤 생각인가?”고 묻자 김 전 부장판사는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말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 2014년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하기 위한 방안을 세우게 된 과정과 내용도 이날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4년 8월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제23회 법의지배를 위한 변호사 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그런데 양 전 대법원장이 참석해 있는 그 자리에서 대한변협이 대법관 증원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공식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다. 대법원장이 참석한 행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당시 “(대한변협이) 약속을 어겼다, 있을 수 없을 일”이라며 매우 격앙됐다고 김 전 부장판사는 기억했다. 임 전 차장은 그날 곧바로 김 전 부장판사에게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고 김 전 부장판사도 그날 바로 보고서를 작성해 오후 9시 21분쯤 임 전 차장에게 메일로 보냈다. 문건에는 ‘대한변협 법률구조 예산지원(공탁지원금 5억원) 중단, 대한변협신문 광고 게재 중단, 대법원 각종 외부교류행사 시 대한변협 초청 중단, 대한변협 초청행사 전면 불참, 변호사 평가제도 전면도입 검토’ 등과 함께 당시 대한변협 회장이던 위철환 변호사 개인을 겨냥해 ‘사법부 주관 각종 행사에 대한변협 회장 초청 중단, 선거 당시 회장 공약사항에 대한 반대 또는 비협조’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임 전 차장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모아보라”고 지시해 정말 모든 방안을 다 담은 것이라고 김 전 부장판사는 말했다.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보고서엔 “행태가 도를 넘어서” 임종헌 표현 그대로 사법정책지원심의관으로 대법원과 대한변협의 소통창구 역할도 했던 김 전 부장판사는 “(대한변협 간부들과) 사이가 좋았고 잘 지내보자고 그랬다. (보고서 내용이) 상당히 유치한 것도 있었고 사소한 것도 방안에 있었다”면서 “그런데 아이디어가 없어서 기조실이나 여기저기에 의견을 많이 물었던 것 같고 다만 모아두고 보니 너무 이상해서 그 보고서를 보면 알겠지만 굳이 그걸 시행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런 걸로 이익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의 지시가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부담스러웠다”면서도 “그냥 취지에 따라 다 모아봐라 했기 때문에 실제로 저걸 시행해서 사이가 나빠질지는 생각 못했다. 변호사 평가제도에 대해서는 곧바로 시행될 것처럼 말하길래 변호사나 재판장의 의견을 물어보고 반영돼야 한다고 하는 등 (임 전 차장에게)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거나 하면 대한변협과 소통을 해야하니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한다고 (만류)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대한변협과 임원진의 일련의 행태가 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임’이라는 문구는 임 전 차장이 자주 사용하는 “도를 넘어섰다”는 표현이 그대로 들어간 것을 봐서 임 전 차장의 워딩을 그대로 적은 것이라고도 했다.행정처는 다음해 1월 대한변협의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하창우 변호사가 후보 공약사항으로 대법관 증원 및 상고법원 도입 반대 의사를 밝히자 앞서 검토한 대한변협 압박방안을 비롯해 하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는 압박방안을 다시 검토했다. 보고서는 역시 김 전 부장판사가 작성했다. 대한변협과 직접 소통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어땠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김 전 부장판사는 “기억 안 난다”면서도 “불안한 것보다는 저는 잘 지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관계가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여러 아이디어를 다 모은 ‘기초 보고서’이기 때문에 실제로 실행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그해 12월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 과정에서 외교부의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보고서도 작성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한승 당시 사법정책실장으로부터 대법원 규칙 개정업무를 지시받으면서 대법원에서 국가기관 등의 참고인 의견제도의 신설을 요청했다고 전달받았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참고인들도 재판부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검찰은 그해 11월 열린 이른바 ‘2차 소인수회의’ 직후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외교부의 의견을 강제징용 사건 재판부에 전달해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고 대법원 규칙인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 ‘국가기관 등 참고인 의견제출 제도’를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재상고심에 외교부 의견 반영 위해 ‘참고인 의견 제출제도’ 신속 도입 정황 김 전 부장판사는 2014년 12월 13일자 ‘강제징용 사건 외교부 의견 반영 방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민사소송법에 따라 대법원 전원합의체 또는 소부에서 공개변론을 열어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소송대리인을 통한 의견 제출, 재판부가 소송지휘권 행사의 방안으로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 요청, 외교부의 일방적인 의견제출 등의 방안들이 있다고 적으면서 각각 공개변론이 필요한데 ‘이미 대법원이 결론을 낸 사안에 대해 부담이 있을 수 있음(외부에 잘못된 사인을 제공할 우려)’이라고 기재했다. 이미 결론이 정해진 파기환송심 사건인데 공개변론을 연다는 것은 결론을 뒤집기 위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 참고인 의견서를 활용할 소송자료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또 한 전 실장으로부터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를 다음해 1월 대법관회의에서 의결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빠른 시간에 제도를 마련해야 하다 보니 김 전 부장판사는 소송관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국회를 통해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원칙이지만 신속하게 도입하려면 법률 개정으로는 어렵고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으로 김 전 부장판사는 2015년 1월 2일자 ‘이해관계자 의견제출 제도 도입을 위한 대법원 규칙 일부 개정안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는 ‘법원의 요구 없이 국가기관 등이 일방적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규정을 둘 것인지’에 대해 ‘필요성 낮음’으로 검토한 뒤 ‘국가기관에만 한정할 것인지 일반 사인(私人)도 포함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선 ‘필요성 있음(국가기관에 한정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법원의 제도운용 폭을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이라는 검토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실제로 개정된 민사소송규칙은 법원의 요구 없이 일방적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뿐이고 그 밖의 참고인은 법원의 요구가 있을 때만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됐다. 결국 강제징용 사건에 외교부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서둘러 국가기관 등의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검찰의 공소사실이다. 김 전 부장판사는 이러한 검토과정과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접 보고하지는 않았고, 박 전 대법관에게도 보고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박 전 대법관에게 직접 보고했을 것이며 대법관회의에 올라가는 안건이니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법정에서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이재용,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재판…형량 늘어날까

    이재용,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재판…형량 늘어날까

    대법, 최순실에게 준 말 3마리도 뇌물로 판단이 부회장 뇌물 혐의 36억→86억원으로 늘어파기환송심에서도 치열한 법리다툼 벌일 듯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주는 등 국정농단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25일부터 시작된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이날 오전 10시 10분 이 부회장과 삼성 임직원들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연다. 이날 재판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법정에 나오는 것은 지난해 2월 5일 항소심 선고 이후 627일 만이다. 이 부회장은 당시 구속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었다. 파기환송심에서도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올해 8월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제공한 34억원어치의 말 3마리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등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2심보다 뇌물 액수가 불어났기에 파기환송시에서 이 부회장의 형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앞서 이 부회장의 2심은 삼성이 대납한 정유라 승마지원 용역 대금 36억원은 뇌물로 봤지만, 말 구입액과 영재센터 지원금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단으로 뇌물 등 혐의액이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늘었다. 최순실 씨가 뇌물을 요구한 것이 강요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대법원에서 판단한 점 역시 이 부회장의 양형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말 3마리와 지원금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이견이 나왔던 만큼, 이 부회장 측에서도 이를 토대로 법리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70억원의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받은 점과 비교해 형평성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이 부회장 측은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이 부회장의 재판에 이어, 국정농단 사건의 또 다른 주역인 최순실 씨의 파기환송심은 닷새 뒤인 30일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오석준) 심리로 열린다. 서울고법 형사6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기환송심도 맡았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 날짜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남편 동의 ‘타인 정자 인공수정’ 한 자녀는 친자

    36년 전 친생자 관계 판례 유지 “인공수정 출산 후에 동의 번복 안 돼 부인 혼외로 낳은 둘째도 남편 자녀” 아내가 임신해 낳은 자녀가 유전자 감정 결과 남편의 유전자와 다른 것으로 확인됐더라도 법적으로는 남편 자식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부부가 오랜 기간 떨어져 있는 기간에 태어난 자식에 대해서만 ‘친생자 추정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36년 전 판례가 바뀔지 관심이 쏠렸지만 대법원은 사실상 기존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는 23일 60대 남성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판결했다. 전합 13명 가운데 9명은 “친생 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다”면서 “혈연 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혈연 관계가 없는)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도 크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법원 전합은 이런 경우라도 남편이 친생 부인 소송을 제기해 법적인 친생자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때도 친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내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번 소송에서는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자녀를 남편의 친자로 봐야 하는지도 쟁점이었다. 전합은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고 인공수정을 통해 자녀를 출산했다면 남편의 자녀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 경우 남편이 나중에 자신의 동의를 번복하고 친생 부인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985년 결혼한 A씨 부부는 A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자 1993년 타인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첫 아이를 낳았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착각하고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그런데 A씨는 10여년이 지나 둘째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부부 갈등을 겪으면서 A씨는 2013년 이혼 절차를 밟았고 두 자녀를 상대로도 법적으로 자녀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두 자녀 모두 친생 추정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2심은 “둘째는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돼 친생 추정 예외가 인정된다”면서도 “혈연상 친생자 관계는 아니지만 법적으로 입양관계가 인정된다”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권순일·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자녀가 남편과 혈연 관계가 없음이 증명된 것에 더해 사회적 친자 관계가 형성되지 않거나 파탄된 경우엔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민유숙 대법관은 “부부의 비동거뿐 아니라 외관상 명백한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친생 추정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대법원 “다른 사람 정자로 인공수정한 자녀도 친자”

    대법원 “다른 사람 정자로 인공수정한 자녀도 친자”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아이도 남편의 친자로 추정할 수 있다고 대법원 판결이 23일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 판결에서 원고패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어떤 사건인가 A씨 부부는 A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에 1993년 타인의 정자를 받아 시험관 시술로 첫 아이를 낳고 친자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자신의 무정자증이 나은 것으로 착각, 둘째가 자신과 혈연 관계가 있는 친생자인 것으로 알고 출생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2013년 부부 갈등으로 협의이혼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가 아내의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혼 과정에서 양육비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자 남편 A씨는 둘째뿐만 아니라 첫째까지도 친생자 관계가 없음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민법은 부모-자녀 간 혈연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이 사건은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한 자녀가 아버지와 유전자가 다른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도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친생자 추정 원칙을 규정한 민법 844조는 혼인한 아내가 낳은 자식은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대신 남편은 아내가 낳은 자식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친자식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친생 부인(否認)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 친생 부인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기간 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아내가 낳은 자식은 민법 844조에 의해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이 확정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법원은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에 해당할 때는 남편이 자식을 상대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내 친자 관계를 부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A씨는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통해 친생자 관계가 없음을 법적으로 확인받고자 한 것이다. 현재 판례는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로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을 때 생긴 자녀의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번 재판에서는 이런 예외 사유를 남편과 자식의 유전자가 달라 혈연 관계가 아닌 사실이 확인된 경우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지금까지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나 1심은 A씨가 낸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A씨가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고 해도 ‘비동거 등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친생자로 추정돼야 한다는 취지다. 2심은 1심 판단과 결론은 같았지만 새로운 법리를 내놨다. 첫째 아이가 타인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이지만 이를 A씨가 동의했기 때문에 친자식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둘째는 유전자형이 배치돼 친자식으로 추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렇다 하더라도 양친자(법정 혈족) 관계가 유효하다고 인정돼 소송이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왜 주목 받았나 대법원은 1983년 7월 부부가 동거하지 않아 남편 자녀를 임신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친생 추정 예외를 인정해 왔다. 당시엔 유전자 확인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증명 곤란 문제가 있다는 점도 이러한 판결의 근거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형 배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사회 인식도 변해 친생 추정 예외의 인정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돼 왔다. 다만 이미 형성된 사회적 친자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기존 법리가 타당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 가족 관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부양의 의무와 상속에 적잖은 변화가 야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나 다수의견을 낸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9명은 “아내가 혼인 중 남편 동의를 받아 제3자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낳은 경우 민법상 남편 친자식으로 추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헌법은 혼인과 가족 생활을 보호하는데, 인공수정 자녀를 둘러싼 가족 관계도 헌법에 기초해 형성됐으니 다른 자녀와 차별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이어 “인공수정 자녀 출생과 이를 둘러싼 가족 관계의 실제 모습을 봐도 친생 추정 규정 적용이 타당하다”면서 “남편 동의는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 친생 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주요 근거가 되므로, 남편이 나중에 동의를 번복하고 친생 부인 소송을 제기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즉 인공수정에 동의해서 친생자 관계를 맺어놓고선 나중에 혈연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동의를 번복하고 친자가 아니라는 소송을 제기할 순 없다는 것이다. 또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해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남편과 혈연 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여전히 남편 자녀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친생 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했을 뿐, 혈연 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적용 여부를 달리하지 않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면서 “혈연 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자 관계를 정하면, 친자 관계 관련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친자 감정을 하거나 부부 간 비밀스러운 부분을 조사하는 과정에 내밀한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 판단과 달리 예외사유가 아니라고 결론 냈지만, ‘원고 패소’라는 재판 결과가 2심과 같아 ‘2심 재판을 다시 하라’는 파기환송이 아닌 원심 판결을 유지하는 상고기각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유 설명에 다소 부적절한 부분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남편의 소송이 부적법하다는 판단엔 잘못이 없다”며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인공수정 자녀의 신분 관계도 다른 친자와 마찬가지로 조속히 확정되게 해 친자·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을 확보하고, 혈연 관계만을 기준으로 친생 추정 규정 적용 범위를 정할 순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 권순일·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자녀가 남편과 혈연 관계가 없음이 증명되고, 사회적 친자 관계가 형성되지 않거나 파탄된 경우엔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유일한 반대 의견을 낸 민유숙 대법관은 둘째 자녀에 관해 “비동거뿐 아니라 외관상 명백한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친생 추정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고 파기환송을 주장했으나 소수에 그쳤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8회] ‘법원 스파이’ 헌재 파견 판사, “헌재가 정보유출 용인했지만…부적절했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8회] ‘법원 스파이’ 헌재 파견 판사, “헌재가 정보유출 용인했지만…부적절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헌재가 ‘한정위헌’을 선고해 대법원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대법원은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헌재 파견 판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2월부터 2년간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연구관으로 근무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예상 결과, 이정미 헌법재판관 후임 지명 문제, 매립지 관할 분쟁,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 심판, 제주대 교수 뇌물수수 사건, 한일청구권 협정 등 총 325건의 정보를 대법원측에 전달한 최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최 부장판사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3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부장판사는 “법원과 헌재 사이 소통창구 역할을 한다고 인식했고, 헌재에서도 (대법원으로 정보 유출을) 일부 용인한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부적절했고, 후회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지난 5월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임 전 차장 지시로 헌재 정보를 대법원에 보고했다”며 “임 전 차장의 지시를 지금이라면 거절했을 것이고, 후회가 된다”고 진술했다.    ●“법원과 헌재 사이 소통창구라고 인식…‘법원스파이’라 놀림받기도”  최 부장판사는 헌재 파견 기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통해 헌재가 심리 중인 사건과 동향에 대해 정보를 보고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최 부장판사에게 “인사평정권자는 법원행정처 처장이다”며 “법원과 관련된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는 그때그때 전달해달라”라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에게 정보를 전달하던 중 헌재의 한일청구권 협정 사건 예상 시기를 보고하자, 임 전 차장이 처음으로 직접 최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이 한일청구권 협정 관련 보고서를 강제징용 사건의 일본기업 대리인 김앤장 문의로 요청한 사실을 듣자 “전혀 알지 못했다”며 놀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 부장판사는 헌재 파견을 시작한 2015년 3월 발령 인사를 하러 가자,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법원행정처장도 “헌재 파견 법관들이 최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는 취지로 당부했다”고 했다. 박 전 처장이 “파견 나온 검사들은 친정인 법무부나 대검을 위해서 노력한다는데, 헌재 파견 판사들은 한정위헌 보고도 하고 그런다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전 상임위원에게 전달한 헌재 사건 정보가 대법원장에게 보고될거라 생각했나’는 검사 질문에는 “중요한거면 보고되리라 생각했다”고 했다.  ‘직무상 명령’이라고 생각했냐는 검사의 질문에 최 부장판사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글쎄요. 일이라는 게 사실 뭐 ‘이건 직무상 명령이야’라 말하고 시키는 경우가 힘드니까요. 어쨌든 지시같이 생각하고 하긴 했습니다. 물론 그때 거절했으면 어땠을까 후회됩니다. 용기를 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관성이 생겨서 보고를 하게 됐어요. 많이 요구도 하시고. 처음 느낌과 나중 느낌이 다르긴 한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서 안 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안 하면 다른 분이 대신 하게될 수도 있는 생각이 드니까요.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보고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헌재 파견 법관이 그런 역할(헌재 소장 동향 전달)까지 부여받은 건 아니지 않나요.”(검사)  “저는 독특한…법원 대표로 양기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최 부장판사)  “헌재에서도 용인한건가요.”(검사)  “박한철 헌재 소장님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은 저는 오히려 전달하기를 바랐던 거 같습니다. 대법원에서 헌재 소장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리기 바라는 취지로 이해했습니다.”(최 부장판사)  “명시적으로 알려주라고 한 적이 있나요.”(검사)  “재판관들이 ‘이런 건 법원에도 알려주라‘고 이야기했다기보다는 ‘법원도 이런 입장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제가 애매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최 부장판사)  “지속적으로 행정처에 검토보고서, 평의 내용, 헌재 내부 동향, 헌재 보관자료 계속 보내준 이유가 무엇인가요.”(검사)  “계속 요구를 하시니까 하다보면 드리게 됐습니다.”(최 부장판사)  “증인이 소통창구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건가요.”(검사)  “그런 것도 섞여 있습니다.”(최 부장판사)  “헌재가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용인한건가요. 거기에 연구관 보고서나 평의 내용 제공까지 포함된건가요.”(검사)  “그 안에서, 재판관님들도 저를 ‘법원스파이’라고 많이 놀리긴 하셨는데요. 뭐랄까요… 참 모르시겠지만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최 부장판사)  “애매하다는게 이해가 잘안되는데 넘어가겠습니다.”(검사)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최 부장판사)  “대법원에서도 헌재 자료 필요하다면 증인이 아니라 행정처가 직접 자료 제공요청하면 되지 않나요.”(검사)  “그걸 양성화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 같습니다.”(최 부장판사)  “행정처 아닌 동료선후배 법관들에게 자료 제공하는 경우도 일부 있었는데 그럴때도 보안을 철저히 강조하고 알고만 있고, 인용도 하지말라는 메일도 있던데 이런것들도 증인 통해서 헌재 유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는걸 꺼려서 그랬나요.”(검사)  “꺼려집니다. 하여튼 양성화돼있는 상황은 아니니까요.”(최 부장판사)    ●헌재 분위기 자유로워 식사, 티타임에서 정보 수집…“법원 외부로 나가리라 상상 못해”  최 부장판사는 각종 헌재 정보를 어떻게 수집해서 대법원 혹은 법원행정처로 보고할 수 있었을까. 최 부장판사는 법관 신분으로 헌재에 파견갔다는 특수성때문에 법원내부망인 코트넷과 헌재 내부망에 모두 접근이 가능했다. 헌재 재판관부터 연구관까지 식사나 티타임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해줘서 들을 수 있었다고도 증언했다.  최 부장판사는 전반적으로 “헌재와 대법원이 같이 가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관이 자신에게 대법원의 입장을 물어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 부장판사는 “헌재와 대법원 판단이 다를 경우 곤란해질 수 있기에 서로 사전에 조율해서 교통정리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재판관과 연구관이 증인에게 ‘법원스파이’라고 놀리면서 법원에 전달할 것을 예상했지만 중요 정보를 스스로 오픈했다는 진술이 있는데 사실인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최 부장판사는 “(대법원과 헌재가) 사건이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법류이 위헌이냐 아니면 법률해석이 위헌이냐의 문제였다”며 “양쪽으로 똑같은 사건이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증인이 이전 부장 연구관들이, 대법원과 헌재사이 소통역할한 사례나 내용 알거나 들은 것 있나요.”(변호인)  “옛날 연구부장 하셨던 어르신들께서 본인도 저같은 일했다는 얘기 들은적 있습니다.”(최 부장판사)  “식사자리에서 자연스레 의견을 들었고 2, 3차 평의 분위기나 사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나요.”(변호인)  “많은 재판관님과 식사자리나 티타임이 많은데 재판관님들이 저와 사건 얘기하는거 좋아했습니다. 편하게 의논할 만한 상대로 생각했는지 그런 뉘앙스나 생각 들었던 것 같습니다.”(최 부장판사)  “때로는 재판관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담당 연구관이나 자신 신뢰연구관 따로불러 토의하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재판관 입장이 다수의견인지 소수인지 자연히 알게되는 경우가 있나요.”(변호인)  “그렇습니다. (헌재) 안에 있는 분들은 다 알게 됩니다.”(최 부장판사)  “검찰에 평의 관련 이규진 상임위원에게 전달한것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할 가능성 높다고 말했던 것 기억하나요.”(변호인)  “네.”(최 부장판사)  “재판관 식사자리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듣게 된 내용이라면, 특히 증인은 평의 당사자 아니고 당사자인 헌재재판관이 알려준거라면 증인이 외부에 유출해도 상관없는 내용 아닌가요.”(변호인)  “그렇게 볼 수 도…같은 법관이다보니 내부 울타리라고 생각한 측면이 있습니다. (법원) 외부로 나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건 믿었던것 같습니다.”(최 부장판사)  이날 재판은 오후 11시 30분이 돼서야 끝났다. 재판 말미에 좌배석 판사가 “파견 부장연구관의 위치가 애매하다고 말했는데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묻자 최 부장판사는 소회를 털어놨다.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불안하다는 생각도 들구요. 안할 수는 없는데 양쪽 기관에서도 사실은 저를 다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헌재에서도 정식으로 줄 수는 없는데 저를 통해서 정보를 줄 수도 있고, 서로 또 통하는 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중간에 끼어있던 셈입니다.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또 필요한 역할이 있을 수도 있는거죠. 애매합니다. 선배들도 해왔던 역할인데 강도가 세졌다가 약해졌다가 강도의 변화가 있기도 하구요. 불행하다는 생각도 들고. 30년동안 곪아오던 것이…법원도 그렇고 헌재도 그렇고 밝혀져서는 안될 내용 같은데 이런게 밝혀져서 되게 부끄럽습니다. 헌재 관계분들께도 죄송하고 여러 가지로 슬프고 그렇습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서초구청, 사랑의교회 도로점용허가 취소하라”

    “서초구청, 사랑의교회 도로점용허가 취소하라”

    서초구 “판결 존중… 자문·검토 후 조치”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 사랑의교회에 도로 지하 공간 점용을 허가한 서초구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초구는 자문 등을 거쳐 해당 판결에 따른 조치를 할 계획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7일 황일근 전 서초구의원 등 6명이 서초구청장을 상대로 낸 도로점용허가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서초구의 도로 점용 허가 처분을 취소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예배당 등 지하구조물 설치를 통한 지하 점유는 원상회복이 쉽지 않고 유지·관리·안전에 상당한 위험과 책임이 수반된다”며 “도로 지하 부분이 교회 건물의 일부로 영구적으로 사용돼 주변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서초구는 박성중 전 구청장이 재임하던 2010년 4월 신축 중이던 사랑의교회 건물의 일부와 교회 소유의 도로 일부를 기부채납받는 조건으로 지하철 2호선 서초역 일대 도로 지하 공간 1077.98㎡를 쓰도록 도로 점용 허가를 내줬다. 사랑의교회는 도로 지하를 포함한 교회 신축 건물에 예배당과 영상예배실, 교리공부실 등을 설치했다. 이에 대해 특혜 논란이 불거지자 황 전 구의원과 주민들은 서울시에 감사를 청구해 “구청의 허가가 위법”이라는 판단을 받아냈다. 하지만 서초구가 감사 결과에 불복하자 이들은 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도로 점용 허가권은 주민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도로 점용 허가의 적법 여부를 살피지 않고 각하했다. 이에 대해 2016년 5월 대법원은 “사랑의교회 도로 사용이 공익적 성격을 갖는 것이라 볼 수 없다”면서 사건을 다시 서울행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진행된 행정소송 1심과 2심은 모두 서초구의 도로 점용 허가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초구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도로점용 허가를 내줬다”는 취지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결이 옳다고 봤다. 이에 대해 서초구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판결 내용에 따른 조치를 할 계획”이라면서 “원상회복 명령 등 구체적인 조치 내용과 시기는 판결문이 접수되는 대로 법률 전문가 등의 자문과 검토를 거쳐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7회]노골적인 헌재 견제·무력화 검토···문건 쓴 판사 “크게 후회”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7회]노골적인 헌재 견제·무력화 검토···문건 쓴 판사 “크게 후회”

    ‘노골적 비하·좋지 않은 소문 활용 헌재 견제 ‘비상적 대처’ 검토‘헌재 무력화’ 각종 문건 쓴 현직 법관 “크게 후회하고 있다” 진술남부지법 ‘한정위헌’ 제청, 행정처 ‘직권취소“ “대법원장 지시일 것”통진당 행정소송 “행정처, 일선 재판부와 연락하는 것 알게 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들 가운데 한 축에는 헌법재판소를 견제한 부분이 있다. 헌재는 사법부와는 독립된 기관이었지만 ‘양승태 사법부’는 법률에 대해 위헌심판을 할 수 있는 헌재가 대법원의 판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거나 특히 대법원의 판단과 배치되는 결정을 할 경우 법원의 위상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법원이 최고의 사법기관이 될 수 있도록 헌재를 견제하고 위상을 떨어뜨리자는 것이 당시 사법부의 중요 과제였다고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지낸 판사들은 말한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36차 공판에는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을 지낸 문성호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문 판사는 당시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지시를 받아 헌법과 헌재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행정소송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관련 여러 문건을 작성하고 보고한 의혹으로 지난해 견책 처분을 받기도 했다.문 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행정처가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계획하거나 실제 실행한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2014년 출범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에서 사법부의 권한과 관할을 대폭 축소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의견서가 채택된 상황이어서 행정처에서 고위 법관들은 헌재와 관련된 사안들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는 게 문 판사의 설명이다. ●‘노골적 비하·좋지 않은 소문 활용’…헌재 견제 위해 ‘비상적 대처’ 검토한 행정처 문 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2015년 7월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 방안 검토(대외비)’ 문건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대법)원장님 지시사항”이라는 말과 함께 헌재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여러 방안을 불러줬다고 한다. 석 달이 지나 완성된 문건에는 ‘헌재 재판소원 관련 민감한 현안이 다수 계류 중이고 상고법원 국회 심사 등 주요 국면에서 법원의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임’, ‘헌재 역량을 악화시키고 노골적 비하전략을 세워서 헌재의 위상을 하락시키면 헌재의 결정에 대한 권위가 하락될 것으로 예상’, ‘(헌재 관련) 좋지 않은 소문 확인 활용’,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적절히 활용’ 등의 내용들이 담겼다. 대부분 이 전 상임위원이 불러준 방안들을 토대로 적은 방안들이었다고 문 판사가 말했다. “이 전 상임위원이 한 번도 ‘톤 다운’(표현의 수위를 낮추라는) 하라고 말한 적이 없고 점점 (수정 지시에서 요구한 표현의) 강도가 세졌나”라고 검찰이 묻자 문 판사는 “그런 기억은 안 나고 저로서도 어떤 것이 비상적인지 잘 떠오르진 않고 여러 방안에 대해 구두로 말씀해 주셔서 제가 가져간 메모지에 적어왔고 9월 중하순 무렵쯤부터 (문건 작성에) 착수했을 땐 메모에 있는 내용을 주로 활용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만 말했다. 톤 다운 지시를 받지 않았는지, 수정 지시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풀려지거나 양이 많아지지 않았는지 검찰이 거듭 묻자 “어느 부분을 누가 수정했는지 몰라도 ‘노골적 비하’ 이런 표현은 저로선 좀 생경하고 혼란스러웠다”고 답했다. 노골적인 표현들에 검찰은 “부당한 지시라고 생각했으면 작성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문 판사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문 판사는 “그 점에 대해선 크게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앞서 그해 3월쯤 문 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에게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지시에 따라 헌재 내부의 정보를 수집할 계획을 세웠다가 당시 헌재에 파견된 최모 부장판사가 헌재 내부 정보를 전달한 이후 직접 정보를 수집하진 않았다. 문 판사는 “사법정책심의관으로 부임한 초기였는데 이 전 상임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헌재 내부정보를 수집할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해 마음의 부담이나 걱정이 없었는가“라는 검찰 질문에 “완전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사실 나중에는 (최 부장판사를 통해) 보고서도 오고 평의 내용도 받고 해서 당시엔 그 정도까지는 생각 못했다”고 답했다. 문 판사는 “부연하자면 2015년 4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 전 상임위원이 업무방해 사건에 관한 헌재 보고서를 저에게 보내주셔서 헌재 내부 보고서를 어떻게 입수해서 보내시나 놀란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최 부장판사로부터 다른 자료까지 오게 돼 (헌재가) 보안이 매우 취약한 조직인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 생각도 했지만, 제가 소극적으로… 나서서 저지하거나 뭐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진 못했는데… 다만 마음의 부담은 있었고 지금도 후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 전 상임위원이 누구의 지시로 문 판사에게 헌재 정보수집 지시를 했는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임 전 차장 등은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조 업무방해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관들의 평의에서 한정위헌 의견이 다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앞서 현대차 전주공장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은 2010년 3월 정리해고를 이유로 정식 쟁의절차 없이 잔업과 휴일특근을 거부해 사업장에 약 3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업무방해죄로 재판에 넘겨져 2012년 7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노조 간부들은 형법상 업무방해죄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만약 헌재에서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들로 하여금 집단적 휴일 특근을 거부하도록 한 업무방해죄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하는 경우 대법원의 위상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을 우려해 이를 막으려 했다는 게 검찰의 공소사실이다. ●‘헌재 무력화’ 각종 문건 쓴 현직 법관 “크게 후회하고 있다” 이 전 상임위원이 보고한 업무방해 사건 관련 헌재 내부 보고서에는 헌법재판연구관들의 1·2차 토론 결과와 헌법재판관들의 1차 평의 결과 한정위헌 의견이 다수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행정처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그해 4월 17일자 ‘업무방해죄 헌법소원 사건 대책 보고(대외비)’ 문건이 만들어졌는데 헌재의 평의 결과를 담은 뒤 대처방안으로 ‘헌법재판관들을 개별 접촉해 설득’, ‘법원 내 유사사례를 발굴해 선제적으로 무죄 취지 판결을 선고’ 등이 검토됐다. 특히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의 협조를 받아 현재 대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 중 업무방해 관련 유사사건을 발굴해서 헌재 결정 이전에 조속히 무죄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선고하고 친(親)법원 헌법재판관들로 하여금 헌재 결정 일자를 최대한 늦추게 하는 방안’도 문건에 포함됐다. 한정위헌은 여러 해석이 가능한 법률 조항에 대한 법원의 해석을 두고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혀 법률 자체의 효력을 없애는 위헌과는 구분되고, 헌재가 특정한 해석 기준을 제시하며 법원 해석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헌재와 사법부의 권한과 위상에 민감했던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당시 사법부 고위 법관들에게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이 대법원의 위상을 더욱 떨어뜨린다고 봤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에 계류된 관련 사건을 대법원이 먼저 헌재의 결정과 정반대의 판결을 선고해 헌재의 결정에 힘이 빠지도록 해야한다는 게 앞서 문건에 담겼고 검토가 됐다. 심리를 서두르게 하거나 선고를 앞당기는 것 역시 엄연히 재판 개입에 해당한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헌재를 견제하는 방안들이 검토되던 상황에서 특히 일선 법원에서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을 해달라고 결정하는 행정처 윗선의 ‘우려’와 정면으로 부딪혔을 것이다. 2015년 4월 8일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부에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내렸다. 그 다음날 결정문을 받아본 문 판사는 고민 끝에 상부에 이를 보고했다. “보고하지 않고 곧바로 헌재에 보낼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려졌을 때) 책임을 추궁당할 것 같기도 하고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라 동료들과 상의해 보고하는 게 맞겠다고 결론냈다”고 한다. 다만 문 판사는 보고서에 ‘논리상 한정위헌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없어 그대로 헌재에 송부해도 문제없다’는 문구를 담아 4월 10일 한승 당시 사법정책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에게 보고했다. “법률의 해석에 대한 위헌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법률 자체의 위헌성 문제인데 재판부가 착오해서 한정위헌 취지의 결정을 해서 실제로 한정위헌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보고했다”고 문 판사는 설명했다. ●남부지법 ‘한정위헌’ 제청 결정, 행정처가 ‘직권취소’… “대법원장 지시일 것” 문 판사의 표현을 빌리면 상부에 보고를 하자 “갑자기 일이 커졌다”. 한 전 실장은 “이 건이 발생한 자체는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이 아니라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돼야 하는 사안”이라면서 “정책결정이 필요한 사안이고 보고서를 작성할 때 향후 유사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까지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문 판사는 전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보고를 듣자마자 “그대로 보내면 안 되겠네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보고를 올린 그날 오후 이 전 상임위원이 문 판사를 불러 ‘정리’라는 제목의 문건을 주며 “직권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보고서를 준비해달라”고 지시했다. 문 판사는 “상급자의 결단이 있었던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를 했거나 보고가 됐다고 듣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직권취소 방향이 잡힐 정도면 대법원장에게도 충분히 보고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이미 제가 보고를 드리고 나서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일이 커져버린 셈이어서 이럴 바엔 그냥 (헌재에) 보낼 걸 그랬나 생각이 들었고, 당일 오후에 이 전 상임위원이 저를 불렀을 때는 이미 남부지법 재판장과 통화까지 마친 상태였다. 최초 보고할 때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너무 짧은 사이에 일이 커져서 마음이 많이 안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 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의 지시에 따라 다시 작성한 보고서에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신청대리인인 제청법원과 행정처 뿐’이라는 기재를 더했다. 그리고 법원 내부 전산망에 등록된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문이 보이지 않도록 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 정보화심의관과 연락해 삭제 조치를 하기도 했다.위헌심판제청 결정을 한 재판장에게 삭제를 위한 공문까지 받았다. 이렇게 흔적까지 모두 지워낸 이유에 대해 “위헌제청결정의 직권취소가 법률적·윤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 판사는 “제가 이해하는 법률지식으로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고, 윤리적으로도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선 “일선 재판에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진당 행정소송 과정서 “행정처, 일선 재판부와 연락하고 있다는 것 알게 돼” 행정처의 헌재 견제는 통진당 의원들이 낸 지위확인 행정소송에도 이어졌다. 행정처에서 통진당 소송 관련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소송 진행상황 등을 검토한 문건을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 받은 문 판사는 “간담이 서늘했다”고 표현했다. “상당히 많은 양이 있었고 거북했던 것은 인용, 기각 시 설시 등이 다 적혀있어서 ‘뭐 이렇게까지 다 검토해봤나’ 하는 인상을 가졌던 것이고 이후 하나 둘씩 읽으면서 내용이 지나친 것이 있어 간담이 서늘한 감정까지 갖게 됐다”는 것이다.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행정처의 의견과 달리 소송을 각하하는 판결이 나오자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크게 화를 냈다고도 증언했다. 문 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이 절 불렀을 때 얼굴이 상기된 상태로 ‘처장이 뭐라고 한다’며 말끝을 흐리면서 ‘내가 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도 말을 했는데 (각하를) 했다’고 말했다”면서 “이러한 얘기를 듣고 어떤 식으로든 재판부에 의사를 전달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통진당 지방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사건이 심리 중이던 전주지법에서는 2015년 11월 25일자로 행정처에서 작성된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보고’라는 제목의 내부 문건이 전주지법 공보판사를 통해 기자단에 배포된 이른바 ‘전주 공보사태’가 일어나자 박 전 대법관 등이 크게 당황하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달려갔다고도 말했다. 문건에는 ‘헌재가 통진당 소속 비례대표의 국회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것은 삼권분립을 위반한 월권행위’라는 행정처의 판단과 함께 소송에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담겼다. 이런 문건이 11월 26일자 신문에 보도되자 당시 행정처 간부들은 행정처 공식입장이 아닌 심의관의 개인 생각이라고 언론에 대응하기도 했다. 언론보도가 나온 직후 상황에 대해 문 판사는 “상황을 보고받은 처장이 놀라서 급히 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부속실 여직원은 11층에 전화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는데 대법원 11층은 대법원장 집무실이 있는 층이다. 문 판사는 지난해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대법관들이 공동으로 입장을 내고 “재판 거래나 재판 개입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 데 대해 “행정처 간부들이나 심의관들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에 대해 검찰이 이날 법정에서 묻자 문 판사는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해서 이미 재판부랑 연락했다는 사정을 전해듣기도 했고 그래서 그 형태나 빈도는 잘 모르겠지만 간부들 중에 일부는···일선 재판부와 연락을 하는 것을 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국정농단’ 롯데 신동빈,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확정

    ‘국정농단’ 롯데 신동빈,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확정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70억원의 뇌물을 건네고, 영화관 매점을 가족회사에 임대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6일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신 회장은 2016년 3월 박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특허를 청탁하는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혐의(뇌물공여)로 기소됐다. 또 신격호 총괄회장 등과 공모해 롯데시네마가 직영하던 영화관 매점을 회사에 불리한 조건으로 가족 회사 등에 임대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도 받았다. 이 밖에도 롯데그룹에서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를 비롯해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배우자인 서미경씨와 그의 딸에게 급여를 지급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도 적용됐다. 1심은 뇌물공여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별도로 진행된 경영비리 재판에서도 매점 임대 관련 배임과 서미경씨 모녀 급여 관련 횡령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신 전 부회장 급여 관련 횡령 혐의 등을 포함한 나머지 경영비리 혐의는 모두 무죄를 인정했다. 이후 두 재판을 합쳐 진행된 2심에서는 서미경씨 모녀 급여 관련 횡령 혐의도 추가로 무죄가 인정됐다. 뇌물공여 혐의와 매점 임대 관련 배임 혐의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는 점이 양형 이유로 반영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에 검찰과 신 회장 측이 각각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며 확정판결했다. 곽혜진 demia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