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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빛의 해/진경호 논설위원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빛이 물체에 의해 반사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깨달은 건 10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의 이라크 바스라에서 서기 965년에 태어난 아부 알하이삼이 1011년부터 1021년 사이에 쓴 ‘광학의 서(書)’(키탑 알마나지르)라는 책을 통해 이를 밝혀내기까지 인류는 ‘눈에서 빛이 나가 사물을 볼 수 있다’(프롤레마이오스류)거나 ‘물체에서 빛이 나와서 볼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류)고 생각했다. 천문학자이자 안(眼)과학자, 철학자인 알하이삼의 이 발견은 현대 광학에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에 버금갈 공헌으로 기억된다. 빛의 반사와 굴절, 그리고 눈의 착시현상 등을 실험과 계산을 통해 증명해 보임으로써 후세 인류에게 빛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현상과 심지어 우주의 신비까지도 풀어 갈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그가 현대물리학과 광학 등에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 이슬람권에서 얼마나 추앙을 받는 학자인지는 이라크의 1만 디나르 지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달 표면 크레이터와 소행성 ‘59239’에도 그의 이름 ‘알하젠’이 붙어 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빛의 해’다. 알하이삼이 1000년 전 광학의 새 장을 연 것을 기념하고, 뒤로는 현대물리학의 뿌리를 이루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탄생 100년을 기리고자 유네스코는 오는 19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성대한 행사와 함께 올해가 ‘빛의 해’임을 공식 선포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다음 빛을 창조(창세기 1장 3절)하셨든, 현대물리학이 추정하듯 137억 년 전 대폭발(빅뱅)과 함께 우주와 빛이 동시에 탄생했든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인류에게 미래를 열어 줄 열쇠이기도 하다. 하위헌스의 파동설과 뉴턴의 입자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 등을 거쳐 현대 양자역학을 통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는 에너지 알맹이’로 정리됐다지만 아직도 빛은 미지의 세계에 있다. 그만큼 이를 응용한 산업의 영역 또한 무궁무진하다. 우주를 이해하는 단서 대부분을 인류는 여전히 별빛에서 얻고 있고, X레이와 MRI 같은 의료영상장비나 인터넷 무선통신, 태양광 발전 등 인류 문명의 새 장을 빛을 통해 열고 있다. 12월 말 포항에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선다. 4298억원의 건설비가 투입된 이 가속기가 완공되면 단백질 구조 등을 밝혀냄으로써 신약 개발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와 미국, 유럽연합(EU) 등 7개국의 참여로 2007년 가동에 들어간 대전의 차세대 핵융합 설비 ‘K스타’는 올해 안에 열출력 500MW급 핵융합 발전을 시도한다. 20년 뒤면 지금의 화석연료 걱정을 털어낼 인공 태양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빛의 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곽태헌 칼럼]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없애는 대통령

    [곽태헌 칼럼]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없애는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기업인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외교관들은 에어컨 아래서 맥주나 마시고 있다”고 외교관들을 혼쭐냈다. 이 전 대통령은 “외무고시 순혈주의를 없애야 한다”고도 말했다. 외교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이 전 대통령은 외시를 없앴다. 외시를 대체한 게 외교관 후보자 시험이다. 시험과목도 큰 차이가 없다 보니 외시에서 외교관 후보자 시험으로 이름만 바꿨다는 말도 나온다. 외시 폐지보다 심각한 것은 5급 공채(옛 행정고시) 축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5급 공채를 축소하는 내용을 대국민 담화에 담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민간 전문가 진입이 용이하도록 5급 공채와 민간 경력자 채용을 5대5 수준으로 맞춰 가겠다”면서 “궁극적으로는 과거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매년 10% 포인트씩 5급 공채 비중을 줄여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5대5로 할 방침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무원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세월호 참사’와 관(官)피아가 그렇게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행시 출신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비고시 출신이나 민간 전문가 출신들은 관피아와 관련이 없는가. 백 보 양보해서 행시 출신들만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1년에 10% 포인트씩 줄이겠다는 것은 군사정부 시절에나 가능한 발상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피아를 이유로 행시를 축소하고 장기적으로는 없애겠다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다. 대학 입시든, 채용 시험이든 그마나 객관적인 게 필기시험이다. 민간 전문가 채용을 늘리겠다는 것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민간 채용을 늘릴수록 공직은 재력을 바탕으로 한 박사들의 등용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훌륭한 민간 전문가들도 적지는 않겠지만,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려면 면접과 스펙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민간 전문가 채용이 많은 나라도 있지만, 나라마다 공직 취업 역사와 상황은 다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만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7월 3일 로스쿨법이 통과됐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른데도 미국식의 로스쿨을 도입했다. 3년간 로스쿨을 다닐 때의 학비와 생활비만 1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보니 웬만한 집에서는 자녀를 로스쿨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렵게 로스쿨을 다니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도 소위 ‘빽’이 없는 보통 집안의 자녀는 괜찮다는 로펌에 취직하기가 어렵다. 좋은 로펌에서 경력을 쌓지 못하니 판사·검사가 되는 것은 더 어렵다. 사시나 행시에 합격하면 성적순대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지만, 부동산중개사시험처럼 자격시험인 변호사시험에는 순위가 없다. 유명 로펌 입장에서 보면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법조인, 재력가 등 가진 자의 자녀를 채용하는 게 영업상으로도 좋고 방패막이로도 좋다. 또 유명 로펌은 학벌이 좋은 변호사를 선호한다. 합법적으로 권력의 대(代)물림, 부의 대물림이 이뤄질 수 있는 게 로스쿨 제도다. 노 전 대통령은 상고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해 변호사, 국회의원, 장관을 거쳐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층에 타격을 주기 위해 로스쿨 제도를 찬성했겠지만, 오히려 기득권층은 웃고 있다. 로스쿨 도입과 사시 폐지로 ‘제2의 노무현’은 나올 수 없게 됐다. 사시는 2017년이면 없어질 예정이다. 과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에도 고시는 보통 사람들이 출세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특히 사시는 더 그렇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할 대통령들이 ‘경쟁적’으로 출세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사시도 존속해야 하고, 행시도 축소돼선 안 된다. 을미(乙未)년 새해 첫날이 밝았으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할 수 없는 사회, ‘개천에서 용 나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무슨 희망을 볼 수 있을까. tiger@seoul.co.kr
  • [사설] 종교인 과세도 못 하는 정부에 뭘 기대하겠나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추진해 온 종교인 과세 문제가 길을 잃어버린 형국이다. 종교계 일각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와 집권 여당이 시행 유예 기간만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새누리당이 요구한 2년 대신 1년으로 유예 기간을 단축했다. 하지만 2016년 초부터 실시될 가능성 또한 매우 희박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총선 등 향후 선거 일정을 감안했을 때다. 부디 이런 비관적 예상이 빗나가도록 당정이 함께 맹성하기 바란다. 우리 사회의 누구도 종교인 과세의 당위성을 드러내 놓고 부인하진 않는다. 역대 정부가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종교계를 의식해 종교인 소득에 대한 비과세 관행을 묵인해 왔을 뿐이다. 현 정부가 출범 초부터 종교인 과세 추진 방침을 흘렸을 때 다수 국민이 내심 반긴 이유다. 이제는 ‘비(非)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국민은 다시 배신감을 느껴야 할 판이다. 선거가 없는 해인 내년에도 이해 집단의 반발에 부딪쳐 시행을 유보한 터에 무슨 수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추진할 건가. 결국 건국 이래 종교인에게만 허용해 왔던 소득세 특혜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온존하게 된다는 뜻이다. 현재 종교인 과세를 실시하는 데 법적·제도적 장애물은 별반 없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무를 가진다는 헌법상의 ‘국민개세(皆稅)주의’를 누가 반대하겠나. 가톨릭은 이미 1994년 주교회의 결의에 따라 대부분의 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지 않은가. 불교와 개신교에서도 승려와 목회자 스스로 세금을 내거나 종단에서 소득세 신고 활동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목회직을 사기업처럼 대물림하는 일부 교파가 반대할 수도 있고, 표를 의식한 야당의 소극적 자세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종교계 다수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대원칙은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은 선거에서 이해집단의 반발 가능성에 지레 겁먹기에 앞서 스스로의 개혁 의지 박약을 돌아봐야 한다. 종교인 과세 실시 유예 기간을 놓고 벌인 당정의 줄다리기도 한가해 보인다. 그게 1년이든 2년이든 과세 자체가 물 건너가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논쟁만큼 부질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역대 정부가 하다하다 힘들어 팽개쳐 둔 과제들이 쌓여 있다”며 “이를 해결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자 팔자”라고 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당정의 의지가 이렇게 박약해서야 항차 각종 연금 개혁이나 구성원들의 고통 분담이 필요한 노동·교육·금융·공공 등 4대 구조개혁인들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나. 이제라도 당정이 심기일전해 무뎌진 개혁 의지를 벼리기를 당부한다.
  • [영화 多樂房] 맵 투 더 스타

    [영화 多樂房] 맵 투 더 스타

    25일 개봉한 ‘맵 투 더 스타’는 ‘스파이더’(2002), ‘폭력의 역사’(2005), ‘이스턴 프라미스’(2007) 등을 통해 날카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보여주었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신작이다. 스타의 사생활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지만, ‘맵 투 더 스타’는 보다 집요하게 그들의 정서적 불안을 파고든다. 광기를 배태한 등장인물들의 불안은 ‘배우’보다 ‘스타’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하는 흐려진 시야와 그들 각자의 어두운 가족사로부터 비롯된다. 스타가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일까. 크로넌버그 감독은 어떤 치료도, 상담도, 명상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의 복잡하고 날 선 심리를 낱낱이 해부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스타라는 존재의 본질과 실체를 찾아가도록 그려놓은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관객들은 스타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의문의 소녀 ‘애거서’가 LA에 도착해 렌터카 운전기사이자 배우 지망생인 ‘제롬’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애거서가 한물간 여배우 ‘하바나’와 아역 스타인 ‘벤지’의 중간에서 양쪽 모두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하바나는 역시 아름답고 재능 있는 배우였던 자신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 연기했던 배역을 맡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하바나는 그것이야말로 죽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애증, 열등감 등을 넘어서는 최선책이라 믿지만, 캐스팅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어린 나이에 시작된 벤지의 연예계 생활은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그를 너무 빨리 추잡한 어른들의 세계로 보내놓는다. 약물 중독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 벤지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중년 여성인 하바나와 소년 벤지는 모두 ‘스타’의 언저리에서 환각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적 고통은 각각 경련과 구토라는 물리적 증세로 표면화된다. 여기에 애거서를 포함한 세 인물들 사이는 여러 공통점들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령, 어린 시절 화상을 입어 흉터가 남아 있는 애거서는 화재 사고로 죽은 하바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애거서가 본 아이들의 환각은 현재 벤지의 환각과 퍼즐처럼 짜맞춰진다. 그 가장 밑바닥에 근친에 대한 상처와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곧바로 신화적 모티브와 맞물린다. 하바나와 벤지가 동성 부모에게 느끼는 묘한 적대감, 불과 물의 대비되는 이미지 등은 이를 견고하게 뒷받침해 준다. 극중 애거서가 소개한 자신의 시나리오처럼, 감독은 ‘고대 신화 같지만 가식적이지는 않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긴장감과 논리를 잃지 않던 영화는 결말부에서 파국으로 치달으며 신화의 비극성을 미학적으로 드러낸다.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가족의 비극과 치부가 작금의 현실과도 잘 맞아떨어지기에 더욱 진중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세월도 쉬어가던 섬… 지는 해 배웅하는 너

    세월도 쉬어가던 섬… 지는 해 배웅하는 너

    교동도는 은둔의 섬이었다. 인천 강화도를 거미줄처럼 잇던 도로들도 바다 너머 교동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 데도 그랬다. 요즘엔 달라졌다. 강화도와 교동도 사이에 교동대교가 놓였다. 그 덕에 여행 목적지도 북녘땅 가까운 곳까지 한껏 확장됐다. 다리가 놓이기 전,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시피 했던 교동도엔 그 간극만큼이나 남아 있는 보물들이 많다. 낡고 수수한 풍경을 따라 겨울 볕 즐기기 딱 좋다. ●도로가 닿지 못하던 곳… 대교 생기며 뭍에 편입 강화도 서쪽 끝. 걸어서는 갈 수 없었던 곳으로 다리가 놓였다. 길이 3.44㎞에 폭 13.85m, 왕복 2차로의 교동대교다. 이 다리 덕에 바다 너머 교동도가 자연스레 뭍으로 편입됐다. 예전엔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교동도로 들어와야 했다. 그나마 조수간만의 차가 커 간조 때는 서너 시간씩 배 운항이 정지됐고, 물이 덜 찼을 땐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까지 15분이면 닿을 뱃길을 1시간 넘게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섬이 교동도였다. 교동대교 앞에 서면 강 양쪽으로 철조망이 펼쳐져 있다. 북녘땅이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새삼 일깨우는 장면이다. 교동도 서단의 말탄포에서 북한의 황해남도 연안군까지는 직선거리로 2㎞ 정도에 불과하다. 바다 폭이 좁으니 북한 주민이 헤엄쳐 넘어와 귀순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지난여름에도 북한 주민 2명이 그랬다. 이처럼 북한과 가깝다 보니 교동도 전체가 민통선 지역이다. 당연히 출입절차도 마련돼 있는데,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출입신청서와 신분증만 제출하면 된다. 다만 출입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기준이다. 검문소 초병은 “오후 6시 30분 이전에 나와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익일(다음날) 오전 6시 30분 이후에나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말은 그렇다지만, 설마 늦었다고 섬에서 나오는 걸 막으랴. 한데 초병의 다부진 자세로 미뤄보건대, ‘좋은 게 좋은 거’ 식으로 생각했다간 꼼짝없이 하룻밤을 묵는 낭패를 당하지 싶다. ●‘철새 놀이터’ 고구저수지·교동읍성 등 명소 교동대교를 건너면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고구리, 왼쪽은 읍내리 방면이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지만, 고구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게 일반적이다. 다리 건너 만나는 첫 번째 명소는 고구저수지다. 수도권 낚시인들 사이에서 ‘대물터’로 입소문 난 곳이다. 겨울이면 수많은 겨울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도시 사람들은 흔히 섬사람들이 물고기나 잡으며 살아갈 것처럼 생각한다. 한데 교동도는 넓다. 논농사를 많이 짓는다. 특히 삼선리 일대 개시미벌을 보면 생각이 싹 바뀐다. 들녘이 어찌나 너른지, 꼭 전북 김제의 만경평야를 보는 듯하다. 지금은 강화군에 딸린 면소재지로 전락했지만 옛 교동도는 독립된 군현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교동현(喬桐縣)이었다가 인조 7년(1629)엔 교동도호부(喬桐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강화군에 완전히 병합된 건 일제강점기인 1914년이다. 교동도 남쪽의 남산포엔 삼도수군통어영도 있었다. 경기, 황해, 충청도의 해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한반도가 두 동강 나지 않았다면, 사실 수군의 중심지가 되기에 적합한 위치가 교동도다. ●근대사 풍경, 밀려든 관광객에 얼마나 지켜질지 교동도에 들면 시간이 묻혀 있다는 걸 단박에 느끼게 된다. 가까운 근대사와 옛 고대사가 뒤섞여 있는 느낌이다. 교동대교가 세워진 이후 주말에만 4000여대의 차량이 쏟아져 들어 온다는데, 이런 낡고 투박한 풍경이 얼마나 더 지켜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오래된 역사를 되짚자면 교동읍성을 먼저 찾는 게 순서다. 도읍인 한양을 지키는 성이 도성이고, 지방 고을 읍에 세워진 게 읍성(邑城)이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에 쌓은 석성이다. 동·남·북 세 개의 문 가운데 현재 남문(유량루)의 홍예문만 남았다. 아치형 돌문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 자태가 아름다우면서도 견고하다. 한데 폐허 위에 서면 깊은 한숨만 나온다. 주변 성벽은 허물어졌고 돌들은 사라졌다. 출처와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사금파리 조각들도 홍예문 위쪽에 널려 있다. 하지만 홍예문 주변엔 사람의 접근을 막는 펜스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들고나기 쉽지 않은 섬이었을 테니 성벽을 이루던 돌들도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리고 돌들이 여전히 민가의 담장을 이루며 남아 있다는 거다. 교동읍성 주변에 황색 대룡이 나타났다는 황룡우물, 경기수영 터, 연산군 유배지(추정) 등 볼거리가 많다. 시간 너머의 흔적을 따라 찬찬히 둘러보길 권한다. 교동읍성에서 바다로 향하다 보면 길이 끊겼을 법한 곳에서 난데없이 작은 포구가 나온다. 동진포다. 고려시대부터 뭍과 교동도를 이어주던 나루였다는 곳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나루터는 교동읍성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됐다. 한양과 인천, 해주 등을 오가는 관문 노릇도 담당했다. 중국으로 가는 사신은 먼저 교동도로 와서 바닷길의 일기 등을 살핀 후 출항했다고 한다. 사신들의 임시 숙소인 ‘동진원’이라는 객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손님을 맞고 배웅하는 광경이 제법 장관이었다는데, 이 장면이 바로 교동팔경의 하나인 동진송객(東津送客)이다. 조선시대엔 각종 조운선과 화물선 등이 오갔고, 한국전쟁 때도 수많은 배들이 들락날락했다던 동진포지만 지금은 배 한 척 없는 썰렁한 나루터로 남았다. 시멘트 포장 아래 조선시대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들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11명 ‘왕족의 유배지’… 한국전쟁 피란민 집결지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였다. 정쟁에서 패한 신하들과 달리 왕족은 가까운 곳에 격리시켰다. 늘 그들의 동정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교동도는 한양과 가까우면서 조류가 급해 유배지로서 최적지였다. 고려 21대왕 희종, 조선시대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교동으로 유배됐다. 그 가운데 연산군은 교동도로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사망했다. 읍내리에 연산군 적거지가 조성돼 있다. 대룡시장은 근대의 시간들이 갇혀 있는 공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960~70년대로 날아간 듯한 낡은 풍경과 만날 수 있다. 후줄근한 간판과 낡은 유리문, 옛 포스터 등을 보자니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향수가 현재로 소환되는 듯하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계란 푼 쌍화차 얻어 마실 수 있는 다방도 여태 남아 있다. 대룡시장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의 집결지였다. 전쟁 끝나면 얼른 돌아가려고 고향과 가까운 대룡리 일대에 진을 쳤다. 하지만 닫힌 문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열리지 않았고, 고향 그리던 이들은 대부분 생을 마감하거나 생계를 위해 자리를 떴다. 골목은 짧다. 채 500m도 못 된다. 하지만 더께로 쌓인 시간은 도무지 방문객의 발걸음을 놓아주질 않는다. ■여행수첩 <지역번호 032>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48번 국도를 따라 곧장 가면 교동대교가 나온다. 교동도 출입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교동도에서 숙박하지 않을 경우 교동대교 앞 군 검문소에서 나오는 시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교동면사무소 932-5001.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교동도까지 운행하는 18번 버스가 신설됐다. 선진버스 933-6801. → 맛집 대룡시장 쪽에 먹거리가 풍성하다. 해성식당(932-4111)과 대풍식당(932-4030)이 그중 알려졌다. 오래된 ‘다방’도 두 곳 영업하고 있다. → 잘 곳 대룡시장에 교동파크(932-4164)라는 작은 모텔이 있다. 강화여인숙(932-4067) 등 오래된 숙박업소도 있다. 고구저수지 인근 고구촌펜션민박(933-8668), 난정저수지 주변 수정민박(934-8929) 등 민박집도 운영 중이다. 글 사진 강화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열린세상] “다 이루었다”/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열린세상] “다 이루었다”/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며칠 전 지하철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었다. 굽은 한 팔을 끼고 힘겹게 절룩이며 다가온 사내가 건넨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저는 슬픔과 고통, 가난이 전부입니다.”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게 소망이라고 밝힌 그의 글은 이렇게 끝났다. “친자식과 친동생이라고 생각하셔서 저의 희망을 이룩하는 데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신다면, 저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서 베풀며 평생 은혜를 베푼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애절하고 진지한 그의 눈빛과 글은 많은 생각을 일으켰다. 수백 년 전 조선에서 장애인이란 말은 없었다. 그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도 없었다, 그들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일 뿐이었다. 조선의 저명한 재상과 학자, 예술가들 중에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관료의 신체적 결함을 논한 바도 없다.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홀어미·고아·늙고 자식 없는 이들과 병든 사람은 우선적인 진휼과 구제를 받았다. 병든 자와 그를 부양하는 자는 부역과 잡역을 면제받았고, 나라에서 이들을 돌봐 줄 사람을 구하고 매 계절마다 보고를 하게 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굶지 않게 하라는 세종의 명이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 요즘 수한풍박(水旱風雹)의 재앙으로 인해 해마다 흉년이 들어 환과고독과 궁핍한 자가 먼저 그 고통을 받으며, 산업이 있는 백성도 역시 굶주림을 면치 못하니 너무도 가련하고 민망했다. 만약 한 백성이라도 굶어 죽은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 모두 교서를 위반한 죄를 논할 것이다.” 조선의 유학 이념은 천하를 공적인 것으로 여겼다. 부채를 빌린 자와 빌려준 자가 모두 사망했을 때 이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못하게 했다. 궁핍한 백성이 빚을 갚지 못한다고 그 자녀를 사역하거나 천인으로 만드는 것도 엄금했다. 시집을 제때에 가도록 살폈고, 빈궁한 이들의 장사 비용을 댔다. 역을 피해 도망한 자를 급히 추적하지 않고 구휼했고 분기마다 보고하게 했다. 세종은 흉년을 면한 해에도 백성을 걱정해 곡식 빚을 감하게 했다. “1년 풍년으로 예전의 묵은 빚을 모두 받아들이면 환과고독은 반드시 곤궁한 지경에 이를 것이니 어찌 옳은 일이겠는가. 이 뜻을 수령들에게 유시하고 경들은 10월을 기다려 다시 아뢰도록 하라.”-‘세종실록’ 세종 10년(1428) 8월 5일 2014년 이 땅에는 눈물이 강처럼 흘렀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의 말씀을 생각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궁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궁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는 이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음을 깊게 열어 신을 품게 된 존재일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오랜 침묵 끝에 큰 소리로 외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러고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다 이루었다” 하고 운명했다.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물음을 통해 예수는 다 이루는 순간을 맞았다. 진리를 알았고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했다. 같은 비가 내리지 않듯 내일엔 내일의 하늘과 땅이 열린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 지금이 있다. 우주는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힘이 있다. 생명의 강인함은 연약한 떨림에서 나온다. 지금 겪는 고통과 아픔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모든 존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드러낼 것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파편이다.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진리가 우리에게 있다.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신의 씨앗을 품었고, 언제나 신과 함께한다. 추운 겨울에 잎을 다 벗은 나무는 봄에 씨앗을 틔우고 여름에 열매를 맺는다. 자연은 이렇게 다 이룬다. 지금 순간순간 분투하며 인간 존재의 한계에 부딪치는 이들이 “다 이루었다” 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 與 ‘부자 감세 논란’ 상속·증여세 개정 재추진

    당정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이 법안은 지난 2일 2015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예산 부수법안 중 하나로 본회의에 상정됐다가 ‘부자 감세 법안’이라는 이유로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뜻밖의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었다. 개정안은 가업상속 공제 대상 기업 기준을 연매출액 3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인 기업으로 확대,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자녀나 조부모 등 직계 존속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를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늘리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21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 형태로 12월 임시국회 내에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입법안은 기존 안과 내용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가업상속 공제와 관련해 사전·사후관리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수정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가업의 정의에서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을 ‘7년 이상’으로 조정하고 업종·고용 규모 변경과 지분 처분이 제한되는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야당은 ‘기업의 부의 대물림을 허용하는 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내 아이는 [동성애자·장애인·정신분열증] 입니다

    내 아이는 [동성애자·장애인·정신분열증] 입니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앤드루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열린책들/872·760쪽/각권 2만 2000원 세상엔 보통 사람과 같지 않은 정신적·신체적 차이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장애인·성소수자가 대표적이고 천재도 남과 다르다는 차이의 측면에선 대동소이하다. 그런 ‘비정상’의 사람들은 대개 따돌림당하기 일쑤이고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 천주교가 인정하고 껴안은 성소수자처럼 특별한 경우가 없지 않지만 ‘차이와 다름’은 여전히 불편한 기피의 명제임에 틀림없다.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는 이탈리아 휴가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콜로세움, 다비드상 등 각종 볼거리를 계획한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승무원이 ‘네덜란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비행에 변화가 생겨 네덜란드에 머물러야 한다. 당신은 이제 밖으로 나가 새로운 여행안내서를 사고 생소한 언어를 배워야 한다. 지인들은 이탈리아를 오가며 자랑을 늘어놓을 테지만, 그곳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슬퍼하면서 살아간다면 네덜란드를 즐길 마음의 여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유명 유아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작가 에밀리 펄 킹슬리의 말이다. 다운증후군 질환을 앓는 아들에 충격받아 사는 일상을 ‘예상 밖의 여행’이라 한 심경은 비정상 자식을 둔 부모의 가슴을 에둘러 드러낸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바로 그 비정상 자식을 둔 부모들의 절절하고 가슴 찡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극복의 이야기를 통해 미처 생각지 못한 인간성과 가족의 정의를 곱씹게 한다. 저자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한낮의 우울’을 쓴 미국 저널리스트. 매 순간 차이와 다름을 처절히 겪는 300여 가구를 인터뷰, 1600쪽의 방대한 보고서로 내놓았다. 인터뷰 분량만 해도 4만쪽에 이를 만큼 책에는 그 차이와 다름의 각론이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DNA나 민족성, 문화적 규범, 언어, 심지어 종교까지 많은 것을 대물림받는다. 자식들이 부모와 공유하는 이런 것들은 삶에서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책은 부모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수평적 정체성’을 가진 자식과 부모의 문제에 천착했다. 동성애자, 청각 장애인, 소인, 다운증후군·자폐증·정신분열증 아이, 신동, 강간으로 잉태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사는 법이라고 할까. ‘부모와 다른 아이들’, 즉 ‘예상 밖 아이들’을 만난 부모는 두 부류로 나뉜다. 자식을 정상의 보통사람들에 맞춰 살아가게 만들거나, 자식의 다름 자체를 인정해 살도록 돕는다. 책에는 그 두 부류의 실제 사례가 생생하게 교차된다. 장애와 비정상을 비방·차별 대상이 아닌 그저 또 다른 하나의 정체성과 다양성으로 인식하게 이끄는 게 책의 특장이다. 비정상의 자식을 보통 사람들에 맞추려는 부모들의 사례는 바로 이 책이 반면교사로 삼은 핵심 메시지랄 수 있다. 작은 키를 늘리는 하지연장술을 받은 아이는 팔다리 뼈가 산산조각 난 채로 수년 동안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 산다. 수화를 금지하고 발화 교육만 받도록 한 결과 많은 청각 장애인들이 언어 자체를 잃었고 삶이 망가진 사례도 제시된다. ‘장애를 박멸하려는 부모,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비정상에 대한 호의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일 수 있다’ 미국서 살해된 자폐아동의 절반 이상이 부모에 의해 살해되고 자식을 살해한 부모 중 절반이 ‘이타적 행동’이라고 주장함은 이를 잘 보여준다. ‘가족은 차이를 둘러싼 관용과 불관용의 시험대이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가장 원초적이고 시급한 장소’ 2011년 뉴욕주에서 동성애자인 게이 간 결혼이 합법화된 과정은 그 적절한 예로 제시된다. 자폐증을 앓는 두 손주로 고통받았던 공화당 상원의원과 그에 동조한 의원들이 또 다른 차이를 인정한 게 결정적이었다. ‘다름과 차이는 비방·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정체성과 다양성의 하나일 뿐이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 ‘바레카이’의 대박에는 선천적으로 퇴행성 골반질환을 앓았던 이 공연 연출자의 스토리가 회자된다. 목발과 스케이트보드를 이용한 브레이크댄스를 고안해 연기자에게 자신이 했던 것처럼 목발 춤을 가르쳤다. 책의 저자는 그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기능하는 골반과 다리를 가졌다면 어떤 종류의 우아함은 어쩌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재벌 3세 공화국/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재벌 3세 공화국/오일만 논설위원

    ‘땅콩 회항’이 일등공신이다.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도 시켰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모순과 부조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기회가 됐다. 재벌총수 일가의 황제경영 민낯을 봤고 국토교통부 내의 항공마피아들의 음습한 커넥션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재벌 3세로의 무분별한 경영권 승계가 우리 경제와 국가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시간도 갖게 됐다. 기업 경영의 대물림이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할 생각은 없다. 세계적 대기업 중에서도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가족기업도 있다. 발렌베리 가문이 경영하는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의 경우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5대째 기업을 대물림하고 있지만 비판의 소리는 드물다. 후계자 선정이 까다롭고 능력을 검증받은 소수의 가족만이 경영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의 ‘묻지마 경영’이 보편화된 우리의 기업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문제는 후계자의 자질과 경영능력이다. 우리의 재벌 3세들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뭐 하나 부족함을 모르고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났다. 잘난 부모 덕에 외고 등 특목고를 나와 해외 명문대나 MBA 등 최고의 교육도 받는다. 청년 백수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이들은 한 번의 좌절도 없이 입사 후 5~7년이 되면 임원으로 승진한다. 경제개혁연구소의 2013년 경영권승계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대졸 신입사원은 부장까지 17.3년, 임원까지 21.2년의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조현아 전 부사장은 25살에 입사해서 7년 만에 임원이 됐고 부사장이 되기까지 1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동생들은 더 빨라서 조원태 부사장은 3년, 조현민 전무는 4년 만에 임원이 됐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 등 재벌 3세들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이런 주마간산(走馬看山)식 경영수업으로 제대로 된 조직문화를 익히기도 어렵고 직장인들의 애환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경영권을 쉽게 물려받으니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이 생기고 독단에 빠지기도 쉽다. 올바른 인성과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춘 3세도 있겠지만 대체로 회사직원을 자신들의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사고가 생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땅의 월급쟁이 미생(未生)들의 공분을 샀던 땅콩회항 사건이 비뚤어진 재벌 3세의 일탈행위가 아닌, 우리 재벌의 구조적 문제로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재벌 3세들은 매뉴얼대로 하는 교육에 익숙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그럭저럭 회사를 꾸려갈지 몰라도 돌발적인 위기상황이 닥치면 우왕좌왕하는 특징이 있다. 거센 풍파를 헤쳐가는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벌 2세가 경영하는 30개 기업 가운데 17개가 문을 닫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매출규모 국내 20위 기업 가운데 재벌 3,4세가 경영에 참여하는 곳은 95%(19개)에 달한다. 지금의 추세라면 재벌 3세들은 향후 10년 내 경영권을 승계해 최고경영자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크다. 검증도 없이 중책을 맡고 맡은 사업이 실패해도 책임을 지는 경우도 드물다. 한국 경제는 물론 한 국가의 운명이 검증받지 못한 재벌 3세들에게 좌우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투자의 귀재로 미국의 5대 갑부로 꼽히는 워런 버핏은 경영권 세습을 빗대 “2020년 올림픽 대표팀을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식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창업주는 기업을 세우고 2세는 물려받고 3세는 파괴한다”는 서양 격언과 비슷한 맥락이다. 경영을 해야 할 3세와 해서는 안 될 3세를 가려내는 일도 어찌 보면 재벌 총수들의 의무일지 모른다. 재산이야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되지만 기업의 경영권 세습은 다른 문제다. 재벌기업의 부실과 몰락은 주주는 물론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경영권만큼은 실력으로 맡을 수 있는 경쟁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제 능력 없는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것인지, 재산은 물려주되 경영권을 따로 떼어 외부 전문가에게 맡길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oilman@seoul.co.kr
  • ‘불황에도 전석 매진’ 박효신·김동률 어떤 특별함이?

    ‘불황에도 전석 매진’ 박효신·김동률 어떤 특별함이?

    가요 팬들 사이에서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 불리는 가수 김동률과 박효신의 콘서트. 지난 12~14일 이들의 서울 공연장에는 ‘예매 전쟁’에 성공한 팬들이 입추의 여지 없이 꽉 들어찼다. 평소 TV에 출연하지 않는 가수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을 터. 이들의 공연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었을까. 두 공연은 오직 음악에만 집중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박효신 데뷔 15주년 기념 공연 ‘해피투게더’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 박효신을 소몰이 창법의 발라드 가수라고 생각한 관객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줬다. 웬만큼 그의 노래를 아는 팬이라고 해도 달라진 창법에 새로움을 느낄 만한 공연이었다. 사흘간 서울에서 3만 3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박효신은 한편의 뮤지컬 같은 무대를 꾸몄다. 그 안에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으려는 듯 공연은 장장 4시간여 동안 계속됐다. 발라드로 시작해 분위기를 전환했던 기존의 공연과는 달리 그는 시작부터 ‘해피투게더’ ‘사랑 사랑 사랑’ 등 흥겨운 곡들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콘서트 1회 비용을 들여 마련했다는 발광다이오드(LED) 팔찌는 그의 주문에 따라 관객들의 손목에서 형형색색으로 바뀌며 공연장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시계의 초침이 과거로 돌아간 무대에서 초창기 데뷔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그는 ‘해줄 수 없는 일’ ‘좋은 사람’ ‘안녕 사랑아’ 등의 히트곡을 불렀다. 최근 뮤지컬 배우를 겸업하기 시작한 그는 발성에도 적잖은 변화를 보였다. 다소 둔탁하고 묵직했던 목소리는 고음으로 갈수록 음색이 맑고 가벼워졌다. 뮤지컬을 한 뒤로 표현력이 풍부해지고 목소리 톤도 한결 담백해졌다. 그는 자신이 출연했던 ‘모차르트’와 ‘엘리자베스’의 주요 넘버에 공연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올해 음원 차트를 강타한 ‘야생화’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12, 14일에도 똑같았다. 그는 “그저 노래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저를 15년간 노래하게 해 준 팬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매끈한 입담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가수로서의 풍부한 감수성과 진심은 보는 관객도 울컥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사흘간 1만명의 관객을 모은 김동률의 콘서트 ‘동행’은 가수 인생 20년을 훌쩍 넘긴 그의 장인정신을 느끼게 했다. 그 흔한 배경 영상이나 현란한 무대 장식 없이 오직 관객들을 음악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밴드 등의 연주자 35명과 함께 무대를 꾸민 그는 완벽하고 정교한 음향을 선보였다. 지난 10월 음원 차트를 강타한 6집 앨범 ‘동행’의 전 수록곡과 ‘취중진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사랑한다는 말’ 등 기존의 히트곡을 적절히 섞어 신구 팬들을 배려한 점도 돋보였다. 새롭게 편곡된 ‘아이처럼’도 숨겨진 공연의 포인트였다. 다소 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무대는 음악의 결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조명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모했다. 과거에 비해 여성 팬들의 함성은 줄었지만 남성 팬들의 박수 소리는 더 늘었다. 게스트인 존박이 나올 때 객석이 술렁이자 그는 “아름대운 대물림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20년의 세월을 지나 관객과 동행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에게서 한결 넉넉해진 음악인의 모습이 느껴졌다. 빛과 음악의 향연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기억의 습작’으로 막을 내린 콘서트는 유행을 타지 않는 공연계 ‘베스트셀러’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장희영씨는 “김동률의 무대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고 깊은 감흥에 젖게 한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온라인 아동 성학대 방지 세계 힘 모은다

    한국과 미국, 영국 등 53개국 정부는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온라인 상의 아동 성학대 피해 방지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온라인 아동 성학대 피해방지를 위한 이행선언에 합의했다고 여성가족부가 12일 밝혔다. 각국 정부와 23개 인터넷 기업, 10개 비정부기구 대표들은 이행선언문을 통해 인터넷에서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음란 동영상과 이미지를 제거하고 범죄자 색출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아동 성학대 콘텐츠DB를 구축, 공유하고 제도적 신고장치를 마련키로 했다. 또 기업 및 민간사회단체들과 협력해 사법집행기관들에 대한 교육과 기술향상, 아동보호를 위한 인식 함양, 교육캠페인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인터넷기업 차원의 이행선언문을 통해 온라인 아동 성학대물의 제거를 위한 기술체계 구축과 비정부기구 지원, 성학대 근절 캠페인에 동참키로 약속했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김희정, 온라인 아동 성학대 피해 방지 국제회의에

    김희정, 온라인 아동 성학대 피해 방지 국제회의에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영국 주최로 10, 11일 런던에서 개최되는 ‘온라인 상의 아동 성학대 피해 방지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한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미국·네델란드 등 54개국 각료급 참가자와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업체 관계자, 인터폴(INTERPOL) 등 국제기구가 참가한다. 회의 참석 국가·업체·국제기구 등은 온라인 상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학대 동영상이나 이미지 등으로부터 아동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협력 강화를 모색할 계획이다. 이번 회의는 온라인 상의 아동 성적 피해가 국경과 사법권의 경계가 없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이 절실함에 따라 영국 총리가 제안해 이뤄졌다.  영국 초청으로 참석하게 된 여가부는 온라인 상의 아동 성 학대 등 성 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교육·피해자 지원,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부처다.  54개 참가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국은 온라인 상의 아동 성 학대 피해 방지를 위한 이행 계획을 발표하고, 54개 참가국 등은 3개 세션별로 토론도 하고 이행 계획도 발표할 계획이다.  첫 번째 세션은 ‘성학대 피해 아동을 찾아내고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주제로 아동 성학대물의 국가 DB를 구축해 인터폴(INTERPOL) 국제 아동 성학대 DB와 공유하며, 이를 적극 활용해 피해자를 찾아내고 보호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두 번째 세션은 ‘인터넷 상의 아동 성 학대물 제거를 위한 국제적 실천계획’으로 인터넷 기업이 해쉬값(hash)으로 음란한 동영상과 이미지 등을 찾아내고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국가적 노력 및 기업, 민간단체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해쉬값은 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암호 같은 수치를 뜻한다.  세 번째 세션은 ‘가해자 색출을 위한 강화된 국제협력’을 주제로 아동 성 학대 콘텐츠의 제작·배포·소지 행위의 불법성 규정, 각 국가별 전문인력 구성과 국제 공조 등에 대해 논의한다.  이밖에도 김 장관은 런던의 한글학교 교장 및 교사들을 만나 격려하고,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공감대 형성과 여성 인권 문제로 다음 세대에 대한 교육 필요성 등을 강조할 계획이다.  이어 내년 5월 ‘학교 밖 청소년 지원법’ 시행을 앞두고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지원 시설 등 영국의 정책 현장을 방문, 우리나라 여성·청소년 정책에도 반영해 나갈 계획이다.  김 장관은 “우리나라는 이미 아동음란물 등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 배포뿐 아니라 소지한 자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규정을 시행하는 등 인터넷을 통한 아동 성 학대 방지를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면서 “회의 참여를 통해 아동·청소년 성 보호를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향후 국제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특별한 졸업여행/이석우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특별한 졸업여행/이석우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만경봉호가 기항하던 자리에는 일본 화물선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선박 위로 거대한 기중기들만 화물 컨테이너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동해 너머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일본 니가타항 국제 부두. 지난 10일 항구를 찾은 25명의 청년은 만경봉호가 기항하던 부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해 20차례 이상 입항하던 만경봉호는 2006년 일본 정부의 입항 금지 조치로 니가타 항에 들어올 수 없게 됐지만 청년들은 9만 3339명의 재일교포와 그 가족들을 북으로 실어날랐던 만경봉호가 금세 떠난 것처럼 항구와 바다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청년들은 한반도미래재단이 운영하는 통일지도자아카데미 수료생들이었다. 과정을 마치고 구천서 이사장 등 미래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니가타로 수료를 기념한 ‘졸업 여행’을 온 참이었다. 20대 초반에서 30대의 탈북 청년 12명도 있었다. 1959년에서 1984년까지 186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송 현장에서 그들은 더 침통하고 숙연해했다. 함흥, 회령, 새별 등 고향도 다양하고, 집안 환경이나 삶의 역정도 제각각이지만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왔다는 점은 같았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평생 후회하며 살았다. ‘왜 우리를 여기에 데려왔느냐’는 엄마의 원망은 늘 외할머니를 짓눌렀고, 자책과 눈물 속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북송교포 가족인 영숙(가명)씨는 니가타항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오사카에 사셨던 외할머니가 13살이던 엄마와 외삼촌들을 데리고 1962년 바로 이 자리에서 북송선을 탔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혀왔다” 외할머니의 후회와 엄마의 원망, 그리고 그 원망과 회한을 영숙씨도 3대째 대물림하고 있었다. 항구 부근 재래시장을 지날 때 영숙씨는 “외가 식구들이 이곳에서 내복과 식료품 등을 박스째 사 갖고 북송선을 탔다는 이야기를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고향 청진을 떠나 2년여 동안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다가 10여년 전에 서울에 안착했다. 다른 11명의 탈북 청년들도 제각각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있었다. 배가 고파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중국 농촌으로 팔려갔던 이도 있었고, 휴전선에서 근무하다 지뢰밭을 넘어 남으로 온 북한군 출신도 있었다. 북한에선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자유의 갈증에 사선을 넘은 젊은이도 있었다. 북송 현장에서 “북에 있는 엄마를 보고 싶다”고 한 청년도 있었고, 깊은 한숨만 연거푸 쉬는 이도 눈에 들어왔다. 몇몇 탈북 청년들은 외모나 말씨에서나 전혀 남한 출생자들과 구별이 가지 않았다. 동행한 남한 출신 청년들도 그들과 하나가 돼 함께 하고 있었다. “내 소원은 평범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란 한 탈북 청년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요코다 메구미 등 일본인들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니가타 주변 해안도 살펴봤다. 때마침 니가타 현은 ‘잊지 말자 납치, 11월 15일 현민(縣民) 집회’를 준비하느라 공항과 역, 시내 주요 시설물 이곳저곳에 사진 전시회를 열고 안내문을 붙여놓고 있었다. jun88@seoul.co.kr
  • 남이 버린 것 먹는… 버림받은 복지

    남이 버린 것 먹는… 버림받은 복지

    #1. 전북의 한부모 지원 시설에서 두 돌 된 아들과 사는 임모(22·여)씨는 재혼한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소득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아이 아버지는 군 입대 후 소식이 끊겼다. 4명의 동생을 키우느라 여유가 없는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임씨를 도울 여건이 안 된다. 어머니가 눈치를 보며 가끔 반찬이나 옷, 쌀, 김치 등을 갖다 주는 게 전부. 임씨는 “아기가 아픈데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할 때 가장 괴롭다”고 토로했다. #2. 경기도에 사는 조모(72·여)씨는 지적장애 2급 손자를 키우고 있다. 이혼 뒤 손자를 떠넘기고 연락이 끊긴 아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딸도 둘 있지만, 이혼 뒤 자녀를 키우느라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조씨는 위염과 식도염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받을 시간도, 돈도 없다. 월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으로 간신히 공과금을 내지만, 집세는 밀린 지 오래다. 교회에서 배달해 주는 반찬으로 간신히 먹고산다. #3. 수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른팔·다리를 못 쓰는 황모(59)씨는 경기도의 임대아파트에서 아내와 산다. 아들의 수입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에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방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아들은 제 앞가림도 버겁다.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아내의 월급 100만원이 유일한 수입이다. 그는 “획일적 기준으로 수급 대상을 정할 것이 아니라 실상을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13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데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대상이 되지 않는 ‘비수급 빈곤층’의 살림살이는 수급자보다 훨씬 팍팍했다. 특히 비수급 빈곤층은 난방과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복지조차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최근 1년간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른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수급 빈곤층은 19.9%로, 수급 빈곤층(11.1%)을 웃돌았다. ‘돈이 없어 난방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는 응답 역시 36.8%로, 수급 빈곤층(25.3%)보다 높았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는 비수급 빈곤층은 36.85%로 수급 빈곤층(22.2%)보다 많았다.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교육 여건도 차이를 보였다. 비수급 빈곤층의 42.4%는 ‘고등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다른 조사에서 전체 평균은 5.7%에 불과했다.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을 당한 경험도 평균치보다 많았다. ‘자녀가 지난 2년간 놀림이나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수급 빈곤층은 21.2%, 수급 빈곤층은 23.8%였다. 전체 평균은 9.3%다. 사회안전망에서 외면받는 이들은 기댈 언덕도 턱없이 부족했다. ‘물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척, 친구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수급 빈곤층의 90.9%, 비수급 빈곤층의 85.4%에 이른다. 국민 전체 평균은 18.5%다. 심지어 비수급 빈곤층 5명 중 1명(20.2%)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진욱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수급 빈곤층 가운데 남이 버린 것을 먹고, 입으며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가 아니면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들은 심층면접 과정에서 몹시 높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견 수렴을 거쳐 빈곤층 보호를 위한 정책 개선을 정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사설] 병영문화 개선, 또다시 용두사미 되지 말아야

    국방부는 어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가 마련한 병영문화 개선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5개 분야에 걸쳐 전문가들이 내놓은 25개 과제라지만, 이것저것 다 하려는 시늉만 담은 ‘아이디어 잡화점’처럼 비친다. 가혹 행위자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고 구속 수사한다는 원칙을 세운 대목에선 병영폭력 근절 의지는 어느 정도 읽힌다. 그러나 28사단 윤 일병 사건에서 보듯 병영폭력의 근원은 간부들의 해이한 기강임을 간과한 느낌도 든다. 부디 군 당국은 재탕·삼탕 개선안을 걸러 내고 25개안의 옥석과 경중을 가려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놓기 바란다.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을 혁신의 중점으로 삼으려는 취지 자체는 옳다. 이를 위해 인간 존엄 중심으로 신세대 장병의 인성을 함양하고 군 형법을 개정해 영내 폭행뿐만 아니라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등을 신설하다는 방침도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장성들의 인성이 바뀌어야 한다”(기무사령관 출신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른바 ‘관심간부’가 ‘관심병사’ 못잖게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차원에서다. 굳이 17사단장 성추행 사건 등 간부들의 최근 일련의 일탈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지난번 임 병장 사건 때를 보라. 임 병장이 일반전초(GOP)의 동료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는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기 2개월여 전에 해당 소초장은 보직 해임됐다지 않는가. 병영 기강 확립을 위해서는 지휘관들이 신세대 병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리더십을 재정립해야 한다. 인사 불이익을 우려한 초급 장교들이 쉬쉬하며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한 분위기부터 고치자는 뜻이다. 그저 임기 동안 사고가 없기만을 바라는 일선 간부들의 심리가 병영폭력 은폐를 야기하고 선후임병 간 폭력의 대물림을 초래하는 것이다. 사고 위험이 큰 전방 부대에는 가급적 정예 초급장교들을 우선 배치해야 한다. 나아가 군내 인권침해나 가혹행위 발생 시 초기에 적발해 내면 초급장교나 부사관을 문책할 게 아니라 외려 승진 인사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인사평가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비극을 막으란 얘기다. 임 병장 사건이나 윤 일병 사건이 던져 준 교훈이다. 병영혁신안이 애초 취지와 달리 국방 예산을 늘리는 방편으로 변질돼선 곤란하다. 부대 잡무 민간용역 전환이나 옥상옥 같은 국방행동과학연구소 설립 아이디어가 그런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특히 부대 안 잡초 제거 같은 일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민간용역으로 돌리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오죽하면 “병사들이 전투 준비에 필요한 삽질도 못하는 결과를 낳는 게 아닌가”(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라는 비판이 나오겠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군 폭력에 관한 한 엄중한 처벌로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는 있지만,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총기사고 가능성을 늘 안고 있는 GOP에 병력자원 부족으로 인해 관심병사들이 투입되는 일부터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병사들이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발생한 기회 손실을 보상하는 취지의 군 가산점제를 위헌 시비를 피할 만한 수준에서나마 부분적으로 부활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국민개병제하에서 인권이 보장되는 강군을 육성할 근본 처방이라고 본다.
  • 가난이 낳고 무관심이 키운 病 ‘비만’

    가난이 낳고 무관심이 키운 病 ‘비만’

    [富] 한 달에 600만원을 버는 회사원 최모(42)씨는 아무리 바빠도 점심 때 짬을 내 회사 내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한다. 점심은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저녁은 채소와 콩 위주로 먹는다. 최씨의 몸무게는 72㎏로 날씬한 데다 피부도 좋아 종종 훈남 소리를 듣는다. [貧] 두 달 전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발을 다친 휴학생 김모(26)씨는 온 종일 집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생활비도 충분치 않고 딱히 밥을 차려줄 사람도 없어 끼니는 대부분 라면으로 해결한다. 스트레스는 과자를 먹으며 푼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빨리 먹고 빨리 일해야 하니 라면이나 정크푸드, 빵 등을 주로 먹었다. 지금 김씨는 키 173㎝에 몸무게 93㎏로 비만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뚱뚱하다는 것은 옛말이다. 요즘 비만은 가난 탓이다. 과일과 채소는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내고, 주로 싸고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라면이나 햄 등 고칼로리에 나트륨 덩어리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다 보니 날씬해지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부모가 일하러 나간 동안 싸구려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 시청에만 매달린다. 어릴 적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져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저소득층의 비만은 대물림도 된다. 날씬함은 이제 가난한 가정에서는 누릴 수 없는 사치품이 됐다. ‘비만도 나라가 구제해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11년간 쌓인 일반건강검진 빅데이터를 활용해 9일 초고도비만율을 소득수준별로 분석한 결과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초고도비만율이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높고, 건강보험가입자 기준으로는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초고도비만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정부가 의료비를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사회복지시설수급자, 북한이탈주민 등 취약계층으로 2013년 기준 145만여명에 이른다. 이들의 초고도비만율은 1.23%로 재산이나 소득이 높아 보험료를 많이 내는 최상위 집단(보험료 상위 5%)의 0.35%보다 3.5배가 더 높았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더 비만해 여성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초고도비만율은 1.57%에 달했다. 남성 의료급여 수급권자(0.87%)보다 3배 이상 높다. 건강보험료 가입자 중 보험료 최하위 집단(보험료 하위 5%)과 최상위 집단 간의 초고도비만율 격차도 2002년 0.12%에서 2013년 0.40%로 계속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와 시골의 비만율 격차도 컸다. 최고도비만율은 2013년을 기준으로 16개 시·도 가운데 제주도(0.68%)가 가장 높고, 대구·울산(0.39%)이 가장 낮았다. 질병관리본부 오경원 건강영양조사과장은 “아무래도 농촌 지역은 도시보다 평균 소득이 낮다 보니 몸 관리에 소홀하고,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만큼 신체활동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가난병=비만병’이란 씁쓸한 현상은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영국 해외개발연구소의 ‘미래다이어트’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과체중·비만 인구는 1980년 2억 5000만 명에서 2008년 9억 4000만명으로 4배가량 급증했다. 우리나라의 초고도비만율도 2002년 0.17%에서 2013년 0.49%로 상승해 최근 11년간 2.9배가 증가했다. 정부가 우선 저소득층 비만치료를 지원할 대책이라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만 예방 대책은 첫발을 뗀 수준이다. 비만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건강보험공단의 비만관리대책위원회가 지난 10월에야 출범했고 아직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담뱃세를 올려 흡연율을 낮추듯 정크푸드 등 고칼로리 음식에 ‘비만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됐지만, 저소득층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반발이 거세 아직은 먼 이야기다. 미국은 2010년 어린이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모든 학교 내에 설탕이 들어간 음료와 정크푸드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또 미국 50개 주 가운데 28개 주가 탄산음료 등에 별도의 세금을 매기거나 판매세 면세규정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비만세를 부과하고 있다. 프랑스는 식품과 음료광고에 당류·소금·인공감미료에 대한 건강 경고 문구를 넣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연간 광고예산의 1.5%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비만인구가 서민에 집중돼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비만세를 부과하면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세금을 걷는 것과 반대로 칼로리가 낮은 건강식품의 부가가치세를 내리거나 보조금을 지급해 서민도 건강식을 사서 먹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건강식품의 가격 수준을 임의로 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은 예산 부족이 문제다. 대한비만학회는 고도비만 치료에 보험급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술 비용이 600만~800만 원에 달하는 위 밴드 수술이나 1200만~1300만원이 드는 소매절제술, 위 우회술 등을 건강보험 도움 없이 저소득층이 받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비만학회와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등 관련 학계는 비만 수술 보험 적용을 위해 10년이나 공을 들여 왔지만 가수 신해철씨의 죽음 이후 위 밴드술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난감해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위장관외과 박성수 교수는 최근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주최로 열린 식품건강포럼에서 “비만 수술을 받은 고도비만 환자의 수술 후 5년 내 사망률은 수술받지 않는 고도비만 환자보다 89%나 낮다. 즉 고도비만 수술은 득이 실보다 더 크다”면서 “고도 비만과 병적(病的) 비만을 포함한 모든 비만에 대해 예외 없이 건강보험 비급여를 고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용어 클릭] ■ 초고도비만 체질량지수(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BMI)를 기준으로 비만의 정도를 5단계로 분류했을 때 가장 심한 수준을 말한다. 체질량지수가 18.5 이하면 저체중, 18.5~23은 정상, 23~25는 과체중, 25~30은 비만, 30~35는 고도비만, 35이상은 초고도비만이다.
  • 정총리 “공무원 집단행동 자제”… 노조 반발

    정총리 “공무원 집단행동 자제”… 노조 반발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진통이 확산되는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가 6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공무원들의 집단행동 자제를 촉구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중앙부처 차관급이 이날 연금 개혁에 동참할 것을 결의한 데 이어 장관급과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의 동참 선언도 이어질 예정이어서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국가 미래를 위해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며 “국민 부담을 줄이고 연금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점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실 것을 공무원 여러분께 당부한다”고 호소했다. 정 총리는 “정부는 이번 개혁을 통해 기여율과 지급률을 조정하고 지급 개시 연령도 연장해 공무원연금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의 대국민담화 발표는 이번이 여섯 번째다. 정 총리는 ‘앞으로 20년 동안 재정 적자 200조원’ 등 현행 연금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를 국민 부담으로 돌리기 어렵고, 자칫 후손들의 빚으로 대물림될 수 있다”며 “이 상태로 가면 연금을 지급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는 이어 “정부는 공무원 여러분에게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승진 기회 확대 등 처우와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의 집단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공무원연금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더불어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도 깊이 고려해야 할 문제”라며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도입 시기 등을 감안하더라도 수급액이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공무원연금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는 “연금 개시 연령도 국민연금의 65세보다 5년 빠르다. 이로 인해 많은 국민이 지금과 같은 연금은 납득할 수 없으며 국민의 어려움을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중앙부처 차관들은 이날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열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추 실장과 차관급 29명 모두가 먼저 동참하기로 결의했다. 국무조정실은 “공직사회, 특히 고위 공직자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연금 개혁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결의문에 서명하기도 했다. 장관급 23명은 다음주 정 총리 주재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집단으로 밝힐 예정이다. 청와대에서도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조만간 공무원연금 개혁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각 중앙부처와 지자체 고위 공무원단 2213명에게 공무원연금 개혁 동참 서명문에 서명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노조는 정 총리의 담화를 비판하며 성명서를 내고, 의견 수렴을 위한 국민포럼을 사흘째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등 반발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세계 최대 물리학연구소 CERN 사상 첫 여성 소장 탄생

    세계 최대 물리학연구소 CERN 사상 첫 여성 소장 탄생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이탈리아 소녀는 17세가 되던 해 우연히 ‘마리 퀴리’의 전기를 읽었다. 밀라노대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동시에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치며 교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가지 길 중에 그는 결국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선택했다. 30년이 흐른 뒤 중년이 된 소녀는 ‘21세기 최고의 물리학 성과’를 이끌었고 지난 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60년 역사상 첫 여성 소장에 지명됐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발견의 주역인 파비올라 자노티(52) 박사 얘기다. CERN은 5일(현지시간) “파비올라 자노티 박사가 2016년부터 롤프 디터 호이어 현 소장의 뒤를 이어 CERN을 이끌게 된다”고 발표했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자리 잡은 CERN은 1만 7000여명의 과학자가 근무하는 세계 최대의 물리학 연구소다. CERN에서 지난 60년간 얻어진 연구 결과는 물리학뿐 아니라 인류의 삶 자체를 바꿔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월드와이드웹’(WWW), 인터넷이다. CERN의 과학자였던 팀 버너스 리가 연구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1989년 제안한 것이 인터넷의 시초가 됐다. CERN은 약 10조원을 들여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구축, 2009년부터 힉스 입자를 찾는 데 전력투구했다. 빅뱅 직후 우주를 구성하는 16개의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힉스를 찾아 현대물리학의 근간인 ‘표준모형’을 완성하겠다는 도전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공동 실험’인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것이 바로 자노티 박사다. 2012년 7월 4일 그는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가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선언했다. 자노티 박사는 소장에 지명된 뒤 “CERN은 과학 발전의 중심이자 전 세계 물리학의 자존심, 과학기술 혁신의 요람이자 협력과 평화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현재 LHC 개조 작업을 하고 있는 CERN은 자노티 박사가 소장을 맡는 2016년부터 전 우주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 연구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김주혁 선임기자의 가족♥男女] 가정폭력·아동학대

    [김주혁 선임기자의 가족♥男女] 가정폭력·아동학대

    이모씨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성실한 교사였으나 집에서는 결혼 생활 15년 동안 줄곧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바람피우며 아내와 자녀, 처갓집 식구에게까지 폭행을 가했다. 아내의 옷을 벗긴 채 욕하고 때리며 같이 죽자며 아내와 자신의 목에 흉기를 대고 위협하다가 아내가 밀치는 바람에 숨졌다. 당시 6학년이던 이씨의 딸은 판사에게 제출한 탄원서에서 “엄마는 아빠의 폭언과 폭력을 참아 가며 오빠와 나를 위해 이혼하지 않고 살아온 불쌍한 사람일 뿐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아빠의 죽음은 엄마가 아빠한테 맞은 것의 10분의1도 안 되니, 죄 없는 엄마와 함께 살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법원까지 갔으나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고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이 밖에도 남편의 구타에 못 이겨 가출했던 아내를 남편이 독살한 사건, ‘매 맞으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내가 자살한 사건, 10여년간 가족에게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를 재수생 아들이 살해한 사건…. 모두 20년이 넘은 실제 사건들이다. 이처럼 가정폭력의 비극은 심한 경우 가해자나 피해자 중 한쪽이 타살이든 자살이든 세상을 떠나야 막을 내리게 된다. 이 같은 불행한 일들은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아이들 때문에, 또는 전업주부라서 이혼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또는 남편의 협박이 두렵기 때문에 이혼도 신고도 못한 채 생지옥 같은 생활을 이어 가는 안타까운 피해자도 많다. 가부장제의 영향 때문에 사적인 집안일로 여겨졌던 ‘매 맞는 아내’ 문제는 1983년 여성의전화 창립을 계기로 사회문제화했다. 당시 여성의전화가 한국 최초로 조사한 결과 42.2%가 구타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1995년 개봉된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는 아내 구타 문제를 다뤄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1997년 가정폭력 방지법과 처벌특례법이 제정돼 가정폭력이 범죄이자 공적인 문제로 확립됐다. 그러나 이 법은 인권 보호보다 가정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여성가족부의 2013년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미만 기혼 여성의 지난 1년간 부부폭력 발생률은 45.5%다. 정서적 폭력 37.2%, 경제적 폭력 5.3%, 성학대 5.4%, 방임 27.3% 등이다. 신체적 폭력은 7.3%로 영국과 일본의 3%보다 높다. 부부폭력 발생 당시에 ‘그냥 있었다’ 68%, ‘자리를 피하거나 집 밖으로 도망’ 16.8%, ‘함께 폭력행사’ 12.8% 등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98.2%였고, ‘주위에 도움 요청’은 0.8%에 불과했다. 아동 대상 폭력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지난해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 자행됐다. 아동 22명이 학대를 받다 숨졌다. 툭하면 아이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하는 모습을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장소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지만 선진국에서는 모조리 아동학대로 처벌 대상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 가정폭력의 악영향은 부부뿐 아니라 자녀에게까지 미친다. 피해자와 자녀 모두 우울증, 스트레스장애, 자살충동, 불안에 시달린다. 자녀의 공격성이나 비행 문제도 심각하다. 신동욱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의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범과 살인범 중 아동 청소년기 가정폭력 경험자가 각각 64%와 60%다.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도 어려서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성매매 여성도 대부분 가정폭력 등으로 해체된 가정에서 10대 때 가출한 여성들이다. 집에서 학대받은 아이들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가정폭력은 대물림될 뿐 아니라 모든 범죄의 씨앗이 된다. 가정폭력은 단순히 집안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도 어찌 보면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자신과 가족을 불행하게 하는 가정폭력을 더 이상 방치하거나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가정폭력 가해 경험자는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치료를 스스로 받아야 한다.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가해자가 상담치료를 스스로 받지 않는다면 피해자나 이웃들이 적극 신고해서 가해자가 상담치료를 받도록 도와줘야 한다. 가해자를 궁지로 모는 게 아니라 좋아지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도 상담치료를 받아야 한다. 경찰, 검사, 판사 등 수사·재판 담당자들도 가정폭력을 내 가족의 일처럼 여겨야 한다. 2010년 여가부 실태조사에서는 경찰에 신고해도 집안일이니 잘 해결하라며 출동하지 않은 비율이 17.7%, 출동했다가 그냥 돌아간 비율이 50.5%였다. 가정폭력이 척결 대상 4대 사회악에 포함된 가운데 경찰관 현장출동이 의무화되고 가정폭력 전담경찰관도 배치되며 경찰 대상 가정폭력 인식개선 교육도 활발히 이뤄지면서 달라지기는 하지만 아직도 수사·사법기관에 대한 2차 피해 호소가 적지 않다. 2013년 가정폭력 신고건수가 1만 6785건이고 구속률은 1.46%에 불과하다. 재범률은 2008년 7.9%에서 2012년 32.2%로 늘어났다. 피해자 보호명령을 가정법원에 신청하면 싱가포르에서는 24시간 안에 소환장이 발부되고 1주일 안에 처리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두 달이나 걸리는 등 현실적인 문제점들도 개선돼야 한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살인 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종종 인정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혼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왜 살인까지 했느냐”는 등의 이유로 전혀 인정되지 않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여가부는 매달 8일을 ‘보라데이’로 정해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피해자를 일찍 발견하도록 주변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인 시선으로 ‘함께 보라’는 의미다. 가정폭력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자세로 관심 있게 지켜보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김재련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은 “가정폭력에 대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신고해야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 교육·상담 등을 통해 재범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면서 “가정폭력 재범자는 엄중 처벌로 일벌백계해야 하는데 안 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happyhome@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서울반도체] 설립 초기부터 두 자녀에 승계 시작

    서울반도체의 승계 작업은 설립 초기부터 시작됐다. 외부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지분 관계만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정훈 대표는 두 자녀가 있는데, 올해 34살인 장남 민호씨는 서울반도체 지분의 8.71%를, 딸 민규(27)씨 역시 8.71%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개인 2대 최대 주주다. 2002년 코스닥 상장 때부터 지분을 증여받는 식의 전형적인 중소기업의 대물림 형태지만 사실상 몸집이 커진 서울반도체로서는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수순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민호씨는 2009년 서울반도체 재무회계 부서의 대리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민호씨는 현재 MBA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회계 부서로 입사한 건 회사 경영을 공부하려면 자금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 이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름 때문에 차남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던 딸 민규씨는 아직 해외에서 공부 중이다. 민규씨는 올해 400대 부자 중 최연소로 268위 (2020억원)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 대표는 이들 자녀의 향후 거취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이들 자녀의 승계를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개인 최대 주주인 이 대표의 지분은 16.72%다. 주요 계열사에서도 두 자녀는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서울바이오시스는 이 대표가 34.67%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민규, 민호씨가 각각 11.87%, 11.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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