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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성기 칼럼] ‘65년 체제’ 깨든가 고치든가

    [황성기 칼럼] ‘65년 체제’ 깨든가 고치든가

    지난 3월 일본 NHK에서 방송한 드라마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6년에 펴낸 같은 이름의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인 노화가가 일본의 침략전쟁 와중에 일본 정신과 천황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려 부와 명예를 누렸으나, 패전과 동시에 미 군정에 의해 ‘전범’으로 몰려 붓을 꺾고 180도 뒤집힌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내용이다. 일견 과거를 반성하고 고뇌하는 듯 흘러가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충격적인 대사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스스로를 부당하게 비난할 필요는 없어. 적어도 우리들은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고 최선을 다해 일했으니까.” 침략과 전쟁, 식민지배의 음습한 역사를 ‘신념’과 ‘최선’이란 말로 포장하거나 덮으려는 세력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시구로는 ‘전범 화가’를 통해 암시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패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2015년 8월 14일 아베 신조 총리는 담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담화에는 분명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란 옹색한 표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베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죄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데 있지 않았을까. 노화가가 자신에게 던지는 과거의 합리화 궤변은 ‘전후 레짐(체제)의 탈피’를 역설해 온 아베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죄의 숙명’에서 벗어나려는 아베의 행동은 담화 발표 후 4년 뒤 강제동원 판결을 핑계로 한 백색 국가 제외라는 기습적 조치로 구현된다. 한국에 65년 협정을 지키라며 50여년 지켜 온 양국의 신뢰 관계를 허무는 경제보복은 사실상 ‘65년 체제’의 종언을 일본이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은 54년간 성역이었다. 성역이 뭔가. 들여다봐서도, 만져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지금도 한일협정을 깬다는 소리를 하면 기겁부터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비교적 진보 성향의 사람들조차 한일협정에 손상이 가면 나라가 결딴나기라도 하는 양 예민하게 반응한다. 일본과 관계를 끊어서 어쩌자는 거냐며 호들갑 떠는데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맺은 ‘65년 체제’는 이제 더이상 성역과 동의어가 아니다. 민주화한 사법부가 2012년 5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2018년 10월 30일 그 판결을 확정했다. 이미 그들 판결로 협정은 협정일 뿐 성역이 아니라고 주문을 읽어 내린 것이다. 처음부터 협정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세기 넘게 한일의 침묵 카르텔이 유지됐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보복 7·4(반도체 부품 3품목 수출규제), 8·2(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역설적으로 협정에 숨은 모순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줬다. 이제는 그 카르텔이 깨졌다. 누더기로 변한 65년 체제는 기워서 재활용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3일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의 청산을 제안했다. 심 대표는 65년 협정의 불평등한 요소를 수용해 우리 국민의 인권을 짓밟는 결정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면서 ‘65년체제청산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구성하자고 말했다. 왜 이런 소리가 협정이 체결되고 50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공당의 대표 입에서 나왔는지 놀라울 정도다. 87년 민주화에도 꼭꼭 숨어 있던 65년 협정 신화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세상에 영원불멸은 없다. 국가끼리 맺는 조약, 협정도 예외가 아니다. 한미 군사훈련을 ‘터무니없고, 돈 든다’고 새털처럼 조롱한 트럼프야말로 협정·조약의 탈퇴·파기의 선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파리협정 이탈 그 모두 트럼프 작품이다. 이란 핵 합의를 내동댕이치고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도 서슴없이 깼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를 위협해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하고, 일본의 아킬레스건 미일안보조약도 흔들어 댔다. 최강자가 부릴 수 있는 횡포이지만 탈퇴와 파기가 반드시 강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더기가 된 65년 체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제 그 물음과 솔직하게 대면할 시간이 왔다. 더는 한국과 같은 편이 될 수 없다는 일본 횡포에 우리도 결기를 보여야 한다. 언제까지 피식민국 보는 듯한 무례한 언행을 참고 견뎌야 하나. 65년 체제를 깨든가, 고치든가 양단간에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 우리 토종 종자 보전·육성한다...경기도 ‘토종 종자은행’ 추진

    우리 토종 종자 보전·육성한다...경기도 ‘토종 종자은행’ 추진

    경기도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 토종 종자를 보존 육성하기 위해 ‘경기도 토종종자은행’(가칭)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13일 밝혔다. 이는 2012년부터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토종 종자를 수집하는 보존사업이 일부 진행했지만, 전문적인 보관·저장 시설이 없어 어렵게 수집한 종자가 서로 섞이거나 분실될 위험에 놓인 데 따른 조치다. 토종 종자를 생산하는 도내 농업인의 절반 이상이 80대 이상이어서 대물림할 후계자가 없는 데다 빠른 도시화로 토종 종자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도 반영됐다. 이에 경기도는 토종 종자의 전문적인 보관·저장 시설을 비롯해, 전시실, 검사ㆍ실험실, 육묘ㆍ증식장, 도민들이 토종종자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야외 체험장 등을 갖춘 토종종자은행을 설치·육성할 계획이다. 토종 종자은행은 평택시 오성면으로 이전한 수원 소재 경기도 종자관리소에 올해 11월 개설된다. 아울러 도는 민간단체, 생산농가, 농민단체, 소비자단체, 학계 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거버넌스 협의기구로 ‘경기도 우리씨앗 네트워크’를 구성해 관련 정책을 논의한다. 도와 도의회는 이달 26일 거버넌스 출범식과 정책토론회를 연다. 시민단체인 전국토종씨드림의 변현단 대표는 “사라져가는 우리 씨앗에 대해 안타깝고 정부 차원의 정책이 아쉬웠는데 경기도가 발 빠르게 나서줘 너무나 다행이다”며 “경기도의 토종종자은행은 전국적인 모범이 될 것이며 시민단체 차원에서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박종민 경기도 종자관리소장은 “토종 종자는 우리 땅에서 오랫동안 자라온 우리의 문화이며 미래의 소중한 자원으로서 보존과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며 “토종종자은행을 통해 보존은 물론 다양한 주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경기도 토종농작물 보존과 육성을 위한 조례’를 2014년에 제정했으며 2012년부터는 토종종자 전문 시민단체를 지원해 화성시 등 7개 시군에서 1746점의 토종종자를 수집·보존해 오고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명성의 부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명성의 부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한국 장로교의 양 산맥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과 합동(예장합동)은 원래 한 뿌리 공동체였다. 1912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모태로 한다. 예배를 함께 드리는 한 가족이었지만,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과 에큐메니컬 운동 수용 문제로 대립하다가 갈라진 뼈아픈 역사를 갖는다. 이 가운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원인 예장통합은 진보 성향의 교단이다. 개혁교회 전통을 계승하면서 교회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신학적 노선 때문이다. 최근 목회자 세습으로 관심이 집중된 명성교회는 예장통합의 상징이자 한국 장로교 최대의 교단이다. 등록 교인만 10만명인 그 초대형 교회를 있게 한 주인공은 창립자인 김삼환 목사다. 1980년 서울 강동구 명일동 상가 건물 2층에 십자가를 세워 교인 20명으로 첫 예배를 드린 명성교회. 그 교회는 지금 장로교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의 교세를 자랑한다. 그 교세 성장의 바탕으로 명성교회는 ‘세상에 속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참교회를 지향한다’고 늘 강조한다. 실제로 명성교회는 복음의 전파와 나눔의 실천 차원에서 그 어떤 교회보다도 앞장서고 있는 공동체로 인정받는다. 그 부러움과 닮고 싶은 모범의 대상이던 명성교회의 위신이 급전직하한 건 역시 세습 때문이다. 창립자 김삼환 목사에게서 아들 김하나 목사로 담임을 넘기는 세속의 대물림 말이다. 명성교회 측은 세습이 아닌, 청빙이라고 강조한다. 예장통합 헌법, 이른바 세습금지법도 위반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김삼환 목사가 은퇴한 지 2년이 넘은 시점에 아들 김하나 목사를 청빙했고, 많은 교인들이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을 그 당당함의 근거로 세워 놓고 있다. 하지만 교회 측의 주장은 이제 별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형편이다. 지난 5일 예장통합 교단 재판국이 명성교회의 청빙을 헌법 위반과 무효로 온 천하에 선포한 터다. 그 엄연한 상황에 명성교회가 택한 건 ‘재판 불복’의 천명이니 딱한 노릇이다. 더구나 다음달 23일부터 시작되는 예장통합 교단 총회에 이번 재판 결과의 근거인 세습금지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여차하면 사안을 사회 법정으로 옮겨 끝장을 볼 태세다. 세습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명성교회. 그 어두운 추락의 한켠에서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명성교회의 밝은 모습을 입에 담고 떠올린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참교회’ 말이다. 그 밝은 교회의 이미지엔 어김없이 창립자 김삼환 목사의 얼굴이 포개진다. “우리 명성교회에는 세습이 없다”고 당당하게 외쳤던 김삼환 목사다. 한국 개신교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계에서도 막중한 영향력을 과시해 ‘한국 개신교의 얼굴’로 불리던 김삼환 목사 아니던가. 2013년 부산에서 성대하게 열린 WCC 제10차 총회도 김삼환 목사를 빼놓곤 말할 수 없다. 그 개회식에서 김 목사가 세상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던진 세계 평화와 나눔의 메시지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결국 ‘명성의 부활’은 김삼환 목사의 몫이 아닐까. ‘세상의 참교회’ 명성교회를 조심스럽게 떠올려 본다. 쉽지 않은 기대이겠지만. kimus@seoul.co.kr
  •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서 원폭피해 74주기 추모제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서 원폭피해 74주기 추모제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한국인피해자들의 넋을 기리는 ‘제74주기 한국인 원폭 피해영령을 위한 추모제’가 6일 경남 합천에서 거행됐다.올해 추도식에는 처음으로 국무총리 명의 조화가 설치되고 현직 장관도 참석하는 등 정부가 피해자들을 적극 돕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이날 오전 11시 합천군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추모식은 원폭 피해자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서 주최·주관했다. 협회측은 국내 단체 주도로 추도식이 시작된 2011년 이후 국무총리 명의 조화가 설치되거나 장관이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추도식에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박성호 경남도 행정부지사, 문준희 합천군수, 원폭 피해자와 그 가족, 일본 시민단체 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추도식에 참석한 박 장관은 추도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타국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한국인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며 “일본의 침략과 지배로 인한 역사, 이런 아픈 역사의 희생자를 가슴에 새기고 원폭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며 평화의 초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앞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의료 지원과 추모 사업 등 보다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성호 도 행정부지사는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합천군과 경남도, 보건복지부가 힘을 모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한국원폭피해자를 돕는 시민모임’ 회장 이치바 준코 씨는 “일본 정부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배상 문제에 한일협정으로 해결했다고 54년간 주장해왔지만 한국인 희생자와 유족께 사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일본 아베 총리는 오늘 아침에도 히로시마 땅 위에 서며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며 “(우리 단체는) 앞으로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배상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일본 정부의 헛소리를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추도식은 추도사, 추모 묵념, 피해자 및 유족 대표 인사, 헌화, 기념촬영 등의 순서로 50여분간 이어졌다. 박 장관 박 부지사 등은 추도식 참석에 앞서 복지회관을 찾아 원폭 1세 피해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원폭 피해자 단체와 면담을 했다.피해자 단체는 “비핵평화공원 조성과 원폭 2·3세 피해자 지원을 위한 원폭피해자특별법 개정 등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건의했다. 박 장관은 “내년도 예산안에 비핵평화공원 조성 타당성 조사를 위한 예산 1억원이 반영돼 있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피해자들을 추념하기 위한 공원 사업을 적극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박 장관은 “정부가 좀 더 공식적으로 피해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추도식에 직접 참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을 차례로 투하해 당시 해당 지역에 있던 한국인 7만명이 피폭돼 그 가운데 4만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3만명은 살아남았지만 피폭 후유증이 대물림 돼 2~3세까지 후유증에 시달리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원폭 피해자 가운데 70%가 합천 출신으로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도 불린다. 협회와 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생존해 있는 원폭 피해자 1세는 2261명으로 이 가운데 360여명이 합천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울광장] ‘윤석열호’ 검찰의 ‘1호 사건’/박홍환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윤석열호’ 검찰의 ‘1호 사건’/박홍환 편집국 부국장

    윤석열 검찰총장을 처음 만난 것은 13년 전인 2006년 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법조팀장을 맡아 세 번째 검찰 출입을 할 때였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소속 부부장검사였던 그는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에 파견돼 있었다.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10살 가까이 나이가 많고, 잠깐 변호사로 ‘외도’까지 했던 그를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이 직접 검찰의 ‘핵심’으로 뽑아 올렸다고 했다. 정 전 총장은 이번에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장을 맡아 윤 총장에게 또 한번 힘을 보태 주는 인연을 더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했던 박영수 특검이 당시 중수부장을 맡고 있는 상태에서 그해 2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수사기획관으로 합류해 수사 총괄지휘를 준비했다. 최재경·오광수 등 내로라하는 ‘특수통’ 부장검사들이 중수 1·2과장을 맡았고, 윤 총장을 친형처럼 따르는 윤대진 현 수원지검장도 연구관으로 칼날을 갈고 있었다. 2005년 11월 출범한 ‘정상명 체제’ 검찰의 사실상 ‘1호 사건’ 수사팀의 면면이다. 팀플레이 또한 화려했다. 로비스트들의 자금 루트를 따라가다가 거대한 ‘비자금 저수지’를 발견한 수사팀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현대차비자금 사건’ 수사의 서막을 알렸다. 수사가 중반쯤 진행됐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귀동냥으로 수사 윤곽이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매일같이 늦은 밤(새벽 1~2시) 대검청사 앞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박 부장과 채 기획관을 비롯한 현대차비자금 수사팀이 하루 수사를 마무리한 뒤 모습을 나타냈다. 녹초가 된 몸을 진정시키려고 500㏄ 호프 한잔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수사와 관련한 질문을 일절 하지 않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합석했는데 우연히 앞자리에 대윤(大尹·윤 총장)과 소윤(小尹·윤 지검장)이 앉았다. 대화 내용은 이제는 가뭇해져 기억나지 않지만 윤 총장이 했던 말은 대략 이랬던 것 같다. “검사는 모름지기 범죄를 외면해선 안 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수사와 관련한) 타협은 없다.” 수사 책임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현대차비자금 사건 수사의 방향과 강도를 짐작할 만한 단초는 충분했다. 그렇게 ‘강골검사’로 뚜렷하게 각인된 윤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공정한 경쟁 질서의 확립”을 외쳤다. 윤 총장은 ‘시장 교란 반칙행위’와 ‘우월적 지위의 남용’을 추호의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중요한 범죄로 꼽았다. 그는 또 ‘경제적 강자의 농단’을 사실상 헌법 체제 파괴 행위로 규정짓고 형사 법집행 역량을 집중해 뿌리 뽑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윤석열호(號)’ 검찰의 ‘1호 사건’ 대상과 강도를 점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한 기업의 놀라 나자빠질 만한 행태를 검찰도 눈여겨보았길 고대한다. 창립 30년 만에 8조원대 자산과 즉각 현금화 가능한 2조원대의 유동성을 보유한 재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반칙과 농단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총수의 자녀들은 20대 중반~30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벌써 지배 기업과 계열 기업의 최대주주로 등극해 있다. 이들은 10대 후반쯤부터 계열사들에 수억원의 자본금을 댈 정도로 재력이 풍족했다. 그 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또 그중 한 회사는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10년 만에 매출액은 94배, 당기순이익은 28배나 키웠다. 그리고 모기업과의 합병을 통해 그룹 승계까지 이미 사실상 끝냈다. 20대 중반 막내아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칠 것 없이 진격해 온 대자본의 힘을 맹신해서일까, 이제는 언론사까지도 공격적·적대적 인수합병(M&A)의 대상물로 삼을 정도로 ‘경제적 강자의 농단’에 심취해 있다. 경제 권력의 힘을 맹신해 호령·조롱하며 세상을 농락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도 포착한 반칙의 정황들이 검찰의 촘촘한 범죄 정보망에 누락됐을 리는 없다고 본다.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인용하면서 검찰 구성원들을 상대로 “이 같은 헌법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며, 국민의 사정을 살피고, 국민의 생각에 공감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법집행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정의라고도 했다. ‘윤석열호’ 검찰은 공정한 경쟁이 아닌 불공정한 독단으로 형성된 부의 부당한 대물림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국민들은 ‘윤석열호’ 검찰의 ‘1호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금수저’ 정치인 이대로 좋은가...의원 세습 논란 불붙은 일본

    [특파원 생생리포트]‘금수저’ 정치인 이대로 좋은가...의원 세습 논란 불붙은 일본

    지난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의 당선자는 여야 합해 모두 125명. 이 중에서 조부모·부모 등 친족 중에 국회의원 출신이 있는 이른바 ‘세습의원’ 당선자는 전체의 10%인 12명이었다. 집권 자민당이 9명으로 가장 많고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무소속 각 1명씩이었다. 직전 국회의원 선거인 2017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는 전체 당선자 465명 중 26%(120명)가 세습의원이었다. 일본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세습 정치인의 비중이 높다. 특히 자민당 소속 의원들은 3명에 1명꼴로 ‘금수저를 물려받은 정치인’이다. 아베 신조 당 총재 겸 총리는 물론이고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 등이 모두 아버지의 대를 이은 정치인들이다. 한국에서라면 용납되기 힘든 권력의 대물림이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번 참의원 선거를 계기로 일본 특유의 정치세습 풍토의 적정성과 타당성 등에 대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 교수(비교정치학)는 “일본과 같은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하원의 세습의원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며 일본의 높은 빈도를 비교해 설명했다. 소선거구제 도입 등을 통해 후보자 공천은 정당 중심으로 바뀌었음에도 세습의원의 비중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습의원은 이른바 ‘3반’의 프리미엄을 갖는다. 일본어 발음으로 ‘지반’(아버지 등이 닦아 놓은 지역기반), ‘간반’(간판·지명도), ‘가반’(돈가방·자금력)의 3가지를 말한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삼촌 등으로부터 후원회는 물론이고 자금관리 조직까지 물려받기 때문에 처음 입후보할 때부터 남들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선거에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적 시각에서 보면 거부감이 크지만, 세습의원들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선거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주장을 소신껏 펴면서 정치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비교적 젊어서 당선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정책에 정통한 식견을 갖출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젊은층의 정치참여 확대 캠페인을 벌이는 시민단체 ‘닷제이피’의 사토 다이고 이사장은 “단순히 세습이어서 안 된다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라면서 “어릴 때부터 부모 등의 모습을 보며 정치인이 될 준비를 해 온 만큼 스캔들이나 말실수가 적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습되지 않은 ‘자수성가’형 의원들일수록 처신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일본 정가의 통념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직전인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초선 의원들이 각종 비리나 실언 등을 많이 저질렀다. 당시 초선 의원들은 대부분 (세습이 아닌) 공모로 선택된 사람들이었다”고 전했다. 이는 세습의원들의 기득권 방어에 유리한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른바 ‘3반’이 없이 불리한 상태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하는 비 세습 정치인 지망생들을 생각하면 세습의 풍조가 평등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세습의원이 지나치게 많으면 인재의 다양성에 문제가 생기고 급변하는 시대 조류에 대한 대처능력이 약해지기 쉽다. 보통 어려서부터 잘먹고 잘자란 사람들이어서 서민·중산층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는 단점도 있다. 우치야마 교수는 “세습의원이 많아지면 ‘겨뤄봐야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일반인들의 정치참여 욕구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이 출마했다가 낙선했을 때 회사에 쉽게 복직할 수 있는 환경 등 비 세습 후보의 선거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토 이사장은 “정당이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세습 정치인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후보 경선 과정을 외부에서서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지지 않는 태양’ 386세대의 민낯

    ‘지지 않는 태양’ 386세대의 민낯

    386세대.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5·18, 6·10 등 격변의 현대사를 관통해 온 이들을 설명하는 단어다. 이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1980년대에서 30여년이 지난 지금, 386세대는 날 선 분노와 조롱을 받는 세대로 전락했다. 새 책 ‘386세대 유감’은 ‘못 먹고 못 배운 부모세대를 제치고 일찌감치 30대 때 권력을 거머쥔 뒤, 아랫세대의 길을 막은 채 여태껏 힘과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386세대 비평서다. 20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에서 50대 기득권 세력이 되기까지 과정을 젠더를 가리지 않고 되짚고 있다. “후속 세대에게 386세대는 지지 않는 태양”(210쪽)처럼 보인다. 오히려 “학연 지연 혈연이 얽히고설키며 그 지위는 더욱 공고”(211쪽)해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의 대물림, 기회의 독점 등을 욕했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그 모순의 수레바퀴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책은 부동산, 일자리 등 여러 예를 들고 있는데, 대표적인 건 사교육이 아닐까 싶다. 1991년 학원수강이 실질적으로 허용되면서 학원은 일부 운동권 출신 대학졸업자, 전교조 해직교사 등의 피난처가 됐다. 이후 386 출신들이 세운 M학원, E논술학원 등은 사교육 시장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386세대가 학생이었을 때 유행했던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사교육이 나라를 망친다’-물론 언론도 그중 하나다-였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사교육 시장을 장악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돈을 번 뒤 이제는 교육 개혁을 막는 거대한 세력”(130쪽)이 됐다. 이뿐이랴. 영어 발음을 문제 삼아 자녀에게 혀 수술을 받게 할 만큼 교육에 광적으로 집착한 이들 역시 386세대였다. 책에선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들이 가끔 눈에 띈다. 여러 수치와 통계를 제시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시를 절대 가늠할 수 없고, 이해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는 후속세대를 이해한다는 386세대의 헌사에 아랫세대가 코웃음 치는 것, 386세대가 자신보다 앞선 세대의 가치관을 조롱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386세대가 곱씹어야 할 책의 메시지는 강력하다. ‘애초 당신 세대가 추구하던 가치와 본령을 굳건히 지킬 의지와 역량이 없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회 불광동과 은평한옥마을’ 편이 지난 13일 은평구 불광동과 진관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더위를 피해 불광역 구내에 집결한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불광대장간과 천주교 불광동성당을 찬찬히 둘러봤다. 참가자들이 독일제 쌍둥이 칼보다 한 수 위라는 ‘불광’ 부엌칼을 사려고 줄을 서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됐다. 김수근이 설계한 붉은 벽돌 성당은 “왜 굳이 유럽까지 성당 순례를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행은 701번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진관사와 은평한옥마을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답사 축지법(縮地法)이다.북촌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층짜리 한옥마을길을 요리조리 걷는 기분이 삼삼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수려한 조선 성종의 후궁 숙용 심씨 묘표는 압권이었다. 대리석 비석의 자태가 눈을 홀렸다. 걸레스님이자 화가 중광과 ‘소풍’의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 등 ‘도적놈 셋이서’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3명의 기인이사(奇人異士)를 모은 ‘셋이서 문학관’이 흥미진진했다. 백초월 스님의 얼을 느끼게 하는 진관사 태극기 비석을 거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옥상 전망대 정자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초복 바로 다음날의 폭염도 북한산 바람 숲 아래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맵시 있는 개량 한복 차림으로 참가자들을 이끈 베테랑 정순희 해설사는 은평구의 중심 불광동과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는 진관동에 서린 역사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냈다. 은평구는 ‘서울스럽지 않은’ 옛 풍광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했던 서울의 서북쪽 가장자리 고을이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가장 늦게 편입된 막내 자치구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물결로 뒤덮이기 전까지 5000기가 넘는 무덤이 산재한 땅이었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언급한 대사찰 청담사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나오고 서울에서 처음 통일신라시대 기와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다. 무덤과 유물은 조선시대 장례문화와 매장 풍습을 밝혀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해발고도 132m의 나지막한 진관동 이말산 기슭에는 역관과 내시, 궁녀의 무덤이 수두룩했다. 중국으로 가는 의주로(통일로)의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이리라. 의주로는 서울 서대문에서 의주까지 1080리 길에 이르는 조선의 제1대로였다. 중국과의 조공무역에서는 역관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전문직인 동시통역사이지만 조선시대 역관은 중인 신분의 대물림 직업이었다. 인동 장씨, 연주 현씨, 남양 홍씨, 우봉 김씨가 역관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역관은 단순 통역관이 아니라 외교전문가였고, 무역상이었으며, 외국어 교육가였다. 때론 스파이 노릇도 마다치 않았다. 천주교와 실학이 이들의 손과 입을 통해 국내에 전파됐다. ‘실학파의 아버지’ 유대치, 오경석도 역관 출신이었다. 이말산은 역관을 93명이나 배출한 우봉 김씨의 선산이기도 했다. 조선 말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국제인’ 김득련의 묘가 남아 있다.내시와 궁녀의 무덤이 대거 발굴돼 이목을 끌었다. 진관내동 중골마을 백화사 옆에 이사문(李似文)을 시조로 모시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실재했다. 국내 최대의 내시묘역으로 ‘내시들의 정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광해군 13년(1621)에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 김충영의 묘가 가장 오래됐다. 왕과 왕비의 명령을 전하는 최고의 요직 대전 승전색을 지냈다.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14기 중에는 종1품 숭록대부 2기, 종2품 상선의 묘 5기를 비롯해 정경부인에 오른 내시부부 합장묘도 7기가 있었다. 2003년 내시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 4억 8000만원에 조경업자 손에 넘어가 파헤쳐졌다. 석물도 사라지고 상선 노윤천의 묘 등이 봉분도 없이 남았다. 현종의 유모였던 상궁 옥구 임씨, 임실 이씨의 묘도 마찬가지다. 사후 고향에 갈 수 없었던 내시와 궁녀가 묻히기에 딱 좋은 땅이었다. 이말산은 한양 사대문을 둘러싼 그린벨트지역인 사산금표(四山禁표)를 막 벗어난 지역이다. 궁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살아서 권력이 있던 자가 죽으면 묻힐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에는 아쉽게도 내시묘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평은 경계의 땅이다. 개성에서 서울로 들어서는 경계이자 서울과 고양, 양주 세 지방이 만나는 접경이다. 옛 조선 한성부 북부의 상평방, 연은방, 연희방이 도성의 서북경계였는데 이 중 연은방(홍제원계, 양철리계, 불광산계, 신사동계 등)과 연희방(수색리계, 증산리계, 성산리계, 망원정계 등)의 일부가 오늘의 은평구에 속한다. 18세기작 ‘해동지도’나 19세기작 ‘광여도’ 등을 보면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은 서울의 서북 외곽인 은평구의 가장 끝에 북쪽을 향해 돌아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수봉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려가다가 서오릉이 안겨 있는 효경봉에서 북으로 한 갈래가 갈라져 나가 창릉천을 맞는다. 이 줄기가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의 경계를 이룬다. 비봉에서 나지막한 산줄기 하나가 서북으로 길게 뻗어나가 한복판에 낮은 봉우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이말산이다. 북쪽 창릉천의 낮은 지대가 진관내동이고 남쪽의 비봉에서 박석고개로 이어지는 큰 산자락 쪽이 진관외동이다. 1949년 고양군 일부가 서울시에 편입됐으나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진관내리, 진관외리는 1973년까지 이어졌다. 서대문구 은평출장소를 거쳐 1979년에야 은평구로 승격됐다. 신라의 청담사, 고려의 신혈사·삼천사와 조선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이다. 진관사는 1011년 고려 현종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터에 큰 절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 세웠다. 태조 이성계도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에게 제사 지내는 수륙재(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를 진관사에서 봉행토록 했다. 진관사의 신미대사가 첫 한글서적 중 하나인 ‘석보상절’을 펴낸 점과 세종이 성삼문·신숙주·박팽년·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이 머물면서 훈민정음을 연구토록 경내에 독서당을 세워줬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진관사가 한글창제 비밀 작업 공간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민족대표 33인에 서명한 만해 한용운, 대각사의 백용성 스님과 함께 조선 불교계의 독립운동 선봉 백초월 스님의 본거지였다. 백초월 스님은 진관사와 진관사의 포교원인 마포 극락암을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조직인 연통부의 불교계 연락본부로 사용했다고 한다.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와 인쇄물은 백초월 스님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태극기 보자기는 인쇄물을 싸고 있었는데 일장기 위에 먹물로 태극과 4괘를 그려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삼일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 대부분이 일장기에 덧칠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양식과 동일한 점 등이 인정돼 등록문화재 제458호로 지정됐다. 인쇄물은 삼일운동 직후 국내외 독립운동 현장에서 발간된 상하이판 독립신문, 신대한,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6종 16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발간한 신대한 2호와 3호는 유일본이다. 학계에서는 진관사의 태극기와 자료는 백초월 스님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백초월이 일본에서 체포돼 압송된 1920년 3월 이전 급히 숨겼다는 것이다. 1944년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하기 전까지 24년 세월은 체포와 옥고로 점철됐다. 진관사 태극기가 90년 만에 빛을 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진관사 진입로는 ‘백초월길’이라고 명명됐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3회 부암동 능금나무길 ■일시 및 집결장소:7월 20일(토) 오전 10시 윤동주문학관 앞(창의문)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속옷 브랜드에 기모노 넣어 ‘욕 들은’ 킴 카다시안 “새 브랜드 달겠다”

    속옷 브랜드에 기모노 넣어 ‘욕 들은’ 킴 카다시안 “새 브랜드 달겠다”

    리얼리티 스타 출신으로 디자이너 사업가로 전업, 교정용 속옷 브랜드를 출시하며 ‘기모노 인티메이츠’로 명명해 일본인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킴 카다시안 웨스트가 결국 브랜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카다시안은 지난주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할 때도 브랜드 이름을 바꿀 용의가 없다고 단호했지만 결국 2일 적절한 과정을 밟아 새 브랜드 이름를 공표하겠다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혔다. 그녀는 “난 늘 듣고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내 교정용 속옷 제품 라인을 발표했을 때 난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했다”고 털어놓은 뒤 “깊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난 이달 출시할 솔루션웨어 브랜드를 새 이름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모노는 남녀와 계층 구분 없이 입었으며 세세손손 건네질 정도로 일본인의 사랑을 받은 전통 의상이며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일본 여성 오히시 유카는 지난주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건강을 축하하고, 아이가 태어났다든지, 약혼이나 결혼, 졸업, 또는 장례식에서도 기모노를 입는다. 세대를 넘어 가족이 대물림할 정도로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면서 “이 몸매 교정용 속옷은 기모노와 전혀 닮지도 않았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 킴(Kim)이 그 안에 들어간다는 이유 만으로 우리 문화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자세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거꾸로 그녀의 이름을 활용한 해시태그 ‘킴 오 노(#KimOhNo)’를 붙여 조롱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엘리트의 대물림… 제국대학은 韓 ‘금수저’ 산실

    엘리트의 대물림… 제국대학은 韓 ‘금수저’ 산실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 지음/휴머니스트/392쪽/2만원 중앙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한종건은 그해 11월 6일 징역 6월, 집행유예 3월을 선고받는다. 출소한 그는 현해탄을 건너 가나자와 제4고로 향한다. 교토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다. 고등문관시험 사법과·행정과를 합격한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경찰부 보안과장이 된다. 3·1운동에서 만세를 외치던 소년의 변신이 참으로 드라마틱하다.●조선의 ‘금수저’ 등 1000여명 유학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엘리트들. 그들의 뿌리를 쫓아가면 ‘제국대학’ 학생들을 마주하게 된다. 식민지 조선에 있었던 경성제국대학생을 떠올릴 수 있지만, 진짜 엘리트는 따로 있었다. 일본 본토 9개 제국대학 유학생들이다. 신간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일본 제국대학을 졸업한 조선인 유학생의 행적을 추적한다. 저자 정종현 인하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10년 전 교토에서 조선인 유학생 명부를 본 뒤, 그들의 실체를 밝히려 졸업생 명단을 정리하고 동창회보와 각종 역사서를 뒤졌다. 지금까지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은 모두 784명이다. 중도 포기한 이들까지 합치면 1000여명이다. 대부분 ‘있는 집 자제’였다. 제국대학에 입학하려면 일반적으로 중학교 5년, 고교 3년의 최소 8년 동안 유학생활을 해야 했고, 대학 졸업까지는 적어도 11년이 걸렸다. 제국대학 평균 1년 학비와 수업료는 당시 가장 부유했던 평양시민 연평균 수입에 버금갈 정도였다. 소시민 출신, 또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 사례가 종종 있지만,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이상 꿈도 못 꿀 일이었다.●네트워크 기반으로 부와 관직 차지 제국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부를 일구고 관직도 꿰찼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연수를 꼽을 수 있다. 고려대와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의 동생이다. 전라도 대지주 집안 아들이었던 그는 열다섯에 유학 가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도쿄 유학생 모임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활동했던 그였지만, 졸업 이후 일본인 동창생과 긴밀히 지내며 한국 재벌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경성방직(경방)을 세우는 등 승승장구한다. ●이회창 前의원 등 제국대학 엘리트 집안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겨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가문은 제국대학 엘리트 집안의 대물림을 보여 주는 사례다. 본가, 외가, 처가가 모두 제국대학, 고등문관시험, 식민지 관료라는 사회자본의 종합적 구현체다. 독립운동가 문정손 재판에 참여했고, 후배들에게 출전을 권유한 총독부 판사 출신 이충영도 비슷한 경우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아들 이수성의 뒤에는 제국대학 출신의 판사 아버지가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침략정치 비판’ 박영출 등 다른 행보도 물론 제국대학 출신이 모두 비슷한 길을 걷지는 않았다.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윤동주와 함께 체포돼 옥사한 송몽규를 비롯해 교토제대에서 유학하며 일본 침략정치를 비판하고 한국에선 좌익운동을 하다 옥사한 박영출, 친일로 전향한 아버지 최남선을 거부하고 여운형을 따른 도쿄제대 졸업생 최한검 등의 행보는 분명 이들과 다르다. 세속적 성공과 시대적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다 학문으로 파고들거나, 더 나은 대우를 받으러 북으로 향한 사례도 있었다. 수재로 불리던 소년들이 식민지 조국을 떠나 제국대학으로 향하고, 정체성이 흔들린 채 귀향해 친일 또는 개인 영달에 급급했던 사례를 읽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난 행보에 관해 하나같이 “고통에 신음하는 식민지 동족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합리화한다. 그러나 이들과 반대의 삶을 살았던 이들도 분명 있었다. 제국대학 출신들이 근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기에,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 이들을 좀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북 매체 기생충으로 자본주의 비판, 국민소득은 한국이 23배

    북 매체 기생충으로 자본주의 비판, 국민소득은 한국이 23배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이 18일 영화 ‘기생충’의 흥행 소식을 전하며, 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엿볼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 이름과 함께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인 송강호의 이름을 명시했고, 해당 영화가 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사실도 전했다. 조선의 오늘은 이날 ‘한 편의 영화가 시사해 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조선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편의 영화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제도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의 악성종양을 안고 있는 썩고 병든 사회이며 앞날에 대한 희망도 미래도 없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금 똑똑히 깨닫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분석한 한국 언론 기사를 인용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배우로 알려진 송강호를 비롯하여 유명배우들이 영화에 많이 출연한 것도 있지만, 기본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실상을 실감 있게 보여주는 데 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남조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반인민성과 날로 심화되는 극심한 경제위기로 전체 주민의 16.5%가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했고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소득 격차는 무려 59배로 늘어났다”며 “부와 가난의 대물림으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고 사회 양극화와 빈부 차이가 극도에 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주인인 우리 공화국은 누구나 평등하고 고른 삶을 누리고 있어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3364만원이고, 북한은 146만원이다. 한국이 약 23배 많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북한이 영화 ‘기생충’을 보는 법…결국엔 ‘북 체제 우월’ 주장

    북한이 영화 ‘기생충’을 보는 법…결국엔 ‘북 체제 우월’ 주장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이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다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면서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18일 ‘한편의 영화가 시사해주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영화 ‘기생충’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남조선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편의 영화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제도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의 악성종양을 안고 있는 썩고 병든 사회이며 앞날에 대한 희망도 미래도 없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금 똑똑히 깨닫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 ‘기생충’의 인기 이유를 분석한 남측의 언론 기사를 인용,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배우로 알려진 송강호를 비롯하여 유명배우들이 영화에 많이 출연한 데도 있지만, 기본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빈부 격차의 실상을 실감 있게 보여주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는 반지하에서 가족 성원 모두가 직업이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집과 초호화주택에서 풍청거리며 살아가는 부잣집을 대조시키면서 생계를 위해 아득바득 노력하며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는 빈곤층과 인간에 대한 초보적인 예의마저 줘버리고 거들먹거리는 부자들의 행태를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현재 남조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반인민성과 날로 심화되는 극심한 경제위기로 하여 전체 주민의 16.5%가 절대빈곤층으로 전락되었고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소득 격차는 무려 59배로 늘어났으며 부와 가난의 대물림으로 하여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되며 사회 양극화와 빈부 차이가 극도에 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면에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된 우리 공화국은 누구나 평등하고 고르로운 삶을 누리고 있어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돌봄 대신 풀 뽑고 감자 캐고… 그곳은 이사장 일가의 왕국이었다

    돌봄 대신 풀 뽑고 감자 캐고… 그곳은 이사장 일가의 왕국이었다

    각종 농사일 원예 치료프로그램으로 둔갑 직원들 밭일·청소에 환자·장애인들 방치 돌봄보다 사적 업무 못하면 더 질책 받아 이사장 물러나도 아내·자식들 계속 운영 부당한 대우 알고도 절대 영향력에 침묵 송년회 등 시설 행사땐 ‘기쁨조’ 역할도‘이사장 일가의 소(小)왕국.’ 사회복지사들은 일부 사회복지시설을 이렇게 부른다. 민간인이 운영하는 시설에서는 매년 비리가 발생한다. 노인, 장애인 등 사회 약자를 돌볼 목적으로 운영되는 전국 사회복지법인 2만여곳에는 한 해 약 3조 1700억원의 정부 지원금이 투입된다. 하지만 공적 감시망이 허술한 틈을 타 일부 원장과 이사장이 시설과 직원들을 개인 소유물처럼 다루고 있다. 1996년 3월 문을 연 경기 안성의 A장애인복지시설도 이사장 일가의 왕국이다. A시설은 현재 중증 장애인 126명이 살고 있다. 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 등 직원 70여명이 일한다. 원장 이모씨가 명목상 책임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인 이사장인 이씨의 어머니가 시설을 총괄한다. 13일 노동시민단체인 ‘사회복지 119’에 접수된 제보와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곳의 직원들은 장애인을 돌보는 업무보다 마늘밭에서 풀을 뽑거나 감자를 캐고 고추를 따는 등 농사일을 주로 한다. 직원 B씨는 “정작 돌봐야 할 아이들(장애인)은 방치해 놓고 풀을 뽑거나 감자를 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경기도가 관련 문제를 조사해 “생활재활교사는 장애인 서비스를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권고하자 잠시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농사일은 원예 치료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최근 다시 직원들에게 강요되고 있다. 직원 C씨는 “지금도 감자, 고추, 양파, 마늘, 대파, 깻잎 농사에 동원되고 있다”며 “(이사장 일가는) 이 일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전혀 못한다”고 전했다. 권호현 변호사는 “법인과 사회복지사가 작성한 근로계약의 내용과 무관한 업무를 시켰다면 부당한 사적 지시로 볼 수 있어 근로기준법 위반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시설 내 도를 넘는 갑질은 다음달 16일부터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법은 비록 형사처벌 규정은 없지만, 직장 내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부당한 대우에도 많은 직원들이 침묵하는 건 이사장 일가의 절대적 영향력 탓이다. 설립자가 자녀에게 원장직을 대물림하면서 20년 넘게 운영해 왔다. 설립 당시 원장인 이모씨는 현재 원장의 아버지다. 그는 2000년 보조금 33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감사원에 적발됐다.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이사장직은 이씨의 아내가, 원장직은 아들이 물려받았다. 이사장의 두 딸과 사위도 시설에서 일한다. 이사장은 매일 시설을 둘러보는 이른바 ‘라운딩’을 주재한다. 이사장 이씨는 경기도의 조사에서 매주 시내 문화센터에 갈 때 시설 소유의 법인차량을 주로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뿐 아니다. 직원들은 “매년 바자회를 열면서 후원물품이나 10만원이 훌쩍 넘는 바자회 티켓 구매를 강요한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샴푸나 비누 등 생필품 중 유통기한이 지난 게 상당수일 정도로 관리가 부실하다”고 주장했다. 경기 안성경찰서는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이다. 이사장 일가의 왕국이 된 시설에서 직원들은 지쳐간다. 올해 초 경기도의 조사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자 직원들은 노동시민단체인 ‘사회복지 119’ 등에 제보했다. 직원 D씨는 “이사장 가족들이 사는 사택 청소를 직원들이 하기도 한다. 장애인 시설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질책보다 밭에 난 풀을 제대로 뽑지 않았다는 질책을 더 많이 들어야 하는 현실이 코미디 같다”며 “엄청난 불법이 아니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은 A시설의 해명을 듣기 위해 원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사장 일가의 작은 왕국으로 전락한 사회복지시설의 현실은 A시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복지 119에 접수된 사례만 살펴봐도 심각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복지사 E씨가 일하는 종교 재단 노인복지시설에서 직원들은 이사장의 기쁨조다. 행사를 할 때마다 직원들은 장기자랑 준비를 강요당한다. E씨는 “지난해 송년회에서는 복면가왕을 한다며 직원을 차출해 준비시켰다”고 전했다. 이사장은 법인 명의로 구입한 차를 개인 용무에 쓴다. 당연히 자동차세와 기름값도 법인카드로 결제한다. 이곳은 장기요양기관평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곳이다. 이 밖에도 센터장이 관내에 거주하며 국가 지원금을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하거나 시설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종교 행사에 직원들의 참여를 강제하는 곳도 있었다. 또 월급을 받으면 이 가운데 50만원을 다시 시설에 기부할 것을 강요하는 곳, 행사 진행을 목적으로 휴일 근무를 강요하고선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사설] 가업상속공제 확대, 부의 세습 강화 악용해선 안 된다

    지난 4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망을 계기로 기업 상속이 이슈로 떠올랐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오너가의 지배권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재계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제 당정이 발표한 가업상속지원세제 개편 방안은 이런 재계의 목소리를 일부 반영했다. 방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공제 혜택을 받는 중소·중견기업의 업종·자산·고용 유지 의무 기간이 10년에서 7년으로 줄어든다. 업종변경 범위도 확대됐다. 다만 막판까지 논란을 빚었던 공제 대상 기업의 매출액 기준과 공제 한도는 현행 3000억원 미만, 500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100년 전통의 명품 장수 기업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1997년 도입됐다. 중소·중견기업을 가업으로 물려받는 피상속인에게 상속세 과세를 할 때 공제를 해 줘 원활한 가업 승계를 돕고, 이를 통해 고용과 투자 위축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제도 도입 이후 적용 대상과 공제 규모가 지속해서 확대됐지만, 재계에서는 ‘제도 이용 건수가 연간 100건도 안 될 정도로 요건이 까다롭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상속세 부담에 기업 경영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따라서 이번 개편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 부진의 여파에 시달리는 경영인들이 기업 활동에 매진하고, 그 결과 한국 경제가 위기에서 빨리 회복될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재계는 매출액 기준과 공제 한도 확대가 빠진 데 대해 ‘상속세 리스크는 여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 도입의 취지를 감안하면 무리한 주장이다. 매출액 기준을 5000억원이나 7000억원으로 확대한다면 ‘100년 전통의 대기업’을 키우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 더불어 ‘상장회사의 주인은 소수 지분만을 가진 오너가가 아닌 주주’라는 주주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에도 정면 배치된다. 창업주의 가족이 마치 회사를 제 물건인 양 대물림하는 행태는 근절해야 할 전근대적 악습일 따름이다. 공제 한도를 더 늘리는 것 역시 ‘불로소득을 공동체에 되돌린다’는 상속세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각종 공제제도까지 감안하면 일본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지 않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 입장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의 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수단이 ‘부의 대물림’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질돼서는 곤란하다. 계층의 공고화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기업가 정신 등 창업 의지를 꺾는 결과를 낳는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기업 활동은 북돋우면서도 부의 세습과 집중을 완화하는 방안도 추가로 논의되길 기대한다.
  • 이재명 “버스 준공영제 지원금 사용내역 전면조사”

    이재명 “버스 준공영제 지원금 사용내역 전면조사”

    경기도가 ‘경기도형 버스 준공영제’ 도입을 앞두고 지난해 준공영제 버스 업체에 지원한 예산 사용 내역을 전면 조사하기로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3일 도지사 공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면서 버스 업체에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을 하고 있다. 공적 지원에 상응하는 만큼 공적 책임을 지는 것이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조사권한이 있는지 없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조사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재정지원금) 사용내역에 대한 전면 조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인천시 등이 시행하는 완전준공영제와 달리, 경기도는 지난해 4월 14개 시군, 15개 업체, 55개 광역버스 노선을 대상으로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도는 이들 업체에 지난해 242억원에 이어 올해 425억원을 지원한다. 이 지사의 지시에 따라 도는 운전직 급여와 수당, 통행료 사용내역 등은 물론 최근 지적된 임원진에 대한 주주 배당금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없는지 등을 면밀히 점검할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재정 지원을 하는데 남는 부분이 업체의 적자 보전하는 것을 넘어 흑자를 보장해주고 대물림까지 되는 것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기도 준공영제 업체의 경우 준공영제 노선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준공영제에 참여하지 않는 광역버스와 일반형 시내버스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예산 지원에 따른 수익금 구조를 따지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수익금 공동관리형 준공영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서울시나 다른 광역시들이 하는 방식을 베낀 것인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1년 정도 유예한 뒤 폐지하고 다른 제도로 대체해야 하는데 이미 지원을 받으면서 경영하기 때문에 폐지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어서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어 “수익금 공동관리형으로 계속 지원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5~10년 정도 기간을 정해 운영토록한후 평가를 해서 적당한 사업자를 선정하는 노선입찰제 이른바 ‘경기도형 버스 준공영제’ 도입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선입찰제는 현재 국토연구원과 경기연구원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남아 있는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버스대란’ 우려에 대해서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노사협상으로 원만히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씨줄날줄] 치과주치의/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치과주치의/이두걸 논설위원

    몇 년 전 나온 남북 첩보물 영화 중 한 장면이다. 총격전으로 사망자가 생겼지만, 남과 북 어느 쪽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신분증을 몸에 지니지 않고 있다. 이때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망자의 치아를 체크하는 것이다. 치아 관리 여건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제대로 치과 치료를 받은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영 허구는 아닌 모양이다. 북한에서는 충치가 심해지면 신경치료를 받는 대신 그냥 뽑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이유로 청년들조차 어금니가 서너 개씩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증언이 숱하게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더이상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치아 건강 면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가 어제 발표한 ‘2018년 아동 구강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2세 아동 중 56.4%가 충치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충치 경험 영구치아 수는 1.8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1.2개보다 크게 높았다. 미국(0.4개)이나 일본(0.8개)의 두 배 이상이었다. 3.30개였던 2000년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지만, 최근 들어 하락세가 주춤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아동의 치아건강이 가정의 소득수준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경제 상태를 ‘하’라고 답한 아이들이 최근 1년 사이에 치과 진료를 받은 비율은 62.8%로 경제 상태가 ‘상’인 아이들(73.8%)보다 11.0% 포인트나 낮았다. 반대로 치과 치료가 필요한데도 진료를 받지 못한 비율은 ‘하’ 응답자가 25.3%로 ‘상’ 응답자(12.4%)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 결과 ‘하’ 아이들의 1인당 평균 충치 경험 영구치아 수는 2.04개로 ‘상’(1.75개) 아이들보다 0.29개 많았다. 1일 2회 이상 간식을 먹는 비율과 탄산음료를 마시는 비율 등도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높았다. 치아건강 면에서도 ‘가난의 대물림’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구강질환에 대한 보장률이 낮아 치료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신경 치료만 하더라도 수십만원이 깨지기 일쑤다. 임플란트만 해도 지난해부터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됐지만 서민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이 만만찮다. 사회·경제적 격차에 따른 구강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아동·청소년 치과주치의 제도다. 영구치가 완성되는 12세 전후에 치과의사로부터 지속적인 구강 검진과 교육, 예방진료 등을 무료로 받는 제도다. 현재는 서울과 부산, 경기 성남시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1인당 4만원 정도의 비용이면 가능하다. 복지부가 내년부터 치과주치의 제도의 전국 도입을 위해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의무인 것처럼 아이들의 건강한 치아 역시 우리 사회가 보장해 줘야 한다. douzirl@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日서 전대미문의 소송...“연호는 헌법 위반” 결과는?

    [특파원 생생리포트]日서 전대미문의 소송...“연호는 헌법 위반” 결과는?

    일본에서는 지난 1일 나루히토 국왕이 즉위하면서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서기 2019년인 올해는 레이와 원년(1년)이 됐다. 내년 2020년은 레이와 2년이 된다. 일본 국민들은 새 시대를 맞아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저마다 환호했다. 이렇듯 일본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연호의 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무효를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소송이 31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구두변론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번 소송의 공동원고는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의 변호사 야마네 지로(82)와 전직 언론인 야자키 야스히사(86) 등 2명이다. 일왕의 대물림에 맞춰 이뤄지는 연호의 제정이 국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단절시키고,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두 사람이 소송을 낸 이유다. 이들은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에 따른 연호를 변경하도록 한 법령을 무효로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야마네 변호사는 1960년대 시즈오카에서 일어났던 재일조선인 김희로씨 사건과 도교대 야스다강당 투쟁으로 체포됐던 학생들의 변론을 맡았던 것으로 유명한 진보적 법조인이다. 그는 “나루히토 덴노(일왕)가 즉위한 5월 1일 0시는 카운트다운이 이뤄지는 축제와도 같았지만, 이를 통해 국민들은 군주에 지배되는 신민(臣民)으로 돌아가버렸다”고 도쿄신문에 말했다. 그는 200여년 만의 생전 대물림에 따라 이뤄진 이번 연호 교체는 히로히토 일왕의 사망에 따라 왕위 계승이 이뤄졌던 30년 전 ‘쇼와(昭和)→헤이세이’의 변경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야마네 변호사는 “연호는 국민주권을 원리로 하는 일본 헌법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연호의 제정은 헌법이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는 개인의 존엄과 인격권을 침해한다”면서 “‘나는 나’라는 자기동일성 의식은 연속되는 시간 의식을 통해서 가능하지만, 연호의 변경은 이를 단절시켜 버린다”고 했다. 그는 특히 “연호를 기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의식속에 덴노의 존재를 느끼며 덴노의 치세를 살아간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야마네 변호사는 “정부가 연호법을 제정할 때 이를 국민에게 의무화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 호적상 사망연도는 서기가 아닌 연호로 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호는 중국에서 황제가 시간을 지배한다는 사상에 기초해 기원전 140년 한나라 무제 때 시작된 ‘건원’(建元)에서 비롯됐다. 일본에서는 645년 ‘다이카’(大化) 이후 연호 변경이 247회 이어졌다. 에도 시대에는 왕위 계승 때만이 아니라 정치적 혼란이나 천재지변 등 다양한 이유에서도 연호 변경이 이뤄졌다. 왕의 재위시간과 일치하는 ‘일세일원’(一世一元)은 메이지 시대 왕실전범에 명기된 이후부터 적용됐다. 이때부터 왕이 즉위하면 새로운 연호를 제정하되 재위 중에는 바꾸지 않는 것으로 됐다. 그러나 연호제를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는 전후 왕실전범이 폐지되면서 소멸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연호법의 제정을 추진했으나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연합국총사령부(GHQ)가 반대해 이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법적근거를 잃고서 하나의 ‘습관’으로 격하됐던 연호는 1979년 연호법 제정을 통해 공식 부활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청소년부모 기획 의제 설정 호평

    청소년부모 기획 의제 설정 호평

    서울신문은 5·18 민주화운동 39돌과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미중 무역분쟁, 북미 간 교착 국면, 정치권의 패스트트랙 후폭풍과 막말·욕설 파문 등 다양한 현안이 펼쳐진 지난 한 달을 다룬 보도 내용을 놓고 28일 ‘제117차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를 열었다. 10대 부모 등 기획기사와 사립대 족벌경영 문제, 국회가 제구실을 못 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은 여러 위원들한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장감이 떨어지는 기사 등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의에는 김광태(온전한 커뮤니케이션 회장) 위원장, 홍영만(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장),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정성장(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심훈(한림대 언론학과 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위원들 의견을 요약한다. -여러 사설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대화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한 건 잘한 일이다. 그런데 5월 두 차례 군사훈련과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간주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일부에서 내놓는 성급하고 과도한 해석에 휘둘린 느낌이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배경에는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가 3월과 4월에 ‘동맹19-1’과 연합공중훈련을 진행한 데 대한 불만이 작용했다. 한미 연합훈련에 북한이 느끼는 위협은 무시하고 북한의 모든 군사훈련과 단거리 미사일조차 도발로 간주하는 이중 잣대는 잘못된 관행으로 과감하게 극복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2년간 일부 신문 빼고는 대부분 살아 있는 권력보다 야당을 더 비판했다. 워낙 황당한 짓을 하는 야당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야당만 자꾸 비판하다 보면 여당 잘못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려운 문제다. 문 대통령이 KBS 빼고 언론 인터뷰도 없는 터에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여러 가지 작심발언을 했다. 박근혜 정부 때 모습과 유사한 흐름 아닌가. ‘놀고 있는 국회’ 지적은 적절했다. 국민들이 시원하게 여길 만했다. 한발 나아가 반값등록금처럼 세비 50% 삭감 등 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았겠다. 예컨대 다른 나라 국회의원 세비와 비교하거나 국민소환제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후속으로 다루길 바란다. -경제기사 중엔 SK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경영을 한다고 강조한 게 도드라진다. SK가 하는 좋은 실험을 주목한 것에 개인적으로 고맙다. 계속 심층취재하길 기대한다. 환율과 화폐개혁을 다룬 기사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제대로 취재하지 못해 아쉽다. 최근 자영업자 연체율이 급증한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도 한 번에 그치고 후속보도가 없는 건 아쉽다. -우리 사회 그늘진 곳을 비추는 탐사기획은 늘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가정폭력이나 과로사 문제도 그렇고 열여덟 청소년부모 기사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의제 설정 능력이 뛰어났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실 자료를 입수한 ‘사립대 28곳 대물림 경영’ 단독보도 또한 아주 좋았다. 이에 비해 북한 웹사이트 살펴보니 김정은 위원장 찬양만 있다는 대목에선 북한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만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른바 킬링 콘텐츠가 경제, 국제면 쪽에 특히 부족한 듯하다. 중앙일간지 경제면을 누가 읽을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중고교생이 자기네 얘기를 발견할 때 대중적 영향력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타깃일 수 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일왕 대물림 속 아베의 거침없는 행보/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왕 대물림 속 아베의 거침없는 행보/김태균 도쿄 특파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다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정치인이다. 오는 11월 앞으로 6개월 후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을 달성하게 되는 아베 총리의 오늘은 때가 되면 나타나 줬던 ‘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롱런 가도 기반인 장기호황도 본인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아베노믹스’ 이전에 재임 중 용케 찾아와 준 상승 국면의 경기 사이클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대급 ‘복장’(福將)이라고 할 그가 천재일우 기회를 또 만났다.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와 아들인 나루히토 즉위 및 ‘헤이세이’(연호)에서 ‘레이와’로의 대바뀜, 그 이후의 가파른 정권 지지율 상승이다. 일왕 대물림 과정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부각시킨 사람은 단연코 아베 총리였다. 일본 국민들에게 일왕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위상은 정신세계에서는 절대적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헌법상 일왕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제1조)이지만,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제3조)이 있어야 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제4조)은 없다. 이노우에 다쓰오 도쿄대 교수는 현재와 같은 상징적 존재로서의 일왕 제도를 ‘일본에 남은 마지막 노예제’라고 말한다. 그는 이달 초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을 일체화시키기 위한 상징으로서 특정한 혈통을 가진 덴노(일왕)와 황족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덴노제다. 상징화된 덴노와 황족은 정치권력은커녕 인권마저 박탈당한 채 표현의 자유나 직업 선택의 자유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일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 직후 밝힌 소감조차 당일 아침 아베 총리가 주재한 각의에서 승인한 정부 문서였다는 점은 일왕의 초라한 현실을 잘 드러낸다. 아베 총리는 왕위 계승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자신과 집권 여당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활용했다. 지난 4월 1일 ‘레이와’라는 차기 연호가 공표되고 난 뒤 전례 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에게 연호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했다. 노골적인 자기 홍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나름의 성과는 컸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 후 국민들과 처음 만나는 ‘일반참하’ 행사도 당초 왕실 측은 가을 이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국민적 열기를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려는 아베 총리의 지시에 따라 즉위 직후 개최로 변경됐다. 왕실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거침없이 상승했다. 수정주의 역사에 기반해 헌법 개정 등을 시도하는 아베 총리를 자신의 재위 중 어떠한 총리보다도 못마땅해했던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긴 꼴이 됐다. 기세를 올린 아베 총리의 다음 행보로 주목받는 것은 고유권한을 발동해 중의원을 해산할지 여부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중의원을 해산해 당초 예정돼 있던 참의원 선거와 묶어 중·참의원 동시선거를 치름으로써 정국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간다는 구상이다. 아베 총리의 선택은 점점 더 해산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중·참의원 동시선거 쪽이 압승 가능성이 더 높은 상태에서 이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큰 틀에서 아베 총리의 지향점은 하나다. 70년 이상 유지돼 온 헌법을 개정한 총리로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거침없이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고도의 정치적 술책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공격적 외교와 과거사 부정, 영토 갈등 조장 등은 그가 언제든 뽑아 쓸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windsea@seoul.co.kr
  • [단독] 사립대 28곳 ‘족벌 경영’

    [단독] 사립대 28곳 ‘족벌 경영’

    교육부, 전국 299개大 개혁 보고서 학교법인 65% 친인척 주요 보직 장악 고려대·우송대·경성대는 ‘4대째 세습’ “후손들 운영권 독점이 비리 큰 원인 친인척 비율 제한 강화 등 법개정 시급” 설립자 일가가 3대 넘게 총장이나 이사장직을 ‘세습’하고 있는 사립대가 전국에 28곳이나 됐다. 현행법상 대물림이 불법은 아니지만, 설립자 후손들의 사립대 운영권 독점은 사학비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체 사립대 가운데 64.9%는 설립자의 친인척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23일 서울신문이 여영국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교육부 정책연구 보고서 ‘사립대학 개혁방안-부정·비리 근절 방안을 중심으로’(박거용 상명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설립자의 손자·손녀가 학교법인의 이사장이나 총장, 부총장 등을 맡고 있는 사립대(전문대 포함)는 고려대, 국민대, 건국대 등 모두 28곳이었다. 이 중 고려대와 우송대, 경성대 3곳은 설립자의 증손자가 이사장·이사를 맡아 4대째 세습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학교법인은 친인척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전국 299개 사립대 학교법인 중 설립자·임원·총장의 친인척이 총장, 교수, 교직원 등으로 일하는 곳은 194곳(64.9%)에 달했다. 보고서는 “교육부 감사 결과 부정과 비리가 발생한 사립대의 대부분은 친인척을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명지대를 운영하는 명지학원의 유영구 전 이사장은 2011년 횡령·배임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명지학원 설립자인 유상근 전 총장의 장남이다. 유 전 이사장은 2007년 본인 소유의 명지건설 부도를 막기 위해 법인의 수익용 재산인 명지빌딩을 2600억여원에 매각하는 등 학교 재산을 유용했다. 유 전 이사장은 물러났지만, 그의 아들(40)이 여전히 학교법인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보고서는 사립학교법상 ‘이사회에서 친인척 비율이 4분의 1을 넘지 못한다’는 규정을 5분의 1로 강화하고, ‘이사장의 친인척’이 총장에 임명될 수 없도록 한 조항을 ‘이사의 친인척’까지 범위를 넓히는 등 대대적인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육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오는 7월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사학개혁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 3년차를 맞아 사학혁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 보고서를 포함해 내부 연구 등을 거쳐 종합적인 사립대학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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