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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경제의 첨병은 기업이다] 현대모비스

    [창조경제의 첨병은 기업이다]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는 기존 기계 시스템 중심이었던 자동차부품산업을 고부가가치 첨단 기술 중심으로 변화시키며 체질을 개선한 데 이어 이를 해외 수출 확대로 이어 가고 있다. 산업과 기술 간 융·복합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강화하려는 창조경영의 일환이다. 현대모비스는 미래형 자동차 개발 속도에 맞춰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R&D)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하이브리드자동차의 핵심 부품에 대한 독자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향후 전개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연료전지 시스템에 대응할 수 있는 핵심 부품 기술도 선점해 나갈 전략이다.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해외 R&D 체계 구축에도 열심이다. 현재 유럽, 중국, 북미, 인도 등에 운영 중인 R&D센터를 적극 활용해 해당 지역별로 특화한 전략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세계 각국의 안전과 환경에 관한 규제 강화에 발맞춘 친환경·멀티 제품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부품 경쟁력 제고는 회사의 글로벌 위상 강화로도 이어졌다. 글로벌 자동차 전문 매체인 오토모티브뉴스가 해마다 발표하는 전 세계 자동차부품업계 글로벌 톱 100 순위에서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8위에 오르며 3년 연속으로 10위권에 들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전체 매출의 10% 수준인 해외 완성차 메이커로의 수출 비중도 2020년까지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로써 ‘2020년 글로벌 부품업계 톱 5’라는 회사 비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계획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글로벌 500’에 한국 기업 14곳… 삼성전자 14위

    ‘글로벌 500’에 한국 기업 14곳… 삼성전자 14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 기업에 한국 회사 14개가 포함됐다. 9일 포천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전 세계 500대 기업을 추린 결과 삼성전자가 전년도보다 6계단 오른 14위에 자리해 한국 기업 중 가장 순위가 높았다. SK홀딩스가 지난해(65위)보다 8계단 오른 57위로 뒤를 이었고, 현대자동차도 13계단을 뛰어올라 104위로 순위를 높였다. 다음으로 포스코(167위), 현대중공업(206위), LG전자(225위), 한국전력공사(235위), GS칼텍스(239위), 기아자동차(252위), 한국가스공사(365위), S-Oil(371위), 현대모비스(426위)가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포함되지 않았던 삼성생명(427위)과 LG디스플레이(447위)가 새로 500위 내에 진입한 반면 지난해 449위였던 우리금융지주는 올해 500위 밖으로 밀려났다. 영국·네덜란드 합작 정유업체인 로열더치셸은 지난해 4817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2년 연속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월마트와 엑손모빌, 석유화공집단공사(시노펙), 중국석유가 2~5위를 기록했다. 상위 5개 기업 중 월마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석유업종 기업인 점이 눈에 띈다. 중국의 약진도 여전했다.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중국 기업의 수는 89개로, 타이완 기업까지 포함하면 95개에 달했다. 10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하면서 1995년 3개에 불과했던 중국 기업이 18년간 30배나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관영 통신인 중국신문망은 이날 “이 같은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15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글로벌 500대 기업 최다 보유국으로 부상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올해 132개 기업이 ‘글로벌 500’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에 이어 일본(62개), 독일(29개) 순이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재벌 ‘일감 몰아주기’로 수천억 배당 챙겨

    지난 5년간 재벌그룹 총수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운영한 계열사에서 받은 배당금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현대차, SK, GS, 삼성 순으로 많았다. 7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이 되는 30대 그룹의 계열사가 총수 일가에 배당한 금액은 4696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총수 일가가 지분 3% 이상을 보유하고, 그룹 내부거래 비율이 30% 이상인 계열사 7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의 총수 일가 배당금 총액이 가장 많은 곳은 현대차그룹이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11.5%, 정의선 부회장이 31.9% 지분을 가진 물류업체 현대글로비스는 5년간 두 사람에게 총 781억원을 배당했다. 정 회장이 10%, 정 부회장이 25.1% 지분을 보유한 현대엠코의 배당금은 666억원에 달했다. 이 밖에 현대모비스 485억원, 현대오토에버 99억원 등을 모두 합하면 현대차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총 배당금은 2456억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에 이어 배당 총액이 많은 SK그룹의 경우는 시스템통합(SI) 업체인 SKC&C가 최태원 회장과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에게 총 815억원을 배당했다. 이어 GS그룹은 내부거래 비중이 64.9%에 달하는 GS네오텍이 허정수 회장에게만 5년간 490억원의 배당금을 안겼다. 허씨 일가가 100% 지분을 소유한 부동산임대·개발업체 ㈜승산(180억원)을 비롯, GS아이티엠(78억원), 옥산유통(46억원) 등을 합치면 허씨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로부터 챙긴 배당금은 총 794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이씨 일가도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삼성SNS 등에서 총 224억원을 배당받았다. 전문가들은 배당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일감 몰아주기 배당은 총수 일가 ‘부의 세습’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말한다. 한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일감 몰아주기는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주주이익 우선이라는 기업 경영의 근본 원칙을 뒤흔드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현대모비스 ‘新 상생 모델’

    각종 자동차 부품용 사출제품의 경우 사출 금형의 온도와 압력·습도 등 여러 민감한 생산조건이 품질과 직결된다. 생산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하더라도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었다. 대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보기술(IT)에 기반한 선진 생산공정 관리 시스템을 중소기업들이 갖추기란 쉽지 않다. 보통 ‘억 단위’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4일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공장에 ‘품질 및 에너지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이를 위해 협력업체용으로 생산관리 표준시스템을 개발했다. 영세한 협력사들은 표준화된 시스템을 자사 생산현장에 도입하면 불량률 감소는 물론 에너지 절감도 꾀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의 행보를 통해 대기업들의 동반성장이 단순한 자금 지원에서 벗어나 보유 특허 대여 및 선진 기술 개방 등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중소 협력사들에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셈이다. 현대모비스도 “IT를 기반으로 대기업과 중소업체가 공동으로 생산관리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업계 처음으로 새로운 동반성장 및 창조경영의 모범사례”라고 자부한다. 이 시스템은 현대모비스와 협력업체가 동시에 생산공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한다. 때문에 협력사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이상이나 불량을 이중으로 감독할 수 있으며, 긴밀한 협력대응도 가능하다. 제품 불량률이 현격히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무엇보다 각 공장의 에너지 사용 현황도 확인할 수 있어 전력 손실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피크시간대에도 공장을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는 오는 10월 주요 부품 협력사 4곳에 시스템을 시범 적용해 효과 검증과 개선점을 파악한 뒤 조만간 전 협력사(300곳)로 확대할 계획이다. 시범업체로 선정된 우성파워텍의 정정훈 대표는 “품질경쟁력 향상을 위해 이 같은 관리시스템 도입이 절실했지만 설치·유지에 드는 비용 때문에 중소업체가 단독으로 구축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현대모비스가 이런 시스템을 지원하고, 공정관리 표준과 방향까지 제시해 준다니 공정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 현대모비스 구매본부장인 현형주 전무는 “협력사의 부품 경쟁력이 궁극적으로 국내 완성차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 같은 프로젝트를 마련했다”며 “중소 협력사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자승 스님, 마음 비웠다는데…

    자승 스님, 마음 비웠다는데…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자승 현 총무원장 스님이 ‘마음을 비웠다’고 말한 발언의 속뜻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승 스님 발언과 맞물려 지난해 ‘백양사 승려 도박 사태’이후 해체한 중앙종회 종책 모임들이 거대 단체를 결성함에 따라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의 ‘마음을 비웠다’는 발언이 나온 건 지난 25일 개원한 제194회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의장에서다. 자승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본인은 소임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며 “오늘로 128일 남은 제33대 집행부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종회의원 스님들께서 관심과 조언으로 협력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의 ‘마음 비우기’ 발언은 이번이 세번째. 지난 1월 신년 회견 후 오찬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7∼8월 밤은 흔들어야 떨어지지만 9월 밤알은 저절로 떨어진다”는 묘한 말을 남겼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이른바 ‘백양사 승려 도박 사태’가 불거진 직후엔 “재임에 관심 없고 임기에도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얼핏 들어선 총무원장 재임에 관심이 없다는 의중을 피력한 듯한 일련의 발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 인사들은 자승 스님의 정확한 의중이 읽히지 않는다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재임 포기와 불출마에 대한 단정적인 발언으로 볼 수 없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실제로 불교계에서는 자승 스님의 재출마를 점치는 견해들이 무성하다. 이미 차기 총무원장 출마를 선언하거나 저울질하고 있는 후보(6명 정도)들도 자승 스님의 거취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중앙종회 종책모임인 화엄회, 무량회, 무소속 의원 스님들이 발기인 모임을 갖고 다음 달 11일 창립총회를 열기로 합의한 거대모임 ‘불교광장’도 자승 스님의 발언과 맞물려 관심이 쏠리는 사안. ‘불교광장’은 비구니 종회의원 10명을 뺀 비구 종회의원 81명 중 과반수인 45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적으로만 봐도 조계종 종책 결정은 물론, 총무원장 선거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임이다. 총무원장은 전국 24개 교구본사 240명과 중앙종회 의원 81명 등 총 321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불교광장’ 측은 25일 발기인 모임 직후 “일단 종단 화합과 안정을 통해 선거를 법답게 치르는 데 매진하겠다”며 현재로선 특별한 후보 추대와 관련해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차기 총무원장 선거의 추이와 후보는 ‘불교광장’이 공식 출범하는 다음 달 11일 이후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20대그룹 등기임원 평균연봉 12억원

    은행 임원의 고액 연봉에 대해 감독 당국이 처음으로 전수조사에 나서자 비금융권 기업 임원들은 과연 얼마를 받는지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기업경영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의 조사에 따르면 비금융권인 20대 상장 그룹의 등기임원 평균 연봉은 12억원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그룹 비금융 상장사 136곳 등기임원 448명의 1인당 평균 연봉은 12억 2767만원으로 집계됐다. 5억원 이상의 연봉을 주는 회사는 57%인 77곳으로, 해당 기업의 임원 평균 연봉은 13억원이었다. 반면 1인당 5억원 이하를 지급하는 59개사의 평균 연봉은 2억 6000만원이었다. 같은 대기업 임원이라고 해도 회사마다 연봉에 큰 격차가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 등기임원의 평균 연봉이 52억 1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SK가 51억 8000만원, SK이노베이션이 41억 100만원으로 그 뒤를 따랐다. 4위는 삼성중공업으로 36억 8000만원, 5위는 CJ제일제당으로 31억 8000만원이었다. 하지만 이런 숫자는 어림수다. 각각의 임원들이 얼마를 받는지가 아니라 임원 1인당 평균 연봉만 공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달 29일부터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법에 관한 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르면 내년부터는 연간 보수 총액 5억원 이상인 임원의 경우 임금이 개별 공개된다. 공개할 연봉에는 성과급까지 포함된다. 금융위원회는 200여개 기업(금융권 포함)에 근무하는 임원 623명의 연봉이 낱낱이 공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부회장처럼 미등기임원이라면 고액 연봉자라도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행 기준대로라면 가장 여러 장의 월급명세서를 공개해야 할 그룹 총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대표이사, 현대제철·현대파워텍 상근이사, 현대건설·현대NGB의 비상근이사를 맡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도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현대오토에버·현대NGB 등의 상근 또는 비상근 이사로 일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SK·SK이노베이션·SKCNC·SK하이닉스 등 4개 계열사,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강덕수 STX 회장 등도 3개사 이상의 등기임원을 맡고 있다. 한편 삼성그룹의 오너 가족 중에서는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만 유일하게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커버스토리] 둘레길 대해부… 서울 157㎞

    [커버스토리] 둘레길 대해부… 서울 157㎞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대지를 꽉 깨물고 있는 산들의 위용은 인구 1000만 대도시 서울의 또 다른 맛이다. 그래서 ‘불수사도북 무용담’이 넘쳐난다. 불암산에서 시작해 수락·사패·도봉·북한산으로 이어지는 40㎞ 남짓 되는 코스인데 무박 2일에서부터 7~8시간 주파까지 이야기가 다양하다. 뒤질세라 나온 게 ‘삼관우청광’이다. 강남의 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광교산으로 이어지는 50㎞ 남짓 되는 코스다. 관악산을 제외하곤 비교적 완만한 흙산이다. 서울 둘레길은 내년 말까지 불수사도북과 삼관우청광을 동그랗게 말아서 한 길로 잇겠다는 것이다. 모두 8개 구간으로 구성된 서울 둘레길의 전체 길이는 157㎞이니까 시속 2㎞의 속도로 하루에 8시간씩 걸으면 완주에 10일 걸린다. 2015년부터는 인터넷에서 서울 둘레길 완주 무용담이 등장할는지 모르겠다. 구간별로 꼭 챙겨볼 만한 곳이 없을까. 모든 길을 가본 강인호 서울시 산림관리팀장에게 물었다. 강 팀장은 둘레길 조성의 임무를 띠고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강 팀장은 수락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코스를 짚어 가며 설명했다. 숱한 풍경이 눈에 어리는 듯했다. 설명 전에 조건을 달았다. 산 정상들을 이어 붙인 종주길에 도전, 정복 같은 단어가 어울린다면 산 옆구리를 타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둘레길에 어울리는 건 친밀한 대화라고. 그러니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손 맞잡고 천천히 걸어 달라고. ■수락산~불암산 코스 도봉산역(1호선)에서 시작해 수락산, 당고개, 불암산둘레길, 화랑대역(6호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봄철에는 도봉산역 부근 창포원을 꼭 가보세요. 5~6월 창포와 붓꽃이 만발할 때 장관을 이룰 뿐 아니라 꽃, 나비, 곤충 모두 만나볼 수 있어요. 수락산과 불암산은 등산로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둘레길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해 뒀어요. 가을에는 잔잔한 제명호와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서어나무 숲을 찾아보세요. 바람과 갈대와 낙엽에 파묻혀 가을 사색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용마산~아차산 코스 화랑대역에서 묵동천을 따라 망우산 자락, 중랑 캠핑 숲을 지나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곳이에요. 꿈틀대며 흘러가는 한강이 한눈에 들어와 눈이 시원해지는 곳이지요. 망우산 공동묘지도 빼놓지 마세요. 기분 좋은 산책길에 웬 공동묘지냐고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서울에서 이곳만은 꼭 지키자고 정한 6곳 가운데 하나가 여깁니다. 오세창, 한용운, 지석영, 조봉암, 방정환, 박인환, 이중섭 등 역사적 인물들이 여기 있어섭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줍니다. ■고덕산~일자산 코스 광나루역(5호선)에서 출발해 고덕산, 일자산, 수서역(3호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여기서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농촌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암사선사유적지를 낀 고덕산 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게 논두렁, 밭두렁, 미나리 밭이에요. 직업란에다 ‘농부’라고 기재하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어요. 공원도 무척 많아요. 샘터공원, 방죽공원, 명일공원, 허브천문공원, 길동생태공원…. 아, 습지생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방이동 생태경관보전지역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대모산~우면산 코스 수서역에서 대모산, 구룡산 숲길을 거쳐 양재시민의숲, 우면산, 사당역(2호선)으로 연결되는 길이에요. 여긴 300m가 채 안 되는 낮은 흙산들이라 예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 있던 곳이에요. 이 코스의 매력은 깊고 호젓한 참나무숲을 걷다가 발견하게 되는 대도시 고층 빌딩들이에요. 자연과 도심이 안 어울릴 듯 어울리는 길들이지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다 울창한 숲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 양재시민의숲도 꼭 들러 보세요. ■관악산 코스 사당역에서 관악산과 삼성산을 지나 석수역(1호선)까지 갑니다. 관음사, 호압사 같은 절도 있고, 삼성산엔 천주교 성지가 있고, 무당골도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을 모신 사당인 낙성대도 있지요. 종교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거기에다 이 코스에는 숲길 중간에 아주 짙은 메타세쿼이아 숲과 잣나무 숲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왠지 이 코스를 ‘치유의 길’이라 부르고 싶어요. 북카페 같은 것을 더해서 굳은 머리와 무거운 어깨를 털어낼 수 있었으면 해요. ■안양천 코스 석수역에서 안양천, 한강을 따라 가양대교에 이르는 길이에요. 정말 추천 드릴 만한 길은 안양천 둑길. 안양천 제방을 걸어가다 보면 둑 양쪽에 심어 놓은 온갖 식물들을 계절에 따라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봄에는 화사한 벚꽃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터널을 이룹니다. 장미꽃 터널도 좋아요. 물새들이 안양천에 노니는 풍경, 억새와 갈대의 물결, 버드나무의 출렁임까지 모두가 시원한 풍경들입니다. ■봉산~앵봉산 코스 가양대교에서 월드컵공원, 불광천, 봉산, 앵봉산을 거쳐 북한산 둘레길과 만납니다. 월드컵공원이야 이제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지요. 이 공원을 지나 들어서는 봉산과 앵봉산은 능선 따라 이어지는 숲길이 매력적이에요. 특히 팥배나무 숲은 꼭 가보세요. 정식 명칭은 봉산생태보전지역인데 이름에 걸맞게 온갖 식물이 다 있어요. 팥배, 작살, 중국단풍, 미국참나무, 화살, 굴참, 자귀, 병꽃, 노린재, 귀룽, 초피 등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북한산 코스 많은 분이 이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조성한 북한산 둘레길을 즐기고 계시지요. 서울 둘레길은 북한산 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길에서 시작돼 도봉 옛길까지 함께 갑니다. 북한산 둘레길이야 워낙 유명해 이 길에 대해 두 번 설명드리는 건 불필요할 것 같고요. 다만 4·19국립묘지와 이준 열사 등 독립유공자 묘역, 조선 세종의 딸의 정의공주 묘 같은 역사의 현장들은 꼭 한 번씩 챙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대우조선, 초대형 컨선 인도

    대우조선, 초대형 컨선 인도

    대우조선해양이 초대형급 컨테이너선의 명명식을 갖고 덴마크 선주사에 성공적으로 인도했다고 16일 밝혔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사로부터 2011년 수주한 이 컨테이너선은 1만 827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로,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하는 초대형급 시리즈 20척 가운데 첫 번째 배다. 길이 399m, 폭 59m의 축구장 4개 면적 규모로, 현존하는 컨테이너선 중 가장 크다. 배 한 척의 가격만 2000억원이다. 앞서 지난 14일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명명식에서 대모(代母)로 나선 아네 머스크 매키니 우글라 머스크그룹 이사회 부의장은 이 컨테이너선에 자신의 아버지 이름인 ‘머스크 매키니 몰러’라는 선명을 부여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강남 대모산서 조선초 왕릉 능침 추정지 발견

    강남 대모산서 조선초 왕릉 능침 추정지 발견

    서울 강남 대모산 기슭에서 조선 초기 왕릉의 원찰, 또는 능침으로 추정되는 조선 초기 건물터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 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은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세곡2 보금자리주택지구 건설 예정지(5200㎡) 일대를 조사한 결과 15~16세기 무렵의 조선 초기 대형 축대시설을 발견했다고 11일 밝혔다. 대모산 서쪽 기슭에서 발견된 길이 68m 이상의 대형 석축에선 현재까지 건물터 6개동과 건물터 중앙을 차지한 납작한 돌, 마당과 아궁이, 배수로 시설 등이 발굴됐다. 인근에선 이들 건물에 사용한 기와를 생산하던 기와 가마터 4기도 함께 나왔다. 이번에 확인한 유적은 조선 전기 어느 왕의 능묘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말로만 경제민주화… 재벌 순환출자 더 심해졌다

    말로만 경제민주화… 재벌 순환출자 더 심해졌다

    국내 재벌 총수들이 복잡한 출자구조와 순환출자로 계열사 지배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재벌의 출자단계는 6.3단계로 전년보다 오히려 0.4단계 늘었다. 신규 순환출자도 최근 5년간 더욱 증가했다. 현재 형성돼 있는 순환출자 고리 124개 가운데 2008년 이후 생성된 사례가 전체의 55.6%인 69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환출자는 총수일가가 상법상 상호출자 규제를 피하면서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강화하는 일종의 편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0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62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주식소유 및 순환출자 현황을 공개했다. 10대 기업의 총수 지분율은 0.99%로 나타났다. 1994년 3.2%에서 1998년 2.9%, 2003년 1.2% 2008년 1.1% 등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반면 총수 일가가 실질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내부지분율은 1994년 43.6%에서 올해 52.92%로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2011년 이후 3년째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0.0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0.69%의 주식만으로 대기업 집단을 지배하고 있다.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 43곳 중 총수가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계열사가 85.9%(1305개)였고 총수 일가의 지분이 없는 계열사도 73.3%(1114개)로 나타났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가 기업을 지배하는 시스템은 경영권 보호와 과감한 투자 등 장점도 갖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총수 일가가 이런 점을 악용해 극소수의 지분으로 사적인 이익을 챙기거나 소액주주의 권익을 훼손하는 등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의 금융보험사를 통한 계열사 지배도 강화됐다.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 중 27개 재벌이 금융보험사134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에 대한 금융보험사 출자금은 지난해 4조 8206억원에서 올해 4조 9423억원으로 2.5%(1217억원) 늘었다. 미래에셋 등 금융이 주업종인 기업집단을 빼면 출자금 증가폭은 8.6%(2조 2719억원→2조 4679억원)로 커진다. 고객이 맡긴 돈으로 계열사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계열사가 휘청거리면 금융보험사까지 위험에 빠지는 구조다. 금융·보험 쪽에 출자기업의 수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은 삼성으로 15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6.2%), 호텔신라(7.2%), 삼성증권(11.1%), 제일모직(0.01%), 삼성화재(9.7%) 등에 출자하고 있다. 이어 현대그룹과 동부그룹이 각각 6건이다. 계열회사 간 순환출자가 형성된 기업집단은 지난해보다 1개(한솔그룹) 증가한 14개로 나타났다. 이 중 삼성(삼성카드·삼성생명), 동부(동부캐피탈·동부생명), 현대(현대증권) 등은 금융·보험사가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차는 기업집단 내 주력 3사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롯데는 롯데쇼핑·롯데리아·롯데제과가 거미줄식 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공정위는 분석했다. 신영선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국내 재벌 총수들이 상법상 상호출자 규제를 피하고 주력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최근 5년 동안 순환출자를 크게 늘렸다”면서 “법 개정을 통해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기존 출자분에 대해서도 자발적으로 없애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곤룡포 벗고 ‘추리닝’ 입은, 바보가 된 임금님

    곤룡포 벗고 ‘추리닝’ 입은, 바보가 된 임금님

    “아직도 ‘대세남’이라는 말을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요. 아무래도 그때보다는 (인기가) 좀 사그라지지 않았을까요. 시간도 흘렀구요….” ‘해품달 전하’ 김수현(25)이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초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신드롬을 일으킨 지 1년여. 그는 여전히 “스타로서의 삶에 익숙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뜨겁다. 그가 첫 주인공을 맡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새달 5일 개봉)는 티저 예고편의 클릭수가 100만뷰를 기록했다. 영화 포스터와 스틸 사진이 공개되는 족족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200만 독자를 거느린 인기 웹툰이 원작인 덕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짐작이나 되는가. 은은한 달빛 아래 곤룡포 자락을 끌며 ‘국민 여심’을 흔들었던 해품달의 그 전하가 스크린에서 동네 바보로 위장한 남파 간첩을 연기하는 장면이. 첫 주연작의 개봉을 눈앞에 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도 그런 부담감을 적잖이 느끼고 있었다. “맡은 숙제가 참 많았어요. 사투리 구사는 기본이고 1인 2역, 액션, 바보 연기까지 소화해야 했으니까요. 정말 호되게 훈련받은 기분입니다.” 극중 주인공 원류환은 2만대1의 경쟁률을 뚫고 남파된 북한의 최정예 엘리트 요원. 조국통일의 임무를 띠고 남한에 침투한 그가 2년간 수행한 임무는 달동네 슈퍼집 바보. 꼬마들에게 놀림받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 세 번 이상 넘어지기, 한 달에 한 번 두 명 이상이 보는 앞에서 노상에 소변도 봐야 했다. ‘해품달’의 조선 왕에서 동네 바보, 급전직하한 캐릭터에 그는 어색하지 않았을까. “한번쯤 바보가 돼 보고 싶었어요.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풀어져도 되잖아요. 배우이기에 앞서 연예인으로서 사람들 앞에서 따져야 할 격식 같은 게 생기는데,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내려놓고 바보로 있어도 용서가 되니까 참 좋았죠.” 지난해 드라마로 ‘벼락스타’가 된 뒤 쏟아진 관심에 부담은 없었는지 물었다. “사실 갑작스러운 인기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겁도 많이 났어요. 책임감이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았구요. 아직도 그런 상황에 적응중이에요. 길거리에서 팬들이 알아보면 도망치게 되구요.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어색함이 해소된 것 같아 후련해요.” 이번 영화에서는 ‘힘 빼기’를 해야 했다. 맹구, 영구,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용구를 연구하며 간첩 ‘바보 동구’를 만들어갔다. 인터뷰 도중 즉석에서 선보이는 바보 캐릭터의 성대모사 실력이 수준급이다. “처음엔 혼자 거울을 보며 바보 표정을 연습하다 나중엔 카메라를 보면서 힘빼기 작업에 몰두했다”는 그다. 바보 연기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후반부에 냉혈한 엘리트 요원으로 선보이는 ‘맨손 액션’이다. 슬리퍼를 신고 지붕위를 날아다니는 와이어 액션을 선보였는가 하면 자신을 가르친 5446부대 총책임교관 김태원(손현주)과의 빗속 대결 장면에서도 난이도 높은 액션을 구사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2개월 전부터 액션스쿨에서 구르기, 낙법 등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어요. 겨울에 촬영하다 보니 건조해서 와이어에 피부가 까지고 발이 자꾸 얼어서 육체적으로 힘들었는데 후반에는 배우들과 합을 짜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빗속 대결 장면을 찍을 때는 찬물 세례를 받으며 2주일 넘게 온몸이 젖어 있다시피 했는데, 참 힘든 작업이었어요. 정말 찰지게 맞아보기도 했구요.” 웹툰에서 큰 인기를 모은, 길에서 대변을 보는 장면도 무리 없이 촬영했다. “찍을 때는 민망했지만 워낙 유명한 장면이라 정말 욕심이 났던 장면”이라는 그는 “바보 동구를 묘사하기 위해 나를 어디까지 망가뜨리고 포기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파 초기에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원류환은 점차 달동네의 일상에 익숙해져 이웃과 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그와 함께 남파된 5446부대원들에게 자결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서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원칙주의자 류환이 무너지고 완전히 망가져버린 모습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교관 김태원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이는 장면에서는 제 연기인데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더라구요.” 자신의 연기를 보고 감정이 일렁일 만큼 연기에 물이 오르는 걸까. 이번 작품의 연기에 평점을 얼마나 주겠냐는 질문에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은 ‘B’였다. ‘해품달’ 직후의 인터뷰에서는 C+라고 답했던 그다. 자가진단 점수가 확실히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카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영역 확장에 성공했다는 조심스러운 자평인 셈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를 좀 더 하고 싶기도 한데 어떤 작품이든 제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일단 지금 목표는 관객들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동구에게 흠뻑 정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목표 관객수요? 1000만명을 돌파했던 전작(도둑들)만큼 나오면 좋겠는데요(웃음).”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현대차그룹 ‘일감 中企 개방’ 착착

    현대차그룹 ‘일감 中企 개방’ 착착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언급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을 대놓고 칭찬한 일이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현대차그룹이 광고·물류 등에서 중소기업에 많은 기회를 주기로 한 것에 대해 고무적인 일로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이 자발적으로 연간 6000억원에 달하는 광고와 물류 분야의 일감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지 달포가 지났다. 새 정부와 재계 안팎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을 선도한다는 박수를 받은 현대차그룹이 약속 이행 중간 보고서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5월과 6월 1780억원 상당의 일감이 외부에 맡겨졌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본격 시행 첫 달인 5월 집행액 430억원과 6월 계획분 1350억원을 합산한 것으로, 연간 예정액의 30%에 해당한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계열사 간 거래 축소 및 외부 직발주와 경쟁입찰 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특히 전환 물량 대부분을 대기업 계열이 아닌 독립 중소·중견기업에 개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광고 분야에서 1200억원(올해 그룹 국내 광고 발주 예상 금액의 65%), 물류 분야에서 4800억원(올해 그룹 국내 물류 발주 예상 금액의 45%) 규모의 새로운 사업기회를 중소기업 등에 제공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외부에 일감을 넘기기로 한 사업은 100% 외부 업체에 발주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류 분야 전환 규모는 5월 실행 360억원, 6월 계획 1250억원 등 총 1610억원으로 연간 전환 예정액의 33.5%에 이른다. 광고 분야는 5월 실행 70억원, 6월 계획 100억원 등 총 170억원으로 연간 전환 예정액의 14.3%를 차지한다. 특히 5월 한 달간 물류 분야 일감 360억원어치 가운데 340억원 상당은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독립 중소·중견기업에 넘겨졌다. 광고 분야 일감 70억원어치도 모두 독립 중소·중견기업과 계약이 체결됐다. 물류 분야의 경우 현대위아의 제품 운송, 현대제철의 하역 물류, 현대모비스의 부품 운송, 현대차·기아차의 운송장비 운용 및 공장 내 운송 등의 일감이 외부에 개방됐거나 개방될 예정이다. 광고 분야에서도 현대차 쏘나타 및 투싼 ix 프로모션, 현대차 쏘나타 하이브리드 TV 광고, 기아차 스포티지R TV 광고, 기아차 브랜드 광고, 현대차 월드랠리챔피언십 광고 등이 외부에 발주됐거나 발주된다. 현대차그룹은 6월 이후에도 외부 직접발주 및 경쟁입찰 전환 물량의 대부분을 독립 중소·중견기업에 발주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간 거래 축소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창조적 성장 잠재력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당초 취지를 계속 살리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중소·중견기업에 주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신동엽 이영돈 PD 빙의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먹어보겠습니다” 폭소

    신동엽 이영돈 PD 빙의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먹어보겠습니다” 폭소

    신동엽이 채널A 이영돈 PD에 또다시 빙의돼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지난 20일 방송된 KBS2 ‘안녕하세요’에는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만 먹는 아버지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김하일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날 방송에는 문제의 아버지가 등장해 정체불명의 찌꺼기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이때 신동엽은 갑자기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엉돈 PD입니다”라면서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이어 “여기 있는 스파게티 소스와 돼지뼈로 우린 육수로 만든 라면, 제가 유일하게 싫어하는데요. 오늘 어쩔 수 없이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을 폭소케 했다. 신동엽 이영돈 PD 빙의에 네티즌들은 “신동엽 이영돈 PD 빙의, 할 때마다 빵 터진다”, “신동엽 이영돈 PD 애드리브 최고”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희호 여사 “참으로 안타까워” 안철수 “거목 잃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7일 ‘여성운동계 대모’인 박영숙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의 별세 소식을 듣고 각별한 애도를 표했다. 이 여사는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방문 도중 박 전 대행의 타계 소식을 듣고 “참으로 안타깝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전했다. 이 여사와 박 전 대행의 관계는 각별했다. 이 여사가 10살 더 많지만 초기 여성운동을 주도한 ‘동지적 관계’였다. 두 사람 모두 YWCA 총무를 지냈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일했다. 박 전 대행은 지난해 2월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도 인연을 맺었다. 안 의원은 이날 “거목을 잃었습니다. 그 슬픔이 한이 없습니다. 영면하소서”라는 애도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16일 박 전 대행을 방문해 문병했던 안 의원은 18일 광주 5·18 기념 행사에 참석한 후 귀경해 빈소를 찾을 계획이다. 여야 모두 박 전 대행을 애도하는 논평을 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여성운동가이자 여성인권과 복지의 기틀을 잡은 고인은 보수·진보를 아울렀던 여성계 지도자였다”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이 어려울 때 한결같이 품어 준 고인의 드넓은 품성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이 땅의 딸들에 인권 남기고 떠난 ‘대모’

    이 땅의 딸들에 인권 남기고 떠난 ‘대모’

    ‘여성운동계의 대모’인 박영숙(81)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암투병 끝에 17일 오전 4시 50분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박 전 대행은 해방의 혼란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광주에 정착했다.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적인 어머니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 운동에 뛰어들었다. YWCA연합회 간사를 시작으로 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등을 거치며 국내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여성 인권 유린사건이었던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때 여성단체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9년에는 우리나라 시민사회의 첫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어 이후 아름다운재단과 환경재단 등 국내 공익재단이 줄지어 등장하는 데 기틀을 마련했다. 재야에 있던 박 전 대행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만든 평민당의 전국구 1번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정치권의 격랑 속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며 평민당 부총재와 총재 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늘 푸근한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따끔한 충언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평민당 부총재 시절 DJ에게 쓴소리하는 역할을 자주하자, DJ가 “박 부총재는 어떻게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소리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한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아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예비후보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일찍이 환경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다. 또 여성재단 이사장 시절에는 ‘100인 기부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의 전도사로 활동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을 창립했으며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사회공헌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비롯해 국민훈장 모란장,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올해의 환경인상’, ‘올해의 여성상’ 등을 수상했다. 1996년 별세한 민중신학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안병무 전 한국신학대 교수가 배우자였다. 여러 자리를 거치며 역할을 다했던 박 전 대행은 평소 주변에 “어떤 일이든 첫사랑을 하듯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행의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02-2227-7550)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유족으로 외아들인 안재권(45·번역가)씨가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오진혁, 이름값…상하이 양궁 월드컵 예선 1위

    오진혁, 이름값…상하이 양궁 월드컵 예선 1위

    양궁 세계랭킹 1위이자 지난해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현대제철)이 올해 첫 국제대회에서도 명성을 이어갔다. 오진혁은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양궁연맹(WA) 1차 월드컵 남자 리커브 대진라운드(예선)에서 144발 합계 1371점을 쏴 1위를 차지했다. 이승윤(강원체고)이 1360점으로 2위, 진재왕(국군체육부대)이 1356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오진혁, 이승윤, 진재왕의 점수를 합산한 남자 단체전 대진라운드에서도 4087점으로 중국(3986점), 네덜란드(3955점)를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임동현(청주시청)은 1340점(6위)으로 주춤했다. 여자부 대진라운드에서는 장혜진(LH)이 1368점으로 1위를 마크했다. 동점을 쏜 윤옥희(예천군청)는 10점 화살수까지 같아 10점 구역의 X-텐 개수까지 센 끝에 2위가 됐다. 올림픽챔피언 기보배(광주광역시청)는 1363점으로 4위, 주현정(현대모비스)은 1353점으로 5위에 올랐다. 장혜진, 윤옥희, 기보배의 점수를 합친 여자부 단체전 역시 4099점으로 독일(3993점)과 중국(3984점)을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혼성 대진라운드에서도 오진혁과 장혜진의 점수를 더해 멕시코(2695점)와 인도(2681점)를 크게 따돌리고 1위(2739점)를 꿰찼다. 시즌 첫 월드컵에서 남녀 개인전, 단체전, 혼성경기 등 5개 전 종목 톱시드에 배정된 한국은 느긋한 마음으로 본선 토너먼트를 치를 수 있게 됐다. 본선라운드는 16일부터 이어진다. 대회는 랭킹 포인트를 쌓는 실전이자 오는 9월 터키 세계선수권에 나설 엔트리(남녀 3명씩)를 추리는 경쟁 무대이기도 하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꿀벌, 왜 사라지고 있나

    꿀벌, 왜 사라지고 있나

    지구촌 환경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은 봄이 와도 들리지 않는 새소리에서 시작한다. 인간이 만든 환경오염이 결국 인간을 위협으로 이끌 수 있다는 섬뜩한 한마디였다. 카슨의 경고는 2006년 급기야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북미 지역에서만 꿀벌이 1년 만에 22개주에서 무려 25~40%나 사라졌다. ‘군집붕괴현상’이라 불리는 꿀벌의 실종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06년 40만 군(벌통 하나 분량의 벌떼)에 이르던 한국의 꿀벌은 지난해 10%를 조금 웃도는 4만 5000군으로 줄었다. 꿀을 찾으러 나간 벌이 돌아오지 않거나 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되풀이됐다. 꿀벌의 실종이 위협적인 것은 꿀벌이 자연 활동을 원활하게 돌아가는 윤활유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식물 상당수는 꿀벌에 번식을 의존한다. 꿀을 찾는 과정에서 식물의 수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꿀벌이 사라지면 그만큼 식물이 열매를 맺을 확률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특히 농가에서는 아몬드와 딸기, 콩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작물에서 꿀벌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세계 각국 정부가 대책마련에 나섰고, 살충제와 이상기후 등 수많은 요소들이 꿀벌 실종의 원인으로 추정돼 왔다. 특히 유럽정부는 살충제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일부 살충제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미국 농무부는 최근 “꿀벌의 감소는 복합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발현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발표했다. 꿀벌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질병과 기생충, 살충제, 먹이의 부족, 종 다양성 부족 등 모든 게 꿀벌의 생존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무부 측은 “어느 하나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주도한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죽은 벌에서 100가지가 넘는 살충제 및 화학약품 성분, 기생충을 발견했다. 미국 일리노이대 메이 버렌마움 교수는 “한두 가지의 살충제를 규제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면서 “모든 살충제와 화학약품을 한번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수 없는 만큼 꿀벌 문제를 단시일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명확해졌다”고 분명히 했다. 뉴욕타임스는 “벌의 생명을 위협하는 기생충은 소각로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요소들을 규제하려면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해 구조를 개편하는 수준의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현대차그룹 ‘새정부 눈높이 맞추기’ 잰걸음

    현대차그룹 ‘새정부 눈높이 맞추기’ 잰걸음

    그동안 변화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평가를 받던 현대차그룹이 최근 들어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춰 경제민주화 관련 시책과 굵직한 투자 등을 연이어 쏟아내는가 하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국내외 현장에서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2일 서울 남대문로 롯데호텔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를 초청해 간담회 형식으로 열린 전경련 5월 회장단회의에 참석했다. 총리와 회장단의 만찬 간담회는 오후 7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비공개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정 회장이 4대 그룹 회장 중에선 유일하게 참석하면서 모임의 호스트 역할을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개인 일정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여건상 불참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 회장단 회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을 비롯해 현대차그룹이 새 정부와 눈높이를 맞추는 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주력인 자동차산업이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엔저와 내수부진 등의 해법을 찾기 위해 국내외를 누비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 연비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 판매현장을 둘러봤으며 연이어 브라질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올해 두 번이나 제3고로 준공을 앞두고 있는 충남 당진제철소를 찾아 공사현황을 점검하고 부족한 점을 지시하는 등 특유의 현장 경영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달 17일 현대차그룹은 일감 몰아주기로 눈총을 받아 온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등 물류와 광고 분야 일감 6000억원어치를 중소기업에 넘기기로 했다. 지난달 29일에는 1조 1200억원을 투자, 충남 당진에 자동차용 특수강 등의 생산공장을 건립하고 2만 2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하는 등 선도적 투자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 한 기업 고위 임원은 “최근 현대차그룹의 빠른 행보에 깜짝 놀란다”면서 “글로비스와 이노션의 일감 6000억원을 내놓고 불확실한 경제환경에서 1조 1200억원을 국내에 투자하기로 하는 등의 결정은 오너로서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차에 선수를 뺏겼다며 곤혹스러워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현대차그룹의 발 빠른 변신은 새 정부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에 적극 호응하는 한편 엔저와 외제차 공세에 대응한 변화라는 분석이 맞물린다. 여기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요구에 현대차그룹이 자유롭지 못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곁들여진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급성장 배경에는 현대·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의 수직계열화가 있다”면서 “일련의 현대차 변화는 이런 구조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또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정주영 회장의 인연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두 사람이 1970~1980년 우리 경제가 고속성장을 할 때 힘을 모았던 만큼 새 정부에서도 현대차그룹이 그에 못지않은 역할을 하겠다는 차원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전경련은 창조경제특위 활동을 설명하고,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경련 회장단은 최근 정부와 국회의 경제민주화 압박 강도가 지나치다며 이에 대한 속도조절을 요청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5일장의 효시는 성종 초에 전라도 무안과 나주에서부터였다. 오랜 재해를 견디지 못했던 적탈민들이 집에 있던 곡식과 채소를 비석거리에 가지고 나와 필요한 물건과 바꾸어 연명하기 시작하면서 장시를 이루게 되었고, 여러 세궁민들이 그에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폐농하고 장거리로 나선 도부꾼들의 수효도 늘어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저자가 번성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저자가 번성하면 농투성이들이 문전옥답을 버리고 모두 장시로 몰릴 것이고, 더불어 시겟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널뛰듯 해 무뢰배와 사기꾼 들이 횡행하여 풍속이 더럽혀질 것이었다. 농사라는 것은, 몸은 땀으로 절고, 손발은 흙과 똥으로 범벅이 되기 마련이었다. 비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벌레 잡기에 잠깐의 말미를 내어 쉴 수도 없어 고단하기 그지없다. 밭뙈기 크기에 따라 부역을 감당해야 하므로 그 괴로움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장사치들은 농간을 부려 보잘것없는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존귀한 것으로 바꾸고는 그 이익을 챙겨 혼자서 방긋 웃고, 모리를 취하고도 시치미를 딱 잡아뗀다. 이를테면, 백동(白銅)을 가리켜 은(銀)이라 속이고, 염소 뿔을 내밀고 대모(玳瑁)라 하고 개가죽을 담비 가죽으로 꾸며 억매흥정으로 몰아붙인다. 어느 눈썰미 있는 자가 그 속임수를 적발하면 도리어 부아통을 터뜨리며 멱살을 뒤틀어잡고 협잡꾼이 나타났다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 근처에서 장꾼 행세하며 배회하던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애매한 사람을 개 잡듯 두드린다. 그런가 하면, 장시에는 들치기, 날치기, 소매치기는 물론이고 온갖 구메 도적이 난무한다. 어리석은 농투성이가 집에서 치던 닭 한 마리를 들고 나와 흥정을 할라치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떠꺼머리총각이란 놈이 불쑥 나타나 닭을 가로챈다. 농투성이가 뒤따라가면 쫓기는 놈은 고샅길 속으로 몸을 숨기고 쏜살같이 달아난다. 요행으로 뒤따라잡아 뒷덜미를 낚아챌 만하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다른 사내가 농투성이 앞을 엎어지듯 가로막으며 방구리 사려 채독 사려 하고 외치며 훼방을 놓아 종국에는 뒤쫓던 놈을 놓치게 만든다. 그들은 농투성이들처럼 배당된 부역도 없어 한껏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농사짓는 사람은 그 수효가 나날이 줄어들어, 한 사람이 경작하여 열 사람이 배를 채우니 나라의 창고는 늙은이 뱃가죽처럼 쭈그러들고 말았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은 그래서 한낱 허언에 불과하게 되었다. 지방 군수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고 조정에 장계를 올려 저잣거리의 작폐를 저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조정에서 이를 엄중히 단속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수수방관하는 사이에 저자의 규모는 점점 커져 활기를 띠었고, 종사하는 행상인들의 수효 역시 불어나 세력화되었다. 조정에서는 할 수 없이 한 달에 두 번의 장문이 열리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다 그 다음에는 열흘의 터울로, 나중에는 닷새마다 저자가 열리도록 묵인하게 되었다. 이튿날이었다. 신새벽에 일어나 발행을 서두르던 일행은 예상치 못했던 악천후와 마주쳤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밤 잠들 때까지 날씨가 여전히 차갑긴 했어도 구름 낀 하늘은 아니었다. 비라도 내릴 양이면, 행중 식구들 중 대여섯쯤이 어깨나 허리가 결린다거나 굴뚝 연기가 낮게 깔리는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전혀 그런 징조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진눈깨비가 푹푹 내려붓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허, 좋기만 하던 날씨가 행장 꾸리자마자, 웬 심통이여.” “비알진 벼랑길에 나동그라져 다리나 작신 부러뜨리지 않으려면 감발치고 들메끈들 단단히 조여매시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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