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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 배우 드자르트는 고집불통

    ◎햄릿 등 고전극 최고스타… 연극무대 고집/혼신의 연기… 연출가도 함부로 지시못해 제라르 드자르트.50세.프랑스 연극계에서 고집불통으로 알려진 배우다. 연출자들은 그의 옹고집을 겁낸다.연출자에 고분고분하지 않고도 그가 무대에 살아 남아 있는 이유는 배우로서의 탁월한 재능 때문이다. 그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미적지근한 것을 싫어한다.그래서 어느 역을 맡으면 철저히 그 인물에 파고 든다.마치 식인종처럼 그 인물을 먹어치우고 완전히 소화하려고 한다.어설프게 연출자가 이견을 내세우다가는 한방 먹기 쉽다. 드자르트는 최고의 고전극 배우로 평가되고 있다.그는 햄릿,동 주앙등 굵직한 역을 맡는다.그가 연극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영화계에서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같다. 드자르트와 드파르디외는 친구 사이다.그 둘이 병아리 연극배우였던 시절에는 같은 역을 두고 배역 지명을 받기 위해 함께 대기실에서 마음졸이기도 했다. 오늘날 드파르디외는 세계적 인물이 되어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지만 드자르트가 파리의 거리에 나서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드파르디외가 영화로 진출했고 드자르트는 연극무대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드자르트에게도 영화계 진출 권유는 있었다.그러나 영화는 돈많은 사람들이 쥐고 있는 사업이라 연기 보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선전을 더 내세우기 때문에 싫다고 말한다.영화를 하자면 타협해야 하는데 자신을 굽히기가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자르트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물론 나오지 않지만 인터뷰나 대담 같은 것도 피한다.『내가 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직업을 가로 채는 것이 된다』는 생각이다. 사실 드자르트의 직업이란 무대에서 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그는 오랫동안 햄릿의 긴머리 가발을 쓰고 살았다.요즘은 피란델로의 「명예의 쾌락」에 나오는 주인공 발로비노역을 맡아 동그란 안경을 쓴 대머리 꼴을 하고 프랑스 도시들을 누빈다. 무대에서 남의 얼굴로만 주로 살다보니 그의 무대밖 맨얼굴을 아는 이는 적다. 그래서 그는 거리를 유유하게 걸으며 큰소리로 대사 연습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명성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드자르트는 국립극장인 코미디 프랑세즈 무대에 올라본 일이 없다.비위에 맞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괴팍한 배우가 갈만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우리식으로 굳이 말하자면 그는 「재야」에 속하는 예술가다.
  • 「자본주의 갑부」 등장(최두삼 귀국리포트:7)

    ◎1천억원대의 「10억원호」까지/경제개방 여파… 자가용차도 1백만대 돌파 북경의 어느 술집 뒷마당에서는 귀공자티가 나는 한 중국인과 뚱뚱한 사장타입의 일본인이 각기 차례로 술병을 내던져 깨부수는 괴이한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수십명의 손님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내 던지는 술병은 대부분 한병에 몇백달러씩 하는 프랑스산 헤네시,나폴레옹 코냑들로 아직 뚜껑도 열지않은 신품들이었다. 이처럼 값비싼 술을 깨버리는 모습을 모두가 안타깝게 지켜보는 가운데 두사람이 각기 75병씩 1백50번째 술병을 내던지고 난후 일본인 뚱보가 『내가 졌다.이제 그만하자』고 손을 들었다. 이 시합은 이곳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일본인 한패가 돈이 많은듯 거드름을 피우자 이 꼴을 보다 못한 옆자리의 중국인이 『당신이 그렇게 돈이 많다면 나하고 술병깨기 시합을 벌여보자』고 제의해 성사됐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액면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하지만 요즘 부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부 북경사람들중에는 전설같은 이 얘기를 예로 드는경우가 있다. 중국에 부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최고지도자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추진해오면서 80년대 중반쯤부터 『중국인들을 모두 동시에 부자로 만들수는 없다.우선 능력 있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선부기래)』는 지시를 내린후부터 부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들 부자를 만원호라 불렀다.1년에 1만원(원·한화약 1백만원)씩이나 수입을 올리는 세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그후 만원호는 소득개념이 아닌 재산보유로 바뀌면서 곧 십만원호가 생겨났고 지금은 백만원호(백만원호·약 1억원)라해야 부자 취급을 받는다. 중국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누구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중국부자들은 예부터 티를 잘 내지 않으려는 전통을 갖고 있는데다 사회주의를 겪으면서 돈가진 사람들이 천시되고 인민의 적으로까지 규탄받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이기 때문일 듯하다.그렇지만 경제개발이 가장 앞서가고 있는 광동성 일대 심천 광주 주해등지에서는 최근 1∼2년전부터 억원호는 물론 10억원호(1천억원)까지 생겨났다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잘 알려져있는 갑부로는 「붉은 자본가」라는 별명을 가진 영의인국가부주석을 들수 있다.그는 북경에 52층 경성빌딩을 비롯,국내외에 수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국제투자신탁공사의 소유주다.그는 과거 같으면 숙청 제 1호가 됐을 터이지만 93년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는 국가부주석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가하면 천진부근의 대구장이란 마을을 중국내 최고 부자마을로 가꿔낸 우작민은 지금 20년형을 받아 차가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그는 이 마을에서 공동으로 경영하는 여러 업체의 총수로 연급만도 1백만원이 넘었으나 살인사건을 방조한데다 이 사건을 수사하러온 경찰관마저 감금해버릴 정도로 만행을 부려 체포되고 말았다.하지만 인구 4천명의 이 농촌마을에는 벤츠 볼보등 고급 승용차들만도 3백여대나 굴러 다니고 있어서 『이 정도면 아시아농촌들중에서는 최고부자마을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부자마을로 가꿔놓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중국에는 이런 부자들 말고도 보통 사람들 중에도 그들 월급과 비교해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한번은 한 한국인 기업가가 중국인 한사람을 고용했는데 며칠후 이 사람이 술 한잔 사겠다해서 따라가 봤더니 술값이 이 사람 월급 6개월분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한국인들중에는 아직도 중국인은 모두 가난하다고 생각했다가 크게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그 예로 한 한국인 졸부는 101대머리 치료약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조장광옹을 찾아가 『내가 도와 줄 일이 없겠느냐?』고 거드름을 피웠다가 『당신이 나를 도와주겠다고요? 아니 내가 당신을 도와줄테니 소원을 말해 보시오』라는 면박을 당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는 자동차 구입가격이 유난히도 비싸다.한국의 쏘나타급을 사자면 4만∼5만달러가 들고 외국기업과 합작으로 중국에서 제조해낸 차량들도 2만∼3만달러나 한다.이렇게 차량값이 비싼데도 지난 92년말 현재로 자가용이 이미 1백만대를 넘었다고 한다.
  • 로마/광장과 분수들(아랍서 지중해까지:17)

    ◎빼어난 조각 트레비분주 “압권”/저마다 소원빌며 샘에다 동전 던지는 모습은 진지하기만… 로마의 아침을 보려고 5시쯤에다 시간을 맞춘다. 바로크풍의 둔중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간밤의 불빛들이 아직 명멸하고 있어도 사방을 에워싸고 다가들던 그 거창한 명소나 유물들은 채 잠이 깨지 않았는지 희뿌연 모습들인 채 산책을 방해하는 것같지가 않다. 숙소근처를 두어블록 걷자 골목에서 새벽장이 서고 있다.인근 농장에서 직접 왔는지 캡을 쓰고 멜빵바지차림으로 웃고 있는 주인들 곁의 열어젖뜨려진 소형트럭과 좌판위에 늘어놓인 갖가지 야채와 이름모를 과일들이 싱싱하다.여기 오렌지는 쪼개면 핏빛으로 넘치는 즙과 함께 톡 쏘는 단맛이 유난스럽다.정말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풍경이어서 지리멸렬한 여독이 어느새 가시고 있다. ○하찮은 것도 소중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럴듯한 이름을 거기 붙이기를 좋아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같다.구멍가게나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기념품,펜대 하나의 모양새가 그렇고 별의별 이름을 다 붙여놓은 거리들이 그렇다.별 두개짜리 속소인 「셀렉트」호텔만 해도 우리식으로는 장급여관수준밖에는 안돼 보였으나 주위공간을 하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좁다는 불평을 할 수가 없다.정갈한 욕조,앙증맞은 비누곽,출입문과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간결한 탁자와 꽃들로 장식해 아늑한 공동정원으로 꾸며놓고 있다.거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올려다보노라니 서울 필동의 어느 후진 곳을 연상시키는 그 뒤쪽의 낡은 건물이 오히려 고소를 자아낸다. 좁아터졌으나 역시 아늑하기 짝이 없는 지하식당에서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시내나 한바퀴 둘러보자고 나선 길에 운좋게도 산 피에트로광장에서 교황을 만난다.운좋게라고는 하지만 카톨릭신자가 아니므로 그저 먼빛으로 구경이나 한 셈이 되어버린 이 수요일 오전의 알현은 필자에게는 사실 뜻밖이었다. 바티칸시국은 64번 버스종점으로 테르미니역과는 반대편끝이다.산 피에트로사원은 카톨릭미술의 보고인 바티칸박물관,라파엘로관,기타 미술관들과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천지창조」가 천장화로 장식된 시스티나예배당으로 바로 이어진다.높이 25m가 넘는 장대한 오벨리스크와 분수와 1백40인의 성인상이 주위의 열주지붕위에 버티고 선 더 넓은 광장에는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듯한 수천명의 신자들이 웅성거리고,사원정면 계단 아래쪽에 차양을 치고 마련된 대좌 위의 요한 바오로2세는 시종 웃음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각 나라말로 한마디씩 은총을 내리는 모양으로 그때마다 해당되는 나라의 신자들이 환호하며 몸들을 일으켰다. 뭐라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물론 우리말의 은총도 환호도 있었다.조말의 병인사옥이라든가 서강쪽의 절두산 같은 것이 제풀에 생각나 감개가 없을 수 없다. ○광장서 교황 만나 테베레강을 건너 베네치아광장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버스를 버리고 걷는다.로마는 웬만한 길들이 그대로 모두 쇼핑타운이 되어 있어 은근한 디자인과 태깔의 그런 길가 가게들 모습은 유별나다.무드를 연출하고 집중적인 포인트로 상품을 진열해놓는 품새부터가 그렇고,묘하게 접혀서 제자리에 걸려 있는 그저 그런 옷가지 하나가 무슨 첨단디자인의 최고제품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눈에까지 그 지경이라면 입성에다 목을 매다는 여성들의 눈에는 오죽하겠는가.사심없는 눈요기야말로 하나의 풍경의 중심에 도달하는 첩경이고 일종의 쾌락에 가까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는데,그래서 그런지 가게로 들어간 일행 두사람이 좀처럼 나올 염을 않고 있다. 천사가 모는 사두마차의 지붕 좌우끝머리 조각과 중앙의 기마상이 인상적으로 금방 눈에 들어오는 에마누엘레2세기념관의 베네치아광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주위의 한다 하는 로마명소나 유명한 분수들의 그 중앙통쯤 되는 지점이 된다.트레비분수는 그 바로 다음인 콜로나광장에 있다.로마근교의 미남 홀아비 로사노 브리지가 관광온 미국처녀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얘기인 왕년의 영화 「애천」이 생각나서도 그렇지만,이 분수는 그 웅장한 규모로나,바로크양식의 걸출한 조각으로나,사철 거기 몰려 와글대는 사람들로나 역시 이곳 볼거리의한 압권이랄 수밖에 없다. 샘 주위는 그대로 온갖 피부색 인종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그런 격의없는 꿈의 무슨 도피처로도 보인다.사뭇 진지하게 소원을 빌면서 저마다 한번씩 샘에다 등뒤로 동전을 던져보고 있대서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치기어린 제스처가 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빨리 통일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지고한 소망보다는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게 해줍시사 하는 현실적인 소원이,그래서 여기서는 더 비현실적인 뉘앙스를 띠면서 제대로 먹혀들 것도 같다.권태와 욕구불만에 고주망태가 된 글래머 스타 애니타 에그버그가 심야에 이 분수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는 예의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생활」이 떠오른다.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이탈리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60년대를 배경으로 소위 로마 상류층의 무위와 타락한 일상을 신랄하게 비꼬면서 고발하고 있는 이 필름은 스페인광장 저쪽의 베네토거리가 로케이션의 주무대였던 걸로 알고 있으나 트래비분수를 슬쩍 삽입한 예의 장면의 효과는일탈한 것이었다. 펠리니는 이 관광명소의 또다른 상징적 의미를 거기서 끌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배는 불러도 삶의 공허를 어쩔 도리가 없어 카페에서 남녀가 말타기놀음까지 벌이는 유한계급의 그런 지리멸렬한 속성이나 같은 이유로 그들의 스캔들이나 고작 뒤쫓고 팔아먹으면서 파행을 자초하는 어떤 잡지사 기자의 행각이 이 작품에서는 스토리가 되고 있다. 펠리니도,「길」에서 젤소미나역을 절묘하게 해내던 그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도,단발머리로 이이스크림을 빨면서 계단을 깡충거리고 내려오던 왕녀 오드리 헵번도 얼마전에 모두 타계했다.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로 더 유명해지고 지금도 여일하게 그대로인 그 스페인광장의 계단은 그래서 새삼 감회를 자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낱 스크린속의 선남선녀들이 벌이던 그런 운명의 무상감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서는 그렇게도 정답고 낯이 익던 공간이 실제로는 도무지 현실감으로 오지 않는 그 생뚱함 때문일 것이다. 이 스페인광장의 끝에서부터는 구치니,발렌티노니,페라가모니 하는 소위 유명상표의 가게들과 부티크타운의 콘도티거리가 바로 이어지지만 별볼일이 없는 것같아 그냥 지나친다.동행과도 헤어져 어디를 어떻게 해맸는지 알 수가 없다. ○요상한 청년들 배회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로마의 건축물인 만신전 「판테온」앞을 어설렁거리다 나보나광장으로 다시 빠져나와서야 맥이 쭉 빠졌다.뭘 보려고 헤맨다는 것이 사실은 한 뼘의 쉴 장소를 찾으려고 여태 긴장해온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마실 것을 갖다놓은 야외카페 탁자위로 겁도 없이 비둘기 서너마리가 날아 앉는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이 광장에는 「사대강」 「무어인」 「넵튠」의 이름이 붙은 유명한 세개의 분수가 있다.도리없이 또 필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그런 축조물 주위에 앉거나 아무렇게 드러누워버린 요상한 차림의 젊은이들이다.로마건 어디에서건 가장 흔하게 보아오던 비슷비슷한 무리들인데,어디서 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베낭족들도 있고 어설픈 인디언 목걸이니 열쇠고리니 하는 것을 팔면서 움직이는 젊은이들도 있다.60년대의 히피즘이 다시 도래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눈여겨봤으나 행색만 비슷할뿐 그것도 아닌 것같다.기타를 끼고 있는 녀석도,헝겊으로 이마를 묵은 녀석도,민대머리도 있다. 왜 이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가고 새삼 생각한다.우선 그들은 이념적인 색채가 전혀 없어 보인다.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해는 보이지만 돈의 위력쯤 똥으로도 안 여기는 눈치들 같기도 하다.집도 절도 냉장고도 지니고 있지 않아 거칠어는 보여도 그만큼 어딘가가 탁 틔어 있다. 21세기는 아마 그들의 몫일 것이다.
  • 컬럼비아 빙하만(“빙하의 대륙” 알래스카:상)

    ◎나윤도 특파원 심방기/만년설 덮인 수십m 얼음 절벽에 탄성/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빙벽모습 “장관”/서울의 1.5배면적에 1만년전 신비 그대로 시원한 바람과 얼음에 대한 갈망이 한시도 떠나지 않는 무더위가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여름에도 겨울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있다. 파손되지 않은 자연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미알래스카가 그곳이다. 알래스카의 관광및 환경보존 실태를 앵커리지를 찾은 나윤도특파원(뉴욕상주)이 소개한다. 글래시어 퀸호가 컬럼비아빙하만의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갑판위에서 따가운 태양을 즐기던 반라의 관광객들은 파카를 걸치기에 바빴다.만 입구에 떠도는 수많은 유빙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조각공원을 연상케 했다.불독·탱크·오리모양 등 끝없이 널려있는 기기묘묘한 조각들을 헤쳐 만 깊숙이 들어가자 만년설을 머리에 인 거대한 얼음절벽군이 나타났다. ○빙하 10만개 떠돌아 이글거리던 태양은 이미 폭염의 위력을 잃었다.어마어마한 빙벽의 위용에 잠시 취해 있다보면 어느새 살갗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이따금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수십m의 빙벽은 천지창조의 신비마저 느끼게 해준다. 끝없는 모험의 대륙,알래스카의 여름은 이렇게 어느 곳이나 겨울이 함께 하고 있어 더욱 신비롭고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반도의 7배가 되는 1백52만㎦의 땅덩이에 어우러져 있는 3천개의 강,3백만개의 호수,10만개의 빙하와 높은 산,그리고 수많은 섬은 사시사철 매혹적인 모습으로 천혜의 관광지를 이루고 있다.6천m가 넘는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봉을 비롯,북미의 20개 고산중 17개가 알래스카에 있을 정도로 알래스카는 많은 산악지대로 이뤄져 있다. 앵커리지에서 손쉽게 가볼수 있는 포르테지빙하 등 여러 빙하중 압권은 컬럼비아빙하.앵커리지 동쪽으로 펼쳐진 미국내 두번째로 큰 산림공원 「추가치 내셔널 포리스트」에서 가장 큰 것으로 1만년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3천∼4천m 연봉에 펼쳐져 있는 빙원에서 70㎞에 걸친 1천㎦의 면적으로 서울의 한배반 크기에 달한다. 알래스카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발데즈항에서 위티어항까지 알래스카 남부의 내해인 「프린스 윌리엄 해협」을 가로지르는 여섯시간의 뱃길은 중간에 수많은 빙하로 연결되는 피오르드와 절경의 섬들로 잠시도 눈을 쉴수가 없다.그래서 이 지역은 알래스카 10경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2차대전중 일본이 알류샨열도를 침공해 왔을때 알래스카 주둔 연합군의 병참기지로 개발된 이 해협은 주변해안의 길이가 4천3백㎞,전체면적은 2만㎦가 넘고 북태평양의 거센 바다를 몬타규섬,힌치브룩섬 등 수많은 섬들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매우 잔잔하다. ○알래스카 10경으로 이 뱃길의 가장자리에는 이름난 빙하만 30여개가 늘어서 있다.재미있는 것은 이들 빙하의 이름.대분분이 발견자의 이름 또는 생긴 모양,주변의 지명 등을 따서 명명되는 것과는 달리 이 지역은 유난히 대학이름이 많다.최대의 빙하를 컬럼비아라고 한것을 비롯,칼리지 피오르드의 양쪽으로 늘어선 10여개의 빙하는 하버드·예일·다트머스·볼티모어 등등 유명대학의 이름들이다. 이들 빙하의 이름은 이 지역에 대해 본격적으로 학술조사가 이뤄진 1899년 무렵에 명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당시 철도재벌 에드워드 해리만이 스폰서가 되어 각 분야별로 많은 학자들을 파견했으며 그들이 새로 발견한 빙하들에 자신들의 출신학교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지역의 여행은 빙하의 장관 뿐 아니라 수많은 진귀한 동물들과의 만남이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가장 자주 만날수 있는 것은 바다수달.수염으로 뒤덮인 천진스런 얼굴을 바다 위로 내밀고 배영을 즐기며 배주위를 왔다갔다 하며 재롱을 편다. 덩치가 큰 바다사자들은 수영조차 귀찮다는 듯 항로표지물이나 등대등 바다에 떠있는 구조물에 여러마리씩 몸을 비비대며 누워 있다.그들은 배가 잠시 정지하자 왜 수면을 방해하느냐는 듯 곱지 않은 표정으로 배를 노려본다. 이따금 바닷가 바위에 큰 덩치를 내밀었다 감췄다하는 해마(해마)는 바다사자와 덩치가 비슷하다.상아 비슷하게 길게 뻗어내린 송곳니를 잘 안보여주려는 듯이 고개만 삐죽삐죽 내밀 뿐 좀처럼 바위에 올라 앉지를 않는다. ○진귀한 동물도 만나 그러나뭐니뭐니 해도 사운드의 왕자는 고래.이따금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배가 뒤흔들릴 정도로 파도가 오면 그것은 고래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다.가장 자주 보이는 것은 길이 10m 내외의 킬러고래와 보다 덩치가 큰 험프백고래.검은빛의 험프백은 꼬리부분만 내밀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좀처럼 몸체를 보기는 어렵다.그러나 킬러는 돌고래처럼 물위로 솟구쳐 눈에 잘띈다.검은 등에 배쪽은 하얀색으로 날렵하고 귀여워 보이나 사실은 해협내의 무법자로 통한다.여러마리씩 떼지어 다니며 다른 바다동물들은 물론 같은 고래까지 잡아 먹는다는 것. 한편 해협의 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대머리독수리.머리부분의 털색깔이 하얗고 부리는 노란 이 새는 해협항해 시작부터 줄곧 배위를 맴돌았다.이들의 주식은 연어.강어귀 좋은 길목을 차지하고는 배를 채운다.또 갈매기의 일종인 키티웨이크는 위티어항 가까운 절벽에 수천마리가 빽빽이 둥지를 틀고 있어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한다.2백여종의 갖가지 새들이 하늘에서 제각기 펼치는 날개짓과 울음소리를 갑판에 누워 감상하는 것도 해협항해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 창극으로 맛보는 이도령의 사랑가/오늘 무대 오르는 「이몽룡타령」

    ◎최초극장 협률사 공연 90년만에 재현/독특한 무대­명창 어우러져 “흥미 만점”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이었던 원각사의 전신인 협률사에서 공연돼 대성황을 이뤘던 창극 「이몽용타령」이 18일 하오 3시 전북 남원 광한루 특설무대에 올려진다.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금성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공연은 「세계속의 춘향」이란 기치아래 개최되는 제64회 춘향제의 하이라이트로 지금은 사라진 협률사창극을 90년만에 재현,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내 최고의 명창과 국악계의 중견들이 참여할 이번 공연은 ▲단오날 이도령과 춘향이 그네터에서 만나는 광한루대목 ▲사랑가·이별가 대목 ▲춘향옥중가 ▲어사출두 대목 ▲춘향과 이도령의 상봉순으로 구성됐다. 창극 이몽룡타령은 호남좌도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단오날 광한루에 올라 화림중에 그네를 뛰고 있는 춘향을 한번 보고 그리운 정을 느끼게 되고 그날 저녁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집에 당도해 월매의 허락으로 춘향과 백년가약을 맺는 것을 시작으로 전개된다. 두사람의 질탕하고 황홀한 사랑가대목 그리고 부친인 남원부사가 조정의 동부승지 당상내직으로 영전하게 되자 헤어지게 되어 부르는 이도령과 춘향의 이별가 사설은 명맥만 유지돼 오던 창극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이날 공연을 구성연출하는 축제예술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춘향전은 영화와 TV극으로 여러차례 만들어졌고 외국에도 한국 고전문학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명작이지만 한양에 올라간 이도령이 장원급제하여 전라어사로 특파돼 정든 땅 남원부로 발길을 재촉하고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한 뒤 옥에 갖혀 옥중가인 쑥대머리를 하는 대목은 창극만이 갖는 독특한 무대연출로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산천초목도 숨을 죽이고 떤다는 어사출두의 함성,탐관오리 변사또가 중죄인으로 하옥되고 죽음을 각오한 춘향앞에나타난 이몽룡과 춘향의 극적인 만남은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이를 창극으로 연출,국악진흥에 새로운 도약대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공연에는 박동진(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 적벽가),오정숙(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 춘향가부문),박후성(국립창극단장),은희진(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수상),정순임(남도국악대전 판소리부문대상)등 원로명창과 윤충일·김학용·박미숙·이순란·남궁정애·이순란등 국악계의 중진들이 대거 참여한다. 또 천대용(고수),박현우(아쟁),최영삼(대금),박덕근씨(피리)가 직접 반주를 맡아 창극의 흥취와 생동감을 더해 주게 된다. 협률사(협율사)는 1902년 고종재위 40주년 경축식을 위해 건립된 옥내극장으로 당시 한성부 야주현(지금의 광화문 새문안교회자리)에 있었던 황실건물 봉상사의 일부를 터서 만들어진 2층 5백석규모의 우리나라 최초 옥내 극장이다. 관급을 받는 전속단체를 만들어 활동했으며 1906년 4월 문을 닫았다가 2년뒤인 1908년 원각사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 협률사에서 공연되었던 창극은 일제통치하에 퇴색돼 국립창극단에 의해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오다 이번 「이몽룡타령」공연으로 빛을 발하게 됐다.
  • 버스서 억대 소매치기/5명영장/4개월간 6백여차례

    서울경찰청은 14일 영등포일대 시내버스 안의 승객으로부터 모두 1억2천만원의 금품을 소매치기해온 「대머리파」 두목 안영식씨(53·절도5범·수원시 권선구 교동 116의1)등 일당 5명을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안씨등은 지난 12일 하오 2시20분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네거리앞 128번 시내버스 안에서 승객 김모씨(53)의 양복 안주머니에 든 1백만원짜리 자기앞수표 6장등 6백40만원어치의 금품을 이른바 안창따기 수법으로 훔치는 등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김포공항·화곡동 일대의 버스안에서 6백여차례에 걸쳐 소매치기를 해온 혐의다. 특히 이들은 훔친 자기앞수표를 피해자가 도난신고하기 전에 평소 갖고 다니던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이용,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꾼 것으로 밝혀졌다.
  • 정 부총리 파격행보 “눈길”

    ◎취임식때 잇단 폭소훈시로 신선한 바람/기자간담서도 답변뒤 “어때 잘했지” 조크/“기획원 오랜만에 웃음꽃” 직원들 반색 『경제기획원이 기능을 안하고 있어요.이 정도의 경제가 뭐가 어렵다고 그래…』 『기획원 장관 기능은 차관 이하 간부들이 맡고,나는 죽을 쑤는 장관들을 도와주는 부총리 기능만 할 거요』 『국무회의를 가도 그렇고 도대체 숨이 막혀 죽겠어.검정색이나 감색의 어두운 색깔의 양복만 입지 말고 콤비나 핑크색 와이셔츠처럼 밝은 색깔도 좀 입어요…』 「돌아온 장고」로 불리는 정재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은 22일 열린 취임식에서 반말조에,전임자들과 너무도 다른 파격적 훈시를 쏟아놓아 그동안 경기침체로 어두웠던 과천 경제부처에 밝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기획원은 이제 각 부처를 끌고 가는 리더가 아니라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해결사(케어 테이커)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유신시절 기획원 차관으로 재직한 이후 14년만에 기획원 수장으로 돌아온 정부총리는 과거 개발경제 시대의 「끗발 좋던」 기획원의영광을 생각하는 듯 했다.미리 준비한 원고도 없이 취임식장에 가득 모인 직원들을 둘러 보며 『기획원도 이렇게 딱딱하게 식을 합니까』라며 서두를 꺼내고,마이크 소리가 작게 들리자 손으로 마이크를 두드린 뒤 『기획원 마이크가 어째….기획원이 기능을 안하고 있어요』라며 다소 「의도적」 면박을 주어 폭소를 자아냈다. 정부총리는 취임식 뒤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대머리인 안병우정책조정국장에게 『조정하다가 머리가 다 벗겨졌구만…』이라고 농을 건네 다시 폭소가 터졌고 취임식은 「흥겨운 하례식」으로 끝났다.김영삼대통령이 지난 봄 청와대 홍인길총무수석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자네는 너무 키가 커서…』라고 조크해 엄숙한 의전석상을 웃음바다로 만든 일화를 연상케 했다. 정부총리는 기자간담에서도 파격을 선보였다.1시간 동안의 간담에서 여느 장관들과는 달리 현안에 대해 청산류수격으로 막힘 없이 답변한 뒤 『어때,잘했지?』라며 폭소를 유발.말썽많은 경제행정 규제완화 문제에는 대학에서 경영환경론을 강의한 경력을 소개한 뒤『그것은 내 신념이며,내가 아니면 안 될 일』이라고 집념을 보였다.또 2차대전 뒤 라인강의 기적을 창조한 독일의 에르하르트 수상을 예로 들며 『그는 재임 중 사업가나 부자와 싸운 것이 아니라 자기 부하와 보좌관과 싸웠다고 말했다』고 밝힘으로써 규제완화를 위해 각 부처의 이기주의에 강력히 대처할 방침임을 비쳤다. 정부총리는 물가관리에도 노하우가 있음을 자부했다.『전두환전대통령이 재임중 물가안정을 이뤘다고 자랑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79년 신현확부총리와 정재석기획원차관의 경제팀이 수치에 얽매이지 않고 경제의 흐름을 바로잡은 결과』라고 말한 뒤 『아참,그런 얘기를 내가 함부로 하니까 위험하단 말야….아따,여러분들이 좀 도와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경제팀의 일사불란을 주문하는 언론의 논조에 이의를 제기했다.『군대조직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일사불란만을 강조하다 보면 각 부처의 창의나 혁신은 죽어버려.부처간의 의견차이도 있고 그런 것이지 뭘…』 과거 이경식 전부총리와 이인제 전 노동부장관의 갈등 등 경제팀의 팀웍문제가 화제로 오르자 정부총리는 『내 앞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라며 『밖에서 보니까 언론에서 자꾸 싸움을 붙이더구만』이라며 오히려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여유를 보였다.이어 『김대통령이 나에게 ▲경제팀을 장악하라 ▲농·어업은 직접 나서라는 밀명을 주었다』고 전했으나 부총리 임명을 언제 통보받았느냐는 질문에는 『유구무언』이라고 말문을 닫았다.기자간담이 한편의 만담을 주고받는 자리 같았다. 정부총리는 기획원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벌써 아이디어를 냈다.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과장급과 사무관들을 각각 모아 30분씩 자유토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절대로 끼지 말도록 했다.『농담도 하고 장관 욕도 하고 해서,경제활성화를 위한 충분한 온기가 감돌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한 기획원 관계자는 『기획원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며 『정부총리가 업무에는 완벽을 기하는 스타일이지만 훈훈하게 일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스스로 해학과 익살을 즐기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 원형탈모증 학생 크게 증가/중앙대의대 노병인교수 발표

    ◎영재교육·입시준비 시달려 5년새 10% 늘어/대증요법보다 신경정신과서 근원적 치료를 조기 영재교육이나 입시준비에 시달리는 소아및 청소년들 사이에 원형탈모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이른바 「공부 스트레스성 원형탈모증」으로 불리는 이 질환은 특히 청·장년기때 곧잘 재발하는등 병증이 매우 고질적이어서 초기 원인치료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중앙대 의대 노병인교수(피부과)는 지난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피부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지난 1년동안 원형탈모증환자 1백67명을 분석한 결과 20세 이전 저연령층의 비율이 전체의 24%로 나타나 91년 21.1%,88년 15.7%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또 10세이전 소아 원형탈모증환자의 비율도 10%에 이르러 88년 5%,91년 7.8%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했다.이밖에 조기 원형탈모증환자의 1차 치료뒤 재발률이 27%에 육박,88년 보다 두배 남짓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노교수는 소아및 청소년의 원형탈모환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입시 준비나 과외·학원수업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진단했다. 원형탈모증은 유전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안드로겐성 탈모증」(대머리)과 달리 후천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서 생긴다.지금까지 밝혀진 대표적인 원인은 자율신경및 혈관의 기능이상,내분비장애,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알려져 있다.원형탈모증은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 속눈썹,겨드랑이털,수염,음모까지 모두 빠지는 전신탈모증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기 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더구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원형탈모증은 약제를 바르는 등의 대증요법만으로는 잘 낫지 않기 때문에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원인치료를 병행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노교수는 덧붙였다. 전문의들은 또 화공약품이 주성분인 염색약·파마약·무스·스프레이등 모발용품은 두피손상을 일으켜 탈모를 촉진할수 있으므로 이들을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도 원형탈모증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했다.
  • “21세기의 수레”/권문용 한국고속철도공단 부이사장(굄돌)

    2백여년전 조선 실학자 박재가가 북경에 막 도착한 사신 일행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중국에 들어오는 사신일행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만리길을 걸어서 오니 모두 죄수들 머리처럼 쑥대머리이고 그 행색이 남루하기 이를데 없다.이들의 몰골이 이러하니,이국땅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이것은 모두 우리가 수레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개탄했다. 2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런 비슷한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명절때,휴가때 젊은 부부가 고향에 부모나 장인·장모를 찾아뵙겠다고 비록 소형이긴 하지만,산뜻한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진입한다.그러나 톨게이트도 가기전에 산뜻한 기분은 절망으로 바뀌어진다. 고속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차가 꼼짝도 하지 않으니 모두 차문을 열어놓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다. 또 얼마쯤 지나다보면 매연에 찌든 오징어를 흔드는 장사꾼을 만나게 된다.이러한 절망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그마한 분노로 변한다.세금은 내라는대로 꼬박 꼬박 다 냈는데 왜 이지경이되었느냐고 되뇌이게 된다. 천신만고끝에 늙으신 부모앞에 서게 됐을 때 이 젊은 부부는 떠나올 때의 산뜻한 모습과는 달리 파김치가 다된 남루한 모습으로 바뀐다.2백여년전 박제가가 묘사한 조선사신 일행의 모습이 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러한 교통체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우선 고속도로와 기타 도로를 크게 확장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그러나 2천년까지 60조를 투입하게 되면 도로는 두배이상 크게 확장될 것이다.그러나 자동차 증가속도가 도로확장 속도에 곱절이 될 것이기 때문에 확장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로사정은 더 나빠졌지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다.정말 답답한 일이다.그러나 이런 문제는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모두 해결될수 있을 것이다.고속철도는 하루 30만에서 50만명까지 산뜻하게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에 이 답답한 교통체증이 말끔히 가시게 되는 것이다. 만약 박제가가 이 고속철도를 본다면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21세기의 수레」다』라고 단언할지 모른다.
  • 나의 기쁨 「꽃봉지회」/박정자 연극배우(굄돌)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 극장에 오는 건 힘든 일이다.영화처럼 규모가 큰 즐거움을 주는 것도,하루 5회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연극에 「장기공연」이 있었던 것은 최근의 일이다.일주일,보름이 고작이었다.그 기간동안 투입한 제작비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그런 구조속에서 연극을 해온 나는 연극을 통해 돈을 받는다는 것을 한번도 현실로 느껴보지 못했다.「개런티」라는 말은 나와 무슨 상관일까? 나는 금치산자였다.극단에서도 「거마비」라고 비하해서 표현한다.거북해서일까? 아니면 난처해서? 하긴 모든 물가가 치솟아도 배우의 「거마비」는 오를줄 몰랐다. 90년 「대머리 여가수」공연으로 내가 받은 개런티는 50만원이었다.나는 할말이 없었다.나한테 미안할 정도였다.「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연극배우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그때 비로소 생겼다(난 왜 그런 자각증상이 없었을까). 나는 히스테리를 느꼈다.견디기가 굴욕스럽기까지 했다.그리고 더이상 연극을 해야 할 이유를 그때 구체적으로 상실했다.그래,나는 언제나 늦되었지.연극을 30년 가까이 해왔으니 그 많은 시간과 열정을 다른데 투자했다면 내가 아무리 멍청이래도 지금보다는 부자가 됐을텐데.그렇게 한심하게 자조하며. 그래도 나는 연극표를 팔았다.코너에 몰린 내 자존심 때문이었다.중년여자들의 소극성,나이가 주는 권태를 나는 안다.그들을 부르고 싶었다.나의 분투를 본 둘째언니와 친구들이 표를 사주기 시작했다.주변에도 권하며.연극배우 박정자를 후원하는 모임 「꽃봉지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91년이었다.우선 17명의 회원이 생겼고 다시 150명으로 늘어났다.전문직을 가진 사람도 있고 주부도 있다.그들은 공연 때마다 극장에 와 내 무대를 지켜보며 연극이라는 하나의 진실에 참여한다. 나는 부자가 된 것 같았다.누가 연극을 와서 봐주기나 할까.미리 불안하고 미리 허무하던 나는 확보된 관객이 생긴것이 아무 공덕도 없이 그들을 갖게 된 것이 진정 기뻤다.꽃봉지회 회비로 회원들에게 표를 보낼 땐 나만 아는 기쁨을 감추기 힘들었다.언제나 나는 표를 보낼 대상이 없어 막연했었으니까. 나는 잃어버렸던 그 이유를 꽃봉지회를 통해 다시 찾고 있다.그건 모골이 송연할 만큼의 긴장,게으름 부릴 수 없다는 투정,연극배우로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나의 뺏길수 없는 기쁨인 채로.
  • 연극과 인생/박정자 연극배우(굄돌)

    나는 세어서 30년동안을 연극을 해왔다.그 시간동안 나는 쉴 줄을 몰랐다.거의 부도덕한 일 같았다.그건 어떤 종류의 강박감일까. 75년 「그여자 사람잡네」를 36일동안 휴일도 없이 하루 2회씩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그건 거의 미친 짓이다.그러나 그때 나는 그렇게 해야 되는 건 줄만 알았다) 지금까지 「대머리 여가수」 1백회,「위기의 여자」 2백50회,「웬일이세요,당신」 50회,「굿나잇 마더」 1백50회,「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3백50회,「신의 아그네스」 2백50회,그리고 최근 반년이라는 시간을 바쳐온 「햄릿」(이것은 대충 어림잡아본 수치다.나는 숫자에 관한 한 거의 절망적인 천치다.그러나 산술력에 관한 한 혼자 보기 아까운 나의 멍청함이 멍청한대로 나는 좋다)에 이르기까지 나는 하나의 사건,장기공연에 익숙하다. 나는 한번도 장기공연을 결정하고 공연에 들어간 적이 없다.누구도 그것을 예측할 수 없다.관객이 와주지 않으면 연극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일정량의 관객이 와주고 장기공연이 결정되면 나는 뭔가가 한순간에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그건 아주 긴 시간을 아플 권리도 안식도 없이 하나의 연극만을 계속해야 한다는 아득함과 수고스러움보다 먼저 다가온다. 극장 밖에서 피곤할 뿐,나는 분장실 안에서 편안하다.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일기장·약병같은 내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하다못해 우편물까지 극장으로 찾아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집보다 극장이 더 편안하다는 사실에 가끔은 쓸쓸하고 또 가끔은 행복하다.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인생이 그 안에 있음을 나는 보니까. 장기공연이 끝나고 머리속이 하얗게 탈색돼버린 듯한 막연한 공허감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을 그저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에 탕진해버렸구나,서럽다,따위의 사치스러운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다음 작품을 찾았을 뿐이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속에 뭔가가 부서지고 말 것처럼. 그러나 연극이라는,보상은 적은 노고 속에서도 이것 하나는 느낀다.나는 연극 외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던 나의 무능함 속에서 자랐고 한심한 채로 풍요로웠다는 것을.
  • 가짜 유명침대 판매/가구업자 6명 구속

    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 이건주검사는 16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침대회사인 「시몬스」사의 가짜상표를 부착,시중 유명백화점등에 팔아온 김명국씨(32·서울 마포구 창전동 382의8)등 가구제조업자 6명을 상표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권순원씨(40)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은 또 이들이 가짜 「시몬스」침대를 제조,판매하는데 사용해온 침대머리 장식판·메트리스·가짜상표등 3천여점을 압수했다. 김씨등은 「시몬스」침대 상표에 대한 국내 사용권을 갖고 있던 영본침대공업에서 근무하던중 이 회사가 지난해 6월 도산하자 같은해 9월 경기도 광주군 학동리에 무허가 가구 제조공장을 차려놓고 메트리스 제조업자 이기춘씨(38·구속) 등으로부터 가짜 「시몬스」상표가 부착된 침대부품을 납품받은뒤 이를 조립,H백화점등 서울시내 유명백화점 등에 모두 4억여원어치를 팔아 지금까지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겨온 혐의를 받고 있다.
  • 두얼굴의 선생님/박현갑 사회1부기자(현장)

    ◎사도 팽개치고 「입시브로커」로 전락 『어디가서 이 학교 출신이라고 떠벌리겠습니까』 8일 하오2시쯤 서울 강동구 상일동 강동고교 2층 교무실 밖. 전문대 입학지원 원서를 작성하러온 졸업생 김대선씨(21·송파구 마천동)는 이번 광운대 입시부정의 알선책이 이 학교 교무주임이었던 이두산선생님(54)이라는데 대해 『부끄럽다』며 한탄조의 목소리로 말했다.김씨는 한낱 입시브로커로 전락해버린 선생님이 원망스러운듯 『이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받은 적은 없으나 존경할만한 분으로 알고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원서를 작성하고 학교를 나서던 다른 졸업생 2명도 『기분 나쁜 일』이라며 총총걸음을 했다. 교무실 안에 있던 도연호교감(60)등 선생님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도교감은 『교장선생님이 지난번 개학때 전교생들에게 「학생 본연의 자세를 조금도 흩트려뜨림이 없이 공부에 전념해 달라」고 당부했었다』며 학생들이 동요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정태병학생주임(44)도 『이번 일로 특수지 학교해제가 늦어질지 모르겠다』며 학교로 불똥이 튀지나 않을지 우려했다. 운동장에서 급우들과 축구를 하며 놀던 정모군(17·2년)은 『뉴스를 보고서 우리 학교 선생님이 나쁜 짓을 한 것을 알게됐다』며 『왜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교사는 지난해 10월말 이 학교 교지인 「송민」 편집부 학생들과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했을때 『교육의 목적이 개성과 인품의 조화를 이룬 인간을 양성하는데 있듯이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거두며 가르칠수 있는 교직에 매료돼 이 길을 걷게 됐다』며 교직에 종사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이름자를 본따 별명이 「백두산」이라는 대머리의 이교사는 또 가발을 쓰지 않는 이유를 『사람은 생긴 그대로 한다』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지 않겠느냐』고 말했었다. 이교사는 그러나 학생들에게 들려준 가르침과는 달리 이번 입시부정사건의 알선책으로서 학부모들로부터 3천5백만원의 돈을 받은 「해결사」로 등장,학생들에게 충격을 던진 「두 얼굴의 선생님」이었다.
  • 한량쇠고기맛 어떻던고(박갑천칼럼)

    음악은 천사의 언어라는 말이 있다.천사의 언어이기에 그런다는 것일까,얼핏 감각이 없다고 생각되는 식물한테까지 감흥을 안긴다.그 감흥이 식물의 성장을 돕는다.그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 지도 오래다. 1950년대 후반,미국의 꽃장수 아서 로카란 사람은 『음악을 들려준 꽃은 생장도 빠르고 수명도 길다』는 보고를 했다.같은 시기 캐나다의 기술자 유진 캔비란 사람도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보리한테 들려주어 보통보다 66%의 증산을 보았다.바흐의 음악은 비료보다 효과가 컸다』면서 좋아했다.그런 사례는 그밖에도 많다.조지 스미스라는 농업연구가가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를 들려주어서 키운 옥수수는 발아·성장도 빨랐고 수확도 많았다… 등등. 식물도 이렇게 감정을 갖는다.의사 표시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그렇다할때 사람이 못듣는다뿐 도끼질 당하는 나무는 비명을 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일반 사람들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한 제약회사가 대머리 보조치료제로서 모차르트의 음악을들고 나온 것은 또 어떤가.다이이치(제일)제약회사는 『이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 음악요법과 병행하여 두발 회복제를 쓰고 머리를 마사지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10곡이 든 콤팩트 디스크를 판매해 온지 반년이 되었다.식물도 감흥을 느끼는 「천사의 언어」이거늘 사람에게 붙어있는 모근이 그걸 못느끼랴 싶어지기도 한다. 이러고보면 동물에게 음악 들려주는 시도는 너무 당연해진다.예컨대 닭한테 들려주었더니 산란율이 높아졌다는 따위.그래서 상오에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하오에는 경음악을 들으면서 자라는 식용 한우(한오)도 생겨났다(서울신문 10월9일자 6면).멍에 쓰고 쟁기 끌어 논밭 갈아주면서도 매맞기 일쑤였던 그 조상의 슬픈 운명에 비기자면 한량 신세.뷔페식으로 「식사」도 하고 마사지 받으며 1주일에 2∼3병씩 맥주까지 든다.백화점에서 목장에 위탁사육하는 것인데 체중은 일반 한우보다 2백㎏ 정도 더 나가는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장삿속이다.인도도 아닌터에 소를 위해 주는 짓들이라고야 하겠는가.당연히 보통 쇠고기 값보다 비싸다.비쌀수록 잘 팔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기묘한 시장논리.더구나 이게 어디 보통 소인가.음악 들으며 뷔페식하고 한잔씩 걸치기까지 하며 자란 귀족 한량 소가 아닌가.「불티나게」팔린다고 한다.그래,육질 좋다는 한량소의 고기맛은 긔 어떻던고.바따라지던가,달보드레하던가.아니면 달골새곰하던가,알근달근하던가.한량이 못돼선지 마뜩찮아지는 마음이다. 「문명화(시빌리제이션)는 암화(캔서리제이션)」라는 말들을 해온다.이는 미식의 과식과 많이 관계되는 말. 동양에서 장수의 비결로 쳐오는 소식·조식의 다작을 한번 더 생각해 보게한다.
  • 미술의 경계 넘나드는 「정리된 혼돈」

    ◎독 카셀시의 현대미전 「도쿠멘타9」 성황/육근병씨등 37국 1백87명의 작품 전시/9월20일까지 1백일간 실험정신 경연 인구 20만명도 못되는 조그만 도시에서 약5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중부 독일의 고도 카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미술의 올림피아드 「도쿠멘타9」.흔히 「카셀 도쿠멘타」로 불리는 이 전시회에는 세계37개국에서 1백87명의 작가가 출품했는데 한국작가 육근병씨도 포함돼 있다. 카셀시의 박물관 갤러리공원과 심지어는 백화점까지 시전체가 하나의 전시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투입된 예산은 1천5백60여만마르크(약80억원).지난 6월13일 개막돼 오는 9월20일까지 1백일동안 계속된다.개막식에는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연방대통령이 참가했고 베아트릭스 네덜란드 여왕,이탈리아 외무장관,룩셈부르크 공주등 유럽의 명사들이 관객으로 계속 찾아오고 있다.개막식에 앞선 기자들을 위한 프레스 오프닝에는 세계 각국에서 약 1천8백여명의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전시중반에 이미 지난 87년 제8회 도쿠멘타의관람객 동원기록(총 47만6천명)을 돌파했다. ○세기말의 몸부림 표출 이런 외형적 화려함이나 요란한 수치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시작품들의 충격적인 내용.몇개의 전시장만 둘러보아도 오늘의 현대미술이 직면한 세기말의 몸부림과 아우성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놓인 비디오 세트속에서 대머리남자의 얼굴이 거꾸로 매달린채 돌아가며 끊임없이 『나를 도와줘,때려줘,사회학』 『나를 먹여줘,먹어줘,인류학』하며 읊어대는 작품 「인류­사회학」(브루스 나우만·미국)이 있는가 하면 사방의 벽과 천장에 온통 개미떼를 새까맣게 그려놓은 작품(페터 코글러·오스트리아)도 있고 영락없는 공중변소 속에 방금 주인이 마을 나간듯한 거실과 부엌을 설치해 놓은 작품 「화장실」(일리야 카바코프·CIS)도 있다.심지어는 실물크기의 남자마네킹 8개로 동성연애를 표현한 「오! 찰리 찰리 찰리」(찰스 레이·미국)같은 작품도 있다. 이런 작품들 속에서 엘스워드 켈리(미국)의 「곡선이 있는 붉은 패널」 펭크(독일)의 「무제」등 현대미술계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평면작업은 오히려 고전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평면회화와 조각,설치작업,비디오,사진등 미술의 모든 매체를 통한 극도의 실험을 보여주는 이 전시회는 한마디로 「정리된 혼돈」 그것이다.무엇이 미술이고 미술이 아닌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전시작품들 속에서 오늘의 미술이 막다른 골목의 끝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카셀 도쿠멘타」의 핵심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 박물관앞 프리드리치광장에 세워진 「하늘로 걸어가는 사람」(조나단 보로프스키·미국)은 이 전시회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꼽힌다.길이 25m,직경 0.5m,6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급경사로 세워진 강철막대기 위에 올라 3층 높이의 박물관 지붕을 넘어 하늘로 걸어 가고 있는 남자는 지상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소박한 꿈의 표현이자 현대미술의 앞날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한국작가 육근병씨(35)의 작품은 「하늘로 걸어가는 사람」옆에 자리잡고 있다.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이라는 표제가 붙은 이작품은 높이 6m,폭 7.5m의 잔디 덮인 봉분과 높이 8m의 검은 사면체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구조물과 봉분 꼭대기에 각각 설치된 비디오에서 한국(봉분)과 독일(구조물)어린이의 깜박이는 눈이 마주 보고 있으며 봉분속에선 어린이의 숨소리가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동과 서의 만남,문화의 근본개념인 정신과 인간으로의 회귀를 상징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인간성의 상실과 비도덕성,동성애,폭력이 난무하는듯한 인상을 주는 「카셀 도쿠멘타」의 혼돈속에서 그의 작품은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느낌을 준다. ○제작비 4억원을 지원 개막식날 육씨의 작품은 취재진들의 열띤 취재대상이 됐고 바이츠제커대통령이 20여분동안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또한 육씨는 독일의 ARD·ZDF등 TV방송과 일본 NHK등을 통해 소개됐고 「아트」 「쿤스트 포럼」등 미술전문지에 의해 도쿠멘타의 주목할만한 작가 15명(아트)또는 21명(군스트 포럼)가운데 한사람으로 선정됐다. 도쿠멘타사무국은 참가작가 모두에게 작품제작비와 체재비 일체를 지원하는데 육씨가 받은 지원금은 4억원. 육씨는 경희대 미대출신으로 88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8회의 개인전을 열어 왔고 상파울루 비엔날레(89년)를 비롯,일본·스페인·독일등의 국제전에 4차례 참가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는 대상후보에 오를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도쿠멘타에 참가하기 전까지 국내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한 편이다. 「카셀 도쿠멘타」는 1955년 카셀 출신의 화가 아놀드 보데가 나치독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문화적 변방에 위치한 독일을 국제미술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창설한 것.4∼5년에 한번씩 열리면서 그동안 태동된 현대미술의 제반경향을 부각시키고 앞으로의 흐름을 예견케하는 기획으로 눈길을 끌어 왔는데 70년대 이래 세계최고의 현대미술제로 명성을 굳히고 있다.
  • 외언내언

    독도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그 하나가 「독섬」설.돌(경상도 방언으로는 「독」)로 된 섬이라는 뜻이다.그래서 「석도」라 적어놓은 기록도 있다.◆다른 하나는 「대섬」설이다.예로부터 우리는 무인도나 불모도를 이르면서 「대섬」이라 했다.한자로 대도·죽도로 표기되고 있는 전국의 섬들이 다름아닌 「대섬」.그 대섬의 「대」는 대머리의 「대」와 같다.곧 독도이다.일본사람들이 제 영토라고 우기는 독도의 그들 이름 다케시마(죽도)도 여기 근원한다.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의 오시마(대도).글자 뜻과는 달리 무인도에 붙는게 우리와 같다.세토나이카이(뇌호내해)안에만 1백 정도 오시마가 있는데 모두 무인도이다.◆독섬이 됐건 대섬이 됐건 불모의 섬이라는 점에서는 같다.나무가 없다.있다 해도 관목 정도가 고작.나무가 없음은 물이 없다는 뜻과도 통한다.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무인도와 유인도의 1차적인 차이점은 거기 있다고 할 것이다.설사 물이 있다 해도 그 줄기를 찾지 못했을 때는 「대섬」이 될밖에 없는것.독도는 「독섬」이면서 그런 「대섬」이었다.◆그같은 독도를 「독섬」이나 「대섬」이 아니게 하자는 움직임은 진작부터 있었다.사람이 옮겨 살면서 다시 푸른옷까지 입혀보자는 뜻들이 모아진 것.그동안 뭍에서의 독지도 있었지만 특히 울릉도 주민들의 노력은 20년을 두고 기울여져 온다.그들이 심은 나무는 1만2천 그루.그중 10분의 1쯤이 활착했다.하지만 거센 바닷바람 속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그래서 8일에는 키 큰나무를 심으리라고 한다.◆일본사람들이 날름거리는 독도.그때문에 우리의 관심이 유다른 섬이다.나무란 심은 다음의 관리(사랑)가 더욱 중요한것.그를 위한 국민적 관심이 물심양면으로 모아졌으면 한다.
  • 보험 상품에 이색화 바람/국내외 「특종상품」실태를 보면(경제화제)

    ◎학교길 안전보장/실연의 아픔위로/쿠데타 피해보상/「순결상실」·「이혼」보상등 수백종 불티/외국/「동물」·「명화」·「신체」는 이미 보편화/국내/직업세분화 경향에 개발영역 무한대 산업사회의 발달로 분야와 직업이 세분화되고 다양화됨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는 갖가지 위험을 커버하는 보험상품의 종류도 특이한 것이 많아지고 있다. 보험시장이 비교적 단순한 우리나라에서도 말·개·돼지등 동물보험과 명주보험·유리보험·얼굴보험등이 이미 보편화되고 있다.수백종의 희귀 보험상품이 즐비한 선진국처럼 앞으로 점차 그 종류가 다양해지는 추세이다. 국내에서 특종보험으로 분류되고 있는 이색보험으로는 지난88년 삼성물산이 안양컨트리클럽에서 사육하던 명마 7필에 대해 1년간 말보험에 가입한 것을 들수 있다.삼성물산은 당시 보험료로 2천7백96만7천원을 지불했다. 또 같은해 조선호텔은 현관로비및 시설의 유리에 대한 파손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리보험에 들었다.1년간 지불한 보험료는 4백여만원이었다. 산업분야의 다양화로 인한 영업배상책임보험도 특이한 것이 많다. W골프장은 지난 89년 골프장내 보관중인 개인의 골프용품 분실시 영업주가 이를 책임지는 「골프보험」에 가입했었고 도시락 전문판매 업체인 W식품도 자사제품 도시락의 변질등으로 소비자가 식중독등의 피해를 입었을때 보상을 해주기위해 「도시락 보험」에 들었다. 또 K광고회사는 자신들이 관리하는 네온사인의 파손등으로 행인등에게 본의아니게 상처를 입혔을 때 이를 보상해주는 「네온사인 보험」에 가입했었다. 상해보험의 일종인 얼굴보험등 신체보험은 주로 배우·탤런트·운동선수등이 많이 들고 있다. 영화배우 K양은 지난 89년부터 1년간 영화촬영이나 일상생활에서 사고를 당해 상처를 입었을 때 2억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는 얼굴보험에 들었다.이때 K양이 1년간 낸 보험료는 77만원이었다. 얼굴보험 가운데는 지난83년8월 서울에서 열렸던 미스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54개국 미녀들이 사망·후유장애시 1억원을 받을수 있는 「VIP상해보험」에 단체로 가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화보험으로는 H은행이 소장중인 유명화가 등의 작품 80여점을 A보험사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H은행은 6백80만원의 보험료를 냈지만 화재 및 도난시 보험사로부터 6억여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보험이 생활의 일부가 되다시피한 외국의 경우는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희한한 보험들이 수두룩하다. 여자의 순결을 가장 큰 자랑으로 삼는 지중해의 시칠리아에서는 순결을 잃었을 때 보상을 받는 「처녀성보험」이 불티나게 팔리는가 하면 이웃 일본에서는 학교주변 폭력배들로부터 당한 피해를 보상해주는 「등하교보험」이 개발,시판중에 있다. 일본에는 또 미용사의 잘못으로 머리카락을 그을리거나 너무 짧게 잘랐을때 보험사로부터 보상을 받는 「미장원 보험」이란 것도 나와 여성들의 인기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청소년들의 데모가 잦아 피해가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에서는 데모때 인근 은행·상점·일반가정 등이 입는 피해를 보상해주는 「데모보험」이란 것도 있으며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는 태국에서는 쿠데타의 와중에서 인명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쿠데타보험」이 몇년전 개발되기까지 했다. 이밖에 이색보험으로는 「대머리·가발보험」「각선미·목·가슴·히프 등 신체부위별 보험」「이혼보험」「섹스보험」「강간보험」「실연(실련)보험」등이 있고 동물의 경우도 판다·메기보험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수백종에 달한다. 이처럼 이색보험상품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자신을 포함한 주변 동물·사물 등에까지 피해를 모두 보상받을 수 있어 동일 목적을 가진 보험가입 희망자만 있으면 얼마든지 상품개발이 가능한 분야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국내 이색보험이 외국 것을 모방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 국내 보험사도 우리 실정에 맞는 특이상품의 개발을 서둘러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 「언어혁명」시도… 「새말」5만여개/「문화어」(북한 문화실상)

    ◎66년 김일성교시… 남북어휘 이질심각/외래어·한자어까지 고유어로 만들어/함경·평안도 방언도 표준말 수용한게 특이 남북한간의 이질화현상이 가장 심각한 분야는 바로 매일 사용하는 언어다. 남북한언어가 이질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김일성교시에 따라 「문화어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이다.김일성은 그동안 표준말로 통용돼 오던 서울말을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라고 비판하고 평양말을 표준으로 삼아 고유어를 다듬는 이른바 「어학혁명」을 펼쳐나갔다.그결과 어휘 발음 철자법 띄어쓰기 화법 등 모든 분야에서 남북한언어의 이질환 현상이 나타나게 됐으며 특히 5만개에 이르는 북한의 새말들로 인한 어휘의 이질화는 매우 심각해졌다. 그러나 남북한 어휘의 이질화를 불러일으킨 북한의 말다듬기운동은 무리하게 새말을 만들거나 쉬운 말로 풀어 써 이질화 현상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는 반면 고유어 어휘에 활력을 줘 왕성한 조어능력을 갖게 하고 알기 쉬운 고유어로도 학술용어를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상당한 성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북한의 어휘는 고유어에 의해 발전·풍부해졌다.또 사회·정치용어를 많이 만들어 쓰며 약어 사용도 늘고 있다.예를 들어 남새(채소)·닭알(계란)·겨울나기(월동)·단묵(젤리)·일본새(능력)·솔솔이(스프레이)·맞단추(혹)·끌끌하다(깨끗하다)·물맞이칸(샤워실)·창문보(커튼)등은 외래어나 한자어를 쉬운 고유어로 다듬은 경우에 속한다. 또 학술·전문용어도 되도록이면 고유어로 바꿔 쓰고 있다.어김돈(위약금)·치르기(결제)·옮겨놓기(환치)·밑진돈(경영손실)·짙음새(농담)·토막생각(단상)·큰마루(클라이막스)·비양(아이러니)끄기(암전)·소리너비(음역)·설기과자(카스테라)·애기름(간유)판종이(마분지)·나리옷(드레스)·베인상처(절창)큰피돌기(대순환)·바닷물미역(해수욕)등은 북한에서 쓰이고 있는 고유어로 된 각종 학술·전문용어들이다. 이밖에 함경도·평안도등의 방언을 표준말로 적극 수용해 어휘를 풍부하게 한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문화어」에 포함된 방언의 예로는 망돌(맷돌)·부루(상추)·거위(게사니)·정지(부엌)·번대머리(대머리)·터돌(주춧돌)·점심곽(도시락)등이 있다.이와함께 「민족어발전」원칙에 따라 어린이이름 고장이름 품종이름도 고유어로 지어 고유어의 실용화 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이밖에 형태는 같으나 뜻이 달라 의사소통이 어려운 말들과 체제와 관련,새로 만들어 낸 말들도 상당히 많다.교시를 「김일성동지가 가르쳐주신 혁명건설의 지침이 되는 말씀」,문헌을 「김일성동지의 로작」,상전을 「제국주의 앞잡이나 괴뢰에 대해 주인노릇을 하는 제국주의자」,고용을 「제국주의자 반동 통치계급이 앞잡이로 매수하여 예속·부리는 것」,경찰을 「인민에 대해 감시 강제징벌의 특별 무장부대」,문화휴식터를 「근로자들이 문화적으로 즐겁게 쉴 수 있는 곳」 등으로 쓰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이기도 한 「문화어」는 발음상에서도 매우 특징적이다.예컨대 「걱정없다」가 「곡종옵다」에 가깝게 발음되는 것처럼 모음「어」의 원순화와 「건더기」가 「건데기」로 「수줍다」가 「수집다」로 발음되듯 「ㅣ」모음의 역행동화 및 된소리현상이 두드러진다. 또 쉽게 변하지 않는 의성어·의태어도 많이 달라졌다.「왈랑절랑 방울소리」「씨엉씨엉 배를 몰다」「가슴이 후둑후둑 뛰다」「우쭐렁거리다」「아글아글 애를 쓰다」「바질바질 속을 태우다」등 생경한 표현들이 많으며 표현하는 대상에 따라 언어표현의 극단적인 양극화현상도 찾아볼 수 있다.
  • “서울의 새 고심” 중국동포 한약행상/「보따리장사」 실태와 문제점

    ◎“한밑천 잡는다” 소문에 계속 몰려/덕수궁ㆍ시청 지하도 등 떼지어 “점령”/“나쁜 인상 줄라” 정부선 단속 못해/89년부터 급증… 올 1만5천명 입국 요즘 서울 한복판 덕수궁 앞길과 시청 앞 지하도,파고다공원 등이 한약시장처럼 돼버렸다. 길 가득히 늘어선 중국교포들이 우황청심환 등 각종 한약들을 길바닥에 늘어놓고 손님들을 부르고 있다. 처음 덕수궁 앞길에 몇 사람씩 모이기 시작하던 이들은 점차 숫자가 늘어 길이 좁아지자 시청 앞 지하철역으로 진출하고 이곳도 모자라 파고다공원 앞까지 점령한 것이다. ▷실태◁ 이들이 덕수궁 앞길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경. 고국 방문길에 장사가 된다는 한약을 사들고 온 교포들 사이에 판로와 가격 등의 정보를 알려면 덕수궁 앞에 나가면 된다는 소문이 나 20∼30명씩 모이던 것이 얼마 뒤부터는 아예 약 보따리를 길가에 풀어놓기 시작하게 됐다. 중국과 교류가 막혀 있던 때 홍콩 등을 통해 드물게 들어오던 중국산 편자환 우황청심환 등이 희소가치에다 효험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중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모국을 찾는 교포들이 조금씩 들어온 것이 몇 곱절의 값으로 팔렸고 때마침 중국에서 개발됐다는 대머리치료제 등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자 중국산 한약은 들여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중국산 한약이 이처럼 밀어닥치자 국민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보사부가 그냥 둘 수만은 없어 이들 한약에 대한 성분검사를 실시하게 됐고 그 결과 지난달 18일 중국산 우황청심환 3종과 녹태고 및 정력제로 인기가 있던 「남보」 등에서 수은과 납 등 중금속이 검출되고 함량도 부족하다고 발표하면서 한약에 대한 인기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선물용이나 여비 정도나 뽑기 위해 조금씩 들여오던 한약이 장사가 되면서 너도나도 빚까지 얻어 갖고와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갑자기 팔리지가 않으니 야단이 난 것이다. 팔리지 않은 약을 들고 시내 중심가로 한두 사람 나오기 시작하다 순식간에 중심가를 거의 모두 차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오갈 데도 없이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묵고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체류를 하거나 생활비나 돌아갈 여비가 없어 막노동을 하는 사람까지 생기게 됐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자 서울시가 단속에 나섰으나 모처럼 교류가 시작돼 고국을 찾은 교포들을 함부로 단속했다가 중국교포사회에 고국에 대한 인상만 나쁘게 만들고 자칫 반한감정까지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어 주춤하는 사이 교포노점상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됐다. 하는 수 없이 내무 법무 재무 보사부와 서울시 등 관계부처가 합동대책회의까지 열었으나 세관에서 더이상 한약을 들여오는 것을 막는다는 대책만을 세웠을 뿐 현재까지 들어와 서울도심을 차지하고 있는 교포 노점상들에 대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돼버렸다. 지금까지는 서울시가 대우와 협의하여 노점을 펴고 있는 교포들의 한약을 모두 사들인다는 것이 대책의 모두인 실정이다. ▷통관현황◁ 88년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만 해도 한 달 입국자 수가 두자리 수에 불과했던 중국교포는 이듬해인 89년 김포공항에만 8천9백7명이 들어와 88년의 4.3배에 달하고 있다. 관세청이 중국교포들이가지고 들어오는 한약재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과세통관을 하기 시작한 올 들어 10월말까지만 해도 지난해에 비해 갑절에 가까운 1만5천2백16명이 들어왔다. 중국교포들이 우리나라에 갖고 들어오는 한약은 대체로 30여 가지. 가장 흔하게 가져오는 우황청심환은 한 사람당 2백∼3백알까지 가져오며 녹용도 2㎏ 정도는 거의 모두 가져온다. 이외에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는 편자환이며 반입량으로 볼 때 활락환 녹태고 삼편환 호골환 101발모제 강압환 등의 순이다. 올 들어 10월31일 현재까지 중국교포들이 세금을 물고 통관한 약재는 녹용 1천9백77㎏,청심환 81만4천1백10개,편자환 3만1천6백83개 등이며 감정가격은 29억여 원에 이르며 과세액만 해도 11억7천5백여 만원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한 사람당 세금없이 반입할 수 있는 면세통관량(우황청심환 1백50알,편자환 30개,녹용 1㎏)을 합치면 올해 들어서만 2백여 억원어치의 각종 약재를 들여온 셈이다. 이 금액은 교포 한 사람이 1백만원어치 이상의 한약재를 가지고 온다는 수치다. 최근에는 이같은한약재 반입 외에도 아편과 마약성분이 짙은 고가품의 약재,그림,삼베 등 반입하는 품목도 다양화되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교포들이 가져오고도 통관이 금지돼 현재 세관 보세창고에 쌓여 있는 한약만도 수십여 억원어치다. 김포공항의 한 당국자는 『정식으로 친지초청으로 온 교포는 총입국자의 5% 내외로 추산된다』고 말하고 『나머지는 모두 「위장친지」들을 동원,약장사를 하러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을 찾은 교포 한약상의 변 ○「중금속 보도」 이후 팔리지 않아 곤혹/오청자(54ㆍ심양시 거주) 서울에 사시던 시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장남(34)과 함께 지난 8월27일 심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급히 왔다. 도착해 보니 시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셔서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안타깝다. 83년 한국에 있는 친척과 연락이 되어 그동안 서신왕래만 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왕복 비행기삯과 체류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이웃사람들의 권유로 한약과 수공예품을 사왔다. 한약은 약공장에서,수공예품은 시장에서 사왔다. 9월부터 지난 15일까지 이 동네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약을 팔았는데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신문과 TV에서 「중국산 한약재에 수은 등 중금속이 들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는 한약을 사갔던 사람들까지 물건을 갖고와 환불해달라고 요구해 곤혹을 치렀다. 친척들은 내가 한약을 팔려고 밖으로 나가려 하면 창피하다고 못 나가게 막고 있다. 그래서 친척이 아침밥을 먹고 직장과 학교 등에 나가고 난 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한약을 팔러 나왔다가 친척들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돌아간다. 덕수궁으로 나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친척이 아직은 행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만 신문에 이름과 사진이 보도되어 알게 될까 걱정이다. ○친척에 선물도 하고 여비도 보태려/심양 거주 교민(59) 한국에는 지난 9월에 홍콩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 50년 만의 귀국이었다. 일제 때 전주에서 살다가 일본인들에게 집을 빼앗겨 만주 봉천으로 가는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너무 오랜만에와서인지 고국산천도 많이 변해 있었다. 친척집에 선물도 하고 일부는 팔아서 여비에 보태 쓰려고 한약을 가져왔다. 녹용·우황청심환 등 한약재 5만원(한화 8백만원)어치를 사왔는데 김포공항에서 비싼 세금 때문에 친척들에게 선물은 못했다. 과세를 물면 물건을 가져올 수 있지만 워낙 비싸 엄두도 못내고 팔아서 여비가 될 만큼만 갖고 들어왔다. 게다가 TV와 신문에서 중국교포들이 가져오는 한약은 모두 가짜라는 소문을 퍼뜨려 팔리지도 않는다. 다행히 며칠 전 한국정부에서 우리의 한약재를 사주겠다니 무엇보다 반갑다. 덕수궁 앞길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이따금 불평을 듣기도 한다. 우리 때문에 길거리가 지저분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특히 나이들어서 뭣 때문에 고국까지 와 이같은 고생을 하느냐며 따질 때는 섭섭한 생각까지 든다. 집사람(60)과 같이 와 현재 여관에서 묵고 있다. 하루 여관비와 식비는 1만원이면 된다. 다음 달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정부에서 빨리 우리 물건을 사주었으면 좋겠다. ○유학경비 마련하려… 밤엔 악보 그려/변은숙(25ㆍ심양대학 음대 졸업) 일본에 유학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약을 갖고 왔다. 여기에 온 교포들 가운데 대부분이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나는 중국에서도 발레단의 피아노 연주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음악공부를 더 깊이 하고 싶었다. 마침 경북 봉화가 고향인 부모가 이웃집에서 3만원(한화 5백만원)을 빌려 한약을 사주면서 한국에 가 팔아 일본유학경비로 쓰라고 해 갖고 왔다. 그러나 인천항에 도착하자마자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한약에 대한 관세가 너무 비쌌다. 할수없이 절반 정도는 세관에 맡기고 절반만 찾아갖고 왔다. 서울에 먼저 와 있던 남동생(23ㆍ악사)이 용산구 이태원동에 계약금 2백만원에 월 20만원을 주기로 하고 얻은 조그만 방에 있다. 중국에서 부모가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긴 했으나 말하기는 서툴다. 한 달 동안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한국말을 익혀 지금은 어느 정도 통한다. 저녁 때는 동생의 주선으로 드럼연주단에 악보를 그려주고 1만∼3만원씩 벌고 있다. 첫날은 2만원,둘째날은 4만원어치를 팔았다. 한약이 잘 팔리지 않아 서툰 한글이지만 약명과 효용 등을 자세히 써서 내걸었다. 어떤 짓궂은 남자 손님들은 「남성정력에 좋음」이라고 써붙인 「남성 609」를 들고 효용을 실험해봤느냐고 자꾸 물어와 얼굴이 뜨겁기도 했다.
  • 「마르크스ㆍ고르비」의 평화/이재근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오늘의 세계에서 혜성과 같은 사나이다. 국제 정치무대의 스타플레이어이다. 안으로는 개혁과 개방,밖으로는 세계의 화해를 논하더니 하루아침에 노벨 평화상마저 거머쥐었다. 고르비의 노벨평화상을 서방측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부시 미 대통령은 『세계의 평화적 변혁을 추진한 용감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고 통일독일의 콜 총리는 『동서관계의 근본적 개선,유럽대륙분단의 종식,군축,지역분쟁해결에 기여한 공로』라고 찬양했다.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세계와 유럽의 화해 및 민주화 성공에 있어 그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했다. 이밖에 「일­소관계의 근본적 개척자」(가이후 일본총리),「지당한 일」(대처 영국수상),「소련 및 동구의 사회변혁 촉진 공로」(하벨 체코대통령)라는 찬사가 나왔다. 정작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쪽은 소련 내부였다. 그동안 소련인들 사이에는 고르비의 개혁정책이 너무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며 위선적이라고 하여 불만ㆍ불신의 소리가 높아온 터였다. 평화주의자,개혁의 기수,이 시대의영웅 고르비의 얼굴은 그래서 하나가 아니다. 언젠가 소련과학아카데미는 투표를 통해 고르비가 「레닌이후 최대의 인물」이라는데 동의했다. 반면 전소련 최고회의의장 그로미코(작고)는 고르비를 평하되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라고 했다. 두얼굴의 사나이 고르비의 관상은 어떤가. 우선 독일의 빌트지가 소개한 그것은 서양쪽의 「눈」이 될 것이다. 훤한 이마(대머리부분을 포함해서)는 지성과 의지력을,날카로운 눈은 탁월한 기억력,눈과 눈 사이의 깊은 골은 냉엄한 현실주의,듬직한 귓바퀴는 집요한 권력에의 의지를 나타낸다. 동양쪽의 고르비관상은 좀더 감칠 맛이 있다. 관상가 C씨에 의하면 고르비는 한세기에 한두사람 나올까 말까한 극귀의 상을 가졌다. 눈ㆍ코ㆍ귀 등 오관은 물론 두상과 체상전체가 둥글다. 북방계에 많은 정수체상으로서 마치 공이 비탈길을 굴러내려가듯 머물지 못하는 성격이다. 대단한 정력가이다. 게다가 아주 멀고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위력적인 눈은 세상사를 바로 볼줄 안다. 코끝이 굵고 둥글며 산근보다 코허리부위가 더 잘룩한 것은 코믹한 면도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쇼맨십도 풍부해서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설명이다. 결론컨대 C씨는 『물은 흐르는게 자연법칙이다. 계곡을 타고 강을 이루어 평화의 바다에 이르는 날이 멀지않다』고 했다. 고르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언했다고 봐줄 수 있다. 관상얘기가 좀 길어졌다. 어쨌든 고르비가 탁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견해들이다. 소련은 강대국이다. 마르크스­레닌이념으로 무장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종주국이다. 그 소련에 대한 침략이나 도발 또는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팽창적인 패권주의는 용납되지 않는다. 소련자신에 대한 보위와 같은 차원에서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혁명 70여년을 일관해온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의 세계전략이었다. 80년대초 브레즈네프 독트린개념이 담고 있는 것도 이것이었다. 마르크스­레닌은 전쟁이전에 폭력을 거론했다. 그들에 있어서는 폭력이야말로 피착취자가 착취자를 타도하는 수단으로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관계는 착취자의 폭력과 피착취자의 폭력사이의 계급투쟁이며 그것의 확대가 전쟁이다. 마르크스­레닌은 전쟁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에 있어서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제국주의가 사회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침략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확신에 따른 이른바 「전쟁불가피론」이다.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완전한 사회주의 아래서는 전쟁이 없어지고 따라서 군대의 필요성도 없어진다. 마르크스주의의 그러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주의 소련은 적대하는 진영에 포위된 사회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현저한 군국화의 길을 걸어온게 사실이었다. 그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희대의 인물 고르비가 천명한 페레스트로이카의 최대의 배경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적 사회주의가 막다른 곳에 왔고 소련체제와 그 이데올로기의 권위가 소련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렇게 보면 고르비의 개혁과 평화는 어디까지나 권력유지와 국제전략적 필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고르비는 누가 뭐래도 마르크스­레닌의 후예이다. 그런 고르비가 무엄하게도 「마약」과 같은 자본주의와 타협하여 시장경제ㆍ사유재산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레닌에의 반역이지만 그 후예일 수 밖에 없는 고르비가 노벨상을 그것도 평화상을 탄 것이다. 무덤속의 마르크스와 레닌,스탈린 세사람이 만난다면 그들 후예 고르비의 행각을 놓고 무슨 의논들을 할 것인가.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고르비의 정책이념과 성과가 세계평화에 기여했다고 인정되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앞날에 있다. 그 앞에는 발트3국 등의 분리독립문제,소수민족의 자치요구,경제재건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고르비가 국내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으로 회귀하는 사태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본의아니게도 평화파괴나 전쟁도발의 결과가 되지말란 법도 없다. 물론 상상이고 기우이지만 그런 상상해봐서 무익한 것은 없다. 소련과의 수교이후 새 관계를정립해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고르바초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지켜보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어서 생각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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