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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의 변화(사설)

    이등휘 대만총통은 20일의 제8대 총통 취임연설을 통해 중국을 반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초헌법적인 전시비상조치법의 폐기를 선언하고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거부하는 「3불정책」의 포기를 분명히 밝히는 한편 20여명의 정치범 사면ㆍ복권과 함께 과감한 민주화개혁을 약속했다. 한마디로 대만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선언이요 조치들이라 하겠다. 2년내의 민주화 헌법개정까지 약속하고 있는 이번 조치는 우리의 6ㆍ29민주화선언 및 7ㆍ7대북선언을 종합한 것 같은 인상으로 대만의 민주화는 물론 중국과의 관계 내지는 통일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전시비상조치법으로 헌법에 우선하는 사실상의 헌법역할을 해온 「동원감시기임시조관」(공산반란진압동원령)의 폐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당이 대만으로 패주하기 1년전인 47년 선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이 법은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헌법을 포함,일체의 민주적 기본권리를 유보시키는 특별법으로 그동안 대만의 대륙정책과 국내정치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 이 법의 폐기는 중국 공산정부에 대한 42년만의 실체 공식인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과의 전쟁상태 공식 종결선언으로 대만의 대륙정책을 보다 자유롭게 하고 전쟁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제반 민주화개혁을 가능케 하는 법적 기반의 마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집권2기를 맞는 이총통 지도하의 대만은 국내적으로 민주화를 가속시켜 나가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보다 현실적인 바탕위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을 시도해 나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도 그동안 경제적 성공에 수반되는 민주화 욕구분출의 국내 정치적 압력을 받아왔으며 국제적으로는 거대한 중국의 존재에 대한 세계 각국의 현실인정 대세로 고립을 면치 못해왔다. 최근에는 민주화개혁이 공산권을 휩쓸 정도의 세계적 추세로 발전하게 된 시대적 상황의 변화 등이 대만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으며 이총통은 이런 변화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나선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총통의 이같은 새로운 변화의 의지가 앞으로 어떻게 구체화되고 발전해 나가며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는 천안문사태이후 개혁이 중단된 중국의 정치ㆍ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총통으로서는 중국의 민주화개혁 재개 역시 불가피한 추세로 믿고 있을 것이 틀림없으며 그럴 경우 이번 조치는 중국통일의 과정에서 대만의 국민당정부로 하여금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줄 중요한 포석이 될지도 모른다. 전후 4개의 분단국중 베트남이 무력적화통일을 달성했다. 그 희생과 갈등 그리고 오늘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독일이 전후 최초의 민주화 평화통일을 달성해 가고 있다. 이제 아시아의 중국ㆍ대만과 남ㆍ북한만이 남아 있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 노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의 모델이 동일할 수는 없다. 베트남을 염두에 두고 독일ㆍ중국의 경우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름의 실현가능한 가장 바람직한 통일모델 개발의 노력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 대만,「3불정책」 포기 시사/대 중국 경제·문화교류도 제의

    ◎「주민동원 조례」 폐기등 개혁 추진/야당당수등 정치범 28명 사면/이등휘총통,취임사서 강조 【대북=우홍제특파원】 이등휘 대만 총통은 20일 임기 6년의 총통 취임식을 갖고 대만·중국간의 궁극적인 통일을 위한 1단계조치로 상호간 경제·문화 교류를 전면 개방하자고 제의하는 한편 국내 정치에 있어서 과감한 민주화 개혁조치의 일정을 제시했다. 그는 이날 「불접촉·불협상·불타협」등 대만측이 40년간 고수해온 이른바 대중국 3불정책의 폐기를 공개적으로 시사하는 가운데 양측간 호혜평등에 기초한 「통신 채널」 확립을 위한 3개항의 단서를 설정하는 한편 학술·문화·경제·통상·과학·기술교류를 완전히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 이 단서조항은 ▲북경당국이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를 촉진시키고 ▲아울러 대만에 대한 군사력사용을 포기하는 한편 ▲국제관계를 확대하려는 대만의 노력에 대한 간섭을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돼있다. 이같은 3개항의 단서조항은 중국이 사회주의와 절대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돼온 공산당의 절대적 지도력을 포함한 이른바 「4대 중요원칙」을 포기해야 한다는 대만정부의 종래 주장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총통은 또 지금까지 북경정권을 반란단체로 규정했던 「동원감난 시기의 임시조례」를 빠른 시일안에 완전폐기하겠다고 선언,앞으로 보다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대륙정책과 대만입법원에서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추진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 임시조례는 집권 국민당이 중국본토에서 공산당에 패배,대만으로 패주하기 1년전인 지난 48년에 장개석총통의 정권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만든 것으로 국민당의 중화민국에 대항하는 모택동공산당을 「모든 국민이 동원돼 진압을 당해야 마땅한 반란조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총통은 김문도와 마조도를 경제시범지구로 지정,대중국경제협력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대북 로이터 연합 특약】 대만의 이등휘총통은 20일 총통취임을 맞아 정치범 28명에 대해 특별사면·복권조치를 내렸다. 이에따라 허신랑 시명덕 등 10명이 24시간내로 석방되는데 대만 최대야당인 민진당의황신개당수등 이미 가석방된 18명과 함께 이들은 피선거권을 포함한 시민권을 회복하게 됐다. 이들은 지난 79년 미려도사건과 관련,내란선동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었다. 한편 군출신인 학백촌국방부장이 행정원장으로 지명된 데 항의하는 학생과 야당인사등 1만여명은 이날 3시간동안 가두행진을 벌이며 시위를 벌였다.
  • 안개정국속 「이등휘호」출범/대만총통 취임과 「항해기상도」

    ◎국민의 민주화 욕구 수렴등 과제 산적/당내 파벌싸움도 심각… 전도 불투명 장경국총통의 사망으로 지난 88년 이후 그의 잔여임기를 물려받았던 이등휘총통이 대만 안팎의 정세가 그 어느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20일 정식으로 임기 6년의 제8대 총통에 취임한다. 이총통은 최근들어 부쩍 고조되고 있는 대만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와 집권당인 국민당 내부의 파벌싸움,야당의 강력한 도전 등으로 그의 정치여정이 매우 순탄치 않을 것이란 평을 받고 있다. 또 사회ㆍ경제적인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압력도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대만의 안정과 번영을 꾀하기 위해 그가 풀어야 할 난제는 너무 많은 것 같다. 그가 당면하고 있는 시련가운데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집안 싸움을 종식시키는 일로 지적되고 있다. 대만 국민당 내부의 권력투쟁은 지난 3월 8대 정ㆍ부총통선거를 둘러싸고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현재 3개 계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이총통이 러닝메이트로 그의 비서실장 이원족을 지명한데대해 이환 행정원장을 대표로 하는 원로보수인사들이 기득권 상실을 우려해 크게 반발,비주류파를 만들어 별도의 후보를 내세우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총통의 설득으로 당시 소동은 가라앉았으나 최근엔 군부실력자 학백촌 국방장관(4성장군출신)이 차기 행정원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대만주민들은 『군의 정치개입이 민주화에 역행한다』며 날마다 거센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이총통에 대항했던 이환이 행정원장직에서 해임되는 것은 명백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비주류파측에선 이러한 주민시위에 편승,이총통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류ㆍ비주류 외에 얼마전 국민당의 젊은 혁신파인사들은 별도로 신국민당련선을 결정했으며 대북시 출신 입법위원으로 최다득표당선 경력을 자랑하는 조소강(41)이 이 단체를 이끌며 이총통에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40년 동안 일사불란했던 국민당이 이처럼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데 대해 관측통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치러야 할 진통으로 보기도 하지만 농학박사로 학자출신인 이총통의정국운용능력이 충분치 못한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도 대만은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지난 87년 계엄령해제 이후 범죄발생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TV에선 권총등 불법무기류 신고에 관한 프로를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치인ㆍ기업인에 대한 범죄단체의 협박ㆍ폭행사건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불안과 치안문제이외에 임금을 비롯한 원가상승 등으로 경제가 받고 있는 타격도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한편 이총통은 이러한 상황들에 대처하기 위해 오는 6월중 국정회의(비상시국대책회의)를 소집,각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종신직 대륙원로들을 3년이내에 모두 퇴진시키는 등 정치민주화를 가속화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각계각층 보수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빠른 시일안에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얼마전 이총통은 중국에 대해 정부대정부의 대화를 제시했다. 다시 말해 북경당국은 대만을중국의 일부로 보거나 지방정부로 취급하려 하지말고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측은 이러한 「1국2정부」제의는 대만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라며 즉각 거절했다. 대만의 대 중국투자는 통일문제와 큰 관계가 있다. 대만측은 7백억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대륙안에 경제력을 과시,앞으로의 통일논의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속셈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중국은 언젠가는 대만이 본토에 귀속될 것이므로 투자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에 맞서 대만의 대륙정책도 장기적인 것 같다. 국제정세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민주화는 필연적이며 제2의 천안문사건이 발생,강경보수적인 현 중국 지도층이 물러나고 대륙전체가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인식하게 될 때 통일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대북=우홍제특파원〉
  • 중국 「서안사건」의 주역 장학량 54년만에 “자유의 몸”

    ◎장개석을 감금,홍군회생에 기여/대만,연금 풀고 망백연개최 추진/중국과 관계개선 노린 유화제스처인듯 지나간 역사의 페이지속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장학량이 54년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게 됐다. 만주군벌이던 장은 중국대륙에서 장개석과 모택동에 의한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36년 12월7일 독전차 그를 만나기 위해 서안으로 온 장을 감금,국공합작을 통한 항일전선을 구축케 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한 인물. 당시 모의 홍군은 막 장정을 마친뒤여서 세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으며 장은 이러한 홍군에 대공세를 감행,완전 소탕하기 위해 국민당정부군산하 만주군지휘책임자인 장에게 공격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장학량은 그의 부친 장작림이 일본군에 의해 폭사한 원한 등으로 공산당이 내건 항일민족통일전선전략에 동조,장을 구금했고 이에 따라 괴멸직전에 놓였던 모택동의 홍군은 숨을 돌려 세력확장에 힘을 기울인 결과 대세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장은 그후 장개석에게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체포돼 1949년 국민당정부와 함께죄인의 몸으로 대만에 온뒤 줄곧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연금생활을 해왔던 것. 대만의 중국시보 17일자보도에 따르면 장학량은 오는 6월1일 대북시 원산호텔에서 90회 생일축하연회를 가질 예정이며 이 연회에는 이등휘총통을 비롯한 국민당 고위간부 등 2백여명이 참석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 신문은 「서안사건」이후 54년만에 장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사실은 국민당 정부가 그에게 특사의 혜택을 주는 것이며 앞으로 장은 기나긴 연금상태에서 풀려나 자유인으로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으로 끌려온 이후 그는 대북시 북투의 한 가옥에서 부인 조일적과 살고 있으며 생활비는 국민당에서 마련해 주고 있다. 이번 장의 90회 생일잔치를 위해 국민당측은 「장한경(장학량의 호)선생 9순경축위원회」까지 조직,요란스레 축하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관측통들은 오늘의 초라한 국민당정부를 있게 만든 장에 대한 대만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가 너무 연로해 더이상 연금의 필요성이 없는데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선 불필요한 구원을 간직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을 비롯,모택동과 서안사건의 중재를 맡았던 주은래 등 동시대의 관련인물들이 이미 타계한지 오래됐음에도 장이 90세를 맞아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 국군조직법 개정안 세미나… 이석복준장 주제발표

    ◎“현대전 수행위해 군제개선 불가피”/3군 통합전력 향상… 국방자원 관리에 효율적 국방부는 10일 하오 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여야정치인ㆍ언론인ㆍ학자 그리고 현역 및 예비역 장성 등 관련 인사 6백여명을 초청,「한반도 안보환경 전망 및 국군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상우교수(서강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차영구박사(국방연구원)는 『90년대 안보환경변화와 군구조개선』,이석복준장(국방부)이 『군구조개선의 필요성과 주요내용』 유재갑박사(국방대학원)가 『국군조직법 개정과 문민통제』,이승우교수(경원대)와 강경근교수(숭실대)가 『국군조직법개정과 합헌론』등의 주제로 발표를 했다. 합참 전략기획국 이석복준장의 주제발표내용을 요약한다. 국방부가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의 연구에 착수,한국의 장기적인 안보환경을 분석하고 우리환경에 맞는 군구조개편작업에 착수한 것은 88년 8월18일부터이다. 국방부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라는 대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전이 요구하고 있는 지휘반응의즉시성과 육ㆍ해ㆍ공군의 통합전력발휘를 보장하고 2천년대 태평양시대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통일위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른바 「8ㆍ18계획」을 입안하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각국의 군구조는 대략 자문형합참의장제ㆍ통제형합참의장제ㆍ합동군제ㆍ통합군제ㆍ단일군제 등 5개의 대표적 유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국의 군제는 문화적ㆍ정치적ㆍ역사적 배경과 전략환경ㆍ가상적군ㆍ국경의 형태ㆍ무기체계에 따라 해양국형과 대륙국형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서양문화권은 한 지휘관에게 권한을 집중시키지 않는 합동군제로 발전하고 동양문화권은 능률성을 추구하는 통합군제를 채택해 왔다. 현재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자문형 합참의장제는 1924년 영국에서 수상을 자문하기 위한 제도로 미국은 2차대전이 끝난 47년 채택했다가 58년 통제형 합참의장제로 개선하고 영국은 64년 육ㆍ해ㆍ공군 합동문제인 국방참모총장제로 발전시켰다. 공군이 독립하고 항공모함전단이 구성된 40년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밖에 없으며 대부분의 공산국가와 이스라엘ㆍ터키ㆍ대만 등의 나라에서는 지휘관 한 사람에게 군정ㆍ군령권이 모두 주어진 강력한 국방참모총장제도나 단일 참모총장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군장성과 학자ㆍ교수 등 40여명의 「8ㆍ18」 연구위원들은 전세계의 군구조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조사 연구한 결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반도국가인 우리의 현실에 맞는 군제로 육ㆍ해ㆍ공군 3군본부는 그대로 둔 통제형 합참의장제와 합동군제가 타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모델로서 이스라엘 서독 영국 미국 군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한국적 여건에 맞는 군제를 마련했다. 첫째,북한의 군사전력인 기습전과 우리의 짧은 전장을 고려할 때 전ㆍ평등체제를 별도로 유지했을때 전환기의 혼란은 전쟁의 승패와 직결됨으로 이스라엘과 미국과 같은 전ㆍ평시단일체제를 선택하고,둘째 국방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영국ㆍ서독과 같이 합참주도의 군사력 건설소요제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자원이 없는 우리현실에 유리하다고 보고,셋째 작전의 즉응성과 권력집중방지를 위해서는 미국처럼 3군의 작전부대를 합참에서 직접 지휘하되 군정권은 각 군총장이 행사케 함으로써 상호균형과 조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종 완성된 군제를 개괄해 보면 대통령과 국회에 책임을 지고 있는 국방장관이 군정ㆍ군령을 통괄하되 군정은 각군 총장을 통하여 행사하고 군령은 장관에게 군령분야를 보좌하는 합참의장을 통하여 행사하는 체제이다. 군구조가 개선되면 현대전이 요구하는 육ㆍ해ㆍ공군 통합전력이 발휘되며 국방자원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이룰 수 있는 요체가 된다. 1차대전까지의 전쟁양상은 지상군이 비교적 단순한 전력으로 승리하면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해상전도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항공기의 출현과 유도탄개발ㆍ전자수단의 무기화,원폭ㆍ수폭 등 무기체계의 발달로 육ㆍ해ㆍ공군 3군이 병립하고 각군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한편 전시에는 상호의존적ㆍ간섭적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현대전에서는지상군ㆍ해군ㆍ공군은 단일작전지휘관의 강력한 지휘통솔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연구는 국력의 신장과 함께 안보환경변화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2천년대 태평양시대 중심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민족사적 위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하는 데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재 새로운 군제도의 정착 소요기간을 4∼5년으로 고려할 때 한ㆍ미연합사령부 지휘체제안에 안정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국방자원관리의 효율화와 3군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 「하늘만큼 먼 나라」/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수년전 「하늘만큼 먼나라」라는 한편의 연극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극단 「산울림」이 대한민국연극제에 내놓았던 이 창작극은 그 예술성 이상의 감동을 남겼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 연극에는 백성희 조명남 전무송 박정자 이주실 등 우리 연극계의 뛰어난 배우들이 열연했고 임영웅씨의 연출솜씨 또한 훌륭했다. 그러나 불과 11명의 배우들이 비좁은 무대에서 엮어내는 연기력만으로 그 큰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하늘만큼…」은 그런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늘만큼 큰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이 극의 성공은 이산의 비극성이 갖는 극적 진실때문이었다. 분단과 이산은 40년,50년이 지나도 계기만 되면 한동안 잊고 살던 우리앞에 태연히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는 그 처절한 생채기를 다시 드러내 놓는다. 최근 일본 삿포로에서 만난 한필성남매의 상봉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오누이의 오열은 이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분단과 이산의 문제는 어찌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흐른다고 소멸하거나,더구나 없었던거로 해둘 성질의 것은 더욱 아니다. 이 극에서 황사장의 비극이 바로 그런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조강지처이고 나는 어머니의 외아들이었는데 이제와서 정숙하기만한 어머니가 재혼을 한 여자로,얼토당토 않게 내게는 웬 아버지 다른 형이 있어야 하느냐고 발버둥을 치지만 진실은 진실대로 남는다. 이산은 목이메어 헤어지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2세,3세들의 문제가 돼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이 공연될 때는 남북의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각기 「먼 나라」를 상호방문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이 극은 더 큰 아픔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사는 일중에 만나고 헤어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마음에 가식이 있으면 이 극에서처럼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한 어머니의 자식들이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두 줄로 나란히 갈라서 있는 그런 모습으로는 재회의 뜻이 없다. 그것은 이산보다 더 큰 비극일지 모른다. 이 극이 공연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5년전이다. 5년전과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동안 세계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은 벌써 옛날의 얘기가 돼 버렸다. 두달도 채 남지 않은 오는 7월2일까지 동서간에는 경제통합이 이루어지고 통일작업이 내년안에 마무리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지난해 1년동안 대만에서 본토를 다녀온 사람은 무려 37여만명에 이른다. 89년 대만과 중국의 교역량이 37억달러. 작년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은 대외개방을 억제하면서 다른 외국의 투자를 막으면서도 대만의 대본토 투자에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89년 대만의 중국투자액이 10억달러 수준. 지난달 24일 대만의 대기업 포모사는 7백억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단지를 본토에 건설키로 했다. 같은날 대만은 본토와 민간대표부 상호교환을 제의했다. 통일이 무엇인가. 사람이 오가고 물자가 유통되면 통일이 아닌가. 대통령이 한사람이고 정부가 하나돼야만 통일 되는게 아니다. 그렇게 보면 통일 안된 나라는 우리 뿐인 셈이다. 1978년 초쯤으로 기억된다.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중국 통일문제에 관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UC버클리대의 스칼라피노교수,당시 미 CIA국장 터너,그밖에 중국계의 미국학자들이 대거 참가한 호화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의 주제는 중국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스칼라피노 등 미국사람들은 한결같이 「무력통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중국계의 많은 학자들은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통일이 가능하다고 반론을 펴고 있었다. 그들의 논거는 중국에는 「중화」라는 문화적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에게는 그들의 주장이 생경하기만 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는 지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왜 안되는가」라는 얘기를 해보면 「6ㆍ25」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고 만다. 정말 그럴까. 중국은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내전을 겪었고 대만정부는 나라의 반쪽도 안되는 조그만 섬에 쫓겨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김일성이 변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만 변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과연 그래야 할까. 동독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던때 서독은 오래전 동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분단과 이산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요며칠 사이 『한반도분단의 책임이 있는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들이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뒤이어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에게 문제는 없는가도 살펴볼 일이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열려있는가 말이다. 우리의 「하늘만큼…」은 의외로 가까울 수도 있다.
  • 90년대 동북아의 정치기류 예진/일 전문가 특별기고

    ◎한반도정세 「한ㆍ소관계」를 축으로 진전/소 경제실리 앞세워 대한접근 가속화/중 동구변혁 여파,대북유대 강화주력/한­중,당분간 간접교류… 북한­소는 불협화음속에 지난 3월12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장춘의 길림성 사회과학원과 상해 평화발전연구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중국방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중국에는 2주일동안 체재하며 북경ㆍ장춘ㆍ연길ㆍ상해의 대학 및 연구소를 둘러 보았다. 최근의 소련ㆍ동구제국의 변화에 따라 세계에서는 동아시아의 군축문제 및 경제교류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보다 큰 파문속에 국제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견해를 가져왔다. 도쿄와 서울만을 왕복한데서야 어딘가 1990년대의 동아시아 국제흐름의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작년 1월부터 중국방문을 계획,이번에 실현을 본 것이다. 중국에서는 최근의 유럽정세의 변화가 아시아에 어떻게 파급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가. 한국과 소련의 관계를 중국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디까지 진전될것인가 등에 관해 중국의 학자들과 개인적으로 의견을 교환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중,한­소 접근에 느긋 중국학자와 의견교환을 했을때 느꼈던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로 중국은 대 한반도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1백년을 주기로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들이 중국의 외부에서 부터 「한반도 정세의 변화」라고 보는 것을 중국은 변화라고 보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는 이유이다. 두번째는 한국과 소련의 관계개선에 대해서이다. 소련이 한반도에의 영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소련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틀림없으나 소련의 한반도에의 적극자세가 그다지 중국에 있어 위협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문화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더욱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중국이며 한반도와의 교류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다라는 중국의 자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한ㆍ소관계개선에 관해서는 중국은 크로스관계의 진전이 한반도에 있어서 안정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ㆍ소관계와 병행해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한ㆍ중관계에 대해 중국의 학자들은 북한ㆍ중국관계를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많았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는 북한이며 그것은 변할 수 없다. 소련ㆍ동구의 변혁 이후 북한은 여전히 고립의 방향을 취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중국의 책임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중국은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중국은 한국과도 1백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으나 한국은 1주간 또는 2주간의 폭으로 한중관계를 개선해 정치적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임으로써 의견의 불일치가 생긴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따라서 한ㆍ중 관계가 때로는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은 「북한과의 우호제일,한국과의 간접교류 추진」이라는 원칙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바로는 한ㆍ중교류에는 중국은 4개의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관계를 맺지 않고 경제적 교류는 크게 늘린다. 스포츠교류도 계속하지만 문화면에서는 간접교류에 멈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ㆍ중간의 중요한 연구소의 자매관계 결연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4원칙은 이전부터 있어왔으며 당분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넷째로 북한체제의 혼란 및 불안정설에는 중국학자는 부정적이었다. 한국내의 김일성체제의 보도는 홍콩의 등소평보도와 마찬가지로 흥미본위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상으로 중국의 인상과 중국의 한반도에의 견해를 소개했으나 이제부터 내자신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한ㆍ소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한ㆍ소양국의 급속한 접근이다. 국교수립은 시간문제로 되어 있으며 그 속도는 예상이상이었다. 최근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자세는 4개의 단계로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지난 84년5월의 김일성주석의 소련방문으로부터 86년10월의 방소까지의 시기,소련은 군사협력을 중심으로 북한에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86년10월부터 88년9월의 서울 올림픽때까지는 소련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했던 시기이다. 88년9월부터 89년9월 서울올림픽 1주년까지 소련은 북한을 지지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진척시켰다. 그러나 때로는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서울올림픽 참가등)을 취해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취했다. 북한에 대한 「한국카드」를 소련이 사용했던 시기이다. 89년9월 이후 고르바초프 정권의 유력한 브레인들이 잇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전시켜,때로는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소ㆍ북한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담한 한반도정책을 편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지난 9월 이후 북한ㆍ소련관계에의 배려보다 한ㆍ소관계에의 배려를 우선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국내정세의 변화에 의해 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생긴 소련이 한국의 협력으로 시베리아 개발을 진척시키고 무역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대일관계 타결을 위해서도 긴밀한 한ㆍ소관계는 소련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중관계 개선 한계 둘째,한ㆍ중관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있다. 이붕총리는 88년3월 이후 3차례에 걸친 정치활동보고를 했다. 88년3월에는 『북한은 중국의 친밀한 인국이며,중국은 북한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합리적 주장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89년3월에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정부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민간의 경제무역은 하고 있다』며 한국과의 경제관계에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와 함께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했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과의 간접교류에 의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의 보고에서는 이붕총리가 한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최근 1년 중국과 많은 국가 특히 주변의 인국과의 관계는 한층 더 개선,강화됐다. 중국과 북한의우의는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그 표현은 지난해 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중국의 전기침 외교부장이 3월말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만과 한반도의 통일은 동일 방식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이 한반도는 2개의 정부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는 차라리 다른 점이 많다. 같이 분단된 지역이라 하더라도 중국으로 본다면 대만은 국내이며 한반도는 외국이다. 한반도에는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으며 한중간접교섭의 필요는 중국도 인정하고 있는 터이다. 또 한반도에는 소련의 영향이 있으며,주한미군이 있어 한반도의 긴장완화책과 주한미군의 유지를 둘러싸고는 주변 제국사이의 의견이 엇갈려 있는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대만과는 다른 복잡한 국제적 이해가 교차한다. 중국 동북부에 접하는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대만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중국에 있어서 대북한관계가 갖는 가치는 중국ㆍ대만관계가 갖는 가치와는 이질적인 것이며,중국에 있어서 북한ㆍ중국관계의유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연방제 제안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통일방식은 대만문제해결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이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차라리 지금까지의 정책의 확인이다. 북한에 있어서의 중국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며 중국자신도 북한에 대한 역할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0년대초의 중ㆍ북한관계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북한에 쇼크요법 셋째로 소련ㆍ북한관계이다. 소련은 북한에 대해 쇼크요법을 시험중이며,그 때문에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다소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과 소련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당장 앞으로 소련의 대북한 무기공급 템포는 둔화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접근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동구제국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소ㆍ북한관계는 표면상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수면하에서는 북한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불협화음이 나올 것이다. 네번째로 북한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올 들어서 부터 북한에서는 김정일비서의 신격화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의 문헌을 주석의 것과 동격으로 학습하게 된 것.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지의 혁명사적화 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 소련ㆍ동구에 파견된 유학생의 귀환명령 및 동구제국에의 비판을 보면 북한은 더 한층 폐쇄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북한에 있어서는 체제를 온존하는 길이라고 지도부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함에 따라 한국에 대해 우위를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마침내 북한이 한국에 대해 양보함으로써 정책전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에 남북대화는 「통일과 긴장완화」라는 총론에서는 일치하지만 각론에 이르면 대화가 중단돼 버리고 만다. 1990년대는 한반도에서는 한ㆍ소관계의 진전을 축으로 일부에서는 냉전구조를 남겨두면서 복잡한 정치적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케사다 히데시
  • 착실한 통독행보와 한반도(사설)

    미리 준비된 계획표대로 착착 진행되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독일통일의 행보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한마디로 부럽고 착잡하기만 하다. 불과 6개월전만해도 상상키 힘들었던 조기통독은 지금 확고부동한 눈앞의 현실로 실현되어 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분단상황에는 이렇다할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순조로운 통독의 행보를 지켜보며 한반도의 상황을 다시 한번 냉철히 반성하고 재검토해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기 통일의 달성을 위한 동ㆍ서독의 노력은 12일 자유총선에 의해 선출된 비공산 동독정부의 출범과 동독정부를 구성하는 5개 정당의 통일을 위한 「정부계약」합의로 본궤도에 진입했다. 새 동독정부의 「정부계약」은 통일방식의 경우 동독이 분단이전의 5개 주로 재편,서독연방에 가입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는 서독기본법(헌법) 23조에 따르기로 하고 통일 독일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잔류케 하며 양독통화의 환율은 1대1의 환율로 하는 한편 오는 7월1일까지 사회ㆍ경제통합을 달성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통일이라는 서독정부의 기본방식에 새 동독정부가 동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독과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부분은 마르크화의 환율부분으로 서독정부는 서독마르크의 대동독 마르크환율을 1대2로 할 것을 고집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협상을 통한 정치적 타결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일 독일의 나토 잔류문제도 반대하고 있는 소련이 잠정적인 나토,바르샤바 동시 잔류안을 내는등 타협의 여지를 보이고 있어 해결책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며 장애물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 동ㆍ서독은 부활절 휴가가 끝나는 17일부터 본격적인 통일협상에 들어간다. 우선 실무급 협상을 거쳐 23일부터 1주일간 동ㆍ서독총리,외무장관회담이 이루어지며 이 자리에서 「통화통합,경제ㆍ사회공동체 창설에 관한 조약」의 최종 초안이 마련되고 2개월내에 조인해 7월1일까지 1단계 통일의 사회ㆍ경제통합이 달성된다. 이와 병행해서 4월 말부터 통독을 위한 전승 4국과 동ㆍ서독대표간의 이른바 「2플러스4」회담이 진행된다. 12월엔 서독국민이 총선을 통해 통일문제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되며 콜 서독총리의 예상대로라면 내년 후반에 동ㆍ서양독 자유총선이 실시되어 통일 독일의회가 발족되고 완전통일을 달성한다. 동ㆍ서독지도자들이 구상하고 국민들이 기대하는 통일의 시간표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돌발사태가 없는 한 그런 수순으로 전후 최대의 국제정치적 사건이 될 독일통일이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고 보는 것이 많은 관측통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독일인들은 그것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특히 서독은 헌법의 경우 등에서 보는 것 처럼 분단이후 줄곧 통일에 대비하고 모든 문제를 통일의 시각에서 처리하면서 기회를 기다려 왔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동유럽의 대변혁,통일을 저해하던 냉전질서의 붕괴라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때 모든 것을 총동원한 신속한 움직임으로 통일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독일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면 그것은 동시에 한반도 통일의 달성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ㆍ서독과 남ㆍ북한의 분단은 모두 동ㆍ서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그리고 냉전의 종결로 분단이 해소되어야 한다면 한반도가 먼저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상황은 이렇다할 어떤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처한 현실과 상황이 다르다면 적어도 통일의 토대만이라도 마련되어야 할 기회가 아닌가. 그 전제조건이 될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필요하다면 강요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기회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정쟁같은 일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중국,한반도 통일정책 변화 시사/외교부장

    ◎“중국식 통일방식 따를 필요 없다”/「북한 중심의 통일」 지지서 탈피 【홍콩 연합】 중국 외교부장 전기침은 28일 중국대륙과 대만이 조만간 통일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ㆍ북한도 조속히 통일되어야 하지만 남ㆍ북한 통일방식이 반드시 중국 통일방식 처럼 동일방식 이거나 동일한 상황하에 진행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중국계 신문 대공보와 문회보가 29일 보도했다. 전외교부장의 이같은 발언은 중국의 통일이 중국대륙(중공)을 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하지만 남ㆍ북한의 통일은 반드시 북한을 중심으로 통일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홍콩의 관측통들은 풀이하고 있다. 전은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3차회의가 마련한 내외신기자 회견에서 중국의 한 기자로 부터 동ㆍ서독이 이미 통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남ㆍ북한 그리고 중국의 통일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대답 했다고 대공보와 명보 등이 전했다. 그는 또 중국내 인권문제 등을 이유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최혜국 대우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 일부 미의원들을 비난하면서 만일 이같은 최혜국 대우가 취소된다면 중미관계는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강택민의 「평양나들이」 2박3일

    ◎중국ㆍ북한,“사회주의 공동보조”재확인/북,「등소평식 권력승계」지지 요청한듯/「한ㆍ중 경제교류」엔 미묘한 입장차이/「한반도」문제 집중논의… 중국의 유연한 대한관 표출 강택민 중국공산당총서기의 북한방문은 지난해 11월 김일성의 비밀북경방문에 대한 의례적인 답방의 형식을 띤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강택민총서기와 김일성과의 3차례에 걸친 공식회담에도 불구하고 회담에 따른 구체적인 합의사항이 공개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제까지 알려진 내외신보도를 종합할때 강총서기와 김일성은 이번 만남에서 ▲공산권의 변혁에 따른 공동대처방안 ▲한ㆍ중국관계를 비롯한 한반도문제 ▲북한의 권력세습문제 등을 거론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15일 첫 회담후 열린 강택민총서기의 방북환영리셉션에서 김일성이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공동위업수행에서 중국인민과 어깨걸고 함께 싸워나갈 것』임을 역설하고,강총서기 역시 『추호의 동요도 없이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 나갈 것』을 강조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은 소련 및 동구공산국가들의 개혁과 관계없이 정치개혁을 거부하는 한편 아시아적 사회주의노선을 공동으로 구축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통일 연수원 윤병익교수는 『강총서기와 김일성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과 중국이 소련ㆍ동구에 이어 아시아의 몽고에까지 파급된 정치개혁을 거부한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중국ㆍ북한ㆍ베트남이 연계해 아시아형공산주의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중국이 대외개방정책과 경제체제개혁을 거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 뿐아니라 북한역시 84년 합영법도입이래 시도해온 경제적 대외개방정책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도흥렬교수(충북대)는 『북한이 50만명의 주민을 동원,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펼치면서 강총서기를 최고의 국빈대접을 한 것은 북한이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압력에 독자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힘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김일성은 강총서기와의 이번 회담에서 중국과의동지적 유대를 일층 강화,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의도에 따른 계획적 개방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고 이런 측면에서 이번 회담은 소기의 목적을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도교수는 『김일성이 2차회담에서 강총서기에게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작업에 관해 설명하고 당과 정부가 경제건설을 더욱 강력히 추진할 것을 밝힌 것은 개혁을 하되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면서 「우리식대로 하겠다」는 자신의 방침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강총서기가 김정일에 대한 권력세습을 승인하는 대가로 양국간의 단결과 우호를 가일층 강화하는 문제가 중점 논의됐을 것』이라는 홍콩의 성도일보의 보도와 강총서기가 자신의 방문목적을 김일성이외의 다른 당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사실,김정일과 강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 등을 들어 강총서기의 이번 방문이 김정일세습체제에 대한 중국의 보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프랑스 르몽드지의논평에도 불구하고 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어 이문제가 어느정도 비중을 두고 다뤄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도흥렬교수는 『북한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는 기존의 수령론을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때 김정일의 4월 승계설은 설득력이 있으며 그럴 경우 현재 중국에 편향되어 있는 김일성이 등소평식의 권력승계 모델을 뒤따르려 할 것이고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그 의사를 강총서기에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병익교수는 『북한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이나 서구 정치학적인 시각에서 볼때 김정일의 권력승계설이 설득력은 있으나 이를 단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나 근거가 없다』며 이번 강택민의 방북회담에서 김일성­김정일권력승계문제가 과연 논의됐는지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택민총서기의 방북중 한ㆍ중관계등 한반도문제는 예상대로 심도있게 거론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것을보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한국과 정치적인 교류,더 나아가 국교수립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보이나 경제교류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강택민은 주한미군철수,남ㆍ북한과 미국과의 3자회담지지등 북한의 통일방안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명했으나 김일성의 『남조선인민은 반미ㆍ자주화ㆍ반파시스트투쟁을 용감히 전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북한의 고려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해서도 『북한의 많은 합리적 주장과 제안을 지지한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유연한 대한관을 표명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김창순씨(북한연구소이사장)는 강총서기가 밝힌 3자회담개최촉구,주한미군철수주장 등은 중국이나 북한으로 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가 북한 및 대만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2개의 한국을 인정하는 선까지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도 오는 10월 북경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국과 경제ㆍ문화ㆍ체육 등의 교류를 강화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성을설명하고 이의 양해를 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합동군제 법안」 난항/여야 논쟁의 시각차 “중계”

    ◎문민 통치 저해 요소 전혀 없다 이 국방/군권 1인 집중ㆍ정치 개입 우려 야 의원/“김대중 총재 방북문제 정부 입장은” 외무부 ▷국방위◁ ○…현행의 육ㆍ해ㆍ공 3군본부와는 별도로 3군을 통합지휘하는 작전권을 갖는 국군참모총장제의 신설을 골자로 하는 합동군제로의 군구조개편문제(일명 8ㆍ18계획)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여야간 최대 쟁점이 되고있다. 특히 이 국군조직개정은 노태우대통령이 직접 오는 7월1일로 합동군의 창설을 목표로 못박고 금번 회기내 처리를 누차 강조한 반면 평민당 김대중총재는 국회대표연설등 기회있을 때마다 반대의사를 피력해 표결처리 강행시 여야간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합의 통과는 여권이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3당통합 이후 내각제나 이원집정제로의 정계개편에 대비해 문민통제로부터 군권을 배제시키려는 발상이라는 주장을 불식시키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한 자주적 군사지휘체제의 구축으로 「한국방위의 한국화」의 일환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귀착될 듯하다. 8일 국방위에서 이상훈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에 따른 작전지휘권 인수와 유사시 육ㆍ해ㆍ공 3군의 통합전력의 극대화를 위해 국방참모총장제의 신설을 골자로 한 국군조직법 개정이 불가피함을 역설. 이에 대해 평민당의원들은 ▲군의 정치개입 가능성 증대로 인한 문민통치의 붕괴 ▲육ㆍ해ㆍ공 3군의 균형발전 저해 ▲위헌시비 가능성 등을 들어 이번 회기내 통과를 반대하고 올 정기국회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제의. 권노갑의원(평민)은 『군부의 정치개입으로 군사독재의 암흑시대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군권을 국방참모총장 1인에게 집중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군구조개편은 또다시 군의 정치개입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며 국회차원의 공청회 개최를 제안. 이에 대해 이국방장관은 『국방참모총장제의 신설로 문민통제의 원칙이 저해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으나 국군조직법의 개정으로 헌법ㆍ정부조직법상의 문민통치를 위한 법률적 제도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반박하고 『성숙한 국민의식과 단련된 시민문화의 형성은 군의 정치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군도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 황명수의원(민자)은 3당통합전 민주당이 합동군제에 반대했던 이유로 ▲남북 평화무드 저해 우려 ▲미군철수를 기정 사실화하는등 대미관계의 균열 ▲5공청산도 안된 상황에서의 군의 정치개입 가능성 등이었다고 지적하고 이제 현시점에서는 이들 반대사유가 모두 해소됐다고 주장. 황의원은 『전세계가 다 변하는데도 김일성은 안 변하는 마당에 우리도 북측의 속전속결 전략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92년까지 주한미군 감축안이 구체적으로 발표됐기 때문에 미국측에 자극을 줄 우려가 없고 ▲5공청산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이 된 현시점에서 국방참모총장에 군령권을 부여하더라고 군의 정치개입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 정웅ㆍ권노갑의원 등 평민당측은 다시 국방참모총장제가 군정과 군령을 이원화해 군정권과 군령권을 일원주의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함으로써 군구조개편안을 둘러싼 논쟁은 「법리논쟁」으로 비화. 이국방장관은 이에 대해 『군정ㆍ군령이 이원화 됐다함은 대만이나 터키와 같이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을 군령계선에서 제외시켜 직접 국군참모총장을 통해 군령권을 행사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라면서 개정될 조직법에 따르면 국방장관이 국방참모총장의 군령권과 각군 참모총장의 군정권을 통할하게 돼 있다고 설명. 한편 야당의원 뿐만 아니라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종곤의원(민자) 등 일부 여당의원들도 국방참모본부의 신설로 육군우위체제가 심화돼 3군의 균형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 특히 이같은 우려에 대해 과거 민주ㆍ공화당시절 똑같은 사유로 군구조개편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공군참모총장 출신인 민자당의 김성룡ㆍ옥만호의원 등도 내심 공감. 이장관도 이 점을 인식했음인지 『국참본부의 육ㆍ해ㆍ공군 편성비율을 현재의 8대1대1에서 2대1대1 수준으로 대폭 개선하도록 직제령에 반영할 것』이라면서 『국방참모총장직도 육ㆍ해ㆍ공군 어느 군에서도 임명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국방참모총장과 차장 2인은 군을 달리하게 함으로써 각군의 전문성을 보장하겠다』며「정공법」으로 대응. 여12,무소속을 포함해 야5로 구성된 이날 국방위에서 야당측은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이번 회기내 통과반대 의지를 과시하려는 듯 잦은 의사진행발언과 필리버스터성 질의로 응수해 한차례 정회. ▷외무ㆍ통일위◁ ○…외무부에 대한 정책질의에서 평민당측이 『여대야소가 된 지금에도 정부의 초당외교 방침은 유효하냐』면서 앞으로 자신들의 대북방접촉에 대해 정부의 사전보장을 얻어내려고 시도하는 모습. 최호중외무장관을 상대로 일문일답에 나선 조순승의원(평민)은 『평민당총재가 야당으로서 외교에 도움을 주기 위해 평양에 가겠다고 할때 외무부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고 묻자 최장관은 『여건과 상황에 따라 다각도로 검토해 볼 문제이고 정당인이 가는 것은 의견교환이지 교섭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바람직하다고 보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고 답변.
  • 6공화국 2년… 경제적 과제/송기철 고대교수ㆍ경제학(특별기고)

    ◎경쟁력ㆍ저축ㆍ투자ㆍ노동의 「4고정책」 긴요/「제2도약」으로 통일ㆍ민주화 기반 조성/국민ㆍ기업에 용기와 자신감 부축해야 지난 2월 25일은 노태우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제 제6공화국도 3년째로 접어들고 앞으로 3년은 열심히 일하면서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할 중요한 잔여임기일 뿐만 아니라 90년대를 이어 21세기 범태평양시대의 한 주인공으로서 선진국으로의 재도약을 위한 기반다짐을 해야 할 아주 중요한 고비의 시기로 생각된다. ○앞으로 3년이 고비 돌이켜 보건대 지난 2년은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지루한 5공청산의 시기였었다. 사람에 따라서 미진한 느낌을 갖는 경우도 없지 않겠으나 일단은 끝난 일,이제야말로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3년 평화통일의 큰 길을 위해서 안팎으로 외교ㆍ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며 우리의 각종 문화를 높이고 균형잡힌 복지 경제사회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6공 잔여기간 사이에 정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90년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통일,민주주의 정착,외교안보체제 강화,균형적 사회발전과 각종문화 향상 이들 모두는 경제의 뒷받침없이는 원활하게 추진할 수 없으며 그 기반이 취약화되므로 경제의 제2도약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경제는 62년이후 국민 모두가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는 국민적 합의하에 눈물겨운 피와 땀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도약을 이루어 86년이후 88년까지 우리 경제는 「마의 삼각선」이란 12%이상의 고도성장,1백42억달러까지 이른 경상수지 흑자,그리고 1∼4%이내의 물가안정과 고용증대등을 균형있게 풀어 나가 「한국인이 몰려온다」 또는 「제2의 일본」이라든가 「일본을 뛰어넘는다」든가 하는 찬사와 질시까지 받게끔 되었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 좋던 우리 경제가 민주화 선언 이후의 무궤도적인 정치혼란과 사회불안 등으로 국민들의 기강이 해이해져서 어렵게 이루어 놓은 경제기반이 흔들려89년에는 반감된 경제성장,경상수지 흑자의 대폭적인 감소 그리고 피부물가의 앙등등 우리경제는 또다시 마의 삼각선에 휘말려 저성장하의 고물가란 스태그플레이션 징후하에 자칫하면 경상수지 적자의 재발이란 축소재생산 마저 보이고 있는 안타까운 국면을 보이고 있어 「대한민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야유까지 받고있다. 왜 우리가 이런 꼴이 되었는가하고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모두가 “우리때문” 문제는 이제 90년대에 들어 이 서글픔을 타파하고 또다시 경제의 재도약을 이룩하며 범태평양시대를 맞아 평화통일과 진정한 민주화의 기반을 굳건히 하는 일이 긴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신바람을 불어넣는 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계대전 패망후 실의에 빠져 엉망이 된 독일 국민들에게 『건물이나 기계가 파괴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영토와 사람을 잃은 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자신감과 용기를 잃는 것이 가장 큰 손실이고 문제』라면서 독일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으려고 힘쓴 역사상의 선례에서 제2경제 도약의 기본을 찾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고래로 「신바람」이 나야 제대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제1경제 도약의 바탕이 되었고 또 88 올림픽에서의 놀라운 성과가 바로 신바람적 용기와 자신감에서 이룩된 것이었음을 회상할 수 있다. 국민에게는 앞으로의 밝고 보람된 비전을,기업가에게는 투자의욕을,공무원에게는 공복으로서의 시대적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앞으로 제6공화국이 해야할 근본적 과제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모두 「너 때문이야」일색이다. 우리가 어려워진 것이 왜 「너 때문이야」만이겠는가. 차라리 「나 때문이야」 「우리 때문이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에서도 미국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미국 자신때문이 아니라 한국때문이요 일본 때문이며 대만 때문으로,「너 때문이야」로 돌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을 걱정하는 진짜 지성은 그 원인을 미국인 자신에게서 찾고 그 회생책으로 4고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고경쟁력,둘째는 고저축,셋째는 고투자,넷째는 고노동의 4고정책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한국에도 그대로 해당이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인류에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우리나라만이 생산하면서 그것도 값이 싸면서도 좋은 것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해야 할 우리국가,우리산업,우리기업,우리상품의 경쟁력이 최근 몇년 사이에 뚝 떨어져 수출이 많이 줄어들었고 이에따라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경쟁력이 떨어졌는가. 신제품 개발과 기술개발이 소홀했으며 종전의 상품이 노임상승 등으로 비싼 상품이 되었고 상승된 상품가격에 상응할만큼 품질이 좋아지지 않아 「값비싸고 나쁜」물건으로 전락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왕성한 생산투자를 해야 하는데 투자 분위기가 식어가고 있으며 투자를 하더라도 비생산적인 재테크나 부동산투자만 하니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일부 사장들 사이에 나도는 유행어 『아직도 제조기업의사장을 하고 계십니까』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불식되어야 함이 긴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분위기 전환을 투자를 활발히 하기 위해선 투자자금 원천으로서의 높은 저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과소비로 저축률이 떨어지고 있음을 한탄해야 하며 그 방지책에 부심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 기본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급격한 노동 기피현상 특히 위험한 일,더러운 일,힘드는 일 그리고 사회적으로 「스타일 구기는」일의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노동기강이 해이해져 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돌리는 4고정책의 촉구가 제6공화국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 민주화 몸살로 대만정정 혼미

    ◎국민당 40여년 집권에 국민불만 팽배/「의원 종신제」 폐지 요구등 시위 잇따라 세대교체를 통한 대만정치의 대만화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1천여명의 대만주민들은 지난 20일 입법원(의회) 앞에서 의회개혁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80여명의 부상자를 냈는가 하면 야당 입법위원들도 집권 국민당 원로 종신위원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의사진행을 방해,입법원장 선거를 1주일 뒤로 늦추게 했다. 19일에는 총통선출 기관인 국민대회 개막회의에서 야당 대표들이 역시 원로 종신대표들의 합법성에 이의를 제기,경찰에 의해 끌려나가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같이 국민대회와 입법원의 원로들이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지난 47년 중국 본토에서 선출된 뒤 49년 대만으로 건너온 이래 40년이 넘도록 단 한차례의 경선도 치르지 않은채 종신직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숫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원로들로 인해 전체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대만토착인들에게 정계진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뿐 아니라 국민당 정권의 장기집권이 구조적으로 보장돼 있어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상당수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9년 고 장개석 정부가 본토에서 철수,대만으로 이동해 왔을 당시의 국민대회 대표와 입법위원수는 각각 1천5백76명과 4백70명으로 거의 전원이 국민당 소속이다. 아직까지도 본토를 포함한 전체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자처하고 있는 국민당 정부는 대만을 중국의 일개성으로밖에 간주하지 않으며 본토를 회복할 때까지는 대륙에서 선출된 대표들의 자격을 유효화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들에게 종신지위를 부여했다. 그후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해외로 이주하는 등 결원이 늘어나면서 지난 69년부터 부분적으로 보궐선거를 치렀고 지난 86년에는 사상 최초로 대규모 보궐선거를 실시했으나 종신원로의 절대다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종신원로들은 현재 국민회의의 7백19석중 88%인 6백35석,입법원의 2백82석(정부지명 해외교포 3년 임기 케이스 29석 포함)중 54%인 1백52석을 각각 점하고 있다. 모두가 70대이상의 고령인 이들 원로들은 잔여임기중의 세비를 미리 지급하는 일종의 명예퇴직제도인 종신위원 퇴직조례가 지난해 1월 제정됐음에도 불구,대부분 사퇴를 거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자자손손 승계시키는 방안까지 연구하고 있다. 개선 대상의석인 6년 임기의 국민대회대표 84석과 3년 임기의 입법위원 1백1석 가운데 야당인 민주진보당은 11석과 21석을 각각 확보해 놓고 있을 뿐이다. 토착인들을 중심으로 한 야당과 많은 주민들은 종신원로의 전면퇴진과 자유총선실시를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부총통 임명 및 헌법개정 권한을 지닌 최고국민주권 기관인 국민대회의 절대다수를 종신원로들이 지키고 있는한 평화적 정권교체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고 권위주의 통치체제의 종식과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총통의 직선제 및 통일 대신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난 47년 마련된 국민헌법은 총통의 임기를 6년 연임으로 제한해 놓았으나 60년 비상법령의 제정으로대륙수복때까지는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상태다. 대만 국민들의 이같은 민주화 움직임은 지난 40여년간 대륙회복을 위한 비상시기라는 명분아래 권위주의 통치체제의 억압에 시달려 왔고 특히 국민당 정부의 주요 요직을 본토출신들에게 빼앗긴데 대한 누적된 울분이 표출되면서 「대만정치의 대만화」 요구 형태로 나타났다. 이들 대만 토착인들에게는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온 정복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1인당 국민소득 6천달러 수준에 올라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김에 따라 경제성장에 걸맞는 민주화를 요구할 정도의 정치적인 자각이 싹텄고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통일에 더이상 집착할 수 없다는 공감도 욕구분출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당 정부도 이같은 국민들의 욕구분출을 사전에 무마하기 위해 지난 86년 3월 장경국 전총통 재임당시 민주화 추진을 선언한 이래 계엄령 해제(87년 7월)와 신문창간 및 정당 결성 허용등 일련의 점진적인 민주화 조치를 취했고 국민당 중앙위원의 대만출신 비율을 15%에서 42%로 높였으나 국민들의 욕구를 잠재우기 보다는 오히려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야당의 출현은 이같은 민주화 요구 움직임의 조직화를 초래했다. 지난 88년 13차 국민당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관례적인 기립표결에 의한 주석 선출방식에 대한 소장파의 반발 움직임이 있었고 지난 2월 국민당 중앙상무위의 총통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기립 및 거수에 의한 표결방식에 이의가 제기되는 등 당내 민주화 및 세대교체를 외치는 목소리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 88년 1월 장경국 총통 사망당시 부총통으로서 대만 토착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잔여임기를 승계한 이등휘 총통은 이제 갈림길에 놓여있다. 이번 국민대회 기간인 오는 3월21일 총통 연임여부를 결정할 막강한 권한을 거머쥐고 있는 종신 원로들의 편에 서야할지 대다수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운 선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변혁물결」맞서 중공당 결속 모색/새달 전인대 무엇을 논의할까

    ◎「다당제 수용폭」 최대이슈 될듯/경제난 타개 겨냥,외국인 투자법 개정 가능성 오는 3월20일 북경에서 개막되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6ㆍ4 천안문사건」이후 처음 열리는 데다 그동안 동구 및 소련의 변혁이 중국에 안겨준 충격등을 감안할 때 과거 어느때의 대회보다 의미가 깊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국 관영 신화사통신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제7기 3차 올해 전인대가 다음달 20일부터 북경인민대회당에서 약2주일 예정으로 열리고 강택민 당총서기등 14명이 새 전인대 대표에 선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대회의 의제는 ▲정부사업보고 ▲90년 경제사회개발계획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초안 검토 ▲외국합작사업법률 개정 등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관측통들은 이러한 신화사보도는 의례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번 대회에서는 국제정치사회의 변화에 대한 대응방안과 공산당 영도의 다당합작제등 굵직한 현안들이 구체적으로 심도있게 다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서방국가의 국회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중국의 이번 전인대에는 모두 2천9백53명의 당요직인사 및 각 성ㆍ자치구ㆍ시ㆍ현 등지의 대표들이 참석한다. 따라서 중국지도층은 이번 대회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동요되는 지역이 없도록 각 대표들에게 당을 중심으로 한 결속강화를 강조할 게 틀림없으며 특히 소수민족문제와 관련,상호 평등을 바탕으로 한 단결을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관심을 끌것으로 예상되는 의제는 다당제일것 같다. 중국당국은 지난 7일 소련이 공산당 일당전제 포기방침을 밝힌데 대한 반발의 신호로 공산당영도체제의 고수를 천명함과 아울러 다당제확립을 강조했었다. 이와함께 중국의 다당제는 서방세계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공산당영도에 의한 것임을 못박았다. 때문에 중국이 앞으로 다당제를 실시하더라도 서구 시각의 정치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 되겠지만 적어도 공산당 일색의 정치체제와 관료조직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중국지도층이 최근들어 다당합작을 강조하는 것은 대외정세의 변화에 어느 정도 순응한다는 이유이외에도 대부분이 전문지식계층인 비공산당인사들을 정치ㆍ행정등 각분야에 다양하게 투입,경제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중ㆍ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만의 국민당을 다당합작의 범주안에 끌어들여 통일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정치적 책략도 숨겨져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밖에 이번 대회에서는 경제개방ㆍ개혁정책을 확대추진하는 방안도 다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6ㆍ4사건이후 중국은 중앙통제식 긴축정책을 강행해 왔으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병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만 심화됐다. 때문에 서방국가들이 그동안의 경제제재조치를 철회하는 것을 계기로 개방ㆍ개혁의 폭을 넓히고 외국인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관계법 개정을 서두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당초에는 이번 전인대기간중 이붕총리를 비롯,요의림 부총리등 강경보수파 인사들이 실각되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전인대 대변인이 지난 18일 외신기자들에게 이총리의 실각설이 사실무근임을 밝힘에 따라 권력구조의 개편은 당분간 유보된 것으로 풀이된다.
  • 변환기… 새 한미 군사관계의 정립 총점검

    세계적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동서화해(신데탕트)와 미국의 국방비 삭감,게다가 최근 한국 일각에서 일고있는 반미운동 등도 전통적인 한미 군사관계 변화의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이양,방위비 분담 증액요구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한미군사 관계의 변화는 양국이 의도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15일의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 내한을 계기로 더욱 구체화된 군사관계의 변화를 총정리 해본다. ◎서울의 입장/미군 감축 행정병력 우선… 전력 차질 없어/북한 위협 줄어들 경우 역할 축소 불가피/「일본의 예」 적용,방위비 2배 증액은 무리 ○한미 방위조약은 불변 ▷주한미군 철수◁ 주한미군의 병력 철수는 지난 1월30일 발표된 주한미공군 3개 기지의 폐쇄와 비전투 행정요원 2천여명 철수에 그치지 않고 오는 93년까지 5천여명의 미 지상군 철수까지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4일 국방부에서 열린 리처드 체니 장관과 이상훈 장관간의 회담에서 체니 장관은 부분철군에 관한 언급이나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기자회견 석상에서는 주한미군의 병력 수준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수천명의 병력이 감군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우리 정부나 미 행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철군은 불원간 구체화될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점진적인 철군이 구체화 되더라도 한미 양국은 방위조약으로 묶여져 있는데다 양국의 국익과 직결돼 있는 제2사단과 7공군의 주력전투력에 대해서는 상당기간 감축대상에서 제외해야 된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갖고 있는 한 철군을 하더라도 전력에는 영향이 없는 후방 행정지원 병력을 우선 감군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4만3천여명 가운데 2사단 병력 1만5천명과 제7공군 1만명 등 실전투병력 2만5천명만 주둔할 경우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과 연합전력 등 미군의 대한 방위공약 수행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일부 철수한다고 해도 그들이 사용하던 기지나 장비 등은 한국군이 이양을 받게 되어전투력에는 손실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계산이다. 병력이 5천여명 철수한다고 해도 화력과 기동력을 보강한다면 병력 감축부분의 전투력 손실은 쉽게 커버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정전위대표 “동의” 필요 ▷작전권 이양◁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6ㆍ25 발발 직후인 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사이에 맺은 대전협약으로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됐다. 전쟁중에 작전권을 위임한 것은 유엔회원국이 아닌 한국이 유엔군 산하에 들어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에도 전쟁상태의 종결이 아닌 작전상태라는 해석 때문에 한국군의 작전권은 반환되지 않았다. 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CFC)의 창설로 국군의 지휘권이 부분적으로 한미공동으로 실시할수 있게 됐다. 그러나 79년 12ㆍ12사태와 80년 5ㆍ17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미군 사령관이 한국군의 부대 이전을 통제하지 못해 한국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자 미국에서도 평화시의작전통제권을 미군이 행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독립국가의 국군 60여만명을 4만여명 밖에 되지 않는 주한미군의 사령관이 지휘하는 것은 주권의 유린이라며 자주국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작전 통제권의 한국군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정부가 국군조직법을 개정,국방 참모본부를 설치하려는 것도 장차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있는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아 강력한 지휘체제를 갖추기 위한 사전준비로 설명할 수 있다. 작전권 이양은 한미연합사령부의 구성을 전면 개편하게되어 현재 지상군ㆍ해군ㆍ공군 등 3명의 구성군사령관중 지상군사령관을 한국측이 맡고 주한미군 사령관은 휴전업무만 전담하고 유엔군만 지휘하는 직책으로 남게 된다.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군으로 교체하는 문제는,한국이 휴전당사국이 아니며 유엔군의 일원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 등 휴전 당사국의 동의와 유엔의 인준이 있어야 가능하다. ○연 6∼7% 증액 고려 ▷방위비 분담◁지난 15일의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체니 미 국방장관은 현재 한국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직접경비 3억달러를 2배 이상인 6억8천만 달러로 증액하라고 요구해왔다. 체니장관이 요구한 6억8천만달러의 직접비는 현재 미국정부가 지불하고 있는 주한미군기지에서 일하는 1만8천6백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연간 급료와 의료보험비ㆍ퇴직금등 인건비를 한국정부가 지불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대해 이상훈 국방장관은 주한미군내 한국인 근로자의 의료보험료 5백만달러와 퇴직금 3백만달러 등 8백만달러만 부담하겠다고 제시,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앞으로 4인 위원회를 통해 계속 논의키로 했다. 미국측이 갑자기 한국인 근로자들의 임금을 한국정부에게 지불할 것을 요구해 온것은 일본이 주일미군의 일본인 근로자의 임금을 전액 부담하고 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주둔한 것은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 항복 문서조인을 받은뒤 점령군의 성격으로 진주했으나 주한미군은 6ㆍ25동란의 발발로 독립국가인 한국을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민주주의 수호국으로서의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일미군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현재의 상황도 일본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경제규모가 우리보다 4∼5배나 크고 평화헌법에 의한 자위대의 규모도 20여만명 밖에 되지 않아 70만 대군을 유지하며 국가예산의 3분의1을 국방예산으로 쓰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이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다. 한국은 국방예산 6조8천억원 중 35% 이상인 2조5천억원을 차세대전투기 계획(KFP)ㆍ잠수함 건조등 전력증강사업에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므로 주한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노무자들의 임금까지 지불하기란 무리라는 설명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주한미군의 철군을 앞두고 대체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력증강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할 형편인데 투자를 줄이고 인건비로 지불할 수 없는데다 양국 정상회담의 합의대로 한국의 경제성장과 능력 범위안에서 증액 부담하기로한 원칙에 따라 연간 6∼7%정도의 직접비증액은 고려할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시말해 이 부담능력을 초과하는 무리한 요구를 미국이 강요할 경우에는 방위비 분담증액을 택하기보다는 차라리 미군의 부분 철수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워싱턴 시각/「감축 동의」한국측의 태도변화는 “의외”/본격적인 철군협상은 93년 이후나 가능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의 서울 방문을 보도한 미 언론들의 표제는 한결같이 『한국이 주한미군 감축에 동의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년 가을 댄 퀘일 미 부통령의 서울 방문시 한국정부는 물론 야당 지도자들까지도 미군 감축에 반대했던 일을 되돌아보면,6개월도 안돼 반전된 한국측의 태도가 미 언론의 눈에는 「의외」로 비쳐진것 같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주한미군 5천명 감축 동의는 한미군사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큰 태도변화의 일부』라고 풀이하며 이번에 한국측이 요구한 「평시 작전권 이양 및 정전위 수석대표 교체」를 가리켜 『한국이 자체 방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떠맡겠다는 가장 강력한 성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요구에 한국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타임스는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내용은 뉘앙스가 좀 다르다. 포스트는 『한국은 일선 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신중한 미군감축에 마지못해 동의하고 있다』며 『이같은 동의는 서울이 미군감축을 미리 봉쇄할 영향력을 미 의회에 갖고 있지 않으며 미군 4만3천7백명 전원에 대한 주둔 유지비를 감당할만한 돈도 충분히 갖고있지 않다는 서울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펜터건은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아시아ㆍ태평양 주둔 미군에 대해 ▲1단계=90∼92년 ▲2단계=93∼95년 ▲3단계=96년 이후의 단계적 장기 조정계획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펜터건이 발표한 한국내 미 공군기지 3개소 폐쇄와 공군지원병력 2천명 감축 계획이나 체니 장관의 이번 동북아 순방과 추가 감군 협의는 1단계 조정계획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주둔군 감축안은 동서 긴장완화를 반영한 유럽에서의 미소주둔군 감축 합의와는 달리 지역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체니 장관이 서울에서 언급했듯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침위협은 여전히 감소되지 않고 있으며 소련은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유럽주둔군 감축과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미 정부의 기본인식이다. 또 미국이 지금까지 주한미군 철수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운 평양측의 신뢰구축 조치,즉 ▲비무장 지대에 전진배치된 군사력의 후퇴 ▲테러리즘 종식 ▲핵 비확산 조약 이행 등이 전혀 충족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미국이 동북아 주둔군을 감축하려는 것은 미국의 재정ㆍ무역적자 등과 관련한 국방예산의 축소 때문이다. 부시 미 행정부가 지난 1월 미의회에 제출한 91회계연도(90년10월1일∼91년 9월30일) 국방예산안은 총규모 2천9백21억달러로서 물가상승률을 고려할때 전년대비 2%가 줄어든 것이다. 체니 장관은 한일 양국에 대해 각각 종전보다 갑절이 늘어난 6억달러 및 40억달러의 방위비 부담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거에 방위비 분담의 배증을 요구한 체니의 제의가 미국의 어려운 국방예산 사정을 나타낸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1단계 협상의 초점이 어디까지나 방위비 분담 증액문제에 있다는 미 정부 의도를 솔직이 드러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워싱턴의 소식통들은 『1단계 기간중의 한미간 협상은 주한미군을 80년 수준(3만8천명)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벌일 방위비 분담 줄다리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본격 감축이나 본질적 변화에 관한 협상은 93년 이후 제2단계의 과제라고 이들은 인식하고 있다. 93년은 몇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한국이 군사력면에서 북한과 동등해지거나 북한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시점이 93년이라는 것이 미 군사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이 독자방어 능력을 갖추게 되면 전쟁억지력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그때쯤 되면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셋째,미국의 경우 차기 대통령 임기 개시와 더불어 그동안 매달렸던 유럽문제에서 눈을 돌려 한반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문제 해결에 본격 대처할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의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지금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지금의 주한미군 감축논의가 한미 양국간에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때의 논의는 남북한ㆍ미 3자간에 진행되거나 중ㆍ소ㆍ일도 관계되는 다자협상의 의제가 될지 모른다. 이번에 체니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정부가 공식 요구한 정전위 수석대표의 한국군 장성으로의 교체라든가,최근 한미 양국에서 다같이 제기하고 있는 남북한 군축과 주한미군 철수의 연계론은 어떻게 보면 남북한ㆍ미 3자협상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북한의 침공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동아ㆍ태 지역 안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점차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 관리들이 주한미군의 또다른 유용한 역할 두가지를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주한미군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우려하는 일본의 재무장 필요성을 감소ㆍ억제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한미군의 이같은 역할에 대한 인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경우 제2단계에도 미군의 대폭감축은 없을지 모른다. 주한미군이야말로 동북아에서 가장 싼 비용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킬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한 루이스 메네트리 주한미군 사령관의 최근 미상원증언은 주한미군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전망/2천년대 초반까지 전면철수 없을듯/90년대 후반엔 2만명선으로 줄수도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국방위의 주도적 역할에서 지원적 역할로 변경을 꾀하고 있는 만큼 주한미군의 철수는 불가피 하겠지만 최소한 2000년대초까지 전면 철군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군사문제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미국은 장기적으로도 동북아시아의 지역 안보를 위해 대륙국가인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한국에 지상군의 일부를 주둔시켜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임무는 대소 봉쇄 및 세계전략의 전초감시기능은 물론,북한에 의한 전쟁 억지역할이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이 감소될 경우 구조개편과 함께 임무와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현재 세계 최강의 중무장을 한 제2사단을 경보병사단으로 바꿀수도 있고 주한기지 축소 및 행정요원 감축 등 여러가지가 고려될 수 있다. 현재의 미국 국내사정,한국군 전투력 증강 속도 등을 감안할때 90년대 후반에는 현재 병력의 절반수준인 2만명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카터 행정부 당시 거론됐던 주한미군 철군계획과 같이 공군ㆍ정보ㆍ지휘ㆍ통제ㆍ통신ㆍ군수 지원부대만을 주둔시키고 기타 병력은 철수시킨다는 프로그램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도 크다. 한국이 오늘 이만한 전력을 갖추기까지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지원이 적지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이 과대하게 선전되고 국민의식도 선진화되기 시작하자 미국에서도 한국의 발전 속도에 맞는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게 됐고 우리측에서는 작전통제권 이양이 군사현안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는 주한미군의 추가철수 규모ㆍ방위비 부담액수ㆍ작전통제권 이양 스케줄에 대한 윤곽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방위의 궁극적인책임은 우리 스스로에 있으므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역할조정이 궁극적으로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중국­대만 통일논의/대만통련 대표,북경에/등소평등과 회담

    【홍콩=우홍제특파원】 대만의 「중국통일연맹」(통련)대표단이 처음으로 14일 북경에 도착,15일동안 머무르면서 등소평 강택민총서기 이붕총리등 중국지도층 인사들과 만나 중국ㆍ대만의 장기적인 통일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15일 성도일보가 보도했다. 대만의 저명작가 진영진이 인솔하는 27명의 통련대표단은 특히 「6ㆍ4 천안문사건」으로 관계가 악화된 중ㆍ대 두나라 사이에 우호적인 대화의 창구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밝혔다. 통련은 양국간 인적교류 및 무역이 본격화되던 지난 88년 3월 설립됐으며 이번 대표단의 북경방문으로 두나라 통일논의가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통독에의 첫 관문”통화통합

    ◎“때놓치면 동독경제 회생 불능”판단 서독/인플레등 역효과 우려… 선원조 희망 동독 13일 시작된 동서독 정상회담에서 긴급원조제공문제와 함께 양독통화통합문제가 주의제로 다뤄짐에 따라 통독문제는 이제까지의 논의단계를 뛰어넘어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본궤도에 오르게됐다. 콜 서독총리가 제안한 통화통합방안은 동독의 기존 화폐를 전면폐기하고 서독의 마르크화를 단일통화로 채택,통용시키자는 것이다. 이 제안대로라면 양측의 통화교환비율과 시점을 정한뒤 은행을 통해 기존의 동독통화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꿔주고 수거된 동독통화를 폐기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럴 경우 동독 중앙은행이 발권은행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대신 서독 중앙은행이 동서독을 모두 관장하는 통합 중앙은행 역할을 맡게돼 동독 경제통제권의 상당부분이 서독정부로 넘어가고 결국은 경제적 통독으로 이어지게 된다. 서독정부가 이같이 통화통합을 서두르는 이유는 통독에 대한 열망 외에도 하루 평균 2천명꼴의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이주해 옴에 따라 동독의숙련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고 혼란상태에 빠져있는 동독경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회혼란을 초래하고 회생불능의 늪으로 빠져들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4만4천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해온 데 이어 올들어서만도 30여일 사이에 7만여명이 동독을 빠져 나왔다. 이 때문에 동독에서는 노동력 부족사태로 인해 문을 닫는 공장들이 속출하고 공업생산ㆍ의료서비스ㆍ소비재 공급에 차질을 빚는 등 가뜩이나 심각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서독 입장에서도 이들 난민 처리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실정이다. 또 동독이 경제적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격심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말려 있는 현상황에서 수십년간 체질화돼온 철저한 계획경제제도에 대한 개혁작업이 기대만큼 신속히 진행될지는 의문이고 통화에 태환성이 없기 때문에 개혁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동독정부의 개혁추진 상황을 관망하기보다는 서둘러 동독을 자국경제에 편입시킴으로써 개혁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서독정부의 입장이다. 통화통합이 이뤄지면 동독국민들은 외국에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자국통화가 아니라 서독국민들이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을 직접 살 수 있는 마르크화를 임금으로 받게 돼 서독으로의 이주감소가 기대되고 태환성이 있는 서독마르크화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동독에 대한 서방세계의 투자가 활성화돼 동독경제를 회생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서독측은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급진적인 통화통합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화통합이 이루어지게 되면 동독정부는 당연히 식료품 주택등에 대한 정부보조금(89년 1백억달러ㆍ동독정부예산의 20%) 지급철폐등 제도개선,내구소비재에 대한 세금부과등 세제개혁,사유재산제 인정,자유로운 기업설립 및 외국합작투자허용 등 신속한 개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그럴경우 동독의 경쟁력없는 기업들이 속속 문을 닫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실업자 속출 및 물가앙등으로 이어지는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재 서독의 평균실질임금이 동독의 10배에 달하는 부의 불균형도 문제다. 서독의입장에서도 통화 증발과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으로 인한 인플레,세금증수,적자예산편성등 후유증을 치르게 된다. 이같은 급진적인 통화통합의 부작용을 우려한 나머지 서독의 금융계는 양측통화의 교환비율만 정해 태환성이 없는 동독통화에 대해 서독마르크화와의 교환가치를 부여한 상태에서 양측통화를 병행사용하는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이같은 서독측의 통화통합제의에 대해 동독측은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통합시기를 뒤로 늦추는 대신 우선 경제원조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경제악화,자국인의 대거 서독이주 및 통일열망,통독에 대한 소련등 동구권국가들의 양해를 바탕으로 사실상 통독을 향한 첫 걸음인 통화통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시기문제에 있어서는 오는 3월18일 자유총선이 끝난 뒤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부라야 동독의 장래를 좌우할지도 모를 대서독협상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현상태에서는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독경제가 침체돼있는 현시점에서의 통화통합은 결국 동독의 발언권없이 일방적 흡수통합으로 직결된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사정을 종합해볼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통화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독자유총선이 실시되는 3월이후 멀지않은 시일내에 통화통합이 이뤄질 수 있으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동독인들이 피폐화되고 있는 이 나라에 시장경제제도를 확립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통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통화통합은 통일을 향한 레이스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김일성 곧 은퇴… 수렴청정 가능성”/미 스칼라피노 교수 예견

    ◎“소ㆍ동구 변혁으로 체제개혁 불가피/주한미군 감축,북 군축과 연계해야” 북한의 연로한 김일성은 중국의 등소평처럼 사실상 최종 재가권을 지닌채 공식적으로 곧 은퇴할지 모른다고 미국의 저명한 아시아문제 전문가 로버트 스칼라피노교수가 예견했다. 스칼라피노교수는 9일 배포된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아시아와 미국」이라는 정책건의 논문에서 미­북한문제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 다음은 이 논문의 요지다. 지금 평양은 큰 걱정거리 두가지를 갖고 있다. 첫째 소름끼치는 동구 및 소련의 사태발전과 한국의 대중소 접촉확대에 대한 우려다. 헝가리와 폴란드가 한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한 조치는 평양의 견해에서 볼때 계속될 「사회주의 배신」의 첫번째 예일뿐이다. 둘째 한국과의 경제적 격차가 누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북한은 알고 있다. 무거운 군사비지출로 허덕이는 북한의 생산은 원시적인 스탈린주의 경제전략에 매달리고 있다. 통일과 관계된 기본문제에서 남북한정부간에는 아주 큰 차이가존재하고 있다. 남쪽은 경제 및 문화접촉의 증진을 통한 「신뢰 분위기」조성을 선호하는 반면 북쪽은 처음부터 광범위한 정치ㆍ군사협정을 요구하고 있다. 양측은 통일방안을 진전시키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반도와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이 진전시킨 방안은 「1국가 2체제」다. 이 방안은 북한과 남한간에,그리고 중국과 대만간에 확대되고 있는 정치발전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한반도와 중국의 레닌주의자들이 그들 지역에서 권력의 독점을 고집할 경우 다른 한쪽은 1국가 2체제방식의 타당성에 대해 깊이 회의할 것이다. 미국의 대한방위공약,한국의 국력신장,중소의 태도변화 때문에 한국에서 전쟁재발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지금 북한은 중국처럼 자본주의 국가를 상대로 무역ㆍ외자도입ㆍ관광객유치 등의 증대를 원한다는 신호를 내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젊고 잘 교육받은 엘리트가 정부요직에 기용되고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면서 선진시장경제에 도달하려는 과정이 촉진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연로한 김일성의 아들인「경애하는 지도자」김정일의 자질은 아주 뚜렷한 의문거리다. 등소평처럼 김일성은 사실상 최종 재가권을 지닌채 곧 공식적으로 은퇴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2세대 테크노크랫들이 통치권에서 떠오르고 있으며 군부의 늙은 충성파들이 「왕좌」를 옹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시 권력승계가 순조로울지의 여부는 현재로선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상황 아래서 미국이 취해야 할 입장은 무엇인가. 첫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미­북한관계가 크게 진전되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남북한관계 발전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미국은 계속 보내야 한다. 모든 남북한협상을 고무해야 한다. 특히 한국정부의 긴밀한 협력아래 미국은 한국에서의 감군과 재배치 시간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은 북한에 대해 워싱턴이 대한안보협정의 기본을 그대로 놔둘 것이며 감군의 시기와 범위는 북한의 군축 및 테러위협 축소와 연계될 것임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 될 것이다. 각자의 북경주재 대사관을 매개로 한 미­북한 공식접촉은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건들이 충족되면 보다 실질적인 내용들을 이 접촉에서 다루어야 한다. 미­북한간 학술ㆍ문화교류는 유용하게 확대될 수 있다. 워싱턴은 북한의 경향에 관한 의견교환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 북한도 미국에 대해 이같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북한이건 다른 나라건 자신을 완전히 고립시킬 수 있는 시대는 끝나고 있다.
  • 민주자유당 창당 선언문

    우리는 오늘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새로운 민족사를 위한 중추적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민족민주세력을 총결집하여 민주자유당의 깃발을 올린다. 2천년대 여명앞에 한민족이 새세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새로운 태세가 필요하다는 자각아래 이제 우리는 신념에 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정치사를 얼룩지웠던 갈등과 반목의 기억을 역사의 대하속에 흘려보내고 민주발전과 국민화합ㆍ국리민복과 민족통일의 과업을 실현시키는 것이 우리의 시급한 책무임을 확인한다. 세계질서가 재편성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자기개혁의 소용돌이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정치가 창조적인 개혁으로 새로워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청신한 국민정당의 등장이야말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 이러한 확신에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의 부름에 기꺼이 순응하여 온 나라의 민주세력을 하나로 결속시킨 민주자유당을 창당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위대한 새출발을 하는 우리 당원들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희망을 주며 나라를 밝은 미래로 이끌 포부에 온 가슴이 벅차옴을 금할 수 없다. 우리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나라의 기틀로 삼고 조국의 민주적 통일을 주도하여 자주ㆍ자존의 바탕위에서 세계속에 우뚝설 선진복지국가를 이룩하려 한다. 우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참다운 민주발전을 이룩하는 정치,지속적인 성장으로 국민복지를 뒷받침하는 경제,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정의와 양심이 살아 숨쉬는 사회,그리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민족문화,이 모든 것을 구현하는 데 온갖 힘과 정열을 다 쏟고자 한다. 우리는 지역간ㆍ계층간ㆍ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대화합을 실현하여 모든 국민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넓은 세계로,더 밝은 미래로」 출발하는 선상에 스스로 서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민적 역량을 한데 모으고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각오로 조국의 정치사에 신기원을 여는 오늘,우리의 눈은 빛나고 발길은 당당하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우리와 함께하고 국민의 우렁찬 박수가우리를 성원해 주고 있다. 90년대의 서장을 열면서 영구히 민족과 함께할 믿음직한 국민정당을 우리손으로 출범시키게 된 것을 다시 없는 영광으로 가슴에 새긴다. 우리의 이러한 보람이 곧 나라의 영광,겨레의 영광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우리는 이를 위해 새 시대의 주역이라는 자긍심으로 국민의 봉사자로서 정성을 기울일 것을 역사앞에 선언한다.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 우리는 오늘 새로운 민족사의 전개를 갈망하는 국민적 소망에 따라 민주세력을 총결집하여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자기개혁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민주ㆍ번영ㆍ통일을 국민 모두에게 약속하고 그 실현 위하여 뜻을 모으고 일을 함께할 새로운 국민정당이 되고자 합니다. 2천년대의 여명을 눈앞에 두고 새로 태어난 우리당이 추구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세계각국의 민주개혁 과정에서도 그 우월성이 입증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건전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수호ㆍ발전시키는 민주정당이 되겠습니다. 둘째,현실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적 정당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항상 전향적으로 행동하는 개혁지향정당이 되겠습니다. 셋째,특정지역ㆍ특정계층ㆍ특정세대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국민정당이 되겠습니다. 넷째,인기에 영합하여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는 무책임한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민의를 수렴하여 광범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정당이 되겠습니다. 다섯째,민족의 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화하고 정치ㆍ군사문제 등의 협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정책을 추진하여 자주ㆍ민주ㆍ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통일정당이 되겠습니다. 번영된 조국의 미래를 우리당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무력감을 떨쳐버리고 새 정치시대를 열고자 하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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