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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남북한 ‘신채호전집’ 공동출간하자

    6월에 열리게 될 평양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크게 앞당기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남북간에는 부분적이나마 인적·물적 교류와 스포츠·음악회,그리고 간혹 제3국에서 학술세미나가 열렸을 뿐 본격적인 학문연구나 출판의 공동작업과 같은 ‘정신문화’사업은 거의 성사되지 못했다. 남북한이 확실한 냉전종식과 평화정착,그리고 통일에이르기 위해서는 가시적 교류협력과 함께 동질성을 회복하는 정신문화차원의교류와 공동작업이 추진돼야 한다. 그 한가지 방안으로 단재 신채호선생 전집을 공동출간하면 어떨까. 다행히단재는 양측에서 함께 존경받는 애국자·사학자로서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연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에서는 불완전하나마 1972년에 ‘전집’이 출간된 바 있고 북한은 많은 미발표 유고를 보존하고 있는 관계로 양측이 협력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분단시절인 1980년대 초 당시 동베를린 소재 아우프바우 출판사와 서독 프랑크푸르트의 수어캄프 출판사간에 ‘동서독문화협력 공동작업’의 일환으로 극작가 브레히트의 작품전집을 내기로 합의하고 1984년의 첫권에 이어 작업이 계속되어 통독 이후인 1998년 제30권이 발간되고 이달(5월)에 제31권으로 완간된다고 한다. ◆양독 브레히트전집 공동출간 독일 통일은 '정치역학' 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양측 지식인들의 끊임없는 교류협력과 그 과정에서 동질성을 찾게 되면서 불가능성을 가능케 만들었다. 더구나 브레히트는 좌파적 극작가였는데도 서독은 통일이라는 대의와세계적인 작가의 명예와 작품을 존중하여 ‘이념의 벽’을 뛰어넘은 것이다. 브레히트는 독일어권 무대에서 한때는 공연횟수가 셰익스피어를 앞지르기도한, 세계적으로 고전작가의 반열에 오른 독일극작가다. 나치에 반대하여 10여년 동안 해외망명을 하면서 ‘갈릴레이의 생애’등 수많은 걸작을 썼다. 동유럽에서는 비정통적 미학이론으로 핍박을 받고 서유럽에서는 사회주의적견해때문에 배척당했다. 전후 귀국한 브레히트는 베를린에 정착하여 사회주의 성향의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스탈린상도 받았다. 그런데도 서독이 그의전집 공동출간에 참여한 것이다. 브레히트 전집은 분단시절 동서독에서 두 출판사가 공동으로 자료수집을 하고 공동으로 편집 출간하여 분단시대 첫 공동협력 출판작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 프로젝트였다. 양측에서 2명씩 전문편집자들이 책임을 맡고 수십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거대하고 완벽한 전집을 만들어 냈다. 현재 평양인민학습당에는 상당량의 단재 유고가 보존돼 있다. 위체사건으로단재가 대만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유고는 톈진에 있는 모 인사가 보관하던 것을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가 60년대 초 평양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되어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중국 옌볜대학 김병민부총장 증언). 유고 중에는 역사학 연구물로서 ‘조선사통론’·‘사상변천편’·‘인물고(考)’·‘강역고(疆域考)’·‘선랑사통론(仙郞史通論)’·‘전설시대사’·‘고구려사’·‘단군강역도 만주국’·‘해상열국과 고구려’ 그리고 중국사 분야의 논문, 문학관련 유고는 ‘조선의 지사(志士)’·‘단아잡감록(丹兒雜感錄)’, 기행문관련으로 ‘태산행기(泰山行記)’,소설은 ‘건륭황제의 꿈’, 사화집에는 ‘아방윤리경(我邦倫理鏡)’등이다. 그외에도 많은 유고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 신채호 유고보존 실태 이와함께 단재가 베이징 망명시대에 손수 만든 잡지 ‘천고(天鼓)’ 6권(베이징대학 도서관 소장)과 상하이 시절에 만든 신문 ‘신대한(新大韓)’,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망명시절 ‘권업신문’등에 쓴 글과 자료를 찾아 방대한‘단재 신채호전집’을 남북이 함께 만들었으면 한다. 단재의 전집이 끝나면,또는 동시에 윤이상 선생의 작품집을 공동으로 출간한다든가 그의 오페라를함께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국조(國祖)’ 단군에 관한 공동연구와 연구집 발간 등 민족문화 창달과 동질성 회복에 남북이 함께 나서야 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란 말이 있듯이 새천년을 맞아 남북이 각분야에서한걸음씩 함께 걷는 노력이 필요하다. 엄혹한 냉전시대에 브레히트 전집을만든 독일지식인들의 열정과 애국심을 배웠으면 한다. 김상웅 주필
  • 北SOC투자 국제컨소시엄 구성

    정부는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화될 대북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국내 업계와 외국기업들이 공동 참여하는 다국적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할방침이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은 24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남북경협위원회 주최로 열린 오찬간담회에 참석,주제발표를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장관은 “대북 SOC 사업은 다국적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고 국제금융도얻어내는 방향으로 추진할 방침”이라며 “현재 여러 국가들이 사업참여 의향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탈리아 경제인과 대만 새 정부측이 이미 적극 투자하겠다는 뜻을밝혔고,최근 방한한 일본 경제단체 회장도 이같은 뜻을 내비쳤다”면서 “아시아∼유럽 대륙횡단 철도사업을 추진중인 러시아 정부측도 대사관을 통해반드시 대북 SOC 사업에 공동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 SOC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 ▲재계의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정부와 재계가 공동으로 투자하며 ▲재계의 진출이 어려운 사업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등 세가지 방향에서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특히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적극적으로 SOC 사업에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올해 추경예산이나 내년 예산에 관련기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획예산처와 협의중”이라고 말했다.회의에는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인 장치혁(張致赫) 고합 회장과 강성모(姜聖模) 린나이코리아 회장 등 15개 회원사 대표를 비롯,대북 투자를 희망하거나 추진중인 기업 대표 80여명이 참석했다. 육철수기자 ycs@
  • 천수이볜, 연방제 통일방안 제시

    천수이볜(陳水扁·49) 타이완 총통 당선자는 21일 대만 지위를 둘러싼 양안(兩岸)간 긴장완화 방안의 하나로 중국과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천 당선자는 “중국-타이완간 연방제가 하나의 해결 대안이다.그것이 실현가능한지,국민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그는 그러나 “국가의 새 지도자로서 나는 (모든 것을)내 마음대로 결정할권리가 없다.나는 다양한 견해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연방제 통일안은 천 당선자의 고위 자문역인 순 윈-쉬앤이 이번주초 입안했다. 그러나 천 당선자의 연방제안은 타이완을 방문중인 중국 관리에 의해 이날즉각 거부됐다. 중국사회과학원 타이완연구소의 유 켈리 부소장은 “그 제안은 우리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우리의 원칙은 하나의 중국이며,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다”고 일축했다. 타이베이 AFP DPA 연합
  • 남북 정상회담/ 특별좌담

    오는 6월 분단 반세기만의 첫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한매일은 11일 정치·외교·경제전문가 등을 초청,이에 대한 의미와 전망 등을 집중 점검하는좌담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와 전망, 동북아 냉전구조 해체 가능성,남북한 경제협력과 공동이익,한반도 주변정세에 끼칠 영향 등이 폭넓게 논의됐다.좌담에는 강만길(姜萬吉) 고려대 명예교수와 강정모(姜正模)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임혁백(任爀伯) 고려대 정치외교학과교수가 참석했다. □강만길 이번 남북정상 회담 합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지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4자회담이니 6자회담이니 여러가지 방법이 시도됐지만 이번만큼은 한반도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춧돌을 놓았기 때문입니다.외세를 배제하면서 월남과 같은 무력통일도,독일과 같은 흡수통일도 안된다는 차원에서 수립된 포용정책,즉 적극적 화해정책이 열매를 맺은게 이번 정상회담 성사인 것입니다. □임혁백 그렇습니다.94년정상회담 성사는 사실 외세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당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서울 불바다 발언 등으로 고조된 위기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에 중재를 요청한 결과였습니다.이번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응한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습니다.기본적으로 김정일 체제는 유훈(遺訓)통치체제입니다.모든 것이 김일성(金日成)의 유훈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분단과 냉전의 해체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라는 것이 김일성의 유훈이었습니다.그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자기 체제를 굳힌 결과,자신있게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강정모 북한에게 남한과의 정상회담,즉 정치·경제·문화적인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문제 때문입니다.인민을 먹여살리지 못하는 정권에 무슨 힘이있겠냐는 것입니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는 현 정부가 그런 사정을 잘 파악한결과로 볼수 있습니다. 서해교전,잠수함 침투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일관되게 포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남북간 신뢰 관계가 공고해졌습니다.특히남북 경제공동체라는 틀 속에서 협력을 할 경우 시너지 효과는 물론, 국방비등 지출을 줄이면서도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해진 것도 북한이 정상회담에 합의한 계기라고 봅니다. □강만길 이번 정상회담은 동북아 냉전체제 해소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건입니다.현재 한·소,한·중 관계는 정상화됐지만 북·일,북·미 관계는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북·일,북·미 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관계가 화해분위기로 돌아서야 완전한 냉전체제의 해소가 이루어집니다.남북관계는 이를위한 연결고리입니다.이런 점에서 북·일,북·미관계 호전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우리의 민족적 문제를 우리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입니다.지금까지는 주변 국가의 대북정책에 따라가기 급급했다면 이제는 남북문제가 앞서 해결되고 북·일,북·미 관계가 뒤따라오는 구도로의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한반도가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를 해소함으로써 비로소 세계평화,동북아 사회에기여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혁백 좋은 지적이십니다.그동안 북·미 관계에서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사가 있더라도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아무래도 북한보다는 한국이 중요한 때문이지요.그것이 국제구도의 틀이었습니다.한국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굳이 한국의 결정권을 침해하면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그래서 북·일,북·미의 관계 개선이 지연됐던 것이지요.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에 그러한 심리적 장애를 제거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주변 국가들은 모두 이 지역의 냉전구도 해체를 원합니다.물론 통일된 한국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경쟁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도 냉전구도 해체는 모두에게 이익입니다.단적으로 동아시아 시장 형성을 막아온장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이는 동북아 철도망 연결,비행항로 개설 등 물자수송 장벽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현 정부의 평화체제 구축 정책이주변국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통일한국 건설’보다는 ‘냉전해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강정모 경제적으로 봐도 세계는 지금 지역 경제협력의 방향으로 진행되고있습니다.북미의 나프타(NAFTA)나 유럽연합(EU) 등은 각각 49%,62%의 역내의존도를 보이는 반면 동북아는 29%에 불과합니다.왜 역내 의존도가 낮은가하면 냉전체제 지속과 북한의 폐쇄주의 때문에 교류협력 조건이 형성되지 않은 탓입니다.북한이 개방으로 가면 동북아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강만길 회담성사에 제일 조급해지는 사람들은 역시 이산가족들이지요.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문제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됩니다.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것도 안된다’ ‘남북대화도,비료를 주는 일도 안된다’는 식으로 가서는 안되지요.이는 당사자들도 이해를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정부 대북정책의 장애가 된다는 것은 이산가족 자신들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순리적으로 풀어야 합니다.인정적인문제인지라 거론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냉철하게 다뤄야 합니다. □임혁백 이산가족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인권·인도적인 문제로 해결돼야 한다는데는 동감하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지금까지 이산가족 교류가 제대로 안된 것은 북한 체제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때문에 이는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냉전체제가 해체되더라도 단숨에 해결되지 않습니다.따라서 그때까지는 현실적인입장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안되면 모든게 안된다는 식의 접근방법은 버려야할 것입니다.오히려 어떤 시점에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할지에 대해 세부전략을 세우는게 중요합니다. □강만길 우리는 기나긴 통일여정의 첫걸음에 들어섰습니다.그 지향점은 ‘비흡수 평화통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독일식도 베트남식도 아닙니다.이를 위해 첫단계로 정착시켜야 할게 평화공존 체제입니다.이를 위해 가장중요한게 기간을 길게 잡고,인내해야 하고,타협과 호혜의 원칙에 충실해야한다는 것입니다.우리 국민의 통일의식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정부는 우리의 통일교육의 방향을 지금의 대결의식의 틀이 아닌 호혜의식으로 바꿔가야 합니다.또 걱정되는 점은 정권이 바뀌면 통일·대북정책이바뀌거나 후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이는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될 것입니다. 현 정권이 있는 동안 적극적 화해 정책이 최대한 정착돼야 합니다.그런 면에서 이번 발표 시기를 총선에 결부시켜 문제삼는 것은 대단히저(低)차원적인 안목입니다. □강정모 그런 소모적인 논쟁들은 남북통일,국가 단일 공동체로 가는데 있어떨쳐버려야 할 일들입니다. 남북한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서로 공동체로서 이익을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그런 면에서 사실 남북한은 양보가 필요없다고 봅니다.서로 물러서지 않아도 많은 이익을 얻게 돼있는데 무슨 양보가 필요하겠습니까.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당국자와 주민간의 상호 신뢰입니다.서로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의논해 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임혁백 전술·전략적으로 협상의상대방이 이야기한게 과연 지켜지느냐는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이를테면 야당이 집권을 했을 경우,현재의 대북 햇볕정책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것 같으면 북한이 협상할리 없습니다.진지한 협상 상대로 인식하도록 하려면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초당적 지지를 보내야 합니다.세계사적으로는 냉전 종식,민족사적으로는 분단 해체라는 이 역사적 상황을 앞두고 여야 구분없이 지지를 보내서 우리 당국자들이 좋은 위치에서협상을 할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강만길 우리는 갑자기 오는 통일을 지향하지 않습니다.서서히 단계적으로오는 통일이어야 합니다.아마 후세의 역사가들이 남북합의로부터 통일이 시작됐다고 말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이번 회담 합의는 남북합의서 교환이래 두번째로 온 통일의 기회입니다.우리가 지향하는 화해통일에 최대한 접근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임혁백 남한·북한과 대만·중국을 예로 들겠습니다.남북한은 고위수준에서 상당히 많은 대화를 했지만,교류·교역·여행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있습니다.반면,대만과 중국은 대화는 없는데도 엄청난 규모의 투자와 교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결국 우리는 대화는 많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없다는것입니다.이미 우리는 남북 기본합의서라는 훌륭한 문서를 갖고 있습니다.때문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더 이상 원칙문제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구체적인 성과,즉 이산가족이나 사회간접자본 연결 등 실질적인 문제를 토의해야 할 것입니다.남북화해는 우리가 IMF를 돌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신발·섬유산업에서는 노동력을 얻을 수 있으며 사회간접자본(SOC)개발로는 중동특수를 넘어서는 성과가 가능합니다.북의 토지와 인력에 남의 자본과지식이 혼합되면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될 것입니다.동시에 당장의 이익 확보보다는 통일비용을 줄인다는 측면에서의 접근도 필요합니다.북한이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에 이르도록 협력하는 것이 향후 통일부담을 감소의 관건입니다. □강정모 남북관계의 가장 큰 틀은 공존체제입니다.공동번영과 균형발전이공동체의 핵심입니다.하지만 쉬운 것부터 시작해 서로에게 이익이되는 것을우선 찾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양쪽의 사회기반시설을 속히 연결해야 합니다.외국이 북한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또 북한이 식량사정을 개선할수 있도록 농업을 살리고 경공업을 육성해야 합니다.다행히 우리의 산업 사이클이 경공업을 다른 나라로 넘겨줘야 하는 시점입니다.그런 산업구조를 북한에 넘기고 철도·도로·통신·에너지·전력만 연결시키면 여기서 오는 경제이익은 계산할 수 없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정리 김태균 이지운기자 windsea@
  • 푸틴 러대통령 訪韓 초청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9일 “지금은 한반도 통일이 아닌 냉전종식·평화공존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은 북한동포를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외교통상부의 올해 업무보고를 받는자리에서 “북한이 대외개방에 나서면서 한국에 대한 고립이 가능할 것으로오판하지 않도록 미·일 등 관계국들과 긴밀히 협력하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은 보고에서 “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대행의 한국 방문을 초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올해 5대 중점 외교과제로 ▲한반도 냉전종식과 평화공존을 위한다변외교 ▲대외경쟁력 향상을 위한 통상외교 ▲제 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성공적 개최 ▲재외국민 보호 강화 ▲지식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제도개혁 등을 제시했다. 또 ‘하나의 중국’ 원칙은 고수하되 대만과의 경제통상 확대,민항기 취항등 실리관계 확대를 추구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외교관의 업무능력을 상급자와 동료,부하직원이 다면적으로 평가하고 공관장 후보를 검증하기 위해 외부인사가 포함된 적격심사위원회를구성하는 등 외교관 인사제도 개선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또 전문지식과 외국어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외무고시 제도도 개선할방침이라고 보고했다. 양승현 이도운기자 yangbak@
  • 中 “타이완과 통일일정 서두를것”

    중국은 타이완(臺灣)과의 통일을 서둘러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22일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 당국이 공산당 당원들에게 돌린 내부 회장(回章)에서 중국 통일에 대한 결의를 재차 강조하면서 당원들에게 통일 일정을 서두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중국당국이 지금까지 구체적인 통일시한을 밝힌적은 없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2007년에서 2010년 사이에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져 왔다. 회장에서 중국 당국은 “통일 문제에 대해 당원들은 경솔한 행동을 삼가해야 한다”면서 “국민들이 대만 민진당의 정권 장악에 분노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시위를 벌이는 등 경솔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국민들은 통일 달성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결의와 능력을 믿어야한다”면서 “아울러 국가 전체가 단결을 통해 경제건설에 매진해야 한다”고 회장은 강조했다. 홍콩 DPA 연합
  • [천수이볜의 타이완](中)兩岸관계

    ‘폭풍 전야의 고요’.타이완(臺灣)의 독립을 표방하는 천수이볜(陳水扁)총통 당선자의 행보를 중국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현 상황의 양안(兩岸)관계를 나타내는 타이완 언론들의 표현이다. 천 총통 당선자의 양안정책 기본방향은 중국과 타이완은 ‘2개의 독립된 국가 대 국가’의 특수관계라는 것이다.2개의 중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고,통치하지 않으며,관할권도 갖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다.특히 타이완의 독립과 관련된 사항은 타이완인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리덩후이 (李登輝)의 양국론(兩國論)에 뿌리를 둔 이같은 천 당선자의 입장은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양안관계가 순탄치 못할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 천 당선자가 독립을 표방하고 있지만,상당기간 양안관계를 긴장시키는 자극적인 발언을 자제하는 현상유지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는 게 양안관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그는 정치·경제개혁 등 내정 개혁과 수습을 위해풀어야 할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데다,총통선거 및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 타이완인들이 양안관계의 현상 유지나 개선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 당선자가 20일 기존의 강경 입장을 수정해 중국에 평화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하나의 중국’ 문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당장은 중국과의 긴장 조성이 아니라 데탕트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 할 수있다.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의 쑹추위(宋楚瑜) 후보와 국민당의 롄잔 후보를 지지한 60%에 가까운 타이완인들은 현상 유지나 개선을 원하는 사람들로 볼 수있다.19일 타이완 남녀 92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이 51%,타이완의 독립 주장을 포기하자는 사람이 31%인데 비해 타이완 독립을 선포하자는 사람은 불과 4%에 지나지 않았다고 연합보(聯合報)가 20일 보도했다. 타이완 국립 정치대 우위산(吳玉山) 교수는 “천 당선자의 경우 우선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특히 미국의 지지를필요로 하는 천 당선자로서는 불필요한 양안관계의 긴장 조성으로 불이익을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의 정치분석가 조셉 정 교수도 “중국과 타이완은 현재 불필요한 양안관계의 긴장을 피하기 위해 어휘를 선택하는데 고민하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중국과 타이완간에 양안관계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양측간의 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중국 당국도 섣불리 무력시위 등 양안관계를 긴장시킬 입장이 못된다.올해안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목표로 하는 중국으로서는 양안관계의 긴장 고조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별로 없는데다,타이완도 군사대응은 물론 경제교류마저 중단할 것이라고 밝혀 오히려 중국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 데이비드 즈웨이그 홍콩 과학기술대 교수는 “중국이단기적으로는 타이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자세를 견지하겠지만,장기적으로는 양안관계에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양안관계에는 미국 변수도 있다.단순히 중국과 타이완간의 관계로만 그치는게 아니라,‘동북아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개입을 부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臺北) 김규환 특파원 khkim@. * 양안관계 불안 타이완 증시 급락. 타이완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당선자는 20일 중국과 ‘하나의 중국’을논의할 수 있다며 대(對) 중국 강경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렸다.야당 지도자에서 책임있는 총통으로의 변신을 상징하는 발언으로 받아 들여졌지만 양안관계에 대한 타이완인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 모습이었다. □천 당선자는 이날 ‘하나의 중국’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98년 중국을 방문했던 구전푸(辜振甫) 타이완해협교류기금 회장과 만나 양안관계에관한 경험을 배우겠다고 강조. 분석가들은 천 당선자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하나의 중국’논의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중국과의 동등한 지위’를 중국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 □중국은 타이완 총통선거 사흘째인 이날도 여전히 신중한 반응을 유지.중국언론들은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9월 국민당 총재직을 사임한다는 사실을짤막하게 보도.베이징(北京) 시민들도 선거 결과와천 당선자에 대해 자세히모르고 있으며 별다른 관심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천 당선자는 타이완 독립에 보다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다수 국민들의 견해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19일 지적.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양안관계가 불안정해져 10년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19일 경고.중국 첩보조직과 연계된 한 연구소의 얀 수에통은 천 후보당선은 양안간 긴장관계에 부정적 효과만을 더할 뿐이라면서 “단기적으로는 아무 일이 없겠지만 10년이내에는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타이완 정국과 양안관계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듯 타이완의 주가지수인 자취안(加權)지수는 개장직후 전주보다 271.19포인트(3.1%) 떨어진 8,492.08까지 급락. □천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던 인맥들이 대거 새 내각의 요직을 차지할 것으로 타이완 언론들은 보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리엔저(李遠哲) 전중앙연구원장은 본인이 아직 승낙하지 않았지만 국무총리격인 행정원장 기용이 확실시되고 있다.천탕산(陳唐山)타이난(臺南)현장은 미국통으로 외교부장감으로 꼽힌다.이밖에 민진당 실력자인 셰창팅(謝長廷) 가오슝(高雄)시장,린이슝(林義雄) 민진당 주석,장준슝(張俊雄) 사무총장,린자청(林嘉誠) 전 타이베이부시장 등도 내각에 참여할 것으로 점쳐진다. *국민당 內訌 가속화… 정가 재편 예고. 국민당은 어디로 갈것인가. 지난 51년간 타이완을 일당통치해온 국민당이 총통선거에서 완패,최초의 야인생활에 돌입하게 됨에 따라 국민당의 향배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의 치욕적 패배가 국민당 내홍을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이같은 국민당의 균열은 궁극적으로 타이완 정가 전체의 재편을 예고하는신호탄으로 분석되고 있다. 총통선거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18일 오후부터 국민당 중앙총본부 앞에는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즉각적 주석직 사임을 요구하는 국민당 지지자들의항의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대만 독립론자로 꼽히는 리총통에 대해 그간 정견을 위해 당을 버리고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밀약설이 끊임없이 나돌아왔다. 시위대의 리총통 문책 요구도 이런 의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하지만 이는역설적으로 국민당 내부에 타이완 독립론과 분리반대론이 어느때보다 팽팽히 맞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론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국민당의 반세기 타이완 통치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향후 정국은 명목상의양당체제에서 다당제로의 핵분열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정계재편의 바람이 거셀수록 파편은 거대한 인력풀인 국민당에 집중될 것이다.당장민진당이 대거 두뇌 사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야당경력 10여년만에 집권당으로 급부상,국정운영 경험이 전무한 민진당으로서는 국민당으로부터의 정책브레인 영입이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다. 리총통의 이념적 적자로 평가받는 천 총통 당선자가 리총통의 민진당 영입을 서두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당 창당을 선언한 쑹추위(宋楚瑜) 전 대만성장의 행보도 강력한 변수가될 전망이다.국민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박빙의 차점을 기록한 쑹 후보는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제1야당’ 창당을 공언,그를 지지하는국민당 내부의 부분이탈이 예견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3당간의 탐색전 또는 합종연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향후정국에서 저력의 국민당이 대내외적 도전에 어떻게 맞서나갈지가 관건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양안관계 일지. □1949년12월 국민당,타이완에 망명정부 수립. □55년 미국-타이완,상호방위조약 체결. □58년 중국-타이완,진먼(金門)섬에서 포격전. □71년 유엔,중국의 유엔 대표권 인정. □79년 미국,타이완과 외교관계 단절하고 중국과 관계수립. □87년 타이완,계엄령 해제.양안관계,화해분위기로 반전. □91년 타이완,무력을 통한 본토 수복 정책 변경.중국과의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식. □92년 타이완 해협교류기금회(SEF)-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ARATS),양안간민간문제 검토 시작. □95년1월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 주석,타이완과의 평화통일 ‘8개안’ 제시.타이완도 대안 제시. □95년6월 리덩후이(李登輝) 타이완 총통,미국 방문.중국,타이완과의 접촉단절. □96년3월 중국,최초의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리 총통 재선을막기 위해 타이완을 겨냥해 3차례 미사일을 발사.리 총통,재선. □99년7월 리덩후이,타이완과 중국은 “특수한 국가대 국가관계” 선언. □2000년2월21일 중국,“평화협상 아니면 전쟁 불사”라는 강경노선 표명. □2000년3월18일 천수이볜(陳水扁),제10대 총통에 당선.
  • [사설] 대만의 첫 정권교체

    세계적인 관심 속에 치러진 18일의 타이완(臺灣) 총통 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偏)후보가 당선됐다.타이완이 50년 동안의 국민당 통치를 끝내고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것이다.49세의 젊은 지도자로 새역사의 장(章)을 펼치게 될 천 후보의 총통 당선을 계기로 타이완이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타이완 국민들이 천 후보를 선택한 것은 국민당의 50년 장기집권 과정에서‘헤이진(黑金)’으로 상징되는 금권·폭력정치가 난무한 데 염증을 느껴 변화와 개혁을 열망했기 때문이다.게다가 국민당의 분열도 천 후보 당선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특히 타이완의 민주주의는 지난 50년 동안의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에 비해 그다지 발전하지 못해 왔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였다.한국과 인도네시아에 이은 이번 타이완의 정권교체는 타이완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확산시킬 계기가 될 것으로 세계는 기대하고 있다.그동안 타이완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천 총통당선자의 경력과 타이완 국민들의 능력이 이같은 기대를 실현시켜 나갈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천 총통 당선자는 양안(兩岸)간 평화유지,지속적인 경제 성장,금권·폭력정치 청산 등 수많은 난제를 눈 앞에 두고 있다.더욱이 중국 당국은타이완 총통 선거를 앞두고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는 후보가 당선될 경우무력 대응할 것이라는 위협을 계속해 왔다.타이완 출신인 천 총통 당선자는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통일 방안을반대하며 독립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만약 중국이 무력 대응을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미국의 개입은 불가피할것이며,미·중관계의 악화는 대만해협은 물론 동북아 및 세계 평화까지 위협하게 될 것이다.우리는 중국과 타이완 당국이 전쟁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정면 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지 않는다.당분간 양안관계의 긴장은 어쩔 수 없겠지만 당국간의 직접 대화를 통해 충돌을 피하고 평화적인 해결의 길을 찾게되기를 바란다. 특히 천 총통이 섣불리 독립 추진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양안관계가 크게 악화,해외투자자 이탈 등으로 경제가 파탄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적극적인 중재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국이 천 총통 당선 후 즉각적인 무력 대응 대신 앞으로 천 총통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였고,미국도 중국을 자제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천 총통의 당선으로 우리나라와 타이완의 관계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과의 관계 증진과 더불어 한국과 타이완의 협력은 양안 모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 [대한광장] 중국과 타이완의 이혼(?)

    마오쩌둥과의 내전에서 패한 장제스가 국민당 간부·군대와 200만명에 이르는 난민을 이끌고 대만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국민당의 집권은 반세기가 지난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오늘 대만에서 총통선거가 실시됨에 따라 정권교체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특히 각 후보들의 대륙정책 차이점 때문에 선거 이후 전개될 양안관계가 초점으로 부각하고 있다.과연 대만인들은본토와의 관계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중국의 대만 독립에 대한 입장,대만의 중국 통일에 대한 입장과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 가능성을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의 대만 독립 불가 입장은 확고하다(三不政策).96년 첫번째 총통선거에서도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무력 시위를 벌임으로써 중국은 대만을 위협한 바 있다.당시 미국은 항공모함을 파견함으로써 내정간섭을 중지하라는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민당의 롄쟌(連戰),민진당의 천쑤이볜(陣水扁),무소속의 쏭추위(宋楚瑜)후보는 양안관계에 대해 각각‘양국론’ ‘대만독립론’ ‘준국제관계론’을견지하고 있다.중국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천 후보에 대한 반감을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대만의 안정을 볼모로 낙선을 위한 영향력 행사를 꾀하고 있다.중국은‘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문제’라는 백서를 통해 대만이무기한 통일 협상을 연장한다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표시한 바있다. 대만의 안정에 호소하고 중국과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인 후보가 쏭추위이고,명통암독(明統暗獨)을 염두에 두는 롄쟌은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거스르지않고 있다.이에 따라 중국은 부패 혐의로 인기가 급락하고 있는 쏭추위 대신당선이 가능한 차선책으로 롄쟌 후보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대만 거주인들의 본토와의 통일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대만인 대부분은 굳이 중국과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한다.중국 본토보다 월등한경제력을 보유한 대만은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에 대해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통일이 되면 본토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사회간접시설에투자하기보다는 현금을 보유하는 등 그동안 통일에 대한 애착을 보이던 대만인들이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그동안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고 해도 사회주의와의 불안한 동거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정서를 무시할 수없다.이런 대만인의 정서를 파고 들고있는 것이 천쑤이볜의 선거전략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만 독립 입장에 대해 실질적인 무력 침공으로 대응할 것인가.79년 중국은 베트남을 응징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침공했다가 망신만당한 경험이 있다.무엇보다도 육군 위주의 중국이 전쟁 발발시 제공권에서대만에 대해 우위를 보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물론 미국의 참전을 불러일으켜 중·미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게 되는 상황 또한 중국은 원하지 않을것이다.동북아 안정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이 지역의 일본과 남·북한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중국이 무력으로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사일 발사,해상훈련,삼군훈련 등으로대만을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있다. 중국의 전인대(全人代)에 참가하고 있는 주룽지 총리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대만 독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마치 이혼하고자 하는 아내에게 무력사용을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혼인법과 국제법이 다르다는 것을 내세운 주 총리의 답변이 재치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싫다는 파트너를 억지로 붙들기 위해 어떤 매력을 발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육체적(경제력)으로,정신적(중화인)으로 아무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도망칠 기회만 노리는 별거 중인 아내를 어떻게 붙잡아둘 수 있겠는가.중국으로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강압적인 자세가 가져올 사랑의 상처를 감내할 수 있는 상호간 관용의 한계를 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 [타이완 총통선거] D-4일 이모저모

    ‘부동표 23%를 잡아라’ 18일 타이완(臺灣) 총통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막판 부동층 끌어안기에 나섰다.세후보가 1% 안팎의 간발의 차이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말 수십만 인파를 동원,세과시를 하는가 하면 매표행위가 기승을 부려선거가 혼탁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對)중국정책인 양안(兩岸)정책,즉 통일정책이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중국이 최근 특정 후보가 당선될 경우 무력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타이완 정국에 때아닌 ‘북풍’이 불어닥치자 선두 세후보는 일제히 ‘독립선언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측 불허의 혼전 케이블 뉴스채널인 TVBS가 7일 공개한 여론조사(오차 한계 2.1%)결과,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49)후보가 26%로 선두를 달렸고 국민당의 롄잔(連戰·64) 후보와 무소속의 쑹추위(宋楚瑜·58)가 각각 25%,24%로 바짝 뒤┌欲? 있다.부동표가 23%나 됐다.만년 3위를 달리던 롄이 최근 국민당의 막판 공세에 힘입어 급부상,현지에서는 롄-천 2강구도로 좁혀졌다는분석도 나오고 있다. 롄,천 후보진영은 최대의 인파를 동원하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12일 최후의주말 대결전이 벌어진 남부 가오슝(高雄)의 중정(中正)체육관 앞과 시립미술관 광장에는 각각 롄과 천 후보측이 동원한 30만여명의 유권자들이 몰려대만 선거 사상 최대 인파 동원 기록을 세웠다고 홍콩 명보가 13일 보도했다 또 대만 인권협회 차이 숭 링 회장은 선거유세가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매표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협회에 따르면 자기 차에 특정후보지지 깃발을 내걸고 달리면 1,700 대만달러(한화 약 6만3,000원)을 받고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1,000 대만달러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민진당 관계자는 20만∼30만표가 승부를 가를 것으로 예상했다. ●최대 쟁점은 양안문제 세후보는 11일 열린 마지막 정견 발표회에서 자신들의 중국정책을 알리는데 주력했다.롄 국민당 후보는 중국과 대등하고 상호존중관계를 유지하고 독립선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중국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천 민진당 후보는 “중국이 무력공격을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독립을선언하지 않겠다”고 중국의 무력사용 발언으로 불안해진 민심을 다독이려애썼다.국민당에서 탈당,무소속으로 출마한 쑹후보는 유일하게 대륙(중국 호남성) 출신으로 중국과는 양국론보다 완화된 ‘준국가관계’를 주장했다.동시에 중국과 상호불가침조약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국안정이냐 첫 정권교체냐 롄 후보는 리덩후이(李登煇) 총통의 후계자로집권당의 프리미엄을 안고있어 막판으로 갈수록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리 총통의 정책노선 내에서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돼 정국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타이완 50년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내세우고 있는 천 후보는 변호사출신으로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여당의 표밭으로 인식돼 온 농어촌과 도시빈민층,교육정도가 낮은 유권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특히 10일 타이완 최초의 노벨상(화학상) 수상자인 리위안저(李遠哲) 중앙연구원장이 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천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롄 후보와 국민당 내 차기 총통감으로 꼽혔던쑹 후보는 대륙 출신이라는점이 대륙과 대만 출신 유권자들간에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 “한반도통일 中-臺灣보다 빠르다”

    [홍콩 교도 연합] 한반도 재통일은 평양측에 의해 세워진 각종 장애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타이완(臺灣)간의 통일보다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홍콩의 한유명한 풍수(風水) 대가가 전망했다. 총 드니스 입센이란 이름의 이 풍수 전문가는 최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2000년과 이 이후의 동북아 국가들과 세계정세를 전망하면서 그같이 말했다. 올해 62세로 상하이(上海)태생인 총은 중국과 대만간에는 21세기중 아무런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경제관계도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양안(兩岸)간 통일은 중국의 운세가 오는 2004∼2024년간의 새로운 20년 주기중에는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2024년 이후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타이완 문제는 앞으로 3∼4년내로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중국과 대만의 통일은 한국과 북한간의 통일보다 뒤늦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총은 또 내년 3월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에 언급,국민당 후보인 현 부총통 롄잔(連戰)이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이 오는 2004년에 새로운 지도자를 갖게될 것이며,이 “위대한 지도자”가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여건을 크게 개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일본은 이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로 오는 2004년과 2024년간에 “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 커다란 영광”을 얻게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로써일본은 이 기간중 미국을 능가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새로운 세기중 세계의 전반적 상황에 언급,장수(長壽)와 기술혁신과 사회안정이 뚜렷한 3개 추세를 형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의열 독립투쟁] (16) 조명하 의사

    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0분경 대만 타이중(臺中)시 다이쇼죠(大正町)도서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대만주둔 일본군 검열차 육군특별검열사 자격으로 대만을 방문한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자육군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爾宮邦彦)를 환영하기 위해서 동원된 인파들이었다. 바로 그 시각 한 청년이 군중을 헤치고 구니노미야가 탄 무개차를 향해 뛰어들었다.청년이 단도를 빼어들고 구니노미야를 겨누자 무개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으며,시종무관 오누마(大沼)는 몸으로 구니노미야를 비호하였다. 청년은 구니노미야를 향해 힘껏 단도를 던졌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맹독이 묻은 단도는 구니노미야의 왼쪽 어깨를 스친 뒤 운전사의 등에 맞고 떨어졌다. 거사후 청년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후 현장에서 체포되었는데 그가 바로 조명하(趙明河)의사다.구니노미야는 이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1월 27일사망하였다. 조 의사는 1905년 5월 황해도 송화군 태생으로 송화보통학교 졸업후 집안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고 친척이경영하고 있던 한약방에서 일하면서 독학(獨學)으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어 등을 공부하였다.5년여 동안 한약방에서 근무하면서 틈틈히 실력을 쌓은 조 의사는 1926년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군청 서기 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당시 군청 서기는 상당한 실력을갖춘 엘리트로,경제적으로도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해 ‘6·10만세의거’,송학선(宋學先)의 ‘금호문(金虎門)의거’로 조선민중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몸으로 느낀 조 의사는 어렵게 합격한군청 서기직을 3개월만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하였다.조 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고 판단,국외에 나가서라도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조 의사는 아키카와 토요오(明河風雄)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고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낮에는 회사원·점원으로 일하였고 밤에는 오사카상공전문학교(大阪商工專門學校)를 다니면서 국제정세를 파악하였다.일본식 이름 아키카와 토요오(明河風雄:명하풍웅)은 본명 ‘명하’를 일본식 성(姓)으로 바꾸고 ‘의로운 일로써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겠다’는 의미의 ‘풍웅’을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이는 조 의사의 독립투쟁 의지가 담긴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활동에 한계를 느낀 조 의사는 1927년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키로 하고 이 해 11월경 기착지인 대만에 도착하였다.조 의사는 대만에서도 역시 일본인에 의해 자행되는 수탈과 행패를 눈으로 확인고는 당시 대만 총독 우에야마(上山)를 처단하고자 하였다.조 의사는 일본인 행세를하면서 타이중시에 있던 일본인 소유의 부귀원(富貴園)이란 찻집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단도를 구입,독극물을 발라 놓고 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1928년 5월에 일본 천황의 장인이며,육군대장이던 구니노미야가대만주둔 일본군의 검열차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처단키로 결심하였다.구니노미야는 일본 육사·육군대학을 졸업한 이후 일본 육군에 투신,육군참사관을 거쳐 1928년 당시 육군대장으로 군(軍) 내의 실력자였다. 사전에 일정을 입수하여 검토하는 한편 거사현장을 직접 답사한 조 의사는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0분경 수많은 인파를 뚫고 돌진,그를 처단하였다.조 의사의 의거는 당시 조선과 똑같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의 식민지 차별정책에 대해서 울분에 차 있던 대만 군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편 조 의사의 신원이 조선인으로 밝혀지자 조선총독 야마니시 한조(山梨半造)는 대경실색하여 대만총독과 연락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다.조선총독부에서는 조 의사가 17세에 고향을 떠날 때까지는 요시찰 인물이 아니었으므로조선에는 아무런 연루자나 교사자가 없다고 단정하였다.그러나 대만총독부에서는 범인의 자백과 왕복 서류,기타 정황에 의하면 조 의사에 향리에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5월말경 대만총독부 보안과장과 경부 2명을 파견,조사를벌였으나 공범검거에는 실패했다. 조 의사의 재판은 오랜 시일 예심을 거쳐 1928년 7월 7일 대북고등법원(臺北高等法院)에서 가네코(金子) 판사의 단독심으로 진행되었다.변호인은 대만변호사협회 소속 일본인관선변호사 아보(安保)와 가네코(金子)가 선임되었지만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인 관선변호사가 재판정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뻔한 것이었다.재판부는 일본 형법 제 75조 ‘황족위해죄’,즉 “황족에 대하여 위해(危害)를 가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위해를 가하려 한 자는 무기징역에 처함”을 적용하여 조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그 해 10월 10일 오전 10시 12분 조 의사는 순국하였는데 그 때 의사의 나이 스물 넷이었다. 일본 황족이 대만에서 상해를 입은데 대하여 대만총독은 황송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여 사직하기에 이르렀다.일제는 이 사건을 극히 중요시하여 언론보도를 철저히 통제,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뒤인 6월 15일에야 비로서 신문지상에 공개되었다. 조 의사는 일본 국왕의 장인 구니노미야 한 사람에게 칼을 던졌으나,이는조선민족 전체의 의분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조 의사의 의거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조선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조선민중들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달게 받고 있다”는 일제의 선전이 허구라는점과 조선인들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김순석 독립기념관 연구원] - 조명하 의사 후손근황과 기념사업 24세로 순국한 조명하 의사는 슬하에 일점 혈육을 남겼다.조 의사의 외아들 혁래(赫來·73)씨는 태어난지 1개월만에 부친 조 의사가 고향을 떠남으로써 부친의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일제하 황해도 은율에서 농업학교를마친 혁래씨는 해방후 평양공과대학 4학년 재학중 6·25를 만나 월남하였다. 취직보다는 개인사업에 손을 대 최근 2∼3년전까지도 사회활동했었다.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은 모두 해외에 나가 있고 세 딸은 모두 한국에살고 있다. 장남 경환(京煥·43)씨는 호주에서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고,2남 정환(正煥·40)과 3남 국환(國煥·39)씨는 같이 미국 LA에서 식당업을 하고 있다.혁래씨 가족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는 드물게 사는 형편이 괜찮은 편이다. 80년대초에 결성된 조명하의사기념사업회는 전 통일원장관 홍성철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데 홍씨는 황해도 은율출신으로 조 의사와 동향인 셈이다.기념사업회는 지난 88년 과천 서울대공원 정문 앞에 조 의사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매년 순국일인 10월 10일 추모제를 주관해오고 있다. 78년에는 대만 교포들이 한교(韓僑)소학교 내에 동상을 세운 바 있다.혁래씨는 “월남할 때 부친 관련자료를 하나도 챙겨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하루빨리 통일이 돼 이북에 있는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마카오 20일 반환] 의미·전망

    오는 20일 0시를 기해 마카오(澳門·아오먼)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다.지난 1557년 포르투갈 상인이 청나라에서 마카오를 조차한 이후 442년만이다. 중국은 지난 97년 7월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반환받은 이후 서구 열강에 빼앗긴 마지막 영토 마카오를 돌려받음으로써 통일의 기반을 닦는 동시에 새 세기에 진입하는 역사적인 거보를 내딛게 됐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확히 12월 19일 자정 직전 개최될반환식에서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마지막 총독 바스코 비에이라(59)는 마카오 특별행정구(MSAR)초대 행정장관 당선자 에드먼드 호에게 주권을 넘기게 된다.이 순간 홍콩과 마찬가지로 마카오는 향후 50년간 1국가 2체제(一國兩制)와 고도자치라는 새로운 실험에 들어간다. 중국에 있어 마카오 특별행정구(MSAR)의 탄생은 타이완의 흡수통일 문제,그리고 포르투갈이 회원국으로 있는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개선 등 국제정치면에서,그리고 자국의 경제,사회,문화적인 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가장 커다란 의미는 19세기 서구 열강에유린당한 치욕적인 식민지 역사의청산.대만 영토를 통일하고 새 천년 세계 중심축에 나서려는 중국은 ‘새 천년 시작 10일 전 주권 회복’에 대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음은 경제.주장강(珠江)과 시장강(西江)사이의 삼각주에 위치,대표적 공업지역인 광둥(廣東)성을 서방세계와 연결하고 있는 마카오의 지리적위치는중국에 엄청난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홍콩이 광둥성 물류·수송의 동쪽 거점이라면 마카오는 서쪽 거점이라고 할 수있다.특히 최근 광둥성 서부에 전자산업이 발달,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난제도 만만치 않다.마카오의 번영 자체가 카지노 사업을 기반으로 한 데다 트라이어드(三合派)등 이에 기생하는 조직 폭력배들의본거지가 마카오로 조직 범죄가 만연해있기 때문이다.마카오에서 외국기업의 안정된 경제활동과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치안유지에 어느 정도 성공하느냐가 마카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87년 반환 협정 체결이후 포르투갈과 중국은 93년마카오 특별행정법기본법을 제정,연착륙과정을 거침으로써 정치적인 면에서는 어느정도 순항이 기대된다.그러나 행정경험이 전무한 초대 행정장관을 비롯,공무원 사회의전반적인 행정 능력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특별행정구의 공무원은 7개부처에 1만7,000여명.반환 후 행정공백을 우려,80년대 초반부터 공무원의 현지인화 작업을 추진해온 마카오 정부는 93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무원 교체작업에 나서 95%의 공무원을 현지인으로 교체했다.그러나 문제는 너무 젊은 층이 대거 행정직에 기용됐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인과 현지 마카오인 사이 각 분야에 걸쳐 교량역할을 해온 1만여혼혈 매카니즈에 대한 향후 처리 문제도 향후 남은 과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반환 동시 中해방군 1,000명 현지 주둔 마카오 주권반환과 동시에 현지에 주둔할 중국 군대 조직은 중앙군사위 소속 해방군 부대 1,000여명. 사령관은 홍콩 주둔군 사령관에 비해 직급이 한 단계 낮은 류아오쥔(劉奧軍) 소장(한국의 준장격)으로 지난달 하순 100여명의 선발대가 이미 마카오에진입했다. 주둔군 구성의 주축은 육군.일부 해·공군 병력이 보강된 형태다.장갑차,89식(式) 5.8㎜ 기관총 등 경무기(육군)와 헬기 1∼2대 (공군),고속 순찰정1척(해군) 등을 갖추게 된다. *마카오 특구 초대 행정장관 에드먼드 호마카오의 중국 주권 귀속과 함께 마카오 특별행정구를 이끌어 갈 초대 행정장관 에드먼드 호(44)는 홍콩의 둥젠화(董健華)초대 행정장관과 마찬가지로중국 정부의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친 중국파. 홍콩의 둥젠화장관이 97년 중국 중앙 정부로부터 홍콩이 그동안 누려온 정치적 자유 등 민주제도를 유지시키는 이념적인 ‘부담’에서 출발했다면 호장관은 마카오의 ‘치안개선및 경제활성화’라는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집무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지난 5월15일 ‘199인 선거위원회’투표에서 마카오 은행감사인 스탠리 아우(區宗傑·58)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그는 취임사에서도 조직폭력배 천국인 마카오의 범죄를 퇴치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문제는국가재정의 60%를 담당하면서 마카오 주민 42만명 가운데 10만여명을 먹여살리고 있는 카지노 산업과 그에 연계된 폭력마피아단을 어떻게 휘두르는지의여부다. 호장관은 마카오의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으로 성공한 은행가.이점에서 마카오 주민들의 신임속에 직무를 수행한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특히 그의 아버지 호 인(何賢)은 중·일 전쟁중 마카오내 몇안되는 전설적인 항일유격 영웅이었다.타이펑(大豊)은행 그룹을 이끌면서 지난 83년 사망할때까지 30여년간마카오 지도층으로 활동했다. 중국 정부의 호 집안에 대한 신임도 대단해 지난 84년 다이풍 은행이 경영위기를 맞았을때 차이나 뱅크의 자금으로 위기를 넘기게 도와줬을 정도다. 호 장관 역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파다.지난 9월30일 중국공산혁명 50주년 기념에 맞춰 밝힌 메시지에서 “마카오 주민들의 보금자리는 모국(중국)의 안전한 보호로만 지켜질 수 있으며 모국의 마카오 주권 회복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우리의 땅에서 사는 의미를 되찾은 것이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요크대를 졸업한 그는 회계사로,자동차·시멘트 회사의 사장·회장으로 일했다.또 정치활동도 활발히 해 중국 국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인‘전인대(全人大)상무위원’을 연임중이며 정치협상회의(政協)위원,마카오특구 주비위 부주임등도 역임했다. 마카오에서는 입법회(의회)부의장을 11년째,마카오 은행협회장도 14년째 맡고 있다.그의 이같은 활동에도 불구,실제 행정수행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이마카오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김수정기자] *새천년에도 세계 식민지 60여곳 마카오의 중국 반환으로 아시아의 식민지 역사는 끝이 난다.하지만 새천년에도 종주국의 지배를 받는 속령들이 60곳이나 존재한다.미국 영국 프랑스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 8개국이 18∼20세기 초에 걸친 확장정책의 과실들을속령이나 자치령의 형태로 유지,직·간접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다.남미 기아나와 남태평양의폴리네시아·뉴칼레도니아 등 16곳이다.영국은 대서양의 버뮤다·케이만 군도,영국 해협의 챠넬 아일랜드 등 15곳이다.미국은 카리브해의 버진 군도,태평양의 괌·사모아·북마리아나,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 등 14곳,덴마크는그린란드 등 2곳,노르웨이는 3곳,네덜란드는 카리브해의 안틸레스 등 2곳을갖고 있다.호주와 뉴질랜드도 각각 6곳과 3곳에서 식민통치를 하고 있다. 유엔은 산하에 ‘탈식민지 이행 특별위원회’를 두고 새천년이 되기전에 현존 식민지들을 모두 해방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았지만 식민지 주민의 반대와 강대국들의 무관심으로 공허한 목소리만 내고 말았다.많은 나라들이 모험을 건 ‘독립’보다는 선진국의 그늘에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는 ‘잔류’를희망하고 있다.종주국들도 국방·외교 등 일부 권한을 제외하고는 광범한 자치를 인정하고 있다.
  • 中·日 외교마찰 심화

    [도쿄 연합]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東京)도지사의 대만 방문을둘러싸고 일본과 중국간 외교 마찰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외교부의 왕이(王毅)부장조리(차관보)는 15일 다니노 사쿠다로(谷野作太郞)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이시하라지사의 대만방문에 대해 “중국의통일을 방해,지극히 나쁜 정치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재발 방지를요청했다.또 쑨위시(孫玉璽)중국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시하라지사가대만 방문중 대만을 국가로 일컬은데 대해 “반중국적인 본질을 거듭 드러내중국통일의 대사업을 파괴하는 악랄한 의도”라며 강한 분노를 표명했다. 베이징(北京)시는 오는 18일로 예정된 도쿄도와 베이징시의 우호기념행사를전면 중지하겠다고 이날 통보했다. 중지 이유는 이시하라지사의 대만 방문에대한 반발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이시하라지사의 대만 방문은 지역적 실무교섭이며 지사의 발언도 일본정부의 외교적 입장을 대변한것이 아니다”며 반박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도 “인도적인 입장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중국의 과민 반응을 일축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지난 13일부터 3일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대만 관계자들과의 회담에서 대만을 ‘국가’라고 표현하는 등 중국측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 [새천년의 국가비전과 전략] 대토론회 해설

    21세기의 변화와 도전을 어떻게 하면 도약의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金泰東)와 새천년준비위원회(위원장 李御寧)는 8∼9일 이틀동안 서울 롯데호텔에서 새 천년의 의미와 과제를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새 천년의 국가비전과 전략’이라는 토론회에서는 냉전과 분단체제속에 일그러지고 변형된 정치경제 구조와 사회시민 문화를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모습으로 회복해 나가기 위한 총론과 16개 부문별 진단·대안이 제시되고 논의됐다. 주제 발표자들은 세계화·지식정보화·민주화라는 21세기의 화두를 놓고 개방화·투명화,시민 직접참여 및 공동체의 복구 등을 주창했다.이틀동안의 발표내용을 대주제별로 요약,정리했다. [편집자주] 새 천년,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어떻게 변화할까-그것은 민주주의가 꽃피는 다원적 공동체 안에서 정보가 물처럼 흐르고 누구나 복지 혜택을 누리는 세계 속에 우뚝 선 통일한국의 모습으로 요약된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새천년준비위원회가 8∼9일이틀동안 대토론회를 통해 제시한 ‘새 천년 5대 국가비전과 10대 전략’은 이같은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이는 다가올 21세기를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정책위와 준비위가 설정한 5대 비전은 다원적 민주주의와 역동적 시장경제,창조적 지식정보국가,협력적 공동체사회,아시아 중추국가이다. 이러한 국가비전 아래 ‘글로벌 혁신 한국 21’을 목표로 한 10대 전략이 마련된다.5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분야별 주요 실천과제라 할 수 있다.생산적 화합정치와 선도적 정부혁신을 비롯해 지속적 경제개혁,지식정보화와 교육혁신,생산적 복지체제,민주적 시민생활세계,공생적 환경공동체,문화적 다원주의,평화적 민족통합,진취적 세계참여 등이다. 주제별로 보면 21세기의 정치는 관용과 화해·공존을 기초로 국가로부터 시민사회로 권력이 이전된 시민민주주의와 세계적 현안에 적극 동참하는 글로 벌 민주주의를 지향한다.시장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경제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도 역동적 시장경제의 주요 목표다. 인적자본 중심의 열린 전자민주주의의 사회를 목표로 정보의 남용과 사생활 침해가 근절되고,지식정보 자원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개방적 정보사회로 나아간다.중산층과 서민의 풍요로운 삶을 지원하고,빈곤‘소외‘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안전사회 구현을 종착점으로 하고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장점을 최대로 살려 대륙과 해양을 잇는 아시아 중심축으로의 발전도 꾀한다. 이를 위해 토론회에서는 금세기의 ‘실리콘 밸리’에서 ‘카본 밸리’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우리의 지적자산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현 광역시제도를 전면 재검토,기초단체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쏟아졌으며,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FTA)협정의 장기 추진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또 지금의 부산항,경부축 외에 광양항,서남축을 신속히 개발해야 한다는 ‘2축2항체제 구축’ 제안도 있었다. 이밖에 공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로 이행하는 3단계 방안을 공식화하자는 견해 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와 21세기 우리 사회의 청사진이 마련되는 계기가됐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국토 균형발전 모형■林岡源 서울대환경대학원 교수●토지개발이익 제한 국토 불균형 문제가 정부의 꾸준한 정책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가 없는 것은 토지 제도상의 결함 때문이다. 현행 국토·도시 관련 법령제도는 산업화 이전의 불완전한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땜질식 처방 위주로 개정돼 왔기 때문에 규정의 복잡화와 제도간 중복·상충 등의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이는 일반 경제부문과 함께 국가경제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경제 부문(토지)의 핵심 동인인 ‘개발이익’을 도외시한 정책추진에 기인한 것이다.이처럼 낙후된 국토관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발이익을 실효성있게 규제할 수 있는 근거마련을위해 현행 토지소유권에서 법제적으로 개발권의 분리를 시행해야 한다. ●편향적 국토구조 극복 동북아시대를 맞이한 현시점에서 국토 균형발전을 가장 효율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전략은 서남축을 조속히 개발하는 것이다. 기존의 경부축(서울∼부산) 중심의 개발전략은 태평양∼일본경제권을 대상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북아 시대 도래와 함께 그동안 소외됐던 서남축의 개발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서남축은 최소한의 인프라 시설투자로 발전기반을 조성하고 해외시장과의 접근성으로 제2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산업거점축으로,12억 인구의 중국대륙과 접하고 태평양 기간항로와 연결되는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남축의 개발은 동북아 시대의 개막과 함께 한반도가 동북아 산업·물류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선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남축 개발을 통해 경부축과 서남축,부산항과 광양항의 2축2항 체제로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를 구현하는 국토개발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 새 천년의 시장경제 (曺尤鉉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장)●21세기 역동적 경제와 재벌개혁 21세기는 단일화된 국제금융시장과 다국적 기업의 국제간의 자유로운 이동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새로운 발전단계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소는 시장의 작동을 뒷받침하는 사회경제적 기초 요소의 부재이다.사회적 규범의 확립과 시장규율의 제도화가 선행되지 않고는 시장의 효율적 기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 천년을 맞이하여 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의 재벌체제로는 더 이상 한국경제를 이끌고 갈수 없기 때문이다.그 이유로는,첫째 재벌은 계열사간 간접적 순환투자를 통해 가공자본에 의한 계열사 지배라는,반(反)사유재산권제도에 의거하고 있다는 점이다.둘째 재벌이란 기업집단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집단과 개별기업간의 경쟁으로 성립해 공정한 경쟁이 될수 없다.셋째 재벌의 의사결정 구조가 전근대적이다. 따라서 시장 정합적 사유재산권 제도를 정립하고 선단식 경영구조의 획기적인 조정,경영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하는 기업지배 구조,새로운 세계환경하에서 고객수요에 신속히 부응할수 있는 기술력 확보 등이 충족되는 방향으로 재벌개혁이 계속돼야 한다. ●생산적 복지참여와 협력적 노사관계 21세기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 혁명의 진전에 따라 유연성,적응력,신속성 측면에서 우위를 지닌 네트워크형 중소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개인의 창의성에 바탕을 둔 벤처 창업가가 기업과 연구기관 사이에 공동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공동으로 정보수집,기술개발에 협력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추어 나갈수 있도록 정부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선진 주요국에서 경험하였던 과다 복지로 인한 폐해를 시장 친화적이고 생산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립·자조·자활을 강조하는 ‘생산적 복지체계’를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복지정책 ■金相鍾 서울대 교수●친환경 정부의 건설 우리 국토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친환경 정부’의 건설이 필요하다.소극적인 환경정책에서 탈피해 경제 사회 국토 교육 등 연관 분야의 정책과 조화를 이루는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경제 에너지 정책 등에서는 현재의 공급 위주에서 수요관리 위주의 정책기조로 바꾸어야 하며,자연과 인간을 함께 고려하는 생태학적 개념을 도입해 환경 용량(자연의 자정능력)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유해성 여부가 밝혀지지 않아규제기준에 없다는 이유로 자연 생태계에 무차별 방출되는 물질이 아직도 많다.따라서 생태계에 직접 피해를 주는 유해물질을 전체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독성 개념을 환경기준으로 도입해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적 환경기준을 주도적으로 도입해 ‘그린라운드’에 대비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소비를 친환경적으로 바꿔야 하고,특히 조세 구조를 환경친화적으로 하기 위해 일부 선진국에서 제기하고 있는 환경세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건강증진 헌장 제정 새 천년 보건복지의 환경변화는 국민의 평균수명 증가로 노인들의 보건복지 수용의 증대와 전국민 사회보험화로 사회보험의 재정비 필요성이 대두되고,국민 최저생계 보장과 국민건강권 보장에 대한 국가책임이 증대될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생산적 복지’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실용주의적인 관념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선진국형 사회안전망을 확립하고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 보험료를 하나의 독립된 기구에서 징수·관리하는 사회보험의 효율적 통합운영이 필요하다.또 국민연금의 개혁과 재정의 항구적 안정화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들의 건강욕구 충족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질병발생 위험요인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새 천년 국민건강증진 헌장’을 제정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발전 ●새천년의 정치패러다임(白京男 동국대정치학과교수) ‘대의 민주주의·참여 민주주의의 병행발전’,‘고도의 개방성 및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사회’가 21세기의 바람직한 모델이다. 우선 대의 민주주의의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법과 제도의 정비,여성의 정치참여 개방이 주요 요소다.그 다음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국민이 참여하는 행정 강화,주민 참여 지방자치,정보통신을 이용한 참여민주주의의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또 국가·시장·시민사회의 대안적인 발전모델의 구축이 필요하다.이는 과거 국가주도의 발전 모델을 극복하고 국가·시장·시민사회간 상호 보완성의 원리에 입각한 ‘공동체적 시장에 기반한 민주주의 모델’을 의미한다. ●사회발전의 방향(成炅隆 한림대 사회학과교수) 새천년의 사회는 ‘미성숙한 시민사회’‘노사 대립’‘중산층 문제’‘지역대립 및 남북대립’이라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에서 그 극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다양한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사회구성원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개방성을 지녀야 하고,동시에 불평등과 이질성으로부터 촉발되는 분열·해체적 경향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낼 단단한 ‘사회적 연대성’을 지니는 사회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특히 국가는 시민사회와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형성,사회 전체의 문제해결 능력을 높여나가야 한다.또 ‘협의주의’와 ‘연방주의’의 정신을 살려 지역화합과 남북통일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새 천년 의 새로운 사회통합 방식의 강구를 통해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사회적 통합을 이뤄나가는 것이 21세기 사회의 발전방향이다. * 과학기술 발전방향 ●任志淳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과학기술은 앞으로 한 국가의 경제능력과 산업수준을 결정지을 것이다.국민 삶의 질과 국가의 문화적 수준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새 천년 과학기술의 핵심이 될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신소재를 집중육성,국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정보산업과 유전공학 등 생명과학은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 경제를 이끌 견인차가 될 전망이다.농업·식품·환경관련생물공학 분야는 대규모 연구비가 필요치 않아 선진국들에 비해 경쟁력을 지닐 뿐 아니라 중국 등 동아시아 시장확보도 용이해 좋은 전망을 갖고 있다. 둘째,국가정보체계의 확립도 시급하다.각종 정보의 효율적 관리와 유통을 위한 공공 기관간의 분업·협업체제를 미래 지향적으로 지식기반 시대에 맞게 구축해 나가야한다는 것이다.정보의 활용,유통체계의 효율화를 통해 행정을 포함한 사회 전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현재 정보기술의 핵심이 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한국의 산업수준은 대만,인도,싱가포르,이스라엘보다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취약한 기초과학분야에도 눈을 돌려 체계적인 국가적 육성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기초과학을 상품화하는 상업화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첨단기술의 개발은 미래산업을 좌우하고 있다. 넷째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창의적인 교육풍토와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창의적인 교육 없이 진정한 과학기술의 도약은 생각할 수 없다.환경문제·생태계위기에 대해서 이해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다음세대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과 관심을 집중해 나가야 한다.현세기의 실리콘밸리가 산업기술을 주도한다면 다음세기는 분자와 원자를 단위로 하는 ‘나노 테크놀로지’의‘카본 밸리’가 번영과 흥망을 주도할 것이다. *세계질서와 남북통일 ■새로운 세계질서(安錫敎 한양대 경제학부교수) 세계경제는 ‘하나의 열린 사회’를 향해 빠르게 통합되고 있다.우리 의식·관행·제도를 ‘전세계적인 기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쳐나가는것이 필요하다.정보화 진전,기업활동의 범세계화,다자간 교역규범의 확산에 따라 주권개념과 경제적 국경이 무너지면서 국제경제의 상호 의존성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역내통합이 강화되는 지역주의화는 강화되고 있다.이 과정에서 지역통합체를 결속하는 정치 중심세력과 지역통합체 간의 경쟁·갈등이 커갈 가능성도 크다. 이런 상황속에서 한국은 일본·중국을 포함한 주변국가와의 쌍무·다자 관계 강화노력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시장의 힘이 정부를 넘어서고 각국 정부의 경제 주권 및 통제력 상실도 세계화의 부산물로 더 두드러질 수 있다. 개별국가는 세계화·정보화과정에서 오는 불확실성 극복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남북통일로 가는 길(權萬學 경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북한의 군사주의는 한반도문제를 국제화해 남북의 자율성을 제약해 왔다.통일은 이런 제약을 극복하고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이다.‘공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라는 단계적 과정은 통일로 가는 바람직한 길이다. 남북 공존협력단계는 화해협력을 포함,평화공존 체제 및 공존규칙 확립을 통해 냉전 잔재를 걷어내는 과정이다.다음과정인 남북연합단계는 남북간 경제격차를 줄이고 군축을 실행,남북통일의 본궤도에 진입하는 단계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서 이를 모태로 ‘평화공동체’를 설치,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등 교류와 협력의 수준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 臺灣 차기총통 출마자들“1국가 2체제 수용 안할것”

    [홍콩 연합] 내년 3월 실시되는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중국의 통일방안인 ‘1국가 2체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27일 보도했다. 대만 대륙위원회의 쑤치(蘇起) 주임은 26일 기자회견에서 누가 총통이 되어도 국가안보와 양안의 동등한 관계 등에 바탕을 둔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대륙정책을 변경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중국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새 총통 정부와 양안회담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쑤 주임은 25일에도 무소속 출마가 확실시되는 쑹추위(宋楚瑜) 전 타이완성장과 타이베이 시장 출신인 제1야당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의 통일정책들이 리 총통의 이념을 대체적으로 수용하는 등 대륙위원회의 대륙정책에 상당히 접근해 있다고 밝혔다. 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 후보의 통일정책 대강도 대륙위원회의 정책 내용과 유사하다.
  • [대한광장] 민주 기지론

    ‘민주기지론(民主基地論)’이라는 것은 원래 북한에서 전개된 이론으로 북한이 통일을 위한 ‘민주주의 근거지’로서 우선 튼튼한 기반을 구축해야 된다는 것이었다.이것은 1946년 봄­여름 사이에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그때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이제는 남쪽에서 이 개념을 생각할 때가 된 것이아닌가 한다. 북쪽에서는 소군정의 지도하에 토지개혁을 하고 친일파들을 내몰고 이기분자(異己分子)들을 숙청하고 ‘인민정권’을 창출하여 통일에 대비한 ‘민주기지’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현 시점에서의 남쪽에서는 우선 산적한 문제가운데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신원하고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것이‘민주기지’로서의 선행조건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일본을 자주 다니면서 부러웠던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국민들 사이에 상호 증오감이 적다는 점이었다.국민 사이에 서로 증오감이 적으면 적을수록,억울한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나라는 강국이다.가난한 나라가 원자탄을 가지는 것보다도 월등히 효과적이다. ‘억울한 사람들’이라는 범주는 상당히 넓지만 그중에서도 6·25 이전에공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제주도의 4·3사태가 그렇고 문경 석봉리의 한 마을 학살사건이 그렇다.대만에서는 1947년의 2·28사건을 슬기롭게 극복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국의 처참했던 문화대혁명 뒤처리에 있어서도 대국답게 보상할 것은 보상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하였는가?지금에야 해결책을 모색중에 있는 느낌이 있다.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근자에 있어 문화방송의 4·3사건 특집들이 진지한 노력이라 생각된다.물론,필자는 ‘억울하게 된 원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소련과 그 주위라고 지목한다.북한에서의 소련군정은 알다시피 자신들의 노선에 반대되는 세력은 인정하지 않고 당초부터 남한 미군정의 교란을 적극적으로 획책했었다.이것은 ‘쉬티코프 비망록’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반하여,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어 다시 꺼내는 것도 쑥스럽지만 남쪽에서는 사회상의 여러 기존 모순에,북쪽에서의 공세적 교란공작,미 당국의 ‘계산’과 ‘실책’ 등으로 혼란이 가중하여 갔다고 보여진다.의젓한 시골 선비가 좌경운동에 몰두하게도 되고 대지주의 자제가 월북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월남자,우익 민족주의자와 남쪽 기득권층(친일 부역자집단을 포함하여)으로서는 남한내에서조차 몰리면 갈 곳이 없다는 위기감에 붙잡혀 필사 반격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에는 이로,피에는 피로’의 악순환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얼마전 ‘대한매일’에 실린 ‘문경사건’을 생각해 보자.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은 평화스러운 산간벽지의 마을일 뿐이다.두 개의 상반되는 외세의 분단 점령이 없었던들 여태껏 평화스럽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대는 북쪽에서 지리산쪽으로 게릴라가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했다.1949년 가을의 북쪽 신문을 보면 경북 산간지대에서는 피아의 교전뿐만아니라 생포한 경관들을 처단했다는 보도 등을 볼 수 있다.동료들이 생포당한 후 처형되는 것을 보고 발작적인 분노가 발생하기 쉬운 것이다.이러한 환경하에서 문경경찰서에서도 우호적이라고 분류된 석달마을 남녀노소가 전멸적 학살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6·25축소판의 비극을 6·25 이전의남한 사회에서 본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어른이 됐으니 나이에 걸맞게 서슴없이 명예회복과 응분의 보상을 하여야 통일을 위한 ‘민주기지’로서의 역량이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필자는 지난 8월 27일 새벽 일찍 떠나 800㎞를 주파하여 어느 시골에다녀왔다.1950년도 4월 빨치산과 좌익군인을 처형하는 천연색 동영상물(動映像物)을 보기 위해 갔던 것이다.당연하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너무도 슬픈 광경이었다. 통일,통일,부르기 전에 우선 주위부터 다지자.슬기로운 국민화합운동은 바로 통일의 첩경인 것이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
  • “中, 무력대신 대화로 대만 통일”

    홍콩 연합 중국 지도부는 지난 주 폐막된 베이다이허(北戴河) 중앙공작회의에서 타이완(臺灣)을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으로 통일하고 이를 위해양안(兩岸)대화를 견지해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홍콩경제일보가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첸치천(錢其琛) 부총리가 16일 타이완의 중국통일연맹 대표단을접견해 타이완에 대한 평화통일,한나라 두체제 정책은 변한 바 없다고 선언했으며 이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첸 부총리는 이날 “타이완이 양국론에 대한 헌법개정 절차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 점을 주시하며 앞으로 양안 정치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히고“최근 베이다이허 중앙공작회의에서 평화통일 정책을 견지해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리덩후이(李登輝) 타이완 총통의 양국론 발언 후 군사적 대결 양상으로 치달아온 양안 긴장 국면이 막다른 골목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논평했다.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3)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598년 2월 영양왕이 이끄는 1만명의 고구려와 말갈 혼성부대가 요서지방의중심지였던 영주(營州)를 공격한다.이어 수나라의 문제(文帝)가 이끄는 30만 대군이 고구려를 수륙양면으로 침공한다.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나라를 바꾸어가며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다가 거의 80년만인 676년에 이르러 대단원의막을 내린다.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이 전쟁에는 모든 종족과 국가들이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 국제대전이었다.전쟁의 목적도 영토확장이나 단순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이 지역 양대질서의 대결이었고,문명의 충돌장이었다.특히 숱한 해양전이 벌어졌으며,해양질서가 본격적으로 작용한 동아지중해의 국제대전이었다. 3단계로 이루어진 이 국제대전의 서막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었다.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이후 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 중부이북,동해와 황해의 중부해상권을 장악하였다.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분단된 중국을 대상으로 실리추구를 하는 세련된 등거리외교를 추진하였고,백제 신라 가야 왜 말갈 등 주변의 국가들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등 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역할을충실히 수행하였다. 또 경제적으로 요동을 중심으로 만주의 동부지역과 흥안령 산맥 등 북부지역,요서지역 등을 이어주면서 북방교역망을 형성하였고,해양을 통해서 일본열도,양자강유역의 남조정권과 교역을 하는 등 해상교역망을 운영하였으며북방과 남방을 이어주는 해상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계무역도 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수나라가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면서 세계질서는 뿌리채 변화하기 시작했다.수나라는 운하를 파고,남방교역을 활발하게 추진해 국가의 경제를 튼튼히 하고,정치적으로도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종주권을 회복하고,동남아,동중국해,황해,대한해협을 이어주는 등 교역의 물류체계를 장악하여 강국이 되고자 하였다. 두 강대국간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게 되었고,서서히 전쟁의 기운이 싹터가기 시작했다.전쟁을 일으키려는 당사자는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수나라였다.강력한 국력을 지닌 고구려는 사절을 파견하는 등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는 한편,내부적으로는 전쟁준비를 하였다. 598년 2월 영양왕은 친히 고구려와 말갈 혼성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넘어 공격을 개시하였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문제는 598년 6월 30만의 수륙군을 발진시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수나라의 육군은 요하를 돌파하지 못한채퇴각하였다.주라후(周羅侯)가 이끄는 6,000명의 수군은 육군과 합동작전을목표로 산동반도 동래(東萊:현재의 래주)를 출발,요동반도를 우회하여 평양성으로 향하였다.그러나 중간에 풍랑을 만나 대부분의 전선들이 침몰하였다고 한다.그러나 그보다 주라후의 수군은 요동반도일대에 구축된 고구려의 해양방어체제에 걸려 풍비박산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수양제(煬帝)는 대 고구려전을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먼저 남방의 임읍(林邑:현재의 베트남 동남부) 유구(琉球:대만)등을 정벌하고,돌궐을분할시켰으며,고창국 등 서역국가들을 지배하에 넣었다.그러는 한편 고구려에 적대적이던 백제와 신라를 끌어들이고 왜와도 외교관계를 맺는 등 고구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국내에서는 대운하를 완성해 남북을 연결시킴으로써 군수물자와 노동력의 징발을 용이하게 했고,해양전을 위한 엄청난 규모의 조선공사를 벌였다. 612년 드디어 수양제가 이끄는 세계전 사상 유례없는 113만3,800명의 대군이 북경 근처의 탁군( 郡)을 출발했다.그런데 당시 수양제는 해양전에 많은비중을 할애하였다.원정군을 좌우 총 24군 편제로 구성하였는데,그 가운데 11개 군이 수로군 편제이다.수군의 작전범위를 보면 압록강하구,대동강 하구는 물론,심지어는 한강하구인 황해중부 전체를 작전범위 속에 넣고 있다.이로서 수군은 이제 군량미의 보급뿐 아니라 직접 전투에 참여하고,장거리 이동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배후를 치는 독립작전까지도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양제는 적함(赤艦) 루선(樓船)등 수만척의 배들을 건조하였다. 특히 주력전선인 오아(五牙)는 루(樓:다락)가 5층이고,군사 800명을 태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래호아(來護兒)가 이끄는 이러한 군선들의 규모는 길이가수백리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얼마나 해양전을 중시하였는가를 알수 있다. 수의 친정군은 요하전선의핵심 거점인 요동성(현재의 요양시)을 공격하였다.엄청난 군대와 신무기 등을 동원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으나 수양제는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채 퇴각하였다.한편 우중문과 우문술이 이끄는 30만명의 별동대는 을지문덕의 고구려군에게 살수(薩水:압록강설과 청천강 설이 있다.)에서 대패,전멸했다.래호아가 이끄는 수군은 황해를 건너는데 성공하고,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갔다.대담하게 수군을 이용해 후방 깊숙이에 있는 평양성으로 직공작전을 감행한 것이다.하지만 평양성 60리밖에서 고구려군에게 궤멸당하였다.결국 고구려와 수나라간에 벌어진 격돌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다음해인 613년과 614년에도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공해왔으나 별 소득이 없었고,618년에는 당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동아지중해의 종주권과 교역권을둘러싸고 벌어진 수나라와 고구려의 1차전쟁에서 고구려가 대승을 거두었으며 국제적인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다.만약 고구려가 이 전쟁에서 졌다면 우리민족의 생존권은 이때 상실되었을 수도 있다. 이 전쟁은 해양질서가정치 외교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확인시켜 주었고,이미 대규모의 선박이 동원되고,상륙작전이 수행되는 등 본격적인 해양전쟁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준다.이와같은 양상은 수나라를 이어받은 당과고구려의 전쟁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윤명철 동국대겸임교수
  • 中특수군, 대규모 대만 압박훈련

    베이징 연합 중국 인민해방군 특수부대가 최근 남동부난징(南京)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가 20일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는 난징과 광저우(廣州),지난(濟南) 3개 군구에 배치된 인민해방군일부 병력과 장비가 최근 타이완(臺灣) 주변으로 이동했다는 중국계 홍콩 신문의 보도와 맞물려 주목을 끈다. 중국청년보는 “작전명 ‘철기사(鐵騎士) 99A’로 명명된 이번 훈련에는 육해공군 정예요원이 참여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이 신문은 군사작전에 정치적 동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이날 3대 군구에 배치된 인민해방군 일부 병력과 장비가 이동했다고 보도하면서 부대의 장비와 규모로 볼 때 단순한 교대작전은 아니며 여러 야전부대가 함께 이동한다는 것은 통일된 지휘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타이완이 독립 움직임을 보일 경우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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