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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도 아리랑제(일본속의 한국문화:2)

    ◎통신사기념 매년8월 첫주 열려/일행 5백여명 탄 선단 이즈하라외항 도착/정사 선두로 중심가 행진… 구경꾼 연도 메워 통신사일행을 태운 배는 늘 새벽에 부산항을 떠난다.순풍에 돛을 달면 편안하게 그날 오후 4시경에 대마도에 도착하지만 역풍과 격랑을 맞나게 되면 밤늦게 악포 앞바다에 이르러 헤매게 된다.그리고 모두 배멀미에 시달려 일어나지 못하고 뻗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악포에서 몇날을 묵은 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로 떠난다.배는 대마도의 서해안(즉 일본측 해안)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 항로 또한 만만치 않아서 2∼3일만에야 겨우 목적지에 닿게 된다.이즈하라는 당시 대마도주 슈우케(종가)가 사는 성하정(읍)이어서 부중이라 불렀었고 1천호이상의 민가가 몰려 있는 번화가였다.지금도 대마도의 총인구 4만5천명 가운데 1만5천여명이 살고 있는 섬 제일의 고을이다. 특히 이즈하라에는 우리나라 통신사와 인연이 깊은 유물·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통신사일행이 묵은 숙소 서산사라든지 도주의 저택 김석성,그리고 옛 부두,어선강(오후네가와)등이 눈길을 끈다.어선강이라는 옛 부두는 지금의 이즈하라항구로 흘러들어오는 작은 냇물의 하구를 인공으로 넓혀서 만든 도주전용의 선착장인데 네개의 석축선착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가 갔을 때 마침 밀물이라 항구에는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으나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이며 이 경우 배들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당시 통신사일행이 5백명에 이르렀으므로 정사와 부사를 태운 세척의 배만 이 좁은 항구에 들어왔을 뿐 나머지 배들은 외항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수십척의 통신사 선단이 이곳에 도착하면 잠자듯 조용했던 이 섬은 흥분하기 시작한다.도착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듣고 나온 인파가 연도를 가득 메운 가운데 통신사의 행렬이 약 3㎞에 달하는 부중중심가를 뚫고 가게 되니 절해의 고도 대마도로서는 일대 소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대마도에서는 그날의 열기를 기념하는 아리랑제를 매월 8월 첫주에 거행하고 있는데 단순한 한국관광객유치작전으로만 볼 수 없다. 통신사의 부중도착실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록으로 종사관 이경직의 「임상록」(1617년,광해군9년)이 있다.종사관은 정사와 부사 다음의 벼슬이다. 『7월9일(부산을 떠난 지 5일만)신시(저녁 네시경) 부중포에 당도하였다.정사(오윤겸)이하 4백28명이 모두 관대를 갖추어 위의를 성대하게 벌여 국서를 받들고 행진하였다.대오를 갖춘 위인들이 앞을 인도하는 가운데 부중에 들어서니 구경꾼들이 연도에 담치듯 하였고 남녀가 뒤섞여 시끌법석하였다. 섬안은 지세가 비좁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고 민가가 많아 대강 1천여호가 되는듯 보였다.앞바다에는 큰 배 10여척,작은배 60여척이 대어 있었다.선착장에서 신사의 숙소까지 7·8이(약3㎞)가량 떨어져 있는데 좌우의 여염에는 누각이 많았고 소위 양반집 정원에는 송죽이 심어져 있었다.이는 대개 정결에 힘쓰는 이 나라 풍속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이즈하라거리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돌담을 높이 쌓은 소위 양반집이다.대마도에서는 무가의 저택이라 하는데 아래는 굵은 돌을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돌을 쌓은 것이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집 돌담과 흡사하다.이곳 사람들은 돌담을 높이 쌓은 이유를 혹은 방화벽이라느니 혹은 통신사가 지나가면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느니 설명하고 있으나 통신사기록을 종합해보면 이곳 주택들이 모두 목조건물이라 동네마다 돌담으로 칸을 막아 불길을 막고 출입구를 만들어 이문으로 삼았던 것 같다. 이경직이 대마도를 방문한 1617년만 하더라도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이 채 못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풍신수길의 침략군 앞잡이를 한 대마도주에 대한 감정이 대단하였고 아무리 후한 대접을 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늘 원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그래서 이경직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올빼미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뱀이 앞에 나타난 것같이 섬뜻하여 고통스럽기만 하다』 임진왜란 때 그들에게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였고 일본땅으로 끌려간 사람이 30만으로 추산되었다.바로 이 대마도에도 수많은 동포들이 끌려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할 리없었고 밥먹는 것이 모래를 씹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일본으로 보내는 사절단을 통신사라 이름하지 않고 회답·쇄환사라 했다.7월10일 정사 오윤겸은 대마도로 종의성에게 『이번 행차는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을 쇄환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한다.그러나 종의성은 음흉하게도 이렇게 변명하고 있다.첫째 임란때 끌려온 조선인들은 이미 장가들고 시집을 가거나 자손을 본 사람까지 있으니 그들을 강제로 귀국시킬 수 없고,둘째로 관백(일본의 실력자 덕천)으로 하여금 전국에 쇄환령을 내리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끌고 간 조선인의 대다수는 젊은 처녀와 10세전후의 어린 소년들이었다.그러니 근 20년이 지난 오늘 그 대다수가 결혼하고 자식을 두었다는 것이다.거기다 이들을 쇄환해가는 데 돈까지 요구하니 기막힌 이야기였다.침략행위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지는 못할망정 강제연행한 조선인의 송환까지도 거부한 일본의 교활하고 파렴치한 행동은 이미 3백년 전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먼 나라가 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일본지도자들의 무책임한 정책 때문이란 사실을 스스로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 가깝고도 먼 섬 대마도(일본속의 한국문화:1)

    ◎조선통신사 뱃길따라 전파현장을 가다/부산서 50㎞… 조선사신 유적 곳곳에/임란후 통신사 12회·역관사 50회 파견/첫 경유지… 한·일 교유의 징검다리로/최근 역관사순난비 제막… 1703년 일행 112명 익사 비극 추모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그 대표적인 경로는 한반도의 남동부에서 대마도·일기도를 통한 것이었다.특히 조선시대 우리나라가 일본에 파견한 공식외교사절인 통신사는 부산∼대마도의 이즈하라∼일기도의 가쓰모토∼시모노세키를 거쳐 오고감으로써 이 경로를 「통신사의 길」로 여기기도 했다.대마도와 일기도는 이를테면 한일문화교류의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이 문화전파로에는 아직도 체감되는 선인들의 숨결과 흔적들이 곳곳에 살아있다.광복 48주년을 맞아 현지에 남아있는 우리문화의 모습을 되새겨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집필은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맡았다. 대마도 최북단 언덕위에 서서 북쪽 바다를 건너다보면 부산 영도가 보인다.특히 밤에는 부산야경이 아름답다.불과 50㎞.우리 이수로 1백20리다.지도를 보더라도 대마도는 우리 경상남도 해안에 바짝 붙어 있다.그에 비하면 제주도는 훨씬 남쪽으로 처져 있다.이렇게 가까운 대마도를 누가 먼 섬이라 했던가. ○밤에는 영도 보여 한일회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떤 일본인이 한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렀다.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아리송한 말을 일본인들이 애용하고 있다.누가 두 나라 사이를 가깝고도 먼 나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마치 한국 때문에 먼 나라가 된 것처럼 들리게 한 말이 바로 이 신조어다.그래서 필자는 이 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대마도에 대해서만은 이 말을 사용하고 싶다.일의대수란 말이 있듯이 대마도는 띠처럼 좁은 한 줄기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마주보고 있다.대마도의 남쪽으로는 일본 구주땅이 있으나 그 거리가 85㎞이며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단지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섬 일기도가 있을 뿐이다.이 일기도가 대마도에서 50㎞다.따라서 대마도에서 일기섬은 육안으로 보인다.대마도 최북단언덕 위에 서서 필자는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한·일 양국사이에 이 대마도와 일기도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어쩌면 두 나라는 서로 남남으로 아무 애증관계 없이 지낼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서로 모르는 사이로 지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서로 가깝다느니 멀다느니 할 것도 없고 「주는 것 없이 미운 나라」니 하는 말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대마도와 일기섬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2천년이나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바다를 건너 일본땅으로 이주해갔던 것이다. 이 섬이 보이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건너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보이니까 배를 타고,거친 파도를 가르고 건너갔던 것이다.차라리 대마도가 좀더 한국측에 가까이 다가서 있어 대마도에서 일기도가 보이지 않았던들 더이상 남쪽으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천년에 걸친 한일관계사를 돌이켜보면 서로 육안으로 보이는 대마도의 현재 위치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섬으로 하여금 일본쪽으로 가든지 우리쪽으로 더 다가서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단지 현재 그 위치대로 과거의 잘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두 나라가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서로 굳게 다짐하자는 약속할 자유밖에 없다. ○애증관계 2천년 이러한 약속을 상징이나 하듯이 대마도 최북단 언덕 위에 최근 한 비석이 세워졌다.이른바 조선국역관순란지비가 그것이다.때는 1703년2월5일(음력).지금으로부터 꼭 2백90년전의 일이다.일단의 우리나라 역관사일행이 부산항을 떠나 저녁무렵 대마도 악포에 도착했다.악포란 대마도 최북단에 자리한 작은 포구인데 실제로 악어가 살았다고 해서 악포라 이름한 것이 아니라 악어처럼 무서운 파도가 몰아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이 악어의 입에 들어서기 직전 갑자기 황파가 몰아쳐서 정사 한천석이하 1백8명의 사절단이 수장되고 말았다.배안에는 정·부사를 비롯하여 상관 28명,중관 54명,하관 24명이 타고 있었고 그밖에도 안내역을 맡은 대마도 관리 4명이 동승했다. 요즘이라도 1백12명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큰 사건인데 하물며 당시로서는 여간 큰 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그것도 민간인이 아닌 외교사절이었으니 대마도로서는 거국적인 참사였다고 할 수 있다.역관사란 무엇인가.임진왜란 이후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역관사를 보낸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누구나 대마도에 가보면 놀라는 일이지만 한마디로 산투성이의 섬이다.우리나라에 산이 많다고 하지만 대마도에 비하면 양반이다.대마도는 바위에다 엷은 흙으로 도배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위가 많은 섬이며 손바닥만한 평지에 집들이 밀집해 있는 보기에도 각박한 고도다. 이런 외딴섬이었기 때문에 한때는 왜구의 소굴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임란 이후에는 단절된 조선과의 무역관계를 하루속히 재개하여 우리나라 쌀을 수입해야만 했다.오징어가 잘 잡힌다고는 하지만 오징어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그래서 대마도주 종가는 임란후 10년만에 가까스로 기유약조(1609년)를 맺는데 성공하여 연간 2만섬에 달하는 많은 조선쌀을 얻어내게 되었다.이 쌀을 실어가기 위해 특별히 큰 운미선을 지어서 한 척에 2백가마씩 실어날랐으니 적어도 한해에 백척이상의 운미선이 대한해협을 오간 것이다. 이 2만섬이나 되는 쌀을 대마도 사람들이 다 먹지는 않았다.많은 양을 일본 됫박으로 다시 달아서 일본으로 팔아넘겨 폭리를 취했다. 그러니 이 쌀의 전매무역만 하더라도 대마도로서는 우리나라에 큰 은혜를 입은 셈인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때 큰 배신행위를 했다.그래서 그런지 임란후의 우리나라 통신사 기록을 보면 대마도의 노련한 뱃사공 말까지도 믿지 않고 우리나라 사공의 말을 듣고서야 부산항을 떠났다. 통신사는 임란이후 2백년동안에 모두 12번 파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그도 그럴 것이 통신사일행의 총인원이 5백명에 이르고 있는데다가 서울에서 일본의 강호(현재의 동경)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한번 갔다하면 그 비용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물론 이 비용을 일본측이 부담하는 것이었다고는 하나 우리측으로서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19세기초 왕래 끊겨 그래서 인원수를 대폭 줄여서 1백명으로 하고 여정도 대마도의 청중(현재의 엄원)까지로만 하는 약식사절을 파견하기로 했던 것인데 이 사절을 역관사라 이름했던 것이다.이 약식사절은 무려 50여회나 파견되었다고 하니 적어도 4년마다 한번 꼴로 대마도에 파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마도는 임진왜란에서 일제침략기에 이르기까지 한일 두나라의 징검다리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남해안은 평온할 수 있었다.부산쪽을 건너다보면서 서 있는 조선국 역관사지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보인다 『강호시대 엄연한 쇄국체제 하에서도 일본이 유일하게 정식국교를 맺은 나라는 조선이었다.그때의 한일외교는 양국간의 신의를 바탕으로 한 선린외교였다.이제 바야흐로 고조되고 있는 한일교류의 새로운 조류를 맞이하여 지난날 두 나라 교류의 지침이던 「성신지교린」의 이념이 되살아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지당한 말이다.한일간에 통신사와 역관사가 오가던 시절에 누구보다도 우리측에서 신의와 성신을 강조하였었다.일본측의 빈번한 불신행위로 인하여 부산에 성신대를 지어 그들에게 보이기까지했었다.그러나 1811년 마지막 통신사가 대마도를 방문한 이후 부산과 악포를 있는 해협에는 뱃길이 끊기고 다시 정한론을 부르짖는 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이른바 명치유신정부는 대마도의 대한외교교섭권을 박탈하고 도주 종가를 도쿄에 유폐시켰다.대마도는 다시 절해의 고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우리를 안내해준 영류혜구씨(대만문화재협회회장)는 이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왜 대마도공항에 KAL기가 오지 못하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제주도를 일본관광객에 개방했듯이 일본도 한국을 믿고 대마도를 한국관광객에 개방해야 될 것이다.그 길만이 대마도가 가깝고도 가까운 섬이 되는 길일 것이다.
  • 변호사의 과다수임료/오풍연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개업을 하니까 현직에 있을때보다 수입이 1백배 정도는 늘더군요』 고법부장판사로 있다가 몇년전 개업한 한 변호사의 고백이다.그는 『재조에 있을 당시 한달 평균 2백50만∼3백만원의 수입으론 생계유지조차 빠듯했다』면서 『변호사로 개업한뒤에는 한달평균 2억∼3억원에 이르렀다』고 사석에서 기자에게 털어놨다. 물론 이같은 사례를 재야법조계의 보편적 양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법조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울 뿐 아니라 수임료가 많은 민사소송의 전문가인 이변호사는 예외적인 케이스라는게 주변의 설명이다.최근 변호사가 무더기로 배출되면서 사무실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변호사의 수임료는 어느정도 되는 것일까.또 현행수임규정이 적정한 것인가. 국가사정을 기획·담당하던 변호사출신의 한「사정실세」가 변호사수임료를 지나치게 많이받은 것으로 드러나 옷을 벗게된 것을 계기로 변호사의 수임료가 화제로 오르내리고 있다. 「변호사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형사사건의 경우 착수금과 성공사례비를 각각 5백만원 이하,민사사건은 착수금과 사례비를 합쳐 승소가액의 4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정을 지키는 변호사는 「바보」라는게 그들 세계의 상식이다.실제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대마초나 히로뽕 사범과 같은 형사사건의 경우 변호사 수임료는 2천만∼3천만원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이들 사범을 집행유예 등의 가벼운 처벌로 석방시켜주는 대가로 엄청난 「이면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관행이라 할수있다. 변협은 이번에 문제가된 이충범씨에 대한 자체조사를 벌여 과다수임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나면 징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당연한 일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번사건을 계기로 재야법조계도 스스로 뼈를 깎는 자정운동을 펴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수임규정이 과연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적정수준인지,규정위반행위에 대한 보다 강력한 제재방안은 필요하지 않은지 변호사 모두 심사숙고하길 원하고 있다. 자신들의 몸가짐에 대한 반성없이 재조법조계를 향해서만 개혁을 부르짖으면과연 공감을 얻을수 있을까.
  • 유창혁 후지쓰배바둑 제패/결승국서 조훈현9단에 6집반 승

    유창혁6단이 제6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국바둑의 세계제패를 완성했다. 7일 일본 도쿄 일본기원에서 열린 이 대회 결승전에서 유6단은 조훈현9단을 맞아 흑을 쥐고 3백10수만에 6집반을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한국은 올해 국제바둑대회인 제1회 진로배,제2회 응창기배,제4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한데 이어 명실공히 세계바둑최강국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와함께 유6단이 이번 후지쓰배를 제패함으로써 조훈현·서봉수·이창호·유창혁등 국내 정상 4인방이 세계대회를 한차례씩 골고루 석권했다. 한국의 우승이 확정된 상태에서 벌어진 이날 대국에서 초반 유6단은 실리,조9단은 세력의 구도를 펼치며 혼전을 벌였으나 후반 유6단이 우변 패의 대가로 중앙 백대마를 잡아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날 후지쓰배 우승으로 유6단은 세계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며 우승상금으로 2천만엔(약 1억5천만원)을 받았다.
  • 남동해안 태풍 퍼시 비상/오늘새벽 부산앞바다 접근

    ◎강풍·폭우 동반… 큰 피해 우려 제6호 태풍 「퍼시」가 30일 상오 동해안으로 비켜갔다. 그러나 경남·북동해안지역과 강원도 영동지방은 태풍영향권안에 들면서 강풍과 함께 많은 비가 내려 피해가 잇따랐다. 기상청은 29일 『중심기압 9백75헥토파스칼(hpa),중심최대풍속이 초속 30m인 B급 중형태풍 「퍼시」가 이날 하오11시 현재 부산남쪽 3백20㎞ 해상에서 매시 40㎞의 빠른 속도로 북북동진,동해안으로 북상중』이라고 밝혔다. 기상청은 『이 태풍이 30일 새벽 4∼5시쯤 대마도 동쪽해상을 지나면서 남동해안지방이 직접 영향권에 들겠다』면서 『강한 비구름대와 장마전선을 동반한 이 태풍의 영향으로 이 지역에서는 최고 2백㎜이상의 많은 비가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기상청은 29일 하오11시를 기해 남해동부 먼바다에 태풍경보를,제주도및 영남해안·남해서부먼바다·남해동부앞바다·동해남부및 동해중부 전해상에 태풍주의보를,경남내륙에 호우경보,강원영동·경북내륙지방에 호우주의보를 각각 내렸다. 태풍 「퍼시」는 30일 상오11시쯤 울릉도남쪽 1백20㎞해상을 지나 하오5시쯤 울릉도 북동쪽 해상을 통해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9일밤부터 30일 하오 늦게까지 부산·영남지방에 1백40∼2백20㎜,경북·강원지방에는 30∼1백80㎜,서울·경기 10∼40㎜,호남·충청·영서지방에는 20∼60㎜의 비가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30일 0시 현재 지역별 강수량은 울산 1백62㎜,수원 1백56.3㎜,양평 1백35.5㎜,부산 1백23.5㎜,거제 1백8㎜,태백 1백7.5㎜,충무 92.8㎜,이천 90㎜,춘천 87.3㎜,인천 83.8㎜,서울 54.6㎜등이다.
  • 은행 예대마진율 1.35%로 급락

    ◎금리자유화 영향… 1년새 0.48P/예금이자 신탁은 6.9%로 최고/대출이율 한일은 8.7%로 으뜸 1단계 금리자유화이후 은행들의 예대마진율이 급락하고 있다.올 하반기로 예정된 2단계 금리자유화가 실시될 경우 예대마진율은 더욱 떨어질 것이 획실시되고 있어 비용절감 등 경영합리화를 통한 수지보전대책이 시급하다. 26일 은행감독원과 금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국내 5대시중은행의 평균예금(실세예금기준)금리는 6.4%,평균대출금리는 7.75%이며,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마진율은 1.35%로 집계됐다.5대시은의 92년 상반기 평균예금금리는 7.62%,평균대출금리는 9.45%였으며,마진율은 1.83%였다. 작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예금금리는 1.22%포인트,대출금리는 1.7%포인트,마진율은 0.48%포인트가 각각 낮아진 것이다. 은행별 마진율은 한일은행이 1·98%로 가장 높고,그다음은 제일(1.53%)·조흥(1.52%)·서울신탁(1.16%)·상업은행(0.68%)의 순으로 높다. 예금금리는 서울신탁은행이 6.92%로 가장 높고,그다음은 한일(6.75%)·상업(6.40%)·제일(6.32%)·조흥은행(6.04%)의 순이다. 대출금리는 한일은행이 8.73%로 가장 높고,그다음은 서울신탁(8.08%)·제일(7.85%)·조흥(7.56%)·상업은행(7.08%)의 순. 예대금리 및 마진율이 이처럼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1단계 금리자유화조치이후 은행간 경쟁이 심화된데다 올들어 단행된 두차례의 규제금리인하로 신탁계정 등에서 역마진이 생겼기 때문이다.
  • “왜곡된 기독교원로 공과 재평가돼야”

    ◎「…한국기독교사」 펴낸 이선교목사 주장/“친일·어용행각 청산못해 기독교 부패”/「순교자」 「배신자」 이분법 분류는 위험 순교의 영광만 강조돼왔고 상대적으로 어용의 부끄러움은 축소되어온 1백년 한국기독교역사는 이제 새로 씌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진실된 기독교역사의 바탕위에서 왜곡된 기독교원로들의 공과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대한성결교 이선교목사(51·서울 백운교회)가 최근 펴낸 저서 「다시 써야 할 한국기독교사」에서 제기됐다.이목사의 친일·반민족적 기독교인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최근 일부 친일독립유공자에 대한 공적 재심논란과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목사는 일제시대의 혹독한 고문과 공산치하의 학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운 훌륭한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순교하였으나 신사참배를 하며 황국신민이 된 것을 감사해 하던 친일파 목사들은 대부분 살아남아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회개는커녕 교권싸움만 일삼아 교계의 분열을 가져오고 6·25등 민족을 숱한 고난의 길로 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가 부패하고 사회가 타락한 원인은 친일·어용 자체보다도 그후 어용들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어용과 이기주의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으며 기독교를 부패케 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일본의 한국침략과 기독교박해,해방이후 분단상황에서의 기독교대립과 6·25전쟁,5·16이후 군부독재의 출현등 우리 현대사에 있어 기독교인들의 역할을 분석했다.그리고 그 시대마다의 주요기독교인들을 「순교자」·「배신자」라는 다소 위험한 이분법적 구분으로 분류했다. 일제때 인물들은 주로 신사참배강요등 기독교박해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를 기준으로 나누었는데 순교자로 분류된 사람은 박봉진·이기풍·신석구·주기철·최봉석·허성도·박관준·한상동목사,정태희·조만식장로,유관순,안이숙등이다. ○한경식 양주삼 백낙준씨/신사참배 등 배신자 분류 반면에 배신자로 분류된 이는 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징병제와 태평양전쟁을 찬양한 사람들로 백낙준·전필순·정춘수·정인과·김인영·한원석·양주삼·윤일선·심명섭·최태용목사,윤치영장로등이 속해 있다.이밖에 이승만장로의 부패와 허세,한경직목사의 신사참배 사실도 지적했다. 그러나 백락준목사의 경우는 해방후 문교부장관과 연세대총장까지 지낸 인물로 이같은 구분은 지나치게 흑백논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목사는 『오늘날 기독교가 부패한 것은 어용들이 기독교의 사회참여가 비성서적이라며 침묵·망각·무관심을 강요했기 때문』이라며 『회개와 반성없이 우리의 참존재가 인식될 수 없으며 헌신과 용기,정직함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 고속철도(미리가보는 21세기:10)

    ◎한­일 해저터널로 “초특급 여행”/서울∼부산 120분이면 달려 출퇴근 가능/남북통일땐 신의주­시베리아­유럽연결 오는 20 02년에는 서울∼부산에 고속철도가 개통된다. 지난해 6월에 착공한 고속철도는 총공사비 10조7천억원이 투입되어 10년간 공사를 한다. 고속철도의 개통은 국토의 공간과 거리개념을 바꾸게된다. 서울∼천안 22분,서울∼대전 38분,서울∼대구 70분,서울∼부산 100분.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출퇴근이 가능해진다. 고속철도는 1천여명의 승객이 레일을 타고 달리는 시간의 혁명이기도하다. 남북통일이 되면 신의주와 만주 몽고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와 베를린∼파리∼런던까지 갈 수 있는 유라시아횡단열차의 시발점이 된다. 일본 도쿄에서 신간선을 타고 중국과 소련에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시모노세키를 거쳐 한·일 해저터널을 통해 서울과 북경까지 갈 수있는 평화의 국제열차가 된다. 이때문에 고속철도 기술을 가진 프랑스와 독일은 국운을 걸고 경부고속철도의 차량선정에 뛰어 들고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지난 70년7월7일 이후 서울은 빠른 속도로 대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지방은 국가경제 성장의 과실을 고르게 나누게되었다. 고속철도가 개통되는 21세기에는 서울과 부산의 국제화가 빠른속도로 진행되며 기존의 철도와 고속도로는 수출입 화물의 유통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해진다. 20 00년이후에는 현재 1백30㎞정도인 재래식철도의 속도 개량도 이루어져 시속2백㎞까지 향상된다. 고속철도기술을 습득한 후에는 서울과 목포를 잇는 호남고속철도와 서울과 강릉을 잇는 영동철도도 건설,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아지게된다.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길이 37㎞의 도버해협에 고속철도용 해저터널이 개통되자 한국과 일본의 미래학자들은 부산에서 대마도를 지나 일본 규슈까지 1백46㎞의 터널을 뚫는 계획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미 41년 대마도와 본토를 잇는 해저터널지질검사를 마쳤으며 대한해협의 1백15㎞의 해저터널 프로젝트를 검토한바있다. 일본의 한 건설회사는 이 공사에 10조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경비와 함께 공사기간이 20년이 걸릴것으로추정하고있다. 고속철도는 20세기 후반기에 살고있는 우리들이 21세기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마지막 유산이다.
  • 한국,세계 4대 기전 석권/조훈현·유창혁 후지쓰배 결승올라

    한국이 세계바둑사상 처음으로 국제4대기전을 석권했다. 3일 일본 오사카 후지쓰관서연구소에서 열린 제6회 후지쓰배세계바둑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조훈현9단과 유창혁6단은 일본의 가토9단과 아와지9단에게 각각 반집승을 거두고 한국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한국은 올해 진로배·응창기배·동양증권배에 이어 이 대회에서 결승전에 올라 세계4대기전을 석권함과 함께 세계바둑최강국임을 과시했다.이날 준결승전에서 흑을 쥔 유6단은 아와지9단을 맞아 2백83수만에 반집승을 거두었으며 조9단도 백을 쥐고 가토9단에게 2백60수만에 반집승했다.유6단은 이날 대국에서 상대방의 대마를 쫓느라 40집을 허용,패색이 짙었으나 끝내기의 선전으로 신승했다.조9단도 가토9단의 세력바둑에 맞서 실리바둑을 펼쳤으나 시종 고전해 역시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선전으로 역전승했다.조9단과 유6단이 우승을 다투게 되는 결승전은 8월7일 일본 동경의 일본 기원에서 열린다.
  • 7월의 문화인물 지석영선생

    ◎천연두 예방위한 우두접종법 보급/현대의학 발전 토대마련에 큰 공 문화체육부는「7월의 문화인물」로 현대의학의 개척자 지석영선생(1855∼1935)을 선정했다. 지선생은 천연두 예방을 위한 우두종법(오두종법)을 처음 보급하고 의학교육에 앞장서는등 현대의학의 토대를 닦았으며 한글보급에도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876년 일본에서 들여온 의학서적을 보고 종두법에 관심을 가져 그해 겨울 충북 충주에서 최초로 종두를 시행했다. 이어 1880년에는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우두종법의 전과정을 익혀 귀국,전주·공주에 우두국을 설치해 천연두 예방에 힘썼다. 1899년 조정에 의학교 설립을 주청해 대한의학교가 세워지자 초대 교장을 맡아 10여년간 의학교육에 헌신하다 한일합방이후 물러났다. 지선생은 또 한글보급에도 힘써 국문개혁안을 조정에 올렸으며 한자사전을 간행하기도 했다. 문화체육부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오늘에 되살리는 각종 사업을 대한의사학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등 관련기관·단체와 함께 펼칠 계획이다. 주요사업은 ▲학술심포지엄(7월9일 하오2시 서울의대 강당) ▲유품 특별전시회(7월7∼31일 한독의학박물관 전시실) ▲지석영생애 토론회(7월15일 전북한약협회 회의실) ▲지석영의학상 제정·시상(7월중,후생신보)
  • 유럽통합 「장미빛 전망」 퇴색/코펜하겐 EC정상회담 안팎

    ◎경기침체속 보스니아대책 미흡/“공동이익 추구” 원론 확인에 그쳐 91년 12월 마스트리히트 EC정상회담에서 유럽통합조약이 합의될 때만 해도 유럽의 미래는 온통 장미빛으로 보였었다.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권 형성에 따른 유럽경제의 활성화,국제정치무대에서의 발언권 강화 등 과거의 영광회복에 대한 기대로 유럽인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유럽은 더 이상 쇠퇴하는 대륙이 아니며 힘찬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생각됐었다. 그로부터 1년반.코펜하겐 EC정상회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장미빛 미래에 대한 기대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EC 각국의 경제는 지금 최악의 경기침체에 허덕이고 있고 보스니아의 비극이 1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데도 EC는 아무 손도 못쓰고 있다. 자연히 EC를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회의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으며 유럽통합계획에 대한 기대마저 시들해지고 있다. EC의 정치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유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EC각국정부의 인기가 크게 떨어진 지금 EC의 각국정부들은 국내문제에 집착할 수 밖에 없고 바깥으로 눈을 돌려 유럽의 공통이익 추구를 위한 정책협조에 힘을 쏟을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코펜하겐 정상회담에서 얻을 수 있는 가시적 성과는 중·동구에의 경제지원 확대와 관계개선을 제외하면 별로 없어 보인다.결국 12개국 정상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했다는 데서나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뿐 구체적인 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대상 서울지검 마약수사반(인터뷰)

    ◎국제마약조직 공조수사 기틀마련/동남아·홍콩 등서 원료밀반입 차단 최대노력/외국과 정보교환체제 강화… 밀매근거지 발본 『이제 우리의 마약단속기법이나 수사체계도 세계수준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제3회 마약류퇴치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서울지검 마약수사반을 총괄하는 정선태검사(37)는 『마약거래가 날로 국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수사기관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철저한 기획수사로 국내에 침투한 국제마약조직의 뿌리를 캐내 국제수사를 유도할정도의 선진수사능력을 갖고있다』고 밝혔다.대한민국이 「마약수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이같은 단속의지와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 89년 발족한 서울지검마약수사반의 활동실적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폭넓고 다양했다.발족직후 서울 강남의 주택가 한복판에서 국내최대 규모인 2백20㎏의 히로뽕을 제조한 「피터팬파」일당을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마약수사반은 이어 재벌2세들과 어울려 아파트 호텔등지를 돌아다니며 히로뽕등을 복용하고 퇴폐행각을 벌여온 전모·허모·노모씨등 인기여배우·모델과 Y백화점사장 김모씨등 부유층을 적발,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백두산」·「부활」·「H2O」등 인기헤비메탈그룹과 가수 이현우·신해철·신성우등 10대들의 우상을 대마초 상습흡연 혐의로 적발한 것도 마약수사반의 치밀한 수사결과의 사례로 꼽힌다. 90년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국내 마약밀조조직이 줄어든 대신 국제마약밀조단과 손을 잡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분석한 정검사는 김포공항의 마약분실등을 통해 세관·안기부등과 협조,동남아·홍콩등지서 밀반입되는 마약원료를 차단하는데 수사력을 총동원했다고 설명했다. 그결과 지난 3월에는 재미교포 폭력조직과 주한미군에 근무했던 전군속이 연계돼 대만산 히로뽕을 대량 밀반입하고 그 대금을 국내에서 돈세탁한 「제임스 김파」일당 9명을 검거했다. 이 사건은 한국수사기관이 미연방수사국(FBI)·대만 수사당국의 협조를 이끌어내 향후 국제마약거래에 대한 공조수사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해외수사기관으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다. 마약수사반은 이밖에도 ▲지난 2월 지하철역 주변 약국에서 진해거담제류의 환각성약품을 우범청소년층에 팔아온 무자격약사등 5명을 구속하고 ▲수시로 이동이 가능한 초미니 히로뽕 제조공장(포터블공장)조직 「종원파」 16명을 적발했으며 ▲남미 페루등지의 교포잡화상을 통해 원료및 기구를 구입,반제품을 제조한뒤 국내로 밀반입한 「정차선파」 4명을 검거하는등 지난해 6월이후 검거한 마약류사범만도 3백20여명에 이른다. 정검사는 『앞으로 세계주요국가들과의 정보교환체계를 더욱 강화,우리나라가 더이상 마약밀매의 근거지로 활용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검사는 이와함께 『최근 무선호출기·카폰과 가스총등 기동성과 무장력을 갖춘 선진국형 마약조직이 주류를 이뤄 적발·검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소개하고 『앞으로 무술특기자 양성·전담검사 충원과 몰수된 마약자금을 수사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등 제도적 뒷받침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제3회 「마약류퇴치대상」 영예의 얼굴들/본상공로부문 정승화

    ◎「유엔마약대사」 태동 공헌/초대 정트리오 임명에 기여 지난해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던 UN마약퇴치 친선대사제도 도입을 논의하는 회의에 후원사인 서울방송의 실무협상대표로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각국대표들을 상대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UN이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등 정트리오를 초대마약대사에 임명토록하는등 마약대사제도의 태동에 공헌했다. 8월에는 UN마약퇴치사업 후원의 밤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민들과 각계 주요인사들에게 마약퇴치사업의 중요성을 인식케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후원의 밤 행사를 통해 1억6천만원을 모금하고 서울방송의 지원금(매년 미화 15만달러)을 조성했다. 이 지원금과 모금액으로 국내 마약퇴치관련 만간단체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UN마약퇴치 친선대사 정트리오의 해외활동을 돕는 등 마약퇴치활동에 이바지했다. 정트리오는 이 지원금으로 지난해 11월과 12월 이탈리아 로마와 미국 뉴욕에서 마약퇴치를 위한 행사를 가졌었다. 그밖에도 마약퇴치를 위한 국내 공공단체와 민간단체의 활동을돕고있다.
  • 마약사범/2년감소끝에 “급증”/대검 일제검거령 배경과 대책

    ◎국제밀매 경유지서 소비국 부상/출소자재범 늘어… 감시활동 강화 마약류사범 단속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2년동안 뚜렷한 감소추세를 보이던 히로뽕·대마사범을 비롯한 전체 마약류사범이 올들어 다시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대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5월까지 적발된 마약류사범은 1천5백4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백10명보다 2.5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적발된 마약류사범이 가장 많았던 89년과 90년 수준을 넘는 것이어서 이같은 증가추세가 계속된다면 올 한햇동안의 마약류사범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최근 마약류사범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은 우선 외국산 마약류의 밀반입이 지난해에 이어 계속 늘고있고 89년과 90년의 집중단속에서 구속됐던 마약류제조·밀매사범이 출소하여 활동을 재개,공급량이 증가하고 있기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외국왕래가 자유로워지면서 해외교포와 외항선원·해외여행자가 마약을 몰래 들여와 국내에 전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세번째로는우리나라가 헤로인을 다른 나라로 이동시키는 경유국에서 소비국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과 히로뽕품귀로 상습복용자들이 대마를 피우는 전이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마약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느슨해졌다고 판단,마약류사범의 고삐를 다시 죄기 위한 대책을 다각도로 마련하고 있다. 대검은 출소한 마약전과자의 동태를 철저히 감시하는등 국내공급조직을 추적하고 외국산마약류의 밀반입을 차단하기위해 공항과 항만의 감시체제를 강화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렸다. 또 마약수사관의 자체교육을 강화해 전문수사능력을 갖추고 수사인력을 늘릴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와함께 서울에서만 열어오던 마약퇴치국민대행진을 올해부터 마약범죄가 서울 다음으로 많은 부산에서도 갖는등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몽활동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마약류단속 국제협력회의(ADOLOMICO)가 올해에도 우리나라를 비롯,12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에서 열려 수사공조 방안을 논의될 예정이다. 최근 7년동안의 마약류사범추세를 보면 86년 1천6백29명이던 전체 마약류사범은 90년에 4천2백22명으로 2·6배나 늘어났다가 91년 3천1백33명,지난해에는 2천9백68명까지 줄어 당국의 강력한 단속과 계몽으로 증가추세가 한풀 꺾인 듯했으나 올해에 들어서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 이창호 동양증권배 제패의미/한국바둑 세계정상 재확인

    ◎초반 패색… 끈기로 막판 역전승 거둬 이창호6단의 동양증권배 세계바둑2연패는 다시한번 한국바둑이 세계정상임을 만방에 알리는 쾌거였다. 특히 이번 결승전은 패색이 완연한 가운데서도 불꽃처럼 살아오르는 한국 바둑의 끈질긴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통쾌함을 더해주었다.이6단은 3국 모두 초반의 불리한 판세를 극복하고 미세하게 역전하는 사례를 연출했다. 8일 마지막 대국에서도 중반 1백여수까지만해도 이6단이 단연 밀리는 형세였다.이날 대국에서 이창호6단은 조치훈9단의 3연성에 이은 세력바둑에 2연성의 두터운 바둑으로 맞섰으나 중반초 하변에 방대한 흑세력권이 형성돼 크게 뒤져나갔다.그러나 이6단은 좌변에 형성된 두터움을 활용해 상변에 침투한 흑대마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져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이어 중앙에서 1백60 등 눈부신 활약으로 20여집을 내는데 성공,7시간5분 2백32수만에 극적인 대역전극을 마무리했다. 이6단의 이번 제패로 한국은 제1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국가대항단체전),제2회 응창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등 세계3대기전을 석권했다.
  • 안기부 「마약」 적극대처/안보차원 정보수집… 센터도 설치

    국가안전기획부가 마약정보수집을 본격화한다. 안기부는 국제적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마약문제를 국가안보차원에서 대처키위해 부내에 「정보센터」를 설치,대마약정보수집능력을 극대화시키기로 했다고 8일 발표했다. 안기부는 외국정보기관과의 협력과 국내정보활동등으로 얻은 마약관련정보를 관계수사기관에 지원할 방침이다. 안기부에 따르면 선진 서방국가들의 정보기관들은 국제마약범죄조직이 다국적 밀매 조직망을 구축하고 활동이 고도로 지능화되어감에 따라 마약을 「국가안보문제」로 규정,마약사범퇴치를 주요 업무중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한편 국제마약범죄조직은 한국을 새로운 마약밀매루트로 활용하고 있어 국내 공항·항만에서 적발된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출 적발은 90년 9건,5.5㎏에 불과하던것이 92년에는 33건,83.3㎏으로 급증하고 있다. 또 국내 환각물질 흡입사범도 90년 2천3백52명에서 92년에는 3천9백95명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여 이미 마약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국민·교민 성원에 감사”/서봉수 일문일답

    대역전드라마를 펼치며 세계 바둑계를 제패한 서봉수9단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다음은 서9단과의 일문일답. ­먼저 우승소감부터…. ▲일생일대의 대승부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이루어져 무엇보다 기쁘다.아낌없이 성원해 주신 국민과 이곳 싱가포르 교민들에게 감사드린다.또 이곳까지 동행해 곁에서 고락을 같이 해준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번 대국에선 어떤 작전을 폈나. ▲흑을 쥐었기 때문에 8집의 덤을 의식해 대세력 작전을 펼쳤다.세력바둑을 둔게 결국 막판에서 두터운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속기에 능한 오다케를 견제하기 위해 장고를 하는 작전을 폈다. ­언제 승리를 확신했나. ▲흑1백83으로 백대마를 끊었을 때였다.오다케가 수싸움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려웠던 상대는. ▲4강에서 맞붙은 조치훈9단이었다. ­오다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마디로 재능이 넘치는 기사다.대세 판단능력과 공방전에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그러나 승부처에서 약간머뭇거리는 면도 있는 것 같다.
  • 대세력작전이 펼친 “역전드라마”/서봉수 응창기배우승 안팎

    ◎종반 백대마 잡고 흑대마 살린 명국한판/「순국산 된장바둑」으로 세계정복 “쾌거” 서봉수9단이 2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응창기배 바둑선수권대회에서 오다케 9단을 제치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 것은 초반의 열세를 중반이후 불계승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점에서 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응창기배 결승 제5국에서 서9단은 흑을 쥔 막판의 부담감 때문인지 초반 포석에 실패,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서9단은 대세력작전으로 오다케9단의 소목과 고목 포석에 맞섰으나 중반까지 오다케9단에게 집수에서 밀렸다. 그러나 서9단이 흑51수로 하변 백모양을 침공하면서 바둑은 서로 상대방의 세력을 삭감하는 치열한 신경전으로 변했으며 서9단은 승부수인 흑69를 띄웠다. 이어 바둑은 상대의 약한말을 서로 공격하면서 승부를 예측할수 없는 난타전으로 돌입,2개의 흑대마와 2개의 백대마가 미생마로 얽히는 패싸움으로 치달았다. 이같이 우변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진 패싸움에서 서9단은 우변 흑대마를 버리고 중앙 백대마를 포획하는 전기가 되는 흑1백33을 두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서9단은 오다케9단의 패착 1백82수를 틈타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오다케9단은 백1백82수를 놓으면서 흑이 1백89수로 넘어가기를 기대했으나 서9단은 흑1백83으로 끊어 효과적으로 중앙 백대마를 한수 빠른 수상전으로 잡고 죽었던 우변 흑대마까지 되살림으로써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서9단은 지금까지 조훈현 9단의 짙은 그늘 아래서 굳어버린 「만년 2인자」의 설움을 떨쳐낼수 있는 벅찬 기쁨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한국바둑으로서도 일본의 거센 파고를 넘는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를 주었다. 특히 서9단은 일본에서 바둑수업을 받지 않은 「순국산 된장바둑」의 1세대격으로,한국바둑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우승은 조 9단의 1회대회 쟁패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서9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71년 제4기 명인전에 출전,당시 바둑계를 주름잡고 있던 김인·조남철등을 꺾고 명인 타이틀을 쟁취하는 파란을 연출하면서 촉망받는 젊은 기사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서9단은 이번 응창기배 결승대국을 앞두고 『일생일대의 대승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칼을 가는 심정으로 대국을 준비했고 또 확신에 찬 승리감으로 대국에 임했으며 한칼로 승부를 갈랐다. 지금까지 서 9단의 바둑이 그러해온 것처럼 앞으로의 바둑도 예민한 후각과 잡초같은 기질,단판 승부에의 몰입 등 그만이 가진 「독특한 기」의 발산이 될 것이다.
  • 서봉수 3국 승리/응창기배… 오다케에 2승1패

    서봉수9단이 제2회 응창기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제3국에서 일본의 오다케(대죽영웅)9단을 꺾고 2승1패를 기록,우승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서9단은 16일 싱가포르 마리나만다린호텔에서 열린 대국에서 흑을 쥐고 오다케9단의 실리바둑에 맞서 세력바둑을 전개,중반이후 일방적인 공격으로 대세를 압도한 끝에 1백19수만에 불계승했다. 이날 대국은 서9단의 양화점 포석에 맞선 오다케9단의 화점과 소목 병행포석으로 초반 유연한 진행을 보였으나 중반들어 서9단이 오다케9단의 패착 백52를 틈타 흑53,55로 중앙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에 열세를 만회하려던 오다케9단은 백68,70,76 등의 실수를 범했으며 서9단은 계속 몰아붙여 흑107,109로 우변 백대마를 잡아 완승을 거뒀다.
  • 이창호6단 1승/동양증권배 결승/초치훈 제쳐

    제4회 동양증권배 세계바둑권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이창호6단이 조치훈9단을 꺾고 1승을 선취했다. 22일 제주도 중문 하얏트리젠시호텔에서 열린 이 대회 결승5번기 제1국에서 백돌을 쥔 이6단은 대국종반 우하귀 조9단의 흑대마를 잡아 불계승했다. 다음 제2국은 24일 같은장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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