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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F 2년 명암](上)지표로 본 경제변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지난 97년 11월.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바닥권에서 벗어나 정상궤 도로 회복되고 있다.우리보다 앞서 외환위기를 당한 멕시코가 위기극복에 3 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빠른 회복이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고 금리를 축으로 한 IMF의 고단위 위기관리처방에 따라 기업도산과 실업자 양 산 등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IMF체제 돌입 2주년을 맞아 외환위기의 극 복과정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IMF체제가 남긴 교훈 등을 알아본다. 우리 경제는 지난 1년동안 저물가를 바탕으로 고성장과 수출증가로 외환위 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가고 있다.환란후 첫해인 98년 마이너스 6.3%의 성장 률로 추락한 우리 경제는 올해는 9%안팎의 플러스 성장률로 반전될 전망이다. 요즘에는 회복 단계를 넘어 경기 과열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경제의 각 부 문에서 환란의 그늘이 가시면서 반도체와 자동차는 호황을 맞고 있다.환란후 첫 1년간 급속도로 경기가 가라앉아 세계 대공황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위 기감이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원유와 곡물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올해 우리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저물가가 정착됐다. 원자재가격 안정에 이 어 세계 경기침체를 우려한 미국 등이 잇따라 금리를 내려 저금리가 확산됐 다.국내 물가 상승률은 올들어 1%미만에 머물 전망이다. 더욱이 달러당 원화환율이 1,200원선을 유지,수출증가를 도왔다.환율은 지 난해 12월 1,207원선에서 외자유입 급증으로 6월에는 1,150원선으로 떨어졌 으나 금융시장 불안으로 1,200원에서 횡보하고 있다. 환율 덕으로 수출가격 경쟁력이 유지됐다.99년 경상수지 흑자폭이 당초 예 상인 200억달러보다 많은 23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경기도 회복돼 산업생산,출하와 소비가 늘고 있다.출하는 올 3월,생산 은 7월,소비는 9월에 각각 환란 전 수준을 넘어섰다.제조업가동률은 환란 전 80%수준에서 98년 7월 64.6%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가 올들어 상승세가 꾸 준히 이어져 다시 80%에 육박하고 있다.실업률은작년 12월 7.9%에서 올 2월 사상 최고치인 8.6%로 올라갔다가 절반선인 4.8%로 떨어졌다. 설비투자가 본격 살아나지 않는 등 일부 지표를 제외하면 실물경기는 거의 환란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콜금리가 작년 12월 6.7%대에서 5%대로 떨어졌다.회사채수익률 역시 10% 밑에서 형성됐으나 대우사태 등으로 올 하반기에는 10%선을 넘어서 기도 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금융시장 안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불안요인은 여전 하다.앞으로 실물경기 회복세의 지속 여부는 금융시장 변수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일기자 bruce@-IMF 극복 공신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간 지 2년만에 경제위기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것은 우리의 실정에 맞게 경제를 이끌어간 현 정부의 경제팀과 착실한 구조 조정을 한 기업,금모으기 운동에 앞장서는 등 정책에 적극 협조한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모두가 IMF 극복의 공신인 셈이다. 이규성(李揆成) 전 재정경제부장관을 경제수장으로 한 현 정부의 1기 경제 팀은 경제기조를 바꾸면서 IMF탈출에 교두보를 마련했다.IMF가 권고한 고금 리정책은 현실에 맞지않는다는 점을 IMF에 설득해 저금리정책으로 바꾸면서 기업들의 회생에 일조를 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의 역할은 매우 지대했다.그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총사령탑으로서 가장 어려운 작업을 큰 잡음없이 이뤄냈다.아직 도 대우처리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금융시장을 안정시킨 것도 IMF 극복에 도움이 됐다.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임창렬(林昌烈) 전 경제부총리(현 경기지사),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정덕구(鄭德龜) 전 재경부 차관(현 산업 자원부장관)도 사태초기 IMF 및 외국투자자 등 대외협상 창구역을 맡아 일역 을 담당했다.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회장에 큰 점수를 주는 측도 없지않다.IMF 이후 침 체를 보였던 주식시장이 활황세로 돌아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서다.현대증권이 지난 3월 내놓은 주식형펀드인 ‘바이코리아’가 돌풍을 일 으켜 단숨에 주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데 기여했다.주식시장 활황으로 기 업들의자금조달이 쉬워졌고 구조조정도 보다 수월해졌다.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적극 따랐던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그룹의 행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유명인사는 아니지만 ‘착하고 순진한’ 국민들의 공은 아무리 강조해 도 지나치지 않다.한푼의 달러라도 더 모아 외채를 갚아달라며 결혼반지 생 일반지 등을 모으는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국민들과 월급이 대폭 깎여도, 한때 실업자가 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실업대란’이 있어도 묵묵히 참고 견딘 국민들(특히 실업자)이 진정한 IMF의 공로자가 아닐까.대외적인 환경도 IMF 극복에는 호재였다. 미국의 저금리를 바탕으로 IMF 직후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던 것도 행운이다. 곽태헌기자 tiger@- 기업·금융권 구조조정 점검 IMF 체제 돌입후 2년간 실물·금융환경의 격변에 따라 기업·금융권 구조조 정도 급류를 탔다.부도 등으로 기업들이 대거 퇴출되고,은행은 합병 등을 통 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그러나 산업구조조정은 여전히 ‘진 행형’으로 추후 금융·기업의 또다른 판도변화가 불가피하다. [금융구조조정] 지난 한해는 금융권으로선 사상 최악의 시련기였다.98년 1월 제일·서울은행의 감자명령과 경남 등 10개 종금사의 영업정지를 필두로 고 비용·저효율 구조의 금융권에 대한 대수술이 전개됐다.5개은행의 퇴출과 상 업·한일,국민·장신,하나·보람 등 은행간 합병이 잇따랐다. 그러나 새로운 금융환경의 토대가 마련되긴 했지만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우선 IMF 이후 엄청나게 비대해진 투신권 구조조정이 남아있 다.다음달 중 한국·대한 등 양대 투신사의 구조조정 일정이 잡혀있고,나머 지도 내년 7월 채권시가평가제 도입을 계기로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질 전망 이다.수익증권 환매사태의 현실화 등 경우에 따라 연내 구조조정이 단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은행권의 2차 구조조정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이르면 내년초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대우사태로 경영악화가 불 가피한 데다,올 연말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 적용 등이 2차 구조조정의 단초가 될 것으로 꼽힌다.다만 정부가 주도한 1차 구조조정과는 달리 은행 들의 자발적인 전략적 제휴 또는 합병을 통해 추진될 공산이 높다. [기업구조조정] 금융권에 이어 시작된 기업구조조정은 대우그룹 워크아웃에 따라 바야흐로 피크를 맞고 있다.대우그룹의 사실상 해체는 퇴출은행에 이어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를 또다시 깨뜨렸다.대우를 뺀 나머지 5대그 룹도 분기별 재무구조개선약정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군살빼기’에 매달려 야 하는 형편이다.소액주주 권한의 강화,결합재무제표 작성 등 재벌의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나머지 기업의 구조조정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지난해 7월 고합그룹의 4 개 계열사에 처음 적용된 워크아웃은 현재 103개 업체로 확대됐다.6∼64대 계열기업체도 59개나 포함돼 있다.그러나 실제 경영성과는 아직은 미흡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올 3월말 현재 기업개선약정을 체결한 65개 기업의 자구노력 실적은 8조2,571억원 중 7,407억원(9%)만 실행된 상태다. 앞으로 2 ∼3년은 지나야 경영성과가 나올것이란 견해가 많다. 박은호기자 unopark@-뜨는 기업과 지는 기업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2년동안 우리 기업들은 많은 시련과 변화를 겪 었다.외국업체에 매각된 업체들이 속출했고 법정관리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 웃)에 들어간 기업들도 양산됐다.구조조정과 빅딜(대규모 사업교환)과정에서 동종업체간 통합으로 간판을 내린 기업들도 있었다. 반면 IMF기간동안 착실 한 구조조정과 저금리,엔고 등 유리한 사업환경을 적절히 활용,눈에 띄게 건 실해진 기업들도 나와 대조를 이룬다. [저물어 간 기업들] 대우는 IMF직격탄을 맞고 그룹이 사실상 해체됐다. 지난 8월 12개 주력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이 확정된 뒤 ㈜대우,대우자동차 등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매각 또는 청산될 운명에 처했다. 쌍용의 주력 계열사도 줄줄이 국내외 업체에 매각됐다.97년 10월 쌍용제지 가 P&G에 매각된 데 이어 쌍용자동차는 대우에,쌍용증권은 미국 투자회사인 H&Q에 팔렸다.쌍용정유는 아람코 등 외국업체 컨소시엄과 막바지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다. 과잉·중복투자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중공업분야도 고통스러 웠다.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은 통합법인을 추진중이다.한때 조선업계 세계 5위권이었던 한라중공업은 97년 12월 부도가 난 뒤 지금은 현대중공업 이 위탁경영을 하고 있다. [뜨는 기업들] SK텔레콤의 경우 IMF관리체제하에서도 순항을 계속,올 매출액 4조원에 흑자기조가 유지될 전망이다.주식시장의 호황으로 국내 증시사상 처 음으로 주당 가격이 100만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12월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뒤 회생했다.현대의 지원을 등에 업고 IMF체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끈 레저용차 시장에서 약진, 올해 창사 이래 최대규모인 1,400억원의 경상이익이 기대된다. 반도체 업체들의 상승세도 두드러졌다.반도체 값 상승,엔고 등 대외환경의 덕도 컸다.삼성전자는 올해 25조 매출에 3조5,000억원의 순익을 예상하고 있 다.빅딜로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는 D램업체로는 세계 최대의 시장점유 율(지난해 말 기준 20.8%)을 갖게 됐다. 과감하고 발빠른 구조조정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기업으론 한화가 꼽힌 다.경향신문,빙그레 등을 분리하고 한화에너지 등 5개사 매각,한화 기계 베 어링 부문 등 4개 사업부문 매각 등을 통해 97년말 1,200%였던 부채비율을 6 월말 현재 220%로 슬림화하는 데 성공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히로뽕 택시-대마초 운전교습 8명 적발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24일 S상운 소속 택시 운전사 김모씨(33·서울 노원구 상계동) 등 2명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이모씨(31·서울 노원구 상계동) 등 5명을 대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또전 프로권투 동양 챔피언 박모씨(33)를 수배했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7시쯤 경기 양주군 장흥면 예매골 앞길에서 히로뽕을 투약한 뒤 손님 안모씨(34)를 태워 경기도 고양까지 가는 등 상습적으로 환각상태에서 운전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자동차 면허시험장 주변에서 불법 운전교습을 해온 이씨는 지난 16일 밤 11시쯤 노원구 상계전철역 부근에서 박씨와 함께 대마초를 흡입하는 등 지난해 말부터 30여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우고 운전교습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대형사건 수사 제자리 걸음

    연쇄 테러,은행 강도,대형 폭발사고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형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으나 경찰의 해결 실적은 미미한 수준에 그쳐 시민들이불안해 하고 있다. 경찰은 초동수사에 실패,증거를 찾지 못하거나 경찰서간 경쟁심리로 용의자를 섣불리 공개했다가 풀어주는 등 비과학적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서울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연쇄 피습사건은 수사를 시작한 지 8일로 39일째를 맞았으나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구로경찰서는 최모씨(34)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가 물증을 찾지 못하자 대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는 선에서 그쳤다.경찰은 사건 수사의 실무책임자로 구로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남정훈(南政勳·38)경정을 지난달 27일 노원경찰서 교통경비과장으로 전격 발령냈다.수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문책성 인사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경찰은 한곳에 수사본부를 만드는 관행을 깨고 사건발생 관할 4개 경찰서에서 따로 따로 수사를 했다.처음부터 공조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손도끼를 주민신고로 찾아내고도 파출소에서 단순 분실물로 처리,결정적 물증이 될 수 있는 혈흔과 지문을 채취하지 못했다. 지난달 18일 발생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 폭발사고 수사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밝힐 열쇠가 될 플라즈마 캡슐 전문가를 찾지 못하는등 허둥대다가 출입기자들로부터 김모씨를 소개받기도 했다.경찰은 김씨의증언에 전적으로 의지,실험실 원료 혼합기에서 생긴 스파크(불꽃)가 폭발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분석을 의뢰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류품이 모자라 분석에 애를 먹고 있다.관악경찰서가 사건 발생 첫날만 현장을 보존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18일 농협중앙회 영등포지점에서 4억3,000만원이 털린 강도사건도‘미제 사건’이 돼버렸다.경찰은 처음부터 내부자 소행에 초점을 맞춰 수사했으나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초동수사및 과학수사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경운 전영우기자 kkwoon@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 (16)삼국통일후의 판도

    663년 백왜연합군은 나당연합군과 마지막 대해전을 벌이고 역사에서 사라졌다.고구려 또한 671년 안시성과 함께 운명을 다했다.신라는 676년 설인귀가이끄는 당군의 기벌포 상륙작전을 분쇄하면서 축출에 성공했다.이렇게 해서80여년에 걸친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은 막을 내렸다. 사비성을 함락하면서 당은 백제 의자왕과 1만3,000여명의 백제유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고구려에서는 3만8,000여호를 끌고가 양자강 유역 등 여러곳에 이주시켰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저력과 해양능력을 바탕으로 국제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특히 일본무역은 거의 독점했다.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의 물품을 매입하는 신청서(買新羅物解)와 소장품은 당시 대규모로 교역했음을 알려준다.신라의 상인들이 당에 건너오고,승려나 학자들도 당으로 유학했다.몰래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도 많았다.삼국사기와 구당서에는 816년 굶주림을못견뎌 170여명이 절강지방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모여들면서 출신국가는 달라도 민족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재당신라인(在唐新羅人)들이다.이때는 이미 동아시아는당(唐) 중심의 세계질서가 확립되어 있었다.역사에서 소외당한 좌절감과 절박한 현실 속에서 유일한 생존방법은 경제권의 장악이었다.다행히 당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다른 종족을 포섭하는 세계화된 국가였다.그리고 각 지역간에 교역이 성행했다.특히 실크로드를 이용한 동서교역,바다를 이용한 남북무역이 활발했다. 그런데 서역의 대상들은 물품을 장안까지만 운반했다.페르시아상인들이 장악한 해양실크로드는 종착점이 광주나 영파,혹은 양주였다.때문에 남방의 물품을 북으로,서방의 물품을 남으로 보내는 물류망이 필요했다.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재당 신라인들은 절강에서 북경을 잇는 대운하의 주변에 정착해 운하경제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국제무역을 하는 대상인으로 변신했다. 마침 당을 중심으로 한 교역망은 황해로 인하여 한쪽이 뚫려 있었다.단절된신라와 일본을 국제물류망 속에 편입시키는 일은 재당 신라인들의 몫이었다. 신라인들은 운하주변과 해변가에 신라방 신라소 신라촌 등 정착촌을 건설하였다.수륙교통의 요지이며,신라나 일본으로 출발하는 석도(石島:赤山),문등(乳山浦),연운(宿城村),초주,양자강유역의 양주,소주,절강성의 영파,황암(黃岩)등 항구도시에 이른바 산동에서 광동까지 이어지는 해안경제벨트가 형성되었다. 영파 앞에 있는 주산군도에는 신라상인들의 배가 얹혔었다는 ‘신라초(新羅礁)’란 바위가 지금도 있고,그때 배에 실었던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불긍거관음전(不肯居觀音殿)이 중국 4대 성지의 하나인 관음신앙의 본산지가 되어있다. 재당신라인들은 대운하에서 내륙의 물류체계와 관련산업을 관장하고,절강성에서 산동,산동성에서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절강에서 동중국해를 횡단해 신라나 일본으로 삼각중계무역을 했다.동아지중해의 물류체계를 장악하고,황해연안을 자연스러운 영토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재당신라인들은 어떻게 동아지중해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먼저 항로와 항해술이다.당과 신라,일본열도 사이를 항해할수 있는 항로는 2개뿐이다. 당시의 항해술과 조선술로서는 안전을 위해 연근해 항로를 이용해야한다. 산동반도에서 150여㎞ 남짓 횡단하면 나머지는 모두 연근해 항해 구역이다. 일본항로 역시 한반도 남쪽에서 대마도를 경유하거나,제주도를 거치면 안전하다.그래서 사신선이나 교역선,여객선,해적선 등이 이 항로를 즐겨 사용했다.일본의 견당선들은 신라정부의 위협 때문에 소위 남도로(南島路)와 남로(南路)를 이용한 적이 있으나 피해가 많았다. 하지만 이 황해중부 횡단항로는 횡단거리는 짧은 대신 물길이 매우 복잡하다.바다에서는 물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신라방은 적산포 유산포 영파와 같이 대체로 황해 서안의 중요한 물목이나 항구에 있었으므로 남북종단 연근해항로에 익숙하고,건너는 물길을 잘 알고 있었다.반면 횡단한 다음에 거쳐야할 옹진반도,경기만,영산강 하구와 해남 등으로 이어지는 서해 연안의 물길은 신라인들의 소관이었다. 물론 그들과 연결된 해운조직은 당인도 일본인도 아닌 재당 신라인들 뿐이었다.때문에 이 항로를 이용하는한 동아지중해의 상권은 범신라인들의 독점물이었다.모험심이 왕성하고,능력있는 그들은 항법상 어려운 동중국해 횡단항로도 개발했다.장우신(張友信)같은 신라인들은 절강성 주산군도를 출발,동중국해를 횡단해 제주도를 경유하면서 신라로 들어가거나,직접 일본의 규슈지역으로 항해하였다. 재당 신라인들의 활약은 항로상의 이점 외에 우수한 신라배들 때문에 가능하였다.그리고 황해는 원래 수천년 전부터 동이족이 개척한 바다였다.선천적으로 해양능력이 뛰어났던 그들에게 바다는 암울한 현실속에서 경제력으로자존심을 되찾는 유일한 장이었다.재당신라인들은 8∼9세기 동아지중해와 세계를 잇는 교류의 장을 열었고,또 본국인 신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 위대한 해상영웅들을 우리의 역사는 또 저버렸다.그들의 실체를 알려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해상강국이 된 일본의 승려인 옌닌(圓仁)이었다.100여년 동안 폐쇄회로였던 바다가 개방되면서 교류의 장,또는 경제전쟁의 주무대가 된 것이다.21세를 맞는 지금 다시금 재당 신라인들의 존재가 요구되고 있다.천년 전처럼 유민으로 정착한 조선족들이 곳곳에 ‘신라방’을건설하고 있다.그들과 역사가 바다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다시 또 동아지중해의 주인이 될수 있을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재벌개혁 초일류기업으로 가자](중)

    -선단식 경영 계속하면 모두가 죽는다 “내가 물려주고 싶은 것은 물적 재산이 아니라 지식재산이다.그리고 2세를아낀다면 차라리 돈을 주고,절대로 기업을 물려주지 말아라” 지난해 타계한 고 최종현(崔鍾賢)SK회장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SK그룹은 지난달 26일 최회장 1주기를 맞았지만 전문경영인 출신의 손길승(孫吉丞)회장과 대주주인 최태원(崔泰源)SK(주)회장이 역할분담을 하며 구조조정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SK는 지난 1년동안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산업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SK(주)와 SK텔레콤 양대 주력사가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대우가 워크아웃,현대가 주가조작 시비,삼성이 총수의 사재출연과 세무조사설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과 대조적이다.SK가 변신에 성공한 이유는 여러가지가있겠지만 한 재계 관계자는 “잡다한 계열사를 거느린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선단식(船團式) 경영을 지양,주력 업종에 집중투자한 것이 주효하지 않았겠느냐”고 풀이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정·재계 간담회에서 “일부에서 재벌개혁을 재벌해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선단식 경영이종식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재벌개혁의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과거 우리나라 재벌들의 사업구조는 ‘문어발’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이쑤시개에서유조선까지 모든 업종을 망라해 손을 대지 않은 사업이 없었다.따라서 대기업의 사업구조는 서로 비슷한 형태로 유지돼 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선단식 경영은 결과적으로 세계 초일류 전문기업과의치열한 경쟁에서 처절한 패배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는 또 규모만 크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이라는 잘못된 신화를 잉태,급기야 오늘날 대우의 비극마저 초래하기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2001년 4월부터 부활되는 30대 재벌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선단식 경영의 종식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다.재벌들이 그동안 법망을 피해 3사 이상의계열사간 상호출자(순환출자)를 통해 가공자본을 창출,실질적인 자본의 투입도 없이 소유지분을 강화하고 부채비율도 낮추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저질러왔기 때문이다.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음에도 불구,계열기업을 지배할 목적으로 새로이 출자,또 다른 부실을 낳는 ‘부실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자는 것이다.재벌총수와 가족들의 편법 재산증여에 따른 책임,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문제도 똑같이 총수 1인 지배하의 선단식 경영체제를 바꿔나가기 위해 필요한조치다. 수많은 계열사를 재벌총수 혼자서 경영하면 당연히 문제가 따른다.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공산이 커진다.재벌들은 선단식 경영의 환상에서 벗어나 ‘버려야 산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그리고 주력 기업에집중투자,세계 초일류 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대기업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의 주류를 이루는 중소기업도 공동부실화,모두가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깨달아야 할 것이다./정종석 경제과학팀장
  • 교도관테러 유력용의자 검거

    서울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연쇄 손도끼 피습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구로경찰서는 3일 유력한 용의자 최모씨(34·전과 7범·대구 동구 방촌동)를붙잡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 6월15일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아파트 앞에서 발견된 가스분사기가 최씨 아버지의 것으로 확인,지난 2일 오후 대구로 수사대를 보내 최씨를 붙잡았다.경찰은 대마초를 피워 환각상태에 있던 최씨를 대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서울 구로경찰서로 압송했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 범행에 쓰인 손도끼가 대구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했다.최씨가 사는 동네 주민들로부터도 ‘최씨가 손도끼를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최씨가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동안 재소자와 싸움을 벌여 두번이나징벌을 받아 교도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재소자들의말에 따라 출소 이후 행적과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최씨는 “가스총은 도둑을 맞은 것”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최씨는 지난 94년 2월 살인미수 혐의로 영등포교도소에서 1년여동안 복역한뒤 청송교도소로 이감돼 2년을 더 복역하고 지난해 11월 출소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5)삼국통일전쟁의 완결

    660년 여름.소정방이 이끄는 13만명의 병력을 태운 대선단은 산동반도의 성산을 출발하여 황해중부 횡단항로를 은밀하게 건너갔다.그리고 군선 100척을 거느린채 남양반도 외곽의 덕물도에서 대기하던 신라의 태자 김법민(金法敏)의 수군과 만났다.나당연합함대는 남쪽으로 항진,금강을 거슬러 올라가 사비성 상륙작전을 개시하였다.그러나 백제의 뒤늦은 방어는 실패로 돌아가고,계백장군의 오천결사대 마저 황산벌을 피로 물들이며 사비성은 700년의 역사를 끌어안은채 무너졌다. 몇달후인 660년 12월 당나라 군사들은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신라는 고구려를 남쪽에서 공격하였다.그리고 이듬해 8월,왜는 대한해협을 건너 백제에 구원군을 보냈다.이것이 바로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의 완결편인 삼국 통일전쟁이다. 고구려와 통일 중국간 전쟁은 598년 고구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돼 60년 이상 계속되고 있었다.한편 한반도에서는 신라가 경기만을 빼앗고,황해중부 해상권을 장악하며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등 팽창해 나가자 백제와 고구려가 견제하는 형세였다.왜는 바다 건너에서 정세를 관망하고 있었다. 복잡한 국제환경 속에서 당은 외교적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정책을 추구하면서,군사적으로는 고구려를 남북에서 협공했고 신라는 위기를 타개할목적으로 당과 연합,백제를 공격했다.결국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참전한국제전쟁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이 전쟁은 해양질서의 대결이란 측면이 매우 강했다.외교적으로 신라와 당이 해양을 통해 동서동맹을 맺었고,고구려와 백제,왜 등은 비록 느슨한 형태이지만 남북협력 관계를 구축하였다.고구려는 동해를 건너 왜에 빈번하게 사신을 파견했으며,660년 정월에는 100여명의 사신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이와같이 동아지중해에는 중국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를 축으로 황해 동해 남해를 연결한 해양십자형 동맹관계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해양은 군사전에서 절대적 역할을 하였다.백제는 당군의 원거리 해양 수송작전과 나당연합군의 금강 상륙작전으로 항복했다.그 후 신속하게 광복운동을 펼쳤으며,왜에 구원군의 파견을 요청하였다.그러나 왜는 개전 초기에는 국제전임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해양능력이 부족해 군대의 파견이 더디었다.드디어 왜왕 사이메이(齊明)는 661년 정월 고구려와 공조제제를 협의하려고 월(越:현재의 쓰루가 지방,고구려 사신들이 도착하던 장소)에 갔으며,2월에는 규슈북부에 임시정청을 설치하고 전쟁을 지휘하다가 급사했다. 사이메이왕의 뒤를 이은 텐치(天智)는 8월 군사와 무기,식량 등을 백제에보냈다.9월에는 백제의 왕자인 풍장(豊璋)이 5,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국으로 귀국해 왕이 된다.662년에는 정월부터 군사원조가 이뤄지고,5월에는화살 곡식 등 무기와 함께 군선 170척을 보냈다.이렇게 대한해협을 항해하면서 백제 광복군과 왜는 공동작전을 수행하였다. 이어 663년 5월 고구려와 공조체제를 논의하였고,8월 그 유명한 백강(白江,白村江)전투가 벌어졌다.나당연합군은 주유성(周留城,州柔城)을 포위하고,함대 170척은 백강에 진을 쳤다.왜선은 1,000척이 대기하고 백제군은 왜선을수비했다.28일에 벌어진 최후의 해전에서 백제와 왜의 연합군 전선 400척이불탔고 2만7,000명이 전사하는 등 완전히 괴멸되었다.드디어 주유성은 항복하고,음력 9월 백제유민들과 왜병은 차가운 북서풍에 배를 띄워 일본열도로탈출했다. 그러나 이미 7세기에는 본격적인 해양전 시대에 돌입한 만큼 일본열도 역시 당의 해상작전권 안에 있었다.당나라는 664년부터 사신과 군사를 파견해 위력시위를 벌이며 전후 보상을 요구하고,내정간섭을 시도했다.때문에 백제유민들을 중심으로 대마도에서부터 규슈지역,혼슈 서남부지역,그리고 키나이지방의 나라에 이르는 광범위한 해안지역에 산성(조선식 산성)과 태재부(太宰府)의 수성(水城),봉수 등 독창적이고 효율적인 방어체제를 구축했다.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은 고구려를 본격적으로 공격했는데,이 또한 해양전적인 성격이 강했다.당군은 661년 정월과 4월 수군을 동원했으며,8월에도 소정방이 수군을 거느리고 고구려군을 패강(浿江)에서 깨뜨리고,평양성을 포위했다.666년 12월에 편성된 이세적군의 군사작전과 편제는 군선의 사용을 분명히 보여준다.667년에는 곽대봉(郭待封)군이 평양성을 공격할 때수군을 동원하였는데,이때 무기와 식량 등을 운반하던 선박들이 부서져 작전에차질을 빚기도 하였다.이렇게 육전과 함께 해전이 벌어지면서 당은 전쟁물자들을 배로 후방 깊숙히 운반하였다.668년 9월에 평양성은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그러나 압록강 이북의 40여성은 몇년동안 감동적인 전쟁을 계속했으며,안시성은 끝까지 항전을 하다가 671년 7월에 가서야 항복하였다. 고구려는 해양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해양외교도 활발히 펼쳤다.전쟁도중에도 백왜연합군과 공동작전을 시도하였고,동해를 건너 왜국에 사신을 보내면서 교섭을 하였다.그러나 이미 동아지중해에는 대규모의 군선을 이용한원거리이동 상륙작전이 실시되고,해양력(SEA-POWER)이 나라운명을 결정하는시대였다.고구려는 높은 수준의 해양력을 바탕으로 한 당나라의 평양 직접공략과 후방을 이용한 나당군의 협공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80여년간에 걸쳐 벌어진 엄청난 규모의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신라는 자신이 끌어들인 당군과 전투를 벌였고,670년 일본열도에선백제와고구려유민이 함께 한 ‘일본’이란 국가가 탄생한다.이로써 우리민족은 고구려가 대륙과 해양을 장악하면서 수백여년동안 누려오던 동아지중해의 중핵 조정역할을 상실한 채 주변부국가로 만족하면서 점점 해양을 멀리하게 되었다./윤명철 동국대 겸임교수
  • 1弗=111엔대, 円이 달린다

    일본 엔화 가치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달러당 111엔대에 재진입했다. 19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6일째 급등세를 타 111.25엔까지 치솟았다. 달러가 111엔대에서 거래되기는 2월 중순 이후 6개월 보름만이다. 달러화에 대해서만 강세를 보여온 엔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116엔대로 급상승,유로화가 탄생한 1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엔화 급등은 일본 경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과 유럽의 뭉칫돈이 일본에몰리고 있기 때문이다.오를 만큼 오른 미국 주가에 대한 경계심리와 유럽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 등이 겹치면서 ‘일본 주식,엔 사기’가 이어지고 있다.이런 흐름은 도쿄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돼 닛케이 평균주가는 8월6일 1만7,084엔을 기록한 이후 18일까지 연일 상승세를 보였다.다만 19일에는 가파른 엔고에 대한 경계감,엔고에 따른 수출기업의 실적부진 전망으로주가는 전날보다 100포인트 이상 빠진 1만7,879엔에 마감됐다. 일본 통화당국은“적절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엄포를 놓았을뿐 엔화가치를 낮추기위해 달러를 사들이는 시장개입은 하지 않았다. 시장 관계자들은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12엔대마저 무너짐에 따라엔고는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108엔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사 설] 재벌 금융지배 막아야

    정부가 18일 발표한 ‘제2금융권 금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건전성강화방안’은 5대 재벌의 2금융권 지배를 막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5대재벌은 계열투신·증권·보험사 등 제 2금융권 기관으로 돈이 몰리자 이 자금으로 부실계열사를 지원,퇴출되어야 할 계열사가살아남는 등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역할을 해왔다. 5대 재벌의 비(非)은행 금융기관은 IMF사태 이후 초대마불사(超大馬不死)라는 신조어를 믿는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쉽게 모아 금융분야 지배력을 강화해 왔다.5대그룹 제 2금융권은 비상장사라는 이유로 자산운용에 대해서는 감독기관으로부터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는 점을 최대한 이용,재벌의 사금고 역할을 하고 있다. 5대 재벌 계열 투신사 수익증권의 경우 금융시장 점유율은 97년 3월 6.2%에서 99년 3월에는 31.6%로 늘었고 생보사 보험료는 97년 3월 30.5%에서 올 3월에는 36.4%로 높아졌다.5대그룹 제2금융권의 수신 역시 97년 3월 18.6%에서 올해 3월 34%로 배 정도 늘었다.여기에다 초대형 펀드가 출현하면서 자기계열 주식에 10% 이상 투자하지 못하도록 한 기존의 자산건전성 규제기준으로는 동일계열에 대한 투자나 여신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가 없었다.이런상황에서 5대그룹 계열 금융기관끼리 서로 짜고 지원하는 이른바 교차자금지원방식마저 성행하고 있으나 현재는 이를 규제할 장치가 없다. 정부가 5대그룹 금융기관의 계열사에 대한 여신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이들금융기관이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은 상당부분 막을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또투신사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을 관련계열로 규정, 투자한도를설정함으로써 현실적인 제재가 가능토록 한것은 특기할 만하다.장기적으로보험사의 자기계열 투융자한도나 투신사의 자기계열 주식투자한도를 아예 없애기로 한 것은 자산건전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동시에 사외이사 확대와 권한 강화,감사위원회 제도 도입,경영책임 강화,소액주주권한 강화(대표소송 조건완화)등도 지배구조개선 선진화의 핵심요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안으로 사외이사의 수가 늘도록 돼있다.그러나 은행 등의 사외이사가 경영과 관련,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서 사외이사를 그룹총수가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경영부실에 대해 사외이사의 책임을강화할 필요가 있다.손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지는 보완조치가 있어야 한다. 소유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은행(4%)처럼 동일인 소유지분 제한규정을 빠른시일 안에 도입해야 한다.또 5대그룹 계열금융기관이 6대 이하 재벌 계열금융기관과 짜고 교차지원을 하는 것도 막아야 할 것이다.
  • “대우 강력한 구조조정 재벌개혁 가장 큰 진전”

    대우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은 한국 재벌개혁의 가장 큰 진전이며 재벌개혁필요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강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이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30년간의 개발독재를 통해 최빈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급성장한‘주식회사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선후 여러 부분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중이며 대마불사로 표현되던 재벌기업,특히 대우에대한 개혁이 이같은 상황을 대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환용기자 dragonk@
  • 해체수순 대우사태 전망

    16일 대우그룹 재무구조개선 특별약정이 발표됨으로써 대우그룹이 해체의길로 들어서게 됐다.이번 약정체결로 대마불사의 신화를 낳았던 재벌도 경영을 잘못하면 해체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됐으며 앞으로 정부의 재벌개혁정책에 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니그룹으로 위상약화 남게 되는 대우자동차 등 6개사의 총 자산과 매출은 각 39조5,000억원,44조 1,000억원이다.현대 삼성 LG에 이어 4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은 나온다.작년말의 경우 자산순위는 현대(78조8,000억원)대우(76조7,000억원) 삼성(60조3,000억원) LG(47조9,000억원) SK(31조5,000억원)의 순이었다. 그러나 조선,전자 등 주력 제조업체들의 분리로 이들 회사의 수출을 대행해 온 ㈜대우의 매출 급감과 부채상환에 따른 자산감소,결합재무제표 도입에따른 대우차,대우자판의 매출 중복계산 해소 등의 변수때문에 위상은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특히 대우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간 전략적 제휴가 경영권 인수가 됐든,자산매각이 됐든 대우의 외형축소를가져올것이 분명하다.따라서 자산기준 재계 2위인 대우는 6∼15위권으로 내려앉을가능성이 높다. ▒약정 제대로 지켜질까 이번 약정을 통해 정부는 대우의 구조조정 작업에압박강도를 한층 높였다.무엇보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대우가 제시한 담보를 채권단이 즉시 처분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투신사 환매움직임 등 금융시장의 심상치 않은 조짐도 대우에겐 큰 부담이다. 대우측도 방향이 정해진 만큼 구조조정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다.그룹수뇌부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김우중(金宇中)회장이 최근 리비아 등을 직접 돌며 미수금 독촉에 나서는가 하면 김태구(金泰球) 대우자동차 사장도 16일 미국으로 출국,GM과 협상에 나섰다. 재계에서는 대우중공업 등 일부 계열사의 매각추진 작업에 난항이 예상되지만 전반적으론 대우의 구조조정이 속도를 더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농업협동조합법 내용·의미

    신구범(愼久範)축협회장의 할복,자해 기도로 12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를통과한 ‘농업협동조합법’(정부안 농업인협동조합법)의 제정 취지 및 주요내용이 관심을 끌고 있다. 법제정의 원칙은 농업협동조합중앙회와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인삼협동조합 중앙회로 분산돼 있는 중앙조직을 하나로 통합, 일원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WTO체제에서 우리 농산물을 지키고,농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현재의 중앙회 조직으로는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농협의 자기자본 잠식비율이 49%,축협의 자기자본 잠식비율이 82%에 달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중앙회가 조합의 수입을 예대마진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은 13일 이와 관련,“재정상태가 열악한 협동 조합을 하나로 묶어 조직을 슬림화,경쟁력을 강화하고 중앙회 중심의 조합운영을 단위조합 위주의 조합운영으로 바꾸는 것이 법개정의 진정한 의미”라고밝혔다. 따라서 여당은 지난해 2월부터 추진해온 조합통합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었다.인삼조합은 일찌감치 농협과의 통합에 찬성했다.그러나 축협은달랐다.지난 7월초 신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였다는 게 정부측의 설명이다.국민회의 당사 앞에 축협 직원의 법안 반대시위,농협직원들의 찬성시위가 잇따른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는 축협이 요구하는 많은 부분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중앙회 회장 아래 농업경영대표,축협경영대표,신용대표를 두고 축협대표를 축협 단위조합에서 임명토록 하는 등 축협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앙회의 명칭과 조합내의 별도 법인 요구는 묵살됐다.농축협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경우 현재 농협간판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들고,법인안에 특수법인을 두자는 요구는 무리하다는 논지다. 야당도 조합 통합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야당의원들은 신회장 자해소동 이후 열린 이날 법사위에서 통합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2회)

    ■ 韓·日 연합왕국說 경성대학교는 1990년부터 김해 대성동에서 4∼5세기초 금관가야의 왕릉급무덤들을 발굴하였다.이 발굴을 통해 금동말안장 등 마구와 철제갑주,철제큰칼,방패에 붙였던 파형동기(巴形銅器),청동거울,그리고 많은 양의 철정(鐵鋌)등 유물을 발굴하였다.물론 근처인 동래의 복천동과 양동리에서도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됐다.이렇게 해서 삼국사 속에서 사라졌던 나라인 가야가복원되고 사국사(四國史)가 기술되게 되었다. 가야는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였다.중국기록에 일찍부터 등장하고,왜 등 주변국가들과 교역을 한 국제적인 나라였다.국력이 매우 강하여 전기에는 신라를 제압하기도 했으며,고구려의 광개토대왕군이 신라를 구원하고자 할 때 백제,왜와 연합해 대항하기도 했다.가야는 미약하나마 562년까지 실존한 나라였다.그럼에도 기록이 불실하고,실체가 불분명하여 해석이 분분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임나일본부설’이다. 4세기경 야마도정권이 신라를 정벌하고,가야지방을 정복한 뒤 약 200년간‘임나일본부’가 존속하였다는 것이다.이 설은 기록의 문제점과 당시 동아시아의 대세로 보아 한일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어 왔다.그중에는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주장한 ‘기마민족국가설’이 있다.부여 고구려지역에서 남진해온 기마집단이 4세기 초 가야지방에서 일본열도로 이동한 다음 규슈북부와 한반도 남부지역에 걸쳐서 연합왕국을 건설했다는 이론이다.이 설은 활동주체를 일본열도 쪽에 두는 한계가 있지만 그 사이에 바다를 둔 국가의 존재를 상정한 것은 타당성이 있다. 필자가 지면을 통해 꾸준히 주장하였듯이 동아지중해 해양문화는 매우 뛰어났고,특히 대한해협은 주민들이 활발하게 오가는 교통로였던 것이다.가장 손쉽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교통로는 김해지역과 규슈북부를 연결하는 항로이다. 일본 건국신화에는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도(瓊瓊杵尊)가 삼종신기를 갖고 다카마노하라(高天原)를 떠나 히우가(日向)의 다가치호노다게(高天穗峰)의 구시후루(환觸峰.久士布流多氣)에 도착한다.그의 후손인 짐무(神武)는 동쪽으로 정벌을 완료한 후 초대 천황이된다는 내용이 있다.이 신화는 김수로왕의 ‘천손강림신화’와 구조나 내용이 같고,등장하는 지명(구시후루는 구지봉(龜旨峰)과 음이 유사함)도 비슷하므로 가야계 집단이 일본열도에 도착,고대국가를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대마도나 규슈북부지역에는 가야계 지명이 매우 많다.특히 고대항로의 깃점인 당진(唐津)은 원래는 한진(韓津)이었으며,지금도 ‘가라의 항구’란 뜻인‘가라츠’라고 읽는다. 만을 굽어보는 산은 ‘가야산’이고, 근처에 ‘가라도마리’,‘게야’등 가야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특히 천손인 니니기노미코도를 모신 규슈 중부의 기리시마신궁(霧島神宮) 근처에는 가라쿠니다케(韓國岳)가 있다.그외에도 한국과 가야를 가리키는 말이 무수히 많다. 가야와의 관련성은 유물에서도 나타난다.일본신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청동거울이 양동리 대성동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가야는 변진의 전통을 이어받아 철기문화가 발달하였다.대성동 2호분에선 철도끼와 교역품이었던 대형철정 150점이 발견되었고,다른 곳에서도 철제칼 무기 등이 발견되었다.중요한 고분에서는 철제 갑옷과 투구,마구류,행엽,가죽방패 등이 나온다.기마문화가 발달하여 4세기 경에는 기마군단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그외에 파형동기,통형동기 등 일본적인 것으로 알려진 유물이 있는데,이는 오히려 일본보다 시대에서 앞서고,기술도 뛰어나 가야가 원류라는 주장도 나온다. 가야인들은 철제무기로 무장한 기마군단을 보유한채 함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를 정복한 것이다.물론 당시 조선수준으로는 대규모 군마를 운송할수 없었다.때문에 군사는 빠른 전선에 타고,군마는 뗏목(宮本常一 설)이나쌍동선(雙胴船:石井謙治 설)에 싣고 대선단을 이뤄 건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야인들은 이렇게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안을 동시에 지배한 해양제국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성동에서 발굴된 벽옥제 화살촉 등이 조공품이었다는 견해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가능한 일이다.가야는 점차 일본열도의 중심부를 향하여 진격하는 한편,남해무역을 독점해 국가의 부를 더욱 축적하였을 것이다.그러나 고대국가가 성장하고,해양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신라는 질좋은 철을 생산하고,동해남부 항로를 개척하면서 일본열도로 진출하였다.백제 또한 전라도 해안까지 진출한 뒤 대한해협을 본격적으로 건너갔다.고구려 역시 광개토대왕 이후에 동해를 건넜다.이렇게 사국의 해양력 경쟁체제가 성립되자 가야는 항로의 독점권을 빼앗기고,교역상의 이익이 사국으로 분산되면서 점차 위상이 약해져 갔다.해양폴리스들을 주축으로 한 소국연합체인 가야는 필연적으로 내부 통합력이 약했다.또 양안에 걸친 지배체제였을 경우 관리와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이런 한계를극복하지 못하고,해양제국인 가야는 점차로 사라져 갔다.하지만 그들은 대한해협의 정치와 상업을 장악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이었으며,우리는 그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 [해양한국 장보고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1회)

    ‘기원후 48년 7월,가야땅인 김해의 망산도에 한 척의 배가 닿았다.붉은 돛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서남쪽에서 다가온 배 안에서 여러 명의 신하들과함께 내려온 여인은 김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나는 본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성은 허(許)씨요,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이렇게 해서 김수로왕과 바다를 건너온 출자(出自)가 불명인 공주는결혼했다.뱃사공들은 돌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가야의 국민이 되었다.‘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기록되어 있는 사화이다. 가야국은 육지의 이주세력과 해양세력이 결합해 출발한 나라이다.그러면 허황옥 집단은 어디에 기반을 둔 세력이며,어떤 항로를 거쳐 가야땅까지 왔을까? 그리고 해양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왕국이라는 설이 있다.허황옥과 관련한 문화적인 요소는 분명 남방적 분위기가 풍긴다.우리문화 전반에도 신화 신앙 장례 풍습 등 남방적인 요소가 많다. 인도에서 한국까지는 오늘날에도 너무나 먼 뱃길이다.하지만 자연조건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인도남부를 출발하여 말라카해협을 통과한다음에 남서풍을 이용하면 보르네오섬 북쪽을 지나 북상이 가능하다.더구나필리핀 북부부터는 쿠로시오(黑潮)가 북동진한다.따라서 이 해류와 봄철에부는 바람을 이용하면 동남아지역과 일본열도 혹은 한반도남부는 교섭이 가능하다. 한편 그들은 인도를 떠나 육로로 중국의 사천성을 경유한 다음 양자강 하구에서 황해남부 사단항로를 이용해 가야지역에 도착했다는 설도 있다(金秉模설).그 외에 요동에서 서해 연근해항해를 이용해 낙동강구를 찾아왔다는 설도 있다.가야는 이렇게 원양 항해능력을 갖춘 집단으로 출발했다.하지만 이미 건국할 당시부터 강력한 해군이 있었다.이주민인 석탈해가 김수로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자 주사(舟師) 오백척을 내어 쫓아버렸다. 동아지중해는 황해 뿐만 아니라 전역에 걸쳐 해양문화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고대국가들은 농사를 짓고,교역을 하며,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대부분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달하였다.특히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나 혹은 바다를 둘러싼 지중해지역에선 더욱 그러하다.‘삼국지’의 ‘한전’(三國志韓傳)에 의하면 한강 이남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 연맹체 아래 만여가에서 수백가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소국 79개가 있었다. 이 소국들의 상당한 숫자는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과 같은 큰강의 하류(津)나 바닷가포구(浦)에 있었다.유럽 지중해의 연안에 무수히 발달했던 ‘아테네’ ‘코린트’같은 일종의 해양폴리스같은 ‘나루국가’였던 것이다.이 소국들은 바다를 건너 중국지역은 물론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열도와도 활발히 교역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일본열도에도 기원을 전후하여 규슈를 중심으로 100여개의 나라가 있었다.이들 소국은 점차 큰 나라로 통합돼 기원 3세기 무렵에는 30여개의 나라가 되었다.물론 이 소국들의 주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문화의 주민들이었다. 좁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이들 수십개의 소국들은 선단을 보유한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그것은 교역권의 쟁탈전이었고,농사짓는 토지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뱃길,좋은 항구,우수한 선원을 확보하기 위한 해양력 경쟁이었다.소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의미있고 현실적으로 강한 나라가 바로 가야의 전신인 구야한국(狗邪韓國)이다. ‘삼국지 왜인전’에는 대방에서 일본열도의 야마대국까지 가는 항로와 항해거리,경유하게 되는 소국의 위치와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그런데 바로 한반도의 마지막 깃점이 김해지역으로 추정되는 구야한국이었다.이곳은 경상도 전역을 훑어내려온 낙동강의 물길이 모여서 대한해협과 만나는 나루터이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세력과 남해안을 따라 동진하는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 동남부의 끝단이다.전라도의 해안이나 제주도에서 해류를 타면 자연스럽게김해지역에 도착한다.대마도와 이끼섬을 중간에 두고 일본열도와 이어지는최단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대항해는 가능한 자기위치를 확인하면서 연근해 항해를 하고,되도록 짧은거리를 선호한다.때문에 당시 김해지역은 중국지역과 한반도,일본열도를 이어주는 동아지중해 최적의 중계지였고,교역선이나 사신선들이 반드시 경유할 수밖에 없는 국제항이었다.이곳에는 각지역의 사람들과 다양한 물건들이 매매되고,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1년∼92년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에서 동의대학교가 기원전 1세기부터 4세기에 걸치는 고분에 대한 발굴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엄청난 유물들이 발굴된 이 지역이 기록상의 구야한국으로 추정된다(林孝澤).특히 2세기말 수장급 묘로 추정되는 162호 토광목곽묘에서는 9개의 청동거울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2개는 중국제 한경(漢鏡)이고,나머지 7개는 중국경을 모방한 방제경(倣製鏡)이다. 일본열도에서 많이 발견됐던 이 방제경을 놓고 한일학자들은 그 원류와 만든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또 광형동모,옥,목걸이 등 두지역간 닮은 것들이 출토돼 해석이 분분하다.이와같은 현상은 경성대가 발굴한 근처 대성동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야가 중국물건들을 수입했으며,한일 양 지역간에는 해상교류가 활발했고,기록처럼 핵심거점이 이곳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변진(변한)은 철을 돈처럼 쓰기도 하고,왜 낙랑대방 예 등에 수출했다(삼국지 한전).또 유사한 물건들을 사용한 규슈의 소국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이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김해지역은 소위 환황해 연근해항로의중요한 깃점이자 교역망의 중계항이고 물류체계의 핵심거점이었다.해양소국에서 출발한 가야는 대한해협의 양안을 지배하는 해양제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 남대문은 그래도 안전?‘남대문 이상무’ 국립 문화재연구소의 남대문에 대한 안전 진단 결과이다. 남대문은 국보 제1호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그러나 그 주변으로 수많은 차량이 오가며 매연을 내뿜고 땅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등 대접이이만저만 소홀한 것이 아니었다.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차량 및 지하철 운행에 따른 진동 등으로 남대문이 훼손될 수도 있다며 안전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문화재연구소는 97년 12월 남대문 하층 귀기둥 부분에1000분의 1㎜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자동경사측정기 8대를 설치했다.24시간 상시 가동되는 자동경사측정기는 30분당 2분씩 5초간격으로 건물의 기울기를측정해 왔다.측정된 자료는 변환기를 거쳐 중앙제어장치에 저장되고 문화재연구소로도 보내진다. 문화재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일간,월간,계절간 변화를 비교,구조물의 거동특성을 분석하고 변위경향 분석을 통한 구조물의 안전도를 점검했다. 자료분석결과 측정 센서별 진폭은 1∼4㎜이내로 거의 없었으며 변형은 하루 및 연간 단위 주기로 파형 곡선의 증감을 보였다. 연구소측은 “측정값이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남대문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즉 나무로 된 이음새부분이 온도,습도 등의 영향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연구소측은 또 “기울기가 주기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계절 또는 주위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구조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남대문 보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내렸다. 그러나 문화재연구소 김봉건 미술공예연구실장은 “자동 경사측정기를 지난해 4월부터 본격 가동했기 때문에 계절별,연간 변화를 파악하려면 1년반 정도 더 운영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편 연구소측은 내년에는 동대문에도 자동경사측정기를 설치하기로 하고예산요청을 했다.동대문은 지하철 공사가 시행된 지난 83년과 84년에 측정했을 때 8㎜로 나타나 남대문보다 훨씬 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후약방문’보다는 문화재 밑으로 지하철을 굴착하는 도시개발행위가 중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태순기자 stslim@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0회)

    신라 8대 아달라왕(阿達羅王)때(158년)의 일이었다.연오랑(延烏郞)이라는바닷가에 사는 사내가 해초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여 일본땅으로데려갔다. 사람들은 놀랍고 신기해서 그를 데려다 왕으로 삼았다.남편을 찾아 바닷가를 헤매던 세오녀(細烏女)는 바위에 남편의 신발이 있는 것을 보고,그 위에 올라타자 다시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를 일본땅으로 데려갔고 그녀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그러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삼국유사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해와 달을 관장하는 종교집단이 배를 타고 일본열도에 진출해 소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표현한 설화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얘기가 일본서기에도 나온다.수인(垂仁) 3년에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배를 타고 왔는데 7가지 보물을 가지고 왔다고되어 있다.‘고사기’에는 역시 수인 2년에 임나국의 소나가시치가 귀국도중신라왕이 길을 막고 보물을 가로챘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천일창은 바로 시마네현의 이즈모지역에 정착한 세력이다.이즈모는 일본신화에서는 아마테라스신에 대항한 스사노오노미코도로 대표되는 강력한 집단의 근거지였다. 신라계인 그 신이 하강한 도리가미(鳥髮)의 땅은 이즈모 최대의 철산지였다.결국 연오랑 등의 신라계 진출자들은 발달된 제철기술을 갖고 이곳에 정착하여 문화를 발전시키고,질좋은 무기와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주위를 복속시켜 나갔다.고진다니(荒神谷)에서는 350여개의 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지금은 바닷가 부근 한적한 마을이 되어버린 옛 이즈모국 평원에는 방분(方墳)전방후원분 등이 많이 있다.그 고분들에서는 청동거울과 철촉 구슬 토기류등 우리문화와 관련있는 것들이 출토됐다. 그러면 신라인들이 건너다닌 일본항로는 어떠했을까? 연오랑 세오녀 부부처럼 영일만,박제상처럼 울산(栗浦),대왕암이 있는 감포를 출발하여 동해 남부를 횡단한 다음에 혼슈 남부인 돗토리현,시마네현,야마구치현,그리고 후쿠이현에 도착하였다. 이즈모지역은 울산이나 포항과 비슷한 위도(북위 35,5도)이므로 동해남부나남해에서 리만한류를 타다,북위 30도 부근에서 대한난류를 횡단하여 본류에타면오키제도를 경유해 도달할수 있다.계절풍을 활용한다면 항해는 크게 어렵지 않다. 필자는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려고 남부지방까지 내려왔을 때 고구려군이 일본열도로 진출했을 가능성을 주장한 바 있는데 당시 그들은 이 동해남부 횡단항로를 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학자와 몇몇 일본학자들은 이즈모지역에 고구려 영향이 강했다고 주장한다.후대에는 발해인들도 이곳에도착했다.이 항로는 가을과 겨울에 더 적합하다.모험심이 강했던 신라인들은 낮은 수온과 강한 북서풍이 일으키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항해했다.반대로이즈모에서 연안을 항해,규슈 가까이 내려간 다음 대마도로 항해하여 북동진하는 해류에 올라타면 신라의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신라땅과 일본열도를 오고 가며 생활한 놀랄만한 개척정신의 소유자들이 사용했던 항해도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신라왕자 천일창은 배(艇)을 타고 항해하면서 7가지(고사기에는 8가지)의 신령스런 보물을 가져왔다.구슬 2개,청동거울,천(布)등인데,이것들을 방위측정기,풍향,풍속측정기,조류측정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청동거울은 가장자리에 표시되어 있는 12지신을 지표로 삼아 방위를 측정하는 나침반 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茂在寅男 ‘고대인의 항해술’).필자는 뗏목항해를 할 때마다 이러한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이렇게 신라계 이주민들은 시마네,돗토리 등 지역에 정착한 다음 다시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였다.한 갈래는 척량산맥을 넘어 기히(吉備,오카야마지방)로 가 거대한 전방후원분을 축조하였다.오카야마시 근처에는 시라기(白石)마을이 있다.기히지방에는 산처럼 보이는 전장 350m의 쓰쿠리야마(造山)고분을 비롯해 약 4,000기의 고분이 분포돼 있다.특히 오쿠지역은 신라적인 요소가 강하다.츠키야마 고분에서는 말 재갈과 행엽 등 말의 장식품이 출토되었는데 경주의 출토품들과 유사하다.근처 구로야마 2호분에서도 초기 신라계 토기가 많이 나왔다. 다른 한 갈래는 연안항해를 하며 북상해 후쿠이현의 쓰루가 지역에 도착했다.쓰루가(敦賀)는 원래 츠누가(角鹿)라고 불렸는데,머리에 뿔이 난 사람들이 왔기 때문이라고한다.이들은 바로 투구를 쓴 가야인들이다.그러나 신라인도 많이 들어왔다.가장 큰 만(灣)인 와카사만에는 신라를 나타내는 시라기마을(白木浦)이 있고,시라기신사(白木神社)가 있다.지금은 4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예전에는 신라인과 가야인,고구려인들이 들어온 항구이다.특히 발해인들은 이곳을 주요한 도착 거점으로 몇 개월씩 머물면서 장사를 했다.쓰루가에는 이곳 말고도 ‘白石신사’‘白城신사’‘信露貴彦신사’등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시라기’인,신라의 조신(祖神)을 모신 신라신사들이 많다. 가야나 백제계 세력은 초대천황인 짐무(神武)의 동정(東征)설화처럼 규슈를 출발하여 좁고 물살빠른 세토내해에서 힘든 항해와 숱한 전투를 치러가면서 어렵게 오사카만에 도착했다.그 항해에 비하면 이즈모지역에 도착한 신라계는 연근해 항해를 하여 쓰루가에 거점을 확보한 후 다시 동으로 이동,비와(琵琶)호의 곁을 지나 단거리로 야마도지방(현재의 오사카,나라,아스카지역)에 도착할 수 있다. 동해남부를 항해하여 이즈모지역의 해안가에 소국을 건설했던 신라계 진출자들은 생각보다 일찍 야마도지역에 정착하여 일본의 고대국가가 형성되는데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죽은 천연기념물도 보호대상 죽은 천연기념물은 보호대상인가 아닌가. 결론은 당연히 보호대상이다. 지금까지 죽은 천연기념물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종전의 문화재보호법에 국가지정 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는 허가를 받도록 돼 있으나 생물만 보호대상으로 해석해왔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검찰에서도 종종 박제범 처벌을 놓고 문화재청에 문의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 이런 논쟁에 종지부가 찍어졌다.개정된 문화재법에서 보호대상으로 못박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개정 문화재법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죽은 천연기념물을 표본·박제하는 경우에도 문화재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는 죽은 천연기념물 조수류도 법상의 보호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 천연기념물의 밀렵행태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법 시행전에 보유하고 있는 박제나 표본은 오는 12월31일까지 관할 시·군·구에 신고하면 허가받은 것으로 경과규정을 뒀다. 신고해야 하는 것은 조류는 크낙새·따오기·고니·황조롱이·매·올빼미등 40종,포유류는 반달가슴곰·사향노루 등 6종,곤충은 장수하늘소 1종,어류는 무태장어·어름치 등 3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80년대 중반 자취를 감쳤던 세계적 천연기념물 크낙새가 신고되기를 기대했다. 한편 개정 법은 정식 허가를 받아 만든 천연기념물의 박제나 표본은 수출할수 있도록 했다. 원앙을 사육,수출하는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또 화석등 고생물자료와 천연동굴도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발굴하도록 했다. 처벌 규정도 대폭 강화됐다.허가없이 천연기념물을 박제 또는 표본으로 제작했거나 불법으로 손상한 것을 알고도 이를 취득·운반·알선했을 경우에는2년이상의 징역이나 2,000만원이상 1억5,000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또 신고없이 박제·표본 등을 갖고 있거나 화석 등 고생물자료와 천연동굴을 발견하고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50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서울·제일銀 상반기 2조 적자

    구조조정의 여파로 은행의 경영수지는 크게 호전됐으나 유가증권 투자수익에 상당부분을 의존,금융중개 기능을 바탕으로 한 영업기반은 악화됐다. 은행 예대(預貸)마진은 지난 5월 말 현재 3.14%포인트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1.77% 포인트)보다 더욱 벌어져 가계의 금리부담은 오히려 높아졌다.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상반기에 각각 1조5,000억원,5,000억원 이상씩 적자를 내 해외매각 지연으로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고 있다. ■은행의 흑자폭이 늘었다 금융감독원이 13일 밝힌 IMF 이후의 은행구조 변화에 따르면 17개 일반은행(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은 지난 상반기에 총 5,400억원의 흑자를 냈다. 제일·서울은행을 제외한 15개 은행의 흑자폭은 2조원을 넘는다.지난해 은행권 적자가 14조5,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경영수지가 크게 개선된 셈이다. 한빛은행의 경우 삼성자동차 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 4,700억여원을 쌓고도5,000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됐다.조흥 5,000억여원,외환 1,78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며지난해 상반기 1,912억원 적자를 낸 평화은행도1,460억원의 순이익을 내 흑자로 전환했다. ■유가증권 투자로 재미보고 있다 은행들의 흑자가 는 것은 영업을 잘했다기 보다 증시활황에 힘입은 유가증권 투자이익이 짭짤했기 때문이다.운용자산가운데 대출금 비중은 지난해 말 44.5%에서 3월 말 40.3%로 감소한 반면 유가증권 투자비중은 32.4%에서 37.1%로 늘었다.유가증권 투자수익 비중도 97년 말 13.2%에서 20.5%로 높아졌으나 순이자 수익비중은 55.7%에서 53.3%로낮아졌다. 은행의 영업기반을 나타내는 경상영업 이익률은 지난해 7.9%에 그쳐 97년 10.6%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예대마진이 IMF 이전 보다 높다 지난 5월 말 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는 10.4%,수신금리는 7.26%로 예대마진은 3.14% 포인트다.IMF 이후 5.13% 포인트까지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크게 좁혀진 것이나 IMF 이전인 97년 6월의 예대마진 1.77% 포인트 보다는 훨씬 높아 가계의 금리부담이 여전히 많다. 백문일 박은호기자 mip@
  • 재계 개혁정책에 ‘두손’ 드나/파격적 韓經硏보고서 들여다보면

    한국경제연구원이 11일 내놓은 ‘향후 대기업 환경변화와 대응과제’ 보고서의 내용은 재계의 상징인 전경련 부설연구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다.재계를 초긴장 속에 몰아넣고 있는 정부의 재벌정책을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재계가 정부 정책에 마침내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 백기 들었나 좌승희(左承喜) 한경연 원장은 “정부 제재보다 시장 제재가 더 무서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기업이 능동적으로 개혁을 주도할수밖에 없다는 상황인식 아래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그러나 최근 정부와 재계간 관계나 김우중(金宇中) 전경련 회장(대우 회장)이 이같은 보고서의 필요성을 한경연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진 점을 놓고 볼 때 이 보고서는 재계의 대정부 태도에 중대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재계 일각에선 한진그룹 특별세무조사,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의우회 증여 혐의 조사,현대그룹 주가조작 수사 등 재벌 총수를 겨냥한 일련의 조치들이 가시화하자 “총수들이 직격탄을 얻어맞기 전에 현 단계에서 정부정책에 적극 동조하자”는 정서가 형성되고 있다. 이 보고서가 정부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대기업들에 미칠 파장도 주목된다.한경연은 보고서가 김회장을 제외한 다른 그룹총수들과는 사전 논의 없이발표됐으며 조만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보고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경연의 보고서가 설사 재벌들에게 돌출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재계 내부에서 이처럼 상반된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적지않은 충격”이라고 말했다. ■보고서 내용은 보고서는 ▲실패한 경영진의 퇴진 ▲5대 그룹 계열사의 자발적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신청 ▲독립소그룹 체제 개편 ▲총수의 경영간섭 중단 ▲소액주주의 이사회 참여 등이 골자다. 기업재무구조 개선과 관련해선 대마불사 관행이 이미 사라졌다고 전제,▲부채비율 200% 이내 감축에 적극 노력 ▲이업종간 상호출자 및 대출 축소 ▲워크아웃 프로그램 적극 활용 ▲경영권 양도를 각오한 지분 매각 및 부채 출자전환 추진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업구조 개선을 위해선 비주력·비관련 사업은 수익사업이라도 과감히 처분하고 전문화그룹은 중앙집중적인 경영시스템을,다각화그룹은 계열사별 독립 경영시스템을 취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9)신라전기의 對日교류·갈등

    ◆신라 전기의 對日교류와 갈등 비단으로 감싼 알을 넣은 궤짝 하나가 동해안 한 바닷가(阿津浦口)에 닿았다.이 궤는 먼저 낙동강 하구인 금관가야국에 닿았지만 받아주질 않자 이곳까지 온 것이다.한 할머니가 그 궤짝 안에 있던 아이를 품에 안고 나오자 까치 한 마리가 울며 쫓아왔다.바다를 건너 찾아온 아이는 신라의 4대왕이 된석탈해(昔脫解)였다. 삼국사기에는 그가 왜의 동북쪽 천여리에 있는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왔다 하였고,삼국유사는 용성국(龍城國)이라고 하였다.그러니까 석탈해는 바다건너서 궤짝으로 표현된 배를 타고 들어온 이주민인 셈이다.신라의 건국과정에서 일어난 일종의 항해사화이다. 신라는 4세기 늦게까지 내륙의 분지인 경주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국가로 이해한다.하지만 초기부터 국제성이 강한 나라였고,경주는 바다로 이어진 해항(海港)도시였다.그래서 초기부터 해외와 관련된 기록이 많았다. ‘삼국지’나 ‘삼국사기’ 등에는 진(秦)나라때 난리를 피한 사람들이 신라지역에 있었다고 한다.그들중에는 산동이나 요동등에 살고 있던 동이족들이 많았으며,이후에도 계속 황해를 건너왔다.진한은 당시 중요한 화폐대용이었던 철을 팔면서 남해를 넘나드는 해외무역을 했으니 신라는 당연히 교역망을 물려받았을 것이다.대장장이인 석탈해가 왕이 된 것은 철의 생산과 수출이 매우 중요했음을 알수 있다.세계적인 중국의 안산(鞍山)제철소가 고구려의 요동성 지역에 세워진 것처럼 포항제철과 울산공단이 석탈해의 터전에 세워지고 수출항이 된 것은 역사의 현재화를 웅변한다. 경주는 초기부터 해외로 진출하는 전진기지였고,사람들이 몰려드는 국제도시였다.박혁거세때에 호공(瓠公)은 왜국에서 표주박을 차고 바다를 건너온귀화인이지만 중요한 벼슬을 하였다. 왜인들은 초기부터 신라를 침입해왔고 2대 남해왕때는 병선 100여척에 타고 해안을 침범하였다.때로는 대규모로 침입하여 수도 경주를 위협하기도 했다.왜와 관련된 기사가 500년까지 50여회나 나올만큼 왜인들은 자주 신라를 침범했다. 그런가하면 아달라왕(阿達羅王) 20년(173년) 5월에는 왜국 여왕 비미호가사신을 보내 수교하는 등 우호관계도 유지했다.그래서 그들은 ‘한반도의 남부에 거주한 주민이다’ ‘남부와 대마도,규슈까지 연결하는 규슈 왜왕조의왜인들이다’ ‘단순한 해적집단이다’등 여러가지 설이 나타났다.심지어는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모두가 당시의 해양문화수준이 낮다는 인식에서 나온 설들이다. 그러나 그 시기 동아지중해의 전반적인 해양능력은 발달했다.기원전 3세기에 진시황은 인도네시아까지 선단을 파견하였다.한무제는 수만의 해군을 동원하여 남월(南越)을 정벌하고,위만조선과 수군을 동원한 대전쟁을 하였다.3세기에 위나라는 서해 연안항로를 이용하여 일본열도까지 교역은 물론,내정간섭까지 하였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미 7,000여년 전부터 교류가 있어왔다.물살은 거세지만 최단거리로 이으면 200km에도 못미치는 대한해협은 해양민들이 건너다니기에는 어려운 바다가 아니었다.일본의 초기역사를 다룬 ‘일본서기’의 초반부에는 신라관련 기록이 많이 나타난다.태양여신인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와 싸우다 실패한 스사노오노미코도는 그의 뿌리나라(根國)인신라로 돌아가고 후손들은 이즈모(出雲)지역에서 지배권을 확립한다. 또다른 기록엔 스사노오노미코도가 신라에 내려와 살다가 흙(埴土)으로 만든 배를 타고 이즈모지방의 도리가미노다케(鳥上峯)에 내려왔다고 한다.신라인들은 그 후 더욱 적극적으로 일본열도의 여러 지역으로 진출한다.그 시대에 사용된 선박의 규모는 알 수가 없다.무덤에서 나온 배모양의 토기는 단순한 형태의 부장품일 뿐이다. 신라왕은 응신천황에게 배만드는 장인을 보낼 정도였다.그런데 비슷한 시대에 위나라 사신과 상인들은 대방을 경유하여 김해와 대마도를 거쳐 일본 규슈까지 타고 다녔다.이미 100명 이상이 타는 큰 배들이 대한해협을 항해하고 있던 시대이었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면 왜인들이 신라에 오는 시기는 거의 봄철에 집중되고 있다.규슈나 대마도,이즈모 등 지역에서 남풍계열의 바람을 타면 자연스럽게 신라지역에 도착하기 때문이다.일본 선사시대 조오몽(繩文)토기들이 부산의 동삼동이나 울산 서생포에서 발견되는 것은 해류와 함께 이 남풍을 이용한 때문이다. 반대로 신라배들은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북풍계열의 바람을 이용하여 남진하였다.그러니 대한해협을 건너다니는 신라배나 왜의 배는 돛을 단 상당한수준의 범선이었다.그리고 초기부터 해군이 있었다.석탈해때는 가야와 황산진구(黃山津口)에서 싸웠다.조분왕(助賁王,233년)때는 해상에서 왜와 화공전까지 벌였으며,유례왕(儒禮王,289년)때는 왜국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병선을 수리했다. 그러면 그 당시 한일항로는 어떠 했을까? 신라의 위치나 동해남부와 일본열도 사이의 해양조건을 고려한다면 신라인들은 주로 경주 외항인 감포,눌지왕때 박제상이 출발한 울산(율포),아달라왕때 연오랑과 세오녀가 출발한 포항의 영일만 지역 등 항구에서 일본열도로 의욕에 찬 항해를 시작하였다.초기에는 좀더 안전하게 대마도를 경유하여 규슈 북부지역에 도착했지만,해양능력이 점차 향상되면서 혼슈 남단 시마네현,돗토리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반대로 왜인들은 대마도 규슈북부,혼슈 남부 등 여러지역에서 목적에 따라출발하였다. 그래서 삼국사기에는 이들을 왜인,왜국,왜병,적 등으로 구분해부른 것이다.해류와 조류 등 바람을 이용해서 왜인들이 가장 쉽게 도착한 곳이 신라해변이다.신라와 왜 사이에 벌어진 어쩔수 없는 갈등관계는 대한해협의 섭리였다.때문에 신라는 처음부터 수군을 키우며 해양능력을 강화시켜야만 했다. [윤명철 동국대 겸임교수]
  • 14일 부터 부산∼대마도行 쾌속선 뜬다

    부산과 일본 쓰시마(對馬島)를 잇는 부정기 여객선 항로가 오는 14일 처음열린다. 해양수산부는 6일 대아고속해운(대표 이우극)이 426t급 쾌속선 씨플라워호를 투입,부산에서 쓰시마의 이즈하라(嚴原)항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3차례 오가는 계획을 인가했다. 이 배는 울릉도 항로를 오갔었다. 부산에서 이즈하라항까지는 약 71마일로 2시간30분 정도가 걸린다.운임은일반실이 5만7,000원,우등실이 6만2,500원이다.출항시간은 부산에서 오전 10시30분,이즈하라에서 오후 3시30분이다. 쾌속선 운항을 계기로 두 지역간의 교류가 늘고 해상관광도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함혜리기자 lotus@
  • [사설] 계좌추적과 재벌 구조조정

    공정거래위원회가 처음으로 계좌추적권을 발동,현대·삼성 등 재벌그룹의부당 내부거래를 조사키로 한 것은 최근 경기회복 조짐을 틈타 5대 그룹의구조조정 지연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5대 그룹은 은행과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해놓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계열사 매각,외자유치,부동산 매각 등의 약정내용이 그대로 실행만 된다면 구조조정이 조기에 완료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루고 있다는것이 정부나 국민의 시각이다.이들 그룹이 시간 벌기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공정위는 지난달 착수한 5대 그룹 제3차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서 이들 그룹들이 비밀리에 약정을 맺어 계열사를 상호 교차지원하고 다른 계열사가 계열 증권사를 지원하는 등 신종 부당 내부거래를 해온 혐의를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공정위는 이같은 신종 불공정거래 행위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회사에금융자료 제시를 요청했으나 해당 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티고 있고,금융기관도 금융실명법 위반을 내세워 자료제출을 거부하자 계좌추적권을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또 이들 그룹이 은행과 증권사에 설정한 특정금전신탁과 증권계좌 등을 이용하여 은행과 증권사가 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이나 회사채를 싼값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해당 계열사를 지원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최근 상위 재벌그룹의 부당 내부거래가 다양해지고 방법도 교묘해져당국이 이를 뒤쫓기에 바쁜 형국을 보이고 있다.이번에 계좌추적권이 발동된 현대그룹과 삼성그룹만의 부당 내부거래 추정액이 각각 1조원과 5,000억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를 입증해준다.정부가 이들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를 뿌리뽑지 못한다면 상위 재벌 계열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초대마(超大馬) 불사(不死)라는 신조어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당국은 특히 이들 그룹 다른 계열사가 계열 증권사의 펀드를 매입,펀드수익률을 부추기는 새로운 수법의 부당 내부거래를 중점적으로 가려내야 할 것이다.이런 부당 내부거래는 해당 그룹에 한정되지 않고 증권시장 전체와 관련된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증시 주변에선 재벌그룹 증권사가 펀드자금을이용,계열사 주가를 올리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나돌고 있다.만약 재벌 계열 증권사의 펀드운용이 잘못되어 펀드가입자들이 일시에 환매를 요청할 경우 자금부족으로 인해 큰 혼란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공정위는 전문인력과계좌추적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모든 상위 재벌그룹 계열사들의 부당 내부거래를 철저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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